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7-22 01:49:58

룡강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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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룡강대총은 남포시 룡강군 룡강읍에 위치한 고구려 시대의 벽화무덤으로, 5세기 중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발견 당시 ‘안성동대총’ 또는 ‘진지동 2호분’으로 불렸으며, 쌍영총과 약 500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일본 학자들에 의해 발굴되었고, 일부 벽화 모사도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고구려 고분군>의 일부로 등재됐다.

2. 상세

이 무덤은 남쪽을 향해 있으며, 연도(통로), 전실, 현실로 구성된 이실묘(二室墓) 구조를 가진다. 전실과 현실의 천장은 평행고임과 삼각고임이 결합된 독특한 형태로, 전실 좌우에 측실이 있던 구조가 점차 퇴화한 흔적이 보인다.

벽화는 대부분 훼손되었으나, 생활 풍속을 주제로 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실 벽에는 성곽과 귀족 저택이 정밀하게 묘사되어 있으며, 건물의 기와지붕과 돌로 포장된 도로 등이 자세히 표현되어 있어 당시 고구려 건축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현실 벽에는 사냥 장면과 함께 봉황과 구름무늬가 남아 있으며, 천장에는 연꽃무늬가 그려져 있다. 연꽃은 섬세한 필치로 표현되었으며, 5세기 중반 평양 지역 고구려 벽화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 무덤은 감(龕)이나 측실이 있는 초기 벽화고분보다 후기 양식을 띠고 있으며, 생활 풍속과 연꽃 장식이 강조된 점으로 보아 5세기 중엽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