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1-06 15:36:40

실미도(영화)

강우석 감독 장편 연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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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실미도 친절한 금자씨
파일:2003 실미도 로고.png (2003)
Silmi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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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밀리터리, 스릴러, 드라마, 시대극, 액션
감독 강우석
원작 백동호 - 소설 《실미도
각본 김희재
프로듀서 이민호
출연 설경구, 안성기, 허준호, 정재영
제작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시네마 서비스
배급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시네마 서비스
촬영 기간 2003년 3월 1일 ~ 2003년 10월 4일
개봉일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3년 12월 24일
상영 시간 135분 (2시간 15분)
총 관객 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1,081,000명 (최종)[1]
상영 등급 파일:영등위_15세이상_2021.svg 15세 이상 관람가
스트리밍 파일:넷플릭스 로고.svg | 파일:왓챠 로고.svg

1. 개요2. 예고편3. 시놉시스4. 등장인물5. 줄거리6. 평가7. 흥행8. 실제 사건과의 비교9. 여담10. 관련 문서11.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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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백동호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강우석 감독이 제작하여 2003년 12월 24일 개봉한 한국 영화.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이면서도 역사에서 지워지고 숨겨진 실미도 사건을 재구성하여 큰 주목을 받았다. 2004년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 감독상을 수상했다. 2004년 2월 19일, 역대 한국 개봉 영화 최초로 전국 1천만 관객을 기록한 영화라는 타이틀을 쥐게 되었다.

2. 예고편


3. 시놉시스

낙오자는 죽인다
체포되면 자폭하라

인간한계에 도전하는 지옥훈련… 31인의 살인병기 ‘실미도부대’ 탄생


“주석궁 침투, 김일성 목을 따 오는 것이 너희의 임무다!”

북으로 간 아버지 때문에 연좌제에 걸려 사회 어느 곳에서도 인간대접 받을 수 없었던 강인찬(설경구 분) 역시 어두운 과거와 함께 뒷골목을 전전하다가 살인미수로 수감된다. 그런 그 앞에 한 군인이 접근, ‘나라를 위해 칼을 잡을 수 있겠냐’는 엉뚱한 제안을 던지곤 그저 살인미수일 뿐인 그에게 사형을 언도하는데… 누군가에게 이끌려 사형장으로 향하던 인찬, 그러나 그가 도착한 곳은 인천 외딴 부둣가, 그곳엔 인찬 말고도 상필(정재영 분), 찬석(강성진 분), 원희(임원희 분), 근재(강신일 분) 등 시꺼먼 사내들이 잔뜩 모여 있었고 그렇게 1968년 대한민국 서부 외딴 섬 ‘실미도’에 기관원에 의해 강제차출된 31명이 모인다.

영문 모르고 머리를 깎고 군인이 된 31명의 훈련병들, 그들에게 나타난 예의 그 묘령의 군인은 바로 김재현 준위(안성기 분), 어리둥절한 그들에게 “주석궁에 침투, 김일성 목을 따 오는 것이 너희들의 임무다”는 한 마디를 시작으로 냉철한 조중사(허준호 분)의 인솔하에 31명 훈련병에 대한 혹독한 지옥훈련이 시작된다.

‘684 주석궁폭파부대’라 불리는 계급도 소속도 없는 훈련병과 그들의 감시와 훈련을 맡은 기간병들... “낙오자는 죽인다, 체포되면 자폭하라!”는 구호하에 실미도엔 인간은 없고 ‘김일성 모가지 따기’라는 분명한 목적만이 존재해간다...

4. 등장인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실미도(영화)/등장인물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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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줄거리

1968년 1월 21일 북한 민족보위부 124 부대 소속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 앞까지 침투했다가 실패한 '1.21 사태'가 일어나자 보복을 위해 박정희 정부중앙정보부대한민국 공군 산하 특수부대를 창설했다. 구성원은 사형수, 무기수, 일반 재소자들이 포함된 사회 밑바닥 계층인데, 이들에게 작전성공 시 모든 형벌 취소 및 전과 기록 말소, 군 복무를 원하면 소위 임관 등 정부로부터 새 삶을 보장받는 조건이었다.

1968년 4월에 창설하여 '684부대'[2]라 불렸던 이 부대는 김신조 부대와 똑같이 31명으로 구성되었으나 훈련도중 사고, 탈출, 처형 등으로 7명 사망, 결국 24명이 최후까지 살아 남는다. 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북파되어 주석궁에 침투해 '김일성의 목을 따오는 것'이었다.

인간의 한계에 도전하는 지옥훈련을 통해 이들은 단 3개월만에 북파 가능한 인간병기가 되었다.[3] 부대가 창설된 지 4개월만에 첫번째 실전명령이 떨어져 바닷길로 북에 침투를 시도하지만 상부의 저지로 중도무산된다. 이후 3년 4개월간 '출정의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그들의 긴긴 기다림은 시작된다.

그 사이 남북한의 상황은 처음 실미도 부대를 창설할 때와는 전혀 다르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남북 화해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하고 중앙정보부장교체되는 등 급격한 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구 시대의 유물'이자 '유령부대'가 되어버린 실미도 684부대. 교육대장이 '차라리 월남에라도 파병해달라. 저들의 전력이라면 충분히 공을 세우고도 남는다.'라고 건의했지만 비밀을 유지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거절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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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실미도.png
훈련병들이 식사하는 모습

점점 684 부대가 푸대접을 받는 게 영화가 진행될수록 드러난다. 특수부대원들이 실미도에 갓 들어왔을 때의 식단은 흰 쌀밥과, 삶은 백숙 한 마리씩과, 소불고기, 생선튀김, 열무김치, 상추, 채소절임 등이 고봉으로 듬뿍 제공되는 등 영양학적으로 균형 잡히고 풍성한 식단으로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고기를 자주 먹지 못했던 당대에는 대단히 화려한 식사였다. 거기다 정량배식이 아닌 자율배식이기까지.[4]
파일:실미도2.png
반면 기간병들의 식단은 나물, 짠지, 보리밥, 똥국이 전부다.
파일:실미도밥.jpg
이후 훈련병들의 식사

그러나 남북 화해 무드가 조성된 이후부터는 대원들에게 보리밥똥국, 감자 쪼가리, 양념도 없는 김치가 전부인 열악한 배식이 되었고, 그마저도 양이 현저히 줄어 상필이 찬석에게 짜증을 내며 "밥을 더 퍼달라."고 할 정도였다. 시나리오에서도 처음 10개월에 비해서 684 부대에 대한 보급이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너무 차이가 난다는 박 중사의 대사가 있으며, 작중에서도 교육대장인 최재헌 준위가 "684 부대원들에 대한 대우는 재소자만도 못하다"고 공군본부 관계자에게 항의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실제로는 교육대장이 다 빼돌렸다.

군기도 마찬가지로 중반부 작전 취소 전까지는 훈련 중에도 대단히 매섭고 전형적인 특수부대의 모습을 띄지만, 작전 취소 후 하염없이 기약없는 출정을 기다리는 동안에는 그저 부대 잡일을 하며 점점 말년병장처럼 늘어지는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다. 결국 대원 2명이 탈영을 해서 민간인 여교사를 강간하는 범죄를 저지르다가 포위되어 1명은 자살하고 다른 1명은 자살에 실패하여 체포되었다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다른 대원에게 살해당하는 일까지 터졌다.

결국 사태가 악화되자 그들을 제거하라는 상부의 명령이 떨어진다. 그러나 인간병기로 길들여진 실미도 특수부대원들이 정보를 입수하고 선제 공격을 가해 담당 기간병들은 속수무책으로 전멸당한다. 이들은 단 십여분 만에 실미도를 장악한다. 극중 훈련 장면에서 이런 전투력의 차이를 계속 보여줬고 기습공격까지 했으니 개연성이 충분한 장면이다.[5]

그리고, 탈출 과정에서도 얼추 백 미터 이상 떨어져 보이는 해안경계 초병을 구보하며 한 방에 헤드샷 날렸다. 애초부터 이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투입된 이들도 공군에서 고르고 고른 특수부대 출신들임을 감안하면 더 무섭다. 또 실미도 대원들은 북으로의 침투를 대비해 자동소총인 AKMS사용법을 숙지해 두었고, 봉기시에도 그것을 사용했기에 반자동소총인 M1 카빈을 든 기간병을 쉽게 제압했다.

특수부대원들은 인천으로 상륙, 송도 외곽에서 시외버스를 탈취, 청와대로 향한다.[6] 이 사건은 라디오에서 공비의 공격으로 보도되며 특수부대원들까지 듣게 된다.[7] 전군에 비상경계령이 발동된 가운데 이들은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자신들을 포위한 대한민국 육군 보병, 경찰기동대특전사 병력들과 교전을 벌이고[8] 일부는 사망하고 대부분 부상을 당한다. 그렇게 죽음이 다가왔음을 알게 된 그들은 민간인들을 버스에서 내리게 한 뒤, 한상필의 제안으로 자신의 손목에 칼을 그으면서 그 피로 차내 곳곳에 혈서주민등록번호와 이름 등 자신들의 마지막 흔적들을 세상에 남기고[9] 서로 수류탄을 던져가며 전원 자폭이라는 최후를 선택한다.

조돈일은 부대원들이 무장공비가 아니라고 끝까지 믿고 그들이 있는 곳으로 향해 차에서 내렸지만, 전원 자폭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고 이 사건은 무장공비들의 사건으로 언론에 보도된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이 사건의 진실이 잊혀지며 영화는 끝이 난다.

6.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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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8.1 / 10



7. 흥행

역대 대한민국 1000만 관객 영화
실미도
(2003, 11,081,000명)
태극기 휘날리며
(2004, 11,746,135명 )
2003년 국산 1위 흥행 영화
2002년
가문의 영광
2003년
실미도
2004년
태극기 휘날리며

8. 실제 사건과의 비교

영화는 실미도 사건을 모티브로 하여 제작되었고, 실제 사건과는 대략적인 전개는 비슷하지만 각색이 심하게 되어있어서 세부적인 면은 실제 사실과는 많이 어긋나기 때문에 이 점을 유의해서 봐야한다.

비록 영화 트레일러에 '실제 실미도 684부대 사건과는 무관합니다.'라고 대놓고 적혀있는데도 불구하고, 적어도 사건이 왜곡 수준으로 지나치게 바뀌고 심지어 원작이 되었던 소설 '실미도'의 내용들 마저 상당히 왜곡 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거의없다는 천만 관객 영화 부관참시 프로젝트에서 "실미도 사태가 비극적이라는 것을 알리는 척 하면서 사건들을 왜곡 시켜서라도 관객들을 억지로 울리며 감성팔이 하는 영화."라고 깠다. 특히 영화 감독이 강우석이라는 사실은.....그래서 실미도 사건 유가족들과 생존 기간병들은 영화에서 사실을 완전히 왜곡시켰다면서 치를 떨었고, 지금도 영화 이야기만 나오면 손사래를 치는 지경이다.[10]
  • 부대원들의 출신 성분
    '범죄자'나 '밑바닥 인생'을[11] 주로 포섭한 것으로 나오지만 이런 식의 '범죄자들로 이루어진 부대'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극적인 효과를 위한 영화적 장치일 뿐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가 되었던 고증오류. 실제 북파공작원으로 모았던 사람들은 대부분 평범한 청년들이었다. 시골의 순박한 청년들도 있었고[12], 운동선수나 서커스단 단원, 운전기사 등의 특이한 이력을 가진 인원도 있었다고 한다. 백동호가 집필한 원작 소설에서는 가정을 부양하던 성실한 노동부도 있었다.[13] 적지에 침투한 후 일어날 수 있는 여러가지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실제 부대원들이 버스를 탈취해 서울을 향해 가던 중 버스기사가 도망치자 버스운전 경험이 있던 부대원이 대신 운전하였던 것으로 미루어봐도 임기응변을 위해 여러 방면의 이력이 있는 인원을 소집한 것은 설득력이 있다. 이 때문에 부대원을 범죄자 출신으로 묘사하였다고 해서 유족들의 항의를 받기도 하였다.[14][15] 물론 진짜 전과자 출신도 존재하긴 했다. 다만 영화에 나온 것처럼 살인 등의 중죄인이나 건달이 아니라, 임기응변에 능하고 손재주가 좋은 소매치기 등이 선호되었다고.
    이후 모집이 원활히 이뤄지지 않자 중앙정보부에서는 실제 전국 교도소에서 무기수, 사형수 차출을 고려했다. 그런데 법무부에서 수감자들은 나중에 죽으면 반드시 시신을 유족에게 돌려줘야 하기 때문에, 시신을 수습하기 어려운 북파 임무에 보낼 수 없다고 극력 반대하여 무산되었다고 한다.
    영화와 같은 인력 선발은 오히려 당시 비슷한 목적으로 편성된 다른 부대에서 찾아볼 수 있다. 1.21사태 이후 창설된 보복부대(공군 산하 실미도 부대, 해군 산하 장봉도 부대, 육군 산하 선갑도 부대) 중에서 육군 선갑도 부대는 실제로 안양교도소에서 차출된 인원으로 부대원들을 구성했다. 물론 김일성 사살 계획이 유야무야되었다고 이들이 살해당하는 일은 없었고, 해체 이후 부대원들은 다시 교도소로 돌아갔다.[16] 그렇지만, 졸지에 생겨버린 '대한민국 공군이 형벌부대 운영한다'란 착각은 지워지기 힘들어졌다.
  • 부대원 선발
    영화에서는 교육대장(안성기)이 직접 교도소를 찾아다니며 대원들을 스카웃하는 장면을 보여주지만, 실제로는 공군 모병관이 신체능력이 우수한 자원을 물색하여 입대를 설득, 유도했다.[17] 다만 이들은 공군 소속임을 드러내지 않고 중앙정보부 패찰을 들고 다니며 중정 요원으로 행세했다. 당시에는 중앙정보부의 위세가 대단했기 때문에, 이래야 협조를 받기 쉬웠기 때문이다.
  • 입대 사유
    영화에서는 재소자나 사형수를 주로 소집하였기 때문에 사면(赦免)을 목적으로 입대한 것으로 묘사하지만, 실제 부대원들은 재소자가 아니었으므로 입대사유 또한 제각각이었다. 무엇보다 모병관들은 파격적인 혜택을 제시했다고 한다. 일단 매달 거액의 봉급[18]을 주고 장교 후보생에 준하는 대우를 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임무에 성공하고 돌아오면 살 집과 거액의 성공보수를 지급하며, 원할 경우 장교로 임관하든가 미군 부대에 취직시켜주겠다고 했다. 부대원들은 이러한 혜택과 남자로써의 공명심(功名心) 등에 끌려 입대한 것으로 밝혀졌다.
  • 교육대장 외 2명의 중사 교관
    교관은 공군 자체의 특수전 이수자로 미국령 오키나와의 미군기지에서 특수정보수집 및 정글전 훈련까지 이수한 정보 특기자들이었다. 실제 계급은 부사관이었지만 실미도에 부임할 때는 공군 소위계급으로 임관 하였으며 작전이 성공할 경우 정식 임관할 예정이었다.
  • 사용 장비
    영화에서는 AK-47 소총 등을 사용한 것으로 묘사되지만,[19] M1 카빈, M3 기관단총, PPS-43 기관단총 등을 사용하였으며 1일 500발의 실탄 사격을 하였다. 후에 뉴스에서 실미도 영화에서 사용된 AK47은 소품이 아닌 진짜 총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또한 장구류 역시 AK 소총으로 무장했음에도 불구하고 M1 카빈용 탄입대를 차고 있는 오류가 있다.
  • 훈련 도중 인원 손실
    영화에서는 구름다리 훈련 도중 1명이 사망, 그리고 1명이 부상당하여 급양병으로 보직 변경하는 걸로 나오지만, 실제 외줄다리 훈련 중 사고를 당한 2명은 모두 부상만 당했으며, 작업병 등으로 부대에 남았다. 수영훈련 중 1명이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이 유일한 훈련 중 사망자로 알려져 있다.[20] 그런데,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역시 실질적인 가혹행위에 의한 사망이었다고 한다. 당시 부대원들은 완전군장을 하고 수영훈련을 하고 있었는데, 이중 1명이 너무 힘에 겨워 꺼내달라고 애원했지만 교관들은 이를 외면했다고 한다. 결국 이 부대원은 탈진해 익사하고 만다.
  • 즉결처형자의 수
    영화와 비슷한 방식의 즉결처형이 이루어졌다고 한다. 다만 인원 수와 처형 내용 등은 차이가 있다. 생존자의 증언으로는 익사 1명, 즉결처형 6명으로 알려저 있으나, 국방부 공식 문서에는 익사 2명, 도주 중 체포돼 즉결처분 2명, 자살 3명이라고 기록돼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여기서 도주 중 체포된 부대원 2명은, 부대 창설 후 2개월여 뒤에 실미도 옆 무의도로 사역을 나갔다가 복귀하지 않고 민가에 숨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발각되어 끌려왔으며, 명령에 의해 다른 부대원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 죽고 만다.
  • 출동
    영화에서는 (사망, 부상당한 인원을 제외한)부대원 전체가 배를 타고 침투하던 도중 갑작스럽게 작전[21] 중지 명령을 하달받는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부대원 중 최정예 9명을 선발하여 비행정을 이용해 침투할 계획이었고 작전 중지 명령이 내려진 건 출발 직전이었다.
  • 작전 취소 이유
    영화에서는 7.4 남북 공동 성명중앙정보부장의 교체 등 남북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었다는 것을 이유로 언급하지만, 미국의 인가 없는 작전 실행에 대한 염려 때문이라는 음모론도 있다.[22][23]
  • 교관과의 관계
    영화상에는 2명의 교관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나오지만, 실제로는 자원해서 남기로 한 김방일 소대장 외에 특수전 교육을 받은 교관은 모두 전출되고 부대 성격과 무관한 일반 하사관들이 부임하였다. 즉, 영화상의 기간병들과 훈련병들의 관계는 모두 영화적 상상에 의한 허구다. 다만 섬 안에 숨어 생존한 기간병의 증언에 따르면, 사건 당시 훈련병들이 섬을 철저히 수색했다면 충분히 섬 안에 숨은 기간병 전부를 사살할 수 있었으나 훈련병들과 기간병 사이엔 개인적 감정이 없었기에 일부러 섬을 수색하지 않고 실미도를 빠져나갔다고 한다.
  • 조 중사의 육지 방문
    영화에서는 부대 해체를 중지해달라는 청원을 이유[24]로 공군본부에 출장을 간 걸로 나와 있지만, 실제로 조 중사의 모델이 된 김방일 소대장은 인천으로 부상당한 어민의 문병을 갔다 돌아오는 길에 약혼자의 친척들을 만나기 위해 하루 늦게 복귀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김방일 소대장이 뭍에 나가있는 날을 골라서 부대원들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이는 김방일 소대장이 부대원들 사이에서 명망이 높고 존경받았었음을 보여준다.
  • 교육대장의 인성과 사망 경위
    영화에서는 교육대장(안성기)이 성실하고 임무에 충실한 군인이고, 의연하게 권총 자살하는 것으로 묘사되었으나, 실제로는 각종 비리를 저지르던 악질 군인이었다고 한다.# 당시 요즘 가치로 따지면 월 1억원 정도의 부대 운영비(월급, 식비 등)가 배정되었는데, 부대원에게 지급되어야할 월급은 단 3개월만 소액 지급되고 중지되었으며, 식사도 고기반찬은 커녕 매우 형편없었다. 교육대장은 이중장부를 만들어 제대로 운영비가 쓰인 것처럼 위장하고, 실제로는 본인이 거액을 착복했다. 이로 인해 기간병 및 훈련병들에게 상당한 원성을 샀다. 그래서 앙심을 품은 훈련병 2명이 망치로 머리를 가격해 살해했다. 극적 연출을 위해 자살이라는 묘사를 한 것이겠지만, 현역 군인에게는 자살도 심각한 불명예이기 때문에 유가족들이 영화사를 고소하기도 했다. 다만 작전이 취소되고 부대가 방치될 당시에 훈련병들을 임관시키는 것이 어떻냐고 상부에 건의했다는 증언이 있다. 이를 보면 최소한의 인간성은 어느 정도 남아있었을지도 모른다.
  • 버스 탈취 후 행적
    영화에서는 버스 탈취 후 바리케이드를 세운 진압군과 한차례 교전 후 서울로 향하지만 당시 실제 684부대원이 탈취한 버스에 타고 있었던 고 우문국 화백의 증언(기사)에 따르면 버스 탈취 후 석바위에서 버스가 펑크나자 뒤에 오는 다른 버스를 탈취하여 탑승하였으며, 탑승하자마자 진압군이 사격을 가했다고 한다. 이후 차내에서도 어디로 향할 것인지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 또한, 영화에서는 버스에 타고 있던 민간인들을 내보내고 자폭하지만, 실제로는 그냥 다 같이 자폭했다.[25] 때문에 출근하던 시민들이 하루아침에 저세상으로 동행하고 말았다. 영화와 달리 당시 탈취한 버스를 운전하던 버스 기사도 생존했으며, 훗날 증언으로는 군경의 눈에 띄기 위해 서울로 가는 길을 경인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를 따라 가고[26] 자잘한 법규위반을 하는 등 경찰의 관심을 끌고자 노력했지만 인천을 벗어나 서울로 올라가는 동안 검문은 커녕 군경과 조우도 못했다고 한다.
  • 버스 자폭 이후의 부대원 근황
    영화에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지만[27], 실제로는 6명이 살아있었다. 6명 모두 중상을 입은 상태였는데, 그 중 상태가 심각했던 2명은 후송 도중 사망했고 최종적으로 4명이 살아남았고, 그 4명도 결국 군사재판에서 1, 2심 모두 사형을 선고받고 1972년 3월 10일 사형이 집행되었다. 안타깝게도 시신마저 불법 암매장으로 처리되어, 현재까지도 그들이 어디 묻혔는지는 알 길이 없다고 한다.
  • 부대원 2명 탈출 후 강간
    실제 사건 당시 탈출한 인원은 생존자 증언으로는 3명, 국방부 공식 문건에는 4명이었다. 실제 피해자는 보건 교사가 아니라 마을 처녀 2명이었다. 2명은 각각 당시 20세, 17세의 자매였으며 지금은 가정을 꾸리고 정상적으로 살고 있다고 한다. 영화에선 안 나오나, 시나리오상 이 사건 이후 부대원들의 불만을 잠재우고자 기밀 엄수 지시를 내린 뒤 육지 집창촌에 순번제로 보내주기도 했다고 한다. 이때 대원 몇몇이 자신을 상대한 창녀에게 쪽지를 건네거나 몸에 글자를 쓰는 식으로 가족 등에게 자신들의 상황을 전하려 했으나, 대원들이 나간 뒤 공군 헌병들이 들어와 이것들을 전부 압수하고 지워버렸다.
  • 부대 상징물의 위치
    인골(人骨)로 장식한 '우리의 신조'는 영화에서는 교육대장(안성기)의 사무실 벽에 있지만 실제로는 체력단련장 옆에 있었다. 유골은 담력훈련 및 성병 치료용 민간요법(...)을 위해 인천중국인 무덤[28]을 파헤쳐 확보한 것이며, 나머지 유골은 갈아서 민간요법으로 나눠먹었다고.
  • 기타 옥에 티
    • 초반에 간부인적사항표나 부대원들이 자폭 직전 자신들의 주민번호를 남기는 장면에서 생년월일순(YYMMDD)의 현대식 주민번호가[29] 나오는데, 이는 1975년 주민등록법(법령 2777호)의 개정으로 13자리로 바뀌면서부터 도입된 양식이다. 당시 주민번호는 지역번호가 앞에 있는 12자리였다.
    • 작중 군인들이 짬밥을 담아먹는 갈색 식판은 1980년대 이후 등장한 1식 3찬용 식판이다. 1970년대 당시에는 초록색의 1식 2찬용 식판을 사용했다.

9. 여담

  • 허준호는 영화 실미도에 2번이나 캐스팅 되었다. 2000년 김호선 감독이 제작한다고 했을 때 출연 제의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역할을 선택할 수 있었는데, 부대원이 주인공인 영화이지만 명령대로 따른 교관들을 대변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조 중사 역을 선택했다고 한다.
  • 영화 내용이 주로 북파부대원들의 훈련내용인 만큼 체력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었는데, 출연자 모두 많은 운동으로 준비를 단단히 했다고 한다. 특히, 출연자들중 가장 고령인 안성기는 영화 출연제의를 받을 때부터[30] 꾸준히 운동을 했는데 이미 그는 이전부터 근육질을 꾸준히 유지했었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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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제작발표회 당시 영화 성공기원 고사를 겸해 실미도 부대원 추모제를 지내기도 했다. 영화 완성된 후에도 영화 완성을 기념해 실미도를 찾아 위령제를 지냈다. 이때는 바람이 너무 강해 배가 섬에 들어갈 수 없어 섬이 보이는 곳에서 지냈다고.
  • 영화의 주 무대가 되는 '실미도 부대' 세트장은 제작비 10억 원을 들여 완공했다. 섬에서 섬에 위치한 산으로 촬영장비를 옮기는데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CH-47 헬리콥터를 이용하였다고 하는데 사실은 삼성항공에서 구입하여 운용중이었던 Mi-26이었다. 이건 실미도 DVD의 스페셜 에디션 DVD를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링크. 애당초 CH-47이 세계최대의 헬기일 리가 없다. 물론 영화 관련 언론에서는 전부 시누크라고 베껴 표기하였다.
    하지만..... 촬영이 완료되자 무허가 건물임을 이유로 관광지 가능성을 무시하고 모두 철거해버렸다. 만약 무인도라는 이유로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놔두었다면 지금쯤 엄청난 관광명소가 되었을 것이다. 영화는 한국 영화 최초로 천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실미도에 엄청난 관광객이 몰려왔으나 세트장이 죄다 철거되어 뭐 볼 게 있어야지... 지금은 촬영장이었음을 알리는 안내판만 남아 있다. 이 일로 인해 인천 지역 관광수입 증대에 타격을 주었다는 이유로 인천시 중구 부구청장이 직위해제되기도 하였다. 뭐 어느 영화/드라마 촬영지나 딱 1~2년만 지나면 흉물로 방치되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겨울연가 처럼 방영 후 몇 년이 지나도 일본인들이 계속 찾아오는 로또급 관광명소도 있긴 하지만.
  • 버스 탈취 장면에 사용된 버스는 영화 스피드에 사용된 것과 같은 계열인 1966 GM TDH 5303 모델을 기반으로 각각 2억 원을 들여서 2대를 특수제작하였다. 또, 버스운전사 역 연기자는 영화의 무술감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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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 중사의 갑작스런 인간성 변화는 감독의 의도였다고 한다. 다만, 감독 스스로도 이것을 관객이 이해해줄지 의문이었는데 감독의 딸이 인상 깊게 보았다고 평하자 그대로 간 것이라고 한다. 또 박 중사가 최초로 폭력을 쓰는 장면에서 폭행당하는 조교 역할은 실제 박 중사(이정헌)의 대학 후배였다고 한다.
  • 교육대장(안성기)의 시계가 시대배경과 다르게 루미녹스인 점이 옥에 티.
파일:실미도훈련.jpg
  • 위의 장면을 찍을 때 스텝들이 가짜 폭탄이라 전혀 뜨겁지 않을 거라고 배우들을 안심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현시창 배우들은 전원 상의탈의 상태였기에 폭탄이 터지자마자 앗 뜨거!를 외치며 달려나갔으며(...), 눈밭에 구르는 장면도 사실 없었는데 등을 식히려고 다들 굴렀다고(...) 그리고 그 결과 다들 등짝이 까져서 피를 봤다고 한다. 뉴질랜드의 저 눈밭은 갓 쌓인 부드러운 눈이 아니라 오랫동안 쌓여서 얼고 서릿발이 날카롭게 진 눈이었기 때문. 여러모로 배우들의 고생이 상당한 영화였다.
  • 명대사로는 "날 쏘고 가라."[33]"비겁한 변명입니다!"[34]가 있다. 마이너 하지만 내가 왜 이름이 없어?! 나 한상필이야~!!도 꽤 유명하다.[35] 촬영 전에는 부대원들의 대사를 북한 사투리(서북 방언)로 하려고 했지만 취소되었다.
  • 역대 한국 개봉 영화 최초로 전국 1천만 관객을 넘긴 영화다. 최종 관객 집계는 전국 1108만 관객으로 2019년 기준 역대 흥행 21위이자 한국 영화론 18위이다.[36] 또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자 전국에 실미도 바람이 불어 실제 실미도 사건에 관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 당시 영화 관람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었던 중년 남성들을 극장으로 향하게 만들어 화제가 됐다. 2004년 1월 문화일보 기사. 당시 극장에서는 40~50대 중년 남성 관객들이 숨 죽인 채 몰래 폭풍 눈물을 흘리는 진풍경을 쉽게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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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홍보 간판[37]
  • 영화 촬영에 사용된 소품용 총기가 밀반입된 실제 총기로 밝혀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소품용 총기는 공포탄만 발사되고 실탄은 발사할 수 없도록 총구에 초크라는 부품을 영구적으로 고정해서 총구를 좁혀야 하는데, 해당 총기들은 초크가 빠질 수 있는 상태여서 관련 법에 걸린 것. #
  • 조용필이 부른 테마곡인 '태양의 눈'도 좋은 노래다.[38] 다만 가수가 무려 조용필인지라 실미도라는 사건에 맞게 매우 장중하면서도 빠와가 넘치는 노래인지라 고음부가 꽤 많다. 이 때문에 해당분야에서 전설로 평가되는 중학교 동창들이 한 영화에 관계되는 희소성이 생겼다. 영화의 등장인물인 안성기와 조용필이 중학교 동창이기 때문이다.
  • 북한 군가인 적기가를 부르는 장면이 등장한다. 북한 군가라지만 1880년대에 영국 노동가요에서 출발, 1920년대 일본 사회주의자들을 거쳐 조선인 사회주의자들에게 퍼진 꽤나 유서깊은 노래이기도 하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남한 운동권 학생들에게서도 제법 불려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당시 가사는 북한 군가와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감독의 말에 의하면 원래는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하려고 했으나 많이 순화해서 적기가로 바꾼 것이라고... 하도 문제가 되자 당시 교관의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가르친적은 있지만 적기가를 가르친적은 없다"는 언론 인터뷰가 나왔다. 만약 고증에만 충실해서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불렀다면 영화가 정상적으로 상영이 되었을지 의문. 이후 강우석 감독은 684부대원 유족들에게 사자명예훼손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고발조치 당했지만 고인들을 이적세력으로 표현하려는 의도가 없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되었다.
    MBC에서 방영했을 때에는 적기가를 무음처리하여 방영했다. 실제로 북파되면 북한군으로 위장하기 위해 북한군의 군가를 배웠다. 또한 제식훈련도 국군식과 북한식 2가지를 함께 배웠다. 이 장면이 문제가 되어 부대원들이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것으로 묘사했다고 유가족에게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39] 하지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기각, 패소했다. 판결문 대법원 판결문



  • OST 중 작곡가 이지수가 만든 1968년 1월 21일이 한스 짐머가 작곡한 영화 The Rock의 OST 중 하나인 The Chase란 곡의 일부분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40] 다만 영화 OST, 특히 BGM에 관심 없는 사람들이 많은지 그냥 묻혔다(...)
  • 2017년 8월 24일, 46년만에 실미도 부대원들의 합동 영안식을 하였다. 실미도 부대원들 20여명의 유해와 유해를 찾지 못한 4명 중 2명의 위패가 봉안소에 안치되었다. 총살자들의 경우 공군에서 유해 위치를 아직까지도 비공개로 하고 있고, 각종 소송와 진상규명단의 요구에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 11년 후 개봉한 영화 나의 독재자와 비교되기도 한다. 비슷한 시기 전혀 다른 시각으로 남북관계를 바라본 영화[41]라고 볼 수 있다. 김일성 모가지를 따는데 실패한 북파공작원은 스스로 김일성이 되었다. 설경구는 두 영화에서 모두 국가로부터 버려진다.
  • 지금도 가끔 영화채널에서 방영되고 있으며 씨X같은 심한 수준의 쌍욕에는 무음처리가 이루어 졌으며[42] 잔혹한 총상에도 모자이크 편집이 이루어졌다.
  • 2009년에는 개그콘서트에서 영화의 플롯을 따온 실미도 학원이라는 코너가 방송됐다. 5화만에 묻혔는데, 고인드립으로 여겨져서였는지, 노잼이어서였는지는 진실은 저 너머에...
  • Why? 갯벌 편에서 대사로 이 영화가 언급된다.[43]
  • 4번 문단에서 보듯 실제 사건에 대한 고증은 원작 소설 까지 왜곡할 정도로 개판이라고 봐도 무관할 지경이지만 그래도 그 당시 2003년도 영화라 현재에 비하면 영화적으로만 보면 굉장한 수작이다. 괜히 천만 관객을 동원한 것이 아니다.[44]
  • 일례로 상술한 박 중사의 인간성 변화와 그에 대비되는 조 중사의 태도 변화는 군대조직의 특수성을 이해하고 있다면 굉장히 잘 짜여진 영화적 장치임을 알 수 있다.
  • 조 중사는 684 부대원들을 군인으로서 대했기에 초반의 난폭한 행동들이 오히려 그들을 진심으로 부하들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실제로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버스를 탈취한 부대원들을 무장 공비라고 규정하며 살벌하게 대치하고 있는 군인들에게 거리낌 없이 내 부하들이라며 설득하게 해달라고 사정하다 끌려갈만큼 부대원들을 사랑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 반대로 박 중사는 684 부대원들을 그저 시대적 상황에 휘말린 불쌍한 범죄자들 정도로 생각했기에 초반엔 그들을 동정하지만 막상 그들과 자기의 목숨을 저울질하는 상황이 되자 누구보다 가차없이 684 부대원들을 죽이려 든다. 더 나아가 만약 박 중사가 크리스천이라는 설정이 단순 고증 때문이 아니라고 한다면, 박 중사는 그 자체로 일부 이중적인 종교인들의 행태를 고발하는 캐릭터로 볼 수도 있다. 물론 영화상으로 그가 크리스천임을 강조하는 장면은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45] 확대해석에 지나지 않겠지만.

10. 관련 문서

11. 둘러보기

대한민국 천만 관객 돌파 영화
- 실미도
(2003)
태극기 휘날리며
(2004)


[1] 한국 영화 최초 천만영화[2] 1968년 4월 창설되어 684 부대로 칭하게 되었으나, 정식 창설은 7월 7일이다. 김일성 암살이라는 막중한 임무가 목적인 만큼, 행운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행운의 숫자 7이 겹치는 7월 7일에 다시 정식 창설한 것.[3] 그래서 기간병들이 훈련병과 달리기에서 밀리는 장면도 나온다. 복선이라면 복선이라고 볼 수 있는데, 684부대 대원들이 기간병들을 체력 및 전투 능력에서 월등하게 앞섰다는 것은 이들이 다른 마음을 먹었을 때 막을 수 없다는 뜻이 된다.[4] 사실 이 정도면 2022년 병영식 기준으로도 상당한 고퀄리티이다.[5] 예를 들어 훈련 초반의 구보 장면은 기간병들이 앞서 뛰어가고 특수부대원들은 기진맥진하면서 제대로 뛰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중반 이후에는 아예 완전군장에 총기까지 휴대하고 뛰는 특수부대원들을 T셔츠 차림의 기간병들이 간신히 쫓아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특수부대원들이 직접 훈련시켰는데도 패배한 것이다. 게다가 중반부 작전이 취소된 후에 사격 훈련을 하는데 권총으로 대충 쏘는데도 머리, 가슴, 거시기(...)를 백발백중으로 맞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6] 이 장면에서 특수부대원들은 자신들이 죽인 기간병의 전투복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7] 다만 사건 종료 후 신문기사에는 "무장한 군 특수범죄자들"이 저질렀다는 식으로 보도되었는데, 실제 역사에서는 신민당 국회의원이었던 육사 7기 전 예비역 육군 준장 이세규 장군이 부대원들의 정체가 정부 발표처럼 ‘군 특수범’이 아니라 공군 산하의 북파특공대였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 사실을 폭로한 이세규 의원은 유신 정권 이후 남산에 끌려가서 심한 고문을 받았다.[8] 이 때 진압병력이 인질들이 차 안에 있는데도 발포하는데 (도중에 버스기사가 총알에 맞아 사망한다), 군사정권인 당시야 묻혔겠지만 현재는 총격전은 커녕 총알 한 방만 잘못 쏴도 방아쇠를 당긴 병사부터 현장 지휘관, 소속 부대 고위 간부들은 물론 국방부 고위 관료들까지 전원 바로 언론에 작살난다.[9] 처음에는 스스로를 일컬어 "무장공비"라는 자조적인 개드립을 쓰며 시시덕거리지만, 점점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면서 흐느끼는 모습을 보인다.[10]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시즌2 실미도 편에 출연한 당시 생존 기간병은 제작진이 영화 이야기를 꺼내기가 무섭게 "영화 이야기 하지 마세요"라고 못을 박았다. 또한 그것이 알고 싶다 2004년 2월 7일 방영분에서도 영화를 실제로 관람하고 왔다는 실미도 훈련병 유가족이 영화관에서 "이 영화가 실제가 아니다, 이들은 흉악범이 아니다"라고 일어서서 소리칠 뻔 했다며 울분을 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영화로 인해 실미도 사건과 북파공작원에 대한 일을 전국민이 알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11] 오라는 곳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갈 데가 있는 것도 아니고...하는 대사는 부대원들이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한 인생'을 살아왔음을 암시한다.[12] 충청북도 옥천군의 한 마을 청년 7명이 설득되어 소집된 것으로 밝혀젔다. 입대 사실을 비밀로 해서, 모두 행방불명 상태였다고...[13] 하지만 몸을 다쳐 노동을 할 수 없게 되자 피를 팔아 가족을 먹여 살리게 됐는데 하도 자주 헌혈하다보니 묽은 피만 나와서 더 받아주지 않는 신세가 됐다가 돈도 많이 주고 고기반찬도 준다는 실미도 부대에 대한 정보를 접하고 입대하게 된다.[14] 특히 강인찬의 실제 모티브가 된 분은 폐기된 이전 시나리오에서 처럼 애인이 있고 외모가 정말 흡사하며 깡패들과의 싸움을 눈여겨 본 중앙정보부 요원의 눈에 들어 입대했다.[15] 이 점에서 실미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거의없다는 "나머지 대원들도 진짜 전과자 출신인 강인찬 처럼 다 똑같이 설정을 짜야 캐릭터성을 부여하기가 쉽기 때문에."라는 추측을 했다, 물론 정확한 사실은 아니고 이와 관한 판단은 사람들 마다의 자유다.[16]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관련 기사에 따르면, 일부 생존자의 증언과 엇갈리긴 하지만 당시 부대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선갑도부대의 경우 비록 목표 달성은 하지 못했지만 부대해체 직후 당초의 약속대로 부대원들을 사면해주고 보상금까지 1인당 당시 화폐가치로 150만 원을 지급했다고. 상급조직의 무관심 아래 실미도 부대의 운영과 유지 등에서 무리수가 불거지다 결국 폭발한 것이 실미도 사건임을 생각한다면, 실미도 부대에도 이렇게 유연한 조치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지 않을 수가 없는 대목이다. 다만 애초에 선갑도부대원들에게 반쪽짜리 약속이나마 일부 지켜준 이유가 실미도 사태 때문에 놀란 정부가 적당히 당근을 주는 방향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17] 원작소설에서 강인찬은 교도소 생활을 하다가 알게 된 방장의 연줄 덕분에 실미도 부대에 자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이를 속였다는 이유로 탈락하고 이후 청부살인 혐의로 체포됐다가 자신을 찾아온 부대 관계자의 제안을 받아들여 교도소에서 나오게 된다.[18] 일반 직장인의 1년치 봉급을 매달 주겠다고 했다고 한다.[19] 사실 정확히 말하면 영화에서 사용된 것은 중국제 AK-47인 56식 보총이다. 이는 영화에 사용된 총들이 미국에서 들어왔기 때문이며(밑에도 나와있지만 사실 실총이었다.), 소련, 러시아가 냉전 때 미국에 무기를 수출하지 않았기에, 미국 영화에서 사용되는 AK-47도 대다수가 중국제나 동유럽제이다.[20] 그런데 수영을 잘 하던 인원이었고 더욱 미스테리한 건 폐에 물이 차지 않았다.[21] 작전의 정식 명칭은 '오소리 작전'이다.[22] 김일성 암살에 성공하면 북한에게 전면전의 명분을 주는 것으로, 이미 베트남 전쟁을 치르고 있던 미국에게 또다른 전쟁은 늘어나는 전비와 전투병력 부족으로 인해 부담으로 작용하게 된다. 실패하더라도 푸에블로호 피랍사건 승무원 귀환협상에서 불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23]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의 이야기 시즌2 2화에서는 당시에 닉슨 독트린이 발표되었던 시점이기에 해당 작전으로 전면전이 발생할 경우 사태가 겉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는 이유라고 추측했다.[24] 부대원 정리를 반대한 조 중사를 제외시키기 위한 것이었다.[25] 이때 수류탄을 실수로 까 사고사라는 주장이 있는데 당시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들의 자폭의도로 깐 것이 맞으며, 생존자의 옆에 있던 부대원은 해당 생존자가 아기를 안고 있던 아이엄마여서 좌석밑으로 숨으라고 했다고 한다. 또 수류탄을 몸으로 덮어 피해를 최소화했다고 한다.[26] 당시까지만 해도 인천 해안가나 도서지역은 전방지역으로 분류되어 국도 접경지에 검문소가 있었기 때문이다.[27] 조 중사의 절규 직후에 이어지는 결말부에서 중앙정보부 정보요원이 타자 치는 장면을 통해 빠르게 언급되긴 한다. 자폭 당시 묘사만 놓고 보면 전원 사망한 것처럼 보이지만, 타자 내용은 실제 생존자가 있었던 현실을 반영해서인지 간략하게 두 줄 정도가 언급된다. "탈주범들은 대부분 현장에서 폭사하였고 생존자는 현장에서 체포, 군법에 의거 군 특수범으로 분류되어 사형집행."[28] 인천에는 청나라 때 이주해온 화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현재도 인천에 화교가 많이 거주한다.[29] 조돈일은 360725-1754243, 박상근은 381007-1627523,이거 성인인증에 쓰는놈 없겠지 그외에 자폭하기 직전 부대원이 버스 시트에 440403-1...이라는 번호를 쓴다.[30] 해당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실미도 얘기가 나오는 <쿠데타>란 영화에 최민수, 이정재 등과 함께 출연할 예정이었으며 드라마 PD 출신 김종학 감독은 이 영화로 영화감독 데뷔를 할 뻔 했으나 시나리오 담당 송지나 작가와의 갈등을 비롯한 내부 불화 때문에 무산됐다.[31] 그가 액션배우가 아니라서 그런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99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상당한 근육질을 자랑했다. 이는 1980년대 후반부터 운동을 시작하여 꾸준히 유지하고 있었다고 한다. 1990년대 중순에는 일본 영화 잠자는 남자(眠る男)에서 제목처럼 종일 잠만 자는 남자로 대사없이 나온 적도 있는데, 당시 감독(오구리 코헤이)에게 근육질 몸매를 호평받은 적이 있다.[32] 부대원 역을 맡은 배우 70명 이상이 모두 함께 이동한 것이다.[33] 한국의 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홍경민이 성대모사를 한 후 더욱 유명세를 탄 대사이다. 사실 대부분의 성대모사가 그렇듯 실제보다 과장해서 표현했는데, 홍경민 본인도 바로 "아 이건 아닌데"라고 중얼거렸으나 그게 그거대로 빵 터져서 좌중을 뒤집어 놓는 바람에 한동한 본 대사보다 더 유행했다.[34] 원래 시나리오에는 없는 대사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펴낸 2003 한국 시나리오 선집에 실미도의 오리지널 시나리오가 실려 있으니 참고할 것.[35] 외치면서 허공에 소총을 갈기는 장면이 꽤나 인상적이다.[36] 참고로 외화는 아바타가 2009년에 처음으로 1330만 명으로 천만 관객을 넘겼고, 이후 2014년에 1028만 명을 불러들인 애니메이션 겨울왕국까지 두 외화뿐이었으나, 후에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인터스텔라가 외화로서 1천만 관객을 넘겼다. 2018년 6월에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가 1109만 명을 넘기며 실미도의 기록을 넘겼고, 2019년 5월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1129만 명을 기록하며 실미도를 제치게 되어 총 3편의 외화가 실미도의 기록을 깼다. 이로써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어벤져스 시리즈는 실미도를 제친 외화 3편 중 2편을 보유하는 기록을 세운 셈.[37] 자세히 보면 존제라는 맞춤법이 틀렀고 설경구의 배우 이름 마저 틀리지만 아무래도 실미도 당시 이름을 모르고 교육도 잘 배우지 못한 모습을 표현하던가 하지만 실수하는 것 같다.[38] 엄밀히 말하면 테마곡도 아니고 실미도 OST에 담긴 노래도 아니다. 영화 이전에 발매된 조용필의 앨범에 실린 노래인데, 조용필과 실미도 제작진이 협의해서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서 영화 홍보에 활용한 것이다.[39] 훈련병을 살인범, 사형수 출신으로 묘사했다고 사자명예훼손죄로 소송도 함께 걸렸으나 무혐의 처리되었다. 감독이 참고한 자료에서 훈련병 중 일부가 전과자였음을 밝히고 있어 전체를 살인범으로 묘사해도 할말없다고...[40] 더 록의 1분 39초부터 들어보자[41] 실미도는 1.21사건 직후의 북파공작원을 다룬 반면 나의 독재자는 7.4 남북공동성명을 전후로 가상의 남북정상회담 리허설을 주제로 하고 있다.[42] 나머지는 대부분 그대로 나온다.[43] 대사 내용:"실미도를 주제로 한 영화도 있었는데, 너희 그거 봤니?", "그 영화는 초등학생 관람불가였다고!"[44] 오히려 블러디 선데이조디악 킬러 처럼 고증 자체에만 완벽히 충실한 영화였다면 작품성이나 서사 자체는 지금 보다 좋았을 망정 천만은 커녕 오백만 조차 불가능했을터러 고증에만 충실하느라 영상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재미 없는 그저 그런 수작으로 남았을 것이다.[45] 중앙정보부장이 부대원들의 신상정보가 담긴 문서를 훑어보는 장면에서 살짝 지나간다. 영화를 다운받아 보면서 해당 장면만 정지시켜서 보는 게 아닌 한 알아채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