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5-26 07:05:27

주우(건의대장군)

운대 2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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朱祐
(? ~ 48)
1. 개요2. 생애

1. 개요

양한교체기의 인물로, 자는 중선(仲先). 형주 남양군(南陽郡) 완현(宛縣) 사람이다. 남궁(南宮) 운대(雲臺)에 그려진 28명의 장수들 중에서 서열 8위에 속한다.

2. 생애

완현에서 출생하였으나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유씨(劉氏)를 따라 외가가 위치한 청하군 복양현으로 이사하였다. 주우는 외할아버지 집에 들어가 살면서 용릉(舂陵)을 자주 왕래하였는데, 유연(劉縯)과 그 동생 유수를 만나 친분을 맺었다.

경시 원년(23년), 유연 형제가 경시제 유현(劉玄)을 추대하여 왕망신나라에 대항하자 주우도 합류해 대사도 유연의 호군(護軍)이 되었다. 얼마 뒤, 유연이 경시제의 견제를 받아 살해되고 대사마 유수가 하북 정벌에 나섰다. 이때 주우는 유수 휘하의 호군이 되어 언제나 유수의 곁을 호위했으며 숙식도 함께 하였다. 하북에서 유수가 여러 군벌과 도적떼를 섬멸할 때마다 힘껏 싸워 편장군에 임명되고 안양후(安陽侯)에 봉해졌다. 주우는 유수에게 거듭 황제에 오르라 권했고, 그럴 때마다 유수는 주우를 나무랐지만 둘의 사이는 그럴수록 더욱 친밀해져만 갔다.

건무 원년(25년), 유수가 결국 황제에 즉위하자 건의대장군에 임명되었다. 주우는 경엄, 풍이 등의 장수들과 힘을 합쳐 하북을 어지럽히던 수많은 도적떼들을 토벌했다. 이후 광무제의 명을 받아 11명의 장수들과 함께 현한의 낙양성을 포위했다. 낙양성을 지키던 경시제의 좌대사마 주유(朱鮪)는 2개월만에 성을 들어 항복하였다.

건무 2년(26년), 도양후(堵陽侯)로 전봉되었다. 그 해 가을, 주우는 잠팽의 지휘 아래에서 반란자 등봉(鄧奉)을 쳤으나 패하여 자신은 반군에게 사로잡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광무제가 친히 군사를 거느려 등봉을 격파하고 주우를 구해준 뒤, 패한 책임을 묻기는 커녕 상을 후히 내려 그를 위로하였다. 이후 주우는 신야(新野)와 수(隨)를 모두 평정하면서 패전의 수모를 씻었다.

동년 6월, 군벌 연잠(延岑)이 양(穰)에서 경엄에게 패하여 동양취(東陽聚)로 도주해, 남군의 진풍과 세력을 합쳤다. 주우는 정로장군 채준(祭遵)과 함께 동양취에서 연잠을 쳐부수고 인수 97개를 탈취했다. 연잠은 패주하여 진풍에게 갔고, 주우는 남쪽으로 진격해 황우현(黃郵縣)을 쳐 항복을 받아냈다. 이에 광무제가 주우에게 황금 3천 근을 하사하였다.

건무 4년(28년) 2월, 주우는 북으로 이동해 탁군에서 경엄, 채준, 효기장군 유희(劉熙)와 합세하여 반란자 팽총의 무상대장군 장풍(張豐)을 격파했다.

동년 11월, 정남대장군 잠팽을 대신하여 파간장군 후진(侯進), 보위장군 경식(耿植)과 함께 여구(黎丘)에서 궁지에 몰려있는 진풍을 계속 포위하였다. 진풍은 장수 장강(張康), 채양(蔡陽)을 보내 저항해보았으나 주우가 이들을 전부 사로잡아 참하였다. 광무제가 친히 여구에 이르러 포위망을 순시하고, 어사중승 이유(李由)를 시켜 진풍을 부른 뒤 항복을 권했지만 진풍은 성벽 위에서 광무제를 향해 악담만 퍼붓고 다시 들어갔다. 분노한 광무제는 주우에게 진풍의 항복을 받지 말 것을 당부하고 여구를 떠났다.

건무 5년(29년), 식량이 다 떨어진 진풍은 더이상 버틸 수 없어 모친과 처자식 9명을 거느리고 나와서 항복을 청했다. 주우는 이들의 항복을 받아들이고 진풍만 포박해 수도로 압송한 뒤 처형하였다. 대사마 오한은 주우가 황제의 명을 어겼으니 죄를 물어야한다며 규탄했지만 광무제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주우는 전장으로 돌아가 기도위 장궁(臧宮)과 협력하여 음(陰), 찬(酇), 축양(筑陽) 3개 현을 공격해 평정하고 연잠의 장수 유공(劉恭)의 항복을 받아냈다.

주우는 사람됨이 질박하고 정직하며, 유학을 숭상하였다. 병사를 거느리고 지역을 점령할 때는 항상 항복부터 받는 것을 우선시하며 성읍 안정을 제일로 삼았지, 적의 수급을 모아 공을 쌓는 데에는 관심이 없었다. 또, 휘하 병사들이 점령지의 백성들을 약탈하는 것을 엄금하였는데 이 때문에 그를 원망하는 병사들이 매우 많았다.

건무 9년(33년) 6월, 한나라가 외효의 잔당과 공손술 토벌에 온 신경이 쏠려있는 틈을 타 동북쪽에서 흉노가 발호하였다. 광무제는 주우, 오한, 왕상 등 4명의 장수에게 5만 병력을 주어 이를 막게 하였다. 주우는 상산군 남행당(南行唐)에 군사를 주둔시키고 흉노의 침략을 방어했다.

건무 13년(37년), 성도를 함락한 오한이 수도로 개선하면서 마침내 천하통일을 달성하였다. 광무제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각 장수들의 식읍을 늘려주었는데, 주우가 자신의 공훈은 다른 이들에 비해 적으니 남양(南陽)의 500호만으로 족하다며 한사코 거절하였다. 광무제는 그의 말을 무시한 채 격후(鬲侯)로 전봉시키고, 식읍을 7,300호로 늘려주었다.

건무 15년(39년), 다른 대장군들과 마찬가지로 주우도 대장군 인수를 반납하고 은퇴를 청했다. 광무제는 그의 은퇴를 받아들이는 대신 봉조청(奉朝請)으로 삼아 조정에서 행사나 의례 등을 할 때 입조할 수 있도록 했다. 주우는 상소를 올려, 과거에는 신하들을 봉작할 때 왕작을 하사하지 않았으므로, 지금의 여러 왕들을 공(公)으로 격하시켜야 한다 주장하였다. 광무제는 이를 옳게 여겨 그대로 시행하였다.

주우는 은퇴한 후, 장안에 머물며 학생들에게 유학을 가르치면서 평화로운 말년을 보냈다. 이따금 볼 일을 마친 광무제가 그의 집에 행차하면 주우는 항상 강사(講舍)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다. 광무제는 끝날 때까지 기다리다가, 강의를 마치고 나오는 주우를 수레에 태우고 웃으며 "선생께서는 어찌 저를 내버려두고 강의를 하십니까?"라 농담하였다. 이렇듯 광무제가 천하통일을 한 후에도 둘의 친분은 예전과 다르지 않았고 또, 광무제는 옛 정을 생각해 주우에게 사사로이 후한 상을 수 차례 내렸다.

건무 24년(48년), 주우는 자택에서 숨을 거뒀고, 작위는 아들 주상(朱商)이 이어받았다. 그의 시신은 봉지인 격(鬲)에 묻혔고, 오늘날 산둥성 더저우시 더청구에 그의 묘지가 아직까지도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