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0 17:15:42

유충정

劉忠正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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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고려관리. 관직은 지은대사 좌사낭중.

2. 생애

본래 발해 사람으로 다른 기술과 재능이 없었는데도 목종에게 매우 큰 총애를 받았으며, 목종이 수방(水房)의 관리를 유충정과 유행간에게 나누어 소속시켜 출입할 때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분수에 맞지 않는 것이 없었고, 목종이 병이 들자 유충정은 유행간과 함께 대궐 내에서 숙직했다.

1009년에 목종이 채충순을 불러 왕위를 엿보는 사람이 있다면서 이를 알고 있냐고 물어서 목종이 베게 옆에 있던 편지를 채충순에게 주었는데, 유충정이 올린 글이었다. 유충정은 편지에서 김치양이 분수에 넘치게 왕위를 넘보고 사람을 시켜 물건을 보내면서 심복들을 심어놓고 있으며, 자신에게도 도우라고 요구하자 거절했지만 이를 아뢰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목종이 채충순에게 사람을 보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내용이 담긴 대량원군의 편지도 보여주면서 대량원군을 도우라고 했고, 유충정은 고영기를 보내 채충순과 최항에게 임금께서 병석에 누워 계셔서 간악한 무리들이 틈을 보이므로 사직이 다른 성씨에게 넘어갈까 우려스럽다며 태조의 후손을 후계자로 삼아야 한다고 전했다.

고영기를 통해 채충순과 최항도 대량원군이 후계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듣자 유충정은 다시 고영기를 보내 자신이 직접 가고 싶지만 따르는 무리가 많아 다른 사람들이 의심할 것으로 여겨 직접 와달라고 했으며, 이에 채충순과 최항이 유충정을 찾아가 논의했다.

강조의 정변이 일어나 강조의 병사들이 궁궐로 난입하고 목종이 면하지 못한 것을 알고 헌애왕태후와 함께 통곡하면서 궁인, 내수 등을 거느리면서 유충정은 채충순과 함께 법왕사로 나갔다.

이후 기록에는 동일인인지 동명이인인지 확실치 않지만, 1030년 7월 14일흥료국의 행영도부서로 대경한을 보내 구원을 요청하는 글을 고려에 보냈다.

3. 대중매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