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27 00:05:27

빈 스컬리


파일:external/officialvinscully.com/home-vin-scully.jpg
"It's time for Dodger baseball!(다저스 경기 시간입니다!)"[1]
파일:MLB_logo.png 명예의 전당 헌액자
빈 스컬리
헌액 연도 ?[2]
헌액 방식 ?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
파일:할리우드 명예의 거리.png
이름빈 스컬리
VIN SCULLY
분야라디오
입성날짜1982년 6월 9일
위치6675 Hollywood Blvd.

1. 개요2. 설명3. 빈 스컬리가 중계한 특별한 경기들4. 이모저모

1. 개요

다저스의 목소리(The Voice of the Dodgers).

풀네임은 빈센트 에드워드 스컬리(Vincent Edward Scully). 이 분에게는 빈스 컬리 1927년 11월 29일생.

미국의 스포츠 캐스터로 미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프로야구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방송중계 전담 아나운서이다. 2016 시즌까지 무려 89세까지 현역으로 방송 마이크를 잡았다. 브루클린 시절부터 마이크를 잡으신 분으로 다저스의 살아있는 역사이며, 미국 스포츠 중계 캐스터 중에서도 특정팀 최장 기간 중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야구 방송중계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미국의 송해 선생님. 연세도 같으시다.

공식 홈페이지. 위 사진이 공홈 메인 사진이다.

2. 설명

1927년 뉴욕 브롱스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어린 시절에는 잡역부, 우편배달, 식당청소 등의 일을 하면서 8살 때 스포츠 캐스터의 꿈을 가졌다고 하며,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 잠시 야구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3] 모교인 포덤대학에서 학교 라디오를 통해 교내 방송 캐스터이자 스포츠 기자로 활약했으며, 사실 야구중계가 아니라 풋볼중계를 먼저 시작했는데 CBS 라디오 스포츠에서 대학풋볼을 중계한 것이 시초. 그리고 23세 되던 해인 1950년에 브루클린 다저스의 TV와 라디오 중계를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대학시절까지 다저스의 철천지 원수인 자이언츠의 팬이었다고 한다. 이유는 1936년 월드시리즈 2차전에서 양키스에게 18-4로 진 자이언츠가 불쌍해서(...) 양키스의 홈에서 태어나서 자이언츠 팬하다가 정작 평생 직장은 다저스.[4]

파일:csj3fz9.jpg
<젊었을 때 사진. 대학 졸업사진이다. 오오 미남>
그 외 사진들

스컬리가 방송일을 시작했을 때엔 한국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상태였다.[5] 웬만한 팀의 감독이나 코치, 심지어는 레전드로 불리는 올드 스타들도 스컬리 앞에서는 꼬꼬마다.[6]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또렷하고 정확한 발음과 마치 그림을 그리는 듯한 표현력으로 화면을 보지 않고 귀로만 들어도 머릿속에서 현장을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스포츠 중계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발음도 거의 교과서 수준. 그런데 영어를 못 알아듣는 몇몇 한국인들은 스컬리의 중계를 처음 듣고 중계가 지루하다, 졸리다 등등의 이유로 푸념하곤 한다(...) [7] 영어 좀 듣는 한국의 MLB 팬들 중에서도 홈런 나왔을 때 "See Ya" 라는 추임새를 넣는 양키스의 마이클 케이(Micheal Kay)[8]나 "You can put it on the boar----d. Yes!"라고 외치고 경기가 승리로 끝나면 "Yes, Yes, Yes"를 외쳐대는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켄 해럴슨(Ken Harrelson) 스타일의 중계를 좋아하는 사람들(혹은 양키스 팬이나 화이트삭스 팬들)도 같은 이유로 스컬리의 중계를 깐다[9][10]. 마치 MLB라면 당연히 홈팀의 분위기가 좋을 때 호들갑을 떨면서 톤을 높이는 그런 스타일의 편파 중계를 해야 하는 것처럼. 물론 어떤 스타일의 중계를 좋아하는 건 개개인의 취향이지만 비판을 하기 전에 스컬리의 중계철학에 대해서 제대로 좀 알고는 있자, 그냥 취향에 안 맞는다고 무작정 까지 말고. 스컬리가 그런 식의 중계를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다. 스컬리의 중계철학은 밑에 각주에 나와 있다. 물론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든 미국의 야구팬이나 한국의 MLB 팬이나 조 벅의 중계 스타일은 신나게 깐다.

풍부한 경험과 엄청난 독서량으로 유명한 빈 스컬리는 야구 내외적으로 전문적이고 잡다한 지식을 통해 선수들의 기록, 잘 알려지지 않은 백그라운드 스토리, 신변잡기 같은 사소한 것부터 셰익스피어같은 대문호의 문구가 나오거나, 몇몇 상황을 뮤지컬에 비유하기도 하는 등 역사, 문화, 예술 각종 분야의 트리비아를 60년이 넘는 내공을 통해 총망라해서 풀어낸다. 간혹 야구 외적인 내용을 너무 많이 얘기한다라는 불만도 있지만, 이런 걸 하나하나 캐치해서 듣고 있으면 지루해질 틈이 없다.

놀라운 것은 80이 넘은 연세에도 한번 경기시작 마이크를 잡으면 몇 시간이 걸려도 끝까지 중계를 한다는 점과 그 동안에 옆에 해설자 따위는 두지 않고 1회초부터 경기 종료까지 오로지 혼자서 모든 상황을 다 중계를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중계가 가능한 원인은 스컬리가 1950년대 라디오 시절부터 마이크를 잡아오면서 방송중계 스킬을 갈고 닦아왔기 때문이다. 그 시절에는 TV중계라는 것이 드물었기 때문에 방송을 중계하는 아나운서의 표현력과 발음이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다만 너무 억양이 너무너무 차분한 나머지 감정이 실리지 않는다는 평도 있긴 하다.[11] 그 전설적인 9회 백투백투백투백 홈런 + 연장 끝내기 투런으로 다저스가 승리한 2006년 9월 18일 경기에서도 [12]침착한 목소리로 해설하던 것만 보더라도... 그래도 인상적이긴 했던지, 노마 가르시아파라의 끝내기 홈런이 나오자 '언빌리버블!' 을 외치긴 했으나.. 홈런만 쳐도 괴성부터 지르는 다른 팀 아나운서같았으면 그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언빌리버블 다음에 구장이 떠나갈듯한 환성이 울려퍼지고 카메라가 관중석을 돌아가면서 비춰주는데, 한 1분 30초정도 말없이 조용히 있다가 마지막 클로징 멘트로 "By the way, I forgot to tell you. The Dodgers are in first place." 라고 쿨하게 한마디 하고 방송을 마무리하는 센스까지... 차분하면서도 분위기를 살리는 그만의 중계 방식이라고나 할까. # 그런 중계 스타일 뿐만 아니라 더운 여름에도 목 관리를 위해 중계부스에 에어컨을 틀지 않을 정도로 중계 외적으로 프로 의식도 상당하다고 한다.

나이가 있어서 홈경기와 서부지구 내의 샌디에이고나 샌프란시스코 등 근거리 원정. 그리고 특별히 플레이오프 때만 원정을 다닌다. 나이와 건강 때문에 2000년대 말부터 계속 은퇴설이 나오기도 했고, 2012년에는 시즌 초 지독한 독감에 걸려서 홈 개막전을 놓쳤다가[13] 4월 15일 재키 로빈슨 데이에 맞춰 겨우 복귀한 일도 있었다. 일단 2012년 다저스가 보스턴 레드삭스로부터 칼 크로포드아드리안 곤잘레스, 조시 베켓을 데려오는 빅 트레이드를 성사하면서 강해진 전력에 자신도 고무되었다며(...) 현역 연장을 선언하면서 2013년에도 다저스의 중계 캐스터로 남게 되었다. 시즌 초의 졸전을 보면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 했는데 난 그 사실을 몰랐어가 나올 뻔 했지만 다행히 반등에 성공했다

2013년 시즌 중에도 LA 타임즈의 기사를 통해 시즌 막판 팀의 대분전에 고무된 듯 중계를 하는 것에 신이 나있다며 2014년에도 다저스의 중계를 계속 할 것이라는 의향을 내비쳤다.#

중계 커리어가 스컬리보다는 짧지만 비슷한 급으로 존경받던 인물로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전속 아나운서 해리 칼라스가 있었다. 칼라스는 2009년 4월 13일 다저스의 홈 개막전에서 스컬리가 시구한 날 필리스의 워싱턴 내셔널스 원정경기를 준비하던 내셔널스 파크에서 쓰러져 세상을 떠났고, 스컬리는 경기 도중 그의 사망 소식을 전하며 애도하였다. ESPN에서 칼라스의 추모 기사를 낼 때 스컬리와 인터뷰를 했는데 2008년 필리스의 월드 시리즈 우승을 보고 간 것이 다행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한편 라이벌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중계팀에도 연배로 따지면 스컬리옹이 방송계에 입문할 시절 태어난지라 스컬리옹에 비하면 꼬꼬마이긴 하지만 존 밀러라는 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 캐스터가 있는데, 이분은 SF 자이언츠의 중계 뿐만 아니라 ESPN에서 명예의 전당 2루수 조 모건과 함께 선데이 나잇 베이스볼 전국방송을 20년간 중계하면서 명성을 떨치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스컬리처럼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오른 인물들이다.


2014년 7월 29일 다저 스타디움에서 경기 도중에 중대발표가 전광판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는 스컬리가 2015년에도 중계를 담당할 것이라는 뉴스. 이 뉴스는 류현진푸이그, 남가주 토박이 터너 세 선수가 각각 한국인, 히스패닉, 미국인들을 대표해 3개국 언어로 읽어주었다. 다저 스타디움에 있는 관중들도 스컬리 옹의 현역 연장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14]

2015년 8월 28일(현지시각), 2016년에도 다저스 경기를 중계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2016년을 끝으로 은퇴하신다. 다저스는 그를 위해 현지시간으로 9월 23일부터 25일까지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올시즌 마지막 홈 3연전을 Vin Schully Weekend로 지정하고 마운드도 그의 퍼스트 네임인 VIN을 그려 놓고 그의 은퇴를 성사하게 치뤄주었다. 그러나 스컬리의 방송 커리어가 거기서 끝난 건 아니었다. 스컬리의 마지막 방송은 2016년 10월 2일, 스컬리 본인을 야구의 세계로 인도한 팀이자 다저스의 숙적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원정경기이다. 67년동안 다저스 팬과 고락을 같이한 전설의 마지막 방송을 위한 최적의 상대. 적지인 AT&T 파크에서도 스컬리의 은퇴를 안타까워하는 팬들의 박수를 받으며 그동안 스컬리의 중계를 들어왔을 수많은 팬들에 대한 감사의 작별인사 후에 67년에 걸친 방송 커리어를 다음과 같은 말로 마무리 했다.
"So this is Vin Scully, wishing you a very pleasant good afternoon wherever you may be. (여러분들이 어디에 있든지 매우 즐거운 오후가 되기를 바라며 지금까지 빈 스컬리였습니다.)"

야구중계의 전설이 67년에 걸친 방송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멘션치고는 너무도 평범해보이는 그래서 마치 당장 내일이라도 또 다시 중계 방송석에서 야구중계를 해줄 것만 같은 느낌마저 드는 이 한 문장은 평소에 스컬리가 낮경기를 마무리할 때 쓰는 멘션이며 은퇴경기라고 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 하는 스컬리의 방송철학이 압축된 마지막 한마디라고 하겠다. 그 와중에 다저스 선수들은 스컬리 옹의 마지막 방송 경기에서 숙적인 자이언츠에게 싹쓸이 3연패를 당해주며 자이언츠를 포스트시즌으로 보내줬다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파일:Sandy-Koufax-Tommy-Lasorda-Vin-Scully-Ring-of-Honor-.jpg

2017년 5월 3일(현지시각)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홈 경기 전에 스컬리의 'Ring of Honor' 입회식이 열렸다.(이날 경기는 제프 사마자에게 8이닝 동안 11K를 헌납하며 1대 4로 졌다.) 다저스타디움 한켠에 붙어있는 영구결번들 옆에 스컬리를 기념하는 기념판(라디오 마이크 모양)을 부착했다. 블루커튼을 걷은 사람은 샌디 코팩스와 토미 라소다이다. 스컬리 옹은 이날 행사를 '마지막 환호'라고 표현하며 "더 이상 다른 필드 위 행사는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하며 오늘이 자신이 필드에서 소개되는 마지막 행사라는 뜻으로 말했다.

3. 빈 스컬리가 중계한 특별한 경기들

1950년대 이후로 메이저리그를 주름잡던 수많은 스타들이 스컬리가 지켜보는 앞에서 플레이를 했으며 인구에 회자되는 수많은 명승부들이 스컬리의 입을 통해 전파를 탔다. 스컬리가 중계한 퍼펙트 게임만도 무려 4번. 그 중에는 월드시리즈 유일의 퍼펙트 게임인 돈 라슨의 게임도 들어있다. 뿐만 아니라 행크 애런베이브 루스의 기록을 깨는 715호 홈런을 친 경기도 스컬리가 중계했다. 그리고 다저스의 차세대 에이스인 클레이튼 커쇼의 생애 첫 노히트노런도 그가 직접 중계했다.
  • 2008년 6월 29일 다저스가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전에서 제러드 위버, 호세 아레돈도를 상대로 채드 빌링슬리, 조나단 브록스턴, 사이토 다카시가 이어던지며 기록한 1:0 무안타 승리. 위버와 아레돈도는 (다저스 홈경기였기 때문에) 8이닝 동안 합작으로 노히트를 던졌지만[18], 5회말에 맷 켐프의 투수앞 땅볼에 안타인지 실책인지 애매한 플레이로 출루를 허용했다. 기록원이 처음에는 내야안타로 기록했다가 노히트가 이어지는 점을 고려해서 실책으로 정정했다. 그러나 이 결정이 또다른 의미의 대기록을 만들게 했다. 그리고 맷 켐프가 도루를 시도 했는데 포수의 송구가 악송구가 되면서 3루까지 진루하고 다음 타자인 블레이크 드윗의 희생플라이로 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나서도 다저스는 안타 한 개를 치지 못했고, 에인절스가 한 점도 못내면서 패한 것이다(...) 참고로 퍼펙트 게임을 네번이나 보신 스컬리 옹이 자신도 80년 평생 처음보는 경기라고 했다. 그만큼 진귀한 기록이다.

젊은 시절에는 다저스 중계 뿐만 아니라 월드시리즈 중계도 알바로 뛰곤 했다. 1986년 월드시리즈의 빌 버크너의 알까기라든가 1988년 월드시리즈에서 나온 커크 깁슨의 끝내기 홈런[19] 등 주옥같은 명승부들이 스컬리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었다. 야구 중계만 한 것도 아니고 미식축구 중계도 해서 NFL 역사상 손에 꼽히는 명장면 중 하나인 The Catch도 그의 입을 통해 전파를 탔었다. 빈 스컬리 옹 트리뷰트.


4.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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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년부터 다저 스타디움 기자실(Press box)의 명칭이 빈 스컬리 프레스박스로 명명되었다.
  • 야구중계만 한 것이 아니라 1975년부터 1982년까지 미국프로풋볼(NFL)중계를 하기도 했으며,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테니스와 프로골프(PGA 투어)를 중계하기도 했다.
  • 역대 최고 스포츠캐스터 50인 중 당당히 1위에 오르기도 했으며, 1982년 포드 C. 프릭 상을 수상하며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올랐고, 할리우드 명예의 전당, 라디오 명예의 전당에 입회했다.
  • 연봉이 순수 보장금액만 약 300만불에 이른다고 한다. 2천만불을 호가하는 다저스 주전 선수들의 천문학적인 연봉에는 당연히 미치지 못하지만 메이저리그 주전급 선수들이 연봉조정을 통해 받는 수준과 맞먹는다는 점에서 스컬리의 위엄을 알 수 있다.
  • 스컬리 옹에 대한 인기 때문에 아직도 다저스의 라디오 중계는 3회말까지는 스컬리 옹의 TV 중계를 그대로 받아서 전달한다. 스컬리 옹은 TV화면을 보면서 중계를 함에도 불구하고 라디오 중계만 들어도 충분히 상황을 그려낼 수 있으며 스컬리옹의 박학다식함 때문에 눈앞에 경기화면이 펼쳐져 있지 않더라도 알아들을 수만 있다면 충분히 즐겁다. 4회부터 중계를 시작하는 것도 서러운데 항상 스컬리 옹과 비교되면서 욕만 먹는 다저스 라디오 중계 담당 찰리 스타이너는 안습. 위에서도 기술했지만 2000년대 이후 스컬리 옹은 연세에 따른 체력 부담 때문에 홈 경기와 근거리 원정만 다닌다. 따라서 다저스의 원정경기는 중계진이 따로 있으며, 2010년대 초까지는 아나운서 에릭 콜린스와 해설 스티브 라이언스의 2인조가 지극히 특색없는 평범한 스타일의 중계를 해서 LA의 골수 다저스 팬들에게 중계 못한다고 까였다. [20] 지금은 홈경기 4회부터 라디오 중계 담당인 찰리 스타이너와 오렐 허샤이저, 노마 가르시아파라의 해설진으로 원정 중계팀을 꾸리고 있다. 아나운서 찰리 스타이너는 다저스 팬들로부터 별로 평이 안 좋지만 그리고 누가 아나운서를 하든 평생 스컬리 옹과 비교되며 까이겠지만 그나마 해설진이 다저스의 레전드 오렐 허샤이저와 LA 지역출신 슈퍼스타 노마 가르시아파라라서 에릭 콜린스-스티브 라이언스 조합만큼 까이지는 않는 편.
  • 2005~2006년 보스턴 출신 막장 구단주 프랭크 맥코트가 양키스, 레드삭스 등 동부지역 팀들의 흉내를 낸답시고 유니폼에 선수명을 없앴는데[21] 최근에는 선수이동이 빈번해서 매년 팀의 로스터가 바뀌는데 유니폼에 이름이 없어 새로 들어온 선수를 알아보기 어렵다고 말하여 다시 선수명을 넣게 하였다. 대인배
  • 2015년 한팀에서 가장 오래 경기를 중계한 인물로 기네스에 등록됐다. 그 햇수가 65년 5개월 22일.

[1] 2013년까지 다저스의 전담중계 방송사는 KCAL9과 Fox 산하의 PRIMETICKET이 맡고 있었을 때도, 2014년부터 운영중인 타임워너 계열의 다저스 전담 중계방송국인 '스포츠넷 LA'에서도 어떤 방송사에서 중계를 하든간에 스컬리 옹이 중계하는 날의 방송 첫마디는 이거다. 스컬리의 시그내쳐격 대사이긴 하지만 워낙 유명해서 종종 시구를 하러온 사람들이 이 대사를 하는 걸 자주 들을 수 있다. 2013년 소녀시대티파니다저 스타디움에 와서 이 말을 했다.[2] 1951년에 헌액된 것처럼 링크에 나와 있지만, 빈 스컬리는 1950년에 데뷔한 1927년생 캐스터다. 상식적으로 1951년에 헌액됐을 리가 없다.[3] 대학 시절에 예일 대학교와 맞붙기도 했는데, 당시 예일의 1루수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였다고 한다.[4] 물론 중계를 시작했을 당시 상기 팀 모두 뉴욕에 위치해 있었다.[5] 류현진의 메이저리그 데뷔전에서 South Korea를 언급하면서 했던 말이 전쟁얘기였다(...) 물론 북한의 대남 도발사2013년 북한의 전쟁 위협을 보면 시국이 수상하긴 하지만서도...[6] 감이 안 올 사람들을 위해서 덧붙이자면 이 분의 어린 시절에 베이브 루스루 게릭현역으로 뛰고 있었으며, 사회인으로서 방송을 시작할 때가 조 디마지오의 말년이자 테드 윌리엄스의 전성기였고, 이 분과 비슷한 시기에 커리어를 시작한 동년배급이 미키 맨틀요기 베라다. 이제는 기록 필름으로나 남아있는 전설적인 스타들의 현역시절의 모습을 직접 보신 분이다. 심지어는 이분이 방송일을 시작했을 때 6.25 전쟁 종전 2년 후에 세상을 떠난 사이 영 조차 생존 중이었다(!).[7] 오히려 스컬리 옹의 중계는 리스닝하기 굉장히 편하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발음과 억양이 굉장히 표준적이고 말의 속도도 빠르지 않고 문장 내에서 구절 별로 적절하게 끊을 때 끊고 이어나갈 때 이어나가기 때문에 영어 리스닝 초심자들에게도 편하게 들리는 편이다. 스컬리 옹의 영어가 리스닝이 안 된다면 다른 중계자들의 영어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8] 현재는 미국 ESPN 중계진으로 뛰고있다.[9] 아무래도 한국 프로야구 경기중계 스타일인 드라마틱한 순간에 감정을 실어 코멘트를 하는 이른바 한명재권성욱스타일의 중계를 선호하다보니 나타나는 현상일 것이다.[10] 정작 켄 해럴슨 본인은 빈 스컬리의 팬이기도 해서, 마지막 중계 때 헌정 메시지를 보냈다. # 원문은 It's our national pastime, and you have been our spokesman for a very long time.[11] 이 점은 스컬리 본인의 중계철학과도 관련되어 있다. 스컬리 옹은 브루클린 다저스의 마이크를 잡던 시절부터 자신을 채용한 선배 아나운서인 레드 바버(Red Barber)로부터 "중계방송을 하는 아나운서는 자신이 중계하는 팀의 치어리더가 되어서는 안 되며 현장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청취자들에게 최대한 알기 쉽게 전달하는 것이 임무이다."라고 철저하게 교육을 받았고 또한 그러한 철학을 60년이 넘는 세월동안 실천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스컬리 옹의 중계방송은 경기를 하는 양 팀에 최대한 공평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다소 무미건조해 보이지만 대신 상대팀 팬들로부터도 공정한 중계라고 호평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다저스의 분위기가 좋을 때 약간 목소리가 기분좋게 들리는 것도 사실이기는 하다.[12] 그 때 홈런을 맞은 선수가 존 애킨스, 그리고 트레버 호프먼.[13] 이 사례는 1977년 CBS에서 PGA 마스터스 골프를 중계하는 일정 때문에 다저스 홈 개막전 중계에서 빠진지 35년만에 스컬리가 다저스 홈 개막전을 중계를 빠진 사례로 기록되었다.[14] 발표자 3명 이외에 현장에 있던 드류 부테라, J.P 하웰, 디 고든, 미구엘 로하스가 춤을 추면서 기뻐했다.[15] 이 경우는 행크애런의 715호 홈런을 다저스가 얻어맞은 불운(...) 덕이기는 했다.[16] 세어 보면 알겠지만 중계한 4번의 퍼펙트 게임에서 다저스의 성적은 1승 3패다. 즉, 자신의 팀이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는 꼴을 3번이나 목격하셨다. 안습[17] 한만두가 나온 날이다.[18] 그래서 합작 노히터로도 인정받지는 못했다. 승리든 패전이든 노히터로 인정받으려면 규칙상 9이닝 이상을 완료해야 한다.[19] 다만 커크 깁슨은 다저스 소속이었던데다.이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감독으로 다저스와 신경전 벌인거보면 아이러니 이 경기가 행크 애런의 715호 홈런 경기처럼 다저스 경기였기 때문에 어차피 중계할 경기가 아니었냐라는 지적도 있는데 다저스 홈경기라서 중계를 한 게 아니라 이 당시에는 스컬리 옹이 시즌이 끝나면 당시 월드시리즈 중계권을 가지고 있던 NBC에서 전담 아나운서 역할을 하시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미국 전역의 시청자들이 월드시리즈 때 스컬리 옹의 TV중계를 듣는 상황이었다. 위에서 나온 빌 버크너의 알까기도 마찬가지로 다저스와 상관없는 두 팀이 붙었지만 역시 월드시리즈 전담 아나운서로서 중계를 했기 때문에 스컬리 옹이 중계를 했던 것이다. 한편 이 콜은 스컬리 옹의 85세 생일을 맞아 진행된 역대 스컬리옹 최고의 콜 투표에서 62%의 지지율로 압도적 1위에 선정되었다. 커크 깁슨의 월드시리즈 끝내기 홈런 영문 위키피디아 개별 항목에 스컬리 옹의 중계 멘트가 있다. 참고로 2위는 25%의 득표율을 기록한 빌 버크너의 알까기 에러.[20] 참고로 스티브 라이언스는 공중파 FOX 토요일 전국 중계의 서부지역 경기 해설도 담당했기 때문에 미국의 야빠들에게는 어느정도 인지도가 있는 인물이나 평은 좋지 못하다. FOX 항목에 나오는 전국 중계임에도 불구하고 본분을 망각하고 주책맞은 편파해설을 하는 대표적인 인물 중의 하나이다. 별로 실력도 없으면서 방송국 간부들과의 친목질로 자리를 유지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을 정도. 그리고 공중파 FOX의 중계에서 히스패닉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가 결국은 공중파 중계에서 잘렸다. 안습[21] 그래서 이 시기에 다저스에 재적했던 최희섭서재응은 이름이 새겨지지 않은 유니폼을 입고 플레이를 했다.[22] 이 때 허구연 해설이 친히 다저 스타디움에 가서 해당 경기를 생중계했으며, 빈 스컬리 옹 역시 자신이 중계하면서 This game is being televised back to S.Korea, as you can well imagine it(여러분께서 예상하시는 대로 이 경기는 대한민국에 생중계되고 있습니다)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