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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282b9><colcolor=#fff> 제18대 한국방송공사 사장 이병순 李炳淳 | Lee Byeong-soon | |
출생 | 1949년 8월 20일 ([age(1949-08-20)]세) |
경상남도 거창군 | |
재임기간 | 제18대 한국방송공사 사장 |
2008년 8월 27일 ~ 2009년 11월 23일 | |
제16대 한국방송협회 회장 | |
2009년 3월 27일 ~ 2009년 11월 23일 | |
학력 | 거창대성중학교 (졸업) 경북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독어교육학 / 학사) |
경력 | 거창대성고등학교 독일어교사 한국방송공사 보도국 경제부 차장 한국방송공사 보도국 유럽총국 파리특파원 한국방송공사 보도국 유럽총국 베를린특파원 한국방송공사 보도국 전국부장 한국방송공사 보도국 경제부장 한국방송공사 보도국 편집주간 한국방송공사 창원방송총국장 한국방송공사 대구방송총국장 한국방송공사 뉴미디어본부장 KBS 미디어 대표이사 사장 KBS비즈니스 대표이사 사장 제18대 한국방송공사 사장 (이명박 정부) 제16대 한국방송협회 회장 한국지상파디지털방송추진협회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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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언론인.2. 일생
1949년 경상남도 거창군에서 태어나 경북고등학교(48회)와 서울대학교 독어교육과를 마치고[1] 거창대성고등학교에서 독일어교사로 재직[2]하다가 1977년, KBS 공채 4기 기자로 입사하였다. 주로 경제부에서 뛰어서 '경제통'이라 불렸으며, 1984년 <경제특집-세계는 무역전쟁>으로 한국방송대상 문공부장관상을 받거나 <월요기획-인류의 유산 마야문명(1981)> 등 굵직굵직한 프로그램 기획에도 참여하는 등 관록을 지닌 기자였다.1986년부터 경제부 차장을 3년 맡다가 1991년 유럽총국으로 발령나 3년간 파리, 베를린 특파원을 맡고 1994년 경제부 차장을 다시 맡았다. 이후 1995년 보도국 제작부주간, 1996년 사회부 기동취재담당 부주간, 1997년 전국부장, 1998년 경제부장 및 보도제작국 부주간, 1999년 보도국 편집주간 등을 두루 거친 후, 2001년 창원방송총국장, 2002년 대구방송총국장을 각각 거쳐 2003년 뉴미디어본부장 선임 후 임원이 되어 2004년 KBS 미디어 사장, 2005년 KBS비즈니스 사장을 각각 거치며 세밀한 일처리와 원리원칙주의를 실천하여 일부에선 '독일병정'[3]이라 불렸다.
2008년 8월 정연주 전 사장 해임으로 공석이 된 사장직에 응모하여 이사회에서 김은구 전 이사, 안동수 전 부사장, 김성호 전 KBS인터넷(KBSi) 사장, 심의표 전 KBS비즈니스 감사 등 나머지 후보들을 제쳐 최종 후보로 오른 후, 청와대로부터 임명제청이 승인되면서 취임했다. 홍두표 이래 10년 만에 KBS 출신이 두 번째로 사장직에 앉았으며, 공사출범 이후 직원으로서는 처음이다. 2009년 한국지상파디지털방송추진협회(DTV 코리아, 현재 UHD 코리아) 2대 회장도 겸임했다.
3. 논란
사장 취임한 지 3개월 만에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미디어 포커스[4]와 시사프로그램 시사투나잇/시사360을 폐지하였고, 자신이 사장이 되는 것을 반대하던 일부 직원을 징계하였으며[5], 2008년 말에 <윤도현의 러브레터>와 <생방송 심야토론>을 각각 진행했던 윤도현 및 정관용, 2009년 <스타 골든벨> MC였던 김제동 등 진보성향 방송인들을 점차 하차시켰다. 같은 해 연말 KBS 연예대상 시상식에 대상 시상자로 참석했다.2TV 마지막 더빙영화 프로 KBS 프리미어도 폐지하였고, 2009년 가을 개편 때 걸어서 세계속으로[6]와 30분 다큐, 대결 노래가 좋다, 코미디쇼 희희낙락, 도전 황금사다리 등도 폐지하여 논란을 일으켰고[7], 2005년 닥터후 방영 시작으로 2회 연속으로 방영했던 일요 외화시리즈를 1회 편성으로 축소시키면서출처. 여기에 악영향을 받아 KBS의 신뢰도는 떨어졌고, 시청률 하락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출처. 2009년 4월에 이원홍 등 전임 사장 5인[8]을 불러다 '홈커밍'을 열었는데, 사장 중 3명[9]이 5공 부역 인사라 논란을 빚었다. 다만 의외로 후임 김인규와 달리 정치색이 드러나지 않은 데다, KBS 9시 뉴스에 크게 간섭은 안 했다고는 한다.
2009년에는 연임을 위해 이사회에 다시 공모한 후, 김인규(당시 한국디지털미디어산업협회 회장)와 강동순 전 감사, 이봉희 전 KBS LA 사장, 홍미라 언론노조 KBS본부 계약직지부장 등과 함께 차기 사장 후보로 추천되었으나 입사 4년 선배인 김인규에게 표결에서 밀렸고, 그 길로 김인규에게 사장직을 넘겨주었다. 이는 2012년 공영방송 총파업이 일어나는 실마리 중 하나이기도 했다.
2017년 4월, 민주노총 언론노조에 의해 언론부역자 2차 명단에 올랐다. 출처.
2021년에 부친상 소식#을 제외하면 공사출범 이후 사장들 중에서 유일하게 사장 임기 만료 이후 별다른 근황이 없다.[10]
4. 수상경력
- 제11회 한국방송대상 문공부장관상 (1984, 경제특집 - 세계는 무역전쟁)
- 제12회 한국방송대상 국무총리상 (1985, 경제특집 - 총점검 한국의 국가경쟁력)
[1]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와는 고등학교 - 대학교 동기동창생이다.[2] #, ##[3] 서울대 사범대학 독어교육과 전공 시절 계기로 별명을 지었다.[4] 이후 미디어 비평(2008~2013), 미디어 인사이드(2013~2016)가 나왔으며 고대영 임기 때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이 완전 폐지된 이후 후임 양승동 사장이 저널리즘 토크쇼 J로 다시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을 다시 부활시켰다.[5] 양승동도 파면 처분을 받았고 재심을 통해 정직 4개월로 징계 수위가 조정됐지만 이후 2년간 비제작부서 보내진 뒤 현업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6] 김인규 임기 때 재편성.[7] 뭐 SBS의 도전 1000곡을 그대로 베낀 노래가 좋다는 그렇다 쳐도, 황금사다리와 희희낙락, 30분 다큐는 봄 개편 때 신설되었지만 같은 해 가을 개편을 거치면서 없어지는 희대의 기록을 남기고 만다(...). 이후 매니아층이 있던 걸어서 세계속으로는 부활했지만 이병순 본인의 임기 때가 아닌 후임 김인규 임기에 가서 부활했고 나머지는 시청률이 저조했기에 부활하지 못했다. 대신 임기 후반에 신설한 청춘불패나 출발 드림팀 2이 그럭저럭 시청률이 나와서 나름 오래 버텼고 역시 임기 중에 편성된 심야 음악 프로그램 유희열의 스케치북도 이소라의 프로포즈와 윤도현의 러브레터보다도 더 오래 장수한 13년 동안 방영했다.[8] 정연주, 박권상을 제외한 당시 생존 사장들.[9] 이원홍, 박현태, 정구호.[10] 김인규는 이후 한국전쟁기념재단 이사장을 지내다가 경기대 총장으로 취임했고 길환영은 백석대 부총장을 거쳐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이다. 조대현은 KBS 공영방송 50주년 기념식에 참석했고 고대영은 김의철 해임 직후 다시 사장 응모했었지만 탈락했고 양승동은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받았고 김의철은 현재 사장 해임 직후 해임취소 소송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