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20:31:04

고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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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재판연구관(부장판사) 의정부지방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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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282b9><colcolor=#fff> 제22대 한국방송공사 사장
고대영
高大榮 | Ko Dae-young
파일:1036356_20180122195213_610_0001.jpg
출생 1955년 9월 28일 ([age(1955-09-28)]세)
서울특별시
재임기간 제22대 한국방송공사 사장
2015년 11월 24일 ~ 2018년 1월 23일
제21대 한국방송협회 회장
2016년 8월 1일 ~ 2018년 1월 23일
학력 경동고등학교 (졸업)
한국외국어대학 외국어학부 (영어학 / 학사)
가족 동생 고대훈[1]
입사 1985년 한국방송공사 보도국 기자
경력 한국방송공사 보도국 사회부 기자
한국방송공사 보도국 TV편집1부 기자
한국방송공사 보도국 정치부 기자
한국방송공사 보도국 TV제작1부 기자
한국방송공사 보도국 TV편집부 기자
한국방송공사 보도국 모스크바 특파원
한국방송공사 보도국 정치부 차장
한국방송공사 시청자센터 홍보부주간
한국방송공사 보도국 전문기자
한국방송공사 보도본부 해설팀 해설위원
한국방송공사 보도국장
한국방송공사 해설위원실장
KBS비즈니스 대표이사 사장
제22대 한국방송공사 사장 (박근혜 정부)
제21대 한국방송협회 회장
지상파UHD방송추진협회 회장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 회장

1. 개요2. 생애
2.1. 기자 시절
3. 평가 및 논란4. 사건사고
4.1. 고대영 한국방송공사 사장 해임 사건
4.1.1. 제1심 서울행정법원4.1.2. 항소심 서울고등법원4.1.3. 상고심 대법원
5.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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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언론인이자 전 KBS 사장이다. 특히 국회 인사청문회 1호 KBS 사장이다. 2014년 방송법 일부 개정으로 KBS 사장도 국회 인사청문회 대상이 되었는데 이 1호가 고대영이다.

2. 생애

1955년 9월 28일 서울특별시에서 3남 중 첫째로 태어나 경동고등학교(30회)와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하였다. 1985년 KBS 11기 기자로 입사하여 초기에는 사회부에서 시작해 TV편집1부(1987~1989), 정치부(1989~1991 / 1994~1995), TV제작1부(1991~1993), TV편집부(1993~1994), 모스크바 특파원(1995~1998), 정치부 차장(1998~2001) 등을 두루 거쳐 2001년 시청자센터 홍보부주간을 시초로 보직간부 생활을 시작, 2003년 5월부터 보도국 전문기자(부장급)로 배치되어 KBS 뉴스 8 코너 <고대영의 세상읽기>를 진행했고, 2004년 해설위원으로서 8시 뉴스타임 코너 <뉴스타임 세상보기>, 뉴스광장 <뉴스해설> 등지에 출연해 얼굴을 알렸다.

2008년 9월 인사 때 보도본부 보도총괄팀장까지 승진하였고, 동년 말 조직개편에 따라 보도국장이 됐다. 2010년 해설위원실장을 거쳐 2011년 보도본부장까지 올랐지만 얼마뒤 당시 6월 임시국회에서 수신료 인상의 실패 책임으로 당시 TV제작본부장이었던# 길환영 전 사장을 포함한 6명과 함께 사표를 냈지만 당시 사장인 김인규 전 사장은 사표를 수리하지 않고 감싸다가 9월에 현대자동차에 골프접대 논란이 터지면서# 결국 사퇴했지만 2014년에 자회사인 KBS비즈니스 사장으로 복귀했으며, 2015년 10월에는 이사회의 차기 사장 공모에 응모하여 26일 조대현 사장, 강동순 전 감사, 이몽룡 전 KT스카이라이프 사장, 홍성규 전 방송통신위원회 위원 등 상대 후보 4명을 제치고 최종 후보에 오른 뒤, 27일 청와대에 임명제청되어 11월 16일부터 3일 간 창사 최초로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쳐 24일 정식 취임했다.

취임 후 기존의 노후화된 여의도 사옥을 대체할 '미래방송센터 건립'을 구상하여 최우선적으로 추진했고, 2016년 한국방송협회와 아시아태평양방송연맹 회장까지 겸임했다.

미래방송센터는 안전규정에 미달한 KBS 연구동을 허물고 지어질 계획이었으나, 양승동 취임 이후 계획이 무산되었다.

2018년 퇴임 후 이듬해에 '자유미디어국민행동'이 발족되면서 고문으로 위촉됐고, 2022년 5월 및 6월에 각각 출범된 '국민언론감시연대'[2] 및 '공정언론국민연대'의 발기인으로 각각 참여했다.

2023년 9월에는 KBS 사장 공모에 도전했는데, 응모 후 입장문에서 그간 해임무효소송에 지쳐 손녀를 돌보면서 평화로운 일상을 즐기고 싶어했으나 후배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여러 차례 거절 끝에 승낙한 거라고 밝혔다. 그러나 해임 과정이 위법했다고 할지라도, 후술할 논란들로 인해 언론노조 KBS본부 측의 비판이 뒤따를 전망이었으나# 사장 최종 후보로 박민 문화일보 논설위원, 이영풍 전 신사업기획부장, 최재훈 부산총국 기자로 결정되면서 탈락했다.#

2.1. 기자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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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및 해설위원 시절

3. 평가 및 논란

  • 보도총괄팀장(보도국장) 시절이던 2008년 10월 29일, 그는 사회팀 사무실까지 찾아가 사건부 데스크에 막말을 했고, 11월 <미디어 포커스> 폐지 움직임 당시 제작진들에게 "2년 동안 유배시키겠다"고 협박했다. 심지어 술집에서 <미디어 포커스> 폐지에 항의한 김경래, 박종석 기자 머리채를 흔들었다가 결국 욕 먹고 사과해야 했다.
  • 2009년 5월, 보도국장일 때 국정원으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 보도 협조 명목으로 현금 200만 원을 받았다고 보도되었으나 검찰 조사 결과는 무혐의 종결이었다.
  • 2009년 보도국장 시절 용산 참사,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축소 및 편파보도 지시,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 스폰의혹 보도 불방 등으로 기자들에게 비난을 샀고, 2011년 보도본부장 시절 KBS 기자협회 측에서 고대영 제명 찬반투표를 열자 기자협회도 탈퇴했다.
  • 심지어 같은 해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2007년 외교문서에서 당시 워싱턴 특파원이던 민경욱과 함께 이명박 대통령 당선을 바라며 주한미국대사관에 자료를 제공했다고도 나왔다. 단, 폭로 당시 KBS 측은 '잠깐 만나 일상적 얘기를 나눈 것'이라고 해명했으며, 고 사장 본인도 2015년 인사청문회 당시 '교류 차원으로 만났다'며 부인했다.
  • KBS 사장이 된 다음 해인 2016년 4월에 미디어 인사이드를, 6월에 KBS 뉴스 옴부즈맨 같은 비평 프로그램을 폐지하였다. 이후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은 후임 사장인 양승동 취임 후에 저널리즘 토크쇼 J로 다시 재편성 되었다.
  • 하지만 이도 모자라 2016년 5월에 2010년 대대적 조직개편 이후 6년만에 조직 개편을 하였는데, 먼저 보도국-디지털뉴스국-보도영상국 3개 국을 '통합뉴스룸'으로 단일화시키고 편성본부를 '방송본부', TV본부를 '제작본부'로 각각 개편하고 미래사업본부를 신설했으며, 기술본부를 제작기술본부와 네트워크센터로 나누었다. 아울러 방송본부는 편성주간과 협력제작국을 없애고 편성마케팅국 및 1/2TV, 라디오사업국 4개로 재편한 후 각 매체별 사업부 밑에 제작투자그룹 및 편성부 2개씩 짰다. 제작본부 휘하 국-부 조직을 없애고 라디오센터를 그쪽 산하로 둬서 TV-라디오 통틀어 '프로덕션'제로 바꾼 후, 드라마국을 '드라마사업부'로 승격시켰으며 보도본부에 있던 시사제작국을 제작본부에 합쳐 'TV프로덕션2'로 개편했다. 아울러 구 라디오국 라디오1부가 맡던 라디오 시사프로 제작 업무를 통합뉴스룸 라디오제작부로 이관시켰다.[3] 다만 노조 입장에선 상업성을 부각하는 방향으로 개편했다고 말이 많았고, 8월에는 KBS 미디어로부터 드라마부문을 떼내 몬스터유니온을 설립해서 논란이 되었다. 실제로 외주제작사 세 단체는 KBS가 스스로 상업화라는 괴물이 되겠다고 선언했다라며 민영방송과 다를 바 없는 길을 걷는 있는 지금 수신료 역시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이를 반영하는 듯 몬스터유니온의 수익이 2016년에 9억 적자, 2017년에는 53억 적자를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현재도 제작한 프로그램 중에서 성공한 게 단 하나도 없다. 결국 2019년부터 예능 제작을 포기하고 드라마 제작에만 집중하기로 결정하였다. #
  • 전임 사장 조대현이 연임하기 위해 제작비 일부(총 175억 원 중 KBS가 32억 원을 투자)를 투자했던 CJ E&M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관련 보도 지시를 거부한 기자를 징계했다. #1, #2
  • 경영능력에 있어서는 엇갈리는 평가도 있다. 고대영 사장의 후임인 양승동 사장 취임 후 KBS는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각각 -585억원, -321억 원으로 모두 적자를 기록했다. KBS는 고대영 재직 당시이던 2016년과 2017년 영업이익을 각각 16억과 202억원[10]과 당기순이익[11] 248억원과 564억원을 기록, 김인규 때인 2010년 이후로 6년 만에 처음으로 두 지표 모두 흑자를 기록한 바 있다. 그 덕에 낙후 된 KBS의 사옥과 시설에 대해서도 개선 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수 있었으나, 후임자인 양승동 사장의 체제 하에서는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이 다시 적자를 기록하였고, 아예 최다 적자 신기록까지 갱신하였다. 그 덕분에 고대영의 경영 능력이 재평가 되고 있는 셈이 되었다. 사장 시절 열의있게 추진 하던 신사옥 사업은 당연히 무산되었다.[12]

3.1. 민주당 도청 의혹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한선교 민주당 도청 의혹 사건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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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8일, 뉴스타파에 의해 2011년 민주당 대표 회의실을 도청해서 한선교 한나라당 의원에게 전달한 장본인임이 밝혀졌다.

4. 사건사고

4.1. 고대영 한국방송공사 사장 해임 사건

2017년 연말에 법인카드를 유용한 강규형[13] KBS 이사가 해임되면서[14] 2018년 1월 10일에 고대영 KBS 사장에 대한 해임안이 상정되었다. #

1월 15일 첫 논의가 이루어졌으나 소명 기회를 주자는 의견에 일주일 연기됐고, 고대영 본인이 직접 출석해 소명한 1월 22일에 해임제청안이 찬성6:반대1로 통과되었다. 이후 1월 23일 문재인 대통령이 전자결재로 재가함으로써 24일 0시부로 해임되었다. 이에 불복하여 1월 31일 고대영 사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상대로 본안재판 결과가 나올 때 까지 해임처분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해임처분 효력 정지신청'과 '해임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하였다.

4.1.1. 제1심 서울행정법원

사건번호: 서울행정법원 2018아10316
재판부: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판사 박형순)
해임처분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집행정지 신청을 서울행정법원에 냈으나 기각되었다. #
사건번호: 서울행정법원 2018구합53436
재판부: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판사 박형순)
2018년 10월 26일, 고대영 전 사장은 해임사유 8개 중 5개만 인정되어 패소하였다. #1, #2

4.1.2. 항소심 서울고등법원

사건번호: 서울고등법원 2018누73364
재판부: 서울고등법원 행정3부(함상훈 부장판사, 권순열·표현덕 고법판사)
고대영 사장은 1심에 불복하여 항소를 제기하였다. 2023년 2월 9일, 해임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1심을 취소하고 원고승소 판결했다. #

재판부는 고대영 전 사장에 대한 해임에 절차적 위법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또한, 고 전 사장에 대한 8개의 해임사유에 대해서도 적법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공사의 신뢰도·영향력이 추락하고 방통위 심사에서 조건부 재허가 판정을 받은 것은 고 전 사장에게 일부 책임은 있으나, 해임할 수준은 아니라고 봤다. 파업 사태를 초래했다는 징계 사유는 "당시 파업의 주된 목적이 원고의 해임이었는 바, 이는 적법한 쟁의 사유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졸속 조직개편', '인사 처분 남발' 등의 사유는 고 전 사장의 책임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

향후 그의 변호인은 문재인 전 대통령과 방송통신위원회 위원 등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4.1.3. 상고심 대법원

사건번호: 대법원 2023두36732
재판부: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
항소심 이후 제3자 소송참가인인 KBS가 불복하며 상고했다. 2023년 6월 29일, 대법원은 고대영이 대통령을 상대로 낸 해임처분 취소 소송을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심리불속행 기각으로 확정했다. 심리불속행은 원심판결에 중대한 법령 위반 등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상고심절차특례법에 따라 대법원이 별도의 결정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채 상고를 기각하고 원심을 그대로 확정하는 제도다.

5. 수상 경력

  • 제7회 한국참언론인대상 방송경영부문 (2011)
  • 자랑스러운 외대인상 (2016)
  • 제21회 아시안 텔레비전 어워즈 공로상 (2016)
  • 제1회 대한민국 언론인 대상 특별상 (2023)
  • 미디어 알바트로스상 언론특별부문 (2023)


[1] 고대영의 막내동생이며, 현재 중앙일보 기획취재국장으로 재직 #[2] 구 20대 대선 불공정방송감시단.[3] 이러한 조직도는 2019년 개편 전까지 유지되었다.[4]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전 새누리당 대표.)이 외압성 전화를 했다는 내용에 대해 다른 기자들은 기사를 작성했는데 왜 보도를 안했냐' 는 질의이다.[5] 정확히 7년 후, 박민 KBS 사장이 비슷한 논란을 불러일으킨다.[6] 불법도박 걸리 전에 출연했던 우리동네 예체능에 다시 복귀하여 종영 때까지 출연했다.[7] 하지만 박시연는 5년 후 음주운전 사고를 내면서 다시 출연금지 명단에 올랐다.[8] 결국 정준영이 출연했던 시즌 3는 중단되고 시즌 4로 전환했다.[9] 중간광고도 계속 요구했고 결국 후임 양승동 때 허용 되었다.[10] 출처[11] 2016년 출처 2017년 출처[12] 전임 사장들의 흔적 지우기에 열중이던 양승동 사장 체제 하에서도 위성방송사 지분 매각, 지방 송수신 센터 부지 매각 등 여러 방법으로 신사옥 건설 사업은 추진 하려는 모양새였으나, 해당 대금들은 모두 적자 보전을 위해 사용되어 결국 사업이 무산 되었다.[13] 강창성 장군의 아들로, 본업은 명지대학교 방목기초교육대학 인문교양 교수.[14] 해당 건은 2021년 대법원에서 패소 판결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