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7-28 23:32:30

대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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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동문_두번째_복원.jpg
대동문

1. 개요2. 일제강점기3. 현재의 대동문4. 기타5. 관련 문서


大同門 / Taedongmun

1. 개요

평양시 이문동(里門洞) 1-6번지(북한 행정구역상 평양시 중구역 대동문동)에 있는 성문이다. 북한의 국보 제4호. 평양성의 동문(東門)으로 역사는 고구려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가나 지금의 문은 임진왜란 당시 크게 손상되어 1635년에 세워진 것이라 한다. 누각이 1층이 중층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이점이다.

파일:%C6%F7%B8%CB%BA%AF%C8%AF_b0052375_4a92bfd92bc81.jpg
파일:연광정연회도.jpg
평안감사향연도-김홍도

조선시대 말기까지는 위에서 보는 것과 같이 방어시설로써 수원화성장안문이나 팔달문같이 반원형 형태의 옹성이 있었다. 그러나 구한말에 일제가 대동문과 이어진 성곽을 헐 때 옹성도 같이 허물어 버리는 바람에 지금은 현존하지 않는다.

파일:external/chang256.new21.net/dadongmunh00364_1.jpg

1층의 초서체 현판은 봉래(蓬萊) 양사언(楊士彦), 2층의 해서체 현판은 평안감사 박엽(朴燁)의 글씨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최상단의 사진엔 현재와는 다르게 흰 현판이 2층에, 검은 현판이 1층에 걸려 있다. 게다가 흰 현판도 초서체가 아니다. 아마 한국전쟁 이후 파손된 대동문을 보수하는 와중에 현판이 교체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揖灝樓(읍호루)라는 현판의 '읍호'는 문루에서 손을 내밀어 대동강의 맑은 물을 떠올린다는 뜻이다.

옛날에는 이 문 바깥에 나루터가 있어서 동평양 쪽으로 가는 나룻배를 탈 수 있었다. 대동문 건너편 쪽이 선교(船橋), 선교리(船橋里)라고 불리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지명은 지금까지도 사용되고 있으며, 북한에서는 중구역(대동문 소재 구역) 건너편 구역을 선교구역이라고 부른다.

대동문 옆 종각에는 1726년경 주조된 평양종이 있는데, 이른바 북한 국보 문화유물 제23호이다.
당초엔 평양의 객사 대동관의 종각에 걸려있었으나 1827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고 전해진다. 일제강점기에는 상원사종, 에밀레 종 등과 더불어 조선의 5대 명종으로도 일컬어진 조선 후기 범종의 대표적인 작품이며, 조선 말엽까지 시간을 알리는 용도로 사용되었고, 매년 새해에 제야의 종을 친다는 점에서 남한의 보신각 종과 유사하다. 종의 무게는 13톤 513kg에 높이는 3.1m로 한국의 전통 범종 중 4번째로 큰 대형 범종이다.

2. 일제강점기

파일:attachment/daedongmoon.jpg 
파일:대동문 창.jpg
일제강점기의 대동문. 옹성이 헐린 뒤라서 원형에서 다소 변형되어 있다.

일제강점기에 많이 훼손되었다. 대동문은 부분적으로 많이 변형되었다. 문루 1층의 대가 좌우로 넓어지고, 창문이 설치되는 등... 현판 역시 다른 글씨체를 가진 것으로 바뀌었다.

3. 현재의 대동문

파일:external/korean.cri.cn/simiao.jpg

한국 전쟁 때 대동문은 미군의 폭격으로 인해 파손되고, 현재는 북한에서 크게 수리해 놓았다. 게다가 사진으로 비교해본다면 원래의 대동문보다 훨씬 작게 지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좌우의 문각 위치나 문루 2층의 창문 부분이 막혀있는 것을 보자.[1] 위 사진에서는 비교하기 어렵지만, 성벽의 높이는 대동강변을 향한 둑의 높이 때문에 이전보다 낮은 것처럼 보인다.

파일:Daedongmun_Snow.jpg
2009년 12월 대동문의 설경. 오른쪽의 종각은 평양 종각[2].

현재는 일제시대의 여러사진들을 참고하여 자잘한 것들을 새로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4. 기타

일본에서는 야키니쿠집 이름으로 많이 사용되기도 한다.

5. 관련 문서

파일:external/contents.nahf.or.kr/map.jpg
도성도

[1] 다만 조선의 오늘에 출연한 북한 역사학자의 증언이나 1946년 소련군이 촬영한 대동문의 사진을 보면 분명 전쟁으로 파손되기 전임에도 좌우의 문각 모습이 현재와 동일하고 2층 창이 막혀있으며 1층의 양쪽 난간이 헐리고 없는 모습이 찍혔기 때문에 이러한 대동문의 변화는 단순 전쟁이 원인이 아닌 다를 모종의 이유일 확률이 크다.[2] 1726년 주조된 평양종이 걸려있으며, 지금의 종각은 1827년 고쳐 지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