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02 18:52:19

가복

운대 2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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賈復
(? ~ 55)
1. 개요2. 생애

1. 개요

양한교체기의 인물로, 자는 군문(君文). 형주 남양군(南陽郡) 관군현(冠軍縣) 사람이다.

2. 생애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상서》를 익혔다. 그의 스승이던 이생(李生)은 자신의 다른 문하생들을 향해 가복을 칭찬하며 말했다.
"가군(賈君)의 용모와 뜻이 이와 같고 부지런히 공부하니 장상(將相)의 그릇이로다."
가복은 성인이 되어서 관직에 올라 현(縣)의 관리로 일했다. 한번은 하동(河東)에서부터 소금을 가져오는 임무를 맡았는데, 가는 도중 도적들을 만났다. 그와 함께하던 동료 십여 명은 모두 달아났음에도 홀로 남아 소금을 지키고 무사히 현까지 운반하니 사람들은 모두 믿음직스럽다며 칭찬하였다.

지황 4년(23년), 신나라가 무너져갈 무렵에 신시병(新市兵)이 기의하자 가복은 군중 수백 명을 모아 우산(羽山)에서 장군을 자칭했다. 얼마 안가 신시병은 하강병(下江兵)과 군세를 합쳐 녹림군(綠林軍)으로 발전하고, 경시제 유현(劉玄)을 옹립하며 현한 정권을 수립하였다. 이때 가복은 자신의 무리들을 이끌고 현한의 한중왕(漢中王) 유가(劉嘉)에게 귀순해 교위에 임명되었다. 하지만 낙양성을 차지한 이후 경시제의 정치는 난잡해졌고, 그의 장수들은 방종하였다. 이에 가복은 유가에게 진언했다.
"신이 듣건대, 요순(堯舜)의 일을 도모하다가 미치지 못한 자는 탕무(湯武)요, 탕무의 일을 도모하다가 미치지 못한 자는 환공(桓公)·문공(文公)이요, 이들의 일을 도모하다가 미치지 못한 자는 6국(六國)이요, 6국처럼 법률을 정비하여 편안히 잘 지키고자 하였으나 실패한 자는 6국에게 망한 다른 나라들입니다. 지금 한(漢) 황실이 중흥하려 함에 대왕께서는 친척으로서 돕는 번(藩)이 되시고, 천하가 채 평정되기도 전에 보존하는 것만을 선택하셨는데, 현재 보존하려는 바를 장차 계속 보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유가 답했다.
"경의 말(言)은 너무 커 내가 감당할 수 없소. 지금 하북에 나가 있는 대사마 유공(劉公)이라면 반드시 이를 시행할 수 있을 터이니 내 그대를 추천하는 글을 써서 그에게 보내도록 하겠소."
가복은 추천서를 받아서 진준 등 자신을 따라 유수에게 갈 뜻이 있는 무리를 꾸려 황하(黃河)를 건넜다. 가복은 백인(柏人)에서 유수 일행을 따라잡고 등우를 통해 유수와 접견하였다. 가복을 만나본 유수는 그를 기이하게 여겼고 곁에 있던 등우 또한 가복에게 장수의 절개가 있다며 칭찬하였다. 이윽고 유수는 가복을 파로장군에 삼아 도적 토벌을 맡겼다. 그렇게 접견을 마치고 막사에서 나온 유수는 가복의 말이 수척한 것을 확인하고 자신의 수레를 몰던 참마(驂馬)를 풀어 그에게 하사했다. 유수 휘하의 관속들은 후임인 가복이 자신들보다 후한 대접을 받는 것을 보고 분통하여 가복을 호현(䧚縣)의 위(尉)로 파견할 것을 상주하였다. 그러자 유수가 말했다.
"가독(賈督)은 천리를 꺾을 만한 위세가 있어 그 직책을 맡긴 것이니 함부로 멀리 보낼 수 없다."
가복은 이후 장군으로서 유수를 따라 하북 원정에 종군하였다.

경시 2년(24년), 한단(邯鄲)에서 거병한 왕랑의 군사에 쫓겨 유수와 함께 신도(信都)로 피신했을 때 편장군에 임명되었고, 여러 전투 끝에 한단성을 함락하고 왕랑을 주살했을 때는 도호장군으로 옮겨졌다. 비록 하북에서 가장 큰 위협이었던 왕랑이 제거되었으나, 아직 하북의 정세는 왕랑이 일어나기 전부터 날뛰던 도적떼들로 매우 어지러웠다. 이에 유수는 가복을 포함해 장수들을 거느리고 사견(射犬)에서 인근 지역을 약탈하던 청독적(靑犢) 등 10여 만의 도적떼 연합군과 맞섰다. 양군은 격돌하여 대회전을 벌였으나 해가 중천이 되도록 승부는 나지 않았고 적의 진영은 견고하였다. 유수가 가복에게 명령을 하달했다.
"병사들이 굶주렸으니 아침밥을 먹이도록 하라."
가복이 대답했다.
"먼저 격파한 후에 먹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선봉에 올라 적군을 마구잡이로 학살하기 시작하였다. 가복의 분투를 따라 병사들도 마지막 힘을 다해 적을 밀어붙였고 마침내 적은 무너져 패주하였다. 가복의 용맹을 본 유수의 제장들은 모두 감복하였다.

경시 3년(25년) 4월, 가복은 다시 유수를 따라 진정(真定)에서 오교적(五校賊)과 싸워 적을 대파하였는데, 심한 상처를 입었다. 만신창이가 되어 군영에 돌아온 가복을 보고 유수는 크게 놀라 말했다.
"내가 지금까지 가복에게 별동대를 맡기지 아니한 것은 바로 그가 적을 가벼이 여기기 때문이었다. 과연 나의 염려대로 명장(名將)을 잃게 생겼구나. 마침 그의 아내가 임신을 하였다 들었다. 만일 딸을 낳으면 며느리로 삼고 아들을 낳으면 사위로 삼을 터이니, 가복에게 가서 처와 자식 걱정은 하지 말라고 전하라."
다행히 가복은 금세 상처를 회복하고 유수를 쫓아 그의 군대가 주둔해있던 계(薊)로 갔다. 가복이 멀쩡하게 복귀한 것을 본 유수는 몹시 기뻐하며 연회를 열어 그의 복귀를 축하하고 병사들을 배불리 먹였다. 가복은 다시 유수군의 선봉이 되어 도적들을 격파하고 업(鄴)을 평정하였다.

건무 원년(25년) 6월, 유수가 제장들의 추대를 받아 호현(䧚縣)에서 황제에 즉위하였다. 새로 등극한 광무제 유수는 가복을 집금오(執金吾)에 임명하고 관군후(冠軍侯)에 봉하였다. 가복은 드디어 별동대도 이끌 수 있게 되어 황하 너머에서 현한의 백호공(白虎公) 진교(陳僑)와 싸워 연거푸 격파하고 그를 항복시켰다. 또, 대사마 오한 등 여러 장수들과 함께 낙양성을 2개월 간 포위공격하여 낙양성을 수비하던 현한의 좌대사마 주유(朱鮪)의 항복을 받아냈다.

건무 2년(26년), 양(穰)과 조양(朝陽) 두 현이 식읍으로 더해졌다. 당시 경시제는 이미 적미군에게 살해당했음에도 현한의 언왕(郾王) 윤존(尹尊)을 비롯해 복종하지 않은 채 각지에서 할거하는 현한의 제후와 장수들이 매우 많았다. 광무제는 장수들을 소집해 이 안건에 대해 회의를 열었다. 그러나 장수들이 대책은 커녕 아무런 말도 하지 않으니, 광무제는 목간으로 땅을 한 번 두드린 뒤 다시 말했다.
"언성(郾城)이 가장 강성하며, 완성(宛城)이 그 다음이오. 누가 마땅히 이들을 격파할 수 있겠소?"
광무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가복이 나서서 말했다.
"신이 언성을 치겠습니다."
이에 광무제가 웃으며 말했다.
"집금오가 간다면 짐이 무엇을 근심하겠는가! 그렇다면 대사마는 완성을 치도록 하라."
광무제는 가복을 보내면서 기도위 음식(陰識), 효기장군 유식을 부장으로 붙여주어 그를 돕게 했다. 가복의 군대는 오사진(五社津)을 건너 언성을 공격해 한 달만에 점령하고 언왕 윤준을 항복시켰다. 가복은 승세를 타고 그대로 나아가 현한의 회양태수 폭범(暴氾)까지 공격해 그의 항복도 받아냈다. 그 해 8월에는 군대를 이끌고 남하하여 여남군 소릉(召陵), 신식(新息)을 공격해 함락시켰다.

건무 3년(27년) 봄, 좌장군에 제수받아 별동대를 거느리고 신성(新城)과 민지(澠池)의 사이에서 적미군을 공격해 연달아 승리했다. 이후 의양(宜陽)에 지둔해 있던 광무제의 친정군와 합류하여 적미군을 항복시켰다. 가복은 지금까지 광무제를 따라 전장에 나서면서 패배한 적이 없었고, 오히려 장수와 병사들이 적진에 고립되어 위기에 빠지면서 몸소 뛰어들어 이들을 구했다. 덕분에 그의 몸에는 눈에 보이는 상흔만 12군데나 있었다. 논공행상을 할 때마다 다른 장수들은 스스로 자신의 전공을 말했지만 그는 자신의 공을 보고하지 않았다. 이에 광무제가 말했다.
"가군(賈君)의 공은 내 이미 알고 있소."

건무 13년(37년), 대사마 오한과 보위장군 장궁 촉(蜀)을 평정하고 수도로 개선하면서 천하가 통일되었다. 광무제는 이를 기념하여 모든 공신들의 식읍을 늘려주었다. 이때 가복은 교동후(膠東侯)로 개봉되고 욱질(郁秩), 장무(壯武), 하밀(下密), 즉묵(卽墨), 정호(梃胡), 관양(觀陽) 여섯 현이 식읍으로 추가되었다. 가복은 광무제가 전쟁을 완전히 끝내고 문덕(文德)을 행하고 싶어하는 것을 눈치챘다. 그래서 고밀후 우장군 등우와 합심하여 휘하의 병력들을 전부 해산시키고 장군직을 반납한 뒤 유학 공부에 힘썼다. 광무제는 좌장군, 우장군 자리가 모두 빈 것을 기회로 삼아 두 관직을 폐지시켰다. 가복은 이후 열후로서 특진이 더해졌다.

가복의 사람됨은 강직하고 의연하였다. 그는 관직을 내려놓은 후 집의 문을 닫아걸고 학문만 익혔는데, 주우 등은 가복의 재능을 썩히는 것이 안타까워 그를 재상으로 천거하였으나 공신을 중히 쓰지 않으려는 광무제의 정책 방향과 어긋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가복과 고밀후 등우, 고시후 이통(李通), 이 3명의 제후는 열후로서 조정에 들어가 광무제로부터 정치 자문을 받는 고문 역할을 맡았을 정도로 신임이 두터웠다.

건무 31년(55년), 가복이 세상을 떠나고 그의 아들 가충(賈忠)이 작위를 이었다. 시호는 강(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