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13:15:52

김영순(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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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영순1.jpg
이름 김영순 (Yung Soon Kim)
출생 1937년 7월 4일 ([age(1937-07-04)]세)
중화민국 선양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제2인민학교 (졸업)
평양종합예술학교 (무용학부 / 졸업)
소속 정당

[[무소속(정치)|
무소속
]]
소속 최승희무용교육원 원장
한국전통문화예술협회 고문
경력 최승희 무용교육원 원장
한국전통문화예술협회 고문
북한 민주화위원회 부위원장
북한 전략센터 이사
정치범 수용소 생존자 포럼 대표
前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특별강사
前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협주단 무용배우
前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여행자 상점 상업부장
수상 한국전통문화예술협회 이사장 감사장 (2023)
1. 개요2. 생애3. 학력4. 경력5. 수상이력6. 강의이력7. 서 적8.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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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무용가. 최승희의 마지막 남은 직계제자다.

2. 생애

일제강점기 당시, 가족들과 중국 베이징에서 잠시 살다가 해방 이후, 친오빠를 따라 북한으로 가게 되었다.[1]

이후, 북한의 영웅집안으로 옥류관 옆 아파트에서 살았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협주단 무용배우로 활동을 하였다.

김영순은 젊은 시절 대동강을 걷다보면, 최승희 무용연구소가 보여서 최승희에게 무용을 배우는것을 원했으며, 성인이 된 이후 20대 때 평양예술종합학교에서 최승희를 학부장과 제자관계로 만나 인연이 되어 최승희에게 발레, 무용 등을 배웠었으며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협주단 무용배우로 활동을 하였다고 했다. 최승희는 기본기가 완벽하게 안 되어있다면 작품을 절대로 먼저 가르치지 않을 정도로 조금만 틀려도 허벅지를 꼬집으면서까지 제자육성에 엄격한 무용가였다고 말했다. 2024년 시점에선 최승희의 행동이 학대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당시 시대상을 감안하면 무난한 가르침이었다.[2]

스승 최승희가 남편인 안막이 갑작스럽게 실종된 이후 탈북을 시도하였지만 북한 인민군에게 잡혀 밤나무에 묶여 총살당한 것을 두고, 너무나 아까운 예술인이 죽었고 슬픈 일이었다고 말했다. 또 6.25전쟁 당시, 월북한 유명 예술인들 또한 대다수가 처형당했는데 이는 너무나 슬픈 일이었다고 말하였다. 이 때 처형당한 유명 예술인으로는 가야금 명인 최옥삼이 있다.

김영순은 이후, 협주단 무용배우를 그만두고 결혼을 한 후 김일성으로부터 고위급들만 출입하는 여행자 상점의 상업부장으로 임명받았으며, 만경대 칠골할머니와 김성애와 함께 친근한 관계였으며, 특히 김일성의 가족인 만경대 칠골할머니와 함께 북한에서 최초로 여성스타킹을 개발 판매하였고, 젊은 시절의 김정일과 김경희 또한 자주 여행자 상점에 놀러와 반기기도 하였다고 말했다.

부유하게 평양에서 영웅집안으로 살고 있었지만, 자신의 단짝 친구였었던 성혜림이 김정일과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는것과 친하다는 이유로 정치범수용소인 요덕수용소로 온가족들이 끌려가게 됨으로서 비극이 시작되었다. 요덕수용소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잃고 직접 가마떼기를 만들어 감싸서 눈물을 흘리며, 묻었었고 몇 년 뒤 아는 중앙노동당 간부를 통해 수용소에서 나왔다고 하였다. 수용소에 들어오기 이전부터 알고 지냈던 최민수의 외할아버지 강홍식이 수용소에서 같이 지내다가 사망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이후 중국접경지역에서 가난하게 살다가 남편 또한 실종이 되고, 아들 2명은 총살당하고 딸 1명은 입양을 보내 지금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하였다.

그러다 2000년대 초반, 김영순은 탈북을 성공했고 마지막 하나 남은 아들 또한 나중에 탈북을 시도했지만, 북한 인민군에게 심문을 받던 중 심하게 고문을 당하여서 중증장애인이 되었다.

김영순은 젊은 시절을 생각해보면, 지금은 거의 꿈만 같은 일들을 경험했다고 말하였다. 김구여운형 등 다양한 분들을 만나기도 했었고, 특히 김구와 어릴 때 기회가 생겨 만나 악수를 하였는데, 김구의 손이 보통 크기의 손보다 크던 것이 아직까지도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좋은 기억 또한 있지만 북한에서 비극적인 삶을 산 이후에는 지금도 힘들게 살고 있는 북한의 한민족을 위한 인권운동을 결심하여 세계 각국에서 북한의 실태를 알리며 인권운동에 앞장서기도 하였다.

김영순은 자신이 이제는 나이도 많고 하여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고 싶고, 특히 북한인권 문제를 알리며 세계인들과 함께 한반도의 평화통일에 힘쓰고 무용가로서 특히 최승희의 직계제자로서 대한민국에서 최승희 무용을 알리다가 언젠가는 천국으로 가고 싶다라는 말을 밝힌 바 있다.

3. 학력

* 북한 평양 예술종합학교 무용학부 졸업 (1기)
* 제2인민학교 (교장: 문무현) 졸업

4. 경력

* 최승희 무용교육원 원장
* 한국전통문화예술협회 고문
* 북한 민주화위원회 부위원장
* 북한 전략센터 이사
* 정치범 수용소 생존자 포럼 대표
* 前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특별강사
* 前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협주단 무용배우
* 前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여행자 상점 상업부장

5. 수상이력

* 한국전통문화예술협회 이사장 감사장 (2023)

6. 강의이력

* 미국 Havard University 북한인권 강의 / 미국 前대통령 Donald J. Trump와 면담

7. 서 적

* 자전수기 - 나는 성혜림의 친구였다

8. 출처



[1] 그녀의 오빠는 조선의용대에서 활약하였으며, 북한 김일성과 함께 인민군 창립멤버 겸 참모장으로서 6.25당시, 낙동강 전선에서 국군에 의해 총을 맞고 사망했다.[2] 90~2000년대 초중반만 해도 사랑의 매를 빙자한 무자비한 폭력이 일상이었다는걸 감안하면 정말 애교에 가까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