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26 22:44:48

한옥/장단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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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2.1. 장점2.2. 단점
2.2.1. 단점의 보완
2.2.1.1. 지붕2.2.1.2. 단열2.2.1.3. 공사비용
3. 오해/낭설
3.1. 2층 주택3.2. 기와 처마끝 수키와의 회칠3.3. 석조건축의 부재
3.3.1. 벽돌의 사용
4. 둘러보기

1. 개요

한옥에 대한 많은 장점이 소개되었지만, 분명하게 단점이나 논쟁점도 존재한다. 상세히 서술하자면 다음과 같다.

2. 상세

2.1. 장점

  • 온돌과 들문 등으로 기온차를 극복하고 있다. 온돌의 기원 자체는 길게 보면 선사시대며, 최소한 고구려 시대에는 온돌의 초기 형태가 발견되었지만, 현대적인 형태의 온돌은 이보다 늦은 조선 후기에 일반적으로 서민층에 이르기까지 널리 보급되었다.
  • 뼈대인 목재가 자정작용을 하여 실내의 습도와 온도, 기온등을 조절해 주어, 쾌적한 주거환경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 기단이 높아 땅으로부터 습기와 동결현상을 피할 수 있다.
  • 황토와 짚의 구성이 사람의 건강에 이롭다.

2.2. 단점

  • 목재 자원에 크게 제약을 받는다.
    • 재료나 양식이 다양하지 않아 독자적인 양식을 구축하지 못하고 중국 건축의 영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1][2]
    • 목재 부족으로 다른 나라 건축에 비해 시선을 끄는 압도적인 면이 부족하다.[3] 보편적으로 인간은 크고 아름다운 것을 좋아하는 쪽이 더 많으므로 최상류층[4]의 가옥이나, 왕궁, 사찰은 그 규모가 커지고 구조가 복잡해졌다.[5] 당장 임진왜란 직후만 해도 미륵전, 팔상전, 각황전 등 양반, 왕실의 지원으로 대규모의 불교건축을 지은 바 있다. 물론 목재 부족으로 작은 나무를 짜맞추거나 울퉁불퉁한 나무를 그대로 쓴 흔적이 보인다. 후술.
    • 구조적인 취약점이 많다. 중국과 일본도 마찬가지지만, 전통 목구조는 기둥에 보를 쌓아 만드는 대량식 구조로 축부에 보강재를 쓰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면 건물이 커질수록 지붕도 커져 하중이 증가하기 때문에, 충분히 큰 목재가 없으면 대형건물을 짓기 힘들다.[6] 그리고 목재간 연결에 금속을 잘 쓰지 않고[7][8], 축부에 보강재가 없어 연결부위가 취약하다. 이 때문에 지진으로 건물이 좌우로 흔들리면 쉽게 붕괴된다. 이미 이웃 일본에서도 고베대지진으로 이런 한계가 드러난 바 있으며, 이번 경주지진에서도 드러났다.
    • 건물의 크기에 비해 실내가 좁고, 기둥이 전부 하중을 받기 때문에 구조변경이나 확장 등이 어렵다. 한옥에서 기둥은 촘촘하여 간격이 2.1 m가 보통이다. 사람이 눕고 장롱 하나만 들여도 내부 공간 한 칸이 벌써 다 찬다. 이 모든 것은 대들보 때문이다. 건너지르는 대들보는 커야 단단하고, 이를 받치는 기둥은 촘촘하게 받쳐야 튼튼하다. 대들보가 큰 것은 지붕의 흙 때문이다. 작은 집조차 기와 밑 흙은 톤 단위로 계산한다.
  • 서까래 위에 흙과 기와를 올려 지붕이 무겁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기둥과 보에 변형이 생기고 건물의 수명이 줄어든다. 게다가 흙의 수분이 그대로 목재에 스며들어 목재가 빨리 부식된다. 문화재 복원에 참여한 신응수[9], 신영훈[10] 등 다수 전문가들도 지적하는 문제다. 이 역시 일본 고베대지진에서 전통 목조건축의 취약점으로 드러난 바 있다. 기와 대신 나무널을 얹는 너와집[11]이나, 풀을 엮어 올리는 초가집, 굴피나무 껍질을 얹는 굴피집의 경우 무게를 기와집보다는 줄일 수 있지만 유기질이기 때문에 화재에 약하고 수명이 짧아 주기적으로 바꿔야 하며, 굴피집의 경우 공기 중 습도에 따라 팽창하고 수축하여 건조한 겨울에는 단열이 잘 안된다. 초가지붕은 기와지붕보다 평상시에는 가볍지만, 폭우 및 폭설이 쏟아지면 짚이 물기를 흡수하여 더 무거워진다.
  • 황토와 짚으로 구성된 벽은, 스티로폼이나 유리섬유보다 단열성능이 떨어진다. 흙벽이 단열의 제 성능을 발휘하려면 두께가 60 cm 이상은 되어야 하지만, 이러한 벽을 감당할 만큼 큰 나무를 구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만 한 나무는 문화재 복원용으로 지정되었으므로 개인이 이를 구해 집을 두껍게 짓기란 실행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결국 난방비 지출이 크고, 만약에 난방비용을 다른 주택과 동일하게 쓴다고 가정하면 추위를 견뎌야 하는 문제가 상주한다. 이미 서양이나 일본에서는 전통건축에도 단열재를 넣고 현대식 냉난방과 환풍시설을 갖추는 추세이나, 한옥에서는 도입이 늦다.
  • 시공단가가 비싸다. 어느 건축물이든 마찬가지지만, 한옥은 손이 많이 가 건축기일이 많이 소요되고, 인건비가 많이 지출되는 등[12] 전체적으로 시공비가 일반 건축물보다 비싸 주로 관용이나 공용 성격의 건축물로 시공되는 편이다. 예를 들어 높이와 폭이 각 3 cm인 각재(스퀘어)의 개수로 나누어 필요한 목재의 가격을 정한다. 3*3각재의 가격이 수입산이 2천 원[13], 국산이 2천 7백원 꼴이다. 수입산의 가격 상승은 휘발유의 가격 상승과 궤를 같이한다. 결국 건축 시 인건비까지 감안하면 실제 수입산으로 지어도 평당 1천 5백만 원이고, 국내산 나무로 지어도 2천만 원에 육박한다. 35평을 짓는데 7억의 건축비와 토지 구입비 알파가 필요하다. 기본 10억을 잡아야 한다. 현금 10억이면, 집값이 비싼 수도 서울에 번듯한 고층 아파트에 내부 인테리어는 화려한 고급 아파트에 거주할 수 있다.

2.2.1. 단점의 보완

2.2.1.1. 지붕
파일:external/cfs9.blog.daum.net/download.blog?fhandle=MDhBQ3JAZnM5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IyLzIyMDIuanBn&filename=2202.jpg

파일:external/cfs9.blog.daum.net/download.blog?fhandle=MDhBQ3JAZnM5LmJsb2cuZGF1bS5uZXQ6L0lNQUdFLzIyLzIyMDMuanBn&filename=2203.jpg

최근에는 지붕에 흙을 올리지 않고 방수지를 두르는 건식 시공법을 도입하고 있다. 그와 함께 기존 기와 대신 무게가 훨씬 가벼운 동(銅)기와를 쓰기 시작했다. 특히 월정사나 상원사 같은 강원도 사찰에서 많이 쓰이고 있다.[14]

또한 동기와는 부식 및 산화에 매우 강해 수백 년이 지나도 손상이 적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구리는 탄력성 및 복원성이 매우 우수하여 비와 눈,추위, 더위 등에 의한 파손과 균열에 강하다. 일반 기와를 쓰면 날씨 때문에 기와가 깨져 매년 갈아야 하지만, 동기와를 쓰면 그런 번거로움이 줄어든다.
2.2.1.2. 단열
파일:14040712290162.jpg
파일:문경한옥1.jpg[15]
파일:사본_-IMG_2625.jpg

최근에는 흙벽과, 흙단열 대신 스프레이폼이나, 유리섬유 단열재가 도입되었다.
물론 황토 선호가 아직도 많기 때문에 흔한 풍경은 아니다.
2.2.1.3. 공사비용

"한옥 3D설계, 첨단과 만난 한옥"

공장에서 미리 가공해서 현장에서는 조립만 하는 일본식 프리컷 공법이 한옥에도 도입되었다. 비용절감이 확실하기 때문에 상당히 자주 쓰인다. 유튜브 등에서 한옥과 프리컷으로 검색하면 여러 시공업체를 찾아볼 수 있다.

3. 오해/낭설

3.1. 2층 주택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조선 초까지만 해도 2층 가옥이 흔했다. 이는 여러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는데, 세종대왕이 침실로 쓰는 2층 이상의 집을 의미하는 침루에 올랐다는 기록도 있으며, 고려시대로 가면 이러한 루가 보편적이었다는 기록이 많다. 2층 건물의 규모를 늘려 찻집이나 술집 등으로 썼다는 기록도 있다.

그런데 온돌이 보급되고 난 이후에는 난방에 취약하고 온돌설치가 어려운 2층가옥보다 1층 가옥이 선호되어 차츰 사라지게 되었다. 기술적으로 2층으로 만드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아, 고궁 내 건축물들 중에는 다층건물을 상당 수 발견할 수 있으며[16] , 일부 사찰이나[17] 수원 화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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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주합루의 모습. 원래 1층은 도서관인 규장각, 2층은 열람실인 주합루이나, 현재는 주로 건물 전체를 주합루로 부른다.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1109047_STD.jpg
경상북도 김천시 소재의 유형문화재인 방초정. 가운데 온돌방이 있는 2층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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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석어당. 역시 2층.

파일:external/www.subkorea.com/hgb015.jpg
북한 종성읍성의 수항루. 이건 아예 3층이다!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0884723_STD.jpg
백련사 만경루. 비탈길에 지어 앞에서 보면 2층 건물이란 게 보이지만, 대웅전 쪽에서 보면 단층 건물처럼 보인다. 가운데 길은 후대에 만든 것이라고 한다.

그밖의 2층 건물들 사진 링크 경복궁 향원정, 구례 운조루, 남산골 한옥마을, 안동김씨 태장재사 이상루, 용주사 천보루, 의성김씨 서지재사, 그 외 17세기 다층 한옥 관련 포스팅

그리고 누각의 구조는 대부분 바닥에서 들어올려진 형태인데, 앞서 말했듯이 여기서 벽만 쌓으면 사실상 2층이다. 또한 법주사 팔상전 등을 보면 기술이 부족해서라는 해석은 근거가 없다. 또한 조선 세종 때의 가사제한령(家舍制限令)에 의해서 법적으로 주택을 장식하거나 크게 짓는 것을 금지함에 따라서 그러한 일을 제대로 하기 어려워진 측면도 있다. 이는 고려시대의 풍수지리에 따라서 조선 태종 이후 생긴 경향을 세종이 이어받는 것이다.[18] 여러 기록들을 보면 고려~ 조선 전기까지는 2층 살림집도 많이 있었다고 한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이글루스의 관련 글 참조.

다만 좀 다른 내용으로 온돌 때문에 단층식을 선호하게 된 게 산업화를 늦추는 데(그러니까 동양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못하는데에) 기여했다는 가설도 있다. 기본적으로 산업화 자체가 어느정도 고밀도화가 필요하기 때문. 서양 석조건축들은 2~4층 정도가 대다수였고 '인술라'같은 극단적인 경우에는 8~9층까지 쌓아올리는 경우도 있었던 반면에 동양 목조건축들은 대부분 1~2층이고 그마저도 우리나라는 온돌 때문에 단층식인 경우가 더 많아서 고밀도화가 안 되니 결국 집약성이 떨어져 근대적인 상공업이 발달하지 못했다는 의견도 있다. (물론 황룡사 9층 목탑, 청암리 사지 등 8~9층 정도의 건축물들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중세~근대의 인구 밀도나 도시의 연담화율로 따지면 서양이 동양보다 훨씬 더 높았다. 그리고 높은 밀집도와 연담화율은 그에 걸맞은 고규격의 SOC(사회기반시설)를 요구하니 그것 자체로 과학기술과 공학의 발전에 기여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일단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살고 건물이 높아지고 도시가 커져야지 상하수도건, 역마차를 위시한 대중교통수단이건, 대규모 학술기관이건 하는 게 필요해지고 또한 그런 시설물들이 개발, 설치될 것이며, 상권이 형성되고 그로 인한 공업수요가 생길 테니까 말이다. 극단적인 사례로 1920년대에 서양에서는 100층이 넘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지어지는 와중에도 일제의 식민지였던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10층 이상의 건축물들을 전혀 건축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3.2. 기와 처마끝 수키와의 회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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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흰색 회칠[19] 때문에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그게 시멘트로 바른 것으로 오해하는데 시멘트가 아니라 회칠마감이다.[20] 이렇게 용마루나 막새 등에 흰 회반죽을 칠하면 단순히 기와를 쌓아 만드는 것보다 바람에 더 강하다는 장점은 있으나 태풍이 한국보다 더 잦은 일본에선 회반죽 안 써도 용마루가 멀쩡한 것을 보면 그다지 의미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사실 이건 꼭 전통 건축의 문제라고 할 수 없다. 원래 막새라는 끝에 있어야 할 기와나 치미장식이 없기 때문인데 막새 대신 회칠을 하는 경우가 1970~80년대 이후부터 보인다는 것 때문이다. 그 전까지는 기와를 그냥 올려놓으면 놓았지 딱히 흰 회칠이 보이도록 마감하는 경우가 일반적이지 않았다는 얘기도 있다.

막새가 없는 이유는 신라 때부터 신분에 따라서 쓸 수 있는 장식과 집의 크기 등을 자세하게 규정했는데, 이게 조선에도 적용되어 궁궐이나 사찰을 제외하고는 단청이나 막새, 치미, 다듬은 돌 등을 쓰지 못하게 제한했기 때문이다. 가난하거나 미적 감각이 떨어져서가 아니다. 회칠을 더 선호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한국의 회칠을 시멘트를 발라놨다고 오해한다. 사실 한국인들도 많이 오해한다..

3.3. 석조건축의 부재

한국의 역사적 건축물들은 대부분 목조건물인지라 전란으로 불타고 무너지고(안학궁, 미륵사, 황룡사 등), 방치되면 목재가 썩어 붕괴되기 때문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 고려시대에 지어진 것이라 피라미드콜로세움, 파르테논 신전 같은 것들과 비교해 관광 자원으로서의 건축 유산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한옥이 나무만 쓰는 게 아니라 뼈대만 나무로 해서 다양한 돌과 여러 흙과 복합재를 섞어 만든 일종의 시멘트를 사용해[21] 축대를 쌓고, 벽은 현대 철근 콘크리트 처럼 井자 형태로 여러 차례 엮은 골조에다 진흙을 발라 만들고 바닥에 온돌과 흙을 깔아 만들었지만, 그래도 대형 석조 건물은 역사적으로 등장하지 못했다. 물론 이점은 목조 건물들 위주인 모든 동북아 국가들에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사항이기는 하다.

다듬은 돌이나 벽돌아치의 원리를 이용해 다리를 짓고 성을 쌓기도 했지만 그 이상의 건축을 보여주지는 못했으며, 이 정도의 석조 활용은 석조가 발달하지 못한 다른 문명에서도 흔히 쓰인다.[22] 게다가 주로 생산되는 돌이 주철보다 경도가 거의 2배인 HS)70~80의 화강암이어서 가공하기 어려워 유럽이나 이집트 같은 정교한 석조건축물을 짓기 힘들었다는 반박이 있으나, 이 역시 설득력이 없다. 서양에서도 일찍이 화강암을 다듬어 대형 건축물들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이런 비판은 한국뿐만 아니라 콜로세움이나 바티칸 성당 같은 거대한 석조 건축물들이 전혀 없는 동아시아 모든 국가들에게 공통으로 해당하는 비판이라는 점에서 별로 설득력이 없다. 그리고 한국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같은 다른 주변국들 한테서도 거대 석조 건축물들이 거의 없었다는 점은 환경적인 영향이 매우 컸음을 입증해주기도 한다.

애초에 서양에서는 고대 로마를 중심으로 석조 건축 문화가 발달했고, 동양에서는 고대 중국을 중심으로 목조 건축 문화가 발달했으며, 각각이 그 문화권에서 서로 표준이 되었을 뿐이다. 석조 건축 문화권이라고 나무 던져 주면 목조 건축도 멋지게 만들 수 있다거나 그 반대일 것이라 볼 수는 없다. 각자 발달한 기술이 다를 뿐이다. 즉, "그럼 유럽에 소나무가 있었으면, '황룡사 9층 목탑', '안학궁 중궁' 같은 거대 목조 건축물들이 만들어 졌을 것이라고 장담 할 수 있는가?" 라는 반박으로 충분히 반박이 가능하다. 그리고 유럽 또한 근대 이전까지는 피라미드나 오벨리스크 같은 거대한 화강암 건축물들은 거의 만들지 못했다.

이렇듯 동아시아는 고대 중국을 중심으로 건축 문화가 형성됐기 때문에 석조 건축 발달의 미약함은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등 모든 동아시아 국가들에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사항일 뿐이며, 결국 원인은 동북아 문화권에서 어째서 석조 건축 문화가 나타나지 못했느냐와 하는 문제로 귀결된다. 이 점은 결국 환경적인 영향을 살필 수밖에 없는데, 애당초 건축물들은 어디까지나 그 지리적 환경에서 최적의 재료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겨울이 매우 추운 한국의 자연 환경에서 석조 건축물들은 당연히 인기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겨울철 공원 벤치의 나무 부분과 화강암 부분의 차이를 생각해 보자.

요약하면 동양 건축에서 석조 기술이 발달하지 못한 까닭은 다음과 같다.

1. 동아시아는 일찍이 목재로 거대한 건물을 짓는 방법을 터득하여 석조로 거대한 건축물을 지을 필요가 없었으며, 목조가 노동력, 시간, 재료 측면에서 훨씬 효율적이다. 즉, 석조 건축법을 발견하기도 전에 충분히 생활에 지장이 없는 목조 건축법을 발견했으니 굳이 다른 방법을 쓸 필요가 없었던 것이고, 결국 목조 건축 시공이 표준이 된 것이다.

2. 동아시아는 언젠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한시적이고 비영구적 건축을 추구한다.
"1000년을 지속하는 집을 세울 수는 있다. 그러나 100년후에 누가 살게 될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조화를 이룬 한정한 집에 이를 감싸는 즐겁고 안락한 장소면 충분하다"
계성(명나라 시대 건축가)
위 예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애초에 사실상 모든 게 다 있던 고대 중국 문화권에서 석조 건축법이 없었다고 볼 수는 없다. 애당초 성 축조, 석상 조각 등이 모두 석조 기술이기 때문에, 이러한 방법들을 기존 건축법과 연결짓기만 하면 얼마든지 석조 건축물을 만들 수는 있었다. 그러나 위 사례에서도 보듯이 애초에 굳이 그렇게까지 건물을 지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니 비교적 재료 수급도 쉽고 가공이 쉬운 목조 건축이 계속 표준으로 남게 된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생활하는 환경 내에서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이익을 보려는 습성이 있다. 여기서 최대한의 이익이란 스스로가 만족하는 수준으로, 문화적 관성에 크게 좌우된다. 1000년 전 사람과 현대인에게 냉난방 시설 하나 없는 재래식 건물을 준다면 누가 더 만족하겠는가? 바로 이것이 우리와 1000년 전 사람의 문화적 관성이 달라서 만족의 선이 다르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했듯이 목조 건축법만으로 사실상 만족이 가능했기에 그보다 더 큰 노력(석조 건축 기술을 대형 건물 건설에 적용하려면 기존 관습에서 벗어난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그만큼 큰 시행착오와 노력이 필요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을 요구하는 석조 건축을 굳이 지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서양은 고대 로마 문화권을 중심으로 목조 건축보다는 석조 건축이 문화적 관성으로 자리잡았고, 이 때문에 노력과 만족의 기준이 석조 건축으로 잡혔다.

3. 목재 건축은 각종 대들보에서 부재에 이르기까지 조화와 비례가 석조에 비해 섬세하므로 곡선미를 추구하는 동양 건축에 알맞다. 이 역시 목조 건축에 대한 또 하나의 문화적 관성을 낳는 것이다.

문화 상대주의에 입각하는 이유, 그리고 문화의 우열을 논하는 것이 어리석은 생각인 이유 또한 이 건축 논란과 궤를 같이한다. 어느 지역의 어떤 문화가 타 문화권의 같은 종류의 문화에 비해 발달이 미비하다고 해서 서로의 우열이 나누어지는 게 아니다. 발달이 미비한 지역에서는 그 문화가 발달할 필요성이 애초에 없었을 뿐이다. 어떤 제도나 문물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자연히 그 초기 형태부터 시작해서 발달하기 마련일 뿐, 애초부터 그 지역이 미개해서 그런 것을 상상은 해도 실행에 옮길 수는 없다고 볼 수는 없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의 천수각으로, 일빠들의 주장처럼 한국과 중국이 일본보다 미개해서 천수각과 같은 큰 성채가 발달하지 못했을까?(물론 수원화성의 사례가 있기는 하다.) 일본은 중세에 전국시대라는 군웅할거의 극도의 혼란기를 거쳤다. 이러한 역사적 돌풍 속에서 자연스레 요새의 기능과 권력의 상징을 동시에 겸하는 건축물이 필요해졌고, 그 결과로 유럽의 요새와 같은 일본의 요새가 발달한 것이다. 반대로 조선보다 왕권이 훨씬 약했던 일본의 왕궁들이(평성궁이나 교토고쇼) 경복궁 보다 훨씬 더 작았다는 점을 생각해 보자. 이는 북한에서 오늘날 프로파간다의 목적으로 크고 웅장한 건축물들을 짓는 까닭과 같다. 단순히 크기에 집착해서 내가 우월하니 네가 뒤쳐지니 하는 유치한 생각은 버리자. 그런식이면 북한은 얼마나 크고 웅장한가?[23] 크고 아름다운 것이 1차적으로 일반인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때문에 그러한 용도에 제격인 것일 뿐이다. 바꿔 말하면, 한국과 일본은 전통적으로 각자의 필요성에 맞게 프로파간다의 목적에 맞춰서 다른 방식으로 거대 건축물들을 만들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즉, 필요성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크고 웅장한 건축물이 나오기란 그 반대 상황에 비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건축물은 아니지만 팔만대장경의 제작 이유를 한번 생각해 보자.

이처럼 문화와 기술의 발달은 문명의 태생적 우열 때문이 아니라 1차적으로는 문명별 지리적 · 자연적 환경, 2차적으로는 역사적 동기로 이루어지며, 종합적인 발달, 즉 흔히 말하는 대로 문화 자체가 전체적으로 타 문화권에 비해 발달하는 것은 그러한 각기 다른 문화들의 교류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보완하는 과정을 통해 비로소 나타난다. 전근대 시기에는 각 문화권별로 특별히 발달한 분야가 있었을 뿐이고, 건축도 그러한 차이점의 하나일 뿐이다.

3.3.1. 벽돌의 사용

알고 보면 의외로 조선왕조실록 전체에서 벽돌의 사용에 관한 기록이 상당히 자주 나오고, 수원화성 이전에 전축성 건설도 몇 번 있었다. 그리고 벽돌 사용이 많았던 삼국시대에도 벽돌의 사용은 국영사찰의 장식 벽돌이거나, 일부 성곽과 백제의 남조식 무덤 등의 국가의 지원을 받아 건축되고 관리되는 건물들이었다. 사용 빈도에서 어느 정도 차이가 있었지만, 그렇다고 조선시대에 현격하게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 시대에 벽돌 사용이 중국 처럼 많지 못했던 이유는

(1) 조선의 토질상 중국 화북 지역만큼 낮은 온도에도 벽돌이 쉽게 만들어지지 않아# 조선 후기 중국식의 벽돌 제작 전용 원추형 가마 도입 전까지 좋은 벽돌 만들기가 힘들었고

(2) 대륙성 기후인 중국 화북 지역보다 습기가 많아 벽돌이 흙에 잘 붙지 않았고[24][25]

(3) 벽돌과 관련된 상공업 발전이 부진해 공급이 원활하지 않았다.[26]

비록 조선 후기에 들어 중국 건축의 영향과 국가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벽돌이 보급되기는 했지만, 담장이나 기단을 만들 때나 종묘 처럼 조선 후기에 등장한 화방벽을 만들 때 종종 사용되는 정도였지만 이조차도 민간에서는 일정 크기의 자연석들을 수집해 적당히 가공한 후 빈틈을 흙으로 마감하는 수준이었고, 왕실 건축에서나 제한적으로 벽돌을 구워 시공하는 특수제작의 성격을 띄었기에 때문에 벽돌이 사용되었다는 정도의 의의만을 가질 뿐이다. 우리나라에서 벽돌이 완전히 대중화된 것은 관련 기술과 자본이 들어온 개화기~일제 강점기부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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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금도 중국 본계의 양식을 이탈함이 없으나 또한 향토색의 수이(殊異)를 따라 다소 상위(相違)함이 있다. 일례를 들면 지붕의 곡선이 중국의 그것보다는 완만하여졌고 일본의 그것보다는 굴곡 있어 보이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면 이러한 향토색을 구비한 조선 건축이 타방인국(他方隣國)에도 영향함이 있는가 하면 우리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 또 중국의 그것과 다른 독창이 있느냐 하면 그것도 이렇다 할 만한 것이 없다. 그러므로 조선 건축은 중국 양식의 일퇴화(一退化)에 지나지 않는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조선은 중국의 양식을 전부 포괄하여 그것을 변형시키지 못하고 다만 조선의 힘이 자라는 한에서 그를 섭취하고 말았다. 이것이 조선 건축의 동양에 있어서의 지위다." - 고유섭, 조선건축미술사[2] 참고로 이 고유섭(1905~1944) 선생은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 미학 연구의 초석을 닦은 선구자로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자세한 사항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를 참조. 한국을 누구보다 사랑한 사람이 이런 평가를 내릴 정도면...[3] 그 이전 시대에는 목재가 부족하지 않았다. 불교와 귀족 문화의 영향으로 금입택황룡사흥왕사안학궁 등 화려하고 장대한 건축도 있었다. 안압지에서는 각종 금동 건축자재들이 출토되기도 했다.[4] 벌열가문이라 불리던 관직을 독점한 가문들. 북촌에 있던 이들의 저택은 지금 다 사라지고 작은 필지로 나뉘어 근대형 한옥이 들어섰다. 거의 유일하게 남은 윤보선 가옥, 안채 건물 한 쪼가리만 남았음에도 크기가 주변 근대한옥들을 압도하고 중국이나 일본급으로 크고 사치스럽다. 왕족의 잠저였던 운현궁 역시 마찬가지. 운현궁의 사랑채와 대문은 당대 일본인들에게도 찬사를 들었다.[5] 드라마에서 묘사하는 고려 신라 건축은 장난아니게 과장된거다.... 고대나 중세는 기술이 발전하지 않아 굉장히 구조가 단순하고 양식도 밋밋했다. 당장 사찰이나 경화세족의 가옥 조선 5대궁의 구조와 규모를 생각해보고 이전시대와 크기, 공간 배치, 장식의 정교함을 비교해보자.[6] 금산사 미륵전은 여러 부재를 짜맞추어 큰 쌍 기둥을 만들었으나, 시간이 흘러 제 기능을 상실하자 지금은 별도로 쇠기둥을 설치해 하중을 버티도록 했다.[7] 파일:external/cfs13.blog.daum.net/483135eb91074&filename=%EC%82%AC%EC%A7%84391.jpg[8] 물론 사용하긴 한다. 위 주석 사진의 지붕 상단에 달린 지네모양 금속부착물인 지네철이 대표적인 예. 지네철을 사용하지 않을때는 건물 외부에 처마를 받치는 보조기둥을 쓰거나, 건물 안쪽에 강다리라는 나무 고정장치를 쓰거나 돌을 끼워 눌러 고정시킨다. 그런데 나머지는 대부분 문에 다는 돌쩌귀나 문고리, 아니면 건축물이 완성된 후 겉에 다는 장식성이 강한 철물 일부 정도다.[9] 경복궁 근정전 등 각종 문화재 공사를 맡아온 대목장[10] 파리 고암서방 및 충북 진천 보탑사 등 다양한 문화재 복원에 참여[11] 돌너와집 제외. 해당 항목 참조[12] 인건비와 마진율이 논란이 되는데, 한옥시장 자체가 협소하다 보니 정확히 추정, 파악되는 것이 없다.[13] 길이는 3.6 m로 규격화되었다.[14] 동기와를 썼다 하더라도 반년만 지나면 부식되어 일반기와와 얼핏 비슷해보이지만, 용마루 같은 물이 닿지 않는 곳을 유심히 살펴보면 구리 특유의 붉은 빛이 도니 식별이 가능하다.[15] 출처 http://hi-cell.kr/?attachment_id=632[16] 대표적으로 경복궁 팔우정과 향원정, 덕수궁 석어당, 경북의 운조루[17] 법주사 팔상전과 지금은 없어졌지만 황룡사와 미륵사의 9층 목탑은 아파트 10층 아파트 높이로 계단을 통해 올라갈 수 있는 구조였다.[18] 고려 충렬왕 때 관후서의 '도선 일기'에 의하면 "땅은 다산(多山)을 양, 희산(稀山)을 음. 옥(屋)은 고루(높은 다락)를 양, 평옥을 음이라 한다. 우리 나라는 원래 산이 많기에 고옥을 지으면 반드시 국운이 쇠퇴를 부른다."고 한다.[19] 회칠하는 재료를 아귀토(瓦口土)라 부른다.[20] 뭐 회반죽도 넓은 의미의 시멘트에는 들어가긴 한다. 석회가루와 물, 고운 흙, 느릅나무 접착제, 잘게 찢은 한지 등을 섞어 만드는데, 석회와 석고가루를 주성분으로 만든 초기 이집트 시멘트랑 비슷하다.[21] 시멘트는 이미 피라미드건축시부터 사용된 유서깊은 건축자재다. 현대건축에 와서야 주류로 쓰여서 그렇지. 우리나라의 경우 몽촌토성을 지을 때 흙과 석회를 60:40비율로 섞어 일종의 고대식 콘크리트를 만드는 증토축성법(蒸土築城法)으로 지어졌다.[22] 필리핀 민다나오 섬에도 석조 아치는 쓰인다. 인류의 보편적 지식이지 이것이 뛰어난 석조기술의 증거가 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23] 북한 건축물은 원래 크고 웅장하게 지어서 프로파간다의 목적을 두고 만든다. 즉, 거대 건축물이 의식 수준이 낮은 다수 대중들에게 얼마나 잘 먹히는지 방증하고 있는 것이다.[24] 김왕직 저, 알기 쉬운 한국건축 용어사전 참조.[25] 동아시아에서 벽돌사용의 본좌인 중국 건축에서도 전축건축은 대륙성 기후면서 좋은 흙을 구하기 쉬운 화북지역에 특히 집중되며, 습기가 많은 남부로 갈수록 전통 건축에서 벽돌 사용은 감소하고 흙벽이나 목조 건축이 발달하는 모습을 보인다.[26] 사치품 중 하나인 비단의 경우, 그 자체가 일종의 대체화폐 역할도 하였을 뿐 아니라 수요가 일정했기 때문에 공급이 자연스럽게 요구되어 원활한 수요-공급이 이루어졌지만, 벽돌의 경우 건축자재였고, 또한 비교적 높은 단가를 가진 고급 자재였기 때문에 고급 건물의 신축이 일정하게 발생하는 수요가 없이는 벽돌의 공급 역시 발생하지 않는다. 문제는 조선시대에서 건물은 왕실의 감시와 더불어 검약함을 강조하는 조선의 사상적 제약 때문에 발달이 늦었다. 상공업의 발달에 따른 중인계층이 성장하는 조선 후기 조차도 건축 분야에는 비교적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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