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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권

북한의 인권 탄압에서 넘어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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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갇혀 죽을 날만 기다립니다' 북한 내부 주민과의 BBC 비밀 인터뷰
BBC News 코리아

(2023년 6월 17일)
글로 정리(영어)

1. 개요2. 인용문
2.1. 외국 및 북한 출신의 인용문2.2. 북한 당국측 인용문
3. 국제적인 지수4. 시민적, 정치적 권리
4.1. 개관4.2. 계급
4.2.1. 과거의 계급 분류4.2.2. 현재
4.3. 연좌제4.4. 정치범수용소4.5. 거주이전·이동의 자유 침해4.6. 조직적 감시
4.6.1. 실제 사례
4.7. 고문4.8. 허위 정보 유포와 세뇌4.9. 정보 차단을 위한 외부인 차별
4.9.1. 대한민국 체제 경험자에 대한 차별4.9.2. 미국 및 일본 문화 탄압
4.10. 가혹한 징병제와 군 복무 환경4.11. 종교 탄압
4.11.1. 기독교 박해4.11.2. 무속 신앙 탄압
4.12. 양심, 사상, 표현의 자유4.13. 언론의 자유
5. 취약 계층에 대한 인권 침해
5.1. 장애인5.2. 여성5.3. 외국인5.4. 아동
5.4.1. 강제 노동5.4.2. 보육 시설의 미비5.4.3. 정서적 학대5.4.4. 보건적 보호 미비
5.5. 성 소수자5.6. 세대 갈등
6.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
6.1. 경제적 착취6.2. 빈곤 조장
6.2.1. 해외에서의 노동 착취
6.2.1.1. 참고자료
6.3. 정보 통제
7. 체제 유지의 비밀
7.1. 정권 초기의 대규모 저항과 실패7.2. 상류층과 외부 문화와의 단절7.3. 경로의존성
8. 각국의 대처
8.1. 대한민국 정부의 대처
8.1.1. 통일부의 외면8.1.2. 국가인권위원회의 외면8.1.3. 북한인권백서 축소 시도
8.2. 국제사회의 대처8.3. 해결 방안
9. 현황
9.1. 대한민국 일반 국민들의 인식9.2. 북한 국민들의 투쟁과 내심9.3. 북한 측의 인권탄압 부인
10. 결론
10.1. 외국에서의 인식10.2. 북한 체제에서의 사망자 수는?
11. 타 사례와의 비교
11.1. 다른 독재 국가들과의 비교11.2. 일제강점기와의 비교
12. 관련 단체/자료
12.1. 관련 단체12.2. 관련 자료
1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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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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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인권 침해와 관련된 정보들을 정리한 문서.

북한은 인권을 최악의 수준으로 탄압하기 때문에 국제 사회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가령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아 탈북 후 북한 돌격대를 모방한 무임금 조직에서 일하는 사기를 당한 탈북자가 존재할 지경이다. 북한에서는 노동은 권리가 아닌 충성으로 강조되는 경향이 강하다. 북한에서 창작되는 노래에서는 휘파람처럼 일을 많이 하고, 심지어 준마처녀마냥 초과근무를 옹호하는 경우도 있다. 통제가 비교적 느슨하던 해방정국에서조차 김일성은 노동자의 파업을 두고 '임금향상을 강요'한다며 사회주의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식으로 비난하기도 할 정도였다. # 북한은 UN 회원국 193개국 중 국제노동기구에 가입하지 않은 7개국[2] 중 하나이다. 북한 노동자들의 인권 실태

UN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2014년 보고서에서 북한 정부에 의해 동 시대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가장 심각하고, 광대하며, 잔혹한 인권침해 즉, 반인도 범죄가 이루어진다고 평가했다. 보고서에서는 나치 독일에 북한이 비견되었다. 2019년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도 "북한은 오직 정부관계자만을 위한 나라가 됐다”며 "나라 전체가 감옥"이라고 일갈했다.#

모든 사람은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는가를 따지는 '토대'와 태어나서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에 결정되는 '성분'에 의해 진학이 어려워지거나 직업을 못 갖는 등의 차별을 받는다. 지도자 우상화도 도를 넘어 2016년 북한 로동신문은 홍수에 물에 떠내려가는 아내와 딸을 버리고 '수령님들의 초상화'를 챙긴 모습을 신문 한 면 전체에 소개하며 "신념과 의리를 지킨" 모습이라고 하기도 했다. # 2021년의 사례를 들자면, 한국 영화를 보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것보다 훨씬 경악할만한 주장도 많다. 정권 수립 당시부터 강량욱 같은 목사가 권력욕에 빠져 기독교인을 탄압하는 등 이해가 어려운 일이 많다. 이런 부류의 상류층에 편입된 인물이 동조한 모양인지 시위가 일어날 낌새만 보여도 탱크를 몰고 송림시라는 도시로 들어온 적이 있다는 주장이 연구 목적의 보고서에도 실린 적 있다.

북한의 인권 개선도 존재하지만, 이는 정부의 선의가 아니라 주로 주민들의 의식 변화와 시장화, 외부 세계의 압력에 기인한 것으로 여겨진다. 예를 들면 북한 당국은 당원에게 큰 혜택과 권력을 주고 그 자격을 연좌제로 평가하여 충성을 유도하였지만, 시장 경제의 발달로 그럴 필요가 줄어들자 이제는 당원이 되지 않더라도 돈을 벌어도 괜찮지 않은가하는 인식이나 당원의 권위보다 돈을 중시하는 인식이 퍼져 '비사회주의', '반사회주의' 같은 주장을 펴며 이를 억제하려는 움직임이 2019년 이후로 강해지고 있다. # # 이로 인해 민간에서 고용된 사람들이 정부 밑에서 일하지 않는다며 강제로 일자리를 잃으면서 사람들이 수입이 떨어져 경제가 심각하게 나빠졌다. 무역도 김정은 밑의 정부만 하도록 하고, 북한산 물품도 김정은이 관여한 물품만을 사도록 강매도 이루어졌다고 한다. #

노동착취도 심각한데, 제대로 된 급여나 근무환경을 갖춘 경우는 극히 드물고 심지어 "청년들의 정신상태가 너무나도 훌륭하여" 자발적으로 막장으로 간다는 식의 탄원이나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를 위시한 청년돌격대 제도를 통해서 청년층 노동력을 무상으로 갈아서 써버린다. 러시아, 중국 등지에 노동자를 보내서 외화를 벌게끔 하는데 그 돈의 대부분은 정권에 상납하는 통에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인권마저도 무시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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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용문

2.1. 외국 및 북한 출신의 인용문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중대한 인권 침해가 북한의 정부, 기관 및 당국자들에 의해 이루어졌고 현재도 이루어지고 있다. 조사위원회가 조사한 인권 침해 사례들은 많은 경우 반인도범죄를 구성한다. 이는 단순히 국가의 월권 수준이 아니라 정치 체제의 필수 요소로서, 북한이 주장하는 설립 이상(ideals)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다. 북한에서 벌어지는 인권 침해의 심각성과 규모, 그리고 본질은 현대 사회의 어떤 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20세기의 정치학자들은 이러한 종류의 정치조직을 전체주의 국가라고 분류하였다. 이러한 국가는 소수의 권력 집단이 권위적인 지배를 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주민들의 생활의 모든 부문을 장악하며 공포심을 주입시킨다.
2014년 UN 인권이사회 북한인권조사위원회 보고서 결론
우리나라독재 국가이지만 당신네 나라괴물이다.
고영환이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던 당시 자이르 외교관에게서 들은 발언[3]
냉전 시절 유럽에서 가장 지독한 사회주의를 한 루마니아알바니아에 가 봤는데 그 나라들조차 북한보다는 민주적이더라.
탈북 외교관 고영환의 증언 #
유럽에서는 알바니아가 가장 혹독한 공산 독재국가였지만 북한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알바니아 출신의 세계적인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가 2019년 9월 23일 제9회 박경리문학상 수상 기자간담회에서 남긴 말.[4]
"저희 삶은 20년 전[5]으로 돌아갔습니다. 큰 배신감[6]을 느낍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정부에 등을 돌릴 것입니다." (#)
"자식들을 생각하면 잠을 잘 수 없습니다. 이 희망 없는 지옥을 평생 살아야..." (#)
"죽어도 자기 자신만 생각합니다. 인정이 없습니다." (#)
2023년 6월 15일 보도된 영국 BBC와 북한 취재 협조자의 인터뷰를 소개하는 페이지에 배경으로 언급된 발언 중에서. '이곳에 갇혀 죽을 날만 기다립니다'라는 제목의 이 인터뷰는 영상 편집본이 유튜브 개시 1주일도 되지 않아 한국에서 조회수 300만 건 이상을 기록했다.[7]
간부나 돈주 집이 아닌 이상 태어난 순간부터 고통의 삶이 시작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8] 모든 고통을 경험한 젊은이들은 자식들이 자신과 똑같은 고통을 겪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에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한다. 대부분 지금의 실정에서는 자식을 키울 자신도 없다고 말한다
2023년 12월, 신의주시의 30대 주민과 북한 전문 매체 데일리NK와의 인터뷰에서 #
지금껏 우리 백성들은 나라의 노예로 살아왔고 지금도 노예로 살고 있다. 이제는 노예로 살고 싶지 않다. 우리도 다른 나라 사람들처럼 가고 싶은 시간에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일한 만큼 대가도 받을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2024년 1월 19일 데일리NK 보도에 인용된 북한 주민의 발언 #
북한은 비정상적인 국가입니다. TV에는 오직 하나의 채널만 있고 인터넷은 아예 없습니다. 북한에서는 원하는대로 자유롭게 노래하지도, 말하지도, 옷 입지도, 생각하지도 못합니다. 북한은 허가하지 않은 국제전화를 했다는 이유로 처형이 이뤄지는 전세계 유일한 국가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현재 공포에 떨고 있습니다. 가 북한에서 자랄 때 책, 노래, 언론, 영화에서 남자와 여자 사이의 사랑 이야기에 관해서 전혀 접하지를 못했습니다. 북한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은 없습니다. 모든 이야기들은 백두혈통 독재자들을 찬양하도록 세뇌하는 선전물로 변질됩니다. 저는 자유 혹은 인권이라는 단어를 알기도 전인 1993년, 태어나자마자 자유를 빼앗겼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자유를 처절하게 갈망하고 있습니다.
2014년 박연미의 연설 #
남자들은 직장 무조건 출근해야 하는데[9], 기업소에서 계속 돈 내라 그래요. 내라는 게 그렇게 많아. 근데 그 돈이 어디서 나와요? 마른나무에서 어떻게 물을 짜내나?
2024년 7월, 2023년 10월 탈북한 김명옥(여, 54세, 가명) 씨의 발언에서 #

2.2. 북한 당국측 인용문

사법검찰, 안전보위기관 일군들은 우리 사회주의를 내부로부터 와해시키려는 적들의 온갖 책동을 제때에 적발분쇄하여 우리의 사상과 제도, 계급진지와 일심단결을 굳건히 수호하여야 합니다.
조선인민내무군[10]은 수령보위, 제도보위, 인민보위의 칼을 더욱 날카롭게 벼려야 합니다. 조선인민내무군은 엄격한 명령지휘체계와 강철같은 군기를 확립하고 당과 사회주의제도, 인민의 생명재산을 노리는 계급적원쑤들과 적대분자들의 준동을 맹아단계에서 무자비하게 짓뭉개버려야 합니다.
2016년 5월 7일 김정은이 발표한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 중 #
(북한 국장의) 붉은 띠 아래부분의 중심에 새겨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호에는 국가건설과 활동에서 민주주의를 최대한 보장하여 인민대중이 국가주권의 진정한 주인으로서 국가사업에 참가하며 인민민주주의독재를 강화하여 계급적원쑤들에게는 철저한 독재를 실시하고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인민대중에게는 진정한 정치적자유와 권리, 행복한 물질문화생활을 보장하는 우리 공화국의 성격과 사명이 뚜렷이 반영되여있다.
2019년 1월 26일 로동신문 기사 <국장, 존엄·번영의 상징> 중
인민에게 있어서 최대의 행복이 절대적인 권위를 지닌 수령에게 모든 운명과 미래를 전적으로 의탁하는 것이라면 최대의 불행은 위대한 수령의 영도를 받지 못하고 정신적기둥, 신념의 기둥이 없는 것이다.
2023년 7월 16일 로동신문 기사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절대적인 권위는 우리 인민의 존엄이고 자부심이다' 중

3. 국제적인 지수

2016년 기준 전세계 노예 지수 1위를 기록했다. #

3.1. 세계의 자유

매년 프리덤 하우스에서 발표하는 세계의 자유라는 지수가 있다. 북한은 이 조사가 시작된 1972년 이래로 2022년 현재까지 반세기라는 긴 기간동안 매년마다 정치적 권리(Political Rights)와 사회적 자유(Civil Liberties)에서 최하점인 7등급을 받고 있으며, 2024년 기준으로도 총점은 100점 만점에 겨우 3점(PR 0점, CL 3점)에 불과한 자유롭지 않은 나라로 분류되고 있다. 타 국가와 비교하자면 남한은 정치적 권리와 사회적 자유가 모두 2등급을 기록하고 총점 83점에 자유로운 나라로 분류되었고 북한보다 반자유적인 국가는 1점을 받은 시리아남수단, 2점을 받은 투르크메니스탄뿐이다.[11] 에리트레아는 3점으로 북한과 동점이다.

특히 이 조사에서 매해마다 평균 자유지수가 가장 자유롭지 못함을 의미하는 PR 7, CL 7, 즉 평균 7점만을 매 해 계속하여 항상 차지한 나라는 북한이 유일무이하다. 첫 세계의 자유 지수인 1972년 세계의 자유 지수에서 평균 7점을 차지한 나라는 공산권 국가 중에서는 알바니아, 불가리아, 중국, 북한, 콩고 공화국, 쿠바, 체코슬로바키아, 동독, 몽골, 북베트남, 남예멘 총 11개국이 있었으며 비공산권 국가 중에서는 이라크, 시리아, 부룬디,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우간다, 기니 총 6개국이 있었다. 2020년대 기준으로 이들 중 동유럽권 국가들과 몽골은 모두 민주화되어 '자유'로 분류되고,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는 나라들과 비교해봐도 쿠바, 중국은 1977년부터 1987년(쿠바)/1988년(중국)까지는 PR 6, CL 6을 기록한 적이 있는 데다가 베트남도 1987~1988년에 한해서는 잠깐 PR 6을 기록한 적이 있는 것을 감안하면 북한이 얼마나 정치적으로 자유롭지 못하고 국민들이 억압받는 국가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 지수를 21세기의 악명 높은 독재국가들과 비교하자면 투르크메니스탄도 독립 직후인 1991년에 한해서는 PR 6등급, CL 5등급의 '부분적으로 자유로운' 국가로 분류되었고(물론 1년 뒤인 1992년에는 PR 7등급, CL 6등급의 '자유롭지 않은' 국가로 분류되더니 1993년부터는 지금까지 어떠한 변화도 없이 PR 7등급, CL 7등급을 기록하고 있다.) 심지어 2008~2015년까지는 무려 5점 이상을 기록한 적도 있는 데다가[12] 에리트레아마저 1995~1998년까지는 PR 6등급, CL 4등급으로 '부분적으로 자유로운' 국가로 분류된 적이 있고 5점은커녕[13] 10점 밑으로 떨어진 것도 2010년의 일이다.

이 지수는 선거 과정/정치적 참여 및 다원성/정부의 기능/표현 및 사상의 자유/집회의 자유/법치/개인의 자치와 권리 부문으로 나누어 점수를 매겨 그 국가 및 지역의 자유도를 평가한다. 2024년 보고서[14]

세세하게 따져보자면 다음과 같다.
  • 선거 과정 : 0점
    유권자가 자신의 의사대로 투표할 수 없다는 점[15], 최고인민회의의 모든 후보를 당에서 결정하며, 이들이 국무위원장을 추대한다.[16] 반대가 없는 무조건 찬성이 나오는 하나마나한 선거인 것이다.
  • 정치적 참여 및 다양성 : 0점
    북한의 형식적인 내각회의 방식 및 거수기 역할을 하는 구색정당들은 민의를 반영하지 못하며, 정권 반대 세력을 잔혹하게 탄압하며 민중의 정치 참여 기회가 없고 정권에 대한 불만도 표출할 수 없으며 사회적 소수자에게 정치적 권리가 일절 보장되지 않는다. 심지어 몇몇 소수 계층은 소수 계층에 속한다는 것만으로도 수용소에 보내진다. 노인이 아닌 모든 북한 사람은 아이부터 시작해서 나이와 성별, 직업에 따라 조선소년단,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조선직업총동맹, 조선사회주의녀성동맹 등의 단체에 강제로 가입되어 사상교육을 받으며 동원되어야 하며, 단속을 당한다. '조직생활'이라고 하여 북한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끔찍한 경험으로 생각한다.
  • 정부의 기능 : 0점
    정부 정책이 투명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부정부패가 만연하다. 2011년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지수 조사에서도 소말리아와 함께 최하점인 1점을 받았다. 이러한 부정부패는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해야 할 국가 의무를 제약함으로써 인권을 침해하는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
  • 표현 및 사상의 자유 : 0점
    국영 언론만 남아있고 정권의 엄격한 검열을 거친다는 점과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학문의 자유가 없으며 국내 통신망은 전부 국가의 통제 하에 있어 개인이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자유롭게 표출할 수 없다. 적대계급 출신 여성 탈북자 감희가 2021년 집필한 <북한 사람 이해하기>에 따르면 북한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말조심하라" "말밥에 오르지 마라"를 귀이 못이 박히도록 말한다고 하는데, 이는 "말 한마디로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감에서 기인한 것이다.
  • 집회의 자유 : 0점
    북한에서 무슨 시위가 있었다는 소식을 접해본 적이 있는가?[17] 심지어 송림시에서는 사회 질서를 세운다는 명목으로 시위가 일어나기도 전에 탱크를 동원하였다는 주장도 있다. 집회의 자유가 탄압되고 비정부기구(NGO)의 자유로운 활동은 커녕 어용단체를 제외한 시민단체는 없고 노동조합도 허용되지 않는다. 8.3 인민소비품 항목에서도 보듯 돈을 주고[18] 일을 빠져나가는 태업 정도만 있을 뿐이며, 정부 비판의 의도를 여기서 드러낼 수는 없다. 물론 북한 정부가 수립되기 전인 40년대의 해방정국에는 사람들을 아직 청년동맹 같은 조직에 강제적으로 가입시키지 못했기에 신의주, 함흥, 평양 등지에서 시위가 벌어졌지만, Yak 전투기까지 시위진압에 동원되었다. 특히 신의주의 시위가 거세서 기관총을 맞고 숨진 사례가 당시 한국 언론에 보도되었다.
  • 법치 : 0점
    사법부의 독립이 지켜지지 않고 최고 지도자의 명령 등의 인치적인 요소가 형벌에서의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잦으며, 현영철의 처형 당시 적법한 재판 절차 없이 사흘만에 처형된 것처럼 민형사재판에서 정당한 절차가 지켜지지 않고, 법 앞의 평등이 지켜지지 않고 교정시설이나 수용소에서의 처참한 인권 유린이 자행되고 있고, 일부 정치범 수용소에서 수용자의 인권은 무시한 채 핵개발에 투입하는 일들이 공공연히 벌어진다는 점을 고려해서 0점.
  • 개인의 자치와 권리 : 3점
    유일하게 0점이 아닌 항목. 거주 이전의 자유가 없고 사유재산이 존재하지 않으며 여성의 성폭력 및 가정폭력이 만연하며 기회 균등이 지켜지지 않지만 장마당 등 북한 정권의 통제를 받지 않는 시장경제가 활성화되고 있으며 경제 특구에는 어느 정도 시장 경제가 돌아간다는 점에서 3점을 받았다. 정확히는 G2 1점, G3 1점, G4 1점, 이렇게 총합 3점.
  • 총점 : 3점
    이 지수만 보아도 북한 주민들에게는 자유가 없고 극도로 통제받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나마 이런 것도 굶어죽을 위기를 경험한 북한 주민이 얻은 소소한 자유일 뿐이지, 원래는 장마당 중심으로 생계가 돌아간 것이 아니라 정권 밑에서 직장을 '배치'받아 살아야만 했다. 지금도 남성이나 농민, 군수 공업 종사자 등이 시장에 쉽게는 나가지 못하는 이유기도 하다.

사실 이마저 김정일 시기보다는 훨씬 좋아진 것이다. 인터넷상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지표인 2003년~2006년에는 세계의 자유 지수가 무려 0점이었으며[19][20], 2007년/2008년 G가 1점씩 올라 2점으로 상승한 게 2009년 북한의 화폐개혁 실패의 영향 때문인지 2010~2011년에 한해 1점 감점되어 1점을 기록했다가 2012년 2점을 회복한 후 2013년 G가 1점 올라 3점으로 오른 것이 현행으로 유지중이다. 심지어 2004년부터 2011년까지는 북한보다 세계의 자유 지수가 낮은 국가가 없다시피했다.[21][22]

3.2. 민주주의 지수

북한의 민주주의 지수: 1.08점
권위주의
북한은 2012년부터 10점 만점에 1.08점이라는 점수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2020년도까지의 최하위 순위인 167위에 해당하는 점수이다. 2021년부터 최하위를 벗어나기는 하였으나, 이마저도 2021년 미얀마 쿠데타2021년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공세로 인한 미얀마와 아프가니스탄의 인권 악화가 원인이다.

사실 단순히 인권 침해로만 치면 이 두 국가가 북한에 비견되는 것이 이 두 국가에 미안할 정도로 북한 인권 문제는 심각하다.다만 아프가니스탄 경우 여성인권의 경우에는 북한 그 이상의 인권침해를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 두 국가가 민주주의 지수가 0점대인 원인은 급격한 쿠데타로 인한 법치 체계의 혼란 때문에 국가 안정성이 크게 약화되고, 결국 정부의 기능성에서마저 최하점을 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미얀마, 아프가니스탄이 군정이라는 걸 감안하면 정상적인 정부들 중 민주주의 지수 꼴찌는 아직도 북한인 셈이다.

3.3. 언론자유지수

북한은 2024년 기준 100점 만점에 20.66점(180개국 중 177위)[23]이라는 점수로, 세계 최하위이다. 북한은 언론자유지수 꼴찌를 차지한 적이 10번이나 되는데, 이는 에리트레아(11번)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횟수다.[24]

북한은 북한 국민들에게 체제에 대한 '안정감'을 안겨줘야 한다며 반체제 인사들의 체포 소식과 살인, 대규모 교통사고 등 사건사고 소식조차 언론에 보도하지 않는 나라다. 오죽했으면 이 때문에 '북한에는 지하에도 반체제 인사가 없을 것이다'라고 착각하는 외지인도 생기고 북한 뉴스는 매우 재미가 없다는 평가가 많을까?

4. 시민적, 정치적 권리

4.1. 개관


북한은 스스로 내세운 국명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이름대로 적어도 형식적으로는 사회적, 법적인 계급이 존재하지 않고 모든 인민들이 평등하게 주권을 가진 존재라고 명시하고 있고, 엄연한 유엔 회원국으로서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대한 국제규약(ICCPR)' 및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ICESCR)', 유엔아동권리협약 등 4가지 인권규약에 가입했다.

그러나 북한의 헌법과 법률은 대외적 선전에 불구하고, 조선로동당 일당독재 체제에서 국가 헌법은 하위 개념이며, 형식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북한을 통치하는 이념은 김씨 3대의 교시와 당의 유일적령도체계확립의 10대원칙이다. 특히나 김부자의 교시나 로작은 준수사항이 아닌 실현대상이다. 현실과 다를경우 10대 원칙에 따라 현실을 뒤틀어 바꾸려는 시도라도 해야 한다. 이를 전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라는 명목으로 미화한다.

그러므로 북한은 유엔 회원국으로서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보고서 제출과 감사에 응하지 않고 있고, 주체사상에 의해 "수령이 인민들을 대표한다. 즉 수령의 뜻이 곧 인민의 뜻이다."라는 주체사상을 통한 독재 합리화로 김씨 부자의 세습과 통치,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인권 탄압을 정당화하고 있다. 백두혈통조선로동당북한인들에게 평등과 존중은 물론 인간으로서 기본적으로 누릴 수 있는 자유마저도 전혀 허락하지 않으며, 북한 인권은 다른 독재 체제의 상당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심각한 문제를 갖고 있다. 자유세계에서 보기에 주민들이 먹고 사는 것보다 주민 통제를 좋아하고 더 나아가 그것을 즐기고 있는 등[26] 이해가 힘든 사례가 많다.

'설마 4살 아이가 체제 선전 공연을 위해 졸음을 참아가며 연습을 하겠는가#, 김일성 초상화가 가족의 생명보다 중요하겠는가#'라는 상식적인 생각이 북한 주민이 보는 가장 대표적인 신문인 로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이 이를 칭송하는 모습에서 무너지고 만다. 이것은 무려 김정은 시대인 2016년 이후에 있었던 일이다. 이것이 '사람을 하늘처럼 여겨라'는 '이민위천(以民爲天)'이란 말을 내세우는 나라의 실태인 것이다.

한국 정부의 입장은 정권을 막론하고 북한 인권 문제를 중요하게 여겼다. 이는 헌법상 북한 주민을 '대한민국 영토' 에 살고 있는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지만, 북한 정부에 억류되어 있는 상태로 보는 시각에 기인하며, 북한 주민들도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보장받아야 할 인권이 있지만 현재 누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인 것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실제로 국민의 정부~참여정부에서의 대북화해 협력 기조에도 불구하고 탈북자 단체 지원을 늘려 왔으며 보편적 인권 측면에서 정쟁보다는 북한 주민의 인권 향상 시도에 대해 어느 정도 합의가 있었다. 이는 대북제재와 협상을 거듭하면서 국제 자선단체 지출의 대부분을 부담하는 미국과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영국에서 시작된 인권단체 국제앰네스티도 마찬가지이다.

탈북에 실패했는데 중국인의 아이를 갖고 있다고 여겨지면 강제 낙태를 당한다. 통일부 북한인권포털

북한의 인권법은 소위 우리식 인권에 기반한다. 북한은 대외적으로 법치국가임을 내세우지만 헌법은 커녕 형사법에 금지된 고문. 연좌제는 물론이고, 정치범수용소를 운영하고 있으며 사회안전성같은 경찰조직은 적법절차에 따른 구금과 기소가 이뤄지지 않고 국가보위부라는 정치경찰을 운영중이다.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그레그 스칼라튜(Greg Scarlatoiu)[27] 사무총장은 북한의 주민감시와 인권탄압이 스탈린 시대 소련보다 심각하며, 2014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북한의 인권 상황이 나치시대 폭정과 유사하다는 결론을 내리며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을 포함한 북한 지도자들을 국제 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라고 권고 할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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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권보고서》에서 발표된 내용 #

4.2. 계급

헌법 제65조 공민은 국가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누구나 다 같은 권리를 가진다.
북한 헌법
문건이 아니라 산 사람을 보아야 하며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충실성을 보고 사람들을 평가하며 극소수 적대분자들을 내놓고는 광범한 군중을 다 교양하고 포섭하는 원칙에서 군중과의 사업을 심화시켜나가야 합니다. 일심단결이 혁명의 천하지대본이라면 민심은 일심단결의 천하지대본입니다.
2016년 5월 7일 김정은이 발표한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 중 # 노골적으로 국민에 대한 갈라치기를 했다.



북한은 사회안전부 주관하에 1950년대부터 '주민료해사업'으로 불리는 주민등록 사업을 시행했다. '료해'란 조사, 파악 정도의 의미를 지닌 단어다. 명분상으로는 『위대한 수령님과 경애하는 최고사령관 동지의 신변안전과 만수무강을 철저히 보장하며 높으신 권위와 위신을 백방으로 옹호보위하는 것은 주민료해사업에서 반드시 견지해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라고 제시해 놓았으며, 분류의 기준은
  • 례외(예외)없이 모든 사람들을 다 료해하여야 한다
  • 모든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를 상세하게 료해하여야 한다
  • 주민료해자료의 객관성과 정확성을 철저히 보장하여야 한다
  • 모든 사람들을 사람당, 건당으로 료해하여야 한다
  • 당의 계급노선과 군중노선을 철저히 지켜야 한다
참고:[최초공개] 북한 사회안전부 刊「주민등록사업참고서」全주민을 기본군중·복잡한 군중·적대세력잔여분자로 분류

탈북 외교관 출신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부원장 고영환은 김일성에게 외국어 실력을 칭찬받고 상관과 함께 자신의 신분자료를 열람할 특권이 생겼는데 일단 김일성 김정일의 칭찬이나 교시가 붙은 내용은 가장 첫페이지에 1호 문건으로 모셔지며, 한뼘 책 두께의 상세자료로 자신은 물론 고조부대 조상과 친척까지 과거에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행정처분이 있었는지 상세하게 적혀있고 증인과 담당자의 서명까지 기록되어있다고 한다. 이러한 신분 자료는 조선로동당 입당이나 승진을 앞두고 열람되는데 조작을 방지하기위해 원본 접근은 평소에 허용되지 않으며 사회안전성 비밀문고에 저장이 되어있다가 상급부서 간부부에서만 제한적으로 열람이 가능하여 뇌물을 주고 불리한 자료를 삭제할 경우 원본과 대조하여 색출이 가능하므로 한번 찍힌 부정적 자료는 대대로 이어지게 되어있다고 한다.

가장 극악한 통제가 이루어진 김일성 시대 기준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지금도 이런 제도는 지킬 수 있는 하에서 유지되고 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국제 사회에서 외면당한 원인인 인종 차별 정책 아파르트헤이트를 연상케 하는 정책인데, 북한은 여기에 가장 적대적인 계층은 수용소로 보내 씨를 말렸다는 것이 더 잔인할 따름이다. 통일부 북한인권포털

탈북 외교관 출신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NISS) 수석연구위원 김동수 박사는 핵심 계층을 약 20%, 동요계층을 약 30%, 나머지를 50%정도로 구분한다.
  • 성분이 좋은 사람(핵심계층)만이 좋은 학교를 나와 '출세'를 할 수 있다. 지금도 이것은 유지되고 있다. 북한의 대학 진학률은 약 20%대이며 당간부나 요직은 부모의 출신성분과 토대로 결정되고, 그나마 이공계는 성적을 조금 더 고려하나 의사와 같은 전문직은 진학이 어렵다. #[28]
  • 사회주의 이념에 따라 노동자 농민을 우대한다고 하나, 대부분의 주민들은 부모의 출신지와 직업에 따라 거주지와 직업을 물려 받아야 하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운이 좋게 대학에 진학한다 하더라도 거주지를 벗어날 수 없다.
  • 적대 계층 사람들이 어디에서 거주할 수 있는지를 지시하는 제149호 결정을 내렸고, 성분에 따라 많은 사람들을 더 외진 지역, 더 열악한 생활 환경으로 추방하였다. 참고로 조선 시대에는 중죄를 지은 자의 가족들을 북쪽의 산골이나 서해나 남해의 작은 섬 등지의 외지로 강제 이주시키기도 했고, 일제강점기 때는 소위 '불순분자' 등을 만주 등으로 강제 이주시키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와 다를 게 없는 북한의 인권 실태.
  • 의료 서비스조차 마찬가지다. 사는 지역의 병원에서만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
2007년, 평화재단 저,《토대와 성분》 (자동 다운로드 주의)

4.2.1. 과거의 계급 분류

북한은 명색이 사회주의 공화국을 표방하는 국가임에도 법전에는 없는, 즉 실질적으로 독재 전제 왕정 국가나 다를 바 없어서 그런지 사실상 4~50여 개의 계급이 있다. 북한 지배층들과 종북주의자들은 이러한 계층에 따른 분류가 남한과 미국 등 자본주의 국가들의 왜곡과 날조일 뿐이라고 비난한다. 인민보안성(사회안전성)의 분류로 3계층 51성분으로 구분이 될 수 있는데 그 계급 구조는 다음과 같다.94년 11월 평양방송의 ‘김일성방송대학’ 강좌프로인 《김정일혁명역사》 시간을 통해 “광폭정치를 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출신성분이 순결하지 않은 복잡한 군중까지 포섭함으로써 당과 주민들 간의 일심단결을 위한 기반을 조성했다”는 주장으로 이런 구분이 있다고는 인정했다. 사실 이는 반대파를 숙청한 8월 종파사건 직후 실시된 것이다. 천도교청우당원 같은 계층은 정부 수립 직후부터 차별 받고, 이때도 연좌제가 있어 아버지가 천도교청우당원이었던 성문영어로 유명하던 송성문이 이때 월남하기도 했다. 송성문은 아버지 때문에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하지 못했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각각 토마토족, 사과족, 포도족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적색의 유무에 따른 속칭이다. 핵심계층은 겉과 속이 모두 붉다 하여 토마토에 비유하며, 동요계층은 겉은 붉으나 안은 하얗다 하여 사과족이며, 겉과 속이 모두 붉지 않은 적대계층은 포도족이라 한다. 특히 정치범의 경우 한 번 정치범은 영원히 정치범이 되어 살아서는 정치범수용소에서 엄청난 착취를 겪으며 특히 완전통제구역 수감자라면 죽어서도 땅에 묻힐 수 없다. 그들은 죽어서 야산에 버려지고 까마귀나 멧돼지에게 물어 뜯기거나 마구잡이로 묻힌다.

설령 핵심계층, 조선로동당장성택북한군 극소수 최고 간부는 물론, 심지어 장성택, 김정남 같은 로열 패밀리라고 해도 신분을 전혀 보장할 수 없다. 김씨 세 부자의 말 한마디로 모든 생사 여부가 결정된다. 그야말로 김씨 세 부자 위주의 사이비 교주 집단이자 단군 이래 최악의 독재국가이자 인권유린국가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 남북 이산가족이 만날 기회가 많던 시절에 종종 북한에서 자리 잡고 성공한 자손들이 자기가 얼마나 투철한 당성으로 북한에서 성공했는지 입이 마르게 남쪽의 가족 친지들에게 이야기하는 일이 많았다. 그런데 그들이 하는 말들 중에 일관되게 '사실 남쪽에 가족들이 있어서 꽤 힘들게 진급했다'고 고백하는 부분이 있었으니, 남쪽에 연고가 있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이 적어도 2000년대 초반까지 확실히 있었다.

채널A의 북한 관련 프로그램 이제 만나러 갑니다 2012년 9월 2일과 2016년 9월 11일 방송 분에 따르면 다음 5개로 분류한다.
호칭 대상자 비고
특별군중 혁명열사/애국열사 유가족, 고위직, 김씨삼대 친인척 핵심계층
핵심군중 전사자 가족, 영예군인, 접견자[29], 영웅, 공로자, 사회주의 애국희생자 가족 핵심계층
기본군중 노동자, 농민, 병사, 남한 출신 의용군 입대자, 지식인 동요계층
복잡한 군중 인민군대 입대 기피자, 대렬 도주자, 귀환군인, 월북자, 종교인, 처단자 가족, 정치범교화자 가족 적대계층
적대계급 잔여분자 지주, 부농, 친일파, 친미파, 친영파, 악질종교인, 종파분자, 간첩, 기업가, 월남자 가족 적대계층

위 계층은 철저하게 분화했고 신분 하락은 손쉽게 가능하지만 상승은 극히 예외를 제외하고는 절대 불가능하다.[30] 설령 신분 상승이 되더라도 김정은의 심기를 건드린다면 신분 원상복구가 충분히 가능하다.. 하물며 고려, 조선 시대도 평민이 과거를 통해 양반이나 중인이 되는 것이 가능했고 노비도 왕한테 실력을 인정받으면 면천될 수 있었다고 하지만, 여기는 한 마디로 말해 구세대의 모순인 골품제, 카스트 제도보다 심각하다.

북한 지배 계층은 '카를 마르크스가 말한 대로 가난한 인민들에게 수탈을 일삼는 귀족과 지주를 타파하고 여러 공산주의자들이 꿈꾸던 사회주의 낙원을 만들겠다' 라고 했지만 자신들이 비판하는 전근대 왕정 국가보다도 못한 후진적인 사회를 만들어 놓은 데에 그쳤다. 이념 마르크스-레닌주의를 60년대 후반까지는 지킨다고 선전은 해 놓았으나 주체사상으로 획일화하며 마르크스의 자본론마저 쉽게 읽을 수 없게 하였다. 마르크스는 사유 재산의 폐지와 생산 수단의 국유화로 '빈부격차와 계급'을 없애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북한은 마르크스의 주장과 다르게, 출신 성분을 세습하며 고난의 행군 이래 오히려 평양과 교외지역의 빈부격차가 계속 심각해지고 있다.

또한, 봉건 사회에나 나올 법한 본인 외에 가족, 친척, 지인까지도 해를 입는 연좌제가 아직도 있다. 물론 대한민국도 범죄자의 가족들이 사회적 차별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러한 행동이 헌법상으로 금지된 연좌제에 기반한 명백한 악습으로 인식되고 있다. 예외가 있다면 국가정보원 기관원 채용, 대한민국 국군 장기복무자 선발 시 가족 및 친인척 중 안보사범이 있을 경우 탈락시키는 정도인데, 그나마 이쪽은 '위험인물이 당사자에게 접근해 정보를 탈취하는 걸 막기 위해서'라는 타당한 이유라도 있다.

한편으로 이렇게 노골적으로 골품제를 부활시켜서 운영하는 행태 때문에 해외에서는 북한이란 국가 자체가 컬트적인 인기를 얻기도 하는 모양이다. 동아시아 외부에도 북한이 "이상적인 사회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며 칭송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 중 대다수가 북한을 칭송하는 이유는 과거 제2세계의 일원이었다는 이유로 그런 것이 아니라, 오히려 21세기에 골품제를 운영하고 있는 패기에 매력을 느끼고 저러는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 북한이 다른 나라들을 본받아 변화할 게 아니라 다른 나라들이 북한을 본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4.2.2. 현재

북한 내부에서의 '계급 투쟁'과 '숙청'은 이미 완료되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그 근거는 이하와 같다,
  • 6.25 전쟁 때 많은 숫자의 자본가와 자영농, 지주 세력이 월남했다.
    해방 직후 북한 인구는 1,050만 명이었지만 전쟁이 끝난 뒤 800만 명만 남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전쟁 중에 죽은 100만 명을 빼더라도 200만 명 이상이 월남했다는 것이다. 예상하는 북한 인구는 800~950만명이다. 월남 인구는 100만 명이 안 되며 국가 공식 기록에서는 40~65만 명으로 추정한다.
  • 지속적인 숙청 작업으로 김일성의 빨치산 파를 뺀 대부분의 세력이 파멸했다.
    알다시피 박헌영남조선로동당파, 허가이의 소련파, 갑산파, 국내파 등이 모두 김일성과 그 파벌에 차례차례 사라졌다. 1967년에 벌어진 마지막 대숙청 때는 3만 명 이상이 직책을 잃었다고 한다.
  • 적대계층 중 종파주의 반혁명분자들은 일찌감치 수용소에 집어넣었거나 제거하여 세력이 말살되었다.

한국에서 잘 알려진 대로 핵심계층, 동요계층, 적대계층 이라는 분류가 있지만 자기가 어디에 속하는지 출신지, 학교 진학, 군대나 직장배치[31]나 승진, 노동당 입당 등으로 짐작하며 출신성분과 계층은 연좌되고 물려주기 때문에 부모와 형제 친척의 사례로 대체로 정확하게 아는 편이다. 가족중에 월남자 출신이 있거나 월북자 자손 그리고 재일교포 북송자들은 절대 요직에 등용하지 않는다. 재일 교포의 경우 출신성분은 나빠도 경제력이 높은 경우도 있는데 인민군 군관이 재일교포와 결혼하면 바로 생활제대(불명예제대) 시킨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출신 성분도 짐작하거나 사회안전원에게 왜 자식이 입당이 안 되냐는 식으로 뇌물을 주어 안다는 뜻이지 구체적으로 조회해 볼 권리는 없다.

그리고 옛날 분류 기준인 지주 종교인 이런 적대계층 분류는 이미 70년이 지난 현재 치안대니 지주니 친일파이니 하는 계급의 적들은 3대를 씨를 말리라는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 정치범수용소에서 거의 절멸 상태이다. 이런 적대계층은 탄광이나 척박한 량강도, 자강도, 함경도 산골지역으로 추방되었는데 출신지만으로 어느정도 성분을 예측하는 게 가능할 정도다. 반동 가족으로 몰려 추방당하면 가는 잘 알려진 아오지 탄광, 자강도 칼슘 광산, 랑림군 벌목소 이런곳들이다.

이에 현재에는 사회안전성에서 북한 전 주민을 크게 12개로 출신성분과 계층을 분류하고 있다. 여기에 북한 주민들에게 실질적으로 평양시민, 사무원[32], 노동자, 농민의 분류가 매우 중요한데 농민으로 분류되면 최하층으로 농촌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으며 대대로 농민 신분을 물려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동당 입당을 미끼로 후보당원[33]으로 지방 탄광이나 농장에 무리배치(집단배치)한다고 하면 뇌물을 쓰거나, 아프다고 도망가서 생활제대(불명예제대) 시킬 정도라고 하는데 농장에 배치된지 1년이 넘으면 성분이 농민으로 전환되기 때문에 기를 쓰고 안 가려고 하는 편이라고 한다. 다만 농촌 지역에서는 2010년대 중반 이후로 사람들이 깨기 시작하여 저항 움직임이 있다. 평안북도 정주군 같은 지역에서는 2017년 기준 가족이 있는 젊은 남성이 절반 이상이 "농민 일공"이라는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러 갈 정도다. # 2010년대 후반에는 위장 전입 등으로 농장을 탈출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불법이다. 심지어 이를 단속한다. #

그러므로 농민은 한국전쟁 전사자 가족으로 토대가 좋아도 현실적으로 농촌 출신이면 탈출하지 못하는 한 가난해서 시집 보내기도 어렵다. 앞서 언급한 군인이 많은 정주에서는 농민 일공으로 한 달 일해서 얻을 수 있는 쌀의 양은 농촌에서 1년 일해서 얻는 쌀의 양과 같다. 데일리NK에 따르면 대략 북한 주민 중 노동자 계층보다 많은 800만명 가량이 전근대적 농업방식과 국가소유의 협동농장에서 가렴주구에 시달리는데 출신성분이 좋아봐야 그다지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그나마 과거에 천민 취급받던 재일교포의 도움을 받는 후지산줄기나 탈북자의 도움을 받는 한라산줄기 또는 장마당서 돈을 모아 살만한 적대계층이 오히려 현재에는 먹고 살기 낫다. 정치적으로는 군대나 로동당 입당이 어려워서 출세는 불가능하지만 주민들이 일군 사경제의 발달로 이를 극복하는 경향도 생겼다는 것이다.

“北 ‘토대-성분’도 돈앞에 흔들…조선시대 말기 모습”

한편 위 3대 계층 분류도 대체로라는 것이지 완벽하게 가르는 게 아니라서 대체로 적대계층은 군입대도 건설노무부대인 돌격대로만 보낸다. 이곳은 말이 군대지 총한번 안 쏘보고 10여년간 건설노무자로 지내는 곳이며, 이렇게 일하다 사지멀쩡하게 제대하는 게 유일한 희망이라고 할 수 있다. 공부를 잘하거나 기술이 좋으면 출세하는 건 힘들어도 기술자로 먹고 살거나 운이 좋으면 로동당 입당하는 케이스도 있긴 한다.

북한이 집산주의적 경제를 처음 도입할 때 지역마다 지역 인민위원회의 의견을 모아 해당 지역을 완전집산주의적으로 할지, 아니면 농민 개개인 능력이 되는 대로 생산하고 일정 금액을 공동 부담하여 능력에 따라 차등 분배하는 사회주의식 과도기적 집산주의로 할지, 일단 현행대로 자영농들이 알아서 생산하고 생산력을 올린 뒤 나중에 집산주의를 할지 결정하도록 의견을 수렴했는데 이 시기를 거쳐 중앙정부의 지역 차별이 나왔다.

쉽게 말해 사기 행각을 통해 어느 동네가 반동이거나 당 정책에 협조적인지 알아냈던 것이다. 이때 소위 말하는 '반동 동네'는 중앙 정부와 당 중앙의 혜택과 지원이 줄었고 이 지역 사람들은 타 지역으로의 이동이 어려운 북한에서 자연스럽게 낙후한 삶을 살았다. 이러한 방식의 통제는 정치범수용소 운용과 맞물려 북한에서 사회 통제의 기초가 되었다. 한 지역에서 타 지역으로 정보의 흐름을 막는 역할, 비판적 세력의 확산을 막는 역할도 했다.

다만 최근에는 탈북자 가족이나 가족 구성원이 김정은에게 밉보였다는 이유만으로 적대 계층으로 새로 분류되는 경우가 늘었고, 정치범이라 해도 정치범수용소에 일가족 전부 집어넣거나 하는 대신 당사자만 수감하고 가족들은 지방으로 추방하거나,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포상 결혼으로 태어난 자녀는 완전통제구역(반동 동네) 출신이라 해도 평생 가두지 않고 풀어주기도 하는 등 무작정 격리하지 않기 때문에 그 수가 다시 늘고 있다고 한다. 또 외부 문물을 접하는 사람들이 늘어, 이것을 '죄'로 여겨 정치범수용소로 끌고 가는 경우도 늘어가고 있다.

4.3. 연좌제

독초는 적시에 제거하고 뿌리째 뽑아 버려야 한다.[34]
종파분자와 계급의 원쑤는 그가 누구이건 3대에 걸쳐서 씨를 없애야 한다.
김일성교시.[35]
이런 때(김정일 사망 애도기간)에 월경하는 자들은 모두 역적이니 그 일족의 3족을 멸족해버리라.
2011년 12월 19일 밤 11시 30분[36]에 탈북을 시도하다가 체포된 부부와 10세 미만의 딸 2명에 대한 첩보를 듣고 김정은이 한 말. #

상술한 것처럼 북한에서는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는가를 따지는 토대성분으로 결정되는 사실상의 계급제도가 존재한다. 이런 공식적인 차별은 과거 공산권 국가에도 지주, 부농, 부르주아, 반동 세력으로 구분한 주민에 대해 탄압이 있었지만, 이를 고조부대 조상까지 조사하여 처가, 외가, 친가까지 체계적으로 연좌제로 운영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러한 연좌제 제도를 법적으로 유지하는 국가는 21세기 현재에는 북한이 유일하다. 2차 대전 후에 있던 독재국가 중에서는 북한 외에도 정치범의 가족에게 법적인 연좌제가 적용되는 나라가 드물지는 않았지만[37] 21세기의 독재국가 중에서도 정치범의 가족들에게 위협 차원으로의 연좌제를 적용하는 나라도 드물며, 물론 법적인 연좌제를 적용하는 나라는 북한이 유일하다.[38]

북한에서는 '반동분자'의 친가 6촌 및 외가 4촌 이내는 군대에 입대하거나 당 간부가 될 수 없는 등의 처벌을 가하고 있는데, 월간조선이 2007년 7월에 공개한 1993년자 주민등록사업참고서에서도 친가는 6촌, 외가는 장인, 장모, 처남까지의 '계급적 토대'와 '사회정치생활경위'를 분석하고 있는데, 이에 따라 한 사람의 계급적 토대를 결정짓고 있다. # 실제로 탈북 외교관인 태영호의 경우는 원래 핵심계층 집안 출신이었으나 5촌 당숙이 월남자인 것이 밝혀지면서 기본계층으로 격하되었다.

실제로 고위급으로 갈수록 이런 상세자료와 연좌제 성분조사는 촘촘해지는데 조선로동당에 입당하려면 자신과 처가 6촌까지 행방불명자나 월남자, 전과자가 없어야 하고, 조선인민군 군관의 경우 8촌, 인민군 정치국 정치군관은 12촌까지 깨끗해야 한다고 한다. 예외라면 1980년대 김정일 시대 광폭정치라고 재일교포들에게만 4촌 이내로 완화해 주었지만 한 가구당 단 한 명만 로동당 입당을 허용해주었다고 한다. 이런 인사기준은 입당이나 승진때만 적용받는 것이 아니라 만약에 적대계층과 결혼하면 군관은 강제제대 되고, 친척중에 월남자가 생기면 간부직에서 추방당한다.

김일성의 연좌제 숙청은 8월 종파사건 후에 시작되었다. 8월 종파사건 후 1958년 3월까지 대규모 숙청 작업을 진행하면서 연좌제 법을 만들어냈는데, 체포된 각료들의 관련 부서에서 그들과 연계됐다고 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 친척들까지 모조리 체포하였다. 체포된 사람 중에는 전원회의에 참가할 급이 안 되는 산하부서의 관리들과 그와 연관된 가족, 친척들이 절대다수였는데, 사실 처음 체포할 때 회의 참가자만 해당하였는데 후에 김일성의 지시로 본인들의 가족, 친척과 연관됐다고 의심되는 사람들, 그리고 또 그들의 가족, 친척까지 모조리 체포했다고 한다.

당시 가족들에 대한 체포 지시를 집행한 내무성이 "가족, 친척이라고 하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가 하고 묻고, 그들을 감금하면 그 인원이 대단할 텐데 어디다 수용하며, 또 그들의 형량은 어느 만큼 적용해야 하는가"하고 구체적인 지시를 줄 것을 김일성에게 요구했는데,[39] 이때 김일성이 생각나는 대로 말한 것이 김일성 시기의 북한의 수용소 관리 규정이 되었다.

김일성이 잡아준 연좌제는 다음과 같다. 가족은 본인과 부모, 형제인 경우 아들이든 딸이든 가정을 이루어 갈라져 나와 살아도 해당하며, 친척으로는 친가로는 8촌까지의 모든 형제, 숙질들과 그의 아내까지, 외가로는 4촌과 그의 아내까지, 미혼의 4촌 누이까지, 처가로는 장인, 장모, 처남, 처남의 아내, 미혼의 처제까지 속하며, 고모 일가로는 고모 4촌, 미혼의 고모 4촌 누이동생, 고모 4촌의 아내, 이모와 이모부, 이모 4촌 형제와 그의 아내, 미혼의 이모 4촌 누이까지가 친척으로 된다며 그 범위를 대단히 넓게 잡아줬다. 이런 규정으로 체포하면 본인 한 사람당 가족, 친척이 사생아가 아닌 다음에야 100~150명 정도 되는 인원이 체포된다고 한다.

참고로 김일성이 정치범들에게 가혹한 연좌제를 적용하는 것은 김일성의 성장과정, 정확히는 정치적 사상 상태의 성장과정과 밀접하다고 한다. 김일성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 따르면 김일성의 친부 김형직이 식민지 반체제 사상운동을 하다 체포되었을 때 김일성이 평양감옥에서 감옥살이를 하는 아버지를 처음 본 것이 7세 때인 1919년이었는데, 김일성은 구금된 친부를 보면서 그를 감금한 일제에 대한 반항의식이 크게 자라났고, 또 자기는 거기에서 경험과 교훈을 얻어 새롭고 과감한 반일투쟁을 해야겠다는 결심을 가졌다고 한다. 이것은 김일성이 아버지를 체포하거나 처형할 때 아들을 살려놓으면 자기의 경험으로 보아 반항의식이 더 크게 자라기 때문에, 아예 모두 죽여 없애야 사상이 소멸된다는 '사상소멸리론'을 만드는 데에 크게 일조했고, 따라서 정치범들에게 가혹한 연좌제를 적용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북한의 연좌제에서 친가를 대단히 넓게 잡고 외가를 상대적으로 작은 것도 또한 김일성 자신이 성장과정에 외가 친척들과의 내왕이 별로 없이 자란 환경과도 관련되었다고 한다. 이하 출처[40] 때문에 북한민주화운동본부의 '2004년 북한정치범수용소 수감자·행불자 조사보고서'의 요덕수용소 수감 617명 분석 결과에 따르면, 수감자 60% 가까이가 연좌제로 수용됐을 정도였다.

특히 매우 '흉악한' 정치범의 경우에는 연좌제의 범위를 김일성이 정한 것보다 더 넓게 잡기도 하는데, 8월 종파사건의 주범(?)이던 최창익의 경우에는 최창익의 7촌 조카 일가에서만 잡혀간 사람이 무려 18명에 달했다고 하며,(#)[41] 고영환의 증언에 따르면 황장엽이 탈북한 후에는 황장엽의 11촌과 그의 측근들의 일가족까지 합해 총 3천 명이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다고 한다.[42]

사실 김일성이 8월 종파사건 때 정한 규정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수준이었다보니 북한에서도 범위를 축소해 북한의 독재 체제가 본격화된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정치범이 1명 있으면 친가 6촌 및 외가 4촌 이내를 정치범수용소에 집어넣었지만,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고난의 행군 와중에 탈북자들이 너무 많아져 이들의 친척들을 모두 처벌한다면 북한의 간부 사업에 막대한 손실을 가져올게 될 것이 두려웠던 김정일은 2000년대 이후로는 연좌제 범위를 당사자 본인과 직계가족만으로 한정해 정치범수용소에 감금하도록 대폭 축소했다는 것이다. #1 #2 며느리나 사위 등은 나치의 경우처럼 강제 이혼 후 타지로 추방 당하는 정도로 그치는 편인 데다가 정치범의 가족이어도 배우자와 그 자식들의 경우 정치범 당사자와의 이혼을 조건으로 수용소행이 면제되기도 한다.[43] 다만 김정은 시기에도 북한 기준으로 '악질적인' 정치범의 경우 친척을 넘어 가문[44]이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는 일은 현재진행형인 모양이다. #[45]

2013년 장성택의 처형 때도 친가, 외가 등 수백 명의 친인척들이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다고 하지만, 그나마 불행 중 다행히도 주성하의 증언에 따르면 장성택의 남편이던 고모 김경희의 제지로 먼 친척들은 단기적인 처벌만 받거나 정치범수용소에서 수감되었더라도 풀려나왔다고 한다. # 물론 장성택의 3족과 조카 부부가 처형되었을 가능성과 처벌을 받았다는 특성상 적대계층으로 강등되었을 가능성은 높으며, 가벼운 처벌이더라도 장성택의 먼 친척들을 처벌하려 시도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격적이긴 하다.

심지어 공식적인 연좌제는 정치범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범죄자들에게도 적용된다. 2024년 1월 31일 데일리NK 보도에 따르면 로동교화소 수감자가 교정 생활을 채 마치지 못하고 교화소 안에서 사망하면 그 가족은 물론 4촌, 5촌까지도 문건에 이른바 '빨간 딱지'가 붙어 인사 등에서 불이익을 받게 된다고 한다. # 일반 범죄자까지 저러한 마당이니 정치범의 가족들을 어떻게 대할지는 안 봐도 뻔하다.

행방불명된 해외 파견 노동자가 탈북한 것으로 드러났을 때에는 그 가족까지 당원 자격을 박탈하거나 도시에 살고 있다면 오지 농촌으로 추방하기도 한다. #

정작 웃긴 것은 그 연좌제가 가장 먼저, 가장 철저히 가해져야 했을 인물은 바로 그 연좌제를 창시한 김일성 본인이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김일성의 친모 강반석은 이름도 베드로의 고사에서 따올 정도로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고, 친부 김형직은 한 술 더 떠 공산주의자들에게 약도 팔지 않다가 공산주의자에게 살해당한 골수 반공주의자였다. 게다가 그 우수한 '백두혈통'을 타고난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은 북한에서는 '개만도 못한 인간쓰레기'라고 불리는 '반역분자'이고, 친모 고용희는 한술 더 떠 '남한 혈통의 재일교포 + 김정일의 첩[46] + 아버지가 일본군에게 군복을 납품하던 친일 자본가[47]'라는 그야말로 최악 중의 최악의 적대계층이었으니, 일반적인 북한인이었으면 김정은은 문자 그대로 가문 자체가 소멸했을 인물이었던 셈이다.

4.4. 정치범수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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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과 수령과 조국을 배신한 배반자로서 곱게 죽어서는 안 되고, 뼈에 사무치도록 아픔과 고통을 처절하게 느끼다 서서히 죽음에 이르도록 해야 한다.
정치범수용소 운영 방침(#)

극악무도한 자들이 덜 나쁜 자들 내지는 무고한 사람들을 감시하는 곳이자 인류사 최악의 인간도살장 중 하나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곳으로, 북한 인권 탄압의 결정체이자 상징으로 평가받는 곳이다. 사실상 국제적으로 북한 정권이 나치 독일, 민주 캄푸치아[48]와 동급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게 한 결정적인 요인. 그나마 혁명화구역은 강제 노동수용소인지라 형기를 채우면 석방되는 것이 가능하나,[49] 완전통제구역은 나치 수용소[50]마냥 반체제 인사에 대한 계획적, 조직적인 학살을 위해 만든 곳이기에 하늘이 도운 케이스를 제외하면 석방 자체가 불가능하다.

후술할 것처럼 2022년 기준으로도 21만 명[51]에 육박하는 사람들을 이유 없이 학대하고 죽이고 있으며, 이 수용소와 비교될 만한 인권 탄압 기관은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나치 독일아우슈비츠, 민주 캄푸치아뚜올쓸라엥 정도 밖에 없다.[52] 어느 정도냐면,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한 사람이 아우슈비츠보다 심하다고 평가할 정도다. # 이런 곳에 2024년 7월 기준 무려 19만 명이 수감되었다. #

물론 북한은 뻔뻔스럽게도 취재 허용은 커녕 스스로 "정치범수용소가 없다."라고 주장하며 우리민족끼리 웹사이트에 "우리 공화국(북한)에는 정치범수용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비디오를 올렸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봤자 소용없다. 물론 이걸 자국민들한테도 주입시키는지 공무원이나 그가족들 또는 지인들 빼고는 정치범수용소가 그저 나쁜놈들 가두는 교도소 정도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수시로 탈북 시도를 하던 북한 주민들한테는 유명한 대상이자 공포의 대명사.

북한에서는 "관리소"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그 중 두 개는 세계 최대 면적의 구금시설, 세계 최다 인원의 구금시설에 해당된다.

북한 주민들에게조차 은폐되는 시설인 만큼 그 실체를 알려 일반 주민에게 공포심을 심어주어[53] 체제 유지를 하기 위한 시설이 아니다. 완전통제구역 수감자는 편하게 죽는 것조차 안된다는 인식이 있으며, 서류상으로도 공민 자격이 완전 말소되어 "사람이 아닌 것"으로 취급된다. 완전통제구역에서 수감된다는 판결을 받고 그 누구도 탈출한 사람이 없다.[54] # 혁명화구역에서 "정신 개조"가 되어 출소해도 적대계층의 최하층이 되어 죽을 때까지 감시나 직업·여행의 제약[55]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수용소"에 수감되었다는 사실을 발설해도 재수감된다. 성분은 부모의 출신에 따라 결정되니 그 자식이 적대계층임은 물론이다. 김씨 일가의 정권 유지를 위한 시설이자 살인공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거주하는 위구르족을 수감하는 다반청 수용소에서는 1만 1천 명 가량을 수용한다. 그리고 이 인원 중 일부는 "중화민족"으로 세뇌되면 풀려나올 수는 있다. 이것은 AP통신이 직접 중국의 허가를 받고 안에 들어가서 취재한 결과다. #1#2 그 전에 "동양 최대 교도소"[56]라 알려진 한국의 대전교도소가 3천여명을 수용했다. 서방 최대의 구금시설인 미국 라이커 섬도 1.6제곱킬로미터에 1만여 명 정도를 수용한다.[57] #

그러나 북한의 개천 제14호 관리소, 요덕 제15호 관리소에서 "완전통제구역"에서 석방 없이 고통스럽게 죽이는 목적의 인원은 이를 뛰어넘는다. AP통신의 취재에서는 다반청의 220 에이커, 0.89제곱킬로미터를 두고 세계에서 가장 큰 구금시설이 아닌가 생각하는데, 개천은 155제곱킬로미터, 요덕은 378제곱킬로미터다. 명간 제16호 관리소는 무려 549제곱킬로미터다. 명간 제16호 관리소 경계지도 대전만한 면적이 수용소 하나가 된다는 것이다.

관리소의 사진은 오로지 위성사진만 얻을 수 있는데, 위성사진으로 볼 수 있는 정치범수용소는 겉보기에는 작은 집들과 농사지을 곳이 있는 평범한 농촌마을처럼 보인다. 그 이유는 깊은 산 속에 만들어놓은 드넓은 농장을 정치범수용소로 운영하고 있는 것이니까.[58] 이는 수용소의 비정상적으로 넓은 면적[59]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는 요소다.[60]

북한은 교도소 격인 교화소만 해도 3년만 구금되도 절반만 살아남으니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2021년의 보도에 따르면 한 수용소에서만 56,800명이 수감되어 있으며, 실체가 불분명한 한 곳을 제외한 모든 수용소가 다반청의 구금 인원을 뛰어넘었다.

북한의 미결수들이 조직적인 고문과 성적 학대, 위험한 건강 상태에 노출돼 있으며 짐승만도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고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61]가 보고서에서 밝혔다.#

4.5. 거주이전·이동의 자유 침해

제75조 공민은 거주, 려행의 자유를 가진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
차라리 왜놈 식민지 때는 가고 싶은 곳이라도 마음대로 갈 수 있어 지금보다 훨씬 좋은 세상이다. 지금은 항상 감시와 통제를 받으며 철창이 없는 하나의 감옥에서 사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2011년 기준 평안북도에 거주하던 북한의 할머니의 발언. 참고로 이 할머니는 이 말을 할 시점에 겨우 선거날에 음식을 팔았다는 이유만으로 보안국 기동순찰대에게 욕설을 들었으며, 이 할머니가 하는 말을 현장에서 들은 보위부와 검찰, 당 일꾼들은 이 말에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62] #

북한에는 여행 및 이동, 거주지 이전, 이민의 자유가 없다.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모든 북한 주민은 태어난 곳이나 자신이 군복무한 곳에서 평생 살아야 하며[63] 허가를 받아 려행증이라는 허가증을 발급받지 없으면 국내의 다른 도로 가는 여행도 할 수 없다. 려행증 없이 다른 도로 이동하면 로동교화소, 로동단련대로 끌려가 3~6개월 동안 강제노동을 하게 되고, 그 지역에서 어떠한 시설도 이용할 수 없게 된다. 사실 북한 사람들에게는 거주지 이전이라는 '특별한' 일이 없는 것만도 못한 수준인데, 이는 거주지 변경으로 상황이 더 나아지는 경우는 거의 없는 데다가 '거주지 이전'의 대부분의 사례들은 지금 사는 곳보다 더 열악한 지역으로의 추방이나 정치범수용소행이기 때문이다.

다만, 의외로 국내 여행은 잘 허가되는 편이고 포상 휴가 개념으로 노동자나 농민들에게 휴가도 제공하고 있으나 먹을 것도 부족한 마당에 휴가 떠날 여유가 있는 북한 주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북한은 '일단은' 휴가 비용 전액을 국가에서 지원하지만 북한에 그런 돈이 존재할 리가 없고, 설령 존재한다 하더라도 여기저기서 뜯어먹거나 선량한 인민들을 협박하여 뭔가 요구하지 않을 리 없는 것이다. 결국 말이 좋아서 포상 휴가지, 휴가를 가기 위해 개인적으로 돈이나 성 상납을 써야 하며, 포상 휴가를 떠나야 하는데 일이 아직 안 끝났다는 이유로 휴가를 반납하고 일해야 하는 일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심지어 출산휴가는 더 심각한데 법적으로 산전 30일, 산후 40일이 보장되어 있다고 하지만 이건 말뿐이고 실제로는 산전 휴가 30일은 대부분의 임부에게 적용되지 않아 출산 전날까지 일을 하며, 출산 후 40일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아 1달이나 겨우 지났을 때부터는 다시 출근해야 한다고 한다.

2018년 12월 RFA에 따르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시 발급받아야 했던 여행증명서 발급이 사라졌다고 한다. 공민증(주민등록증)만 있으면 되나 평양 등 일부 특정 지역은 여전히 뇌물을 쓰지 않는이상 출입 불가이다.# 다만 2019년 5월 기준으로도 딱히 려행증이 명백히 폐지되었다는 증거는 나오지 않아 이 조치는 전시행정에 머무른 것으로 보인다. # 그리고 코로나 19가 터지며 북한이 이전보다 더 폐쇄적으로 변했다보니 필수적인 인력이나 공식 허가증이 있는 사람, 승인 물품을 운반하는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주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게 되면서 려행증 폐지 '시도'는 완벽히 백지화되었고, 이후에도 려행증 제도는 2023년 현재까지도 변함없이 시행되고 있다. #

이민은 허락되지 않으며 국가에서 허가한 특별한 사정(유학, 파견 근무 등)으로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도 계속 거주할 자유는 없다. 예정된 체류 기간이 끝나기 전에도 감시자가 뭔가 꼬투리를 잡거나 북한에 남은 가족 및 친인척에게 무슨 일이 생기고 연좌제로 연루되면 그 즉시 강제송환되어 귀국하자마자 수용소로 끌려가게 될 수 있다. 재외 탈북자는 이러한 이유에서 많이 나온다.

심지어는 이것도 김일성 시절에 비해 극단적인 수준으로 완화된 거다. 려행증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김일성 시기에는 모든 도에서 옆 군으로 이동하는 것조차 려행증을 받아야 가능했고, 려행증 발급에는 1주일이 걸렸으며, 본인의 결혼만 직계가족의 사망에 한해서만 려행증을 발급받는 것이 가능했다고 한다. 심지어 당시 남한의 신문기사에 따르면 김일성 시기에는 평양 주민이 평양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려행증을 받아야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64]

4.6. 조직적 감시

북한 문서에 대강 나와 있지만, 평범한 북한 주민들은 사회안전성, 보위부(현 국가보위성), 의무적으로 가입당한 외곽조직, 인민반의 최소 4중 감시를 당해야 한다. 군인, 당원의 경우 더 혹독한 감시를 받는다. 특히 한국의 통반과 유사한 말단 행정조직인 인민반은 인민반장이 주민의 노는 모습까지 보위부 같은 사찰 기관에 보고한다. 북한의 택시 운전사가 외국인의 동향을 보고한다는 주장마저 있다. # 국제앰네스티는 "북한의 감시제도는 현존하는 그 어떤 나라보다 치밀하고 체계적으로 구축되어 있다."라고 묘사하였다. 심지어 외교 사절, 해외 인도주의 단체마저 감시 당해 북한 정치 상황 파악은 물론 인도적 지원마저 어려워지는 사태가 있다. #

보위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세습을 통해 보위부에서 일하게 되어 일종의 특권계층을 형성하여 충성을 하게 되며, 단순 정보원만 해도 북한 주민에서 30명 중 1명 꼴이다. 여기에 협조원의 인원은 무제한으로 둘 수 있다. # 여기다가 북한 당국은 이런 조직을 매개로 수시로 신고를 독려하여 의식이 있는 사람들은 항상 신고자들의 눈초리를 조심해야 한다. 국가의 의도와 달리 주민끼리 체제에 대한 일탈을 묵인해주기도 하지만, 주민끼리 관계가 틀어지면 이런 신고는 복수의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보위부의 정보원으로 발탁되면 가족까지 감시해야 한다. 이들에게는 죄에 대한 면책 등 혜택이 주어지며,[65]대신 정보원이라는 것이 들통난다면 끝장이 나게 된다. 병원 등의 일반 시설로 위장된 곳에서 지령을 받는데, ‘일반 주민들 중 공화국에 대해 쇄국 정치, 독재 정치라고 불평, 불만을 가지는 사람이 있는지 잘 감시하라'는 내용 등 독재와 관련된 내용을 발설하는지를 감시하는 것이라고 한다. 북한 사람들이 얼마나 조심하는지 ‘아, 우리도 개혁해야 하는데’, ‘우리도 달라져야 하는데’,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말은 많이 하지만, 공개적으로 김정은을 욕하는 것은 못봤다고 한다. # 이 10년 이상의 정보원 경력의 탈북자는 북한 사람들은 이래서 세뇌되어 있나보다 하고 추측하지만, 김정은을 욕해봤다는 탈북자는 죄다 아주 친한 친구와 같은 믿을만한 사람에게만 그것을 털어놓았다고 주장한다.

북한 사람들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발언은 믿을 수 있는 사람끼리 하며, 그나마 친구가 스파이일까 봐 세뇌된 척 연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류의 경우 유포를 위해서 한류에 물든 사람만이 알아차릴 수 있는 암호를 쓰기도 한다.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는 애인끼리 한국 영상물을 보지는 않는다는 탈북자의 증언을 소개했는데, 차일 경우 서로 고자질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전국의 모든 공장, 기업소의 말단 작업반, 각 지역의 인민반에 자체 정보원을 두고 주민들의 동향을 감시하는 건 보위부나 안전부나 마찬가지인데, 안전부 정보원이 누구인지는 사업체계상 해당 기관 초급당비서가 알지만 보위부 정보원이 누군지는 초급당비서도 모른다고 한다. #

북한에서 비밀정보원은 통상 인민반 주민 가운데 3~5명을 뽑아 선정되는데, 사법당국은 유동(탈북)장악대상, 동향감시대상, 수입지출 감시대상, 정보유출 감시대상 등 감시대상들을 세세하게 분류하고 있으며, 특히 정보유출 감시대상으로 지목된 주민은 하루 24시간 언제 누구와 만나 무엇을 했는지 등 사생활까지 감시해 보고하게 한다. 부모 또는 자녀가 탈북한 가족의 경우 언제든 탈북할 우려가 있어 감시대상에 들어가는데, 이동 가능성이 감시목표이므로 '유동 장악대상'으로 분류하고 있다. 이들은 려행증[66] 발급 시 복잡한 승인 절차도 거치지 않아도 되는 특혜를 받는다. #

4.6.1. 실제 사례

김정일 사후 며칠 간, 소름 돋는 이야기
{{{#!wiki style="text-align: center"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서거하신것과 관련하여 나타난
김광익 봉화산 235군부대 316련대 3대대장의 사상동향자료
}}}
- 12월 19일 12시 대대교양실에서 군관, 군인들과 함께 중대보도를 시청하고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믿을래야 믿을수가 없다》고 하면서 가슴을 치며 통곡하였습니다.

- 12월 20일 새벽 2시 대대에 조의식장을 꾸릴데 대한 지시를 받고 군관, 군인들과 함께 밤을 새워가며 화환을 만듣고 조의식장을 꾸리는 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

- 12월 21일 새벽 1시부터 당중앙군사위원회 명령 제 001 호 관철을 위한 대대사업계획을 완성하고 대대정치지도원에게 《우리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잘 모시지 못하여 너무도 일찌기 우리곁을 떠나시게 하였다. 대대싸움준비완성에서 지난기간 한일이 너무도 적으며 현재 대대싸움준비상태는 령상태나 갔다. 장군님께 지은죄를 이제라도 싣겠다는 결심을 가지고 일하겠다》고 하면서 갱도를 채우는 문제를 비롯하여 대대싸움준비에서 당장 걸린문제를 놓고 분담을 구체적으로 조직 하였습니다.

- 12월 20일 새벽 2시부터 4시까지 호상근무를 직접 수행한것을 비롯하여 애도기간 매일 2시간 이상 조의식장 근무를 수행하였습니다.

- 12월 24일 군관, 군인들을 위하여 가정에서 여러가지 음식들을 가지고 나와 급식시킨것을 비롯하여 3차에 걸쳐 조의식장 근무성원들을 위해 식사보장을 하였습니다.

{{{#!wiki style="text-align: center"
주체101년 2월 O일
제3군단 정치위원 림종환}}}

-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당시 조선인민군 235군부대에서 작성된 후, 유출된 기밀문건 중 하나. 숨어있는 정보원들이 사단 내의 모든 장교들의 발언과 행동을 보고했으며, 이를 관할 정치장교가 시간대별로 정리하여 기록했다.
엄마가 교화소에 간 후에 계속 감시를 받았으며 옆집 사는 사람이 계속 근황을 물어봤음. 언니가 1년 먼저 탈북한 후에는 감시가 더 심해져서 어디 갈 때마다 같은 사람이 계속 따라옴.
탈북자 가족들은 변두리로 강제추방 당한 후 계속 감시당함. 보위부에서 탈북자 가족들이 사는 옆집을 감시원으로 등록하며, 이들은 시간제로 보위지도원에게 보고함.
서로 감시하는 체계가 엄청 잘 되어 있음. 인민반장도 우리를 감시하는 사람이고, 또 인민반장이 간첩을 하나씩 심어놓음. 서로가 약간 감시하고 스파이가 되어 고발함. 낌새가 있다 하는 집은 북한이 인권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므로 막 쳐들어가서 그냥 막 뒤짐. 굳이 ‘우리가 이런 증거가 있어서 해야 된다’는 것은 없음.
인민반에 보위부 통보원이 있어서 이들이 모두 감시하며, 너무 잘 살거나 잘 먹으면 안 됨.
마을에 경비를 서는 사람이 있는데 동네 중심에서 의자를 놓고 완장을 끼고 감시하고 있음. 이외에도 다른 사람들 모르게 감시하는 사람들도 있음. 몰래 감시하는 사람들을 ‘누깔이’라고 하며, 보위지도원이 감시하는 일을 해보겠냐는 제안을 한 적이 있음.
인민반장이 일상적으로 감시를 함. 인민반장은 사람들의 식생활을 많이 알고 돈 쓰는 것도 많이 보기 때문에 보위부 스파이라고 보면 됨. 탈북자 가족이 있으면 보위부에서 계속 감시를 함.
감시하는 것을 처음에는 몰랐는데, 한국으로 간 엄마가 생활비를 계속 보내줘서 할머니 씀씀이가 커지다 보니 보위지도원이 눈치를 채고 찾아와서 근황을 물어보고 감시함.
엄마가 브로커였던 것을 보위지도원이 다 알고 있어서 감시를 계속 당함. 알면서도 돈받고 눈감아주고 하는 게 많았음. 엄마가 1년에 3~4번씩은 보위부에 들어갔다 나왔는데, 원래 같으면 처벌을 받아야 하지만 돈을 써서 조사만 받음. 가족도주 할까봐 담당 보위지도원이 집에 자주 옴.
북한인권백서 2023, p.154 주민감시 및 사회통제 사례

4.7. 고문

북한 경찰은 국민을 위한 경찰이 아닌 나치 독일게슈타포처럼 독재 정권의 앞잡이로 전락한지 오래며, 사회안전부와 군대, 보위부 등지도 고문을 빈번히 하는데 2005년에 북한군이 탈북 여성을 취조 과정에서 구타하는 영상 캡처사진이 탈북민 인터넷방송 '자유북한방송'에 공개되어 파문이 일었고, 2008년 대북 인권단체 '북한정의연대'가 2002~03년경에 찍힌 보위부의 고문 영상을 홈페이지에 공개한 바 있다. 특히 보위부 고문 영상은 공개 당시 인터넷상에서 진위 의혹이 일기도 했다. 더구나 북한 국가보위부의 고문실과 취조실에서 자행되는 고문기술들은 김태석, 노덕술, 하판락과 같은 고문경찰들이 독립운동가들에게 가했던 고문을 확대하고 발전시킨 것이라고 한다.[67] #1 #2

보위부와 정치범수용소에서 행해지는 고문 수법은 아주 잔혹하기 그지없는데, 매우 잔혹한 내용이 많으니 열람에 주의를 요한다.

[ 열람 주의 ]
북한에서 자행되는 고문 수법은 거꾸로 매단 채 몽둥이, 각목, 개머리판, 구둣발, 주먹, 채찍 등을 동원한 무자비한 구타를 가하는 것은 기본에 관절 꺾기, 손톱 밑을 바늘로 찌르기, 임산부에게 시계를 흉내내게 하는 '시계 고문', '비행기 날기'와 '오토바이'와 같은 힘든 자세들과 무릎을 꿇는 것을 장기간 동안 계속 유지하게 하기[68], 종아리 뒤에 각목을 끼우고 무릎을 꿇게 하기, 고춧가루를 섞은 물을 코에 집어넣거나 머리를 물 속에 잠기게 하거나 몸에 찬물을 붓거나 익사의 공포를 느낄 때까지 물이 가득 담긴 수조에 집어넣는 등의 물고문, 전기고문, 몸을 숯불로 지지기, 비바람과 영하 30도 이하의 추위에 팬티 차림으로 장기간 노출시키기, 2일 동안 살균 자외선에 노출시켜 감각 마비시키기, 사람을 매단 채 두 손을 뒤로 하여 어깨 높이 이상으로 올리는 '비둘기 고문'[69], '땀통'[70] 강간, 성고문 등이 있다.

그리고 어느 수감자는 머리 위에 200w짜리 백열등이 켜진, 가로 및 세로 60cm의 뚜껑 달린 나무상자 안에 하루 종일 갇혀 있는 고문을 당하기도 했다는데, 이 백열등은 표면 온도가 100도 이상이라 머리카락이 타고 피부가 벗겨지는 등 심한 화상을 입게 되어 이 고문을 4시간 이상 버틴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다만 이 백열등 고문은 증언자가 이 사람 한 명밖에 없으니 진위여부는 알아서 판단하자.

심리적 고문으로는 폭언은 기본에 공개적인 장소에서 알몸으로 노출시키기, 가족 등의 타인의 고문과 처형을 지켜보게 하기 등이 있으며, 그 외에도 몸을 온전히 펼 수 없을 정도로 좁고 환경도 일반 수용시설보다 매우 열악한 독방에 가두기[71], 반성문 50장 작성, 1주일 동안 잠 안 재우기, 간부의 허락을 받아야 화장실 이용 가능하게 하기 등도 있다.

특히 북한의 성고문은 아주 악명이 자자한데, 여자들은 '몸속에 숨긴 돈을 찾아야 한다'는 이유로 처녀부터 할머니까지 모두 발가벗겨진 채 '펌프고문(뽐뿌)'을 당하고 있으며, 보위원들이 여자들의 몸을 뒤지며 '입에 담지 못할 추접스런 짓'을 하는 일은 예사라고 하며, 여성이 남성을 성고문하는 경우를 넘어 가족끼리 '입에 담지 못할 추접스런 짓'을 시키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

심지어는 '엄마를 찾으며 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2살짜리 아기를 6개월 동안 제대로 먹을 것도 안 주고 굶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참고로 이들은 모두 석방, 탈출이 가능한 혁명화 구역과 노동교화소 수감자들이 겪는 고문이다. 석방, 탈출이 불가능한 완전통제구역 수감자들이 어떤 고문을 당하는지는 알려지지도 '못하고' 있다.[72] 완전통제구역 간수들은 수용소의 수인들을 인간 취급하지 말라는 세뇌를 당했다는 것을 감안하면[73] 완전통제구역 내에서 가해지고 있는 고문들은 전술한 고문들 이상으로 참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간첩 혐의를 받는 사람들이 구금돼 조사를 받는 장소인 도보위국 구금소와 국가보위성 조사 기관은 '한번 들어가면 살아 나오는 것이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가혹한 폭행과 고문이 이뤄지는 곳으로 악명이 높은데, 2022년 8월 양강도 혜산시 인민반 경비초소에서 국가를 비난하는 낙서가 발견되자 낙서와 필체가 비슷하다는 이유만으로 범인으로 몰렸던 주민이 국가보위성의 조사를 받고 무죄임이 드러났지만 고문후유증으로 석방 2개월밖에 안 된 2023년 10월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국가보위성 조사를 받고 풀려난 피해자의 모습은 사람의 몰골을 찾아볼 수 없었으며 몸이 성성한 데가 하나도 없어 걷기도 힘들어 했고 뼈에 가죽만 씌운 듯한 모습이 무서울 정도였다고 한다. # 사실 2018년에도 양강도 보위부 구류장에서 남한에 있는 가족과 통화한 73세 노인이 반역자로 몰려 체포된 후 무자비한 폭행 끝에 체포 18일 만에 사망하는 일과 # 같은 해 같은 곳에서 김형직군에서 거주하던 40대 남성이 중국에 살고 있는 딸과 전화한 것이 '불법통화죄'로 몰려 고문과 함께 엄동설한에 벽에는 성에가 가득한 독방에서 취조를 받아 수감기간 3도 동상을 입고 특발성 괴저(壞疽)로 두 발을 절단하는 일도 있었다. #

김정일의 경호원 출신으로, 1995년부터 1999년까지 4년간 요덕 수용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고 탈북, 2000년 5월 남한에 정착한 이영국(1962~)[74]자유아시아방송에 고문 흔적을 보여주기도 했는데, 사진 촬영 시점(2015년) 기준 정치범수용소 석방으로부터 무려 16년이 넘었는데도 다리가 성한 데가 없을 정도이니 고문 당시의 참상을 간접적으로 짐작케 해 준다. #

4.8. 허위 정보 유포와 세뇌

북한은 그 자체가 커다란 '인간개조공장'이다.
1990년 5월 9일 조선일보 기사 '思想(사상)교육 '김일성硏(연)' 3만8천개' 중 # 참고로 저 '인간개조'라는 말은 북한에서도 당당히 쓰는 말이다.[75]
다시 태어난 느낌? 아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뭔가 기계적인 인간이고 사람이 이렇게도 사누나! 북한에서 생각하면 외국에 나가면 다 고저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고 약육강식 법칙에서 살기 힘든 것으로 생각하는데, 북한이 더하면 더했지!
옛날에 교육받을 때는 아 김일성 대원수님! 무의식적인 신적이었다면 지금은 강압적인! 아, 내가 이렇게 안 하면 죽겠구나 하는! 지금의 김정은 보면 잘하기보다 무서우니까! 잘못하면 내가 정치적으로 매장되니까! 우리 가족도 다 몰살하니까 그렇게 하는 거지 신적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정의를 내 신념에 의해서 가는 게 아니라 이건 할 수 없이 따라가야만 하는 거죠. 이젠 완전히 사람들이 뭐라 할까? 말 그대로 이번에 영화 나온 것처럼 좀비화됐습니다.
제3국에 체류 중인 20대 북한 파견 일군 A 씨, 2022년 2월 1일 VOA와의 인터뷰에서, 인터넷을 외국에서 생전 처음 접하고 난 뒤의 반응[76] #
파일:이제 만나러 갑니다 로고.png
<rowcolor=white> 북한 유치원엔 '전쟁 수업'이 따로 있다?! 北 세뇌 교육의 진실
(2016년 5월 15일 방영분 / 230회)

북한은 아예 국가적 차원에서 전국민을 세뇌하는 나라이며, 세계사를 통틀어 이렇게 집요하게 세뇌시키는 나라이자 집단은 전무후무하다.[77] 폐쇄성으로 따지자면 냉전 시기에는 엔베르 호자 시기 알바니아[78], 마시아스 응게마 시기 적도 기니, 민주 캄푸치아[79], 부탄[80], 네팔[81]처럼 북한 이상으로 폐쇄적인 국가들도 있었지만, 냉전 종결 후 시점에서는 북한 수준으로 폐쇄적인 국가는 없다.[82] 물론 시대상을 고려하면 2차 대전 후 가장 지독한 쇄국정책을 펼치는 나라가 바로 오늘날의 북한이라고 봐도 무방하다.[83]

북한은 외부에서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정보를 공공연하게 주민들이 강제로 참석하는 강연회 등을 통해 유포하며, 교과과정으로 배우기도 한다. 정권의 치부는 유포시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갈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권리가 침해당해도 알기 힘들다. 사실상 국가 차원에서 수십년간 전국민에게 노골적인 거짓 정보를 유포시키고 진실이 알려질 모든 창구들을 완전히 틀어막으며 국민들을 철저히 속여왔고, 진실을 알더라도 북한의 선전을 진실로 받아들여야 하게 하거나 그 혼란스러움을 하소연 할 길도 없게 만든 것이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두고 활동하고 있는 탈북자유민 해외조직인 '재유럽 조선인 총 연합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김주일 씨의 말로는 북한의 교육이 '북한 주민들에게 세상의 옳고 그름을 가늠할 수 있는 판단의식을 완전히 마비시키고 주민들을 로봇처럼 움직이는 인간기계로 만든다'고 말했는데, 북한 국민들은 외부로부터 완전히 단절된 환경과 어릴 적부터 지속된 교육을 빙자한 세뇌 때문에 '인권'이라는 말조차 접하지 못하며, 심지어 려행증 등 북한의 자유 억압도 '다른 나라들도 다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는 등 당연한 것처럼 여긴다고 한다.[84] # 그나마 이는 2012년 기사이고, 현 시점에서는 한류 문물이 많이 유포되었기에 려행증 같은 악습을 당연하게 생각할 사람이 많을 가능성은 없다. 허나 2019년 탈북한 한 탈북자는 자신이 어릴 때에는 전 세계 모든 나라가 북한과도 같다고 생각했으며, 한류를 접하고 "어디도 못 가고, 죽을 때까지 북한을 떠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해외로 갈 수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

가장 대표적인 세뇌가 김일성이 (가공의 군대인) 조선인민혁명군을 이끌며 일본군을 독자적으로 물리치고 한반도로 진공하여 조국을 해방했으며, 6.25 전쟁은 이승만 정권의 북침으로 시작했다는 주장이다. 일본군을 격퇴하고 38선 이북을 해방시킨 소련군 25군의 정치사령관이었던 레베데프에 따르면 1945년 해방 정국에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다. "김일성이 부관 문일을 앞세우고 소련 카피탄(대위)계급장을 단채 45년 9월 하순 우리사령부를 처음 찾아왔을 때의 일입니다. 그는 몇마디 인사를 나눈 뒤 '사령관님,우리 항일 빨찌산도 해방전에 참전한 것으로 해 주십시오'라고 간청하는 것 아니겠어요. 나는 그의 요구를 거절했지요." 레베데프는 "당시는 그의 항일투쟁경력을 감안, 애교로 돌렸지만 훗날 평양방문시 그들이 사실을 왜곡한 것을 보고 놀라지않을 수 없었습니다"고 회고했다. # 어떻게 했냐면 소련군 25군의 역사에 25군을 지우고서는 거기에 실존하지도 않았으나, 실존했다고 믿어야 하는 김일성의 부대인 조선인민혁명군을 집어넣은 것이다. 이는 김일성 가문의 우상화의 가장 주된 근거 중 하나이자, 아이들까지 배우는 현재 진행형이다. 이러면 한반도 남부가 실제 역사 속에서 일제를 패망시킨 미국에 '점령'당한 이유를 전혀 설명할 수 없는데, 이에 대해 북한은 '미국이 김일성을 너무나 두려워한 나머지 일본을 일부러 봐주고 재무장시켜 부랴부랴 38선 남쪽을 점령했다'는 말같지도 않은 주장을 하고 있다. # 또 6.25에 참전한 노병이 "당시 중국공산당의 인민지원군(중공군)이 없었다면 우리는 전멸했을 것"이라고 사실을 전했다가 당국으로부터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 이는 '김일성의 비범한 군사적 예지와 탁월한 지략으로 백전백승했다'는 북한의 날조와 전혀 맞지 않기 때문이며, 이렇듯 노병들이 공개 행사에서 당국의 선전과 전혀 맞지 않는 사실을 전하는 일이 상당하기 때문에 최근 북한에서는 전쟁노병을 내세운 행사를 자제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

조선인민군의 군사력에 대해서도 과장된 찬사를 일삼으며 조선인민군이 "탁월한 영장의 슬하에서 일당백의 혁명무력으로 장성강화된 우리 인민군대는 1950년대의 쓰디쓴 교훈을 망각하고 경거망동하는 적들에게 무자비한 섬멸적타격을 안기였다."고 주장하고 있고, 조선인민군이 조선인민혁명군 이래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이 '공화국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압살책동'을 압살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제1연평해전, 연평도 포격전 등 자신들이 저지른 도발은 모두 남한과 미국의 도발이고 실제 역사 속에서는 북한이 완패한 이들 사건들이 모두 인민군이 압승했다고 뻔뻔스럽게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은 국민들에게 '백두혈통'에 대한 경외감을 주입시키기 위해 북한에 있는 모든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들에게 백두혈통 우상화 교과서라는 교과서로 김일성김정숙 부부, 김정일, 김정은[85]이 초자연적 능력이 있다는 등의 우상화 내용을 세뇌시키는데,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 '교과서'라는 책의 내용이 최근까지만 해도 그 유명한 '김일성이 가랑잎을 타고 강을 건너고 솔방울로는 수류탄을, 모래로는 쌀을 만들었다' '김일성과 김정일이 축지법을 쓴다' 정도는 양호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허황되다 못해 유치하기 짝이 없고 비교육적인 내용으로만 가득 차 있었는데,[86][87] 이런 내용들은 북한 주민들이 그대로 믿을 것이라고 전제하고 날조, 유포되는 것이므로 북한 정권이 국민들을 얼마나 개돼지보다도 멍청한 존재들로 간주하는지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수 있다. 게다가 북한은 교육적인 가치라고는 눈 씻고 봐도 없는 이 과목을 가장 중요한 교과목으로 여기기에 아무리 다른 과목들의 성적이 좋아도 이 '혁명력사'를 모르면 대학 입학 자체가 아예 불가능할 정도이다. 그나마 2010년대 중반 이후로 이런 허무맹랑한 능력 선전은 북한도 너무하다고 느껴 결국 멈췄다고 한다.

그리고 북한은 상단의 이제 만나러 갑니다 방송분에 나온 것처럼 어린이들이 보는 동화책, 애니메이션까지 남한, 미국에 대한 적대시 등 사상 주입의 도구로 쓰는데, 북한의 세뇌용 애니메이션은 짐승 캐릭터 등의 우화적인 표현을 이용해 어린이들의 공감대를 형성시키는 치밀한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88] 북한의 체제 선전이 그나마 덜한 분야라는 애니메이션이 이 정도면, 다른 분야에서는 얼마나 체제 선전이 심한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하다못해 유치원 놀이터의 놀이기구까지 전차, 로켓 같은 무기들과 비슷한 외형으로 설치하여 어린이들에게 군사적 사상에 익숙해지게 만드는 나라가 북한이다. 게다가 북한은 이도 모자라 일제의 잔인함을 어린이들에게 각인시키기 위해 유치원에다 사람 목을 작두로 자르는 그림을 대놓고 전시해놓기도 했다! 링크에 들어가보면 사진 속 북한의 유치원들을 보면 폐가 수준의 외견[89]에 '경애하는 김정은 장군님 고맙습니다' '세상에 부럼없어라' 같은 프로파간다 문구가 함께 있는 것과 5살밖에 안 된 어린이가 아무것도 모른 채 색연필로 그린 탱크의 모습이 씁쓸하기 그지없다.

심지어 갓 태어난 어린이들에게 부모님의 이름보다 김일성, 김정일의 이름을 먼저 외우라고 하는 나라인데, 이렇게 태어난 직후부터 김일성 부자에 대한 '존경심'을 주입받은 북한의 어린이들은 나이를 먹어가며 탁아소, 유치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 군대, 직장에서도 김일성 일가에 대한 철저한 '존경심'을 이전보다 더 빈번히, 철저히, 확고히 주입받으며 자주적인 의견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를 할 수 없게 된다. 게다가 이들은 이도 모자라 '매일 충성심에 티끝만한 먼지라도 앉지 않았는지 반성하면서 닦아야 한다'며 김일성 부자의 초상화를 '정성걸레'라는 특수한 걸레로 매일매일 닦게 하고,[90] 초상화에 먼지가 묻은 것이 발각되면 생활총화에서 고되게 혼나야 하며,[91] 아예 찢어지면 3대가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게 된다. 이 우상화적인 일련의 행동을 정성사업이라고 부른다.


이렇듯 오늘날에도 북한 주민들은 김씨 3대를 보면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며, 4살 유아부터 90세 노인까지 '수령님'과 '미제 타도'를 외쳐대는데, 김일성 시절에 이를 접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조지 오웰의 악몽' '나치적 집단 히스테리'라고 표현했다. 덤으로 당시 북한 사람들은 '김일성이 인간의 운명을 구원할 운명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따라서 모든 인류로부터 존경받고 있다' '북한이야말로 인간이 물질과 사회의 굴레로부터 해방된, 가장 인본적인 사회' '기본적으로 세계가 잘못되어 있고, 북한이 옳은 것' '모든 종교와 이데올로기는 궁극적으로 주체의 '불멸의 진리'에 의해 정복당할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었다고 한다. # 4살 유아가 나와서 말인데 무려 2024년에도 북한을 방문한 러시아인 관광객이 "내가 미국인이라고 말하면 쏠 거야?"라고 말하자 초등학생 정도의 어린이들이 "네"라고 말하는 판이다.[92]

류현우 대사대리의 말에 따르면 과거에 북한의 세뇌에 길들여진 주민들은 처지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어 자신들이 얼마나 심각한 인권유린을 당하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하나, 한류 매체를 보고 남한의 자유를 접하며 자신들이 얼마나 심각한 인권유린을 당하는지 깨달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


처음부터 거짓으로 권력을 획득한 경력 등의 사실 등을 감추기 위해 북한 당국은 폐쇄정책으로 일관하여 나라가 가난해지는 악순환이 이어졌다. 이외에도 김일성은 공산주의의 측면에서는 한반도 깊숙한 곳에서 독립 투쟁을 벌인 박헌영, 민족주의의 측면에서는 조만식이 더 인정받을 측면이 있었음에도 소련군에 아부하여 이들을 숙청할 권력을 얻었다. 그리고 소련군의 영향도 독재를 위해 없앤 다음 사회주의, 민족주의를 참칭하기에 이르렀다.

2011년 KBS와 스탠포드 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북한 주민 102명 중 남한이 대북적대정책을 포기(22명)하고, 미국의 지배로부터 해방(51명)#되면 통일이 가능하다고 여긴다고 하였다. 이상한 것은 102명 중 통일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지만, 외부 영향으로 인해 통일을 못한다고 속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최근에는 외부 정보 유입으로 우상화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생겼다지만, 기성 세대 중에는 아직도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을 수 있다.

대한민국이 남조선임을 모르는 사례도 있다. # 이것은 최근에는 한류의 유입, 2023년 김정은의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 선포(...)로 나아졌다지만, 2010년대 이전만 해도 '한국', '대한민국'의 국호를 모르거나 그것이 남조선임을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인플루엔서로 활동하는 강나라 씨도 2014년 탈북했지만 '남조선'과 '한국'이 같은 것임을 한국행 비행기를 타려는 과정에서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외부 정보가 차단된 사람들은, 정부가 약간의 떡고물만 던져줘도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도시 지역 사람들이나 젊은 사람들은 내륙에 살아도 깨인 경우가 많지만, 정보를 접하기 힘든 시골 사람이나 군수 공업 등 체제 유지에 밀접한 기여를 하는 사람들은 이런 경향이 있다. 2020년 자강도 사람들은 군수공장의 오염물질로 기형아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정권을 비판하지 않으며 원수님이 샘물공장을 차려주셔서 감격스럽다는 주장을 하였다는 보도가 있다. # 그 밖에도 김정은의 비만이 북한 매체에서 대놓고 보도되는 이유가 국가의 지도자라면 국가의 위용을 위해 좋은 것을 입고 쓸 수 있다는 것을 주민들에게 각인시켜서 그렇다.[93]

영변군(북한명 녕변), 길주군 같이 핵개발로 방사능 피해를 입는 지역이 있다. 길주 사람의 경우 핵실험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탈북을 해서야 알게 된다고 한다. # 그도 그럴 것이 주민들 대피도 안시키고, 북한 매체는 그런 영향이 없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 실제로 피해가 생기자, 그제서야 피해를 알았다는 말도 있다. #

조선을 병탄한 일본 제국천황의 초상화를 '어진영'이라고 부르며 숭배하고 언론과 같은 수단을 동원하여 불이 나도 이것을 구하도록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메이지 덴노가 잠시 묵었던 집에서는 그가 썼다는 물건과 자리에 투명 덮개를 덮어 박물관의 전시물 다루듯 하는 행태도 있었는데 북한은 이것을 그대로 따라했다.

2008년 탈북한 기동예술선전대 출신의 강은정 씨의 증언으로 근래에는 주민끼리 힘을 합쳐 체제에 대한 일탈을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하지만 정부에서는 수시로 신고를 독려한다. 과거에는 진짜 잡혀가기 쉬웠다. 탁아소에서부터 우상화를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민주평통 블로그 초상화 정성사업 같은 것은 있다.#

2015년에는 조선인민군 공군이 전투기 연료가 없어가지고 아예 땅바닥에 지도를 그려서 모형 전투기를 가지고 훈련한 게 김정은이 시찰하는 가운데 조선중앙TV리춘희의 보도로 송출된 것이 남한에 알려져 망신을 사자[94] 조선인민군 공군 대변인은 이 '도보비행훈련'이 조종사들의 행동 일치를 위해 세계 어느 나라 공군도 다 진행하는 훈련 방식이라고 주장하며 남한에게 오만 막말을 퍼붓기도 했다. # 얼핏 보면 세뇌, 허위 사실 유포와는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자신들이 돈이 없어서 하는 '훈련'을 진지한 훈련으로 여기는 것을 넘어 이를 다른 나라도 다 그렇게 훈련하는 것이라고 진지하게 믿을 정도면 군의 고위 인사조차 해외 정보를 접할 기회가 없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다.[95]

동년 4월 27일 로동신문은 논설위원 동태관이 쓴 정론[96] <태양은 조선에 있다>를 통해 대놓고 '북한이 미국 본토에 '정의의 핵대전'을 일으켜 워싱턴 D.C를 함락하고 미국을 멸망시킬 것'이라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기도 했는데, 이는 북한이 미국의 실제 국력에 대해 주민들에게 철저히 은폐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

2016년 10월 8일 로동신문은 정론 <원수님 따라 하늘땅 끝까지>에서 홍수물에 떠내려가는 아내와 딸을 버리고 김일성 부자의 초상화를 건진 주민의 일화를 "습기 한 점 배지 않은 20여 상의 초상화, 한목숨 바쳐 신념과 의리를 지킨 그 충정의 인간 앞에 누구나 숙연히 머리 숙였다"며 칭송하였다. # 주민들은 이를 두고 비슷하게 학생을 죽인 부교장을 두고 김정은이 무섭기에 “가족들은 ‘물이 불어나는데 급류에 왜 아이들까지 데리고 갔는가’ ‘애꿎은 어린 아이들을 그 험한 곳에 데려가 제대로 눈이나 감았겠느냐’면서 당국을 향한 화풀이를 사망한 부교장에게 하고 있다”라고 한다. # 여기서 말한 '학생을 죽인 부교장'은 이홍수 속에서 회령시의 한 고등중학교에서는 홍수 속에서 초상화를 구해내지 못해 처벌받을 게 두려웠던 학교 교감이 교사 7명과 학생 6명에게 물이 불어난 학교에 들어가 초상화를 구해오라고 시켜서 학교에 들어갔다가 급류에 휩쓸리게 해 무려 10명의 목숨을 한꺼번에 앗아간 사람이다.[97] #1 #2 이러니 탈북자 중에서 초상화가 지켜보는 기분이 든다며 불을 끄고 잔다는 사람도 존재한다.

2019년 6월 25일에는 국제반인도범죄철폐연대(ICNK) 사무국 열린북한이 발행한 보고서를 통해 4~5세밖에 안 된 어린이들이 매스게임 '빛나는 조국'[98] 훈련에 참가한 것이 알려져 논란을 빚기도 했는데, 놀랍게도 이것은 외국에 있는 북한 인권 단체가 아닌, 로동신문의 기사를 통해 밝혀진 내용이며,[99] 기사의 설명에는 '스르르 감겨지는 눈을 서로서로 손으로 떠 올려주며'라는 구절도 있어서 어린이들이 잠도 자지 못하고 강제로 훈련에 임해야 함을 직접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북한의 언론 실태를 보면 이런 명백한 아동학대를 북한의 이미지에 '손상이 가는' 것으로 여겨 전혀 안 실을 것 같은데, 오히려 당당하게 로동신문에 실은 것을 보면 북한은 아리랑 훈련이 아동학대라는 것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

2019년 12월 18일 함경북도 온성군 4·25담배농장 사택에서 화재가 일어나자 불길을 뚫고 들어가 부모 없이 홀로 자다가[100] 화마에 휩싸여 죽을 뻔한 유아 3명[101]불길에 뛰어들어 구한 여성이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를 구해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보위부의 취조를 받았다는 기막힌 이야기도 있다.[102] 반면 폭력 사건으로 교화소에서 출소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청년 노동자 1명은 불이 번진 바로 옆집으로 뛰어들어가 초상화를 건져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화마의 불길 속에서도 초상화를 모셔 내온 청년 영웅'으로 포장되었다. #

조선중앙TV는 코로나 19를 맞아 대놓고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철새, 황사가 코로나를 옮긴다는 허위 사실을 주장했다. # 이는 코로나를 빌미로 이루어지는 주민 통제를 정당화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아시아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가장 늦은 국가가 되자 돌파 감염 등으로 숨진 사람들만 보도하여 아직 제대로 된 백신은 없다고 주장 하였다. # 북한은 세계의 자유 지수가 북한과 동일한 독재 국가 에리트리아[103]를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백신 접종이 늦은 국가이며, 2022년 4월 말에야 코로나 환자 존재를 인정했던 만큼 동년 5월 20일에야 코로나 환자가 보고된 투발루를 제외하면 정식 국가 중 가장 늦게 코로나 확진자의 존재를 인정한 나라다.[104]

2023년 3월 30일 한미일 연합훈련을 위해 니미츠급 항공모함부산에 입항하자 북한에서는 푸에블로호 피랍사건을 들먹이며 핵무기로 무장한 북한 해군 앞에서는 항공모함도 푸에블로호 꼴을 면치 못할 거라고 주장했는데, 이때 푸에블로호 나포 작전에 참여한 역사의 산 증인인 박인호는 "미국이라는 땅덩어리 전체가 지구상에서 완전히 없어지는 운명을 면치 못하게 될 것"이라는 발언을 한 것 역시 북한에서 미국의 실제 국력이 어쩐지 북한 주민들에게 전혀 알려주지 않는 중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는 증거라고 봐도 무방하다. #[105]

2024년 6월 25일 외무성 미국연구소가 작성한 6.25 전쟁 백서 <타협 불가의 피해보상 기준, 절대불변의 대미보복 의지를 밝힌다>에서도 북한은 전쟁을 치른 3년뿐만 아니라 '미국이 자행한' 전쟁 전후의 테러·생화학전·푸에블로호 사건·판문점 사건·대북제재·봉쇄정책 등으로 1945~2017년[106] 29조 3,540억 달러[107]에 달하는 물질·경제적 피해를 줬다고 덧붙였으며,[108] 이 밖에도 부상자와 장애자 발생에 따른 손실, 경제를 제대로 가동하지 못한 데[109] 따른 손실 등을 모두 합하면 피해 금액은 78조 2,037억 달러[110]로 추산된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주장하는 경제 피해가 전혀 말이 안 되는 게, 2022년 세계은행 통계 기준 미국 GDP가 25조 4,400억 달러, 전 세계 GDP 총합이 101조 3,000억 달러다. 그리고 2022년 UN 통계 기준 북한의 GDP는 151.8억 달러도 되지 않는다.[111] 심지어 백서에 밝힌 피해액은 해당 시기의 기록과 함께 생존자들의 증언에 기초한 것이며, 확증되지 못한 피해는 그보다 '훨씬 더 많고', 이마저 날이 갈수록 엄청나게 불어나고 있다고 주장한 것을 보면, 북한이 6.25를 포함하여 미국으로부터 입은 경제적 피해 총합은 세계 GDP의 총합을 거뜬히 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저딴 헛소리를 진지하게 한마디로 한국으로 치면 외교부 측에서 진지하게 늘어놓을 정도면 외교부 측에서도 미국 경제 규모가 어떠한지도 전혀 모른 채 날조 주장을 펼칠 정도로 북한이 외부의 경제 규모에 대해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112] #1 #2 #3 #4 '겨우' 주민 선전용 자료였어도 비웃음거리가 될 수준인데, 북한 내 전문가들이 썼을 공식 백서조차 이 수준이라는 것은 북한의 인터넷과 해외 정보 차단이 얼마나 참혹한 결과물로 귀결되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113]

이렇듯 로동신문, 조선중앙TV, 우리민족끼리, 조선의 오늘[114] 등지에 올라온 북한의 선전 내용들을 보면 외국인들이 보기에는 오늘날 시류에 너무나 뒤떨어진 나머지 비웃음거리 수준도 되지 못하거나 북한의 열악한 실태를 스스로 인정하는 듯한 내용들이 많은데, 거의 개그 노다지(...)라 해도 할 말이 없을 수준으로 수준이 떨어지는 나머지 북한의 선전 매체들을 개방하면 오히려 안보 교육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취지의 주장까지 나올 지경이면 말 다한 셈이다. #

사실 북한은 고난의 행군 이후에도 언론과 외부 선전에서 자랑하듯 묘사한 것에서조차 자신들의 식량 사정이 열악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나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2011년 7월 13일 희천 2호 발전소 건설 현장에 동원한 조선인민군 육군 건설 공병들이 김정일이 보내준 불고기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고 "아~ 불고기!!! 뜨거운 그 사랑에 목메여…"라는 포스터를 만든 것을 조선중앙TV에서 자랑스럽다시고 보도한 것이 10년도 더 넘은 2023년 현재까지도 남한 네티즌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조리돌림당하고 있으며, 그로부터 10년 후인 2021년 12월 22일에는 김정은이 평양 주민들에게 육지동물의 고기도 아니고 물고기를 '명절 공급'[115] 차원으로 배급한 것을 "수도시민들에게 베풀어진 뜨거운 은정"이랍시고 로동신문에서 보도했다가 남한 네티즌들에게 '얼마나 북한이 못 살면 평양마저 이 지경이냐' '이밥에 고깃국은 진작에 포기한 듯' 등 온갖 비야냥만 들었다. #

다만 이런 세뇌는 국제적인 실상이나 자유로운 정보 전달이 가능한 인터넷 등 매체를 접할수록 풀린다고 한다. 충성심이 특별히 높도록 세뇌 받았을 간첩과 무장공비도 김현희, 이광수의 사례처럼 전향하는 등의 사례가 있을 정도다. 주성하 기자는 구글에 김일성, 김정일의 이름을 쳐본 해외 파견 북한 국적자가 탈북한 사례를 소개하고 있으며, # 탈북자들이 북한을 탈출하면 맨 처음으로 검색하는 것이 김일성 일가의 이름이라고 한다.#

김일성이 나라를 해방하지 않고 미군의 원자탄 투하나 소련군의 진공에 따른 해방[116] 등으로 나라가 해방된 2차 세계대전사, 김일성의 소련군 대위라는 신분[117], 김정일의 가계도가 결정적이다. 저런 유리성과 같은 체제니 온갖 수단을 동원해서 외부 실상을 접하지 못하게 애를 쓰는 것이다[118].

심지어 그것도 김일성 시대보다는 개방적으로 변한 것이다. 김일성 시대에 북한은 자본주의권의 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공산권 신문인 프라우다인민일보를 읽는 것조차 금지된 데다가 사회주의 국가들의 혼란상은 물론이고 1990년에 세계 사회주의 진영이 거의 붕괴된 것까지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았고, 이 때문에 대부분의 북한 사람들은 1980년대 후반까지도 페레스트로이카글라스노스트라는 개념의 의미를 위시한 고르바초프 이후 소련의 변화는 물론이고[119] 스탈린 시기의 인권탄압 폭로, 희생자들에 대한 복권과 폴 포트민주 캄푸치아 정권이 1979년에 붕괴된 것도 몰랐을 정도를 넘어[120] 아예 북한이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인 줄 알고 있었다고 한다. [121] 그리고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도 당시에는 전혀 알리지 않다가 무려 2001년 조선대백과사전에 실으면서 처음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존재를 알렸을 정도면 말 다한 셈이다. 덤으로 후술하듯 버블경제 시기에도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것을 철저히 감춰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라고 착각하는 사람도 나올 정도였다.

다만 오해하지 말자면 70~80년대에도 영화나 선전자료에서 외국의 번화한 모습이 그대로 나오는 등 북한도 외국의 번영한 모습 자체를 완전히 감추지는 않았다. 그러나 북한은 "세상에 부럼없어라" 같은 구호를 내세워 물질적인 면에서는 자신들이 제일 뛰어나지 않아도 자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영광 속에 산다는 어투로 주민들을 세뇌했고, 당시 북한 사람들이 세계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인 줄 알고 있었다는 것은 북한이 외국의 실상을 어느 정도 전달하면서도 국민들을 세뇌시킨, 한마디로 폐쇄성이라기보단 세뇌의 결과물에 가깝다. 아마 당시 북한 사람들은 외국의 번화한 모습을 봐도 후대 남한 사람들이 김정은 시기의 평양을 보는 것과 비슷하게 "수도의 기득권층들만 잘 살고 나머진 쫄쫄 굶겠지"라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덤으로 한 탈북자는 '북한은 소련보다는 못살지만 중공, 일본보다는 낫다. 나는 세계에서 제일 못 사는 나라는 일본이고[122] 그 다음은 중국인 줄 알았다.'고 증언하기도 했으며, 이웅평은 자신들의 또래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인들이 '사람이 아니고 덧이빨이 빠져나오고 피가 흐르는 생고기도 뜯어먹는 사람 비슷한 짐승'인 줄 알았다고 하고,[123][124] 미국의 평론가 잭 앤더슨의 증언에 따르면 김일성 시기에는 해외 출국이 허용된 사람들조차 해외에서 모든 외국인들의 접촉이 금지된 채 호텔에 틀어박혀 있어야 했으며, 극장, 공원 산책, 심지어는 식당에 가는 것조차 금지되었다고 한다.[125]

이런 폐쇄성 때문에 매우 황당한 에피소드도 전해지고 있다. 한 외국인이 남한이 기적적으로 성공적인 경제성장을 보이고 있다고 보고하자 북한의 한 경제학자는 "남한 정부가 발표하는 '불법' 지표와 일반 대중의 실생활상을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고 대답했고, 그는 또 많이 선전되고 있는 남한의 경제성장은 '제국주의' 자본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그런 식은 용납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126]

그리고 근거는 매우 부족하긴 하나, 개성텔레비죤[127]1991년 10월 10일까지 컬러 방송을 하지 않고 흑백 방송만 고수한 것이 남한이 '헐벗고 굶주리는 나라'라는 허위 선전 때문에 방송국 직원들이 '남조선은 아직도 흑백 방송을 할 정도로 가난한 나라다'라고 착각해서 그랬을 가능성도 있어보인다.[128][129]

북한 측에서는 이렇게 해외 정보들을 차단하는 거에 대해 "우리는 대외적으로 열어줄 건 다 열어주었지만 외부에서 우리를 굴복시키기 위해 외부에서 '몹쓸 것들'을 집어넣자고 의도적으로 책동하려는 세력들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모기장 좀 치면 안 되냐. 우리는 모기장을 든든히 쳐야 하고, 이것은 인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모기장이기에 폐쇄적이라고 부르는 것은 생 억지다."[130]라는 식으로 타당화하고 있는 것은 물론 심지어 '다른 나라들도 다 그 정도로 '모기장'을 친다'고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북한은 해외의 시민혁명에 영향을 받아 주민들이 시민혁명을 일으켜 자신들이 쫓겨날 가능성을 막기 위해 해외 뉴스를 계속 차단해오고 있는데, 구소련이 붕괴할 때에도 '모스크바/동유럽/중앙아시아에 다른 정권이 들어섰다' 정도만 전했고, 아랍의 봄바그너 그룹 반란도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 물론 오늘날에는 해외 소식들을 보도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미국을 위시한 자본주의 국가들은 기괴한 사건사고들과 빈부격차 등 좋지 않은 내용들만 보도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도 반서방적 논조를 보이며 우크라이나/이스라엘을 격렬하게 비난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 비난은 거의 매일같이 로동신문에 실리고 있다.

다만 그나마 다행히도 북한도 축지법을 위시한, 최고지도자들이 초자연적 능력을 쓸 수 있다는 주장은 너무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인식했는지 이런 선전은 2010년대 초중반 이후 중단되었다.[131] 이는 김정은 시기 들어서 북한 당국도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우상화와 선전선동 사업이 비과학적이고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이뤄지면 북한의 대외적인 인상도 안 좋아지고 북한 주민들도 믿지 않는다는 것을 파악하게 된 것에서 기인한데, 북한 주민들도 중국을 통해 몰래 한류 등의 외부 문물을 조금씩 접하면서 의식 수준도 김일성, 김정일 시절보단 높아졌기 때문에 김정은 시기에는 최고지도자들의 '인품'이나 '사상정신적 풍모' 등을 강조하며 보다 현실적인 감각을 가미한 방식으로 우상화를 하고 있다고 한다. #

다만 국제 정세에 대한 허위 유포는 아직도 멈추지 않고 있다. 2024년 주성하가 쓴 기사를 보면 푸틴도 김정은에게 빌빌 긴다는 등 아주 배꼽을 잡는다. 읽어보자.

4.9. 정보 차단을 위한 외부인 차별

4.9.1. 대한민국 체제 경험자에 대한 차별

북한은 적화통일이나 분단에 대한 책임 부정[132] 등을 위해 남한 이상으로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자기 땅이라고 하고, 동학농민운동 같은 남한을 중심으로 일어난 역사나 단순 자연지리를 아주 상세하게 가르친다. 북한 사람들은 자국의 영토를 묘사할 때 휴전선 위쪽만 그려진 모습을 북한에서 볼 수 없었다.[133] 김정은이 천 번도 넘게 들었다는 유학생 동기의 증언이 있고 열병식에서 연주되면 눈물을 흘릴 정도로 좋아하는 곡인 북한 애국가도 남한 출신이 지었는데, 심지어 작사자는 서울 출신에 모교는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다. 삼천리 같이 남북한 전역을 암시하는 가사도 북한 애국가에 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역사는 토지개혁부터 지주는 때려잡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경제적 조치를 통해 그 폐단을 청산할 수 있고 아주 극심한 갈등이 있던 건 아니라는 북한 정권의 건국 이념 중 하나를 반박하게 되는 것이다. 정권유지를 위해서라면 이런 경험을 누리고, 이와 연루될 수 있는 사람들을 정치적으로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북한 정권은 여기게 되었다. 저런 상황에서도 실향민/북한 문서의 사람들처럼 남한 출신이 고위직에 오르는 경우도 있는 이유가 충성이 보장될 수 있는 남한 사람은 괜찮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김일성의 가문을 맹목적으로 추종할 수 있는 사람이 최고이기에 북한 출신이라도 기독교인 같은 사람들은 후술하듯 심한 차별을 받았다.

북한에서는 북송교포와 그들을 따라 온 일본인 여성, 그리고 남한(대한민국을 경험한 일반인과 연관된 경우) 출신등 세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 인사 등용이나 결혼 등 많은 면에서 제한과 차별을 받고 있다. 북송교포나 대한민국 출신은 1960~1970년대 듣던 것과는 다른 북한 현실에 한마디 불평을 했다는 이유로 정치범수용소에 간 사람이 적지 않다. 1980년부터 일본에 사는 친인척들이 북한을 방문해 가족 상봉이 이루어지기 시작하자 북한 당국은 물샐 틈 없는 감시를 했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한창 이뤄질 때도 북한에 사는 남한 출신 실향민은 금강산면회소에 가기 전 거의 1개월간 강습을 받아야 하고, 절대로 "북한이 못먹고 못산다."라는 말을 하지 말라고 강요당한다. 한국 친척이 돈을 보내주는 경우에는 1인당 받은 액수를 그대로 보고하고 중앙당에 바쳐야 한다고 한다.
아울러 북한 당국은 북송교포나 한국 출신과 인연을 맺거나 혼인하면 출세에 영향을 주는 풍조를 내적으로 유포했으며 "자본주의 물을 먹어본 사람들"이라는 이유로 감시하고 차별했다.북한에서 대한민국 출신,재일교포 차별1북한에서 대한민국 출신, 재일교포 차별2

1967년 김일성의 지식인 대탄압 정책인 5.25 교시 이후 1970년대 초 남한계 지식인 계급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이 벌어졌다. 남한 출신 의용군의 가족들은 "종파분자"라는 벗어날 수 없는 하급 출신성분에 예속되어서 북한에서도 가장 출신 성분이 나쁜 치안대(국군의 북한 수복시 현지에서 치안유지대원으로 고용된 사람들)출신 가족들과 결혼한다. 남한 출신은 평양에서 자강도 낭림군으로 쫓겨나고, "반당 반혁명 종파분자"로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 이후 소식이 끊어졌다.대한민국 출신 치안대, 의용군의 구겨진 삶

무엇보다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꺼리는 이유도 내세울 만한 잘나가는 남한 출신들이 바닥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에서 이산가족은 대다수가 적대계층으로 분류된다. 고향이 남한이고, 혈육이 남한에서 산다는 이유만으로 핵심계층이 아닌, 언젠가는 변절할 수 있는 적대 계층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게다가 남한 출신은 로동당이나 국가보위성 같은 핵심 권력 기관에 절대 들어갈 수 없다. 이 때문에 남한 출신 주민 대다수는 벗을 수 없는 신분의 굴레를 쓴 채 광산 등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평생 감시받으며 살고 있으며, 육체적 학대를 받는 직업이 많아 일찍 세상을 뜬 경우가 많다. 이렇다보니 상봉 후보군이 적을수밖에 없다. 북한에서 대한민국 출신은 육체적 학대를 받는 직업이 많아 [134]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남한과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 시 서로 건넬 수 있는 현금 액수를 500달러로 제한했다. 남한측 가족에게서 받은 돈 중 250달러 정도는 당국이 평양에 체류할 때 머문 호텔 비용, 옷값, 한국 가족에게 건넨 선물 값 등으로 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나머지 250달러와 선물은 집에 갖고 갈 수 있지만 지방의 로동당 간부나 보안원 등이 “내 덕분에 상봉에 나갈 수 있었다”며 대다수 뜯어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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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2. 미국 및 일본 문화 탄압

미제(美帝)는 우리 민족의 만대 원수이자 반드시 죽여야 할 적이며 일본은 과거 우리 민족을 죽인 철천지 원수이다.
일본이라는 나라하면 옛날 제놈들이 반도를 지배했던 시절부터 우리 민족을 죽이고 개돼지만도 못한 취급을 하였으며 지금도 침략의 마수를 버리지 못하고 우리 민족을 위협하고 있다. 일본이야말로 우리 민족 최대의 원수이며 반드시 죽여야 할 적이라 할 수 밖에 없다.
미국, 일본에 대한 적대심이 매우 심하여 북한 주민 등 이들 국가의 문화나 관심을 보이면 반동죄로 잡혀서 총살이나 노역형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분단 이후 미국에 대해서는 친북 및 공산 세력들을 소탕하였던 적대관계이고 일본은 일제강점기 때 민족을 학살한 원흉이었으니만큼 현재도 북한에서는 이들 두 나라를 적국으로 규정하며 주민들이 이 두 나라의 문화나 영상물도 접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다. 만약 북한 영내에 이들 두 국가의 문화나 영상물들 보거나 가지고 있어도 반동으로 규정되어서 총살 또는 노역형에 처해진다. 어느 정도였냐면 상술한 것처럼 김일성 시절에는 일본이 선진국이라는 사실 자체를 은폐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다만 일관적인 내용이 아니라서 김여정이 스스로 삐라 같은 일본어 유래 외래어를 쓰기도 하고 동영상 대신 '비데오'를 쓰라고 하는 등 일본어 '잡탕말'을 문화어라고 우기기도 하고 북한 주민들이 미국 것임을 잘 모르는 것 같으면 넘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인, 미군 복무자 출신이라고 할지라도 드레스녹 같은 선전에 이용되며 북한을 찬양하는 사람, 신은미 같은 북한을 찬양하는 재미교포는 일반 북한인보다 훨씬 우대한다. 애초에 김일성이 권력 기반을 잡을 때도 '탄백작업'이라고 하여 자신에게 아부하는 친일파는 과오를 뉘우쳤다는 식으로 감싸주고, 심지어 최덕신 같은 대한민국 국군의 미제 앞잡이로 빨치산을 때려 잡으려면 양민까지 다 때려잡아야 한다며 지리산 근처 거창 등지에서 주민을 학살한 자까지 그가 미군 철수 등을 외치며 김일성의 앞잡이 짓을 미국에서 하자 그가 민간인을 죽이고 싶지 않았다고 하는 거짓말을 만들어 주었다. 최덕신은 월북을 했는데 이는 먼저 김일성이 설득한 것이었으며 그의 '영웅담'을 김정일이 민족과 운명 같은 작품을 통해 '반영'하라고 할 지경이었다. 아들도 연금 개념으로 호의호식하고 싶어서인지 최근 월북했다.

후지모토 겐지 같이 최고존엄을 모욕하는 듯한 책을 펴내고 북한 일반인 같으면 조국에서 도망친 '배신자'로 낙인 찍혀야 할 김정일 전속 요리사의 경우 더 민감한 정보가 퍼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일본을 아는 사람이 필요해서 그런지 엄청난 물질적 자원을 들인 대우와 더불어 평양에서 일식 요리를 하게 해주며 그를 평양에 데리고 왔다. 저런 주장은 김씨 일가의 비행을 감추고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를 속여내기 위한 변명거리인 것이다.

4.10. 가혹한 징병제와 군 복무 환경

징병제의 특성상 인권침해로 인식된다해도 다른 나라의 징병제는 군국주의 체제, 적대적인 주변국이 많거나 주변국의 대부분이 강대국이라 지정학적인 풍파가 심한 국가인 경우를 제외하면 징병률도 낮으며, 군복무 환경이 출퇴근 복무나 영내에 있어도 한달에 2~3번 외박을 나올 정도 등으로 좋은 나라들이 절반 또는 그 이상이다. 조선인민군의 열악한 현실은 선진국의 징병제와 군복무 환경 중에서 가장 나쁘다고 평가되는 대한민국의 징병제대한민국 국군의 군복무 환경과 비교해도 훨씬 가혹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북한의 징병제와 북한군의 군복무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북한과 비슷한 징병제와 군복무 환경은 후진국으로 불리는 국가 중에서도 에리트레아 정도를 제외하면 찾기 힘들다. 또한 북한의 징병제에서는 입영대상자를 위한 자유로운 선택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당에서 강제로 뽑아다가 연기가 불가능한 입영을 하는데 보통 고등중학교만 졸업하면 바로 징병하는 게 대부분이며 호위사령부기쁨조 같이 따로 선발하는 과정은 각 도당위원회에 정원을 내려서 선발하도록 한다. 그리고 백두혈통 같이 특수한 계층은 징병되자마자 장령이 되기도 한다. 이거 말고는 전원 하전사 징병이다. 그렇다고 군관을 지원하는 것 역시 본인 의지와는 상관없으며 중대장 이상의 지휘관이나 정치장교에 의해 선발된다. 이건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게 아니며 하기 싫다고 안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하고싶다고 아무리 졸라도 안시켜주면 못하는 거고, 시켜 줬는데 안하면 정치범 수용소 행이다.

북한군이 현대전에서 의미가 없는 MiG-17이나 An-2를 아직도 가지고 있는 이유가 유사시 자폭 작전에 쓰려고 한다는 주장이 존재한다. 일본군의 후신에 가까운 일본 자위대, 일본군과 같은 징병제인 데다 해방 이후 한국군 창설 당시 일본군 및 만주군 출신이 유입된데다 군사정권인 박정희 정부(제3공화국, 제4공화국)와 전두환 정부(제5공화국)의 영향으로 병영 내부 문화가 구 일본군과 유사한 양상을 보이는 대한민국 국군에도 자폭부대는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는 심각한 문제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군은 그래도 지속적으로 사건사고가 공론화되고 사회가 자유화되며 문제의식이 생겨 2010년대부터는 병영부조리 문제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개선되기 시작한 반면에 북한군은 그런 거 없이 더더욱 열악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무엇보다 카미카제는 막상 시전되었던 태평양 전쟁 당시에도 생각보다 별다른 효과를 보지를 못하고 귀한 조종사들만 자기 손으로 고이 보내주는 자살행위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 시절에 써먹던 그 전투기는 21세기에는 노후화가 심각해서 정상 비행도 기대하기 어려운 판국에 그걸 가지고 제2차 세계 대전 시절부터 더 발달한 방공 화기들을 상대로 카미카제를 시전한다는건 정말 더할 나위 없는 자폭 행위이다.

또 북한은 합법적인 형태의 생활로는 생계를 유지할 수가 없다. 북한에서 당 간부라 하더라도 공식 월급은 장마당 쌀 1kg 살돈도 안 되기 때문에 직장 군대 장마당에서 도둑질이 만연해 있다. 특히 보위부나 사회안전부가 건드릴 수 없는 군인들이 떼를지어 민가를 약탈하고 노상강도짓을 대놓고 하며, 돌격대(건설 노무부대)나 군기간 단 축후 농장 배치된 군제대자 출신 또는 탈영병들은 난폭하기 때문에 사실상 사회안전부에서 포기한 지 오래라고 한다. 주민들 사이에서도 생계형 도둑질이 경쟁적으로 다른집이나 직장 물건들을 먼저 팔아먹는 게 임자라고 할 정도다.

4.11. 종교 탄압

종교는 반동적이며 비과학적인 세계관입니다[135]. 사람들이 종교를 믿으면 계급의식이 마비되고, 혁명하려는 의욕이 없어지게됩니다.
결국 종교는 아편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일성저작선집 (평양: 조선로동당출판사, 1980)
제256조 (미신행위죄)
돈 또는 물건을 받고 미신행위를 한자는 1년이하의 로동단련형에 처한다.
여러명에게 미신행위를 배워주었거나 미신행위로 엄중한 결과를 일으킨 경우에는 3년이하의 로동교화형에 처한다. 정상이 무거운 경우에는 3년이상 7년이하의 로동교화형에 처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형법, 주체104(2015)년 7월 22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제578호로 수정보충 출처: 통일법제데이터서비스
북한 종교기관의 대외적 활동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종교자유 수준은 최악으로 평가받고 있다. 북한은 종교의 확산을 체제위협으로 인식하여 철저히 통제하고 있으며, 최소한의 종교의 자유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북한인권정보센터 2020년 북한 종교의 자유 백서
북한은 사실상 모든 종교 관련 행위를 체제전복 행위로 간주한다. 북한 주민들이 종교를 가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2020년 조사에서 대부분의 북한이탈주민들은 북한에서 종교에 대해서 들어본 적도 없다고 증언하였다. 북한 당국은 주민들이 종교생활을 하지 못하도록 감시한다
특히 종교 중에서도 기독교에 대한 탄압이 심한 편인데, 성경을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정치범에 해당되어 수용소에 보내지거나 처형당하기도 한다.
종교의 자유의 경우, 헌법에 법적 권리로 명시되어 있으나 대부분의 주민이 종교란 단어를 들어본 적도 없는 등 종교의 자유는 심각하게 제한되고 있다. 종교의 자유에 관한 한 북한 당국은 지속적 통제정책을 고수하고 있고, 특히 기독교와 같이 특정종교에 대해서는 강력한 처벌과 엄격한 통제를 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2021년 통일연구원 북한인권백서
국가보위성이 제작하여 교육용으로 배포한 미신숭배자와 지하교회 신도 적발 영상 (출처: 유튜브 강철환TV)

북한에서 종교 박해를 당한 사람의 경우 생사를 알 수 없는 경우가 60%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의 북한인권정보센터가 15일 공개한 '2018 북한 종교자유 백서'에 따르면 박해를 당한 사례 중 사망은 17%로 전체적으로 종교 박해를 겪을 경우 생존 비율이 낮아지는 것이다. 생존은 22%에 불과했다. #

북한은 김일성 시대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에서 종교 탄압이 가장 극심한 국가다. 다른 동구권 국가들은 물론이고 차우셰스쿠 시기 루마니아멩기스투 시기 에티오피아 같은 악명 높은 독재국가들조차 종교 탄압을 하긴 해도 종교 자체를 완전히 금지시키지는 않았으며, 특히 차우셰스쿠는 오히려 종교계의 협조를 받았다. 마시아스 응게마 시기 적도 기니는 '무신론 국가'하고 극심하게 종교를 탄압했으나, 공식적으로는 공산주의 국가로 분류되지는 않는다. 사실 공산권에서도 이 정도로 종교를 탄압한 나라는 대놓고 문화대혁명 시기 중국, 민주 캄푸치아, 허를러깅 처이발상 집권기 몽골인민공화국, '무신론 국가'를 선포한 엔베르 호자알바니아 정도밖에 없으며, 북한의 종교 탄압이 얼마나 가혹한지 '알바니아에 이어 1960년대까지 종교를 완전히 근절한 두 번째 국가'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타 종교 탄압으로 악명 높은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에서도 적어도 믿을 수 있는 종교가 있긴 하다. 그 나라들도 결국 이슬람 이외에는 아무것도 허용되지 않고, 기득권층의 이득을 위해 이슬람의 교리마저 왜곡하여 이용하니 북한보고 남 말할 처지는 절대 아니긴 하다.

그럼에도 통일전선부에서 조선그리스도교련맹, 봉수교회, 장충성당, 조선불교도련맹 보현사, 정백사원, 천도교청우당 등을 운영하며 겉으로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처럼 가장하는 이유는 종교단체들을 내세워 해외 NGO에 지원 창구를 열어두고 북한에 우호적인 종북단체까지 관리하려는 목적이다. 2014년 유엔인권이사회 조사결과 매년 20여명의 로동당원을 선발하여 김일성대 역사학부 종교학과로 입학시켜 졸업시에 개신교, 천주교, 불교, 천도교 등으로 배치하고 나머지는 국가보위성으로 배치하여 지하 교인들을 색출 체포하는 임무를 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봉수교회 가짜 전도사와 국가보위부에 개신교 신도를 납치 고문하는 요원이 같은 교육과정을 보낸다.

탈북 외교관 김동수 박사의 설명으론 7,80년대 종교단체를 이용하여 국제 종교단체와 자선단체의 지원 통로를 개척하려 했으나 가짜티가 너무 많이 나서 로동당원중에 핵심계층을 선발하여 각국으로 종교교육을 보냈고, 1989년 세계청년학생축전을 앞두고 외신과 해외 방문객에게 종교의 자유를 보여주려 봉수교회등을 설립하였다. 이렇듯 북한이 '형식적인' 종교 활동을 인정한 것은 1980년대 후반이었고, 그 이전 북한의 종교 탄압은 '무신론 국가'를 선포한 알바니아, 민주 캄푸치아 같은 나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수준이었다고 전해진다.

김일성이 종교를 탄압한 것은 집권 직후부터였는데, 1946년 3월에는 토지개혁을 하면서 종교단체가 소유한 토지를 모조리 박탈하고는 1948년에는 '산업 국유화'라는 명목으로 종교단체의 기업체 재산을 모조리 몰수하면서 종교 탄압을 본격화하기 시작했으며, 1949년 5월 8일에는 덕원교구의 주교와 신부 3명을 강제 구금한 후 이틀 뒤에는 신학교 교장을 비롯한 독일인 신부 8명, 수사 22명과 한국인 신부 4명을 체포하여 정치 보위부에 투옥하는 한편 한국인 신학생들과 수사 99명을 내쫓아 수도원과 신학교를 몰수했고, 십자가상은 부수고, 제의는 찢어서 수건으로 만들었으며, 성경은 모두 휴지로 사용하거나 불태워버리는 등 교회의 물품을 완전히 파괴하였다. 이후 덕원수도원 자리에는 사리원농업대학이 들어서게 되었다.[136] 한편 덕원수도원과 원산등지에서 붙들린 외국인 신부ㆍ수사ㆍ수녀들은 4년간에 걸친 강제수용소 생활과 '죽음의 행진' 끝에 225명이 죽고 나머지 42명은 본국으로 추방되었다고 한다. #

사실 김일성 시기의 종교 탄압이 관점에 따라서는 알바니아도 능가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 김일성이 집권할 동안에는 북한에 1,500여개에 달했던 모든 교회가 폐쇄되어 철거되거나 탁아소, 유치원, 창고 등의 다른 용도로 바뀌었고[137] 모든 승려들을 절에서 모조리 쫓아낸 후 탄광 등에서 강제노동을 하게 한 데다가, 신앙을 포기하지 않은 개신교 선교사들도 1950년대 후반까지 '미국의 간첩'으로 몰려 숙청했다. 심지어 가톨릭 사제들은 외국인이면 모조리 추방했고, 북한인이면 한 명도 남김없이 처형해버렸다. #

1950년 조선중앙년감에 따르면 북한 정부 수립 무렵 기준으로 북한 주민 916만 명 중 200만여 명 이상이 종교인이었는데, 이들 중 150만 명이 천도교도, 37만 5천 명이 불교도, 20~30만 명이 개신교도, 5만 7천 명이 천주교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 중 무려 40만 명이 김일성 정권 하에서 살해되거나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는 등으로 숙청되었는데,[138] 1958년에 '중앙당집중지도사업'으로 시작된 주민성분조사를 통해 종교인들이 적대계층에 속하게 된 이래로 천도교 신자 12만 명, 불교 신자 3만 5천 명, 천주교 신자 5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하며, 개신교도들도 신앙을 버리지 않으면 함경북도 오지로 추방되거나 투옥되는 것을 넘어 아예 처형되기까지 했다고 한다. 물론 이들 중에는 인민재판에 회부하거나 공개처형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 물론 전국에 있던 불교 사찰 400여개는 (6.25 당시 미군의 폭격을 감안하더라도) 단 60여개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라졌고, 천주교도 3개의 교구가 사라졌다. 그리고 종교인의 자식들도 연좌제가 적용되어 고등교육을 받는 것을 금지당하고 농장, 공장에서 발언하는 것도 금지될 정도로 막대한 탄압을 받았다.

그리고 김일성은 1962년에 오늘날의 인민보안부인 '사회안전성'에서 행한 연설에서 "우리는 기독교, 천주교에서 집사 이상의 간부들을 모두 재판에서 '처단'해버렸고 그 밖의 일부 종교인들 중에서도 '악질'들은 모두 재판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반 종교인들은 본인이 개심하면 일을 시키고 개심하지 않으면 수용소에 가두었습니다."라고 말하며 북한의 종교 탄압이 얼마나 극악무도했는지를 간접적으로 인정했다. 이를 '미화' 없이 말하자면 개신교, 천주교에서 집사 이상의 간부들은 모두 처형했고 일반적인 신자들은 신앙을 버려도 강제노동을 시킨 것도 모자라 신앙을 버리지 않으면 가차없이 수용소에 가두었다는 뜻이다![139]

게다가 북한은 1972년에 개헌한 헌법 제55조에 '신앙의 자유와 반(反)종교 선전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문화하고는[140] 이를 바탕으로 지하의 기독교도들까지 발각되는 대로 무조건 처형했으며, # 심지어 토마스 벨케(Thomas J. Belke) 목사가 1999년에 쓴 '주체: 북한 국가종교에 관한 기독교 연구(Juche: A Christian Study of North Korea’s State Religion)'에 따르면 1950~60년대에는 기독교도들을 불 타는 십자가에 매달거나 증기 롤러로 깔아뭉개 죽이는 등의 잔인한 방법으로 처형하기도 했다고 한다.[141] # 이렇듯 김일성 시기의 북한과 동급으로 철저히 종교를 탄압한 국가는 전술한 종교 탄압 국가들 중에서도 민주 캄푸치아 정도밖에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나마 1989년부터는 상술한 것처럼 보여주기식 종교시설을 세우긴 했으나, 형식적인 종교 시설도 두지 않으며 종교를 박해한 전술한 종교탄압 국가와는 달리 북한은 21세기에도 이들 국가에 준하는 수준으로 종교를 탄압함에도 불구하고 표면적으로는 종교의 자유가 있는 것처럼 위장하려고 형식적인 종교 시설을 세워놨으니 어느 면에서는 이들보다 더 악질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현재는 비기독교 계열 종교들에게는 관대해진 것으로 보인다. 김성일의 증언에 따르면 불교를 믿는 게 적발되면 "당 위원회나 보안서에 불려가서 욕이나 먹는 정도"라고 하니... 물론 가혹행위와 고문을 당할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과거에 비하면 불교에 대해서는 많이 온건해진 편이다. #

4.11.1. 기독교 박해

북한은 다시 한 번 세상에서 예수님을 따르기 가장 힘든 곳이며 기독교인들이 살기에는 잔인할 정도로 적대적인 곳입니다.(North Korea is once more the hardest place in the world to follow Jesus, and a brutally hostile place for Christians to live.)
2023년에 네덜란드복음주의 선교단체 오픈도어(Open Doors)가 북한을 기독교 탄압 국가 1위로 선정하며 남긴 말 #

북한에서 기독교가 혹독하게 탄압받는다는 것도 유명하다. 평양에 있던 1907년 평양 대부흥을 이끌었던 장대현교회를 밀어버리고 그 자리에 김일성의 동상을 세웠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오늘날 이곳은 '만수대'라고 불리고 있는데, 이곳의 동상은 각종 포털사이트에 '김일성 동상'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뜨는 유명한 동상이다.

오픈도어선교회는 2002년부터 2024년까지 2022년 한 해를 제외하면[142] 21년 연속 세계 기독교 박해 국가 1위라고 하였다. #1 #1 이는 소말리아, 예멘을 뛰어넘은 수치다. 소말리아와 예멘은 그나마 이슬람에 대한 박해는 덜하며 국외로 떠날 수는 있지만 북한은 모든 종교를 믿기만 하면 탄압하기에 도망치기도 불가능하다. 혹시 봉수교회, 장충성당 같은 것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북한 사람들이 이런 곳에 자주 다닌다고 여길 수 있으나, 평양이 아니면 이런 곳도 없을뿐더러 허용된 어용 신도가 아니면 출입도 못 한다. 그리고 외국인 방문객이 없을 경우엔 운영되지 않는다고 한다. 봉수교회는 2019년 성탄예배에서 "성탄의 기쁨과 함께 사탄의 무리들의 끈질긴 제재 책동 속에서도 자력자강의 기치 밑에 자랑찬 번영과 창조를 이룩해온 한 해에 대해 감회 깊이 되새겨 보았다"라는 설교를 하고, "미국을 비롯한 적대 세력들"을 언급할 정도로 통일전선부를 철저히 대변하고 있다. #

북한의 공식적으로 활동하는 목사부터 1989년도 13차 평양 세계 학생축전을 앞두고, 외신과 방문자들에게 북한의 종교의 자유가 있음을 주장하려 김일성의 지시로 급조된 가짜들이다. 북한에 호의적인 단체와 재외교포들이 북한교회가 일부는 신자나 목회자들이 진정한 교인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통일연구원 북한인권백서나 국제인권단체와 탈북자들의 증언을 종합할 때 조선그리스도련맹은 김일성의 외가친척이며 자신의 초등학교 담임선생 출신 강량욱을 내세워 강량욱의 후손들이 3대째 세습하는 어용 단체요 봉수교회, 칠골교회[143]는 1988년 이후 통일전선부에서 관리하는 사업의 일환이다. 1988년 이전에 기독교가 존속했다는 주장의 근거인 가정 예배소의 존재도 2020년 통일연구원 인권백서에선 탈북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참여는 커녕 들어본 사례 조차 나온 적이 없으므로 실체가 의심된다고 한다.

탈북자들은 경제적인 목적의 비인가 월경이 적발될 경우 경우 뇌물을 바치거나 하면 풀려나거나 운이 없더라도 노동교화형에 처해지지만 한국인 목사와 접촉했거나, 성경을 소지 및 반입했음이 적발되면 공개총살 당하거나 정치범 수용소로 직행이며, 북한의 인권 개선도 반영하는 통일연구원 '북한인권백서'도 성경 소지 등이 위험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나마 저런 '가짜' 교회라도 짓는 것이 좋은 것이며, 이것이 가능해진 이유는 국제 사회의 압력 때문이라는 주장이 있다. 기독교 선교는 금지당하는데, 김정욱 선교사 같은 경우 아예 북한에 억류되어 있는 것이 한 예다. #

천주교는 홍용호, 침묵의 교회 문서 참조. 천주교 탄압도 꽤 간악했는데 1945년 당이 몰수한다던 평양 관후리 성당 부지를 돌려준다고 해놓고선 그 다음날 대화를 이끌던 강창희 비서가 암살당했다. # 홍용호 주교는 1946년 3월 공산 정권과 끈질기게 교섭하여 징발되었던 건물들을 환수 받았고, 이듬해인 1947년에 성당 신축 공사를 시작하여 1948년 말에는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성당이 완공되자 1948년 12월 평양시 인민위원회가 평양 관후리 성당을 양도하라는 조치를 내렸고, 1949년 5월 홍용호 주교도 베네딕토회 수도원 몰수 등의 조치에 항의하러 가는 길에 납치되어 행방불명되었다. #

북한의 종교 탄압은 2023년에도 이어지고 있는데, 2023년 4월 말에는 평안남도 순천시 동암리에 있는 한 농촌마을에 한 농민의 자택에서 비밀리에 기독교 지하교회 활동을 하던 5명을 예배 중에 체포해 국가보위부로 끌고 가기도 했다. 이 동암리에는 일제강점기에 큰 교회가 있었기에 오래 전부터 주민들의 신앙심이 깊었다고 하며, 북한 보위부가 동암리에서 이들 지하교인들을 체포하는 일은 1997년과 2005년에도 있었다고 한다. # 그리고 김정은의 집권 후 4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의 기독교 신자 중 최대 7만 명이 수감된 것으로 전해진다. #

2020년에 미국 국무부가 발표한 '국제종교자유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은 만 2살밖에 안 된 아이[144]부모가 성경을 소지했다는 이유 하나뿐이었다고 한다. #]와 80세가 넘은 노인까지 기독교 신자이거나 신자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봐주지 않고 수감하고 있다고 하며, 2007년부터 2019년까지 확인된 것으로만 126명의 기독교 신자가 처형되고 94명이 실종되었으며[145] 826명이 구금되었다고 한다. # 2022년 미국 국무부에서는 북한 내 기독교인 중 5~7만 명이 정치범수용소에 구금된 것으로 봤다. #

심지어 강제북송된 탈북민이 중국에서 성경과 기독교 교리를 접한 게 발각되면 무조건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간다. 한마디로 기독교의 존재를 접하기만 한 것을 탈북 시도급 중죄로 여긴다는 것이다. #

4.11.2. 무속 신앙 탄압

북한에서 아직 살아 있던 무속신앙도 탄압받는다. 2015년 북한 형법으로 "미신행위"를 전수하는 행위는 7년이하의 노동교화형에 처하였다. 그럼에도 북한 당국은 점치기나 부적같은 행위는 그다지 혹독하게 처벌하지 않았으며 묵인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2020년 북한인권백서[146]에 따르면 2018년만 해도 70대 여성이 미신행위를 20명의 제자 들에게 전수해주다 적발돼 총살당했다는 증언, 방토(귀신 쫓기) 등 미신행위를 해주던 사람이 무기교화를 갔다는 증언 등이 나오는 등 미신행위자에 대한 처벌이 매우 세다. 후술할 반동사상문화배격법으로 2020년 이후 "미신을 설교한 도서와 사진, 그림을 보았거나 보관"할 경우 최소 5년에서 최고 15년까지의 노동교화형(징역), 이를 제작 및 유입·유포한 경우에는 무기 노동교화형(무기징역)이나 사형이라는 말도 존재한다. 대부분의 주민이 '종교'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북한에서 종교는 극심한 탄압을 받는다.

4.12. 양심, 사상, 표현의 자유

제국주의자들과 그 대변자들은 자본주의사회에서 여러가지 사상이 있게 되는 현상을 놓고 사상의 <자유>라고 떠벌이면서 그것이 마치 <자유세계>의 자랑인듯이 광고하고 있다.
김정일교시
자유로운 의사표현은 사회정치생활에서 필수불가결한것이며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인간의 초보적인 권리로서 이것이 없으면 자주적인 사회적존재로서의 사람의 가치에 대하여 말할 수 없다. 사람이 국가사회생활에 참가하는 것은 자기의 요구와 리익을 실현하기 위해서이며 그러자면 무엇보다 먼저 자기의 의사와 견해, 주장 등이 국가와 사회가 알수 있도록 말이나 출판물을 통하여 표현되여야 하는 것이다.
2015년 3월 4일 조선의 오늘 기사 '언론의 자유를 통해 본 공화국의 인권' 중

[ 2016년 5월 7일 김정은이 발표한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 중앙위원회 사업총화보고 중 (열람하기 · 접기) ]
>오늘 우리 나라는 온 사회가 주체사상, 선군사상으로 일색화[147]되고 천만군민이 투철한 혁명보위정신과 견결한 사회주의수호정신을 지니고 김일성민족의 위대한 정신력으로 거창한 변혁의 력사를 창조해나가는 불패의 사상강국으로 위력떨치고있습니다. 전당과 전체 인민이 수령을 중심으로 사상의지적으로, 도덕의리적으로 굳게 뭉친 온 사회의 일심단결을 실현한것은 총결기간 우리 당이 이룩한 커다란 성과이며 업적입니다. 수령, 당, 대중의 일심단결은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혁명철학입니다.

장군님께서는 하나의 사상,하나의 중심에 기초한 일심단결의 사상을 내놓으시고 로숙한 령도예술로 전당과 온 사회의 일심단결을 실현하시였습니다. 우리 당은 '모든것을 인민을 위하여,모든것을 인민대중에게 의거하여!'라는 구호를 제시하고 전당이 인민을 사랑하고 인민을 위하여 멸사복무하며 인민에게 의거하여 투쟁해나가도록 하였습니다.(중략)

사회주의위업을 완성하고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하기 위하여서는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화하여야 합니다. 인민대중의 자주위업,사회주의위업은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지도적지침으로 하여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화함으로써만 빛나게 완성될수 있습니다.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는 우리 당의 최고강령입니다.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는 일찌기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 제시하시고 실현하여오신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의 혁명적계승이며 새로운 높은 단계에로의 심화발전입니다. 오늘 우리 혁명은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기치를 높이 들고 인민의 자주적리상과 념원을 전면적으로 실현해나가는 력사적단계에 들어섰습니다.

사회주의를 수호하고 승리적으로 전진시키기 위한 투쟁속에서 우리 혁명의 주체적력량은 억척으로 다져지고 우리 나라의 전략적지위와 영향력은 비상히 강화되였습니다. 우리가 제국주의련합세력과의 대결에서 최후의 승리를 이룩하고 이 땅우에 통일되고 번영하는 인민의 락원을 하루빨리 일떠세우며 세계자주화위업수행의 주인공이 되자면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를 힘있게 다그쳐 우리의 정치군사적,경제적위력을 백방으로 확대강화하여야 합니다.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화한다는 것은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유일한 지도적지침으로 하여 우리 혁명을 전진시키며 김일성-김정일주의에 기초하여 인민의 리상사회를 건설하고 완성해나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여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화한다는 것은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참다운 김일성-김정일주의자로 키우고 정치와 군사, 경제와 문화를 비롯한 모든 분야를 김일성-김정일주의의 요구대로 개조하여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완전히 실현해나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창시하시고 김일성동지와 김정일동지께서 심화발전시키신 주체사상과 그에 의하여 밝혀진 혁명과 건설에 관한 리론과 방법의 전일적인 체계입니다.(중략)

당과 인민대중의 혼연일체를 더욱 튼튼히 다져나가야 합니다. 당과 인민대중의 혼연일체는 우리 당의 생명력의 원천이고 사회주의의 불패성의 담보입니다.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김일성-김정일주의로 튼튼히 무장하고 당의 두리에 사상의지적으로,도덕의리적으로 굳게 단결하며 오직 우리 당밖에는 모른다는 투철한 신념을 지니고 당을 따라 영원히 한길을 가도록 하여야 합니다.

특히 청년들이 일심단결의 전통을 굳건히 이어 우리 당을 맨 앞장에서 결사옹위하며 당의 혁명위업수행에서 척후대의 영웅적기상을 떨치도록 하여야 합니다. 당,근로단체조직들과 정권기관들은 모든 사업을 일심단결을 강화하는데 지향시키고 복종시켜나가야 합니다.(중략)

우리 당은 당사상사업에서 유일관리제를 확립하고 주체를 철저히 세워 당안에 그 어떤 이색적인 사상도 침습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당원들과 근로자들에 대한 유일사상교양을 심화시켜 전당이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신념의 기둥으로 삼고 오직 수령의 사상과 의도대로만 숨쉬며 발걸음을 같이해나가도록 하였습니다. 전당을 위대한 수령님들의 혁명사상으로 일색화하기 위한 투쟁속에서 우리 당은 적들의 끊임없는 반혁명적사상공세를 짓부시고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위업을 힘있게 전진시켜왔습니다.

조선로동당은 당건설과 당활동에서 수령의 령도적권위를 절대화하고 결사옹위하는 것을 중심과업으로 틀어쥐고나갔으며 그에 배치되는 현상과 비타협적인 투쟁을 벌려 단결의 중심, 령도의 중심이 확고히 보장되도록 하였습니다. 당원들의 당생활을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신념화, 량심화, 도덕화,생활화하는데로 지향시켜 수령의 두리에 수백만 당원들이 조직사상적으로, 도덕의리적으로 굳게 뭉치도록 하였습니다.

우리 당은 당사업과 당활동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당중앙에 집중시키고 당중앙의 유일적결론에 따라 집행해나가는 엄격한 질서를 세웠으며 당원들의 높은 정치적자각과 민주주의중앙집권제에 기초한 당조직규률을 전당에 철저히 확립하였습니다. 우리 당은 당의 조직적단결을 파괴하고 당중앙의 유일적령도에 도전하는 행위와 요소들을 반대하여 비타협적인 투쟁을 벌렸습니다.(중략)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당의 유일적령도체계를 세우기 위한 사업을 더욱 심화시켜나가야 하겠습니다. 전당을 위대한 김일성-김정일주의로 일색화하여 사상과 신념의 결정체로 다지는 것은 당의 유일적령도체계를 확립하는데서 기본핵으로 됩니다. 우리는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유일한 지침으로 하여 혁명과 건설을 전진시키며 당건설과 당활동을 철두철미 김일성-김정일주의의 요구대로 하여야 합니다.

수령의 혁명사상과 당정책에 배치되는 온갖 이색적인 사상조류와 요소들을 반대하는 투쟁을 힘있게 벌려 당안에 김일성-김정일주의와 그 구현인 당정책밖에는 그 어떤 다른 사상도 절대로 끼여들지 못하게 하여야 합니다. 모든 당원들이 김일성-김정일주의와 당의 로선과 정책으로 튼튼히 무장하며 그것을 확고한 신념으로 삼고 실천에 구현해나가도록 하여야 합니다.

당의 유일적령도체계를 세우는 사업을 당중앙을 유일중심으로 하는 전당의 정치사상적통일과 단결을 반석같이 다지는데 중심을 두고 심화시켜나가야 합니다. 당의 통일단결을 다지는데서 중핵적인 문제는 단결의 중심, 령도의 중심인 당중앙의 권위를 절대화하고 견결히 옹호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권위, 당의 권위를 훼손시키거나 그에 도전하는 자그마한 요소도 절대로 융화묵과하지 말고 비타협적인 투쟁을 벌리며 당과 수령에 대한 온갖 계급적원쑤들의 공격과 비난을 철저히 짓부셔버려야 합니다.(중략)

당사상사업은 전당과 전체 인민을 수령의 사상으로 무장시켜 하나의 사상으로 숨쉬고 움직이게 하는 사업이며 여기에서는 당의 사상과 어긋나는 그 어떤 자그마한 요소도,그 어떤 '특수'도 허용되여서는 안됩니다.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참다운 김일성-김정일주의자로 키우기 위한 사상교양사업에 힘을 집중하여야 합니다.

당조직들에서는 위대성교양을 위주로 하면서 김정일애국주의교양,신념교양, 반제계급교양, 도덕교양을 실속있게 하며 온 나라에 혁명적인 학습열풍을 일으키도록 하여야 합니다. 모든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절대불변의 신념으로 간직하고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뼈속깊이 체득하며 그 어떤 광풍속에서도 오직 당을 따라 혁명의 한길을 곧바로 가는 참된 혁명가로 준비시켜야 합니다.

당원들과 근로자들모두가 당의 로선과 정책의 정당성을 깊이 인식하고 결사관철하는 당정책의 견결한 옹호자, 철저한 관철자가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사상교양사업을 혁명과업수행에 기본을 두고 대상의 특성과 준비정도에 맞게,현실성있게 진행하여 대중이 당의 사상과 의도에 스스로 공감하고 그것을 자신의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하여야 합니다.

첨입식사상사업방법의 요구대로 사상공세의 대상을 바로 정하고 집중포화, 련속포화, 명중포화를 들이대야 합니다.[148] 당에서 중시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교양, 선동, 강연, 출판보도를 비롯한 선전선동방법과 수단들을 총동원하여 사상사업을 힘있게 벌려 온 나라에 우리 당의 혁명정신이 차넘치고 새로운 비약과 혁신의 불길이 세차게 타오르게 하여야 합니다. #
장황하게 나와있지만 정리하자면 '온 사회를 김일성-김정일주의로 일색화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혁명의 명줄인 위대한 김정은 동지를 중심으로 한 당의 유일적영도체계, 유일적영군체계를 철통같이 다지자.
김정은 동지의 사상과 의도와 어긋나는 사소한 요소도, 우리의 일심단결에 금을 내고 당정책을 후론(뒷말)하는 손톱눈만한 짓거리도 추호도 허용하지 말고 무자비하게 짓뭉개버리자.
만리마속도창조운동의 불길로 우리 당역사에서 종파란 말 자체를 말끔히 청산해버리자.
2016년 5월 9일 7차 당대회 폐막 직후 조선로동당이 발표한 주민 대상 호소문 #

최악의 독재국가 아니랄까 당연히 양심, 사상, 표현의 자유는 전무하다. 북한에서 허용되는 사상은 주체사상 하나가 전부고, 당연히 북한에서는 주체사상 하나만 허용되는 것을 '사상적 일색화'라고 부르며 지도자와 인민의 '일심단결'이라고 포장하고 있다. 주체사상 외의 다른 사상들은 '이색적인 부르죠아사상'으로 간주되어 전부 금지된다. 체제와 북한의 현황에 대해 말을 잘못하면 '말 반동'으로 간주되어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는데, 정치범수용소 수감자의 80%가 '말 반동'이라는 주장도 있을 정도다. 당연히 술자리에서 말을 잘못 하면 보위부에 끌려간다. # 링크에 따르면 김정일 집권 직후 나온 선전 영화에서 김정일의 '광폭정치'(통 큰 정치)를 홍보한다며 <보증>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는데, 오히려 자폭 수준이 되었다.[149] 북한에서는 높은 물가에 불만을 품는 것도 '당과 조국에 대한 불만을 품은 반혁명 분자'로 간주된다고 하니 정치적 소신과 김씨 일가에 대한 불만을 공개적으로 밝힌 사람을 어떻게 대할지는 안 봐도 뻔하다. #

2023년 3월 22일 로동신문 기사 '자본주의제도에 대한 순종을 고취하는 반동사상적문화'에서는 '개성의 자유, 선택의 자유를 떠드는 인간추물들'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기도 한다.

편지, 유선 통화 내용, 이메일, 문자 메시지 등을 모니터링해온 북한은 중국 통신망 이용을 막기 위해 휴대폰 신호를 방해하거나 중국의 휴대전화 가입자 인증카드(SIM)가 장착된 휴대전화를 사용하다 적발된 사람들을 체포하고, 간첩 행위 혐의로 장기간 징역형을 내리고 있다고 한다. #

류현우 전 쿠웨이트 주재 북한 대사대리[150]는 북한 엘리트들이 24시간 도청을 당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언제든 정치범수용소에 가거나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며 북한 엘리트들의 삶을 '한 쪽 발은 지옥에 넘겨 놓고 살고 있다' '북한 고위 관리들이 김정은과 운명공동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며, 제일 먼저 처형당하고 조금만 잘못해도 목이 달아나는 것이 고위 관리들' '1, 2층에서 떨어지면 다리만 다칠 수 있는데, 10층에서 떨어지면 머리가 박살 나서 죽는다'이라고 표현했다. #

4.13. 언론의 자유

북한의 언론 자유 역시 에리트레아와 함께 세계 최악으로 악명이 높다. 자세한 사항은 언론통제 문서 참조.

5. 취약 계층에 대한 인권 침해

북한에서는 취약계층에 대한 배려는 커녕 더 가혹하고 잔인한 탄압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들은 북한에서 전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

또한 연좌제적인 북한식 탄압으로 인해 정치범수용소에 일가족이 수감되는데, 이 상황에서 취약 계층이 우선적으로 신체적인 피해를 입는다.

5.1. 장애인

알다시피 북한의 인권 실태는 전 세계에서 가장 열악하지만, 특히 장애인 인권은 북한의 인권 문제를 논할 때 항상 언급될 정도로 심각하다. 물론 21세기 이후로는 나아졌다지만, 북한 정부가 전 세계적으로도 인권 문제로 악명높은 정부이니만큼 아직 갈 길이 멀다. 그나마 김일성 시기와 비교하면 어느 정도 개선되고 있다는 것만큼은 사실이긴 하다.

애초에 국가적 차원에서 하는 선전조차 ‘병신’이라는 장애인 비하용어를 거침없이 사용하며, 다른 곳은 몰라도 평양에서 눈을 씻고 찾아봐도 장애인은 없는데 미소녀 가이드가 화사하게 웃으면서 "우리 위대한 김일성 민족은 다른 민족들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장애인 같은 건 없습니다!"하고 호언장담하더라는 얘기[151]도 있다.[152] 그래서 장애를 가진 아기가 태어나거나 불구자가 나오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는 의혹에 힘이 실린다. 비장애인들의 인권도 전혀 챙겨주지 않는 북한이 장애인 인권을 챙겨주는 지에 대해서는 아주 쉽게 판단할 수 있다.

1970년대에는 난쟁이들이 '국가 이미지를 흐리고 민족의 유전적 형질을 퇴화시킬 수 있다'는 말같지도 않은 이유로 난쟁이 수용소를 만들어서 왜소증[153] 환자들을 잡아넣고 씨를 말렸다는 증언이 나왔다. 함경남도 정평군, 양강도 후창군, 함경북도, 자강도 산골에 위치한 '난쟁이 수용소'에 잡아 넣고 씨를 말렸다고 한다. 더구나 북한은 이곳에 잡혀온 난쟁이들이 2세를 낳을 수 없도록 생육 기능을 마비시키는 주사를 놓는 것을 넘어 거세까지 하면서 강제로 불임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수용소에서 농사일 하던 난쟁이들이 후손도 낳지 못하고 모두 죽어버려 난쟁이 수용소도 사라졌다는 게 탈북자의 증언이다.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난쟁이들이 종자를 퍼뜨리면 안 되기 때문에 한 곳에 모아두라."라는 김일성의 지시에 따라 1960년대에 만들어졌다고 한다.[154]

북한이 장애인들을 거세시킨다는 의혹은 여러 번 보도되었다. 2000년 통일연구원이 발갈한 '북한인권백서 2000'에는 장애인들이 2세를 낳지 못하도록 '영구피임(거세)' 조치를 실시하고 있다는 주장이 실려 있으며, # 2015년 3월 15일 미국의 보수 성향 인터넷 매체 워싱턴프리비컨(Washington Free Beacon)이 한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키가 120㎝ 이하의 주민들을 사회적으로 격리시키기 위해 량강도 김형직군 연하리로 강제이주를 시킨 후 '열등한 유전자가 재생산돼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결혼을 하거나 자식을 낳는 것이 금지되며 심지어 아예 생식을 못하도록 거세까지 당하기도 한다고 한다. 게다가 난쟁이 마을에 격리된 주민들은 다른 지역의 일반 주민들보다 훨씬 적은 음식을 배급받아 굶주림으로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하며, 심지어 이조차 국제사회의 비난을 우려해 이들을 모두 말살하려 했던 것에서 어느 정도 후퇴한 것이라고 한다. 북한전문가 마이클 브린은 WFB와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조치가 '신체적 결함이 조상이나 개인의 죄에 의한 것이라는, 북한 내에 퍼져있는 미신의 영향일 것'이라며 '혁명국가를 만들어낸 민족의 우월성이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는 강박이 이런 미신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

2023년 8월 30일 통일부가 발간한 '2023 북한인권보고서'에 실린 바에 따르면 한 탈북민은 “2013년께 일반여성과 결혼한 난쟁이가 군 보안서의 임신 금지 경고를 무시하고 이듬해 딸 아이를 낳자, 군 보안서 안전원 3명이 출동해 그 난쟁이를 군 인민병원에 끌고가 강제로 불임수술을 시켰다”고 말했다. 또 다른 탈북민도 “군 병원 의사가 간호사들에게 난쟁이 명단을 작성하도록 하고, 난쟁이 여성 장애인의 임신과 출산을 막기 위해 강제로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까지 거침없이 이뤄졌다”며 “특히, 가족 동의만 얻으면 정신지체 장애인들을 생체 실험하는 곳으로 보낼 수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

1960~1970년대부터 평양을 국제 도시로 꾸민다는 이유로 평양에 거주하던 장애인들을 각 지방의 연고지에 따라 강제로 이주시켰다. 그 이유는 공화국의 수도를 찾는 외국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함이었다는 것으로, 선전 목적 만으로 강제 이주 당했다. 평양 뿐만 아니라 외국인들의 출입이 잦은 다른 대도시에서도 장애인들을 격리하여 다른 곳에 수용한다. 평양이 장애인 없는 도시로 완벽하게 탈바꿈한 것은 1980년대 후반. 1989년 제13차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을 맞아 1985~1986년 사이에 남아 있던 모든 장애인들을 강제 이주시켰다. 지방에 연고지가 있는 장애인은 그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부모 형제와 강제로 헤어져야만 했다. 지방에 친척이 없는 경우엔 부모도 함께 추방됐고, 간혹 평양에 남는 경우라도 평양의 외곽 지역에 거주하며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은둔 생활을 강요당했다.[155] 북한 난쟁이 수용소1 여기까지만 보면 군사정권 시절 잔재가 남은 반공 프로파간다이자 탈북자의 과장된 증언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이는 이웅평이 외국 방문객을 의식한 김정일의 지시로 평양에 있는 장애인, 난쟁이, 과부들을 모두 지방으로 쫓아냈다고 증언한 것과[156] 김일성의 수행원이던 김정률이 장애인들은 대부분 산악 지역이나 황해도의 섬 지역으로 추방하고 발육부진한 사람들은 수용소에 감금한 후 아기를 낳지 못하게 했다고 증언한 것, 한 귀순자가 북한이 전국의 난쟁이들을 자강도와 양강도 접경 고원지대에 집단 격리수용 시켰으며 맹인들도 도소재지 이상 대도시에는 거주하지 못하게 했다고 증언한 것 등 # 많은 사람들의 증언으로부터 교차검증이 가능한, 명백한 사실이다.

지난 2006년, UN에서도 북한이 장애인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한다는 보고가 나왔었다. 당시 UN 북한인권특별조사관인 비티 문타몬은 "평양 당국이 장애인들을 수용소에 가두고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하며 심신 장애 정도에 따라 분류하고 있다." 면서 "북한은 심신 장애인들을 ‘49병동’으로 불리는 수용소로 보내고 있으며 난쟁이들을 위한 다른 수용소들도 있다." 고 밝혔다. 이처럼 북한은 철저하게 우생학을 신봉한다. 북한 난쟁이 수용소2

심지어는 장애인을 생화학무기 실험으로 쓴다는 의혹도 있다.[157] 미국 국무부의 국가별 인권보고서

탈북자들이 하나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꺼리고 모욕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정신과 치료를 49호로 여기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정신지체 장애인들은 집안사정이 좋은 경우 집에서 감금되고 가족들의 보호를 받으나 대부분의 경우 보호자의 동의 없이 격리수용되어 의식주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는 말살수용소에 수용되는 형편이다.

그러다가 외부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90년대 후반부터 대접이 나아져서 1998년 조선장애자지원협회를 수립, 2003년 장애자보호법을 제정했으며 2005년 조선장애자지원협회를 조선장애자보호련맹으로 확대개편, 차차 장애인 보호에 관심을 가지는 모습을 보여주더니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2012년 패럴림픽 참가&장애자직업기술학교 개설, 2013년 장애자보호법 개정 & 유엔 장애인권리협약 가입, 2017년 유엔장애인권리특별보고관의 방북 허용, 2023년 장애자권리보장법 제정 등 유의미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2018년, 유엔에 제출한 장애인 인권 보고서에서 그간 정권의 노력이 부족하였다는 것도 이례적으로 인정하면서 더 많은 개선에 대해 약속하였다.

조선중앙텔레비죤에서 병신, 불구로 비하당하는 장애자들을 그래서 대우하면 안된다고 언어순화 운동도 하는 등 예전에 비해서는 확실히 나아지긴 했는데 문제는 돈이 없으니 보호, 재활에 들어갈 재원이 없어서 대접이 시궁창이다. 특히 영예군인의 경우 국가에 등록했더니 영예군인이라고 장마당에서 장사도 못하게 해서 영예군인 등록도 기피하는 상황. 어쨌거나 요즘은 장애인을 수용소에 처넣으라고 지시했던 김일성이 1940년대부터 장애인을 보호하고 있었다는 선전을 하면서 이미지 개선을 시도하는 등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158] 2020년대에는 학교에 못 가는 장애인들을 위해 방문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한다.#

또 2018년부터는 노동신문에 장애인 관련 기사를 실었으며 장애인들을 차별 없이 도와주는 미풍을 발휘하는 것이 장애자 보호 정책의 중요한 요구라고 강조하기도 했고, 아울러 장애 어린이들을 위한 조선장애어린이 회복원, 조선장애자보호연맹 기능공학교, 과학기술전당의 장애자열람실, 조선장애자체육협회와 조선장애자예술협회도 설립, 설치했다. 2024년 6월 1일에는 국제아동절을 맞아 장애 어린이들 기념행사를 소개하기도 했다. # 로동신문에서도 현 북한의 과거 대비 월등히 좋아진 장애인 대우를 '고마운 사회주의제도'의 징표이자 '당의 은덕'처럼 묘사하고 있다.

수천 명의 탈북민을 인터뷰 한 안경수 통일의료연구센터장의 말에 따르면 평양에서 장애인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이유는 북한 사회에서 장애인의 이동을 위한 차량 등 이동 수단이 많이 미흡하기 때문에 장애인들이 밖에 나가는 것을 꺼리는 데다가 임신 중 아이가 장애가 있을 것 같으면 낙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

이는 국제사회와의 교류가 활발해지고 고난의 행군으로 기형아들이 급증한데다가 서양에서 유학을 하다 돌아온 김정은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는 나름대로 노력하는 와중이라는데도 장애인 탄압이 현재진행형이라는 증언들도 있다. # 그나마 장애를 가진 군인만큼은 '영예군인'이라고 부르며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것만큼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정신질환자에 대한 시선은 이전보다 많이 나아진 것으로 보인다. 이전에는 로동교화소에 들어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정신병에 걸린 대상을 꾀병이나 사기라고 하면서 몰아대거나 방치했는데, 이제는 무조건 병리학적으로 판정해 병보석하거나 교화소에서 책임지고 치료한다는 원칙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159]

코로나 19가 유행했을 때 남포에서 발열 증상을 보이다 격리 과정에서 사망한 장애인들의 시신을 화장한 성원들이 "부모들이 겉으로는 울고 있어도 속으로는 (장애인인 자식이) 잘 죽었다면서 코로나를 고마워할 것"이라는 망언을 노골적으로 해 주민들로부터 크나큰 공분을 사기도 했다는데, 적어도 현 시점에서 대중들 사이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과거 대비 크게 나빠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

다만 2024년에도 장애인을 '불구' 등 비하적인 표현으로 부르고 있으며, 집안 식구들도 장애인들에게 집에 나가지 말고 집구석에 틀어박혀 있으라고 구박한다는 증언이 있다. 장애인들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이나 따가운 시선을 피해 숨어 살고 있다고 한다. #

허나 상부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나쁜 것으로 보인다. 2024년 5월 중순 북한 중앙당 조직지도부와 간부국은 전국의 당 및 정권기관 간부부, 간부과에 <간부부(과)들에서 간부사업의 부상 또는 장애 관련 규정을 강화할 데 대하여>라는 제목의 지시문을 내려보냈는데, "모든 단위, 초소, 기관의 일군들은 언제든 경애하는 원수님을 모실 수 있는 최상의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이유로 정권기관 간부들 가운데 복무 중 지병이 생겼거나, 부주의 혹은 사고로 다쳤거나,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장애가 생기면 더는 기관에서 일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

2024년 북한인권보고서에도 '난쟁이 마을'뿐만 아니라 '곱새(척추 장애인) 마을'이 있다고 나왔다. 2017년경 왜소증 장애인들이 거주할 주택을 건설하는 돌격대에 동원됐다고 밝힌 한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평안남도 평성시 화포리에도 또 다른 '난쟁이 마을'이 있다고 한다. 이와 함께 2020년쯤 장애인에 대한 평양 거주 제한이 없어졌고 거주지 자체도 더는 제한하지 않는다는 증언도 함께 수집됐다. #

5.2. 여성

제77조 녀자는 남자와 똑같은 사회적 지위와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산전산후휴가의 보장, 여러 어린이를 가진 어머니의 로동시간의 단축, 산원[160], 탁아소와 유치원망의 확장 그밖의 시책을 통하여 어머니와 어린이를 특별히 보호한다.
국가는 녀성들이 사회에 진출할 온갖 조건들을 지어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

북한 여성의 인권 실태를 다룬 기사(2015)
이유 없이 밤에 눈물이 나요(2018) - 휴먼라이트워치 보고서

가사노동과 자녀 양육의 사회화[161]를 통해 여성에게 평등한 사회 진출 여건을 보장해 왔다는 북한 당국의 주장과는 달리, 가정에서의 전근대적인 여성의 역할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정치 사회적으로 여전히 봉건적 가부장제가 만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평안도 같은 북한에 속하게 된 지역은 분단 이전에는 오히려 남존여비가 적었던 지역으로 꼽히기도 했고#, 황해도 지역이 배경인 봉산탈춤에서도 미얄이라는 할머니가 속을 썩이던 남편이 죽자 이젠 더 '키 크고 코 큰' 잘생긴 총각을 만나고 싶다고 하니까 분을 못 이긴 남편이 부활하는 대목이 묘사될 정도로 여성의 발언권이 낮지는 않았다. 여성이 북한이 들어선 후 권력만이 최우선시 되는 사회가 펼쳐지며 문제가 생긴 것이다. 권력층에 가까운 여성은 스스로 남자를 밀쳐낼 수 있는 등 보호를 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여성은 비참하게 살아야 하는 실태가 현재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엄밀히 말하면 거의 여성들이 맡는 인민반장이 남성을 신고하여 정치범수용소로도 보낼 수 있는 등, 권력이 없는 것이 인권 침해에 더 영향을 끼치나, 김일성이 말한 양성평등 같은 것이 거짓말이었다는 것과 사회주의를 참칭하는 주제에 한국보다 봉건적이라는 것이 문제다. 그나마 여권을 신장시키고 있는 것이 시장화, 한류처럼 북한 당국이 싫어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많다.

다만 북한 사회 모든 영역에서 여성이 남성에 비해 절대적으로 차별받거나 무시당한다고 볼 수도 없다. 일찍이 남녀평등과 관련한 여러 법을 제정한 사실뿐만 아니라, 과거부터 꾸준히 ‘여성은 혁명의 한 쪽 수레바퀴’로 지칭하는 등 여성의 역할을 추켜세우는 선전 활동을 이어 온 점만 봐도 북한 당국이 대놓고 여성을 하대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는 친북적 견해가 아니라 국제엠네스티 자료에서 언급된 것이다. 권력을 가지고 갑질을 당하는 사람이 많은 과정에서, 그 대상이 여성인 경우 문제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통일부 『북한 경제·사회 실태 인식보고서』 2024(p.220)에 따르면, 2016~2020년 기준 북한에서는 양성평등하다고 여기는 응답이 29.2%, 불평등하다고 여기는 응답이 66.8%였다. 여성이 탈북민은 전체에서 70~80% 가량임을 감안해도 양성간의 불평등 뿐만아니라 '정치적 하류층'이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여성이 차별을 받는 경우도 상당함을 알 수 있다. 한국의 2021년 양성평등 조사에 따르면 34.7%가 양성이 평등하다고 했고, 53.4%는 여성이 차별을 받고, 11.8%는 남성이 차별을 받는다고 여겼다고 한다. # 특히 한국 여성은 27.8%가 평등하다고 여기고 있었으니 의외로 양성간의 대우의 '격차'가 크지는 않은 것이다. 성별에 무관하게, '평등하게' 불이익을 받는 측면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판사나 변호사의 여성 비율을 기준으로 할 때, 2016년의 북한은 2005년경의 남한과 비슷하다. 제정된 법으로 볼 때 2010년부터는 가정폭력도 금지되고, 출산 휴가 등의 이유로 해고도 금지되고, 산전산후휴가기간은 세계에서 영국 다음으로 길다고 한다. # 그러나 북한의 문제는 뒷배경이 없는 여성들은 '노리개'라는 말이 돌 정도로 극심한 성폭력에 노출되기 쉬우며, 법보다 뒷배경이나 권력이 우선하며, 이에 대응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다. 게다가 북한의 언론은 말로만 여성에게 입바른 소리를 하지 구체적인 성폭력 인식에 대한 개선책을 내놓지 않고, 진정한 가해자를 비판하지 않고 이들의 존재가 없는 듯이 보도한다. 남한은 90년대 중반에도 시민운동이 활성화 될 수 있었기에 '여성들이 조심만 하면 성폭력을 막을 수 있다.'는 사람들이 문제가 되던 당시의 어두운 성관념을 언론을 통해 계도할 수 있었다.[162]

WHO에 따르면 북한은 여성 자살률 세계 1위라는 말이 있으나, # 같은 기관의 자료에서 남성의 자살률이 더 높다는 말도 있다. # 그래도 변함 없는 건 여성이든 남성이든 전세계 자살률 세계 2위이듯 심각한 인권 유린 상황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다만 다른 해석 중에는 북한은 자살할 자유도 없어, 죽는다 해도 이를 주민들이 숨기고자 하므로 자살률 통계가 낮다는 말도 있다. #

1950년대 중반부터 북한 당국은 가정을 사회의 기초 단위로 설정하고, 가정을 통한 사회주의 혁명을 성취하려는 정책을 전개해 나갔다. 초기에는 호주제 등 가부장적 법조항을 폐지하고 양성평등 교육을 강화하는 등 얼핏 보면 남녀평등을 이루려는 움직임이 강했다.[163] 그러다 1960년대 들어서는 가정의 혁명화 강조와 더불어 여성들의 가정 역할, 특히 어머니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김일성은 '자녀 교양에서 어머니들의 임무'에 대한 교시를 통해, 어머니의 일차적 영향력을 강조하면서 자녀를 올바른 공산주의자로 키워야 한다고 요구했다.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에서 여성은 전통적인 아동 양육 담당자로 다시 돌아가게 되었으며, 이는 여성의 이중 부담으로 직결되었다.

1970년대까지 북한은 여성의 노동계급화를 표방하면서 가사 및 가정의 사회주의적 개조를 강조하지만, 여성에 대한 이중정책은 지속되었다. 오히려 주체사상을 중심으로 김일성 유일 체제를 구축하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가부장제가 다시 환원되기 시작했다. 더욱이 1970년대 이후 공고화되기 시작한 김일성 유일 체제와 김정일 후계 체제의 공고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혁명적 수령관'과 '사회정치적 생명론' 및 '사회주의 대가정론' 개념은 오히려 가부장적 국가관을 강조했으며, 명목상의 여성 해방은 현실과 괴리를 보였다.

1990년대 이후 지속되고 있는 식량난과 경제난, 그리고 '고난의 행군'으로 이어지는 극심한 생활고는 소수의 특권층을 제외한 일반 북한 주민들의 인권 상황을 열악하게 만들었는데, 여성과 아동의 권리 실태는 더 열악해졌다. 특히 식량권, 건강권, 신체·번신적 보호권 등에서 여성과 아동의 침해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특히 여성들은 남존여비의 가부장제 하에서 가족 부양을 위한 과다한 노동, 이로 인한 건강 악화, 인신매매, 가정 폭력 등의 심각한 인권 침해를 당하고 있다. 특히 북한 여성들은 교육·문화·보건·노동 분야에서 실질적인 권리를 보장 받지 못하고 있다. 직장에서 여성은 남성보다 노동을 더 강요받고 있으며, 대학 입학에서도 여성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 여성들은 조국이 사회주의라 이 정도면 남녀평등인 것 아닌가 하다가, 남한 매체를 접하는 등 외부 세계를 접하거나 큰 피해를 입고나서 차별 받았음을 깨닫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한편 경제 분야에서 여성 참여는 사회주의 건설과 전후 복구 사업, 농업 집단화가 진척되면서 확대되었다. 이를 위한 행정적 조치들이 단계적으로 취해졌지만, 여성 차별은 오히려 직종 간 불평등과 임금 격차로 나타나고 있다. 남성들은 요직을 차지하고, 여성들은 한직(閑職)에 배치되고 있다. 직업 선택의 자유가 없고 국가 계획에 따라 노동력이 배치되는 북한에서 여성은 남성에 비해 비중과 임금이 낮은 직종에 배치되었다. 또한, 경제가 어려워지자 여성은 남성보다 먼저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164]

2014년 실태 조사에서 북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것으로, '북한 사회의 가부장적인 인식 변화가 여성의 가정과 사회 내 지위를 개선한다'고 응답자 103명 중 37명(35.9%)가 답변했다. 특히 국가와 사회가 남녀평등권을 보장해야 여성의 권리가 보장된다고 했다. 그러나 남녀평등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갖춰졌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가정 생활은 전통적인 가부장질서에 의해 유지되고 있다. 특히 1970년대 이후 김일성 유일 체계와 부자 세습 체제가 공고화되면서 가족 관계에서 전근대적인 전통이 다시 복귀하기 시작했다. 1990년 제정·공포된 '가족법'에 폭넓은 금혼의 범위, 부성추종(父性追從)의 원칙, 넓은 범위의 가족 부양 등 전근대적인 가부장적 요소들이 법조문에 들어있다.

북한에서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1990년대 식량난 이후 사회적 약자에 한하지만, 더욱 심각해졌다. 특히 인신매매와 강제 성매매가 현저하게 증가했다. 2001년 7월 북한이 제출한 자유권규약 2차 정기보고서에 대한 유엔 시민적·정치적 권리위원회(자유권위원회)의 심의에서, 북한 대표는 북한에서의 여성 인신매매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그러나 보고서에 의하면, 한편으로는 국경 지대에서의 인신매매 사실은 북한 당국도 인지하고 있었다고 하며, 공식적인 부인과 별도로 이들 지역의 국경수비대는 인신매매에 대한 단속도 겸한다고 한다. 북한 여성에 대한 인신매매는 폭력을 동원한 강제 납치, 소개인을 통한 유인, 가족 부양을 위한 자발적인 형태 등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북중 접경 지역을 중심으로 한 인신매매가 여성의 심각한 인권 침해 사례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에서 중국으로 인신매매되어 강제로 결혼하고 폭력을 당한 사례가 있으며, 중국으로 도강(渡江)하는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 사례도 있다. 중국에 가려는 여성들 가운데 도강 비용이 없고, 중국에 연고가 없는 여성들은 인신매매범들에게 속아 중국으로 팔려가 혼혈 사생아들을 양산했다.

북한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성폭행은 아동 성범죄처럼 진짜 악질이 아닌 이상 피해자와 그 부모를 제외하고는 거의 문제 삼지 않는 편이다.[165] 일반 주민 대부분이 딸이 이런 일을 남에게 당하는 것을 제외하고 성폭행에 대한 문제 의식이 적으며, 남존여비의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는 이를 크게 의식하지도 않는다. 남한에는 과거에 '성폭력이란 건 여자 책임이다.', '성폭력은 억제할 수 없는 남성의 충동 때문에 일어난다.'는 인식이 팽배하기도 하였고, 지금도 아예 없는 것이 아니지만, 북한에선 이에 대한 문제 의식이 미비하다.

직장 내에서 성폭행 사실이 알려질 경우 오히려 피해자인 여성이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아 피해자인 여성들이 이를 숨기고 원하지 않은 임신으로 사생아를 낳기도 한다. 북한 여성에 대한 성폭행은 식량난을 비롯한 경제난 악화로 여성들이 가족 부양을 떠맡게 되면서 더 심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나마 입당, 군대, 직장에서의 처우 개선을 미끼로 한 예전의 성폭행과는 달리, 장사 길에서 마주치게 된 장마당 보안원, 군인 등에게 대놓고 당하는 성폭행이 증가하고 있다. 지 아비를 모르는 아이들이 널리 생길 만큼 성폭행이 심한 판국이니 성희롱이랑 성추행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은 장사를 키우려는 욕심을 접고 근근이 먹고 살 정도로만 유지하거나, 돈과 연줄이 많은 힘 있는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거나, 권력이 있는 남자와 결혼하거나 그런 사람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라고 한다. 특히 북한군 여군은 그야말로 성노예로 전락해 버린 지 오래되었다. 게다가 김씨 왕조조차 자기네들의 욕정 풀이를 위해 양갓집 처자들로 기쁨조란 이름의 후궁 첩들을 조직하거나 마음에 드는 처자를 부인으로 맞이하는 판이니 개선의 여지조차 없다.

북한 여성에 대한 폭력과 관련해서는 남편의 구타와 폭언 등의 가정 폭력도 심각하며, '조선의 남자는 술마시면 아내를 때린다'는 여성의 불만도 있다고 한다. 탈북자에 의하면 북한에서 가정 폭력은 흔한 일이며, 특히 술을 마시거나 마약을 복용한 남편들이 아내를 때리는 일이 많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피해자 측을 제외하면 가정 폭력을 문제로 보지 않으며, 관제 여성 단체 녀맹도 개입하지 않는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남편의 '부화(浮華, 간통을 지칭하는 북한어)' 사건이나 가정 폭력은 가정 문제라고 하여 여맹에서 관여하지 않는다. 가정 폭력이 발생하면 보안서에 신고하는 경우도 있지만 처벌하지 않으며, 당 기관에서도 폭력을 행한 남편에게 정도가 심하지 않으면 충고 정도에 그친다고 한다."[166] 단 최근 드디어 가정폭력 남편에게 이례적으로 중형을 선고한 전례가 생기긴 했다.北재판부, 가정폭력 남편에 중형선고.

다만 이탈 주민들에 의하면 남편들도 밥을 짓거나 설거지 하는 경우가 늘었으며, 여성들의 인권도 이전보다는 조금 향상되는 추세라고. 아마도 결혼한 여성은 노동에서 면제될 수 있기 때문에 장마당에 나가 돈을 벌어 오기 때문이 클 것이다. 아무리 고위직이라도 공식 월급으로는 못 먹고살기 때문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는 남편이 아내에게 선물을 하는 문화도 생겨나고 있다고 하는데, 시장화로 남편들이 더 이상 거들먹거리는 것이 어렵게 되었고, 한국 매체의 영향도 받아 생긴 현상이라고 한다. # 2010년경부터 북한의 아내들은 못된 남편을 두고 낮에 켜는 전등, 백만불짜리 자물쇠, 집지키는 개라고 부르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비난한다고 한다. 2020년에는 한걸음 더 나아가 여자들은 남편에게 ‘너는 있어 봤자 밥만 축내고 없는 게 낫다’라고 하거나, '남조선 영화 속 남자들은 여성에게 잘 대해준다'는 소문이 돈다는 주장이 보도되기도 하였다. # 2024년 2월 6일 통일부가 발간한 <북한 경제·사회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남편을 하찮거나 쓸모없는 존재라는 의미로 부르는 ‘멍멍개’, ‘낮전등’이라는 단어가 생길 정도라고 한다. # 또 여성들이 돈을 못 벌며 가장 역할도 못 하는 남성을 한심하게 여기며 이혼[167]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

2020 북한인권백서에서도 과거에는 여자가 배워봐야 뭐하냐는 시각[168]까지 있었는데, 이제는 평양이나 도시 지역을 중심으로 남존여비 사상이 조금씩 완화되고 있다는 증언이 있으며, 젊은 세대 사이에서는 여자가 생계를 책임지기 때문에 남자가 여자를 무시 못 하는 사회로 바뀌었다는 증언, 남존여비에 대한 인식이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많이 바뀌고 있다는 증언' 등이 있다고 한다. 심지어 20대 탈북여성들은 '부모 세대의 성차별 인식과 고정관념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표출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169]

그러나 2019년 말에도 권력형 성범죄가 삼지연시 건설에 동원된 여성들에게 자행되었다는 보도가 있었고, 피해자와 그 주변 여성이나 이들의 부모들은 매우 비참하게 여기고 있지만 성폭력을 당한 여성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남아 있는 것이 문제라고 한다. 이렇게 딸을 건설 현장에 보내고 나서 정신이 이상해진 경우마저 있어 지켜보는 부모들의 마음이 말이 아니라고 한다. # 체제를 떠받드는 세력인 고위 당 간부, 구금 시설의 감시원과 심문관, 보안성(경찰)과 보위성(비밀경찰) 관리, 검사, 군인들은 '보상'을 받아야하기 때문에 이들에 의한 성폭력은 근절이 어려운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한국 매체의 영향과 여성의 경제권 획득으로 개선되고는 있으나 워낙 시궁창이라 아직까지는 북한의 여성 인권은 열악한 상황이다. 이것은 정부의 의지라기 보다는 정부가 금지하는 것, 그러나 외부 세계에서는 당연하고 합법인 사항을 통해 여권이 개선되는 것이다. 당장 저 위에 여성인권이 개선되었다는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성범죄의 처벌을 강화하는 등 제도적으로[170] 여성인권이 나아졌다거나 이에 관한 구체적인 통계 수치는 없다.

2024년에도 남녀 모두가 무단횡단을 하더라도 여자만 막대한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증언이 들려오고 있다. #

육아나 집안일도 다 여자가 맡아야 하는데 설상가상으로 농촌 현장에서 육체노동을 하는 이들 중 90%가 여성이라 여성들의 건강이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

장마당 통제 때문에 장마당을 통해 삶을 스스로 일궈가던 여성들이 단순 노동자로 전락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특히 여성들이 코로나를 기점으로 탄광, 농촌, 건설 돌격대 같은 험지에 몇 년 끌려가야 한다고 하나, 여성 간부 비율을 늘리라는 당의 지시에 따라 여성 간부 비율이 (하급 간부 위주로나마) 늘고 있다고 한다. #

5.3. 외국인

5.4. 아동

세상에 부럼없어라
북한의 선전 동요의 제목. 북한은 어린이들에게 북한이 '부러울 게 없는 나라'라고 선전하고 있지만, 실상은 북한 어린이들은 '부러울 게 많을' 수밖에 없는 삶을 살고 있다.

북한은 "세상에 부럼없어라" "어린이는 나라의 왕"[171]이라고 선전하면서 김일성 때부터 변함없이 어린이들에게 '북한의 어린이들은 수령님/장군님의 품에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고 세뇌하고 있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2023년 기준으로 네덜란드 아동 인권단체 키즈라이츠재단(KidsRight Foundation)이 5개 항목을 평가하여 선정한 바에 따르면 북한의 아동인권은 조사 대상 193개국 중 126위를 기록하여 아시아 47개국 중 37위를 기록했는데, 이는 같은 해 기준으로 남한의 아동인권이 태국(8위)에 이어 아시아 2위인 14위를 기록한 것과 대비된다. '보호'는 의외로 중상위권이고 '생활'은 중위권, '건강'은 중하위권, '교육'과 '환경'이 하위권으로 집계되었다.[172] #

함경북도 회령시에서는 유치원 교사가 운영비를 미지급[173]했다는 이유만으로 6세 남자아이를 얼굴과 머리 몸에 피멍이 들고 뼈가 부어오를 정도로 상습 폭행해서 아이의 부모가 안전부(경찰)에 신고했는데도 사건처리 담당 안전원이 선생에게 욕도 먹고 매도 맞으면서 자라는 게 정상이다고 말하면서 "법적 처벌은 어렵겠다"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174] '어린이는 나라의 왕'이라며? 참고로 이는 무려 2021년 일어난 사건이다. #

5.4.1. 강제 노동

제31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공민이 로동하는 나이는 16살부터이다.
국가가 로동하는 나이에 이르지 못한 소년들의 로동을 금지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헌법

북한은 국제노동기구(ILO)의 불법 아동노동 주요 감시대상국이다. 농촌 일손이나 도로 보수와 벽돌, 시멘트, 석탄 생산 등의 강제적인 동원이 혁명활동으로 미화되며, 폐철, 폐지, 토끼가죽 등을 ‘경제과제’로 제출할 것을 요구 받는다. 근거

북한의 아동들은 유치원을 졸업하고 인민학교에 들어가자마자 "꼬마과제"라고 부르는 공식적인 상납을 요구받는데 원래는 조선인민군 피복을 자발적으로 지원하는데서 유래되었다. 하지만 이는 공식적인 세외 부담으로 변질되어 1인당 토끼가죽 몇장을 매년상납해야 한다. 토끼를 키우기 어려우면 장마당에서 사다 바쳐야하고 미제출시에는 체벌과 소년단 가입시기로 차별을 받는다. 이런 공식과제 뿐만아니라 파철(고철), 파동(구리) 과제, 고사리 캐기나 석탄 줍기, 철마다 농촌 동원(모내기, 김매기, 인분 수집) 등에 동원되어 강제적인 노동에 동원된다. 근거

인분의 경우 어린이마다 500킬로를 요구하는데, 공식적으로 배급돼야 하는 쌀이 어린이 기준 하루에 400그램으로 연간 150킬로도 되지 않지만 배급도 주지 않으면서 먹는 쌀의 3배를 인분으로 바치라고 요구하는 형편이다. 그마저도 어른당 1~2톤씩 인민반에 바치는 선생들의 상납분도 학부모들이 인분을 모아서 주거나 돈으로 사서 해결해줘야 한다. 각종 동원과 과제로 시달리지 않으려면 학교에 충성자금을 바치거나 시멘트 철근 따위를 바쳐서 면제 받아야 한다. 북한에선 교원임금은 커녕 학교 운영비도 주지 않기 때문에 학부모들이 선생들을 먹여살려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특히 벽돌 생산업은 극한직업으로 분류되어 어른들도 하기가 꽤나 고역스러운 중노동인데 이걸 애들에게 시키는 나라가 북한이다. 게다가 벽돌을 내부에 사용한다는 것은 북한의 자재난과 건설업이 심하게 낙후되었음을 의미한다.[175] 어느정도 건축 자재와 개념이 갖춰진 나라들은 철근을 엮어 세운 뒤 외곽마다 유로폼(거푸집)들을 고정시키고 콘크리트를 부어 만드는데, 이렇게 하면 벽돌을 쌓고 마감하는 것보다 내구성에서 우수하다.[176]
2019년, 노동과제의 일환으로 철로 보수에 동원된 북한 아이들과 학생, 주민들 (갈렙선교회 영상)

5.4.2. 보육 시설의 미비

북한의 고아원에서 있다가 한국에 온 탈북자에 따르면,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한 곳에 모아서 관리한다. 고아들을 방치 하자니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그렇다고 고아들에게 많은 자원들을 투자할 수도 없고, 사실상 수용해 놓는 것과 다름없다. 식사가 제대로 보급이 되지 않아서 고아원 아이들은 굶어 죽거나 도망쳐서 고아원의 인원수 변동이 심하며 한국의 형제복지원 마냥 고아들이 무방비로 방치되어 죽어건다고 한다.(북한 고아원 북한 고아원 출신 탈북자)

김정은 집권 이후에는 2015년부터 평양시와 각 도 소재지, 특별시에 부모 없는 영유아들을 돌보기 위해 육아원[177]과 애육원[178]을 건설했지만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있다. 2024년 4월에는 혜산시 육아원 보육교사들이 당 간부와 결탁하여 어린이에게 줘야 할 음식들을 빼돌리고 젖먹이 아기들에게 강냉이죽[179][180], 생후 1년도 안 된 아기들에게 강냉이밥을 먹이는 만행을 저질렀으며, 이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코로나까지 돌아서 7명의 어린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

5.4.3. 정서적 학대

또한 정서적 학대 행위도 아예 국가적 차원에서 자행한다. 예로, 북한은 아동들에게 주체사상, 수령결사옹위와 같은 정치 사상 및 구호를 주입한다. 민주주의 국가이자 선진국임에도 교조적인 유교 문화와 군사 문화, 기독교 근본주의적인 문화 기반과 동아시아 문화권의 집단주의 및 국가주의, 민족주의, 엄숙주의 성향 및 전근대성이 남아 있는 대한민국에서 학대로 인정받는 경우는 적으나, 집단주의 성향이 약한 서방 선진국들은 제 2차 세계대전과 파시즘이라는 광풍으로 인해 아동에게 정치 신념을 주입하는 경우에 대하여 정서적 학대라고 본다. 아동들은 사리분별력이 약해서, 정치 신념을 교조적으로 신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 태어나는 모든 어린이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배우는 말이 '엄마', '아빠'가 아닌 '아버지 김일성 대원수님 고맙습니다', '김정일 장군님 고맙습니다'일 정도이며, 북한은 이 말을 탁아소에 다니는 아이들에게까지 배우게 하고는 이를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된 유치원 교사 출신의 북한이탈주민이 증언한 내용이 있다.#

5.4.4. 보건적 보호 미비

의료 체제 붕괴, 인분 비료 사용과 위생 시설의 미비 등의 원인으로 인해 5세 미만 아동의 사망 원인 중 설사가 18.9%를 차지하며, 5세 미만 아동의 1000명당 사망률도 한국에 비해 8배 이상 높으며 전체 북한 인구의 25%가 필수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한 상태이다. 근거

신생아기 이후 아동 사망의 주요 원인은 폐렴(43%), 설사(15%) 등 감염성 질환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였고, 이 원인은 1990년대 중반 북한의 경제난이 예방접종률 감소와 같은 보건 의료에 대한 투자 저하로 이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181]

북한 아동의 건강 문제는 청소년 및 성인기 이후에도 악영향을 미치며, 다음 세대까지의 신체적인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근거

5.5. 성 소수자


북한에는 성 소수자들이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한다. 즉, 자신이 성 소수자라 할지라도 그것을 자각할 가능성이 거의 없으며, 만약 외부 문화를 접하면서 자신의 성적 지향을 깨닫는다면 '자본주의의 퇴폐 문화에 물든 자'로 간주되어 탄압 받을 가능성이 있다. BBC 인터뷰에 따르자면 탈북민 장영진은 '북한에서는 동성애라는 개념이 없다'고 발언했다. # 북한 주민이 향유하는 외부 문화도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잘 다루지 않기 때문에[182] 자신의 성적 지향을 깨닫는 것이 매우 어렵다. '병적 증상'을 가졌다고 스스로 생각할 가능성이 높으며, 동성애의 경우에는 스스로 그게 동성애인 것을 모르고 탈북을 하고 외부 문화를 깊게 접하기 전까지 '우정'으로 여겼다는 증언이 있다.

외부 성소수자 문화를 향유했다면 자본주의에 퇴폐문화 날라리풍에 물들었다는 이유로 처형될 수는 있다. 다만 레즈비언을 교정 강간한다는 주장까지는 출처를 찾을 수 없다. 어차피 성 소수자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으니 일반 주민과 동떨어진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다. 지정 성별과 성 정체성이 다른 트랜스젠더들이 성 확정을 한다는 건 당연히 불가능. #
북한 레즈비언 커플 공개 처형 (서울신문 2011-09-29)
2012년 김정은 동성애 금지 명령, 적발 시 공개처형 당할 수 있어
한국어 위키백과 영어 위키백과

5.6. 세대 갈등

북한에서는 남한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흔히 일어나는 세대 갈등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 들어 장마당 세대가 대두하면서 김정은이 직접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청년을 탄압하고 있다. 2010년대 후반 기준 혜산시, 청진시 같이 북중국경에 비교적 가깝고 도시인 지역의 몇몇 젊은이는 들고 일어나는 것이나 당국에 대한 집단적인 반발까지 생각할 정도로 다소간의 반항심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 않아도 김일성이 어떤 대단한 사람이라는 주장이 와닿지 않고, 먹고 사는 문제만 생각하기에 정치적으로 젊은이들은 기성세대와 은근한 차이를 느낀다고 한다. 북한/문화 검열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 2021년 김정은은 직접 "그 어디를 둘러보아도 청춘기의 세대들이 영달과 향락만을 추구하고있는 이 세계"라는 발언에서 보듯 전세계의 청년들이 타락했다는 극단적인 언사를 내뱉은 것이 북한 언론에서 보도되었다. 청년교양보장법 같은 경우 부모가 충성에 대한 가정교육을 할 것을 명문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6. 경제, 사회, 문화적 권리

6.1. 경제적 착취

북한에서 당과 국가 관료들이 생산수단을 통제하고 자본 축적 과정을 지휘하고 노동자들을 ‘자주적’으로 착취했다.
《현대 조선의 탄생》: 북한 정권 탄생 신화 재탕하기, 마르크스21[183]
어디서든 내라는 게 산더미고 줄어들지 않기 때문에 희망이나 기대감은 없다.
2024년 1월, 북한 전문 매체 데일리NK과 평안남도의 농민과의 인터뷰에서 #

6.25전쟁 당시 삼성 창업주 이병철은 자신의 차와 회사 재산을 당 간부들에게 강탈 당했고, 김대중 전 대통령도 선박을 많이 보유했다고 처형당할 뻔한 적이 있었을 정도로 착취는 김정은의 가문과 더불어 나타난 것이다. 이념을 잘 알지도 못하는 당 간부들은 이념의 이름으로 약탈을 하며 권력을 휘두른다는 쾌락에 빠졌던 것이다. 농촌에 가서는 감 한 개까지 옥수수 한 개까지 세고 벼이삭까지 세서 세금받아 낼 준비를 하고 있고, 게다가 길거리 좌판에 담배 몇 갑 놓고 파는 사람들한테까지 매일 세금을 걷어가고는 하였으니 남한사람 모두가 진짜 '반공'으로 돌아섰다는 주장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회고에서 나올 지경이었다. 이런 행태가 한국 사회의 강경한 반공 의식에 영향을 미쳤던 것이나, 원래 북한과 대화를 하자는 주장도 이런 탐욕과 증오로 선동하는 일 자체를 막기 위한 취지였던 것이다.

예로부터 김일성은 "노동자들에게 생활에 빈 짬을 주지 말라"는 지시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1978년 '사회주의로동법'이라는 법이 채택되었는데, 인민이 짬을 가지면 딴 생각을 품게 되므로 인민에게 끊임없는 사상교육을 시키라는 의도였다고 한다. # 2015년에 이르기까지 개정된 이 법에서 제33조의 내용은 옛날부터 '국가는 근로자들의 로동생활조직에서 8시간 일하고 8시간 쉬고 8시간 학습하는 원칙을 철저히 관철한다.'라는 내용이다. 고시생도 따라하기 어려운, 자는 시간을 포함하여 8시간만 쉬라는 내용을 은퇴 직전까지 평생 하라는 것이 법제화 된 것이다. 통일법제데이터베이스에서 그 내용을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고난의 행군으로 머리는 몰라도 본능으로 나라가 자신들을 가난하게 만드는 것을 느끼게 된 북한 주민들은 자신들의 영리활동이 '비사회주의'로 낙인찍힐 때마다 체제에 대한 비판 의식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 분야에서는 반항하는 주민이 담긴 내부 영상이 찍히기도 하였다. # 현재보다 훨씬 세뇌가 심했던 1998년에도 송림시에서는 가동이 어려운 제철소에서 제철소 자재를 팔아넘기는 것을 보고 탱크가 동원되었을 정도다. 이런 영리활동이 법적으로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에 음지에서 행해지는 경우가 많으며, 이 과정에서 한국보다 높은 이자율을 부르는 고리대금업자가 생기거나 마약 유통이 벌어지기도 한다.

국가 소속의 협동농장에서 농장원(농장 근무자)에 대한 착취가 심하다. 황해도는 이것 때문에 2012년 고난의 행군보다 심한 아사 사태가 있었다는 취재가 경향신문에서 있었다. 이 보도는 진보도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함을 촉구하는 보도였다. # 한국 정부의 지원도 '체면'을 이유로 안 받았으며, 함경북도 같은 곳과 달리 탈북도 어려워 그냥 눈 뜨고 죽어야 했다. 황해도 농민은 이런 사정을 바로 위에 붙은 평양 사람도 모를 것이라고 하였다. 더 자세한 보도는 아시아프레스의 기사 참조.

주민을 통제하기 위해 직장에 사람을 강제로 밀어 넣는다. 그래서 한 탈북민은 "북한과 한국은 매우 다르다. 북한에는 월급이 없다. 직장 다니는 사람은 돈을 받는 게 아니라 오히려 자기 돈을 직장에 바쳐야 한다. 어느 직장이든 돈을 안 내라고 하는 곳이 없다. 북한에서는 직장에 명단이 올라가 있지 않거나 출근을 하지 않는 자는 벌을 준다."라고 증언한다. 국제앰네스티, 북한의 열악한 노동권 실태 – 국내편

북한은 동구권의 민주화, 대북제재로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90%를 넘는다. # 이는 중국 외의 국가와의 교역으로 돈을 벌 기회 자체가 북한에서는 박탈됨을 의미한다. 개성공단이 운영되었을 때도 기업의 성과급 개념으로 준 초코파이 지급을 방해하기도 했다. 2020년에도 김정은이 경제 실패를 자인했지만, 외부 지원을 받지 않겠다고 주장했다. #

배급제를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제대로 시행하지 않거나 폐지했는데도 북한은 생존에 필요한 분량을 소량 주어 권리 의식을 억제시켰다. 가관인 것은, 배급제가 시행되었을 때는 세뇌교육과 감시가 심한 직장과 학교를 통해서만 식량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며#, 말 잘듣는 사람을 중심으로 집과 옷가지가 배급이 되었다는 것이다. 정부가 주민들의 생계를 보장한다는 핑계로, 정부가 주민들의 생사를 결정하게 되었다.
MBC 통일전망대 2021년 4월 24일 방영분

'무리배치'라는 제대군인, 고등중학교 졸업자(한국의 고졸과 유사)을 탄광이나 농촌 등 험지로 강제로 끌고가는 관행도 유명하다. 이런 조치는 뒷배경이 없는 사회적 약자를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인간의 희망이 아니라 출신성분 대로 끌고가는 것이다. # 저 동영상처럼 1999년 북한 방송에서 제대한 군인을 개마고원대홍단 감자밭으로 끌고 가 결혼시키는 것을 자랑스럽게 보도하기도 하였다. 김정일 집권기니 10~12년 가량 복무했을 터이다. 이는 처벌의 의미가 아니라 노동력 보충이다.

2021년에도 코로나19로 위기가 조성되자 김정은의 주도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탄원"을 하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조선중앙텔레비죤, 로동신문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하여 MBC 통일전망대 같은 프로그램이나 각종 북한 관련 언론에 언급이 된다. "탄원"은 어렵고 힘든 곳으로 스스로 청원하는 행위를 뜻하지만 탄원 "당한" 것이라고 한다. #1#2 김정은은 그러고 나서 2021년 8월 29일 "축하문"을 통해 직접 “내가 무엇보다 기쁜 것은 뒤떨어졌던 청년들이 조국을 위해 자기를 바칠 훌륭한 결심을 하고 어렵고 힘든 부문에 진출하는 것으로 인생의 새 출발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코로나로 다른 의료 사정이 나쁜 국가나 중국과 무역이 활발한 나라와 달리 아예 무역을 거의 봉쇄하고 어업조차 금지한 것도 문제지만, 김정은이 직접 경제난 해결에 필요한 "몇십, 몇백만t의 강철과 비료가 쏟아져나오고 몇만대의 기계가 생산"되는 것보다 "탄원 진출"이 고무적이라고 주장하는 만행을 저지르는 것은 심각한 문제다.
2022년 7월 22일 SBS 나이트라인 보도.

이는 2021년 4월 청년동맹대회에서 김정은이 서한을 보내 "고난의 시기에 나서 자란 지금의 청년 세대가 우리식 사회주의의 참다운 우월성에 대한 실체험과 표상이 부족"하다고 한 것을 실현하려는 모양이다. # 8월의 축하문에서 김정은은 자기가 고생을 자초하고선 "앞으로 헤쳐가야 할 길에는 애로와 난관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다. # 험지 노동을 통해 북한 말대로라면 "나약한 청년"의 사상을 삼청교육대 마냥 개조시키려 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 일본 제국이 식민지 조선에서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부대'라는 정신대를 통해 군수 물자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소녀 등을 끌고 갔는데, 일제가 내세우는 주장과 매우 유사하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하기 시작하며 선포한 동원령에서도 러시아조차 이 사람들은 전부 자발적으로 들어간 것이라고는 우기지 않았다.[184]

심지어 북한에서도 어린 여성을 끌고가서는 이 여성은 '자발적으로' 탄광에 갔으며 솔직히 그녀의 어머니도 반대했지만 이를 수긍했다는 보도를 내보낼 지경이다. # 봉고차나 버스를 타고 이런 직장에 가는데, 주위에서는 '축하'를 하며 이를 독려하는 행사도 보도되고 있다. '날 생각해 아껴주는 그 마음은 고맙지만 수천길 막장이라 저라고 못갈까요. 같이 가자요 같이 가자요 우리 서로 진실한 벗되여 청춘을 부르는 새 탄전으로' 같은 가사의 <같이 가자요>란 선전가까지 배포하고 있다. 저렇게 한 명이 따라가면 탄원하는 사람의 가족까지 같이 따라가야 하고, 위장전입 등으로 탈출을 못하면 거기서 평생 머무르는 것이 원칙이다. 러시아와 달리 경제적으로 야채 한 봉지라도 보상해주는 것이 아니고 정치적으로나 무언가 보상은 있겠지만 시골 산다고 결혼도 어려워지는 뼈아픈 손실이다. 군복무 10년 하고 제대 후 1년이 된 사람도, 이렇게 청년들이 강제로 가입된 청년동맹의 간부가 자발적으로 대답이 나올 때까지 협박하고 난 후, 그 사람을 농촌으로 끌고 가서는 거기서 평생 살게 되는 것이다.

6.2. 빈곤 조장

“생활 수준이 높아질수록 인민들은 사상적으로 나태해지고 행동은 더 산만해진다”
김일성, 1977년 동독에리히 호네커 서기장과의 만남에서 출처: 통일부 공식 블로그, 2018년

주민들이 체감하는 가장 큰 인권침해라고 할 수 있다. 외부에서는 국부가 느는 것은 반길지언정 진지하게 북한 정권이 일부러 주민의 부의 축적을 방해한다고 여기는 경우도 많다. 북한 전문가들도 '정치적 부담' 등으로 에둘러 표현하지만, 까놓고 말하면 일부러 가난을 조장하는 것과 다름 없는 것이다. 특히 2000년대 이후처럼 중국과 베트남이 북한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성장한 것을 보고도 자기들은 개혁개방을 하지 않는다. 저렇게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들면, 가령 국가가 김일성 생일이나 김정일 생일 때 '선물'이라는 떡고물을 뿌려 너무나도 어마어마한 것을 나라가 해준다고 느끼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정부에 대항하여 일구어낸 자립 경제의 발달로 주민들이 '선물'을 시큰둥하게 여기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 이외에도 사람들이 너무 먹고 살기 바빠 거시적으로 이 나라의 정치적 문제에 신경 쓸 기회가 적다는 주장도 있다.

통일연구원의 《북한에서 국가-사회 관계 양상 연구》라는 보고서 160쪽에서는 노골적으로 주민들의 식량 증산을 방해했다는 북한에서의 풍문이 나온다. 1980년대 주체농법의 창시자들은 "가족단위 도급제"라는 농업경영 개혁 실험을 통하여 평균 3배 이상의 식량 증산이 확보되자 이 제도의 도입을 반대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배부르면 혁명성은 희박해진다’는 반비례 법칙이었고, 이는 김일성의 지지를 얻어 냈다는 것이다. 이것은 북한 안의 풍문이지만, 어쨌든 중국이나 베트남 같은 농민이 자신의 수확물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하는 개혁을 하지 않아 고난의 행군으로 최소 수십 만이 굶어 죽은 것은 맞다.

김정은 정권 들어서 아예 대북 지원도 거부하는 경향이 생기고 있다. 이는 남북관계를 개선할 운신의 폭이 축소될 뿐만 아니라 북한 주민들이 겪고 있는 인도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 역시 줄어드는 문제를 초래한다.

2021년에도 사정은 비슷하여 토마스 쉐퍼 전 주북 독일 대사는 북한을 이끄는 엘리트 그룹을 두고 "외부로부터의 지원을 두려워합니다. 왜냐면 그들은 모든 외부의 지원은 외부 사상과 연관돼 있다고 믿고 있거든요."라는 언급을 하였다. 심지어 햇볕정책도 그들에게는 매력적이지 않은데, 이것들이 주는 장점보다 정권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해로움[185]이 더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 김정은은 자신들의 통제 범위에 놓이기 쉬운 금강산 관광조차 한국의 시설이 '너절하다', 즉 볼품없고 지저분하다면서 아예 자기가 신년사 때 한 약속을 내팽겨치기도 하였다. 탈북자의 송금도 주민들이 부유해지고 한국이 잘 사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 싫은 모양인지 2021년 기준 '참빗 작전'이라는 대대적 단속으로 매우 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주장이 북한 관련 언론과 탈북자들의 유튜브 사이에서 나돌고 있다.
통일부는 지난 3일 “조건 없이 수해복구 지원을 하겠다”고 북에 제의했다.
그러나 불발이었다. 북한은 지난해부터 수해복구 지원물자로 쌀과 수해복구 명목의 시멘트, 자재 등을 요구했지만 통일부는 “밀가루 1만t, 라면 300만개”를 역제안했고 북은 ‘그런 거라면 받지 않겠다’고 답신했다. 체제의 권위와 체면이 우선이었다. 이들에게 죽어가는 이들의 생존권은 관심사항이 아니었다.
경향신문, ‘쌀 달라’ ‘밀가루 주겠다’ 남북 정권 다투는 동안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2012년 9월 19일

코로나19 상황이 악화되며, 북한에게 백신과 의료 방역 물품을 지원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그마저도 북한 정권은 거부하였다. #
특히 (노동)신문은 "백신이 만능이 아님이 증명되고 있는 오늘의 현실 속에서 조선의 방역사업은 자기 나라의 실정에 맞는
합리적인 방법"이라면서 "감염자 0이라는 숫자가 일련의 방역 조치가 실효성이 있음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문은 그러면서 "이러한 조선의 조치를 두고 '인권유린'으로 걸고 드는 자들이 있다"면서 "이자들의 더러운 머리를 소독액에
처박아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연합뉴스, 조선신보 "북한 코로나 '확진 제로' 비결은…입체적 예방" 2022년 1월 24일

통일부에 따르면, 주민 성분을 토대로 충성분자를 중심으로 많은 배급을 주었다고 한다. 주택, 의복 같은 것도 할당량이 정해져 있을 정도였다. 충성분자는 좋은 주택과 의복을 받을 수 있었지만, 반대파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농민시장'이라는 것이 있었지만 여기서도 받은 식량은 팔 수가 없었다. # 배급으로 주민의 이동을 통제하기도 하였다. 출장을 가서 식사를 할 때 '양표'라는 것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 식량의 유통을 통제하여 충성을 안하면 굶기고, 좋은 옷과 집은 충성을 통해 받게 되니 주민들은 90년대 들어 배급제가 붕괴되기까지 충성경쟁을 했어야 하던 것이다.

이런 관행 때문에 고난의 행군 때 많은 사람들이 배급을 기다리며[186] 굶어죽게 되었고, 당시에는 거의 불법이었던 장사를 하여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의 저항으로 인해 상설 시장이 허용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주민들이 '편법'으로 국가가 장악한 유통망을 서서히 되찾더니, 2020년에는 문을 닫은 배급소를 돈주가 사들여 가게를 차리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이 돈주가 배급소와 달리 자신의 몫을 가져갈 수 있어 돈을 많이 벌며, 30% 가량의 수익을 국가가 흡수하는 식으로 버티는 식으로 타협하여 주민들이 어느 정도 경제적 권력을 되찾는 일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 기타 의복 등 물품도 시장경제를 통해 거래되며, 특히 주택의 경우 완전한 합법은 아니지만 암암리에 사고 팔 수 있게 되어 2010년대 들어 부동산 투자라는 것이 생길 정도다. 그러나 배급제도 단번에 폐지되지 않고 평양에는 아직 있으며, 부활 시도도 몇 번 있었다.

어쨌든 북한 사람들은 고난의 행군을 거쳐 국가의 말을 곧이 곧대로 듣지 않고 장사 같은 것을 하여 외부에서 보는 것보다 돈을 많이 벌게 되었다. 유튜브에서 '혜산' 같은 것을 검색하면 중국에서 줌을 당겨 찍은 무수한 영상들이 나오는데, 간혹 사람들이 생각보다 때깔이 고와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2010년대 중반 이후의 증언에서 유엔 대표단에게 하는 ‘저는 오늘 아침 풀죽을 먹었습니다’, ‘저는 오늘 시래기죽을 먹었습니다’와 같은 말은 일부 농촌 지역에서나 해당되는, 외부 지원을 빼돌리기 위한 거짓말이라는 증언이 있으며, 코로나 시국에서 못먹어서 죽는다는 말은 뉴스가 될 정도다. 심지어 중국산 쌀이 품질이 떨어져서 회피한다는 증언마저 존재한다. 북한의 식량난, 그리고 식량권

저 링크에서는 유엔의 영양실조 통계가 북한에 의해 식량난이 심하게 보이도록 조작[187]되었다는 탈북민의 증언을 인용하고도 그 통계를 그대로 인용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 그래도 국가가 착취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서민들은 국가의 손이 닿을수록 굶주리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군대, 군수공장, 협동농장이 있다. 뇌물을 많이 받는 계층이 아닌 이상 끈질긴 저항을 통해 최대한 노동당의 마수에서 벗어나야 그나마 제대로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앞서 보았듯 김정은 시대에는 곡창지대인 황해도가 아니라 춥고 산이 많은 함경도 산간 지대 사람들이 장사를 하여 잘 먹는다는 주장도 있었다. 그런데 2010년대 중반 이후로 이런 소식은 줄었다. 농촌의 관리위원장이 돈을 받고 토지 사용권을 농민에게 판매하는 경우가 생기거나#, 농민이 이제 위장 전입을 해서라도 농촌을 탈출하여 장사를 한다든가, "농민 일공"이라는 돈주(사업가) 밑의 노동자가 되어 일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 하지만 농촌 탈출은 불법이라는 것이 문제다. 심지어 이런 탈출자들을 색출하여 농촌으로 재배치하거나 농민 출신을 고용한 개인 사업가인 고용주를 처벌 하기도 한다. #

개인이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해주는 등 금융 활동 자체도 행해지기는 하나 아예 불법이다. 양문수 교학부총장은 북한 당국이 소비재 시장과 일부 생산재 시장은 허용하고 있지만 자본금융시장과 노동시장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또 모든 자원을 장악하고 배분할 힘이 없어 시장을 활용하고는 있지만 소유의 측면에서는 완강한 거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이유를 정치적 부담으로 들었다. 북한 당국은 주민들이 부유해지면 권력을 얻을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

2021년 이후로 코로나를 빌미로 개인의 무역을 막고, 심지어 도간 경계를 넘나드는 화물차 물류도 거의 막아버렸다. 장사를 심히 규제하고 자원 독점을 위해 시장에서 옥수수나 쌀 같은 곡물을 팔지 못하게 하여 도시에서 굶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한국 탈북민 사회에서는 2023년부로 6개월~1년 전의 겨울에 땔감을 못 구하게 되는 등의 이유로 지인은 물론 심지어 가족의 부고 소식을 전해듣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탈북민 송금도 막으면서 이와 관련된 사기행각이 빈번한 상황이라 우울증에 걸린 탈북민들이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

2024년 1월에는 노동자 월급을 장마당 물가에 맞게 대폭 인상하고 양곡판매소 운영을 활성화해 또다시 장마당을 무력화할 것이라는 조짐이 나오고 있다. 자세한 것은 북한/경제/역사/2024년 문서 참조.

6.2.1. 해외에서의 노동 착취

북한의 주요 외화 벌이 수단 중 하나로 매년 5만 명 이상의 해외 근로자를 파견하고 있다. 중국, 러시아 등 40여 개 국가에 노동자들을 파견하고 있는데, 러시아에 약 4만 명, 중국에 약 10만 명이 넘는 노동자가 파견되었다고 한다. # 주요 파견지는 러시아, 중국, 몽골, 폴란드, 터키, 미얀마, 알제리, 쿠웨이트, 리비아, 카타르, 나이지리아 등이 있는데 현지 근로자들보다도 더 낮은 임금, 더 열악한 환경에서 12시간씩 근로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받은 월급마저도 북한 정부가 90% 이상을 떼간다. 이러한 환경에 방치된 북한 노동자들은 자연스럽게 자신들이 부당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지만 가족들이 북한에 있고 여권을 압수 당하는 데다가 외부로 나가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감시하고 합숙소에 가둬 두는 국가 주도의 착취가 자행 되고 있기 때문에 정당한 처우를 요구할 수 없다.

쿠웨이트에 건설 노동자로 파견되었다가 탈북한 림일은 3개월 넘게 일하면서 한번도 월급을 못 받았고, 툭하면 충성의 야간작업이라면서 밤늦게까지 연장근로를 시키고 쉬는 날은 거의 없었다고 증언했다.

2016년에는 본격적으로 국제사회에서 해외 북한 노동자들을 다루기 시작하면서 비자 발급 중단 등 대응하고 있으며, 쿠웨이트에서는 집단 파업하다가 강제 소환하는 일까지 있었다.# 북한이 탈북을 막기 위해 '해외 근무자 가족 동반 금지'가 되면서 해외 파견자를 대폭 줄였다.#

류현우 대사대리의 증언에 따르면 2017년 5~6월경 카타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월급을 착복한 직장장을 자루에 만 후 매달아 몽둥이로 구타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해당 직장장은 치료를 받은 후 귀국했다고 하며, 정황상 하술할 최모 보위원 못지않은 악질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의 경기장 건설에 북한 노동자들을 수천 명을 파견했는데 이들에 대한 인권 유린 역시 심각하다. 사망자가 속출하는데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한 조치는 미미한 상황이며, 다른 국적의 노동자들이 적정 시간만큼 근무함에도 불구하고 북한 노동자들만 5시간이 더 늦은 22시까지 노동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당은 북한 노동자쪽이 훨씬 저렴하다. 이 때문에 안 그래도 개최권과 관련한 뇌물수수로 진통을 겪고 있는 카타르 월드컵 개최가 인권 문제까지 지적당하고 있는 형국이다. 참고로 월드컵 경기장 노동자가 가장 열악한데 급여 100%를 전부 다 북한에 송금하고 있어서 사실상 공짜 노동이고 그 돈은 김정은에게 들어가는 형국이다. #

재중 북한 노동자들은 보통 새벽 4~6시에 출근해 밤 10~12시까지 하루 16시간 이상의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는데, 코로나 시기인 2021년에는 재중 북한 노동자의 월급 98%(!!!)를 '충성자금'으로 뜯어가는 경우도 있다는 보도가 나왔으며,[188] # 강동완 동아대학교 교수는 중국에서 일하던 북한인 노동자가 자신에게 "(직장장을 쏴죽이고 싶으니) 총 한 자루를 구해 달라"고 호소했다고 증언했다. #

러시아 건설회사 담당 보위원 중 한 명은 아예 본명까지 외부에 공개될 정도로 해당 건설회사의 북한인 노동자들에게 깊은 증오를 받고 있다. 읽어보면 외부인 입장에서도 분노를 참을 수 없을 수위의 악행들이 한가득이다. #1 #2[189] 노동자들의 체제 및 사상 이탈 방지를 명분으로 러시아 파견 노동자들은 외출은 물론이고 그동안 묵인해온 휴대전화 사용까지 폰이 몰수당하면서 금지당하는 상황이다. #

폰 압수를 넘어 아예 '혁명화 처분'[190]을 하기도 한다. # 물론 인터넷 사용에 대해서는 전 재산 몰수와 북한으로 추방이라는 엄포까지 놓으며 전면 금지하고 있다. #[191] 심지어 탈북자, 해외노동자 관련 영상물을 본 노동자는 아예 북한으로 송환해 정치범수용소에 가두는, 타 한류 매체 대비 보다 강경한 처벌이 원칙이다. #

그나마 마냥 채찍만 휘두르는 것은 아니고 점심 휴식 시간을 5~10분에서 30분으로 늘리고 일요일에 푹 쉬게 해주는 데다가 간부들의 성적 기강도 바로잡는 등 당근도 병행하고 있다. 아예 현지 관리 간부들에게 근로자 인권 침해를 개선하기 위한 교육도 하는 중이다. 보여주기식인지, 진짜 참회하는 것인지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을 것이다. # 해외 파견 노동자들의 탈선과 탈북을 막고 외화벌이 체계를 강화하기 위해 러시아 파견 노동자들을 감시, 통제하는 관리 일꾼에 대한 교체 작업에 나섰다. # 데일리NK에서 2024년 6월 러시아의 북한 건설 노동자들의 실태가 담긴 사진들을 공개했는데, 익히 알려진 것처럼 매우 열악한 상황이다. #

해외 노동자들의 탈북과 폭로를 막기 위해 이들에 대한 감시를 철저히 강화하고 노동자들이 가진 전자 기기를 검열해 '위험한 행위'가 발각되며 적발 시 즉시 감금 조치 후 조국에 보고하라는 지시가 있었는데, 해외에도 국가비밀보호법을 적용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192] # 그런데도 북한은 평양 주민들에게 자신들이 건설한 주택들을 나눠줄 때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백만장자나 살 수 있는 수준의 집에 평범한 근로자들이 입주했다'고 자랑하는 등 자신들의 '우월성'을 이야기할 때 '평범한 근로자' 드립을 주구장창 해대며 자신들이 세계에서 가장 노동자들을 챙겨주는 나라처럼 주장해대니 가관이 따로 없다.

2024년 3월 28일에는 중국에서 철수한 노동자들의 임금을 현금이 아닌 (종이에 인쇄한) 돈표로 지급했다고 한다. 하루 14시간 동안 6년을 일한 대가가 고작 이것이니 노동자들이 분개하는 것은 당연한 상황. 이는 해외에 파견된 수많은 노동자들이 벌어들인 외화 임금에 해당하는 화폐를 인쇄하는 데 드는 비용을 들이지 않기 위한 목적으로 풀이된다. 덤으로 받아온 임금들을 국가대상건설, 지방대상건설, 김일성·김정일 애도 기부금, 국방력 강화 지원비 등 각종 기부금과 지원금을 전부 국가에 바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

몸이 아파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노동자들에게까지 매달 650달러씩 걷어가는 경우도 있는데, 심지어 이는 북한 당국이 요구한 상납금(200달러)보다 3배를 넘는 수준이다. 사장이나 당비서 등 간부들은 이렇게 거주비나 회사 경영비라는 명목으로 거액을 착취해 가면서 그 돈으로 좋은 차를 타고 다니거나 주택을 구입하는 등 자신들의 호화로운 생활을 유지하는 데 쓰고 있으며, 현지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간부들은 강도나 다름없다", "전쟁 나면 (그들부터) 총으로 쏘겠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설상 부패한 간부들에 대한 신소가 들어가서 검열이 내려온다 해도 간부들이 돈을 찔러주면 무마되니 죽는 것은 신소를 제기한 사람뿐인 실정이다. 덤으로 이 사실을 전한 러시아 내 한 북한 노동자는 "조국에서 떠날 때는 (사상적으로) 철저히 준비된 사람이었는데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순간에 변하게 된다. 처음부터 (탈북하려고) 마음먹은 것이 아니라 사장과 당비서들의 행태 때문에 그 길(탈북)로 가는 것"이라고 말하며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가 노동자들의 탈북을 조장한다고 설명했다. #

중국 연변지방의 복장회사에서 근무하는 북한 근로자들은 한달에 중국 회사로부터 통상 1인당 2,500~2,800위안(약 475,000~532,000원) 가량 받지만, 그 가운데 '충성자금'과 회사 운영비로 약 1,000위안(약 190,000원)을 바치고, 먹고 자는 비용으로 800위안(약 152,000원)을 바치면 노동자들이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700~1,000위안(약 133,000~190,000원) 수준이라고 한다. #

러시아 주재 북한 영사관 직원들은 러시아 파견 북한 노동자들의 현금과 편지를 고향의 가족들에게 전달해주고 그 대가로 25~30%의 수수료를 챙기며 외화를 꽤나 벌어들여 고급 전자제품을 사들일 정도다. #1 #2

김성일은 해외파견 보위부 강습에서 받았던 내용을 공개하며 북한 내 해외 노동자들이 전하는 참혹한 실상을 전하기도 했다. 본인이 해외에 파견된 보위부 직원으로써 직접 목격한 것을 전한 것이기에 신빙성은 매우 높다. # 데일리NK도 보위성 요원들이 교육받는 노동자 감시 교육을 다루기도 했는데, 대놓고 (제보하면) 3대 멸족 운운하고 있는 등 내용의 잔인성은 김성일의 폭로 못지않다. # 이런 만큼 해외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3명 중 1명이 보위부의 스파이라는 소문이 돌 정도이며, 노동자들의 분열과 다툼을 유발하는 등 북한 입장에서는 큰 효과를 거두고 있다. #

이런 식으로 해외에 나와서 자신이 얼마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사는지 알게 된 일부 노동자들은 한국 대사관 등에 몰래 들어가 귀순 의사를 밝히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시가 1994년 벌어진 러시아 벌목공[193]들의 귀순이다. ###

2020년 12월 유럽의 국제인권단체 '라 스트라다'(La Strada International)는 해외 파견 북한 노동자들 80명을 하루 10~13시간이나 노동하면서도 월 100달러만 주며 착취한 폴란드 조선소와 거래했다는 이유로 네덜란드의 조선 회사 두 곳을 네덜란드 검찰에 고발했지만, 2021년 12월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불기소 처분되었으며, 심지어 2024년 5월 1일 나온 라 스트라다의 항소의 결과도 불기소 처분이었다. #

한편 중국 수산물 공장에서의 북한인 노동자 강제노동이 알려지자 한국과 미국 정부는 북한 노동자 강제노동 동원 의혹을 받는 중국 수산물 가공공장과의 거래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는데, 이에 대해 북한 당국은 노동자 인권 문제 제기를 '주권 침해' '우리가 잘 사는 것을 바라지 않는 제국주의자들의 계략'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자국 노동자들의 귀국을 전면 거부하면서 수산물 품질 향상, 외국과의 협상[194] 등을 해결책으로 내놓았다. # 2024년 2월에도 북한의 속눈썹 공장 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 처우에 시달리는 것이 알려져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자세한 사항은 북한/산업 문서 참조.

그나마 착취만 하는 것은 아니고, 러시아에서 사망했으나 코로나 때문에 북한으로 송환하지 못한 노동자의 시체를 2023년 초부터 국가의 지시에 따라 조용히 진행하여 2024년 4월 말까지 모두 완료하기도 했다. # 또 북한의 수산물 공장에서의 강제노동이 알려지자 북한 측에서 국제제재의 원인이 열악한 노동 환경이란 것을 알아채고는 "노동자들의 권리 보호와 안전한 작업 환경 제공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라"며 해외 파견 노동자들에게 신소(伸訴)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간부들에게 가르치도록 했다. 다만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성폭력 문제는 북한 내에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는 데다가 새어나가면 '국가 영상(이미지)이 훼손될 수 있다'며 함구하도록 했지만, 이와 동시에 성폭력을 저지른 간부들은 국제사회로부터 지적받을 만한 빌미를 제공해 국가의 위상을 깎아내렸다거나 처신을 똑바로 못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춰 교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 2024년 5월 18일에는 데일리NK 측에서 찍은 사진에서 단둥시의 의류공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산책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195] #

웃기게도 북한은 과거 파독 광부에 대해 '해외인력수출'이라고 비난한 적이 있다.(...)

보너스로 통일연구원 정은이 연구위원에 따르면 "(2024년) 현재 중국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들이 1인당 한 달에 벌어들이는 소득이 300달러 정도로 알려져 있는데, 중국에 체류하는 노동자가 최소 10만 명이라고 가정한다면, 1년에 벌어들이는 총소득이 3억 6000만 달러로 추산해볼 수 있다"면서 "만일 해외 근로자의 수를 15만 명으로 추산하면 연간 5억 4000만 달러가 넘는다"고 하고, 이는 북한이 2023년 중국에 수출한 전체 수출 규모의 두 배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라고 한다. #

그리고 북한 노동자 고용 조치에 대한 정보가 언론에 개제된 국가는 다음과 같다.
  • 몰타에서는 북한 노동자에 대한 신규 비자 발급 조치가 2016년 중단되었다. #
  • 불가리아, 체코, 루마니아도 북한 노동자 고용을 중단했다.#
  • 카타르 역시 2017년부터 고용 승인을 중단하였다. #
  • 대만에서는 대북제재의 여파로 어선에 북한 노동자를 고용하는 행위를 멈추었으며,# 중국에서도 독자적인 제재를 하였다. # 2019년 이후 북한 식당 종업원 등에 대한 송환 조치도 시작되었으나, 코로나19 상황 악화로 중단되었다. #
  • 폴란드에서도 2019년까지 북한 노동자를 전원 송환시키기로 하였다. #
6.2.1.1. 참고자료
불법 해양 기획: 중 수산물 공장의 북 노동자

해외서 5년 일한 대가가 고작… '현대판 노예' 北 노동자들

6.3. 정보 통제

동독도 검문이 엄격했다고 하지만, 체코나 헝가리 등 주변 국가들로의 여행 및 서독에서 오는 방문자에 대해서는 강한 통제를 가하지 않았고, 국공내전 이후에도 양안 간의 실향민들의 고향 방문이나 서신 교류는 허락되었다. 또한 이란 역시 국민의 외국 여행은 어느 정도 허가하고 있다.

6.25 전쟁은 커녕 남북 양국의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이었던 1947년 8월부터 김일성은 탈북을 막았다. 그 이전에도 38선 북쪽 해주의 바닷가에는 이미 감시원이 100m 간격으로 감시를 하고 있고 친척집 방문만 허용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자신이 먼저 북한 주민이 가족도 못 만나게 막은 것이다. # 이후 김일성은 국민들의 해외 탈출을 엄격히 막아 1953년부터 1994년까지 40여년간 탈북에 성공한 북한 주민이 단 1천 명밖에 없게 했다.[196][197] #

김일성은 독재 정권 유지를 위해 남한은 물론이고, 외국과의 자유로운 왕래와 교류를 금지했고, 김정일은 이산가족 방문을 정치, 경제적으로 이용하여 막대한 이득을 취했다. 이산가족 방문의 명목은 인도주의인데, 이것을 할 때마다 남한 정부는 북한이 요구하는 식량과 컴퓨터, 크레인 등의 제공이 필요하다. 이러한 요구는 인질 잡고 돈 내놓으라고 하는 것과 다름이 없지만 이게 성사되는 이유는 간단히 말해 남한 정권은 민심 얻어 지지율 챙기고, 북한 정권은 원하는 것을 얻으니 양측 정권 입장에서는 상부상조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권 교체 후 남한에서 대가 없는 교류를 요구하자 바로 단절해 버렸다. 독재자들은 이제 폐쇄된 자기 나라를 탈출하는 국민들을 사살하기까지 하며, 덕분에 탈북 시도가 3분의 1이나 줄어들었다고 한다.

어떤 한 탈북자의 말로는 사실 군인들이 탈북을 도와주기도 한다고 한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탈북을 눈 감아주는 경우가 많은데 왜냐하면 그나마 사정이 좋아 뇌물 정도는 마련 가능한 탈북자들에게 뇌물을 받아먹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들에게 일정 액수의 뇌물을 받는 대신에 탈북을 못 본 체 하는 경우가 많다.

북한에서 힘깨나 쓰는 사람들의 자제들이 북중 국경지대에서 군복무하기를 선호하는 이유 중의 하나인데, 모 탈북자의 증언에 의하면 오히려 탈북하는 사람은 적당히 뇌물받아가며 넘어가고, 중국에서 되돌아오는 사람들을 철저히 잡는다고 한다. 가족에게 무엇을 전달하든, 혹은 가족도 함께 탈북을 하려든 간에 중국에서 빈 손으로 넘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탈북 브로커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중국에서 북한으로 다시 넘어가려는 사람들에게는 뇌물을 두둑히 준비시키는 듯.

특히 이제는 주민들이 당국의 단속을 피해가며 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을 하는 경향이 늘어, 돈을 많이 번 사람들이 생겨 뇌물 받기는 더 쉽다. 무엇보다 정규 월급보다 이런 뇌물로 단속원들이 살아가기 때문에 김씨 일가가 아무리 거리가 먼 평양에서 단속 강화를 실시해도 결국엔 근절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 뿐만 아니라 아예 탈북을 돕는 조직들이 생겨 이들과 연계하여 탈북한 사람들이 계속 생겨나 증언하는 판이다. 2020년 들어 코로나 차단을 핑계로 아예 외부 지원 물자도 받지 않을 정도로 국경을 틀어막고, '폭풍군단' 같이 국경경비대를 견제하는 조직까지 투입하니 다시 굶는 사람들이 증가하여 죽기살기로 탈북하는 경우도 있다는 보도도 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중국 내에서 공공장소에 설치된 안면인식 장치 등을 통해 이동 통제를 강화됨에 따라, 중국 정부의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지 않은 탈북자들이 이동하기 어렵게 되었고, 1000명이 넘게 탈북했던 2019년과 달리 이와 더불어 복합적인 이유로 비관적으로는 2021년에 탈북하는 사람이 100명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 보위성도 국경에 연고가 없는 사람을 투입하여, 승진 특혜를 빌미로 간부들을 경쟁시킨다. 이들은 국경에서 주는 뇌물이 아니어도 추후 내륙에서 뜯어먹어도 잘 살 수 있는 자들이다.

6.3.1. 국민의 알 권리 박탈

김씨 정권의 최우선 과제는 북한 주민들이 외부 정보를 접하는 것을 막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김정은은 남쪽의 군사적 위협보다 정보로 무장한 북한 주민들을 더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데이비드 맥스웰 아태전략센터(CAPS) 부대표의 평 #[198]

북한의 정보적/절차적 불투명성은 거의 '알 권리 박탈'의 영역으로 봐야 할 정도로 심각하다. 21세기 세상에서 정보의 중요성이 헤아릴 수 없이 크다는 것을 감안하면 북한의 알 권리 박탈은 거의 인간의 기본권 박탈의 영역이라고 봐도 무방할 지경.[199]

일단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일반인의 인터넷 사용이 금지되는 나라인 만큼[200][201] 북한 수뇌부는 북한 주민들이 자신들(북한 수뇌부)이 만든 거짓 정보들만이 북한 주민들이 알 수 있는 정보라고 강요하며 해외, 남한 관련 정보와 북한 체제, 김씨 일가의 진실을 아는 것을 철저히 틀어막고 있다. 인터넷 금지를 풀었다간 그동안 자신들이 선전해온 내용들이 죄다 순도 100%의 거짓말임이 단번에 드러나기에 자신들에게 평생을 속아오다가 진실을 깨달은 북한 주민들에게 당할 후환을 전혀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

국가/1인당 GDP와 경제성장률, 국가 예산[202]구체적인 경제 통계 공포가 일절 금지된 것은 유명한데, 김정은 시기에도 북한은 자신들의 경제 '성과'를 보여줄 때 '무슨무슨 건물을 빨리, 많이 지었다' '올해 세운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정도만 언급하지 실질적인 지표는 전혀 발표하지 않고 있다. 사실 북한도 1960년대 초까지는 경제 관련 수치를 발표를 발표했으나 1963년 7개년 계획이 차질을 빚으면서 전년 대비 성장률만 발표하게 되었고,[203] 경제가 하락하기 시작한 1970년대 중반부터는 성장률 발표도 사실상 금지되었다.[204] 그나마 수치를 발표한다고 해도 235개, 6724개 같은 구체적인 수치가 아닌 몇백 개, 몇천 개 이런 식으로 어림수로 넘어가는 경우가 다르며, 심지어 매체에 따라 같은 계획의 결과가 완전히 다르게 나오는 경우도 있다.[205] 심지어 북한이 대외적으로 공표하는 인구, 출산율 통계조차 조작되었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다.

북한은 국가의 '우월성'을 선전하는데 도움이 되는 사실만 과장해서 보여줄 뿐 조금이라고 체제유지에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사실에 대해서는 일체 보도하지 않는다. 주민들이 알고 있는 사실을 전달하는 것조차 범죄로 취급하고 있으며, 심지어 시장물가를 외부에 전달하는 것조차 간첩으로 몰리고 있다고 한다.[206]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오늘날에도 국가 통계의 발표여부는 지도부가 정하는 것이고 따라서 국가가 통계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길 정도라고 한다. 참고자료

절차적 불투명성에 대해 따지면 북한 내 각 부서는 서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북한 내 각 부서의 업무의 전체적인 진행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은 김정은 1명밖에 없다고 한다. #

법적 불투명성에 대해 따지면 김일성 시기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형법기밀문서로 간주되는 등 모든 법령이 비공개로 처리되었고 60년대 후반~80년대 후반 당시 법률 공포는 거의 중단되었으며[207] 지금도 반동사상문화배격법, 평양문화어보호법 같은 주민 탄압용 법들은 제정 후 법률의 내용을 북한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고 주민들에게 위협이 될 형벌 위주로만 알리고 있다.[208] 국가비밀보호법은 더 심하여 황해북도 보위부에서 "국가비밀보호법에 명시된 구체적 조항과 처벌 수위도 비밀이 엄수되어야 한다" "처벌 대상과 내용, 구체적 위반 내용을 비공개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대놓고 언급했다는 말이 전해지며,(#) 적지물처리법[209]은 아에 북한 언론에서 존재조차 보도가 되지 않다가 주민들의 학습제강[210]에 언급되면서 존재가 알려졌다.

심지어 김일성 시기에는 1977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목록과 같은 '무해한' 것들조차 공개되지 않았으며, 문학도서를 출판했을 때 저자 이름은 표기하지 않는 게 원칙이었던 데다가 심지어 "외부인들이 이 건물에 어떤 기관이 있는지 알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국가기관에 명판도 달지 않았다. 당연히 김씨 일가의 사생활과 정치범수용소의 실상은 고위 간부들[211]조차 몰랐을 정도이다.[212] #

물론 북한 주민들은 북한 당국의 알 권리 박탈에도 불구하고 암암리에 들어오는 해외 정보를 통해 '쪽잠에 줴기밥'[213], 김일성의 해방전 주도[214], 6.25 전쟁 북침설[215] 등 북한이 그동안 해오던 주장이 모두 거짓말이라는 것을 다 알고 있으며, 심지어 당 간부들도 북한의 선전이 모두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거짓으로 체제 선전&우상화 강연을 해야 하는 당 간부들은 자괴감까지 느낄 정도라고 한다. 2013년 기사 2013년에도 이 모양이었으니 2024년 현 시점에서 간부들이 느낄 자괴감은 일반인들이 느낄 자괴감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2024년 들어서는 로동신문, 강연, 김여정의 담화 등지에서 윤석열 정부 퇴진 운동, 윤석열 탄핵 청원 등을 언급하는 경우도 있다. 목적은 윤석열 정부 비방이지만 이 소식을 접한 북한 주민들은 "우리는 말 한마디 잘못하면 끌려가는 처지인데 (한국에서는) 시위를 벌여도 반국가적 행위로 되지 않는다"며 동경심을 품게 되어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216] 비슷한 사례가 2016년 박근혜 탄핵 집회에서도 있었다.

6.3.2. 문화 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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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정부가 수립될 때부터 말이 아니었지만 김정은이 집권한 이후로 최악을 향해 악화되는 분야다. 특히 일반 주민이 애인을 '오빠'라고 부르는 등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말투, 평범한 사람을 당국의 명령에 복종하면서 '동지' 등으로 부르지 않고 직책에 '님'자를 붙여 높여 부르는 것을 중점적으로 규제하여 최소 6년 징역에 사형 선고도 가능하게 한 평양문화어보호법 같은 법은 인류 역사상 그 사례가 존재하지 않는다. 아예 인류가 어떤 말투와 서체를 쓰는 불특정 집단은 크메르 루주 같은 아주 극단적인 경우가 아니고서야 적국의 말투와 서체를 쓰더라도 죽이기까지는 않았다. 일반인도 이제 북한에서는 한류를 접한 것이 발각된 사람은 끔찍한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217]

7. 체제 유지의 비밀

이런 정보를 많이 접해도 일반 주민과 북한 정권을 구분하지 못하고 주민들이 노예근성이 있기 때문에 저런 것을 순순이 받아들인다는 생각이 많다. 그러나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비롯한 수많은 독재 정권들이 보여주는 역사적인 사례와 2021년 이후 미얀마의 민주화 실패 같은 사례를 보아도 다수의 주민이 무력을 갖춘 소수 때문에 밀리는 사례는 흔하다. 이미 북한에서는 꽤 심한 저항이 있었고, 현재도 생존 본능 때문이라도 저항이 이루어지고 있다. 당장 북한 정권이 가장 억압적으로 탄압하는 문화인 한류를 접한다는 것은 처벌을 감수한다는 굉장한 용기를 갖춘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북한 지배층이 굉장히 탐욕스럽기 때문에 그것에 의해 체제가 유지된다. 아주 단순하게 비유하자면 자신에게 저항하는 사람들을 공개적으로 처형시키는 등 이권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잔혹한 행위를 할 수도 있는 마피아, 테러리스트 조직이 나라를 점령했다고 비유할 수 있다.

7.1. 정권 초기의 대규모 저항과 실패

이쯤되면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제도가 유지될 수 있는지 의문일 것이다. 북한 정권 수립 직후부터 극히 강경한 수준의 통제가 시작된 것은 아니고, 지도부가 권력이 달린 문제에는 가장 탐욕스럽거나 길들여지기 쉬운 사람을 이용하여 매우 신속하게 움직이고 외세에는 적당히 굽신거리고 나서,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통제를 계속하여 강화하며 반대파를 숙청해 현재 상태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다만 버텨야 하는 경우에는 핵개발의 사례와 유사하게 매우 질기게 버텼다. 지도부가 일반인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무척 탐욕스럽고 어떤 비열한 짓이라도 서슴지 않기에 북한 일반인들이 힘들게 살고 불만을 가져도 항상 이들을 때려잡을 궁리만 위에서 하기 때문에 이런 실태는 유지되는 것이다.

심지어 6.25전쟁 당시에 남한에서조차 인민군이 점령하던 자리에서는 권력에 길들여지기 쉬운 머슴 같은 사람들이 북한 당국이 주는 권력에서 오는 자신과 다른 사람의 재산을 빼앗을 수 있는 등 자극적인 쾌락에 빠져 김일성에 협조하여 일반인들을 서슴없이 탄압하는 경우도 많았다. 인민군보다 공산당원 같은 사람들이 그래서 더 잔혹했다고 한다. 같은 유대인을 탄압하는 나치 수용소의 카포 같은 직책을 생각해도 이해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도 엄연히 인권 탄압이 심했기에, 해방 이후의 인권 탄압도 주민들이 심각성을 모를 여지가 있었다. 그래도 소련군이 대놓고 주민의 시계를 빼앗거나 심하게는 강간을 하는 등[218] 북한 주민이 느낄 정도로 횡포가 심했으며, 정부 수립도 아니고 소련군 진주 1년도 안 되었던 1945년에도 신의주 같은 곳에서는 탱크와 비행기를 동원할 정도의 외세의 지원을 받아 진압 과정에서 적어도 20명이 사망한 신의주 반공학생사건 운동이 있었다. "자 쏠테면 쏘아라, 우리는 정의를 위하여 죽어도 좋다!"라며 학생들은 용감히 저항했지만, 김일성은 이미 이를 탄압할 권력을 탐하는 사람을 적극적으로 찾아 진압을 할 수가 있다. 이렇게 학생이 함흥에서도 비슷하게 숨지기도 했고, 평양에서는 김일성이 제공하는 권력에 눈이 멀어 기독교인을 탄압하던 목사인 김일성과 정실 관계에 있는 강량욱 목사에 대한 테러가 있었다.

천도교인들도 이런 움직임에 가세하여, 1948년 3.1재현운동을 벌인다며 비폭력 무저항운동을 통해 국토통일과 민족단결을 주장하려고 했고, 심지어 평안도 지방의 영변희천에서는 2천여명이 시가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비밀리에 추진되던 이 운동은 도중에 북한 당국에 발각이 되어 함경도를 제외한 다른 지방에서조차 1만 7000여 명이 체포되고 수감되는 대대적인 탄압이 가해졌다. 주동인물 87명 중 3명은 사형을 당했고, 나머지는 4~15년형을 선고받았으며, 6.25전쟁이 시작되자 한 명만 빼고 모조리 학살당했다.

심지어 공산당 사무소에 방화를 한다든지, 일본군이 버리고 간 무기를 들고 무장 투쟁을 한 사례까지 있었지만 이미 김일성의 무리는 땅은 억울하게 '빼앗긴' 것이라며 지지자들이나 기회주의자들에게 세뇌를 시키며 광기를 부추겼다. 이건 못할 짓이라고 농민들이 이런 이간질을 거부하기도 했지만, 기회주의자들이 무력이 더 강하고 외세의 지원[219]도 받아서 소용이 없던 것이다. # 한편 소련 앞에서는 술자리를 베풀면서 철저히 가면을 썼기 때문에 북한 사정을 잘 모르던 소련은 그냥 자신의 충복이 되어줄 것으로 믿어 김일성 우상화를 돕기도 할 지경이었다. 함석헌 같이 북한 민주화에 실패한 사람이 남한 민주화에 기여를 한 경우도 있다.

처음에는 의식주를 보장해준다던 '이밥에 고깃국' 같은 주장을 설파하고, 항일 운동 경력을 과장을 섞어가며 주장하여 주민들의 지지를 얻고자 하였고, 공은 김일성 자신이, 과는 당간부 같은 남에게 돌아가도록 권력 기관 등을 동원한 공작을 펼쳤다. 이런 행태가 지금도 있다. 결정적인 것은 누구나 있는 인간의 악한 본성과 공포를 이용하는 데 김일성이 지능적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지주 "계급"으로 몰려 월남한 소설가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라는 작품에서 드러나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의도적인 교육 차별로 아직 사람들이 진짜 사회주의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을 이용하여 지주를 "하층 계급"처럼 만들고 농민을 "상층 계급"처럼 만들어 서로 싸우게 만들었다. 토지개혁을 통해 빈농꾼이라는 이유로 순식간에 농민위원장이 된 사람이 있고, 마름도 과거의 소행이 두려워 지주를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토지개혁도 농민들에게 땅을 준다고 해놓고서는 사실 무거운 세금을 물려 일제강점기보다 심하게 이에 반발하면 그냥 사형을 시키고는 했다. # 공산당 간부 같은 사람들은 부자들, 착취와 거리가 멀던 교회나 성당의 돈이나 재산을 갈취하다시피 하고, 일본인에게도 돈을 뺏기지 않던 평양 기생들의 서비스를 돈 없이 즐기면서, 남들은 이들의 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하면서 자신들만 권력 때문에 이를 즐길 수 있다는 식으로 쾌락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권력의 단맛을 본 농민위원장 같은 사람들은 권력욕을 채우기 위해 더 위에는 아부하고 아래를 탄압하였고, 이런 싸움에서 지면 인생이 끝장날지도 몰라 더 싸우게 된다. 한국 교과서에 실린적 있는 작품이다. 황순원은 이 작품을 통해 존중과 사랑만이 이 비극을 끝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작품의 배경은 평양 교외의 '양짓골'이라는 시골이나 북한 전역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현대 한국에서도 아무 갈등을 하나 꼬집어 이에 대한 피해의식을 부추긴 다음, 피해자라고 주장되는 권력욕이 있는 사람들에게 높은 자리나 좋은 곳에 거주할 특권을 부여한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이다. 괜히 북한에서 이런 일을 겪은 사람들이 사랑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다. 좀더 자세한 40년대의 저항과 갈등을 확인하려면 이 연재물을 확인할 수 있다. 성향에 무관하게 프레시안 등지에도 인용된 내용이다. 1949년에도 동아일보에서는 '이북독재의 현실'이라는 연재물을 싣고는 북한 사람들이 보초를 서가며 라디오를 듣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지주 같은 관계는 남한보다도 평등했음을 역설하며 북한 농민들이 세계의 그 어느 농민보다 과중한 현물세를 졌다고 하였다. 평양 출신인 강인덕 전 통일부장관의 증언에 따르면 토지개혁 완료 2개월 후인 1946년 6월 30일 발표된 '농업현물세'는 수확고의 25%를 현물로 징수한다고 했지만 실제 농민들로부터 징수한 현물세는 수확고의 50%를 넘게 징수했다고 하며, 때문에 토지를 분배받은 소작 농민들은 "지난 날은 지주나 일본인 지주의 소작인이었지만, 지금은 공산당의 소작인으로 신분이 변경되었을 뿐"이라며 불만을 쏟아냈을 정도였다. #[220]

그러나 이런 갈등은 앞서 언급한 성분제를 통해 제도화되고, 심지어 일부 탈북자조차 지위가 낮았던 사람은 북한에서 높았던 사람에 대한 증오가, 높았던 사람은 높은 신분을 가진 것에 대해 거들먹거리는 경우가 있다. 기득권층은 하류층의 분노를 막기 위해 이들을 채찍질해야 하므로 이런 인권 유린을 유지하려는 동기를 가질 수 있다. 여기에 정보 유통을 막는 사회가 되니 서로가 진정으로 나라를 해방시키고 싶은 선량한 기득권층이나 극심한 탄압이 있는 하류층의 사회를 서로 몰라 무지로 인한 갈등은 더더욱 깊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

6.25 전쟁을 통해 남북간 교류가 거의 단절되었고, 김일성은 전쟁 실패의 책임을 자신의 편이 아닌 사람들에게 모조리 뒤집어 씌워 권력의 견제를 무력화하였다. 이는 김일성 옆에서 막대한 혜택을 누리리라 믿은 사람들에 의해 가능해진 일이었다. 밀고를 많이할수록 '당생활에 충실하다'고 하여 더 출세하게 되었던 것이다. 전쟁이 남침이라는 것도 모르도록 남침 당일 "남한이 이날 아침 옹진반도에서 해주로 북한을 공격하였다"고 발표하는 등 치밀한 계획이 있었고, 이 전쟁에 가담한 사람이 아니면 이를 알 기회가 적었다. 남은 불만 세력은 김일성의 파벌의 감시를 바탕으로 8월 종파사건을 통해 없애버릴 수 있었다.

이 이후 도서정리사업[221] 등을 통해 비 주체사상계 사회주의 관련 문화도 탄압에 대상이 되게 되었고, 주민들이 자신들의 행위가 원래의 공산주의와도 반대된다는 것을 모르게 하였다. 려행증 제도, 생활총화 같은 현재 북한의 인권탄압을 상징하는 악습들도 반대파를 숙청한 뒤부터 실시한 것이다.

동구권에서 사회주의가 붕괴할 무렵인 1980년대 후반에는 이미 북한이 현실사회주의 국가가 아니게 된 것이다.

7.2. 상류층과 외부 문화와의 단절

보위부와 같은 체제 유지 세력도 외부와 단절된 환경에서 자라 인권을 모르기에, 주민들을 거리낌없이 탄압하였다. 고위 간부도 외부 정보를 접하기 어렵다. 외교관이었던 탈북자인 고영환, 태영호도 외국으로 나가기 전까지는 세뇌되어 있었다고 한다. 태영호는 탈북 당시 기자회견에서 당시 북한 2인자, 3인자로 알려진 황병서, 최룡해 역시 외부 정보에 대해 접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주장했다. # 간혹 북한의 엘리트가 왜 안 일어나느냐고 불만을 하는 여론도 있다. 이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엘리트를 위한 정보가 필요하여, 이들을 위한 맞춤형 정보로 체제의 개혁이나 심하면 붕괴까지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

간부들에게 현대 사회의 인권 개념은 외국에서 몰래 정보를 접하거나, '부패'로 우연찮게 외부 매체를 접하지 않는 한[222] 전혀 알 방법이 없고, 북한식 인권만 알게 되었다. 고위층이 아닌 일반 주민들도 역시 휴대전화 단속 등에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들어주는 경우, 사랑의 불시착에도 나오는 불시에 방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숙박 검열에 저항하지 않는 경우가 최근에도 존재한다. 외부 문화가 들어가면 체제가 위험함을 알게 된 지도부는 외부와의 문을 굳게 걸어 잠근다. 대화는 실존적 위협을 느끼거나, 매우 좋은 조건을 외부에서 제시하지 않는 한 하지 않았다.

7.3. 경로의존성

외부 세계의 경로의존성도 존재한다. 우리는 왜 북한에 정상 국가 수준의 통제를 받지 않고 갈 수가 없는지에 의문을 품지 않거나, 북한 사람들이 왜 이민을 할 수 없거나 인터넷을 못하는지 의문을 가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무슨 법이 제정되었다고 해도 그 내용을 모르는데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북한이 2020년 12월에 제정한 '반동사상문화배격법'도 공개하지 않아[223] 사람들은 이것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게 될 수 있다. 취재한 바로는 외국 라디오는 청취시 처벌되고, '미승인 영상물이나 도서를 유입하거나 유통한 책임자도 공개 재판한다'는 내용이 있으며, 우상화 도서의 반출을 막고자 휴대전화에 이것을 저장하는 것도 금지한다고 한다. # 자신이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도 외부에 공개하지도 않고, 안에서도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모르게 하여 외부에는 '정상국가', 내부에는 '세상에 부럼 없는'나라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것 때문에 북한에 대한 압력이 심해지지 않아 제도가 유지되는 면도 존재한다.

8. 각국의 대처

8.1. 대한민국 정부의 대처

박근혜 정부 당시 공포된 북한인권법이 북한 인권 개선을 위한 대표적인 노력이다. 이 법은 정부가 북한의 인권 상황에 개입하고, 목적 달성을 위해 국제사회와도 연대하도록 강제하고 있으며, 북한 정권 부역자들에게 지금 한 행동들에 대해 나중에라도 형사처벌 될 수 있다는 압박을 가하기 위한 정부 기관인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설립하는 근거도 제공하고 있다.

앞선 김대중 정부 말기에 이미 서독의 잘츠기터 문서기록보존소[224]를 벤치마킹하여 비슷한 기관을 운영할 필요성을 느꼈고 설립도 검토했다고 한다. 하지만 남북관계를 고려해 정부 차원에서 설립하기보다는 민간에서 설립, 운용하면 좋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북한인권정보센터 설립을 준비해 2003년 설립되었다. 또한 김대중 정부 시기 통일부에 북한인권환경팀(1999년 5월)이 최초로 신설되어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다루지 않던 북한 인권 업무를 명확히 하기도 했다. 또 ‘북한 인권백서’ 발간을 돕고 북한 인권 민간단체 역시 지원하였다. 다만 앞서 말했듯이 남북관계를 고려해 통일부 관계자들이 하나원 인권 조사를 비공식적, 비공개로 협조했다고 한다. 이후 이명박 정부 들어 북한 인권실태조사가 공식사업으로 승격되어 당시 북한인권정보센터의 하나원 조사도 공식 위탁계약으로 처음으로 실시되었고 과거 비공식·비공개적으로 진행되던 것이 정권교체 이후 바뀌었다고 한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더 나아가 UN 북한인권결의안에 공동제안국으로 처음으로 참여했고, 이후 지속적으로 공동제안국과 찬성 투표를 했다.#

인권위는 "북한 인권이 심각한 상태이고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면서도 남북관계를 고려해 신중함을 보여왔는데,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부터 인권위는 북한 인권에 대해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특히 '북한 체제' 자체를 직접적으로 문제 삼았다. 당시 인권위가 북한 인권과 관련해 적극적으로 나선 배경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은 2009년 7월 현병철 위원장 임명 당시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달라고 특별히 당부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한 인권 전문가는 "현 위원장을 비롯해 새로 물갈이 된 친정부 성향 위원들이 대북 강경책을 쓰는 이명박 정부의 요구를 받아 적극적으로 공세를 펼치는 모양새"라면서 "북한 인권 그 자체를 넘어 정파성을 띄고 있다"고 비판했다. 진보진영은 미네르바 사건 등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정부가 반기지 않을 만한 사안에 침묵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라면서 "인권위가 순수한 북한 인권 개선 차원을 넘어 정파적인 목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냐. 오히려 북한 체제를 압박하는 정부의 '돌격대' 역할을 자임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보수진영은 인권위가 북한 인권을 보편적 인권 차원에서 접근함으로써 편향성을 극복하고 있는 과정이라며 긍정적으로 봤다. #

그러나 2010년대 중반 이후 통일부는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야 북한 인권이 나아진다고 주장하나, 심지어 문재인 정부의 대북 지원도 거절하며, 시비를 안걸려고 하는데 북한 정권은 연락사무소 폭파로 스스로 매를 맞는 모습, 뒤에 숨어서 한류를 말살하고자 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 부분은 민주당도 비판하나#, 그럼에도 북한에 비판을 않고 무언가를 해주면 응할 것이라는 일각에서 효과를 의심받는 가정에 정치적인 극심한 인권 유린은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문재인 정부의 햇볕정책이 참고했던 서독의 정책에서도 '프라이카우프' 같은 정책이 있어 정치범을 석방할 수 있었고, 잘츠기터 중앙기록보존소 설치와 같은 압박도 존재했다. 경향신문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는 미국 워싱턴포스트에 문재인 정부가 북한인권 운동을 박해한다는 내용을 기고하기도 했다. 그 근거로 정부에서 북한인권재단의 예산을 92%나 삭감한 것, 2018년에 국가정보원 요원을 보내 태영호의 연설을 방해한 것, 문재인 정부가 북한인권법을 무산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 등을 들었다. # 박상학의 극우 성향과 여러 논란으로 볼 때 신빙성에 의구심이 들 수 있겠지만, 2019년 북한인권재단 예산이 108억 원에서 8억 원으로 전년(2018년) 대비 93% 삭감된 것만큼은 확실한 사실이다. #[225]

2021년 한겨레의 사설에서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에 맞추어 "우리 정부도 북한 인권에 대한 대응 원칙을 구체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라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 20대 대선을 앞둔 2022년 1월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북한인권재단'을 세우고,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도 참여하겠다는 공약을 언급했으며, 2월에 국제앰네스티가 더불어민주당 등 4개 당 후보들에게 북한 인권 증진을 포함한 7대 인권 의제들을 해결할 의향을 묻는 서한을 보냈다.

8.1.1. 통일부의 외면

통일부에서 2019년 4월 북한 인권행사인 '2019 북한자유주간'에 참가하는 인권활동가들의 항공료 지원을 예년과 달리 거부하고, 2016년 제정된 북한인권법이 규정한 북한인권재단 출범도 정부의 소극적 태도로 인해 3년 가까이 출범하지 못하고 있다. 또 북한인권법에 담긴 외교부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 임명도 2년 가까이 공석 상태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도 해당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2018년 들어 운영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그러다 2019년 탈북 선원 강제 북송 사건이라는 한국 정부에 의한 북한 주민 인권 유린 사건까지 발생했다. 그리고 주무 장관인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해당 사건에 대해 질의하는 탈북민들과 미국 교민들에게 '제가 설명하는 것보다 여러분들이 언론을 통해 객관적 사실과 찬반 여론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고, 여러분이 그 찬반 관련 근거를 갖고 토론해보면 매우 흥미로운 결과에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다'며 답변을 회피하였다. # 또 현장에 함께 있던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관계자가 탈북민에게 탈북자는 못 들어온다, 북한에서 온 게 자랑이냐, 니가 북한 놈이지 대한민국 국민이냐? 무식한 놈들이 어디서 와서 행패를 부리고 있어[226] #라며 폭언을 퍼붓기도 했다. # #

그리고 대북전단과 관련해 통일부가 탈북민 단체들을 압박하자, 토마스 오헤나 퀸타나 UN북한인권특별보호관은 미국의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현재까지 파악한 것을 토대로 말하면 한국 정부가 인권단체와 탈북민 단체에 취한 움직임은 확실히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말했다. 그는 “탈북민들은 모두 보호를 받을 필요가 있고 희생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며 “한국 정부는 이런 행동(사무검사 등)으로 탈북민들을 압박하기보다는 안전과 보호를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2021년에는 21년간 북한 인권 실태를 조사해온 비영리 민간단체 북한인권정보센터(NKDB)의 조사 활동을 올해부터 일방적으로 중단시켜버렸다. # 북한인권정보센터 (NKDB)는 2004년부터 하나원 입소자를 대상으로 북한인권 실태 조사를 해왔고 2008년부터는 공식적으로 통일부의 위탁을 받아 북한인권 실태 조사를 전담해왔다.

결과적으로 북한인권정보센터의 북한인권백서[227]는 14년, 북한종교자유백서는 13년 만에 발표가 중단되었다. 북한인권정보센터 보도자료 대북인권단체 "올해 인권백서 발간 무산…하나원 조사 불허때문"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 속칭 하나원은 통일부 소속이다.

탈북민 출신 국민의힘 국회의원 태영호는 통일부 내에 인권부서가 있는건 적절치 않다고 보는데 통일부의 북한 상대인 통일전선부에 일단 인권부서가 없고, 통일부의 주 업무인 대북지원사업을 하는마당에 인도협력국 내 북한인권과를 두고 있는 것은 정부 그 어느 부서도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루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구조다' 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2023년 통일부는 처음으로 북한인권보고서를 공개 발간했다.# 원래는 통일부에서 상급 비밀로 분류하여 내부 정책결정에만 사용을 해왔는데 북한 실상을 국민들에게 또 학생들에게 정확히 알리는 것이 대북 정책과 통일 정책에 대한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중요하다라고 인식해서 전격적으로 공개하기로 한 거라고 한다. #

8.1.2. 국가인권위원회의 외면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인 북한 주민들의 인권 보장 담당 부서 근무자는 겨우 한 명이라고 한다.[228] 또 탈북민들과 북한 인권 관련 시민단체들의 요구에 북한 지역에서의 인권침해행위나 차별행위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조사대상에 포함될 수 없다고 밝혔는데 이유는 현실적으로 북한은 대한민국 정부가 실효적 관할권을 행사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인권위는 해외진출 국내기업 인권 침해사례를 관할권도 없는 외국까지 나가서 조사한# 선례도 있고, 최근에는 미얀마 독재정권의 인권 침해에 대해서도 언급했다.연합뉴스 2021년 5월 14일 보도. 유엔의 인권보호체제의 원칙에 따라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이 내부에서도 나왔지만 묵살되었다. 또 납북된 국민에 대한 인권 침해 진정은 고도의 정치적 사안이라며 일방적으로 각하하였다. 국가 인권위원회는 매년 채택되는 유엔 인권위원회의 인권 실태 조사와 결의서에 단 한번도 지지성명을 낸적이 없다는 지적에 "최근엔 그런걸로 알고 있다."라는 답변과 함께 국가인권위 홈페이지에는 북한 인권법 폐지가 향후 과제라고 공표하였다.

이에 황인철 KAL기납치피해자가족회 대표는 “인권위는 인권이라는 보편적 잣대로 접근해야 하는데, 자신들이 보고자 하는 것만 보는 반(反)인권적 횡포를 부리고 있다”고 말했다. 또 황 대표는 “인권위가 정치적 논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며 “북한이 껄끄럽게 여기는 납치 문제는 ‘적절하지 않다’고 회피하면서 북한 식당 여종업원 집단입국 사건은 북한이 원하는 방향으로 처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영환 전환기정의워킹그룹 대표 역시 “인권위의 이중적 결정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 “인권위가 내세우는 ‘고도의 정치적 사안’이란 면피용 논리”라며 “노무현 정부 당시부터 인권위는 이라크 파병에 반대 성명을 내고도 북한 지역의 인권 침해는 조사 대상이 아니라고 밝히는 등 이중적 모습을 보였다”고 밝혔다.

8.1.3. 북한인권백서 축소 시도

1996년부터 매년 발간되어 온 통일연구원 북한인권백서는 북한인권 상황을 객관적으로 조사 및 분석함으로써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국내외 관심을 제고하고 관련 기초자료를 제공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여기서 백서를 내는 통일연구원국무총리실 산하 국책연구기관이다. 북한인권백서 발간이 중단된다는 보도도 있으나 중단은 되지 않는다. # 그러나 백서 자체를 그만 내자는 의견까지 있어 우려가 있었다. #

8.2. 국제사회의 대처

북한 인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은 1990년대 북한에서 발생한 식량 문제와 탈북자 문제로 커졌다. 다자적 차원에서 2003년부터 2006년 동안 유엔인권이사회는 북한에 대한 인권결의안을 제출하기 위해서 공동제안국들을 결성하여 대북 인권결의안을 매년 보내고 있다. 이후 2005년부터는 유엔 총회 차원으로 격상되어 매년 북한 인권결의안을 내보내고 있다. 참고로 유럽연합은 미국과 일본과 더불어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고, 국제사회에서 문제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남북관계가 좋지 않았던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한국은 공동제안국에 이름을 계속 올렸으나 박근혜, 문재인 정부때는 기권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공동제안국에 다시 이름을 올렸다. 외교적 무대응을 주로 하는 북한에게 있어서 인권 문제 언급 및 인권 결의안 발표 및 채택은 북한을 압박하는데 매우 효과적이다. 북한은 인권결의안에 매년 원색적인 비난 조 성명 발표와 더불어,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북, 인권침해 규탄 목소리 의식했나…장애인 권리보장 강조

8.3. 해결 방안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국을 포함한 국제 사회가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특히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는 국가이기에 이를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국익을 손상시킨다는 것이다.

다만 민정계박철언 전 장관과 같이 정부 차원과 민간 차원을 분리해서 대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박 전 장관은 "북한 인권에 대해 국제 여론이나 시민단체에서 압박 가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정부 차원에서는 남북기본합의서에 의거해서 평화통일 하자, 내정간섭 않고 체제 인정하자는 전제에서 해야 한다. 대통령이나 통일안보당국자들이 북한 인권 문제를 계속 제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모순이다. 물론 국가안보는 완벽하게 해야 한다. 군비증강, 군 기강 쇄신, 북한 도발 시 즉각 강력한 응징을 해야 한다. 하지만 대북정책 유연하게 해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 북한 체제나 인권 건드리고 자극해 붕괴시키려는 듯이 이해될 수 있는 말과 행동은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 또한 박 전 장관은 대북전단 살포를 금지시켜야 한다는 의견을 수차례 밝혀왔는데, 북한 인권만 중요한 것이 아니고 대북전단으로 인한 긴장 고조로 불안 속에 사는 전방지역 주민들의 인권도 고려되어야 한다. 대북전단 문서에 서술되어 있는 사례를 보면, 대북전단 살포 단체를 향해 한 강화군 주민은 "할거면 배 얻어서 공해상에서 하면 될텐데 왜 맨날 여기로 들어오느냐", "보복할까봐 두렵다. 연평도 포격 때 예고하고 포격했냐"면서 항의하는 모습이 보도되기도 했다. 그리고 북한 인권만 소중한 것이 아니고 북괴의 도발이 있을 경우 싸워야 할 우리 장병들의 인권도 소중하다. 징병되어 끌려온 것도 굳이 따지자면 인권 침해인데 다치거나 죽으면 되겠는가. 그리고 중국의 대만 침공 예고 등 신냉전 국면으로 들어선 지금, 한반도 정세도 급변할 가능성은 언제나 있다. 국지전이든 전면전이든 전쟁나면 남이든 북이든 인권 수준은 바닥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하고 효과적이지 않은 행위들은 자제되어야 한다는 전제하에서 관련 활동들이 이루어져야 한다.

북한인권담론이 평화와 통일에 방해가 될 것이라고 하는 주장도 있으나, 평화와 인권은 양립할 수 있는 가치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 대북 교류를 통해서도 현대적인 인권 의식을 북한 주민에게 알려준다면 북한이 국제 사회에 나서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에 대한 모든 압박 자체를 거부하며 압박으로 늘 탄압이 심해진다는 식의 주장도 있으나, 공개처형 같은 문제가 꾸준한 관심 속에 줄었다는 주장도 있고, 특히 김대중 정부 당시에는 대통령이 직접 중국과 러시아까지 대화를 촉구해서 북한이 대화를 받아들였다고 했다. # 북한 정권도 민심이 안 좋은 방향으로 흐르는 것은 꺼리므로 주민들을 속일 수 없다면 인권 개선에 나서고, 그렇지 못하면 북한 정권은 주민에 대한 통제력을 잃어갈 것이다. 한류 차단 가능성까지 제기된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도 젊은이들은 매도 많이 맞으면 안 아프다고 저항하여, 더 센 법을 계속 제정하고 있지만 지금도 이제는 검열하면 따지는 경우까지 생길 정도로 저항한다고 알려져 있다.

인권 문제는 북한을 압박하는 데 유리하여 이용하기보다는 사실에 기반한 합리적 문제 제기를 통해 더 효과적인 문제 제기를 해야 할 것이다. 탈북민들은 이를 위해 고향의 인권 유린 실태를 알리나, 북한 주민에 대한 무조건적인 혐오발언이 있는 것은 우려스럽다. 주민들의 민주적인 선택을 통해 북한의 인권 침해가 발생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이 잘 먹고 잘 사는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기득권층의 협박과 거짓말로 이런 실태가 유지되는 것이다. 이런 차별적인 시각이 앞으로도 존속된다면, 한국 사회도 북한 인권에 대한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인권이 개선되려면 핵개발까지 하며 버티다가 내, 외부적 압력으로 아파르트헤이트가 사라진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사례처럼 북한도 독재 정권을 어떻게든 붕괴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심지어 2014년 유엔에서는 2021년 미얀마 민주화 운동에서 언급되던 북한 정부가 자국민에게 지는 보호책임(R2P)을 거론하며 정부 자체를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시키자는 주장까지 나왔었다. 중국, 러시아의 비협조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나 북한이 이 두 국가에도 만주나 연해주에 경제적 손실을 입히는 등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남북교류 협력도 군사력에 관한 주장을 빼면 김정일 시대에 비해 거절하는 경우가 늘어[229] 이것이 거론될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 2023년 들어 핵무기가 자신의 생명줄이자 만능의 무기, 심지어 남한의 정부를 제거할 수 있는 무기라고 여기는 북한 정권에 대응하기 위해 이제는 북한 주민과 정부를 분리시키는 인권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 참고로 북한 붕괴론 문서는 붕괴가 되지 않는다, 붕괴된다는 주장이 아니고 미래를 예측할 때 다양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말자는 것이다.

9. 현황

시장화 진행 및 해외 의류의 유입 등 일부 분야에서 통제가 어느 정도 무너지고 있다는 탈북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이것은 김정은이 통제를 완화한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이는 반만 맞는 얘기로, 그 중 일부는 김정은의 지시라기보다는 하부의 명령이 이행되지 않은 것에 가깝다. 게다가 직접 지시한 통제 완화도 선의가 아니라 내외부적 압력에 굴복한 것이 대다수다. 국제사회가 꾸준히 압력을 가하는 것도 있고[230], 주민들이 굶어죽기 싫어 단속을 피해 장사를 하고, '뇌물'로 권력 기관을 무력화 시켜[231] 대규모 장사 등을 '죄'로 하는 쓸데없는 정치적 처벌을 무력화시켰다는 것이다. 이런 김정은과 그 이외 주민의 싸움이 아직도 진행 중이라, 2020년에도 애꿎은 평양 환전상을 처형했음이 국정원을 통해 확인되기도 했다. 70년 넘게 통제를 받다보니 주민들이 내성이 생겨, 심하면 사형도 가능한 한류 유포 같은 것이 이루어지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스파이를 의심하여 절친한 사람끼리만 들을 수 있는 곳에서 정치적인 이야기를 하고, 전자 기기도 단속용 전자기기를 따로 마련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교류가 있는 현대 독재국가의 국민들도 비웃을 정도로 북한의 인권 탄압은 극심한 수준이다. 북한의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지도부가 그동안 저지른 죗값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만약에 북한 주민들이 북한 인권 탄압의 실태와 정부가 자신을 평생 속여 왔다는 것을 명확히 알게 되면, 자신들은 차우셰스쿠카다피처럼 국민들의 손에 죽을 수도 있다. 또한 권력 자체가 주는 쾌락도 막강하고, 이를 통해 전용 목장인 운곡목장도 운용할 수 있는 것처럼 국가의 자원을 좌지우지 할 수 있기에 이를 내려놓기가 매우 힘들다. 따라서 외부의 압력이 없거나 약하면 이들은 계속 이 제도를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2023년 12월 26~30일 열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제9차 전원회의 확대회의에서 2024년도 중점투쟁 목표 중 하나로 사상사업 강화를 통한 비사회주의 척결이 언급된 것,(#) 2023년 12월 27일 로동신문 사설 '사회주의헌법은 전면적국가부흥을 담보하는 위력한 무기이다'에서도 "사회생활의 여러 분야에 대한 법적통제를 강화하여 당정책과 국가의 법이 철저히 집행되도록 하여야 한다."고 언급된 것,(#) 2024년 1월 1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제14기 제10차회의 시정연설에서 김정은이 "대한민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으로, 불변의 주적으로 확고히 간주하도록 교육교양사업을 강화한다"[232]고 언급한 것으로 보아 한류 탄압과 주민 통제가 예년에 비해 강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2024년 1월 기준, 이제는 의형제까지 모여서 반체제 모임을 할 거라는 망상에 빠져 의형제 모임까지 막으려고 한다고 한다. # AI 안면 인식기술을 이용해 이동의 자유를 더욱 제약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

2024년 4월 혜산에 거주하는 여성이 아시아프레스에 말한 바에 따르면, 모든 사람들이 말 한마디 제대로 못 하는 세상이 되어 주변 사람이랑 친척까지도 멀리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으며, "웬만한 일도 시범격으로 교화 2년씩 막 보내고, 찍 하면 총살하고, 최근엔 긴급체포라는 것도 생겨가지고 사건에 관련된 사람을 보면 장소에 상관없이 막 잡아가" 오금이 저려서 다니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

북한도 몇몇 법들을 만들어서 반체제와 무관한 인권 침해는 줄이려고 한다는 증거들이 나오고 있다. 2021년에 채택한 '구타행위방지법'은 북한 주민들은 타인의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다고 규정하여 피해자는 폭력에 대한 손해 배상도 받을 수 있게 함과 동시에 가해자를 벌금형과 노동교양 처벌에 처하게 하는 내용이고, '인민보안단속법'은 보안원들이 인권유린을 하거나 직권을 남용해서 주민들의 인권에 해를 입히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반체제' 관련 법들은 도리어 김일성 시절보다 더 잔인해져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다. #

2024년 8월 초 회령시에서 남한에 있는 탈북자와 북한에 있는 탈북자 가족을 중국 휴대전화로 연결하게 해주고 돈을 받은 사람이 공개재판에서 로동교화형 10년형을 선고받았고, 협력한 화교도 중국으로 추방되었다. 재판 과정에서 중국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수하라며 '사회주의를 내부로부터 좀먹는 행위는 제때에 신고하라' '중국 휴대전화로 내부 사정을 유출시키거나 적의 비열한 책동에 동조하면, 엄격한 심판을 받게 되고 사형의 가능성까지 있다' '중국 휴대전화를 뿌리뽑겠다, 용서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놨다. 또 무산군에서는 중국 휴대전화 소지가 발각되면 최소 로동교화형 5년형인 것을 넘어 수입[233]에 맞지 않는 지출이 있는 사람을 찾아내 가택수색까지 하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왜 잘 사는지) 조사하고 있는데, 집에서 뭘 먹는지도 신경 쓸 정도라고 한다. #

9.1. 대한민국 일반 국민들의 인식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북한의 인권 실태를 가볍게 여기는 것을 넘어 북한 인권 운동을 반북 활동이라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소의 통일의식조사에 따르면 한국 국민의 80~90% 가량이 북한 인권이 심각함을 알고 있다고 나온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보면 매우 심각하다는 견해보다 다소 심각하다는 견해가 10%p 가량 많다. 정확히는 '매우 심각'이 36%, '다소 심각'은 47%다. #

물론 이에 대해선 북한의 독재와 인권 탄압이 지구상에 널려있는 독재국가들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악질이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면 되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 피부로 느끼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9.2. 북한 국민들의 투쟁과 내심

북한이 언론통제를 통해 반정부 저항을 꽁꽁 숨겨서[234] '북한에서는 지하에서도 반정부 투쟁이 없을 것이다'라고 착각하는 외지인까지 생길 정도이지만, 그나마 다행히도 이러한 착각과는 달리 북한 내에서도 3대에 걸친 학정을 묵묵히 견디기만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낙서나 삐라 등으로 소극적으로 반체제 저항을 보는 경우까지는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탈북민 조사에 따르면 2010년대 기준 60%대가 그 사례가 있다고 전해진다. 출처(pdf)

2023 북한인권보고서에서도 지하 교회 신도를 공개처형한다는 등의 증언이 언급되었지만 그 지역 내에서만 알게 할 뿐이지 다른 지방 사람도 그것을 모르게 하는데, 이는 일단 누군가 저항한다는 것 자체가 해롭다고 여기고 모두가 북한 정권에 복종하듯이 보여야하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의 저항 활동을 철저히 숨기는 것에서 기인한다. 북한 사람들도 이제는 시장 경제를 원하는 것이 주류이긴 하지만, 장사를 풀어주는 등 약간만 유화책을 시행하면 굉장한 것인 줄 알고 지지도가 좀 올라간다. 하지만 장사를 많이 하거나 외부 문물을 많이 접한 사람일수록 당연히 자신의 체제를 비관적으로 본다. 그런데도 쥐도 빠져나갈 구멍 없이 이런 소식을 철저히 숨기므로 외부 세계에서 '북한은 지하에서도 저항 활동이 없나 보다'고 착각할 정도로 잘 모르는 것이다. 자유조선 같은 조직이 북한 내부의 저항을 지향하고 북한 국적자와 연락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2020년대 이후 잠잠해졌으며, 이들의 활동은 북한 매체에서 숨겼다. 시위는 굉장히 강하게 감시하고 있기에 1945년에 북한 정부가 수립되기 전의 23~50명이 사망한, 70년대까지는 한국 교과서에도 실렸던 신의주 반공학생의거가 가장 큰 규모의 시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북한 외부에서는 김성일 사건이나 자유조선처럼 반체제 활동을 벌이는 경우가 있기에 이 문단에서는 북한 내부에서 북한 주민들이 반체제 활동을 한 경우를 다룬다.

사실 김일성 시기에도 암암리에 반체제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던 것으로 보인다. 남한 언론에 북한의 식량난이 오르내리기 시작한[235] 1976년을 기점으로 식량난에 항의하는 폭동이 도처에서 일어났고, 특히 1976년 7월에는 함경남도 용량의 광산에서 수백 명의 광부들이 식량을 더 달라며 유혈 폭동을 일으켰다고 한다. #1 #2

1980년 6차 당 대회 이후 김일성종합대학과 중앙대학들에서 김정일의 정치가 아버지인 김일성의 정치제도 구상과 다르게 나가자, 주로 중앙당과 중앙기관의 간부들의 자녀들로 구성된 원시적인 조직체들이 김정일의 무능함을 무기명 투서로 김일성에게 보내는 방식으로 진행하였으나 자기들의 필적을 남기는 실수를 하여 모두 적발되었고, 1990년 이후 소련과 동구권이 붕괴하자 공산주의가 인류의 배척을 받은 주의라는 것을 인식한 리과대학의 학생들과 평양시의 중앙대학생들로 이뤄진 반체제 조직들이 잦은 모임을 통하여 학술토론의 방법으로 변화의 진리를 깨닫는 사람들을 확대하는 방법으로 운동의 폭을 넓히려고 하였으나 규모가 커지면서 발각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

같은 해, 정확히는 1987년 5월 1일(노동절)에 평양시에서 노동절(5월 1일) 야간축제에 동원된 일부 군중이 건설 현장[236]에서의 무임금 강제노동에 항의하는 폭동을 일으킨 것에 경찰이 총격을 가해 40여 명의 사상자[237]가 발생했다고 하고, 이는 1987년 8월 남한 언론에서도 보도되었다. 식량 배급 중량, 공평분배 등 생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가 커졌다는 분석이 있다. #1 #2

심지어 이미 이르면 1964년부터 북한에서 반체제 폭동이 있어왔다는 주장도 있다. 80년대 보도된 북한에서 있어왔다는 반체제 폭동들은 다음 기사들을 참고하면 좋다. #1 #2 #3 #4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238] 이후인 1989년부터 김일성의 사망 1년 전인 1993년까지는 북한에서 체제에 대한 불만과 식량난으로 인한 폭동이 발생했다는 보도가 남한 신문에 상당히 많이 오르내리기도 했는데, 1987년 5월 1일(노동절)에 평양시에서 노동절(5월 1일) 야간축제에 동원된 일부 군중이 건설 현장[239]에서의 무임금 강제노동에 항의하는 폭동을 일으킨 것에 경찰이 총격을 가해 40여 명의 사상자[240]가 발생했다고 하고, 이는 1987년 8월 남한 언론에서도 보도되었다. 식량 배급 중량, 공평분배 등 생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가 커졌다는 분석이 있다. #1 #2

심지어는 1991년 8월과 1993년 4월에 신의주 지역에서 김일성 부자의 퇴진을 요구하는(!!!) 수천~수만 명 규모의 시위가 일어났다는 증언까지 있다! # # 물론 북한은 평양방송 등을 통해 이들 소식에 대해 '터무니없는 허무맹랑한 거짓 모략보도' '남한언론의 공작'이라며 적극적으로 부인했으나, 북한의 주장의 신뢰성이 낮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들 시위의 존재를 무작정 사실이라고 믿기는 힘들다.[241] 1981년 11월에 신의주에서 반정부 폭동이 일어나 정규군의 유혈 진압으로 수백 명이 사망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중국으로 피난을 갔다는 주장이 있다. #

1994년 2월 하순에 평양시 순안구역 강건종합군관학교 소속 위관급 장교 10여명이 김일성 부자 타도 모의, 정확히는 김정일 암살 모의를 하다가 발각되어 강건종합군관학교 운동장에서 당간부 및 주민 1천여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화형에 처해졌다는 주장이 있다.[242] 이를 전한 소식통의 말로는 신변의 위협을 느껴 중국으로 탈출해온 한 평양시 거주 화교로부터 이처럼 끔찍한 소식을 들었다고 하며, 북한 내에서 이 화형이 김정일이 직접 지시한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강건종합군관학교 교장이 행방불명되었다고 한다.[243] '아는 사람 하나 건너 들은 소식'이라는 점에서 신빙성이 낮은 것 같다는 반문이 있을 수도 있지만, 북한 인권 실태가 본격적으로 해외의 관심을 끌기도 전에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 그 화교가 중국 관계당국에 화형 사실을 폭로하는 편지를 보냈다가 북한 당국의 서신검열에 적발되고 북한 안전부 요원이 집에 찾아오는 등 신변에 위협을 느껴 탈북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화형 사태가 과장되거나 날조된 사건일 가능성은 낮다. 1994년 6월 8일 조선일보 기사 '백두혈통'에 대한 암살을 모의하다가 걸린 사건인 만큼 희생자들의 인척들도 최창익, 신태수처럼 확인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은 남김없이 완전통제구역에 끌려갔을 것만큼은 확실시된다. 참고로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화형이 행해졌다는 증언이 있으며, 세부적인 증언 내용의 과장 가능성을 감안하더라도 90년대 북한에서 화형이 있던 것 자체는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244]

물론 김일성의 사후에 북한은 송림사건처럼 시위가 일어날 것 같으면 '사회기강을 잡아야' 한다며 탱크와 장갑차를 동원하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해 시위를 철저히 막는 나라가 되었다.[245] 하지만 그런 억압적인 분위기에도 김정은 시기인 2012년에도 해주시에서 꽃제비가 보안원에 의해 폭행치사한 것에 분노하여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

2004년경 북한 내 고위층 자제들의 소수 정예만 가입한 비밀조직이 있었는데, 회원 중 한 명이 김성일 사건의 주모자 김성일이다. 덤으로 자신을 전직 북한 정보요원이라고 밝힌 모 탈북자가 2014년 4월 2일 텔레그래프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김정일에 대한 암살 시도가 2차례, 쿠데타 시도가 2차례[246] 있었다고 한다. #

2013년 4월 23일 데일리NK 보도에 따르면 당 간부들조차 시대에 뒤떨어진 체제 선전&우상화 강연회에 자괴감까지 느낀다는 증언이 나왔다. 늘 똑같고 뻔한 거짓말만 반복해야 한다고 느껴 기관 기업소 당 간부들은 일반 주민들 앞에서 강연하기를 몹시 꺼릴 정도라고... 이 소식을 전한 양강도 초급당 간부는 국제 및 국내정세와 관련된 강연만 골라 진행하고 인민생활개선 강연은 아래 선전일꾼에게 떠맡긴다며 '강연을 듣는 주민들이 얼마나 손가락질하면서 욕하겠느냐'고 털어놓았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무려 2013년 시점으로 당 간부들이 자괴감을 느낄 지경이었으니 현 시점에서 당 간부들이 느낄 자괴감은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며, 당 간부들이 이 정도니 북한 주민들이 느낄 자괴감은 안 봐도 뻔하다. 덤으로 당시 시점에서도 대다수 간부들과 주민들은 인터넷이 금지된 상황에서도 알음알음 해외 정보를 전해들었는지 김정은이 20대 초반까지 (스위스에서) 유학시절을 보낸 사실을 다 알고 있다고 한다. #

2019년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서 근무하다 탈북했다는 모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2009년부터 10년간 김정은의 암살 미수 사건이 26차례나 있었다고 한다. #

북한 정부의 세뇌에 대한 저항이라 볼 수 있는 외부 정보 파악도 살펴보먼 2019년 한국에 거주하는 탈북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인터뷰에 응한 400명 중 60%가 탈북 전에 국제 언론에 접근할 수 있었으며, 그 60% 중 30%는 한국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보면서 그들의 삶을 비교하기 시작했다고 말했고, 37%는 그 프로그램이 북한 탈출에 대한 열망을 증가시켰다고 말했다. #[247]

2021년 7월경에는 평양 일대와 원산, 청진, 신의주 등 북한 내 주요도시에 SD 카드가 유포되기도 했는데, 이 SD 카드에는 "김정은을 몰아내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새 사회를 세우자"는 메시지를 담은 영상,[248] 납북간의 첩보전을 다룬 남한 영화 베를린, 북한이 해외에서 남한 대통령을 암살하려고 했던 사건인 아웅 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 영상이 들어가 있었다고 한다. #

2023년 12월 19일 양강도 혜산시에 있는 혜산비행장 등판에서 열린 공개재판, 공개처형이 끝난 후 구호판에 적힌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에 숯으로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로 바꿔놓은 낙서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현지 소식통은 다른 지역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들이 일어났다며 이런 일들이 김정일 사망 추모 기간에 발생한 사건이었으니 주민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전했다. #

2024년 1월 26일, 이제는 북한 내에서 무려 반체제 정당까지 만들어진 적이 있다고 알린 북한측 주민교양 자료가 외부에 공개되었다.[249] 자세한 것은 북한 내 반체제 정당조직 발각사건 항목 참조.

2024년 2월 22일 통일관련 민간 기관인 한하나로연구소가 학술대회 '북한의 시민사회 실태 분석과 육성전략'에서 공개한 설문조사 자료에 따르면 탈북자 150명 중 87명(58%)이 북한 정부가 금지한 모임, 즉 남한 드라마나 영화 보기, 남한 음악 듣기, 정치적 대화 하기 등에 참여한 경험이 있었으며, 심지어 응답자 19명(12.7%)은 북한 정권에 대항하는 모임이나 행위에 대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개별적 행동이 아닌 여럿이 모여 활동하는 모임이라는 것을 주목할 때, 이를 두고 북한 내에서 '(여럿이 사적으로 모이는 것이 확대되어가며) 시민사회가 형성되는 시작점'이라고 볼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

2024년 3월 말, 양강도 혜산시에서 “쌀을 달라”며 관공서로 노인들이 몰려들어 경찰 기동대까지 동원되었다고 한다. 한편 사건의 발단이 된 할머니는 유언비어를 퍼뜨린 ‘노망난 늙은이’로 몰렸고, 북한 당국은 이 사태를 ‘유언비어를 퍼뜨려 사회에 혼란을 준 사건’으로 간주하며 유언비어 단속을 강화, 말을 잘못 한 노인들을 ‘반사회주의 분자’로써 간주해 엄격하게 처벌한다고 밝혔다. 참고로 저 사건의 시발점이 된 할머니는 “(김정은)원수님이 인민들 굶어 죽을 때까지 식량공급도 못하게 놔둘 수가 없는데, 중간에서 간부들이 다 뜯어먹고 식량을 안 주는 거 아니냐, 지금 나 먹을 게 없으니 당장 식량을 내놓아라”고 외쳤다고 한다. # 그나마 이는 해피엔딩으로 끝났다고 전해진다. #[250]

현 북한 주민들 중에는 너무 상황을 비관한 나머지 차라리 한국의 흡수통일 내지 미국의 식민지가 되는 게 더 낫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

물론 북한 측은 자신들의 학정과 무능, 경제 파탄[251]으로 북한 주민들의 지지가 떨어진 것을 북한 지도부, 수뇌부에 대한 인민대중의 지지와 신뢰를 떨어뜨려 북한의 단결력과 공고성, 불패성을 떨어뜨리기 위해 '제국주의자'들이 북한 지도부, 수뇌부를 공격하기 위해 '사상문화적침투책동'을 벌이기 때문이라고 우기고 있다.

9.3. 북한 측의 인권탄압 부인

그들은 온 나라가 화목한 대가정[252]을 이룬 우리의 일심단결과 이 생명체에 붙으려 하는 병균들철저히, 주저없이 세척해내는[253] 우리의 인민민주주의독재를 인권유린으로 오도하고[254] 나라앞에 범죄를 저지르고 달아난 인간쓰레기들이 돈을 받기 위해 벌리는 거짓말경쟁무대에서 모아온 《증거》보따리를 들고다니며 소란을 피우고있다.
2015년 4월 27일 로동신문동태관 정론 <태양은 조선에 있다> 중. 대놓고 북한의 인권 탄압을 폭로하는 탈북자들에게 남한이라면 기자가 해고당할 수준의 막말을 쏟아붓고 있다.
제국주의자들은 사상에서의 《자유화》의 간판밑에 사회주의사회에서 진행하는 사상교양사업을 《획일주의》니, 《사상주입》이니 하고 비난하고있다. 제국주의자들이 떠벌이는 《획일주의》라는 것은 사회주의사상교양사업이 사람들을 마치 개성도 없고 재능도 없는 기형적인 인간으로 만드는듯이 비방하는 터무니없는 궤변이다.
이것은 사회주의를혈뜬기 위한 황당한 날조이며 부르죠아사상문화의 허위성과 반동성을 합리화하기 위한 궤변에 지나지 않는다.(중략)
인민대중을 사회주의사상으로 무장시키기위한 교양사업은 온갖 넓은 사상의 구속에서 해방되여 건전하고 풍부한 사상문화생활을 누리려는 인민대중의 자주적요구와 지향을실현하기 위한 사업이다. 그런것만큼 사회주의사상교양사업을 끊임없이 강화하여 인민대중을 사회주의사상으로 튼튼히 무장시키는 것은 그들에 대한 최대의 사랑으로 된다.[255]
이것을 《획일주의》, 《사상주입》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결국 사회주의를 헐뜯기 위한 황당무궤한 궤변이 아닐수 없다.
2016년 3월 17일 김일성종합대학 철학부 학생이 쓴 <제국주의사상문화적침투를 단호히 반대배격하자> 중. 자신들의 가스라이팅을 '최고의 인민사랑'이라고 자찬하며 이를 사상주입이라고 비판하는 외부의 여론이 '황당무계한 궤변'이라고 우기고 있다.

북한 정권은 이미 인터넷 같은 통신매체의 발달과 활발해진 탈북자들의 증언으로 전세계적으로 자신들의 치부가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악행들을 인정하기는 커녕 오히려 전부 '탈북자들의 날조'라고 부인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파렴치하게도 자유롭게 살기 위해 지옥과도 같은 고국을 탈출해 고국의 만행들을 폭로한 탈북자들에 대해 상술한 '조국을 배반한 반역자' '인간쓰레기'가 가장 순해 보이는 수준의 막말을 퍼붓는 것도 모자라 아예 '살인 등의 중죄를 짓고 도망친 자들이 과장되고 날조된 악선전을 하고 있다'고 모함하기도 했다.[256] #[257][258][259] 심지어 이 말을 남긴 사람은 북한의 고위급 법조인인 박수종[260]인데, 이 사람은 북한측 인사 중 최초로 북한의 공개처형 사실을 인정한 사람인 만큼[261] 북한 내에서는 어느 정도 인권탄압 사실을 인정하는 온건파라고 볼 수 있다. # 그런데도 이런 막말을 남겼으니, 온건파조차 이럴 정도면 강경파들, 나아가 정권 최고위층들과 특히 김정은이 북한의 인권 탄압을 폭로한 사람을 어떻게 볼지는 안 봐도 뻔하다.[262][263]

뿐만 아니라 북한은 자신들의 인권 탄압과 경제 파탄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김씨 3대가 아닌, 남한과 미국을 비롯한 타국들에게 있다고 죄를 뒤집어 씌우며[264]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데다가 심지어는 한국을 비롯한 타국들이 자신을 본받아야 한다는 주장까지 하기도 한다. 북한은 우리식 인권이라는 것을 내세워 '세계 인권 선언서구권 제국주의가 만들어낸 개념이니 우리 민족은 우리 민족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외국의 잣대로 뭐라 하지 말라' '우리가 생각하는 인권의 개념은 남한과 서구권과는 다르다'라는 어이없는 주장을 하고 있으며, 심지어 2013년경에는 '남조선'의 '인권 문제'를 세계에 알린다며 남조선인권대책협회를 만들기도 했지만, 이 문서에 나온 것처럼 북한의 인권 상황이 상황인지라 비웃음거리조차 되지 못하고 그대로 묻혔다.

물론 북한은 민주정치[265]와 다당제, 대중복지사회건설, 다원적가치관이라는 정상적인 국가에서 민주적인 절차라고 여기는 것을 '초계급적이고 위선적인 언사'라고 비방하고 있으며, 사상의 자유에 대해서도 "근로인민대중의 사상정신적발전을 가로막고 진보적인 사상의식의 발전을 탄압하여 부르주아반동사상을 퍼뜨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책동" "사람들의 자주의식을 마비시키고 사람들을 동물적인 인간으로, 무기력한 존재로 만들기 위하여 조작된 각양각색의 사상조류들"이며 '자본자'와 '제국주의자'들이 전 사회에 대한 자기 계급의 사상적지배를 실현하고[266] 자신들의 약소국 침략과 '진보적사상' 탄압을 위장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우기고 있다.

그나마 북한의 인권 탄압을 인정하기는 해도 그 경우는 사실상 없다시피하며,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오히려 옹호하는 듯한 뉘앙스로 발언하며 그 심각성을 축소시키고 있다. 그 일례로 북한의 법조인 박수종은 2014년 9월 17일 "공개처형은 있긴 하다. 그러나 피고인이 아주 악질적인 사람으로 주변 인민들이 청원하면 심사하여 집행한다."고 공개처형을 어느 정도 두둔하면서도 처음으로 북한의 공개처형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으며, # 2019년 5월에도 유엔 제네바 사무소에서 열린 북한에 대한 제3차 국가별 정례인권검토(UPR) 심의 중 북한 당국자는 자국의 사형제도와 관련해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극히 드문 경우에 피해자들과 주민들이 공개 사형하여 줄 것을 강하게 요구하는 경우에 그들의 의사를 심중히 고려하여 공개 사형을 하는 적도 있습니다."라면서 '주민이 원하면 안한다'는 식으로 변명했다. #

2015년 3월 4일에는 스위스 제네바 유럽 유엔본부에서 열리고 있는 UN 인권이사회와 군축회의 현장에서 리수용 외무상은 유엔의 북한 인권조사보고서와 인권결의안은 무효라고 주장했고, 인권 탄압에 대한 북한 지도부의 책임과 처벌 & 지도부 교체 가능성을 언급한 부분에 대해서 대놓고 '정신착란적 행위'라고 막말을 퍼부었다. 물론 대놓고 탈북자에게 인간쓰레기 드립을 친 것은 덤이고. #

2015년 5월 7일 박영철 조국통일연구원 부원장은 미국 CNN과의 인터뷰에서 고위 관리 처형설은 악선전이라 반발하면서도 "어느 나라나 적대적인 부류를 찾아내 처벌하거나 처형하는 것은 매우 정상적인 일"이라며 처형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았으나, 정치범수용소에 대해서는 "우리 사회에는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파벌이 없으므로 따라서 정치범수용소가 없다"고 우기며 "당신들이 우리의 인권에 대해 말한다면 우리는 미국의 인권에 대해 언급할 것"이라고 반격했다. 물론 탈북자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고국에서 도망친 소위 탈북자들이 우리 정부를 비방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

2022년 6월 15일에는 미국 국무성이 "2021년 국제종교자유 보고서"에서 북한의 종교 탄압에 대해 지적하자 <세계는 미국의 '종교자유' 타령에 각성을 높여야 한다>라는 글에서 단순 대외 선전매체도 아닌 외무성 차원에서 "미국의 '종교 자유' 타령은 종교 간 대립과 모순을 격화시켜 주권 국가들의 내부를 와해시키고 제도 전복을 위한 구실을 마련해보려는 불순한 기도의 발현"이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

2023년 3월 28일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인권보고서'를 공개하자 4일 뒤에 북한의 대외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는 이 보고서 속의 사례들을 '모략과 날조' '천벌을 불러오는 실로 황당무계한 악담질' '인권의 '인'자도 모르는 이런 자가 기를 쓰고 우리를 걸고들며 함부로 혓바닥질을 한다'[267] '세계적인 핵강국으로 솟구쳐오른 우리 공화국의 위상을 어떻게 하나 깎아내려보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더러운 악담질은 맨발로 바위를 차는 것과 같은 부질없는 단말마적 발악에 지나지 않는다'는 등의 상스러운 말들을 쏟아냈다. #

그러고는 약 4개월 뒤인 2023년 7월 21일 조선로동당 통일전선부 산하 평양출판사는 남한의 인권 실태를 다루겠다며 '인권동토대'라는 책을 출판했는데, 머리말부터 "인간의 정치적 자유와 초보적인 생존의 권리마저 깡그리 유린하는 세계 최악의 인권불모지, 인권동토대인 남조선의 인권실상을 파헤쳐본다"라고 적혀 있고 목차도 상술한 북한 인권보고서를 비꼬는 듯 구성되어 있으며,[268] 높은 자살률과 실업난 같은 남한의 명백한 사회적 문제들에 더해 산업재해, 여성·장애인 차별, 아동학대 같은 사례들을 들며 남한이 마치 이런 일들이 밥먹듯이 일어나는 생지옥인 것처럼 꾸몄다. 하루 뒤 선전매체 메아리는 남한은 윤석열 정부 들어 '인권말살지옥'이 됐다며 "(남한이) 그 누구의 인권을 운운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고 언어도단"이라고 비난했다. #1 #2 #3

2023년 12월 10일에는 세계인권선언 채틱 75주년을 맞이해 조선인권연구협회 차원에서 '인권백서'를 발간했는데, 당연히 미국, 유럽에서 인권이 무참히 유린당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와 함께 북한에서는 "가장 인민적인 인권 보장 제도하에서 우리 인민들은 참다운 인권을 마음껏 향유하며 복된 삶을 누리고 있다" "우리 공화국은 국제 인권 분야에서 자기의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있다"며 인권이 보장되고 있다고 주장했고, 당연히 북한 인권 문제 규탄에 대해서는 '고분고분하지 않은 나라의 정권과 제도를 붕괴시키기 위해 '인권 문제'[269]를 물고 늘어지며 해당 국가의 영상을 깎아내리고 악마화하려 드는 것은 미국의 상투적 수법'이라고 억지 주장을 펼쳤다. # [270]

2024년 4월 5일에는 유엔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채택되자 김선경 북한 외무성 국제기구담당 부상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담화에서 "미국과 그 추종 세력들이 조작한 반공화국 '인권결의' 채택 놀음을 엄중한 자주권 침해, 내정간섭 행위로 낙인하며 단호히 규탄 배격한다"고 밝혔으며, 북한인권결의안이 "우리 국가의 참다운 인권 보장 정책과 실상을 터무니없이 헐뜯는 온갖 허위 모략 자료들로 일관된 정치협잡문서에 불과하다"며 "'인권 옹호'"의 간판 밑에 우리의 주권을 침해하려는 적대 세력들의 책동은 파산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1 #2

다만 이렇게 자국의 인권 탄압을 외국의 날조라고 주장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북한은 이들 중에서도 막말의 수위가 차원이 다르다는 점에서 그 추악함이 더욱 강조된다. 아프리카 최악의 독재국가 에리트레아도 해외에서 자국에서의 인권 탄압을 규탄하는 것들을 모두 '망명자들과 서방권의 날조'라고 주장한 바가 있지만 적어도 에리트레아마저 북한이 하는 것처럼 대놓고 정부 차원 성명에다가 욕설을 쓰지는 않았으며,[271] 심지어 자신들의 만행을 폭로한 망명자들을 전부 살인마로 몬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다못해 우간다의 도살자 이디 아민도 자신의 만행에 대한 폭로들을 '망명자들의 날조'라고 주장하긴 했지만, 그조차 자신의 만행을 폭로한 망명자들을 살인마로 몰지는 못했으며, 심지어 북한을 능가하는 학정을 펼쳐 '아프리카의 폴 포트'라고 불린 희대의 독재자 마시아스 응게마조차 자신의 학정을 피해 고국 적도 기니에서 도망치는 사람들을 '이유없이 도망쳤다'고 주장했지,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쳤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10. 결론

2024년 현재 북한은 대중들에게 독재국가로 유명한 군사정권 시기 한국, 중국, 러시아, 이란, 심지어 한국에서 최악의 시기로 취급받는 일제강점기[272]애들 장난으로 만드는 수준의 전 세계 최악의 인권 실태를 보이는 국가인 것은 물론이고, 인권 개념이 확산된 제2차 세계 대전 후 전 세계에 존속했던 독재국가 중에서도 논외급인 민주 캄푸치아[273][274][275]를 제외하면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276], 마시아스 응게마 시기 적도 기니[277], 이디 아민 시기 우간다[278]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최악의 인권 탄압 체제를 가진 국가이며,[279][280] 이와 동시에 인권과 자유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독재국가 중 하나이다.

심지어 전술한 독재 체제들은 2001년에 붕괴한 1차 탈레반 정권을 제외하면 모두 1979년(정확히는 10.26 사건 이전)에 무너졌다. 참고로 선술한 이들이 집권하던 1970년대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들이 난립하던 시기였는데, 그때로부터 50년이 지난 2020년대 현 시점 북한의 통치는 답이 없는 수준인 1970년대의 독재국가들과 비교해도 매우 질이 나쁜 수준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민주 캄푸치아와 1차 탈레반 정권, (국가는 아니지만) ISIL은 일반적인 정권 교체 기간 수준에 불과한 4~5년 남짓밖에 가지 못했으며, 마시아스 응게마와 이디 아민도 10년 정도밖에(?) 가지 못한 것과 달리, 북한의 학정과 인권 탄압은 무려 76년, 현행 북한 체제 구축의 시작을 도서정리사업으로 잡아도 57년째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 북한은 이들 중에서도 매우 독특한 위치에 있는데, 북한과 동급으로 꼽히는 독재 국가들은 이디 아민 시기 우간다를 제외하면 모두 자신들이 다스린 국가를 전근대 내지 석기시대 수준으로 초토화시킨 것은 기본에 서구식 교육과 도서, 선전 목적을 제외한 문화 활동, TV 방송을 금지할 정도로 극단적이었는데, 북한(과 이디 아민 시기 우간다)은 자신이 통치한 국가를 석기시대 수준으로까지는 후퇴시키지 않았을뿐더러 전술한 국가들이 금하는 것을 모두 허용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런 나라들과 비슷한 수준으로 취급받고 있다.[281]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는 2014년 보고서에서 북한 정부, 그 기관과 구성원에 의해 조직적이고, 광범위하며, 심각한 인권침해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반인도 범죄들은 북한 정치체제의 핵심 요소들(essential components)을 이루고 있고, 그 심각성(Gravity), 규모(Scale), 성격(Nature)의 면에서 동 시대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가 없다고 하였다. 권은경 북한반인도범죄철폐국제연대 사무국장은 2021년 최근 탈북민들은 돈을 주고 이런 인권 유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증언을 한다고 하지만, 이는 국가가 주도적으로 인권침해 관행을 수정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 한국 정권의 대북 정책을 모두 일정 부분 지지하기도 했던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 동아일보 주성하 기자는 2021년 둘 다 김정일보다 김정은 정권이 더 통제가 심하다고 주장한다.[282] #1#2 독재를 유지하기 위함이 인권 유린의 주된 목적이므로 북한 정권은 국제 사회가 인권을 거론할 때마다 '레짐 체인지(체제의 전환)' 같은 소리를 하며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특히 한류 차단 같은 문제는 한국의 국익을 손상시키고 있다. 이를 통해 주민들이 한국이 '미제식민지', '해방'해야 할 대상이라는 선전에서 벗어날 확률은 낮아지지만, 배워야 할 나라라는 인식을 갖기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은 최근에 탈북한 사람일수록 적응 속도가 빠른데, 이들이 정부 몰래 자본주의나 한류를 접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금지하는 것을 회피하여 성평등, 시장 경제를 배우는 것이 북한 주민의 상황이다. 북한에서 부동산 투자를 해보거나 사기업을 운영해본 탈북자, 한국 드라마로 매너를 배운 사람들이 있는데 이게 다 불법이다. 만약 북한 당국의 한류 차단과 같은 '비사회주의'의 소탕이 성공하면, 주민들은 남조선의 해방을 위해 북한 당국의 대남 적대시 정책을 쉽게 옹호하게 되고, 통일 이후의 남북 간의 이질성이 극대화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과장 하나 안 보태고 말하자면, 북한에서 개선되고 있는 것은 모두 북한 주민들의 의지에 따른 것이지 정부의 선의가 아니다. 생활총화를 느슨하게 하거나 동원을 돈 주고 빠져나가는 것은 정부의 의지가 아니다. 최근 유튜브 등에서 북한 내부를 촬영한 영상을 보면 수도, 전기, 도로와 같은 공공재의 수준은 매우 열악하지만, 그 주민들의 옷이나 갖고 있는 물건[283]은 그나마 외부 수준을 따라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나마 북한 정부가 물가 관리 같은 것을 하고, 휴대전화도 허용은 해주는 경향이 있으나 중국의 덩샤오핑이나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정도만 되는 사람이 수뇌부에 있었다라도 수십년 전에 더 효율적인 정책을 펼쳤을 내용이다. 최근에는 빈부격차마저 한국보다 심해지고,[284] 상거래에 대한 보호장치가 한국보다 미흡하며, 뇌물로 국가가 운영되는 사회가 되었다.

현재까지 밝혀진 사례들과 몇몇 탈북자들의 과장된 거짓 증언들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극단적이지만, 북한 특유의 폐쇄적인 분위기를 고려하면 이마저도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크다. 탈북자가 많은 함경북도, 양강도 정도의 인권유린은 많이 알려졌지만, 그 밖의 지역은 영변 방사능 유출 같은 숨기기 힘든 사건을 빼고 잘 알려지지 않았다. 식량난 같은 일부 주장 중에 과장된 것이 있다는 주장도 있는데, 그 배경이 국제기구가 더 많은 돈을 받길 원함이라는 있다. # 90년대에는 군량미 비축을 위해 정권 차원에서 식량난을 과장했으며, 최근에는 대북지원조차 외부에 대한 '환상'을 차단하려 막는다는 주장이 정치권에서도 있다. 북한 정권은 문재인 정부의 식량 지원을 거절하고 2021년 식량난[285]을 주장하기도 했다. 증언에 의존해야 하는 한계 상 과장된 사실도 존재는 할 수 있으나, 교차검증을 마친 주장마저도 극단적이다. 앞서 언급한 주민의 의지라면 북한도 인권 개선이 가능할 수는 있다. 다만 김씨 일가를 제외한 모든 간부, 북한의 2~3인자로 언급되는 인물 마저도 외부 정보를 차단 당해 이것이 늦어질 뿐이다.

한국사 그 어떤 시대에도 연좌제천주교 박해 같은 사건은 있을 지언정, 주민을 관제 기관에 강제로 가입시킨 후 생활총화를 통해 상호비판 같은 것을 하여 주민들끼리 싸우게 만들거나 정책을 조직적으로 미화는 할 지언정 정교한 시나리오[286]로 밥 먹듯이 거짓 정치 선전을 하지는 않았다.

자신들이 만든 영화 '림꺽정'(임꺽정)조차 나중에 금지시켰다는 주장으로 미루어보면 스스로 전근대보다 더 강한 탄압을 생각하는 모양이다. 김일성 시대처럼 정부만이 먹을 것을 줄 수 있게 하여 개를 훈련하듯 충성파에게 많이 주고 정부의 통제망을 벗어난 사람은 식량 자체를 구하지 못하게 하여 굶게 한 적도 없었다. 개도 정상적인 사람은 생명권을 위협할 정도로 굶기지 않으니 그 주민들이 개만도 못한 취급을 받은 셈이다. 배급제가 무너진 것은 고난의 행군 시기로, 배급이 살아있는 평양의 일부 지역에서는 지금도 배급이 끊기면 우린 못 산다고 불안해하기도 한다고 한다. 특히 적국[287], 괴뢰 반동들의 문화'만'을 접했다고 사형에 처하며 그것을 신고를 하지 않은 사람도 처벌하는 경우는 크메르 루주 시절 캄보디아에도 없었다.

심지어는 통일이 되면 북한 기득권자들이 북한이탈주민들을 '민족의 반역자, 악당, 범죄자'라고 여기며 탈북자들부터 사살한다고 선언까지 했다는 증언[288][289]황장엽 바로 밑에서 각종 사상 관련 정책 책임자로 일했던 모 고위급 인사가 남한에게 '충분한 사죄'를 요구했다는 증언도 있다. 심지어 원래 그 고위급 인사는 남한에 '충분한 사죄와 보상'을 요구하려고 했다가 '보상'이란 말을 취소한 것이었다고 하며, 그 인사는 그 상상을 초월하는 망언 뒤에 '(남한이 우리에게 사죄하면) 우리도 감정을 앞세우기보다는 풀어 나가야 할 문제는 풀어 나갈 수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

그나마 2020년대에는 이미 해외 정보나 시장 경제 활동으로 정부의 도움을 받지 않고 더 잘 산 기억을 사람들이 가져, 북한의 선전의 허구성을 깨닫거나 북한 체제에 문제가 있다고 느끼기 시작한 북한 주민들이 많아졌다고는 하지만,[290] 여전히 많은 북한 주민들은 북한 체제의 문제가 지도자 일가와 체제 자체의 잘못이 아닌, 단순히 고위 공직자들의 비리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고 한다. # 또한 과거의 사례로, 1984~1985년에 북한에 언어실습생으로 유학간 바가 있는 안드레이 란코프가 1991년에 쓴 '평양의 지붕 밑'에서도 한 북한 주민이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은 간부들의 잘못이다. 그들은 수령님에게 추궁을 받지 않기 위하여 실제로 우리의 생활이 어떠한지를 숨기고 모두 과장하여 보고하고 있다. 그러니 수령님도 우리가 잘사는 줄로 알고 있다."고 말한 것을 인용했고, 그 의견은 란코프의 말로는 '물론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2023년 6월 일본 언론 아시아프레스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군사력 강화에만 치중하는 북한 정권의 정책을 지지하는 사람이 있냐는 질문에 북한의 정보원은 "나는 솔직히 말해서 안 믿는데, 이렇게 살기 힘들어도 병X같은 애들이 있습니다. 충성분자들이지. 회의 때도 핏대 세우고, 당만 믿고, 이런 머저리 같은 애들이 있습니다."라고 언급했다. 이런 충성분자들은 기업소의 간부 등으로 추정된다. # 일반 주민들은 살 날이 얼마 안 남은 노인이 아니면 정책에 대한 적 극적인 저항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반면 이웃이 죽어나가든 말든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사람들은 자신이 김정은에게 이용당하는지 모르고 눈앞에서 자기에게 대들면 잡혀간다는 알량한 권력에 만족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10.1. 외국에서의 인식

이런 행각들로 인해 북한은 국제적으로 독재 국가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다. 예를 들어 투르크메니스탄은 '중앙아시아의 북한', 에리트레아는 '아프리카의 북한', 공산정권 시기 알바니아루마니아[291], 오늘날의 벨라루스는 '유럽의 북한',[292] 싱가포르는 '잘 사는 북한'이라고 불리고 있다.[293] 거기에다가 자신들의 나라가 조금이라도 자유를 억압한다 싶으면 "여기가 북한이냐"는 소리가 나오는 마당이다. 기사[294] 심지어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북한의 독재가 유명할 정도이며, #[295] 2017년 이스라엘에서는 이스라엘 방송 개편 시도에 항의하며 리춘히[296] 사진을 들고 시위한 사람까지 나왔다. # 이집트의 인권단체에서도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압델 파타 엘 시시에 대해 "엘 시시는 이집트를 중동의 북한으로 만들고 있다"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 서양권 유튜버들 역시 독재국가, 독재자 관련 영상을 만들 때 '북한보다 더 나쁜 ~' 같은 식으로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예시[297]

독재국가이자 북한의 우방국인 중국에서의 반응을 살펴보면 북한을 방문한 중국인도 '김씨 가문은 상상 이상으로 사람들의 정신과 신체를 통제하고 있다'고 평했는데, 독재국가에 사는 사람이 보기에도 북한의 체제가 매우 비정상적인 수준이라는 방증이다.[298] 베플의 댓글 참조 그리고 중국에 있는 북한 노동자들의 김일성 사망 30주기 추도를 본 중국인들은 "자기 부모가 사망해도 3년 상을 치르고 마는 데 비해 북조선의 (김일성 주석) 30년 애도는 너무하다"고 비야냥거렸다. # 이렇다보니 중국에서 북한은 조금만 위에 잘못 보여도 다 끌고 가는 나라라며 비꼬는 유머가 나돌고 있다. 원문한국어 번역본 당장 서조선이라는 말이 '서쪽에 있는 북조선(북한)'이란 의미에서 나온 말이다.

소련 시절부터 러시아어로 번역된 북한의 체제 선전물을 개그 잡지로 간주하여 일부러 구독해 읽은 사람들이 많았던 러시아에서도 북한은 '사형이 일상화되고[299], 이념적 금지 사항을 위반한 경우 어린이를 포함해 잔인한 처벌이 흔한 나라'라고 알려졌으며, 때문에 어린아이들을 송도원국제소년단야영소로 보내는 것을 꺼리는 러시아 학부모들도 많다고 한다. # 러시아 관광객들은 북한을 방문할 때 감옥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

보츠와나는 2014년 2월 17일 UN이 쓴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최종보고서가 나오자[300] 북한의 인권 실태에 분개하여 그로부터 고작 이틀 후인 2014년 2월 19일 북한과 단교했으며,[301] 모크위치 마시시 부통령[302]은 2016년 9월 24일 무려 UN 연설에서 북한을 대놓고 악당국가, UN 회원국 자격도 없다[303]고 말하는 패기를 보여줬다. # 그 전에 이안 카마 보츠와나 대통령은 2015년 10월 23일 한-보츠와나 정상회담 후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북한과의 단교 배경을 밝히며 북한 지도부가 석기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 사실 보츠와나는 아프리카 본토에서 독립 초부터 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한 유일무이한 국가이며[304], 이와 함께 아프리카 본토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건실한 국가이기도 하다.[305] 동아시아의 유일무이한 극빈국이자 중국과도 궤를 달리하는 독재국가인 북한과 완벽히 대조되는 셈.

넷플릭스에서 악명 높은 독재자들을 다룬 6부작 다큐멘터리 폭군이 되는 법에서도 김씨 3대는 가장 성공한 폭군으로서 맨 마지막에 언급되는데, 이는 권력을 잃고 몰락한 다른 독재자들과는 달리 독재 권력을 영원히 유지한 것이 독재자를 연구하는 입장에서도 매우 독특한 사례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김씨 3대는 전세계에서 존경을 받고 있다는 북한의 선전과는 정반대로 각국 네티즌들의 풍자거리로 전락한 상황이다.[306]

좌파 진영에서의 인식은 좋지 않은데,[307] 예를 들어 프랑스 공산당 기관지 '뤼마니테'는 2000년 5월 17일호에 북한에 대해 "북한 체제를 공산주의와 동류로 취급하는 것을 참을 수 없으며, 북한 스스로도 감히 공산주의를 표방한다는 사실을 좌시할 수 없다"고 언급하였고, # 태영호의 증언에 따르면 영국 공산당을 위시한 일부 공산당이 우익 정당보다 적극적으로 북한을 비난하는 것이 참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한다. #

10.2. 북한 체제에서의 사망자 수는?

이렇게 폭압적인 북한 체제 하에서 사망한 사람 수는 현재까지도 불명이며, 이에 대한 연구 자료도 드문데, 이는 북한의 인권 탄압이 2024년 기준으로 76년이라는 기간 동안 장기적으로 이어진 것은 물론이고 북한이 극히 폐쇄적으로 나라를 운영하는 데다가 인권 탄압 자체를 전면 부인하는 만큼 외부에 자국의 인권 탄압에 대한 자료를 제공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다만 북한 체제에서의 사망자 수를 추정한 사람이 드물게 있긴 하다. 민주평화론을 주창한 미국의 정치학자 루돌프 럼멜(Rudolph Joseph Rummel, 1932~2014)은 1994년까지 166.3만 명이 북한의 인권 탄압으로 사망했고[308] 고난의 행군으로 250만 명이 추가적으로 사망했다고 봤으며, 1997년에 출판된 '공산주의 흑서(The Black Book of Communism)'의 공동저자이기도 한 프랑스의 역사학자 피에르 리굴로(Pierre Rigoulot, 1944~)[309]는 전술한 책에서 북한에서 10만 명이 처형되고 150만 명이 강제수용소에서 사망했으며[310] 기근(고난의 행군)으로 50만 명이 죽고 6.25 전쟁 및 남한에 대한 자살특공대로 130만 명이 죽어 총합 340만 명이 북한 체제에 희생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정반대로 미국의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는 북한 지도부가 정치범수용소, 대기근, 공개 처형에 대한 책임과 비판은 피할 수가 없다고 보면서도 북한의 토지개혁이 다른 공산권보다는 덜 잔혹했다는 것[311] 등을 근거로 들면서 북한이 정적을 그렇게까지 많이 죽였다는 증거는 없다고 보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공정성, 신뢰성 논란이 있기는 하나,[312] 적어도 6.25 전쟁과 고난의 행군을 빼고 봐도 북한의 인권 탄압 자체만으로 사망한 사람이 수십만 단위에 이른다는 것 자체는 사실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상술한 것처럼 김일성 시기에 숙청된 종교인만의 총합이 40만 명에 달하는 데다가 이와 비슷하게 1958년부터 1960년까지 '중앙당집중지도사업'으로 숙청된 사람이 320만 명이란 것,[313] 상술한 정치범수용소 사망자 통계를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UN의 통계에 따르자면, 1960년 기준으로 북한 인구는 1165만 6천 명 정도였는데, 정치범수용소의 수용 인원을 감안하면 이들 전원을 정치범수용소로 끌고 갔다는 것은 망상 수준의 주장이긴 하나, 이들 중 1/10인 32만 명만(?)이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 옥사하거나 처형되었다고 가정해도 당시 인구의 2.7%(!)를 옥사시키거나 처형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김일성이 사망한 1994년 인구(2210만 5천 명)에다가 대입해도 당시 인구의 1.4%에 달한다.

영어 위키피디아 사망자 수에 따른 인위적 재해 목록 항목에서는 북한 체제 하에서의 사망자 추정치 통계의 평균이 157만 6,388명에 다다를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들 문서에 언급된 학살자 중에서는 북한 이상의 대규모 학살을 벌인 지도자가 아주 드문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대부분 2차 대전 전에 집권했거나 외침, 내전 등을 통해 인명을 살상한 케이스고, 2차 대전 후에 집권한 독재자 중 북한의 독재 정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학살한 지도자는 대약진 운동의 실패를 야기한 마오쩌둥, 킬링필드를 벌인 폴 포트, 다르푸르 학살을 일으킨 오마르 알 바시르 이 셋밖에 없다는 것과 이들이 인류 역사상 최악의 학살자로 꼽히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독재 정권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통계청의 통계에 따른 2023년 북한 인구가 약 2,570만 명으로 추정되니, 상기한 영어 위키피디아의 추산치를 고려하면 북한 정권은 75년간 인구의 약 6.1%를 죽였다는 말이 된다. 마오쩌둥과 알 바시르가 (상기한 링크에 따르면) 인구의 3.7%/3.8%를 죽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북한이 얼마나 극악무도한 국가인지 알 수 있으며, 심지어 북한 인구는 실제보다 과대포장된 것이 정설이란 것을 감안하면 희생자 비율은 6.1%보다 더 높아진다.

정치범수용소/북한/실상에서 나온 바에 따르면 정치범수용소에서 죽어간 북한 주민의 수는 최소 38만, 최대 100만으로 추정되며, 현재로써는 40~70만 명이 가장 가능성이 높은 수치다. 고난의 행군 시기 사망자도 공식 수치로만 30~40만 명이지만, 실제로는 100만 명이 넘는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314] 이쯤이면 북한 체제와 그 결과물로 인해 죽은 사람은 최소 70만, 최대 17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결론이 나온다. 이것도 상기한 2023년 북한 인구를 감안하면 북한 체제는 현재 북한 인구의 2.7~6.6%를 죽였다는 말이 된다!!

6.25 전쟁 이후 북한 정권의 학살은 카틴 학살처럼 전시에 주로 벌어지는 방식은 전혀 쓰지 않는 대신[315] 광범위한 숙청과 함께 대규모 기근 조장[316], 정치범수용소 구금, 강제노동, 오지로의 강제 추방 등의 방식을 동원해 국민들을 서서히 말라죽어가게 만드는 방식을 썼는데, 이는 이오시프 스탈린이 정적 탄압, 대량 학살에 쓰던 방식과도 매우 비슷하다.[317]

11. 타 사례와의 비교

11.1. 다른 독재 국가들과의 비교

사실 북한을 제외하고도 인권 개념이 희박한 독재 국가들은 오늘날에도 수도 없이 많다. 예를 들어 민주주의 지수를 기준으로 하면 독재 국가를 의미하는 권위주의 체제의 경우 2022년 기준으로 59개국이 해당된다. 특히 북한의 경우에는 전술한 것처럼 2차 대전 후 최악의 독재국가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수준의 인권 실태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이고 2020년대에 현존하고 있는 많은 독재 국가들에 비해 더욱 광범위하고, 잔인하며, 억압적이고, 지속적인 인권 침해가 자행되고 있으며, 국민들이 지배계층의 권력욕이 결부되는 정치적, 시민적, 경제적 권리에서는 21세기에 그 적수가 없는 수준이다. 타 독재 국가들의 인권 실태를 북한의 인권 실태와 견주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참고로 하술할 타 국가들과 북한의 인권 실태에 대한 비교는 북한 이외의 독재 국가의 인권 상태가 양호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의 인권 상태의 심각성을 강조하는 서술이다.
  • 탈레반 치하의 아프가니스탄: 가혹한 샤리아에 입각한 여성의 고등 교육, 남성과 동행하지 않은 여성의 외출, 공공장소에서 음악 감상 등을 금지하는 행위는 그 북한에서도 실시되지 않고 있다. 다만 아프가니스탄은 2022년 기준 인터넷 사용률(22.9%)이 아시아에서 2번째로 낮긴 해도 북한처럼 인터넷 자체를 통제하는 것도 아니며,[318] 적어도 현지에서 여성들이 간혹 이름까지 공개해가거나 심지어는 문자 그대로 시위까지 열어가며 억울함을 하소연할 수는 있으며, 거리에 기습적인 검문소를 운영하긴 해도 허가를 받아야 국내 여행을 하게 하는 직접적인 제한만큼은 가하지 않는다. # 물론 영화와 드라마에 여성이 출연할 수 없게 하고 # TV의 여성 진행자에게 얼굴을 가릴 것을 강요하지만, # 그것도 아예 영화와 TV 자체를 금지시키던, 한마디로 민주 캄푸치아에 준할 정도로 억압적이던 정권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토후국 시대와 비교하면 정말 많이 온건해진 것이다. 이렇듯 탈레반은 이전보다는 통제를 완화하고 있음에도 지도층 사이에서도 자기들이 (이전보다 완화하여) 시행하는 정책이 지나치게 극단적이라는 지적이 활발히 나오고 있는 판이다. #
  • 투르크메니스탄: 북한과 비슷하게 최고 지도자에 대한 우상화를 자행하고, 세계의 자유 지수가 북한보다도 낮게 나온 데다가 2023년 현재까지도 코로나 19 확진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유일한 나라로 악명이 높다. 하나 그런 투르크메니스탄마저 인터넷 사용률이 북한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은 25.3%인 데다가[319] 국내 여행을 특별 허가를 받아야 가능하게 하지는 않지만 소련처럼 국내 여행을 하려면 '국내 여권'이 필요하다고 하며, 40세 미만의 국민들과 반체제 인사, 수감자의 가족은 출국이 허용되지 않게 해도 선별된 사람 외의 해외 출국 자체를 금지시키지는 않는다.[320] 이 국가도 모든 종교는 금지시키지는 않을 뿐더러 무엇보다 사형제도 1999년에 폐지한 데다가, 1인당 GDP가 중앙아시아에서 최상위권에 이를 정도의[321] 중진국에 중동의 산유국에 준하는 수준의 복지 정책을 실시하는 등[322] 최소한의 인권 존중 노력은 보여주고 있다. 문화 검열 측면에서도 일본 만화인 귀멸의 칼날 러시아어 번역본을 판매하고 인터넷을 통해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한국 대중문화가 유행하는 것만으로도 북한보다는 훨씬 널널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에리트레아: 21세기 독재국가 중 독재 체제와 인권 실태, 폐쇄성이 북한과 가장 근접한 곳이라고 평가받으며, 아예 독재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북한을 참조했나 싶을 정도로 여러 면에서 북한과 판박이인 국가다. 국가 통치 체제는 아예 북한을 참고하여 모방하였다. 특히 에리트레아는 구색정당조차 없는 완벽한 일당제를 2020년대에도 운영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으며, 형식적으로나마 선거를 개최하는 북한과 다르게 20년 이상 선거 자체가 실시되지 않고 있고, 언론통제도 극심하여 북한도 평양에 해외 언론사 지국을 두는 것과 해외 특파원이 입국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과 달리 해외 특파원의 입국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데다가, 북한조차 코로나 19 백신을 받아들인 것과 정반대로 엔데믹 전까지 코로나 19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은 유일한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에리트레아마저 적어도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 대통령에 대한 우상화는 없고,[323] 2022년 기준으로 인터넷 사용률이 고작 6.8%에 달할 정도로 인터넷 사용률이 매우 낮긴 해도[324] 인터넷을 완전히 금지하기는커녕 오히려 SNS 사용도 제한적으로나마 허용하고 있는 데다가 종교 탄압으로 악명이 높긴 해도 믿을 수 있는 종교가 있긴 하고, 무엇보다도 어린이들에게 극심한 세뇌 교육과 강제적인 단체 생활을 강요하는 일도 전혀 없기에 에리트레아의 어린이들은 북한의 어린이들에 비해서는 어느 정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 심지어 2017년에는 수도 아스마라에서 문자 그대로 아페웨르키의 퇴진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또한 에리트레아는 독립하기도 전이던 1989년에 마지막 사형을 집행한 이후로 사형을 집행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며, 형식적인 사형 선고조차 없다. 다만 초법적 살인과 수용소에서의 의문사는 만연한 상황이라 사실상 아무 의미는 없긴 하다. 그리고 인권 탄압과는 별개이지만 북한의 김씨왕조가 인류 역사상 가장 사치스러운 독재자들인 것과 별개로[325]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는 부패에 가담하기는커녕 매우 검소하다고 알려져있으며 국가 통치만 지나치게 극악한 학정이라 그렇지 이오시프 스탈린과 함께 독재자들 중 가장 검소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 중국: 마오쩌둥 집권기 이후, 덩샤오핑 집권기부터 시진핑 집권 초기인 2010년대 중반까지는 어느 정도 독재의 강도가 완화되어 지도자들을 거리에서 욕해도 그냥 미친 사람 취급하지 잡아가지는 않을 정도였다. 류샤오보와 같은 전세계적으로 매우 큰 영향을 행사하는 저명한 인권운동가의 경우 철저하게 탄압했고 감옥에서 간암에 걸려도 석방도, 치료도 안하고 방치해두다가 사실상 간암 말기가 되어서 감옥에서 내보내주기만 하여 결국 사망하게 되었지만, 북한은 모든 사람들의 사소한 비판뿐만 아니라 자그마한 의심만으로 정치적인 탄압과 연좌제적인 억압을 당하고 석방 자체가 불가능한 완전통제구역으로 보내버리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그리고 문화대혁명 시기를 제외하면 제한적으로나마 합법적인 종교 활동도 허용되며, 해외 여행은 물론 정치적 억압에서의 탈피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해외 이민도 허용된다. ##2 인권 운동가들이 출국 금지 처분을 받기도 하며 홍콩 민주화 운동 탄압과 위구르, 티베트 탄압 역시 악명높지만 중국에서 여행의 자유를 가장 제한하는 기관인 신장 재교육 캠프마저 존재를 부인해오다가 국제적인 비판에 굴복하고는 마지못해 존재를 인정하고는[326] 해외 언론의 취재를 허락하거나 국제적으로 중국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된 탱크맨은 아예 감옥에 가두지도 못한 채 멀쩡히 놔두는 등[327] 최소한의 해외의 시선에 대해서 의식하고는 있다.[328] 심지어 그 신장 위구르 캠프조차 10대 중반 이하의 어린이들은 최대한 가두지 않으려 하고, 기숙 학교에 보내 부모님과 떨어뜨려놔도 2주에 한 번만큼은 부모님을 만날 수 있게 허락해 주고 있으며, # 위구르족 유출을 유도하기 위해 역설적으로 위구르인의 혼인 목적 이민[329]은 허용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은 마오쩌둥 시기인 1958년부터 후커우(戶口) 제도를 실시해 농촌 사람들이 도시로 이주하는 것을 제한했으나, 그것조차 주거지를 옮기는 것을 어렵게 한 거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 자체를 어렵게 한 것은 아니었고, 심지어 문화대혁명 시기에조차 호적을 동결시키며 거주지 이동을 사실상 금지시키긴 했어도 국내 여행 자체를 허가를 받아야만 가능하게 하지는 않았다.
물론 시진핑이 집권하며 중국의 인권 실태가 심각하게 악화되었다고 평가받고 정권에 대한 비판을 한다면 정치적인 탄압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즉결 처형, 공개 처형, 온 가족의 투옥과 같은 생명적 탄압을 받을 정도는 아니다.[330] 또한 중국의 문화 검열이 아무리 심하다고 해도 국민들이 한국, 일본, 미국 말투로 말하거나 그 말투를 가르쳐준다고 강제노동형에 처하거나 수용소에 가두거나 공개처형하지는 않는 것은 물론 이들의 대중문화는 (비록 극심한 검열을 받아야 한다는 조건이 있긴 해도) 자유롭게 접할 수 있고, 국가가 허락하지 않는 해외 대중문화를 본다는 이유만으로 구금되는 경우도 없는 것과 해외 인터넷을 차단하기는 해도 인터넷 사용은 말할 것도 없고 VPN 사용도 제한적으로나마[331] 허용하고 있는 것을 보면 북한에 비해서는 문화 통제도 비할 바 없이 널널하다. 또 지상락원, 세상에 부럼없어라 같은 프로파간다로 극빈국인 자국의 현실을 왜곡하며 북한이 극빈국이라는 것을 전면 부정하는 북한과 정반대로 중국은 자신들이 GDP 세계 2위로 자리잡은 후에도 자국에 '문명과는 거리가 먼 수준의' 극빈층이 있다는 것을 전혀 부인하지 않고 대내적으로도 그 존재를 공개하고 있다.[332] 또 북한과 달리 공산당 내에서 시진핑 비판 자료를 읽어도 운이 나빠야 제명 수준에 그치고 있다. # 역사왜곡과 선대 지도자 비판도 차원이 다른 게 중국도 대약진운동, 문화대혁명에 대한 비판과 참상 거론은 공칠과삼이라며 대놓고 허용해주고 있지만[333], 북한은 선대 지도자에 대한 비판과 말도 안 되는 역사왜곡을 반박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있다.
  • 대한민국 군사정권: 군사정권 당시 민주주의 파괴와 인권 탄압, 중앙집권적 체제와 사회적 억압이 극심했다는 평가가 많다고 해도, 군사정권 시기의 한국은 이웅평이 북한 체제의 열등을 느끼고 자유를 위해 1983년에 남으로 귀순했을만큼 훨씬 민주적인 국가였다.[334] 유신헌법 통과 이전의 대한민국은 주로 러시아에 많이 비교되었으며, 그 이후의 대한민국은 중국과 비견된다는 것을 감안하면[335] 북한과는 아예 비교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확실하다. 물론 군사정권 시대에는 간첩 누명을 쓴 사람의 일가족이 '간첩의 가족'이라고 손가락질당하며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기는 했지만, 적어도 온 가족이 통째로 일가족 간첩단 조작 사건에 휘말려 누명을 쓰는 경우와 반독재 활동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구금된 사람의 아내 등의 가족이 '조사'를 명목으로 고문을 당하는 사례가 드물게나마 있었던 것을 제외하면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법적인 연좌제가 적용되어 구금되는 사례는 전혀 없었다. 실향민 가족, 월남자 가족들은 암묵적으로 차별을 받았으며 자진 월북자와 납북자 가족들이 더한 차별을 받았던 사례는 있지만, 이런 이유만으로 명문대에 입학하거나 (실향민 가족과 월남자에 한해서는) 공무원으로 일하는 것 자체를 완벽히 금지시키지는 않았다. 실제로 소설가 이문열은 아버지가 남조선로동당 출신에 월북자였기에 어릴 적에 차별 속에서 자라오긴 했어도 서울대학교에 진학하는 데에 성공했다. 적대계층의 가족들이 일반 대학에 진학하는 것조차 막는 북한과는 정반대인 셈.
물론 국내 여행에 대한 제한이라는 개념 자체도 없었고,[336][337] 해외 여행을 제한하긴 했어도 무분별한 외화 유출을 막기 위해서라는 나름의 사유가 있었기에[338] 해외 출국 자체를 사실상 금지하는 북한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다. 게다가 김지하, 양성우 등의 반체제 작가들도 필화에 걸려 수감되기는 했어도 북한과 비교하면 별다른 목숨의 위협 없이 공개적으로 체제를 비판하는 문학작품을 만들 수도 있었고, 땡전뉴스처럼 언론이 대통령을 찬양하고 공공기관과 몇몇 학교 교실, 직장에 대통령의 초상화가 걸리는 등의 우상화는 있었어도 북한처럼 아예 새로운 세계관을 만들 정도까지는 아니었으며, 초등학생에게 반공 포스터를 그리게 하는 등의 반공 사상 교육을 하긴 했어도 # 북한처럼 유치원에서부터 반공 사상을 가르치거나 초등학교에서부터 대놓고 '속된 말을 써서 빨갱이 놈들의 더러운 몰골을 나타내야 합니다'라고 교과서에 비속어를 넣어 가르친다는 개념 자체도 없었다. 거기다, 당시 초등학생들은 상당수가 장래희망으로 대통령을 지망했는데, 이는 군사정권기 극한에 치달은 대통령 직책의 위상을 보여주는 사례로 인용되기도 하나, 북한은 아예 지도자 친족을 제외하면 지도자를 희망으로 삼는 것 개념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치적 자유도조차 군사정권기 대한민국이 월등히 높다. 언론의 자유도 남한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월등했는데, 남한의 언론은 북한이라면 일체 보도하지 않을 사건사고는 말할 것도 없고 정치적 사건까지도 비교적 자유롭게 다뤘다.[339]
거기다가 막걸리 보안법으로 악명높은 긴급조치 시기에도 당시 대통령을 사석에서 비난했다는 이유만으로 옥살이를 한 사람이 수두룩하긴 했어도 대통령을 비난한 사람 본인만이 감옥에 갔지 가족들까지 감옥에 끌려가는 일은 전혀 없었던 데다가 평균적으로는 3~4년 징역에 그친 것은 물론 아예 집행유예면소를 선고받고 풀려나는 경우도 상당했던 데다가, 북한의 한류 탄압 법령과는 정반대로 아예 공산당 선언 등의 공산주의 서적 인쇄, 유포마저 이적행위 목적으로서 인정할 만한 근거가 확인되지 않았다면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관술과 같은 사회주의 성향 독립운동가들의 활동 기록이 사실상 말소되거나 반독재 활동을 한 독립운동가들이 탄압을 받긴 했어도[340] 군사정권에게 협조한 독립운동가를 제외한 모든 독립운동가들의 행적이 사실상 말소되지는 않았다.[341] 물론 박정희, 전두환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서울에서 쫓겨나거나 평양문화어보호법처럼 북한 사투리(와 비슷하게 들리는 말투)를 쓰거나 이를 듣고도 고발하지 않았다고 빨갱이로 몰려 3대는커녕 본인이라도 감옥에 가는 일은 전혀 없었다. 심지어 박정희 집권 초 진짜로 쿠데타를 모의했던 원충연은 사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으며, 전두환 시기 쿠데타 모의 누명을 쓴 김대중은 (국제적 압박을 감안하더라도) 사형에서 무기징역, 징역 20년으로 감형된 후 2년여 만에 석방되었다.
  • 엔베르 호자 치하의 알바니아: 오늘날의 에리트레아와 함께 독재 체제가 북한의 수준에 가장 근접했다고 볼 수 있는 최악의 독재국가인데, 호자는 북한 수준의 억압적이면서도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하면서 종교를 극단적으로 탄압했고, 특히 쇄국 정책 등의 일부 분야는 그 북한도 넘어서는 수준으로 극악했다.[342] 하지만 그 호자도 우상화를 하긴 해도 지도자를 교주이자 신으로 삼은 사이비 종교를 만들고는 이를 전국민이 믿을 것을 강요하는 정도까지는 아니었고, 워낙 폐쇄적이었던 나머지 역으로 해외에는 아무런 해도 미치지 않았던 데다가, 고등학생 이하의 어린이들에게까지 지속적인 가스라이팅과 강제 노동을 시켜대지는 않았고, 심지어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 어린이들이 교육을 받아야 하는 나이가 되면 수용소에서 풀어주고 성인이 될 때까지는 어떠한 일도 시키지 않았다.[343] 참고자료 즉, 호자의 독재는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처럼 단순히 중앙집권적인 면모와 폐쇄성만 북한보다 강할 뿐이지 독재 자체만으로 보면 선술한 국가들이나 북한보다는 나았기에 이들만큼의 악명은 비교적 부족한 편이다. 게다가 호자는 알바니아의 여성 인권을 개선하거나 명예살인 악습인 카눈을 금지시키고 식량의 자급자족을 성공시키는 등의 치적도 있기에, 적어도 독재와 무관한 분야에서의 국가 경영 면에 한해서는 김일성과 비교하기 미안한 수준이다.
  • 시리아: 서아시아의 세속주의 극좌정당인 바트당의 알아사드 부자가 통치하고 있으며 현재 북한 다음으로 오랫동안 장기집권하는 세습 체제가 이어지는 국가이다. 정치 체제 자체로만 보자면 북한과 별다를 바 없는 사실상 전제군주제와 다름없는 형태이나 이쪽은 세속주의를 추구하는 극좌정당 출신 독재자답게 비교적 서구 문화 개방에 우호적이다. 거기다 사담 후세인만큼이나 억압적이었던 하페즈 알 아사드와는 달리 그 아들 바샤르 알 아사드는 아버지에 비해 유한 통치를 하고 있다고 알려져있다. 물론, 바샤르 역시 시리아 내전 당시 매우 잔혹한 학살을 여럿 했기 때문에 세계적인 비난을 받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시리아는 현재 내전중이라 북한보다 딱히 살기 좋다고 보기 어려우며, 오히려 관점에 따라서는 이쪽이 훨씬 살기 어렵다. 물론 정권 차원에서의 탄압으로만 비교하자면 북한 쪽이 훨씬 심하다.

11.2. 일제강점기와의 비교

일제 시기엔 목숨 걸고 독립투쟁을 해도 본인만 체포되고, 아주 예외적 상황이 아니면 처형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대표적으로 김일성은 빨치산 지휘관이었고 일본군도 죽이고 했음에도 가족은 만경대에서 농사를 짓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김정은은 반체제 활동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자기를 향해 욕만 해도 본인을 죽이고, 가족을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수용소로 보내고 있습니다.
주성하, 2023년 3월 10일 자유아시아방송에서 [주성하의 서울살이] 일제도 경악할 김정은의 공포통치

외세의 식민지배를 당하고 무수히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목숨을 잃은 데다가 2차 세계 대전 당시 전쟁터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끌려갔던 비극적인 시기인 일제강점기를 몸소 겪은 북한의 노인들은 문서 최상단의 인용문과 탈북민 출신 언론인 강철환의 말처럼 "차라리 왜정 시기가 낫다"라고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예시 후술할 내용들을 보면 그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란 것을 몸소 체감하게 될 것이다.

일제 침략의 수뇌부를 처단한 유명 독립운동가들이 순국한 후에도 이들의 자식들과 아내, 부모님과 형제들은 '불령선인'의 가족이라는 이유로 숨막히는 감시 등의 핍박을 받을지언정 '불령선인'의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모조리 감옥에 수감되거나 처형되지는 않았는데, 물론 육체적 핍박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라 이봉창 의사의 형 이범태는 동생의 의거 후 느닷없이 1년 6개월간 옥고까지 치러야 했고, 안중근 의사의 장남 안문생은 한술 더 떠 가족들과 함께 연해주로 피신했다가 고작 7살 때 누군가가 둔 과자를 먹고 독사했다. 다만 이들은 온 가족이 모조리 감옥에 끌려가거나 처형된 것도 아니고, 특히 상술한 이범태는 감옥에서 풀려난 후 4.19 혁명 직전인 1959년까지도 생존해 있었고 이봉창 의사의 아버지 이진규는 이봉창 의사의 순국 12년 후인 1944년까지도 사지 멀쩡히 살아 있었으며,[344] # 윤봉길 의사의 처 배용순6월 항쟁 후인 1988년까지 천수를 누렸다. 더욱이 한인애국단 단장으로서 이봉창 의사과 윤봉길 의사의 의거를 주도한 김구의 어머니 곽낙원은 두 의사의 의거, 순국으로부터 7년 뒤인 1939년에 향년 82세를 일기로 병원에서 자연사했다.[345][346]

물론 일제가 독립운동가들의 가족을 감시하고 핍박한 것도 모자라 '대역죄인'의 형제를 가두거나 아들을 살해하는 만행을 저지른 것 용납할 수 없는 졸렬한 짓인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그 일제마저 북한처럼 단순 식민지 체제에 저항한 것도 아니고, 겨우 자식이 실수로 천황 사진을 훼손했다는 이유만으로 3대를 모조리 수용소에 가두거나 천황 사진에 손가락질한 임산부를 공개처형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고,[347][348] 심지어는 독립운동을 주도하거나 천황 일가의 암살을 시도했다는 이유만으로 문자 그대로 7촌 조카의 일가족까지[349] 강제로 정치범수용소에 가두고 11촌까지 부라쿠민으로 강등시키거나 후술할 바와 같이 평시에 '불령선인'의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젖먹이 아기까지 살해하는 악행은 저지르지 않았다. 북한에서 옛날에 장군의 아들이라는 남한 영화가 암암리에 유행할 때 북한 주민들은 '일본군대를 몰살시킨 장군아들이 어떻게 종로 바닥을 활개하는 거지?'하며 놀라워했을 정도니 말 다한 셈이며, 당장 북한 김씨 3부자의 시조인 김일성보천보 전투로 (과장된) 명성이 한반도에 알려졌어도 본인의 조부모와 동생은 감옥에 끌려가기는커녕 사지 멀쩡히 살아 있었다.

그리고 일제강점기에는 수탈과 배고픔에 시달린 나머지 만주산 좁쌀[350]과 콩깻묵,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한 사람들이 많긴 했어도 인육까지 먹어야 하는 상황과 고난의 행군과 같이 만 단위로 굶어죽는 지경에까지는 이르지 않았고, '반동분자'로 분류되지 않은 사람들조차 한 개 도(그 이전에는 )를 넘어가려고 해도 려행증이 필요한 데다가 려행증 없이 다른 지역을 넘나들면 3개월 강제노동형이나 벌금형에 처해져야 하는 북한과 달리 일제강점기에는 '불령선인'들조차 국내의 다른 지역을 마음껏 드나들 수 있었고, 국가가 허락하지 않은 해외 출국을 완전히 금지하는 북한과는 달리 일제강점기에는 해외 여행도 비교적 자유로웠기에 여행을 목적으로 해외로 출국한 사람도 아주 드물게나마 있었다. 오히려 일제는 (실질 의도가 조선이 일본에 비해 열등한 나라라는 것을 느끼게 하라는 매우 불순한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조선인 학생들을 일본으로 수학여행보내주기도 했다.

그리고 민족 말살 통치기에 어린이들에게 히로히토 천황을 숭배하라는 세뇌 교육이 행해지긴 했어도 북한처럼 보육원에서부터 부모님의 이름보다 천황의 이름을 먼저 외우라는 식은 아니었고, 조선총독부조선어 사용을 전면 금지하며 조선어를 사용하면 막대한 과태료를 물고 전화를 강제로 끊게 하긴 했어도 # 천황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님'을 붙여 쓰거나 조선어를 듣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조선인을 징용, 정신대로 끌고 갈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심지어 북한은 일본군 위안부의 수준을 한 술 뛰어넘어 평시에 지도자를 위한 위안부[351]까지 둔 바가 있다.

그리고 살기 위해 북한을 탈출하는 탈북자들을 국가의 반역자로 간주하며 탈북하려는 사람들을 현장에서 총으로 사살하는 북한과는 달리 일제는 한반도 사람들이 생존을 넘어 독립운동을 위해 간도, 만주, 연해주로 도망치는 것까지 막지는 않았으며, 상술한 것처럼 온건파 판사마저 자신들의 인권 탄압을 폭로한 탈북자들을 "살인마들이 외지로 도피해 거짓 증언을 하고 있다"고 우기는 북한과는 달리[352] 조선총독부도 총독 차원에서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는 조선인들을 공식적으로 "살인마들이 외지로 도피해 마적단 활동을 하고 있다"고 우기지는 못했다.

또한 언론 통제의 강도도 달랐다. 일제강점기에는 이봉창 의사에 대해 '대역범'이라고 비방하며, 3.1 운동을 처음에는 전혀 보도하지 않다가 시작 5일 뒤(1919년 3월 6일)에야 사설에 '각지의 소요사건'으로 폄하 보도한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조차 민족 말살 통치기인 1937년에 조선 내에서 활동하던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이재유가 체포되자 대놓고 지면 전체를 '이재유 특집'으로 도배하는 등 일제가 지배하는 땅에서도 '반체제 인사'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등, 왜곡되게나마 독립운동의 존재를 알렸었다. 북한의 신문들은 해외/국내에 동족(북한)에 저항하는 운동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식을 전혀 보도하지 않고,[353] 언론에 일체 내보내지 않아 북한 언론을 접해본 사람들은 정말 재미가 없다는 평가를 늘상 할 정도에 2018년에 김정은이 교통사고 피해를 입은 중국인 방문객들을 위문방문한 소식이 로동신문에 보도된 것이 화제가 될 정도였다. 물론 북한은 외국의 참사는 비방 목적으로 열심히 보도한다. #] 물론 독립운동을 '대역범' '소요사건'으로 폄하한 것 역시 명백한 언론탄압의 증거이지만, 그런 일제 하의 언론조차 아예 외부에서도 '북한은 지하에서도 반체제 운동이 없을 것이다'라고 착각하게 만들 정도로 반체제 인사의 존재를 전혀 보도하지 않는 북한 언론보다는 그나마 자유로운 편이었다. 북한에서 대내적으로 반체제 인사의 존재를 처음 알린 것이 북한 정권 수립 75년 뒤에 북한 내 반체제 정당조직 발각사건을 주민 교육 자료로 쓴 것이었다.

정치범수용소와 같은 학살의 지속적인 측면 역시 달랐다. 북한은 탈북하다가 수감된 여성들이 중국인의 아이를 가지면 '순수 조선 혈통을 보호해야 한다'며 그렇게 태어난 갓난아기를 낙태하거나 태어난 직후에 곧바로 살해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으며, 이는 수많은 여성들이 증언한 사실이다.[354] 이는 북한에서 나치 독일과 같은 우생학적 극단성이 사회에 횡행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안타깝게도 전시/준전시 상황에서 일어나는 대규모 학살에서 갓난아기를 포함한 어린아이들까지 살해하는 일은 드문 일은 아니지만 비전시에 젖먹이 아기들을 국가적 차원에서 계획적, 조직적으로 살해한 사례는 북한을 제외하면 킬링필드를 자행한 민주 캄푸치아 정도밖에 없다.[355] 근거

더욱이, 일제의 학정과 인권 탄압은 35년~40년[356] 정도 지속되었지만 북한의 학정과 인권 탄압은 일제의 2배를 넘는 76년(2024년 기준) 동안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나마 북한 체제가 일제강점기보다 낫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최고지도자의 권한이 조선 총독만큼 막강하지는 않았다는 것이 있지만,[357] 단지 그 뿐이다. 또 결정적으로 일제는 세계적으로 인권 의식이 지금보다 낮고 식민지 주민에 대한 탄압이 일상화되었던 제국주의 시대에 다른 민족을 학대한 거고 전시에 착취, 학대가 극대화된 감도 없지는 않은 데다가 그 학대도 80년 전에 끝났지만, 북한은 인권 의식이 80년 전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하고 널리 퍼진 2020년대 평시에도 현재진행형으로 같은 한민족을 일제가 하던 것 이상으로 잔혹하게 착취, 학대하고 있다.

12. 관련 단체/자료

12.1. 관련 단체

12.2. 관련 자료

  • 2024 북한인권보고서: 대한민국 통일부에서 발간하는 보고서로 한국에 도착한 북한이탈주민들을 하나원에서 조사한 자료이기에 신빙성이 아주 높다. 2017년 이후 탈북한 탈북민 507명을 대상으로 하고, 북한 당국이 북중국경을 DMZ화시켜 자료를 아주 얻기 힘든 코로나19 유행 이후의 상황도 조금 있다. 한국 언론은 2017년 시중에 유통되는 영상에서 손가락으로 김일성의 초상화를 가리키는 춤동작이 문제가 되어 사상적으로 불온하다는 이유로 그 동작을 한 임산부(임신 6개월차)를 공개처형한다는 등 경악스러운 북한 당국의 행태에 큰 충격을 받았다. 해외 파견 노동자가 2020년대에 탈북하는 사례가 좀 생겨 평양에 특화된 인권침해(울먹일 정도로 고통스러운 매스게임 연습, 교외 주민 시내 '대중교통 혜택 배제') 등도 좀 있다. 극도로 폐쇄적인 자강도를 제외하고 지역별로 인권 유린 실태가 다 있다고 보면 된다. 2024년판에는 지난해 보고서의 근간이 된 탈북민 508명의 증언에 2023년 조사한 141명의 증언이 추가되었고,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등 주민 통제 관련 법령들을 적용한 공개처형 사례들이 처음 수록되었다.
  • 2023 북한인권백서: 국무총리실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KINU)에서 지난 1996년부터 발간해온 보고서로, '2023 북한인권백서'는 2023년 12월에 발간되었다. 국내에 입국한 북한이탈주민 중 가장 최근까지 북한에 머물렀던 남성 20명, 여성 51명 등 총 71명에 대한 심층면접 결과를 반영했다. 이 가운데 탈북 연도가 2023년, 2021년인 탈북민이 각각 6명, 2명 포함됐다.
  • 2024 북한인권백서: 사단법인 북한인권정보센터 북한인권기록보존소(NKDB)에서 발간하였다. 2020년 한국 정부가 탈북민 대면조사를 허가하지 않으면서 2020년 9월을 마지막으로 그동안 북한인권백서를 발간하지 못했는데, 2023년부터 하나원에서 교육받고 있는 탈북민을 대상으로 인권피해 조사활동이 재개되며 2024년부터 백서 발간이 다시 가능해졌다.
  • 비주얼 아틀라스(한국어, 데스크탑용): 통일연구원 북한인권백서 작성에 참여하는 북한인권정보센터가 모은 인권 침해의 지도화. 여기 적힌 것은 6만 8천 9백 4십여건의 사례 중 극히 일부임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탈북자가 적은 황해도, 강원도, 자강도, 남포나 평양 같은 곳은 굉장히 알려진 사례가 적다. 거북한 묘사도 있으니 심약자는 주의 바란다.
  • 60+ Voices – 북한에서의 일상을 돌아보다: 국제엠네스티 한국지부에서 2023년 10월에 발간한 500페이지 분량의 북한인권 증언집이다. 2019년 이후 탈북한 북한이탈주민 61명의 증언을 4년간 수집하여 다양한 주제에 걸쳐 소개한다. 코로나 사태 이후 탈북한 이들의 증언도 실려있어 2023년 기준 북한 내부 상황을 파악하는데에 가장 최신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북한 인권침해 사례 뿐만 아니라 최근 북한 사회 속 주민의 일상 생활과 삶의 방식도 살펴볼 수 있다. 누구나 볼 수 있도록 PDF 파일로 배포되었다.
  • 《아 북녘동포》중앙일보, 1995: 중앙일보가 탈북민의 35명 증언을 심층 인터뷰하여 정리하여 보도한 90년대 이전의 북한 생활상을 다룬 연재물이다. 표본이 많아 증언끼리도 교차검증이 되고, 북한 소설 등과도 교차검증을 마친 신뢰도 높은 자료다. 북한 주민이 세뇌가 잘 되어 있던 시기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저 당시에도 정치적인 교육을 제대로 듣지 않는 등 은근히 반항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일성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일이나 이념에 대해서는 대꾸를 못했지만, 소소한 지시를 어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북한이 잘 살았다던 80년대 이전에도 인권으로 따지면 군복무 10년 한 죄 없는 사람을 아무 대가없이 탄광에 영구정착시키는 막장 행태를 볼 수 있다. 특히 밀고 같은 건 80년대 이전에는 치열하다고 했을 정도로 사람이 살 곳이 못 되었다. 북한 한 지역에 치우치지 않고 전 지역에 대한 증언이 있다. 안명철 씨, 임영선 씨처럼 현재도 한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의 증언이 있다.

13.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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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링크에서 보고서 원문(요약본 포함)을 읽을 수 있고 PDF로 다운로드도 할 수 있다. 관련 학자들의 검수까지도 받았고, 상당히 드문 2020년대 초반에 탈북한 사람들의 증언도 있다.[2] 북한을 제외한 6개국은 모나코, 리히텐슈타인, 안도라, 미크로네시아 연방, 나우루, 부탄. 사실 이들은 부탄을 제외하면 미니국가다.[3] 당시 자이르의 대통령은 모부투 세세 세코였는데, 그는 도둑정치라는 신조어의 유래가 될 정도로 부패하고 무능했으며, 반대파를 탄압하던 독재자였다. 또한 역설적이게도 모부투는 반공을 내세웠음에도 1974년에 방북했을 때에 북한에 감명을 받아 TV 뉴스를 하늘에서 내려오는 자신의 모습으로 시작하게 하는 등의 우상화 정책을 실시하기도 했다.[4] 엔베르 호자 시기 알바니아는 오늘날의 에리트레아와 비슷하게 북한 이상으로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국가로 악명이 높았다. 이런 고통을 40년 넘게 직접 겪었던 만큼 호자 정권의 폭압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사람이 이런 말을 남긴 것이다.[5] 2010년대까지는 주민들이 장사를 하면서 생계를 꾸리는 것을 정부가 크게 손을 쓰지 못하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2020년 코로나19 유행을 빌미로 주민들이 돈을 벌며 자신들의 권력이 약화되는 것을 우려한 김정은 정권은 다시 중앙집권적 자력갱생이니 뭐니 하면서 장사나 무역 등을 심히 방해하고 스스로 대북지원까지 거절하여 최근 20년 동안과 비교하면 가장 끔찍한 경제 여건이 조성되었다.[6] 남북, 북미 대화가 활발히 이루어지던 2018~2019년만 해도 북한 내부에서는 해외여행까지 가능하지 않겠냐는 기대가 있었다고 한다. 당장 남측에서도 당시의 보도를 보면 무척 낙관적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갑자기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의 업적인 금강산 관광을 부정하는 것을 시작으로 온갖 개혁개방적인 움직임을 부정하려고 들고 북한에 유화적인 태도를 보인 사람들에게까지 대북지원으로 대표되는 '비본질적 문제' 등을 언급하며 적대적인 태도를 보였다.[7] 참고로 BBC가 이 취재를 토해 수집한 정보에 대해 북한 정부에게 문의하자 런던 주재 북한 대사관 대표자는 "취재진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안에서 모은 정보가 모두 다 진실은 아니고, 반조선세력들이 조작한 이야기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어려운 시기에도 인민의 요구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인민의 안녕을 위해 흔들림 없이 헌신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 인터뷰의 내용을 전면적으로 부인했다. #[8] 심지어 그 간부들도 최고위 간부들조차 최고존엄의 말 한 마디면 총살당한다. 당장 김정일 시대의 2인자였던 장성택김일성의 사위이자 김정은의 고모부였음에도 가차없이 처형당했다.[9] 직장은 돈을 조금 주는데 출근 대신 장사 등으로 더 많은 돈을 버는 시도를 방해한다는 뜻이다.[10] 조선사회안전군의 전신이다.[11] 북한보다 PR이 같거나 더 낮은 나라는 미얀마, 타지키스탄, 적도 기니,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각각 0점), 중국(-2점), 수단, 남수단, 시리아(각각 -3점) 9개국이 있지만, 북한보다 CL이 같거나 더 낮은 나라는 투르크메니스탄, 에리트리아(각각 2점) 2개국밖에 없다.[12] 이는 이슬람 카리모프우즈베키스탄보다도 높은 수치이다. 참고로 우즈베키스탄은 카리모프의 집권기 동안 세계의 자유 지수가 3~4점을 벗어나지 못했다.[13] 에리트레아가 5점 밑으로 떨어진 해는 2013년이다.[14] 2023년 사례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15] 북한의 투표용지는 기명제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원칙대로라면 빈 투표용지를 받은 유권자는 비밀 보장이 되는 기표소에 들어가 원하는 후보의 이름을 쓰고 접고 나와서 투표함에 넣는 방식이다. 그런데 북한은 이미 이름이 스탬프로 찍힌 상태의 투표용지를 배부하고 있다. 해당 후보가 마음에 들면 받은 즉시 투표함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기표소에 들어가서 X자를 긋고 나와서 투표함에 넣도록 되어 있다. 보위부원 눈 앞에서. 비밀투표가 보장된다 해도 기명제 투표용지의 장점을 무시하고 사실상 찬반 밖에 없는 시스템인 것이다. 다만 2023년에는 선거 예비투표 과정에서 2명의 후보 중 한 명을 뽑는 방식이 도입되어 화제가 되었다. #[16] 덧붙여, 이러한 방식은 간접선거의 단점이 그대로 드러나는 사례이기도 하다. 원래 간접선거는 충분한 견제가 이루어지면 충분히 정상적인 민주주의가 실현될 수 있지만, 북한처럼 일당제가 되어 견제장치가 완전히 소멸한 상태라면 쉽게 독재로 흐르게 된다.[17] 김씨 일가의 통치자금을 관리하는 핵심 기구 조선로동당 39호실 고위 간부 출신의 아버지를 두었고, 2014년에 탈북한 이현승(1985년생)의 말에 따르면 자신은 평양에서 29년간 살면서 단 한 번도 시위는 물론이고 공개적인 반정부 활동은 커녕 반정부 전단(소위 삐라)조차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다만 그는 그러면서도 지방에서는 간헐적으로 국가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는 일이 더 흔하다고 말했는데, 정황상 시위는 아닐 가능성이 매우 높다. 참고로 이현승은 북한에서 반정부 시위가 존재하지 않는 이유를 교육 시스템을 통한 세뇌, 외부 정보에 대한 차단, 연좌제를 적용한 공포정치 3개를 들고 있으며, 그의 말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대중 봉기와 반정부 시위는 자본주의 국가에서만 일어나고 북한과 다른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우리의 제도는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를 능가한다.'고 가르친다고 한다. # 다만 후술하듯 1991년과 1993년에 북한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는 증언이 있지만 신뢰성은 낮다.[18] 이런 돈은 장사, 사업 등으로 번다. 경우에 따라 허가되지 않는 일도 다반사며, 많은 사업이 '불법'이 되어 다른 쪽에 뇌물 주고 빠져나가는 일도 많다.[19] 이게 얼마나 달성하기 힘든 거냐면 순수 지표만으로 0점을 기록하는 것은 발표한 해 기준으로 멸망한 나라(2024년의 아르차흐 공화국) 정도여야 기록할 수 있는 수치이며, 거의 모든 0점 이하 국가들은 정부나 점령 국가의 특정 민족 탄압 때문에 점수가 추가적으로 깎이는 경우다. 전술한 아르차흐 공화국도 아제르바이잔아르메니아인 탄압으로 3점이 추가적으로 깎였다.[20] 참고로 2003년에는 0점의 북한 다음으로 점수가 낮은 국가의 점수가 3점(수단)이었고, 2004~2005년에는 2점(투르크메니스탄)이었다. 2006년에는 1점(투르크메니스탄)으로 격차가 많이(?) 줄었다.[21] 당시 북한과 동점을 차지한 국가도 투르크메니스탄(2007), 소말리아(2009~2011), 미얀마(2009) 3개국밖에 없었다. 2003년에는 이라크가 -1점을 기록하여 북한보다 낮은 점수를 기록하기도 했는데, 이는 쿠르드족에 대한 박해 때문에 3점 감점된 것이다.[22] 지역으로 따지면 2008년, 2010년 티베트가 북한과 동점이었으며, 2009년 티베트는 아예 북한보다 점수가 낮았다.[23] 북한보다 언론자유지수가 낮은 나라는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에리트레아 3개국이 전부다.[24] 참고로 북한과 에리트레아 외에 언론자유지수 꼴찌를 차지한 적이 있는 나라는 2019년 꼴찌를 한 번 기록한 바가 있는 투르크메니스탄이 전부다.[25] 북한의 실태를 생각하면 영락없는 자아비판이지만, 독일의 여류 문인 루이제 린저의 말에 따르면 이를 언급한 북한의 이장은 '북한에는 살인, 강도, 도둑이 없으며, 감옥도 없고, 범죄자들은 단 6개월만 교육소에서 교화, 설득하기만 하면 충분하다.' '북한에는 사형제와 검열, 고문도 없다.'고 주장했고, 덤으로 린저는 이 말을 그대로 믿고는 '한국어에는 '살인, 강도, 감옥' 등을 나타내는 단어가 없다'는 뉘앙스의 말도 덧붙였다고 한다. # 참고로 루이제 린저의 북한 방문기 '또 하나의 조국'에는 북한을 이상화하는 경향이 강했다.[26] 북한의 언론인 노동신문은 2019년 수령만 믿으면 물과 공기만 있어도 언제든지 살아갈 수 있으며, 이런 믿음은 수령만 줄 수 있다는 주장을 실은 적 있다.# 정작 그 '수령'은 '물과 공기만' 가지고 살기는 커녕 해외에서 직수입한 온갖 최고급 음식들을 매일매일 먹으면서 산다.[27] 루마니아 출신으로, 자유아시아방송에 매주 화요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여담으로 외국 지명, 인명 등을 표기할 때 문화어 표기법을 쓴다.[28] 평양의대 같은 경우는 김일성종합대보다 진학이 어렵다. 돈 권력 토대 세박자를 갖추어야 가능하다고 본다. 북한의 의사지위가 낮다는 일부 설은 사실이 아니며 간호사 직급이 올라가거나 재교육을 거쳐 '준의사'로 승진하면 의료행위가 가능하기에 오해하는 것일 뿐이다.[29] 김부자 3대를 직접 대면한 사람. 접견자도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니라 몇 달 전부터 미리 뽑아 놓는다고 한다. 그리고 접견을 위해서 모의접견을 하는 등 연습을 상당히 많이 시킨다. 게다가 분위기까지 맞추기 위해 김정은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이 모의접견의 접견관으로 나온다. 감히 김정은 앞에서 실수를 하면 절대 안 되기 때문이다.[30] 여기서 극히 예외란 김씨 세 부자나 일가에게 좋은 인상을 주어서 상승하는 경우이다. 가령 어느 초등학교에서 불이 났는데, 한 아이가 김일성 사진을 품에 안고 보호한 채로 숨을 거두어 유가족이 모두 신분 상승하여 평양에 입성한 경우가 있다. 또한 기쁨조로 뽑혀서 김현을 낳아준 제갈 아무개 여자와 그 가족들이 대표적 사례 중 하나이다.[31] 이는 나라에서 직장을 정한다는 소리며, 직업의 자유가 이 과정에서 무시되는 경향이 강하다.[32] 단순 사무직만이 아니라 당 간부들이나 고위직도 포함이다.[33] 로동당에 입당하기 전 1년 정도 거치는 단계다.[34] 유유상종이라고 폴 포트도 "풀을 죽이려면 뿌리도 죽여야 한다."라며 김일성과 완전히 판박이의 말을 남기며 자신에게 반하는 인사의 3대를 젖먹이 아기까지 가리지 않고 살해했다. 물론 폴 포트 역시 출신성분만 봐도 김일성처럼 킬링필드식 연좌제가 가장 먼저, 가장 철저히 적용되어야 하는 인물이었다.[35] 전자는 대략 1950년대 후반, 후자는 1968년에 남긴 말이라고 한다.[36] 이로부터 거의 12시간 전인 동일 오후 12시에 김정일의 사망 사실이 공표되어 북한에서는 10일간의 애도기간이 선포된 상황이었다.[37] 민주 캄푸치아마시아스 응게마 시기의 적도 기니, 알바니아 사회주의 인민공화국이 대표적이다.[38] 하다못해 21세기의 독재 국가 중 북한과 비견되는 수준으로 악명이 높은 투르크메니스탄에리트레아도 구금된 정치범의 가족들을 협박하기는 해도 대놓고 함께 감옥에 가두는 일은 드물다.[39] 사실 당시 주민등록 체계가 서 있지 않은 북한의 내무성(경찰)으로서는 친척관계를 규정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당시는 보위부가 없었고 내무성 안에 정치보위부서가 있을 뿐이었다고 한다.[40] 이를 전한 사람이 김성일 사건의 주모자 김성일이다.[41] 강철환이 전한 바에 따르면 뱃속에 있을 때 어머니가 강제 이혼되며 생존한 10촌 조카 1명만 생존했다고 한다. 그런데 국가안전보위부에서 자꾸 찾아와서 "요놈도 최창익의 씨인데 그때 없애버렸어야 했는데 살아 남았다."고 계속 그랬다고 한다. #[42] 다만 황장엽의 친척들이 한국으로 망명했거나(#) 반란을 모의하다 처형당했다(#)는 기사로 볼 때 적어도 11촌까지 끌려갔다는 것은 과장일 가능성이 더 높긴 하다. 다만 적대계층 취급받거나 오지로 추방되었을 가능성은 높은 편이다. 완전통제구역의 유일무이한 생존자인 김용의 증언에 따르면 황장엽의 친척들은 강원도당 책임비서, 중앙검찰소 책임비서였던 피창연의 가족을 포함한 105세대가 대거 수용될 때 18호 수용소로 같이 끌려와 수용소 내에서도 지형이 가장 험한 범골 지역에 수감되었고, 황장엽의 조카는 수감 다음날 자살했다고 전해진다. #[43] 그런데 그것도 홀로코스트를 자행한 나치보다 더한 것으로, 그 나치마저 유대인과 비유대인간의 강제 이혼은 효과적으로 강요할 수 없었기에 이 덕분에 생존한 유대인들이 많았을 정도였다.[44] 정황상 북한 내 반체제 정당조직 발각사건의 주도자 신태수가 이에 해당될 가능성이 높다.[45] 기사는 2023년 "가장 악질적이고 반동적인 자들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내장(장기) 하나하나가 찢어져 문드러지는 최상의 고통을 받게 해야 한다"는 취지 하에 중앙에서 지목한 가정, 친척, 가문 입소자의 자식들을 다른 정치범수용소로 보내라 했다는 내용이다.[46] 이 때문에 김일성은 (훗날에 이복동생에게 살해당할) 첫 손자였던 김정남은 지극히 아꼈던 것과 정반대로 김정은은 죽을 때까지 만나보기는 커녕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47] 북한이 김일성의 항일 경력을 국가의 주축으로 삼는다는 것을 감안하면 김정은의 외조부가 친일 자본가였다는 것은 그야말로 김정은 최악의 약점이라고 할 만하다.[48] 다만 북한과 민주 캄푸치아를 비교하면 북한 쪽이 훨씬 낫다. 민주 캄푸치아는 문자 그대로 전국민을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가둬 놓은 수준의 국가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를 달리 말하자면, 북한은 2020년대에도 민주 캄푸치아의 축소판격인 장소를 현재진행형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49] 요덕 수용소가 정치범수용소 중 가장 유명한 이유가 바로 혁명화구역으로서 석방된 후 탈북한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절대로 수용소에서 탈출한 게 아니다![50] 나치의 노동수용소도 목적이 '노동을 통한 절멸'이므로 실질적으로는 절멸수용소와 다를 바 없다.[51] 대략적으로 잡아도 북한 인구의 0.8%나 된다.[52] 다만 크로아티아 독립국야세노바츠 강제수용소이디 아민 시기 우간다 캄팔라의 수용소는 북한 정치범수용소 혁명화구역을 가볍게 능가하는 수준으로 잔혹한 곳이었으며, 증언은 별로 남아있지 않지만 단편적인 증언을 종합해 보면 민주 캄푸치아의 지방 수용소는 뚜올쓸라엥이 나아 보일 수준으로 참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완전통제구역에서 이들과 비슷한 수준의 일이 2020년대에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질 가능성은 매우 높다.[53] 무서운 감옥 정도에 잡혀간다고 생각하고 이런 시설임은 모른다고 한다.[54] 완전통제구역에 대해 증언한 사람은 3명 정도밖에 없고, 이들도 김용을 제외하면 모두 수감자가 아니었다. 김영순용평 완전통제구역작업반장이었고, 안명철회령 수용소경비원이었다.[55] 다만 애초에 북한 주민들은 정치범이 아니더라도 려행증을 통해 여행의 제약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일반적인 북한 주민들보다 더 극심한 여행의 제약이 따라올 것이란 것만큼은 확실하다.[56] 한국의 교도소에 비유되는 교화소만 해도 3천명 이상을 구금하는 곳이 많다.#[57] 여기도 인권침해가 있긴 하지만 북한처럼 민족이나 가문 가지고 가두지는 않는다.[58] 김일성도 8월 종파사건 이후 정치범수용소를 만들 것을 내무성에 지시하면서 정치범수용소를 '깊은 산속에 닫긴 구역' '농장'으로 상정한 발언을 했다. #[59] 청진 제25호 관리소를 제외하면 미니국가들보다도 넓을 정도.[60] 이와 비슷하게 민주 캄푸치아의 집단농장도 겉보기에는 평범한 집단농장이었지만 실상은 전국민을 북한 정치범수용소 혁명화구역에 가둬놓은 꼴이었다.[61] 기사에서는 '인권감시'로 직역되었다.[62] 여기서 '가고 싶은 곳이라도 마음대로 갈 수 있어'라는 말은 려행증 제도를 우회적으로 일컫는 말이다.[63] 태어나고 살던 곳에서 살더라도 중학교를 졸업하면 징병 되는데 자대 배치를 받아서 자대로 전입하면 제대를 하더라도 그 지역에서 평생 살아야 한다. 결국 부모님과는 생이별을 하게 되는 것이고 운이 미치도록 좋아서 집 근처 부대로 배치가 되어야 부모님과 같이 살 수 있다.[64] 물론 이는 고난의 행군으로 주민들이 식량을 찾으러 멀리 갈 수밖에 없게 되면서 완화된 것이다. 김일성이 이동의 자유를 철저히 말살한 거지 김정일과 김정은이 특별히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65] 북힌 형법 제41조제2호에 국가에서 맡겨준 일을 더 잘하려다가 범죄를 저지르게 된 경우 형벌을 감경한다는 규정이 있다.[66] 평양 려행증은 제외[67] '일제 고문경찰들의 고문을 능가한다'는 말도 있지만, 이는 문자 그대로의 표현이라기보다는 고문의 참혹함에 대한 비유법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할 듯하다.[68] 물론 조금이라도 움직인 것이 발각되면 어김없이 폭행을 당한다.[69] 하루만 지나면 어깨 근육이 굳고 가슴뼈가 새가슴처럼 앞으로 튀어나오면서 피부를 뚫고 튀어나올 것 같은 고통과 함께 몸 전체가 굳어버린다고 한다. 한술 더 떠서 밑에 라디에이터를 켜놓아 열기를 느끼게 하는 경우도 있다.[70] 작은 나무통에 사람을 웅크린 채로 가두는 고문이다.[71] 가로 45cm, 높이 1m의 독방도 있다고 한다.[72] 완전통제구역의 참상에 대해 증언한 사람도 극히 드물지만, 이들 중에서도 완전통제구역 수감자에 대한 고문에 대해 증언한 사람은 전무하다. 안명철은 수용소 경비원 출신에 보직은 운전병이라 수용소의 참상에 있어서는 '외부'의 관찰자 입장이라 완전통제구역 수감자들이 내부에서 어떤 고문을 당하는지는 알지 못했고, 완전통제구역 수감자 중 유일무이한 생존자였던 김용도 보위부에서 고문을 당했지 완전통제구역에서는 고문을 당하지 않았다. 신동혁은 애초에 완전통제구역 수감자도 아니었으니(정확히는 혁명화구역에서 태어난 것은 맞지만 어릴 적에 가족과 같이 석방되었다) 논외.[73] 다시 말해, 완전통제구역의 죄수들은 후술할 것처럼 전국민에 대한 가스라이팅으로 악명이 높은 북한 기준으로도 극단적인 수준으로 세뇌를 당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이 링크에서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 간수들이 받는 '전문성 훈련 교육'의 내용을 엿볼 수 있다.[74] 그의 인생 정리[75] 사실 저 '인간개조'는 '사상개조'의 확대격인데, '사람들의 가치와 품격을 결정하는 것은 사상이며 따라서 사람을 개조하는 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상을 개조하는 것'이라는 뜻이다. 사실 북한에서는 '~개조' 식의 단어가 여럿 있다.[76] 북한 당국이 비현실적인 금전적 요구 등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기에 정부 방침을 어기고 외부인과 접촉하면서 돈을 버는 경우가 있다. 이 와중에 스마트폰을 구해서 인터넷을 몰래는 할 수 있는 북한 노동자들이 있다. 저 사람의 출신지는 평양이라고 한다. 2023 북한 인권 보고서를 참조하면 저런 과정을 거치다가 2020년대에 탈북한 사람들의 증언도 실려 있다.[77] 그나마 마시아스 응게마 시기 적도 기니민주 캄푸치아,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시기 투르크메니스탄이 북한에 준하는 수준으로 세뇌시켰다고 볼 수 있지만, 이들마저 북한의 수준은 결코 따라잡지 못했다. 물론 아프리카 분쟁 지역에 있는 소년병을 쓰는 반군들도 어느 의미에서는 북한 이상으로 세뇌를 하기는 하나 이들도 국가적 차원에서/갓난아기에까지 세뇌 교육을 하지는 않는다.[78] 한마디로 육지의 갈라파고스 수준으로 폐쇄적이었다. 자세한 것은 엔베르 호자 문서 참조.[79] 앞의 두 국가도 거뜬히 뛰어넘는 쇄국정책의 끝판왕.[80] 다만 부탄은 20세기 후반부터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애초에 부탄은 문자 그대로 전제군주스스로 절대권력을 내려놓고 민주화를 이행하는 나라인 만큼 다른 쇄국 정책을 펼친 독재국가들과 비교당하는 것 자체가 부탄에 대한 모욕이다. 쇄국정책 이전에도 지리상으로도 히말라야산맥 고산지대에 위치한 나라라 접근이 극히 어려운 나라였다.[81] 네팔도 부탄처럼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위치한 국가이며, 50년대 이후 해외에 문을 열고 있다.[82] 투르크메니스탄조차 한국 교민이 천 단위로 사는 등 북한보다는 어느 정도 개방적이며, 에리트레아도 인권 실태를 외부에 알리기 꺼리는 성향 때문에 폐쇄적이라고 하는 거지 국가 자체는 해외 항공편들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만큼 북한보다는 개방적인 편이다.[83] 냉전 시기 북한 이상으로 쇄국 정책을 펼치던 나라들은 대개 월드 와이드 웹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기에 쇄국 정책을 펼치던 반면 북한은 월드 와이드 웹은 말할 필요도 없고 스마트폰, 유튜브가 전 세계로 퍼진 2020년대에도 극히 선별된 일부를 제외한 전국민의 월드 와이드 웹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84] 실제로는 려행증과 비슷한 국내 여행 통제 제도는 김일성 시기에도 가장 악질적인 독재자들만 시행하던 제도였으며, 21세기에도 북한을 제외하면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만이 실시하고 있는 제도다.[85] 다만 김정은의 어머니 고용희에 대한 우상화 교과서는 전혀 없는데, 이는 고용희가 '째포', 즉 재일교포 출신에 남한에서 태어난 것도 모자라 아버지는 아예 일본군에게 군복을 납품하던 친일 자본가라는 완벽한 적대계층인 것은 물론이고 김정일의 정식적인 부인도 아닌 첩이었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고용희의 장남도 아닌 차남이었고, 이 때문에 김정은의 조부 김일성은 죽을 때까지 김정은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86] 예를 들어 김일성이 '흰쌀밥'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다거가, 김정일이 햄버거를 발명했다거나, 김정은이 3살 때부터 총을 쏘고 운전을 했다거나 등이 있다. 무수히 많은 우상화 선전 중 극히 일부만 선별한 것이 이 정도다.[87] 같은 공산권이었던 소련에서 북한의 우상화 선전물들은 유머집 용도로 쓰였다.[88] 상단 영상에 나온 애니메이션은 다람이와 고슴도치인데, 보이는 바와 같이 아동용 애니메이션에 '놈들' '최후발악' '짓부셔버린다' '니 손으로' 같은 비속어나 아동 정서에 좋지 않은 과격한 단어들이 대놓고 나오며 미국에 대한 적대감을 조장하는 것은 물론 북한을 상징하는 주인공 '다람이'가 미국을 상징하는 적 '족제비'에게 쓰는 무기가 독버섯탄이란 것에서는 어린이들에게 '북한은 선량한 나라고, 미국은 나쁜 나라이며, 북한의 핵 개발은 정당하다'는 인식을 은연중에 심어주고 있다. 게다가 영상에서 볼 수 있듯 이런 세뇌용 애니메이션을 보는 유치원생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환호하고 박수치고 있으며, 심지어 영상 속 프로그램 이름은 참으로 아이러니하게도 '동심의 세계속에'이다. 남한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이런 소재의 애니메이션을 상영했다면 학부모들의 항의가 끊이지 않았을 것이고 정서적 아동 학대로 낙인찍혔을 것이다.[89] 다만 평양, 원산, 나진, 선봉 같은 곳의 유치원은 시설이 양호한 편이다. 여기서 말하는 초라한 유치원들은 북한 시골의 유치원들이다.[90] 이들의 초상화를 청소할 때에는 초상화에 곰팡이가 피면 절대로 안 되기에 물걸레가 아닌 마른 걸레만을 써야 하며, 심지어 김일성의 생전에는 '수령님의 초상화에서는 언제나 향기로운 냄새가 나야 한다'는 황당무계한 이유를 들면서 초상화 청소 과정에서 붉은색 비단천과 향수병까지 사용해야 했다고 한다. 더 충격적인 것은 후자는 어느 익명의 탈북자의 과장된 증언이 아니라, 김만철주성하의 증언으로 교차검증까지 된 사실이다. 그나마 이런 엽기적인 행각은 오늘날에는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91] 그나마 이 정도로는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지 않는다. 안드레이 란코프도 북한에서 김일성 초상화에 먼지가 묻은 것은 '경미한 범죄'로 여겨진다며 초상화에 먼지가 묻은 게 발각되면 처형된다는 박연미의 주장이 "미국인이 과속 딱지를 끊어도 처형될 수 있다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92] 물론 이 아이들은 너무 어려서 해외 매체를 접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농후하긴 하다.[93] 참고로 김정은의 비만은 너무 티나는지라 북한에서도 김정일에게 김정일에게 적용하던 '쪽잠에 줴기밥' 선전을 적용하는 것은 가뭄에 콩 나는 수준으로 드물게 하는 판이다.[94] 참고로 그 영광(?)의 부대는 '오중흡7련대칭호를 수여받은 조선인민군 항공 및 반항공군 제458군부대'로, 북한에서 오중흡7련대칭호라고 하면 그야말로 정예 중의 최정예 부대라는 뜻이다. 참고로 오중흡은 김일성의 동북항일연군 시절 동료로, 김일성 부대가 일본 육군에게 포위되었을 때 자신이 지휘하는 7연대가 김일성부대인 척하고 일본군 병사들을 유인해 김일성을 피신시키고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이 오중흡은 형제 4명 모두 빨치산으로 유명했는데 형 오중성의 아들이 바로 오극렬이다.[95] 북한 공군은 공식적으로는 대변인을 두지 않지만, 명색이 한 집단이 한 집단의 의견을 대변하는 대변인으로 내세우는 사람이 말단급 인사일 리는 없기에 이 대변인이라는 사람은 적어도 당시 기준으로는 군 내에서 상당한 고위직을 역임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96] 정치논평의 약자로, 조선말대사전에 따르면 '예리한 정치적 일반화나 형상적 표현 그리고 주정토로로서 사회정치적으로 중요한 문제의 본질을 밝혀내고 그에 대한 필자의 견해와 입장을 강렬하게 표명하는 기사'이다. #[97] 교감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10명의 목숨을 미필적 고의로 앗아간 것이 아닌, '초상화를 구해내지 못했다'는 이유로 처벌을 받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98] 2013년에 중단된 아리랑 공연의 후신격 되는 공연으로, 2018년부터 2020년까지 해마다 이름을 바꿔가며 개최되었다.[99] 사실 이 보고서는 로동신문 기사를 통해 유추한 북한의 인권 실태에 대해 다룬 것이고, 이 때문에 제목도 '로동신문이 폭로하는 북한의 인권유린'이다.[100] 정확히는 아버지는 제대군인으로서 동기훈련에 참여했고, 어머니는 밤까지 동기훈련에 참여하는 남성들을 대신해 담배 포장 작업을 했다고 한다. #[101] 이들은 3도 화상을 입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102] 그나마 다행히도 그녀는 풀려날 수는 있었지만, 이후에도 보위부의 감시에 시달려 구해낸 아이들을 돌볼 수 없었다고 한다. 주민들도 이 여성의 처지를 동정해 병원에 있는 아이들을 위한 항생제 주사약값과 옥수수 5kg이라도 보태려 했지만 정치적 시비 대상이 될까 두려워 약값도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고.[103] 참고로 이쪽은 엔데믹을 선포한 이후인 2024년 1월 현재까지도 코로나 19 백신 접종 자체를 하지 않은 유일한 나라다.[104] 물론 투발루는 코로나 확진자 발생을 은폐하지 않았던 데다가 인구가 1만 명 정도에 불구한 작은 섬나라이므로 북한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사실 2020년 5월 13일에 레소토, 동년 7월 25일에 미승인국인 서사하라에서 코로나 19 확진자가 처음으로 보고된 것을 마지막으로 코로나 19 확진자가 늦게 확인된 나라는 북한을 제외하면 오세아니아 지역의 소국들이나 속령들밖에 없다. 그리고 에리트레아도 2020년 3월 21일에 코로나 19 환자의 존재를 인정했으며, 현 시점에서 코로나 19 확진자가 없는(정확히는 확진자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투르크메니스탄 1개국밖에 없다.[105] 애초에 항공모함에는 약 60대의 함재기와 전자전기, 조기경보통제기가 탑재되는 만큼 항공모함 1척이 북한을 압도한다.[106] 대북제재가 본격화되기 시작한 바로 다음 해다.[107] 한화로 환산하면 4경 843조 원이다.(이하 2024년 6월 26일 환율 기준)[108] 전쟁 당시 순 재산 피해액은 16조 6616억 달러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대대적인 폭격과 포격이 가해져 공장, 기업소, 살림집 등이 파괴되고 철길, 도로, 다리 등이 폭파되어 이 정도 피해가 발생했다는 것인데, 한화로 환산하면 어림잡아 2경 3183조 원에 달한다. 이는 2022년 미국 GDP의 70%를 넘는 수준인데, 당연하겠지만 제국주의 국가도 아니고 일개 식민지 출신 국가이던 북한에 저 정도의 국부가 있을 리가 없다.[109] 원문에 따르면 '미국의 파괴책동으로 경제를 정상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것이라고 하는데, 저 말대로라면 '수령님' 덕분에 북한이 '세상에 부럼 없는' '지상락원'이 되었다는 북한의 선전과 완전히 모순된다.[110] 한화로 환산하면 10경 8813조 원에 달한다!!![111] 6.25로 인한 재산 피해액만 따져도 북한 GDP의 1100배에 육박한다. 또 2017년까지의 피해액은 북한 GDP의 5200배에 가까운 수준.(...)[112] 덤으로 북한의 환율은 공식 환율로는 '1달러=100원', 실질 환율로는 '1달러=8000원 초반'이다. 설마 공식 환율로 환산해서 몇십조 달러 규모의 피해액이 나온 건 아니겠자? 실질 환율로 계산해도 2017년까지 피해액이 3669억 달러, 6.25로 인한 순 재산 피해액이 2083억 달러, 인명 손실까지 감안한 총 피해액은 9775억 달러에 달한다. 또 실제 피해액이 이보다 '더 많다'는 북한의 주장에 근거하면 실질 환율을 적용한 피해액은 이보다 더 많아진다. 이 역시 2022년 기준 GDP 순위 20위인 스위스의 GDP가 8184억 달러라는 것과 현 시점 북한이 세계 최빈국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달러를 북한 원으로 바꾼 후 실질환율을 적용하면 2017년까지 피해액은 37억 달러, 6.25로 인한 순 피해액은 21억 달러, 인명 손실까지 감안한 총 피해액은 98억 달러에 육박하여 어느 정도 현실적인 수준이라 할 수 있겠지만, 백서 원문에 대놓고 US$라고 적어놓음으로써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다.[113] 물론 외교관들은 대외 정세를 확인할 때에는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다. 허나 그것도 상부의 허가를 받아야만 가능하다.[114] 2024년 1월 폐지되었다.[115] 12월 17일은 김정일이 사망한 날이다.[116] 평양 중구역에 이를 기념하는 해방탑이 있다. 조선중앙통신의 보도에서 드러나듯 김정은이 헌화를 하는데 문제는 북한 내부에서는 이 탑을 소련이 김일성을 도운 것을 기념하는 것이라는 식으로 왜곡하여 보도하여 북한 주민이 이런 것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물론 일반적인 북한 주민들이 해방탑에 접근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으며, 특히 중구역은 조선로동당 간부들의 거주지인 만큼 북한 입장에서는 더욱 철저히 접근을 막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117] 주북 러시아 대사 마체고라는 이를 간접적으로 증명하듯 북한 국적자가 볼 수 있는 러시아 대사관 홈페이지에 김일성이 속한 부대인 "제88독립련대(88여단)"를 언급하기도 하였다. #[118] 2022년 기준 북한의 인터넷 사용자 수는 고작 2만 명, 비율로도 0.07%밖에 되지 않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인터넷의 태동기나 다를 바 없던 1992년 기준 대한민국의 인터넷 사용률인 0.1%보다도 낮은 수치이며, 2000년대 초반 거의 모든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국가들의 인터넷 보급률도 0.1%를 넘겼다. 인터넷을 일반적인 북한 주민들 상당수가 접하는 순간 어릴때부터 접해오던 북한의 선전들이 모두 거짓인 것을 알 테니 체제 존속이 불가능해질 것은 불 보듯 뻔하니 북한 정부는 필사적으로 국민들이 인터넷 등으로 외부 실상을 접하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셈.[119] 80년대 후반까지도 북한 언론은 당시 소련의 변화에 대한 어떠한 암시도 주지 않았다고 한다.[120] 이는 대한민국 군사정권남베트남 정권의 붕괴 사실 자체를 꽁꽁 감춘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121] 이와 비슷하게 북한 뺨칠 정도로 쇄국 정책을 펼치던 엔베르 호자 시기 알바니아 국민들도 1980년대까지도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였던 알바니아가 유럽에서 가장 번창한 국가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고 한다.[122] 참고로 당시 일본은 그 유명한 거품경제 시기였던 만큼 미국도 추월하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경제적 최전성기를 달렸을 때였다. 그런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라고 착각하는 사람까지 나왔을 정도면 당시 북한이 얼마나 해외 정보를 차단해댔는지 짐작할 수 있다.[123] 출처: 강광식 편저, 북한의 실태 - 분야별 경험자료 및 예비적 고찰 , 1987,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03~104쪽[124] 다만 당시 한국도 북한 사람들을 머리에 뿔이 달린 괴물처럼 묘사하긴 했다.(...)[125] 출처: 동저 40쪽[126] 출처: 동저 168쪽, 1차 출처: Journey to North Korea, 96쪽[127] 1971~1997년까지 송출된 대남방송 성격 채널로, 오늘날 룡남산텔레비죤의 전신이다.[128] 물론 남한은 진작에 컬러 TV로 전환한 지 10년도 넘었으며, 그로부터 2달 뒤에 SBS가 개국되었다.[129] 사족으로 탈북자 출신 기자 주성하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은 컬러 TV 한 대의 가격이 4인 가구가 1년은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비쌌기에 농촌 지역에서는 2000년대 초반까지도 컬러 TV가 매우 귀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컬러 TV'라는 표현도 소멸한 것을 넘어 시범적으로나마 HD 방송도 시작한 남한과는 정반대인 셈.[130] 그런 논리라면 북한은 남한이 북한 선전물들을 이적표현물이라고 부르며 체제 선전 목적으로 유포하는 것을 금지시키는 것 역시 '북한으로부터 남한을 보호하기 위한 모기장'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131] 정확히는 2015년에 김정은이 3살에 총을 쏘고 운전을 했다는 고등학생용 우상화 교과서가 남북한에서 조롱거리가 된 후에야 완전히 중단되었다.[132] 탈북을 한 사람들은 남한에 와서 북한 정권을 싫어해도 자신이 북한에서 태어나서 한국인이라는 주장은 민족주의적이라도 좋아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말하는 민족주의는 파시즘이 아니고 진짜로 남북한의 사람들이 잘 어울려 사는 것을 말한다. 심지어 함경도 위주 탈북민과 개성이나 황해도 일대로 지역적인 출신이 다른 개성공단에서도 노동자들이 남북한의 사람들이 같이 사는 '이상향'을 생각하는 것 같다는 인상을 주는 경우도 있다.[133] 그런데 이것이 한류와 결합하여 오히려 남한을 동경하는 태도를 낳았는데, 권력 유지에 급급한 김정은은 민족적 유대감을 혐오하며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의 이념대로라면 미국 제국주의자나 추구할 '두 개의 조선'을 추구하는 기행을 자신의 영토가 지금은 휴전선 북쪽 뿐이라고 하며 국가 가사마저 바꾸는 식으로 주장하였다.[134] 사실 이런 일은 김대중 정부 이전까지는 대한민국에서도 했었다. 연좌제는 금지라 표면상으로는 차별이 없었지만, 실향민 가족, 월남자는 고위 공무원이나 군인이 될수는 있어도 승진이나 발령에서 차별을 받았으며, 방산 및 안보 관련 업종에서는 보안부대에 신원조회를 하여 집안 내력을 조사하고 해당되면 뽑지 않았다. 특히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 중 해방 이후 자진 월북자가 있다면 반 간첩 취급을 하여 방산업체 같은 데는 당연히 탈락이고, 군대에서는 높은 보안을 요구하는 고급 비밀을 다루지 않는 징집된 사병도 보안/정보 작전 담당자로 쓰지 않았다.[135] 물론 자신들은 비교적 최근까지 자신들의 국가원수 일가를 우상화하기 위해 '비과학적인' '신화'들을 양산했다. 자세한 것은 백두혈통 우상화 교과서 항목 참조.[136] 참고로 사리원농업대학은 1990년에 계응상농업대학으로 개칭되었고, 2010년에 김일성종합대학의 단과대학으로 편입되었다가 2019년에 평양의학대학, 평양농업대학과 함께 계응상사리원농업대학으로 다시 분리되었다.[137] 그럼에도 북한은 이를 6.25 전쟁 때 미군의 폭격으로 다 파괴되어 교회가 사라졌다고 뻔뻔스럽게 주장하고 있다. 다만 미국의 폭격으로 많은 교회가 사라진 것은 사실이긴 하다.[138] 북한 정치범수용소 대다수가 석방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완전통제구역'이란 것을 감안하면, 이들은 거의 모두 살아남지 못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139] 2014년 북한인권백서 283쪽 중.[140] 물론 1992년에 개헌하면서 '반종교 선전의 자유를 가진다'는 없어져버렸다.[141] 상기한 최악의 종교탄압 국가인 마시아스 응게마 시기 적도 기니와 민주 캄푸치아도 기독교인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기도 했다. 화형과 십자가형은 둘 다 가장 고통스러운 사형 방법 중 하나인 것으로도 유명하다.[142] 2022년 1위는 탈레반이 재집권한 아프가니스탄.[143] 김일성의 어머니 강반석이 다녔던 하리 교회 자리에 세웠다.[144] 2009년에 수감되었는데, 수감 이유는[145] 정황상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갔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146] p.165[147] 그러니까 북한에서 주체사상, 선군사상 외에는 어느 사상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북한에서 '이색적'이라는 말이 '이색적인 사상풍조' '이색적인 부르죠아문화' 등 매우 부정적인 뉘앙스로 쓰이는 것이 바로 이 때문.[148] 후술하듯 북한에서는 이런 게 전혀 세뇌가 아니라 최고의 '인민사랑'이라고 우기고 있다.[149] 한 학자가 상점 물품판매원과 실랑이 속에서 "왜 상점에 치약·치솔이 없는가"라고 항의했다가 초급 당비서로부터 반동으로 몰리게 되고 이에 반발하여 "사실을 이야기한 것이 왜 반동인가"라며 중앙당에 제소하여 오히려 김일성까지 만나게 된다는 내용으로 "당은 어느 계층에도 관대하다"는 소위 김정일의 광폭정치·인덕정치를 선전하는 내용이다.[150] 장인이 김정일의 금고지기였다.[151] 또한 탈북자들을 거쳐 얻은, 외국인들과의 접촉을 대비한 지침을 적은 『평양시민 참고자료』에는 장애인 관련 질문을 받으면 "장군님이 계신 평양시에는 장애자(장애인)는 없다"라고 대답하도록 해 놓았다.[152] 이런 얘기는 선천적 장애에 대한 답은 될지 몰라도, 후천적 장애에 대한 답은 될 수 없다. 물론 선천적 장애인이라고 해도 전근대 미개한 사회라면 모를까 현대에 저따위 되어먹지도 않은 소리를 들을 이유는 없다.[153] 키가 120cm 미만인 사람들이 북한의 수용 기준에 해당된다고 한다..[154] 그러나 기존의 난쟁이, 즉 왜소증 환자들을 격리시킨다고 해서 난쟁이가 또 안 생기리라는 법은 없다. 왜소증은 유전형질 외에도 영양부족, 스트레스, 갑상선 기능 이상, 외상 등 후천적으로도 발생할 수 있는 질환이기 때문이다. 또한 선천적 질환의 경우 부모 양쪽이 모두 비장애인이어도 자식 대에선 발발하기도 하는 등 꽤 복불복 경향이 강하므로 기존 왜소증 형질의 보유자들을 다 격리시킨다고 해도 나중에 그런 질환을 선/후천적으로 가진 사람은 또 나올 가능성이 존재한다. 당장 2020년 현재 북한만 봐도 세계인 평균 키에 비하면 북한의 지방 사람들은 굉장한 영양실조에 시달려 키카 초등학생만하다. 즉 북한이 정말 난쟁이가 생기지 않게 하고 싶으면 국민들 영양 섭취부터 제대로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155] 물론 장애인 자식이 있는 가구들 중 일부는 추방을 피하기 위해 국가에서 추방하기 전에 장애인 자식을 자발적으로 지방에 있는 친척집에 보내서 장애인 가구에서 벗어나기도 했다.[156] 출처: 강광식 편저, 북한의 실태 - 분야별 경험자료 및 예비적 고찰 , 1987,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64쪽[157] 생화학무기의 고통은 흔히 고통스럽게 죽는다는 백린탄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다. 애초에 탄저균같은 각종 병원균에 감염시켜 병사시키는 것이므로 인권 수준의 처참함을 알 수 있다.[158] 일례로 2023년 10월 4일 로동신문 기사 <사회주의조국의 품이 제일>에서 "새 조국건설이 한창이던 그때 우리나라에서 장애자보호사업의 시원을 열어놓으신 위대한 수령님과 사회생활의 전반에서 장애자보호사업이 폭넓게 진행될수 있는 법적담보를 마련해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에 의해 이 땅에 사는 장애자들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복된 삶을 누려올수 있었다."고 대놓고 언급된다.[159] 참고로 정치범수용소에서의 정신질환 환자들은 정치범수용소 일반 구역보다 훨씬 열악한 별도의 구역에서 살고 있다. #[160] 산모의 해산을 돕고 산모와 아기가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필요한 설비를 갖추어 놓고 돌보아 주는 곳. 한마디로 산부인과 전문병원이다.[161]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밥공장인데, 주로 여성이 맡아 온 요리를 국가에서 설치한 밥공장에서 다 하게 하여 집에서 요리할 필요 없이 완성된 요리를 배급받을 수 있게 한 시스템이다.[162] 다만 이 문제는 아직 한국 사회 전반으로 봤을 때 우려가 제기될 수준으로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7년 여성가족부 조사에 의하면 남성의 55%가 "여자들이 조심하면 성폭력은 줄어든다"고 응답하였다. #[163] 이상우 지음,『북한 40년: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특성과 변천』, 을유문화사, 1990[164] 이는 북한이 재혼에 관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경제가 잘 돌아가던 70~80년대에도 여성은 교원이나 예술가, 기자, 과학자가 아닌 이상 남편과 사별하면 가내작업반이나 식당, 상점에서 번 돈으로는 자식을 키우며 살기 힘든게 사실이기 때문에 재혼을 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165] 다만 아동 성범죄는 예외로 북한에서도 김씨 세 부자에 거슬리는 놈들부터 단속하고 시간 남으면 별도로 단속하는 사회안전부 요원들이 있고, 주민들도 격분하는 만큼 신경은 쓰는 듯하다. 사실 성범죄에 관대한 국가라도 아동 성범죄는 아동 범죄로 분류해서 절대 안 봐준다.[166] 출처는 『2014 북한인권백서』, p181~p189, 대한변호사협회, 대한변협인권재단 지음[167] 북한에서는 사회주의 대가정 이념의 영향으로 이혼을 '비사회주의적 행위'로 간주하고 있다.[168] p.314. 20대 여성이 한국의 초등학교 격인 소학교를 언급하는 것을 보면 10여년 전 일로 보인다.[169] p.309~310[170] 법이란 건 있고, 이것 기준으로 보면 처벌이 강화된다. 그런데 여기는 남한처럼 법 제정으로 안심할 수 있는 곳이 아니고, 얼마나 수뇌부에 가까운가에 따라 처벌 강도가 달라진다. 법치에 너무 익숙한 한국에서는 망각할 수 있으나, 법이 유명무실한 경우도 이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이다.[171] 이는 김일성의 교시이다. 그런데 이 말도 모순 그 자체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봉건주의의 상징으로 여기며 경멸하는 '왕'이라는 단어를 긍정적인 뉘앙스로 쓴 것이기 때문.[172] 아시아에서 북한보다 아동 인권 실태가 열악한 나라는 미얀마, 캄보디아를 제외하면 모두 남아시아중동 국가들이다. 참고로 영국과 호주, 뉴질랜드의 점수가 아프리카의 극빈국들보다 낮아 통계의 신뢰성이 낮은 거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이는 이들 나라에서는 이민자 자녀에 대한 차별이 심하고 가난한 젊은이들을 위한 법적 보호도 결여되어 있어 '환경' 부문에서 최하위권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173] 이것이 중요하다. 북한에서는 공식적으로는 '무상교육'을 표방하지만 해당 유치원 기준으로 매달 초가 되면 교사들의 배급과 운영비 차원으로 원생 1명당 매달 100위안(元, 한화 약 1만 7500원)을 걷었다고 하고 이를 세외부담(북한은 '공식적으로는' 무세국가다) 그 어린이는 가정 형편이 어려웠기에 100위안을 지급받지 못했다.[174] 이에 화가 머리끝까지 난 부모가 원장과 담임교사에게 직접 항의했지만, 유치원 측은 '최 군이 장난이 너무 심해서 다친 상처'라고 발뺌했다고 한다. 이후 그 아이와 교사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175] 물론 북한도 어지간한 높이의 건물들은 철근과 콘크리트로 만들기는 하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자재 마련부터 총체적 난국이다. 속도전 참고.[176] 콘크리트 부어 만드는 나라들도 벽돌도 병행해 쓰기는 하는데 단순히 내부 구조 변경이나 장식용 적벽돌 정도(한국은 친환경을 이유로 황토벽돌도 쓴다)만 쓸 뿐이다.[177] 3살 이하의 어린이들을 양육한다.[178] 3~6살의 어린이들을 양육한다.[179] 성인도 제대로 소화시킬 수 없는 거친 옥수수가루로 만들었다고 한다.[180] 원래대로라면 모유 대용의 쌀죽, 일명 암죽을 먹여야 했다.[181] 북한의 영아 및 아동 사망률과 대북 인도적 지원, 조경숙, 보건사회연구, 2016[182] 북한에서 유입되는 한류를 비롯한 외부 컨텐츠는 대부분 중국을 통해서 들어오는데, 조금이라도 동성애적 요소가 들어가면 모조리 검열하여 삭제하는 곳인만큼 BL,GL 물이나 동성간 연애 예능 등을 접할 확률이 매우 낮다.[183] 사회주의적 시각에서의 북한이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국가라고 주장하는 게시물이다.[184] 인구 2천만 ~ 2천 5백만 가량의 북한은 평시 상황인 2016년에 150만명 정도를 '자원입대'시킨 적도 있다. # 그 이전에도 《동무들아 군대로 가자》라는 노래를 중학생 애창곡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 인구 1억 4천만 가량의 러시아는 전쟁을 맞이하여 1차는 30만명을 징병했고 2차는 70만명까지 동원할 수 있다는 예측이 있었다.[185] 북한 주민들에게 수여되는 물품 및 서비스적 지원이 외부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북한 정권에 대한 타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186] 사람들이 언젠가는 배급이 나온다고 믿었고, 배급이 안 나온다는 말도 딱히 없던 것이다.[187] 김병연 서울대 교수,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 정은이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이 통계가 사업상 필요로 과장되었다고 본다.# 특히 김병연 교수는 이를 북한 경제를 연구하는 다수의 학자의 주장이라고 한다.[188] 2,800~3,200위안(약 53만~61만 원)의 월급을 받으면 한 달 생활비 50위안(약 9500원) 빼고 다 걷어가는데, 이에 대해 북한인 관리자들은 '조국(북한)을 위해 목숨도 바치는데 돈 바치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다' '50위안도 조국에서는 큰돈'이라고 노동자들을 '설득'했다고 한다. 심지어 노동자들이 가족들에게 보내기 위해 모아둔 돈들도 당자금으로 몰수당하는 경우까지 있었다.[189] 그런데 북한에서는 이 보도를 눈치채고는 최모 보위원의 악행을 적들의 날조라고 우기며 최씨를 비호하고 노동자 탄압을 강화하는 적반하장적 망발을 저지르고 있으며, # 러시아 현지 노동자들의 호상(상호) 감시 강화와 내부 불순분자 색출 강화를 지시했다. 한편 해당 보위원은 보위기관의 이미지를 망쳤다며 조만간 해임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되었지만,(#) 2024년 8월 데일리NK 측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해당 보위원은 멀쩡히 현지에서 근무 중일 뿐더러 오히려 그를 신고한 노동자들이 북한으로 송환되었다. 국가보위성 당국은 해당 보위원의 만행을 '적국의 모략'으로 우긴 것은 기본에 감시 강화로 노동자들의 보위원 신고 가능성을 차단하겠다고 단언했다. # 심지어 저 자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위반자로 반드시 북한으로 송환되어야 했을 사람이다.[190] 저임금 고강도 노동을 하게 하는 식이다. 기사에서는 콘크리트 타설을 맡긴 사례가 언급되었다.[191] 여기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해외 파견 노동자들의 탈북을 방지하기 위해서 참근교대마냥 가족을 본국에 볼모로 잡아 두는 경우가 일반적이라고 한다.[192] 기사에 따르면 최근 북한은 해외 근로자들이 국제 매체 활동에 동조하는 것을 매우 심각한 국가 안보 위협으로 더욱 심각하게 간주하고 있다면서 해외 근로자들의 동향 파악과 정보 유출 방지 활동은 국가의 생사존망, 안전 보위 문제와 직결된 중대 사안임을 인식하고 모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193] 2024년 데일리NK 기사에 따르면 벌목이 건설 작업보다 위험성이 몇 배나 크다는 인식 때문에 북한 노동자들은 벌목 노동자로 파견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정도라고 한다. #[194] '우리는 아무 잘못도 없다'는 당당한 태도를 고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195] 기사에서도 지린성 노동자 폭동 이후 노동자들에 유화책을 행하는 중이라고 언급되었다.[196] 이는 평균 수치로 보면 1년에 탈북에 성공한 사람이 겨우 25명밖에 없었다는 뜻이며, 2002년부터 2019년까지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 수가 연간 1천~2천명대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김일성 시대에 국경을 철저히 봉쇄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덤으로 1970~1993년까지 탈북자 수는 한해 10명 안팎이었다고 한다. # 다만 2020년부터는 코로나 19 방지를 명분으로 국경을 꽁꽁 걸어잠궈 이전보다 탈북자 수가 대폭 줄었으나, 그것도 김일성 시기보다는 탈북이 활발한 것이다. #1 #2[197] 이 때문에 1987년에 탈북한 김만철이 북한 최초의 일가족 탈북자처럼 알려지기도 했으나, 사실은 1994년에 김만철 일가의 탈북으로부터 32년 전인 1955년 5월 17일에 황해도 연백에서 일가족 7명을 이끌고 배를 타고 강화도를 거쳐 남한에 귀순한 유기방(劉基邦, 1915 ~ ?)이 북한 최초의 일가족 탈북자로 밝혀지기도 했다. 참고로 유기방은 탈북해 안기부, 보안사, 경찰청, 보훈처, 보사부 등의 관계기관에 60여차례나 진정서를 내고 600여차례나 직접 방문했음에도 귀순자임을 인정받지 못해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식모, 막노동꾼 등으로 연명해야 했고, 탈북 31년 뒤인 1986년 6월에야 보안사로부터 귀순자임을 임명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1994년까지도 생존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후 근황은 불명. #[198] 2024년 7월 중국이 북중국경 일대에 FM라디오 방송을 목적으로 무선국을 설치한다는 계획에 북한이 '사전 협의가 없었다며 국제적인 무선통신 규칙에도 저촉된다'고 제네바에 있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항의했다는 내용이다.[199] 얼핏 보면 삐라 중 하나로 보이는 대북전단, 단순 대중문화 유포에 불과해 보이는 한류 매체 유포를 인권운동으로 간주하는 경우가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 알 권리가 전무하고 세계에서 외부 정보&문화 유입이 가장 어려운 나라에 '외부 정보'와 '외부 문화'를 전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외국 대중문화 유포가 인권운동으로까지 간주되는 지경에 이를 정도로 북한의 폐쇄성과 외부 정보 차단이 극악하다는 말. 실제로 투르크메니스탄에서는 한국 대중가요와 일본 애니메이션이 젊은층들 사이에서 유행하며, 에리트레아에서조차 저 정도로 외부 문화 유입을 차단한다는 말은 없다.[200] 아프가니스탄의 1차 탈레반 정권도 1996~2001년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의 인터넷 사용을 금지했지만, 애초에 1차 탈레반 정권은 TV를 포함한 모든 서구 문물을 금지시킬 정도로 극단적이었던 데다가 당시에는 선진국도 인터넷 보급률이 지금과 비교하면 턱없이 낮았다. 사담 후세인 시기 이라크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시기 투르크메니스탄도 일반인의 인터넷 사용이 금지되었지만, 이 조치는 독재자가 축출/사망한 직후에 폐지되었다. 하다못해 에리트레아에서도 ('당연히' 인터넷 검열이 있긴 하지만) 인터넷 사용은 가능하다. 사실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는 김일성과는 정반대로 에리트레아의 독립을 전적으로 주도한 진짜 독립영웅인 만큼 거짓에 기반한 우상화를 하고 이를 막기 위해 해외 정보를 완전히 차단할 필요가 전혀 없긴 하다.[201] 김씨 일가와 외국인을 제외하면 고위급 공무원이나 특별히 선별된 연구원 정도만이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다. 북한의 인터넷 검열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북한/IT 문서 참조.[202] 작년에 비해 몇 퍼센트 증감했다는 상대적 숫자로만 발표한다.[203] 1969년 주북한 소련대사관이 북한의 불투명한 경제 통계에 대해 소련에 보고한 바가 있다.[204] 사실 북한에서 경제 통계 공개를 꺼리는 이유는 수령을 절대화하는 북한 체제에서 경제가 침체된다는 것은 곧 수령의 영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경제 침체를 보여주는 숫자를 발표하는 것은 사실상 수령의 영도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다시 말해 북한에서는 죽을 죄가 되기 때문이다.[205] 2023년 한 해동안 새로 건설되거나 개건된 유치원, 학교들의 수가 2023년 말에 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8기 9차 전원회의(2021년부터 시작된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의 세 번째 해를 마무리하는 회의)에서는 160여 개, 로동신문 같은 언론에서는 300여 개로 거의 2배 가까이 차이가 나게 공포되었다. #[206] 한국도 군사정권 시절에 재일교포 간첩 조작 사건에서 물가를 외부에 알린 것을 간첩이라는 증거로 몰고 간 사례가 있긴 하나, 이는 무고한 사람을 간첩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간첩으로 만들 명분을 주는 타당한 증거가 없으니 평범한 일을 한 것을 간첩질한 거라고 억지로 끼워맞춘 거에 가깝다. 물론 그것도 엽기적인 만행인 것은 마찬가지이지만.[207] 주성하는 북한에 있을 때에는 형사소송법은 법조인들이나 보는 줄 알았던 데다가 북한에서는 법을 알려주지도 않았고, 책으로 팔지도 않았고, 도서관에서 빌릴 수도 없었다고 한다. #[208] 그나마 이 두 법은 법조문이 유출되어서 법의 내용을 소상히 파악할 수 있다. 물론 북한 외부의 주민 한정.[209] 국가비밀보호법과 동일한 2023년 2월 2일 채택된 법으로, 남한에서 오는 삐라를 신고해 소각 매몰할 것을, 전자제품, 기억매체, 식료품 등은 신고 후 파손, 소각할 것을 강조하는 법이라고 한다. 참고자료[210] 이 가장 시급하다고 판단한 주요 내부 문제를 다루는 일종의 지침서[211] 물론 김씨 일가와 가까운 최고위 간부들은 알 것이다.[212] 물론 김씨 일가가 '쪽잠에 줴기밥'으로 국민들을 기만하며 초호화 생활을 해왔다는 것은 해외 정보 유입을 통해 웬만한 북한 주민들은 다 알고 있다. 그리고 정치범수용소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참상은 몰라도 존재는 소문으로나마 알고 있다.[213] 참고자료 1 참고자료 2 참고자료 3 참고자료 4 무려 김정일 집권기에도 주민들은 쪽잠에 줴기밥이 완벽한 날조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때문에 김정은에게 해당 선전을 적용하는 것은 북한 측에서도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214] 참고자료[215] 참고자료 2015년 시점으로 북한 주민들은 소위 '혁명력사'가 진짜와 가짜를 분간할 가치도 없고 동화책보다 허구가 심한 허위 역사라는 걸 다 알고 있었고, 당연히 이를 배우는 중학생 학생들도 북한 교과서에 적힌 '혁명력사'를 믿지 않았다고 한다.[216] 한국을 '괴뢰한국'으로 부르라 했다는 기사다.[217] 반면 남한에서는 장군님 축지법 쓰신다 같은 이적표현물들을 넘어 로동신문조선중앙TV, 우리민족끼리 같은 북한 선전 매체들도 북한 체제를 선전할 목적으로 유포하는 경우에만 처벌되지, 연구나 언론 보도와 같은 공익적 목적이나 호기심 차원으로 찾아보는 경우에는 절대 처벌받지 않는다. 심지어 VPN을 켜서 대놓고 북한의 선전 매체에 들어가는 경우에도. 오히려 북한에 엿을 먹여보겠다고 선전 매체에 들어가 난장판을 친 행위에 대해서 국가정보원이 '국가보안법 위반이 아니다'라고 하였다.[218] 굉장히 광범위하게 이런 일이 일어났지만, 워낙 남한에 알려지지 않은 탓에 한국인의 자신이 강간을 당했다는 이런 증언마저 노인들의 허풍이라고 여기며 러시아 여군이 그렇게 해준다면 좋은 줄 알라고 유머 컨텐츠로 소비되는 비극이 있었다. 당연히 남성이 여성을 겁탈하기도 했으며, 심지어 저런 일이 일어났을 때 속초나 철원은 북한 땅이었다. 이런 북한의 인권이 이 글을 읽는 사람의 친인척과 관련된 일일 수도 있다.[219] 소련이 김일성에게 속은 면이 있었다. 8시간 노동 같은 설명만 듣고 소련의 인사들은 김일성이 사회주의적인 활동도 제대로 한다는 인식이 있었으나, 북한 내부에서도 소련의 장점이 아니라 김일성이 친일파라도 돈만 내면 용서해버린다는 식의 갈등이 있었고, 그것이 알고 보면 앞서 언급했다시피 다른 8시간은 사상 교육을 받고 자는 시간을 포함해서 8시간만 쉬는 것이었다. 소련이 조금이라도 한 눈을 팔면 뒤에서 이런 통수를 많이 치고는 했다.[220] 심지어 설상가상으로 그로부터 반 년도 안 된 1946년 12월 10일 애국미헌납운동이 시작되며 북한 농민들은 어쩌면 일제강점기 시절보다 더 가혹하고 더 억울할 수밖에 없는(해방된 조국의 땅에서 동족에게 착취를 당한 셈이니) 착취에 시달리게 되었다.[221]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 문자 그대로 마르크스 책조차 가혹한 검열을 당할 정도로 극심한 검열이 가해졌다.[222] 한국 TV를 어렸을 때부터 보던 보위부 간부 출신 황해도 청년이 2016년 9월 이런 식으로 탈북했다는 인터뷰가 있다. #[223] 2023년 3월에야 법조문 전문이 공개되었는데, '공개'된 것이 아니라 유출된 것이다.[224] 동독의 인권침해를 기록하고 자료를 보관해둔 서독 법무부 소속 기관[225] 당시 통일부 측에서는 북한인권재단 출범이 계속 지연되면서 재단 출범 준비를 위한 최소한의 예산만 반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226] 대한민국은 헌법상 영토규정으로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를 관할한다고 되어 있으며, 이에 군사분계선 이북지역 거주민 역시 당연히 대한민국 정부가 보호하여야할 대한민국 국민이다. 문 대통령이 2018년 평양 방문에서 했던 연설인 "우리민족은 우수하다. 우리 민족은 강인하다.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라는 언급과도 모순된다. 통일을 지향한다는 기관이 통일대상인 북한에서 태어난 주민을 저런 식으로 대우한다면 심각한 모순이다.[227] 통일연구원, 대한변협에서도 발행한다.[228] 국가인권위원회 외에 법무부 소속기관인 북한인권기록보존소가 있다. 또한, 2016년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북한인권법에 따라 통일부 산하에 북한인권재단을 설립할 수 있게 되어 있다. 하지만, 북한인권재단은 2016년 10월 서울 마포구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상주 직원까지 파견했으나 국회의 이사 추천이 이뤄지지 않고, 빈 사무실에 매월 6,300여만원의 임차료가 계속 발생하면서 사무실을 폐쇄한 상황이다.[229] 보호책임은 다른 수단으로 인권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때 쓰는 최후의 수단이다. #[230] 장애인 인권을 개선하는 척이라도 하게 된 것이 이것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231] 물론 이런 권력 기관이 선제적으로 뇌물을 요구하여 살기 힘든 경우도 다반사다.[232] 이를 면밀히 보면 이 '교육교양사업'를 빌미로 한류 매체를 유포하거나 접하는 것을 '적선물(敵宣物, 적의 선전물)'을 유포하거나 접하는 것으로 몰아 예년에 비해 더욱 가혹하게 처벌하겠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참고자료[233] 정황상 북한 주민들의 평균 수입에 한해 범주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234] 김성일이 전한 보위부 출신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이 조사를 담당했던 사건 중에 대학생들로 구성된 반체제조직이 있었는데, 끝까지 조직의 보위를 지켰으며, 김정일이 이들의 장엄한 모습을 보고 경악하면서 조사에 참여한 성원들에게 이들의 존재를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지시하고 만약 누설이 되면 그들과 똑같이 처리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235] 사실 북한의 식량난 관련 언급은 그 이전에도 있었으나 극소수 탈북자들의 산발적인 증언 수준에 머물렀다.[236] 당시 평양에서는 평양 외곽 재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광복거리 같은 시가지를 조성하는 중이었다.[237] 이들 중 10여 명은 사망했다고 한다.[238] 임수경이 무단 월북하여 참가한 바로 그 축전이다.[239] 당시 평양에서는 평양 외곽 재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광복거리 같은 시가지를 조성하는 중이었다.[240] 이들 중 10여 명은 사망했다고 한다.[241] 전자는 시위대에 대한 군과 경찰의 대응이 북한의 대응이라 하기엔 이상할 정도로 지나치게 인도적이었다는 것, 후자는 그 규모에도 불구하고 후속 보도가 전혀 없었다는 것, 김일성 시기보다 유화적이던(?) 김정일 시기와 김정은 초기에도 북한에서 이러한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다는 증언이 전혀 없다는 것(그보다 규모가 작은 송림사건 학살도 날조로 드러난 판이다), 당시 일본에 들어온 북한 관련 첩보 중에는 "김일성이 암살되었다"는 등의 거짓으로 판명난 첩보도 있었다는 것, 북한 입장에서는 비상사태를 선언하고도 남을 규모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는데도 국영 언론사의 언론인들이 전혀 모를 정도로 이를 꽁꽁 감춘다는 것이 언론통제가 강력하고 반체제 인사의 존재를 철저히 숨기려 하는 북한 입장에서도 터무니없이 말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 결정적으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났는데도 신의주 지역 탈북자들이 이들 시위에 대해 증언한 기록이 전혀 없는 것 등 석연치 않은 점들이 너무 많기에 이들 시위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을 가능성은 없으며,(이런 면에서는 1976년 해주폭동하고도 비슷하다) 있었더라도 식량난으로 인한 항의 시위가 와전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242] 심지어 처형될 군인들의 가족을 맨 앞줄에 세운 뒤 이들 앞에서 사형수들의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이는 방식으로 처형했다고 한다. 그리고 공개처형 현장에 강제동원된 평양 주민들은 당간부의 선창에 따라 '반역자'라는 구호를 부르며 이들에게 돌을 던졌다고 한다.[243] 다만 당시 강건종합군관학교 교장이던 조명선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1994년 7월 8일(참고로 김일성이 사망한 당일이다) 별탈없이 사망하고 김정은 시기에도 긍정적으로 이름이 거론된다는 것을 보면 잠깐 혁명화 처분을 받는 수순에 그친 것으로 보인다. 애초에 조명선은 김일성의 빨치산 시절 부하였던 만큼 아버지의 과거 동료까지 엮어서 처벌한다는 것 자체가 아버지에게 밉보일 수밖에 없을뿐더러 김정일의 정통성에 나쁘게 작용할 것을 염려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를 감안하더라도 아버지의 동료를 처벌하려 했다는 것 자체가 충격적이지만. 만약 조명선이 혁명화 처분을 받은 것이 사실이라면 만 70세의 고령에 혁명화 과정에서 무리하게 노동을 하다가 건강 악화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244] 덤으로 2차 대전 이후 평시에 국가 차원에서 화형을 거행한 나라는 북한과 북한도 가볍게 능가하는 최악의 독재국가였던 민주 캄푸치아 2개국이 전부다. ISIS는 아무도 국가로 승인하지 않았으므로 논외.[245] 특히 김정일의 명령으로 평양에도 탱크가 돌아다니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다. #[246] 여러 정황으로 보아 한국에도 알려져 있는 프룬제 군사대학 쿠데타 모의 사건제6군단 쿠데타 모의 사건으로 추정된다고 한다.[247] 이제 만나러 갑니다를 다룬 호주 언론 기사다.[248] 이 영상의 자막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뭣 때문에 육체도 넋도 제 것으로 살 수 없습니까. 나라는 독재 미치광이의 천국이 아닙니다. 처음엔 두렵지만 용기 내어 소리칩시다. 내가 함께할 것이고, 전체 인민이 함께 할 겁니다. 독재타도! 민주조선 만세!" 거기에 그 영상의 배경 음악은 북한 노래 '기다려다오'로, 전반적 가사 내용도 '광복의 그날 오면 다시 만나자'이다.[249] 로동신문과 조선중앙TV는 그동안 북한 주민들의 반체제 활동을 마치 없는 것처럼 꽁꽁 숨겨왔고, 물론 이 사건도 전혀 보도하지 않았다. 그러나 북한 측에서 주민교양 자료에서 이를 공개했다는 것은 달리 말하자면 북한 입장에서는 너무 심각한 일인지라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250] 요약하자면 당국에서 뒤늦게나마 절량세대 구휼에 나서 아사자를 전년 대비 대폭 줄이는 데에 성공했다.[251] 경제 지표 다 떠나서 60년 넘게 이밥에 고기국 하나 제대로 못 이루고 있다.(...)[252] 물론 그 실상은 김씨 3대가 보육원에서부터 어린이들에게 자신을 친아버지처럼 인식하도록 세뇌시킨 것이다. 비슷하게 크메르 루주도 자신들 수뇌부를 '엉까(អង្គការ)'라고 부르며 '우리는 모두 엉까의 보호를 받는 커다란 가족이다'라고 캄보디아 국민들을 세뇌시켰다.[253] 아이러니하게도 이 발언을 통해 북한은 예기치 않게 정치범수용소의 존재와 그곳의 참혹함을 사실상 공인한 꼴이 되었다. 북한이 김씨 3대를 '인민사랑의 화신'이라고 허위 주장하는 것에 미루어보면 애초에 정치범수용소를 만들지 않아 그곳의 참상이 진짜로 존재하지 않게 하는 대신에 "수령님께서는 자신과 당, 사회주의제도를 노려오던 적대분자들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새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사랑으로 돌봐주시었다. 세상에 어느 나라가 적대분자들까지 사랑으로 보살필 수 있겠는가. 이는 조선에만 있는 풍경이다."는 식으로 입이 닳도록 선전할 수 있었을 텐데(실제로 북한은 북한에 빌붙은 친일반민족행위자들에 대해서는 "수령님과 장군님의 령도력으로 과거의 죄를 뉘우치고 (과거를 백지화하여) 조국 건설에 합류했다"고 미화하고 있다) 이런 찬양 멘트는 커녕 오히려 대놓고 북한 독재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병균'이라고 하고 그들을 탄압하는 것을 '철저히, 주저없이 세척'한다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 사실상 북한도 정치범수용소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인정한 꼴이나 다를 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254] 대놓고 반정부 인사들을 '철저히' 말살하는 것과 독재가 인권유린이 아니라는 도저히 뭔 말로 표현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는 수준의 망언을 당당히 하고 있다.[255] 실제로 2006년 6월 8일 로동신문 기사 《인민에 대한 사랑은 우리 당 선군정치의 핵이다》에서 대놓고 "인민에 대한 최대의 사랑은 인민에게 건전한 사상정신적량식을 주는 것이며 인민에 대한 최대의 죄악은 인민의 혁명의식을 마비시키고 사상적으로 타락시키는 것이다."는 구절이 나온다.[256] 대표적으로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의 실상을 폭로한 경비병 안명철은 강도범, 영국 공사였던 태영호는 아동성폭행범이라고 날조 주장했다.[257] 이는 2014년 9월 3~11일 방북한 민족통신 운영자 노길남이 "북한의 교화소는 어떠한가?"라는 질문을 한 것에 대한 답변이다. 신동혁 일가의 실체를 겨냥한 발언으로도 보일 수 있겠지만, 신동혁 일가의 실체가 (북한측 주장으로나마) 처음으로 공개된 것은 이 최악의 망언으로부터 약 2개월 뒤이기에 신동혁 일가를 의식한 발언이라 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냥 자신들의 잘못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이유도 없이 살인마라고 모함하는 셈.[258] 2021년 11월 18일 우리민족끼리에 올라온 글 <인간오물>에서는 탈북자들이 저질렀다는 중범죄를 "청자애병 등 귀중한 민족문화유산들을 밀매한 범죄를 저지른 후 그것이 탄로되자 도주한 자, 도박으로 많은 빚을 지게 되자 공장재산과 개인재산을 지속적으로 훔쳐내다 발각되어 도주한 자, 변태적인 생활을 추구하다가 빚더미에 올라앉자 수십만 달러분에 해당한 내화를 절취하고 도주한 자, 해외에 나가 있을 적에 사창가의 매춘부들과 추잡한 짓을 하고 나중에는 어린 소녀까지 성폭행하였으며 부패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가 정체가 드러나게 되자 엄청난 국가자금까지 횡령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한 자"로 표현했다. #[259] 참고로 2022년 기준 중범죄를 저지르고 남한으로 탈북한 탈북자는 정확히 23명이다. 2022년 기준 남한의 탈북자가 약 35,000명이란 것을 감안하면 0.1% 미만만이 범죄를 저지르고 탈북한 셈. #[260] 1940~. 최고재판소 보좌관 겸 참사(자문)으로, 북한 인권문제로 유엔 제네바 인권이사회에 북한측 증인으로 참석한 적이 있다.[261] 위의 링크에서도 북한의 공개처형에 대해 "공개처형은 단지 인민들이 특별히 요구할 때만 가능한 일인데 그런 일은 지금 없다"고 언급했다.[262] 위의 논설을 쓴 동태관은 김일성상, 김일성훈장(김일성훈장은 리춘히 받지 못한 거다), 경루동 주택을 모두 수여받고 동일 논설에서 북한이 미국에 '정의의 핵대전'을 일으켜 워싱턴 D.C를 함락하고 미국을 멸망시킬 거라고 주장한, 북한 기준으로도 강경파 언론인이다.[263] 다만 어떻게 보면 박수종은 상부에서 미리 적어둔 것을 단순히 읽기만 할 뿐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264] 북한은 자신들의 경제 파탄이 전적으로 미국의 대북제재 탓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자신들 이상으로 미국의 경제제재를 당해온 쿠바아이티급 파탄국가가 되기는 커녕 오히려 지도층의 현명한 판단 덕에 말레이시아 수준의 중진국으로 자리매김한 것을 감안하면 북한의 경제 파탄은 콩고민주공화국, 짐바브웨, 베네수엘라처럼(이들도 북한만큼은 아니었어도 부유한 나라로 성정할 잠재력이 풍부했는데 무능한 지도층 때문에 파탄국가로 떨어진 국가들이다) 전적으로 지도층의 무능이 주된 원인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265] 자신들이 주장하는 인민민주주의 외의 모든 민주적인 정치를 일컫는다.[266] 이는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만들고 '사상적 일색화' 운운하는 북한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말이다. 그리고 북한은 사상적 일색화는 지도자와 인민의 '일심단결'을 나타내는 북한의 '우월성'의 증거라면서 자본주의 문화들이 세계에 널리 퍼지는 것과 세계화는 '세계의 일체화' 운운하며 '제국주의자'들의 '세계지배에 대한 야망'이라고 내로남불성 주장을 하고 있다.[267] 다만 그 '인권'이 '북한식' 인권이라고 가정해 보면 북한 입장에서는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268] ▲ 여지없이 말살되는 사회정치적권리
▲ 무참히 짓밟히는 경제문화적권리
▲ 범죄와 여성천시, 패륜패덕의 난무장
▲ 침략자의 군화 밑에서 신음하는 인권
[269] 원문 그대로의 표현이다.[270] 당연히 임수석 외교부 대변인은 이에 대해 "북한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도 존중하고 있지 않다" "(북한의 인권백서에 대해) 개탄스럽게 생각한다"며 북한에 스스로를 돌아보라고 촉구했다. #[271] 에리트레아 정부가 2015년 6월 발표한 성명을 보면 북한을 연상시키는 과장된 수식어가 눈에 들어오긴 해도 필설 자체가 불가능한 막말은 보이지도 않는다. #[272] 심지어 일본 제국이 완전히 군국주의로 치닫던 민족말살통치 시기도 도서정리사업 이후 북한(2010년대 후반 제외)보다는 훨씬 자유로웠다. 중국, 러시아, 이란도 대한민국에서 흔히 생각하는 독재 체제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으나, 북한은 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당장 1983년 이웅평의 발언만 봐도 알 수 있다.[273] 사실 민주 캄푸치아는 문자 그대로 (크메르 루주 간부, 수뇌부를 제외한) 전국민을 북한 정치범수용소 혁명화구역에 가둬놓은 것과 같은 나라였으니 북한도 능가한다고 평가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보면 민주 캄푸치아에서 뚜올쓸라엥 같은 강제수용소는 북한에서 완전통제구역 같은 포지션인 셈이다. 사실 북한 정치범수용소가 민주 캄푸치아의 집단농장과 비슷한 구조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이다.[274]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 국가도 민주 캄푸치아에 버금가는 수준의 개막장 중의 개막장이었지만, 애초에 이쪽은 테러 단체로만 간주되지 정식 국가로 간주되지 않는다.[275] 다만 시대상을 감안하면 민주 캄푸치아보다 덜했더라도 객관적 수준으로는 인류 최악의 독재자들이 넘쳐났던 1970년대에 활동한 민주 캄푸치아보다 인권 의식이 대폭 확대된 2020년대에 학정을 저지르는 북한이 더 악질이라 볼 여지도 있다. 물론 시대상을 제외하고 보면 민주 캄푸치아 쪽이 압도적으로 심하지만.[276] 탈레반의 1차 집권기다.[277] 그나마 당시 적도 기니가 많아야 인구가 30만 남짓에 불과한 미니국가였기에 학정의 피해자들은 비슷한 수준의 국가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은 편이다.[278] 이쪽은 전반적인 자유상은 북한보다는 약간 나은 수준이었지만, 북한 정치범수용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수용소의 잔혹성 때문에 북한과 동렬 내지 그 이상 수준에 올랐다.[279] 사실 2차 대전 후 학살 규모로 따지면 북한보다 더했던 국가들도 있긴 했으나 이들도 체제 수준을 따지고 보면 북한보다는 나았다. 심지어 어느 면에서는 북한도 능가하는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독재 체제로 악명이 높은 엔베르 호자 시기의 알바니아와 오늘날의 에리트레아조차 상술한 바와 같이 세부적으로 보면 북한 체제보다는 훨씬 낫다.[280] 2차 대전기 혹은 그 이전에 수립된 정부 중에서는 주로 나치 독일, 이오시프 스탈린 시기 소련이 어느 면에서는 북한보다 더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평가받는다. 특히 현대의 네오 나치 중에서도 갈 데까지 간 극단주의자들은 반이스라엘, 반유대인 성향에 단일민족주의 전체주의 국가의 끝을 보여주는 북한을 선호하기도 한다. 사실 나치 독일도 2차 대전 발발 전까지는 북한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로운(?) 정권이었다.[281] 북한과 동급 취급받는 독재국가 중에서도 응게마는 마약 중독에 온갖 정신병을 앓고 있던 사람으로 애초에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사람이었으며, 이디 아민도 응게마보다는 낫긴 해도 매독으로 인한 치매 상태였고, 탈레반은 일반적인 정부가 아니라 ISIS, 보코 하람 같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집단이다. 그러나 김씨 3대는 정신적으로도 별다른 이상증세는 없는 데다가 명목상으로는 합법적인 공화국을 표방하는 지도자들인데도 이들과 동렬 취급받는 지경이니 어느 면에서는 이들보다 더하다. 덤으로 북한도 문자 그대로의 지상락원으로 만드는 수준이었던 민주 캄푸치아의 수뇌부들도 모두 정신질환과는 거리가 먼 멀쩡한(?) 사람들이었다.[282] 이는 2023년 1월 18일 평양문화어보호법 제정 이후 현실화되었다.[283] 대표적으로 태양광 패널이 많이 보인다. 정부는 전기를 주지 않으니 주민들이 알아서 해결한다는 것이다. 요새는 북한 당국이 이걸 홍보하는 경향이 있는데, 자기들이 전기를 주지 않고선 이것을 은근히 내 탓이 아닌 양 김정은의 치적으로 선전허는 모양새를 보인다. # 그러면서도 이런 주민들에게 한국처럼 전기 요금을 공제하지 않고 반대로 늘리는 촌극이 벌어진다고 한다. #[284] 북한의 빈부격차는 BRICS는 거뜬히 뛰어넘은 것을 넘어 적도 기니 외에는 적수가 전혀 없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적도 기니는 국가에 매장된 석유를 판 돈을 모조리 부패한 고위층들이 횡령하여 1인당 GDP가 높은 편인데도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빈곤에 시달리는 것으로 악명이 높은 국가다.) 애초에 북한이 외부에 모두가 고르게 잘 사는 '지상락원'을 떳떳하게 보여줄 수 있었다면 외부에 특권층들이 모여 사는 평양과, 삼지연시마식령스키장처럼 김정은 시기에 개발된 포템킨 식 치적물들의 모습만 보여주지는 않았을 것이고, '빈부격차 없이 고르게 잘 사는' 시골 사진도 꾸준히 보여줬을 것이다. 유튜브 등지에 올라온 북한의 시골 모습들을 보면 영락없는 5~60년대 남한 수준이기에 이러한 모습들을 외부에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다.[285] 이것도 김정은이 국경을 틀어막고 외부의 방역 등의 지원을 거부하기 전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장사를 하는 것은 엄청 막으면서 정치적 행사, 동원 등에는 사람들을 마구 모은다.[286] 한국 전쟁 당시에도 군인들에게는 '평화통일을 방해한 이승만을 타도하자'는 교육을 하였고#, 주민들에게는 북침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서부전선 포격 사건에서도 북한군 병사에게는 남쪽이 먼저 때렸다고 알려주었다는 증언이 있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도 남쪽이 먼저 비방중상을 하여 우리가 폭파시켰다는 식으로 주민에게 선전하며, 그 배경이 한국 동경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287] 북한 정권에서는 대한민국은 나라가 아니고 외세가 세운 괴뢰 집단으로 간주한다. 심지어 2023년 새해에도 김정은이 '남조선괴뢰'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 그러니까 적국은 미국, 일본 같은 나라가 되는데 정권에서 컨텐츠를 검열하고 조작할 수 있는 경우는 예외다.[288] 물론 남한 주도의 흡수통일이 된다면 오히려 김정은을 위시하여 인권 탄압에 앞장선 북한 기득권들이 홀로코스트를 주도한 나치 독일의 수뇌부들과 마찬가지로 '민족의 반역자, 악당, 범죄자'로써 가장 먼저 사살되거나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이라는 선례처럼 재판을 통해 처형당하거나 수감당하고, 재산을 몰수당하는 등의 단죄를 받을 것이다.[289] 정작 이들이 그렇게 추앙하는 주체사상은 탈북자, 즉 북한 기준으로는 '민족의 반역자'인 황장엽이 정립한 사상이다. 그런 '반동사상'을 김일성이 전적으로 창안한 것처럼 날조해 단물만큼은 계속 빨아먹는다는 것부터가 가관이 따로 없다.[290] 이제는 자강도 사람들조차 북한 당국에 불만을 품는다는 증언이 나왔을 정도다. 2023년 7월 21일 데일리NK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자강도 사람들은 강계시 밖에 종합약국을 설치한다는 북한의 조치에 대해 "병원이 있어도 온전히 우리나라 이름으로 된 약 하나도 제대로 못 사 먹는데(무상치료를 해준다는 병원에 가도 약이 없어 중국에서 밀수입해서 장마당에서 파는 약을 사먹어야 한다는 뜻이다) 약국을 건설한들 무슨 소용이겠냐"라고 불만을 품고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 자강도는 평양 사람들조차 경악할 정도로 북한 체제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곳인데, 그곳 사람들조차 북한의 현실에 대한 나름대로의 불만을 품고 있을 정도니 다른 지역 사람들이 북한 체제를 어떻게 생각할지는 안 봐도 뻔하다.[291] 유튜브에 올라온 차우셰스쿠 시기 행사 영상들을 보면 북한을 연상시킨다는 루마니아인들의 댓글이 많이 올라온다.[292] 벨라루스의 야당 대표가 자국을 '유럽의 북한'이라고 일컫기도 했다. #[293] 물론 싱가포르는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전술한 국가들과는 비교가 모욕일 정도로 양호한 나라이며, 선진국 중에서는 유일무이하게 사실상의 독재정(정확히는 비자유민주주의)을 유지하는 나라니 이런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294] 다만 서양권에서는 북한 체제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단순히 이란 같은 문제국가로만 인식하여 오징어 게임을 유표한 사람이 반동사상문화배격법에 의거하여 사형을 선고받았다는 뉴스가 '북한은 공공장소에서 숨 쉬는 것도 불법이나보다'는 식으로 조롱하는 여론도 있다. # 물론 출처가 출처인지라 글과 댓글 모두 극우 성향이 강하며 댓글은 보지 않는 것을 권한다.[295] 참고로 해당 발언은 탈레반 집권기인 2023년에 나온 발언이며 탈레반과 연관이 있는 아프간 공무원조차 북한의 인권 탄압은 경악할 수준이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한 한국인도 탈레반이 북한의 실태를 부각해 '우리가 북한보다는 낫다'는 인식을 심으려는 게 아닌가 생각했을 정도. 물론 탈레반은 2차 집권기는 북한보다 훨씬 나을지 몰라도 1차 집권기는 확실히 북한보다 더했다.[296] 쉽게 말해 이스라엘 방송이 북한 방송과 같은 프로파간다 채널이 될 것 같다는 의미다.[297] 투르크메니스탄을 소개하는 영상이다.[298] 또 북한에서의 초상화 집착도 '북한에는 진싼팡(金三胖) 사진을 신성시한다는 법이 있다'고 조롱했다. 여기서 진싼팡은 '김씨네 3대 뚱보'라는 뜻이다.[299] 러시아는 사형 폐지국이며, 소련 시절에도 스탈린 사후에는 사법살인은 자제했다.[300] 제출은 2월 7일 했다.[301] 이에 북한은 UN에서 보츠와나에 대놓고 검둥이(black bastard) 운운했다.(...) #[302] 현 보츠와나 대통령.[303] 여기서 시리아도 내전으로 국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줬다며 북한과 동렬에 놓았다. 참고로 시리아 역시 2024년 현재 UN 회원국 중 유일하게 한국과 수교하지 않을 정도의 진성 친북 국가다.[304] 모리셔스는 아프리카 본토로부터 멀리 떨어진 섬나라다.[305] 무려 태국, 벨라루스보다도 1인당 GDP가 높은 중진국이다.[306] 다만 김일성은 생전에 인터넷이 지금만큼 발달하지 않았기에 악행에 비해서는 해외에서의 인지도가 다소 떨어지는 편이다. 과장 좀 보태면 일개 아나운서에 불과한 리춘히보다도 인지도가 떨어지는 수준. 그러나 김정일은 집권기가 인터넷의 발전과 맞물려 있었기에 국제적으로 악명을 얻었고, 김정은은 아예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보다도 미국인들의 인지도가 높다. # 김정일&김정은 부자는 사실상 이디 아민 이래 가장 가십에 많이 오르내리면서도 대중적인 악명이 높은 독재자가 된 셈이다. 마침 저들은 모두 비만이기도 하고.[307] 이는 민주 캄푸치아도 마찬가지. 사실 몇몇 공산주의자들은 폴 포트를 아예 지능형 반공주의자로 취급하기도 한다.[308] 이는 럼멜이 1997년에 출판한 '데모사이드의 통계(Statistics of Democide)'에서 나온 내용이다. #[309] '공산주의 흑서'는 공산주의를 나치즘에 비교하며 세계 각지에서 공산주의 체제로 인한 희생자가 1억 명에 달한다고 주장하여 전세계적으로 격렬한 찬반여론을 불러일으켰으며, 덤으로 리굴로는 1964년부터 3년간 프랑스의 마오주의 그룹인 '프랑스 마르크스-레닌주의 서클 연합(FCMLF)'의 회원으로 있으며 1967년에는 50명의 프랑스인들을 이끌고 문화대혁명 시기 중국에 방문했을 정도로 강경한 마오주의자였지만, 마오쩌둥 사후 반공으로 전향한 인물이었다.[310] 럼멜이 제시한 수치하고 비슷한데, 럼멜의 자료를 참고했는지는 불명. 물론 이는 실제에 비해 과장된 수치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311] 토지개혁으로 토지를 뺏긴 지주들이 남한으로 내려가도 지주들을 쫓아가 학살하지 않은 채 그냥 내버려 뒀다.[312] 럼멜은 공산정권 하의 사망자 수를 연구한 것으로 유명하나, 학계에서는 그가 이 수치를 제시하는 데 사용한 방법론과 사망자 수를 통설보다 과도하게 많게 제시했다는 것에 대한 비판이 많다. 대표적으로 럼멜이 추산한 고난의 행군 사망자 수와 민주 캄푸치아 치하 사망자 수(262.7만 명), 알바니아 사회주의 인민공화국 치하 사망자 수(10만 명)는 현재 학계의 정설과 심각하게 차이가 난다. 사족으로 리굴로는 이라크 전쟁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미국의 거짓 주장을 받아들이기도 했으며, 럼멜은 한술 더 떠 지구온난화 허구설을 주장하기도 했다.[313] 1966년부터 1970년까지 주민재등록 사업과 3계층 51개부류 구분사업으로 6,000명이 처형되었고 15,000세대 70,000여 명의 사람들이 대거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었다고 한다. # 참고로 여기서 핵심계층은 28%, 동요계층은 45%, 적대계층은 27%로 분류되었다.[314] 황장엽과 한국의 보수 진영에서 주장하는 300만 명 사망설은 현재 정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315] 상술했듯 브루스 커밍스가 북한이 대량학살을 저질렀다는 말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실제로 6.25 전쟁 이후 북한이 북한 내에서 대놓고 공개적으로 민간인 학살을 저질렀다는 것을 확정할 만한 증언이 거의 없다시피한 것은 사실이긴 하다. 1976년 해주 봉기와 송림사건에서 대량학살이 있었다는 말이 나돌았지만 다 거짓으로 드러났다.[316] 정확히는 김정일고난의 행군 때 북한 주민들이 1년을 먹을 수 있는 거액을 죄다 초호화 별장 건설, 미식 생활 등의 온갖 사치향락에 쓴 데다가 외부에서 지원한 곡물들을 전부 군량미 명목으로 걷어가고 이를 주민들에게 배분하지 않아 미필적 고의로 기근을 조장했는데, 이렇게 자신과 측근들의 사치향락만을 위해 수많은 국민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스탈린보다는 수양제연산군, 로버트 무가베, 모부투 세세 세코와 비슷하다. 참고로 스탈린은 김정일과는 정반대로 지도자로서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하는 수준의 생활만 했고, 절대권력을 가진 독재자라 하기에는 금욕적이다시피 한 삶을 살았다.[317] 다만 스탈린도 평시에 공개적으로 학살을 벌이지 않은 것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1924년 조지아 봉기 진압 과정에서 3천 명을 학살하고 이후 감옥에서 처형된 사람까지 합해 7천~1만 명이 사망했다. 그러나 이와 정반대로 북한은 6.25 전쟁 이후에는 신기할 정도로 공개적인 자국민 학살에 무관심한 대신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방식으로 자국민을 학살했다.[318] 물론 1차 탈레반 시기에는 인터넷을 금지하긴 했으나, 당시에는 선진국에서도 인터넷이 지금만큼 보편화되지는 않았기에 탈레반의 인터넷 금지는 북한의 인터넷 금지만큼의 파급력은 없었다. 애초에 탈레반은 TV까지 금지시키던 집단이었다.[319] 물론 이 수치는 2019~2022년까지 4년 연속 취약국가지수 1위를 기록한 예멘보다도 낮고, 아시아에서는 북한과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3번째로 인터넷 사용률이 낮은 것이다. 참고로 투르크메니스탄에서의 인터넷 검열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며, 니야조프가 사망한 2006년까지는 오늘날의 북한처럼 아예 일반인의 인터넷 사용이 금지된 국가였다.[320] 사실 투르크메니스탄도 2020년부터 2021년 4월까지는 국민들이 국내 여행을 하려면 경찰의 허가를 받은 후 비행기 표를 구입해야 가능하게 하도록 했지만, 시기를 봐도 알 수 있듯 이는 이유 없는 국민 탄압이 목적이 아니라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어쩔 수 없는 고육지책에 가깝다. 그리고 사파르무라트 니야조프 집권기에는 5개 지역 중 2개를 '폐쇄'하고는 이들 지역과 국경 인근 지역을 오가는 것을 경찰의 승인을 받아야 할 수 있게 하는 걸로 대체하긴 했으나 그것조차 국내의 모든 지역으로의 여행을 통제한 것까지는 아니었고, 북한으로 치면 평양시자강도, 국경 인근 지역에 한해 여행을 통제한 것에 가까웠다.[321] 투르크메니스탄의 1인당 GDP는 2023년 IMF 통계 기준으로 195개국 중 67위인 13,065달러로, 차드, 니제르와 동급인 북한과는 정반대로 말레이시아, 멕시코와 비슷한 수준이다.[322] 물론 이조차 경제난으로 옛말이 되어가고 있다.[323] 사실 아페웨르키 입장에서는 자신이 고국의 독립을 전적으로 주도한 이상 독립에 기여한 것이 전혀 없던 김일성처럼 과장된 우상화로 자신을 억지로 치켜세울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324] 참고로 에리트레아보다 인터넷 사용률이 낮은 나라는 북한을 제외하면 미승인국인 서사하라(4.6%) 1개국밖에 없다.[325] 식생활까지 호화로웠던 독재자는 김씨 일가를 제외하면 모부투 세세 세코 정도밖에 없다. 애초에 오늘날의 권력자, 재력가들은 명품 구매, 호화 저택 같은 사치를 부리더라도 식생활만큼은 소박한 경우가 많다.[326] 분리주의 성향 테러리스트 수용소라 주장했다가 이를 감안해도 수감자가 너무 많다는 해외의 비판에 직업 재교육 장소로 공식 입장을 정정(?)했다. 그러나 이조차 '특별 격리 구역'의 존재 자체를 날조라고 전면 부인하는 북한보다는 양반이다.[327] 장쩌민도 영어 인터뷰에서 "그는 절대로(never) 죽지 않았다"고 강조했을 정도.[328] 중국이 미국 버금가는 강대국인지라 국제적 이미지 관리에 힘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이치다. 소련이 스탈린 사후에는 굴라그도 폐쇄하고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탄압을 완화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보면 된다.[329] 물론 해외로 출국한 그 순간 중국으로의 재입국은 사실상 금지된다.[330] 이는 중국이 스탈린 사후 소련과 유사하게 국제적 위신 악화도 고려하고 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하나, 달리 보면 그런 중국도 해외의 비판은 의식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331] 말만 제한적이지 사실상 보편적인 수준으로 쓰인다.[332] 해당 2015년 기사는 중국의 신화통신사(사실상 중국의 첩보기관처럼 간주된다)에서 직접 취재한 후 중국 언론에 공개한 것이며, 심지어 둘째 링크는 중국의 국영언론인 인민망 사이트다. 중국 당국의 검열을 통과한 기사라는 의미. 그리고 자신들의 정책이 적용되지 않는 지역이 있다는 것도 담담히 인정했으며, 빈곤층 퇴치를 지시한 시진핑에 대한 노골적인 찬양도 전무하다. #1 #2[333] 검은 신화: 오공 제작진들이 2018년 천안문에 걸린 마오쩌둥 초상화에 가운데손가락을 날린(...) 사진을 인터넷에 올린 적이 있었음에도 게임은 별 탈 없이 제작, 출시되었다. #[334] 정작 이웅평의 탈북 당시 한국도 사실상 일당제 국가였다는 것이 함정이지만. 정확히는 북한, 중국, 투르크메니스탄과 유사한 여당 + 구색정당들 체제. 당시에는 '공산주의 진영에 대한 자유진영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면에서 이웅평의 발언이 많이 인용되었으나, 시간이 오래 지나 민주화가 되면서 리버럴 세력이 많아지고 연구가 진행된 시점인 현재에는 말 그대로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였던 전두환 시대 대한민국조차 북한보다는 월등히 낫다는 것을 표현할 때 쓰인다.[335] 심지어 이조차도 러시아나 중국보다는 수치상으로 훨씬 자유롭다는 결과가 나온다. 물론 대부분의 자유주의/민주주의 지수 측정 매체가 서방 국가들에 우호적인 판정을 내린다는 것을 감안해야 하지만, 당연히 북한보다는 낫다.[336] 다만 납북자의 가족들은 거주 지역을 옮기려면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337] 물론 전두환 초기까지는 야간통행금지가 있었다. 여기서는 다른 지역으로의 이동을 허가를 받아야만 가능하게 한 제도가 없었다는 것을 말한다.[338] 일본도 경제성장기 초창기에는 외화 획득을 위한 업무나 시찰, 유학을 목적으로 한 해외여행 정도만 허용하다가 1964 도쿄 올림픽 직전에야 해외여행이 자유화되었고, 중국 역시 경제성장기인 1997년에 관광 해외여행을 자유화했다. 중국이야 그렇다쳐도 일본은 1960년대 당시 이미 민주주의 국가였다.[339] 당장 젊었을 적의 조갑제를 왜 북한 기자들이 부러워했는지를 생각해보자. 살인 사건도 보도할 수 없는 나라에서 독재정권에 위협이 될 만한 폭로들을 연이어 쏟아냈으니, 북한 기자들이 감탄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더구나 당시는 로동신문의 김일성 찬양 비중이 지금보다 훨씬 컸을 정도로 언론 검열이 지금보다 심했던 시절이었음에도 북한 기자들이 이렇게 소극적으로나마 북한 언론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는 것이다.[340] 대표적으로 누구보다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앞장선 장준하는 노골적인 탄압을 받았고 함석헌, 정일형 & 이태영 부부도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에 연루되어 징역 5년을 선고받은 바가 있다. 다만 전자는 암살되었다는 게 유력시되긴 하나 후자는 고령이거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형식적인 형 선고 수준에 그쳤다.[341] 비록 남한에서 독립운동가와 그들의 후손에 대한 대우가 열악하다는 말이 매우 많기는 하나, 이것조차 북한보다는 상황이 훨씬 낫다. 그 즉슨 북한에서는 원래부터 김일성파였거나 김일성파로 변절한 독립운동가들을 제외하면 과장 안 보태고 죄다 가족들과 함께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간 후 독립운동 기록이 말소되었기 때문이며, 독립운동가 후손 대우를 하긴 해도 김일성의 부하들의 후손에게만 해당되는 상황이다. # 당연히 북한에서 역사 속의 독립운동가들이 마땅히 가져가야 했을 공적들은 전부 김일성과 그의 부하들이 가져간 상황이며, 북한에서도 존재를 인정하는 하얼빈 의거, 3.1 운동, 홍커우 공원 의거 같은 독립운동조차 '김일성이 없었으니 실패했다'며 폄하당하는 상황이다. 북한에서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의 공적이 말소되었다는 것의 일례로, 북한에서 신채호를 소개할 때 (김일성에게 숙청당한) 김원봉이 이끌던 의열단에 가담하고 조선혁명선언을 썼다는 것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342] 참고로 고모부와 이복형을 죽인 김정은과 마찬가지로 호자는 집권 초에 매형을 죽였다.[343] 북한 정치범수용소는 안에 학교가 있으며, 수용소 학교 내에서 교육 시간이 끝나면 바로 어린이들을 강제노동에 동원한다.[344] 참고로 이봉창 의사의 의거 당시 일본에서는 천황을 비롯해 황족에게 위해를 가한 죄는 '대역죄'로 간주되어 대법원 격인 대심원에서만 공판이 진행되는 단심제였고, 사형만이 선고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일제도 동생 가뒀지 온 가족을 모조리 서대문형무소에 가두지는 않았다.[345] 물론 그녀도 일제의 감시를 피하지 못해 1934년에 손자 둘과 함께 중국으로 망명을 갔고, # 일제도 두 의사의 의거 배후가 밝혀진 후 김구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관련된 인물들을 체포하는 데에 혈안이었으나 이들의 가족까지 모조리 잡아가 처형할 생각은 하지 못했다.[346] 더구나 안중근 가문은 한일합방 후 조선총독부에 의해 멸문되기는커녕 오히려 일제강점기에 40명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할 정도로 건재(?)했다. #[347] 그 임산부는 체포 당시 임신 6개월이었으며, 수감 기간에 출산한 아이는 살해되었다고 한다.[348] 일제강점기에도 식민지배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활발히 사형을 실시했는데, 조선총독부관보에 따르면 일제강점기에 처형된 사람은 인구가 2~3배 가량이던 일본(1,103명)보다 많은 1,192명이었다고 한다. # 그럼에도 일제는 공개처형 자체를 실시하지 않았는데, 당장 윤봉길 의사도 처형 장소가 순국 79년 뒤인 2011년에야 밝혀질 정도로 극비리에 처형되었다. #[349] 참고로 오늘날 한국에서는 5~6촌 정도만 해도 남남으로 지내는 경우가 많다.[350] 사실 일제가 좁쌀을 수입한 것은 조선인을 굶게 해서는 안 된다는 애민정신이 따로 있었던 것은 절대 아니고, "식민지에서 아사자가 나오면 식민지 지배 정당성이 훼손된다"는 정치적 목적에 입각한 것이었다.[351] 빈말이 아닌 게 기쁨조 여성들은 위관급 계급까지 부여받았으니 사실상 위안부라고 봐도 무방하다.[352] 다만 상술했듯 실제로는 북한측 대본을 읽은 거에 불과할 가능성이 더 높아보인다.[353] 북한은 국민들에게 '별다른 일 없는 지상락원' 이미지를 심어줘야 하는 데다가 안 좋은 소식의 외부 유출을 꺼리기에 살인과 대규모 교통사고 같은, 다른 나라라면 일제히 보도할 사건사고도 평강역 폭발사고(보도는 되긴 했으나 '이런 사건이 있었으며 현재 복구 중' 정도로만 알렸다) 룡천역 폭발사고, 평양 아파트 붕괴 사고 정도로 심각하지 않은 이상 보도되지 못한다.[354] 다만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된 임산부가 아이를 낳으면 어떻게 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355] 엔베르 호자 시기 알바니아테오도로 오비앙적도 기니에서 임신한 여성 정치범을 강제로 낙태시켰다거나, 또 마시아스 응게마 시기 적도 기니호르헤 비델라 시기 아르헨티나에서 갓 태어난 아기를 살해했다는 증언이 있지만, 저들조차 북한처럼 국가 차원에서 계획적, 조직적으로 낙태와 영아 살해를 저질렀다는 증거는 없다.[356] 해외에서는 을사조약을 일제강점기의 시작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해외에서는 보호령을 주권국가로 취급하지 않기 때문이다.[357] 현재 북한의 최고지도자들의 북한 내 위상을 감안하면 북한 김씨 삼부자보다 권한이 강할 수 있는 지 의문이나, 사실 조선 총독의 권한은 전근대 전제군주정의 군주만큼이나 막강했다. #1 #2 본국 일본 제국에서부터도 나름 독립된 권력을 가질 수 있었을 정도. 물론 일제는 천황을 숭배시키면 시켰지 총독 개인에게 북한처럼 날조 우상화나 극단적인 숭배를 한 것은 아니고, 단순히 총독에게 주어진 권한만 더 많을 뿐 실제 위상은 당연히 북한의 김씨 삼부자보다 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