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사진 속 천자문은 집자한 것으로, 세로쓰기라 오른쪽 위부터 아래로 읽는다. |
1. 개요
천자문(千字文)은 4언고시에 속하는 한시(漢詩)이자 대표적인 한문 습자 교본이다. 저자는 중국 남북조 시대 양무제 시절 학자 주흥사(周興嗣, 470~521). 삼국 시대 종요(鍾繇)가 이미 천자문을 지었다고 하나[1], 현재 알려진 것은 주흥사의 천자문이다. 당장 죽림칠현이 나오는 것만 봐도 그렇다.주흥사가 양무제의 명을 받아 만들었다고 하는데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양무제가 그의 실력을 시험하기 위해 무작위로 훼손된 고서(古書)를 하나 뽑아 이 책의 내용을 복원해 보라고 했다는 설, 또 하나는 주흥사가 우연한 일로 양무제의 노여움을 사 주살당하게 됐는데, 이를 용서받는 조건인 '하룻밤 안에 4자씩 250구절 시를 짓되, 1글자도 같은 글자를 쓰면 안 된다'에 맞게 만들었다는 설이다. 이 때문에 주흥사는 하룻밤 새에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고 하여 훗날 사람들이 그를 더러 백두(白頭) 혹은 백수(白首)라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 이 때문에 천자문을 다른 말로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부른다. 몇몇 야사에서는 996자까지 만들고 마지막 4자에서 막혔는데 귀신이 나타나서 '언재호야 (焉哉乎也)'로 끝내라고 알려줘서 간신히 1000자를 끝마쳤다고도 한다.
그런데 하룻밤 만에 중복 글자 없이 250구절을 모두 만들어 내기란 거의 불가능하거니와, 주흥사가 실제로 양무제에게 노여움을 샀다는 기록도 없다. 천자문은 양무제 이전에도 존재했는데 이를 주흥사가 집대성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다만 주흥사가 머리가 하얗게 세어가며 천자문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매우 재밌어서 마치 진실인 양 널리 알려진 것이다.
이 한시의 대단한 점은 '사언고시'(四言古詩) 250구(句), 총합 1000자로 이루어졌으면서 글자가 하나도 겹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 때문에 옛부터 한문을 배우는 사람들의 입문서로 활용되었다. 장난으로야 "가마솥에 누룽지" 하지만, 제대로 정독하고 읽으면 내용도 참 운치 있다. 물론 내용도 좋고 글자가 겹치지 않기에 교육용 교재로도 사용되었을 뿐, 처음부터 교육용으로 만들어진 글은 아니다. 글자가 겹치지 않게 하면서 운율과 의미도 맞추면서 작성했으니 저자가 머리가 허옇게 셌다는 전설이 생길 법도 하다. 다만 기본은 한시이니만큼 의외로 초심자에겐 어려운 한자도 있다.
2. 한자 교재로서 쓰인 천자문
겹치는 글자가 없는 1000자로 구성되고 적어도 당대에는 상용자가 많아 한자 교재로 애용되었다. 역사적으로는 당나라 시대부터 빠르게 보급되었고,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법흥왕 8년(521)에 양나라 승려 원표가 사신으로 오면서 많은 불경과 천자문을 가지고 왔다고 한다. 일본서기에는 285년 '백제의 왕인(王仁)이 논어 10권과 함께 천자문 1권을 일본에 전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일본서기의 오류이거나, 종요의 천자문을 전했다는 추측, 혹은 왕인이라는 인물 자체가 도래인의 업적들이 모여 만들어진 가공인물이라는 추측 등이 있다.대대로 한국에서는 한자를 처음 배우는 입문자들, 특히 어린이들의 교재로 사랑받아 왔다. 천 년도 한참 넘게 지난 지금도 한자 교재 하면 천자문을 떠올릴 정도이니, 근대 이전 천자문의 대중성은 두 말 할 더필요가 없다. 그야말로 한자 초심자가 꼭 배워야 할 필수 요소로 대접받았다. 순조실록 순조 14년(1814) 2월 10일자 기사에는 영의정 김재찬이 당시 왕세자였던 효명세자를 두고 순조에게 '천자문이 경사나 의리에 관한 글은 아니지만 앞으로 공부할 것은 다 여기에 바탕하게 되는데 자주 학습을 빼먹어서는 곤란하니 (세자를) 아버지로서 지도해 주십시오.' 하는 요지로 아뢰는 부분이 있을 정도이다. 왕실에서 지방의 서당에 이르기까지 학문을 좀 배워보겠다 하는 사람은 한 번쯤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었던 것.
이런 네임 밸류 덕에 드라마 같은 여러 대중 매체에서 서당 같은 곳에서 한자 교육을 하는 장면이 나오면 꼭 일단 천자문을 읽게 하고 못 외우면 회초리로 때리는 것으로만 묘사되곤 한다. 심지어 이걸 진짜로 한자 교육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한국에서는 정교한 서체로 유명한 한석봉의 천자문이 유명한데, 선조 15년(1583)에 왕명으로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2.1. 비판
천자문은 오늘날 관점에서 좋은 한문, 한자 교재가 아니다. 우선 쓰인 글자들 중 현대에 거의 쓸 일이 없는 벽자나 그다지 상용 글자가 아닌 것이 상당히 많다. 천자문에 있는 글자 1천 자 중 한국 교육용 한자(1800자) 목록에 있는 글자는 약 750자인데, 거꾸로 말하면 네 글자 중에 한 글자는 현대 한국인이라면 거의 사용할 일이 없는 글자라는 것이다. 한자검정시험에서 특급까지 올라가야 나오는 昃(기울 측)[2]이 맨 앞 12번째로 나오며, 그 앞 글자인 盈(찰 영)도 2급짜리다.[3] 반대로, 8급 한자인 年(해 년)은 거의 끝자락인 맨 뒤에서 56번째에 나온다.게다가 마지막 4글자인 언재호야(焉哉乎也)[4] 같은 어조사는 문장의 완성과 의미를 돕는 글자들로, 한문을 배울 때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글자이다. 그러나 중국에서조차도 고전적인 정격 한문이 일상에서는 쓰이지 않는 현대에는 언감생심(焉敢生心), 어언(於焉), 오호통재(嗚呼痛哉), 쾌재(快哉), 단호(斷乎) 등 용례가 손에 꼽을 정도.
문법 학습 측면에서도 문제가 많다. 자수를 맞춰야 하는 시의 특성상 문장이 썩 부드럽지 않고, 의미를 알고 봐야 결과적으로 말이 되게끔 이어 놓았을 뿐이므로 초학자가 공부하기에는 상당히 산만하다. 한자 총 1천 자의 배열에도 체계가 부족하다. 획수에 따르거나 음의 순서나 뜻의 분류에 바탕하지도 않았고 상용자와 벽자가 섞였으며 부수별로 정리하지도 않았기에 글자 난이도가 널을 뛴다. 상용자 중에서는 숫자에 三, 六, 七, 十[5]이, 방향은 北이, 계절은 春이, 자연은 冰(氷), 山, 䨮(雪)이, 비교는 小, 低가, 색상은 綠이 없다. 8급 한자 중에서도 한국 때문에 들어간 韓을 제외하더라도 앞의 글자들에 더해 校, 敎, 先, 室도 없다. 내용을 보면 있을 법한데 없는 글자들이 꽤 많다. 위의 한문 교육용 기초 한자에 포함되지 않은 글자가 넷 중 하나라는 점과 결합해 보면, 기초 교재로서 당연히 있어야 할 글자가 없고 없어도 될 글자는 또 잔뜩 실렸다.
그런데 천자문이 애당초 교육용 교재로 작문된 글이 아니니 '교육용 교재로서 불합리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현학적'이라는 말이 나오게 한 그 남북조 시대 귀족 사회에서 나온 어려운 한시이니, 중국의 고사를 전혀 모르는 어린이들에게는 그저 의미 없이 어려운 글자들의 단순한 나열로 보일 수밖에 없다. 중국의 고사를 충분히 알고 한시의 운율을 즐길 수 있을 만큼 한문 지식을 갖춘 사람에게만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어려운 시이다.
규칙성도 없는 글자 1천 자를 좔좔 외워야 하는 천자문이 과연 초급 한자 교재로 적절하느냐는 비판은 이미 조선 시대부터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중종 22년(1527) 최세진(崔世珍)이 한자 학습서 훈몽자회를 지은 것도 일상적인 한문 생활과 천자문 사이 괴리가 심각했기에 이를 보완하려는 의도에서였다. 정약용도 천자문 교육이 비효율적이라고 강하게 비판하면서 《아학편(兒學編)》이라는 아동용 교재를 집필하였다. 실학자 오달운 역시 뜻도 모르고 외우기만 하는 천자문 같은 어려운 것보다는 차라리 시경을 가르치는 편이 낫다고 주장했다.
물론 천자문이 예부터 한자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의 교재였음은 사실이지만, 본래 학습 교재로 쓰인 글이 아니라서 배우기에 무척 까다롭다. 천자문 자체가 까이기에는 억울하다. 애당초 학습 교재로 만들지 않은 글을 학습용으로 사용해 놓고 문제가 있다고 타박하는 셈이니 말이다. 각 자구들이 다 이전의 경전이나 작품들에서 인용되거나 고사를 바탕으로 압축하고 운을 절묘하게 맞추어 표현한 것들이다.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최소한 사서삼경은 떼고 와야 할 수준이다.
그리고 한문 교육 과정에서도 문법을 넘어가면 추구나 명심보감을 배우지 천자문은 스킵하는 경우가 많다. 위의 언재호야 말고는 어조사가 전혀 안 나오기 때문.
만약 한문이 아닌 한자를 공부하고 싶다면 한국 교육용 한자(1800자) 또는 일본에서 사용하는 일본의 상용한자(2136자), 중국의 통용규범한자표(8105자)를 공부하자. 앞서 1800자만 공부해도 일본이나 중국에 가서 크게 헤맬 일은 없을 것이다.
3. 천 자가 아니다?
겹치는 글자가 있어 1천 자가 아니라는 루머가 있다. '여러분이 몰랐던 상식'이라면서 인터넷에서 쉽게 검색된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며, 결론부터 말해 겹치는 글자 없이 정확히 1천 자가 맞다. 판본의 오류이거나 통용자를 오해한 결과일 것이다.- 국내 판본 가운데에는 禍因惡積이 禍因惡績으로 잘못 표기되어 妾御績紡의 績과 겹치는 경우가 있는데, 원문은 禍因惡積이 맞다. 積은 '쌓을 적'이고 績은 '길쌈할 적'으로 해석해 보면 문맥상으로도 당연하다.
- 竝皆佳妙의 竝과 百郡秦幷의 幷이 같은 글자이므로 겹친다는 주장이 있다. 竝과 幷은 발음과 뜻이 같아 관습적으로 통용하고 해석상으로도 차이가 없으나 자원(字源)이 전혀 다른, 엄연히 별개의 글자이다. 중고음 성모로도 竝은 並母/b/이고, 幷은 幫母/p/이다. 표준 중국어에서는 둘 다 bìng으로 읽지만, 광동어에서는 竝은 bing6으로, 幷은 bing3으로 성조가 다르다. 게다가 한나라 때의 병주는 幷州이지, 竝州가 아니다. 竝의 갑골문을 보면 두 사람이 나란히 정면으로 서 있는 모양의 상형이고, 幷은 두 사람이 나란히 옆으로 서 있는 모양의 상형이다. 竝의 약자는 並이고, 幷의 약자는 并으로 약자도 다르다.[6]
竝의 갑골문 | 幷의 갑골문 |
- 女慕貞烈의 烈이 판본에 따라서는 女慕貞絜로 되었는데, 여기서 絜이 '깨끗할 결'로 쓰여서 紈扇圓潔의 潔과 겹친다는 주장이 있다. 絜과 潔은 '깨끗할 결'이라는 훈음이 공통되기는 하지만 絜은 그런 훈음 외에도 '헤아릴 혈'로도 쓰이는 엄연히 다른 글자이다.
다만, 겹치는 한자가 있어 1천 자가 아니라는 말이 현대 중국어 기준으로는 사실이다. 髪과 發이 간체에서는 发으로 통합된 것처럼 천자문의 몇몇 한자가 통합됐기 때문이다.
4. 천자문 전문
번호 | 한자 | 독음 | 해석 |
1 | 天地玄[7]黃 宇宙洪荒 | 천지현[8]황[9] 우주홍황 | 하늘은 검고[10] 땅은 누르며, 우주[11]는 넓고 거칠다.[12] |
2 | 日月盈昃 辰宿列張 | 일월영측 진[13]수[14]열장 | 해와 달이 차고 기울며, 별들은 넓게 퍼져 있다. |
3 | 寒來暑往 秋收冬藏 | 한래서왕 추수동장 | 찬 것이 오면 더운 것이 가고, 가을에 수확하며 겨울에 저장한다. |
4 | 閏餘成歲 律呂調陽 | 윤여성세 율려조양 | 윤달이 남아 해를 이루고, 율려가 양의 가락을 이루니 |
5 | 雲騰致雨 露結爲霜 | 운등치우 노결위상 | 구름이 올라가 비가 되며, 이슬이 맺혀 서리가 내린다. |
6 | 金生麗水 玉出崑岡 | 금생여[15]수 옥출곤강 | 금은 여수[16]에서 나고 옥은 곤강[17]에서 난다. |
7 | 劍號巨闕 珠稱夜光 | 검호거궐 주칭야광 | 칼은 거궐(전국 시대 월나라 왕의 보검)이 유명하고, 구슬은 야광주가 칭송받는다. |
8 | 果珍李柰 菜重芥薑 | 과진리내 채중개강 | 과일 중엔 자두와 능금[18]이요, 채소 중엔 겨자와 생강이라. |
9 | 海鹹河淡 鱗潛羽翔 | 해함하담 인잠우상 | 바다는 짜고 강은 맑으며, 비늘 있는 것은 (물에) 잠겨있고 깃털 있는 것은 (하늘을) 난다. |
10 | 龍師火帝 鳥官人皇 | 용사화제 조관인황 | (복희는) 용의 이름으로, (염제 신농은) 불로 벼슬 이름을 지었고, (소호는) 새 이름으로 짓고, 황제는 사람의 문화를 열었다. |
11 | 始制文字 乃服衣裳 | 시제문자 내복의상 | (복희씨의 신하 창힐이) 비로소 처음 문자를 만들고, (황제가) 윗옷과 치마를 정했다. |
12 | 推位讓國 有虞陶唐 | 추위양국 유우도당 | 자리에서 물러나 나라를 사양한 자는 유우와 도당이다.[19] |
13 | 弔民伐罪 周發殷湯 | 조민벌죄 주발은탕 | 백성을 위로하고 죄를 벌함은 주나라 무왕과 은나라 탕왕이라. |
14 | 坐朝問道 垂拱平章 | 좌조문도 수공평장 | 조정에 앉아 도를 물으니, 옷자락을 늘어뜨리고 팔짱만 끼고 있어도 밝게 다스려진다[20]. |
15 | 愛育黎首 臣伏戎羌 | 애육려수 신복융강 | 백성을 친자식처럼 아껴 기르면, 모든 오랑캐(융강 - 서융, 강족)들도 신하가 되어 엎드리고, |
16 | 遐邇壹體 率賓歸王 | 하이일체 솔[21]빈귀왕 | 멀고 가까운 데가 다 한 몸이 되어, 거느리고 와서 왕(천자)에게 모인다. |
17 | 鳴鳳在樹 白駒食場 | 명봉재수 백구식장 | 우는 봉황새는 나무 위에 있고 흰 망아지는 마당에서 풀을 뜯는다.[22] |
18 | 化被草木 賴及萬方 | 화피초목 뇌급만방 | 덕화(德化)가 풀, 나무에까지 미치고, 힘입음이 온 누리에 미친다.[23] |
19 | 蓋此身髮 四大五常 | 개차신발 사대오상 | 무릇 이 몸과 터럭은, 네 가지 큰 것(천지군친)과 다섯 가지 떳떳함(인의예지신)으로 이루어졌다. |
20 | 恭惟鞠養 豈敢毁傷 | 공유국양 기감훼상 | 길러 주심을 받들어 곰곰히 생각하면, 어찌 감히 헐고 다치게 할 수 있을까![24] |
21 | 女慕貞烈 男效才良[25] | 여모정렬 남효재량 | 계집은 곧고 굳음을 사모하고 사내는 재주와 어짊을 본받아야 하느니라. |
22 | 知過必改 得能莫忘 | 지과필개 득능막망 | 허물을 알았으면 반드시 고쳐야 하고, 할 수 있게 된 다음에는 잊지 말아야 한다. |
23 | 罔談彼短 靡恃己長 | 망담피단 미시기장 | 남의 모자란 점을 말하지 말고, 나의 좋은 점을 믿지 말라. |
24 | 信使可覆 器欲難量 | 신사가복 기욕난량 | 언약은 지킬 수 있게 하고, 기량을 얻고자 함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증진하라. |
25 | 墨悲絲染 詩讚羔羊 | 묵비사염 시찬고양 | 묵자는 흰 실이 검게 물들여진 것을 슬퍼하였고, 시경에서는 고양편이 찬미되었다. |
26 | 景行維賢 克念作聖 | 경행유현 극념작성 | 큰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어진 사람이 되니, 자잘한 생각을 이겨 나간다면 성인이 될 수 있다. |
27 | 德建名立 形端表正 | 덕건명립 형단표정 | 덕이 세워지면 이름이 서게 되고, 몸매가 깔끔해야 겉모습이 똑바르게 된다. |
28 | 空谷傳聲 虛堂習聽 | 공곡전성 허당습청 | 텅 빈 골짜기에서도 소리는 전해지듯, 빈 대청에는 들림이 겹쳐지듯 한다 |
29 | 禍因惡積 福緣善慶 | 화인악적 복연선경 | 언짢은 일은 못된 짓을 쌓는 데서 말미암는 것이요, 복은 착한 일을 쌓은 경사로움에서 말미암는 것이다. |
30 | 尺璧非寶 寸陰是競 | 척벽비보 촌음시경 | 지름이 한 자나 되는 보옥도 시간에 비하면 보배라고 할 수 없다. |
31 | 資父事君 曰嚴與敬 | 자부사군 왈엄여경 | 어버이 섬기는 것을 바탕 삼아 임금 섬기는 것을, 엄격함과 우러름이라고 하니, |
32 | 孝當竭力 忠則盡命 | 효당갈력 충즉[26]진명 | 효도는 마땅히 그 힘을 다하여야 하고, 충성은 목숨을 다해야만 한다. |
33 | 臨深履薄 夙興溫凊 | 임심리박 숙흥온청[27] | 깊은 곳에 임하듯 하고 얇은 얼음을 밟듯이 세심 주의하여야 하며 일찍 일어나서 잠자리가 추우면 덥게, 더우면 서늘케 하는 것이 부모 섬기는 절차이다. |
34 | 似蘭斯馨 如松之盛 | 사란사형 여송지성 | 군자의 지조는 난초 향기와 비슷하고, 소나무가 무성함과 같다. |
35 | 川流不息 淵澄取暎 | 천류불식 연징취영 | 냇물이 흘러 쉬지 않음이여, 못물이 맑아 그림자를 잡도다 |
36 | 容止若思 言辭安定 | 용지약사 언사안정 | 매무새와 몸가짐을 마치 생각하는 듯하고, 말의 씀씀이는 조용하고 올바르게 해야 한다. |
37 | 篤初誠美 愼終宜令 | 독초성미 신종의령 | 시초를 돈독하게 함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나, 결말을 온전히 마무리하도록 마땅히 경계해야 한다 |
38 | 榮業所基 籍甚無竟 | 영업소기 적심무경 | 영광된 사업에는 기인하는 바가 있게 마련이고, 세상에 떠들썩하게 퍼져 끝이 없을 것이라. |
39 | 學優登仕 攝職從政 | 학우등사 섭직종정 | 배운 것이 넉넉하면 벼슬에 오를 수 있고, 자리를 잡아 정사에 몸담는다. |
40 | 存以甘棠 去而益詠 | 존이감당 거이익영 | 이 팥배나무를 남겨두라, 떠난 뒤 더욱 기려서 읊는다니.[28] |
41 | 樂殊貴賤 禮別尊卑 | 악[29]수귀천 예별존비 | 음악은 신분의 높음과 낮음에 따라 다르고, 예도는 윗사람과 아랫사람을 가린다. |
42 | 上和下睦 夫唱婦隨 | 상화하목 부창부수 | 위에서 따사로워야 아래에서 구순하고, 지아비가 이끌면 지어미는 따른다. |
43 | 外受傅訓 入奉母儀 | 외수부훈 입봉모의 | 밖에 나가서는 스승의 가르침을 받고, 들어와서는 어진 어미의 몸가짐을 받는다. |
44 | 諸姑伯叔 猶子比兒 | 제고백숙 유자비아 | 모든 고모와 큰아버지와 삼촌들은, 조카를 자기 자식처럼 여기고, 자기 아이처럼 다정하게 대해야 하며, |
45 | 孔懷兄弟 同氣連枝 | 공회형제 동기련지 | 깊게 형제를 그리워해야 하니, 같은 기운을 받아 이어진 가지와 같기 때문이다. |
46 | 交友投分 切磨箴規 | 교우투분 절마잠규 | 벗을 사귀는 데에는 정분을 함께 나눠야 하고, 깎고 갈며 서로 잡도리하여 바른말로 잡아줘야 한다. |
47 | 仁慈隱惻 造次弗離 | 인자은측 조차불리 | 어질고 사랑하며 안쓰럽게 여기는 마음은, 잠깐이라도 떠나보나서는 안 된다. |
48 | 節義廉退 顚沛匪虧 | 절의렴퇴 전패비휴 | 절개와 의리와 청렴과 물러남은 엎어지고 자빠지는 순간에도 이지러져서는 안된다. |
49 | 性靜情逸 心動神疲 | 성정정일 심동신피 | 마음 바탕이 고요하면 느낌이 푸근하고, 마음이 흔들리면 정신이 고달파진다. |
50 | 守眞志滿 逐物意移 | 수진지만 축물의이 | 믿는 마음을 지키면 뜻이 가득해지고, 물욕을 좇아가면 생각 또한 이리저리 움직이게 된다. |
51 | 堅持雅操 好爵自縻 | 견지아조 호작자미 | 바른 지조를 굳게 가지면, 좋은 벼슬이 스스로 걸려든다. |
52 | 都邑華夏 東西二京 | 도읍화하 동서이경 | 중국의 서울은 동경과 서경의 둘로 되었으니[30] |
53 | 背邙面洛 浮渭據涇 | 배망면락 부위거경 | (낙양은) 북망산을 등 뒤로 하여 낙수[31]를 바라보고 있으며, (장안은) 위수를 위로 띄우고 경수[32]를 움켜쥐고 있다.[33] |
54 | 宮殿盤鬱 樓觀飛驚 | 궁전반울 누관비경 | 궁궐과 전각은 굽이굽이 들어차 있고, 다락과 관대는 새가 날고 말이 솟구치는 듯하다. |
55 | 圖寫禽獸 畫綵仙靈 | 도사금수 화채선령 | 온갖 날짐승과 길짐승을 그림으로 그렸고, 신선과 신령스러운 것들을 색칠해서 그렸다. |
56 | 丙舍傍啓 甲帳對楹 | 병사방계 갑장대영 | 신하들이 머무는 집은 양옆으로 나란히 열려 있고, 눈부신 가림막은 두 기둥 사이에 드리워 있다. |
57 | 肆筵設席 鼓瑟吹笙 | 사연설석 고슬취생 | 홑자리와 겹자리를 깔고서, 비파를 뜯고 생황을 분다. |
58 | 陞階納陛 弁轉疑星 | 승계납폐 변전의성 | 섬돌을 올라 궁전에 들어가니, 고깔 움직이는 것이 별인 듯 어리둥절하다. |
59 | 右通廣內 左達承明 | 우통광내 좌달승명 | 오른쪽은 광내전으로 통하고, 왼쪽은 승명려에 닿는다. |
60 | 旣集墳典 亦聚群英 | 기집분전 역취군영 | 이미 삼분, 오전[34] 같은 책을 모으고, 또한 뭇 뛰어난 사람들도 모았다. |
61 | 杜稿[35]鍾隸 漆書壁經 | 두고종예 칠서벽경 | 두조[36]의 초서와 종요의 예서가 있고, 옻칠로 쓴 벽 속의 경전이 있다. |
62 | 府羅將相 路俠槐卿 | 부라장상 노협괴경 | 관부에는 장수와 정승들이 벌여 있고, 길은 공경의 집들을 끼고 있다. |
63 | 戶封八縣 家給千兵 | 호봉팔현 가급천병 | 여덟 고을을 식읍으로 하고, 그 가문에는 숱한 군사들을 주었다. |
64 | 高冠陪輦 驅轂振纓 | 고관배련 구곡진영 | 높은 갓 쓴 이들이 황제의 수레를 모시니, 말을 몰아 바퀴를 굴릴 때마다 끈과 술이 휘날리며, |
65 | 世祿侈富 車駕肥輕 | 세록치부 거가비경 | 대대로 녹을 받아 부유해지니, 말은 살찌고 수레는 가볍다. |
66 | 策功茂實 勒碑刻銘 | 책공무실 늑비각명 | 공을 금매겨 옹골참[37]에 힘쓰게 하여, 비에 새기어 명문으로 파 놓는다. |
67 | 磻溪伊尹 佐時阿衡 | 반계이윤 좌시아형 | 반계(강태공)[38]와 이윤은 때를 도왔고, 천하를 바로잡기 위하여 기댄 사람이며, |
68 | 奄宅曲阜 微旦孰營 | 엄택곡부 미단숙영 | 곡부[39]를 어루만져 가라앉히니, 단이 아니면 누가 다스릴 수 있었겠는가. |
69 | 桓公匡合 濟弱扶傾 | 환공광합 제약부경 | 제환공은 천하를 바로잡고 끌어모아, 약한 자를 건지고 기우는 자를 붙들어 주었다. |
70 | 綺回[40]漢惠 說感武丁 | 기회한혜 열[41]감무정 | 기리계[42]는 한나라 혜제를 돌아오게 하였고, 부열[43]은 무정과 따라 느끼었다. |
71 | 俊乂密勿 多士寔寧 | 준예밀물 다사식녕 | 재주와 덕이 뛰어난 사람들이 힘써 일하니, 대들보처럼 많은 인재들이 있어 참으로 푸근하다. |
72 | 晋楚更覇 趙魏困橫 | 진초경[44]패 조위곤횡 | 진(晉)과 초(楚)가 번갈아 패업을 이뤘고, 조(趙), 위(魏)는 연횡책 탓에 어려움을 겪었다. |
73 | 假途滅虢 踐土會盟 | 가도멸괵 천토회맹 | 길을 빌려 괵국을 멸하고 (진나라 문공이 제후를) 천토에 모아서 (주나라의 천자를 공경하고 조공할 것을) 맹세했다. |
74 | 何遵約法 韓弊煩刑 | 하준약법 한폐번형 | 소하는 간략한 법을 준수했고, 한비는 번잡한 형벌로 피폐케 했다. |
75 | 起翦頗牧 用軍最精 | 기전파목 용군최정 | 백기, 왕전, 염파, 이목의 용병이 가장 정묘하였다. |
76 | 宣威沙漠 馳譽丹靑 | 선위사막 치예단청 | 드레[45]를 사막에까지 펼치니, 색칠로 그려져 좋은 이름을 드날렸다. |
77 | 九州禹跡 百郡秦幷 | 구주우적 백군진병 | 구주는 우임금의 자취요, 모든 군은 진나라 때 아우른 것이다. |
78 | 嶽宗恒岱 禪主云亭 | 악종항대 선주운정 | 오악은 항산과 대산(태산)을 으뜸으로 하고, 선 제사는 운운산과 정정산에서 한다. |
79 | 雁[46]門紫塞 鷄田赤城 | 안문자새 계전적성 | 안문과 자새, 계전과 적성이며, |
80 | 昆池碣石 鉅野洞庭 | 곤지갈석 거야동정 | 곤지와 갈석, 거야와 동정은, |
81 | 曠遠綿邈 巖峀杳冥 | 광원면막 암수묘명 | 드넓어 아스라이 멀고, 바위와 묏부리는 아득하게 깊다. |
82 | 治本於農 務玆稼穡 | 치본어농 무자가색 | 다스림은 농사로서 밑바탕을 삼으니, 바로 이 심고 거두는 일에 힘쓰게 하여, |
83 | 俶載南畝 我藝黍稷 | 숙재남묘 아예서직 | 비로소 남양의 밭에서 농작물을 배양(培養)하니, 나는 기장과 피를 심는 일에 열중(熱中)한다. |
84 | 稅熟貢新 勸賞黜陟 | 세숙공신 권상출척 | 익은 곡식에 구실을 매기고 햇것을 공물로 바치며, 타이르고 상 주고 내치고 올려 준다. |
85 | 孟軻敦素 史魚秉直 | 맹가돈소 사어병직 | 맹자는 바탕을 두텁게 하였고, 사어[47]는 올곧음을 굳게 지녔다. |
86 | 庶幾中庸 勞謙謹勅 | 서기중용 노겸근칙 | 중용에 가까우려면, 부지런히 일하고 고분고분하고 삼가고 잡도리해야 한다. |
87 | 聆音察理 鑑[48]貌辨色 | 영음찰리 감모변색 | 소리를 듣고 갈피를 살피며, 생김새를 보고 낌새를 가리어 안다. |
88 | 貽厥嘉猷 勉其祗植 | 이궐가유 면기지식 | 그분에게 아름다운 얼개를 주고, 그것을 떠받들어 심기에 힘써라. |
89 | 省躬譏誡 寵增抗極 | 성궁기계 총증항극 | 자기 몸을 살펴서 나무람이나 잡도리함이 있을까 조심하고, 임금의 고임이 더할수록 잘난 체하여 뽐내지 말아야 한다. |
90 | 殆辱近恥 林皐幸卽 | 태욕근치 임고행즉 | 위태로움과 욕됨은 부끄러움이 가까우니, 숲이 우거진 시냇가 언덕으로 나아가야 한다. |
91 | 兩疏見機 解組誰逼 | 양소견기 해조수핍 | 소광과 소수[49]는 낌새를 알아차려, 인끈을 풀었으니 누가 다그칠 수 있으리오. |
92 | 索居閑處 沈默寂寥 | 색[50]거한처 침묵적요 | 홀로 떨어져 살고 한갓지게 머무니, 잠긴 듯 잠잠하고 고요하구나. |
93 | 求古尋論 散慮逍遙 | 구고심론 산려소요 | 옛것과 생각을 나누었던 자취를 찾고, 걱정을 흩어 버리고 한가로이 노닌다. |
94 | 欣奏累遣 慼謝歡招 | 흔주루견 척사환초 | 기쁜 일은 아뢰어지고 근심은 내쳐지며, 슬픔은 사라지고 즐거움이 손짓하여 부른다. |
95 | 渠荷的歷 園莽抽條 | 거하적력 원망추조 | 도랑의 연꽃은 또렷이 빛나고, 동산에 잡풀은 죽죽 뻗어 우거졌으며, |
96 | 枇杷晩翠 梧桐早凋 | 비파만취 오동조조 | 비파나무는 늦게까지 푸르고, 오동나무는 일찍 시든다. |
97 | 陳根委翳 落葉飄颻 | 진근위예 낙엽표요 | 묵은 뿌리들은 말라 시들고, 떨어진 잎들은 바람에 흩날린다. |
98 | 遊鵾獨運 凌摩絳霄 | 유곤독운 능마강소 | 곤어[51]는 홀로 제 뜻대로 노닐다가, 하늘 테두리를 넘어 미끄러지듯 날아간다. |
99 | 耽讀翫市 寓目囊箱 | 탐독완시 우목낭상 | 저잣거리 책방에서 글 읽기에 골똘하니, 눈길을 붙이기만 하면 그대로 주머니와 상자 속에 갈무리하는 것 같다. |
100 | 易輶攸畏 屬耳垣牆 | 이유유외 속이원장 | 쉽고 가볍게 보이는 것은 두려워해야 할 바이니, 귀를 담장에 붙여놓았기 때문이다. |
101 | 具膳飱[52]飯 適口充腸 | 구선손반 적구충장 | 찬 갖춘 밥을 물 말아 먹고, 입에 맞게 창자를 채우는 것이니, |
102 | 飽飫烹宰 饑厭糟糠 | 포어팽재 기염조강 | 배부르면 고기 음식이라도 먹기 싫고, 배고프면 술지게미나 겨도 달갑게 느껴진다. |
103 | 親戚故舊 老少異糧 | 친척고구 노소이량 | 곁붙이와 옛 친구들을 대접할 때에는, 늙고 젊음에 따라 먹을 것을 달리해야 한다. |
104 | 妾御績紡 侍巾帷房 | 첩어적방 시건유방 | 아내와 첩은 길쌈을 하고, 장막 친 안방에서 수건 들고 시중든다. |
105 | 紈扇圓[53]潔 銀燭煒煌 | 환선원결 은촉휘황 | 흰 비단으로 만든 부채는 둥글고 깨끗하며, 은빛 나는 촛불은 환하게 빛나고, |
106 | 晝眠夕寐 藍筍象床 | 주면석매 남순상상 | 낮에는 졸고 밤에는 자니, 대나무 침상과 상아로 치레한 긴 걸상이다. |
107 | 絃[54]歌酒讌 接杯擧觴 | 현가주연 접배거상 | 거문고 타고 노래하며 술 마시는 잔치 마당에서는 얌전하게 잔을 주고 두 손으로 들어 올려 권하고, |
108 | 矯手頓足 悅豫且康 | 교수돈족 열예차강 | 손을 굽혔다 펴고 발을 구르니, 기쁘고 즐거우며 걱정 없기 그지없다. |
109 | 嫡後嗣續 祭祀蒸嘗 | 적후사속 제사증상 | 맏아들은 대를 이어, 조상께 증상 제사를 지내니, |
110 | 稽顙再拜 悚懼恐惶 | 계상재배 송구공황 | 이마를 땅에 대어 거듭 절하되, 두렵고 두려워서 거듭 두려워해야 한다. |
111 | 牋牒簡要 顧答審詳 | 전첩간요 고답심상 | 편지는 간동하게 간추려서 하고, 안부를 묻거나 답장할 대에는 잘 살펴서 빈틈없이 해야 한다. |
112 | 骸垢想浴 執熱願凉 | 해구상욕 집열원량 | 몸에 때가 끼면 목욕을 생각하고 뜨거운 것을 잡으면 시원한 것을 원한다. |
113 | 驢騾犢特 駭躍超驤 | 여라독특 해약초양 | 나귀와 노새와 송아지가 놀라서 뛰고 달린다. |
114 | 誅斬賊盜 捕獲叛亡 | 주참적도 포획반망 | 도적을 베며 배반하고 도망한 자를 사로잡는다. |
115 | 布射僚丸 嵇琴阮嘯 | 포사료환 혜금완소 | 여포는 활을 잘 쐈고 웅의료(熊宜僚)[55]는 탄환을 잘 가지고 놀았고[56] 혜강(嵇康)은 거문고를 잘 타고 완적(阮籍)은 휘파람을 잘 불었다.[57] |
116 | 恬筆倫紙 鈞巧任釣 | 염필륜지 균교임조 | 몽염은 붓, 채륜은 종이를 만들었고 마균은 기교가 뛰어났으며 임공자(任公子, 전국 시대 임나라의 공자라는 사람이다!)는 낚싯대를 만들었다. |
117 | 釋紛利俗 竝皆佳妙 | 석분리속 병개가묘 | (위에 나온 기술들은)어지러움을 풀고 세속을 이롭게 하니 아울러 모두 아름답고 신묘했다. |
118 | 毛施淑姿 工嚬姸笑 | 모시숙자 공빈연소 | 모장(毛嬙)과 서시(西施)는 생김새가 아름다운데, 찡그리는(顰) 모습도 공교하고(간드러지고), 웃는 모습은 곱구나. |
119 | 年矢每催 曦[58]暉朗曜[59] | 연시매최 희휘낭요 | 해는 화살처럼 늘 재촉하고 햇빛은 밝고 빛난다. |
120 | 璇璣懸斡 晦魄環照 | 선기현알 회백환조 | 선기옥형(옥으로 만든 천체 관측 기구)은 매달린 채로 돌고, 그믐이 되면 빛 없는 달이 둘레만 비출 뿐이다. |
121 | 指薪修祐 永綏吉邵[60] | 지신수우 영수길소 | 복을 닦는 것은 손가락으로 장작을 지피는 것과 같으니, 오래도록 편안하여 상서로움이 높아지리라. |
122 | 矩步引領 俯仰廊廟 | 구보인령 부앙랑묘 | 자로 잰 듯 법도대로 걷고, 옷깃을 얌전하고 바르게 여미며 조정 일을 깊이 생각해서 치러 내야 하며, |
123 | 束帶矜莊 徘徊瞻眺 | 속대긍장 배회첨조 | 옷갓을 갖춰 떳떳한 몸가짐을 하고,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이곳저곳을 바라보며 골똘히 생각한다. |
124 | 孤陋寡聞 愚蒙等誚 | 고루과문 우몽등초 | 고루하고 배움이 적으면 어리석고 몽매한 자와 똑같이 꾸짖는다. |
125 | 謂語助者 焉哉乎也 | 위어조자 언재호야 | 어조사라 일컫는 것은 '언ㆍ재ㆍ호ㆍ야'이다.[61] |
5. 이야깃거리
천자문을 공부할 필요가 없는 현대 한국인들이라도 대부분은 상술한 초반부인 '천지현황'까지는 순서대로 훈음까지 확실히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천자문을 알려주는 노래가 따로 있기 때문에 첫 구절인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까지는 알고 있다. 이를 개사한 동요도 유명한데, 하늘 천과 땅 지까지는 같지만 그 다음부턴 검은 솥(또는 가마솥)의 누룽지를 찾는다.워낙 유명하다 보니 천자문=한자라는 식의 인식이 꽤나 널리 퍼져 있다. 특히 국내에서는 마법천자문와 태극천자문의 인기 덕에 더욱더. 당연하지만 한자는 꼴랑 천 자만 있는 게 아니다.
2018년 1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천자문 실물이 발견되었다. # 기존의 가장 오래된 판본은 <광주판 천자문>(1575년 인쇄, 일본 도쿄대 소장)이었는데 고려 시대에 제작된 석각이 발견되면서 순식간에 500년 이상 연대가 올라가게 된 것. 이 석각은 통일 신라 시대에 제작된 것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연대가 더 올라갈 수도 있다.
저술 당시 사용되었던 언어인 중고한어로 재구하여 낭독하면 이렇게 된다.
이걸 이용해서 원주율을 외운 어르신도 있다. 해당 어르신은 촬영 당시 66세였다.
한국에선 외울 때 "하늘 천, 따 지, 검을 현, 누를 황..."처럼 뜻과 음을 번갈아서 소리내지만 중국에선 보통화 기준으로 "톈(tiān), 디(dì), 쉔(xuán), 황(huáng)..."처럼 음만 소리낸다. 원어민에게는 음이 뜻이기 때문이다.
[1] 그의 것은 二儀日月로 시작한다.[2] 흔히 '기울 측'으로 쓰는 글자는 위의 日(날 일)이 빠진 형태(仄)이다. 仄은 특급까지는 아니지만 준특급까지 올라가야 나온다. 仄과 昃은 통자 관계에 있는 글자이다.[3] 이것도 盈德郡만 아니었으면 진작 준특급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철도 차량 구석에 쓰인 제원 중 "영"도 뜻은 이것이다.[4] 여러 뉘앙스로 쓰이기는 하지만, 대표적으로 각각 '여기에', '-는구나/-구나', '-는가/-(으)ㄴ가?', '~(이)다'와 같은 의미로 쓰인다.[5] 一은 실려 있지 않으나 같은 한자로 壹이 대신 실려 있다.[6] 단 중국의 간체자에서는 并으로 통일시켜 버렸다.[7] 일부 판본에는 元으로 적혔는데 송나라 황실 시조의 이름인 조현랑의 이름자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휘종 어필 천자문에서 볼 수 있다.[8] 元으로 적힌 판본에는 원.[9] 여기까지가 한자를 배우지 않거나 천자문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자주 들었을 말들이다.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10] 낮 하늘이 아닌 밤하늘.[11] 천자문 당시의 '우주'는 지구 밖 세계가 아닌 시간과 공간을 뜻한다.[12] 본래 천현지황으로 적어야 하나 도치되었다.[13] 辰의 독음에 관해서는 해당 문서를 참고할 것.[14] '잘 숙'이 아니라 '별자리 수'로 읽는 용법이다. 주의하자.[15] 첫 글자가 아니므로 '려'라고 써야 맞겠지만, 麗水가 고유 명사이므로 보통 두음 법칙을 씌워서 '여'라고 표기된다.[16] 당연히 대한민국 전라남도에 있는 여수시는 아니고 중국 운남성(雲南省) 영창부(永昌府) 여강납서족(麗江納西族) 자치현에 위치한 강을 말한다. 금사강(金沙江)이라 불리기도 한다.# 여담으로 여강은 샹그릴라의 실제 모델인 지역이고 (샹그릴라시와는 별개) 금사강은 태평천국의 석달개와 대장정의 희비가 엇갈린 대도하의 노정교(瀘定橋)로 유명하다.[17] 곤강을 뜻하는 곤륜산맥은 티베트 북부와 청해성 서부에 걸쳐 있다. 실제로 청해성은 옥이 생산되는 곳으로 유명하다.[18] 버찌라는 의견도 있다.[19] 유우는 제순 유우씨를, 도당은 제요 도당씨를 말한다. 두 임금이 양위한 것을 의미하는 구절이다.[20] 서경의 구절. (〈무성(武成)〉편에 나오는 「신용을 두텁게 하고 의리를 밝히며, 덕을 높이고 공로를 갚는다면, 옷을 드리우고 손을 마주잡고도 천하가 다스려진다. 惇信明義 崇德報功 垂拱而天下治」)[21] '률'로 읽을 것 같지만 아니다.[22] 첫 구절은 시경(詩經) <권아(卷阿)>편에서 따왔고 두 번째 구절은 시경 <백구(白駒)>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23] 시경의 "은택이 초목에 미친다"라는 말에서 나온 구절.[24] 효경의 신체발부 수지부모와 그대로 이어지는 말이다.[25] 명나라의 문징명(文徵明) 쓴 사체천자문(四體天字文, 말 그대로 네 가지 서체로 쓰였다.)에는 '女慕貞絜(깨끗할 결자에서 삼수변이 빠진 한자, '헤아릴 혈'로도 읽으나 여기서는 '깨끗할 결'로 읽음)이요 男效才良이라'라고 나와있다. 潔과 뜻은 같다[26] '칙'이 아닌 '즉'으로 읽는 용법이다.[27] '정'으로 읽기도 하며, 윈도에서는 '청'으로 변환해야 한다. 대법원 인명용 한자 지정 독음 역시 '청'이다.[28] 주 소공석이 섬서 지방에서 선정을 베풀 때 팥배나무 아래에서 직접 송사를 봤고, 그가 죽은 후 백성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그 팥배나무를 귀중히 여기며 그를 찬미하는 노래를 지어 불렀다는 고사에서 유래되었다.[29] '낙'으로 읽지 않게 조심하자.[30] 동쪽 도읍은 낙양을 서쪽 도읍은 장안을 의미한다.[31] 낙양 밑으로 흐르는 강. 황하의 지류이기도 하다. 현재는 뤄허(洛河)라고 불린다.[32] 涇水. 중국 감숙성에서 발원하는 강.[33] 위수는 장안의 왼쪽, 경수는 장안의 오른쪽으로 흐르고 있으며 이 두 강이 장안에서 합쳐져 황하로 합류한다. 이때 위수는 맑고 경수는 탁해 두 강이 합쳐져도 강이 한동안 섞이지 않아 분명하게 구분된다고 해서 경위(涇渭)라는 단어가 생기게 되었다.[34] 삼황오제의 사적을 기재한 책. 현재는 전하지 않음.[35] 어떤 판본에는 '藁', '稾'.[36] 두조(杜操), 자 백도(伯度).[37] 실속 있게 꽉 찬 상태에 있고 기운차다.[38] 반계는 강태공이 낚시를 하던 개울의 이름이며, 주문왕과 강태공이 처음 만난 장소이다.[39] 곡부(취푸)는 주공 단이 분봉받은 노(魯)나라의 수도이다.[40] 어떤 판본에는 '廻'.[41] '설'이라고 읽을 것 같지만 아니댜.[42] 한나라 초기 상산사호(商山四皓)라 불리던 4인의 저명한 학자들 중 하나.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이 태자 유영을 폐하고 척부인의 아들 유여의를 태자로 봉하려 할 때 다른 3인과 함께 유방을 찾아가 간언하여 유방이 이를 그만두게 하였다.[43] 상 양왕(무정) 때의 어진 신하로, 무정이 꿈에 나타난 현인의 모습을 보고 생김새가 똑같은 부열을 초빙하여 재상으로 삼았다고 하는 전설이 있다.[44] '갱'이라고 읽을 것 같지만 아니다.[45] 사람의 됨됨이에서 느껴지는, 침착하고 점잖은 상태.[46] 어떤 판본에는 '鴈'.[47] 춘추 시대 위영공의 신하로, 위영공이 충신 거백옥(遽伯玉) 대신 간신 미자하(彌子瑕)를 중용하자 자신의 시신을 관에 넣지 말고 북쪽 창 아래에 두도록 아들에게 명하여. 자신의 시신을 통해 간언을 한 인물이다.[48] 어떤 판본에서는 '監'으로, 鑑의 초문이다. 사람(臣)이 그릇(皿)에 있는 물을 보는 글자가 監(볼 감, 살필 감)이며, 다시 金(쇠 금) 부수를 붙여서 鑑(거울 감)을 만든 것이다.[49] 한나라(전한) 시기의 유학자이자 관료.[50] 삭이다 색이다 말이 많은데 일단 국립국어원에서는 '색거'와 '삭거'를 모두 표준어로 인정한다. 索을 '찾을 색', '끈 삭'처럼 의미에 따라 발음을 구분하기도 하지만, 이미 중고음 당시부터 蘇各切(sɑk), 山戟切(ʂiɐk), 山責切(ʂæk)으로 여러 발음이 공존했고, 현재 표준 중국어에서는 suǒ 한 가지로 발음하므로 구분할 큰 의미는 없다. 참고로 광동어에서는 '찾다'일 때는 saak3(싹), 노끈·독거의 뜻일 때는 sok3(쏙)으로 읽는 쪽이 맞지만, 광동어 노래나 방송을 들어보면 sok3으로만 읽는 경우가 많다.[51] 장자(莊子)의 저서 장자(莊子)에 나오는 크기가 수천 리에 달했다는 상상 속의 물고기. 나중에 붕새(鵬)로 변해 하늘을 날아간다고 한다.#.[52] 어떤 판본에는 밥 찬 '餐'.[53] 어떤 판본에서는 '圜'으로, 둘 다 '둥글 원'으로 쓰인 글자이다.[54] 어떤 판본에는 '弦'.[55] 춘추시대 초나라 초혜왕 시기의 인물.[56] 주석에 따르면 탄환 세 개를 번갈아 던지며 놀았다고 한다. 즉 저글링을 잘한 것이다?!![57] 죽림칠현 관련 고사[58] 어떤 판본에는 '羲'.[59] 어떤 판본에는 '耀'.[60] 어떤 판본에는 '劭'.[61] 이 네 어조사는 문장의 끝에서 의문(哉, 乎)과 종결(焉, 也)을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