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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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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 언론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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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대의 각 해마다 시사저널이 각 분야의 전문가 1000명에 칸타퍼블릭과 함께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한국을 움직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매체'을 선정했으며, 최대 3개까지 중복응답이 가능하였다. 해당 틀에는 1위만 기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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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열사
<colbgcolor=#92979b,#616567> 지주회사 e-KBS
방송 KBS미디어 (KBS America, KBS Japan) | KBS N | KBS미디어텍 | KGCS 문화산업전문회사 | 몬스터유니온
공연 · 서비스 KBS비즈니스 (방송차량서비스) | KBS아트비전 | KBS시큐리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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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
설립 1973년 3월 3일
개국 <colbgcolor=#2282b9> TV 1961년 12월 31일
라디오 1927년 2월 16일
본사 소재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공원로 13 (여의도동)
채널 TV 파일:KBS 1TV 로고.svg
파일:KBS 2TV 로고.svg
파일:KBS NEWS D 로고.svg
라디오 파일:KBS 1Radio 로고.svg
파일:KBS HappyFM 로고.svg
파일:KBS 3Radio 로고.svg
파일:KBS ClassicFM 로고.svg
파일:KBS CoolFM 로고.svg
파일:KBS 한민족방송 로고.svg
국제방송 TV 파일:KBS 월드 로고.svg
파일:KBS KOREA.png
라디오 파일:KBS 월드 라디오 로고.svg
홈페이지 파일:KBS 로고(1984-2023).svg
링크 실시간 파일:KBS 1TV 로고.svg파일:KBS 2TV 로고.svg파일:KBS NEWS D 로고.svg[1]
장애인 서비스[2]
노동
조합
언론노조 KBS본부(교섭대표노조)
KBS 노동조합(소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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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282b9><colcolor=white> 대표자 김의철
주요 주주 대한민국 정부: 100%
법인형태 국영방송 (1948~1973)
공영방송 (1973~)
업종명 지상파 방송업
상장여부 비상장기업
기업형태 영조물법인체, 공직유관단체
직원 수 4,471명(2021년 6월 1일 기준)
자본금 2,061억 9,158만 4,736원(2020년 12월 31일)
매출액 연결: 1조 5,697억 5,241만 4,566원(2020년)
별도: 1조 3,622억 998만 688원(2020년)
영업이익 연결: -97억 7,629만 7,988원(2020년)
별도: -139억 6,506만 4,514원(2020년)
순이익 연결: 338억 3,399만 2,936원(2020년)
별도: 326억 9,005만 1,360원(2020년)
자산총액 연결: 1조 3,657억 2,795만 1,810원(2020년 12월 31일)
별도: 1조 2,726억 9,873만 7,841원(2020년 12월 31일)
부채총액 연결: 6,237억 6,541만 3,299원(2020년 12월 31일)
별도: 5,511억 4,418만 6,994원(2020년 12월 31일)
자회사 KBS 미디어, KBS N, KBS America, KBS Japan, KBS 비즈니스, KBS 아트비전, KBS 시큐리티, KBS미디어텍, e-KBS, 방송차량서비스, KGCS 문화산업전문회사, 몬스터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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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징
2.1. 기업 정신2.2. 로고2.3. 마스코트2.4. 슬로건
2.4.1. TV
2.4.1.1. 1993년 ~ 2002년2.4.1.2. 2003년 ~ 현재
2.4.2. 라디오
2.4.2.1. 1970년대2.4.2.2. 1980년대2.4.2.3. 1993년 ~ 2002년2.4.2.4. 2003년 ~ 현재
3. 마케팅
3.1. 사가3.2. 로고송
3.2.1. TV
3.2.1.1. KBS 1TV3.2.1.2. KBS 2TV
3.3. 라디오3.4. 방송지표
4. 역사5. 사옥
5.1. 여의도 통합 사옥 (1976.12.1(본관) / 1988.6(신관) ~ 현재)5.2. 여의도 별관 (1980.12.1 ~ 현재)5.3. 수원센터 (2000.11 ~ 현재)5.4. 상암 미디어센터 (2007.12 ~ 현재)
6. 특징
6.1. 법인현황6.2. 조직도
6.2.1. 조직
6.3. 편성정책
7. 지배구조8. 임직원
8.1. 임원
8.1.1. 공사화 이전 (1927~1973)8.1.2. 한국방송공사 (1973~현재)
8.2. 직원
8.2.1. 기자8.2.2. 아나운서8.2.3. 기상캐스터8.2.4. 프로듀서8.2.5. 엔지니어8.2.6. 기타
9. 채널
9.1.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9.2. 지상파 라디오 방송9.3. PP(KBS N)9.4. 인터넷 방송9.5. 유튜브 채널9.6. 실시간 스트리밍 및 VOD, AOD9.7. 팟캐스트
10. 방송 현황
10.1. 프로그램10.2. 재난 방송10.3. 방송망10.4. 네트워크10.5. 계열사10.6. 공익재단
11. 정기간행물12. 기록물13. 평가14. 논란 및 사건 사고15. 노동조합16. 교통편
16.1. 본관ㆍ신관16.2. 별관
17. 메일 주소18. 여담19. 관련 문서20.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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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20210811_015621.jpg
파일:20210811_015718.jpg
파일:Depth 2021-12.gif
파일:Depth 2021-01.png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대한민국 대표 공영미디어[3]
한국방송공사, 영문약칭 KBS[5]대한민국 최대 규모 방송사로 공영방송, 지상파 방송을 운영하며, 자회사를 통해 케이블/위성/IPTV 채널을 운영한다. 본사 주소는 ()07235,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공원로 13 (여의도동).[6] EBS처럼 메인 방송 채널이 1TV, 2TV 두 개로 나뉘어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7]

2001년 3월 3일[8] 이후 약칭인 한국방송으로 부르고 있으며#, 정식 명칭은 한국방송공사.[9] 별명으로는 크브스, 케백수 등이 있다.

2. 상징

2.1. 기업 정신

1973 ~ 2003[10]
  • 사훈
품위있는 방송, 능률적인 경영, 협조 속의 단결[11]

1992
  • 방송이념
문화의 샘터, 겨레의 길잡이[12]
  • 경영목표
믿음주는 방송, 앞서가는 기술, 함께하는 경영
  • 인재상
봉사하는 방송인, 탐구하는 창조인, 서로돕는 협동인

1993 ~ 1994
  • 방송이념
인간 사랑, 자연 사랑, 나라 사랑 - 그린정신

2015 ~ 2019
  • 비전
가장 신뢰받는 창조적 미디어
  • 미션
TV를 넘어! 세계를 열광시킨다!(Beyond TV! Rock the World!)
  • 핵심가치
우리의 중심에는 시청자가 있다: 공정, 혁신, 열정, 소통

2019 ~
  • 중장기 목표
대한민국 대표 공영미디어 KBS: 신뢰, 창의, 혁신
  • 5대 세부목표
독보적 신뢰, 압도적 영향력, 콘텐츠 도달률 강화, 글로벌 미디어로 변화, 창의적 조직으로 변화

2.2. 로고

KBS(한국방송공사) 로고 변천사 (사표-社票)
파일:KBS 로고(1961-1973).svg 파일:KBS 로고(1973-1984).svg
파일:한국방송로고정리.png
파일:KBS 로고(1984-2023).svg
파일:KBS 국문 로고.svg
1세대 로고 (1961년 ~ 1973년) 2세대 로고 (1973년 ~ 1984년) 3세대 로고 (1984년 ~ 현재)
  • 3세대 로고 (1984년 10월 29일 ~ 2023년 9월 말 예정): KBS의 최장수 CI. 디자인포커스 대표였던 정준 주도로 만들어졌으며, 글씨체는 1960년에 나온 글꼴인 Handel Gothic[16]을 약간 수정한 것이다. 1984년 10월 29일부터 본격적으로 사용.# 뉴스 프로그램에 한해 1997년 1월부터 1999년 9월까지는 오른쪽 하단에 회색의 심볼이 있는 워터마크를 사용하였다가 1999년 10월부터 2003년 11월까지는 심볼마크가 황토색으로 주로 사용되었고, 2003년 12월 1일 이후로는 모든 방송에 심볼마크는 뗀 채로 글씨로고만 사용되고 있다. 그렇다고 심볼마크가 공식적으로 폐기된 건 아니고, 홈페이지와 사옥 건물, 촬영용 차량 등에는 여전히 파란색과 황토색으로 당당히 붙어있다.[17] TV에서는 간간히 파란색으로 간접적으로라도 나오지만 이전에 비해서는 등장빈도가 굉장히 적다. 이처럼 몇가지 색이 존재하지만 공식적인 색깔은 파란색. 선 개수도 미묘하게 다를때도 있다. 4선과 6선이 있는데, 4선은 방송 타이틀등에서 쓰였고 6선은 인쇄물 등에 사용되었지만, 2013년 8월에 개편하면서 6선으로 고정했다. 이때 색깔도 파란색으로 고정했다. # 문화방송체처럼 한글 글씨체도 있는데[18] 이 글씨체는 1980년대부터 2010년대 까지 로고 표기로만 사용하였으나[19] 2001년 KBS 한국방송으로 명칭이 바뀌면서 자막의 '제작'에 로고표기로 TV에 등장하였으며 이후 2012년부터 TV에서 NEXT 영상, ID영상, 홈페이지 등에서 여러가지로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현존하는 방송국 Cl들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쓰이고 있는 CI다.[20] 여담이지만 저 로고, 원래는 서울 올림픽 로고 경쟁작 중 하나였고, 낙선한 이후 한국방송공사가 써먹고 있다고 한다. 참고로 이 대회에 당선된 양승춘 디자이너는 이후 S본부의 초대(初代) 로고를 디자인했다.근거 1, 근거 2 로고피디아에 따르면 1983년판이 있다고 하는데, 영상이 삭제돼서 상세 내용은 불명.

2.3. 마스코트

파일:한국방송공사 Kebit.jpg 파일:한국방송공사 K2.jpg
KBS의 통합 마스코트 Kebit(케빗) KBS2의 옛 마스코트 K2(동글이)
  • KBS의 통합 마스코트 Kebit(케빗): 출처 voozclub에서 만들었다.(포트폴리오)[22] 지구로 내려온 외계인이라는 설정이다. 디자인의 호불호가 꽤 많은 편으로, 루리웹에 올라온 글에서 댓글창을 보면 알겠지만 난장판이다. 동글이 다시 데려와 이 때문인지 초창기에만 많이 쓰이고 양승동 사장 취임 이후에는 올림픽 기간이나 몇몇 ID 등을 제외하면 거의 방송에 나오지는 않았다.
  • KBS2의 옛 마스코트 K2(동글이): 다들 정확한 이름을 몰라서 방송 마니아들 사이에서 '원탱이'라고도 불리었는데 KBS 본사에서 확인된 바로는 정식 이름은 K2다. 그런데 9년 전에 나온 KBS 스테이션 ID에 대한 홍보지에는 공이라고 쓰여있다. KBS 2TV에서 2003년 6월, '젊은 채널' 이라는 슬로건을 도입하며 함께 등장한 마스코트로, 아르헨티나 방송 텔레페에서 1994년부터 2001년까지 쓰인 마스코트와 비슷하다.#[23] 2015년부터는 방송 안내나 SNS 페이지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쓰이지 않고 있으며 이 마스코트에서 팔다리를 없엔 모습의 노란 공 디자인은 간간히 쓰이고 있었다. 그리고 2016년 7월 15일 새 마스코트인 케빗에게 대를 이어달라는 말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그럼에도 시청자상담실 홈페이지에 가면 계속해서 찾아볼 수 있다. 현재는 자사의 유튜브 채널인 깔깔티비에서 약간 변형된 모습으로 채널의 마스코트 노릇을 하고 있다.

2.4. 슬로건

2.4.1. TV

2.4.1.1. 1993년 ~ 2002년
  • 좋은 방송 밝은 세상[24]
2.4.1.2. 2003년 ~ 현재

2.4.2. 라디오

2.4.2.1. 1970년대
  • 밝은 방송, 알찬 내용, 희망의 소리[36]
  • 오늘을 보람있게 내일을 희망차게[37]
2.4.2.2. 1980년대
  • 슬기로운 생활의 벗[38]
2.4.2.3. 1993년 ~ 2002년
  • 좋은 방송 밝은 내일[39]
2.4.2.4. 2003년 ~ 현재
  • 대한민국 뉴스 채널[40]
  • 사랑하기 때문에[41]
  •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42]

3. 마케팅

3.1. 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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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사가
김수철 작사ㆍ작곡
밝은 미래를 함께 여는 우리는 KBS
새 시대 새로움으로 이 세상을 가득 채운다
우리의 진실한 열정은 세계를 밝혀주리라
우리는 KBS 사랑과 정의를 전해주리라
우리는 KBS 기쁨과 행복을 함께하리라
KBS 한국방송
맑은 지혜가 샘 솟는다 우리는 KBS
사랑과 믿음이 모여 동서남북 하나가 된다
우리의 인류애로 온 누리엔 평화의 꽃 피어난다
우리는 KBS 희망찬 미래를 열어가리라
우리는 KBS 이 세상 환하게 비춰주리라
KBS 한국방송

3.2. 로고송

KBS 노래 ( ~ 1993년)
90년대 이전 라디오 시그널로 쓰기 위해 노래보다는 가벼운 느낌의 곡으로 만들어 쓴 곡이다. 일종의 로고송이다. 1970년대에 TV에도 중간중간에 나왔던 것으로 보이며, 1984년부터 1993년까지 KBS 9시뉴스 시작전 ID로고송으로 멜로디 일부가 나온 적이 있었고, 그 때까지만 해도 방송시작 고지에서 이 음악이 나왔으며 1992년과 1993년 총 두 해에 걸쳐서 2TV ID 로고송으로도 쓰이기도 했다.[43] 2005년까지 KBS 사회교육 제1방송(972kHz. 현재 KBS 한민족방송)의 오후 1시 오프닝때도 이 음악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에 KBS로 전화를 걸면 이 노래가 통화대기음으로 나왔다

1990년대에는 실로폰음이 나왔다. 꽤 중독성이 있기는 하다(...).

로고송 가사는 다음과 같다.
KBS 노래 공동위원회 작사 / 이희목 작곡

동이 튼다 랄라라
새 날이다 랄라라라
맑은소리 곱게 곱게 KBS
빠르고 올바르게 KBS
즐거운 우리들의 KBS KBS
라디오도 랄라라
텔레비젼도 랄라라라
밝은소리 굽이굽이 KBS
힘차고 슬기롭게 KBS
영원한 우리들의 KBS KBS

KBS 로고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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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TV

3.2.1.1. KBS 1TV
  • 중앙방송국입니다 (1973년 공사 출범 이전) #
  • KBS 텔레비전입니다 (1973년 공사 출범 이후 ~ 1980년 11월)
  • KBS 제1텔레비전입니다 (1980년 12월 ~ 1984년)
  • 서울올림픽을 세계에 보여주는 우리의 KBS (1988년)
  • 영원한 우리들의[44] KBS KBS (1991년 ~ 1993년) #
  • KBS KBS 제1텔레비전 (1993년 10월 18일 ~ 1994년 10월 9일) #[45]
  •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KBS (1994년 10월 10일 ~ 2001년 3월 2일)[46]
  •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KBS 한국방송 (2001년 3월 3일 ~ 현재)[47]
  • 정성을 다하는 KBS 국민의 방송 (2007년 3월 3일 ~ 2010)
  • 함께하는 평화 함께여는 미래 국민의 방송 KBS (2018, 2019년, 국경일 한정)[48]
3.2.1.2. KBS 2TV
  • KBS 제2텔레비전입니다 (1980년대 초반 ~ 1984년)
  • 즐겁고 유익한 KBS 제2텔레비전 (1984년 ~ 1987년)[49][50]
  • 사랑과 기쁨이 솟는 KBS 제2텔레비전 (1987년 ~ 1991년)[51]
  • KBS KBS 제2텔레비전 (1993년 10월 18일 ~ 1994년 10월 9일)
  • 좋은방송 밝은세상 KBS (1994년 10월 10일 ~ 2001년 3월 2일)
  • 좋은방송 밝은세상 KBS 한국방송 (2001년 3월 3일 ~ 2003년 6월 27일)[52]
  • KBS KBS KBS 한국방송 (사랑해) (2003년 6월 28일 ~ 2009년 일자 미상)[53][54]
  • 정성을 다하는 KBS 국민의 방송 (2007년 3월 3일 ~ 2010년)

3.3. 라디오

  • 사랑하기 때문에 KBS(2007년 ~ 현재)[55]
  • (반주) KBS 1라디오(2013년 ~ 2018년)[56]
  • 대한민국 중심채널 KBS 1라디오(2018년 ~ 현재)[57]
  • 즐거움과 행복을 주는 KBS 해피FM(2007년 ~ 현재)[58]
  • 함께하는 평화 함께여는 미래 국민의 방송 KBS(2018 ~ 현재)[59]
  • 너와나의 U-KBS MUSIC
  • Listen to the music

3.4. 방송지표

연도 문구 연도 문구
1986년 하나로 세계로 미래로 # 1987년 믿는 사회, 밝은 내일, 세계와 함께 #
1988년 소중한 가정, 건강한 사회, 행복한 나라 1989년 인간화, 민주화, 국제화 #
1990년 인간화, 민주화, 세계화 - 21세기를 준비한다 # 1991년 환경을 지킵시다 #
1992년 우리의 선택이 우리를 살린다 # 1993년 새로운 출발 - 국민의 힘을 모읍시다 #
1994년 국민과 함께 세계로 # 2TV 1995년 광복 50주년 - 새 반세기의 출발
1996년 21세기 앞으로 5년, 국민과 함께 KBS가 열어갑니다 1TV 1997년 KBS 50년, 새로운 반세기 국민과 함께 1TV 2TV
1998년 경제위기 극복, 국민과 함께 KBS가 앞장섭니다 1999년 21세기가 눈앞에, 다시 일어서는 한국 #
KBS국민제안 제2의 건국, 힘차게 새롭게
2000년 벽을 넘어서 화합의 시대로 1TV 2TV 2001년 디지털 KBS, 희망을 함께 나눔을 함께 1TV 2TV
2002년 2002 코리아, 하나되어 세계로 미래로 # 2003년 새출발 대한민국 화합의 시대로 #
2004년 함께 가자, 대한민국! # 2005년 국민감동 KBS #
2006년 아시아의 창 KBS 2007년 한국인의 희망 KBS 1TV 2TV
2008년 하나되는 대한민국 함께하는 KBS 2009년 공정·공익 KBS #
2010년 희망 2010 대한민국의 힘 KBS 2011년 시청자와 함께! 디지털 KBS
2012년 하나되는 대한민국 글로벌 KBS 2013년 글로벌 KBS 행복한 대한민국
2014년 창의와 신뢰로 미래를 여는 KBS # 2015년 광복 70년, 미래 30년, 대한민국 100년의 드라마 #
2016년 청년 대한민국 1TV 2TV 2017년 희망 2017, KBS가 함께 합니다 1TV 2TV
2018년 희망과 감동, KBS가 함께 합니다 1TV 2TV 2019년 함께하는 평화, 함께여는 미래 1TV 2TV
2020년 2020 새로운 시작 - 공정·창의·혁신 KBS 1TV 2TV 2021년 수신료의 가치를 더욱 높이며 국민의 방송으로 거듭나겠습니다 1TV 2TV
2022년 ~
2023년
신뢰로 여는 통합의 창, KBS # 2024년

4. 역사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한국방송공사/역사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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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사옥

5.1. 여의도 통합 사옥 (1976.12.1(본관) / 1988.6(신관) ~ 현재)

파일:사본%20-%20KBS전%203[1].jpg
KBS 여의도 통합 사옥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공원로 13 (여의도동)
{{{#!wiki style="text-align: center; margin: -2.5px -10px -5px -10px; padding: 2.5px 0px 0px 0px"
{{{#!wiki style="margin: 0px; min-width: 80px; display: inline-block"
{{{#!folding [ 본관 ]
층수 Information
7 감사실, 대외협력국
6 사장실, 임원실, 비서실, 인적자원실, 노사협력주간, 대회의실
5 라디오센터장실, 라디오제작국, RS-1~17, 라디오기술국, 성우실, 남북교류협력단, 경영정보국, KBS 교향악단, KBS ON (미니박물관,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4 라디오편성기획국, 라디오생방센터, 시청자센터, 콘텐츠아카이브부, KBS ON (홍보관, 가상스튜디오, 미디어교육장, TV부조정실, 만화영화더빙, 9시 뉴스앵커)
3 TS-6·7, 인터뷰룸, 제작편집실-1~9, TV기술국, 음향디자인실, 전략기획국, 예산국, 아나운서실, 인사기획부, 제작기획2부, 제1회의실
2 TS-1~5, 성평등센터, 총무시설부, 보헤미안 커피
1 안전관리실, 도서관, 의무실, 치과, KBS시큐리티, 방송차량서비스
B1 본관식당, 아나운서교육장, 사진스튜디오
}}}}}}
[ 신관 ]
||<tablealign=center><tablewidth=100%><width=20000><tablebgcolor=#fff,#1f2023><bgcolor=#2282b9> 층수 ||<width=90%><bgcolor=#dcdcdc> Information ||
9 시사제작국
8 제작1본부장실, 시사교양1국, 제작기획1부, 제작운영부
7 편성본부장실, 멀티플랫폼전략국, 멀티플랫폼편성국, 국제방송국, 일본방송협회, 중국 중앙 텔레비전
6 예능센터
5 이사회, 시사교양2국, 협력제작국, 기술관리국, 미디어인프라국, 총무시설국, 국제회의실
4 보도본부장실, 통합뉴스룸 (정치국제, 경제, 디지털뉴스), 스포츠국, 해설위원실
3 NS-1·2, 멀티스튜디오, 재난미디어센터, 통합뉴스룸 (사회, 방송뉴스), 보도영상국, 보도그래픽부, 보도기술국
2 로비, 신관 공개홀, KBS홀, KBS아트홀
1 영상제작국, 시청자사업부, 신관식당
B1 TS-11~14, 중계기술국, 제작편집실-11·12, SMR-11~15
B2 미디어플랫폼주간, 미디어송출부
}}} ||
파일:/100/400/96/100796.jpg
KBS홀과 신관 공개홀[60]
파일:20160530_140705_HDR[1].jpg
KBS 연구동.[61][62][63]
파일:m_pop_img1[1].jpg
파일:128403_165187_0338[1].jpg
KBS 미래방송센터 조감도
  • 본관: 지하 1층, 지상 7층, 연면적 112,396.7m² 규모로 1976년 12월 1일 준공되었으며, 현재 전략기획실, 경영본부, 라디오센터, 아나운서실 등이 사용하고 있다. 또 견학관인 KBS ON도 4~5층에 자리잡고 있다.
  • 신관: 지하 2층, 지상 9층, 연면적 63,987m² 규모로 1988년 6월 준공되었다. 1988 서울 올림픽 당시 국제방송센터(IBC) 용도로 지어졌으며 현재 편성본부, 보도본부, 제작1본부, 예능센터, 기술본부 등에서 사용하고 있다.[64]
  • 공개홀
  • 연구동 : 지상 2~5층 규모의 건물 4동(3~5동, 관리동. 1, 2동은 결번, 연면적 15,487.63m²)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977년에 완공되었다. 본래 국회 의원회관으로 사용되던 건물을 1990년에 양도받은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나 사택으로 생각하는 그 건물이다. 현재 미디어기술연구소, 심의실 및 본사 건물에 입주하지 못한 각종 부서들의 사무실로 활용되고 있다. 과거 개그콘서트 연습실도 있었으나, 종방이후 미사용.

사옥 개방은 다른 지상파 3사에 비해 개방이 자유로운 편에 속한다. 오전 5시 부터 ~ 밤 12시 까지 건물 개방이 된다. 출입가능 범위는 신관, 본관 1층 로비 등은 자유로이 이용이 가능하다. 특히나 라디오 스튜디오가 오픈스튜디오 방식이라서 매일밤 DJ 진행자의 팬들이 모여서 팬미팅을 하기도 한다. 주말에도 크게 문제없이 이용이 가능하긴 하나, 일부 위치는 시간이 지나면 문이 잠긴다.

2016년 고대영 사장 시절 기존의 연구동 자리에 지하 3층, 지상 8층, 연면적 66,891.30㎡ 규모의 '미래방송센터'를 세우고 이후 기존 본관과 신관을 리모델링하여 여의도 별관과 수원센터의 기능을 죄다 흡수하려 했으나, 2017년 공영방송 총파업과 이듬해 고 사장 퇴진으로 표류 상태이다. 게다가 양승동 사장 체제 이후에도 재원조달 문제가 지속되고 있고 이로 인해 해당 부서인 미래방송센터추진단이 아예 공중분해까지 되어 신사옥 건립은 사실상 무산되었다.

TV스튜디오는 본관에 7개(1~7), 신관에 4개(11~14), 별관에 3개(A, C, D)가 위치해 있다. 라디오스튜디오는 본관에만 있다.

5.2. 여의도 별관 (1980.12.1 ~ 현재)

파일:KBS별관.jpg
KBS 여의도 별관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대방로 359 (여의도동)

1980년 4월 준공되어 동양방송의 본사로 사용하고 있었다가 언론통폐합으로 동양방송이 사라지자 별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드라마센터, 공영미디어연구소, 콘텐츠사업 관련부서, KBS 사우회, KBS한국어진흥원 사무실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5.3. 수원센터 (2000.11 ~ 현재)

파일:attachment/KBS경인방송센터/nisi20100912_0003400905_web_whdgml1239.jpg
KBS 수원센터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인계로 123 (인계동)

연면적 75,460.47㎡ 규모로 2000년 11월 준공되었다. 현재 드라마센터[66], KBS경인방송센터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일부 교양 및 예능도 여기서 녹화한다. 인재개발원, 방송박물관, KBS수원아트홀도 같은 부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인계동행정복지센터도 세들어서 위치하고 있다.

5.4. 상암 미디어센터 (2007.12 ~ 현재)

파일:KBS미디어센터.jpg
KBS 상암 미디어센터
서울특별시 마포구 매봉산로 45 (상암동)
{{{#!folding [ 정보 펼치기 · 접기 ]<tablewidth=100%><tablebgcolor=#fff,#1f2023> 층수 Information
21
20 몬스터유니온, 미스틱스토리, OH!BROTHERS
19 클론미디어텍
18
17 KBS 미디어 HRD센터, 유한양행 서부지점
16 대우정보시스템 e호조교육장
15 Metabranding, 태광선식, 티제이물류
14 덕은도시개발, EHK E&S, 코반
13 세이온미디어, SM C&C
12 Avnet Korea
11 아이윌미디어, 프라임운송, Avnet Korea
10 BHS Korea, 범진석갤러리, KCP
9 KBS N (정책기획본부, 마케팅본부), 에이텍에이피
8 KBS 미디어 (감사, 감사팀, 인터넷서비스부, 전략기획서비스부)
7 KBS 미디어 (노조사무실, 휴게도서실), 씨티이안, JINLIN CULTURE
6 KBS 미디어 (사장실, 부사장실, 스마트사업본부, 디지털미디어센터, 경영센터, 회의실)
5 KBS 미디어 (경영지원부, 미디어랑, 심석홀, 콘텐츠판매센터, 콘텐츠자료실, 복사실, 통신실, 체력단련실)
4 KBS 미디어 (지원사업부, 해외사업부, 국내사업부, 플랫폼사업부, 디지털제작부, 미디어커머스부, 문화교육부)
3 KBS N (사장실, 감사실, 편성제작본부, 경영관리실), KBS 방송아카데미 (강의실A~E, TV-Studio, R-Studio, 교무실, 교수실, 노조사무실)
2 KBS N (기술국, OAP실, 주조정실, 부조정실, 편집실, 녹음실, NLE실, 노조사무실)
1 KBS N SPORTS, KBS N (스튜디오, 대기실, 분장실, 소품창고), 신한은행
B1 드림디포, 상암지앤미치과의원, 드림마트, 한국미디어종합예술원
B2~B5 주차장
}}} ||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에 위치한 KBS 미디어센터 사옥. KBS N, 몬스터유니온 등 자회사와 계열사들이 사용하고 있다.

6. 특징

6.1. 법인현황

  • 설립근거: 방송법 제43조 1항 외 관련 법령
  • 임무 및 기능: 동법 §43~§68 참조[67]
  • 조직현황: #KBS 홈페이지 조직도 참조.
  • 인력현황: 사장 포함 상임임원 10인[68], 비상임임원(이사) 11인[69], 정규직 총원(T/O) 5,548인 중 현원 4,726인.(2019년 말 기준)[70]
  • 직원평균보수: 기본급 5,011만 원 + 수당 등 4,688만 원 = 합계 9,699만 원[71]
  • 2020년 손익현황: 수입 1조 4,341억 6,200만 원[공적재원 6,922억 700만 원(수신료 6,790억 2,400만 원+정부보조금 131억 8,300만 원), 자체수입(광고+콘텐츠판매+협찬+자산매각 등) 7,419억 5,500만 원)] / 지출 1조 4,014억 7,200만 원, 당기순이익 326억 9,000만 원

기타 정보는 KBS 홈페이지의 경영공시 항목 참조.(#)[72]

6.2. 조직도

  • 김의철 사장
  • 김덕재 부사장 겸 제작2본부장 - 비서실
    • 인적자원실(인사기획/운영, 인재개발원), 심의실, 성평등센터, 시청자센터(서비스/사업)
    • 노사협력주간, 지역정책실, KBS공영성강화프로젝트팀
    • 전략기획실(최선욱 실장) - 법무실, 데이터정책
      • 전략기획국 - 정책기획, 전략개발, 계열사협력, 예술인고용보험프로젝트팀
      • 예산국, 대외협력국(대외협력, 커뮤니케이션), 공영미디어연구소
    • 편성본부(강희중 본부장)
    • 보도본부(손관수 본부장) - 기획, 뉴스전문위원실, 재난미디어센터, 남북교류협력단, 보도그래픽, 선거방송기획단
      • 통합뉴스룸(김현석 국장) - 취재1(정치/통일외교/사회/네트워크/경인취재센터), 취재2(국제/경제/산업과학/문화복지), 방송뉴스(제작1~3부), 디지털뉴스(1/2부, 뉴스시스템개발), 탐사보도
      • 스포츠국(사업제작/취재/중계, 국제스포츠이벤트추진단), 보도영상국(영상취재1/2부, 뉴스영상콘텐츠)
      • 시사제작국 - 1부(시사멘터리 추적), 2부(시사기획 창)
    • 제작1본부(신재국 본부장) - 제작기획1부, 제작운영
      • 시사교양1국(1~4CP), 시사교양2국(1~4CP, 현대사영상프로젝트팀), 협력제작국(1~4CP)
      • 라디오센터(정일서 센터장)
    • 제작2본부 - 제작기획2부
      • 예능센터(조현아 센터장) - 1CP(뮤직뱅크), 2~9CP, 예능사업, 대형이벤트방송사업단
      • 콘텐츠사업국(콘텐츠사업, 지식재산권), 광고국(기획/마케팅)
      • 드라마센터(황의경 센터장) - 1~7CP, 드라마사업
    • 기술본부(김병국 본부장) - 미디어기술연구소, 미디어송출
      • 기술관리국(기술기획, 기술운영, 장비관리), 미디어인프라국(제작시설, 시스템구축)
      • 방송네트워크국 - 네트워크운영, 송신시설, 송신소(소래/남산/관악산/김제/당진/화성)
      • 제작기술센터(오종연 센터장) - 후반제작
        • TV기술국(총감독1~4), 보도기술국(총감독1/2), 중계기술국(총감독1/2), 라디오기술국
    • 경영본부(박연 본부장) - 안전관리실, 신청사추진단
      • 총무시설국(총무시설, 건축가전, 전력운영), 경영관리국(재무, 구매, 자산운용, 후생)
      • 수신료국 - 수신료운영, 사업지사(강북/강남/인천/경기남부/경기동부/경기북부)
      • 경영정보국 - 경영정보, 정보인프라
  • 이사회(남영진 이사장) - 이사회사무국
  • 감사(박찬욱 감사) - 감사실(기획/방송/기술/경영)

6.2.1. 조직

김의철 체제 인사
2023년 1월 20일 기준
임원
부사장 김덕재[73] 전략기획실장 최선욱 편성본부장 강희중
보도본부장 손관수 제작1본부장 신재국 기술본부장 김병국 경영본부장 박연
센터장
성평등센터장 서영주 시청자센터장 구영희 재난미디어센터장 원종진
라디오센터장 정일서 예능센터장 조현아 드라마센터장 황의경 제작기술센터장 오종연
국장급
인적자원실장 김민 비서실장 최건일 심의실장 임장원 지역정책실장 이재강
전략기획국장 유해남 예산국장 손재오 대외협력국장 최영철 공영미디어연구소장 엄경철
멀티플랫폼전략국장 홍진표 멀티플랫폼편성국장 김장환 국제방송국장 김정환 아나운서실장 김태규
영상제작국장 허정 통합뉴스룸 국장 김현석 시사제작국장 안양봉 스포츠국장 김봉진
보도영상국장 진만용 시사교양1국장 이내규 시사교양2국장 서용하 협력제작국장 한경택
라디오편성기획국장 김강훈 라디오제작국장 박정연 콘텐츠사업국장 김영삼 광고국장 신철균
기술관리국장 조성래 미디어인프라국장 김철환 방송네트워크국장 황환성 미디어기술연구소장 김정덕
TV기술국장 고문안 보도기술국장 이형섭 중계기술국장 이진식 라디오기술국장 한인배
총무시설국장 범낙규 경영관리국장 이진관 수신료국장 차상열 경영정보국장 김경범

6.3. 편성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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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지배구조

주주명 지분율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정부 100%

8. 임직원

출처는 여기

8.1. 임원

8.1.1. 공사화 이전 (1927~1973)

경성방송국 제2방송과장
  • 윤백남 (1932~1933)
  • 김정진 (1933~1936)
  • 심우섭[74] (1936~1939)

경성방송국 제2방송부장
  • 이혜구 직무대행 (1942)
  • 노창성[75] (1942~1943)

조선방송협회장
  • 이정섭 (1945~1948)

공보부 서울중앙방송국장[76]
  • 이혜구 (1945~1947/1949)
  • 홍양명 (1947~1948)
  • 이관희 (1948~1949)
  • 노창성 (1949~1953)
  • 이운용 (1953~1960)
  • 조흔파 (1960~1961)
  • 윤길구 (1961~1963/1966)
  • 김재연 (1963/1966~1968/1969~1970)
  • 이홍수 (1963~1966)

공보부 서울국제방송국장[77]

공보부 서울텔레비전방송국장[79]
  • 황기오 (1962)
  • 이홍수 (1962~1963)
  • 김재연 (1963~1965)
  • 김진영 (1966~1968)

문화공보부 중앙방송국장[80]
  • 김재연 (1968)
  • 김임용 (1968~1969/1970~1971)
  • 민유동 국장대행 (1969)
  • 홍경모 (1969)
  • 최창봉[81] (1971~1973)

8.1.2. 한국방송공사 (1973~현재)

이사장
1984년 '정부투자기관관리기본법' 제정에 따라 이사장제가 신설됨.

사장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width=320><tablebordercolor=#ffffff,#191919><tablebgcolor=#ffffff,#191919> 파일:KBS 로고(1984-2023).svg파일:KBS 로고(1984-2023) 컬러 화이트.svg한국방송공사
역대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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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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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대 제2대 제3대 제4대 제5대
홍경모 최세경 이원홍
제6대 제7대 제8대 제9대 제10대
박현태 정구호 서영훈 서기원 홍두표
제11대 제12대 제13대 제14대 제15대
홍두표 박권상 서동구 정연주
제16대 제17대 제18대 제19대 제20대
정연주 이병순 김인규 길환영
제21대 제22대 제23대 제24대 제25대
조대현 고대영 양승동 김의철 }}}}}}}}}

순서 이름 시기 비고
초대~2대 홍경모[82] 1973~1979
3대 최세경 1979~1980
4~5대 이원홍 1980~1985
6대 박현태 1985~1986
7대 정구호 1986~1988
8대 서영훈 1988~1990
9대 서기원 1990~1993
10~11대 홍두표 1993~1998 최초의 방송인 출신 사장
12~13대 박권상 1998~2003
14대 서동구 2003 사퇴[83]
15~17대 정연주 2003~2008 해임
사장대행 이원군 2008 제명
18대 이병순 2008~2009
19대 김인규 2009~2012
20대 길환영 2012~2014 해임
21대 조대현 2014~2015
22대 고대영 2015~2018 해임
사장대행 조인석 2018 제명
23~24대 양승동 2018~2021 정연주 이후 연임하게 된 사장
25대 김의철 2021~

사실상 한국 방송계를 선도하는 자리이기도 한데, 이들 중 상당수가 한국방송협회 회장 및 지상파UHD방송추진협회(UHD코리아) 회장을 겸하기 때문이다.

1973년 이후 역대 사장 중 암묵적인 외압이나 내부 반발에 의한 사임 등은 제치고 공식적으로 사장에서 해임당한 사례는 정연주길환영, 고대영 사장 세명이다. 정연주 사장은 업무상 배임으로 기소, 길환영 사장과 고대영 사장은 각각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에 대한 보도 통제 논란 등과 보도국장으로 재직시 금품수수 및 보도 누락 의혹, 민주당 도청 의혹사건 등 여러 논란로 인한 공영성 훼손으로 이사회에서 강제 퇴출당했다. 다만 정연주 사장의 배임은 훗날 무죄로 판명났고(해임 무효 소송에서도 승소), 실제 의도는 윗선에서의 언론통제라는 평가가 대다수.

그리고 이들 중 이원홍과 정연주 두 사장은 역대 KBS 사장들 중 왕PD 칭호가 붙어있다. 그 이유는 프로그램 제작 등에 있어 시시콜콜 개입했기 때문(...)[84] 그리고 사장들 대부분은 기자 출신이며,[85] 이병순 이후 내부 출신이 사장이 되는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 2014년 방송법 일부 개정에 따라 사장 선임 시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했다.

부사장
  • 최창봉 (1973~1976)
  • 김재중 (1976~1980)
  • 윤혁기[86] (1989~1990)
  • 손영호[87] (1990~1994)
  • 최동호 (1994~1998)
  • 이형모[88] (1998~2000)
  • 강대영 / 김형준[89] (2000~2003)
  • 안동수[90] (2003~2005)
  • 김홍[91] (2005~2008)
  • 이원군[92] (2007~2008)
  • 김성묵[93] / 유광호 (2008~2009)
  • 조대현 / 김영해[94] (2009~2011)
  • 길환영 (2011~2012)
  • 전홍구[95] / 류현순[96] (2013~2014)
  • 금동수[97] (2014~2015)
  • 전진국 / 조문재[98] (2015~2017)
  • 조인석[99] / 이종옥 (2017~2018)
  • 정필모 (2018~2020)
  • 임병걸 (2020~2021)
  • 김덕재 (2021~)

감사
  • 노정팔 (1973~1977)
  • 이치순 (1977~1980)
  • 임진택 (1980~1982)
  • 김수득 (1982~1986)
  • 유태완 (1986~1990)
  • 차종호 (1990~1992)
  • 조봉균 (1992~1994)
  • 이철호 (1994~1998)
  • 방원혁 (1998~2000)
  • 전준모 (2000~2003)
  • 강동순 (2003~2006)[100]
  • 변원일 (2006~2009)
  • 이길영 (2009~2012)
  • 김승종 (2012~2015)
  • 전홍구 (2015~2018)
  • 김영헌 (2018~2021)
  • 박찬욱 (2021~)

편성책임자
TV는 편성본부장, 라디오는 라디오센터장이 책임자 위치에 있다. 1973년 공사창립 당시 방송총국이 책임지다가 1976년경부터 '방송담당이사' 호칭으로 변경되었고, 1981년에는 1TV, 2TV, 3TV-라디오담당이사로 3분할되었다가 1984년 사업본부제 도입 후 '방송본부'로 통일되었다.

1986년 조직개편 때 TV-라디오본부로 이원화되었다가 1991년 '방송총본부'가 생기면서 그쪽 예하로 재편되었고, 1993년 방송총본부가 해체되어 그 임무가 편성운영본부로 넘어갔다.

1998년 편성운영본부가 해체되어 그 기능이 TV-라디오본부로 또 이원화되었고, 동년 12월에는 신설된 방송정책실이 맡다가 2000년에는 편성본부로 넘겨졌다. 2010년 조직개편 때 편성본부가 TV제작본부와 합쳐져 '콘텐츠본부'로 개편되면서 편성센터로 격하되었다가 2013년 편성본부로 다시 확대되었고, 2016년 방송본부로 또 개편되어 TV와 라디오편성을 모두 담당하였다.
  • 최창봉 (1973~1976)
  • 최서영 (1976~1981)
  • 윤혁기 (1981~1984(1TV) / 1984~1985)
  • 손영호 (1981~1984(2TV) / 1985~1986)
  • 정순일 (1981~1983, 3TV 및 라디오)
  • 차종호 (1983~1984, 3TV 및 라디오)
  • 김도진 (1986~1988, TV) / 박근주 (1986~1988, 라디오)
  • 장한성 (1988~1991, TV) / 전영효 (1988~1991, 라디오)
  • 강병우 (1991, 1993~1996)
  • 박성범 (1991~1993)
  • 안국정 (1996~1998)
  • 강대영 (1998~2000)
  • 한신평 (1998, 라디오)
  • 이흥주 (2000~2001)
  • 김승종 (2001~2003)
  • 이원군 (2003~2005)
  • 장윤택 (2005~2006)
  • 남성우 (2006~2008, TV) / 조원석 (2006~2008, 라디오)
  • 최종을 (2008~2009)
  • 이혁주 (2009~2010)
  • 서재석 (2010~2012)
  • 서재원 (2012)
  • 전진국 (2012~2014)
  • 권순우 (2014~2015)
  • 김성수 (2015~2017)
  • 김영국 (2017~2018)
  • 황용호 (2018~2020, TV / 2018~2019, 라디오)
  • 국은주 (2019~2020, 라디오)
  • 한창록 (2020~2021, TV) / 최봉현 (2020~2022, 라디오)
  • 강희중[101] (2021~, TV)
  • 신원섭 (2023, 라디오)
  • 정일서 (2023~, 라디오)

8.2. 직원

공채는 공사 출범 이전과 이후로 구분되며, 서울중앙방송국 시절에 관리직은 문화공보부 공무원[102], 전문직은 임시직이었으나, 1973년 공사 출범 이후부터 사원 신분으로 하고 있다. 다만 1984년에는 공채 없이 134명을 특채했다.[103]

8.2.1. 기자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KBS NEWS 문서
5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8.2.2. 아나운서

파일:KBS 아나운서.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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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남성 아나운서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강성규 강승화 김기만 김동우 김선근
김승휘 김은성 김재원 김재홍 김종현
김태규 김현태 김홍성 김희수 남현종
박노원 박태원 배창복 성세정 오승원
오언종 오태훈 원석현 유지철 윤인구
이광용 이규봉 이상협 이상호 이성민
이영호 이재성 이재홍 이재후 이창진
이형걸 장웅 조항리 최승돈 최시중
한상권 한상헌 김진웅 이광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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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 아나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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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아나운서 | 한국방송공사 관련 틀
  • 일러두기
    • 재직 중인 아나운서를 기수(공사화 이후 기준) 및 성별(동일 기수 및 동일 성별일 경우 가나다 순, 지역권은 지역권 순 우선)로 나열합니다.
    • 단, 지역권 아나운서는 계속 지역방송(총)국에서 머물게 됩니다.
    • 취소선은 퇴사(프리랜서, 정년퇴임)하거나 재직 중 사망하거나 타 부서로 전향(일반관리직 영전 포함)하거나 다른 방송국으로 이적한 아나운서입니다.
    • 1980년 언론통폐합 당시 타 방송사에서 이적한 아나운서는 괄호 안에 TBC(동양방송), DBS(동아방송), CBS(기독교방송)를 표기합니다. 단, 언론통폐합 이전에 해당 방송국을 퇴사한 아나운서는 기재하지 않습니다. 괄호가 없으면 KBS 입사한 아나운서입니다.
기수 입사년도 남성 여성 지역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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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공사화 이전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ddeeff> <colbgcolor=#ddeeff> 1947년 위진록[104]
1948년 유덕훈, 장기범[105]
1951년 강찬선[106], 임택근[107], 황우겸
1954년 전영우[108], 최계환[109], 최세훈[110] 강영숙[111]
1955년 김영호
1956년 박종세[112], 이광재
1957년 문복순[113]
1959년 이병열[114] 김경숙 김영길(춘천)[115], 김영옥(춘천)[116]
1961년 배덕환[117], 이규항[118], 이홍우 김정자[119] 임국희[120]
1963년 김동건(DBS)[121], 김승한[122],
변웅전[123], 우제근(DBS),
원창호(DBS)[124]
김주혜[125]
1964년 박병학(TBC), 서기원(TBC)[126],
원예종(DBS), 원종관(TBC)[127], 이장우(TBC)[128]
고려진(TBC)[129]
1965년 최평웅
1966년 차인태[130], 황인용(TBC)[131]
1967년 김양일(TBC), 맹관영(TBC),
이세진, 조춘제
1968년 김규홍, 김영소, 박영웅,
원창묵(TBC), 이정부, 이창호[132],
임건재
박찬숙[133]
1969년 박기만, 박용호[134],
유수호(TBC)[135], 홍승택
강미란(부산), 김병래(부산), 이주복(춘천)
1970년 김성호[136], 낭우평, 전우벽(CBS) 이선미(DBS)[137] 이종태(대구)
1971년 김윤한[138], 정도영 전옥수(부산)[139]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공사화 이후(전원 퇴직)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colbgcolor=#ddeeff> 1 <colbgcolor=#ddeeff> 1973년 고성균, 이계진[140], 윤종규, 정수채[141], 양관우 염혜정, 백영주, 남궁문옥, 전강은, 유혜숙, 채관숙, 조혜정, 이영숙, 우종란, 범효춘, 변순복(CBS)[142], 최성란, 서영숙
2 1974년 이명용[143], 황량 강성희
3 1975년 김상준, 윤성원 채영신[144]
1976년 김상근[145], 손석기(DBS)[146],
최윤락(DBS), 허주(TBC)[147]
현옥(DBS)
4 1977년 박경희[148], 박성희(TBC),
박초아(TBC), 이영혜(TBC)[149],
이정애(TBC)[150], 이희옥(TBC)
5 1978년 김선동[151], 김준석(CBS)[152], 송지헌(DBS)[153],
왕종근(TBC)[154], 원종배(TBC)[155]
김영임, 안희재[156], 이미선(DBS)[157],
이병혜
배유선(대전)
6 1979년 표영준[158] 김미회[159], 박월선, 오미영,
이숙영(DBS)[160], 지영서(TBC)[161],
최희선(TBC), 황인우[162]
고광수(충주), 최명순(순천)
7 1980년 배명자, 서동숙, 성명혜 강은이(광주)
8 1981년 김성수, 이천규[163] 김국향[164], 신은경[165], 유애리[166],
전진영, 정혜실
권순우(포항), 김영숙(대구), 김충진(대구)
9 1982년 김희성, 송경희, 윤영미[167],
임화숙, 정미홍[168]
강순애(대구), 노병무(마산), 박대식(광주), 박서정(춘천),
위영미(광주), 조동건(제주),
조원숙(울산), 진두연(충주)
10[169] 1983년 김경희(충주)
11 1985년 강성곤[170] 박영주[171], 이영미 서찬석(부산), 장현순(부산), 차경애(부산)
12[172] 김흥수[173] 최영미[174] 김미균(진주), 김승일(마산)[175], 김혜정(원주),
문의순(제주), 박윤도(대전), 박재효(광주),
성연미(춘천)[176], 송현주(대구), 신석진(마산),
엄태진(청주), 유연배(원주), 윤만오(춘천),
임진숙(광주), 정윤심(목포), 허보혜(강릉)
13 1986년 박태남[177], 조건진[178], 최선규[179] 김명숙, 윤금자 문경자(대구), 서상기(광주)
}}}}}}}}} ||
<colbgcolor=#ddeeff> 14 <colbgcolor=#ddeeff> 1987년 김관동[180], 김동우[181], 전인석[182] 구영희[183], 김자영[184], 이규원,
전은진[185], 진성희
서기철(부산)[186], 이경수(광주)
15 박원철, 서기철[187], 이재윤[188] 노지숙, 오영실[189], 최윤희[190],
홍지수[191]
김동환--(부산), 김호성(청주), 정현조(대구),
한국현(울산), 황진(대구)
16 1989년 김태욱[192] 유정아[193], 이금희[194], 정미정[195] 김석훈(목포)
17 1990년 김병찬[196], 손범수[197], 최연택[198] 곽은주[199], 김희영, 이한숙[200],
정은아[201]
김경미(강릉), 김이숙[202](대전)
18 1991년 류재복[203], 박현우 성기영, 임수민, 정용실,
태의경, 홍영숙
19 1993년 김현태, 성세정, 장두희 공정민[204], 김성은, 진양혜[205],
황정민, 황수경[206], 황현정[207]
정용조(울산)
20 1994년 이형걸(청주총국장), 최승돈 변우영, 오유경[208], 임성민[209],
장은영[210]
김수진(전주), 김윤혜(청주), 김태은(전주),
문지숙(창원), 문희정(제주), 백명지(대구),
선우경(부산)[211], 이미아(부산), 이지향(울산),
정우영(춘천), 정혜정(춘천)
21[212] 1995년 김재원[213] 김홍성(부장), 이성민,
한상권
최은경[214]
22[215] 김태규(실장), 원석현, 유지철 백정원, 신윤주(부장) 김연선(대전), 김평래(부산), 박경추(제주)[216],
양민오(대전)[217], 한태호(원주)
23[218] 1996년 이창진[219], 최시중[220] 박성준(대전)[221], 윤석황(춘천), 이영재(제주),
이영진(청주)
24 1997년 김은성, 신영일[222], 오태훈,
윤인구[223], 이재후
국혜정[224], 손미나[225], 신성원,
윤소희[226], 윤지영, 정세진,
홍소연
25 1998년 이재홍 황유선[227] 김도휘(원주)[228], 김여진(대전)[229], 박은정(대구),
박찬민(청주)[230], 이정헌(대전)[231]
26 2000년 김현욱[232], 배창복, 이규봉,
장웅
박주아, 이지연[233], 장혜원,
지승현[234], 최원정[235], 최윤경,
허은정
27 2001년 김기만, 박노원 김경란[236], 정은승 김숙경(대전)[237], 박하늬(춘천), 주혜연(대전),
현송희(제주)
28 2002년 김희수, 이상협, 이영호 강수정[238], 김지윤
29[239] 2003년 이광용, 이상호, 한석준[240] 김보민[241], 김윤지, 노현정[242],
박사임, 박현선[243], 백승주,
위서현, 이승연
30[244] 2004년 박태원[245], 최동석[246] 고민정[247], 김진희, 박지윤[248] 이의선(춘천), 임정섭(광주)[249], 정은숙(춘천),
정은아(광주)[250], 최연수(대전)
31[251] 2005년 김재홍, 조우종[252] 윤수영, 이선영, 이정민[253],
조수빈[254]
고은령(부산)[255], 박소영(창원), 배성재(광주)[256],
심인보(창원), 원순식(청주), 전유미(대전),
한효연(대구), 함윤호(전주)
32[257] 2006년 전현무[258] 오정연[259], 이지애[260], 최송현[261]
33 2007년 오언종[262] 박은영[263], 박지현[264], 엄지인,
장수연[265]
박명원(대전), 최인희(청주)
34 2008년 김승휘 가애란[266], 유지원, 정다은[267] 김하희(진주), 손지화(대전), 윤우리(원주)[268],
채윤아(광주), 강령아(울산), 이아롬(창원)
35 2009년 도경완[269] 김솔희[270], 이현주, 차다혜[271] 양가희(진주), 정소희(강릉)[272], 조승학(순천),
조인철(안동)
36[273] 2010년 김서련(춘천), 김지연(대전), 김한별(광주)[274],
손지민(포항), 양문석(청주)[275], 이해수(청주),
정현정(제주)[276], 차재환(부산)[277], 한승훈(제주)
37 오승원 이지연, 전주리 이윤지(진주) 임지윤(충주)
38[278] 2011년 조충현[279], 한상헌 김민정[280], 이슬기, 정지원[281] 박상연(진주)
39 2012년 강승화, 조항리 김지원[282], 이각경[283], 이승현 박주인(원주), 신재연(진주), 양수진(강릉),
정준희(진주)
40[284] 2013년 강아랑(강릉)[285], 서명균(울산), 윤상아(강릉),
정다운(안동)
41 2014년 김선근[286] 강서은[287] 고새롬(제주), 고혜윤(진주), 김지현(목포),
김형철(전주),백선일(청주), 봉효정(전주),
신유진(창원), 안주연(원주), 오보람(울산),
이지현(부산)[288], 진유현(대구), 최현호(부산)
42 2015년 이재성 박소현 김소은(강릉), 정은지(강릉), 김지원(충주),
이현정(안동), 정지성(충주)
43 2016년 강성규, 김종현 이혜성[289] 김애진(포항), 김현지(진주), 변정연(순천),
유슬혜 (포항), 이은주(강릉), 이지인(창원),
임지수(청주), 정지성(충주), 편소정(울산)
44[290] 2017년 강지연(춘천), 봉주선(순천), 윤소희(강릉),
이주희(순천), 정혜경(울산), 조민경(충주)
45 2018년 남현종 김도연[291] , 박지원 박철규(안동), 손보련(제주), 안유리(진주),
오은지(강릉), 이승휘(청주), 이은주(춘천),
장예진(창원), 최명순[292](순천)
46 2019년 김진웅, 이광엽 이윤정 강유미(강릉), 김다은(대전), 김수연(춘천),
김세희(포항), 김호영(울산), 박민정(강릉),
박종화(청주), 박찬송(충주), 배소빈(청주),
송지원(창원), 유도희(광주), 최용수(포항)
47 2021년 김진현[293], 임지웅 홍주연[294]
48 2022년 박철규[295] 이예원[296][297], 정은혜[298], 허유원[299]
지상파 3사 중에서 아나운서 기본기가 가장 뛰어난 곳이다. 인원도 가장 많으며, 웬만한 아나운서들의 발음이 좋고 기본기가 가장 잘 되어 있다. 즉, KBS의 아나운서들, 특히 여자 아나운서들도 뉴스, 시사 등 무거운 목소리에 최적화가 되어 있을 정도로 KBS 아나운서들의 기본기 및 수준은 가장 뛰어나다. 참고로 가장 떨어지는 곳은 SBS이다.

위 평가는 각 사의 아나운서 선발기준과 깊은 연관이 있다. KBS는 방송사 중 가장 나이를 안 보는 곳으로 유명하고, 외면적 요소만큼이나 아나운서로서의 개인기(리딩, MC 진행능력)와 한국어 실력(한국어능력시험 성적을 필수로 기재해야 한다)을 겸한 인재를 요구한다. 여성의 경우 외모적으로는 '전통적 한국형 미인'을 선호하는 편이다. 참고로 아나운서 학원에서는 '참한 맏며느리상' 지원자를 두고 'KBS상'으로 평가한다. 가애란이나 정세진 아나운서 같은 외모를 떠올리면 될 듯.[300][301]

8.2.3. 기상캐스터

  • 일러두기
    • 재직중인 기상캐스터를 중심으로 나열하며 퇴사한 기상캐스터도 함께 기재합니다.
    • 단, 지역권 기상캐스터는 이 곳에 표기하지 않습니다.
    • 취소선은 퇴사(프리랜서, 정년퇴임)하거나 재직 중 사망하거나 다른 방송국으로 이적한 기상캐스터입니다.
입사년도 명단
<colbgcolor=#2282b9> 1991년 이익선
1994년 이정민
1995년 박근혜
1998년 한우경
2000년 한희경
2001년 이정옥
2002년 이설아
2003년 박시준
2004년 한연수
2005년 신민정
2007년 김정윤
2008년 김혜선
2009년 노은지, 유승연
2010년 최영아
2011년 장주희, 김자민
2012년 오수진, 신예지, 이세라
2013년 이수진
2015년 김지효, 강아랑
2017년 배혜지
2021년 김규리, 최현미

8.2.4. 프로듀서

볼드체로 표시된 인물은 임원에 속한다.

시사교양, 예능, 드라마, 라디오, 편성
  • 1945년 입사: 이상만
  • 1947년 입사: 노정팔[302]
  • 1961년 입사: 고성원, 김재형[303], 이남섭[304], 황정태
  • 1963년 입사: 차재영[305]
  • 1964년 입사: 김영희
  • 1965년 입사: 김연진[306], 박철[307], 이정훈[308]
  • 1967년 입사: 이흥주
  • 1968년 입사: 최선규
  • 1969년 입사: 강일파, 이유황, 이진욱, 정영철, 주일청
  • 1970년 입사: 박경식, 안국정
  • 1971년 입사: 김승종[309], 김충길, 김현숙, 김홍종, 백재하, 장기오, 장형일, 최상식
  • 1972년 입사: 김수동, 정선언
  • 1973년(1기) 입사: 곽명세, 금웅명[310], 김재현, 김종건, 정수웅[311], 박현순, 조의진, 홍성룡, 이종하, 한신평, 이석우, 박윤행, 윤기호, 장병도, 박건삼, 김균태, 윤재동, 장동선, 장병기, 주대식, 안경은, 박인배, 김광식, 강동순[312]
  • 1974년(2기) 입사: 이양구, 조원석[313], 윤창환, 윤상문, 이철용[314], 손장권, 유시창
  • 1975년(3기) 입사: 송영구, 강진호, 이윤선, 홍성우, 양성수, 이동순, 홍성용, 차갑진[315], 류시형, 김세근
  • 1977년(4기) 입사: 이원군[316], 허규, 방진혁, 박진수, 강진환, 박수창
  • 1978년(5기) 입사: 경명철#[317], 박현정, 이순철, 이영국, 임웅빈, 변연식, 박영규, 조대현, 김혜경, 박준남, 장충길
  • 1979년(6기) 입사: 김영신, 박희정, 윤종배, 이규환, 이양훈, 이원익, 김시연, 이승원[318], 진병윤, 현정주
  • 1980년(7기) 입사: 강성철
  • 1981년(8기) 입사: 고희일, 공영화[319], 권순우[320], 길환영, 김대화, 김철수A[321], 김현준, 박수동, 성준기[322], 송주하, 송희일, 안상윤[323], 엄기백, 오동석, 이녹영, 이상여, 이영돈, 이영희, 이응진, 이종한[324], 이현석, 전용길[325], 진기웅[326], 최길규, 홍성덕
  • 1982년(9기) 입사: 김상기, 김종식, 박영주, 신현수, 오진규, 윤명식, 이민홍, 장해랑[327], 정을영, 주병대[328], 채치성, 이상우
  • 1983년(10기) 입사: 박해선[329]
  • 1984년 입사: 나상엽, 박태호[330], 허성룡
  • 1985년(11기) 입사: 고영탁, 김명욱, 김성환, 김종선[331], 김철수B[332], 남현주, 노윤갑, 박정미[333], 서재석[334], 윤석호[335], 이덕건, 이상요[336], 임주빈, 임혜선, 전기상[337], 전산, 전진국[338], 허웅[339], 홍혜경[340]
  • 1985년(특채) 입사: 변석찬[341]
  • 1986년(12기) 입사: 구수환[342], 조인석[343], 정성효[344], 함형진[345]
  • 1987년(13기) 입사: 김영진, 민영문[346], 박중민[347], 이상운[348], 이성주, 이용우[349], 황용호[350]
  • 1987년(14기) 입사: 고흥식[351], 곽기원, 국은주[352], 우종택[353], 오세강[354], 이강현
  • 1989년(15기) 입사: 김창범, 양승동, 어수선, 이재영, 장영주
  • 1990년(16기) 입사: 김덕재 (부사장)[355], 신재국 (제작1본부장), 공용철, 이강택[356], 문보현[357], 조해달, 홍성협, 권혁만[358]
  • 1991년(17기) 입사: 강일수, 김종창, 신창석, 윤태호, 이원희, 임세형, 최지영, 표민수[359], 한창록[360]
  • 1992년(18기) 입사: 김석윤, 김영도, 김평중, 서원석, 심광흠, 이재우, 최봉현, 한정석[361], 한준서
  • 1993년(19기) 입사: 강희중 (편성본부장), 황의경 (드라마센터장)[362], 황대준 (대전방송총국장), 류지열[363], 배경수[364], 손현철, 유건식[365], 이건준[366], 이훈희[367], 정해룡[368]
  • 1994년(20기) 입사: 김호상 (울산방송국장), 김성근[369], 배경수, 윤선원, 이욱정, 이형민[370], 최기록, 한경천[371], 홍석구[372], 황대준
  • 1995년(21기) 입사: 김정환 (국제방송국장), 서용하 (시사교양2국장), 양홍선 (부산방송총국장), 이내규 (시사교양1국장), 홍진표 (멀티플랫폼전략국장), 윤성도 (제작기획1부장), 한경택 (협력제작국장), 고정훈, 고찬수[373], 권오훈, 권용택[374], 김규태[375], 김민철, 김상무, 김영삼[376], 김윤환, 김은주, 김정록, 김진수, 김창회, 김한석, 김현기, 김현수, 김현철, 김형석, 김형준, 나원식, 류송희, 민노형, 박건, 박기현[377], 박성철, 박유경, 박정수, 박충원, 배용화, 서수민[378], 성준해, 손성배, 송웅달, 송주미, 안종호, 안주식, 유태진, 윤성식[379], 윤중경, 이경묵, 이계창, 이명한[380], 이민호, 이병창, 이선동, 이재오, 이재혁, 이정수, 이진서, 이황선, 임기순, 임현진, 전창근[381], 전희수, 정일서, 정현모, 정희섭[382], 최기석, 한응식, 홍경수
  • 1996년(22기) 입사: 박융식 (1TV 편성부장), 김은정, 김종석, 김형주, 김희수, 남유진, 문석민, 박성용, 박은희, 백종희, 손종호, 손준영, 연종우, 오인교, 은경수, 이병용, 이제석, 장영우, 정승우, 최용수, 최재복, 한상준
  • 1997년(23기) 입사: 조현아 (예능센터장), 박성주 (편성제작부장), 강병택[383], 강성훈, 강요한, 곽정환[384], 권계홍[385], 권재영[386], 기민수[387], 김강훈, 김광수[388], 김상휘[389], 김석현[390], 김신일, 김영선, 김원, 김정규[391], 김정은, 김정희, 김진환, 김필준, 나영, 류명준, 문소산, 문준하, 민일홍, 박기호, 박일해, 박창, 백주환, 신동조, 오수진, 원종재, 유경숙, 유웅식, 유현기, 유희원, 윤영식, 윤현준[392], 이동희[393], 이세희[394], 이원규, 이정환, 전우성[395], 정택수, 정혜경, 조승욱[396], 조정훈, 최근영, 최재형, 최지원, 최필곤, 하태석, 함영훈[397], 홍기호, 홍순영, 황응구
  • 1998년(24기) 입사: 김영동, 김정민, 박용석, 이동우, 이정섭, 이혁휘, 조준희, 지병현, 지형욱, 한동규
  • 2000년(25기) 입사: 김연미, 김영조, 김용호, 박정연, 손승현, 유광태, 이소연, 이승하, 이형진, 이호경[398]
  • 2001년(26기[399]) 입사: 김성윤[400], 김영균, 김원석[401], 김호상, 나영석[402], 모완일[403], 박정유, 박현석[404], 신원호[405], 황인혁
  • 2002년(27기) 입사: 고민구[406], 김수아[407], 김지연, 김형주, 노상훈, 문성훈, 송현욱[408], 신미진, 이성범, 이응복[409], 윤병준
  • 2003년(28기) 입사: 강윤기, 고세준, 기훈석, 김경정, 김상미, 김세원, 김영민, 김자현, 김진원, 김홍범, 박지영[410], 박진호, 안준용, 염지선[411], 오은일, 이기리, 이진희, 이태웅, 이현정, 전인태, 정미영[412], 정효영, 조성숙, 허양재
  • 2004년(29기) 입사: 강남경, 김광수, 김대현, 김무성, 김민희, 김승욱, 김영숙, 김진우[413], 김한솔, 김해룡, 남진현[414], 류종훈, 박덕선, 박석형, 박성재, 박용훈, 박정훈, 백상훈, 백승철, 손지원, 양자영, 양천호, 윤진영, 이기연, 이동은, 이예지[415], 이은형, 이은진, 이정윤, 이준화, 이지운, 이충언, 이형일, 임병석, 전수영, 정경아, 정범수, 정희선, 조민지, 조지호, 지성찬, 최수영, 최승화, 최형준
  • 2005년(30기) 입사
    • 공채: 강민승, 고국진, 김문식, 김웅식, 김자영, 김종연, 김효진, 맹남주, 박소율, 송윤선, 손광우, 신주호, 신효정[416], 심하원, 염정원, 오준석, 오현숙, 우현경[417], 윤성현, 이경민, 이나정[418], 이동훈, 이송은, 이승현, 이지윤, 이지희, 이진희, 이휘현, 장소랑, 정현진, 차영훈[419], 최승희, 한상우, 함혜영, 황국찬, 황혜지
    • 경력: 강봉규[420], 강승연, 강지원, 김명숙, 이민정, 이은미, 유학찬
  • 2006년(31기) 입사: 김미해, 남상원, 박진석[421], 손자연, 유재우, 유지윤, 장윤선, 지우진, 하종백
  • 2007년(32기) 입사: 김동휘, 김영우, 김윤정, 김정하, 김정현, 김태두, 박수정, 박지은, 박현진, 유종선, 윤민아, 이선희, 이재훈, 이태헌, 장효선, 전온누리, 조영중, 진정회, 홍아람
  • 2008년(33기) 입사: 김근해, 김민경, 김범수, 박민정, 서승표, 안상미, 안지민, 원승연[422], 유정아, 유혜진, 유호진[423], 이명희, 이윤정, 정연희, 정현재, 현재성, 황초아
  • 2009년(34기) 입사: 김은비, 손수희, 심정애, 안상은, 이주영, 이호, 임종윤, 최윤석
  • 2010년(35기) 입사: 김민정, 김아리, 유경현, 유희진, 이지희, 전진, 최진영, 하동현
  • 2011년(36기) 입사: 길다영, 김가람, 김민석[424], 김은곤, 문지혜, 박병길, 박상욱, 상은지, 손성권[425], 유일용[426], 이승문, 이원식, 임효주, 정재윤, 최승현
  • 2012년(37기) 입사: 강민채, 김민회, 김성[427], 김희선, 이해돈, 배선정, 장민석, 전혜란, 조나은, 조현웅, 최지훈
  • 2014년(40기) 입사: 구상모, 김승용, 이다솔, 이은규, 이인건, 최윤영, 최현정
  • 2015년(41기) 입사: 권재오, 문경원, 박정환, 이상혁, 조애진, 정승안, 최승범, 최유빈
  • 2016년(42기) 입사: 서지원, 이승민, 이이백, 이지웅, 이현정, 장민구, 전아영, 최윤화
  • 2018년(45기) 입사: 신민섭, 유혜진
  • 2019년(46기) 입사: 정용재
  • 2021년(48기) 입사: 강재훈, 김미래[428], 김상엽, 노준호, 임지수, 임현정, 조수민
  • 그 외: 강민구, 김성수[429], 김시규[430], 김영국[431], 김진홍[432], 김충[433], 오용한, 이원규

애니메이션 및 외화 더빙 제작

8.2.5. 엔지니어

  • 이인관: 조선방송협회 출신으로, 1945년 8.15 광복 후 서울중앙방송국 발족 당시 연희방송소장을 맡다가 1948년 체신부 전무국 무선과장으로 이동됐다가, 1950년 공보처 방송국 송신과장으로 다시 옮긴 후 1953년부터 공보실 ~ 공보부 방송관리국 기감으로 수년 간 재직했고, 1968년 중앙방송국 기술부장으로 돌아왔다가 1970년부터 3년여 간 방송관리국 기술담당관을 맡았다. 1973년 공사 창립 후 6년 간 이사 겸 기술총국장을 역임했고, 1991년부터 4년 동안 KBS 사우회장을 지냈다. 1960년 방송문화상을 비롯 홍조근정훈장(1960), 녹조근정훈장(1967), 국무총리표창(1970), 대통령표창(1971), 옥관문화훈장(1977) 등의 수훈을 받았으며 2007년 2월 23일 작고.
  • 한기선: 조선방송협회 출신으로 1944년 청주방송국 개국요원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1945년 8.15 광복 후 1948년 서울중앙방송국 기술계장으로 발령났고, 1950년 6.25 전쟁 당시 전시방송국 기술과장으로 있다가 1953년 서울로 돌아와 서울중앙방송국 기술과장을 맡기도 했다. 1956년 공보실 방송관리국 시설과장으로 옮긴 뒤 1968년 기술담당관으로 승진했고, 1970년 중앙방송국 기술부장으로 또 옮기고 1973년 소래송신소장으로 내려가 이듬해 정년퇴임했다. 저서로는 <음학공학(1961)>, <건축의 음향설계(시릴 M. 해리스 & 번 O. 너드슨 공저 / 번역)>, <소리와 빛(1984)> 등이 있으며, 방송문화상 기술부문(1961), 한국방송대상 공로상(1974), 홍조근정훈장(1975) 등을 받았다. 2001년 작고.
  • 박경환: 1947년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이래 기술부 제1중계과 등지에 몸담으며 1948년 런던 올림픽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경축식을 비롯, 1949년 백범 김구 국민장, 1958년 경부역전 및 경인역전 마라톤, 5.16 혁명 기념 시가행진 등지 현대사 속 중요한 사건들의 실황중계를 맡았고, 1976 몬트리올 올림픽까지 올림픽 중계방송 업무도 맡았다. 1973년 공사 창립 후 기술총국 조정국 라디오조정부장을 비롯해 제작기술국 중계부장(1977~1979), 당진송신소장(1979~1980), 소래송신소장(1980), 제작기술국장(1980), 기술이사(1980~1983) 등을 두루 거쳤다. 1988년부터 3년 동안 KBS 민선 1기 이사를 지냈으며 2016년 7월 22일 작고하여 국립이천호국원에 안장되었다. 1982년 국민훈장 동백장 수훈.
  • 김성배: 기자와는 동명이인. 1948년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후 1950년 6.25 전쟁 당시 대전, 대구, 부산으로 각각 피난다니며 중앙방송을 도왔고, 1951년 서울 수복 후 정동으로 돌아와 선임으로 일하다 1960 로마 올림픽 때 기술요원으로 투입되기도 했다. 1962년 기술과 계장으로 올랐다가 1967년 공보부 시설과로 옮겨 시설담당관을 맡은 후 운용계장(1968~1972), 시설과장(1972~1973) 등을 거쳐 1973년 공사 창립 당시 기술국 기술관리부장으로 몸담았다. 그러고서 시설국장(1976~1980), 소래송신소장(1980) 등을 맡다가 1980년경 퇴사했고, 1987년 KBS 사우회 창립 당시 부회장을 1년 맡은 후 1995년까지 감사를 맡았고, 한국방송인동우회 부회장도 맡았다. 2016년 7월 29일 작고하여 국립이천호국원에 안장. 1979년 대통령표창 수훈.
  • 송재극: 1956년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이래 1963년 이리송신소장을 시초로 간부직에 오른 후 1968년 남양송신소로 발령나 500kW 대출력 건설에 참여했고, 연희송신소를 1971년 경기도 부천군 소래읍 미산리(현 시흥시 미산동)로 옮기는 데 주도한 바 있다. 1973년 공사 출범 후 기술총국 시설부장을 비롯, 기술국장(1976~1980), 시설국장(1980~1981), 남산송신소장(1981), 기술본부장(1981~1983), 방송기기종합정비실(소)장(1983~1985), 기술정책개발반 국장(1985~1986), 종합조정실(1986) 등을 거쳐 1986년 말 KBS의 송신사업이 한국전기통신공사로 넘어가자 방송망사업국장으로 있었고, 1988년 5월 KBS 방송연수원 교수로 돌아와 연말까지 맡고 퇴직했다. 이후 한국데이타통신 연구위원, 한국방송개발원 연구위원 및 이사, 고문, 한국방송공학회(현 한국방송미디어공학회) 부회장 등을 지내며 1991~1993년 및 2001~2003년까지 두 차례 KBS 이사를 지냈고, 2021년 2월 3일 작고. 대통령표창(1972 / 1976), 한국방송대상 기술상(1983), 국민포장(1986) 등 수훈.
  • 강진구: 1957년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1964년 동양TV 개국 당시 그쪽으로 옮긴 후 중앙일보-동양방송 이사, 삼성전자 및 삼성반도체통신 대표이사, 삼성전기 회장 등지 역임. 2017년 8월 19일 작고.
  • 조찬길: 1957년 공보실 산하 서울중앙방송국 시절부터 공채 입사한 이래 운암송신소장 등을 지냈고, 1973년 공사화 후 중계부장을 시작으로 김제송신소, 시설1차장 등을 거쳐 방송망관리실장(1981~1983/1988(부본부장대우)), 방송기기종합정비실장(1983~1984), 방송망감시실장(1984~1986), 라디오기술국장(1986~1988) 등을 두루 거친 후, 1988년 11월 서영훈 사장 취임에 따라 기술본부장까지 승진했다가 1991년 촉탁으로 전환되면서 제작지원단준비단장으로 발령나 자회사 'KBS 아트비전'의 창립을 주도한 뒤, 초대 사장으로 선임되어 2년간 지냈다. 이후 KBS 제4기 이사로 재직했으며 2014년 12월 17일 작고.
  • 안흥식: 1958년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1961년 공보부 방송관리국으로 이동되었다가 이듬해 MBC로 이직.
  • 오승룡: 성우와 동명이인. 대한방송(HLKZ-TV) 출신으로 1959년 서울중앙방송국에 입사한 후 1961년 TV방송 개국 당시 비디오맨으로 활동했고, 1962년에 보수반장 및 중계기술 감독을 했다가 1963년부터 KBS 제1차 시설확장공사 책임기사를 맡아 남산 사옥 스튜디오 확장공사를 이끌었다. 이후 전주방송국 이리송신소장, 제1조정계장 등을 거쳐 1968년 MBC로 이직했다가 1972년 KBS 제2조정과로 돌아왔고, 1973년 공사 창립 후 기술국 라디오조정부장으로 올랐다가 이후 중계부장으로 옮기기도 했다. 1976년 이후 미국 웨스팅하우스로 옮겼다가 1978년 연수원 연구실로 돌아온 후, 부산방송국 기술부장(1979~1981), 기술국 기술보전부장(1981~1984), 올림픽방송본부 기술개발실 기술기획담당(1984~1985), 기술부장(1985~1987), 텔레비전기술국 부국장(1987~1988), 방송망관리실/기술본부 시설국장(1988~1991), 방송연수원 교수(1991~1993) 등을 두루 거쳤다.
  • 홍기준: 1960년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1964년 MBC로 이직.
  • 김영선: 성우, 정치인과 동명이인. 1960년 목포방송국 입사 후 중앙방송국 기술과로 옮기기도 했고, 1973년 공사 창립 후 1979년 기술국 기술부장으로 보직간부 생활을 시작하여 보전부장(1980~1981), 운용기술부장(1981~1982), 소래송신소장(1982~1983), 방송망관리실장(1983), 당진송신소장(1983~1987), 김제송신소장(1987~1989), 라디오기술국장(1989~1990), 방송기기정비센터 국장(1990~1991), 기술본부장(1991~1992) 등을 두루 거쳐 1992년 KBS 시설관리사업단 사장으로 발령나 1년 간 지냈다. 1995년 중앙케이블비젼 설립 후 초대 대표이사를 수년 간 맡으며 1995년부터 4년 동안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위원까지 맡았다. 1992년 국민포장 수훈.
  • 김순식: 1961년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1964년 동양TV로 옮겼다가 1969년 MBC로 또 옮겼다.
  • 최인열: 1961년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1964년 MBC로 이직.
  • 김윤식: 1961년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1969년 MBC로 이직.
  • 김광식: 1961년 7월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후 남산TV송신소 공사현장에서 근무한 바 있고, 1968년 제2부조정과에도 몸담았다. 1973년 공사화 후 건설본부 기술부장을 비롯 제작기술국 텔레비전중계부장(1977~1979), 제작기술국장(1979~1980), 시설국장(1980~1983), 기술본부장(1983~1988), 올림픽기술본부장(1987~1988), 기술상담역(1988~1991) 등을 두루 거쳐 1991년 KBS 시설관리사업단 감사로 내려가 2년을 지냈다. 1993년 KBS 공영방송발전연구위원도 역임했으며, 2017년 2월 15일 작고.
  • 서정원: 축구인과 동명이인. 1961년 대전방송국에 입사한 후 식장산중계소장 등을 맡다가 1981년 기술부장까지 올랐고, 1982년 감사실 검사역으로 본사에 입성했다가 1984년 강릉방송국장으로 내려가 1년을 지냈다. 그 뒤 기술본부/기술관리국 기술기획부장(1985~1988), 화성송신소장(1988~1992), 시설국 기술위원(1993), 기술관리국장(1993~1994), 중계기술국장(1994~1995), 기술본부장(1995~1997) 등을 두루 거쳐 1997년 KBS 아트비전 사장으로 내려가 1년을 지냈다. 1987년 국민포장 수훈.
  • 고흥복: 1962년 공보부 방송관리국 시설과에 입사한 후 이듬해 서울중앙방송국 기술과로 발령났다가, 1969년 MBC로 이직.
  • 이일로: 1963년 서울텔레비전방송국에 입사 후 1968년 중앙방송국 출범 당시 그쪽으로 이동되어 한동안 기술부에서 일했다. 1973년 공사 출범 후 시설국 관리부 차장으로 승진하여 1976년 기술부로 옮기기도 했고, 1979년 춘천방송국 기술부장으로 보직간부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보도본부 보도기술부장(1980~1984), 기술본부 방송망관리실 시설운용담당(1984~1986), 전송시설관리담당(1986), 기술관리국 방송망관리부장(1986~1988), 운용국장(1988~1989), 텔레비전기술국장(1989~1990), 제작기술국장(1990~1991), TV기술국장(1991~1993), 기술본부장(1993~1995) 등을 두루 거쳐 1995년 KBS 아트비전 사장으로 발령나 2년을 지낸 뒤, 1997년 KBS 영상사업단 고문으로 추대되어 1년 간 지냈다. 그 뒤 한국멀티넷 기술부문장(2000~2001), 한국디지털위성방송 기술고문(2002~2005), KBS 경영평가위원(2003~2005) 등을 맡다가 2003년 '한국방송제작기술협회(현 한국정보통신기술산업협회)' 설립을 주도하여 회장을 지내고 있으며, 2009년부터 한국방송기술산업협회 회장도 맡고 있다. 저서로는 <TV프로그램 제작기법(1983)>, <뉴미디어 시대가 오고 있다(1984)>, <방송기술의 이해(1992)>, <디지털 방송기술사전(1995, NHK방송기술연구소 저 / 번역)> 등이 있으며, 공보부장관 표창(1965), 제6회 백제미술대전 사진부문 대상(1987, 체육부장관상) 등 수훈.
  • 김순길: 1964년 서울텔레비전방송국 기술과 입사, 1969년 MBC로 이직.
  • 오정수: 1964년 서울텔레비전방송국 입사, 1969년 MBC로 이직.
  • 윤재덕: 극단 드라마센터 출신으로, 1965년 서울텔레비전방송국으로 입사했다가 1969년 MBC로 이직.
  • 조동근: 1965년 서울텔레비전방송국 입사, 1969년 MBC로 이직.
  • 이종성: 1967년 서울중앙방송국 입사, 1969년 MBC로 이직.
  • 김선권: 1973년 11월 무선기술B 직종으로 입사한 이래 여수방송국 신원송신소(1974~1978), 순천방송국 고흥중계소(1978~1980), 광주방송국 비아송신소(1980~1984) 등지를 전전하다가 1984년 방송 송신사업이 한국전기통신공사로 넘어가면서 그 쪽으로 배치되었다. 1988년 원주방송국 현업기술부 소속으로 KBS에 돌아와 이듬해 제작기술국 TV제작기술부로 올려졌으며, 1990년 광주총국 라디오기술부장을 시초로 간부직에 올라 1993년 시설국 자동화사업부 차장을 거쳐 제주총국 기술국장(1999~2001), 기술관리국 장비관리부주간(2001~2003), 방송망기기정비국 검사부주간(2003~2004), 남산송신소장(2004~2008), 소래송신소장(2009~2010) 등을 거쳐 2010년부터 2년 동안 뉴미디어·테크놀로지본부장을 지내고 퇴사.
  • 안동수: 1974년 11월 전기직으로 입사한 이래 올림픽방송본부 관리국 자료관리부 등지에 몸담다가 1989년 제2기 KBS 노동조합(1노조) 위원장으로 선출된 후, 1990년 KBS 사태 당시 총파업을 지휘하다 구속 후 1991년 해고 처분을 받았고, 1993년에 사면 후 복직되어 1994년 부장급 기술위원, 1999년 기술연구소장, 2000년 남산송신소장 등을 거쳐 2003년부터 2년 동안 부사장까지 맡았다.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비례후보 신청도 했다가 떨어졌다. 이후 2018년 한국블록체인기업진흥협회 창립 시부터 수석부회장을 역임 중이고, 콘텐츠웨어 회장, 서울벤처정보대학원 겸임교수, 유비쿼터스미디어콘텐츠연합 수석부총재 등도 맡고 있다.
  • 임정규: 1974년 11월 무선직A로 입사한 이래 1990년 한-소 수교 및 1992년 한-중 수교, 2000년 제1차 남북정상회담 등 역대 대통령들의 정상외교 과정을 TV 화면에 담아내는 데 기여해왔다. 1994년 보도본부 보도기술부 현업총감독으로 간부직에 처음 올라 위성기술총감독(2000~2001), 제작본부 TV기술국 주간(2001~2002), TV기술국장(2002~2003), 기술본부장(2003~2004) 등을 두루 거쳐 2004년 KBS 아트비전 감사로 발령나 1년을 몸담았다. 이후 2012년 KBS 이사회 경영평가위원을 거쳐 동년도부터 3년여 간 이사까지 맡았다. 저서로는 <역대 대통령 정상외교(2014)>가 있다.
  • 김영해: 1978년 입사 이래 TV기술국 편집관리부와 보도본부 보도기술부 등지를 전전하다가 2003년 영월방송국장을 비롯해 보도기술팀장(2004~2006), 춘천방송총국장(2006~2008), 기술본부장(2008~2009)을 거쳐 2009년부터 2년 동안 부사장을 역임했다.
  • 김순기(金順起): 동양방송 출신. 1980년 언론통폐합 후 시흥송신소장을 시초로 연천중계소장(1983~1985), 방송망감시실 유무선통신망 관리담당(1985~1986), 시설운용담당(1986), 수원송신소장(1987~1988), 시설국 자동화사업부장(1988~1992), 위성방송준비국 방송부주간(1992~1993), 방송기기정비실장(1993~1994), 방송망관리국장(1994~1997), 기술본부장(1997~1998) 등을 두루 거쳐 1998년 KBS 아트비전 사장으로 발령나 1년 간 지냈고, 2003년 국제방송교류재단(아리랑TV) 고문으로 추대되었다.
  • 이일성: 동양방송 출신. 1980년 언론통폐합 후 이곳에 배치되어 1981년 차장으로 승진했다가, 1990년 군산방송국 기술부장으로 보직간부 생활을 시작하여 뉴미디어국 기술부주간(1993~1994), 기획예산국 기술부주간(1994), 김포송신소장(1994~1997) 등을 지냈다.
  • 조해남: 동양방송 출신. 1980년 언론통폐합 이후 이곳에 배치된 이래 2003년 기술개발국 장비관리부주간을 시초로 간부직에 올라 장비보전팀장(2004~2005), 방송기술연구팀장(2005), 중계인프라팀장(2005~2008), 남산송신소장(2009), 기술본부장(2009~2010) 등을 두루 거쳐 2010년 KBS 비즈니스 감사로 발령났다, 2011년 JTBC 기술센터장으로 영전된 후 기술부문이 'JTBC미디어텍'으로 분사되면서 초대 대표이사를 5년여 간 맡았다.
  • 김석두: 1981년 입사한 이래 TV기술국을 비롯 여수방송국 망운산중계소(1990~1993), 기술관리국 기술관리부 등을 두루 거쳐 1995년 방송망관리국 개봉송신소 감독으로 간부직을 처음 맡은 후, 춘천방송총국 기술국장(2001~2005), 정책기획센터 난시청해소프로젝트팀장(2005~2007), 기술전략기획팀 부장(2007~2008), 기술전략기획팀장(2008), 기술관리국장(2009~2010), 네트워크관리국장(2010~2011) 등을 거쳐 2014년 기술본부장까지 올라 1년여 간 맡았다.
  • 이종화: 1982년 입사한 이래 기술연구소에서 일해 오다가 1999년 기술관리부 기술협력부주간을 시초로 기술기획부 기술협력부주간(2000~2001), 기술관리부 기술기획부주간(2002~2003), 기술연구소 연구부주간(2003~2004), 디지털미디어센터 멀티미디어팀장(2004~2005), 미래미디어전략국장(2010~2011), 기술전략국장(2011~2012), 제주방송총국장(2012~2013) 등지 역임.
  • 이종옥: 1985년 입사한 이래 2006년 대전방송총국 기술팀장을 시초로 방송시설국 제작시설부장(2010~2011), 방송시설국장(2011~2012), 뉴미디어·테크놀로지본부장/기술본부장(2012~2014) 등을 각각 거치다가 2014년 KBS 비즈니스 이사로 이동했고, 2017년 본사 경영부사장으로 승진했다가 이듬해 양승동 사장이 취임하면서 사임했다.
  • 진종철: 1987년 입사한 이래 대구방송총국 기술팀 등지를 돌며 엔지니어로서 일할 적 KBS노동조합(1노조, 당시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의 제4~5대 대의원, 6~8대 안동지부장, 대구-경북 시도지부장 등을 거쳐 2005년 위원장까지 오르며 반 정연주 성향의 선두에 있었으며, 2008년 정연주 사장 퇴임 후 2009년 1월 KBS홀 팀장을 시초로 시청자사업팀장(2009~2010), 시청자권익보호국장(2010~2011), 네트워크관리국장(2011~2012) 등을 거쳐 2012년 (재)디지털시청100% 사무국장으로 발령났다.
  • 김순기(金舜基): 1987년 입사 후 2005년 춘천방송총국 기술팀장을 비롯 TV제작본부 TV편집기술팀장(2007~2008), 기술본부 기술관리국 기술기획팀장(2009~2010), 미래미디어전략국 미래미디어운영부장(2010~2011), 제작리소스센터/제작기술센터 보도기술국장(2011~2014), 제작기술센터장(2014~2016), 네트워크센터장(2016~2017), 제작기술본부장(2017~2018) 등을 거쳤다. 2018년 퇴임 이후 2019년부터 자유미디어국민행동 운영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2017년 방송의 날을 기념해 국무총리표창 수훈.
  • 박병열: 1987년 입사 이래 2006년 광주방송총국 기술팀장을 비롯, 2010년 미래미디어전략국 미래미디어기획부장, 2011년 기술기획부장, 2012년 원주방송국장 등을 거쳐 2013년 퇴임 후, 2014년부터 한국지상파디지털방송추진협회(DTV코리아) 사무총장을 맡다가 이듬해 기술본부(제작기술본부)장으로 선임됐지만 2016년 노조 측의 70% 불신임으로 2017년 1월 면직됐다. 이후 2017년부터 3년 동안 KBS 비즈니스 감사를 지냈다.
  • 김용덕: 1989년 입사 이래 엔지니어 시절 용문산중계소, TV중계부, 관악산송신소 등지에서 일하며 KBS기술인협회 사무처장,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사무국장, 제6대 KBS노동조합 부위원장 등을 지냈고, 2018년 기술본부장으로 선임됐다가 2019~2021년까지 KBS 비즈니스 이사를 지냄.
  • 김병국: 1989년 입사 후 울산 무룡산 송신소 근무를 시초로 엔지니어 외길을 걸으며 2008년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 부산지부장 등지에 몸담기도 했고, 2018년 양승동 사장 취임 후 네트워크본부장을 시초로 처음 간부직을 맡아 2019년 지상파UHD방송추진위원회(UHD코리아) 사무총장을 맡기도 했고, 2020년 제주방송총국장을 거쳐 이듬해 김의철 사장 취임 후 기술본부장으로 등극했다.

8.2.6. 기타

  • 이장춘: 1963년 서울국제방송국 PD로 입사한 이래 1998년 퇴직 시까지 중앙출장소장, 업무국장, 기획조정실 기획예산관리담당 부장, 방송편성위원회 방송자료센터부장, 관재국장, 전산정보실장, 제주방송총국장 등을 두루 거친 방송 전문가로, 퇴사 이후 (사)한국방송인동우회 이사 등지를 역임함.(블로그[440])
  • 전홍구: 1981년 행정직 입사. 1993년 춘천방송총국 총무부장을 비롯해 개혁기획단 차장(1998), 인사관리부주간(1998~2000), 인사/임금제도부주간(2000~2003), 총무국(팀)장(2003~2006/2009), 관재팀장(2006~2008), 방송문화연구소 연구위원(2009~2013), 부사장(2013~2015), 감사(2015~2018) 등을 지냈다.
  • 금동수: 1982년 행정직 입사. 1999년 노무부주간을 비롯해 2014년 3월 정년퇴임 시까지 KBS SKY 사장(2002~2005), 편성본부 저작권팀장(2005~2006), 노사협력팀장(2006~2008), 인적자원센터장(2008), 인력관리실장(2009~2010), KBS 미디어 사장(2010~2011), 글로벌전략센터장(2011~2012), 창원방송총국장(2012~2014) 등을 거쳤다. 2014년 5월 조대현 사장 취임 후 부사장으로 임명되어 1년여 간 맡았다.
  • 은문기: 1985년 경영직 입사. 2002년 편성본부 콘텐츠정책보조관을 비롯해 2004년 KBS 인터넷 이사 및 글로벌센터 글로벌전략팀장, 2007년 KBS 아메리카 사장, 2011년 감사실장, 2012년 스마트KBS추진단장, 2014년 창원방송총국장 등을 거쳐 2017년 KBS 시큐리티 사장을 7개월 동안 역임.
  • 이석인: 1985년 미술직 입사. <달려라 하니>, <명탐정 번개> 등 여러 TV 프로그램 타이틀을 제작함. 보도그래픽부 제작위원, 영상그래픽부 차장, 보도그래픽부장(2011~2013) 등을 맡아왔고, 그 외에 한국캘리그라피디자인협회 이사, 지평캘리연구소 대표 등을 역임함.
  • 이완성: 1985년 입사 이래 2018년까지 속초방송국 총무부장, 경영본부 노무부주간, 사내근로복지기금 파견직원, 라디오 제작운영팀장, 노사협력팀장(주간), 정책주간, 청주방송총국장, KBS 시큐리티 사장, 시청자본부장 등을 거쳤다. 이후 아이텍 사외이사 역임.
  • 지연옥: 1985년 특채 입사 이래 홍보실에서 근무하다 방송문화연구원 차장, 수원센터 연수2부주간 겸 교수, 시청자센터장 등을 거쳐 2009년 경영본부장까지 오름으로써 여성으로서 처음으로 KBS 임원직에 올랐고, 2010년 시청자본부장, 2011년 KBS 비즈니스 이사 등지 역임.

9. 채널

참조 사항: 2002년 5월 이전까지는 뉴스, 스포츠 프로그램을 제외한 나머지 프로그램에는 KBS 로고(워터마크) 표시가 없었다. 이후 처음으로 도입할 당시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가[441], 2003년 12월 1일 ~ 2010년 12월 31일까지 로고(워터마크) 위치가 왼쪽, 2011년 1월 1일부터 다시 오른쪽에 표출중이다. 2018년 9월 3일부터 1TV와 2TV의 로고(워터마크)가 바뀌었다. 2020년 10월 20일부터 로고가 좀 더 우측으로 이동하였으며 지역국 폰트는 KBS 내부에서 사용하는 폰트로 변경하였다. 예전 1980년대 후반 ~ 1990년대 초반 엔딩 크레딧에 '제작' 폰트로 사용된 바 있었고 1990년대 중반 이후에 TV에서 사용하지 않고 내부용 폰트로 썼다가 30년 만에 TV에서 다시 쓰이게 된 셈이다.
방송국명 주파수ㆍ채널
KBS 1TV U-KBS STAR Ch.15(관악산), 22(남산)
KBS 2TV U-KBS HEART Ch.17(관악산), 45(남산)
KBS NEWS D[442] Ch.52(수도권), 9-2(가상)
KBS 제1라디오 AM 711㎑/FM 97.3㎒
KBS 제2라디오 Happy FM AM 603㎑/FM 106.1㎒
KBS 제3라디오 사랑의 소리 방송 AM 1134㎑/FM 104.9㎒
KBS 1FM Classic FM FM 93.1㎒
KBS 2FM Cool FM[DMB] FM 89.1㎒
KBS 한민족방송 제1방송 AM 972㎑, 단파(SW) 6015㎑, 제2방송 AM 1170㎑

9.1. 지상파 텔레비전 방송


1961년 12월 31일 저녁 7시 30분 남산연주소에서 첫 전파를 쏘아올렸다. 당시 화재로 문을 닫고 방치되어 있던 DBC 대한방송의 TV 장비와 인력을 인수하였고, DBC가 원래는 KORCAD-TV(HLKZ)라는 RCA 제휴 민간방송이었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아시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후덜덜한 방송장비를 갖고 있었다.[445]

현재 지상파 TV채널로는 KBS 1TVKBS 2TV를 운영하고 있으며, 1981년부터 교육방송인 KBS 3TV도 있었지만[446] 1990년에 독립해서 한국교육방송공사가 되었다.[447]

참고로 KBS1에는 한국의 지상파 TV채널 중 유일하게 상업광고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448] 하지만, 1994년 10월 1일 이전에는 상업광고를 했었다. KBS1에서 대놓고 9시뉴스가 시작하기 전에 XX약품 광고가 나왔다.)[449][450] 다만 아무 시간대나 프로그램에다가 광고를 하는 방식은 아니었고, 주로 스포츠 중계방송이나 특집 프로그램에다가 광고를 편성하거나 특정시간대를 정해서 광고를 하는 방식이었다.

2012년 10월 8일 05:00부터 KBS 1TV의 24시간 방송을 개시했다. 지상파로서는 최초다.[451]

KBS2의 경우 1980년에 내려진 신군부의 언론통폐합에 명시된 신문-방송 겸영 금지로 과거 민영방송이었던 동양방송이 한국방송공사로 이관되며 추가된 채널이다. 보도와 교양프로그램은 기존의 KBS 채널이었던 KBS1에서 담당하고 있었기에, 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KBS2에서 뉴스 프로그램의 비중이 적었으며, 심지어 각종 대형사건 및 중요 행사와 관련하여 다른 지상파 방송국들은 뉴스속보나 생중계를 내보내는데 혈안이 되는 시점에서도 정규방송을 당당하게 방송해 주던 단 둘 뿐이였던(EBS 포함) 지상파 채널이었다. 그래서 이 당시에 KBS2는 전쟁이 나도 드라마나 쇼프로를 방송해 줄 거라는 우스갯 소리가 돌기도 했다.

2003년부터 KBS1은 푸른색(한색) 계열 '큐브' 디자인을, KBS2는 비슷한 시기부터 노란색(난색) 계열 '서클' 다자인을 BI로 쓰고 있다. 2015년 이 CI를 중심으로 방송 디자인이 개편된 적이 있었는데, KBS 9시 뉴스의 2015년 오프닝이나 KBS2 NEXT 영상 등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2018년 이후에는 대놓고 채널 로고와 방송 디자인에 적용되어 있는 상황이며 표어도 각각 '오늘을 담는 창', '내일을 여는 빛'이 붙었다.

2021년 2020 도쿄 올림픽을 계기로 UHD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를 시범적으로 시작했고, 현재는 9-2번에 KBS NEWS D를 송출하고 있다.

한편 해외에서 시청할 수 있는 KBS 월드라는 채널도 운영하고 있는데, 자체제작이 아니라 그냥 방송콘텐츠에다가 외주 업체에서 만들어온 영문 자막을 그대로 덧씌워서 내보내는 형식이다.[452] 시청 국가 및 지역에 따라 편성표는 각각 운영된다. 그래도 해외에서 한국 문화에 목마른 사람들에겐 꽤 인기있는 모양이다.[453]

KBS 예능 프로그램의 경우, 효과음을 돌려쓴다.

9.2. 지상파 라디오 방송


과거에는 '사회교육방송'이란 것도 존재했으며[460], 섬마을 사람들은 매일 오전 9시 45분부터 방송되는 일기예보를 듣고 실제로 일기도를 그렸다. 물론 대략 80년대 얘기이며, 이제는 매시 58분마다 KBS 제1라디오에서 날씨를 전하고 있다.[461][462]

하지만 국가기반 공영방송국 주제에 KBS 2FM은 광고방송을 이유로 수도권에서만 방송한다.[463] 그래서 지방에서는 U-KBS MUSIC이라는 T-DMB V-Radio방송을 들어야하는데 한 프로그램만 릴레이를 하지 않고 자체방송을 했었지만 지금은 모든 프로를 청취할 수 있다가 면허문제로 프로그램 대신 새 자체 프로그램이 송출되고 있다.

9.3. PP(KBS N)

  • KBS drama
  • KBS joy
  • KBS N SPORTS
  • KBS W(현 KBS Story): '삶을 리드하는 여성'이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내걸고 2013년 1월 1일 개국. 케이블TV 각 SO에서 기존 KBS Prime을 송출하던 번호를 배정받았다.
  • KBS Kids
  • KBS LIFE: 2015년 3월 8일자로 KBS Prime에서 변경.
  • KBS N PLUS: 2017년 6월 개국한 OTT 전용 채널.

지상파 채널 외의 계열 방송사로는 KBS N이 있으며, 케이블 채널로 KBS drama, KBS joy, KBS N SPORTS, KBS W, KBS Kids, KBS N LIFE를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KBS위성1,2를 관할하는 위성방송 PP로 출범했으나 해당 채널들이 전부 폐국하면서[464] 2006년 이후 유료방송 PP로 노선을 전환했다.

9.4. 인터넷 방송

KBS의 인터넷 전용 뉴스채널. 지상파 UHD TV로도 송출하고 있다.
KBS N 전 채널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편성하는 OTT 전용 채널, 2017년 6월 개국했다. myK, wavve 등에서 볼 수 있다.

9.4.1. esports KBS

e-스포츠 전문 유튜브 채널.

9.5. 유튜브 채널

운영 소관 부서는 편성본부 멀티플랫폼편성국이며, 2016년부터 3년 동안 미래사업본부 산하 디지털서비스국이었으나, 2019년 조직 개편 후 편성본부 산하로 이동되어 '디지털미디어국'이 됐다가, 2021년 조직 개편으로 현 명칭이 되었다.

9.6. 실시간 스트리밍 및 VOD, AOD

1995년 10월 9일에 한국 방송사로서 최초로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한 이래 1997년 뉴스클립 다시보기 서비스, 1998년 본격적인 VOD 서비스 시작 때부터 2001년 초반까지는 주로 리얼 플레이어를 통해 회원가입/로그인 없이 무료로 실시간 스트리밍 및 VOD, AOD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지만[465] 이후 회원제로 전환되었고, 2006년에 라디오 전용 프로그램인 Kong 플레이어가 출시되었다. 2012년경에 myK가 출시되어 이제는 회원가입/로그인 없이도 실시간 스트리밍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모바일 방송 서비스를 막아놓은 MBC3분마다 광고를 봐야 하는(...) SBS와도 차별화되는 부분. 한국교육방송공사도 EBS Play를 무료로 서비스하고 있다. 하지만 BBC의 iPlayer(플래시 기반)와 다르게 K플레이어는 그놈의 ActiveX 설치를 요구하기에 Internet Explorer 웹브라우저에서만 사용가능(...). 다만 일반적인 AOD, VOD는 2012년경 방영분부터는 WMA/WMV기반이 아닌 AAC/MP4 기반이기에 크롬 등 다른 웹브라우저에서도 이용 가능. 홈페이지 자체는 2002년부터 자회사 KBS 인터넷(구 크레지오닷컴)이 위탁 운영을 맡기 시작했고, 2011년 그 회사가 KBS 미디어로 합쳐지면서 KBS 미디어가 운영 중이다.

KBS의 VOD 서비스가 다른 방송사와 차별화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저화질에 한해 무료라는 점. EBS마저도 일부 VOD가 유료이다. 그러나 KBS만큼은 무료 VOD 서비스를 고수하고 하는데, 고화질 다시보기의 경우 WMP 시절에는 일정 기간 동안 300K까지 제공했다가 2005년경 이후 '고화질(700K)'을 추가시켜 KBS 미디어의 유료 VOD 사이트인 콘피아와 연동되게 했고, 2010년대 들어 일정 기간 동안 무료로 제공해주거나 wavve로 연결되게 했다. 2018년 7월에 KBS 홈페이지가 개편된 이후에는 드라마(일일 드라마를 제외한 월화 드라마/수목 드라마 등 평일 및 주말 드라마들)와 해피선데이, 해피투게더,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 등 일부 예능 프로그램은 3주 정도 유료 서비스를 하다가 기간이 지나면 저화질에 한해 무료로 전환된다.[466] 수신료를 받는 마당에 이거라도 무료로 해주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다만 타 방송사도 무료 VOD/AOD 서비스가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문화방송과 SBS는 라디오 AOD 서비스를 팟캐스트를 통해 무료로 시행 중이고, 지역방송지역민방의 자체 제작 TV 프로그램일 경우 무료로 제공된다. 하지만 재미가 없다. 재미있는 방송도 있는데요? 케이블방송에서도 온게임넷 등은 무료로 제공되기는 하지만 온게임넷의 모회사가 온미디어였던 시절의 VOD는 서비스를 중단하고 유튜브로 옮겼다. 그 밖에 TVING에서 종영 후 일정기간 지난 프로그램들의 VOD도 마찬가지로 저화질에 한하여 무료로 풀린다.

2018년 7월에 KBS 홈페이지가 개편되면서 대부분 프로그램의 VOD 서비스를 하지 않고 있으며 일부 서비스하고 있는 프로그램들도 대부분 이전 방송분은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 이는 라디오 프로그램도 역시 마찬가지이다.[467] 이로 인해 옛날 프로그램 매니아들은 당연히 불만을 품어왔고, 일부는 비싼 돈 들여가며 KBS 미디어를 통해 프로그램 복사구매를 하는 경우도 있다. 2000년대 중후반 ~ 2010년대 들어 홈페이지에서 옛날 프로그램 다시보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SBS, MBC와 비교해 더욱 까이나, 2019년부터 '옛날티비', '깔깔티비', '크큭티비', 'KBS Drama Classic', '같이삽시다', 'KBS실험실' 등지 유튜브 채널들에 옛날 프로그램 업로드를 분산시키고 있다.[468]

이곳에서 독도의 영상을 실시간으로 스트리밍 중계해 준다. 청와대, 정부서울청사, 서울특별시청 등지의 구내 TV에 나오는 것과 같은 영상이다.[469] 그리고 평창 동계 올림픽 D-50 특별 생방송도 방송 이후 다음날에 VOD 서비스를 시작했다.

9.7. 팟캐스트

2013년까지는 Internet Explorer 웹브라우저를 통해 접속한 후 별도의 프로그램(ActiveX)을 설치하여 로그인후 다운로드해야 하는 등 BBC, MBC와 비교해도 폐쇄적으로 운영해왔으나 2014년부터는 아이튠즈 체제로 전환하여 회원가입/로그인 없이도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되었다.

10. 방송 현황

10.1.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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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재난 방송

KBS는 재난전문방송사이다.

아직은 지진재난방송에 대해서는 비교적 미흡하다. 옆나라 일본을 보면 지진 2초 후 세부적인 지도, 상황, 앵커의 대처, 지진전문방송으로 넘어가는 등 대처에 적극적이다. 아무래도 지진이 자주 발생하는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2021년 12월에 발생한 ‘제주 서남서 41km 해역 지진’에서 대처하는 모습은 ‘경주 지진’, ‘포항 지진’ 때의 보도보다 훨씬 나아졌다. 방송 송출 중, 경보와 대략적인 지진 상황을 알리고, 3~4분 후에 지도를 포함한 지진파가 미치는 지역, CCTV 등지진 피해 현황이 담긴 세부적인 내용을 송출, 보도하였다.

10.3. 방송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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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네트워크

서울 외에도 지방에 9개 방송총국, 9개 방송국, 1개 센터를 두고 있으며, 13개 해외지국을 개설하여 운영 중이다. 또한 각 지역방송국은 MBC-지역 MBC, SBS-지역민방처럼 네트워크 협력관계가 아닌, KBS라는 단일조직 내에 있다. 따라서 순환발령을 통해서 본사 직원이 지역으로 내려갈 수도 있고, 반대로 지역방송국 직원이 본사로 올라올 수도 있다. (다만, 신입사원 선발시에 전국권 TO와 지역권 TO를 분리해서 뽑는데, 전국권 TO만 서울본사로 바로 발령이 가능하고, 지역국 TO로 입사한 경우 최소 5년간 서울 본사로 전출이 불가능하다.)[470][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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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사, △: 방송센터, ◇: 방송총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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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지역국 통폐합으로 없어진 KBS 방송국
강원권
영월국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금강공원길 84-3
태백국 강원도 태백시 문화로 36 (황지동)
속초국 강원도 속초시 장안로3길 22 (동명동)
충청권
공주국 충청남도 공주시 의당로 19 (신관동)
호남권
여수국 전라남도 여수시 관문6길 10 (관문동)
남원국 전라북도 남원시 만인로 92 (향교동)
군산국 전라북도 군산시 대학로 330 (나운동)

2004년 감사원 지적사항으로 지방 방송국 통폐합이 이루어 지면서 군산시, 남원시 (이상 전주), 속초시, 태백시 (이상 강릉), 영월군(원주)[472], 공주시(대전), 여수시(순천) 7개 방송국이 인근 방송(총)국으로 합쳐졌다. 그런데 KBS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라디오 주파수 목록에는 10년이 넘도록 아직도 이 7개 방송국이 독립된 방송국으로 적혀있다(...).[473] 당시 각 지역에서 반발이 많았으며, 여러 사연도 많았다. 여수방송국은 전라남도 동부권에서 순천방송국보다 훨씬 먼저 생겼지만 결국 문을 닫아야만 했다. 현재 여수국은 철거되어 아파트가 들어섰다. 태백국 역시 철거되어 아파트 공사가 진행중이며, 전라북도에서는 2개의 지역국이 문을 닫으며 전주총국만 남게 되었으며, 충청남도에서도 공주국이 문을 닫으며 대전총국이 대전·충남 전역을 책임지게 되었다.[474] 그리고 유일하게 군에 있던 영월국이 없어졌다. 참고로 폐국된 영월국이 이후 영화 라디오 스타의 촬영지로 쓰인 바 있다.

라디오에서 1990년대 중반부터 2015년까지 본사에서 지역국으로 시보나 방송시작멘트를 넘길 때 나는 효과음(띠리리리~ 띠리리리~)이 난 적이 있었다. 2016년부터 사용하지 않고 있다. 지역국 멘트를 송출할 때 서울 본사 멘트가 희미하게 들리곤 했었다.

2019년 8월 들어 KBS 본사 측에서 적자 경영개선 대책 중 하나로 지역방송국 기능축소를 제시해 구성원들의 반발이 크다. 2020년부터 지역방송국(경인, 강릉, 울산 제외)의 뉴스를 비롯한 TV 로컬방송을 폐지시키고 모두 상부 총국으로 이관하는 이른바 거점센터 기능으로 전환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렇게 되면 지역방송국에서는 라디오 프로그램 제작,송출과 수신 개선 서비스, 수신료 징수 등의 반쪽 기능만 가능하게 된 셈이다. 당장 이 내용이 알려지자 해당 지역 언론에서 기사들이 나오고 있고, 몇몇 구성원들은 삭발시위까지 했다. 심지어 여수MBC는 뉴스데스크를 통해 옆동네 KBS순천방송국의 기능 축소 문제를 보도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KBS는 2020년 2월 3일부로 지역총국 중심 뉴스 통합 정책을 밀어붙여 시작했다. 매주 월-목 KBS 뉴스 7은 본사 뉴스를 받지 않고 40분 통으로 지역뉴스를 진행하며[475] 다만 을지역국의 경우 KBS 뉴스 9 로컬방송은 살려 놨다. 그러나 애초에 을지역국의 취재인력이 취재기자 2명, 영상기자 1명(...)으로 확 줄었기 때문에 을지역국에서 만들 수 있는 리포트기사는 꼴랑 1~2꼭지에 불과해 이거 말고는 그냥 총국에서 만든 기사를 중계하는 셈이 되었다. 게다가 2월 중순부터 코로나19 사태가 확산되며 KBS가 재난방송 체제로 접어들자, 여기에 총국중심으로 전 취재인력이 투입되다 보니 뉴스9 로컬도 총국에서 모두 때우고 있다.

10.5. 계열사

  • 해산/매각
    • KBS 문화사업단: 구 한국방송사업단. 1999년 KBS 영상사업단으로 합병.
    • KBS 인터넷: 구 크레지오닷컴. 2011년 KBS 미디어로 합병.
    • KBS 제작단(현 한국방송제작단): 1999년 코네스컨소시엄으로 매각.
    • KBS LA: 구 미주한국방송(KTE). 기존의 SBC(중앙일보 계열)와 KTB(한국일보 계열), TV 코리아 3개 방송사를 합병한 방송사로 2008년 KBS 아메리카에 합병.
    • 한국방송출판: 구 KBS미디어 출판사업부. 《TV 유치원》 및 《굿모닝 팝스》 등의 발행처다.

10.6. 공익재단

  • KBS 강태원복지재단

11. 정기간행물

12. 기록물

  • KBS 연감 (1961~1973/1995~)[482]
  • KBS 연지 (1975~1995)

13.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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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논란 및 사건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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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노동조합

  •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교섭대표노조): 민주노총 소속. 2009년 KBS 1노조의 우경화에 반발한 젊은 조합원들이 1노조를 탈퇴한 뒤 만들었으며, 2018년부터 1노조를 제치고 교섭대표로 승격되었다. 특히 2017년 공영방송 총파업과 투쟁에 앞장섰던 노조 출신들이 주요 보직을 장악해 공영방송이 아닌 노영방송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 2018년에는 언론노조 방송사비정규직지부 KBS분회(방송차량서비스 노조)를 통합해 '방송차량지부'로 개편시켰다.
  • KBS 노동조합: 1988년 결성. 미가맹. 원래 메인노조이자 언노련의 핵심이었으나, IMF 시대에 지역방송국 통폐합 과정에서 기술직들이 대거 갈려나가면서 기술직 출신 조합원들과 아나운서, PD 출신 조합원들 간의 내분이 일어났고, 결국 기술직들의 지지를 받아 2006년 당선된 박승규 노조위원장(전 스포츠국장)이 이명박 정부정연주 사장 축출 시도에 암묵적 지지를 보내면서 언론노조에서 제명되었다. 2009년 새노조가 생긴 후 대항 노조 자리를 굳히고 있으며, 2018년 양승동 사장 취임 후 좌천되거나 반대 성향을 지닌 옛 간부 혹은 사원들이 이쪽에 많이 몸담았다.
  • KBS 공영노동조합: 미가맹. 2011년 복수노조 허용 후 무보직 1직급 직원들이 결성한 노조.

16. 교통편

16.1. 본관ㆍ신관

지하철

버스

16.2. 별관

지하철
샛강역
여의도역

버스

17. 메일 주소


사원들의 이메일 주소가 비범하다. 박대기(waiting)를 필두로 최선중(best-ing), 신선민(freshmin), 김빛이라(glory), 정새배(newboat), 안양봉(beebee), 노태영(lotte0), 김진화(evolution), 이효용(utility) 등 자신의 이름을 활용해 재미있는 이메일 주소를 만든다. 단순히 이름을 따서 ptk(박대기) 식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 이름을 그대로 직역해 주소로 사용하는 것이 포인트.

박대기가 트위터에서 밝힌 바로는 본인들이 직접 저러한 이메일 주소를 만들어서 사용한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지으면 이메일 주소가 더 쉽게 각인이 될 것이고, 그러면 제보가 더 많이 들어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지은 것이라고. 개중에는 면접 당시부터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만들어서 온다는 열정적인 지원자들도 있다고.

18. 여담

  •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 가맹사이며 2002년부터 이사국 지위를 지녔고, 2011~2018년 및 2021년부터 두 차례 회장사를 맡을 정도로 일본 NHK, 중국 CCTV 등과 더불어 아시아 방송계에서 영향력을 떨치고 있다.
  • 간혹 영국BBC독일ARD, ZDF, 도이칠란트 라디오와 프랑스프랑스 텔레비지옹, 라디오 프랑스 그리고 미국PBS, NPR 등 해외 공영방송들과 비교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회적 역할이나 개념상으로 일본NHK와 비슷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고, 실제로도 많은 제작 협력 및 교류를 하고 있다.[483] 과거 KBS가 공영방송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할 때 NHK의 방송 포맷을 많이 벤치마킹하기도 했고, 현재도 비슷한 점이 보인다. 이처럼 일본 NHK와 닮은 방송성격 때문에 아직도 기성세대에서는 '국영방송'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정확한 법인격적 성질은 국영이 아닌 영조물법인체로서의 공사(공기업)이다.[484] 예산과 인사문제는 KBS이사회에서 심의, 의결하며, 결산에 있어서만 방통위 제출 후 감사원 검토 및 국회 의결 절차를 진행하게 되어 있다. 정부는 KBS이사 임명을 통해 간접적으로 지배할 뿐, 민주화 이전처럼 재정과 인사에서 통제를 받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 점이 다른 공공기관과 구별되는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다만 전시방송 및 재난방송을 주관하는 방송사인 점, 대북방송을 송출한다는 점 등은 과거 내무부 산하 국영방송 시절의 흔적이고, 여전히 정부와 밀접한 관계인 것은 사실이다. 케이블의 지상파 관련 논쟁에서 KBS 1TV가 EBS와 더불어 지상파 채널 중 의무재송신 대상 채널이라는 점이 알려진 것도 이의 흔적 중 하나이다.
  • KBS를 공영방송이 아닌 '국영방송'으로 아는 사람들이 좀 있는데, KBS측에서는 자사를 국영방송으로 칭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 시절 새천년민주당 조순형 대표와 장전영 대변인이 KBS보고 "국영방송이 어쩌구" 했다가 소송맞고 사과한 후에 취하한 적도 있으며, 그 이후에도 정부 관계자 등 높으신 분들이 방송국을 방문해서 국영방송이라 했다가 갑분싸가 나는 일이 종종 있다.[485] KBS에서 떨어져나온 EBS 역시 공영방송으로, '국영방송'이라는 단어를 매우 싫어하니까 주의. MBC는 KBS나 EBS처럼 칼같이 '공영방송'이라는 표현을 지키지는 않는다. 그래서 KBS를 깔 때 일부러 정부 뜻대로 움직인다는 뜻으로 국영방송이라고 부르는 반감층도 있다.
  • 2015년 4월 1일 네이버 실검에 'KBS 일베 기자'가 올라왔는데, 만우절 장난이 아니라 일베저장소 활동 의혹을 받는 KBS 수습기자가 31일 정식 기자로 임용됐다는 내용의 진짜 기사다. 링크(네이버뉴스) 링크(소방방재신문) 이 경우 사규에 어긋나지 않고 외부 법률자문에도 문의결과 임용을 취소하기 어렵다고. 일단 해당 수습기자는 정책기획본부 남북교류협력단(일반직 4직급)으로 파견발령되었으며, 이 부서는 취재·제작 업무를 하지 않는다. 그리고 2016년 3월에는 보도국으로 발령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기사보기 2018년 2월에 춘천으로 발령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기사보기 당연히 춘천지역 기자들은 반발하고 있다.

1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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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화질만 제공되며, 고화질 이상은 my K에서 사용하거나(일반 고화질만 제공) wavve 등에서 이용권을 구입하여 시청이 가능하다. 이는 2TV도 마찬가지. NEWS D의 경우 지상파 TV채널에도 나오지만 베이스는 유튜브등에 방송하는 온라인 전용 채널에 맞춰져있다. 따라서 이것은 유튜브에 가서 1080p로 맞추면 고화질로 볼 수 있다.[2] 해당 주소에서도 온에어 서비스가 되고 있다. 하지만 PC에서만 시청할 수 있으며 화질은 720p로 나쁘지 않은 편이다.[3] 공식 홈페이지 문구.[4] TV 채널 공식 통합 슬로건.[5] Korean Broadcasting System의 앞글자를 따온 것이다.[6] 지번주소로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8.[7] 그러나 KBS의 경우 대통령을 역임했던 사람 때문에 한 방송사다른 방송사에 흡수해서 만들어져서 두 개의 채널이 되었으며 아날로그부터 시작해서 두 개의 채널 번호 자체가 다르다. (7번 (2TV), 9번 (1TV)) EBS의 경우에는 동일 채널이었다가 다채널방송 기술을 이용해 하나의 채널을 분리하여 만들어진 채널이기 때문에 두 개의 가상채널번호 앞자리(10-1번 (1TV), 10-2번 (2TV))가 동일하다.[8] 이 날은 위에도 적혀 있듯이 한국방송공사의 공영방송으로서 창립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슬로건 변경도 3월 3일에 이뤄지며 자체 공식 휴일이기도 하다.[9] 지금 KBS 한국방송이라 호칭하는 부분을 2001년 3월 2일 이전에는 전부 한국방송공사 KBS라고 했다.[10] 2003년 6월, 新 KBS상 정립 이후 잘 쓰이지 않는다.[11] 1979년 12월 31일까지는 '조화 속의 협조'였다.[12] 문구 자체는 1976년 여의도 사옥 건립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친필탑에 새겨져 있다.[13] 이 로고가 적용된 ID 영상[14] 다만 예시 3의 KBS부산의 경우, 사옥 이전 직전까지 옛 로고를 혼용했다.#[15] 방송국 차량은 2세대 로고를 적용하고 자막은 3세대 로고를 적용하였다. 이 방송은 논산에서 촬영한 것으로 방송국 차량은 KBS부산처럼 지방국에 신 로고 적용이 늦었던 사례로 보아 화면 화질상 번호판이 보이지 않지만 인근 KBS대전방송총국 차량을 지원했을 것으로 추정된다.[16] 일본판 슈퍼 패미컴의 영문 로고타입도 이 글씨체에 기반한 것이다.[17] 다만, 2004년까지는 완전히 자리를 잡은게 아닌지 가끔 오른쪽 하단에 보이는 경우도 간간히 있다. #[18] KBS TV에서 크레딧으로 나오는 '한국방송'이라는 글씨체[19] KBS 전용 차량과 신문광고에서 활용되었다.[20] SBS2000년부터, MBC2005년부터, EBS2001년 ~ 2004년(부분수정)부터 현재의 로고를 사용하고 있다.[21] 2004년 12월 15일 CI 최초 발표 후 약 4개월만에 CI 교체를 완료한 MBC와 달리 KBS는 CI를 2023년 1분기 말에 발표하고 같은 해 3분기 말에 교체한다는 계획으로 발표했다.[22] 참고로 이 회사는 MBC의 마스코트인 엠빅의 초기 디자인도 했던 곳이다.[23] 이쪽은 로고 특성상 한명이 아니라 3명이다.[24] 94년 하반기부터 2003년 상반기 KBS 2TV 한정. 현재는 쓰이지 않는다.[25] 1라디오,1TV 전용 슬로건.[26]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사용한 2TV용 슬로건.[27] 2007~2008년에 TV 자체 SPOT에 나왔던 슬로건으로 현재에는 쓰이지 않지만 KBS 2FM 무광고 시보와 1FM 자체 광고뒤 멜로디로만 나온다.[28] KBS의 인터넷 전용 슬로건. 유튜브 등에 올라온 각종 K팝 영상 등에서 KBS 공식계정으로 올린 클립 뒤쪽에 삽입되어 있다.[29] 2015년 2TV 한정 슬로건.[30] 2TV에서만 사용됐다. 2018년 이후 슬로건이 바뀌었다. 대구방송총국 ID에는 2021년 5월 30일까지 사용했다.[31] NEXT/ID 영상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슬로건. 유튜브에 이 슬로건만 검색해도 ID 영상들이 나온다.[32] 2018년 남북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부터 나온 슬로건이며 동시에 KBS의 2019년 방송지표였다.[33] 2021년 5월 31일부터 사용 중인 1TV 전용 슬로건.[34] 2021년 5월 31일부터 사용 중인 2TV 전용 슬로건.[35] 2021년 5월 이전부터 사용 중인 KBS NEWS D 전용 슬로건.[36] 70년대 ~ 80년대에 사용했던 슬로건. 이쪽도 라디오 시보멘트에서 나왔다.[37] 70년대 ~ 80년대에 사용했던 슬로건. 이쪽도 라디오 시보멘트에서 나왔다.[38] 1980년대부터 90년대 초까지 사용한 슬로건. 라디오 시보와 방송 시작, 종료 멘트에 쓰였던 슬로건이었다.[39] 1993년 가을개편부터 쓰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2001년 광고방송 시작 전까지 KBS 2FM, 2008년까지 KBS 제1라디오에서 시보멘트로 쓰였다. 그 후 2014년까지 KBS 1FM에서 시보할 때 나왔지만 2015년 개편으로 시보멘트가 개정되었고, 현재는 KBS 지역국 FM방송에서만 나온다. 다만, '한국인의 중심채널'을 밀고 있는 1라디오를 제외한 어느 KBS 라디오 채널이든 오전 5시 시보에 아직도 나오긴 한다. 예외로 춘천FM은 2015년 본사처럼 '클래식을 더 가까이'라는 멘트를 하고 있으며, 2023년 기준 광주 2라디오는 다른 시간대와 마찬가지로 'KBS 해피FM 제 2라디오가 다섯 시를 알려드립니다' 라는 멘트를 송출하고 있다.[40]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사용한 1라디오 전용 슬로건.[41] 2007~2008년에 TV 자체 SPOT에 나왔던 슬로건으로 현재에는 쓰이지 않지만 KBS 2FM 무광고 시보와 1FM 자체 광고뒤 멜로디로만 나온다.[42] KBS 1TV, KBS 1라디오, KBS 3라디오에서 사용하는 슬로건. KBS 뉴스 9 시작 전에 이 로고송이 나온 다음 시보음이 울리고 뉴스를 시작한다.[43] 1TV와 멜로디를 공유하기도 했다. 1992년 당시에는 사랑과 기쁨이 솟는 KBS 2텔레비전을 전자음악 버전으로 편곡한 버전과 같이 썼던 것으로 보인다.[44] 보컬은 가끔 나왔고 거의 반주 처리[45] 다만, 음질이 좋지 못하다.[46] 95년에서 2001년까지 쓰인 KBS2 로고송이랑 같은 혼성 합창단이 불렀고 비슷했다.[47] 장혜진이 불렀으며, 현재는 KBS 1TV 한정. '국민의 방송' 부분을 생략한 짧은 버전도 있었다. #[48] 오연준군이 불렀다.[49] KBS 합창단이 불렀다.[50] 자세히 들어보면 텔'리'비전이라고 발음한다.[51] 1992년에는 이 음악을 전자음악 버전으로 리메이크해서 썼으며, 가사는 뒷부분 "KBS 제2텔레비전"만 송출된다. #[52] 자세히 들어보면 현재 KBS1 로고송을 부른 같은 합창단이 불렀다는 걸 알 수 있다.[53] 가 불렀다. 윤도현장나라가 부른 버전도 잠깐 나온 적이 있다. 2013~4년 즈음부터 KBS 2TV 한정으로 보컬이 빠진 피아노 버전으로 나오고 있었으며, 피아노 버전은 대구방송총국 ID에서 사용 중이다.[54] 지역 방송국(특히 KBS울산방송국)에서는 아직도 가끔 항상 쓰인다.[55] 2007-2008년 TV SPOT 로고송으로 나왔으며 현재 KBS 2FM과 KBS 제2라디오에서 시보할 때 나온다. 2015년 KBS 2FM 개편으로 시보멘트는 개정됐지만 로고송은 그대로 쓰이고 있고 KBS 제2라디오에도 지역 2FM 시간대를 제외하고 쓰이고 있다.[56] 옥상달빛이 불렀다.[57] 각각 2개의 멜로디가 있으며 앞의 '대한민국 중심채널' 부분을 생략한 버전과(음원 길이는 같다) 아예 짧은 버전 총 3가지가 있다.[58] 해피FM 무광고 시보할 때 나온다.2022년 7월 7일부터 지역 2FM 송출 시간대에만 나온다.[59] 2018년 남북정상회담 때부터 쓰여지다가 최근에는 잘 안쓰이는 추세인데, KBS 한민족방송에서는 여전히 로고송 형태로 송출되고 있다.[60] 1991년 개관하였다. 본관 왼쪽에 있다. 왼쪽 전경에서는 본관과 신관 중간에 있는 동그란 건물.[61] 개그콘서트를 제작하는 개그맨들이 이곳에서 연구한다고 했다. 공개홀 뒤쪽에 있다. 2018년 미래방송센터 착공 전에 상반기부터 연구동을 철거할 예정이었다.[62] 원래는 아파트로 설계됐다. 참고[63] 개그맨 박대승이 연구동 5층 여자화장실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하였다가 1심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64] 이 신관 건물의 설계자는 바로 김중업이다.[65]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는 TS-15와 TS-D를 번갈아 가며 사용한다.[66] 주 사무실, 편집실 등은 서울에 있는 별관에 위치, 수원센터는 스튜디오 위주로 사용중[67] 죄다 한국방송공사의 임무 및 기능을 정의해놓은 항목이다. 한국방송공사법과 방송법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설립근거가 전부 방송법에 포함되었다.[68] 정원은 12인이나, 부사장 1명, 본부장 1명 공석[69] 여당추천 7명, 야당추천 4명[70] 단, 해당수치에는 KBS 인력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작가, 프리랜서, 무기/한시계약직, 파견근로자, 자회사(KBS미디어, KBS시큐리티, KBS비즈니스 등)파견인원, 단기 아르바이트, 전속단체원(관현악단, 국악관현악단, 성우 등)은 빠진 순수 정규직만 포함되어 있다. 이런 인원까지 모두 포함할 경우 대략 6,000~7,000명 정도가 KBS 내에서 근무하고 있다.[71] 2011년 대졸초임 삭감사태 이후 인상분이 반영되어 기존 8,373만원보다는 올랐다. 다만 이는 전체 평균이라 이렇게 나오는 것이고 실제 대졸초임은 약 4,500~5,000만원선으로 메이저 방송국 중 가장 짜다![72] 홈페이지 하단 왼쪽의 'KBS소개' 메뉴를 통해서 들어갈 수 있다.[73] 제작2본부장 겸임[74] 시인 심훈의 큰형.[75] 아나운서 이옥경의 남편,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의 부친.[76] 1945년부터 조선방송협회 산하였다가 1946년부터 미군정청 공보처에 소속됨. 그리고 그해 3~10월에는 잠시 중앙방송과장임.[77] 1968년부터 서울중앙방송국에 통합.[78] 중국군에서 활동하며 광복군을 도운 독립운동가이자 군인, 시인.[79] 1968년부터 서울중앙방송국에 통합.[80] 1968년부터 서울중앙방송국에 통합.[81] 공사화 이후 본사 부사장, 공연윤리위원회 위원장, 본사 사우회장, MBC 사장,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이사장 등을 역임함. 2016년 작고.[82] 제7대 문화공보부 차관 역임. 이후 (주)현대경제일보-일요신문(현 한국경제신문) 사장으로 영전됨. 1985년 작고.[83] 선임 당시 낙하산 논란이 일면서 반발이 심해지자 자진사퇴하였다. 해당 문서 참고.[84] 다만 정연주를 이원홍에 빗댄 것이 정연주 입장에서는 크게 억울한 것이 정연주는 KBS 뉴스9 아이템 선정에 개입을 하지 않은 현재까지의 KBS 사장 가운데서 거의 유일무이하다싶은 유일한 인물이었고 현장 PD나 기자들의 아이템 선정제안에 대해서는 잘 받아들었던 인물이었기 때문. 하지만 영월이나 군산 KBS를 폐지시키는 등 구조조정 드립을 쳤기에 PD나 기자는 몰라도 지방방송사 직원이나 간부들 사이에서 왕PD라고 욕먹는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2010년대 와서는 구관이 명관이지 하며 재평가된다지만.[85] 가장 대표적으로 홍두표(동양방송 도쿄특파원),박권상(동아일보),정연주(동아일보),이병순(4기 기자),김인규(1기 기자),고대영(11기 기자), 김의철이 있다.[86] 해임 뒤 한국방송개발원장, SBS 2대 사장 역임. 2016년 3월 10일 작고.[87] 1977년 부터 1979년까지 KBS대구방송총국장. 퇴직 후 (주)우방 사장을 역임함.[88] 전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위원장. 본사 최초의 차장 출신 부사장.[89] 본사 최초 부사장 2인 체제 운영.[90] 1990년 본사 파업때 노조위원장.[91]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본사 보도본부장.[92] 1996년 부터 1998년까지 KBS공주방송국장, 2004년 편성본부장, 2005년 TV제작본부장. 부사장 선임 동시에 4년만에 KBS의 부사장 2인 체체 부활. 2010년에 금품수수 혐의로 유죄 선고 받아 제명.[93] 2003년부터 2005년까지 KBS춘천방송총국장. 2020년 작고.[94] 2006년부터 2008년까지 KBS춘천방송총국장. 2017년 6월에 언론부역자 3차 명단에 올랐다.#[95] 2015년부뒤 KBS 감사로 이동. 2017년 5월에 언론부역자 2차 명단에 올랐다.#[96] 본사 유일 여성 부사장, 이후 한국정책방송원장 역임.[97] 2008 ~ 2010년까지 KBS 미디어 사장, 2012 ~ 2014년까지 KBS창원방송총국장. 2017년 5월에 언론부역자 2차 명단에 올랐으며, 2018년 11월 본사 사장 공모와 2019년 EBS 사장 공모에도 나섰으나 떨어졌다. 2020~2021년까지 인터넷 뉴스사이트 <경제포커스>에 칼럼 '금동수의 세상읽기'를 기고한 뒤 2022년 '공정언론국민연대' 발기인으로 참여.#[98] 역대 부사장 중 유일하게 임기 1년만에 사망.[99] 본사 PD협회에서 영구제명. 퇴임 후 2019년 자유미디어국민행동의 운영위원을 맡은 바 있고, 2022년 20대 대선을 앞두고 윤석열 캠프 홍보특보로 선임됨.[100] 2006년에 <KBS와 권력>이란 책을 내면서 그동안 유지돼 온 권력과 방송의 기생 자체를 비판한 바 있으나, 방송위원회(現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재직하던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 유승민 의원과 윤명식 KBS 심의위원, 전직 방송사 대표와 함께한 자리에서 "우리가 정권을 되찾아오면 방송계는 하얀 백지에다 새로 그려야한다."라며 방송의 독립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 논란이 일었다. 출처 다만 그는 2016년 한겨레 기사에서 그때의 발언에 대해 "방송을 선거의 전리품으로 쓰지 말고 제도를 뜯어고치자는 것"이라 밝혔다. 정연주의 해임 이후에도 18 ~ 22대 사장 후보로 매번 출마했다.[101] 최근까지 대구총국장을 역임하였다.[102]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KBS 간부로 입사하는 경우도 있었다.[103] 출처: <현장기록, 방송노조 민주화 운동 20년> - 새언론포럼 저. 커뮤니케이션북스. 2008.[104] 1928년생. 6.25 전쟁과 9.28 서울 수복 소식을 최초로 방송한 아나운서로 알려져 있다.[105] 1982년 정년퇴임, 1988년 작고.[106] 강경화외교부장관의 아버지이다. 1998년 작고.[107] 1964년 MBC 이직, 2020년 작고.[108] 1934년 12월 5일생. 1963년 DBS 이직 후 언론통폐합과 함께 KBS 재합류. 1984년 퇴직 후 수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와 인문대학장을 역임했다.[109] 1961년 MBC 이직, 1964년 TBC 이직, 2019년 작고.[110] 1964년 MBC 이직, 1984년 작고.[111] 1964년 MBC 이직, 현재 예지원 원장.[112] 1964년 TBC 이직 후 언론통폐합과 함께 KBS 재합류.[113] 2020년 작고.[114] 1994년 퇴사, 2021년 작고.[115] 춘천방송국, CBS를 거쳐 언론통폐합과 함께 KBS에 재합류. CBS 시절 공/민영 합동방송단에 취재부장으로 합류하여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활약했다.[116] '욕이라는 건 말이다'로 잘 알려진 그 배우이다. 1960년 성우, 1969년 배우로 전직. 김영길, 김영옥 두 아나운서는 부부 관계이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인물의 문서 참조.[117] 2020년 작고.[118] 1997년 정년퇴임. 28기 이상협 아나운서의 아버지이다.[119] 1939년 2월 4일생, 1971년 7월 퇴사.[120] 1964년 MBC 이직.[121] 1964년 TBC 이직 후 1973년 공사화와 함께 KBS 근무, 1993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 가요무대 MC.[122] 1994년 명예퇴직. 1968년부터 1985년까지 대한뉴스의 내레이터를 담당했다.[123] 1969년 MBC 이직[124] 퇴직이후 방송위원 자격으로 PSB에서 2005년까지 스포츠 중계.[125] 1998년 퇴직.[126] 1937년생. 1994년 명예퇴직 후 1995년에 KBS와 계약하여 1996년까지 스포츠 중계를 맡았으며,# 2002 월드컵에서는 박영웅 아나운서와 함께 SBS에서 HD 방송의 캐스터를 맡았다. 9대 KBS 사장과 동명이인이다.[127] MBC 개국요원 출신, 1995년 정년퇴직, 2021년 담도암으로 별세.[128] MBC 개국요원 출신, 1964년 TBC 개국 첫 방송을 한 아나운서로 알려져 있다. 1995년 퇴직 후 한국스포츠TV(현 SBS Sports)의 이사대우 방송위원으로 합류하여 스포츠 중계방송을 진행했다.[129] 1987년 퇴사.[130] 1967년 퇴사 및 군복무 후 1969년 MBC로 이적.[131] 1981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132] 2018년 작고.[133] 1980년 5.18 보도 문제로 불합리 해고당하였다가, 민주화 선언 후 1989년 복직하여 1995년 퇴사.[134] 1999년 정년퇴임. 30기 박태원 아나운서의 아버지이다.[135] 2006년 정년퇴임.[136] 이후 PD 등지 여러 직종을 전전하다가 뉴미디어국 방송부주간(1993.4~1994.8), 원주방송국장(1994.8~1996.8), 방송연수원 교수(1996.8~1998.9), 개혁기획단 국장(1998.9~1999.10), 밀레니엄기획단 국장(1999.10~2000.12), 밀레니엄기획단장(2000.12~2001.4), 경영개선추진단장(2001.4~2003.5), 정책기획센터 정책위원(2003.5~6) 등을 두루 거치다 2003년부터 3년 동안 KBSi 사장을 역임하고 광운대학교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및 정보콘텐츠대학장, 한국언론학회 이사, 한국소통학회 회장, 한국가톨릭언론인협의회 회장 등도 맡았다. 저서로는 《한국방송관계 문헌색인(1976)》, 《한국방송인물지리지(1997)》, 《한국 아나운서 통사(2010)》 등이 있다.[137] 1990년 불교방송 이직.[138] 1998~2001년 원주방송국장 역임, 2007년 정년퇴임.[139] 1971년 말 KBS 원주방송국 입사, 1972년 6월 TBC 부산방송국으로 이직, 1980년 언론통폐합과 함께 KBS 재합류.[140] 1991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141] MBC PD와 동명이인.[142] 1991년 SBS 이직.[143] 2009년 교통사고로 별세. 3기 채영신 아나운서의 남편이다.[144] 1978년 퇴사 후 초등학교 교사로 전직, 2015년 8월 교감으로 정년퇴임. 2기 이명용 아나운서의 아내이다.[145] 1983년 교양PD 전직, 2006년 정년퇴임. 개그맨 김준현의 아버지이다.[146] 1991년 SBS 이직.[147] 2007년 정년퇴임 후 2011년까지 KBS N SPORTS에서 배구 중계를 맡았다.[148] 2012년 정년퇴임. KBS 소속 여성 아나운서로서 최초로 정년을 채운 인물이다.[149] 1991년 SBS 이직.[150] 현재 아나레슨 대표.[151] 2008년 정년퇴임. 현재는 아나운서 아카데미에서 지망생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개인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다.[152] KBS로 넘어와서 기자로 전직, 2009년 정년퇴임.[153] 1987년 퇴사, 같은 해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갔다가 이후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가 1991년 귀국하여 프리랜서 신분으로 방송활동 복귀.[154] KBS 지역권 아나운서로서 본사로 발령받은 최초 사례로 알려져 있다. TBC 부산방송국에 입사하였다가 1980년 언론통폐합에 따라 KBS 부산방송총국으로 이직했다. 1994년 본사로 발령받아서 아나운서 차장, 한국아나운서연합회 부회장을 역임하고 1999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155] 1995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156] 2014년 정년퇴임. MBC 안종순 아나운서의 동생이다.[157] 2014년 정년퇴임.[158] 속초국, 춘천총국을 거쳐서 1993년부터 본사에서 근무하고 2012년 정년퇴임.[159] 현재 라디오 서울에서 활동하며(#) KBS에서도 LA 통신원으로 자주 출연하고 있다.[160] 1993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161] 2014년 정년퇴임. 현재 한라대학교 영상커뮤니케이션학부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KBS 한민족방송의 '말 트고 마음 트고'를 진행하고 있다.[162] 1993년 퇴사.[163] 2009년 작고.[164] 2021년 작고[165] 1993년 퇴사.[166] 2018년 정년퇴임.[167] 2019년 정년퇴임.[168] 1993년 퇴사, 2018년 작고.[169] 이번 기수는 전국권을 뽑지 않고 지역권만 뽑았다.[170] 2021년 정년퇴임.[171] 2018년부터 2020년까지 포항방송국장 역임.[172] 이번 기수는 전국권 1명만 뽑고, 나머지는 지역권만 뽑았다.[173] 원래는 대구총국에 입사해 근무하였으나 2000년부터 본사에서 근무하고 2014년 정년퇴임.[174] 2002년 퇴사.[175] 현재 창원KBS PD[176]BBS 불교방송 아나운서, 현재 봄온아카데미 대표.[177] 2017년 2월 22일 지병인 위암으로 별세.[178] 2019년 정년퇴임.[179] 1991년 SBS 이직[180] 2019년 정년퇴임.[181] 2022년 정년퇴임.[182] 2019년부터 제주총국에서 근무하고 2022년 정년퇴임.[183] 1997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184] 1997년 퇴사.[185] 1991년 SBS 이직[186] 현재 부산KBS 라디오 PD.[187] 2022년 정년퇴임. 17기 곽은주 아나운서의 남편이다.[188] 1991년 SBS 이직 후 1995년 YTN 이직.[189] 1997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190] 원로 배우 최정훈의 딸.[191] 1993년 퇴사, 현재 작가로 활동 중이다.[192] CBS 출신, 1991년 SBS 이직, 탤런트 김자옥의 동생. 2021년 작고.[193] 1997년 퇴사, 현재 한국IPTV방송협회 회장이다.[194] 2000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195] 2002년 퇴사, 前 이롬라이프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196] 2007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197] 1997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 19기 진양혜 아나운서의 남편이다.[198] 1992년 기자로 전직, SBS 아나운서 김성경의 前 남편이다. 2004년 4월 16일 지병인 췌장암으로 별세.[199] 15기 서기철 아나운서의 아내이다.[200] 2002년 퇴사.[201] 1997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202] 현재는 KBS라디오 PD이다.[203] 1995년 YTN으로 이적. 현재 YTN 논설위원.[204] 2004년 퇴사.[205] 1997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 17기 손범수 아나운서의 아내이다.[206] 2014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207] 2002년 퇴사.[208] 2020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209] 2001년 퇴사, 현재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210] 미스코리아 출신.[211]iTV 경인방송 아나운서,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212] 1995년 2월 1일 입사.[213] 개명 전 이름은 김재민이었다.[214] 2002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아나운서.[215] 1995년 10월 1일 입사.[216] 1995년부터 1997년까지는 제주총국 소속이었으나 현재 MBC 아나운서 소속이다.[217] 대전총국 기자로 전직.[218] 이번 기수는 전국권을 뽑지 않고 지역권만 뽑았다.[219] 속초국, 원주국을 거쳐서 2004년부터 본사에서 근무하고 있다.[220] 1972년생. 대전총국에 입사해 근무하다 2003년부터 본사에서 근무하고 있다.[221] 2012년 JTBC 이직, 현재 제21대 국회의원(서울 중구·성동구 을).[222] 2007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223] KBS 아나운서협회장.[224] 남편은 KBS기자 조성원이며 KBS 아나운서-KBS 기자 부부다.[225] 2007년 퇴사, 현재 여행작가 겸 프리랜서 방송인이다.[226] 1999년 퇴사, 현재 책 읽어 주는 작가 프리랜서 방송인이다.[227] 1999년 퇴사, 현재 중부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한국범죄학연구소 연구위원이다.[228] 현재 TBC 대구방송 아나운서.[229] 현재 YTN 앵커.[230] 현재 SBS 아나운서.[231] 현재 JTBC 기자.[232] 2012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233] 37기 이지연 아나운서와는 동명이인으로 1975년 11월 30일생. 2014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 방송인 이상벽의 딸이다.[234] 2008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235] 배우자는 KBS 기자 최영철 이며 KBS 아나운서- KBS 기자 부부이다.[236] 2012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237] 강릉방송국, 원주방송국에서 대전방송총국에서 이직하였으며, 아침마당 지역방송을 진행하고 있다.[238] 2006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239] 29기 공채 아나운서는 2003년 4월 7일 아침마당의 명랑발언대에 출연하였다.[240] 2015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241] 배우자는 축구선수 김남일이다.[242] 2006년 퇴사.[243] 2012년 퇴사.[244] 30기 아나운서들의 신입 시절 모습은 인간극장 <마이크의 전사들>편에 출연하였다.[245] 호남제주권 아나운서로 입사해 제주총국에서 근무하다가 2010년부터 본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박용호 아나운서(1969년 입사)의 아들이다.[246] 2021년 퇴사. 30기 박지윤 아나운서의 남편이다.[247] 2017년 1월 17일 퇴사, 문재인 (現 대통령) 캠프에 합류해 청와대 부대변인으로 역임하여 활동했으며 현재 제21대 국회의원[248] 2008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 30기 최동석 아나운서의 아내이다.[249] 광주총국에서 발령 후 입사하였다[250] 1979년생 아나운서.[251] 31기 아나운서들의 신입시절 모습은 설특집 아나운서 대격돌에 출연하였다.[252] 2016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 34기 정다은 아나운서의 남편이다.[253] 2022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254] 2019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255] 부산총국에서 발령하여 2005년 입사 후 결혼하여 퇴사하여 스튜디오뮤지컬 대표를 역임하고 있다.[256] 2006년 퇴사 후 SBS로 이직.[257] 32기 아나운서들의 첫등장은 2006년 2월 14일 상상플러스 녹화장에 소개하면서 등장하였다.[258] YTN 출신, 2012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259] 2015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260] 2014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 배우자는 MBC 아나운서 김정근이다.[261] 2008년 퇴사, 현재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262] CBS 출신.[263] 2020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264] 과거 MBC생방송 오늘 아침 리포터를 맡은 적이 있었다.[265] 미스코리아 출신으로, 영남권 아나운서로 입사해 부산총국에서 근무하다가 2012년부터 본사에서 근무하고 있다.[266] '가'씨 아나운서 1호다.[267] 31기 조우종 아나운서의 아내이다.[268] 현재 TV CHOSUN 기자.[269] 2021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이자 가수 장윤정의 남편.[270] 과거 초등학교 5학년 시절 KBS 15기 어린이 합창단의 단원이었다.[271] 2015년 퇴사, 2017년 현재 유튜브에서 차차튜브로 활동하고 있다.[272] 현재 KTV 아나운서.[273] 이번 기수는 전국권을 뽑지 않고 지역권만 뽑았다.[274] 과거 도전 골든벨 성남 서현고 편에 재학시절 참가한 적이 있다.[275]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대구총국에서 근무하다 2016년 청주총국으로 이직하였다.[276] 전주총국에서 발령 후 입사하여 제주총국으로 이직하였다.[277] 2010년부터 2014년 6월까지는 창원방송총국에서 근무하여 2014년 7월부터 KBS부산방송총국에서 발령하여 이직하였다.[278] 38기 공채 아나운서는 <여유만만>에 출연한 적이 있다.[279] 2019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 38기 김민정 아나운서의 남편이다.[280] 2019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 38기 조충현 아나운서의 아내이다.[281] 멘사 출신.[282] 충청강원권으로 원주방송국에서 근무하다가 2012년부터 본사에서 근무하고 2021년 퇴사.[283] 과거 취업준비생인 다큐멘터리 3일에 출연한 적도 있다.[284] 이번 기수는 전국권을 뽑지 않고 지역권만 뽑았다.[285] 현재 KBS 기상캐스터.[286] 2022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287] 2020년 퇴사.[288] 과거 도전 골든벨의 <창원문성고> 편에 재학시절로 참가한 적이 있으며, 미스코리아 출신의 아나운서이다.[289] 2020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290] 이번 기수는 전국권을 뽑지 않고 지역권만 뽑았다.[291] 2022년 퇴사, 현재 프리랜서 방송인.[292] 프리랜서 신분으로 재입사, 2019년 계약 만료[293] 현 전주방송총국 근무 중.[294] 현 대구방송총국 근무 중.[295] 전 KNN, KBS안동방송국 아나운서[296] 수도권 지상파 최초의 2000년생 아나운서이다.[297] 참고로 한 민영방송에서는 생일이 느린 분도 있다고 한다.[298] 전 KBS부산방송총국 대체 아나운서, 연합뉴스TV 뉴스캐스터[299] 전 연합뉴스TV 아나운서, 채널A, KBS대전방송총국 기상캐스터[300] 이전 버전에 적혀있던 엄지인 아나운서는 사실 학원가에서 KBS상으로 분류되진 않는다.[301] 반면 SBS는 어리고 화려한 외모의 지원자를 대놓고 선호하는 편. 그 상징적인 인물이 바로 장예원 아나운서다. 대학교 3학년 때 무수한 언니들을 제치고 SBS 공채에 합격해 'SBS는 어차피 어린애들만 뽑겠지' 하는 비관적 전망을 만든 최초의 인물로 평가된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드러나는 장예원 아나운서의 뉴스 진행이나 MC 실력도 상당하다는 평가를 받는 만큼 '실력도 없으면서 나이랑 얼굴로 뽑혔네' 같은 성급한 판단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여담으로 MBC는 도시적이고 서구적인 미인상을 선호한다. 1980년대 백지연 아나운서 이후 두드러진 현상으로 과거에는 정혜정, 최현정, 문지애, 이정민 등이 포함되고 최근에는 차예린 아나운서 정도가 전형적인 MBC상.
[302] 원래 아나운서로 입사했다가 얼마 안가 편성 PD로 배치.[303] 1964년 TBC(당시 DTV)로 이직했다가 1980년 언론통폐합 후 본사로 복귀.[304] 여로의 PD, 탤런트 김난영의 남편, 1985년 작고.[305] 1968년 MBC 이직.[306] 서울뚝배기의 PD, 1998년 정년퇴임.[307] 1969년 MBC 이직, 2020년 작고.[308] 배우 박혜숙의 남편, 2014년 작고.[309] 예능PD로 입사해 시청자센터장, 편성본부장, 감사, Arirang TV TV방송본부장, 경기콘텐츠진흥원 이사장을 역임했다.[310] 1991년 SBS 이직.[311] <한국의 미(1977)>, <초분(1977)>, <불교문화의 원류를 찾아서(1978~1981)>, <비구니의 세계, 석남사(1979)> 등 연출. 1982년 일본 니혼오디오비주얼센터(NAV)로 옮겼다가 1985년 귀국 후 '다큐서울'을 세워 <우도 해녀의 출가(1985)>, <잃어버린 50년, 캄차카의 한인들(1995)>, <태평양 전쟁 최후의 외무대신 도고 시게노리(1999)>, <110년 만의 추적, 명성황후 시해사건(2005)>, <고향이 어디세요(2017)> 등 숱한 명작들을 남겼고, 2000년에 '한중일 PD포럼'을 창설하여 한국-중국-일본 3국의 PD 간 교류에 주춧돌을 놓았다. 2020년 1월 5일 작고.(기사)[312] 원래 아나운서로 입사했다가 1980년대 중반 이후 PD로 전직.[313] 개그맨과 동명이인.[314] 성우와 동명이인.[315] <일요토론>, <추적 60분>, <6시 내고향>, <사건 25시> 등을 연출했으며, 1988년 KBS 노동조합(1노조) 초대 부위원장도 역임했지만 2006년 KBS 공정방송노조에 몸담기도 했다. 그 사이 편성국 편성제작부주간(2001~2002), 수원센터 센터운영주간(2002~2004), 춘천방송총국 국장급 프로듀서(2004), 심의평가실 심의위원(2004~2005), 프로듀서 심의위원(2005~2006.11) 등을 거쳐 2006년 12월부터 시청자센터장을 지냈으나 2007년 12월 17대 대선 불공정방송 비판 기자회견을 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와의 인연을 맺어서 논란이 생겨 보직 사퇴했고, 회사로부터 6개월 정직 처분을 받았다. 2008년 18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문경·예천 선거구에 공천했으나 탈락했다. 1986년 국무총리표창, 2007년 제7회 외대언론인상 수상.[316] 2003년 편성본부장#,2005년 TV제작본부장#,2007년 부사장#,2008년에 정연주 사장이 해임 되면서 직무대행#을 맡았으며 이후 부사장 사임후 금품수수 혐의로 2년 법정소송 끝에 결국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제명되었다.#[317] 2000년 초반에는 예능국장#, 2000년 중반 편성팀장#으로 일하다가 이후 제작본부장로 근무했으나 2008년에 금품수수 혐의로 기소 되었으며 # 이후로는 처벌 받는것과 KBS 내 활동 내용도 안 나오는 것으로 보아 KBS에서 제명된 것으로 보인다.[318] e스포츠 캐스터와 동명이인.[319] 1991년 SBS 이직.[320] <TV유치원 하나둘셋>, <아침마당>,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등을 연출한 이력이 있었으며, 1999년 TV제작센터 위성편성부주간을 시초로 편성정책주간(2003~2004), 시청자서비스팀장(2004~2006) 등을 거쳤고, 2009년 1월 여성 PD로서 최초로 편성국장이 됐으나 동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당시 <추적 60분> '추모특집 노무현 떠나다' 편의 타이틀 일부 삭제, <다큐멘터리 3일> 봉하마을 편 불방, <KBS 스페셜> 봉하마을 취재 PD 철수 지시 등 파행편성으로 인해 노조의 불만을 사 경질됐고, 2014년 8월 조대현 사장 취임 후 편성본부장으로 복귀했다. 2015년에 KBS 1TV에서 한참 잘 방영하고 있었던 <스포츠 이야기 운동화 2.0>을 술자리 잡담 같은 프로그램이라고 혹평하면서 프로그램 종영을 지시했다. 이후 해당 프로의 제작진이 문제사항을 보완한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독단적으로 종영을 결정했다. 결국 그 프로의 코너 중 하나였던 스포츠 대작전이 종영되었으며, 다음 해인 2016년에는 프로그램 자체도 종영되었다. 같은 해에는 KBS 미디어 부사장으로 발령났다가 2017년 사장으로 승진하여 2018년까지 재직했다.[321] <추적60분> 등지 연출. 1990년 KBS 사태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며 당시 연행된 상태인 안동수를 대신해 노조위원장을 맡다가 구속되어 1991년 집행유예 확정 후 해고되었고, 1993년 서울지법 남부지원 해고무효확인소송에서 이겨 복직한 후 1996년 <민원25시>의 진행을 맡았고, 1998년 개혁실천 특별제작팀장으로서 <개혁리포트>의 제작을 맡았다. 1999년 12월 위성제작부주간을 시초로 간부직에 처음 올라 2004년 디지털미디어센터장을 거쳐 2007년 KBS 인터넷(KBSi) 사장으로 발령나 2008년 12월까지 역임했다.[322] 1995년 SBS 이직.[323] 원래 기자로 입사했으나, 1983년 기획제작실 <추적60분> 팀에 발탁되어 PD로 변신한 후 주로 경제 문제를 취재했다. 1991년 SBS로 이직하여 기자로 돌아와 홍콩 특파원(1992~1994), 국제부 차장대우(1994~1996), 보도국 기획취재팀 부장대우(1996~1997), 보도제작국 보도제작2부장/CP(1997~2000), 베이징 특파원(2000), 기획취재CP(2000~2001), 해설위원(2001~2013) 등지 역임.[324] 1991년 SBS 이직.[325] <8시20분>, <사람과 사람>, <추적60분>, <뉴스비전 동서남북>, <KBS 일요스페셜> 등을 연출한 바 있으며, 1992년 PD 특파원제 실시로 로스앤젤레스 특파원(1992~1995), 뉴욕특파원(1996.6~1999.12)을 거쳐 1999년 TV1국(교양국) 부주간을 시초로 간부직에 올랐다. 그 뒤 청주방송총국 편성제작국장(2001.4~2003.5), 기획제작국 제작부주간(2003.5~11), 기획제작국 프로그램전략기획부주간(2003.11~2004.7), 시사정보팀장(2004.7~2005.4), 프로그램전략기획팀 부장(2005.4~2006.12), 포항방송국장(2006.12~2008.12), 심의위원(2009.1~2011.9) 등을 거쳐 2011년 콘텐츠본부장까지 올랐고, 2013년 KBS 미디어 사장으로 발령나 2년여를 맡다가 2015년 KBS N의 고문으로 위촉되었다. 2017년 6월에 언론부역자 3차 명단에 올랐다.#[326] 송지나 작가의 남편. 입사 당시엔 기자였으나 1983년 <추적60분> 팀에 합류하며 PD로 변신한 후 <양자강(1991)> 등 다큐멘터리들을 제작했다. 1994년 SBS프로덕션으로 옮겼다가 1997년 프리랜서로 전환하여 <몽골리안 루트(2000)> 등을 제작했다.[327] 교양국 PD 출신으로 편성팀장, PD협회장, 비서팀장, KBS 재팬 사장을 지냈으며, 추적 60분, 세계는 지금, KBS 스페셜 등을 연출했다. 이후 KBS에 퇴사하여 2017년 9월 부터 2018년 12월까지 EBS 사장이었다.[328] 1991년 SBS 이직.[329] 1박 2일 자유여행 1탄(소설가 이외수 자택 편(2007년 12월 23일 방영)에 잠깐 나온 예능 CP였고 역대 최악의 가학성 프로그램 일요일은 101%가 방영되던 당시 예능1팀장으로 근무하였고 2008년에 이용우 PD와 함께 금품수수 혐의로 기소 되어 실형 받고 제명되었으며 # 이후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의 교수로 임용되어 1년동안 일했으며 # 현재 박스미디어를 설립하여 대표로 있다.[330] 전 예능국장. 연예가중계 진행 경력. 2019년 MBN으로 이직.[331] 태조 왕건 연출 PD. 장사의 신 - 객주 2015를 끝으로 정년퇴직 하였다.[332] 입사 이래 2013년 퇴사 전까지 뉴스 기상정보 전문 PD로 일해왔으며, 퇴사 후 기상예보사가 되어 온케이웨더에 '김철수 PD의 날씨살롱'을 연재한 바 있다. 2010년 국민포장 수훈.[333] 前 KBS N 대표이사[334] 이병순 임기 때 편성기획팀장이었고 미디어 포커스와 시사투나잇를 폐지를 주도했다. 이후 김인규 임기 때 편성센터장, 조대현 임기 때 정책기획본부장이 되었고 고대영 임기 때는 자회사 아트비전 사장이었다. 현재 KBS 이사이다.[335] 겨울연가의 PD. 2001년에 퇴사했다.[336] 차마고도의 CP. 세명대학교 교수 재직.[337] 2005년에 퇴사한 이후 꽃보다 남자, 아름다운 그대에게의 연출를 맡았으며 2018년 1월 17일에 교통사고로 작고했다.[338] 전 예능국장, 편성센터/편성본부장, 부사장. 현 경기대 특임교수. 2017년 6월에 언론부역자 3차 명단에 올랐다.#[339] 1995년 SBS 이직.[340] 성악가와 동명이인으로 <생방송 여성>, <시사난타 세상보기>, <KBS 스페셜> '미래의 코드, 여성' 등지 연출. 前 TV제작본부 교육문화팀장(2004.7~2005.4), 前 편성본부 프로그램개발팀장(2007.4~2008.12), 前 편성국 2TV편성팀(부)장(2009.1~2011.9), 前 편성국장(2011.9~2014.8), 前 콘텐츠창의센터장(2015.11~2016.8), 前 제주방송총국장(2016.8~2018.4)[341] 前 창원방송총국 편성부장(1996~1997), 前 라디오1국 차장(1997), 前 라디오제작센터 차장(1997~2000), 前 라디오2국 차장(2000~2002), 前 라디오제작본부 라디오편성부주간(2004.2~8), 前 라디오편성제작팀 부장(2004.8~2008.12), 前 라디오1국 EP(2009.1~2010.6), 前 라디오1국장(2010.6~2012.1), 前 라디오센터장(2012.2~2013.7). 이후 KBS 비즈니스 감사로 옮겨 2014년 9월 이후 고문으로 추대되었고, 2015년 9월부터 6년 동안 본사 이사 역임.[342] 前 <추적 60분> PD 및 MC. <울지마 톤즈> 등의 감독. 2019년 정년퇴임 후 이태석재단 이사장, 구수환PD 저널리즘스쿨 교장 역임.[343] PD협회에서 탈퇴.출처.[344] 미안하다 사랑한다, 열아홉 순정의 연출.[345] 前 6시 내고향 담당PD, 2018년 정년퇴직.[346] 영심이, 아기공룡 둘리, 날아라 슈퍼보드, 달려라 하니, 검정고무신등 국산 애니메이션을 제작했으며 2010년에 별세했다.#[347] 前 KBS N 대표이사[348] 제주총국 편성제작국장, 시사교양1국장을 거쳐 2020년 제작1본부장으로 승진되었다.[349] 서세원쇼일요일은 101% 같은 문제의 프로그램을 만들어낸 PD이며 금품수수 혐의로 기소 되어 실형선고 받으면서 제명되었다.#[350] 前 방송본부장/편성본부장.[351] 1991년 SBS 이직.[352] 1라디오 선임팀원, 라디오센터장을 거쳐 2020년 전략기획실장, 2022년 자회사인 KBS N 사장으로 승진되었다.[353]KBS 미디어 사장.[354] 1992년 SBS 이직.[355] 前 제작본부장/제작1본부장, 前 KBS PD협회장, 前 KBS아트비전KBS 교향악단 사장.[356] 현재 TBS 교통방송 사장.[357] 前 드라마센터장. 현재 KBS 미디어 사장.[358] <특종 비디오저널>, <추적60분>, <TV 책을 말하다>, <환경스페셜> '침묵의 강, 설악산은 쉬고 싶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 손양원>, <일사각오 주기철>, <머슴 바울, 김창식> 등 연출. 2021년 퇴사 후 2022년 '권필름'을 설립했다.[359] 2002년에 퇴사한 이후 풀하우스, 아이리스 2, 프로듀사의 연출를 맡았다.[360] 예능PD로 입사하였으나 지역순환근무를 거치면서 시사교양PD로 전직했고 이후 시사투나잇, 추적 60분, 생방송 심야토론 등의 CP, KBS 심의위원을 맡았다. 2020년 편성본부장으로 승진했으며 퇴임 이후에는 KBS 교향악단 사장으로 영전했다. 배우자는 정용실 아나운서.[361] 현재 시너지웍스 대표.[362] 웨딩, 미스터 굿바이, 매드독의 PD. 前 몬스터유니온 대표이사.[363] 前 한국PD연합회장.[364] 소문난 칠공주의 연출,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아버지가 이상해, 황금빛 내 인생, 사랑은 뷰티풀 인생은 원더풀의 CP.[365] 거상 김만덕, 성균관 스캔들, 드림하이 2, 학교 2013의 프로듀서.[366] 구미호: 여우누이뎐부탁해요, 엄마의 PD,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내 딸, 저스티스, 동백꽃 필 무렵의 CP.[367] 2007년 퇴사 후 훈미디어, 코엔미디어, SM C&C 등을 전전하다 2019년 KBS로 돌아와 제작2본부장으로 선임되었다.[368] 제빵왕 김탁구의 PD.[369] 대왕세종, 다함께 차차차, 넝쿨째 굴러온 당신의 PD.[370] 2005년에 퇴사한 이후 눈의 여왕, 나쁜남자, 욱씨남정기의 연출를 맡았다.[371] 뮤직뱅크 前 CP.[372] 골든 크로스, 완벽한 아내, 란제리 소녀시대, 하나뿐인 내편의 PD.[373] 한국PD연합회장.[374] 현재 KBS 미디어 콘텐츠제작본부장.[375] 2007년에 퇴사한 이후 아이리스를 연출했고 이외에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괜찮아, 사랑이야, 달의 연인 - 보보경심 려 등의 SBS 드라마 연출를 맡았다.[376] 현재 KBS 미디어 사장.[377] 6시 내고향, 연예가중계, 전국노래자랑, 부부 클리닉 사랑과 전쟁, 꽃길만 걸어요의 PD.[378] 몬스터 유니온으로 이적했으나 현재 퇴사했다.[379] 대조영, 남자 이야기, 각시탈, 최고다 이순신, 왕의 얼굴의 PD, 미워도 사랑해의 CP. 2019년 TV조선으로 이적했다.[380] 현재 CJ E&M으로 이적했다.[381] 가족끼리 왜 이래의 연출 PD로 현재 JTBC로 이적했다.[382] 해피투게더 3유희열의 스케치북의 PD. 2018년 7월 11일에 TV 조선으로 이적했다.#[383] 드라마 작가 정현민 작가와 함께 정도전어셈블리를 제작한 PD. 동명이인의 라디오PD도 있다.[384] 추노, 보좌관의 PD, 현재 스튜디오앤뉴 소속[385] 비켜라 운명아의 PD.[386]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의 현 CP.[387] 오작교 형제들굿 닥터 연출 PD.[388] 해피투게더 시즌 3의 PD, 뮤직뱅크의 CP.[389] 징비록, 퍼퓸의 PD.[390] 현재 CJ E&M으로 이적했다.[391] 아이 엠 샘의 PD.[392] 해피투게더 시즌 1~2의 PD이며 현재 JTBC로 이적했다.[393] 현재 JTBC로 이적했다.[394]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의 전 CP이자 트릭&트루의 PD.[395] 대왕 세종의 조연출. 천상의 약속, 당신의 하우스헬퍼의 PD.[396] 현재 JTBC로 이적했다.[397] 태양의 후예, 눈길의 CP. 2016년 JTBC로 이적했다.[398] 도쿄 PD특파원[399] 백상예술대상 수상자만 무려 4명을 배출한 KBS 최고의 황금기수[400] 구르미 그린 달빛, 이태원 클라쓰의 PD. 현재 JTBC 소속[401] 성균관 스캔들, 시그널, 미생, 아스달 연대기의 PD. 현재 카카오M 소속[402] 1박 2일, 꽃보다 시리즈, 신서유기의 PD. 현재 CJ E&M으로 이적했다.[403] 뷰티풀 마인드, 미스티, 부부의 세계의 PD. 현재 JTBC 소속[404] 공주의 남자, 비밀의 숲 시즌 2의 PD. 현재 스튜디오 드래곤이나 CJ E&M 소속일것으로 추정[405] 남자의 자격, 응답하라 시리즈, 슬기로운 생활 시리즈의 PD. 현재 CJ E&M으로 이적했다.[406] 미녀들의 수다 2의 PD. 2014년 2월에 CJ E&M으로 이적했다.[407] 2011년 JTBC로 이적했다.[408] 또 오해영, 뷰티 인사이드의 PD. 현재 스튜디오앤뉴 소속[409] 태양의 후예,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의 PD. 현재 스튜디오 드래곤 소속.[410] 김승우의 승승장구, 더 유닛의 PD.[411] 다큐 인사이트 모던코리아의 공동연출 및 CP.[412] 위기탈출 넘버원의 PD.[413] 추리의 여왕의 PD. 2017년 8월에 퇴사했다.[414] 2013년 추적 60분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전말 편 연출.[415] 우리동네 예체능의 PD. 2015년에 퇴사하여 SM C&C로 이적했다.[416] 1박 2일의 PD. CJ ENM으로 이적했다.[417] 추적60분, 파워인터뷰의 PD.[418] 세상 어디에도 없는 착한남자쌈, 마이웨이의 PD. 현재 CJ E&M으로 이적했다.[419] 각시탈, 동백꽃 필 무렵의 PD.[420]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PD.[421] 학교 2017의 PD.[422] 구라철의 PD. 2020년 SM C&C로 이적했다.[423] 몬스터 유니온으로 이적했다가 퇴사후 현재 CJ E&M으로 이적했다.[424] 2018년 퇴사 후 현재 CJ ENM으로 이적했다.[425] 즐거운 챔피언 시리즈, 청춘야구단의 PD[426] 2019년 퇴사후 현재 MBN으로 이적했다.[427] 2019년 퇴사 후 MBN으로 이직했다.[428] 2022년 신입사원 공개채용 홍보용 스팟 영상에 등장한다.링크[429] PD협회에서 탈퇴.출처.[430] 윤도현의 러브레터의 PD이며 2008년에 금품수수 혐의로 기소 되었으나 # 처벌를 안 받았는지 2011년까지 KBS에서 근무했으며 이후 JTBC로 이적했다.[431] 前 방송본부장. PD협회에서 제명.출처.[432] 前 제작본부장. PD협회에서 제명.출처.[433] 인간의 조건 1~2기우리동네 예체능의 CP이며 2008년 같은 동료 PD들과 함께 기소되었으나# 김시규 PD 처럼 처벌을 안 받았는지 이후에도 KBS 예능프로그램 제작을 담당했으며 현재 한류기획단장으로 근무하고 있다.[434] 텔레토비, 은하공주 디지캐럿, 영화 시간 여행자의 아내의 PD.[435] 오펀 블랙 시즌 1과 플루팔루 대모험의 연출 PD다.[436] 외화시리즈 투명인간,탐정 몽크,일본 애니메이션 리리카 SOS,영화 신과 함께 가라의 PD.[437] 영화 레옹, 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성룡의 미라클, 홀랜드 오퍼스의 PD.[438] 영화 백 투 더 퓨처(1편 구더빙판 한정.), 아라비아의 로렌스, 콰이강의 다리의 PD.[439] 셜록 시즌 1, 콜드케이스, 007 네버다이의 연출 PD다. 초창기(90년대초)에는 '비밀의 화원'(애니판)의 더빙연출을 맡기도.[440] 2005년 개설 당시 엠파스 블로그에 있었으나, 2009년 엠파스가 네이트로 합쳐지면서 다음 블로그에 다시 개설했고, 2012년 우수블로그까지 선정된 바 있었다. 2022년 카카오 측의 다음 블로그 서비스 종료로 인해 티스토리로 옮겼다.[441] 매우 흐릿하게 보였다. HD방송의 경우에는 초창기에 불투명한 로고가 나왔다.[442] 지상파 UHD 전용 채널이다.[DMB] U-KBS MUSIC[444] 독립하여 EBS TV가 됨.[445] 다만 그 와는 별개로 당시 방송자료는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이유는 생방송 프로그램이 많았던데다가 그나마 녹화된 프로그램도 테이프와 필름 가격 때문에 보관이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혹시나마 당시(90년대까지) 프로그램이 있다면 여기에 기증하자.[446] 그래서 'KBS 가정중학', 'KBS 가정고교'라는 월간 학습지도 있었다. 대략 1994년까지 존속했다.[447] EBS든 KBS3이든 그 시초는 '정부 제공 과외방송'이었다. 교육방송 자체는 1950년대부터 존재했지만 박정희 정권 시절에 있었고 교육방송채널의 개국 방안 자체는 1970년대부터 존재해있었지만 재정편성 문제로 차일피일 미루어진 상태였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에서 과외금지 조치를 내렸는데 이 과정에서 학부모들과 학생들을 달래기 위해서 처음에는 평일 밤 시간대와 아침시간대에 가정고교방송을 편성하도록 해놓았고, 이것이 꽤 좋은 호응을 얻자 따로 채널을 만들어서 개국해놓았다. 또한 기존에 평일 밤시간대 편성했던 가정고교방송을 비롯한 교육 프로그램과 일부 교양프로그램들을 해당채널로 이동시켜놓았는데 이것이 KBS 3TV였다. 그래서 EBS도 초기에는 한국교육개발원 산하에 있었다. 지금은 한국교육방송공사로 독립했고 미국 PBS처럼 공영 서비스를 강화하려 하고 있다. 1998년 비슷한 논란이 다시 불거지자 이제는 무궁화 위성채널을 이용해 EBS위성1, 2채널을 런칭하고 과외방송을 했다. 이것이 현재의 EBS플러스 1, 2채널의 전신. 참고로 이 때 EBS 위성 1 강의멤버로는 이만기 현 유웨이에듀 대표, 이원희 전 서울특별시교육감 후보 등 쟁쟁한 강사들이 많았다.[448] 지상파 다채널방송(MMS)까지 포함하면 EBS2와 함께 상업광고가 나오지 않는 단 둘뿐인 채널이다.[449] 정확하게는 1963년 1월 1일부터 1969년 4월 30일(특집 프로그램이나 스포츠 중계방송은 1971년 12월 31일까지), 1981년 3월 7일부터 1994년 9월 30일까지 광고방송을 했었다.(HLKZ(DBC)-TV 시절은 제외)[450] EBS-TV(구 KBS 3TV)도 상업광고을 안했으나, 재정문제로 인해 1997년 9월 1일부터 상업광고방송을 하게 되었다.[451] 케이블의 경우 개국 당시부터 24시간 방송을 했지만, 지상파는 언론사의 반발과 전파낭비 등을 이유로 정부에서 종일방송을 허가해 주지 않고 있었다. 물론 낮 방송이 허가된 2005년 12월 이후로는 사실상 사장된 정책이었고 최종적으로 2012년에 해금된 것이다.[452] 그러나 영문 자막에 병맛이 가득하다. 사극 드라마 대조영 방영 시 거란군이 고구려군을 기습하는 장면에서 고구려군 병사가 '기습이다!'라고 외친 것을 "Sudden Attack!"이라고 자막을 띄우는 얼빠진 상황을 연출해 내었으며, 모 드라마의 등장인물 '장미'의 이름을 'Rose'라고 내보내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래도 로즈는 외국에서도 쓰이는 이름이니 그러려니 하겠지만 '안녕하세요 하느님' 방영 당시에는 주인공 하루(유건 분)의 이름을 'Day'로 출력하는 이뭐병 스러운 짓을 행하기도 했다. 무료 번역기와 동급, 혹은 그 이하의 퀄리티를 보여준 자막은 고국 청취를 느껴보고자 한 해외 동포들에게 충공깽을 선사하였다는 후문. 본격 역 왈도체라고 볼수도 있다. 하지만 다행이도 한인들이 많이 모인 지역에서는 한인 방송시스템이 따로 있기 때문에, KBS에서 프로그램을 구매해서 자막을 다시 만들어 방송하고 있어서 그나마 안심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453] 참고. 이런 클립까지 올라왔다.[수도권] FM채널 수도권 한정 송출[수도권] FM채널 수도권 한정 송출[456] 언론통폐합 당시 동양방송 라디오의 이름이 바뀐 것으로, 폐국 후 주파수와 호출부호는 제2라디오를 거쳐 사랑의 소리방송으로 재활용됨.[457] 언론통폐합 당시 동아방송의 이름이 바뀐 것으로, SBS 개국 후 그 주파수는 SBS 러브FM으로 사용되다 2022년 휴지.[458] 독립하여 EBS FM이 됨.[459] 이관되어 국군방송이 됨. 다만 인가상으로는 여전히 남아있다.[460] 2007년 KBS 한민족방송으로 바뀌었다.[461] 마림바-실로폰 듀엣 연주곡 시그널은 들어 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462] 그래도 일기도를 실제로 그려보면 의외로 꽤 재밌다. 물론 일기도에 대한 기본지식은 알아야 한다.[463] 2FM이 지역송출을 하기 위해선, 주파수 하나를 추가로 할당받거나, 기존 1FM 혹은 2라디오를 포기해야하는데, 주파수 추가할당은 지역MBC지역민방에서의 견제, 2010년대 후반부터 불거진 주파수 포화 문제로 인해 어려운 상황이다. 이유는 KBS라디오 중에 가장 젊고 경쟁력이 있는 채널이 2FM이다 보니 신규진입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기 때문. 1FM/2라디오 주파수를 돌려쓰는 대안은 광고불가 문제(1FM), 뉴스편성문제(2라디오), 기존청취자(두 채널 모두)의 반발 등으로 인해 추진이 쉽지 않았다. 당장 2001년 2FM이 광고방송 기능을 회복하자 지역국 송출이 대거 감축된 것이 좋은 예시. 그나마 뉴스편성문제는 아직 뉴스를 송출하고 있었던 2016년부터 편성을 야금야금 전환했던 이력으로 봤을 때 큰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며 2020년 8월 31일 2라디오 뉴스가 전면 폐지되면서 옛날 얘기가 되었다.[464] KBS위성1은 아예 사라졌고 KBS위성2는 KBS KOREA로 재편되었다.[465] 이때 자회사 크레지오닷컴이 홈페이지를 통해서 <용의 눈물>이나 <신세대 보고 어른들은 몰라요> 같은 역전 프로그램들도 올려놓았지만 2002년을 즈음해서 사이트가 개편되면서 사라졌다.[466] 장애인 서비스에 들어가면 3주를 기다릴 필요 없이 무료로 시청할 수 있지만 로그인(KBS 아이디가 없다면 회원가입을 해야 한다.)을 해야 한다.[467] 라디오 프로그램은 장애인 서비스로 들어가면 2012년 방영분부터 듣을 수 있으며 TV 프로그램들과 달리 로그인을 하지 않아도 듣을 수 있다.[468] SBS, MBC는 버닝썬 게이트처럼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킨 연예인 사건 사고 아니면 대부분 올려주는 편이다.[469] 다만, 카메라에 조명이 달려있지 않아서 밤에는 영상을 볼 수 없다.[470] 과거의 경우 KBS 본사에 입사하는 신입사원들은 지역 순환근무를 반드시 거치도록 되어 있었으나, 직군에 따라서 이런 경향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애초에 서울에서 대부분 제작을 하는 드라마, 예능 PD야 말할 것도 없고, 본사 인력 부족에 따라 시사교양 PD, 방송경영, 방송기술 등의 직군도 신입사원 지역근무는 거의 없어진 상황. 2019년 시점에서 확실하게 신입사원 지역근무가 남아있는 직군은 아나운서 정도가 전부다.[471] 지역권 입사자의 경우 방송경영, 방송기술직군은 그나마 5년을 채우면 서울로 올라올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데 비해(건강이나, 결혼 등의 사유로 전국권으로 입사하고도 지역국으로 가려는 수요가 제법 있다.), 아나운서, 기자의 경우 본업을 하면서 본사로 올라오는건 불가능하다. 과거 각종 문제가 생겨서 아예 자체적으로 막아버렸다. 지역권 아나운서나 기자가 본사에서 일하려면, 공통직군부서에서 자신의 직군과 관련 없는 일을 하는 수밖에 없다. (이런 장벽 때문에 배성재KBS광주방송총국으로 입사해서 다시 SBS 시험을 응시한 것.) 지역권 시사교양 PD는 수상실적이 좋으면 그나마 기회가 생긴다.[472] 이 때 영월방송국 관할이던 정선중계소와 사북중계소 등 정선군의 방송권역은 강릉방송국으로 통합되었다.[473] 방송국 자체는 동일하나, 지형적인 이유로 라디오 주파수를 지역마다 달리하는 것이다. 예컨대 태백권의 경우 태백산맥으로 강원 영동지방과 가로막혀 있으니 강릉 인근에서 송출하면 들릴 리 없다.[474] 이 때문에 충청남도에서는 지속적으로 KBS 충남방송국(가칭) 신설을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도청이 있는 내포신도시에 KBS 충남방송국(가칭)을 설치할 준비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475] 경인방송센터와 울산국은 참여하지 않고, 후반부 뉴스를 그대로 한다. 사실 울산국도 2019년 11월 뉴스7 목요 시험방송 당시 부산총국에서 하는 '7시 오늘 부산울산'에 참여했지만, 울산의 소식은 잠깐 나오고 부산 얘기만 나온다는 시청자들의 불만을 감안해, 두달만에 방송을 접었다.[월간] [월간] [격월간] [월간] [월간] [월간] [482] 2004년부터 CD 형태로 바뀌었다.[483] 일례로 NHK가 1994년 제작한 다큐멘터리인 'NHK스페셜 - 생명~40억년에의 여행~'은 KBS가 제작비를 대고 디스커버리와 이탈리아 방송과 협력해서 만들어졌다. 국내 방영 제목은 생명 그 영원한 신비. 또한 2011년 3월 11일 도호쿠 대지진 보도에서도 KBS는 국내 타 방송국과 달리 대지진 당일 9시 뉴스에서 NHK가 송출한 HD 소스를 사용했다. 참고로 NHK 서울지국은 KBS 신관 7층에, KBS 도쿄지국은 NHK 동관 7층에 있다.[484] 다만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에 의거,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수 없다. 언론의 독립성을 위해서 이뤄진 조치이며, 따라서 재정과 인사 모두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를 받지 않는다.[485] 그렇다고 한국에 국영방송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데, KTV 국민방송이 바로 정부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정책방송원에서 운영하는 방송이다. 또한 대한민국 국회사무처에서 운영하는 국회방송도 국영방송에 해당한다.[486] 진짜 훼손했다면 공시청 장비 문서에서 작성된 수신민원 전화번호로 연락하자.[487] 노무현 전 대통령과 관련된 부분이 상당히 보인다며 고인드립 논란이 일었다. 일단 사측에서는 전혀 관련이 없다고 밝혔다. 사실 이와는 별개로 코너 자체가 노잼이라고 혹평을 받아서 금방 종영됐다.[488] 베충이는 일베의 비공식 마스코트 캐릭터인데, 이게 방송에 등장한 것이다. 실수인지 고의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개콘의 흑역사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