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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우리가 열심히 공부해야 할 대상을 공산주의가 내린 결론만으로 한정하거나 공산당의 슬로건만을 암기해도 좋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런 식으로 해서는 공산주의 사회를 건설할 수 없습니다. 인류가 창조한 문화유산에 대한 모든 지식을 풍부하게 지니고 있을 때 비로소 참된 의미의 공산주의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블라디미르 레닌, 1920년 10월 2일 러시아 공산청년동맹 제3회 전러시아 대회 연설[1]
블라디미르 레닌, 1920년 10월 2일 러시아 공산청년동맹 제3회 전러시아 대회 연설[1]
이 지구상에 북조선만큼 철저하고, 무지막지한 노력 투하를 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북조선 땅이 아무리 좁고 인구가 유한하다 하지만 거기에 있는 모든 책의 페이지가 검열 대상이 된다면 그 페이지가 어느 만큼이겠는가. 같은 제목의 100권의 책이면 그 100권 모두가 검열 대상이다. 페이지에 있는 글줄이 모두 검열 대상이라고 쳐 보라. 글자 하나하나가. 도서 정리는 당에서 문제라고 제기하는 내용과 어투, 인명을 삭제하는 작업이다.
국민통일방송 <등나무집> 1부 23화 5.25 교시에서#
도서정리사업은 1967년 5월 25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4기 15차 전원회의의 "5.25 교시"로 시작되어, 김정일이 정식 후계자로 선포된 1974년 무렵까지 계속 된 북한의 대대적 검열, 문화말살작업, 북한판 문자의 옥이다. 8월 종파사건과 함께 북한을 2차 대전 후 최악의 독재국가 중 하나로 확립시킨 결정적인 사건이다.[2]국민통일방송 <등나무집> 1부 23화 5.25 교시에서#
이 사업으로 조선로동당에서는 최후의 분파인 갑산파까지 완벽하게 제거했으며, 주체사상으로 명명된 김일성의 유일사상체계가 완벽하게 구축되었다고 볼 수 있다. 북의 인텔리들은 "인텔리 혁명화"라는 구호 속에 엄청난 고초를 겪었다. 이 부분은 주체사상 문서 참조.
※ 1분 32초부터 도서 정리사업에 관한 내용이[3] 나온다. |
2. 내용
성혜랑의 회고에 의하면, 이 사건 이전까지 북한은 그냥 동시대의 폴란드나 현재의 쿠바 수준인 살기 나쁘지 않은 사회주의 인민의 나라였으나, 반수정주의의 태풍 아래에 대대적 인텔리 제거, 인텔리가 만든 "문화"에 대한 총공격, 좌경극단주의에 의한 반문화 혁명이 휩쓸고 갔다고 한다. #1948년 북한에서 처음으로 이루어졌던 투표는 보면 99.97%의 투표율에 찬성투표율 98.49%을 기록했다. 6.25 전쟁 이후 북한의 첫 선거는 1957년에 진행되었다. 여타 공산권처럼, 선거구마다 후보자가 1명뿐이었고, 공식 결과는 “참가자 99.99%, 찬성투표 99.92%”이었다. 즉, 아직 김일성식(式) “100% 참가, 100% 찬성” 제도가 도입되진 않았고, 소련처럼 국내에 극소수라도 출마한 후보자에게 반대할 수 있는 공민이 존재할 수 있는 점을 인정하였다. 하지만 1956년 8월 종파사건과 1967년 도서정리사업으로 민주주의의 싹을 완전히 제거해버렸다. #[4]
이는 분서갱유, 문자의 옥, 문화대혁명 등 중국의 역대급 검열 사건의 축소판이나 다름 없는 사건으로, 모든 개인 서적은 불태워지거나 도서관에 들어갔다. 러시아 문학은 물론이거니와 레닌, 스탈린, 마오쩌둥, 엥겔스, 심지어 마르크스 서적도 얄짤없었다.[5] 한국도 비록 독재·군사정권 시대에 탄압을 받긴 했지만, 1987년 민주화 이후 자본론을 비롯한 사회주의·공산주의 등 관련 서적들이 해금되었다.
도서정리사업이 실행되면서 전국 모든 가정, 직장의 책이 한 페이지마다 한 권도 빠짐없이 샅샅이 검열을 받아 수령 우상화, 항일무장투쟁 절대화, 계급투쟁, 반부르주아 사상에 저촉되는 모든 문구에 먹이 칠해지거나 딱지가 붙었고, 심지어 페이지가 통째로 잘려나가기도 했다. 살아남은 책이라고는 수령 찬양용 정치 서적, "수령님 노작", 교시집 정도였다. 중국으로 따지면 기존의 책이란 책은 모두 불살라지고 분서갱유 당시의 진시황, 문자의 옥 당시 역대 청나라 황제들, 문화대혁명 당시의 마오쩌둥을 찬양하는 책들만이 남겨진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나 실제로 그 어마어마한 규모의 검열 사건이 일어난 그 당시의 중국까지도 검열과 숙청은 저때 당시의 북한 이상으로 심하게 했을지언정 최고지도자를 찬양하는 서적만 남기고 모든 서적을 사실상 없애버리는 짓을 하지는 않았다. 당장 이 분야에서 가장 유명한 진시황의 분서갱유조차도 실생활에 필요한 농업, 의학 등의 실용 기술서는 오히려 분서 대상에서 뺐다.
역사 교과서에서 이순신이나 을지문덕, 세종대왕 등 역사적인 인물들은 업적이 대폭 축소되어 김일성보다 못한 인물로 기록되었고,[6] 김일성은 순식간에 역사 인물 중에서도 최고의 인물이 되었다. 외국 음악은 소련이나 중국, 동구권 국가들의 것일지라도 금지되었기에 클래식 음악들도 모두 금지곡이 되었고,[7] 수많은 문화재가 박살났으며 서양화 화가들은 "현실 체험"이라는 미명 아래에 지방 농촌으로 쫓겨났다. 천리마 운동 시대에 크게 인기를 끌던 판소리는 "쌕소리"로 규정되어 춘향전, 심청전, 베벵이굿 전승자들이 모조리 사라졌다.[8] 외국 과학기술의 도입은 수정주의가 되었고, 선진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조차 비판 대상이 되었다.
이것 때문에 컴퓨터나 인터넷 같은 IT 기술도 한 동안 자본주의의 반사회주의적 요물로 취급받은 적이 있으며[9] 영어와 일본어 등도 원쑤의 나라의 말을 배워서는 안 된다고 한 적이 있었다가[10] 나중에 2000년대에 들어서 영국식 영어를 들여오게 된다. 게다가 북한군의 교리 중에 적국 무기를 노획하면 사형에 처한다는 괴상한 군법도 여기에서 기인했을지도 모른다는 설도 있는데, 그러면서 적국 민간인의 약탈은 용인하며 정식 교리에 편입시켰다.[11]
오직 인정받는 것은 김일성의 위대성을 찬양할 수 있는 것 뿐인데, 리승기가 만든 비날론에 주체섬유라는 이름을 붙여 김일성의 공인 양 미화해 버리는 식이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북한 사전에는 이 도서정리사업의 근원이 된 5.25 교시가 발표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4기 15차 전원회의가 기록에서 빠져있다. 또한 사회에서는 좀 "개명적인 취향"이 있는 친구, 나쁘게는 정치성이 부족한 만문한 사람의 별명은 "부기사"라 부르는 은어가 생겨났다. 이는 각종 영화, 소설, 예술 작품에서 "충신"으로 나오는 기사, 지배인, 실장과 대립되는 부정적인 인물이 항상 부기사, 부지배인, 부실장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5.25교시
선진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조차 비판 대상이 되었던 주제에[12] 2009년 CNC를 자체개발했다고 크게 자화자찬한 것처럼, 여느 막 나가는 사이비 체제가 다 그렇듯 북한의 도서정리사업도 모순점이 대단히 많다. 그런데 1980년대 들어 중앙도서관[13]이 이관하면서 인민대학습당으로 개칭되었는데 북한 당국에서 이때 감추어졌던 책들까지 빠득빠득 모으면서까지 인민대학습당을 꾸미려고 했고 그 덕분에 도서정리사업 당시 사라진 서적들이 다시 빛을 보기도 했다. 다만 역시 북한이 아니랄까 매우 폐쇄적으로 운영되는 건 마찬가지라 이 당시의 서적을 보려면 몇 주 이상은 꼼짝 없이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3. 외부 링크
도서정리사업 - 김정일 리포트, 63~66p.4. 같이 보기
[1] 레닌은 지성주의자이며 진정한 공산주의자는 공산당 슬로건이나 이론만 암기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축적한 역사적인 모든 지식을 풍부히 알아야 비로소 진정한 공산주의자로 형성된다고 언명했다. 그렇지만, 정작 북한에서는 마르크스와 엥겔스, 레닌, 스탈린 등의 저서는 물론 역사적으로 주체사상에 조금이라도 흠이 되면 무조건 박해한 것으로 레닌의 견해에 위반된다.[2] 8월 종파사건은 북한의 정치적 자유를, 도서정리사업은 북한의 시민적 권리를 완전히 박탈시킨 사건이라고 보면 된다.[3] 하지만 이 영상에서는 김일성의 역할이 빠져있다. 아들 김정일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서포터에 불과했다.[4] 김일성 우상화는 해방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북한 정권수립 전 인민군 창건 당시에도 김일성의 사진이 붙어있고 김일성 장군의 노래도 1947년 작곡되었다. 6.25 전쟁 직후 동유럽에 보내진 전쟁고아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김일성의 아이들"을 보면 동유럽의 전쟁고아들은 인솔한 북한 교사들의 감시하에 군대식으로 지냈고, 매일 김일성의 얼굴이 그려진 인공기에 경례를 하고 김일성 장군의 노래를 불렀다 한다. 심지어 북한 전쟁고아와 같이 생활한 현지인들이 그 노래를 기억할 정도였다.[5] 이는 전혀 과장이 아니다. 1991년 안드레이 란코프가 쓴 '평양의 지붕 밑'에 따르면 북한에서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의 저서는 주체사상과 모순되는 내용들을 다 걸러내는 등 극히 검열된 대학생용 선집만 출판되었으며, 이들의 저서 원본들은 도서관의 특별한 방에 보관되어 특별한 승인을 받은 극소수의 사람들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김일성종합대학에 재학했던 주성하도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이 북한에서는 금서라고 말하며 이들 책은 그것도 엄격한 절차를 거친 뒤에야 빌려볼 수 있고 그러면 보위부에 '요주의 인물'로 찍힌다고 증언했다. 주성하가 이 책을 빌려본 적이 있는데, 5~60년대에 출판된 책이란 것을 감안해도 아무도 빌려보지 못해 책에 먼지가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고 한다. #[6] 기본적으로 외세를 물리치거나 민족국가를 부흥시켰다는 등의 활동 자체는 인정하되, '그들은 봉건시대의 인물들이고 기존 봉건국가나 체제의 수호나 존속을 위해 그러한 활동을 한 것'이라며 그 인물들과 활동들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는 식이다. #[7] 그나마 이는 70년대 초반에 풀렸다고 한다.[8] 참고자료[9] 사실 이는 외부 문물 도입이나 개방에 대한 문제에도 한 몫을 했기 때문이다. 현재도 북한에서 인터넷은 백두혈통을 제외하면 연구원, 선전요원, 해커 등 인터넷이 필요한 극소수 인사들과 고위급 인사들만이 제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자세한 것은 북한/IT 문서 참조.[10] 사실 이건 구일본군에서 태평양 전쟁때 영어를 비롯한 적국어를 금지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북한이 이 제도를 모방해서 이어받은 걸로 추정된다. 정작 그 시절 일본 해군에도 영어 교육을 반대하는 우익들에게 “해군이 국제공용어를 모르는 게 말이 되냐?”고 일갈하며 일본해군병학교(일본 해군사관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친 이노우에 시게요시 교장 같은 사례도 있었음을 감안하면 그야말로 뻘짓.[11] 나중에 북한군이 이 교리가 바보 같다는 걸 깨달았는지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을 기점으로 대남 공작원들이 아무런 각인 없이 불법 복제한 M16 소총으로 무장했기에 이 군법을 (일단 대남공작 간첩 한정으로나마) 공식적으로 폐지한 것으로 보인다.[12] 물론 김정은 시기에는 미래과학자거리와 과학기술전당을 만드는 등 선진 과학 기술에 정부 차원에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13] 남한의 국립중앙도서관에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