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30 21:54:25

경복궁 선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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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선원전
景福宮 璿源殿
창덕궁 선원전
昌德宮 璿源殿
덕수궁 선원전
德壽宮 璿源殿
창경궁경희궁엔 선원전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창덕궁 신선원전조선 멸망 이후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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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117호 경복궁
<colbgcolor=#bf1400> 경복궁 선원전
景福宮 璿源殿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세종로)
건축시기 1867년 (창건)
1931년 (철훼)
1945년 (전소)
파일:경복궁 선원전.png
<colbgcolor=#bf1400>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경복궁 선원전
1. 개요2. 이름3. 역사4. 부속건물
4.1. 진설청(陳設廳)4.2. 내재실(內齋室)4.3. 배위청(排位廳)4.4. 경안당(敬安堂)4.5. 숙경재(肅敬齋)4.6. 진전 소주방(眞殿 燒廚房)

[clearfix]

1. 개요

경복궁의 선원전이다. 선원전은 역대 들의 어진[1]을 모시고 제사 지내던 진전(眞殿)이었다. 쉽게 말해 종묘궁궐 밖에 있는,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사당이라면, 선원전은 궁궐 안에 있는 왕실의 사당이었다.

경복궁 동북쪽, 지금의 국립민속박물관 자리에 있었다.

2. 이름

선원(璿源)이란 단어는 '왕실의 유구한 뿌리'란 뜻이다.《구당서》의 〈열전 - 공의태자 소〉에서 유래했다. 글자 뜻을 그대로 풀면 ‘아름다운 옥(璿)의 뿌리(源)’로, 왕실에 비유하여 ‘구슬의 근원’, 또는 ‘구슬 같은 뿌리’란 의미로 사용한 듯하다.#[2][3]

3. 역사

조선 초기에는 임금마다 별도로 사당을 지어 어진위패를 두고 제사를 지냈다. 이것을 세종이 통합하려 했고, 그래서 경복궁에 제사를 지내는 문소전(文昭殿)을, 그 뒤편에 어진을 보관하는 선원전을 지었다. 이때만 해도 선원전은 어진 뿐 아니라 왕실 족보인 《선원록》도 보관하는 왕실 유물 보관소였고 제사 공간은 아니었다.#

임진왜란경복궁소실되면서 문소전과 선원전도 모두 불탔고 한동안 다시 짓지 못했다. 100여 년 뒤인 숙종 시기에야 당시 사실상 법궁이던 창덕궁선원전을 새로 지었고, 그때부터 선원전에서 제사를 지냈다.

경복궁 선원전을 다시 지은 때는 고종 때인 1868년(고종 5년)이었다. 이후 창덕궁 선원전어진을 경복궁으로 옮겼다. 선원전이 두 곳으로 늘어나면서 고종이 경복궁에 머물 땐 경복궁으로, 창덕궁에 머물 땐 창덕궁으로 어진도 함께 옮겼다.#
파일:경복궁 선원전 일대.png}}} ||
<colbgcolor=#bf1400> 《북궐도형》의 선원전 일대 내부 구성도
1896년(건양 원년) 2월 아관파천으로 고종경복궁을 떠나면서 경복궁 선원전에 있던 어진경운궁즉조당으로 옮겼고, 경복궁 선원전은 빈 건물이 되었다. 하지만 아주 버린 것은 아니라서 1900년(광무 4년) 경운궁 선원전태조 이성계의 모사[4]어진을 봉안할 때, 경복궁과 창덕궁의 선원전에도 태조의 어진을 모실 칸을 새로 지었다.
파일:박문사 쿠리.png
<colbgcolor=#bf1400> 박문사 쿠리가 된 경복궁 선원전
그러나 일제강점기 직후 경복궁조선총독부소유하면서, 일제는 선원전 주변의 부속 건물과 행각들을 대부분 철거했다. 1931년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는 박문사장충단에 지으면서 선원전 본채를 옮겨다 쿠리(庫裡)[5]로 사용했다. 건물광복 직후인 1945년 11월 23일 화재로 불타 없어졌다.
파일:external/www.ttearth.com/national_folk_museum.jpg
<colbgcolor=#bf1400> 경복궁 선원전 영역에 들어선 현재의 국립민속박물관
1966년 1월에 대한민국 정부국립중앙박물관[6]경복궁 선원전 영역에 세우기로 하였고 1972년에 완공하였다. 1986년 국립중앙박물관은 옛 중앙청으로 옮겨가고[7] 1993년 2월부터 현재까지 국립민속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다. 문제는 이 일대에 그나마 남아있던 경안당, 대향당 등 9동 106칸의 전각들을 철거하고 박물관을 지었다는 것, 그리고 그 와중에 공사하면서 선원전의 유구가 심하게 훼손되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박물관 디자인 자체도 여러 불교 사찰건물들을 섞어서 지었기 때문에[8] 유교 국가법궁에는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다.

문화재청은 2030~38년에 걸쳐 진행할 〈경복궁 2차 복원 정비 사업 - 3단계 궁중의례권역 복원 계획〉으로 국립민속박물관 건물을 철거하고 선원전, 만경전, 제수합 영역의 건물 20동을 짓기로 하였다.

4. 부속건물

4.1. 진설청(陳設廳)

景福宮 陳設廳

진설청은 선원전에서 제사를 지낼 때 사용할 음식, 다과 등을 준비하고 차려놓는 작은 건물이다. 경복궁 선원전의 진설청은 선원전 본채를 기준으로 동남, 서남의 가장자리 칸 옆에 각각 1채 씩 총 2채가 있었다.

4.2. 내재실(內齋室)

景福宮 內齋室

경복궁 선원전 북서쪽에 연결되어 있으며 제관(祭官)이 머무는 곳이었다.

4.3. 배위청(排位廳)

景福宮 排位廳

경복궁 선원전 남동쪽에 붙어있는 4칸의 복도각이다.

4.4. 경안당(敬安堂)

파일:경안당.png
<colbgcolor=#bf1400> 경안당
景福宮 敬安堂

경복궁 선원전 동쪽에 있는 어진을 모사하거나 선원전의 보수를 하는등의 사정이 있을때 어진을 임시로 보관하는 건물인 이안청(移安廳)이다. 광복 이후에도 남아있었으나 1966년국립중앙박물관 건설로 헐리고 만다.

4.5. 숙경재(肅敬齋)

景福宮 肅敬齋

경복궁 선원전 서쪽에 있는 왕실 여성들의 재실이었다.

4.6. 진전 소주방(眞殿 燒廚房)

景福宮 眞殿 燒廚房

경복궁 선원전 남쪽에 있는 제사 음식을 만드는 곳이었다.
동쪽의 다과와 음료를 만드는 진전 생물방(眞殿 生物房)과 서쪽의 음식을 만드는 진전 소주방(眞殿 燒廚房)으로 구성되었다.
동쪽의 진전 생물방(眞殿 生物房)은 동편의 화락당(和樂堂)과 붙어 있었고
서쪽의 진전 소주방(眞殿 燒廚房)은 내,외소주방의 구별이 없이 진전 소주방(眞殿 燒廚房) 하나로 이루어졌다.
현 복원 계획에서는 제외되어있다.



[1] 御眞. 임금초상화.[2] 그래서 조선 시대 왕실 족보 이름도 《선원록(璿源錄)》, 《선원계보(璿源系譜)》이다.[3] 또한 전주 이씨 가문에서 계통을 분류할 때 선원선계(왕실 역사 시작 이전[9]), 선원세계(왕통), 선원파계(왕자, 왕자군에서 갈라진 계통)로 나눈다.[4] 摹寫. 베껴 그리다.[5] 절의 창고, 부엌, 숙소 등을 일컫는다.[6] 당시 계획엔 국립종합박물관으로 표기되었다.[7]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은, 옛 중앙청을 철거한 뒤 현재의 국립고궁박물관 건물을 쓰다가 2005년 현재의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로 옮겼다.[8] 불국사 청운교와 백운교, 법주사 팔상전, 금산사 미륵전, 화엄사 각황전에서 따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