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23 17:57:16

에코세대

파일:나무위키+유도.png   1991년~1996년에 태어난 사람들에 대한 내용은 에코붐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1. 개요2. 설명

1. 개요

한국전쟁 직후의 베이비붐 세대가 낳은 아이들로 일반적으로 1979년~1992년에 태어난 사람들을 가리키는 세대 구분 용어이다. 에코는 영어 단어 echo에서 온 것으로 베이비 붐이 가져왔던 현상에 대한 메아리(echo)라는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저출산 시대를 시작하는 세대이다.

2. 설명

민주화와 경제 발전에 따른 과실을 어렸을 때부터 향유했으며, 궁핍했던 경험을 해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에 가난을 겪어본 기성 세대들과 문화적 괴리가 심해, 성장 과정에서 교육 정책의 혼선이 빚어지고[1] 사춘기 또는 대학생 시기에 외환위기라는 급격한 사회 변동을 겪으면서 극단적인 개인주의와 정글자본주의가 몸에 배어서, 소위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사회 전반적으로 극단적인 변화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개인적 실력을 스스로 가장 중요시하는 특성이 있다. 점차 개인주의가 확산되는 와중에도 기성 세대로부터 물려받은 군대 문화와 술자리 문화의 악습이 짙게 배어 있고, 학창 시절에는 카세트 워크맨브리프(속옷)의 영향권에 있었으며, 1990년대 초창기 아이돌 문화를 청소년기에 접한 마지막 세대이기도 하다. 현재의 미성년자들과 다르게 어린 시절에 카세트 테이프 등 아날로그 문화 또는 패미컴, PC통신, 모뎀 연결 인터넷 등 초창기 디지털 문화를 접했으며 PC통신 문화 이후 딴지일보, 디시인사이드, 웃긴대학을 위시로 한 대한민국 인터넷 문화의 성립 및 변화의 주역이기도 하다. 2000년대 후반, 2010년대에 이르러서는 에코 부머(1979년~1985년생)의 다음 세대가 태어나고 있다. 또한 요즘 들어서 이 에코세대를 대상으로 한 추억 마케팅도 틈새시장에서 나름대로 선전하고 있다.[2] 물론 이것들은 X세대의 추억 마케팅에 해당되기도 한다.

또한, 산아 제한이 진행 중일 무렵의 출생자 세대이기도 하는데, 인구 수의 경우 출생 연도 별로 차이가 극심하다. 이른바 2차 베이비부머 세대로 불리는 에코 부머 세대는 수가 80만 명을 넘어가며 90만 명을 넘긴 경우도 있으나 이해찬 세대(1983년~1984년) 때부터 출생아 수는 급감하였고, G세대(1985년~1987년)의 막둥이인 1987년생[3]의 경우 출생아 수가 고작 62만 명으로 사실상 저출산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는 1998년생(63만 명)보다도 적다. 이 와중에 가장 큰 문제는 아직까지 남아 있던 남아선호사상과 급격히 발달한 의학이 짬뽕을 일으킨 '아이 골라낳기'로, 예전 같았으면 '남자애가 나올 때까지 낳는다'에서 '검사 후 여자애임이 밝혀지면 지우고 새로 낳는다'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주로 86년부터 유행하기 시작해 출산률 감소를 확대했고, 극심한 남여 성비 불균형까지 일으켜, 현재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남자들은 결혼 상대를 찾지 못해 쩔쩔매고 있으니 그야말로 부모의 업보.

이 뿐만 아니라 수능 초창기 + 본고사 폐지 + 널뛰기 수험생 숫자 + 대입제도의 혼란상(이해찬 세대의 경우)[4] + 급격하게 상승한 대학 진학률이 시너지를 일으켜 대학 졸업 이후 다시 사상 최악의 취업난을 겪기 시작한 사실상 첫 세대이기도 하다.

이러한 극단적인 개인주의 성향과 취업난으로 인해 스펙 쌓기를 주도하였고 그로 인해 386세대에 대한 반감이 베이비 붐 세대들 못지 않다. 거기다 대북성향도 연령대에 비해서 제법 적대적으로 베이비 붐 세대들과 가장 많이 공유할 정도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이런 경향은 주로 부모의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적대적 대북관의 원인은 부모 세대의 영향과 함께 주로 미디어를 통해 경험한 북한의 참담한 실정과 대남도발 때문으로, 고난의 행군기의 북한의 실상을 각종 매체와 탈북자의 증언을 통해 목격했으며, 햇볕정책을 통해 이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친숙함을 느낄 즈음 북핵, 서해교전 등을 포함한 지속적이고 잦은 대남도발로 인한 강한 배신감 등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소위 퍼주기 논리가 적극 작용한 바가 크다.[5] 이런 관계로 북한 주민에 대해서는 '우리가 도와줘야 할 사람들'이란 논리와 함께 그들을 억압하는 북한 정권에 대해서는 매우 적대적이다.

이로 인해 NL계열 운동권이 주장하는 반미 통일 노선에 대해서도 반감이 있는 동시, 되려 미선이 효순이 사건 같은 이슈에 적극 참여하는 등, 반미감정도 없지 않은 복합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2002년 한일월드컵의 영향도 크다고 볼 수 있는데 월드컵의 개최와 4강 신화로 민족주의 감정이 고조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학창 시절 경험한 역사바로세우기의 영향도 매우 크다. 즉, 북한은 싫으나 민족주의 성향도 매우 강한 세대라고 볼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극단적인 개인주의 성향과 함께 전체주의적 성향도 보이는 극과 극이 분명히 대조되는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세대부터는 페미니즘에 대해서 적대적인, 안티페미니즘 성향을 뚜렷하게 띠는 남성들이 많아지는 세대이기도 하다. 이전 세대들과 달리 성장 과정에서부터 남녀간의 차별이 거의 없어진 세대인데다가 사회 각계에서는 오히려 여성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가 매우 많아졌음에도 아무런 보상이 없는 병역 의무를 남성들만이 지는 불합리함은 여전한데다가 여성들에게는 온갖 혜택이 돌아가는 반면 남성들은 사회적 혜택이나 배려가 전무한지라 이에 대한 반감을 갖는 남성들이 이 세대를 기점으로 확연하게 많아지는 추세를 보인다.

[1] 대표적으로 6차 교육과정과 '이해찬 세대'[2] UV 및 인디뮤지션 기린, 응답하라 1997, 응답하라 1994[3] 1987년생은 1992년생보다 11만 명이 적으며, 1982년생보다 22만 명이나 적다.[4] 2000학년도 대입 수능은 86만 명 정도가 응시하며 역대 최고치를 찍었으나 출생아 수가 점차 줄어들다가 1983년(2002학년도 대입 수능 응시자) 77만 명으로 떨어지기 시작하여 1987년에는 62만 명까지 떨어지며 2006학년도 수능 응시자 수는 역대 최저치를 달성했다. 참고로 에코 부머 세대의 당시 인구는 83~87만 명 정도 된다.[5] 햇볕정책 이전부터 정주영회장의 소떼 방북 직후 일어난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 지속적으로 북한의 화전양면 전술이 적극적으로 전개된 것도 매우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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