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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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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1. ‘민족주의’ 번역의 혼용으로 인한 개념 혼동
2. 형성 이론3. 종류
3.1. 내셔널리즘의 이분법3.2. 종족 내셔널리즘(ethnic nationalism)3.3. 시민 내셔널리즘(civic nationalism)3.4. 그 외 여러 가지 내셔널리즘
4. 역사
4.1. 세계
4.1.1. 유럽4.1.2. 아메리카4.1.3. 동아시아
4.2. 대한민국
4.2.1. 조선 말 이전4.2.2. 조선 말 ~ 2000년대4.2.3. 2010년대 ~ 2020년대
5. 정치적 역학관계6. 논쟁
6.1. 학술적 논쟁6.2. 내셔널리즘의 찬반
6.2.1. 옹호론 (‘의의가 있다’ 측)6.2.2. 비판론 (‘한계가 역력하다’ 측)
6.3. 총평
7. 내셔널리즘 성향이 강한 각국의 현존 대표적 정당들8. 민족주의 음악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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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내셔널리즘(Nationalism)은 집단적 동질감·소속감·연대감에 기반한 공동체인 nation을 중시하는 사상·행동의 총체를 의미한다. 또는 nation에 기반한 nation-state(국민국가/민족국가)를 건국하여 nation이 독자적 주권을 행사하여야 한다는 사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애국심은 내셔널리즘에 속하는 개념이다.

한국어에는 nation이라는 단어에 일대일 대응되는 어휘는 없고 맥락에 따라서 민족(民族), 국민(國民), 국가(國家) 등 다양하게 번역된다. 초기에는 민족(民族)으로 번역되었는데, 서구권의 'nation'과 한국에서의 '민족'의 뉘앙스 차이로 인하여, 학계에서도 용어의 번역에 대한 논란이 많다. 한스 콘(Hans Kohn)은 nationalism을 혈연·언어·문화 공동체 개념의 ethnic nationalism(동구권)과, 정치적·법적 공동체 개념의 civic nationalism(서구권) 이라는 대립적 구도로 분류하였는데, 이것을 콘 이분법(Kohn Dichotomy)이라고 하며, 널리 통용되는 내셔널리즘의 분류법이다.

민족의 개념은 매우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어서 합의된 정의가 존재하지 않지만 객관설과 주관설, 서구형과 동구형 또는 종족적 개념과 시민적 개념 등 이분법적으로 민족의 유형을 구별해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대체로 원초주의는 객관설과 동구형 그리고 종족적 개념에 의존하고 있는 반면에 근대주의는 주관설과 서구형 그리고 시민적 개념을 따르고 있고 종족상징주의는 절충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1.1. ‘민족주의’ 번역의 혼용으로 인한 개념 혼동


한국에서는 nationalism과 그 하위 분류인 ethnic nationalism 둘 다 민족주의라는 번역을 혼용하기에[1], 많은 혼동이 존재한다. 사회구성원들이 같은 민족이라는 주관적 동질감과 일체성만 있으면 하나의 민족이라고 주장한다면 civic nationalism[2]의 의미로 사용한 것이고, 민족이 객관적인 혈연 친족관계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한다면 ethnic nationalism의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3] nationalsim은 이 둘을 모두 포함하는 상위의 카테코리로서 대체로 문맥에 따라 어느 한 쪽의 의미로 한정되어 해석된다.[4]

nationalism은 아시아권에서 한자 민족주의(民族主義)로 번역되었으며, 이 때문에 근대에 명칭문제가 생기고 있다. 한국에서 민족주의라는 용어가 지칭하는 개념에 대해 nationalism, ethnic nationalism, civic nationalism 사이에 혼동이 있다. 관점에 따라서, 민족은 혈연, 문화, 언어, 종교, 지역 등과 같은 객관적 요소에 의해서 정의된다는 관점(ethnic nationalism)이 있고, 같은 민족이 되겠다는 의지라는 주관적 요소에 의해 정의된다는 보다 넓은 관점(civic nationalism)이 존재한다. 이는 민족이 지칭하는 개념이, 자유주의적 관점에 기반한 civic nation[5][6]이냐, 아니면 혈연적 공동체 개념인 ethnic nation이냐의 차이이다.

nationalism을 19세기 말의 일본에서는, 독일의 블룬츨리(Bluntschli)의 이론에 영향을 받아서 이를 종족적 성격으로만 이해하고 민족주의로 번역하였다. 그리고 정치적 사회계약론적 공동체를 국민으로 번역하였다. 즉 ethnic nation의 개념을 민족으로 civic nation의 개념을 국민으로 번역한 것이다. 중국에서는 량치차오가 서구의 nationalism을 일본의 민족주의 용어를 사용해서 번역하였다. 구한말의 지식인들은 양계초의 사상에 매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한국에서도 전통적으로 nationalism을 민족주의로 번역해왔지만, 한국에서의 민족주의는 근대주의적 civic nationalism의 의미보다는, 원초주의적 의미의 ethnic nationalism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한국에서는 nationalism이 전통적으로 민족주의로 번역되어왔고, national state는 민족국가 또는 국민국가로 표현이 혼용되어서 번역되어왔다. 예를 들어 프랑스 대혁명을 통하여 민족주의가 등장하였다고 번역하기도 한다.

이에 번역어 선택은 학자마다 개인마다 복합적인 양상을 보인다. nation과 nationalism을 민족과 민족주의로 번역하는 전통적 시각과, 국민과 국민주의, 혹은 음차하여 네이션과 내셔널리즘이라고 칭하는 각각의 관점이 존재한다. nation과 nationalism을 민족과 민족주의로 번역하는 전통적 시각에서는, 민족주의(nationalism)가 종족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 지칭)와 시민민족주의(civic nationalism)로 분류된다고 번역하며, 이에 반하여 nation과 nationalism을 국민과 국민주의로 번역하는 용례에서는 국민주의(nationalism 지칭)가 민족국민주의(ethnic nationalism)와 시민국민주의(civic nationalism)로 나누어진다고 번역한다.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 소속 김정훈 연구위원도 한국인의 에너지, 민족주의 / 종족에서 시민으로에서 민족주의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면서, 종족적 민족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 전문위원을 역임한, 서강대 전재호 교수의 '민족주의들 한국 민족주의의 전개와 특성'을 한겨레신문에서 소개하는데 민족주의를 '종족적 민족적 정체성'과, '정치적 국민적 정체성'으로 구분하며, 종족적 민족주의와 시민적 민족주의로 복수의 민족주의를 서술하고 있다. 복수의 민족주의가 존재하는 까닭 또한 전재호 교수의 민족주의론 대학공개강의를 KOCW에서 무료로 제공한다. 민족주의론 OCW 공개강의 마지막 강의에서 한국의 종족적 민족주의에 대한 강진웅의 논문을 인용하면서, nation이 정치적 차원과 문화적/종족적 차원이 있다고 하면서, 한국의 종족적 민족주의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번역어에 대한 논쟁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nation을 민족으로 번역했는데, 서구권에서 사용되는 'nation'의 개념과 한국어에서 '민족'의 뉘앙스가 간극이 크다는 것이다. 논쟁을 살펴보자면, nation이 정치적 '국민'(시민)의 성격이 강하다고 보고, 민족은 혈연 문화적 '종족'의 성격이 강하다고 봐서, 내셔널리즘은 민족주의가 아니라 국민주의라고 번역해야된다는 주장이 있었고, 이와 달리, 원래 사용했던대로 계속 민족주의로 번역하는 관성적인 경우도 있고, 내셔널리즘에는 혈연 문화적인 종족 내셔널리즘과, 정치적인 시민 내셔널리즘이 있으며, 종족과 시민을 포괄하는 단어로써 민족을 사용하려고 하기도 한다.
이론적인 수준에서 논의되는 “nation”과 한반도의 역사적 경험 속에서 형성되고 작동하는 “민족” 사이의 의미 차이를 준별해야 한다. 1세기 전 프랑스에서의 nation과 한국에서의 민족이 동일한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현 시점에서도 nation에 대한 이론적 논의와 ‘민족’에 대한 한국사회의 논란 사이에 는 의미상의 불일치가 적지 않다.
...
1) 국가적인 것
한국에서 nation에 해당하는 개념이 사용되는 대표적인 경우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와 관련한 공공의 영역, 또는 국가공동체의 구성원 자격과 관련된 의미를 뜻할 때다.
... 이런 형태의 내셔널한 것과 연관되는 범주는 통상 ‘국민’으로 지칭된다. 국민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의 정당한 구성원을 말하는 것으로 논리적으로 대한민국이란 국가의 수립을 전제할 때만 가능한 공동체가 된다. 대한민국 제헌헌법 제2조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할 때의 그 국민이 바로 이런 nation에 해당한다. 따라서 국민적 정체성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대한 자긍심과 애국심에 바탕을 두는 것이어서 정치적이고 법적인 성격이 강하다.
... 해외의 많은 nation 관련 연구들이 실제로 의미하는 바는 이 차원인 경우가 많다. 예컨대 근대주의적 민족연구의 대표로 간주되는 겔너의 유명한 명제, 즉 nation이 nationalism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nationalism이 nation을 만들어낸다는 말에서의 nation은 국가구성원을 의미하는 국민에 가깝다.
...
2) 종족적인 것
혈연에 근거한 종족적 유대는 오랫동안 nation의 주요한 요소로 간주되었다. 한국인은 기본적으로 혈통을 공유하는 혈연공동체이고 단군을 공동의 조상으로 둔 단일 종족공동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다. 법적으로도 국적법이 이러한 혈통주의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한다.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모든 한국인들이 하나의 형제공동체, 즉 ‘동포’로 인식되게 되는 바탕에도 혈통에 대한 일정한 믿음이 깔려있다. 남한과 북한의 주민은 말할 것도 없고 미주 한인, 일본 조선인, 중국 조선족, 러시아 고려인을 모두 동포로 간주하게 만드는 기반이 혈연에 근거한 종족적 동질성이다.
일반적으로 종족적인 것의 강조는 그 기원이 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생각되어 고조선 이래의 오랜 역사적 전통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네이션과 민족: 개념사로 본 의미의 간격(박명규, 2009)#
네이션의 번역
네이션을 민족으로 번역할 것인가 국민으로 번역할 것인가의 문제는 명쾌한 해답이 없는 질문이다 그런데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네이션이 사용자에 따라 민족이 되기도 하고 국민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 자체가 네이션의 개념에 우리말의 민족과 국민의 의미가 공히 포함되어 있음을 방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부 연구자들은 네이션을 맥락에 따라 민족 혹은 국민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나의 개념을 두 가지 이상의 다른 개념들로 옮겨야 하는 현실 자체가 어색하고 불편해 보이기는 한다 그러한 어색함과 불편함은 어쩌면 서양의 네이션이라는 개념이 한국에 수용되어 민 족 국 등 기존의 한자어들이 조합되어 번역되는 과정 즉 네이션 민족 국민이 서로 비교되고 대응되는 일종의 문화적 충돌 및 융합의 과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비교적 최근에 서양의 에스니(ethnie) 라는 개념까지 등장하면서 그러한 비교와 대응의 과정은 한층 복잡해졌다
... 번역의 문제와 관련하여 일찍이 필자는 네이션에 우리말의 민족과 국민의 뜻이 동시에 간직되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그래도 양자 중 어느 하나를 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국민보다는 민족이 상대적으로 더 타당할 것이라는 의견을 개진한 바 있다 필자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우리말의 국민에는 민족에 담겨 있는 혈연적 문화적 요소가 빈약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민족이라는 말에도 국민에 담겨 있는 계약적 정치적 요소가 희박하기는 하지만 민족보다 더 강한 혈연적 문화적 유대에 기초한 종족이라는 개념이 있으므로 이를 사용하면 민족을 종족과 국민의 중간적 개념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 필자의 제안이었다 이와 함께 네이션을 민족으로 번역하더라도 그 네이션(민족) 에는 혈연적 문화적 요소(에트노스 ethnos) 와 계약적 정치적 요소(데모스 demos)가 공존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
내셔널리즘의 성격
네이션 민족 이 스테이트 국가 와 결합하여 주권의 원천으로 설정된 이래로 네이션 스테이트는 최소한 근대 세계에서 보편적인 정치 형태로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네이션과 내셔널리즘에 대한 지금까지의 많은 논의에서 스테이트의 근거가 되는 네이션이 종족적 문화적 개념으로 이해되느냐 시민적 정치적 개념으로 이해되느냐에 따라 네이션에 대한 이해가 달라지고 내셔널리즘도 종족적 내셔널리즘과 시민적 내셔널리즘으로 유형화 될 수 있다고 생각되어왔다 그리하여 예컨대 서유럽의 시민적 내셔널리즘은 동유럽의 종족적 내셔널리즘보다 훨씬 더 개방적이고 진보적으로 보이며 나아가 서유럽은 이미 내셔널리즘의 단계를 극복했다는 생각이 탄력을 받았다
그러나 필자는 종족적 네이션과 시민적 네이션이 본래부터 구별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모든 네이션에는 종족의 문화적 원리와 시민의 정치적 원리가 동시에 존재하며 그 배합이 달라지는 것은 역사적 사회적 맥락의 차이에 달려 있다고 본다
내셔널리즘의 딜레마(장문석, 2012)#
  • 참고하면 좋은 논문
    • 네이션과 민족: 개념사로 본 의미의 간격 내셔널리즘에서 nation과, 민족, 국민, 종족의 개념을 비교 분석한다.
    • 내셔널리즘의 딜레마 내셔널리즘의 번역문제에 관해 논의하여, 내셔널리즘은 민족이라고 번역하고, 혈연적 문화적 개념은 종족이라고 일컫고, 정치적 개념은 국민이라고 하여, 민족에 종족과 국민적 성격을 포함시킨다. 그리고 내셔널리즘의 성격에서, 종족적 내셔널리즘과 시민적 내셔널리즘의 관계에 대해서도 논의한다.
    • 민족의 개념:국민과 종족 사이 민족주의(nationalism을 지칭) 전반을 폭넓게 다루고 있는 논문이다. 내셔널리즘에 국민적 성격과 종족적 성격이 모두 있다고 주장한다.
    • 어떤 상상의 공동체? 민족, 국민 그리고 그 너머 nation과 민족, 국민의 번역문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논문이다. 저자는 nation을 국민으로 번역하자고 주장하지만, 양측의 의견을 모두 설명하고 있다.
    • 한국에서의 '민족' 개념의 형성 박찬승 교수의 논문에서 민족과 관련된 용어와 개념의 발전을 설명한다.

2. 형성 이론

  • 원초주의: 영속주의나 근원론이라고도 한다. Nation이 과거부터 있어왔고, 민족이라는 실체가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 근대주의: 도구론이라고도 한다. Nation이 근대에 만들어진 정치적 공동체라는 이론이며,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 1936~2015)이 대표적이다.
  • 종족상징주의: 원초주의와 근대주의를 절충한 이론이다. Nation이 근대적 현상임을 인정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Nation의 기원을 근대 이전의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서 찾는다. 종족상징주의를 대표하는 앤서니 스미스(Anthony Smith, 1939~2016)는 근대 이전부터 존재하던 '종족(Ethnic group)'이 근대 사회의 등장과 함께 근대 'Nation'으로 재탄생했다고 주장한다

3. 종류

3.1. 내셔널리즘의 이분법

민족은 객관설과 주관설, 서구형과 동구형 또는 종족적 개념과 시민적 개념 등 이분법적으로 민족의 유형을 구별해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다. 대체로 원초주의는 객관설과 동구형 그리고 종족적 개념에 의존하고 있는 반면에 근대주의는 주관설과 서구형 그리고 시민적 개념을 따르고 있고 종족상징주의는 절충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구분은 프랑스와 독일의 민족주의 구분에서 유래하였는데, 이중 독일의 내셔널리즘은 종족 민족주의고 프랑스의 내셔널리즘은 시민 민족주의로 분류된다. 독일의 역사학자 프리드리히 마이네케가 문화적 민족주의와 정치적 민족주의로 나누어 구분하였고, 한스 콘이 종족 민족주의와 시민 민족주의로 분류하였다.

프랑스는 대혁명 이전부터 전제 군주를 가지는 단일 국가를 형성하였으며, 앙시엥 레짐 아래 이미 고도의 중앙집권화를 달성하였다. 또한 프랑스는 언어적으로도 통일되지 않았었다. 따라서 프랑스에서 민족 개념은 정치적 수단의 성격을 강하게 띄면서 개인의 의지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설정되었다고 설명할 수 있다. 반면 독일은 1870년대 통일국가가 형성될 때까지 수 많은 정치적 단위로 분열되어 있었고, 따라서 수십여개의 분열된 정치적 단위를 하나로 통일하기 위해서는 구성원의 일시적 의지에 의해 형성되는 정치적 계약적 민족이 아니라 영원히 또는 아주 오래 전부터 존재해 온 강력한 결집력의 종족적 문화적 공동체가 필요했던 것이다. 또한 프랑스는 인구학적으로 내부적 인구 성장이 둔화되어 당시 유럽에서 유일하게 지속적으로 이민을 받아들인 국가였다. 반면에 독일 19세기 인구의 폭발로 유럽의 다른 국가로 인구가 이동하여 다양한 지역에 독일민족이 소수민족을 형성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인구학적 상황은 프랑스가 보다 개방적인 민족의 개념을 그리고 독일이 보다 폐쇄적인 민족의 개념을 선택하도록 하는 구조적 원인으로 작용했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다.

프랑스식 정치적 내셔널리즘과 독일식 문화적 내셔널리즘의 충돌은 보불전쟁으로 알자스-로렌 지방이 프로이센 왕국에게 점령되면서, 알자스-로렌은 누구에게 귀속되며, 민족이 무엇으로 구분되는가에 대한 논쟁이 벌어지면서 일어났다. 알자스-로렌은 중세 이래 천년의 세월동안 신성 로마 제국의 영토였으나, 1789년 프랑스 혁명 이후 프랑스에 병합되었다가, 1871년에 독일 제국에 병합되었다. 이 곳 알자스-로렌은 인종적으로 독일인이며, 게르만어알레만어를 사용하고 게르만 문화권이었다. 그런데, 알자스-로렌 주민들은 스스로를 프랑스인으로 생각했으며, 프랑스에 소속되길 원했다.

독일의 역사학자인 테오도르 몸젠(Theodor Mommsen)은 알자스-로렌이 언어 문화 혈통적으로 독일적이기에 독일민족이라고 보았고, 프랑스의 퓌스텔 드 쿨랑주(Fustel de Coulanges)는 이미 유럽의 모든 국가들은 원초적 인종이 아니라 혼혈인이기 때문에 인종을 들먹이는 것은 비현실적이며, 언어의 경우에도, 프랑스에는 다섯 개의 언어가, 스위스에는 세 개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가 민족적 통일성을 결여하고 있다거나, 스위스는 민족이 아니라고 말할 수 없으며, 알자스-로렌의 도시인 스트라스부르에서는 독일어를 사용했지만 최초로 프랑스 국가인‘라 마르세예즈’를 부른 지방이었다고 반박했다. 퓌스텔 드 쿨랑주는 과거보다 현재가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독일의 원초주의적 주장을 비판하고, ‘근대적인 원칙’을 제시하고, 민족적 원칙대신, 공법적인 원칙을 제시한다.

테오도르 몸젠의 원칙과 퓌스텔 드 쿨랑주의 원칙은 민족주의 논의에서 일반적으로 이야기되는 객관주의적 민족 이론과 주관주의적 민족 이론이다. 몸젠의 원칙은 원초론에 속하며 퓌스텔 드 쿨랑주의 원칙은 도구론(근대론)에 속한다

3.2. 종족 내셔널리즘(ethnic nationalism)

종족적 내셔널리즘(ethnic nationalism)는 전통적으로 '민족주의' 번역의 혼용 또는 ''종족적 민족주의' '종족 민족주의'라고 번역되기도 하는 개념이다. 독일의 역사학자 프리드리히 마이네케가 문화적 민족주의라고 분류 한 것을 한스 콘이 종족 민족주의로 분류했다.

집단 정체성인 nation의 기준을 혈연,언어, 문화 공동체인 ethnic group(종족)에 기반을 두는 내셔널리즘이다. ethnicity는 그리스어 ethnos에서 유래하였는데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토스는 ethnos를 혈연 친족관계(ὁμόαιμον), 언어(ὁμόγλωσσον), 문화와 관습(ὁμότροπον)으로 구성된다고 보았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성채를 기반으로 한 도시국가를 폴리스(polis)라고 불렀고, 중심도시가 없는 국가들을 에트노스(ethnos)라고 불렀는데, 에트노스는 중심 도시가 없는 부족연합체로서, 부족들의 개별적 독립성과 부족연합체의 통합적인 유대가 공존하던 체제였다. 폴리스는 주로 그리스 남부와 중부, 소아시아 해안 지역에 분포하고, 에트노스는 그리스 북부지역에 분포하였다.

종족성(ethnicity)은 공통의 조상에 기반한 혈연 공동체의 성격을 가지지만, 프리드리히 마이네케가 문화적 민족주의라고 구분한 것처럼, 언어, 문화를 공유한다는 의미도 가진다. 이것 때문에 종족(ethnic group)의 한자어를 宗族으로 오해하기도 하지만, 생물종과 같은 한자어인 種族을 사용한다. 두산백과에서도 ethnic group과, ethno-nationalism을 각각 種族과, 種族民族主義로 번역하고 있다.

한국에서 대중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민족주의' 라는 표현은, 거의 대부분 이 혈연, 언어, 문화 공동체인 '종족 민족주의' 개념을 의미한다. 실제로도 한국인이 갖고 있는 민족주의 관념은 기사에서 나타나듯이 혈통과 문화 모두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ethnos의 관점을 80%이상이 가지고 있다. '민족주의' 용어의 혼동은 상단 참고.

한국에서 종족 민족주의가 강한 이유는, 한국에서 서구의 민족주의 사상이 유입되는 일제강점기에는 한국인들의 국가가 없었기에, 국가라는 정치적 공동체에 기반한 시민 민족주의가 애초에 성립 불가능했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의 근간이 되는 혈연, 언어, 문화에 기반한 동질감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조선을 벗어나 만주나 해외로 나간 경우에는 민족적 정체성을 오직 종족 민족주의를 통해서만 보존가능했기에 더더욱 종족적 민족주의가 강해졌다.

중요한 것은 혈통을 중요한 요소로 여기는 종족 내셔널리즘이라 해도 완전한 단일 혈통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가령 한국인은 몽골 등의 북방 유목민족과 한반도 남부의 토착민족간의 혼혈을 통해 발생한 민족이며, 한반도에 국가가 형성된 이후에도 중국이나, 여진, 거란 같은 유목민족들, 일본열도에서도 유입되었다. 일본 역시 한반도에서 건너간 외래 민족과 아이누로 대표되는 토착 민족들이 아이누 정벌 과정에서 피가 섞여 현재의 일본인 유전자를 형성하게 되었으며, 이후에도 류큐 왕국을 병합하여 오키나와 현으로 삼는 등을 통해 다양한 출신자들이 유입되었다. 그러나 보통 단일민족이라고 얘기할 땐 이런식의 얘기를 하는 게 아니고, 어떤 한 국가가 아주 오랜시간 단일 문화와 단일 언어, 단일 역사를 공유하면서 그 구성원들이 서로 동질성을 장기간 공유해오며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다면 단일민족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7]

3.3. 시민 내셔널리즘(civic nationalism)

내셔널리즘 중에서 이 ethnic nationalism(종족적 민족주의)에 대조되는 내셔널리즘으로, 가치관을 공유하는 시민들의 정치적 계약과 합의에 의한 내셔널리즘이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 참조.

3.4. 그 외 여러 가지 내셔널리즘

4. 역사

종교를 기반으로 한 공동체는 고대부터 있었고 개중에는 유대인처럼 수천 년을 유지한 경우도 있지만[10], 'nationalism'은 근대에 'nation'의 개념을 기본적으로 인식하면서 태동한다. 'nation'은 흔히 '국가', '민족'으로 번역되지만, 그것 외에도 '국민'의 뜻을 지니고 있다. 특정 nation들끼리 매우 빈번한 왕래와 의사소통[11] 등을 함으로써 형성된 동질적인 유대감 및 소속감에 따라 형성된 공동체 의식이 '특정한 거대 공동체 집단'을 구성하며, 이들이 건설하는 국가가 'nation-state'의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때의 국가는 울타리(국경, 더 강한 분리가 필요할 경우는 장벽을 건설한다)의 개념으로서 자국민을 다른 영역의 타국민과 분리시키는 역할을 한다.

nation이라는 개념이 학술적으로 쓰이기 시작한것은 유럽에서는 17세기 영국에서 처음 시작되었다고 여겨진다. 섬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대륙의 외부 세력(숙적인 프랑스나 여타 가톨릭 세력 등)들과 맞서면서 영국인(브리튼인)이라는 배타적 집단의식이 형성되고, 강력한 국가로 발전하기 시작한 영국[12]이 자국 국민들을 하나로 만들기 위하여 기존의 앵글로색슨족/켈트족 등의 민족이라는 용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추상적인 개념에서 만들어 낸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nation-state의 관념은 전통적 계급구도를 뒤엎어 놓은 프랑스 혁명같은 시민혁명기를 거치면서, 그리고 계몽사상이 보급되면서 정치 참여에 대한 의지를 갖는 시민들 사이에 널리 확산되었다. 이는 이전의 봉건제도에 의한 분절성을 극복하고 통일적인 국가가 성립하는 데 강한 추동력이 되었다. 프랑스 혁명 전쟁을 통해 유럽 각국에 영향을 미쳤으며, 국민개병제, 표준어의 보급으로 인한 지식 및 교육의 확산과 정치 참여 계층의 확장과 함께하며 유럽 각국의 지배적인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18세기 근대국가가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민족주의가 보급된 계기부터 살펴보자. 서구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철도가 개발된 이후에도 각 지방간의 언어 차이가 너무 커서 문제가 생기자 라디오신문을 이용하여 표준어를 보급하는데, 이렇게 표준어를 지방에 이식하면서 나온 개념이 민족이다.[13] 즉 민족을 언어학적 분류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민족이라는 개념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변화 가능한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이탈리아 통일 후 "이탈리아는 만들었다. 다음 일은 이탈리아인을 만드는 것"이라고 한 마시모 다젤리오의 말을 참고하자.

반면 비유럽국가에서는 서구 열강의 지배를 받으면서 내셔널리즘이 전파되어 서구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독자적 국가를 설립하고자 하는 독립운동이 퍼져나갔다. 이른 시기의 예로는 라틴아메리카의 독립 열풍이 있고,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에의 동아시아, 중동, 동남아시아에서의 독립 운동이 있다. 이런 점에서 서구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적 내셔널리즘으로 출발한 일본의 내셔널리즘이 제국주의 침략의 강력한 추진력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꽤 흥미로운 사례이다.[14] 어쨌든 근대에 내셔널리즘을 도입한 국가, 세력이 한둘이 아니고 그들이 받아들인 방식도 다양하므로 이들을 간단히 일률화하기는 힘들다. 어쨌든 내셔널리즘은 지배국가와 피지배국가 세력 양쪽 모두에 사상적 토대를 제공하게 되었다. 한편으로 'ethnic group'을 바탕으로 한 내셔널리즘인 범게르만주의, 범슬라브주의가 나타나 제 1차 세계대전으로 충돌하기도 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미국의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는 이러한 독립 국가 건설의 열풍을 유럽에 적용하여 제국들의 해체를 위해 이용하였으나, 아시아와 아랍 등지에 큰 파급을 미치면서 내셔널리즘을 다시 한 번 고조시켰다. 이에 영향을 받은 조선의 대표적인 내셔널리즘 운동으로 3.1 운동 등이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개별 국가(nation)를 넘어 국제적이고 다국적인(International) 노동자의 단결을 추구한 사회주의 국가 소련도 제국주의에 대한 공세를 위해 각국의 내셔널리즘 세력과 협력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 국가의 식민지 지역이 독립하였고, 신생 독립 국가들이 단결을 위해 내셔널리즘을 이용하였다.

4.1. 세계

4.1.1. 유럽

nationalism을 기반으로 한 국민국가를 처음으로 확립한 프랑스는 오랜 세월 동안 중앙집권적인 왕조를 중심으로 통일되어있었으나 언어적으로는 오크어오일어로 나뉘었고, 바스크나 켈트 계열의 브르타뉴어를 사용하는 집단, 게르만 계통의 알자스어를 사용하는 집단이 있었기 때문에 혈통보다 국민 중심의 내셔널리즘을 형성하였다. 사회계약설과 인민주권론의 영향을 받은 프랑스 혁명은 범유럽적인 근대 민족주의의 출발점으로 여겨진다.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으로 통합된 국가 중심의 경제와 국가 중심의 정체성이 발전했다. 18세기~19세기에 영국의 작가, 지식인들은 국가 정체성의 형성을 장려했다. 1801년 유니언 잭이 국가 상징으로 채택되었다. 작곡가인 토마스 아르네는 1740년 애국적인 노래 "Rule, Britannia!"를 작곡했고, 의사이자 저술가인 존 아버스넛은 1712년 영국을 의인화한 존 불이라는 캐릭터를 발명했다.

독일독일 통일 과정[15]에서 민족주의가 대두되었다. 독일 통일을 위한 당위성을 강조하기 위한 도구로서 민족주의가 이용되었기 때문에 언어, 혈통, 역사를 중심으로 하는 민족주의가 발전하였다.

근대에 오스만 제국의 식민지였던 그리스도 내셔널리즘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 해방 운동이 일어났다. 이후 그리스의 혁명가들이 오스만 제국에 반란을 일으켜, 그리스 독립 전쟁이 일어났다. 그리스가 전쟁에서 승리하여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했다.

튀르키예의 경우, 공화국의 아버지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가 범국민적인 존경을 받고 있으며 그가 제창한 튀르크 민족주의가 좌우를 가리지 않고 넓게 퍼져 있다. 현 집권당인 정의개발당은 보수 우파에 이슬람주의와 민족주의를 더한 성향이며, 반대로 케말 본인이 창당한 공화인민당은 1960년대 이후 좌파 사회민주주의 성향을 띠게 되면서 좌익 민족주의의 대표주자로 급부상했다. 이외에도 이름부터 민족주의행동당인 극우 민족주의 정당, 반대로 공산주의에 가까운 급진 좌파이면서 민족주의 성향을 띠는 군소정당 애국당(VP) 등이 존재한다.

1990년대에 잔혹한 내전을 벌였던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구성국들-세르비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은 모두 같은 남슬라브족이며, 언어조차도 세르보크로아트어로 같다.[16] 그러나 크로아티아는 가톨릭을 믿는 오스트리아-헝가리의 지배를 받으며 서유럽적 정체성을 형성했다. 세르비아와 보스니아는 오스만의 지배를 받았고, 기존의 정교회 정체성을 유지한 세르비아와 이슬람을 받아들인 보스니아로 갈라서 버렸다. 현대 들어 세르비아인, 보슈냐크인, 크로아티아인들은 서로를 적대적인 다른 민족으로 인식했고, 티토 사후 이 적대감이 한번에 분출한 것이 바로 유고슬라비아 내전이다. 즉 민족 정체성은 혈통보다는 종교와 문화, 연대의식 같은 정체성 그 자체에 바탕을 둔다고 볼 수 있다.

4.1.2. 아메리카

미국을 비롯한 아메리카권은 이민자 국가라는 특성상 혈통을 중심으로 하는 내셔널리즘(ethnic nationalism)을 내세울 수 없었다. 때문에 미국은 혈통적 개념의 민족이 아닌 정체성으로서 미국인이란 개념(civic nationalism)을 견고하게 수립하였다.

하지만 20세기 중반 이전까지는 미국도 이민이나 정치 참여에 있어 아시아인이나 흑인들을 배제하고 백인 위주로 국가를 운영하였다. 즉, 미국인이라는 정체성(civic nation)도 실은 백인계 국가/민족 사이의 시민적 민족주의였던 셈이다. 20c 중반 이후로도 미국에서 내셔널리즘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백인이라는 점에서 혈통으로서의 민족주의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셔널리즘 성향이 강한 공화당 지지자가 대다수 백인인 것 역시 이를 방증한다.[17] 특히 아시아계 미국인이나 흑인들을 국민으로서 인정하지 않고 공공연한 차별을 자행한 역사는 현재까지도 미국 내셔널리즘을 백인 중심으로 한정 짓게 만드는 가장 큰 원인이다.[18]

1960년대에 흑인민권운동이 한참 진행되었을 때에는 흑인 민족주의(black nationalism)가 대두되었다. 흑인 민족주의도 내부에서 온건파와 급진파가 갈리는데 주된 차이는 독립국가의 건설을 추구하는지의 여부이다. 급진파의 예로는 말콤 엑스와 그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흑표당 등의 단체가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세력을 잃었다.[19] 그에 비하여 온건파는 별개 국가 건설까지는 원하지 않았다. 대표적 온건파로는 마틴 루터 킹이 있다. 통념적인 오해와는 다르게, 마틴 루터 킹도 시민적 민족주의(civic nationalism) 하에서 인종에 무차별적인(color-blind) 민족주의를 주장한 것이 아니다. black identity의 존재를 인정한 상태에서 미국이라는 체제 하에서 어울려 살자는 것에 가깝다. 즉, color-awareness에 가까운 주장이다. 이런 흑인 민족주의 온건파의 사례를 통해서도, 영미권의 nationalism도 반드시 국가 중심의 시민적 민족주의(civic nationalism)와 일치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중남미는 과거 제국주의나 미국에 대한 반감으로 인한 nationalism이 대두되었기 때문에 중남미의 민족주의는 좌익 내셔널리즘의 성격을 강하게 띤다.[20] 중남미 국가들 자체가 다인종 국가들이기 때문에 한국, 일본과 달리 서구권에서는 극우로 간주되는 ethnic nationalism에 기반하지는 않는다.[21]

4.1.3. 동아시아

동아시아의 경우 인문지리학적으로 고립된 위치에 있고 인구의 유입과 유출이 적어 혈통, 역사, 언어를 중심으로 하는 내셔널리즘을 형성하였다. 때문에 한국일본 모두 단일민족국가 관념을 유지하는 편이다.[22]

중국의 경우 신해혁명으로 청이 무너진 후 중화민국 시기에 한족, 만주족, 몽골족, 회족, 티베트족이 국가 내에 조화롭게 공존한다는 오족공화(五族共和) 개념을 내세웠고 이 개념이 확장되어 중화인민공화국 시기에는 한족을 포함한 56개 민족을 포괄하는 중화민족 슬로건을 내세웠다. 물론 한족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긴 하지만 헌법상으로는 한족 중심의 민족주의를 반대한다.

민족주의적인 입장에서 자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 정착하여 귀화한 디아스포라들이 귀국해서 국적을 취득 혹은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놓거나, 귀화 절차를 다른 외국인보다 쉽게 해주는 나라들도 왕왕 있다. 대표적으로 한국, 중국, 대만, 이탈리아, 알바니아. 특히 중국은 홍콩마카오를 반환받을 때 해당 지역에 거주하던 중국계 주민들에게 일괄적으로 중국 국적을 부여하였다. 물론 호불호와는 별개지만 또한 중국이나 대만은 일반적인 외국인에 대한 귀화제도가 없지만, 중국에서 나가 사는 화교들에 대해서는 국적회복 방식으로 귀화가 가능하도록 되어있다. 대만의 경우 할아버지 대에 청나라나 중화민국 국적자가 있으면 국적회복의 방식으로 대만 국적을 준다.

4.2. 대한민국

재외 한국인들을 보더라도 한민족의 한국에 대한 내셔널리즘이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개 일반적으로는 다른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은 그 나라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살아가지만, 유독 한인들은 예외가 많다. 러시아, 쿠바 등 지난날 국외로 이주한 수많은 재외 한국인들이 2대, 3대를 거치며 한국어한글도 제대로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자신들이 한국인임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를 지키려고 노력한다. 물론 이것도 지역마다 차이가 있어서, 미국과 같이 발달한 국가에서 그것도 도시 지역에서 태어나 자란 한국인 2세 이상들은 앞서 말한 러시아, 쿠바 등의 동포들에 비해 혈통적 정체성을 중시하지 않는 편이다. 실제로 여러 매체에서 소개되는,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대를 이어서도 유지해 나가려는 사람들은 대부분 생활 환경이 도시적 삶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재외 동포들의 강한 민족 의식은 단순히 한국인들이 전통적으로 민족 의식이 강한 게 원인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생활 방식에 따른 것이라고 보는 게 적합할 수도 있다.

4.2.1. 조선 말 이전

일각에서는 한국의 민족으로서의 동질감이 현대에 와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으나 실제론 그렇지 않다. 가령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면서 삼한일통이라는 표현을 쓴 것, 고려가 국호를 고구려에서 그대로 가져온 점[23], 조선이 국호를 단군이 세운 조선에서 그대로 가져온 점만 생각해봐도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민족"이라는 단어적 표현이 근대에 생긴 것과는 별개로 삼국에서 고려, 조선, 현대로 이어지는 정체성과 동질감은 현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최소 천년 이상 이어져온 것이다. 또한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아족류我族類라는 민족의 한국적 원개념에 해당하는 단어가 수십회 이상 등장한다. 하버드 대학교의 오드 아르네 베스타(Odd Arne Westad) 교수도 한국에서 '하나의 nation'이라는 개념은 현대 nation의 개념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굉장히 오래되었으며 중국과도 매우 다르고 일본에서 발견되는 것보다도 훨씬 일찍 시작되었다고 분석했다.

4.2.2. 조선 말 ~ 2000년대

조선 말과 일제강점기 시절 외세에 의한 큰 흔들림으로 저항적 민족주의가 대두되면서 조선 사람은 하나의 동포라는 논리가 어렵지 않게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실제로 조선 말기, 대한제국 시절에도 외국에 대해 격렬한 배타성을 보이기도 했으며, 청나라, 일본, 서양 모두에게 배타성을 보이기도 했다. 또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저항적 민족주의 경향은 더 강해져 일본 및 친일파에 대한 반감이 커졌으며, 타국 의존성을 줄이고 독자노선을 고수하고자 하는 경향이 강해져 3.1 운동 같은 저항운동을 하기도 했다. 한국의 민족주의자들은 기본적으로 '외세'를 '궁극적으로는 신뢰할 수 없는' 세력이라고 간주하는 경향이 강하다.[24][25]

이런 흐름은 광복 이후 1948년 정부 수립 이후에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1940년대에도 구체적 사안에 대해서는 충돌했을지 몰라도 내셔널리즘 성향만큼은 이승만, 김구, 김규식 같은 우익과 여운형 같은 좌익 구분없이 모두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었다. 해방 이후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진영과 무관하게 내셔널리즘 성향 자체는 계속 이어졌다. 한국이 겪었던 근현대사적 경험과 열강에 둘러쌓인 입지를 생각해보면 한국 사회가 이런 성향을 보이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도 아니다. 이 때문인지 여전히 한국에서는 국가와 민족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많이 남아있고 교육계나 사학계, 정치계에서도 내셔널리즘이 크게 두드러진다. 위인전만 펴봐도 민족 얘기가 안 나오는 한국 위인은 손에 꼽을 정도다.

다만 내셔널리즘 성향 자체는 쭉 이어졌더라도 그 세부적인 성격은 시기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다. 예를들어 이승만 정부 시기인 1950년대에는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지 얼마 안되었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반감에다가 한국전쟁까지 일어나면서 중국이나 소련 같은 공산주의 국가들에 대한 반감까지 더해지면서 매우 강한 내셔널리즘 성향이 있었으나 미국에 대해서는 한국인들이 큰 호감을 가졌다. 미국이 한국전쟁에 참전했을 뿐만 아니라 전후 미국의 식량 원조 등이 당시 굶주림에 허덕이던 한국 대중들에게 매우 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계속 이어지던 미국에 대한 호의적인 기류는 운동권들이 득세하는 1980년대에 들어서 크게 변했으며 반미가 성장하게 된다. 이런 운동권 사람들 중 NL 계열과, 1990년대 통신 세대를 기점으로 성장한 진보 세력의 좌익 내셔널리즘은 참여정부 시기에 제대로 힘을 얻었고, 반미주의는 2000년대 초중반에 정점을 찍는다. 2000년대에는 미국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아폴로 안톤 오노 사건과 미군 장갑차에 여중생 2명이 깔려 죽은 사건에 대한 반감, 광우병 사태, 위안부 문제의 대두가 이루어졌고, 이는 못 믿을 외세인 미국/일본에 대한 반감과, 일부는 '미워도 우리 민족'인 북한에 대한 호의감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4.2.3. 2010년대 ~ 2020년대

그 전까지는 학술 주제로는 다뤄지더라도 대중들 사이에서는 아무도 관심 안 가지던 건국절 논란이나 '건국' 또는 '정부수립'과 같은 단어들이 2000년대 후반 및 2010년대 들어 뉴라이트의 등장으로 큰 분쟁의 중심이 되었다.

2010년대 후반과 2020년대에 들어, 1990~2000년대 출생자인 10대~20대 사이에선 부모 세대와 비교하여 내셔널리즘이 많이 약해진 모습을 보인다. 가장 큰 이유는 같은 민족이라면서 행패를 부리는 북한의 모습 및 특히 1970년대 출생자들이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간 광우병/미군 장갑차 여중생 사건 등에 대한 반미정서에 대한 반감 및 위안부 문제 등의 반일정서에 대한 반감이 있으며, '나이키 신고 반미' 혹은 '마일드 세븐 피면서 반일' 등의 윗 세대의 이중성도 반감에 한몫 했다. 이는 헬조선론과 함께 더욱 심화되었고 특히 젊은 세대들에서는 내셔널리즘이 많이 없어졌다는 관측이 있다. 다만, 정작 이 헬조선이라는 용어는 일본 민족주의를 추종하는 혐한 일뽕 커뮤니티인 역갤에서 만들어 퍼뜨린 용어라는 아이러니가 있다.[26]

그러나 과거 운동권 세대가 주로 미국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는 내셔널리즘이었다면 지금의 젊은 세대는 중국에 대한 반감을 표출하는 내셔널리즘 성향을 보이는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과거 세대와 그 성격이 조금 달라졌을 뿐 강한 내셔널리즘 성향을 가지는 것 자체에는 변함이 없다고도 볼 수 있다. 특히나 중국이 본격적으로 팽창주의적 행보를 하면서 한국에 대한 문화침탈역사침탈에 나섬에 따라 10~20대들은 강한 대(對)중 민족주의적 경향을 띄게 되었다. 강원도 차이나타운 건설과 국적법 개정에 대한 강한 반발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방향성만 다를 뿐 과거 서구 열강이나 현대 강대국들의 '패권적 민족주의'와는 다른 '저항적 민족주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주변 강대국들이 한국을 챙겨주기는 커녕 자기들이 이용해먹으려고 해온 부분이 분명 있기 때문.

한편으로 현재 한국에서 그나마 토론되고 있는 것은 '내셔널리즘'이지, 그 기반이 되는 '민족'에 대해서는 별로 논의되지 못해, 그 스펙트럼이 매우 넓어, 이에 대한 합의 없이는 민족 담론에 대한 논의에 해를 끼친다. 예컨데, 과거에는 고구려 등의 북방계와 신라 등의 남방계의 서로 다른 씨족이 섞여왔으며,[27]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고려시대를 거치며 지금의 공동의식[28]이 완성된 것이다. 즉, 옛날에는 서로 남남이었던 사람이 하나의 민족이 된 것인데, 그렇다면 왜 현재는 불가능한지에 의문을 품고 국제주의(internationalism[29])나 세계주의[30]에 투신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민족 내에서도 지역감정으로 인해 분열해 새로이 배타적 집단을 이루는 경우도 있지만, 정작 논쟁의 중심이 되는 민족의 기준에 대해서 혈통인지, 문화인지, 종교인지, 언어인지에 대해 제각각의 기준을 세우고 논쟁에 임하기에, 서로 간극을 좁히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31]

예로 한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은 같은 '혈통'이므로 같은 민족이자 동포로 맞아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정서적인 '문화'가 워낙 이질적이어서 한국에 돈 벌러 온 한국말 좀 쓰는 중국인으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다. 그들의 소속감은 제각각이기에, 이 경우에는 두 주장 모두 내셔널리즘에 의해 나온 것이고, 민족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한 견해의 차이로 나온 다른 주장이라 할 수 있다. 그 외에, 한국에 귀화한 외국인, 외국에 귀화한 한국인 등에 대해, 때로는 이중잣대까지 써가며 그들의 민족 정체성을 규정하려는 시도 등은 비단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내셔널리즘을 인식하는 사회 전체에 많이 존재한다. 민족(ethnic group, nation 두 단어 각각)이라는 단어 자체가 몹시 넓은 영역을 일컫는 말이므로 이러한 논쟁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5. 정치적 역학관계

마르크스 이후 세계주의-국제주의를 지향해왔던 좌파 사회주의 세력의 영향[32]으로 민족주의라고 하면 우파들만의 전유물로 여기는 경우가 있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좌우 어느 쪽에서 민족주의를 더 내세우느냐는 나라마다, 역사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좌파가 민족주의를 내세운 사례로는 프랑스 혁명기 자코뱅부터가 민족주의와 국제주의 성향을 모두 띄었으며, 1848년 유럽 중심부를 휩쓴 혁명에서도 빈 체제로 대표되는 구 봉건세력의 질서에 반기를 든 시민들이 공화제와 함께 민족국가 수립을 추구한 것, 마르크스와 대립하던 혁명가 미하일 바쿠닌은 국가를 부정한 집산주의 아나키스트였던 동시에 범슬라브주의 옹호론자였던 것[33] 등이 있다. 우파는 민족주의적이며, 좌파는 반민족주의적이라는 식으로 이념 대립을 확정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좌파 내셔널리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좌익 내셔널리즘 문서를 참고.

대한민국에서는 좌우 모두 내셔널리즘(민족주의)을 공공연하게 거부한 적이 없다. 이 때문에 헌정사에서 민족주의 강세가 좌우 사이에서 여러 번 전복되는 사례를 보이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굳이 21세기 기준으로 정리하자면, 좌파반미, 반일, 민주화 투쟁과 같이하는 민족주의, 우파반중, 반북, 반공과 같이하는 민족주의라고 해석되곤 한다. 다만 본래 우파 민족주의는 반일도 같이 하였다. 또한 대북 문제 관련해서는 한민족이라는 애족심이 교차하여 상당히 복잡한 스탠스를 지녔었다.

2000년대 초반의 과도기를 거쳐 2010년대 중반부터서는 우익 세력이 민족주의에서 멀어져 가고[34], 오히려 좌익 계열에서 민족주의가 더 두드러지는 흐름을 보인다. 특히 NLPDR 등은 명백히 좌익 성향인데 정치적 성향으로 보기에는 극좌로 보일 법한 강경 좌익 민족주의를 내세우기도 한다.[35] 인터넷 진보 세력의 경우 이슬람 계열 난민 문제에 대해서 극렬히 반대하는 성향을 보이기도 한다. 극좌 스탈린주의를 표방해왔던 북한도 우리민족끼리를 내세우면서 극단적인 민족주의 정책을 펴고 있다. 다만 소위 신좌파 계통의 세력의 경우 다문화, 이민, 난민, 인종, 국적, 국경 등의 이슈에서 미국 리버럴에 가까운 반민족주의(안티내셔널리즘)적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한국의 경우를 대충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 일반 대중의 민족주의: 반중, 반일이 가장 대표적인 기치이며, 민족주의 성향을 가진 한국인들 대다수가 가진 성향이다.
  • 좌익 민족주의: 보통 진보주의는 민족주의에 비판적이지만, 한국의 좌파는 민족주의적 성격이 강하다. NL이 대표적이다. 친북, 친중, 친러, 반일, 반미, 반서방 성향으로, 북한의 우리민족끼리 프로파간다에 호응하며, 한국은 주권국가가 아니고, 미제국주의의 식민지로 수탈당하는 나라라고 본다. 정통적 진보주의를 추구하는 경우에는 민족주의에 비판적이다.
  • 우익 민족주의: 우익 인사 중 반중·반러(반공), 반일 성향인 이승만, 김구 등이 우익 민족주의자라고 할 수 있다. 북한에 대해서 같은 민족이라고 보지만, 북한독재정권은 부정하며, 김씨왕조의 독재자로부터 억압받는 인민들을 해방시키는 북진통일을 선호한다. 외부적으로 미국을 지지하지만 일본과 우호적인지는 검증이 필요하다. 한국 우익들도 일본 좌익을 응원하고 반일 종족주의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6. 논쟁

6.1. 학술적 논쟁

한국에선 민주주의의 도입 이후 이 내셔널리즘의 성격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데, 이것이 세계화에 꽤나 방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양의 내셔널리즘 개념을 들여왔고 서양사학계에서 꽤 주목을 받는 탈민족주의 관점에 따르면 내셔널리즘은 조상들로부터 이어받아온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고 근대에 만들어낸 새로운 개념이라 설명하기에[36] 이 개념을 들여와 한국인에 정착시키면 내셔널리즘을 차근차근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특히 근대에 서구의 이념을 수입한 경우인 동아시아 등에서 전통을 배제하는 경우 쉽게 일어난 일이다.

그러나 원래 동아시아에서는 '민족'이라는 단어만 없었을 뿐 사실상 그와 비슷한 개념이 확립되어 있었다. 전근대의 동아시아 문명권은 조공과 책봉이라는 시스템을 기반으로 하는 '중화문명'의 기치 아래 그 중심인 중화와 그 변경인 수많은 조공국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조선이 소중화를 내세우며 명나라 외 나머지 국가들을 죄다 오랑캐 취급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민족'이라는 개념을 학술적으로 설명할 필요도 없고 '민족'이라는 별칭을 써서 분리할 필요성이 없었다. 게다가 민족단위 이동과 지배민족 교체가 잦거나, 지배층과 피지배층 일반민 사이에 혈연적 연관성이 없던 중국이나 유럽과 달리, 한국의 경우 각 왕조가 천 년, 오백 년, 오백 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을 지속한 관계로 신분이니 혈통이니하는 것은 달라도 경계 이쪽은 일단 저편과 구별되는 우리라는 생각이 정착돼 있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 하버드 대학교의 오드 아르네 베스타(Odd Arne Westad) 교수도 한국에서 '하나의 nation'이라는 개념은 현대 nation의 개념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굉장히 오래되었으며 중국과도 매우 다르고 일본에서 발견되는 것보다도 훨씬 일찍 시작되었다고 분석했다.

그러다가 19세기 말, 일본이 개화기를 거치면서 'nation'이라는 단어를 '민족'[37]이라고 번역하면서, 비로소 '민족주의'는 동아시아 고유의 학술적 어휘로 새롭게 태어났다. 그러나 계급제의 모순에 대한 저항으로 출발한 서구 사회의 내셔널리즘과 비교하여 동아시아의 민족주의는 외세 침탈에 대한 방어적 형태로 발현하였기에 발전에 주어진 시간이 매우 짧았으며, 근본적인 정치, 역사, 문화적 배경부터가 크게 달랐기에 사상적인 체계화도 쉽지 않았다. 때문에 근대화 시기의 동아시아 국가들이 내셔널리즘의 관념들을 받아들였다 한들 단번에 서구 국가들에 준하는 수준의 엄청난 결속과 맨파워를 얻는 것은 불가능했으며, 한쪽에서는 인종주의와 팽창주의적 정책으로, 다른 한쪽에서는 내분의 씨앗을 뿌리는 형태로[38] 격동의 반 세기를 소모한 끝에야 어느 정도 긍정적인 결말을 얻을 수 있었다.[39]

동아시아뿐 아니라 세계 각지의 역사에서 각자 나름대로 원시적인 민족 관념이 등장하곤 하지만, 이들은 순수 학문적 영역에서만 비교하더라도 근대 이후 서구에서 출현한 내셔널리즘과는 명확한 차이점이 있었다. 고대의 민족주의는 고작 조세나 도시 간의 이질성 같은 지엽적인 문제만으로 칼을 거꾸로 잡았으며[40], 충성심도 보통 '민족'보다는 국가나 국왕이 그 대상이었다.[41] 이처럼 본래 비슷한 민족 간에도 현실주의적 국익에 따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던 유럽 국가들이, 내셔널리즘의 확산에 따라 가까운 민족들끼리 적대감이 약화됨은 물론 동족의 국가가 이민족에게 침략당하면 지원하고 공감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다. 당장 범게르만주의범슬라브주의 등이 흥했던 20세기 초, 얼마 전 과거까지 서로 전쟁을 벌이던 이웃 국가들끼리 동족이라는 이유로 급속도로 관계가 개선되기도 하고, 본래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거나 심지어 한 국가 안에서 잘 어울려 살던 민족들이 갑작스럽게 잔혹한 학살극을 벌이곤 했던 역사를 보면 잘 알 수 있다.[42]

일본은 세계 2차대전 이후에 이것을 오역이라고 규정하고 '국가주의'로 수정하는 등 민족주의란 단어의 사용을 최대한 지양하는 상황이지만,[43] 대한민국중화인민공화국은 아직 민족이라는 단어를 교과서에서 사용하고 있다. 이는 20세기 동안 한국, 중국 등이 서구 사회를 재해석하여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들여오거나 아예 거부해서라도 자신들의 전통적 정체성을 지켜내고자 했던 반면, 일본의 경우 메이지 유신으로 체제를 싹 갈아엎고 서구식 내셔널리즘 개념을 긍정적인 측면이든 부정적인 측면이든 전면적으로 받아들였던 역사적 차이가 반영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실제로 일본은 뒤틀린 내셔널리즘을 바탕으로 세계대전을 일으키기도 했으며[44], 미국이 일본을 비보통국가로 하고 군국주의를 없애면서 서구식 내셔널리즘(nationalism)으로 변화해간다.

20세기 중후반에 이르러 제국주의가 막을 내리고 세계주의가 시작되면서, 서유럽 국가나 미국에서는 내셔널리즘을 철지난 과거의 유산 취급하며 경계하는 정서가 강하다. 서유럽 국가에서는 양차대전의 상흔을 넘어 유럽연합이라는 새로운 시스템 아래 자신들을 "유럽인"으로 규정하려는 시도들이 있고, 미국에서도 2차대전 이후 인종차별을 뿌리뽑고자 하면서 내셔널리즘이 크게 쇠퇴했다. 반대로 튀르키예(쿠르드족 문제)나 중국(티베트, 위구르 문제) 등 권위주의 중진국들은 자국 내의 분리주의튀르키예 민족, 중화민족 따위 새로운 개념을 창시하여 민족의식을 리셋 해버리는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전통적인 의미의 민족주의는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양길에 접어든 셈이다.

한편 한중일[45]처럼 민족적 특수성이 강하다거나 이스라엘처럼 국가 존속이 위협받을 위기에 처한 경우 내셔널리즘을 통해 민족의 생존과 부흥을 도모하기도 한다. 한국의 민족사학을 대표적으로 예시를 들자면 고조선으로부터 시작되는 왕조 정통성론이나 종족 및 혈통 관념과 조상 숭배 등 역사 속에서 민족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선험적인 관념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었고, 중국 역시 겉으로는 부정하지만 실질적으로는 한족 민족주의가 막강하며 소수민족 융합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일본 역시 (이제 와서는 어느정도 문화적으로 동화되어 안정되었지만) 비교적 최근까지 아이누, 류큐인등을 차별하고 야마토 민족을 우대해 온 역사가 있으며, 재일 한국인재일 중국인 등에 대한 차별은 한일관계, 중일관계와 맞물려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사회 이슈이다.

다만 돌이켜보면 근대 이전의 유럽 국가들 역시 동아시아 국가들와 유사한 '자국 의식'을 갖고 있었으며, 그를 바탕으로 내셔널리즘을 창출한 것이다.[46] 동아시아 국가들은 타국과의 엄격한 구분을 주장하며 독자적인 길을 걷기보다는 동아시아의 세계 체제 내에서 한자, 불교, 유교 등의 보편 문화를 추구하는 성향이 강했는데, 이는 내셔널리즘 의한 분화라기보다는 이미 고대서부터 달랐기 때문에 내셔널리즘이 아니어도 다르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지 않은 학자들은 유럽과 동아시아의 역사적 배경이 크게 다르므로, 서구의 역사적 경험에 입각한 내셔널리즘 이론으로 동아시아 등의 민족 관념을 설명하려는 시도가 무리라고 주장한다. 요는 (설사 그것이 근대적 내셔널리즘의 형태는 아니었을지라도) 이미 민족에 준하는 어떤 관념이 있어서 그것이 근대의 변혁기를 거쳐 현대의 동아시아식 내셔널리즘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서양에서 말하는 'nation'과 동양에서 말하는 민족은 서로 다르다는 것인데, 이걸 제대로 설명하려면 유대인 특유의 속성을 반영한 시오니즘처럼 기존의 근대 내셔널리즘 이론을 넘어서서 동아시아 민족의 특수한 발전양상을 규명할 수 있는 새로운 이론이 개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편 혈통적인 차원의 공통점으로 민족주의에 접근하는 이론은 특히 많이 두들겨 맞았다. 이스터 섬과 같은 극단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이주, 교역같은 상호 간의 인적 교류 행위를 전제로 하여 형성되고 변화해 왔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치 독일의 아리아인 순혈주의나 반대로 환빠들의 '사실 XX족은 한민족'과 같은 주장은 지양해야 할 사상 중 하나이다. 굳이 그러한 의미가 아니더라도, 1775년 당시에는 영국과 크게 다른 혈통적 집단이라고 볼 수 없는 미국이 독립의지를 품고 영국과 전쟁한 사건이 '내셔널리즘(nationalism)'의 주요 사례로 꼽히는 것처럼, 혈통상의 민족조차도 꼭 한 개의 민족국가만을 만들어 모두 거기에 소속되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백퍼센트 단일민족국가란 인류 역사에서 단 한번도 실재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국가간의 모든 교류가 차단되지 않는 이상에서야 결코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다.

아무튼 내셔널리즘은 근대 담론과 함께 한국 역사학계에서 논의가 많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니 궁금한 사람은 나무위키에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말고 직접 책과 논문같은 것들을 읽고 다양한 의견을 찾아보자. 일단 유럽 근현대사, 제국주의를 중심으로 한 근대 세계사, 한국사 전반 등을 공부해야 하는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다.

6.2. 내셔널리즘의 찬반

6.2.1. 옹호론 (‘의의가 있다’ 측)

"민족주의란 한 국가가 발전하고 한 민족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보물이다."
쑨원
"내 몸이 남의 몸이 될 수 없음과 마찬가지로 이 민족이 저 민족이 될 수 없으며, 피와 역사를 같이하는 민족보다 완전한 영원함은 없다."
김구
"민족이란 인간의 육신을 구성하는 장기와도 같다. 민족이 고통에 처했을 때는 마치 우리들 스스로가 고통에 처한 것처럼 노력해야 한다."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
[47]

어느 문화권이든, 어느 국가이건 간에 전통적으로 민족주의는 특정 집단에 동질성을 부여해 발전의 동력을 이끌어내는 강력한 무기로서 찬양되어 왔다. 이는 전통적으로 민족주의 정서가 강력했던 동아시아의 한중일은 물론, 아브라함계 종교에서 나타나는 선민사상이나 근세 이후 유럽이 제국주의를 바탕으로 급성장하는 원동력이 되었으며, 역설적으로 제국주의의 피해를 입던 후발 주자들이 독립적인 국가를 형성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했다. 선민사상이니 제국주의니 하는 단어만으로는 부정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중국의 한족거란족, 여진족, 몽골족, 만주족에게 끊임없이 중원 본토를 빼앗기면서도 오늘날까지 끈질기게 살아남아 자신들의 민족국가를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민족주의가 있었고, 유대인들이 홀로코스트라는 어두운 시기를 이겨내고 자신들의 국가 이스라엘을 세울 수 있었던 건 우리는 특별하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게 우리가 우월하니 타인에게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차별적 사상이 아니라,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니 우리는 이 고난을 이겨낼 수 있다는 단결력을 불러일으킨 쪽이면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고 할 만 하다.

더불어 유럽이든 아시아든 중세 봉건제 사회에서 근대 국가로 넘어가는 과정에는 민족의식이 크게 작용했다. 근대 유럽인들이 자신들을 봉건 영주같은 개념이 아니라 공동의 정체성을 가진 특정 민족으로 규정했기 때문에 단결하여 성장할 수 있었고, 위에서 언급한 쑨원도 중국이 제국주의 열강들에게 물어뜯기는 과정에서 중국이 살아남으려면 중국인의 민족의식에 호소해야 한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삼민주의 역시 그러한 배경에서 등장한 사상이다. 오늘날의 대표적인 강대국인 러시아중국 모두 실제 단일민족 국가는 아님에도 성장기나 국난시에 러시아인 민족정서 혹은 중화민족 같은 민족주의 정서에 호소했던 바 있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생 독립국들 중 급성장을 이루어낸 케이스의 대다수는 단일민족국가로 민족 중흥의 가치를 강조했던 경우가 많다.

한국의 경우에도 구한말 조선의 개화파들부터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들, 그리고 개발독재기 군사정권과 민주화 세력 모두 한민족을 강조했다. 물론 이러한 민족주의가 민족을 위해서라는 미명 아래 불합리한 개인의 희생들을 묻는 역효과를 낳기는 하였으나, 더 큰 역사적인 틀에서 본다면 한국인들의 단결을 이끌어내 독립은 물론 오늘날의 발전된 선진 대한민국을 만들어낸 원동력이 되었음을 결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내셔널리즘은 내부 구성원들 사이의 동질성을 강조함으로써 결속력을 도모하고 위기 상황에서 하나의 국가 혹은 민족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끌어내는 원동력을 제공한다. 이러한 위기대 처능력은 바로 내셔널리즘이 처음으로 태동한 프랑스 혁명 직후의 프랑스에서부터 입증된다. 혁명기의 혼란과 연이은 외침을 겪으며 내셔널리즘의 의식이 고취된 당대의 프랑스인들은 프랑스를 '우리들의 국가'로, 프랑스인들은 '우리네 동포'로 인식하였으며, 이는 자국과 자민족을 여전히 '국왕의 국가'이자 '국왕의 신민' 정도로 여기던 주변국들과 명백히 대비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국가를 향한 애국심과 거기에서 비롯된 전쟁수행에 대한 협력, 반-자발적 징병제 등으로 나타나 나폴레옹 제국프랑스 대육군(La Grand Armée)이 대영제국합스부르크 제국(후의 오스트리아 제국), 프로이센 왕국, 러시아 제국 등 당대의 열강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패권을 과시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내셔널리즘으로서 통합된 국가는 그렇지 않은 국가보다 결속력이 강하다. 내셔널리즘은 공동체 의식만 공유하고 있으면 대단히 넓은 범위의 인간들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어버릴 수 있다. 내셔널리즘의 위력으로 인해 혈연에 기초한 씨족이나 부족, 귀족이나 노예와 같은 계급 제도, 종교, 지연 등의 다른 사회적 연결 고리는 분명 상당히 약화하고, 적어도 균질적인 사회가 출현하게 된다. 이렇게 "언어, 종교, 문화, 계층, 거주지가 달라도 우리는 같은 민족(nation)이 아닌가?"라는 의식 덕에 '내부 갈등'은 줄어든다. 이 때문에 내셔널리즘 국가와 내셔널리즘이 없는 국가[48]를 비교하면, 후자는 거의 "나라 꼴도 못 갖춘 것"처럼 보일 정도이다. 그러므로 후발 국가의 지식인들에게는 "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다 같이 힘을 합쳐서 나라를 건설하자."는 내셔널리즘이 그럴 듯하게 보이게 된다. 내셔널리즘이 완성되지 않은 나라에서는 '국가 전체'보다는 씨족, 부족 같은 혈연 집단의 이익이나 왕족이나 귀족 같은 특정 계급의 이익이 '매우 당연하게' 우선시되고 그것이 정당화된다. 19세기 지식인들은 그 대안으로서 '내셔널리즘'을 제시했던 것이다.

위기 상황에서 내셔널리즘의 위력을 증명하는 또 다른 대표적인 예시는 바로 제2차 세계 대전 동부전선의 교전국인 소비에트 연방이다. 공산주의는 본질적으로 내셔널리즘이나 애국주의적 사고보다는 국경을 초월한 계급 간의 연대를 강조해왔으며[49], 실제로 소련 초기 러시아의 수많은 역사적 위인들이 공산주의 이념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격하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독소전쟁 초기의 암울한 전황 속에서 스탈린이 선택했던 방법은 러시아의 독립과 근대화, 조국전쟁 등 역사적인 승리의 순간들에 자리하였던 러시아의 영웅들을 부각하고 러시아 정교회를 재허용하는 등 내셔널리즘 사고에 기초한 것이었다. 조국이 존망의 위기에 처한 극단적인 상황에서 러시아인들의 저항정신을 고취해 끝내 나치를 파멸로 몰고 간 원동력은 결국 허울뿐인 공산주의에 대한 신념보다는 (러시아) 내셔널리즘인 셈이다.

또한 내셔널리즘은 약소국이 외세의 압제에 맞설 기회를 제공하는 유용한 수단이기도 하다. 이러한 저항적 내셔널리즘(혹은 방어적/해방적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의 침탈을 경험한 피식민국가들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아왔다.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들에게 민족주의(내셔널리즘)[50]는, 반대방향[51]에 있는 공산주의[52]와 함께 항일 저항운동의 핵심 키워드였다. 일제의 한국어 말살 교육이나 창씨개명 등에 맞서 한민족의 얼을 지키자는 운동이 벌어진 것 또한 같은 맥락이었고.

마지막으로 내셔널리즘은 후발 주자가 (열강 구도가 굳어졌던) 근대 이후 국제사회의 판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최후의 카드(Game Changer)였다. 오랫동안 수십, 수백 개의 영방국가로 쪼개져 있던 독일이나 이탈리아가 통일을 이루고 유럽사회의 열강 클럽에 가입할 수 있었던 계기는 바로 유럽 사회를 강타한 내셔널리즘의 확산이었는데, 프로이센과 독일 제국이 보수적·전통적 가치를 중시했던 것과는 별개로, '독일 민족국가'는 귀족계급보다는 소상공인을 비롯한 독일 민중들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얻었다. 독일 민중의 내셔널리즘 신화는 수백 년간 주위 열강들에 의해 분열된 채 변방으로 취급받던 국가가 불과 한 세기 만에 유럽에서의 지위를 확고히 하고, 심지어 양차대전에서 전 세계를 상대로 깽판을 벌이고 난 지금 이 순간까지도 유럽의 지도 국가로 자리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는 동북아시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컨대 대한민국의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 성장의 저변에는 "지금 내가 조금 희생하더라도 후손들을 위해 더 나은 나라를 물려주겠다"는 국민적인 합의가 있었고, 이는 국가를 개인보다 우선하고 국가의 성공을 개인의 성공과 연결짓는 국가주의·민족주의적 사고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었다. 패전 후 일본 역시 야마토 민족에 성실·근면과 같은 인위적인 가치들을 부여하며 자부심을 고취시키고 경제적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았으며, 오늘날 중화인민공화국도 결국은 중화민족이라는 만들어진 민족에 대한 민족주의적 자긍심이 큰 영향을 미쳤다. 선진국에서 유학한 학자나 지식인, 엘리트들이 이국에서의 안락한 생활을 포기하고 1970~80년대 한국이나 오늘날 중국같은 독재 체제 하의 후진국으로 귀환하여 국가발전에 기여하던 것 역시 "내 민족" "내 국가"라는 내셔널리스트로서의 애국심 없이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오늘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대부분의 국가들은 내셔널리즘적인 성향을 어느 정도 갖고 있으며, 역사적으로 자국민들에게 같은 민족으로서의 정체성을 심어주지도 단결을 이끌어내지도 못했던 국가들은 대부분 혼란 끝에 쪼개지거나 부족·지역 이기주의로 제대로 된 비전을 추구하지도 못하는 후진국[53]에 머무르는 실정이다. 반대로 오늘날 강대국으로 꼽히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영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모두 내셔널리즘 없이는 현재의 위치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54]

6.2.2. 비판론 (‘한계가 역력하다’ 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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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리즘은 유아퇴행적 정신병이다. 이는 인류가 앓는 홍역이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55]
나치 독일의 선전부 장관 파울 요제프 괴벨스의 총력전 연설[56]
그러나 오늘의 인간 사회를 더욱 공평하게 하고 인류의 상호 유대를 더욱 완전하게, 더욱 튼튼하게 하려는 데에 또 하나의 장애가 있다. 민족주의와[57] 인종 차별주의가 그것이다. 최근에 비로소 정치적으로 독립한 민족들이 방금 얻은 민족의 통일이 아직 견고하지 못하므로 통일을 보호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 것도, 옛 문화를 지닌 민족들이 조상들에게서 물려받은 유산을 자랑하는 것도 극히 자연스럽기는 하나, 정당한 이 감정도 전인류를 감싸주는 보편적 사랑으로 더욱 완전해져야 할 것이다. 민족주의는 민족들을 고립시키므로 민족의 참된 이익을 잃게 한다. 특히 국가 경제가 매우 빈약해서, 발전 계획을 실천하려거나 상업적, 문화적 교류를 증진시키며 강화하려면 서로의 모든 노력과 지식과 자금을 집결시켜야 할 국가들에 있어서는 민족주의가 말할 수 없이 해로운 것이다.[58]
교황 성 바오로 6세 회칙 「민족들의 발전(POPULORUM PROGRESSIO), 1967. 3. 26.
민족주의는 본질적으로 온갖 종류의 극단주의로 이어지기 쉬운 사상이다. 역사적으로도 민족주의는 전체주의, 쇼비니즘, 전쟁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이는 근대사 전반이 입증하며, 가장 과격한 사례는 20세기의 2차대전이었다. 21세기에도 무수한 나라들이 민족주의를 동원해 이웃 국가와 분쟁을 일으킨다. 이렇듯 권력층이 민족주의로 자국민들을 세뇌한 경우가 많지만, 반대로 대중이 스스로 민족주의의 광기에 빠진 사례도 많다. 예컨데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며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가 대표적이다. 그래서 현대 서구권에서는 내셔널리스트란 단어 자체가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는 20세기 전반부 서구권의 역사가 민족주의로 인한 과오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존 민족주의의 대안으로 21세기에는 국경을 초월한 열린 민족주의가 제시된다. 이러한 담론들은 주로 서구권에서 활발하다. 미국에서는 민족과 인종을 초월한 국민주의가, 유럽에서는 친 EU 성향의 유로내셔널리즘이, 아랍에서는 부족을 초월한 아랍 민족주의가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반민족주의 진영에서는 열린 민족주의나 이타적 민족주의의 개념에도 비판적이다. 이런 방식의 민족주의도 근본적으로 "우리 민족 ≠ 다른 민족" 이라는 사고방식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게 민족에 따라 집단을 나누는 사고방식을 버리지 않는 한, 민족으로 구분된 집단 간에 배타성과 폭력성으로 귀결된다는 것이 반민족주의자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앞서 언급한 아랍 민족주의는 이슬람 극단주의와, 유로 내셔널리즘은 포퓰리즘적 극우주의와 결합하며 부작용을 드러내고 있다. 보다 회의적인 반민족주의자들은, '이타적이거나 열려있는' 민족주의는 존재할 수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열린 민족주의나 이타적 민족주의는 모두 민족주의 진영의 기만적인 자기포장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반민족주의나 열린 민족주의 담론도 서구권 외의 지역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그 외의 지역에서는 여전히 민족주의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강하다. 중동, 동남아, 동북아를 포괄한 아시아 대륙이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대표적인 지역이다. 해당 지역에서는 아예 극우적이거나 파시스트적인 주장들도 폭넓은 지지를 받는 경우가 흔하다. 물론, 서구권에도 민족주의자들은 있지만, 그에 못지 않게 민족주의에 대한 경각심도 높다. 그러나 아시아에서는 민족주의가 내포한 문제점들을 아예 인지조차 못하고 맹목적으로 민족주의를 찬양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한중일로 대표되는 동북아 지역에서는 역사 해석에 있어서 객관적 관점보다는 민족주의적 관점이 우선시되고, '투철한 민족주의자'라는 말은 부정적인 어감보다는 긍정적인 뉘앙스가 강하다.

동북아는 21세기 들어 민족주의와 그로 인한 정치적 갈등이 극심한 대표적인 지역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해당 지역의 경제력과 국제적 영향력이 21세기 들어 급격히 팽창했다. 이는 해당 지역의 나라들에 그동안 억눌려있던 민족주의적 열망을 표출하고 영향력을 과시할 기회를 주었다. 다음, 아시아에서는 과거사 문제와 패권 경쟁이 현재 진행 중이다. 이런 민족 및 국가 간 갈등 속에서 각국 수뇌부는 국민들의 결집을 위한 도구로 민족주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중국은 동북아 삼국 중에서 중화민족주의적 패권주의적 성향이 심한 곳이고, 일본도 일본제국은 물론 일본의 우경화로 도로 민족주의가 강해지는 추세이다. 한국도 국력의 한계로 인해 패권주의를 추구하지만 않았을 뿐, 좌우진영 모두 순혈주의적 민족주의를 줄기차게 강조해왔다.

중동 및 서아시아 지역에서도 종교 극단주의 못지 않게 극단적 민족주의의 영향력이 강하다. 이는 세속주의 진영은 이슬람 극단주의에 맞서 국민들을 결집시킬 도구로 민족주의를 앞세우고, 부패한 정부 역시 국민들의 불만을 억누를 도구로 민족주의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해당 지역에서는 이슬람교 말고는 국민들을 결집시킬 도구가 민족주의 밖에 없기도 하다. 이는 해당 지역이 경제적으로 매우 낙후된데다 사회적 억압이 만연해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민족주의자들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라 할 수 있는 인권, 평등, 자유 등의 가치조차 서구적 색채로 규정지어 배척한다. 왕실을 비롯한 지배층도 자신들의 부패를 국민들이 인식하지 못하도록 민족주의를 열심히 써먹고 있다.

북한의 민족주의는 민족주의의 부정적인 측면이 극대화된 형태이다. 이는 통치 세력이 체제의 부당함을 숨기기 위한 수단으로 민족주의적 세뇌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북한은 민족주의의 '이기성 및 폐쇄성'을 극대화시키고, '자기연민'을 충족시키는데 동원하며, 피해자 코스프레뿐만 아니라 인종주의순혈주의까지 지녔다. 이러한 극단적인 민족주의는 남한에 대해서 북한의 '정통성'을 강조하는데 쓰인다. 국가의 정통성 고취를 위해 신화 속 인물인 단군의 가짜 단군릉을 만들어서 역사왜곡을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외국에 대한 적개심 배양을 위해서도 역사왜곡을 서슴지 않는다. 신천군 사건을 미군에 의한 신천대학살이라고 왜곡하여 미국에 대한 증오심을 고취시키거나, 납북 일본인 문제를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정당한 복수로 주장하고, 조총련재일 조선인교포들을 '째뽀'라고 부르면서 경멸하고 차별한다. 또한 한국사회에 대한 우리민족끼리 프로파간다를 펼친다.

또한, 학문적 연구에서도 이 민족주의로 인해 객관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한국의 경우, 고대사 및 고대 언어 연구와 관련하여 한민족 또는 한민족이라 생각되는 것들에 대해 모두 '한국계' 및 '한국어족(언어적 계통에 관한 것)'이라는 꼬리표를 달곤 한다. 대표적으로 가야의 언어와 관련해서도 한반도 내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주변 언어들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를 하여 언어적 분포 양상을 살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와 같은 과정을 생략하고 턱없이 부족한 자료만 갖고서 '가야는 수백 년 동안 삼국과 함께하였으니 이들의 언어는 고대 한국어 계통으로 보아야 한다'라는 당위성을 내비치기도 한다.[59] 이렇게 따지면 한국은 1000년이 넘도록 중국의 영향 하에 있었으니 중화민족의 국가로 보아도 논리상 할 말이 없어지며, 또한 이는 현재도 중국 내에서 중국티베트어족이 아닌 언어들이 소수 민족의 언어로 쓰이는 등 (한국에서 이야기하는) 민족적 차원에서 논의할 사항을 벗어나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객관적으로 수집한 자료가 적을 때에는 이와 같은 귀속에 대해 '모른다'라고 답해야 함에도 민족주의적 감정으로 인해 팔이 안으로 굽는 현상이 21세기인 오늘날까지도 심심찮게 보인다. 이는 비단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 모두 나타나는 문제점이다. 결국 한국, 넓게는 동아시아가 자신들의 고대사적 분야들의 연구와 관련하여 세계적으로 지평을 열기 위해서는 민족주의부터 최소한 학문적 차원에서만큼은 타파할 필요가 있다.

유럽의 민족주의를 심화시킨 프랑스 대혁명주요 인물아예 원래 조국을 떠나고 새로운 조국의 국부가 된 사례도 있다. 이미 여기서부터 모순된 사례를 보여준다.

내셔널리즘은 태생적으로 집단의 공통점을 추구하기에, 하나의 집단을 구성하는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천편일률적인 몇 가지 기준으로 정의하려는 경향성을 나타내며, 이는 자연스럽게 그러한 기준, 즉 민족성에서 벗어나는 모든 가치를 억압하는 방향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크다.

그뿐만 아니라 과도한 내셔널리즘에 기반한 사고방식은 국가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을 요구하는 국수주의전체주의로 변질할 위험성이 있다. 물론 이처럼 극단적인 이데올로기가 주변 국가들은 물론이고 결과적으로 자국민 혹은 자민족에도 불행을 가져온다는 사실은 이미 지난 한 세기 동안 전 세계가 수많은 희생을 통해 체득한 바 있다.반미-반일-반제국주의 논리를 버무려서 인민 세뇌에 써먹고 있는 중국도 가까운 예이다.

또한 다민족 국가에서는 단결이 아닌 골칫거리 중의 하나이다. 조율을 제대로 못 할 경우 내전으로 치닫게 되어 국가 막장 테크로 가는 경우도 있고, 제노사이드 혹은 그에 준하는 대규모 학살이 벌어져 그 국가에 대한 국제 여론이 매우 나빠질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후투족과 투치족이 내전을 벌여 수십 만명이 죽어 나간 르완다 내전, 다수민족 버마인과 로힝야, 카친, 카렌, 샨족등 소수민족과의 충돌과 대립이 이어지고 있는 미얀마, 7개[60]의 국가로 분열한 유고슬라비아 등이 있다. 현대의 중국 또한 자국 내의 민족 분규를 해결하는 데 '55개의 민족[61]이 화합하여 만들어내는 중화민족'의 개념을 창작하여 티베트, 위구르 문제 등을 강압적으로 해결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내셔널리즘이 강성해질수록 그 민족의 근간이 되는 역사를 '민족의 역사'라는 하나의 줄기로 묶어내려는 경향이 강해지는데, 문제는 현대 민족국가들 대다수가 근대에 형성된 것이므로 근대 국가와 민족 관념을 자꾸 고대사로 확장, 투영시킴으로써 그 역사에 대한 소유권과 정당성을 찾으려 한다는 점이다. 민족을 초역사적 실체로 보지 않는 이상 이런 태도는 역사학 연구에서 지양해야 할 태도이며, 그 저변에는 대개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다.

중국이 그 대표주자로서, 애초에 한족이란 개념부터가 한이란 이름에서 보이듯 서로 다른 나라나 다름없었던 춘추전국시대를 끝장낸 진나라의 강력한 통일정책이 한나라로 이어지면서 생긴 민족개념이다. 그 외 동북공정 문제와 고구려, 발해 역사가 한국 역사냐, 중국 역사냐[62] 따위의 소위 역사 분쟁은 이미 한국 사회에도 익히 알려진 바 있다. 물론 한국 사학계도 이에 대해 ', 에 대한 고구려의 승리는 민족의 방파제 역할을 한 것' 등 내셔널리즘이 도구로써 활발히 사용하고 있다. 이것도 민족을 정의하는 관점에 따라 "저런 놈들과 같은 수준에서 진흙탕 싸움을 하면 안 된다"[63]라는 주장과 "그렇다고 한민족의 역사를 강탈하려는 시도를 좌시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다. 한때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자본주의 맹아론식민지 근대화론을 둘러싼 담론 또한 한국사학계에서 내셔널리즘과 근대가 갖는 위상이 어땠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자세한 내용은 각 문서 참고.

또한 옹호론에서는 통일 전 독일을 "수백 년간 주위 열강들에 의해 분열된 채 변방으로 취급받던" 지역이라 저평가하고 있지만, 정치적 강대국으로서의 통일 독일이 19세기에 태어났을지 몰라도 그 이전의 독일이 질(質)적으로 낙후된 지역은 아니었다. 오히려 독일의 식자층은 독일의 힘이 다양성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그러니까 독일이라는 개념은 교양계층의 머리 속에서 생겨난 것으로, 직접적인 정치적 연관성이 없는 순수한 문화국가의 의미를 띠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영국이나 프랑스의 경우처럼 왕들이나 전쟁영웅들이 아니라 수많은 시인과 사상가들이 국가의 구심점을 형성했던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상수시'(Sanssouci)궁의 철학자'로 불리워진 프리드리히 대왕은 하나의 예외였다. 영국인들에게는 왕과 런던이, 프랑스인들에게는 나폴레옹과 파리가 국가의 중심이었다면 독일인들의 경우에는 괴테와 바이마르가 국가의 중심이었다. 하지만 독일인들은 독일의 정치적 분열을 부담으로 느끼지는 않았다. 비록 휴머니즘 시기 이후 그러한 정치적 분열이 가끔 불평과 한탄의 대상이 되기는 했지만, 그것을 치유하는 방책은 프랑스와 영국의 경우처럼 단일한 민족국가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제후들 사이의 제휴를 더 강화시키고 보다 강력하게 황제를 밀어주자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나쁘다고 여긴 것은 제국의 분열이 아니라 통치자들의 에고이즘이었다. 통치자 및 궁정의 다양성과 제국의 기본체제는 오히려 장점으로 간주되었다. 빌란트(Wieland, 1773~1813)는 이러한 생각을 요약하여 독일의 다양성은 전제군주적 권력행사에 제동을 걸며, 도덕과 풍습의 자연스러운 다양성은 물론이고 극장이나 대학에 다양한 문화나 인문주의 정신을 촉진시키며, 나아가서는 국가 전체의 부가 한곳에 집중되어 있는 나라들에 비해 국가의 부를 골고루 배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심지어 쉴러와 빌헬름 폰 훔볼트는 독일을 문화적 전성기를 구가하는 새로운 그리스라고 명명하면서 독일은 힘은 없지만 사상이 풍부한 나라라고 말하였다. 이에 비해 헤게모니를 추구하고, 고도로 조직화되고 문명화되었지만 독일인들이 그렇게 자긍심을 갖고 있던 독일적 문화는 없는 나라―이러한 새로운 로마가 곧 프랑스였다.
하겐 슐체(Hagen Schulze), 『새로 쓴 독일 역사』(Kline Deutsche Geschichte), 반성완 옮김, 知와 사랑, 104쪽

비슷하게, 민족주의의 부재가 국력을 약화시켰다고 오해 받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경우, 오히려 말년에 보편주의를 버리고 게르만 민족주의를 선택했기에 무너졌다고 평가된다. 슬라브민족주의가 제국을 찢은 것이 아니라 게르만민족주의를 택한 제국이 스스로를 찢은 것이며, "제국의 백성들이 통치 엘리트들에 대한 믿음을 버린 것이 아니라, 그 반대였다."(로렌스 콜)

게다가 20세기 초 세르비아 민족주의의 피해의식과 고토회복주의는 (비록 전적으로 세르비아탓만을 할 순 없지만) 1차 대전이라는 참사를 불렀으며, 이후 유고슬라비아 내부의 민족갈등은 유고 내전을 불렀다.

포클랜드 전쟁을 일으켰던 아르헨티나의 독재자, 레오폴도 갈티에리의 경우도 있다. 아르헨티나는 후안 페론 사후에 1년이 머다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쿠데타로 엉망이 되어있었다. 1981년 상황을 보면 실업률이 13%에, 인플레이션이 130%였다. 아르헨티나 광장에서는 매일 시위대가 들끓었고 각 주요 도시에서는 격렬한 데모가 벌어졌었다. 그러나 포클랜드 전쟁을 일으키고 나서, 갈티에리는 지지율이 50~60%로 훌쩍 뛰어오른다. 당시 아르헨티나엔 환호성을 지르는 사람들도 넘쳐났다고 한다. 비록 참패하고 국민이 실망하기 전까지였지만 말이다.

6.3. 총평

내셔널리즘은 신분이나 계급 간 갈등, 지역주의 등 내분의 소지를 제거하고, 국가의 장기적인 비전 달성을 위한 결속력을 강화시키며, 궁극적으로는 정치, 경제, 사회, 군사 등 국가의 전 분야에 걸쳐 강력한 개혁의 추진력을 제공한다. 그러나 이처럼 무시무시한 위력에도 불구하고 내셔널리즘과 관련하여 합의된 이론적 체계나 제도가 결여된 상황이기 때문에, 현실 역사에서는 각 이익집단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목적에 따라 전용(轉用)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곤 했다. 때문에 내셔널리즘은 한편으로는 인종주의나 전체주의와 결합하여 제국주의·파시즘과 같은 극우적 사상들을 낳기도 하였고, 국가자본주의·사회주의 등의 경제 정책에 덧대어져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고속 성장의 발판이 되기도 하였으며, 정반대로 식민지배를 받던 국가의 독립운동가들에 의해 저항적 민족주의의 형태로 재탄생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내셔널리즘은 다수의 대중들을 통합시키기 용이한 이념으로,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강력한 잠재력을 갖고 있기에 이를 어떻게 사용하여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전적으로 위정자의 의도에 따라 갈려왔다. 물론 과학기술의 악용 가능성 때문에 과학 자체를 나쁘다고 손가락질할 수 없듯, 내셔널리즘의 악용 가능성만을 이유로 그 본질마저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자유와 평등을 침해할 수 있는 사상이라면 어떤 사상이라도 엄정히 비판할 필요가 있고, 지난 한 세기 동안 지구촌에 흩뿌려진 수많은 피와 눈물에 내셔널리즘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기실 국제연합에서 유럽연합[64]에 이르기까지 2차대전 이후 창설된 수많은 국제기구들 역시 본질적으로는 내셔널리즘의 한계를 인정하고 극복하려는 치열한 정치적 문제의식의 발로이며, 이는 오늘날에도 엄연히 지구촌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의 하나이다. 그런 만큼 만일 내셔널리즘적인 주장을 듣는다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한번쯤은 그 주장이 과연 보편적으로 타당한지 당위성을 자문해 보는 편이 좋을 것이다.

7. 내셔널리즘 성향이 강한 각국의 현존 대표적 정당들

국가적 내셔널리즘이나 절대 주류 인종/민족에 기반한 내셔널리즘을 표방하는 정당만 서술.[65] 그리고 가급적이면 분쟁의 여지가 없게 위키 내에서 분쟁이 있을 만한 정당은 공신력있는 출처를 달 것.[66]

8. 민족주의 음악

국민악파로도 불린다. 19세기 후~20세기 초 즈음해서 나타난 형태로, 러시아 5인조를 비롯해, 체코의 드보르자크야나체크, 스메타나, 핀란드의 장 시벨리우스, 후기 낭만파로 분류되기도 하는 독일의 리하르트 바그너 등이 이에 속한다.

9. 관련 문서


[1] 이는 '민족'이라는 개념어가 nationalism = ethnic nationalism이라는 관점하에 번역되고 사용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미권의 영향이 커지면서 이 두 개념을 동일한 것으로 다루기가 갈수록 어려워졌고, 이 두 개념이 분리되기 시작하면서 용어사용에 혼란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2] 보다 정확히는 nationalism의 하위 분류인 civic nationalism을 nationalism의 유일한 의미로서 주장하는 것이다.[3] 이 경우 ethnic nationalsim을 nationalism의 유일한 의미로서 주장하는 것이다.[4] ethnic nationalism과 civic nationalism이 충돌하지 않는 지점에서 nationalism을 공동의 기치로 사용할 때는 의도적으로 모호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용어사용에 혼란을 가중시키는 이유 중 하나다.[5]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자유주의적인 다민족 국가에서는 주로 문화의 일치를 기준으로 동질적인 사회지향을 추구하는 공동체를 구획하여 타자와 구분되는 하나의 정체성과 국가를 공유하는 집단인 civic nation을 nation으로 설정하고, 이 공동체에 걸맞은 독립적인 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하는 내셔널리즘이 나타나고, 독일, 폴란드 등에서는 전제적이며 전통적으로 언어적, 혈통적 일치를 보였던 국가에서의 ethnic group을 nation으로 설정하는 경향이 있다.[6] 중국에서는 신해혁명 이후 한족 중심의 권익을 위해 만주족을 배제한 nation을 설정하고 그들의 이익을 위한 내셔널리즘이 나타났던 적이 있는데, 이 때의 개념은 ethnic nation에 가깝고, 현재는 중국 공산당 주도로, 한족과 중국 관내 소수민족을 모두 포함한 중화민족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주장하며 만들어가고자 하는데 이 때는 civic nation에 가깝다. 다만 중국의 중화민족 개념의 경우 civic nation의 맥락에서 주장할 때도 있지만, 그 정도를 넘어 ethnic nation으로까지 주장하려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신화 다시쓰기를 하거나 요하문화에 대한 원초적 소유권을 주장하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즉 신화시대나 고고학적 시간대부터 원초적으로 중국인이었다는 식의 주장을 통해, 동북지역 소수민족이 원초적으로 중화민족이라는 ethnic nation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이다.[7] 완벽히 일치하진 않지만 설명의 편의를 위해 동물에 비유를 들자면 셰퍼드는 인위적으로 기존의 여러 품종들을 교배해 만든 새로운 품종이다. 하지만 그게 "셰퍼드"라는 하나의 품종으로 정립되었고 그 이후로 우리는 '이 셰퍼드는 순종이다(또는 순종이 아니다)'와 같은 표현을 쓰고 있다. 그리고 호수에 잉크 몇 컵 섞는다고 물이 변하는건 아니듯 중간에 소수 외국인들이 들어왔었다고해서 한국인의 ethnicity가 사라지지 않는다.[8] 울트라내셔널리즘을 초민족주의라고도 번역하는데, 초민족주의는 민족을 초월하여 범인류적 공동체적 정체성을 가지겠다는 사상을 의미하기도 한다. 완전히 반대의 의미를 지니는 셈.[9] 보통의 민족주의는 우파진영의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좌파의 민족주의는 따로 구별하는 경향이 있다.[10] 현대 유대인은 혈연적인 개념이 아니라 유대교를 믿고 유대전통을 지켜나가는 사람들이라는 좀 더 광의적인 개념이다. 유대인들의 디아스포라가 오래 진행되면서 유럽계 유대인과 중동계 유대인으로 나뉘기도 했고, 유대교 전통을 따르게 된 유대인의 배우자나 유대인의 입양아 등도 유대인으로 인정하는 등 혈연적으로는 연관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다만 그들 중 일부는 이를 분별해, 유대인이라는 민족이 최소 3개 있다는 사설도 존재할 정도이고 이스라엘에서는 같은 유대인이라도 혈연적 차이가 있으면 차별하기도 한다.[11] 특히 비슷한 언어와 문화가 크게 작용한다.[12] 영국은 연합왕국United Kingdom으로서 앵글로색슨족인 잉글랜드인, 켈트족인 웨일스인, 북아일랜드인, 그 외 소수의 여러 이민족(인도, 파키스탄 등)으로 분포하고 있다.[13] 에릭 홉스봄의 19세기 3부작 그리고 도널드 서순의 유럽 문화사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내용이다.[14] 다만 일본의 내셔널리즘은 서구 제국주의 이전에 이미 존재하던 국학과 매우 긴밀한 관계를 갖고 형성되었으므로 서구 제국주의의 반작용만으로는 해석에 한계가 있다.[15] 여기서 독일 통일이란 1990년 동서독의 통일이 아닌 19세기 프로이센에 의한 독일 통일을 가리키는 것이다[16] 알파벳을 달리 쓰긴 한다. 비유하자면 부산 사투리는 한글로, 대구 사투리는 라틴 문자로 쓰는 격이다.[17] 이 중에서 백인성(whiteness)를 특히 강조하는 경우 white nationalism으로 지칭된다. 즉, 통념과는 다르게 영미권에서도 혈통적 민족주의 개념이 존재하며, 이를 nationalism으로 칭할 뿐 아니라, 현실정치에 호명될 정도로 적지 않은 지지자가 존재한다. nationalism을 국민주의로 civic nationalism에 가깝게 번역하는 경우 이런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다.[18] 이런 이유로 흑인들이 미국 국가를 부르길 거부하거나 하는 모습이 보이곤 하는 것이다.[19] 급진파의 이념은 라이베리아같은 방식으로 실현된 측면도 있다.[20] 대표적인 예로 베네수엘라가 있다.[21] 단, 완전히 그렇지만은 않다. '우주적 인종'같이 중남미 국가에서 혈통적 의미의 내셔널리즘적 사고가 등장한 경우가 있었다. 링크의 해당 항목 참고[22] civic nationalism 지지층에서는 이를 '신화'로 폄하한다. 이들은 nation이란 공동체 의식은 동일한 역사적 경험 뿐 아니라, 그 역사에 대한 교육, 공동체를 돌아다닐 수 있는 교통수단, 공동체 안에 일어나는 사건이 공유되는 언론 등 근현대의 복합적인 여건들이 공유되어 나타난 현상이라는 근대주의적 주장을 편다. 이러한 civic nationalism적 입장에선 동아시아권 국가는 자신들이 nation 측면에서 서양보다 앞섰다는 '신화'을 '구성'했다고 본다. 그러나 ethnic nationalism 입장에서는 근대 이전에 민족 혹은 그와 유사한 공동체가 있었다는 대표적 케이스로 동아시아 국가들을 든다. 또한 양쪽 입장을 균등하게 소개하는 경우에도 보통 ethnic nationalism 입장에서는 이러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즉, 동아시아 민족주의를 근대에 태동한 것으로 보는 것은 civic nationalism이라는 구체적 입장을 배타적으로 긍정하는 한에서 성립하는 것이다.[23] 고구려는 장수왕 이후 국호를 고구려에서 고려로 바꿨다.[24] 내셔널리즘이 어떠한 공통점을 가지는 집단과 타 집단을 구별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하는 그 본질 때문에 배타적으로 흐르기 쉽다는 것을 생각하면 특이한 일은 아니다.[25] 다만 이는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에서도 발견되는 인식으로 민족주의에만 배타적으로 해당하는 인식은 아니다.[26] 역갤에서 만들어져서 이후 역갤러들이 주갤로 유입되는 과정에서 널리 퍼졌다.[27] 엄밀히 따지면 양쪽 다 고조선과 관련이 없지 않다.[28] 현재 민족(民族)이라는 단어로 부르는 것.[29] 명칭에서 보듯, 민족을 초월해 소통하겠다고 하는 주장.[30] cosmopolitanism, 세계의 모든 사람은 동포로서, 같은 공동체를 이룬다는 주장.[31] EAI·성균관대 EACC·중앙일보의 2020년 한국인 정체성 조사에 따르면 (링크) 한국인들은 혈통과 문화 양자를 '모두' 만족시켜야 한국인으로 본다는 응답이 80프로에 달해 거의 대다수였다. 즉 단일기준에 의거하여 판단하지 않고 복수기준을 동시에 만족시켜야 한국인으로 인식하는 형태다. 많이 언급되는 조선족 케이스의 경우 혈통은 만족시키되 문화를 '동시에 만족시키지 못해' 중국인 취급하는 행동이 관찰되는 것이다.[32] 예를 들어 근대주의의 대표적 학자인 베네딕트 앤더슨이 마르크스주의자였다.[33] 반면 부르봉, 합스부르크, 비텔스바흐 등 봉건귀족세력이 오히려 국경을 넘어 맺어진 혈연관계에 따라 생판 모르던 나라를 물려받는 등 탈민족/초국가적 성격을 갖고 있었다.[34] 단 미국과 영프독에 대한 맹목적 추종 등 냉전 시절로 회귀해갔다.[35] 인터넷 문화로 예를 들면, 루리웹이나 오늘의유머 등지가 경제적으로는 재벌에 부정적이고 복지를 중시하며, 북한에 대해서 평균 국민 감정 대비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데 반해, 일본에 대해서는 상당히 적대적인 성향을 보인다.[36] 예로서 베네딕트 앤더슨은 민족이 과거부터 내려져온 것이 아닌, 근대 시기 인쇄자본주의의 발전과 더불어 발명된 이른바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였다고 말한다.[37] 여기서 민(民)은 ethnic의 개념이 아닌, 전근대적인 구체제(앙시앵 레짐)에 대응하여 개인의 권리가 보장되고 그 권리를 바탕으로 민주적 참정을 통해 국가를 이끌어가는 자유주의민주주의 의식을 공유하는 집단ㆍ구성원을 뜻하는 개념이고, ()은 일반적으로 우리가 민족이라는 어휘를 보면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그것, 이른바 혈통(ethnic)을 강조하며 언어와 같은 문화, 역사, 관습 등을 공유하고 있는 집단을 뜻한다.[38] 일본 제국, 중일전쟁, 태평양 전쟁, 한국독립운동, 중화민국, 백색테러, 6.25 전쟁, 국공내전 등등.[39] 선진국, 한강의 기적, 한국, 일본, G2, 중화인민공화국[40] 예컨대 알렉산드로스처럼 이민족이 세금을 낮추어 준다고 하자 칼을 거꾸로 잡는 경우, 그리고 같은 민족인 이웃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국이 원하는 부와 물자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침공하여 몰살시키는 경우가 흔했다.[41] 단적인 예로, 로마에 고용된 게르만족들은 문명의 경계선 밖에 사는 동족을 죽이는 것에 별 고민을 하지 않았다.[42]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해체와 대독일주의 논쟁, 오스만 제국에서 청년 튀르크당이 벌인 학살극 등이 그 예시이다. 사실 멀리 갈 것 없이 인류사 최악의 비극인 제1차 세계 대전제2차 세계 대전 모두 내셔널리즘이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43] 위키백과 일본어판과 일본내 일부의 서적의 경우는 그냥 '내셔널리즘'이라는 원어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44] 식민지 침략에 대한 항쟁이나 식민지 확보(일본의 경우)에 따라 아시아주의, 대동아 공영권등의 개념을 만들어내는 등으로 변화하여, 더이상 'ethnic group'이라고도, 근대유럽의 'nation'이라고도 못할 완전히 다른 개념이 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혈통적 민족주의라면 아시아주의같은 개념이 설명되지 않고, 국민국가에 기반한 민족주의라면 황국신민이나 오족협화 같은 개념이 설명되지 않으니까.[45] 현재 중국은 중화민족 담론으로 분리주의를 통제하고 억압하고자 하지만 중화민족 담론과는 다른 한족 민족주의 또한 존재한다. 쑨원의 멸만흥한 같은 구호가 그 예시 중 하나.[46] 여기서 말하는 근대 서구의 내셔널리즘은 이전의 모호한 '민족' 개념을 넘어선 사상적 개념, 즉 17세기 유럽의 근대적 국민 국가(민족 국가, nation-state)의 토대가 되는 사상을 가리키는 것이다.[47] 이들 가운데 쑨원이나 김구의 경우 민족주의에 가깝고, 아타튀르크의 경우 그보다는 상대적으로 국민주의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쑨원의 경우 (청나라만주족이 아닌) 한족이 권력을 장악해야 중국이 산다고 이야기했을 만큼 강경한 한족 내셔널리스트였고, 백범 김구 역시 백범일지를 읽어보면 한민족의 부흥에 방점을 찍고 있다. 반면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경우 "자신을 튀르키예인이라 믿고 튀르키예의 문화를 받아들이려는 모든 사람은 튀르키예인"이라 규정했으며, 이러한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을 대상으로 튀르키예라는 새로운 '민족국가'에 대한 애국·애족심을 심으려 했던 사람이다.[48] 주로 과거의 왕, 귀족이 지배하던 국가, 영토가 해당한다.[49]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표어나 수많은 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조직 등에서 알 수 있다.[50] 일제의 핍박을 주도하는 '일본 민족'의 속박에서 벗어나, 민족자결주의를 바탕으로 한 "한민족의 나라를 세우자"는 주장.[51] 당시의 독립운동가들의 상당수는 민족주의(내셔널리즘)와 공산주의를 동시에 지향했던 사람도 많다. 일종의 민족주의적 사회주의자들.[52] 일제의 파시즘을 선도하는 '제국주의 부르주아'에 맞서 "노동자의 국가를 세우자"는 주장.[53] 아프리카의 사례[54] 단, 미국의 경우 이민자들의 국가라는 다소 다른 정체성을 가지기에 이론의 여지는 있다. 그러나 미국인들 역시 여타 선진 강대국들과 마찬가지로 자국의 정체성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하며, 단지 "미국 민족"을 정의하는 기준점이 구대륙처럼 인종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자본주의 같은 가치일 뿐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55] 정확한 원문은 'It is quite possible, to be both. I look upon myself as a man. Nationalism is an infantile disease. It is the measles of mankind.' saturday evening post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발언.[56] 패전의 위기를 역이용해 민족이 위험에 처했다며, 국가의 결집과 전쟁 여론 동요를 꾀하는 민족주의가 전체주의파시즘과 결합했을 때의 위험성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57] 이탈리아어 회칙에서 nazionalismo라 되어있다. 민족주의냐 내셔널리즘이냐로 한국어 번역 논쟁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홈페이지에서 민족주의라 번역했으므로 존중 차원에서 그대로 놔뒀다.[58] 이탈리아어 회칙: Altri ostacoli si oppongono alla edificazione di un mondo più giusto e più strutturato secondo una solidarietà universale: intendiamo parlare del nazionalismo e del razzismo. È naturale che delle comunità da poco pervenute all’indipendenza politica siano gelose di una unità nazionale ancora fragile, e si preoccupino di proteggerla. È pure normale che nazioni di vecchia cultura siano fiere del patrimonio, che hanno avuto in retaggio dalla loro storia. Ma tali sentimenti legittimi devono essere sublimati dalla carità universale che abbraccia tutti i membri della famiglia umana. Il nazionalismo isola i popoli contro il loro vero bene; e risulterebbe particolarmente dannoso là dove la fragilità delle economie nazionali esige invece la messa in comune degli sforzi, delle conoscenze e dei mezzi finanziari, onde realizzare i programmi di sviluppo e intensificare gli scambi commerciali e culturali.[59] 한 언어의 계통을 논하는 것은 실제로는 매우 복잡하고 까다롭다. 주변 언어들에서 차용한 표현은 아닌지 검증하는 것이 필요하고 매우 객관적이고 공정한 연구 자세가 필요하다. 이러니 국내에서는 제대로 된 연구 성과가 사실상 없다시피하다.[60] 코소보를 국가로 포함했을 경우. 포함하지 않았을 경우 6개.[61] 자세히 알아보면 부족에 가까운 개념이다. 중화민족이야말로 진정한 (다른 국가에서 보편적 의미로 쓰는)민족이라는 것이다.[62] 근래에는 백제 역사에서도 소유권을 주장하려는 움직임이 있기도 했다.#[63] 일례로, 박노자는 고대 역사에 현대의 국가나 민족이란 개념을 대입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과연 고구려인들이 신라인들을 같은 민족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니, 애초에 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인들에게 '하나의 민족'이란 개념이 있었을까? 예컨대, 삼국통일 당시 신라 입장에서는 결국 고구려나 백제나 당나라나 다 외국이자 견제 대상에 불과했다는 말이다. 참고할만한 기사. 하지만 최소한 고려시대 이후로는 삼국이 자신들과 동일한 민족이라는 개념이 생겼다. 당대의 중국 쪽 기록을 봐도 당시 중국의 왕조들도 고려와 조선을 고구려의 후신 국가로 여기는 발언들이 다수 등장한다. 그리고 삼국시대 당시에도 삼한이라는 표현이 사용되었음은 물론 삼국통일도 삼한일통이라고 일컬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고구려·백제·신라 삼국 국가들은 자신들끼리를 그 외의 국가보다 가깝게 봤다고 할 수 있다.[64] 다만 유럽연합 내에서도 모든 형태의 내셔널리즘을 거부하는 진성 세계주의자들도 있는가 하면, 외부의 도전에 맞서 유럽의 문명을 공유하는 새로운 집단인 유럽연합의 내부적 단결을 주장하는 유로내셔널리스트들도 있다. 예컨대 EU를 지금처럼 동유럽을 포함하는 거대 집단이 아니라 (보다 문화적, 정치적 거리가 가까운) 서유럽 선진국들만의 동맹체로 만들려 했던 독일의 초기 안, 그리고 (최근 난민 문제에서 대두되는) "왜 유럽연합이 유럽인이 아닌 사람들을 위해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가"라는 반발 여론이 바로 후자의 인식에서 출발한다고 볼 수 있다.[65] 스코틀랜드 국민당 같이 소수민족을 대변하는 정당 같은 경우는 제외. 좌파 내셔널리즘 정당의 경우 혼합정치적(=극우 국수주의적) 색채가 없으면 '내셔널리즘' 문서가 아닌 '좌파 내셔널리즘' 문서에서 서술[66] 주요 정당이기 때문에 가급적 완전 마이너한 일본제일당, 황금새벽당 수준의 네오나치급 극우 정당들보다는 각국의 주요 민족주의 성향 우익, 우익~극우 정당을 위주로 서술할 것.[67] 군소정당 중에는 뉴라이트, 하드라인 등이 있다.[68] 출처: "Nationalism as Conservative Centrism: United Russia" - Laruelle, Marlène (2009)[69] 그외 미얀마 주요 보수정당으로 아라칸 국민당이 있는데 이쪽은 미얀마민족주의가 아니라 불교민족주의이다.[70] Stojarová, Věra (2007). "Party politics in the Western Balkans". Bochsler, Center for Comparative and International Studies, University of Zurich. p. 16.[71] 출처: "The Resurgence of Japanese Nationalism (the Globalist)" 19 August 2016.[72] "Nationalism in China".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Retrieved 21 August 2019.[73] 출처: Traub, James (2 November 2016). "The Party That Wants to Make Poland Great Again". The New York Times Magazine.[74] 출처: Protests grow against Poland’s nationalist government. The Economist. 20 December 2016.[75] 출처: "Political parties" civicActive. Retrieved 13 March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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