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維
(? ~ ?)
1. 개요
고려의 문관으로, 탐라 출신이다.2. 생애
『등과록전편(登科錄前編)』에 따르면 고자견의 아들로, 제주 고씨 족보에 따르면 태자 고말로의 아들이다.[1] 『동문선』에 따르면 고유는 먼저 고려에서 실시한 빈공과에 합격하고, 정종 11년(1045) 남성시에 수석으로 급제했으며, 정종 12년(1046) 을과에 3위로 급제해 탐라 출신 중에서는 처음으로 고려에서 관직을 얻는다.문종 11년(1057) 우습유에 임명된다. 습유는 중서문하성의 종6품 관직으로 조선시대에는 사간원에 속하는 간관이다. 그런데 중서문하성에서 고유는 탐라 출신이므로 간관을 맡길 수는 없다고 해서 결국 다른 관직으로 옮긴다. 탐라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로 관직을 옮겨야 했다는 점에서 고려 초 탐라 출신 인물의 지위, 나아가 탐라와 고려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언급되고는 한다. 비교해 볼만한 사례로, 40여년 전인 현종 7년(1016) 북송 천주(泉州) 사람 구양징(歐陽徵)은 고려에 귀화한지 반년만에 우습유에 임명될 수 있었다.
문종 24년(1070)에는 동북로병마부사에 임명되고, 이듬해에는 비서소감으로 과거 시험관이 되기도 한다. 아들 고조기의 열전에 따르면 최종 관직은 정2품의 우복야까지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