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몽자회 | ||
| 上권 | 中권 | 下권 |
| <colbgcolor=#AA8443><colcolor=#fff> 훈몽자회 訓蒙字會 | |
| | |
| 출간 | 1527년 (중종 22) |
| 편저 | 최세진(崔世珍) |
| 권수 | 3권 1책 |
| 소장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
|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 |
| 서울대학교 규장각 도서관 | |
1. 개요
훈몽자회(訓蒙字會)는 조선 중종 22년(1527년)에 어문학자 최세진(崔世珍)이 지은 어린이용[1] 한자 교재이다. 한자 3360자를 주제별로 분류하고 훈민정음으로 훈음(뜻과 소리)을 달았다.기존의 한자 학습 교재 천자문은 중국의 고사를 충분히 알아야 이해가 되는 시(詩)인지라, 일상에서 볼 일이 없는 글자들이 너무 많았다. 서두부터 하늘과 땅, 우주, 해와 달 같은 게 나오듯 어린이가 이해하기에는 어려우며, 문장도 일상생활과는 거리가 멀었다. 따라서 어린이에게 먼저 한자의 훈음과 쓰임을 가르치기 위해 이 책을 만들었다.
현대에는 중세 한국어 연구 자료로 더욱 높이 평가받는다. 훈민정음으로 쓰인 한자의 훈음 덕분에 중세 한국어 어휘를 다수 파악할 수 있어, 국어사 연구의 이정표가 된다. 또한 한국어문회에서 전국한자능력검정시험의 배정한자의 대표 훈음을 정하는 데에 참고 자료로 이용되었다.
2. 내용
2.1. 서문
훈몽자회의 서문[2]은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훈몽자회인(訓蒙字會引) : 저자 최세진이 이 책을 만든 이유를 설명한 부분
- 범례(凡例) : 이 책의 개요를 설명한 부분으로 10개의 범례 조항과 언문자모,평상거입정위지도가 있다.
- 언문자모(諺文字母) : 훈민정음의 발음과 용법을 설명한 부분으로 현재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받는 부분이다.
- 평상거입정위지도(平上去入定位之圖) : 사성음을 시각적으로 나타낸 부분
- 훈몽자회목록(訓蒙字會目錄) : 상권, 중권, 하권의 각 주제들을 나열한 목차에 해당하는 부분
2.1.1. 언문자모
훈몽자회가 중세 한국어 연구 자료로 높이 평가받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한글 자모의 이름과 순서가 처음 나타난 것이 이 책이란 점이다. 훈몽자회의 서문 중 '언문자모'라는 부분에서 훈민정음을 모르는 사람을 위해 훈민정음 각 자모의 발음과 용법을 간략하게 해설했는데, 여기서 한글 자모의 명칭과 순서가 처음으로 나타났다.위 사진은 훈몽자회(조선광문회본)의 언문자모에서 자모의 이름이 나타난 부분만을 가져온 것이다. 해당 사진의 원문을 한 줄씩 현대 국어 해석과 함께 적으면 아래와 같다(검은 글씨가 원문, 파란 글씨가 해석).
初聲終聲通用八字
초성과 종성에 두루 쓰이는 여덟 자
ㄱ其役ㄴ尼隱ㄷ池(末)ㄹ梨乙ㅁ眉音ㅂ非邑ㅅ時(衣)ㆁ異凝
ㄱ기역ㄴ니은ㄷ디귿ㄹ리을ㅁ미음ㅂ비읍ㅅ시옷ㆁᅌᅵ으ᇰ
(末)(衣)兩字只取本字之釋俚語爲聲
(末)(衣) 두 자는 다만 그 글자의 우리말 뜻을 취해 소리로 사용한다.
其尼池梨眉非時異八音用於初聲
기니디리미비시ᅌᅵ 여덟 음은 초성에 사용되고,
役隱(末)乙音邑(衣)凝八音用於初聲
역은귿을음읍옷으ᇰ 여덟 음은 종성에 사용된다.
初聲獨用八字
초성에만 쓰이는 여덟 자
ㅋ(箕)ㅌ治ㅍ皮ㅈ之ㅊ齒ㅿ而ㅇ伊ㅎ屎
ㅋ키ㅌ티ㅍ피ㅈ지ㅊ치ㅿᅀᅵㅇ이ㅎ히
(箕)字亦取本字之釋俚語爲聲
(箕)자도 그 글자의 우리말 뜻을 취해 소리로 사용한다.
中聲獨用十一字
중성에만 쓰이는 열한 자
ㅏ阿ㅑ也ㅓ於ㅕ余ㅗ吾ㅛ要ㅜ牛ㅠ由ㅡ應終不聲用
ㅏ야ㅑ야ㅓ어ㅕ여ㅗ오ㅛ요ㅜ유ㅡ으((應에서))종성은 쓰지 않는다.
ㅣ伊只用中聲ㆍ思不用初聲
ㅣ이((伊에서))중성만 쓴다ㆍᄋᆞ((思에서))초성을 쓰지 않는다.
초성과 종성에 두루 쓰이는 여덟 자
ㄱ其役ㄴ尼隱ㄷ池(末)ㄹ梨乙ㅁ眉音ㅂ非邑ㅅ時(衣)ㆁ異凝
ㄱ기역ㄴ니은ㄷ디귿ㄹ리을ㅁ미음ㅂ비읍ㅅ시옷ㆁᅌᅵ으ᇰ
(末)(衣)兩字只取本字之釋俚語爲聲
(末)(衣) 두 자는 다만 그 글자의 우리말 뜻을 취해 소리로 사용한다.
其尼池梨眉非時異八音用於初聲
기니디리미비시ᅌᅵ 여덟 음은 초성에 사용되고,
役隱(末)乙音邑(衣)凝八音用於初聲
역은귿을음읍옷으ᇰ 여덟 음은 종성에 사용된다.
初聲獨用八字
초성에만 쓰이는 여덟 자
ㅋ(箕)ㅌ治ㅍ皮ㅈ之ㅊ齒ㅿ而ㅇ伊ㅎ屎
ㅋ키ㅌ티ㅍ피ㅈ지ㅊ치ㅿᅀᅵㅇ이ㅎ히
(箕)字亦取本字之釋俚語爲聲
(箕)자도 그 글자의 우리말 뜻을 취해 소리로 사용한다.
中聲獨用十一字
중성에만 쓰이는 열한 자
ㅏ阿ㅑ也ㅓ於ㅕ余ㅗ吾ㅛ要ㅜ牛ㅠ由ㅡ應終不聲用
ㅏ야ㅑ야ㅓ어ㅕ여ㅗ오ㅛ요ㅜ유ㅡ으((應에서))종성은 쓰지 않는다.
ㅣ伊只用中聲ㆍ思不用初聲
ㅣ이((伊에서))중성만 쓴다ㆍᄋᆞ((思에서))초성을 쓰지 않는다.
표로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3]
| 낱자 | 한자 | 읽기 | | 낱자 | 한자 | 읽기 | | 낱자 | 한자 | 읽기 |
| ㄱ | 其役 | 기역 | ㅋ | 箕 | 키 | ㅏ | 阿 | 아 | ||
| ㄴ | 尼隱 | 니은 | ㅌ | 治 | 티 | ㅑ | 也 | 야 | ||
| ㄷ | 池末 | 디귿 | ㅍ | 皮 | 피 | ㅓ | 於 | 어 | ||
| ㄹ | 梨乙 | 리을 | ㅈ | 之 | 지 | ㅕ | 余 | 여 | ||
| ㅁ | 眉音 | 미음 | ㅊ | 齒 | 치 | ㅗ | 吾 | 오 | ||
| ㅂ | 非邑 | 비읍 | ㅿ | 而 | ᅀᅵ | ㅛ | 要 | 요 | ||
| ㅅ | 時衣 | 시옷 | ㅇ | 伊 | 이 | ㅜ | 牛 | 우 | ||
| ㆁ | 異凝 | ᅌᅵ으ᇰ[4] | ㅎ | 屎 | 히 | ㅠ | 由 | 유 | ||
| | ㅡ | 應[5] | 으 | ||||||
| ㅣ | 伊[6] | 이 | ||||||||
| ㆍ | 思[7] | ᄋᆞ | ||||||||
- 붉은 색으로 쓰여 있는 글자는 음이 아닌 훈으로 읽는다. 위의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원본은 해당 글자가 동그라미(○) 안에 표시되어 있다.
- ㄱㄴㄷㄹㅁㅂㅅㆁ의 8자는 초성과 종성에 모두 온다.
- 其尼池梨眉非時異의 경우는 초성에 쓰였고, 役隱末乙音邑衣凝의 경우는 종성에 쓰였다.
- ㅋㅌㅍㅈㅊㅿㅇㅎ의 8자는 초성에만 온다.
- ㅏㅑㅓㅕㅗㅛㅜㅠㅡㅣㆍ의 11자는 중성에만 온다.
정리하면, '기역,니은,디귿,...,아,야,어,여' 하는 것들은 훈민정음 창제 후 한동안은 자모의 이름이 아니었다. 창제 후 80여 년이 지나서 본 책에서 해당 글자가 초성·중성·종성으로 쓰인 글자의 예를 듦으로써 발음을 설명한 것이 이후 한글 자모의 이름으로 굳어진 것이다. ㄷ이 '디읃'이 아니라 '디귿'인 것은[8], '읃'이라는 발음을 가진 글자가 한자의 음에도 고유어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ㄱ이 '기윽'이 아니라 '기역'이 된 것과 ㅅ이 '시읏'이 아니라 '시옷'이 된 것 역시 마찬가지다. 'ㅋ,ㅌ,ㅍ,...'가 '키,티,피,...'인 것은 이 글자들이 초성에만 쓰였기 때문이다.
여기에 ㆆ이 없는데, 중세 한국어에서는 어두의 ㅇ과 ㆆ을 안 나눴기 때문이며 이는 훈민정음 해례본에도 나온다.[9] 또한 ㆁ과 ㅇ의 혼동도 확인할 수 있는데, ㆁ의 이름으로 들어간 한자 異는 본문에서 음이 '이'로 나온다. 또 본문에서 대부분 초성에는 ㅇ이, 종성에는 ㆁ이 쓰이지만 이것을 벗어난 한자들도 일부 있다.
훗날 한글 자모의 이름을 훈몽자회의 이 언문자모를 본따서 했는데, 1909년 국문연구의정안에서 '기역,디귿,시옷'을 '기윽,디읃,시읏'으로 고치고, 'ㅋ,ㅌ,ㅍ,...'도 '키읔,티읕,피읖'으로 이름을 붙였다가[10] 1933년 한글 마춤법 통일안에서 현재와 같은 이름이 되었다. 남북 분단 이후 북한에서는 'ㄱ,ㄷ,ㅅ'의 이름을 통일성 있게 '기역,'디귿,시옷'에서 '기윽,디읃,시읏'으로 바꾸었지만, 한국에서는 이름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기역,디귿,시옷'으로 쓰고 있다.
한편, 개화기에는 훈몽자회의 언문자모에는 초성종성통용팔자를 수록하여 종성에 8글자만 쓸 수 있다는 규정을 만든 장본인처럼 여기거나 훈민정음의 원칙과 당시 현실음을 위반하는 잘못을 범한 것으로 여기기도 했는데[11], 이는 최세진이 규정을 만들거나 잘못된 내용을 실은 게 아니라 당시 널리 쓰이던 8종성법을 그대로 반영했을 뿐이다. 이런 오해는 후에 훈민정음 해례본 등을 연구하면서 완전히 해소되었다.[12]
2.2. 상권
천문(天文), 지리(地理), 화품(花品), 초훼(草卉,풀), 수목(樹木), 과실(菓實,과일), 화곡(禾糓,곡식), 소채(蔬菜,채소) 금조(禽鳥,날짐승), 수축(獸畜,들짐승과 집짐승), 인개(鱗介,어류와 패류), 곤충(蜫蟲), 신체(身體), 천륜(天倫), 유학(儒學), 서식(書式)을 주제로 한 한자들이 있다.2.3. 중권
인류(人類), 宮宅(궁택), 官衙(관아), 기명(器皿,그릇), 식찬(食饌,음식), 복식(服飾), 주선(舟船,선박), 차여(車輿,수레), 안구(鞍具,말안장), 군장(軍装), 채색(彩色), 포백(布帛,베와 비단), 금보(金寳,금과 보석), 음악(音樂), 질병(疾病), 상장(喪葬,장례)을 주제로 한 한자들이 있다.2.4. 하권
잡어(雜語)를 주제로 한 한자들이 있다.3. 판본 및 원문이미지
훈몽자회의 1527년 초간본은 일본에 있는 예산문고본이다. 이후 여러 판본이 있는데 예산문고본은 1면당 10행, 규칙 없이 글자를 채워 넣었지만 뒤의 판본부터 1면당 4행, 1행당 한자를 4자씩 기재하는 양식으로 바뀌었다. 판본마다 내용과 편집 방식이 약간씩 다르다. 여기서 소개한 판본이 전부는 아니다.- 예산문고본(叡山文庫): 일본 에이산문고[13] 소장, 을해자 인쇄, 1527년 초간본 원문[14]
- 도쿄대학교 중앙도서관본: 일본 도쿄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임진왜란 이전 중간본
- 존경각문고본(尊經閣文庫): 일본 손케이카쿠문고[15] 소장, 임진왜란 이전 중간본
- 광해군 시기 내사본[16] : 1613년 중간본
- 조선광문회본(朝鮮光文會) : 1913년 재간본 원문이미지[19]
4. 관련도서
- 유합 : 15세기 말에 서거정이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훈민정음으로 훈음을 단 한자 교재.[20]
- 신증유합 : 1576년에 지어진 책. 훈민정음으로 훈음을 단 한자 교재.
- 광주천자문 : 16세기 후반 광주 지역에서 사용된 천자문에 훈민정음으로 훈음을 단 한자 교재.
[1] 蒙(어두울 몽)이 어린이라는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동몽선습(童蒙先習)과 같은 맥락이다.[2] 서문이라고 따로 적어놓지는 않음. 한자 훈음을 나열하는 본문의 앞부분의 내용에 해당함.[3] 나눔바른고딕 옛한글, 나눔명조 옛한글(이 둘은 여기서 다운 가능), 함초롬체 LVT(아래아 한글 문서 참고) 중 하나가 설치되어 있으면 ㆁ과 ㅿ에 해당하는 읽기가 'ㆁㅣㅇㅡㆁ'과 'ㅿㅣ'로 쪼개지지 않고 제대로 보인다.[4] 다만, 당시에 ㆁ의 원래 음가 /ŋ/을 살려서 'ᅌᅵ'로 읽었을 가능성은 낮다. 훈민정음언해에서부터 業이 'ᅌᅥᆸ'으로 쓰인 것과는 달리 異는 '이'로 쓰였다.[5] 종성을 읽지 않는다(不用終聲). 즉, '으ᇰ(>응)'에서 '으'만 읽는다.[6] 중성만을 읽는다(只用中聲). 이 주석이 달려있는 것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의견이 존재한다. 伊의 초성에 ㆆ의 음이 있다는 인식이 있어 즉 'ᅙᅵ(>이)'에서 'ㅣ'만 읽는 것으로 본 것과, 伊자를 초성독용팔자에서 사용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는 초성이 있다고 전제한 것으로 보는 것이 있다.[7] 초성을 읽지 않는다(不用初聲). 즉, 'ᄉᆞ(>사)'에서 ㅅ을 빼고 읽는다.[8] 池는 구개음화가 일어나기 전에는 '디'로 읽었고, '끝'도 역시 중세국어에서는 '귿'이라고 썼다.[9] "첫소리의 ㆆ과 ㅇ은 서로 비슷하므로 우리말에서는 통용할 수 있다.(初聲之ㆆ與ㅇ相似 於諺可以通用也)"[10] 국문연구의정안에서는 초성의 모든 글자를 원칙에 의하여 종성에도 쓰기로 하였다.[11] 국문연구의정안이나 훈몽자회 조선광문회본에 있는 주시경이 쓴 재간례 등에서 이런 오해가 확인된다.[12] 훈민정음 해례본은 오랫동안 실종되었다가 1940년대에 발견되었는데, 훈민정음 언해본은 해례본 내용 중 '훈민정음예의'의 내용만 있어 내용이 상대적으로 적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종성해(終聲解)에는 '然ㄱㆁㄷㄴㅂㅁㅅㄹ八字可足用也(자연히 ㄱㆁㄷㄴㅂㅁㅅㄹ 여덟 글자로 충분히 쓸 수 있다)'라는 내용이 있으나 훈민정음 언해본에는 '終쥬ᇰ聲셔ᇰ은〮復뿌ᇢ〮用요ᇰ〮初총聲셔ᇰᄒᆞ〮ᄂᆞ〮니라〮(중성은 초성을 다시 쓴다)'고만 되어 있어 이런 오해가 생긴 것으로 보인다.[13] 일본 교토(京都) 히에이산(比叡山)에 있는 엔랴쿠지(延曆寺)라는 절의 문고이다.[14] 이 판본은 1970년 처음으로 영인되었는데, 여기에는 일본으로 유출된 한국 고문서 추적에 평생을 바친 후지모토 유키오의 공이 컸다.기사[15] 일본 도쿄 메구로구에 있는 마에다 가문의 문고이다.[16] 관아에서 간행한 책 가운데 임금이 신하에게 하사한 책. 1613년 목판을 새로 만들어 인쇄하였다.[17] '원문 이미지' 네모칸 누르기[18] 1948년 동국서림에서 1613년 중간본 중 김익환(金益煥)이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던 것을 영인한 것이다. 맨 뒤에 이 책을 영인하면서 쓴 발문(跋文)이 있는데, 1948년 당시 국내에 있던 훈몽자회 판본에 대한 내용을 알 수 있다.[19] 영인본이나 복사본이 아니라 새로 펴낸 판본으로 주시경이 쓴 재간례도 있다. 마지막 판본이기도 하다.[20] 훈몽자회인(訓蒙字會引)에서 "유합은 우리나라에서 나온 것이나 누구의 손으로 썼는지 알지 못한다(類合之書出自本國不知誰之手也)"라는 내용이 있어 서거정이 저작했는지 확실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