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4 00:42:11

경복궁 근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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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무루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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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國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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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1~50호]
{{{#!wiki style="margin:-10px 0"
1.#26 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
  1. 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2.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3. 성덕대왕신종
  4.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5. 경주 첨성대
  6.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7. 창녕 진흥왕 척경비
  8.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
  9.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10. 상원사 동종
  11.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12.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13.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
  14.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15.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16.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17. 혜심고신제서
  18. 장흥 보림사 남 · 북 삼층석탑 및 석등
  19.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20. 부석사 조사당 벽화
  21.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22.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23. 예산 수덕사 대웅전
  24. 영암 도갑사 해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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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51~100호]
{{{#!wiki style="margin:-10px 0"
<table bordercolor=#fff,#1f2023>
1.#76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
  1.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2.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1)
  3.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
  4.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5.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6.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7.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2)
  8.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9. 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
  10.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11. 금관총 금관 및 금제 관식
  12. 금관총 금제 허리띠
  13.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
  14.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
  15.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16.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
  17. 백자 철화포도원숭이문 항아리
  18. 청자 참외모양 병
  19. 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
  20. 청자 구룡형 주전자
  21. 청자 음각연화당초문 매병
  22. 청자 상감모란문 항아리
  23. 김천 갈항사지 동 · 서 삼층석탑
  24. 개성 남계원지 칠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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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101~150호]
{{{#!wiki style="margin:-10px 0"
<table bordercolor=#fff,#1f2023>
1.#101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1.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
  2.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3.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4.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5.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6. 백자 철화포도문 항아리
  7. 계유명삼존천불비상
  8.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9. 이제현 초상
  10. 안향 초상
  11. 경주 감은사지 동 · 서 삼층석탑
  12. 청자 철화양류문 통형 병
  13. 청자 상감모란국화문 참외모양 병
  14. 청자 상감당초문 완
  15.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16.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17.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4)
  18. 금동연가7년명여래입상
  19. 용주사 동종
  20.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21.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22.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23.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24. 녹유골호(부석제외함)
1.#126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1. 서울 삼양동 금동관음보살입상
  2. 금동관음보살입상
  3. 금동보살입상(1968)
  4.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
  5. 고려말 화령부 호적 관련 고문서
  6. 징비록
  7. 청자 동화연화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8. 금동보살삼존상
  9.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
  10. 금동 용두보당
  11. 대구 비산동 청동기 일괄-검 및 칼집 부속 / 투겁창 및 꺾창
  12. 전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
  13. 김홍도필 군선도 병풍
  14. 나전 화문 동경
  15. 정문경
  16. 동국정운
  17.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
  18. 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
  19. 귀면 청동로
  20. 전 논산 청동방울 일괄
  21.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22. 십칠사찬고금통요 권16 / 십칠사찬고금통요 권17
  23.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권4, 5 /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권6
  24. 송조표전총류 권7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min-width:max(12%, 7em)"
{{{#!folding [151~200호]
{{{#!wiki style="margin:-10px 0"
<table bordercolor=#fff,#1f2023>
1.#176 백자 청화‘홍치2년’명 송죽문 항아리
  1. 분청사기 인화국화문 태항아리
  2. 분청사기 음각어문 편병
  3. 분청사기 박지연화어문 편병
  4. 김정희필 세한도
  5. 장양수 홍패
  6. 구미 선산읍 금동여래입상
  7.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1)
  8.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2)
  9. 상지은니묘법연화경
  10. 양평 신화리 금동여래입상
  11.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
  12. 천마총 금관
  13. 천마총 관모
  14. 천마총 금제 허리띠
  15. 황남대총 북분 금관
  16.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17.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
  18.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19. 토우장식 장경호
  20.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10, 44~50
  21.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22. 단양 신라 적성비
  23.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24. 금동보살입상(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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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201~250호]
{{{#!wiki style="margin:-10px 0"
<table bordercolor=#fff,#1f2023>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min-width:max(12%, 7em)"
{{{#!folding [251~300호]
{{{#!wiki style="margin:-10px 0"
<table bordercolor=#fff,#1f2023>
1.#251 초조본 대승아비달마잡집론 권14
  1. 청자 음각'효문'명 연화문 매병
  2. 청자 양각연화당초상감모란문 은테 발
  3. 청자 음각연화문 유개매병
  4. 전 덕산 청동방울 일괄
  5.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
  6.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9
  7. 백자 청화죽문 각병
  8. 분청사기 상감운룡문 항아리
  9. 분청사기 박지철채모란문 자라병
  10. 백자 유개항아리
  11. 백자 달항아리(1991)
  12. 백자 청화산수화조문 항아리
  13. 포항 냉수리 신라비
  14.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3
  15.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 75
  16. 초조본 아비달마식신족론 권12
  17. 초조본 아비담비파사론 권11, 17
  18. 초조본 불설최상근본대락금강불공삼매대교왕경 권6
  19.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20. 초조본 현양성교론 권12
  21.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32
  22.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15
  23. 귀함별황자총통(1596년조)
  24.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
1.#276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53
  1.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6
  2. 태종11년이형원종공신록권부함
  3.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4
  4.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
  5. 백자 병형 주전자
  6.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7. 통감속편
  8. 초조본대반야바라밀다경 권162, 170, 463
  9.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10. 백자 ‘천’ ‘지’ ‘현’ ‘황’명 발
  11. 백제 금동대향로
  12.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13.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14. 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15. 용감수경 권3~4
  16. 평창 상원사 중창권선문
  17.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
  18.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
  19. 나주 신촌리 금동관
  20. 칠장사 오불회 괘불탱
  21. 안심사 영산회 괘불탱
  22. 갑사 삼신불 괘불탱
  23. 신원사 노사나불 괘불탱
  24.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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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301~3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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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번호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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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경복궁_근정전_전경 문화재청.jpg
파일:경복궁_근정전_야경.jpg
<colbgcolor=#bf1400> 근정전 정면[1] <colbgcolor=#bf1400> 근정전 야경[2]
파일:경복궁_근정전_설경.jpg
파일:근정전 측면.jpg
근정전 설경[3] 근정전 측면[4]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국보 제223호
<colbgcolor=#315288> 경복궁 근정전
景福宮 勤政殿 | Geunjeongjeon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세종로 1-1)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궁궐·관아/ 궁궐
시설 1동
지정연도 1985년 1월 8일
건축시기 조선 시대, 1395년(창건) / 1867년(중건)

1. 개요2. 이름3. 역사4. 정문5. 구조6. 여담7. 대중매체에서

[clearfix]

1. 개요

<colbgcolor=#bf1400>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의 소개 영상
조선법궁경복궁정전. 정전은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 의식을 거행하고 외국 사신을 맞이하던 곳이다.

경복궁에 입궐했을 때 근정문을 통해 들어가서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며, 좌측에는 수정전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궁궐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2. 이름

정도전이 《서경》(書經)의 구절을 이용하며 왕은 부지런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천하의 일은 부지런하면(勤) 잘 다스려진다(政)"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태조실록》 태조 4년 10월 7일 기사.)

이 이름이 쓰인 현판은 중건 당시 이흥민(李興敏)[5]이 썼다고 한다. '근(勤)' 자는 왼쪽 변의 아래에 가로획이 하나 생략된 이체자인데, 서체에서 흔히 보이는 현상이다. #1, #2 '전(殿)'의 '几' 부분도 자형이 다르다.

3. 역사

1395년(태조 4년)에 조선 정부에서 경복궁을 창건하면서 같이 지었다. 용 문양을 새긴 청자 기와들로 지붕을 뒤덮어두어서 매우 아름다웠다고 한다.
(중략)...우리 나라에서는 다만 근정전(勤政殿)과 사정전(思政殿)에만 청기와를 덮었을 뿐이고...(중략).
《문종실록》 문종 즉위년 2월 28일 계묘 4번째 기사 중.
즉, 사극이나 영화 등의 대중매체에서, 흥선대원군에 의해 재건된 고종 시기를 제외한 세종 이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기 전까지의 경복궁 근정전과 사정전은 청기와 건물로 표현해야 옳은 재현이라는 것이다. 세종 이후라 하는 이유는 1443년(세종 15)에 근정전 취두(鷲頭, 치미나 용두와 같은 망새로서 용마루 양쪽 끝에 세워 놓은 대형 장식 기와)가 비로 인해서 무너졌는데, 비싼 청기와와 아련와(牙鍊瓦, 조개껍질 가루를 발라 만든 기와)중에 무엇으로 덮을지 고민하면서 청기와를 정밀하고 좋게 구워 만드는 기술을 시험해 보라는 실록의 기록이 있기 때문에 유력하다.

기존에 청기와가 덮여 있었을 시 아련와를 고민한다는 것은, 더 값싼 아련와를 정전에 덮는 꼴이 되고, 편전은 이미 청기와가 있으니 격이 떨어지게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단 사정전은 1553년(명종 8)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청기와로 복원했는지는 알 수 없어 선조 대의 사정전은 어떠했는지가 애매한 위치에 있다.
파일:중묘조서연관사연도.png
<colbgcolor=#bf1400> 중종 시대에 그린 《의령남씨가전화첩》에 수록된
〈중묘조서연관사연도(中廟朝書筵官賜宴圖)〉
위 그림은 임진왜란 이전 근정전의 모습을 상세히 그린 그림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것이다. 1535년 당시 국왕 중종왕세자의 책봉 16주년을 맞아 왕세자의 교육에 힘쓴 서연관 39명에게 베푼 연회를 묘사한 것으로, 경복궁 근정전 앞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임진왜란 이전에도 근정전의 정문이 중층으로 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작품이 그려진 시기로부터 불과 15년 전까지만 해도 근정전에 청기와가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등장하는데, 이것이 표현되지 않은 까닭은 밝혀지지 않았다. 15년 사이에 모종의 사유로 근정전 지붕을 수리하였거나, 모사 과정에서 지붕에 덮인 기와를 잘못 그렸을 것이라 추측해볼 수 있을 뿐이다.

경복궁의 전경을 개괄적으로 묘사한 1550년의 〈비변사계회도〉와 1581년의 〈기성입직사주도〉에도 근정전에 해당하는 중층 정전 건물이 그려져 있지만, 그 구조가 자세히 나타나지는 않는다.

1592년(선조 25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불에 타 사라진 후 그의 아들 광해군이 복원을 시도했었는데, 이때 값비싼 청자 기와로 복원하려 해 많은 반발을 사기도 했다.
파일:영묘조구궐진작도.jpg
<colbgcolor=#bf1400> 영조 시대에 그린 《의령남씨가전화첩》에 수록된
〈영묘조구궐진작도(英廟朝舊闕進爵圖)〉
인조반정 이후 조선 정부에서는 복원을 포기했다. 대신 남아있는 돌 축대만을 일종의 예식 장소로 사용했음을 영조 때 그려진 《의령남씨가전화첩》에 수록된 〈영묘조구궐진작도(英廟朝舊闕進爵圖)〉를 통해 알 수 있다.
파일:경복궁 근정전 헤르만 산더 1906~1907년 촬영(국립민속박물관).jpg
<colbgcolor=#bf1400> 대한제국 시대 촬영된 경복궁 근정전[6]
그 후 흥선대원군이 1867년(고종 4년) 중건했다. 이후 고종이 근정전에서 공식적으로 정도전의 업적을 찬양하면서 정도전에 대한 사면을 반포했다. 경술국치 이후 일제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을 때도 철거되지 않고 자리를 지켰으며 광복 이후 6.25 전쟁의 화마 속에서도 무사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1985년 1월 8일에 근정전을 국보 제223호로 지정했다.

현재 근정전의 모습은 2000년대 초 대대적인 보수와 수리를 거친 모습이다.

4. 정문

景福宮 勤政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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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구조

  • 2단 짜리 석축기단 위에 정면 5칸, 측면 5칸의 2층 전각이다. 지붕은 팔작지붕, 처마는 겹처마, 공포는 다포 양식이며 기둥은 원형이다. 용마루와 내림마루, 추녀마루는 양성바름을 하고, 지붕 측면의 합각은 나무판으로 마감했다. 지붕에는 용두와 취두, 처마에는 잡상을 올렸다. 잡상 개수는 7개인데, 경복궁의 옛 사진 자료들을 보기에 따라서는, 정확하진 않지만 1층에는 8개, 2층에는 10개인 것으로 보기도 한다. 잡상을 홀수로 놓는 것이 원칙#이라고는 하나, 덕수궁 중화전이 10개#인 등 애초에 우리나라의 잡상 수는 딱히 규칙성을 보이지는 않는다.
  • 기단에는 돌 난간을 설치했고, 가장자리 기둥 위마다 12지신 석수를 배치했다. 이는 다른 궁궐 정전에는 없는, 근정전만의 특징이다. 특이한 건 용, 개, 돼지는 없다는 점. 용과 개와 돼지가 제외된 이유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이미 왕을 상징하는 용은 여기저기 많아서 따로 둘 필요가 없었고, 개와 돼지는 용과 상극이라서 만들지 않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라고 한다. 여기에 근정전의 십이지가 신상(神像, 숭경의 대상이 되는 신의 화상)이 아니라 생초(生肖)의 모습을 한 금수상(禽獸像)인 까닭은 유교를 국시로 하는 조선 왕조의 자연주의 태도에 따른 것으로 이해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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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 근정전 닫집에 달린 용 조각
  • 특이한 건 천장에 있는 금박 입힌 두 마리의 목조 조각의 발톱이다. 발톱이 7개인데 당시 중국의 질서에서 왕세자의 용은 발가락이 3개, 왕(제후)과 황태자는 4개, 황제(천자)는 5개로 규정했다. 따라서 발톱이 7개인 용은 황제보다 높음을 뜻한다.소심한 반항 조룡이 언제 나왔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경복궁을 처음 만들 때부터 있었다는 설,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만들었다는 설 정도가 있다. 이 중에서도 좀 더 지지받는 쪽은 후자인 흥선대원군설. 중국 사신이 왕을 알현할 때 기본적으로 고개를 숙여야 했기 때문에 천장의 용을 볼 일이 없어서 당연히 눈치채지 못했으리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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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 근정전 내부
  • 2000년에 보수하며 근정전에 설치된 집기류들이 이질감이 있다. 도자기, 부채 등은 그렇다 쳐도, 이나 향로, 큰 도끼까지 설치되어 경복궁의 정전이라는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다.

6. 여담

  • 유홍준 교수의 말에 따르면 근정전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곳은 근정전 남동쪽 행각(行閣) 모퉁이라고 한다. 출처 서쪽의 인왕산과 북쪽의 북악산의 스카이 라인이 근정전의 지붕 선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경복궁 개방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이기도 하다. 마당이 꽤 넓어서 앉을 자리도 많은데다 날씨 좋은날 풍경, 혹은 야경이 정말로 멋지기 때문. 그덕에 경회루와 함께 경복궁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 베트남 후에 황궁에도 똑같은 이름의 건물이 존재한다. 다만 정전인 경복궁 근정전과는 달리, 후에 황궁의 근정전은 황제의 집무 공간인 편전이다.
  • 조선 임금 중 경복궁 근정전에서 즉위한 마지막 왕은 선조이다. 선조 재위 중에 임진왜란이 발생하여 전란 중 경복궁이 불타버렸고, 고종 때 경복궁을 중건했지만 다음 임금이자 마지막 황제 순종은 경복궁이 아닌 덕수궁 중화전에서 양위식을 가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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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 근정전에 일장기가 걸린 사진
파일:1900 파리만국박람회 대한제국관.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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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900 파리만국박람회 한국관 사진.jpg
  • 1900 파리 엑스포의 한국관 원형이었다.
  • 일제강점기에 살아남은 건물이기는 하지만 1920년대에 일제가 내부를 크게 바꾸었다. 또한, 1930년대에는 순직 경찰관들의 위령제를 지내는 등 일제의 행사장으로 전락했고, 광복 이후에는 한 동안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풀이 무성하게 자라기도 했다. 물론, 현재에는 조선시대 모습대로 돌려놓았다.

7. 대중매체에서

전기 조선 시대를 다룬 사극에서 궁궐이 나오면 근정전이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하지만 경복궁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기에 구한말 흥선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이 복원되기 이전인 조선 후기를 다루는 사극에선 근정전이 나오지 않는다. 특히 숙종부터 정조에 이르는 후기 조선시대는 사극의 소재로 두루 쓰이는 편이라 경복궁이 묘사되지 않는 조선 사극도 의외로 많다.

근정전 내부 어좌에 앉아있는 임금과 대립하는 신하들의 모습도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다만 이런 장면은 대부분 스튜디오 촬영을 하기 때문에 근정전은 그냥 지나가는 배경으로만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최근에는 근정전에서 촬영하기 어려운 경우 용인대장금파크에 있는 궁궐 세트에서 찍는 경우도 많아졌다. 이 경우 조선시대에 거의 쓰이지 않은 치미에 솟을지붕까지 얹어있어서 그 앞에 조선의 곤룡포와 관복을 입은 왕과 신하들이 지나가면 한눈에 봐도 어색해보인다.

심시티 시리즈〉에서는 숭례문, 63빌딩 등과 함께 한국의 랜드 마크로 꾸준히 등장한다.

카르멘 산디에고 오프닝 장면에서 지나가듯이 나온다.

신비아파트 특별판: 조선퇴마실록에서 하리 일행옥새의 눈을 이용해서 조선을 지배하려는 주운을 막기 위해 최종 결전을 여기서 펼친다.

[1]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2]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3]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4]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5] 철종(재위 1849~1863년) 시기에 성균관 대사성을 지냈고 고종 시기에 도승지 등 높은 관직에 있었던 문신.[6] 1906년 ~ 1907년 시기 촬영. 출처: 국립민속박물관. 해당 링크에서 사진 다운로드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