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22 11:34:19

인천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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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대한민국이 실효 지배하지 않는 미수복 지역은 자치 기능이 없는 명목상 행정 구역이므로 실질적인 광역자치단체가 아니다. }}}}}}

파일:Seal_of_incheon_little.png 인천광역시기초자치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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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仁川廣域市
Incheon Metropolitan City
}}}

시청 소재지 남동구 정각로 29 (구월동)
국가 대한민국
지역 수도권
면적 1,062.60㎢[1]
하위 행정구역 8자치구 2군
시간대 UTC+9
인구 2,956,804명[2]
인구밀도 2,782.34명/㎢
시장
[[더불어민주당|
민주
]]
박남춘 (초선)
시의회
[[더불어민주당|
민주
]]
34석

[[자유한국당|
한국
]]
2석

[[정의당|
정의
]]
1석
교육감 도성훈 (초선)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민주
]]
7석

[[자유한국당|
한국
]]
6석
구청장·군수
[[더불어민주당|
민주
]]
9석

[[자유한국당|
한국
]]
1석
상징 시화 장미
시목 목백합
시조 두루미
지역전화 032[3]
ISO 3166-2 KR-28
홈페이지 www.incheon.go.kr
SNS 파일:external/static.naver.net/Blog_128.pn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png 파일:트위터 아이콘.png 파일:페이스북 아이콘.png
1. 개요2. 역사
2.1. 인천이 최초인 것들
3. 명칭 유래4. 인구 추이5. 지리
5.1. 생활권5.2. 서울과의 거리
5.2.1. 가깝고도 먼 곳5.2.2. 멀고도 가까운 곳
5.2.2.1. 중앙정부의 인천 패싱
5.3. 행정구역 개편 문제
6. 기후
6.1. 대기
7. 행정구역
7.1. 자치구 명칭 변경
8. 정치9. 군사10. 사법
10.1. 법원10.2. 검찰
11. 사회12. 경제
12.1. 실업률
12.1.1. 앞으로의 전망
12.2. 재정12.3. 상권12.4. 특산물
13. 인천경제자유구역14. 문화
14.1. 독서14.2. 축제14.3. 스포츠14.4. 방언14.5. 음식14.6. 종교14.7. 음악14.8. 언론
15. 관광16. 상하수도
16.1. 상수도16.2. 하수도
17. 매체에서18. 인천을 배경으로 한 작품
18.1. 영화18.2. 드라마18.3. 뮤직비디오
19. 자매결연도시 및 우호교류도시
19.1. 자매결연도시19.2. 우호결연도시
20. 출신 인물21. 인천광역시장22. 관련 문서
All ways INCHEON
살고 싶은 도시, 함께 만드는 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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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width=58%><table bordercolor=#005EB8><width=50%><:><#FFFFFF> 파일:인천광역시 상징.png ||<width=50%><:><#FFFFFF> 파일:인천 변경 마스코트.png ||
인천광역시의 CI 인천광역시의 마스코트
등대리, 버미, 꼬미, 애이니
파일:인천공항 제1터미널.jpg 파일:인천공항 제2터미널(2).jpg
중구 운서동에 위치한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파일:attachment/인천광역시/incheon_cityhall.jpg 파일:attachment/부평_4.jpg
남동구 정각로에 있는 인천광역시청 부평역 일대
파일:센트럴파크(송도).jpg 파일:차이나타운.jpg
센트럴파크 인천 차이나타운의 상징인 패루(牌樓)
청라국제도시 연안부두
강화도 역사 기행자유공원 드론 촬영 영상

1. 개요

한반도 중서부[4]에 위치한 광역자치단체. 인천국제공항인천항이 있어 대한민국의 관문도시이자 항구도시로 기능하며, 국내외 대부분의 항공사는 국제선 허브공항을 인천국제공항으로 삼고 있다. 관내에는 인천경제자유구역이 있으며, 이를 담당하기 위해 산하 외청으로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을 두고 있다.

면적은 약 1,062㎢으로 한국 최대 면적 광역시가 되었다. 인천이 경기도에서 분리되어 인천직할시로 승격된 당시의 면적은 206.6㎢였다.(현재의 경기 고양시보다 조금 좁은 정도) 지속적인 간척으로 면적이 대거 늘어났으며 80~90년대를 전후해 현재의 검단과 계양구 북부 등 주변지역이 편입되고, 궁극적으로 1995년 지방자치제 시행 직전 정부의 직할시 광역화 정책에 따라 경기도 강화군, 옹진군을 편입하면서 오늘날의 인천광역시가 되었다. 원랜 울산광역시가 한국 최대 면적의 광역시였으나, 인천광역시에서 지속적인 간척 사업으로 2016년 역전됐다.

수도권보다 인구가 적은 경상도가 3개의 광역시를 가진 것에 비해 수도권은 인천이 유일한 광역시다. 서울은 특별시고, 나머지는 전부 경기도에 속해있는 기초자치단체들이기 때문.

육지를 기준으로 북으로는 경기도 김포시, 동으로 서울특별시, 부천시, 남으로 시흥시, 안산시와 접하고 있다. 해수 권역이 국내 광역시 중 가장 넓다. 해상으로는 남쪽으로 충청남도 당진시, 서산시태안군[5], 서쪽으로 중국과 접하고 있으며, 북한과는 NLL을 사이에 두고 황해남도 룡연군, 옹진군(황해남도), 강령군, 청단군, 연안군, 배천군황해북도 개풍군과 맞닿아 있어 접경지역이 관할하에 있는 유일한 광역시이며, 자치군 2개를 보유한 유일한 광역시이다.

시목은 목백합, 시화는 장미, 시조는 두루미다.[6][7] K리그1 인천 유나이티드의 마스코트 유티가 두루미를 의인화한 것도 인천광역시의 시조가 두루미였기 때문이다.

2016년 KOSIS 국가통계포털 기준으로 내국인 2,943,069명, 외국인 59,103명, 도합 3,002,172명으로 서울특별시부산광역시에 이어 국내에서 3번째로 인구 300만 도시가 되었다.

서해에 접한 대규모 항만과 세계적인 국제공항, 인천경제자유구역, 개화시기 주요 개항장, 다도해 등 다양한 테마를 보여주는 도시로 과거부터 현재까지 활발히 발전하고 있는 곳이다.

1985년 구월동에 시청[8] 이전을 기점으로 도심의 이전이 있었다.

인천을 한자로 仁(어질 인)과 川(내 천)으로 풀이하여,어진내로 순우리말화 할 수 있지만, 사실상 인천이라는 지명이 인주(仁州)에서 조선 태종 시기에 격하당해 주(州)에서 점을 세 개 뺀 인천(仁川)으로 바뀐 것이기 때문에 어진내를 대구광역시의 달구벌, 광주광역시의 빛고을처럼 사용하지는 않는다.[9] 인천광역시를 순우리말로 이를 때에는 고구려 때의 지명이었던 미추홀을 훨씬 더 많이 쓴다. 단, 인천광역시 전역을 미추홀로 칭할 때도 있지만, 새로 명칭변경을 한 미추홀구(舊 남구)를 뜻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수도 인근에 위치한 항구도시라는 점에서 일본요코하마, 중국톈진과 자주 비교되곤 한다. 다만 요코하마는 카나가와 현 산하의시로 도에 속해있는 기초자치단체와 비슷한 반면 인천은 별도의 광역자치단체를 구성한다는 점이 다르다.

2. 역사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인천광역시/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파일:incheon_symbol.png 인천광역시의 행정구역 변천사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백제 고구려 통일신라 고려
미추홀
彌鄒忽
백제 초기 비류
매소홀현
買召忽縣
475
소성현
邵城縣
757
경원군
慶源郡
1095
인주
仁州
1133
경원부
慶源府
1390
주부토군
主夫土郡
475
장제군
長堤郡
757
수주
樹州
1095
길주
吉州
1308
부평부
富平府
1310
조선 일제강점기
인주
仁州
1392
경기도
인천군

仁川郡
1413
경기도
인천도호부

仁川都護府
1460
인천부
인천군

仁川郡
1895
경기도
인천부

仁川府
1896
인천부
仁川府
1910
부평부
富平府
1310
경기도
부평도호부

富平都護府
1413
인천부
부평군

富平郡
1895
경기도
부평군

富平郡
1896
경기도
부천군

富川郡
1914*
일제강점기 미 군정기 대한민국
경기도
인천부

仁川府
1940
경기도
제물포시

濟物浦市
1945**
경기도
인천부

仁川府
1945
경기도
인천시

仁川市
1949***
인천직할시
仁川直轄市
1981
인천광역시
仁川廣域市
1995
* 이때 부평 전체와 인천부의 외곽이 부천군에 병합되었다. 부천군에 흡수된 기존 인천부 지역은 소래면, 영종면, 용유면, 덕적면을 제외하고 1936년, 1940년에 차례대로 인천부에 재편입되었다. 하지만 영종면, 용유면은 1989년에, 덕적면은 1995년에야 옹진군 편입을 통해 인천에 재편입될 수 있었고, 구 소래면 지역은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시흥시 관할로 남아있다.
** 1945년 10월 10일부터 10월 27일까지 단 17일간 있었던 행정구역이다.
*** 전국의 부(府)가 시(市)로 일괄 변경되었다.
}}}||


인천광역시는 대체로 인천, 부평, 강화 세 권역으로 구분된다. 인천광역시/역사 참조.
파일:attachment/인천광역시/incheon_sky.jpg
붉은 표시가 모두 인천광역시의 행정구역이며 해수 권역 또한 광역시치고는 넘사벽 수준의 면적을 자랑한다.

삼국시대에는 미추홀(彌鄒忽), 매소홀(買召忽)로 불리다 신라삼국 통일에 따라 통일 신라9주 5소경에 편입되어 한산주 율목군 매소홀현(買召忽縣)이 되었다. 이후 경덕왕 때 전국 지명 한화(漢化)정책에 따라 소성현(邵城縣)이 되었다.

그러다 고려시대에 인천 이씨 가문에서 7명의 왕비를 배출하면서 경원군, 인주[10], 경원부로 계속하여 승격되었다. 그래서 인천 이씨의 그 유명한 별칭이 경원 이씨. 그래서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면서 인주군으로 강등되었다. 이후 조선 태종 시절에 군현 개편이 이루어지면서 인주가 다시 경기도 인천군(후에 인천도호부로 승격)이 되었으며, 조선왕조실록에서도 인천(仁川)이란 기록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구한말 서양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개화의 도시인데, 인천항은 서울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관계로 서양인들을 비롯한 외국인의 왕래가 잦았다. 현재도 인천 차이나타운 인근에 구한말 건축물이 많이 남아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여담으로 인천항을 통해 우리나라에 가장 먼저 들어온 서양 문물 중 대표적인 것이 야구축구 같은 스포츠 종목이다.

1995년부터 경기도에서 강화군옹진군을 새로 편입하면서 시역이 확장되었다. 하지만 지리적으로 보면 강화군은 인천광역시보다는 경기도 김포시와 마주하고 있고 인천광역시 본토와는 떨어진 편이다. 옹진군은 인천 생활권이며 강화군 지역은 별개의 생활권을 구성하고 있다.

광역시 출범 과정에서 과거 경기도 해역의 70%를 차지했던 강화군옹진군을 인천시로 편입, 등가교환(?)의 효과로 영해가 북위 1도 동경 2도에 달하는 결과를 불러오기도 했다. 이 해역의 이름은 본디 경기만이지만 경기도에 경기만이 없고 인천에 경기만이 있게 되었다. 섬은 유인도 한정으로 경기도에서 39개를 가져왔다. 광역시 출범 당시 초안에는 강화, 옹진군 외에 김포시 전역(결국, 검단면만 편입)과 시흥시(현 시흥시 북부(구 소래면 지역)는 1914년 이전까지 인천도호부에 소속, 1973년에 시흥군 편입 전에는 부천군)까지 편입하기로 되어 있었다. 하지만 강화군, 옹진군, 김포군 검단면만이 주민투표에서 과반수의 찬성으로 편입되었다.

2.1. 인천이 최초인 것들

조선 후기, 외국에 문호를 개방하며 서양 문물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항구도시로 대한민국 최초인 것들이 많다.
  • 짜장면 : 중국 산둥에서 건너온 부두 근로자인 쿠리(苦力·하역 인부)들이 인천항 부둣가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춘장에 국수를 비벼 먹던 음식이 짜장면의 시작이었다. 이후 청조계지를 중심으로 짜장면을 만들어 파는 중식음식점이 많이 생겼는데, 흔히 '원조 짜장면 집'으로 알려진 공화춘은 1905년에 문을 열었다가 83년에 폐업했다. 오늘날 차이나타운에 있는 공화춘은 2004년 한국인이 상표만 가로채서 세운 짝퉁이므로 주의.
  • 쫄면: 인천에서 처음 생겼는데 이건 광복이후 70년대이다.
  • 축구, 야구 : 인천이 대한민국 최초로 도입된 지역이다. 1905년 미국인 선교사에 의해 도입. (앞서 야구를 했다고 기록이 있는 인천의 일본인 학생이 있는걸로 보아 더 빨리 됐을거라는 추측도 있음) 축구도 인천을 통해서 들어온 종목. 축구가 야구보다 더 빨리 들어왔다. 야구에 있어서는 구도(球都)가 어디인가를 두고 부산과 다투고 있으나 구도는 확실히 인천이므로 오해하거나 낚이지 말자.
  • 자유공원: 대한민국 최초의 서양식 공원. 맥아더 장군동상이 있다.
  • 경인선: 대한민국 최초의 철도
  • 대불호텔: 대한민국 최초의 서양식 호텔
  • 영화학당: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식 초등교육기관. 1892년 개교, 현 영화초등학교.
  • 내리교회: 대한민국 최초의 개신교 감리회 교회
  • 제물포 구락부: 대한민국 최초의 외국인 사교클럽
  • 애관극장: 대한민국 최초의 극장
  • 팔미도 등대: 대한민국 최초의 등대
  • 하와이 이민: 대한민국 최초의 이민. 101명의 한인들을 실은 최초의 이민선은 1902년 12월 22일 인천을 출발해 1903년 1월 13일 호놀룰루에 도착하였다. 이후 1905년 일본의 제지로 미국으로의 한인 이민이 중단되기까지 총 7,226명의 한인들이 하와이에 도착하였다. 인하대학교도 하와이 교포들과 인천시민들의 성금으로 세워진 학교로 인천의 ‘인’과 하와이의 ‘하’자에서 따왔다.
  • 조선인촌회사: 대한민국 최초의 성냥공장
  • 동양연초회사: 대한민국 최초의 담배공장
  • 인천탄산수제조소: 대한민국 최초의 사이다공장. 우리나라 최초의 탄산음료다.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고뿌(컵의 일본어 발음) 없이는 못 마십니다
  • 존스톤별장: 대한민국 최초의 별장. 6.25전쟁때 파괴됨.
  • 통제영학당: 대한민국 최초의 해군사관학교
  • 인천기상대: 대한민국 최초의 기상대
  • 월미도 조탕: 대한민국 유일의 원조 조탕 해수탕[11]
  • 주안염전: 대한민국 최초의 천일염전
  • 전화소: 대한민국 최초의 시외전화
  • 훈맹정음: 인천 출신 송암 박두성 선생이 만든 최초의 한글 점자
  • 새나라자동차[12]: 대한민국 최초의 현대식 승용차 제조공장. 현 한국GM 부평공장의 전신.
  • 인천시립박물관[13]: 대한민국 최초의 공립박물관

3. 명칭 유래

인천의 최초 명칭은 미추홀(彌鄒忽)이다.[14] 미추홀의 홀(忽)은 고구려백제의 특징적인 지명어로서, 한자어 ‘성(城)’으로 쓰인다. 따라서 미추홀을 미추성으로 바꾸어 표기해도 무방한데, 실제로 광개토대왕릉비의 제2면 1행에 ‘미추성(彌鄒城)’이라는 표기가 나온다.
以六年丙申 王躬率水軍討伐殘國. 軍□□首攻取 …[A] 彌鄒城 … [B]
영락 6년(396) 병신년에 왕이 친히 군을 이끌고 백잔국(百殘國)[17]을 토벌하였다. 고구려군이 …[A] 미추성 …[B] 을 공격하여 취하고 (후략)

이후 고구려는 이곳을 매소홀(買召忽)이라 하였는데, 삼국사기에 따르면 이는 미추홀(彌鄒忽)의 다른 표기에 불과하며, 실제 발음은 ‘mit-kol/mi-kol’로 추정된다고 한다.[20] 여기서 ‘mit’은 물(水)의 뜻을 가진 어휘로, 밑(本, 始, 底), 뭍(陸), 미르(龍), 믿-(信) 등의 다양한 어휘로 분화되는 어휘이다.[21]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에는 통일 신라9주 5경 제도에 따라 한산주 매소홀현(買召忽縣)이 설치되었으며, 매소홀현은 경덕왕 때 한화(漢化)정책에 따라 이름을 고쳐 소성현(邵城縣)이 되었다. 삼국사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소성현은 본래 고구려의 매소홀현[22]으로 경덕왕때 이름을 고쳤으니, 지금의 인주(仁州)이다.[23][24]
경원(慶原)이라고도 한다. 매소(買召)는 미추(彌鄒)로도 쓴다.[25]

이후 고려 숙종(1095~1105) 때 숙종의 어머니인 인예왕후 이씨의 내향(內鄕)이었던 관계로 경원군(慶源郡)으로 개칭·승격되었다. 그 뒤 인종(1122~1146) 때에는 인종의 어머니인 순덕왕후 이씨의 내향이라 하여 인주(仁州)로 승격되었으며, 이자겸의 난으로 인주 이씨가 몰락하다시피 하였으나 공양왕 2년(1390)에 이르러 ‘칠대어향(七代御鄕)’이라 하여 문종에서 인종에 이르는 7대 동안 고려의 왕후를 배출한 지역이라 하여 경원부(慶源府)로 한 번 더 승격되었는데, 이는 공양왕신종을 매개로 하여 왕권의 정통성을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조선왕조가 개창되면서 경원부는 고려왕조의 정통성을 부정하기 위하여 다시 인주군(仁州郡)으로 강등되었고, 태종 13년 주(州)자를 가진 도호부 이하의 군·현의 이름을 산(山), 천(川) 두 글자 중 하나로 개정토록 하여 현재의 인천으로 탄생하게 되어, 그날 (1413년 10월 15일)을 기려 ‘인천시민의 날’ 이 제정되었다.[26]

4. 인구 추이

파일:인천광역시심볼국문.png
인천광역시 인구추이
(1966년~2018년)
1966년 525,827명
1970년 634,046명
1975년 800,007명
1980년 1,083,906명
1981년 인천시 → 인천직할시(광역시) 승격
1985년 1,386,911명
1990년 1,817,919명
1995년 2,353,073명
2000년 2,545,769명
2005년 2,600,495명
2010년 2,758,296명
2015년 2,925,815명
2018년 2,954,642명


개요에 나와 있듯,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는 도시이다.

하지만 수년 전까지만 해도 1~2%에 달하던 폭발적인 인천광역시의 인구증가율은 둔화되고 있는 추세인데, 첫째로 국가적인 출산율의 감소로 젊은층 인구가 감소하고 있고, 둘째로 인천 내 신도시, 택지지구의 개발이 거의 끝났기 때문이다. 물론, 인천의 인구증가율이 감소했을 뿐이지 인구는 현재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인천광역시는 간척사업으로 면적을 확장하고 있고 각지에서 신도시, 택지지구 개발과 원도심 재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송도국제도시, 청라국제도시, 영종하늘도시인천경제자유구역의 등장, 상업, 업무지구, 산업단지의 지속적 건설로 자족기능을 향상하고 있으며 수도권 통근자들이 유입되고 있다. 서울특별시 전세난에 지친 수도권 통근자들이 대안으로 찾는 도시다.[27] 서울의 집값이 장기적으로도 내려갈 가능성은 희박하고 국내외 기업 유치로 서울의 집값 하락이라는 가능성 낮은 가정에도 많은 인구가 빠져나갈 것이라는 주장은 인천의 자족기능을 지나치게 낮게 보고 있는 것이고 자녀를 키우기 좋은 계획도시 지역이 서울엔 부족한 것을 간과한 것이다. 또한 개발 예정인 검단신도시만 해도 수용인구가 20만 명이며, 영종, 송도, 청라와 서창지구 역시 아직 입주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이다. 또한, 원도심의 재개발[28] 역시 느리게나마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수도권 인구, 시설을 지방으로 분산시키려는 조치가 꾸준히 취해지고 있어 인천광역시의 인구증가가 초장기적으로도 계속 낙관적일 것이라는 전망은 어려워지고 있다. 뉴스기사 참고

인천은 2018년 기준으로 특별시와 광역시 중에서 유일하게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광역시다. 다른 대도시들은 전부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 중인 것에 비하면 인천은 사정이 좋다. 인천광역시는 2030 인천도시기본계획에서 계획인구를 350만 명으로 산정하였다 #

인천광역시청 홈페이지에 매달 공지하는 인구 현황에 따르면 2019년 9월말 기준, 인천광역시 인구는 3,027,985명이며, 주민등록인구는 2,956,804명, 외국인은 71,181명, 세대수는 1,232,450세대이다.

인구가 가장 많은 기초자치단체는 서구이며, 옹진군을 제외하고는 동구가 인구가 제일 적은 기초자치단체이다. 연수구송도국제도시의 영향으로 매달 꾸준히 약 1천명씩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2016년 10월 19일 3,000,013명으로 마침내 300만을 돌파해 1980년 부산시[29] 이후, 36년 만의 300만 도시이자 사실상 대한민국의 마지막 300만 도시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는 외국인까지 포함한 인구로 내국인 인구만 고려한 주민등록인구를 따지면 아직 300만을 돌파하지 못했다. 인구 290만을 넘어가면서 증가폭도 상당히 더뎌졌는데, 이렇게 되면 인구 300만 돌파시기는 장담하기 어려울수도 있다. 증가세를 유지하던 주민등록인구가 2019년 5월(2,957,179명)을 정점으로 하락세로 돌아섰다가 2019년 9월에 소폭 상승하였다.[30]

2019.9월말 기준 (출처:인천광역시청 홈페이지)
군구 총인구 주민등록인구
중구 136,223 132,052
동구 65,640 64,718
미추홀구 420,578 410,998
연수구 374,758 362,254
남동구 546,003 533,560
부평구 529,202 514,856
계양구 308,703 305,394
서구 555,955 543,108
강화군 69,978 69,153
옹진군 20,956 20,726
인천광역시 계 3,027,985 2,956,804

2018년 2월말 기준, 동구는 인구가 7만 이하로 감소하였고 남동구의 인구가 부평구를 추월하였다. 2018년 12월말 기준, 서구가 남동구의 인구를 추월하였다.관련기사 서구의 인구증가요인으로는 청라국제도시, 검단신도시, 루원시티 등 도시개발사업의 활달한 진행을 들 수 있다. 동구와 계양구, 부평구는 지속적으로 인구 감소세이며[31], 연수구는 송도국제도시와 동춘동 재개발 사업 등을 통한 주택공급의 증가에 따라 2019년 현재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남동구도 논현지구, 구월아시아드단지, 서창2지구 개발로 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중구도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데, 영종도 지역 한정이다. 원도심 지역은 도심 공동화와 낙후된 상권으로 계속 감소하고 있다. 2019년 6월에 동구는 66,000명선이 붕괴되었다.

국토교통부와 통계청이 발표한 '2015년 주택보급률'에 따르면 2015년 인천지역 주택보급률은 101.0%로 나타났다.[32] 관련기사

정부의 인구주택총조사 전수집계 결과와 인천광역시 집계 결과가 다른 것으로 알려졌다.인천시, 인구 300만 안된다...전국시도 5위

5. 지리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인천광역시/지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1. 생활권

섬 지역을 제외한 인천 본토는 크게 네 개의 생활권으로 구성된다. 동구-중구(영종도 제외)의 동인천[33], 미추홀구와 남동구 및 연수구의 남인천[34], 계양구와 부평구의 북인천, 마지막으로 서구의 서인천. 섬 지역은 인천국제공항을 위시한 영종도 생활권, 그리고 강화도 및 기타 군소도서지역 생활권으로 구성된다.

5.2. 서울과의 거리

5.2.1. 가깝고도 먼 곳

흔히 인천이 서울과 아주 가깝다거나 아주 멀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편견이다. 부평구와 계양구 일대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서울과 생각만큼 가깝지 않다. 연수구청에서 서울시청까지 자동차 기준 40.8km인데 이는 38.6km인 수원시청-서울시청, 38.9km의 안산시청-서울시청 간 거리보다 더 긴 수준이다. 서울 사대문안이 아닌 서울 강남역과의 거리를 기준으로 하면 더 멀어진다. 직선거리로 보면 광화문 도로원표에서 송도국제도시까지의 거리는 광화문에서 수원시 영통구청까지의 거리와 비슷하며, 부평역에서 광화문까지의 거리는 분당신도시의 중심지인 서현역에서 광화문까지의 거리와 거의 같고, 영종하늘도시-광화문간 거리는 동탄신도시-광화문간 거리와 비슷하다. 각 자치구청, 시청과 서울시청 간의 거리는 하단 표 참고. 강화군[35]과 옹진군청은 제외. 옹진군은 여러 개의 섬들이다. 제일 먼 백령도는 인천항에서 뱃길로 210km[36]을 가야 하므로, 서울시청에서 인천항까지 45km 정도를 합산한 서울에서의 거리는 약 260km으로, 칠곡군, 남원시 일대까지의 거리에 육박하고. 다리로 닿는 영흥도만 해도 약 80km 정도로, 경기도 끝자락인 안성시, 여주시 또는 강원도 철원군까지의 거리에 육박한다.

인천이 서울과 직접 닿은 곳은 계양구-강서구[37]뿐이고 도심인 영등포, 여의도, 부도심인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 마곡지구목동은 가깝지만 이들 지역은 강남 지역에 비해 일자리가 훨씩 적으며, 서울 사대문 안과 강남구까지의 거리는 가깝지 않다. 물론 여기에는 과포화되어 고속도로의 기능을 상실한 경인고속도로와 수도권 서부의 고질적인 교통체증의 탓도 크다. 계양구청에서 강서구청은 11km , 구로구청에서 남동구청까지는 17km에 불과하지만 극과 극인 노원구청에서 중구청이나 연수구청은 58km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서울시청까지 거리는 60km로 이천이나 평택시 송탄 일대와 비슷한 거리에 있다. 물론 인천공항철도의 직통열차 또는 택시렌트카를 이용하면 1시간만에 인천국제공항에서 서울 도심에 도착할 수 있다. [38]
인천광역시청37.7km
동구38.1km
미추홀구40.2km
중구43.7km
남동구34.7km
서구33.1km
계양구27.4km
부평구28.3km
연수구40.8km

참고로 의정부시청과 서울시청 간 거리가 26.7km. 부평-계양권은 부평산단을 기반으로 자체 생활권을 이루기도 하며 서울의 베드타운 성격이 어느정도 있고, 그 외 나머지 인천 지역은 공항철도가 지나는 서구 일부를 제외하고는 자체 생활권이라 보는 것이 정확하다. 인천광역시는 시민의 70%가 인천광역시 내 직장에서 종사하고 있다. 이에 대한 방증으로 2010 인구주택총조사에서 인천광역시는 부평구, 계양구를 제외하고 서울 통근, 통학률이 10% 미만이었고 이는 수원시, 화성시, 양평군 등 서울에서 멀거나 자체 생활권인 곳들과 비슷한 수준이었고 고양, 광명, 구리, 성남, 안양 등과 같은 경기도 근교 위성도시들과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인천에서 서울 통근자가 가장 많은 지역인 계양구, 부평구 역시 자족성이 높은 수원-서울 간 통근자 비중과 비슷했다.

또한 인천을 지나가는 서울시내버스 노선이 없다는 것도 생활권 상의 분절을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서울에서 어느정도 떨어진 군포, 의왕, 파주에도 서울시내버스가 운행하는데 인천은 서울시내버스가 운행하지 않는다. 부평 바로 옆인 부천은 광역버스도 아닌 일반 시내버스가 서울 4대문안까지 바로 찔러넣어준다.

5.2.2. 멀고도 가까운 곳

그럼에도 김포국제공항 인근에서 서울특별시와의 직접적 경계선이 약간 존재한다. 1990년대 이후부터는 이러한 점으로 인해 시외전화도 시내요금으로 통화가 가능해졌다.[39] 당시 기준은 30km 이내였는데 인접 통화권은 예외가 적용되어 인천광역시 중구도봉구 간도 시내요금으로 유지되고 있다. 부천이 인천과 같은 통화권이고 부천과 서울이 맞닿아 있기도 했으니. 창원시와 한 생활권이라서 통합된 진해구의 경우도 인접 지역 시내전화요금 도입 이전에는 시외전화였다는 점을 상기하자. (당연히 인천-서울도 시외전화였다.)

일단은 수도권인 데다가 서울과 가장 가까운 광역시인 만큼 서울과 이어진 교통도 발달한 편이라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이는 심리적 거리와 실제 거리 간의 괴리로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천은 1899년에 이미 경인선이 개통하는 등 서울과의 교통이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천국제공항철도, 7호선 연장선 등이 개통되어 서울과의 교통이 편리해지고 있고[40], 여기에 GTX B까지 개통되면 앞으로 서울과의 심리적인 거리는 더욱 가까워질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근 경기도의 위성도시들과는 다르게, 특히 부평-계양권이 아닌 원인천 지역의 경우 서울과 상당 부분 생활권이 분리된 면이 있다. 게다가 인천의 경우 수도권인 점을 감안해도 정체성이 상당히 강한 편이라 서울과 이질적인 면 역시 상당히 많다.
5.2.2.1. 중앙정부의 인천 패싱
인구가 300만을 초월한 대도시임에도 아직까지도 서울의 위성도시, 베드타운이라는 이미지가 꽤 강한 편이다. 정부에서도 인천에 문화시설, 고등법원을 짓지 않고 서울가서 해결하라는 정책기조이고[41] 수도권 매립지, 석탄부두, 화력 발전소 등 서울의 혐오시설들이 위치해 심지어 일각에서는 "서울의 식민지"(...)라는 아주 괴랄스러운 별명으로 불리기도 해서 인천광역시 입장으로는 여러모로 머리가 아픈 모양이고, 인천은 엄연한 인천이지 수도권 도시, 서울의 위성도시라는 꼬리표를 빨리 떼야한다는 주장이 더욱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인천을 다른 광역시들과 1대1로 비교하긴 어렵다. 그 이유는 인천은 인천권이라고 할 만한 권역이 없기 때문.[42] 그나마 인천권이라 할 수 있는 부천도 교통이 좋아지면서 서울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고 나머지 인근 도시들은 그냥 서울의 위성도시들에 가깝다. 인천 인구가 300만에 달한다고 하지만 다른 지방 광역시들은 인구는 인천보다 적어도 대구-경북권, 광주-호남권, 대전-충청권은 각각 약 500만의 인구를 담당하고 있다. 인천과 비슷한 광역시로는 울산광역시를 들 수 있는데, 여기서도 서울-인천의 관계가 부산-울산으로 대응된다. 따라서 울산에도 정부 행정 시설 등이 없으며 부산으로 가야만 한다.

아무튼 이러한 상황을 타계하기 위한 인천시와 여러 시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정치권의 인천에 대한 무관심, 홀대는 보수정부 시절에 이어 문재인 정부에서도 지속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도 인천 출신 인사가 공직에 거의 등용되지 않았고 이는 문재인 정부 공공기관장 인사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수도권 규제의 여파로 산업 기반이 유출되는 와중에 인천시가 20년 전부터 육성해왔던 바이오 산업 허브를 정부에서는 정치 논리로 충북에 안겨주었고 인천국제공항이라는 최고의 조건에도 불구하고 항공 산업 육성마저 경남 사천에 내줘야만 했다. 인천에 위치한 국가 공공기관마저 이전시키려는 와중에도 인천고등법원, 국립 문화시설은 깜깜 무소식이고 서울을 위해 수도권 매립지는 어떻게든 잔류시키고 심한 공해을 발생시키는 화력 발전소만 증설시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인천시와 시민이 아무리 노력한들 높으신 분들인식은 수 십년 전 인천을 서울의 님비 시설 건설지로 생각했던 것에서 크게 나아지지 않은 모습이다. 2019년 3월 인천지방법원에 서울고등법원 원외재판부가 설치되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인천국제공항의 기능을 떼어 부산에 주겠다, 국제회의 개최지 경쟁에서도 부산을 지지한다며 정부 여당의 노골적인 부산 편애, 인천 홀대를 보여주었다. 이에 대해 인천시민, 지역정가의 불만도 커져가고 있다. # #

이런 와중에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경남지역 4·3 국회의원 보궐선거 후보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해야 한다며, 18일에 인천시와 개최하기로 한 인천 예산정책협의회를 취소했다. #

5.3. 행정구역 개편 문제

서울시 행정구역 개편 문제에서 인천권의 서울 통합안은 다른 방안에 비해 덜 주목받고, 나오는 빈도도 낮은 편이다.

특히 원인천(중•동구, 미추홀구, 남동구, 연수구) 지역의 경우, 부평 지역(부평, 계양, 서구)과도 생활권과 문화의 이질성이 조금이나마 남아있는데 서울이나 경기도와 같은 색깔이 완전 다른 두 도시를 합친다는 것은 상당한 문제점을 낳을 것이다. 부평 생활권과 인천 생활권 역시 다른 지역으로 구분하는 경향 역시 조금 남아있다. 생활권 자체가 아예 영등포권에 속한 광명시의 서울 편입 문제만 해도 찬성론과 반대론이 팽팽할 지경인데 1981년에 대구와 같이 직할시로 승격할 정도로 자족기능이 수도권의 여타 위성도시보다 훨씬 강한 인천의 경우에는 더 설명이 필요 없다. 다만 행정구역 개편 방향이 도 폐지 및 광역자치단체 분할 쪽이 아닌 광역자치단체 대규모 광역화(도+광역시 통합)로 간다면 인천광역시 해체 후 경기도에 환원 혹은 시 단위가 아닌 "서울도" 로서의 서울/인천/경기 광역 대통합 혹은 경인통합(인천권의 서울 편입)이 논의될 가능성은 있다. 이건 자유선진당 개편안에서 서울+인천권 통합이 제기된 적이 있었다. 자유선진당이 제시한 광역화 방안에 대해 인천 지역사회에서는 인천이 '경기도 인천시'나 '서울특별시 인천구'가 되는 게 아니냐며 불만을 표시한 바가 있다.

그 외에는 인천권으로 분류되는 부천시, 시흥시, 김포시와의 통합이 논의되기도 하며 부평구, 계양구가 인천광역시에서 분리되는 방안도 논의되기도 한다. 다만 인천권 통합은 경기를 일으킨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해당 시들의 반발이 극심하고 특별시와 광역시의 추가 확장을 억제하는 정부 정책 기조상 현실성이 떨어지며, 부평권 분리 또한 행정구역 개편/경기권 항목에서 알 수 있듯 실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외에는 강화군의 경기도 편입(사실상 환원)도 거론되지만 이에 대한 인천 본토 쪽 반응은 "먹튀냐?!" 이상 이하도 아닌 듯.

만약 남북통일이 될 경우 강화군, 옹진군은 도로 경기도로, 서해 5도는 다시 황해도 관할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나 실현 가능성은 없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6. 기후

인천은 냉대 동계 소우 기후(쾨펜의 기후 구분 Dwa)에 속하며, 구분에 따라서는 습윤 대륙성 기후로 분류하기도 한다. 서해 5도와 같이 온대 하우 기후(Cwa)에 속하는 곳도 있다. 해안도시이지만 낮은 수심의 경기만 깊숙이 위치해 있어 기온과 강수량은 내륙 지방과 비슷하다. 7~8월에 기온이 가장 높고 강수량이 높다. 인천은 북서풍의 영향을 받아, 같은 위도 상에 있는 동해 연안의 도시보다 겨울철 기온이 낮다. 강수량은 한국 중부의 타 지역에 비해 적은 편이다. 옹진 섬 지역은 인천 육지보다 바다의 영향으로 따뜻한 편이다.

6.1. 대기

인천은 강한 편서풍 기류를 타는 몽골 사막지대의 황사 발생원에 가깝기 때문에 황사의 영향을 가장 먼저 받는다. 높은 산과 구릉들이 많이 분포하고 있는 내륙 도시들에 비해 황사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다.

7. 행정구역


연수구의 경우 2016년 송도랜드마크시티 착공 및 완공을 기준으로 송도국제도시 일대가 연수구에서 송도구로 분구 주장이 다시금 제기되고 있으나, 행정자치부의 자치구 분구 기준은 대략 60만 명인데 연수구의 인구는 겨우 30만명 중반이라 상당히 미달되기 때문에 실제로 분구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또한 연수구보다 인구가 2배 가까이 많은 부평구, 서구, 남동구 역시 당장은 분구 계획이 없다. 서구의 경우 청라국제도시와 검단신도시가 개발된 후 인구가 일정 수준을 초과할 때쯤 분구가 예정된 상태.

7.1. 자치구 명칭 변경

다른 광역시와 마찬가지로, 다수의 인천 자치구 이름은 지역 특색을 살리지 않고 방위를 갖다 붙여 지은 것이다. 그나마 과거에는 명명 당시의 인천시청(현 중구청)을 기준으로 지어져 구명(區名)과 방위가 일치했으나, 시역이 확장되고 시청이 이전하면서 점점 불일치 문제가 두드러졌다.[43] 특색도 없고 방위마저 불일치한 자치구 이름은 지역 주민의 소속감·정체성 형성, 자긍심 고취, 지역 홍보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다른 광역시의 자치구들과도 구별하기 어려운 탓에 외지인의 혼동까지 야기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구명 변경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개명 대상으로 가장 활발하게 거론되는 구는, 동구, 서구, 중구, 남동구이다. 남동구(南洞區)는 방위와는 무관하게 옛 남촌면과 조동면의 합성 지명인 "남동(南洞)"에서 딴 이름이지만, 실제로 인천 남동부에 있어 방위 남동(南東)을 연상케 하는 지명으로 지적받아 왔다. 일제강점기 부군면 통폐합(1914년)에 따라 만들어진 지명에서 따 왔다는 점도 개명 명분에 영향을 주었다. 새로운 구 이름으로는, 동구는 화도진구, 중구는 제물포구[44], 서구는 서곶구·연희구·검단구, 남동구는 구월구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 중에서 동구가 가장 개명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역시 부정적인 원도심 이미지를 탈피하려는 남구의 경우 2018년 7월 1일부로 미추홀구로 전면 변경되었다. 서구는 강릉 정동진(正東津)에 대비되는 "정서진"(正西津)의 의미가 있으며, 설령 변경하더라도 명칭 결정에 따른 논란이 있으리라는 이유로 이유로 개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서구는 검단 지역 개발이 마무리될 때 분구가 예정돼 있으므로, 그 즈음에는 어떻게든 명칭 변경이 이루어지리라는 예상이 제기되고 있다. 중구도 인천의 "중심"이라는 의미를 포기하기 싫다는 이유로 개명에 소극적이다.

동구는 선호도 조사 결과에 따라 2017년 후반기부터 화도진구로 개명을 추진할 예정이었으나, 아직 구의회 동의조차 받지 못한 상태이다. 남구는 과거 반대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아 추진이 지연되었으나, 구청의 꾸준하고 적극적인 홍보에 힘입어 결국 새 이름을 확정했다. 우선 선호도 조사로 새 구명(區名) 후보(문학, 제물포, 수봉, 미추홀, 주안) 중 주안과 미추홀을 최종 후보로 확정한 뒤, 2017년 4월 7일까지 구내 전 세대를 대상으로 최종 명칭을 고르는 우편조사를 실시해, 미추홀구로 새 구명을 확정했다. 구명 변경은 2018년 7월 1일에 하기로 하였다. 남구의 구명 변경이 방위 명칭으로 된 자치구 이름 변경의 첫 사례로서, 방위 명칭을 사용하는 다른 자치구의 개명에 큰 영향을 미치리라는 의견, 기존 명칭에 익숙한 인천 시민들이 얼마나 받아들일지 미지수라는 의견이 있다.

구명(區名) 변경 비용은 대부분 인천시가 지원한다고 한다. 재정난이 2018년 이후로는 해소될 것으로 보이고, 의견 수렴 등 사업 추진까지 시간적 여유가 있으므로 재정 조달에는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인천의 자치구 명칭 변경이 실현된다면, 다른 광역시들의 구명 변경에도 큰 영향을 예상된다. 인천을 제외하고 방위명을 쓰는 자치구는, 대구, 부산 각 5곳[45], 광주, 울산 각 4곳[46], 대전 3곳[47], 서울 1곳[48]으로 총 22곳이다.

한편 개명 추진에는 중구·동구 통합, 서구 분리 문제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다수다. 특히 통합이 점쳐지는 중구·동구는 기껏 명칭을 변경했는데 자치구 통합으로 명칭이 폐기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고, 전술했듯, 동구의 명칭 변경 움직임은 교착상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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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정치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인천광역시/정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9. 군사

북한과 바로 맞닿아 있는 유일한 광역시이기 때문에 군부대들이 많이 주둔해있다. 일단 대한민국 육군 보병사단 중 최대규모인 제17보병사단이 인천에 주둔하고 있으며 인천국제공항 외곽경비도 예하 경비단이 담당하고 있다. 또한 육군특수전사령부 예하 국제평화지원단제9공수여단(부천시와 면적을 걸치고 있음)이 주둔 중이며 제1군수지원여단도 인천광역시에 주둔하고 있다.

과거 대한민국 해군 제2함대의 모항도 있었으나 평택시로 편대 배치가 이루어진 이후로는 이 부지에 인천해역방어사령부가 창설되어 지금까지 인천 연근해와 도서 지역, 인천국제공항의 방어를 담당하고 있다. 또한 강화군에는 대한민국 해병대 제2해병사단 일부 부대가 있고 서구에는 사단본부가 있으며, 서해 5도에는 제6해병여단 및 연평부대가 배치되어 있다. 여담이지만 제2해병사단 본부의 위치는 김포시에 있어서 서울특별시와 가깝고 인천시계와 김포시에 걸쳐 있으며 인천 시내 지역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시내에 대한민국 공군 부대는 따로 없으며, 영종도에 방공포병사령부 제3여단 예하 포대가 있다. 중앙방공통제센터 및 제10전투비행단에서 유사시에 대응한다.

서해5도제6해병여단 및 연평부대 그리고 2함대 소속 조기경보전대 및 예하 레이더 부대가 주둔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공군도 레이더 부대를 둔다. 육군은 없고 해병대가 육군 역할을 하며 대한민국 해양경찰청도 섬에 파출소를 두어 치안유지를 맡는다.

10. 사법

10.1. 법원

10.2. 검찰

11. 사회

시간이 흘러 조사 당시와 차이가 있겠으나 실제 조사에 의하면 충청도 출신 주민의 비율이 토박이에 이어 2순위이다. 토박이 중에서도 충청도 원적자 출신(특히 충남 내포지방)이 상당하다. 해반문화사랑회에서 발간한 <열려있는 땅 인천>이란 지역정주성보고서에서 인용한 97, 98년도의 인하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의 1, 2차 시민 조사에 따르면, 현재 인천의 출신별 인구분포는 인천, 충청, 서울, 경기, 전라, 경상, 강원, 이북, 제주의 순으로 각기 대략 28%, 16%, 14%, 12%, 11%, 11%, 5%, 2%, 1%로 되어있다. 미추홀구 관교동 관교중학교 바로 옆에 충남도민회관이 있을 정도다. 물론 충남도청이 공식적으로 세운 것은 아니고 인천 지역의 충청남도 출신 주민들이 세운 일종의 향우회 건물이라고 보면 될 듯. 이 건물 1층에는 충남지역 농산물 판매점이 있다. 이는 인천이 여러 곳의 사람들이 골고루 모여 사는 개방적인(?) 땅임을 알려주고 있다. 하지만 인천 토박이들 역시 많고, 황해도로 대표되는 이북 실향민과 그 후손들도 많이 사는 곳이 인천이다.[49]황해도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일자리를 찾아 이주하기도 했다.

경인방송에서는 인천 인구 270만(2016년 6월말 기준으로는 299만 명) 중 100만이 충청도 출신이라고 말했을 정도. 또 다른 예로는 한화 이글스가 있다. 대전광역시가 연고인 한화 이글스는 다른 지방팀인 광주광역시 연고팀 KIA 타이거즈부산광역시 연고팀 롯데 자이언츠, 바로 옆 인접 지역인 서울특별시LG 트윈스, 두산 베어스 등보다 원정 티켓파워가 한참 밀리는 게 사실. 하지만 인천 SK 행복드림구장에서만큼은 기아와 함께 원정 관중이 가장 많은 걸로 유명하다. 2007년 이후의 홈팀 SK 와이번스의 인기 수직상승 전에는 게임마다 한화 원정팬이 홈팀팬보다 더 많이 왔을 정도.

인천 거주자 중 출신지 비율을 나타낸 것이다.
서울 11.7%
경기 9.3%
인천 31.2%
수도권 52.2%
부산 1.5%
대구 0.8%
울산 0.2%
경북 5.0%
경남 2.5%
영남권 10.0%
대전 0.6%
충북 4.0%
충남 10.8%
호서권 15.4%
광주 0.8%
전북 5.9%
전남 8.9%
호남권 15.6%
강원 5.2%
제주 0.3%
중국인 1.9%

광역자치단체별로는 인천 토박이-충남-경기-전남 순이며, 권역별로는 수도권-호남권-호서권이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일반적인 의미의 토박이(즉, 선조 대부터 인천에서 살아온 집안 출신)와 다르게 여기서는 좁은 의미의 토박이로 인천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들을 모두 일컫는 말이라는 것이다. 전라권 출신 인물들이 많다고 알려졌고, 위의 수치만을 보면 그렇게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서울특별시의 호남권 출신자 비율인 20.3%[50], 경기도의 16.8%보다 낮은 15.6%에 그치고 있다. 호남권 출신이 많이 산다고 일부 사람들에겐 알려져있지만[51] 사실은 반대로 수도권에서 호남권 출신자의 비율이 가장 적은 곳이 인천임을 알 수 있다. 특히 단순 출신지가 아닌 본적지로 계산해본다면 충청권 출신이 호남권 출신보다 더 많을 수 있다. 또한, 재미있는 점은 수도권에서 충청권 출신자의 비율이 가장 높으면서 영남권 출신자의 비율이 낮다는 점이다. 서울의 영남권 출신자 비율은 13.8%, 경기도는 11.8%.

그 외 국내에서 중국인, 특히 화교들이 많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 인천이다. 애초에 중구 선린동에 차이나타운이 존재하고 인천역의 부역명이 차이나타운이며, 그곳을 중심으로 화교들이 모여 살고 있다. 참고로 서울특별시 구로구와 영등포구에도 중국인들이 꽤 많이 거주한다. 다만, 선린동 차이나타운에 있는 중국인은 귀화했거나 대만 국적의 화교들이 다수인 반면, 구로, 영등포 지역에 사는 중국인은 한중 수교 이후 건너온 중국 출신 조선족, 한족이 많다는 것이 차이다.

11.1. 치안

서울, 경기, 부산에 이어 4번째로 치안정감이 지방경찰청장인 곳이 되었다. 다른 곳의 지방경찰청장은 치안감이다.

인천지방경찰청이 남동구 구월동에 있다. 중부경찰서[52], 미추홀경찰서[53], 남동경찰서, 부평경찰서, 서부경찰서, 계양경찰서, 강화경찰서, 연수경찰서, 삼산경찰서가 각 관할 구역의 치안을 담당하며 이 외에도 인천공항경비를 담당하는 공항경찰대가 있다.

2017년 9월에는 논현경찰서가 개서하였고, 2020~21년 경 검단경찰서가 개서할 예정이다. 또, 송도국제도시에 송도경찰서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인천지역 경찰서는 12곳으로 늘어나게 된다.

또한 대한민국 해양경찰청 본청이 송도국제도시에 자리잡고있고, 중부지방해양경찰청도 송도국제도시에 있다.

중부지방해양경찰청 소속의 인천해양경찰서 청사가 연수구 옥련동에 위치하고, 서해5도특별경비단 청사가 중구 북성동에 위치하고있다.

인천의 치안에 대한 선입견으로서, 과거 항만산업단지로서의 기능만이 강조되던 시절의 거친 항만과 산업단지 노동자들과 강력범죄의 이미지가 덧붙여져 치안이 나쁜 도시로 오해받기도 하나 인천의 위상이나 규모가 확장된 거대도시가 된 만큼, 과거의 일면을 일반화 시킨 멸칭이 현재의 그 전체 지역을 지칭하는데 적절할 리가 없다. 결국, 지역차별의 편견을 받아들여서 현재의 변화를 보지 못하게 할 뿐이라는 것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인천광역시는 치안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과는 달리 2011~2014년 4년 연속 4대 범죄 발생율 최저를 기록했고, 2013년 상반기, 검거율은 최고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2016년 기준으로, 구체적으로는 대형 번화가가 없고 주거 중심인 서구, 연수구, 계양구 지역의 치안이 가장 양호하고, 원도심에 속하는 중구, 미추홀구와 인천 양대 번화가가 위치한 남동구, 부평구 지역의 치안이 비교적 불안정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2016 범죄지도 참고)즉, 번화가 이외의 주거 지역은 계획도시 비중이 많아 양호한 편이다. 단, 원도심에 속하는 중구, 미추홀구는 타 지방자치단체의 중구나 원도심에 비하면 상당히 양호하지만 역시 낙후되어 있는 만큼 치안의 불안이 남아있다고 평가된다. 이는 타 지역과 마찬가지로 도시재생이나 재건축을 통해 도시기능이 활성화되면 차츰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 추정된다.

인천에는 여러 대규모 산업단지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타 지자체들과 비교하여 매우 양호한 통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정작 그 산업단지에서 떠올릴 수 있는 외국인 노동자조차 인구대비 거주자 면에서는 같은 수도권인 서울, 경기도나 경상남도, 충청남도보다도 적다. (실제 외국인 거주자 순위로는 경기도, 서울, 경남 다음이다.) 인천항 일대에서 눈에 띄는 조선족에 대한 안좋은 인식 역시, 인천항 일대를 확장하여 인천을 일반화하는 근거가 되어서는 안된다. 사실 조선족들은 서울시민, 경기도민들이 인천국제공항을 '이용'하듯 인천항을 '이용'하는 것이지 그 일대에 '거주'하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는 일부 편견과 달리 서울, 경기에 비하면 인천에 거주하는 조선족은 인구대비 매우 적다. # 즉, 인천하면 외국인 노동자나 조선족을 떠올리곤 하는 부정적 편견이 과장되어 있거나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1.2.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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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부터 어린이집에서 고등학교까지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하는 첫 번째 광역지방자치단체가 되었다.

11.3. 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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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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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분, 제당 산업을 위시한 경공업부터 기계공업, 제철공업, 석유화학 산업으로 대표되는 중화학 공업, 반도체, 로봇 산업, 바이오 산업 등을 위시한 첨단 산업을 아우르는 대한민국 제 2의 산업도시이자 한국 미래 유망 업종 중 하나인 바이오 산업이 가장 발전한 도시이며 한국의 미래 먹거리 산업인 바이오, IT, 로봇, 드론 산업과 관광, 항공, 반도체 산업 등 첨단산업과 3차 산업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지역내 총생산(GRDP)에서도 2017년 기준, 대구광역시를 약 34,000달러 차이로 앞섰고 인구가 50만 명 가까이 많은 부산광역시도 약 1,000달러 차이로 추월했을 정도로 성장세가 빠르다.

인천광역시는 1960, 70년대부터 국가정책에 의해 공업지대로 성장하였으며 이때 조성된 산업단지로는 남동인더스파크부평산단, 주안산단, 인천기계산단이 대표적이다. 한국GM과 협력업체 그리고 중소기업에 경제적인 부분을 의존하는 경향도 있다. 남동인더스파크의 경우 수도권에서 가장 큰 산업단지다.

과거에는 대우그룹의 영향력이 상당히 컸던 도시였다. 부평과 학익동에 위치했던 대우전자, 부평에 위치한 대우자동차, 화수동에 위치했던 대우중공업[54] 등 대우의 주요 계열사들이 위치해 나중에는 대우그룹 본사를 인천으로 이전하려는 계획까지 갖고 있었다.[55] 그러나 IMF 외환위기로 인해 대우그룹이 부도를 맞아 해체되면서 외환위기로 인한 인천지역 경제 타격 수준이 다른 도시들에 비해 훨씬 컸었다. 현재로 치면 울산에서 , 수원에서 삼성전자가 부도났다고 가정하면 된다. 그 이후 수도권 규제, 인건비 상승 등으로 중국, 동남아 등 해외, 지방으로 산업기반이 유출되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과거 조성된 산업단지의 구조고도화 사업이 진행 중이다.

과거엔 국내수요를 모두 책임지고도 남을 정도의 염전이 주안에 있었다. 이것이 바로 주안 염전. 과거 인천 사람들의 경제 소득 기반 중 하나였을 정도. 하지만 이것은 경인고속도로 공사 이후로 사라지고 넓은 부지와 인천항과 가깝고 경인고속도로 개통으로 교통이 편리해지는 등의 이유로 수출 산업단지가 만들어졌다. 이것이 인천J밸리. 이외에도 가좌동 쪽에는 가구공단이 들어서 있으며, 인천항 근처에는 OCI, 동부대우전자, 두산인프라코어, CJ제일제당, 현대제철, 대한제분 등 대규모 회사들의 공장이 많이 들어서 있다. 이 공장들은 정말 크고 아름답다.

여담으로 국내 밀가루와 설탕 생산의 많은 양이 인천에서 이뤄진다. 이는 대한제분, 동아원, CJ제일제당 등 제분, 제당공장에서 만들어내는 제품의 원료가 선박을 통해 전달되고 항구와 맞닿은 인천에서 생산해야 효율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인천항과 가까운 옛 남인천역 일대에는 일제시대부터 대규모 곡물시장이 위치해 있었다.[56]

기업 본사의 경우 송도국제도시를 중심으로 포스코건설, 패션그룹형지, 대우인터내셔널 (현 포스코대우), 코오롱글로벌, 셀트리온, 삼성바이오에피스, 삼성바이오로직스, 미쓰비시엘리베이터, 오티스엘리베이터 등의 기업들이 유치되고 있으며 청라국제도시에는 현대무벡스, 하나금융지주 본사가 들어설 예정이다. 원도심에는 두산인프라코어 본사 및 인천공장, 현대제철 본사(주소상 본사, 실제 본사 역할은 서울) 등이 있고 부평에는 한국GM 본사와 부평공장과 인켈의 본사와 연구소, 미국앰코테크놀로지 코리아, 린나이 , 동서식품 부평 공장 연구소가 있다. 또한 국내외 많은 기업들의 R&D 시설들이 있고 계속해서 유치 중이다. 사조그룹의 사조해표 , 사조동아원 공장 , S&T 모티브 , 코웨이 , 한진중공업 공장 , LG전자 인천캠퍼스, 쌍용그룹의 쌍용양회 인천출하공장 , 이수그룹의 이수엑사보드, SK인천석유화학이 있다.

인천항 북항과 맞닿은 동구에는 대규모 공장이 많은데 현대제철(구 인천제철), 동국제강, 두산인프라코어, 샘표식품 등이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아울러 송림동에 동부인천스틸(동부그룹의 계열사였던 동부제철) 공장도 있다. 이 근처에 대규모 고가도로인 가좌IC고가교가 있는데 교량 위에서 차로 지나가는데 동부인천스틸의 공장을 바라보면, 마치 우유 팩처럼 생겨 웃음거리가 되기도 했다. 제철소 중 자동차 강판을 주로 생산하는 냉연공장은 루퍼(Looper)라는 설비 때문에 공장이 우유팩처럼 생겼다. 포스코 광양제철소의 냉연공장도 마찬가지로 공장이 우유 팩 모양이다. 가좌IC고가교 로드뷰

12.1. 실업률

인천은 2019년 3월 기준 서울, 부산, 울산에 이어 실업률이 네 번째로 높다.

특히 취업 시장에서 남성이 상대적으로 여성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다. 2016년 2월 기준 인천에 사는 남성의 실업률은 7.1%로 여성(5.6%)보다 1.5%p 높다.

인천의 실업은 제조업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열악한 근무 환경이 청년들이 일자리를 기피하는 현상으로 이어지게 하는 주된 요인이라는 것이다. 파견 형식의 일자리가 많다보니 임금은 최저 수준인데다 고용 안정성마저 담보되지 않는다. 청년들은 근무 환경이 열악한 중소기업에 취직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자발적 실업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게 된다.

2019년 8월, 인천지역 실업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7월 중 인천지역 실업률이 4.9%를 나타내면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가장 높은 실업률을 나타냈다.

12.1.1. 앞으로의 전망

인천경제자유구역 등지의 해외 자본 유치, 기존 산업단지 구조고도화, 신규 산업단지 조성 등은 긍정적 요인이나 인천 내 기업의 해외, 지방 이전 등 부정적 요소 역시 상존한다.

12.2. 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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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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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 특산물

서해에 끼어있기 때문에 수산물 생산이 활발하여서 삼치, 새우, 꽃게 등이 풍부하다. 또한, 백령도연평도를 중심으로 꽃게잡이가 성하며 강화도에서는 쌀 생산도 성한 편이다. 이 외에도 굴, 포도, 배, 인삼, 순무, 고추, 버섯, 까나리액젓 등이 있다.

13. 인천경제자유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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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문화

14.1. 독서

'2015 세계 책의 수도' 였을 만큼 독서율이 전국 평균보다 10% 높고 연간 독서량 등의 부문에서 전국 최고 수준을 기록하고 있다.#

14.2. 축제

2014년에 현재 인천아트센터가 조성된 송도국제도시 워터프론트 호수공원에서 음악에 맞춰 불꽃이 터지는 인천 음악 불꽃 축제가 열렸다. 수 많은 인파가 몰려 센트럴파크역을 지난 인천 1호선 전동열차가 인천대입구역을 무정차 통과하기도 했다(...).

송도국제도시에 위치한 송도 달빛 축제공원에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이 정기적으로 열린다. 국내, 해외의 유명 락밴드들이 와서 공연을 한다. 인천 시민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사람들도 많이 즐기러 오는 편이다.

2018년 인천시의 성소수자들의 자긍심과 인권증진을 위한 인천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송도 달빛 축제공원에서 열리는 송도맥주축제에서는 여러가지 세계맥주와 다양한 음식을 즐길수있다.

14.3.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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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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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5. 음식

한국인들의 소울푸드한국식 짜장면이 태어난 곳이 바로 인천이다. 인천 선린동 화교들을 통해 중국식 작장면이 한국화된 음식이 바로 우리가 즐겨 먹는 지금의 짜장면이다. 한국 짜장면의 시초라고 알려졌으나 실제로 시초는 아닌 공화춘이 인천 차이나타운에 있다. 원래의 공화춘은 현재는 옛 흔적만 찾아볼 수 있고 현재 공화춘이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는 곳은 원래 공화춘과는 연관되는 점 없이 가게 이름만 같은 전혀 다른 곳이다. 원조 공화춘 주인의 손녀가 운영하는 가게가 따로 있다.[57] 북성동을 벗어나 조금 떨어진 신포동(도보 15분, 버스 5분 거리)쪽도 많은 중화요릿집들이 있다. 구경하느라 지쳐서 정 가까운 곳에서 먹고 싶다면 중구청 근처인 바로 옆의 선린동 쪽의 중국집들을 추천. 차이나타운 중심구역보다 약간 외곽 쪽일수록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며 신포동 쪽의 중국집들이 오히려 높은 퀄리티를 보여주기 때문.

가장 중요한 사실은 차이나타운보다 유명한 화상이 도시 구석구석에 널려있다. 볶음밥은 용화반점[58], 탕수육은 연중반점[59]. 짬뽕은 대명반점[60]이 알려졌다.

쫄면이 탄생한 곳이 신포국제시장이다. 신포국제시장의 '신포우리만두'라는 분식점이 원조인데[61] 맛도 괜찮은 편이다. 신포시장에서는 닭강정도 유명하며, 신포동 칼국수골목도 유명하다. 특이하게도 칼국수의 고명으로 치킨을 튀기고 남은 튀김가루도 넣어주는 곳이 있다.[62] 사람마다 취향 타는 편이니까 참고하자. 경인선 제물포역 지하상가에 가면 분식점에서 쫄우동이라는 것을 판다. 이 음식은 쫄면에 각종 양념, 고명을 얹고 우동국물을 부어 만든 것인데 면의 쫄깃함과 우동국물이 잘 어울린다.

화평동으로 가 보면 일명 세숫대야 냉면을 맛볼수 있는 골목길이 있다. 집집마다 원조타령하며 견제하는 분위기는 아닌데 대부분 비슷한 시기에 모여 입점한 이유로 보인다. 양이 정말 푸짐하고 리필에 인색하지도 않아 가끔 국가대표 운동선수들이 단체로 와서 1인당 세숫대야 4-5개 분량을 흡입하는 장면도 목격할 수 있다. 여자 농구선수 유영주정은순이 여기에서 둘이 합쳐 10대야 분량을 해치웠다는 카더라가[63] 있는데 실체를 아시는 분은 자세한 내용 추가바람

로 유명한 소래포구와 연안부두는 횟집에서 먹기보다는 어시장에서 직접 사서 집에서 먹거나 차림비를 받는 식당에서 먹는 것이 좋다. 다만 연안부두에 밴댕이회, 밴딩이회무침 거리는 가격과 양이 괜찮은 편이다. 때만 잘 맞으면 2~3명 먹을 산낙지를 만 원에 살 수도 있다. 연안부두 외에 월미도 인근 북성포구나 만석부두, 화수부두 등지에서도 횟감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특히 북성포구에서는 부두에 막 접안한 낚싯배 위에서 횟감 흥정을 할 수도 있다.

인천 방언으로 물텀뱅이[64](아귀)라고 불리는 음식도 유명하다. 용현동에 물텀뱅이 거리가 조성되어 있고, 맛집들이 많다. 과거 인천 어부들이 조업을 하다 이 물고기가 잡히면 재수 없다고 버렸는데 물고기가 바다에 빠지면서 나는 '텀벙'소리 때문에 물텀뱅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원래 먹지 않고 버리는 생선이었는데 중국 사람들이 해안가로 밀려온 물텀뱅이를 가져다 삶아먹는 걸 보고 대포집에서 인천항 부두에서 일하는 작업자들이 막걸리를 마실때 술국으로 거저 주었다고 한다. 그러다 반응이 좋자 정식 차림으로 하면서 물텀뱅이 찜이나 이를 활용한 술국이 탄생하게 되었다.
그 외에 2000년대 들어 젊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신포닭강정을 위시한 소위 4대 닭강정이 많이 알려졌고, 냉면도 유명하다. 화평동 냉면 골목은 90년대 학생들이 토요일 즈음에 동인천 놀러 간 김에 싼값에 배 채우는 곳이다. KBS 1TV 한국인의 밥상SBS 미운 우리 새끼[65]를 통해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한 백령도식 냉면이 인천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 그리고 인하대학생들이 싼값에 안주를 해결하던 동인천 삼치거리와 관교동[66] 먹자골목의 밴뎅이 회는 저렴한 안줏거리로 뛰어난 맛을 자랑하며 구 송도의 꽃게찜과 물텀벙이찜도 명물이다.

그밖에 1970년대부터 신포동에 자리잡은 메밀국수집 '청실홍실'도 유명하다. 메밀국수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서울 피맛골의 미진과 함께 수도권 메밀국수 맛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본래 러시아인이 운영하던 인천 최초의 카페인 금파가 운영되던 자리였으나 6.25 전쟁으로 소실 후 새로 지은 건물에 자리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전 MBC의 주말드라마 가화만사성을 촬영했던 인천역 인근 중화요리 전문 대형 식당인 연경이 자리잡고 있는 것도 한몫을 하고 있고 수도권 전철 수인선 역세권 편입까지 더하게 되며 월미도, 인천국제공항을 한꺼번에 관광할 수 있는 코스까지 마련된 것도 물론 존재하게 된다. [67]

최근에는 송도신도시를 중심으로 전문 쉐프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들이 자리잡고 있다.

김밥천국의 탄생지가 바로 인천이다(!).

여담으로, 인천에서는 돼지국밥이 인기가 없다. 애초에 돼지국밥은 부산과 경남 지역의 향토 음식이다. 요즘은 미디어의 영향으로 많이 알려지고 인천에서도 돼지국밥을 파는곳도 점차 생기고 있지만 인천 토박이들 특히 에코세대의 경우는 돼지국밥이 뭔지도 모르고 먹어본적도 없는게 태반. 부산이나 서울[68]과 달리 돼지국밥을 파는 곳도 찾아 보기 힘들며, 판다 해도 돼지국밥만 따로 단독으로 파는 곳은 찾아 보기 힘들다. 대신 설렁탕이나 순대국, 뼈해장국집은 많고 인기고 좋다. 20대쯤 나이 먹고 돼지국밥의 존재를 알게 되었거나 요즘은 유튜브같은 먹방 채널을 통해 아는 경우도 많다.당장에 인천사람이 돼지국밥먹으러가자는 얘기를 할 확률이 몇프로일지 생각해보자...

14.6. 종교

대한민국에서 기독교(개신교, 천주교)가 가장 강세인 지역.[69]
차타고 가다보면 한블럭에 하나씩 교회가 보일 정도

국가통계포털(KOSIS) 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인천의 종교인구는 117만명으로 개신교 64만명, 천주교 26만명, 불교 24만명 순으로 나타났다. 개신교와 천주교를 합치면 90만명으로 불교 인구의 3배가 넘는다. 전통적으로 불교세가 강한 부산, 대구, 경남, 경북, 울산 등 영남(경상도)지역과는 완전히 대조를 이룬다.

한가지 더 특이한 점은 천주교가 전국 모든 시•도지역에서 3위인데 유일하게 인천에서 2위라는 점이다. 그래서 불교계에서는 인천을 불교 취약지역으로 꼽고 있다.

그리고 서울이나 경기도 등 다른 지역과 달리 장로회보다 감리회가 초강세다. 인천 강화군은 대한민국 관내 시군 중 감리회의 교세가 가장 강한 지역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개신교 및 감리교회인 내리교회중구 내동에 위치해있고 설립일이 1885년으로 13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3 · 1 민족대표 33인 중에 한 분인 신홍식(1872~1939) 목사가 일제경찰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 후 내리의 담임목사로 부임해(1922~27) ‘인천내리교회역사’(1923)를 직접 기록했다. 그것이 오늘까지 중요한 사료로 전승되고 있다.

중구 답동에 위치한 답동성당은 1890년대에 건축된, 대한민국 성당 중 가장 오래 된 서양식 근대 건축물 중 하나이다. 서울에 명동성당이 있다면 인천에는 답동성당이 있다.

기독교 인구가 많고 기독교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이렇다보니 인천에서 성소수자들이 퀴어축제를 열려다가 기독교단체와 시민단체 등의 격렬한 반대집회로 무산되거나 중단되는 일도 있었다.

남동구 간석동모든 기독교 종파[70]들이 밀집해 있다고 한다. 전국에서 유일하다고 한다(...).

14.7. 음악

과거 인천에는 미군기지가 있는 부평과 번화가였던 동인천 지역을 중심으로 많은 음악가들이 모여들었다. 국내 양대 악기 제조사인 삼익악기, 영창악기가 모두 인천에 위치했고 콜트, 콜텍도 마찬가지로 인천에 있었다. 여기에 더해 미군기지로 인해 기지 주변인 부평 신촌은 수많은 음악인들이 전국에서 모이는 곳들 중 한 곳이기도 했다.

인천을 배경으로 한 유명한 노래는 김트리오의 연안부두 한 개뿐이지만 유명하지 않아도 한국에서 근대적 도시로서의 역사가 가장 긴 도시들 중 한 곳 답게 나름 인천을 배경으로 한 노래들은 꽤 많은 편이다. 근래 들어서는 인천 출신의 리듬파워 같은 힙합 그룹들도 탄생했다.

여전히 부평, 동인천 등지에서 활동하는 로컬 뮤지션들이 많지는 않지만 남아있고 인천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World Club Dome Korea 등의 대규모 음악 페스티벌을 두 개나 개최하는 등 음악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다.

부평구가 문체부 선정 음악도시 사업을 진행 중이고 부평 미군기지 반환과 함께 인천 음악의 산실이자 아픈 역사의 현장인 이곳을 역사문화공원으로 조성하고 굴포천 상류를 복원할 계획이다.

14.8. 언론

15. 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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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상하수도

16.1. 상수도

상수도 시스템을 구축한 역사는 서울특별시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다. 인천시 관할 최초 정수장은 서울 노량진(당시 과천군 노량진리)에 1910년에 들어선 노량진정수장. 그 노량진정수장은 1948년에 서울시에 인수되었다가 2001년에 폐쇄되었다. 참고로 서울시 관할 최초 정수장은 1908년 뚝도정수장(현 뚝도아리수정수센터)이었으니 인천시는 생각보다 이른 시기에 상수도 시스템을 구비한 것이다. 노량진정수장은 인천 뿐만 아니라 경성부(특히 영등포) 일부에도 수돗물 공급을 책임졌다.

서울시에 노량진정수장을 스틸당한 인천시가 지은 대체 시설이 지금의 부평정수장. 이후에도 남동(장수)정수장, 공촌정수장, 수산정수장 등을 세웠다.

인천시 상수도 인프라는 의외로 마당발이 넓었는데, 주변지역의 수돗물 공급도 책임지기 위해 인천시외에 정수장을 여럿 설치한 역사가 있다. 인천시 일부와 김포군, 부천시 지역에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해 1958년 김포군 양서면 신월리(현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월동 서서울호수공원)에 김포정수장을 설치했다. 그리고 부천시, 광명시, 시흥시 일대 및 인천시 일부지역에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해 1988년 광명시 노온사동에 노온사정수장을 설치했다. 김포정수장은 1979년에 서울특별시에 인수되어 신월정수장으로 이름을 바꾸어 2003년까지 가동하였고, 노온정수장은 2009년에 광명시에 인수되어 현재에도 운영 중이다. 앞서 언급한 노량진정수장과 신월정수장이 서울특별시로 이관되기 전에는 인천시는 서울특별시의 수돗물 공급의 일부를 책임지는 패기를 보였다.

하지만 위와 같은 역사에 걸맞지 않게 2019년 인천 붉은 수돗물 사태에서 인천광역시 상수도 운영, 관리의 후진성이 드러났다.(그러나 두달만에 인천 전역의 붉은 수돗물이 완전히 제거되고 소독까지 마치는 빠른 대응을 보였다. 더불어 각 피해지역에 생수를 수만톤 보급해주었다.)

16.2. 하수도

인천광역시 관할 각 하수처리장 준공일

하수처리장 건립이 서울에 비해 좀 늦은 편이다. 천만 인구에 달하는 서울의 생활 하수를 한강에 방류하는 것은 환경오염이 두드러지게 드러났던 반면 인천은 바다에 접해 있어 그 문제가 두드러지진 않았기 때문이다. 1992년 가좌하수처리장이 생기기 이전에는 인천의 모든 생활하수는 정화처리를 거치지 않은채로 그대로 바다에 방류되었다. 때문에 90년대까지만 해도 월미도 앞바다 바닷물은 그야말로 똥물이었고, 지금은 없어진 송도해수욕장의 수질도 매우 좋지 않았다. 이후로 1995년 승기하수처리장, 1999년 공촌하수처리장, 2008년 남항하수처리장(구 학익하수처리장)[71] 등 인천 곳곳에 하수처리장이 설치되었다. 2005년 만수하수처리장 신설로 기존 승기하수처리장 처리구역 일부가 그쪽으로 편입되었다.

부평구(십정동, 부평3동 제외)와 계양구(경인운하 이남)의 하수는 부천시 굴포천하수처리장[72]에서 위탁처리한다.

현재의 인천시 산하 각 하수처리장의 관할구역의 큰 틀은 인천시 생활하수 전량이 그대로 바다로 버려졌던 시절에 설정된 배수구역에 근간을 두고 있다.

17. 매체에서

울펜슈타인 2: 더 뉴 콜로서스에서 봉기가 발생한 적이 있다고 언급된다. 언급으로 봐선 바르샤바 봉기 급의 규모였던 모양이다.

18. 인천을 배경으로 한 작품

18.1. 영화

18.2. 드라마

18.3. 뮤직비디오

19. 자매결연도시 및 우호교류도시

19.1. 자매결연도시

19.2. 우호결연도시

20. 출신 인물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분류:인천광역시 출신 인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1. 인천광역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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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관련 문서


[1] 자치구 지역은 434.3㎢이며 부속도서를 제외한(옹진군, 강화군, 인천국제공항 등) 본토면적은 300㎢를 약간 넘긴다. 간척 사업으로 매년 면적이 확대. 최신 자료를 항상 추가바람.[2] 2019년 9월 주민등록인구통계 행정안전부 기준[3] 경기도 부천시안산시 일부 지역(대부동)도 사용.[4] 남한의 최북서단이다. 북한과 인접해 있다. 다만 기초지자체로서는 옹진군, 강화군이 접경지역으로 분류되나 인천 자체(광역지자체로서의 인천. 특히 자치구 지역)는 접경지역으로 분류되지는 않는다.[5] 당진, 서산, 태안은 연륙교가 없어 바다로만 경계를 이루고 있다.[6] 인천의 지명 중에도 (두루미 학)자가 들어간 지명이 많다.[7] 두루미는 현재 많이 사라져 인천광역시에서는 강화군에 10개체 정도만이 도래하고 있다. 문학동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 수로 끝나는 지명들의 유래는 대체로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들이 지명으로 학, 수 등의 한자를 선호해서라고 한다.[8] 클릭[9] 또한 앞에 말한 대구와 광주는 우리말 이름에서 한자어가 붙여진 것이지, 인천처럼 억지로 한자어에서 순우리말을 만든 것이 아니다. 어진내의 용례로는 서구에 기반을 둔 감자탕 체인점(...)과 한 때 추진하던 어진내 300리 물길투어 정도가 있다.[10] 현재의 지명 인천의 시초가 되었다. 그래서 SBS 드라마 '시티홀'에 나오는 인천을 모델로 한 가상의 도시 이름도 '인주시'다. 인주시의 특산물 중 하나는 밴댕이인데, 실제로 강화도의 특산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충청남도 아산시인주면이 있지만, 한자 표기가 비슷한 것을 빼면 서로 관련이 없다.[11] 바닷물을 끌어와 따뜻하게 데운 목욕탕.[12] 광복 이후 1962년[13] 광복 이후 1946년[14] 한 동안 역사 속에서만 남아있다가 2018년 7월부터 인천 남구의 새 이름이 미추홀구로 정해짐으로써 다시 명맥이 이어지고있다.[A] 영팔성, 구모로성, 각모로성, 간저리성, □□성, 각미성, 모로성, 미사성, □사조성, 아단성, 고리성, □리성, 잡진성, 오리성, 구모성, 고모야라성, 혈□□□□성, □이야라성, 전성, 어리성, □□성, 두노성, 비□□리성[B] 야리성, 태산한성, 소가성, 돈발성, □□□성, 루매성, 산나성, 나단성, 세성, 모루성, 우루성, 소회성, 연루성, 석지리성, 암문□성, 임성, □□□□□□□리성, 취추성, □발성, 고모루성, 윤노성, 관노성, 삼양성, 증□성, □□노성, 구천성[17] 백제를 말한다.[A] [B] [20] 김종택(1999). 고대국어 음절 말 자음의 음성 실현. 한글(245), 5-20[21] ≪국어 어휘 분화의 기제; mit계 어휘 분화의 구조도≫(난정 남 광우 박사 화갑 기념 논총, 일조각, 1980)[22] 현(縣)은 신라의 행정 구역으로 고구려 멸망 이후 설치되었다. (삼국사기 권제삼십칠 잡지 제6 지리4 고구려)[23] 邵城縣 本高句麗買召忽縣 景德王改名 今仁州[24] 삼국사기 권제삼십오 잡지 제4 지리2 신라[25] 一云慶原 買召一作彌鄒[26] 사실 이 날은 음력이다.이 날을 당시 양력인 율리우스력으로 고칠 경우 율리우스력 서기 1413년 11월 8일이고 오늘날 그레고리력으로 고칠 경우 여기에 9일을 더한 1413년 11월 17일이 된다.[27] 지하철을 이용해 서울 출퇴근이 가능한 부평구와 계양구를 선호하고 거주한다.[28] 미추홀구 도화동(도화서희스타힐스, e편한세상 도화)나 용현동(한국토지주택공사미추홀퍼스트)[29] 당시 정부직할 부산시. 1963년에 경상남도 부산시에서 직할시로 승격되었으나 공식 명칭은 '부산시'였다. 직할시 명칭은 1981년 대구, 인천의 직할시 승격과 함께 도입되었다.[30] 2019년 6월 : 2,957,024명, 2019년 7월 : 2,956,828명, 2019년 8월 : 2,956,525명, 2019년 9월 : 2,956,804명[31] 계양구는 3기 신도시인 계양신도시가 개발 예정이지만, 동구는 더 이상 개발할 땅이 없고, 부평구는 그나마 남은 구산동과 일신동이 군 관련구역이라 개발하기가 상당히 힘든 상황이다.[32] 광주는 103.5%, 부산은 102.6%, 대구는 101.6%, 대전은 102.2%, 울산은 106.9%[33] 방위상으로 봤을땐 인천의 동쪽이 아니지만 '동인천역' 상권을 중심으로 생활권이 형성되어 있어 '동인천'이라고 한다[34] 동인천과 남인천을 묶어 '원(原)인천'이라 하여 같은 생활권으로 보는 관점도 있으나 그 중에서도 원도심 지역을 따로 구분할 때에는 동구-중구 2개 구만 거론된다. 남인천 지역의 3개 구는 각 구의 거점(미추홀구의 주안-관교, 남동구의 구월동, 연수구의 선학동)을 중심으로 서로 연담화가 되어있고, 동인천 지역이 워낙에 쇠퇴해 버렸기 때문에 미추홀구의 숭의동과 용현동 지역을 제외하면 동구-중구와의 교류는 거의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수구의 송도국제도시는 독립된 생활권으로 따로 구분하기도 한다.[35] 강화군청은 광화문에서 약 55km 거리에 있다. 대략 포천시청, 양평군청과 비슷한 거리.[36] 뱃길로 군산까지 가는 거리와 비슷하다. 이것도 태안반도가 가운데를 정통으로 가로막고 있어서 크게 우회하는 걸 감안한 거리다. 인천연안여객터미널에서 백령도까지는 직선으로 174km, 군산항은 직선으로 163km.[37] 김포국제공항 바로 옆의 농지이다. 장기적으로는 개발계획이 있다.[38] 이건 이천이나 평택도 마찬가지..[39] 원래는 서울-인천 간 전화도 시외요금이 부과되었다. 정부가 서울 인접 위성도시 주민들의 서울전화(02) 편입 요구를 억제하고, 도시권 광역화의 현실을 반영하여 근교 주민들의 편익을 증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1구간(인접지역) 시외통화 요금을 시내통화 수준으로 책정한 것.[40] 특히 공항철도의 개통으로 인해 검암, 청라 등에서도 서울역까지 30분대에 진입이 가능해졌는데, 이는 평촌과 비슷한 수준이다.[41] 정부 행정 시설은 물론, 국립 문화 시설들도 울산광역시를 제외한 다른 광역시에는 하나씩 있어도 인천은 서울에 가야만 한다.[42] 인천은 위치를 보면 알겠지만 경기도 서쪽에 치우쳐 있으며 동쪽으로는 바로 서울과 접한다. 그 탓에 다른 경기도에서의 접근성도 상당히 떨어지며 이로 인한 심리적 거리감은 상당하다. 따라서 경기도도 전혀 대표하질 못한다.[43] 인천 전체를 놓고 보면, 동구가 서구보다 더 서쪽에 있는데, 서구는 과거 이 지역 지명인 "서곶"에서 유래한 것이다. 한편 북구는 199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일부 지역이 계양구로 분리되고, 남은 지역을 부평구로 명칭을 변경하면서 불일치 문제가 해소되었다.[44] 이 명칭이 확정되면 제물포역이 미추홀구에 위치하게 된다. 따라서 개명이 현실화되면 제물포역도 개명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하지만 부산진구의 사례를 보면 유야무야될 수도.[45] 동구,서구,남구,북구,중구[46] 광주:동구,서구,남구,북구 울산:동구,남구,북구,중구[47] 동구,서구,중구[48] 중구[49] 황해도 은율의 민속놀이인 은율탈춤도 지금은 인천에서 전수되는데, 은율출신 피난민들이 인천에 정착해서 그런 것이다.[50] 지역구마다 편중되어있는 편이라 관악구금천구는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호남 출신이다.[51] 이는 부평권의 경우 일부 맞을 수 있는데, 원인천권의 경우는 택도 없는 얘기.[52] 원래 동구미추홀구 일부 지역 치안을 담당하는 동부경찰서도 있었지만 2006년 남부경찰서가 새롭게 개서하면서 중부경찰서와 통폐합됐다.[53] 2006년 중부경찰서, 동부경찰서, 연수경찰서가 분할해 관리하던 지역 치안 업무를 맡기 위해 새로이 개서됐다. 2018년 남구 명칭 변경과 함께 개칭되었다.[54] 현재는 두산인프라코어로 바뀌었다.[55] 이러한 배경 때문에 1997년 KBL 창설 당시 대우증권 농구단의 연고지도 인천광역시로 낙점했다. 대우증권 농구단의 역사는 인천 전자랜드 엘리펀츠가 이어가는 중.[56] 현재는 이 시장 근방에 수도권 전철 수인선 숭의역이 있다.[57] 인천역 건너편 하인천파출소 뒤에 신승반점이 공화춘 주인의 손녀가 운영하는 식당이다.[58] 동인천역도원역 사이 배다리철교 건너편에 있다.[59] 석바위시장역 근처에 있다.[60] 예술회관역 근처에 있다.[61] 출발을 신포동에서 했기에 신포우리만두라는 상호가 붙었다. 현재도 신포국제시장 내에 본점이 있다. 그러나 희한하게도 본사와 공장은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으며 인천보다 전주시의 점포 밀집도가 더 높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신포우리만두 창업주가 전라북도 출신이라고 한다.[62] 동인천역 인근 우리은행 인천지점 뒤편과 신포 문화의 거리 광장(연말 크리스마스 트리 설치장소) 인근의 칼국수 골목에 이런 식당들이 있다. 여담으로 송림동 박문로터리에 있는 메밀우동 식당 '오목골'도 유명한데 여기는 메밀우동에 치킨튀김가루를 고명으로 얹어먹는다.[63] 외박 나와 이곳에서 냉면을 먹던 인천해역방어사령부 수병들의 목격담이다.[64] 물텀벙이라고도 한다.[65] 2018년 7월 8일, 15일 방송[66] 구월동 번화가와 예술회관 반대편에 있다. 구월동 상권과 거의 인접해 있어 남동구 구월동으로 오인할 수 있지만, 미추홀구 관교동으로 서로 다른 행정권 뿐 아니라 두 상권은 사실상 분리되어 있다.[67] 참고로 연경은 SBS런닝맨의 짜장로드, KBS 2TV슈퍼맨이 돌아왔다 등에도 소개된 것으로 나왔다.[68] 서울은 워낙 인구도 많고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 살기 때문에 돼지국밥집이 어느정도 있다.[69] 개신교 신자 비율 1위는 전북이고 천주교 신자 비율 1위는 서울이나, 개신교+천주교 신자 비율은 인천이 가장 높다.[70] 감리회, 장로회, 침례회, 성공회, 가톨릭, 정교회, 성결교회.[71] 돌려말하자면 2008년 상반기까지만 해도 중구 본토 일대와 남구 일부(용현동, 학익동, 숭의동)의 생활하수가 정화처리되지 않고 그대로 바다에 버려졌던 것이다.[72] 1995년 준공. 1999년에 부천시 산하가 됨.[73] 촬영지는 인천이 맞으나, 작중 배경은 부산이었다.[74] 정식 관계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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