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한서(後漢書) | |||
{{{#!wiki style="margin: -0px -10px; margin-top: 0.3px; margin-bottom: -6px" {{{#ece5b6 {{{#!wiki style="display: inline-block; min-width:25%" {{{#!folding [ 본기(本紀) ] {{{#!wiki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7px 10px" | 1권 「광무제기(光武帝紀)」 | 2권 「명제기(明帝紀)」 | 3권 「장제기(章帝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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鄧晨
(? ~ 49)
1. 개요
양한교체기 시대 후한의 개국공신. 자는 위경(偉卿). 형주 남양군 신야현 출신으로 예장도위 등굉(鄧宏)의 아들이다. 조상 대대로 2천 석의 관리를 지낸 집안이라 나름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고, 광무제 유수가 거병하기 전에 그의 둘째 누나 신야장공주 유원(劉元)과 혼인하면서 유수의 매형이 되었다.2. 생애
왕망의 신나라가 몰락해갈 무렵, 유수 형제와 함께 완(宛)에 놀러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채소공(蔡少公) 등과 만나 연회를 즐겼는데, 일찍이 도참에 밝았던 채소공은 그 자리에서 유수를 보며 천자가 될 것이라 예언하였다. 그런데 이 당시에는 광무제보다 훨씬 유명하고 권세 있는 인물인 국사공 유수가 있었기에, 어떤 이가 "국사공 유수 말입니까?"라고 하자, 광무제는 “제가 아니란 법은 없잖습니까?"라 맞받아쳤다. 연회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농담이라 생각하며 웃어 넘겼으나, 등신만은 마음 속으로 이를 진심이라 여기고는 기뻐하였다.지황 3년(22년), 남양에 큰 기근이 들어 각지에 도적이 횡행하자, 유수는 가족들을 데리고 매형 등신의 집으로 피신하였다. 등신은 유수 가족을 진심으로 맞아주었고, 두 가족은 모두 화목하게 지냈다. 어느 날, 등신이 유수에게 "왕망이 포악하여 한여름에 사람을 수도없이 참했으니, 곧 하늘이 그를 멸망시키려 할 것이오. 그대는 완에 모여서 했던 말을 홀로 품고만 있을 텐가?"라며 거병을 은근히 권했지만, 유수는 그 말을 듣고도 그저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동년 11월, 용릉에서 거병한 유수가 호양을 점령하고 극양(棘陽)으로 오자, 등신은 집안 사람들을 거느리고 극양으로 가 유수와 합류하였다. 그러나 세력을 확장해가던 유수는 소장안(小長安)에서 신나라 토벌대와 크게 싸워 대패하였다. 이로 인해 유수의 제장들은 대부분 가족을 잃는 참사가 벌어졌고, 지휘관인 유수 또한 가족들과 헤어져 단기로 달아나다가 여동생 유백희(劉伯姬)만 겨우 구해서 탈출할 정도로 상황은 급박했다. 그렇게 달아나던 유수 남매는 난리 통에 길을 잃은 둘째 누나 유원과 그녀의 세 딸을 만나자 얼른 말에 타라고 재촉했다. 유원은 말 하나로 이 많은 사람을 태우고 전장에서 빠져나가는 건 무리일 거라 생각해, 너희라도 살아야 한다며 말에 타기를 거부했다. 때마침 신나라 병사들이 빠르게 추격해오니, 유수는 유원을 내버려둔 채 떠나야했고, 유원과 세 딸은 모두 신나라 병사들에게 죽임을 당하였다.
간신히 살아남은 유수는 극양으로 물러나 군을 재정비하였다. 이때 유수의 패전 소식을 들은 신야 현령은 유수와 연루당하지 않기 위해 등신 가문의 집을 모조리 파괴하고 조상의 분묘를 철거해버리니, 등신을 따라 유수와 합류했던 집안 사람들은 모두 등신을 원망하며 말했다.
우리 집안은 원래 부유했건만, 어찌하여 처가 식구들을 따라 끓는 물이 담긴 솥으로 들어가려 하는가?
아내와 딸들을 모두 잃고 패가망신 직전인 상황임에도 등신은 시종일관 후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경시 원년(23년), 경시제 유현이 즉위하자 등신은 편장군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유수를 따라 영천군을 공략하다가 곤양대전에서 유수가 신나라 대군을 격파할 때 공을 세웠다. 곤양에서 대승을 거둔 유수는 빠르게 군사를 나눠 영천군의 나머지 현들을 장악해 나갔고, 등신도 이때 영천군 동쪽 지역으로 진출하여 경(經)과 밀(密) 현을 빼앗았다. 이후 왕망이 죽고 경시제가 낙양에 입성하자 등신은 상산태수에 임명되었다.
경시제가 유수에게 적은 병력을 주고 왕랑을 정벌하도록 하자, 등신도 그를 따라 하북으로 종군하고 싶어하였다. 등신은 유수를 찾아가 '이 한 몸 바쳐 어떻게든 한단성을 함락시킬테니 부디 데려가달라' 청했으나, 유수는 웃으며 대답했다.
위경(偉卿)은 나를 따라다니는 것보다 한 군(郡)의 주인이 되어 부디 나의 북도(北道)를 지원해주시오.
이에 등신은 부임지인 상산군으로 돌아가, 유수가 부탁한대로 끊임없이 물자를 보내 지원해주었으며, 유수가 동마적과 고호적을 추격할 때도 궁수 천여 명을 보내 도왔다.건무 원년(25년), 광무제 유수가 황제에 즉위하자, 그동안의 공로를 인정받아 방자후(房子侯)에 봉해졌다. 유수는 난전 중에 눈앞에서 살해당한 누나 유원을 구하지 못해 항상 안타까워 하였기에 그녀를 신야장공주로 추존하고 시호는 절의(節義)라 하였다. 그리고 그 난리 속에서 겨우 살아남았던 유원의 아들 등범(鄧𣳋)을 오방후(吳房侯)에 봉하고, 신야현 서쪽에 신야장공주를 기리는 묘를 세워 등범으로 하여금 어머니의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건무 3년(27년), 광무제는 등신을 수도 낙양으로 불러 연회를 베풀고,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옛날 이야기를 하며 회포를 풀었다. 연회를 즐기던 등신은 광무제에게 여유롭게 농담을 하였다.
저는 이제서야 말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에 광무제가 크게 웃었다. 이후 등신은 광무제를 따라 장릉(章陵)으로 이동해 광록대부에 임명받고, 지절을 수여받아 집금오 가복(賈復) 등을 감독하여 소릉(邵陵)에서 도적떼 신식(新息)을 멸하였다.건무 4년(28년), 광무제가 수춘으로 행차할 때 따라가 구강(九江)을 지켰다. 그리고 얼마 안가, 광무제는 등신이 군대를 이끄는 장수보다 태수직에 훨씬 어울린다 판단하여 그를 중산태수로 부임시키니, 과연 중산군의 관리와 백성들이 모두 좋아하였고, 실적 역시 매년 기주의 다른 태수들과 비교해보아도 항상 상위권을 차지하였다.
건무 13년(37년), 천하가 통일된 이후 남련후(南䜌侯)로 전봉되고 여남태수로 발령받았다.
건무 18년(42년), 다시 장릉을 방문한 광무제가 등신을 불러 잠시 정위(廷尉)를 겸하게 하였다. 광무제는 등신을 데리고 신야에 이르러 마음껏 술을 퍼마시고는 그에게 백만 전을 하사하고 다시 여남으로 돌려보냈다. 등신은 여남을 다스리면서 수천 리에 달하는 홍극피(鴻隙陂) 땅을 농경지로 개간하였고, 은광을 개발해 은 생산도 풍부하게 하였는데, 이 덕에 여남군은 후한의 다른 군들보다 훨씬 부유했다.
건무 19년(43년), 광무제는 등신을 서화후(西華侯)로 전봉하고, 그를 불러 자신이 동쪽을 순시할 때 함께 따라가도록 하였다.
건무 25년(49년)에 사망하였다. 광무제는 중알자를 파견해 공주의 관속의 예에 따라 장례를 치르도록 하였다. 광무제는 매형을 누나 신야장공주와 합장시키고 싶어했으나 묘만 있고 시신은 없다보니, 공주의 혼을 맞이하는 의식을 치르고는 등신과 함께 북망산에 합장하도록 하였다. 북망산에 부부의 시신을 묻을 때 광무제는 중궁에서 나와 친히 문상하였다. 시호는 혜(惠).
그의 막내아들 등당(鄧棠)이 아버지의 작위를 이었다가 후에 무당후(武當侯)로 개봉되었고, 손자 등고(鄧固), 증손자 등국(鄧國), 현손자 등복(鄧福)까지 작위가 세습되었으나 등복 대에서 대가 끊겨 봉국은 철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