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진 음악을 가리킨다.본 문서에서는 그 중에서도 근현대 시기에 발족된 한국의 대중음악 위주로 서술하고 있다.
2. 시장 규모
한국 음악 시장은 세계 7위의 규모이다.
3. 특징
- 아시아권에선 일본과의 비교가 많다. 아무래도 일본과 한국이 아시아의 대중문화의 선두를 달리기 때문인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록이나 유로팝을 위시한 백인음악이 강세이고, 한국은 R&B나 팝, 힙합등의 흑인음악이 강세이다. 러닝타임이 일본에 비해 (현재 기준으로) 짧은 편이다. 일본의 경우 4분~5분대가 비율상 압도적으로 많은 반면, 한국의 경우 2~3분대가 많다.
- 부제목의 경우 한글 맞춤법에서는 줄표(—)를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나, 한국 음악계는 대부분 소괄호를 애용한다. 일본의 경우 물결줄표(〜)를 많이 사용하며, 소괄호를 사용한 노래제목의 빈도는 가끔 보이는 정도로 나타난다.
- 대부분 보컬리스트나 래퍼가 중심이며 악기는 반주에만 필요한 부수적인 요소로 취급하는 경향이 상당히 짙다.[1] 그렇기 때문에 솔로 가수나 댄싱 팀이 제일 높은 인지도를 갖고 있으며, 밴드 음악은 입지가 좁다.[2]
- 메인스트림 팝이 상당히 발전한 반면, 장르 음악의 불모지로 손 꼽힌다.
- 노래 가사에 '베이베'라는 단어를 유난히 많이 사용한다. 그래서 외국인들이 한국 노래를 들으면 '노래 가사에 왜 baby를 넣지?' 하고 컬쳐쇼크를 느끼기도 한다. 북한, 일본, 미국, 캐나다, 영국, 독일,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에서도 노래 가사에 베이베를 넣기도 하지만 사용빈도는 한국이 압도적으로 높다.
4. 역사
한국 최초의 대중가요에 대한 의견은 아직까지도 분분한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한국 최초의 대중가요에 대해 일제강점기 당시, 일동축음기주식회사에서 1926년에 발표된 윤심덕의 ‘사의 찬미’를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언급한다.이 곡은 윤심덕의 동생 윤성덕이 피아노 연주를 담당했으며, 엄밀히 이 곡은 루마니아 작곡가 이바노비치의 관현악 왈츠인 ‘다뉴브 강의 잔물결(Danube Waltz)’의 선율에 한국어 가사를 붙인 번안곡이라는 점 때문에 최초 논쟁에서 다소 예외일 수 있다. 다만 1920년대 발표된 음악 가운데 대중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노래라는 이유가 크기에 최초의 대중음악 논쟁에서 여전히 유력 후보 중 하나로 일컬어진다.
사의 찬미와 같이 자주 언급되는 한국 최초의 대중가요 후보군들은 안기영의 ‘내 고향을 이별하고’, 이정숙의 ‘낙화유수’, 박채선과 이유색의 ‘이 풍진 세월(희망가)’등이 있다. 다만 이 중에서도 어떠한 특정 곡이 진정한 최초인지는 아직까지도 학계에서 확실한 정립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후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 대중음악이 본격적으로 폭넓게 자리잡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발매된 유성기음반 라벨에는 노래의 장르를 다양하게 분류시켜서 발매했으며, 많은 레코드사들도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대중가수인 채규업과 이화중선, 이애리수, 전옥, 왕수복, 남인수, 이난영, 김정구, 이은파 등 전문 보컬리스트들이 다수 등장한 때이기도 하다.
당시가 일제강점기였으니만큼 각종 일본내지, 해외의 음반사들이 조선에서도 사업을 했는데, 오늘날에도 이름을 알리고 있는 빅타-레코드, 컬럼비아 레코드같은 회사들이 그렇다. 그중 특기할만한 음반사가 있다면 '오케레코드'라는 곳이다. 일제시대 조선의 대중문화 관련해서 찾아보면 흔하게 볼 이름이기도 하다. 오케레코드는 엄밀히 말하면 일본 기업인 제국축음기상회(약칭 데이치쿠)의 경성지부로 시작된 회사였다. 그런데 경성지부장에 이철이 임명되면서 오케레코드라는 레이블이 생긴 것이다. 현대적으로 치면 오케-레코드는 데이치쿠의 서브레이블이라고 칠만한 곳이었다. 이 오케-레코드를 통해서 당대 조선 명창과 예인[3]들의 음반이 취입되었고, 일제강점기 조선 대중음악의 한 축으로 섰으나 일제강점기 말기에는 일제의 강압에 찬동해 혈서지원 따위의 친일가요,친일가곡을 숱하게 내놓는 흑역사도 있었다. 광복 이후에도 재창립해서 존재했었으나 50년대 이후로는 소식이 없는듯. 자세한 이야기는 위키백과 오케레코드 및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참고하면 좋다.
1940년대에 들어서면서 광복과 함께 조선레코드와 고려레코드(현 마장뮤직엔 픽쳐스)사가 설립되었으나, 당시엔 음반을 제작할 장비와 물자가 거의 없었다. 이 사이 해방시대의 첫 대중가요인 ‘사대문을 열어라’가 발매되었고, 1948년 한국가수협회 결성되면서 초대회장으로 일제 강점기를 풍미해온 가수 남인수가 선출되었다. 이 시기 음악의 특징이라면 해방을 기념하는 노래(희망삼천리)와 함께 분단을 예견하는(가거라 삼팔선)등이 동시에 발매되었다.
다만 1950년을 기점으로 벌어진 한국전쟁 이후 발표된 앨범들은 작사와 작곡, 편곡, 제작사, 그리고 발표연도 등이 불명확하게 방치된 채 나뒹구는 경우가 많아서 안타까운 역사로 남아 있다. 그러나 피난지였던 대구와 부산을 중심으로 쇼무대와 악극공연, 70여 개의 레코드사가 활발하게 번성하면서 대중음악이 전쟁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또한 미8군 무대가 생성되는 가운데 영화 주제가(Ost)가 전성기를 맞이했다.
전후 1958년 첫 LP음반이 제작된 이래 직후인 1960년대 한국의 대중가요는 산업규모로 급격하게 성장한 특징을 지닌다. 국내 최초 밴드인 키보이스와 최초의 록 앨범을 발표한 애드 훠, 그리고 포크 앨범, 번안가요 등이 특히 큰 사랑을 받았다. 66년부터 스테레오 사운드로 LP가 제작되었으며, 68년 펄시스터즈를 시작으로 그 유명한 신중현 사단이 본격적으로 구축되기 시작했다.
그 이후 1970년대 초반까지 서구권에 비해서 다소 폐쇄적인 당시 사회구조의 특성상[4] 신속하게 해외의 트렌드가 수입되기는 힘들었지만 나름대로 훌륭한 뮤지션들이 많이 포진하고 있던 국가였다. 상기된 신중현 사단의 아티스트들을 비롯해서 산울림과 같은 좋은 록밴드들이 존재했고 조영남, 송창식, 이장희, 김민기 등 동아시아 포크 음악 중 높은 수준의 독자성을 지니고 있는 뮤지션들이 많았다. 게다가 장르도 다양했다. 당시 일본은 일관적으로 백인 음악인 록 음악, 메탈 음악이 발전을 했던 반면, 한국은 흑인 음악, 다시 말해 솔, 펑크 같은 음악이 강세였다. 심지어 당시 클럽[5]에서 브라스 세션을 갖춘 대형(열 명 내외의 대규모) 밴드를 쉽게 볼 수 있었다.
그러나 1967년 음반법 제정 후 사전심의제가 도입되고 1970년대 중반 유신정권의 긴급조치 시대가 등장하면서 가뜩이나 이미 폐쇄적인 특성이 있는 나라가 더 통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모든 음반에 대한 검열이 미풍양속 보존, 퇴폐문화 추방의 명목으로 강화되었고 한국 대중음악은 잠시 쇠퇴하게 된다. 철저히 탈색되고 철저히 제도권 안에서 안전하고 '듣기 좋은' 음악으로 구분되는 것만 음반 발매가 가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 철저히 수입이 금지된 것이 바로 펑크 록이었다. 이 당시 전 세계 사람들이 다 듣고 있던 음악인데 유일하게 한국인들만 못 들었다. 신문 지상에 해외토픽 수준으로 잠시 다뤄진 적은 있지만 말이다. 몇년 뒤 일본 양키문화가 펑크문화라는 이름을 뒤집어 쓰고 한국에 상륙하는 희한한 사건도 발생한다. 이러한 검열은 90년대 후반에 가서야 풀린다. 이 시기에 과거에 금지됐던 음반이 드디어 발매되거나, 금지곡이 삭제된 채 부분 발매됐던 음반이 완전한 형태로 재발매되었다.
한때 대중음악계는 작곡가나 팬들이나 표절에 대한 문제인식이 무뎠던 시절인데, 사실 1970~1980년대 당시야 사회 전반적으로 저작권 의식이 미비한데다 문화규제도 심했던 시절이라 외국소설을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그대로 연극으로 만든다거나 외국 만화책(주로 일본)을 복사해서 해적판으로 푼다거나 하는 식의 일이 그때는 위낙에 비일비재하게 벌어졌고 짝퉁제품도 꽤나 많이 나돌기도 했다. 사실 듣는 음악이 그런 것들 뿐이니 일부 다양한 음악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을 제외하면 많은 사람들은 이게 표절인지도 잘 모른다.[6] 긴 말 할 필요 없이 김도훈이나 박진영 항목을 한 번 보고 오는 게 빠를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저작권 개념이 자리를 잡고 인터넷 때문에 해외 음악에도 대중들이 많이 노출되면서 설령 그럴싸하게 표절하는 데 성공한다 해도 대중의 비판을 받게 되었다.
이때부터 슬슬 아이돌이라는 개념이 한국 음악계에 생겨났다. 90년대 후반부터 아이돌 가수라고 칭하는 미디어 매체들이 늘어나면서 아이돌의 의미는 일차적으로는 가수이지만, 현재는 음악뿐만 아니라 예능, 연기, 뮤지컬에 이르기까지 활동영역을 넓히는, 종합 엔터테이너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또한 연습생이라는 훈련 문화, 철저히 상업화/전문화된 제작과 프로듀싱, 거대 팬덤과 막대한 제작/활동비용 등이 특징이다. 또한 반대로 홍대를 중심으로 인디 음악과 록 장르가 한국에서 힘을 쓴 시기도 90년대인데, 감성적인 멜로디의 모던 록부터 거친 저항 의식의 펑크까지 인기를 끌면서 록 페스티벌이 국내에서 모습을 드러냈지만 시간이 지나며 비주류 장르로 밀려난다.
그런가 하면, 80년대부터 90년대로 이어지는 기간에는 한국 대중음악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된다. 현재와 같은 세계적 열풍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이 시절의 음악들은 상당한 음악성과 예술성을 가진 음악들이 등장한다. 대한민국 전반의 음악 수준이 크게 향상되었으며, 앞으로의 다양한 음악들이 꽃필 수 있는 기반이 다져지게 되었다. 이문세나 조용필 등 전국구 스타들의 등장으로 활기를 얻은 음악 시장에 신승훈, 이승환, 이승철 등의 발라더들이 등장했고, 들국화, 부활, 송골매, N.EX.T, 산울림과 같은 한국 록 음악의 초석을 다진 밴드들도 등장한다. 여행스케치나 푸른하늘, 동물원과 김광석 등의 서정적인 음악들 또한 큰 인기를 끌었다. 무엇보다 한국 대중음악의 수준을 한층 끌어올렸다 평가되는 실험적이고 세련된 음악이 등장한다. 예컨대 유재하는 클래식과 팝을 접목시킨 음악적 시도로 당대의 평론가들에게 충격을 주었으며, 처음으로 한국 음악에 "브릿지"를 도입하여 현대 가요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김현철은 화려한 브라스와 세션, 세련된 멜로디라인으로 현재 들어도 전혀 촌스럽지 않은 음악을 구사했으며 봄여름가을겨울, 빛과 소금 등 재즈풍 음악들도 등장, 한국 대중음악은 새 지평을 열게 된다.
전반적인 90년대의 대중음악은 경제 호황과 민주화의 영향으로 보다 대중적, 낭만적이고 밝은 분위기의 곡이 많았다. 80년대 포크의 영향을 받은 서정적 발라드와 서태지가 불러온 댄스 뮤직 열풍, 1세대 아이돌과 인디 록이 혼합된 이 시기를 비평가들은 한국 대중 음악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로 평가하기도 하며, 지금도 토토가 등 대중매체에서 지속적으로 조명하는 등 당대를 보낸 사람들에게 있어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았다.
1990년대 음반시장 황금기에는 음반 100만 장을 파는 밀리언셀러 가수도 여럿 있었지만 MP3 음원으로 시장의 주 플랫폼이 바뀌고 초고속 인터넷을 이용한 불법 복제가 일어나면서 2000년을 기점으로 음반시장이 미칠듯이 축소되어서 음반시장의 큰 축소를 불렀다. 이게 단순히 축소된 수준을 넘어서 오프라인 시장 자체가 완전히 붕괴된 수준이라고 봐도 할 말이 없는데 2000년에 4000억원 가량이었던 오프라인 음반시장이 2005년에는 1000억원에도 못 미칠 수준으로 추락했고 그 틈을 온라인 음반시장이 메꾸는 식으로 음악시장이 재편되었다.
역으로 이 때문에 2000년대 이후로 J-POP이 세계시장에서 죽을 쑤고 K-POP이 아시아시장부터 시작해서 점차 세계적인 규모로 흥하게 되었다. 한국은 음반시장 재편이 매우 발빠르게 이루어졌기 때문에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과 같은 소셜미디어나 유튜브 같은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를 통해서 음원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서 크게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인 홍보전략을 펼친 데 반해 일본은 기존 오프라인 음반시장에 의존하는 식으로 시장을 유지하려고 하다 보니까 소셜미디어나 온라인 동영상 사이트를 통한 음원제공에 대해 소극적이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세계시장에서 죽을 쑤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현재는 음악 시장이 기존의 음반에서 음원 기반으로 완전히 탈바꿈하게 되었고 정액제 스트리밍 서비스가 점점 확대되고 있다. 이를 통해 큰 수익을 올리는 음악 업체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다만 음원 제작자들에 대한 불공정한 수익 분배 문제가 심각하며, 기타리스트 신대철도 이 문제에 관해 비판한 바 있다. # 하지만, 대중음악을 하는 가수들 상당수가 본업인 음악 외에도 광고나 방송활동 등으로 벌어들이는 비중이 상당하고, 심지어 아이돌 같은 경우에는 아예 수익 비중이 역전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2010년대부터는 인디 음악도 주목받는 분위기가 생겨났다. 20~30대를 중심으로 브로콜리 너마저나 장기하, 쏜애플 등의 인디 뮤지션에 대한 인지도나 호감도가 늘어났고 케이블 방송사들도 이를 신선한 컨텐츠로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다수의 록 장르, 하드 록이나 메탈 장르는 대중의 외면을 받고 있는 상황이며, 메인스트림 대중매체의 홀대 및 온스테이지나 스페이스 공감 등 소수의 매체가 인디나 비주류 장르를 조명하고 있다. 또한 KPOP과 아이돌 음악의 성장세와 별개로, 나는 가수다 등의 매체로 인해 아이돌 이전 한국 음악의 주류였던 대중음악, 즉 '보는 음악'이 아닌 '듣는 음악'이 다시금 조명받는 현상도 생겨났다. 재즈는 여전히 찬밥이지만 클래식은 조성진이라는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대중적으로 인지도를 늘리며 클래식 산업도 동반하여 인지도가 미묘하게 상승하고 있다.
2010년대 중반에 이르러선, 힙합이 매우 대중적인 음악의 장르가 되었다. 특히 10대 ~ 30대에게 매우 인기 있는 장르이며, 기존의 00년대 후반~10년대 초반의 힙합과는 그 성향과 특징, 수요층이 많이 다르다. 00년대에는 MC 스나이퍼와 리쌍, 에픽하이를 위시한 감성과 문학성이 강조된 힙합이 대중들에게 알려졌으나, 10년대엔 SWAG으로 대표되는 자기과시와 영어가사 등 대중성보다 매니아 층 성향의 곡들이 반대로 대중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과 반대로, 트로트 열풍이 다시금 불어닥친 것도 이 시기다. 그동안 10대~젊은 층 위주의 아이돌과 힙합 음악 위주의 대중 매체에서 소외되고 있었던 중년~노년 층들을 타겟으로 한 미스트롯 등의 방송이 최근 유례 없던 시청률을 기록하며 흥행했다. 젊은 층들이 스마트폰과 웹미디어의 발달로 TV를 떠나면서, 기성 대중매체에 있어 노년층의 파워가 강해진 것이다. 과거 TV 매체가 대중음악을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전환시킨 것처럼, 유튜브 등 개인미디어의 발달은 대중음악의 개인화, 파편화를 가져오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혼란스럽던 2020년 중반에 낸 신곡 Dynamite를 통해 21세기 최초로 빌보드 차트 HOT 100에서 1위를 한 아시아 아티스트이자, 비영어권 가수 최초 & 전세계 5번째로 Hot 100, Artist 100, Billboard 200차트 모두 1위를 석권한 아티스트가 되는등 그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 게다가 10월 중순에는 빌보드 차트 핫100 1위, 2위를 동시 석권[7]하였는데, 이 기록을 세운건 역대 그룹중 비틀즈, 비 지스, 아웃캐스트, 블랙 아이드 피스 단 넷밖에 없었다. 이렇게 KPOP의 해외 시장에서의 성과는 역대 최고 수준에 이르렀으며, 국내 시장보다 그 대중성이 훨씬 더 비대해졌다는 점도 흥미로운 요소이다. KPOP이란 거대한 아이돌 위주의 쇼비즈니스 업계가 해외 시장을 타겟팅해 제작되면서 해외와 국내 시장의 괴리를 가져온 것이다. 국내 다수의 음악 프로그램이 초라한 시청률을 기록하면서도 폐지되지 않는 것도 해외 팬들이 높은 조회수를 찍어주기 때문.
5. 한국의 음악 장르
5.1. 국악
자세한 내용은 국악 문서 참고하십시오.5.2. 트로트
자세한 내용은 트로트 문서 참고하십시오.5.3. K-POP
자세한 내용은 K-POP 문서 참고하십시오.5.4. 한국 락
자세한 내용은 록 음악/대한민국 문서 참고하십시오.5.5. 한국 힙합
자세한 내용은 한국 힙합 문서 참고하십시오.5.6. 발라드
자세한 내용은 발라드/한국 문서 참고하십시오.6. 노래방 수록 목록
자세한 내용은 한국 음악/노래방 수록 목록 문서 참고하십시오.7. 관련 문서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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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주가 조금이라도 긴 곡을 들려주면 '노래는 언제 나오냐?' 또는 '경음악이냐?'라는 등의 반응을 보인다. 심지어 방송에서는 기타 솔로 연주 중인데도 멍하니 서있는 보컬리스트를 비추거나 관중석을 비출 정도다. 간주는 보컬리스트가 잠시 쉬는 시간 취급을 받는다.[2] 여러 뮤지션이 출연하는 공중파 티비 음악 프로그램에서 밴드가 라이브로 연주를 하는 경우는 없다시피 하며, 그나마 매우 유명한 밴드나 가능하다.[3] 노래인지 만담 보이스 드라마인지는 불명이나 신불출도 오케-레코드에 음반을 취입한 적도 있다.[4] 사실상 한국에 수입되는 모든 음악은 검열을 거쳤고, 조금이라도 정치적, 문화적으로 불순하다 싶으면 방송금지를 당했다. 게다가 경제력이 낮았기 때문에 해외 음반이 제때 수입되는 경우도 드물었다.[5] 그 때는 클럽과 나이트클럽의 구분이 없었다. 뮤지션들은 대부분 나이트클럽에서 공연했다. 공연하는 클럽을 나이트와 다르게 구분하는 것은 1990년대 중반 인디 음악이 발전하고 본인들만의 무대를 작은 술집에서 꾸려나가기 시작하면서 생긴 새로운 개념이다. 여담으로 외국인들에게 "한국은 클럽과 나이트클럽이 다른 성격의 장소다"라는 것을 이야기해 주면 놀란다.[6] 사실 대중음악 작곡가는 인디 쪽 작곡가들과는 다르게 높으신 분들이 레퍼런스 뽑아주면 그것과 비슷한 거 작곡하는 게 일인지라 어쩔 수 없다. 한국 대중가요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이다.[7] 1위는 BTS가 피처링한 Savage love, 2위는 다이너마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