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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多勿고구려어를 한자로 음차해서 쓴 단어. 일반적으로 '옛 땅을 회복함' 또는 '원래의 상태로 회복함'이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서는 '다물'의 어원을 다른 각도에서 분석하기도 한다.
고대 한국어에서 '담다(盛)'라는 동사(전기 중세 한국어 *다ᄆᆞ〮-(*tamó-) > 후기 중세 한국어 담〯-(tǎm-))와 관련지어, '다물(多勿)'을 *tamo-r 형태로 재구하고 이를 동명사형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 경우 '다물'은 '담을 것', '취할 것', '얻을 것' 정도의 의미를 가졌을 수 있으며, 문맥에 따라 '되찾아 담을 것' 즉, '회복'의 의미로 확장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광개토대왕의 이름인 '담덕(談德)' (재구음 *tam[o]teke 추정)과도 음운적으로 유사성이 지적된다.
한국의 언어학자 건국대학교 임병준 교수가 석사~박사과정을 지내던 시절에 내놓은 논문[1]에 의하면 고구려어 다물이 '다+물'의 합성어, 즉 체언과 용언이 목적어와 서술어의 구조로 결합된 말이며, 앞뒤 어근은 각각 중세 한국어 ᄯᅡᇂ〮(土) 므르-(回復, 退), 나아가 현대 한국어 땅(土地)과 무르-(동사 : 회복하-, 반환하-, 뒤로 물러나-)에 대응된다고 주장하였다.
2. 용어의 사용
2.1. 본래 뜻
다물이라는 용어가 사서에서 등장하는 것은 자치통감이 최초이며 이후 삼국사기에도 등장한다.원문: 二年, 夏六月, 松讓以國来降, 以其地為多勿都, 封松讓為主. 麗語謂復舊土為多勿, 故以名焉.
2년) 여름 6월에 송양이 나라를 들어 항복해오니 그 땅을 다물도(多勿都)로 삼고 송양을 봉하여 임금을 삼았다. 고구려 말에 옛 땅을 회복하는 것을 다물(多勿)이라 하였으므로 그렇게 지칭한 것이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제일권
2년) 여름 6월에 송양이 나라를 들어 항복해오니 그 땅을 다물도(多勿都)로 삼고 송양을 봉하여 임금을 삼았다. 고구려 말에 옛 땅을 회복하는 것을 다물(多勿)이라 하였으므로 그렇게 지칭한 것이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 제일권
여기서 "옛 땅을 회복함"이라는 설명은, '다물'의 직접적인 어원적 의미라기보다는 특정 상황에 대한 풀이일 가능성이 있다. 즉, 항복한 송양에게 다시 그 땅을 분봉해준 상황을 '다물'이라는 용어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위에서 다물도(多勿都)로 봉한 땅의 정확한 위치는 불명이지만 송양이 주몽에게 투항한 후 다시 우두머리로 봉해진 곳이므로 훈 강 유역에 위치한 이전 비류국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하며. 대무신왕 때 다물국(多勿國)이 이 다물도라고 보기도 한다. 또한 여기서 송양은 그 왕으로 나와 있는데 유리명왕 때는 그를 일컬어 다물후(多勿侯)라 하였다. 이를 종합해 볼 때 고구려어에 옛 땅을 회복하는 것을 다물(多勿)이라 하였으므로 이는 송양이 원래 가지고 있던 나라(비류국)를 ‘다물도’라 한 연유를 설명하는 기술로, 이는 주몽이 아니라 송양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즉 자신의 나라를 들어 주몽에게 투항했다가 다시 그곳의 우두머리가 되었기에, 비류국을 다시 찾은 것과 같다는 뜻으로 쓰였다는 것이다 [2]
만약 '다물'이 '담을 것' 또는 '취할 것'이라는 동명사적 의미를 가진다면, 송양이 자신의 옛 땅을 '다시 담게 되었다' 또는 '다시 취하게 되었다'는 맥락에서 '다물'이라는 용어가 사용되었을 수 있다.
2.2. 근현대적 용법
본래 고구려에서 사용되었던 표현으로 고대 한국어에서나 쓰였고 중세 한국어에 이르면 잊혀진 표현이 되었다. 그러나 이 표현은 근현대에 이르러 민족주의적 맥락에서 재등장한다.구한말 이후 등장한 대종교, 증산도 등 민족종교, 민족주의적 단체와 군대에서는 다물의 기록상 의미를 더욱 확장해서 한민족의 근본 정신, 일종의 민족 혼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현대 사이비 역사에서는 이 다물의 본 뜻을 극우의 주요 특성인 확장주의, 기원주의적 맥락으로 재해석해 한민족의 옛날 위대한 고토를 회복해야 한다라는 주장에 사용하고 있다.
[1] 「고구려말 어휘자료 분석 --- 중세 및 현대국어에 이어지는 몇 가지 어휘」, 《중원어문 14.·15합집》, 건국대. 1999[2] 김기흥, 2002, 『고구려 건국사』, 창작과 비평사, 권순홍, 2015, 「고구려 초기의 都城과 改都-태조왕대의 왕실교체를 중심으로-」, 『韓國古代史硏究』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