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8-13 19:58:10

다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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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용어의 사용
2.1. 본래 뜻2.2. 근현대적 용법

1. 개요

多勿
고구려어를 한자로 음차해서 쓴 단어. 일반적으로 '옛 땅을 회복함' 또는 '원래의 상태로 회복함'이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서는 '다물'의 어원을 다른 각도에서 분석하기도 한다.

고대 한국어에서 '담다(盛)'라는 동사(전기 중세 한국어 *다ᄆᆞ〮-(*tamó-) > 후기 중세 한국어 담〯-(tǎm-))와 관련지어, '다물(多勿)'을 *tamo-r 형태로 재구하고 이를 동명사형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 경우 '다물'은 '담을 것', '취할 것', '얻을 것' 정도의 의미를 가졌을 수 있으며, 문맥에 따라 '되찾아 담을 것' 즉, '회복'의 의미로 확장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광개토대왕의 이름인 '담덕(談德)' (재구음 *tam[o]teke 추정)과도 음운적으로 유사성이 지적된다.

한국의 언어학자 건국대학교 임병준 교수가 석사~박사과정을 지내던 시절에 내놓은 논문[1]에 의하면 고구려어 다물이 '다+물'의 합성어, 즉 체언과 용언이 목적어와 서술어의 구조로 결합된 말이며, 앞뒤 어근은 각각 중세 한국어 ᄯᅡᇂ〮(土) 므르-(回復, 退), 나아가 현대 한국어 땅(土地)과 무르-(동사 : 회복하-, 반환하-, 뒤로 물러나-)에 대응된다고 주장하였다.

2. 용어의 사용

2.1. 본래 뜻

다물이라는 용어가 사서에서 등장하는 것은 자치통감이 최초이며 이후 삼국사기에도 등장한다.
원문: 二年, 夏六月, 松讓以國来降, 以其地為多勿都, 封松讓為主. 麗語謂復舊土為多勿, 故以名焉.
2년) 여름 6월에 송양이 나라를 들어 항복해오니 그 땅을 다물도(多勿都)로 삼고 송양을 봉하여 임금을 삼았다. 고구려 말에 옛 땅을 회복하는 것을 다물(多勿)이라 하였으므로 그렇게 지칭한 것이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제일권

여기서 "옛 땅을 회복함"이라는 설명은, '다물'의 직접적인 어원적 의미라기보다는 특정 상황에 대한 풀이일 가능성이 있다. 즉, 항복한 송양에게 다시 그 땅을 분봉해준 상황을 '다물'이라는 용어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위에서 다물도(多勿都)로 봉한 땅의 정확한 위치는 불명이지만 송양이 주몽에게 투항한 후 다시 우두머리로 봉해진 곳이므로 훈 강 유역에 위치한 이전 비류국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대무신왕 때 다물국(多勿國)이 이 다물도라고 보기도 한다. 또한 여기서 송양은 그 왕으로 나와 있는데 유리명왕 때는 그를 일컬어 다물후(多勿侯)라 하였다. 이를 종합해 볼 때 고구려어에 옛 땅을 회복하는 것을 다물(多勿)이라 하였으므로 이는 송양이 원래 가지고 있던 나라(비류국)를 ‘다물도’라 한 연유를 설명하는 기술로, 이는 주몽이 아니라 송양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즉 자신의 나라를 들어 주몽에게 투항했다가 다시 그곳의 우두머리가 되었기에, 비류국을 다시 찾은 것과 같다는 뜻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2]

만약 '다물'이 '담을 것' 또는 '취할 것'이라는 동명사적 의미를 가진다면, 송양이 자신의 옛 땅을 '다시 담게 되었다' 또는 '다시 취하게 되었다'는 맥락에서 '다물'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을 수 있다.

2.2. 근현대적 용법

본래 고구려에서 사용되었던 표현으로 고대 한국어에서나 쓰였고 중세 한국어에 이르면 잊혀진 표현이 되었다. 그러나 이 표현은 근현대에 이르러 민족주의적 맥락에서 재등장한다.

구한말 이후 등장한 대종교, 증산도민족종교, 민족주의적 단체와 군대에서는 다물의 기록상 의미를 더욱 확장해서 한민족의 근본 정신, 일종의 민족 혼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현대 사이비 역사에서는 이 다물의 본 뜻을 극우의 주요 특성인 확장주의, 기원주의적 맥락으로 재해석해 한민족의 옛날 위대한 고토를 회복해야 한다라는 주장에 사용하고 있다.
[1] 「고구려말 어휘자료 분석 --- 중세 및 현대국어에 이어지는 몇 가지 어휘」, 《중원어문 14.·15합집》, 건국대. 1999[2] 김기흥, 2002, 『고구려 건국사』, 창작과 비평사, 권순홍, 2015, 「고구려 초기의 都城과 改都-태조왕대의 왕실교체를 중심으로-」, 『韓國古代史硏究』 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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