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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수호 柳壽浩 | |
출생 | 1947년 9월 19일 ([age(1947-09-19)]세) |
경기도 인천부 (現 인천광역시) | |
신체 | 167cm, 67kg |
학력 | 서울효제초등학교 (졸업) 덕수중학교 (졸업) 덕수상업고등학교 (졸업 / 53회) 경희대학교 정경대학 (신문방송학 / 학사) |
종교 | 가톨릭 (세례명: 알렉시오) |
데뷔 | 1969년 동양방송 아나운서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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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앞에 했던 임주완 아나운서는 변화구 전문이지만 전 직구 전문입니다. 임주완씨 중계를 들으면 정이 넘치고 재미있어요. 전 스타일상 정통적이죠."
"1970년대 TV중계는 카메라 3대를 하고 했어요. 1980년대 프로야구 중계는 무등 야구장에서 중계를 할경우 광주 팬들이 해태 타이거즈 해당 선수에 대한 비판을 하면 옆에서 소리가 났죠. 뭔가싶어서 봤더니 물병이 날아오더라고요. 중계 일정상 해태 타이거즈에 다시 들어가면 조심스럽더라고요." [1]
"많은 스포츠 채널이 생기다 보니 수없이 많은 캐스터들이 생겼습니다. 제가 꼭 부탁드리고 싶은 건, 야구 중계할 때 횟수, 아웃카운트, 또 타자의 수비위치 등은 꼭 좀 알려다오. 몇 번 타자 어느 선수와 수비 등을 알려줬으면. 가장 기본인 점수, 현재 스코어 앞서가는 팀 한마디로 끝나잖아요? 그래서 왜 아끼냐? 이 친구들이 TV 중계다보니 화면에 다 나온다 말이죠. 그러나 화면상으로 중계보는 사람들 많지 않아요. 물론 캐스터와 해설 중계는 당연히 상황상 하는 게 맞는데 기본은 지키라고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어요. [2]
"전 이제 이번에 스승의 날을 맞이해서 제가 뭐 스승 그런 상황도 아니지만 기회를 주신 MBC SPORTS+팀에게 고맙다는 말을 말씀드리고, 야구팬 여러분들이 제 목소리를 들으셨을텐데 보시는 바와 같이 아직은 써먹을 만해요. 이규항 선배께서 문자를 보내주셨는데, 제 앞에 빈 스컬리 명칭은 죄송하죠. 제가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러나 아쉬움이 있어요. 빈 스컬리 그 양반은 90이 넘도록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아직도 15년 더 해야 되는데 타 종목에서 제가 많은 종목을 하고 있습니다. 체력과 힘이 다하는 날까지 현장에서 중계하다 사라지면 가장 행복한 삶이 될 겁니다. 아무튼 좋은 기회를 주셔서 마음껏 야구팬을 위해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고맙습니다. 야구는 참 재미있습니다. 꾸준히 많이 찾아와주셔서 야구가 더 발전되도록 도와주시면 고맙겠고, 저도 건강을 잘 관리해서 가능한 여러분을 또 뵐 수 있도록 건강관리 열심히 하겠습니다." [3]
2019년 5월 15일, MBC 스포츠플러스 스승의 날 특집 삼성 : 두산의 시즌 5차전 중계방송에서 7회까지 중계를 마치고 한명재 아나운서에게 마이크를 넘기며.[4]
"1970년대 TV중계는 카메라 3대를 하고 했어요. 1980년대 프로야구 중계는 무등 야구장에서 중계를 할경우 광주 팬들이 해태 타이거즈 해당 선수에 대한 비판을 하면 옆에서 소리가 났죠. 뭔가싶어서 봤더니 물병이 날아오더라고요. 중계 일정상 해태 타이거즈에 다시 들어가면 조심스럽더라고요." [1]
"많은 스포츠 채널이 생기다 보니 수없이 많은 캐스터들이 생겼습니다. 제가 꼭 부탁드리고 싶은 건, 야구 중계할 때 횟수, 아웃카운트, 또 타자의 수비위치 등은 꼭 좀 알려다오. 몇 번 타자 어느 선수와 수비 등을 알려줬으면. 가장 기본인 점수, 현재 스코어 앞서가는 팀 한마디로 끝나잖아요? 그래서 왜 아끼냐? 이 친구들이 TV 중계다보니 화면에 다 나온다 말이죠. 그러나 화면상으로 중계보는 사람들 많지 않아요. 물론 캐스터와 해설 중계는 당연히 상황상 하는 게 맞는데 기본은 지키라고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어요. [2]
"전 이제 이번에 스승의 날을 맞이해서 제가 뭐 스승 그런 상황도 아니지만 기회를 주신 MBC SPORTS+팀에게 고맙다는 말을 말씀드리고, 야구팬 여러분들이 제 목소리를 들으셨을텐데 보시는 바와 같이 아직은 써먹을 만해요. 이규항 선배께서 문자를 보내주셨는데, 제 앞에 빈 스컬리 명칭은 죄송하죠. 제가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러나 아쉬움이 있어요. 빈 스컬리 그 양반은 90이 넘도록 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아직도 15년 더 해야 되는데 타 종목에서 제가 많은 종목을 하고 있습니다. 체력과 힘이 다하는 날까지 현장에서 중계하다 사라지면 가장 행복한 삶이 될 겁니다. 아무튼 좋은 기회를 주셔서 마음껏 야구팬을 위해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고맙습니다. 야구는 참 재미있습니다. 꾸준히 많이 찾아와주셔서 야구가 더 발전되도록 도와주시면 고맙겠고, 저도 건강을 잘 관리해서 가능한 여러분을 또 뵐 수 있도록 건강관리 열심히 하겠습니다." [3]
2019년 5월 15일, MBC 스포츠플러스 스승의 날 특집 삼성 : 두산의 시즌 5차전 중계방송에서 7회까지 중계를 마치고 한명재 아나운서에게 마이크를 넘기며.[4]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임주완과 함께 한국 스포츠 중계의 양대 레전드로 꼽힌다. MBC에 임주완 아나운서가 있다면, KBS에는 유수호 아나운서가 있다.
2. 경력
1947년 9월 19일, 경기도 인천부(현 인천광역시)에서 태어난 그는 창영초등학교를 다니다가 6학년 때 서울효제초등학교로 전학하여 이후 덕수중학교, 덕수상업고등학교(53회), 경희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했다.역대 KBS 스포츠 캐스터의 계보[6] |
동양방송 입사 당시 선배이자 KBS(당시 중앙방송국)에서 이적해 온 박종세[7] 아나운서가 사실상 아나운서 첫 스승이었다고 한다. 라디오는 박종세 아나운서에게, TV는 이장우[8] 아나운서에게 배웠다고 한다.
유수호 아나운서의 파트너 |
공교롭게도 파트너인 야구 하일성 해설위원, 배구 오관영 해설위원 모두 고인이 되었다.
아나운서 활동 초창기에는 고교야구 중계를 주로 해 왔으며 이 때 하일성 해설위원[9]과 주로 콤비를 이루어 야구 중계를 했다. 야구뿐만 아니라 핸드볼, 탁구, 배구, 체조, 펜싱, 레슬링 등의 캐스터도 맡아 해왔으며 1990 베이징 아시안 게임에서는 무려 17개 종목을 중계한 경력을 보유하고 있다.
1998년 12월 16일, 박찬호가 완투하면서 우승을 결정지었던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야구 결승 당시, KBS 중계 캐스터였다.[10]
2014년 5월 30일에는 KBS 양대 노조 동시 총파업으로 인해 중계를 맡을 캐스터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는 상황이 되어 급하게 단오장사 씨름 중계를 담당하기도 했다. 40년 넘는 방송경력 중 여러 종목 중계를 해봤지만 씨름 중계는 이번이 생전 처음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2018년 현재도 현역으로서 네이버를 통해 송출하는 스포츠 전문 방송인 ISPORTS TV의 주 캐스터로 배구, 탁구, 세팍타크로 등 수많은 종목의 아마, 사회인, 실업 경기를 맡고 있다. 다만 워낙 다양한 종목을 다루다 보니 각 선수 정보나 잘 모르는 종목 중계 때 구멍이 많아졌다.
2019년 5월 15일에는 KBS 출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MBC SPORTS+에서 중계하는 스승의 날 이벤트에 초청을 받아 임주완 아나운서와 함께 중계에 참여했다.[11] 삼성 라이온즈와 두산 베어스 5차전의 5회부터 7회까지 허구연 해설위원과 호흡을 맞추면서 중계에 참여했다. 사석에서는 친한 허구연 해설위원과 언제 같이 중계해보냐 얘기했던 게 사실상 처음으로 실현이 돼서 매우 감개무량해하기도 했다.[12]
3. 중계 스타일
고교야구 전성기를 기억하는 올드 야구 팬에게도 익숙한 목소리이며 2010년대 들어서 야구와 배구를 본 젊은 층에게도 익숙한 목소리이다. 그의 중계는 담담한 목소리로 톤의 변화가 없이 경기 상황을 잘 전달한다는 점이다. 최근 많은 캐스터들이 경기의 흥을 돋구기 위해 극적인 장면에서 톤을 올리거나 다양한 수식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유수호 캐스터는 감정을 자제하며 담담함 톤으로 상황을 전달한다. 정말로 경기흐름이 바뀔 수 있는 긴박한 상황에서 잠깐 속사포로 중계하게 될 경우에는 성량도 올라가기는 하지만 그 상황이 끝나면 곧바로 돌아온다. '포볼' 대신 '베이스 온 볼스', '데드볼' 대신 '힛 바이 피치드 볼' 등의 용어를 고집하며, 가끔 그렇게 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13] 2010년대 후반 들어 포볼, 데드볼 등의 일본식 용어가 사장되는 것을 보면 그의 의견이 어느 정도 반영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유수호 아나운서처럼 미국식 용어가 완전히 대체한 것은 아니고 한국식으로 번역한 '볼넷', '몸에 맞는 공' 등의 용어들이 많이 정착된 것이긴 하지만.배구 중계도 많이 했기에 배구팬들에게도 익숙한 목소리이다. 특히 유수호 캐스터-오관영 해설위원 콤비는 배구중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스포츠 중계 역사를 통틀어 최고의 콤비에 순위권으로 꼽힌다. 본사 정년퇴임을 전후로 하여 KBS N 스포츠에서 활동할 당시 초짜 해설가였던 박미희 현 흥국생명 감독, 김세진 전 OK저축은행 감독과 같이 해설을 하면서 이 둘을 명해설가가 되는데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1996 슈퍼리그 결승 제4차전 현대자동차서비스 vs 고려증권의 명승부 게임을 오관영 해설위원과 함께 중계했다.
젊은 시절 다수 종목의 중계를 해서 스포츠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이 탁월하며, 특히 야구와 배구는 해설자 못지 않은 내공을 가지고 있다.[14] 방대한 지식으로 해설자와 균형을 맞추는 중계 방식을 취하는데, KBS 지상파 야구중계 캐스터인 표영준 아나운서가 마치 초심자가 야구를 보는 듯 해설이 필요한 장면에서 해설위원에게 상황 설명에 대해 묻는 식으로 진행하는 중계 방식과 대조를 보인다.
어록으로는 '숏, 숏 땅볼', '세칸 오바', '레프트 오바', '레프트 방면의 안타', '백어택, 성공', '아, 이게 뭡니까?' (주로 야구, 배구에서 어이없는 실책이 나올 때) 등이 있다.
덕수상고 후배이자 LG 트윈스에서 중간계투 투수로 주로 나섰던 김민기에게는 게을러서 크지 못했다며 강한 쓴소리를 했다고 한다.
[1] 프로야구 초창기 중계를 돌이키며, 당시 초창기 무등 야구장은 관중석과 중계석이 하도 가깝다 보니 방음 유리벽으로만 중계를 했고, 이후 중계석을 관중석 위로 옮겼다고.[2] 스포츠 채널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말.[3] 7회 끝나고 야구팬들에게 마지막 메세지[4] 스승의 날을 맞아 준비한 이벤트이다. 2~4회는 임주완 아나운서가, 5~7회는 유수호 아나운서가 맡아 중계하였다.[5] 다만 덕수상업고등학교 야구부(현 덕수고)가 창단된 것은 그가 졸업하고도 한참이나 지난 1980년이다.[6] 이 계보는 현재 김현태, 이광용, 강승화, 김진웅 아나운서가 잇고 있다.[7] 땡전뉴스 문서의 첫번째 사진에 나오신 그 분이다.[8] TBC와 KBS를 거쳐 한국스포츠TV에 이르기까지 한동안 프로야구 중계 캐스터의 대표주자로 불리던 아나운서. 임용수 캐스터가 롤 모델로 삼는 분이기도 하다.[9] 하일성 위원이 KBO 사무총장으로 떠난 후에는 이용철 해설위원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10] 해설은 하일성.[11] 이는 둘 다 은퇴한 후 2010년대 중반부터 자주 같이 방송했던 게 적지 않았기 때문인데, 엠스플에서 이를 놓치지 않고 이벤트로 성사했다. 여기에 더하여, 엠스플은 KBS 스포츠 캐스터들의 계보를 잊지 않고 기리기도 했다.[12] 허구연 해설위원이 크게 부상당하면서 은퇴로 이어진 그 경기도 중계했다는 코멘트를 남겼다.[13] 이런 미국식 용어 사용의 강조는 후배인 표영준 아나운서에게도 이어졌다.[14] 그래서 위에서 기술한 것처럼 해설자가 펑크를 낼 경우 해설자 없이 혼자서 경기를 중계하는 것도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