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16 06:00:26

간도회복

1. 개요2. 유엔 기준3. 명분4. 범위5. 논점
5.1. 간도의 역사적 영유권과 현재의 영유권5.2. 백두산정계비와 비엔나 협약5.3. 조중변계조약과 추후 승계 문제5.4. 정치현실주의 관점에서의 미래
6. 가능성7. 이루어진다면8. 기타9. 둘러보기

1. 개요

간도 지역을 대한민국으로 합병하려는 주장 및 운동. 애초에 간도의 정의 자체가 굉장히 애매하다 보니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여기에는 현 중화인민공화국연변조선족자치주 대다수와 러시아 연해주 지방 일부가 포함된다. 범위에 따라 연길, 용정 일대의 회복 안에서부터 연변회복, 고구려의 발상지인 국내성 일대의 회복을 주장하는 서간도 회복, 송화강 일대의 회복을 주장하는 북간도 회복의 4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주로 팽창주의적 성향을 가진 대한민국범민족주의 진영에서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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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엔 기준

파일:연변 유엔 지도 .png
World Map 4170 R15.1 Jul18
UN의 세계지도에선 (본 문서에서 간도라 설명하는 지역인 연변지역) 분명히 중국영토로 되어있다.

3. 명분

이 문단은 토론을 통해 2018-02-23 10:56:31이전 합의상태로 유지할 것(으)로 합의되었습니다. 합의된 부분을 토론 없이 수정할 시 제재될 수 있습니다.
[1]
백두산정계비에 기록된 '西爲鴨錄, 東爲土門(서위압록 동위토문; 서쪽 국경은 압록강으로, 동쪽 국경은 토문강)'이라는 글귀의 토문강이 (청나라의 주장처럼) 두만강을 뜻하는게 아니라 송화강 상류 지류인 흑석구[송화강]를 의미한다는 해석이 가장 강력한 근거이다.[3] 더불어 구한말의 혼란상 속에서 대한제국청나라과의 영유권 분쟁을 벌이며 실효지배를 주장했던 기록이 남아있다는 점도 한국의 주장을 일정 부분 뒷받침한다. 이와 관련하여 '명분' 단락에서 다룰 내용이 조금이라도 있는 지역은 연길을 포함한 연변 일대까지로 한정한다.

이후 간도 지역은 1677년 강희제가 청의 발상지라는 명분으로 허투아라 이동, 이통 이남, 압록강·두만강 이북 지역'을 청조의 발상지라 하여 만주족 이외 타종족의 출입을 금지하는 '봉금지대'로 설정하였다. 이후 청 제국은 남황위장(南荒圍場: 연길 일대) 내에 후주산(瑚珠山), 아부다리(阿布達哩), 호르훈산(烏爾琿山), 후란산(呼蘭山) 등 특별 구역에서 부트하 우라 총관아문 관할의 팔기제에 편제된 타생전(打牲丁)을 두고 인삼을 채집하였다. 18세기 초기 전매제가 성할 때 기린·봉천·닝구타 등지에서 인삼 채집에 종사하는 전담 인원만 약 1만 명에 달하였다. 타생전이 1년에 전매서(專賣署)에 납품한 인삼은 무려 400만 냥에 달하였다.[4]

이 무렵 두만강을 월경함 6진의 조선인들과 타생인(打牲人)들 간에는 인삼 채집을 둘러싸고 빈번한 마찰이 발생하고, 무력 충돌로 이어지자, 강희제는 이를 빌미로 청 제국의 국경을 진일보 확정하기 위해 부트하 우라 총관 목극등을 조선에 파견했다. 1711년에는 조선 측이 고의적으로 목극등을 폐사군 지역으로 안내하여 다시 돌아가게끔 하였으나, 1712년 강희제가 조선에 백두산 일대의 변계 조사를 요구하면서 목극등을 다시 파견하였고, 마침내 백두산정계비를 건립하였다.

정계비 건립 이후 청 제국은 두만강 하류 인근의 훈춘에 훈춘협령을 설치하고 봉금을 강화하였고, 점차 그 영향력을 두만강 전역으로 확대했다. 이에 따라 1762년에는'닝구타등처지방금지유민례(寧古塔等處地方禁止流民例)'가 제정되었으며, 1848년에는 '사감기린호이파투먼강이처협집장정(査勘吉林輝發土門江二處協緝章程)'이 제정되어 매년 봄과 가을에 두만강 연안 지역을 순라하면서 월경인의 여부를 단속하였다.[5]

그러나 1860년대부터 봉금정책은 느슨해졌고 이에 1869년부터 1870년까지 대기근으로 인해 삶은 터전을 개척하려던 조선인들이 두만강을 넘어 그 땅에 이주하여 아예 터를 잡기 시작했다. 더나아가 1880년부터 1881년까지 회령부사 홍남주의 묵인[6] 아래 두만강 이북에 길이 500리, 넓이 40~50리에 달하는 광활한 지역이 개척되어 수천여 명이 더 이주하게 되었다.

1881년, 이러한 심각성을 뒤늦게 파악한 진수기린우라등처장군 밍안은 다른 관리들과 논의 끝에 남황위장의 봉금을 전면 해제하고 ‘성경동변간광지개간조례’에 근거하여 북간도 지역을 개방하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청은 월경한 조선인들에게 귀화입적을 강요하였고, 이에 조선인들은 종성부사 이정래에게 백두산정계비의 토문강은 두만강이 아니라는 근거로 피해를 호소하였다. 따라서 이정래는 1883년에 토문강국계설을 주장하여 마침내 국경분쟁이 시작되었다. 1885년과 1887년 두 차례에 걸쳐 간도를 둘러싼 청과 조선의 감계회담이 벌어졌고, 조선 측 토문감계사 이중하는 을유감계회담에서는 흑석구[송화강] 국경설을, 1887년 정해감계회담에서는 홍토수[두만강] 국경설을 주장하였다. 즉 1885년에는 북간도 지역을 두고, 1887년에는 두만강 상류를 두고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분쟁이 벌어졌던 것이다.

1903년 대한제국은 간도시찰사 이범윤을 간도관리사로 승격시켰고, 이범윤은 북간도에서 사병조직이자 비밀감찰조직인 사포대를 설립해 1902년, 연집강에 소재지를 둔 청의 연길청과 지속적으로 충돌한다. 이에 양국의 변경 관리들은 이듬해 해당 지역에 대한 행정적 관리의 필요성을 인지하여 한중변계선후장정에 합의하였는데, 이는 한청간 국경을 잠정적으로 도문강[9]으로 정하여 북간도에 대한 청의 관할을 허용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조약은 중앙정부의 법적 승인이 결여된 채 지방관리들의 편의에 의해 맺어진, 국제법적으로 '조약'으로 승인되지 않는 '약장'이었다. 1906년, 조선통감 이토 히로부미는 참정대신 박제순으로 하여금 일본 제국의 북간도 한국민 보호라는 명분을 제공토록하여 통감부간도파출소와 연길청 사이의 간도 영유권 분쟁이 재점화되었다가, 청일 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간도협약이 체결되면서 대한제국은 두만강 너머의 영토에 대한 영유권 확보 기회를 박탈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간도협약은 불법적인 을사늑약의 귀결로써,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일본 제국에게 박탈된 이후 대한제국의 의사와 무관하게 체결된 것이므로 인정되지 않는다. 물론 같은 논리로, 을사조약이 체결된 1905년 이후 조선인이 아닌 일제 정부가 간도에 행사한 영향력 역시 현대 한국의 영유권 근거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요약하자면, 해당 지역은 고구려와 실효지배하던 영토[10] 였으나, 이후 상실하였고, 이후 청나라을 상대로 (의도치 않게) 얻은 외교적 명분으로 인해 1883년부터[11] 1904년[12]까지 조선과 청 사이의 암묵적인 영토 분쟁지역으로 유지되어 오다가, 1905년 을사조약의 늑약 그리고 1910년 경술국치로 인해 일제강점기를 맞이하면서 교섭의 기회를 상실한 채 이어져오는 상황이다.[13] 따라서 한국에 완벽한 영유 정당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우나, 영유권 주장의 근거가 어느 정도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국경이 유동적으로 움직이던 전근대에 해당 지역이 고구려 등 한반도 국가들의 영향 아래 있었다는 점, 그리고 현재 연변한국계 중국인재중동포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는 점 등도 부차적인 근거로 제시되곤 한다.[14] 그러나 전근대의 국경변화를 죄다 수용하자면 지구상에 국토를 온전히 유지할 수 있는 나라가 없고, 같은 민족이 거주한다는 이유만으로 영토 확장을 하는 것이 반드시 정당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나치 독일이 있는 만큼, 이는 주된 근거가 될 수는 없다. 간도에 한민족만 사는 것도 아니고.

4. 범위

이 토문강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영유권을 주장하는 영토가 갈린다.


  • 연길 일대 회복
    백두산-송화강 지류-토문강 지류(해란강 or 분계강 or 포이합동하)-두만강 선을 한중 국경으로 보고 그 사이 지역인 옌지, 투먼, 퉁징 일대를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 앞서 언급한 모든 명분이 해당되기 때문에 근거도 많고, 설득력도 높다. 하지만 현실성은 별로다.

여기서부턴 사실상 제국주의와 다름없는 주장이다
  • 연변 일대 회복
    파일:attachment/간도회복/GreaterKorea.jpg
    백두산에서 송화강에 도달하기 전까지의 토문강 본류를 두만강 선과 이은 범위 내에 있는 영토에 대한 영유권 주장. 편의상 연변 일대라고는 했으나, 엄밀히는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조선족 인구가 압도적으로 낮은 둔화 지역은 제외한 범위이다. 연길 일대를 제외한 연변의 경우 청나라가 조선보다 앞서 관리를 파견하여 실효지배 중이었다.
  • 동간도 회복
    토문강과 송화강을 국경으로 보아 현 중국의 최동북단인 볼쇼이우수리스키 섬(헤이샤쯔 섬)까지가 한국의 영토라는 주장. 애초에 송화강의 지류가 토문강일 뿐 백두산정계비에 송화강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도 없고, 해당 지역에는 조선이나 대한제국의 유의미한 영토분쟁조차 없었음을 고려할 때 명분이 없다. 게다가 러시아 연해주를 포함하기 때문에 현실성도 없다.
  • 서간도 회복
    고구려의 발상지인 국내성졸본이 두만강 북안 지역에 있었고, 청나라 사람들이 이 구역에서 없어지자 조선인들이 들어가 살았다는 점이 근거라고 한다. 하지만 백두산 정계비에 의해도 중국 땅인 것이 분명하고, 발해 멸망 후 한민족 국가가 실효 지배한 적도 없다. 게다가 앞서 언급했다시피 통치행위 없는 이주민의 존재는 영유권 주장의 근거로 작용하지 않는다.
  • 동북간도(령간도) 회복
    러시아 연해주의 일부인 블라디보스토크 이남의 하산스키 군 일대를 '노령 간도'라 부르는데, 이 땅을 한국이 회복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고구려발해 시대 영유를 빼면 근거도 없고 현실성도 없다.
  • 만주연해주 회복
    근거도 현실성도 없다. 심지어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항상 기대곤 하는 고구려발해도 만주와 연해주 전역을 지배하지는 않았다. 현실성을 고려하기 이전에, 영토로 보나 인구로 보나 한국의 수 배에 달하는 지역을 차지한들 제대로 통제할 수나 있을지 의문이다. 다 쫓아내 그냥 잘 해봐야 일본 제국만주국인 양 괴뢰국을 세우는 정도일 테고, 극단적으로는 중원을 정복했다 동화되어 사라진 무수한 소수민족의 마이너 카피가 될 수도 있다.[15]

5. 논점

이 문단은 토론을 통해 간도회복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관동대지진 비유를 서술금지하고 비엔나 협약의 해석과 관련하여 명시적 합의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해석을 추가한다. 또한 현 시점에서 간도 영유권이 중국에게 있음을 명시하고 그 근거로 조중변계조약을 설명하되 대한민국이 북한의 조약을 반드시 승계해야 할 의무가 없으며 국토는 가변적이라는 사실 또한 명시한다. 자세한 사항은 토론의 합의를 기준으로 한다.(으)로 합의되었습니다. 합의된 부분을 토론 없이 수정할 시 제재될 수 있습니다.

5.1. 간도의 역사적 영유권과 현재의 영유권

서울대 국사학과 박사 출신인 강석화 교수의 좌담이나, 중국 난징대학교 역사학과 박선영 교수의 논문, 강정민(변호사·‘간도반환청구소송’ 저자)의 간도 영유권 문제를 다시 생각한다: 10가지 쟁점별로 정리한 1000년 역사의 진실이라는 사설 등을 살펴보면, 간도협약이 불법적으로 맺어진 조약임을 전제로, 1) 고려 시대 북방 유목민족과의 항전과정에서 군사적 필요에 의해 발생한 일시적 영유, 2) 조선 시대의 백두산정계비 및 3) 구한말 조청국경분쟁을 근거로 현대 간도의 영유권 문제를 재논의하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여기서 고려가 이 지역을 영유한 적이 있는지[16], 백두산정계비 비문의 본 의도 및 법적인 해석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등 학계의 주 쟁점들에 대해서도 열린 시각에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엄밀하게 살펴보자면 조선의 간도 분쟁은 어디까지나 영유권 분쟁이었을 뿐이므로, 한반도의 한민족 국가[17]가 간도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확립한 역사는 최소 천여 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간도를 명확하게 점령하고 중국인들이 해당 지방에 거주했던 것 역시 중국대륙의 마지막 한족 국가인 명나라가 끝이다.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과정에서 한족만주족을 병탄하며 자기네 역사로 편입시킨 청나라의 경우, 19세기 이전까지는 해당 지역을 봉금지역으로 지정하여 '면'의 국경선을 인정했다. 요컨대 중국의 입장에서도 '영토'의 다른 두 요소인 국민(해당 지역으로의 중국인 이주)과 주권(행정 관할 및 통치권)을 명확히 행사한 기간은 그렇게까지 길지는 않으며, 그렇기에 중요한 백두산정계비의 해석에 상당한 여지가 있다는 점이 상기 인용에서의 주된 역사적 논점이다.

물론 제아무리 사학자들이나 법학자들이라 하더라도 관련 분야에서 논리적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은데다가, 일정 부분 정치 논리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따라서 국내 일부 학자들의 주장이 꼭 중립적이라거나, 덮어놓고 반드시 옳다고 속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보다 상식적인 관점에서도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면, 그 화자의 전문성이 주장의 신뢰도에도 기여한다는 사실 역시 부정하기 어렵다. 말하자면, 적어도 그렇다는 주장을 우리 관점에서 내세웠을 때 상대편에서 이를 터무니없다고 무시하지 못하고, 서로 반박 논리를 준비하여 외교적 대결을 벌여볼 정도의 완결성은 가진 주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법정에서 판사의 최종 판결문은 되지 못하더라도, 적어도 대한민국 측 변호인의 최종 입장표명은 될 수 있다는 이야기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역사적 영유권이 반드시 현 시점에서의 영유권 분쟁의 근거로 사용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역사적 영유권 논쟁에 있어 법학자와 역사학자가 모두 필요하다는 것은 상식이나, 보다 주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국제)법학자의 논거이다. 왜냐하면 역사학자는 "과거 조선이 간도를 영유했는가"라는 문제에 대한 답을 줄 뿐이고, 간도회복 운동의 주된 쟁점은 "(과거는 아무래도 상관없고) 현대 대한민국 내지는 미래의 통일 한국이 간도를 영유할 권리가 있는가"라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일본 오키나와의 경우 일본 제국이 제국주의 논리로 류쿠 왕국을 병합하기 이전까지는 계속 독립국가로 존재하였으며, 해당 지역이 독립국으로 존재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렇다는 사실이 오늘날 오키나와가 일본령이 아니라는 근거로 작용하지도 않는다. 다른 예로 이스라엘의 주류 민족인 유대인은 2천년 전 디아스포라 이후에 단 한번도 현 예루살렘을 영유한 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 근대적인 주권국가로서 이스라엘의 국체가 부정되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수사관이 사건에 대한 사실 판단에 필요한 자료들만을 제공해 줄 뿐 각자가 각자의 자료를 어떻게 엮어내 법정에서 승리를 이끌어낼 것인지는 검사·변호사·판사의 머리 싸움에 달렸듯이, 힘의 논리·외교 역량·강대국들 간 견제와 세력균형 등 다양한 요인들이 첨예하게 맞부딪치는 현대 영유권 분쟁에서 역사학자는 '역사적 사료'라는 하나의 근거만을 제공해 줄 뿐 최종적인 입장을 정리하고 우리에게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내는 것은 관련 법학자에게 달린 셈이다.

이와 관련하여 간도 협약의 정당성 유무와 조중변계조약의 존재, 그리고 비엔나 협약으로 대표되는 현대 국제법적 논거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는 하술하도록 한다.

5.2. 백두산정계비와 비엔나 협약

비엔나 협약은 국제관계에서 두 주권국가 간에 맺어진 조약을 해석하는 규칙을 명시한 협약으로, 오늘날 수많은 국제조약 해석의 기본 원칙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백두산정계비와 관련된 분쟁에서 핵심적인 키워드는 비문에 존재하는 '오류'이기 때문에, 당대 조약 체결 시점에서 각국의 의도, 당대 조선의 실제 인식, 당대 청나라의 실제 인식, 현대 대한민국의 인식 등이 서로 엇갈리는 간도 분쟁에서는 비엔나 협약을 바탕으로 한 해석이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렇다면 먼저 비엔나 협약의 관련 본문을 살펴보자.
제31조 (해석의 일반규칙)

① 조약은 조약문의 문맥 및 조약의 대상과 목적으로 보아, 그 조약의 문면에 부여되는 통상적 의미에 따라 성실하게 해석되어야 한다.

② 조약의 해석 목적상 문맥은 조약문에 추가하여 조약의 전문 및 부속서와 함께 다음의 것을 포함한다.
(a) 조약의 체결에 관련하여 모든 당사국간에 이루어진 그 조약에 관한 합의
(b) 조약의 체결에 관련하여, 1 또는 그 이상의 당사국이 작성하고 또한 다른 당사국이 그 조약에 관련되는 문서로서 수락한 문서.

③ 문맥과 함께 다음의 것이 참작되어야 한다.
(a) 조약의 해석 또는 그 조약규정의 적용에 관한 당사국간의 추후의 합의
(b) 조약의 해석에 관한 당사국의 합의를 확정하는 그 조약 적용에 있어서의 추후의 관행
(c) 당사국간의 관계에 적용될 수 있는 국제법의 관계규칙

④ 당사국의 특별한 의미를 특정용어에 부여하기로 의도하였음이 확정되는 경우에는 그러한 의미가 부여된다.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협약 ( Vienna Convention on the Law of Treaties ) [ 발효일 1980. 1. 27 ] [ 다자조약, 제697호, 1980. 1. 22, 제정 ] #

본문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다시피, 국제법에 대한 해석을 할 때 "문맥"은 당연히 중요하며 조약의 해석과 적용에 관해서도 두 나라의 추후의 관행을 당연히 고려해야 한다.[18]

그러나 조선과 청 두 나라가 조약의 해석과 관련하여 추후의 합의를 했다는 사료는 전혀 없으며, 당사국이 특별한 의미를 특정용어에 부여하기로 의도하였음이 확정되었다는 증거 역시 없다. 합의나 확정이라는 말은 두 나라가 명시적으로 '이러저러한 부분은 잘못이니 수정하자'는 외교 문서를 주고받았고, 그러한 수정이 실제로 일어났거나 (각국의 사정, 전란 등으로 수정을 하지는 못했더라도) 그렇다는 기록이 사서에 남아있을 때나 쓸 수 있는 표현이다. 말하자면 조선의 사대부들이 조약의 해석을 두고 안에서 무슨 논쟁을 벌였던 간에, 그에 관해 조정 내에서 의견의 합치가 이루어져 국왕의 직인이 찍힌 공식적인 외교문서가 청나라 황제에게 전달되고 양국의 합의사항이 사서에 남지 않은 이상 비엔나 협약의 관점에서는 전혀 무의미한 일일 뿐이다. 따라서 이는 간도와 관련된 본 논쟁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면 "당사국의 합의를 확정하는 그 조약 적용에 있어서의 추후의 관행"이 있었느냐 하는 문제가 남는데, 청나라와 조선 모두 이후 명분은 달랐지만(청은 통금지역, 조선은 완충지대) 한동안 해당 지역에 국민들을 파견하여 명시적인 영유권 주장을 하지 않았으므로 합의가 있었다고 확정할 만한 근거 또한 없다. 게다가 정말로 확정적인 관행이 있었다면 구한말 조선이 이를 두고 재차 청나라와 영유권 분쟁을 일으킨 것이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괜히 조약문에서 당사국의 합의를 확정하는 이라는 강조 표현을 쓴 것이 아니다 사실 이 '관행적 합의'라는 것 역시, 가끔 들려오는 소위 '2천년 만의 휴전협정' 같은 사례들처럼 누가 봐도 명백하게 아닌 상황인데 문서적으로 합의가 되지 않은 경우에 한정하여 적용되는 케이스이고, 간도 문제는 당연히 이 케이스라고 보긴 어렵다.

즉, "당대 조선이 실제로 어떻게 인식하였나"와 "현대 대한민국이 어떻게 인식하는가"는 다른 문제이며, 설사 조선과 청 모두 본래의 의도는 달랐다 할지라도 양국이 이후 명시적으로 그 '오류'를 수정하고자 (국내정치가 아닌) 국제정치적인 노력을 보이지 않았고, 청나라가 일방적으로 영유권 주장을 하지도, 조선이 청나라의 영유권 주장을 받아들이지도 않았던 이상, 조약 체결 시점에서야 어찌 생각하든 후세의 조약 내용에 대한 해석은 원래와 다른 방향으로 굳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괜히 외교관들이 조약 문서를 작성하는 데 표현 하나하나에 광적으로 집착하고, 상대국 언어로 된 번역본에서의 단어 선택에조차 클레임을 거는 것은 기본에, 제3의 언어로 된 공용 번역본까지 만들어 가며 공을 들이는 것이 아니다. 다 후대에 자국이 책잡힐 일을 남기지 않기 위해 그러는 것이지.

5.3. 조중변계조약과 추후 승계 문제

이처럼 백두산정계비는 조-청간 국경 문제를 전근대적인 중화중심적 인식에 따라 '면의 국경'의 형태로 규정하였기에, 양국이 근대국가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국경선 근처의 간도 영유권을 둘러싸고 새로운 갈등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간도협약은 잘 알려진 것처럼 일본 제국에 의해 조선의 주권이 강압적으로 피탈당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불법 조약이었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는 법적인 효력이 부정되고 있으며, 일제가 만주국을 설립하고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다가 패망하는 격동의 20세기사 속에서 실질적인 효력도 별로 발휘하지 못했다.

따라서 21세기 현 시점에서 간도의 소유권 문제는 대체로 국제사회의 대다수로부터 간도에 인접한 두 주권국가로 인정받는[19]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중화인민공화국 사이에 맺어진 조중변계조약에 의하여 규정된 상황이다. 조중변계조약에 따라 중화인민공화국은 현 시점에서 실질적으로 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영토 소유 당사국들로부터 적법한 간도의 소유국가로 인정받았으며, 때문에 오늘날 세계지도에서는 압록강-두만강 이북의 모든 영토는 논란의 여지 없는 중화인민공화국러시아 연방의 영토로 표현되어 있다.

World Map 4170 R15.1 Jul18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국제법에서는 어떠한 역사적 영유 증거보다도 현재의 협약[20]을 우선시하며, 중화인민공화국은 명확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주권국가로 인정하고 있으므로, 예컨대 "현대 중국간도를 불법 점유하고 있다"는 주장은 명확하게 틀린 주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중변계조약이 "대한민국의 간도 영유권 주장은 불법이다"는 주장을 뒷받침하지도 않는다. 이는 서로를 주권국가로 인식하지 않고 있는 남북한의 특수한 관계에서 기인한다. 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국제 사회의 대다수 주권국가들에게 주권국가로서 인정받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나, 국제법의 기본 가정은 주권 국가를 독립적인 최상위 개체로 보는 것[21]이다. 말하자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입장에서 간도는 '조중변계조약을 파기하기 않는 한 중국이 합법적으로 점유하는 영토'이며 '한반도 이남을 점거한 미제 괴뢰국가'는 전혀 일없는 문제지만,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간도 문제는 '한반도 이북의 중원대륙의 국가와 아직 근대적인 국경조약을 맺지 못한 채 미결 상태로 남아 있는 상황'이고 거기에 '한반도 이북을 점거한 불법 테러집단'이 멋대로 '자신들에게 존재하지도 않는 주권'을 행사한 척 하여 중국과 싸바싸바한(...) 정도의 상황이 되는 것이다. 즉, 우리 입장에서 가장 최근에 맺어진 '합법적인' 조약은 조중변계조약도 간도 협약도 아닌 백두산정계비 논쟁이 되는 것이며, 근대에서 현대로 전이되던 시대 영토분쟁 지역을 둘러싼 국경선의 획정은 각국 간 근대적인 조약을 통해 정해졌는데, 우리는 여전히 (한중수교 이후 중국대륙의 유일무이한 합법적 주권국가로 인정하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이 조약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통일 이후에는 어떨까? 우선 대한민국 주도의 남북통일을 상정하면, 법적으로 "북한이라는 반국가단체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탈을 쓰고 맺은" 모든 국제조약을 우리가 승계해야 할 의무 따위는 없다. 국제사회가 대한민국의 모든 북한 대외관계 승계를 강요할지, 취사선택을 허용할지, 아니면 역설적으로 모든 승계를 금지할지는, 어디까지나 통일 시점에서 대한민국의 국력과 외교 네트워크 역량에 달린 문제이다. 우리가 북한을 공식적으로 국가로 인정하지 않은 이상, "국제법적으로 한국은 북한을 국가로 보지 않으니 한국은 북한이 국가로서 행했던 모든 주권행사의 승인을 거부할 권리를 지닌다"는 명제("국제법적으로 북한은 국가가 아니다"와는 다르다!)는 참이며, 반대로, "국제법적으로 북한은 국가였으니 통일 한국은 북한이 가졌던 모든 권리와 의무를 승계해야 한다"가 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어느 쪽의 주장이 더 먹힐지는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의 능력에 달린 문제이지, 아직 그게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은 지금의 우리들이 섣불리 결론지을 문제는 아니다.

5.4. 정치현실주의 관점에서의 미래

남북통일과 고토 회복 문제에서 언제나 참고사례로 언급되는 독일의 경우, 냉전 도중 동방정책의 일환으로 동프로이센의 역사적 영유권을 포기하였으며, 통일 과정에서 명시적으로 오데르-나이세 선 이동의 모든 영토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였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어떤 주변국과도 영토 분쟁을 벌이고 있지 않다. 이러한 전례가 있는 만큼, 통일 과정에서 주변국가들, 특히 대한민국의 확장주의가 심히 불편할 중국이나 러시아 등은 아마 우리에게 비슷한 형태의 조약을 강요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가 그러한 조건을 거부할 만한 상황을 갖출 수 있을지, 그리고 이를 받아들였을 때의 대차대조표는 어떻게 될지 논의해 보자.

우선 우리와 서독의 입장에는 다소간의 차이는 있다. 당대 서독은 엄연히 제2차 세계대전의 전쟁범죄에 묶여 있는 입장이었고, 독일 입장에서 실질적인 안보 상의 주적은 러시아이니 굳이 영토 찾겠다고 가까운 폴란드를 적대하는 것보다 길게 보고 폴란드나 CIS의 일부를 반러동맹으로 끌어들이는 게 자국의 안보적 이익이었다. 실제로 현대 독일은 EUNATO의 확장으로 인해 영토를 더 늘리지 않고도 제4제국 소리까지 들을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떨치고 있으며, 폴란드는 영프독 등 서구 국가들을 대신하여 러시아의 위협을 막는 충실한 방파제로서 기능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독일같은 역사적인 원죄가 없는 20세기의 완벽한 피해자였기에, 적어도 통일 과정에서 (실질적으로 가능할지는 둘째치더라도) 주변 국가의 간섭을 거부할 명분만은 충분한 상태이다. 게다가 현재의 신냉전 구도가 유지된다는 가정 하에서 한국의 안보에 가장 위협적인 상대는 중국이며[22], 통일을 이루게 된다면 어떠한 완충지대도 없이 차세대 초강대국이자 육군대국인 중국과 곧바로 국경을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우리가 통일 과정에서 친중국가 내지는 중립국가가 되거나 중국이 모종의 이유로 현대의 신냉전구도를 탈피하여 친서방국가로 돌아선다면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중국의 역량을 약화시키고 우리의 역량을 강화시키며 그 사이에 완충지대를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정치현실주의적 관점에서 우리의 안보 이익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대한민국일본이나 중국 같은 주변 국가들에 비해 단위 역량[23]이 밀리는 게 아니라 체급[24]이 부족하여 안보위협을 받는 상황임을 고려하면, 힘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장기적으로 체급을 키우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신냉전 구도가 유지되는 상황에서 대한민국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모종의 합의에 도달하여 남북통일을 이루었다고 가정할 경우 이에 수반되는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주변 강대국들의 요구를 무시할 형편은 되지 못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특히 간도는 현 시점에서 적어도 70여 년 이상 (중국의 국체가 인정된 미중수교 이후로 잡더라도 30여 년 이상) 중화인민공화국의 실효지배 하에 놓여 있는 상황이며, 안 그래도 통일이라는 지정학적 급변사태를 꺼려할 주변국들에게 "통일하자마자 너네 나라 땅 쳐들어 갈 거임"하고 선언한다면 당연히 극도의 반감만을 살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중국이 현재의 강력한 통일국가를 유지하는 한, 또 통일의 후유증을 해결하고 남북한을 다시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는 데 필요할 한두 세기 정도는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현명한 길이다.

다만 역사는 끝나지 않았고, 모든 국가는 세계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는 자국의 생존(약소국)과 패권(강대국)을 위해 움직인다는 것이 현실주의의 기본 전제이다. 조약이 유지되는 것은 절대적인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조약을 파기함으로서 얻는 손실"이 "조약을 파기함으로서 얻는 이익"보다 큰 동안에만 유지되는 것이며, 아무리 절대적이고 영구적이라고 못박아둔 조약조차도 그 "절대적이고 영구적(이라고 불렀던) 조약이 파기될 때의 손실"과 "이익"을 저울질하여 선택하는 것이 외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현재의 구도가 유지되는 한 간도 영유권은 "굳이 우리 스스로를 위험에 빠트리면서까지 추구할 필요는 없지만, 큰 손실 없이 얻을 수만 있다면 우리에게 손해보다는 도움이 될 가능성이 높은" 사항에 가깝다. 게다가 본질적인 문제로 돌아가서 "국경선의 획정은 각국 간 근대적인 조약을 통해 정해졌는데, 한반도와 한민족의 대표자인 우리는 여전히 중원대륙과 중화민족(사실상 한족)의 대표자인 중국과 이 조약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상황인 이상,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때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를 강력하게 주장하여 쓸데없는 어그로를 끄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후세를 위한 내부의 논의마저 묵살하고 어리석은 짓으로 취급하는 것은 현명하다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6. 가능성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단 남북통일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애초에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고, 상대인 중국러시아 모두 6자회담 국가이자 한반도 통일에 중대한 이해관계가 얽힌 국가들이기 때문에 외교적으로도 현명하지 않다. 상식적으로 통일 이후 자국 땅을 빼앗아가겠다는 국가를 외교적으로 지지해주기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회유해도 시원치 않을 나라를 확실하게 적으로 돌리는 미친 짓. 물론 한반도 통일의 필요성이야 대부분의 국제사회에서 공감하고 지지하지만, 그건 군국주의이자 전체주의 국가로 세계평화에 위해를 끼치는 북한대한민국이 흡수해서 올바른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회복시키기 위함이지 한민족의 민족주의나 고토회복같은 허황된 이유가 아니다. 환빠스러운 주장을 배제하고 우리에게 명분이 있는 최소의 안을 주장한다 하더라도, 통일하자마자 팽창을 시도하는 한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눈초리가 고울 리 없다. 실제로는 서독오데르-나이세 선처럼 한국 역시 (정당성이나 명분과는 별개로) 통일 과정에서 압록강-두만강 선을 국경으로 인정해야 할 확률이 매우 높으며, 그나마도 중국의 야욕에 의해 오히려 북한분할 따위 괴상망측한 안들이 거론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서독의 경우 제2차 세계대전의 대가소련의 재조정에 의해 영토를 빼앗긴 반면 한국억울하게 분단당한 케이스이므로, 둘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국제사회가 언제 그렇게 돌아갔던가?

그렇다면 통일된 이후를 상정해 보자. 일단 러시아 입장에서 연해주는 극동의 부동항을 포함하여 소중한 태평양 진출 교두보로 한국에 양보할 가능성 따위는 전혀 없으며, 중국의 경우 실질적 독립국인 대만에 대해서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요하며 전 세계를 상대로 압박하는 판에 자국의 영토를 추가로 떼어가려는 행위를 좌시할 리 만무하다. 동북공정의 예에서 드러나듯, 이미 중국은 미래에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한국과의 분쟁가능성을 사전에 분쇄하기 위해 역사 날조행위마저 일삼고 있는 처지이다. 게다가 통일 한국은 안 그래도 필연적으로 중러와 국경을 맞댄 친미국가로서 긴장어린 관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데, 섣부른 고토회복 운동은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적을 상대로 기름을 붓는 꼴이다. 한국군 vs 중국군이나 한국군 vs 러시아군에서 잘 서술되어 있다시피 애초에 우리 수준에서 군사적으로 상대가 가능한 국가들도 아니고.

유일한 가능성이라면 미국중국제3차 세계 대전을 벌이고 통일 한국이 그 선봉장으로서 중국을 거꾸러트리는데 일조하여 전리품으로서 간도를 획득하는 것인데, 이런 상황이라면 중국 인민해방군 육군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할 우리로서는 간도회복 따위보다는 한반도의 생존을 먼저 걱정해야 할 처지이다. 게다가, 설령 승전의 전리품이라 할지라도 국제사회는 명분 없는 영토 확장을 매우 경계하기 때문에, (연변을 넘어선) 동-서 간도 전체나 연해주의 한국 편입 가능성은 별로 없다. 당장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연합국조차도 독일 제국동프로이센을 섣불리 처리하지 못했고, 잘나가던 시기의 나치 독일도 원래 영유권을 주장하던 영토 이외에는 합병하기보다는 총독령을 설치하여 사실상의 괴뢰국 형태로 간접통치를 했으며, 대표적인 깡패 행위로 평가받는 소련의 동유럽 영토 재획정조차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독일-폴란드 영토 논란에서 설명하듯 각 당사국들(소련, 폴란드, 독일) 나름의 명분은 고려한 결정이었다.

간도회복이면 그나마 어찌저찌 정당화해 볼 건덕지라도 있지, 만주를 회복한답시고 중국 전체를 선제공격하는 행위는 현실적인 국력 격차를 제쳐두고라도 아예 명분 자체가 없으며, 동북아 역사상 중원대륙 국가의 국력에 가장 근접했던 일본 제국조차 중일전쟁에서 끝내 나가떨어졌던 걸 보면 상당히 위험한 짓이다. 심지어 일제는 한반도까지 장악했고 중국은 분열되어 있었는데도 말이다.

현실적으로 한국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중국이 지원하지 않았으면 진작 무너졌어야 정상인 북한의 김씨정권을 유지시키면서 한반도 내에 자국의 완충지대를 만들었던 것처럼) 중국 국내의 억압받는 소수민족들을 지원·선동하여 자발적인 분리주의를 획책하고, 구소련 가맹국들에 대한 NATO의 동진과 유사한 형태로 이런 소국들을 자유민주주의의 이름 아래 독립보장하여 중원대륙 내 우리의 완충지대를 만드는 것 정도이다. 물론 현 중화인민공화국의 강압적인 동화정책을 보나, 완충지대 획득이 과연 급격한 한중관계 악화와 이에 수반되는 안보위기를 지불할 만큼의 값어치가 있는지를 따져 보나, 현재로서는 그다지 가능하지도 현명하지도 않은 선택지이다. 최소한 아래의 네 조건이 모두 갖추어져야 한다.
1) 한중관계가 모종의 사건으로 극단적인 파탄으로 치달아 서로를 주적으로 여김
2) NATO처럼 일본·인도·베트남 등 중국군에 단독으로 맞설 만한 군사동맹이 결성됨
3) 중국의 독재체제가 자유민주주의적 가치관을 해칠 정도로 악랄해짐
4) 중국에 대해 소수민족 분리주의 운동을 시도해 볼 만큼 중국이 약체화됨
당연히 넷 모두 현재로서는 사실이 아니며, 한중관계만큼이나 한일관계 역시 역사청산 같은 문제들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이상 단기간에 저런 상황이 실현되기도 어려울 것이다.

종합해 보면, 한국의 간도회복은 명분의 타당성 자체도 미지수지만, 이를 실현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과거 제국주의 열강들 뺨치는 막강한 국력과 잔혹성을 겸비하고 자의든 타의든 몇 차례의 대전쟁에 참여해서 그 명분을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아야만 가능하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처럼 타의로 어쩔 수 없이 전쟁에 끌려들어가야 하는 상황이라면야 피의 대가로 한국에 일정 부분의 정당성이 있는 영토를 요구하는 것을 불합리하다고만 할 수는 없겠으나, 그건 간도회복을 외치는 사람들처럼 지지하고 추구하기보다는 오히려 가능한 피해야 할 시나리오에 가깝다.

7. 이루어진다면

만약 남북통일 이후 연길 일대에 한정된 좁은 의미의 간도 회복이 이뤄진다고 가정하면, 같은 한국계인 조선족 29만명을 포함하여, 한족, 만주족, 몽골족, 무슬림 소수 민족(회족, 위구르족) 21만여 명이 통일 한국에 편입되게 된다. 연변회복의 경우 특별한 인구교환이 없는 한 약 228만여 명의 인구가 추가되며, 그 중 한족 146만여 명, 조선족 73만여 명, 기타 만주족을 비롯한 소수민족들이 편입될 것이다. 통일 한국의 인구가 대략 7~8천만 명 수준일 것임을 감안한다면, 이들은 한국 사회의 약 2~3% 안팎을 차지하는 소수민족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이보다 더 큰 범위인 만주나 연해주를 합병한다면 억 단위 인구가 추가되며, 이를 한국의 영토로 편입한다고 가정하면 사실상 한국은 한민족이 소수민족인 중국계 국가로 전락할 것이다. 굳이 이루어진다면 이 경우 그나마 가장 합리적인 안은 일본 제국마냥 남쪽 일부만 통일 한국에 합병하고 나머지는 만주국 후속버전을 만들어 대중국 완충지대로 두는 쪽일 것이다. 지금 중국이 북한을 반쯤 괴뢰국화해서 완충지대라고 우기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는데, 엄밀히 따지자면 크게 다르다. 중국은 북한을 강제로 괴뢰국화한 적이 없고, 어디까지나 서로의 외교·안보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상황에서 한쪽의 국력이 압도적으로 강하고 반대쪽이 파탄국가이다 보니 괴뢰국처럼 되어 버린 것이다. 만약 한국에서 이러한 괴뢰국을 만든다면 일본 제국만주국을 만들었을 때 그 이상으로 국제적 지탄을 받을 것이다.

한편, 한국 입장에서 추가된 지역은 개방 전 중국홍콩이나 러시아칼리닌그라드처럼 지리적·문화적·외교적인 대 반서방진영 창구로 작동할 수 있고, 한중관계가 악화할 경우 반대로 DMZ처럼 간도를 요새화하게 될 수도 있다. 군사적으로는 육군강국과 인접한 상황에서 유사시 전략적 후퇴를 할 공간을 벌 수 있다는 점에서 이점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애초에 중국이 '육군강국'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는 한 간도를 눈 뜨고 빼앗기지는 않을 테고, 한국이 간도를 유지할 역량이 되는 시점은 이미 중국위협론이 허무맹랑해질 만큼 중국이 약화된 뒤일 테니 무의미한 이야기일 뿐이다.

한국의 내부 정치 사정 역시 지금보다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이미 대한민국에 진출한 북한이탈주민이나 조선족들의 동화 문제에서도 드러나듯, 중화인민공화국 국민이 대한민국의 사회구조에 적응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게다가 선진국부심과 배타주의가 강한 한국의 특성상, 이렇게 유입된 민족들에 대한 차별 시선과 그로 인한 반발로 인한 사회적 갈등도 발생할 것이고, 경제적으로 낙후된 지역을 발전시키기 위한 투자도 필요하다. 그리스-터키 인구 교환이나 전후 동유럽에서의 독일인 추방같은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중국이 침략전쟁을 일으켜 세계로부터 전범국가로 낙인찍힌 수준이 아닌 다음에야 그게 21세기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여질 리 만무하고.

8. 기타

국내의 일부 반중주의자들이 무력을 통해 간도, 나아가 만주를 수복하자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25] 하지만 무력을 행사하여 고토를 회복하자는 주장은 세계적으로 급진민족주의자들의 공통된 떡밥이기도 하고, 어차피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국제사회는 이런 시도를 극도로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별로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지도 않는 것이 현실이다. 당장 과거 각자가 가장 잘 나갈 때를 기준으로 영토를 정하려다가 전쟁이 터진 것이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기도 하고, 현대에도 그런 논리로는 전 세계 국경선은 개판이 되기 십상이다. 현대로 올수록 영토 분쟁은 무력보다는 조약과 협정, 물밑작업을 통한 외교전을 통해 결론이 나는 편이고, 우리는 통일이라는 내부 문제를 해결하고 부속 도서들을 둘러싼 분쟁에 맞대응하기에도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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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8-02-23 10:56:31이전 합의상태는 서술고정이 없다는 것이다.[송화강] 송화강 지류로 알려진 오도백하의 상류로 토문강의 고유명사로 보인다.[3] 이러한 해석은 1712년정계 이후부터 형성됐다.[4] 에드윈 O 라이샤워, 존 K 페어뱅크 저, 全海宗·高炳翊 譯,. 『東洋文化史』上, 465쪽.[5] 吳綠貞, 「延吉廳建設之沿革」,『延吉邊務報告』第2章, 1쪽; 徐世昌 等 編纂,. 『東三省政略』上 (吉林文史出版社에서 1989년 長白叢書 3集으로 복간), 143쪽.[6] 두만강을 월경한 조선인들에 대한 처벌기록은 1879년까지만 나타난다.[송화강] 송화강 상류의 지류 오도백하의 상류로 알려진 토문강의 고유명사로 보인다.[두만강] 두만강의 발원지이자 최상류에 해당된다.[9] 토문, 통문과 함께 사용된 두만강의 또 다른 명칭.[10] 연길시북부에서는 흥안고성이, 도문시에서는 성자산산성이 발견됐다.[11] 종성부사 이정래의 토문강국계설 등장연도.[12] 양국 지방관들의 '변계선후장정' 약장 체결연도.[13] 이는 조중변계조약을 인정하지 않는 전제하에서 도출된 결론이다.[14] 다만 이마저도 현재 한국에서 재중교포 대다수를 차지하는 조선족이 아예 잠재적 범죄자, 반역자 내지는 다른 민족 취급받는 상황임을 감안해야 한다. 만약 재중동포들을 고토 회복의 근거로 내세우고 싶으면 먼저 이들에 대한 차별의식부터 없애야 하고, 그러지 못하겠다면 이들을 필요할 때만 동포 운운하면서 확장주의 정책에 써먹으려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도 버려야 마땅하다. 다만 조선족의 정체성 문제는 한민족 국가가 남북한으로 갈려 있는 현실, 최근에야 교류가 시작된 한중관계에 비해 어쨌든 전통적인 우방국이던 북중관계의 영향도 상당히 크다. 만일 남북통일로 한민족 국가가 대한민국 하나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 대한민국이 (현 북한과는 달리) 명확한 반중 외교노선을 취한다면, 이들의 입장이나 이들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입장 역시 당연히 달라질 것이다.[15] 다만 간도의 범위를 집대성해보면 연해주의 일부 역시 간도의 범위로 인정하는 학자(정확히는 이일걸, 이성근, 노계현, 노형돈 등 4명)들도 있어 엄밀히 따지면 이곳 역시 간도로 볼 수도 있다. 위의 환빠들인 양 연해주 지역 전체를 간도라고 헛소리하는 건 말도 안 되지만 말이다.[16] 한국 사학계에서는 영유한 적 없다는 것이 대세이다.[17] 물론 민족국가로 범위를 한정짓지 않는다면 일제강점기만주국이 있지만, 누구도 일제강점기를 한민족의 주권 역사로 인정하지 않으니 논외이다.[18] 나인균, 국제법, 2004, 508[19] 이런 복잡한 표현을 쓴 것은, 대한민국북한을 주권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20] 정확히는 '합법적으로 체결되었음이 확인 가능'하고, '현 시점에서도 효력을 발휘함이 입증된' 협약이 최우선의 증거라는 뜻이다.[21] 쉬운 예로 인간인간간의 인식은 상위 개체인 국가의 개입으로 강제적인 조절이 가능하다. 요컨대 대한민국이라는 주권 정부는 한국 내에 사는 국민들을 모종의 형태로 분류하는 규정을 만들 권한이 있고, 적법한 민주적 절차에 따라 규정된 인식은 그에 찬성한 국민들 뿐 아니라 모든 국민들이 따라야 한다. 반면 국제법에서는 주권국가의 인식을 강제하는 규정이 전무하다. 미국코소보를 인정하고 러시아가 인정하지 않는다면, 미국은 인정하고 러시아는 안 하는 것이며 그에 맞게 각국의 입장을 정리하는 것이지, 모종의 상위 기구가 "국제사회 대다수 구성원들이 코소보를 인정하니까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너도 인정하는 거야"라고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얘기가 만국(國)에 대한 만국의 투쟁이다.[22] 미국은 한반도의 직접적인 점령에는 별 관심이 없는 우방국이고, 북한은 실질적으로 한국을 위협할 역량이 부족하다. 일본자위대한국군과 승부를 벌이기 어려운 구조인데다가 미국의 통제를 받으며, 러시아동유럽이 더 시급한 문제이다. 오직 중국만이 한반도에 충분한 이해관계를 가졌음은 물론, 한국을 점령하기에 충분한 외교적 동기, 군사력, 경제적 능력을 모두 갖추고 있다.[23] 1인당 GDP, 인간개발지수, 선진화 정도, 산업기술력 등[24] 국토의 너비, 인구 수와 인구 구조, 자원 등[25] 반면 연해주, 그리고 간도와는 다른 문제지만 러시아와의 영토분쟁지역이 될 소지가 있는 녹둔도의 경우는 잘 언급되지 않는 편이다. 한국전쟁 시절부터 우리의 주적인 북한의 최대 후원국인데다 사드 배치 논란에서부터 미세먼지까지 온갖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부딪치는 중국과는 달리, 현실적으로 러시아는 우리와 별로 국민적인 악감정이 없기 때문에 굳이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