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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의 대외관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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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구려와 수나라의 외교 관계에 대한 문서이다.2. 역사
2.1. 초기
수나라는 처음에 고구려와 나름 잘 지내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내부문제와 통합, 북방국경 단속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실제로 삼국사기에 의하면, 581년부터 584년까지 일곱 차례나 수나라에 조공을 바쳤다고 쓰여져 있다. 다만 수나라의 남진 통일 이후 고구려는 긴장하며 수나라를 주시했다.
2.2. 중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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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수 문제 때부터 전쟁이 처음 벌어졌으나 얼마 되지 않아 종식되었고, 고구려와의 전쟁을 포기하려 했지만 수 양제는 고구려와의 분쟁에 집착을 해서 본격적인 전쟁들이 벌어졌다.
2차부터 3차, 4차까지 일으켰으나 모두 실패했고, 결국 이는 수나라의 국력이 크게 기울어져 수나라가 망하는 원인이 되었다.
결국 고구려가 먼저 화친 요청을 했고, 나중에 수양제는 이를 받아들인다. 그러나 국력이 심하게 약해진 수나라는 결국 우문화급의 반란으로 붕괴되면서 고구려와 수나라의 관계는 끝나고 만다.
3. 문화·문물 교류
흔히 고구려와 수나라 관계 하면 전쟁만 떠오르지만 사실 꼭 그렇지도 않았는게, 수나라 황실에서는 고구려의 춤과 악기에 관심이 많았다. 수나라의 춤곡은 수문제 때 일곱 가지(七部伎)였다가 수양제 때는 아홉 가지(九部伎)로 늘어났는데, 여기에는 고구려 악기인 고려기(高麗伎)도 필수적으로 들어갔다.[1]고구려의 유명했던 무용인 호선무 역시 6세기 수나라를 통해 고구려에 왔을 가능성도 있다. 관련 논문[2]
그리고 전쟁을 하면서 무기에도 영향을 미치기도 했는데, 고구려는 수나라로부터 쇠뇌 기술을 도입하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