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8 15:45:07

경복궁 태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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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사적 제117호 경복궁
<colbgcolor=#bf1400> 경복궁 태원전
景福宮 泰元殿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세종로)
건축시기 1867년 (창건) / 2009년 (부분복원)
파일:경복궁 태원전.png
파일:경복궁_태원전.jpg
<colbgcolor=#bf1400> 태원전[1]
1. 개요2. 용도3. 이름4. 역사5. 구조6. 부속 건물과 시설
6.1. 영사재(永思齋)6.2. 공묵재6.3. 숙문당6.4. 세답방6.5. 우물
7. 여담
7.1. 복원 문제

[clearfix]

1. 개요

경복궁의 건물이다. 경복궁의 서북쪽 끝에 있다.

2. 용도

빈전이다. 빈전은 왕비, 대비가 죽은 후 발인할 때까지 을 모시던 곳이다. 빈전은 국상 때 잠깐 사용하는 용도였기에 건물을 따로 짓지 않고, 편전이나 침전의 일부 건물을 활용했다. 그러다 1860년대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아예 빈전 전용 건물을 따로 지은 것이다. 이것이 태원전이다.#

그렇다고 빈전으로만 쓰인 것은 아니다. 1872년 4월 7일 자 《고종실록》의 기사를 보면, 영희전에 있던 태조원종어진을 베껴그리기 위해 옮겨온 어진을 모시는 임시 봉안소로도 기능했다고 한다.

1890년(고종 27년) 익종(효명세자)의 비 신정왕후 조씨의 국상 때와# 1895년(고종 32년) 명성황후의 국상 때 빈전으로 기능했다.#

3. 이름

‘태원(泰元)’ 뜻은 ‘하늘’이다. 《한서》 - 〈예악지〉에는, ‘오직 태원이 존귀하고 토지신은 변방을 다스리니, 하늘을 씨줄로 하고 땅을 날줄로 하며, 사계절을 이루었다’는 구절이 있다. 당나라의 학자인 안사고가 여기에 ‘태원(泰元)은 하늘(天)’이란 주석을 달았다.

존귀한 분의 시신을 모시는 빈전이므로, 하늘이란 존칭을 건물의 이름으로 붙인 듯 하다.#

4. 역사

임진왜란 이전에는 없었다. 1860년대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처음 지었다. 일제가 허물고 그 자리에 일제 관료들의 관사를 지었다. 5.16 군사정변 이후에는 대한민국 육군 수도경비사령부 예하 제30경비단이 주둔하면서 외부인은 출입할 수 없었다. 그리고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국군보안사령관을 주축으로 한 하나회 일당이 벌인 12.12 군사반란 당시 반란군의 지휘부가 30경비단에 있었다. 이 당시 30경비단에 모였던 사람은 하나회 보스인 전두환과 그의 절친한 동기 노태우, 30경비단장이던 장세동을 비롯해 유학성, 황영시, 차규헌, 박준병, 백운택, 박희도, 최세창, 장기오, 김진영 등 하나회 핵심 간부들이었다. 대한민국 국군과 정치의 흑역사 중심에 이 건물이 있었던 셈이다.

1996년 12월에 30경비단이 떠난 후 다음해 10월부터 복원을 위한 발굴 조사를 실시했다. 그러나 망가진 유구 때문에 위치 확인이 불가능할 뻔했는데, 다행히 부속건물 영사재 터와 행각 터가 온전히 남아있어서 위치 파악이 가능했다.# 이후 2001년부터 공사에 착수하여 2005년 말에 복원 공사를 끝냈고, 2009년 1월 말부터 일반에 공개하여 오늘에 이른다.#

5. 구조

파일:태원전 배치도.png
<colbgcolor=#bf1400> 태원전 일대 내부 구성도
태원전 권역은 태원전을 중심으로 좌, 우, 남쪽에 부속건물과 행랑이 있는 형태이다.

제일 남쪽에 출입문 건숙문이 있고 건숙문 안에 경안문이 있으며 경안문을 지나야 태원전이 보인다. 건숙문의 동북쪽, 경안문의 동남쪽에 공묵재란 건물이 태원전의 남행각과 붙어있다.

태원전 건물 동북쪽에는 영사재가 있다. 영사재는 태원전과 붙어있으며 동남쪽으로 동행각과 통한 형태이다. 태원전의 서북쪽에는 숙문당이 있으며 태원전의 서행각과 동행각 밖에는 빨래를 하던 3개의 ‘日’자 모양의 세답방이 있다. 배치는 동북쪽 세답방은 통채로 대왕대비전 세답방이 사용했고 동남쪽 세답방은 북쪽의 중궁전 세답방과 남쪽의 왕대비전 세답방으로 나누어 사용했으며, 서쪽 세답방은 북쪽의 빈궁 세답방과 남쪽의 순화궁 세답방으로 나누어 사용했다.# 공묵재와 영사재는 재실로 사용했고 숙문당은 사당으로 추정된다.

자세한 건물의 구조는 이 포스팅을 참조.

6. 부속 건물과 시설

6.1. 영사재(永思齋)

파일:경복궁 영사재.png
<colbgcolor=#bf1400> 영사재
왕실의 여성들이 사용한 태원전의 내재실이다.

6.2. 공묵재

파일:경복궁 공묵재.png
<colbgcolor=#bf1400> 공묵재
국왕이 사용한 태원전의 어재실이다.
공묵재와 복도로 연결된 태원전 남행각에는 동쪽부터 유정당(維正堂), 경사합(敬思閤)이 있다.

6.3. 숙문당

파일:경복궁 숙문당.png
<colbgcolor=#bf1400> 숙문당
1890년(고종 27년) 익종(효명세자)의 비 신정왕후 조씨의 국상때 지어진 용도가 불명확한 건물이다.

6.4. 세답방

파일:경복궁 태원전 세답방 1.png
파일:경복궁 태원전 세답방 2.png
<colbgcolor=#bf1400> 세답방
궁인들이 빨래를 하던 세답방이다. 빨래방망이로 인한 소음으로인해 평소에 한산한 빈전,혼전 옆에 있었고 국상시에는 궁인들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국상도감등의 관청 사무실로 사용했다.

6.5. 우물

파일:경복궁 태원전 우물.png
<colbgcolor=#bf1400> 우물

7. 여담

7.1. 복원 문제

파일:경복궁 태원전 미복원지.png
<colbgcolor=#bf1400> 태원전 미복원 흔적
태원전을 복원할 때 서북쪽 구역을 완전하게 재건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일제강점기경복궁 서북쪽 궁장의 일부가 잘려나가 효자로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측세답방 건물을 절반만 복원했고, 세답방 서쪽 행랑의 일부를 주춧돌로 흔적만 남겼다. 그렇다고 원래대로 다 복원하자면 효자로를 막아야 하는 것이 문제. 현재로서는 사실상 100% 원형 복원이 불가능하다.[2]
[1] 두 번째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2] 가능은 한데 서십자각영추문을 포함해서 경복궁 서쪽 궁장이 밀려들어간 상태여서 복원하려면 전체적으로 효자로를 서쪽으로 밀어야하는데 건물 이건에 따른 토지보상비가 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