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4-28 07:17:36

노정팔

노정팔 | 盧正八
출생 1919년 8월 28일
함경남도 갑산군
사망 2002년 7월 31일 (향년 83세)
학력 만주국 하얼빈농과대학 (졸업)
서울대학교 신문대학원 (졸업)
가족관계 부인, 1남 3녀
1. 개요2. 일생3. 수상 경력4. 참고/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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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언론인. 한국 방송 역사상 '한국 방송 PD 1호'로 손꼽히고 있다.

2. 일생

1919년 함경남도 갑산군에서 태어나 1944년 만주 하얼빈농업대학을 졸업한 뒤, 1945년 8.15 광복을 맞고 귀국하여 11월에는 서울중앙방송국 아나운서시험에 붙었으나, 편성과 PD로 배정되어 방송인으로서의 생활을 개시했다. 1947년에는 조사계장을 잠깐 맡다가 편성계장으로 이동하며 서울대학교 신문대학원 과정을 이수했고, PD 재직 시에도 1947년 KBS 어린이합창단 구성, 1950~1953년 6.25 전쟁 및 부산 피난 시절에는 전시방송을 수행하는 등 궂은 일을 맡는가 하면, 당시 방송인력 수의 부족으로 프로그램 제작을 직접 맡기도 하여 <누가누가 잘하나>, <무엇일까요?>, <수요일 밤의 향연>, <재치문답>, <스타탄생> 등 당대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들을 양산시키는 데 주도/기여했다.

1956년 공보실 방송관리국 지도계장으로 발령나 1957년에는 미국 국무부의 초청으로 5개월 간 보스턴 대학교 연수과정을 이수하며 선진 방송시스템을 경험했고, 동년 11월 방송관리과장으로 승진하여 '방송문화상' 및 '방송장려상' 제도를 도입했다. 1959년 서울중앙방송국 제1방송과장으로 방송계 일선에 복귀하여 1961년 서울국제방송국 대공과장, 1962년 부산방송국장 및 공보부 방송관리국 관리과장, 1963년 서울국제방송국장, 1966년 대구방송국장, 1968년 중앙방송국 라디오부장 등을 두루 거쳐 1970년 문화공보부 방송관리국장으로 전보됐다가, 1973년 한국방송공사 출범으로 초대 감사가 되어 3년을 지내다 1976년부터 부산문화방송의 전무이사로 영전되어 5년 동안 지냈다.

이후 야인으로 지내다가 1988년부터 5년 동안 KBS 민선 1~2기 이사장으로 선임되어 5년을 재직하는 등 한국 방송계의 원로로서 여러모로 종횡무진 활동했고, 2001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으로부터 방송인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2002년 7월 31일 향년 83세에 노환으로 숨을 거뒀다.

3. 수상 경력

  • 제15회 서울시문화상 방송부문 (1966)
  • 국무총리표창 (1968)
  • 홍조근정훈장 (1975)
  • 제1회 희관언론상 (1989)
  • 제7회 함경남도 문화상[1] (1993)
  •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방송인 명예의 전당 (2001)

4. 참고/관련 자료

  • 저서
    • 휴일없는 메아리 - 한국교육출판. 1983.
    • 한국방송과 50년 - 나남출판. 1995.
    • 삼수갑산 어디메오 - 산악문화. 1996.


[1] 함경남도중앙도민회 주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