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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50년생. 1998년에 탈북한 북한의 정치보위부 인사. 2003년에는 미국으로 이민을가서 목사가 되었으며 재미탈북난민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현재까지 공인된 정치범수용소 완전통제구역의 유일무이한 석방자이자 생존자이다.[1]2. 상세
1993년까지 북한군 국가보위부 중좌라는 고위 간부였다. 3살 때 부친이 죽고 4살 때부터 애육원(고아원)에서 성장한 그는 얼굴도 모르는 부친이 미국 중앙정보국(CIA) 간첩이었다는 이유로[2][3] 보위부에 붙잡혀 완전통제구역[4]인 평안남도 개천 14호 수용소로 끌려갔다. 어머니는 혁명화구역인 18호 수용소로 이감되었지만, 그나마 불행 중 다행히도(?) 부인은 강제 이혼으로 무사했다고 한다.[5]1995년 10월에 국가보위부 고위 간부와의 인맥을 통해 겨우 어머니가 수감된 18호 수용소로 이감되어 3년간 추가로 복역하며 혹독한 생활을 보냈다. 1998년 석탄을 실은 열차에 몸을 숨겨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해, 중국을 떠돌다 한국 선교사의 도움으로 한국에 올 수 있었다. 2003년 미국으로 넘어가 미주에서 탈북자로는 첫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LA에서 북한 선교 사업에 힘쓰면서 수시로 중국을 방문해 탈북자들을 지원하고 있다. 2009년 5월 자신의 탈북 과정과 북한의 인권유린 실상을 알리는 영문 자서전 '롱 로드 홈'[6]을 펴낸 후 무려 15년 넘게 그 어떠한 근황도 알려지지 않고 있다. # 물론 정체가 정체인지라[7] 김한솔, 탱크맨[8]처럼 북한 정권의 위협을 피해 철저히 숨어 살 가능성이 높다.
그의 증언은 2000년 5월 월간조선에 실린 김용삼[9] 기자와의 인터뷰를 참고하자. #
다만 완전통제구역 수감자를 사칭한 신동혁[10]의 수기가 '사상 최초 완전통제구역 생존자 출신의 수기'로 잘못 알려지며 국내외 막론하고 김용의 인지도는 신동혁과 비교하지 않아도 매우 떨어지는 편이다.
[1] 완전통제구역의 실상에 대해 증언한 사람은 현재까지 단 3명 정도밖에 없는데, 김용은 이들 중에서도 유일무이한 완전통제구역 수감자 출신이다. 다른 증언자들을 살펴보자면 김영순은 실제로는 혁명화구역 수감자였으나 완전통제구역에 '파견근로자'로서 작업반장으로 일했기에 완전통제구역 수감자라 보기는 힘들고,(더구나 김영순의 증언은 극히 소략하다) 안명철은 수용소 경비원이지 수용소 수감자가 아니었다.[2] 놀랍게도 북한이 늘상 붙이는 누명이 아니라 진짜로 아버지가 CIA 스파이가 맞았다! 아버지의 신분에도 어떻게 출세가 가능했냐면, 어머니로 하여금 친척들과 공모하고 뇌물 1만 달러까지 써가며 같은 고향 출신으로 도부위원장까지 지낸 박복덕이란 사람과 어머니가 불륜의 관계를 맺어 태어난 자식이라고 호적을 위조하도록 했다고 한다. 신분 위조 덕에 출세를 이어가다가 평양 시민들의 주민등록 검사 과정에서 호적 위조가 드러나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간 것이다.[3] 물론 그의 정치범수용소 증언이 거짓일 가능성은 전혀 없는데, 애초에 이순옥(2004년 미국 의회에서 대놓고 정치범수용소에서 기독교 신자들에게 녹인 쇳물을 부어 처형한다고 주장한 여성으로, 정체는 경제범교화소 출신 사기꾼이었다.)마냥 잘못을 저질러 북한에서 처벌을 받은 후 이에 앙심을 품고 북한을 모함하기 위해 과장된 거짓 증언을 한 거라면 완전통제구역에서 작업성과가 좋으면 가끔 노래도 틀어줬다거나 혁명화구역에서는 아예 월급도 주고 상점도 있다거나 등 북한 정치범수용소를 좋게(?) 묘사하기도 했다는 게 전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김용이 북한의 실태를 광적으로 정밀하게 분석한 후 날조 주장을 했다는 것 아니면 거짓 경험담이라는 주장이 거짓, 즉 실제 경험담을 얘기했다는 것 둘 중 하나로만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는데, 당연히 후자가 훨씬 자연스럽다. 사실 이순옥의 증언은 북한 실정을 감안해도 과장이 너무 심해 증언 당시에도 '인민배우'라는 조롱까지 들을 정도로 탈북자 사이에서 말이 많았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실제로 좋은일하기운동만 봐도 알 수 있듯 북한은 7살 어린이들에게 고철을 모아오라 할 정도로 철이 부족한 나라인데 그런 상황에 태연하게 녹인 쇳물을 반대파 처형에 '낭비'하는 일은 전혀 말이 안 된다.[4] 완전통제구역의 경우, 석방 가능성이 아예 없다. 강철환처럼 증언한 사람이 많은 혁명화구역은 석방 가능성이 있기는 하다.[5] 사실 우리가 아는 무자비한 연좌제는 김일성 시기에는 보편적이었지만, 당시에 너무 가혹하게 연좌제를 실시한 결과 정치범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수용능력이 한계에 부딪혔기에 김정일 이후로는 연좌제가 완화되었다고 한다.[6] 국내에서는 출판되지 않았다.[7] '고위층 + 정치범수용소(그것도 완전통제구역!) 생존자'라는, 북한이라면 가장 광분할 수밖에 없는 두 요소를 모두 갖췄다. 강명도는 뭐냐 싶겠지만 이쪽은 혁명화구역에서 혁명화 처분을 받았던지라 타 수감자 대비 그다지 큰 고통도 겪지 않았다.[8] 이쪽은 북한이 아닌 중국 인물이다.[9] 반일 종족주의 집필에 참여한 그 사람 맞다. 물론 김용삼이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은 이 기사 작성으로부터 거의 20년 후이기에 이 기사의 신뢰도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10] 정확히 말하자면 혁명화구역에서 태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어릴 적에 가족과 같이 혁명화구역에서 풀려나 생의 대부분을 북한 공민으로 살았다. 물론 증언도 주변에서 들은 것을 자신의 거짓말과 섞은 거라 탈북자 증언의 신뢰성에 매우 큰 악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