최근 수정 시각 : 2024-02-04 14:24:54

개마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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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서는 한국사의 개마무사에 대해 다룹니다. 일반적인 기병종에 대한 내용은 카타프락토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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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3. 역사4. 개마무사 벽화


鎧馬武士

1. 개요

마갑으로 중무장한 말을 탄 무사(武士)를 가리킨다. 여기서 개()라는 한자는 갑옷을 뜻하므로, '개마무사'란 명칭은 '갑옷을 걸친 말을 탄 무사'를 가리킨다. 따라서 중장기병이나 중기병, 철기병 등 어휘와 동의어라고 할 수 있다. 고구려 개마총 벽화에 적힌 "총주착개마지상(塚主着鎧馬之像, 무덤 주인의 갑옷 입힌 말의 모습)"이라는 문구와 천년의 신화의 개마무사에서 유래되었다.

2. 상세

파일:external/www.kjclub.com/naver_com_20131201_120638.jpg
고구려 개마무사
'개마무사'란 단어를 '고구려만의 특수병종'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으나, 개마무사란 어휘 자체는 '철기병'과 사실상 동의어이고, 고구려만 이런 부대를 운용한 것은 아니다. 단어의 한자도 갑옷 개, 말 마 자를 사용한 일반명사이므로 고구려에 한정짓는 의미가 아니다.[1]

이런 중장기병 시스템이 고구려에서만 있었던 특수병은 아니었지만 평소 한국의 역사 동호인 사이에서는 개마무사라는 단어가 병종으로서 '중장기병' 그 자체보다는 한국사, 특히 고구려에서 운용하였던 '특정시기의 (역사적) 중장기병'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널리 쓰인다.

실제 세계사를 보면 유사한 양식의 카타프락토이는 당시 유라시아 전역에서 확인되며 같은 삼한계 국가였던 신라가야 유적에서도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 처럼 중장기병을 묘사한 유물이나 마갑 유물이 출토되었다. 가령 마갑총 고분 유물이 출토된 아라가야 같은 경우도 '개마무사'나 '개마무인'이라는 표현을 쓴 사례를 상당수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학문적 영역에서는 개마무사라는 말을 고구려 기병만을 부르는 명칭으로 국한해 사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신라마각문토제품과 가야개마무인상토기'라는 논문 제목을 보면 고구려 중기병으로 한정하는 용어가 아님을 알 수 있다.[2]

가야 개마무사를 재현한 사진들

인터넷에서 떠도는 일부 자료에서 '개마고원(蓋馬-)은 개마무사(鎧馬-)들이 말을 타던 것에서 유래한 지명'이라는 얘기를 하곤 하는데, 일단 이 둘은 한자부터가 다르다. 장비는 장비를 좋아해 개마고원의 지명은 한서의 서개마현, 후한서의 개마대산, 삼국사기의 개마국 같은 지명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 개마국의 위치를 두고 개마대산(개마고원 혹은 백두산)이라고 보는 설과, 현 랴오닝성 동북부 혹은 지린성 남부라고 보는 설이 있다. 후자라면 더더욱 개마고원과는 연관이 없다.[3] '개마무사'는 '갑옷 입힌 말을 탄 기병'이라는 뜻이고, 개마고원의 '개마'는 말 덮개, 즉 안장이나 입마개 등을 포함한 마구(馬具)를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마구를 의미하는 것인지는 여러 설이 많다. 중장기병이 산을 탄다니 말은 무슨 죄야[4]

3. 역사

개마무사나 그 비슷한 형태였으리라 추정되는 병과는 기록상 고구려에서 3세기 초중반 동천왕 시기에 양맥 전투에서 철기라는 명칭으로 처음 등장한다. 역사상 철기라는 말은 철갑으로 무장한 병사 외에도 정예 기병대를 가리키는 뜻으로 쓰인 경우도 많아 분명하지는 않다. 고구려가 원조냐 외국이 원조냐 논쟁이 있지만, 말까지 중무장했던 철기병이 벽화로 기록된건 고구려벽화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철좀 더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4세기 초엽 중국이 오호십육국시대로 들어섰을 무렵으로 추정한다. 동아시아 전역에서 중장기병이 유행하기 시작한 무렵이므로 고구려에서도 마찬가지로 개마무사가 출현했으리라 여기는데, 고구려가 철광석이 풍부한 만주 일대를 영유하였으므로 중장기병을 양성하기 적합했을 것이다.

전장에서 초인적인 활약을 했다는 구체적인 기록은 지금까지 발견된 바 없다. 하지만 고대에 세계 최강의 병과가 중기병이었던 만큼 허약한 부대는 아니었을 터이다. 특히 북방의 소규모 부족들이나 상대적으로 고구려보다 군사기술과 기병 양성 능력이 떨어지는 한반도의 여타 국가들을 상대로 우수한 활약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시기 이들의 무장은 두꺼운 갑옷과 마갑, 이라고 부르는 기병창과 고리자루큰칼 등 백병전용 무기였으며, 전술은 서아시아의 카타프락토이와 유사했다고 추측한다.

한민족의 개마무사(카타프락토이)는 말 품종의 개량과 전술의 발전으로 나당전쟁, 남북국시대를 거치면서 경기병으로 서서히 대체되기 시작했고 후삼국시대후백제의 군주이자 호남 지방의 군벌이던 견훤이 '철기병'을 운용했다는 기록을 마지막으로 한국사에선 자취를 감추었다. 고려 시대에도 중기병이 운용되긴 했으나 마갑을 갖춘 기병은 아니었으며, 기수가 중장갑을 갖춘 형태로 발전하였다. 이후 한국사의 중기병은 조선에서 두정갑을 쓰기 시작하며 더더욱 개마무사의 형태와는 거리가 멀어졌으며, 대한제국으로 칭제건원하며 영원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한국이 제대로 된 중장갑 부대를 갖추는 것은 1970년대의 국산 전차 배치가 시작된 이후였다.

4. 개마무사 벽화

파일:84D10F04-BF39-4C0B-AE7C-1530C034F991.jpg
통구 12호분
파일:삼실총 개마무사.jpg
삼실총
파일:약수리 벽화 개마무사들.jpg
약수리 고분
파일:A6B16A23-3703-491F-BAA4-10B0CF15C23E.jpg
개마총[5]
파일:EkFmJ1tVcAEJwW.jpg 파일:31C9251A-4075-4018-BFC9-7160103DDBC1.jpg
안악 3호분


[1] 고구려 영토에 걸친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 개마고원덮을 개 자를 쓴다.[2] 이은창, <신라마각문토제품과 가야개마무인상토기>, 《신라가야문화》11,. 1980[3] 다만 대체로는 량강도에 위치했던 걸로 추정한다.[4] 필요하다면 산도 타긴 탔다고 추정한다.[5] 윙드 후사르와 비슷하게 말 엉덩이에 형형색색 깃발이 달려있는 모습이 이색적인데, 덕흥리 고분 행렬도에서도 비슷한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