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3 21:05:27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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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의 역사
Die Geschichte Österreic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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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6년 976년 ~ 1918년 191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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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헝가리 군주국
Österreichisch-Ungarische Monarchie
(독일어)
Osztrák-Magyar Monarchia(헝가리어)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기.png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국장(1915).png
국기 국장
파일:attachment/b0013361_4d75fd5380b80.png
1867년 ~ 1918년
표어 Indivisibiliter ac Inseparabiliter
(분리되지도 나누어지지도 않는다)
국가 Gott erhalte den Kaiser
(주여 황제를 지켜주소서)
위치 중동부 유럽
수도
면적 676,615㎢
인구 52,800,000명(1914년)
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국가 원수 황제,
주요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1867-1916)
카를 1세(1916-1918)
공용어 독일어, 헝가리어
민족 오스트리아인, 헝가리인, 체코인 등
종교 가톨릭, 개신교, 정교회, 유대교, 이슬람
역사 1867년 성립
1878년 베를린 회의
1908년 보스니아 합병
1914년 사라예보 사건
1918년 해체
통화 굴덴, 크로네
성립 이전 오스트리아 제국
해체 이후 독일계 오스트리아 공화국

1. 개요2. 명칭3. 영토4. 역사5. 황제6. 국가7. 기타8. 관련 문서9. 둘러보기

1. 개요

독일어: Die im Reichsrat vertretenen Königreiche und Länder und die Länder der heiligen ungarischen Stephanskrone(디 임 라이히스라트 페어트레테넨 쾨니크라이헤 운트 렌더 운트 디 렌더 데어 하일리겐 웅가리셴 슈테판스크로네)
헝가리어: A birodalmi tanácsban képviselt királyságok és országok és a magyar szent korona országai(어 비로덜미 터나치번 케프비셸트 키라이샤고크 에시 오르사고크 에시 어 머저르 센트 코로너 오르사거이)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존재했던 유럽제국이다. 오스트리아 제국헝가리인들의 대타협(독일어로 아우스글라이히-Ausgleich, 헝가리어로 키에제제시-Kiegyezés)으로 만들어진 국가다. 복잡한 구조나 다양한 민족과 언어[1]를 가지고 있었다.

2. 명칭

정식 명칭의 뜻은 '제국 회의(라이히스라트)를 대표하는 왕국들과 영토와 신성 헝가리의 성 이슈트반(슈테판)의 왕관의 땅'이다. 제국 회의를 대표하는 왕국들과 영토는 오스트리아 제국 의회의 의원을 뽑는 국가들이며, 성 이슈트반(헝가리의 초대 왕)의 왕관은 헝가리의 왕이 대대로 써온 왕관으로 이 왕관의 영토는 헝가리 왕국을 뜻한다. 헝가리의 성 이슈트반 왕관의 땅이 제국 회의를 대표하는 왕국들과 영토와 별도로 언급된 것은 헝가리가 이제는 제국 의회의 일원이 아닌 독립적인 의회와 체제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KuK-Kaiser und König(lich)(카이저 운트 쾨니히(리히)) 제국으로 불리기도 한다.[2]

3.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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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라이타니아
1. 보헤미아 왕국 2. 부코비나 공국 3. 케른텐 공국
4. 크라인 공국 5. 달마티아 왕국 6. 갈리치아 로도메리아 왕국
6-1. 크라쿠프 대공국 7. 외스터라이히 연해백국 7-1. 트리에스테 제국직할 도시
7-2. 고리치아 그라디스카 제후 백국 7-3. 이스트리아 변경백국 8. 니더외스터라이히 대공국
9. 모라비아 변경백국 10. 잘츠부르크 공국 11. 외스터라이히 실레시아 공국
12. 슈타이어마르크 공국 13. 티롤 제후 백국 14. 오버외스터라이히 대공국
15. 포어아를베르크 백국
트란스라이타니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16. 헝가리 왕국 17. 크로아티아 슬라보니아 왕국 18.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동통치국 }}}}}}}}}


파일:attachment/b0013361_4f6e8aa566da9.png

행정 구역은 오스트리아 제국 관할 지역과 헝가리 왕국 관할 지역이 구별되어 있었으며, 비교적 후기에 점령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둘이 공동으로 관리하는 것으로 되어있었다. 근교에서 도나우(Donau) 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작은 지천 라이타(Leitha) 강을 기준으로 잡아 오스트리아 제국 관할 지역은 시스라이타니아, 헝가리 왕국 관할 지역은 트란스라이타니아로 부르기도 한다.

지도에서는 시스라이타니아(1~15번), 트란스라이타니아(16~17번),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18번) 순으로 숫자가 매겨져 있으며, 시스라이타니아 지역은 각 지역의 영어 알파벳 순으로 매겨져 있다.
국가 수도 현재 지역
1. 보헤미아 왕국(뵈멘 왕국, Königreich Böhmen)프라하(프라크, Prag)체코 서부
2. 부코비나 공국(Herzogtum Bukowina)체르니우치(체르노비츠, Chernowitz)우크라이나 서부[3]
3. 케른텐 공국(Herzogtum Kärnten)클라겐푸르트(Klagenfurt)오스트리아[4]
4. 크라인 공국(Herzogtum Krain)류블랴나(라이바흐, Laibach)슬로베니아 중부
5. 달마티아 왕국(달마티엔 왕국, Königreich Dalmatien)자다르(차라, Zara)크로아티아 남부
6. 갈리치아 로도메리아 왕국(갈리치엔 운트 로도메리엔 왕국, Königreich Galizien und Lodomerien)리비우(렘베르크, Lemberg)폴란드 남부, 우크라이나 서부
6-1. 크라쿠프 대공국(크라카우 대공국, Großherzogtum Krakau)크라쿠프(크라카우, Krakau)폴란드 남부[5]
7. 외스터라이히 연해백국(Österreichisches Küstenland)트리에스테(트리에스트, Triest)이탈리아 동부, 슬로베니아 남서부, 크로아티아 북부
7-1. 트리에스테 제국직할 도시(트리에스트 제국직할 도시, Triest Reichsunmittelbare Stadt)트리에스테(트리에스트, Triest)이탈리아 동부
7-2. 고리치아 그라디스카 제후 백국(괴르츠 운트 그라디스카 제후 백국, Gefürstete Grafschaft Görz und Gradisca)고리치아(괴르츠, Görz)이탈리아 동부, 슬로베니아 서부
7-3. 이스트리아 변경백국(이스트리엔 변경백국, Markgrafschaft Istrien)포레치(파렌츠, Parenz)슬로베니아 남부, 크로아티아 북부
8. 니더외스터라이히 대공국(Erzherzogtum Niederösterreich)(Wien)오스트리아
9. 모라비아 변경백국(메렌 변경백국, Markgrafschaft Mähren)브르노(브륀, Brünn)체코 동부
10. 잘츠부르크 공국(Herzogtum Salzburg)잘츠부르크(Salzburg)오스트리아
11. 외스터라이히 실레시아 공국(외스터라이히 슐레지엔 공국, Herzogtum Österreichisch Schlesien)오파바(트로파우, Troppau)체코, 폴란드
12. 슈타이어마르크 공국(Herzogtum Steiermark)[6]그라츠(Graz)오스트리아[7]
13. 티롤 제후 백국(Gefürstete Grafschaft Tirol)인스브루크(Innsbruck)오스트리아, 이탈리아[8]
14. 오버외스터라이히 대공국(Erzherzogtum Oberösterreich)린츠(Linz)오스트리아
15. 포어아를베르크 백국(Vorarlberg Land)브레겐츠(Bregenz)오스트리아
16. 헝가리 왕국(웅가른 왕국, Königsreich Ungarn)부다페스트(Budapest)오스트리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세르비아[9]
17. 크로아티아 슬라보니아 왕국(크로아티엔 운트 슬라보니엔 왕국, Königreich Kroatien und Slawonien)자그레브(아그람, Agram)크로아티아 북부, 세르비아
18.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공동통치국(Kondominium Bosnien und Herzegowina)사라예보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파일:attachment/b0013361_4f6ea5607e478.png

대오스트리아 합중국 방안에 따른 지도에는 재편성 계획이 나온다.[10] 제국 안에 새로 설정할 지역들의 경계선이 있다. 초록색은 해당 지역의 주요 언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국민들이 많이 사는 곳이라 그 지역 내에서 다시 자치권을 부여 받을 지역들인데, 대부분 독일어 사용 국민들이 사는 곳들이다.
국가 수도 현재 지역
1. 도이치 외스터라이히독일계 지역[11]
2. 도이치 뵈멘헤프(에거)독일계 지역[12]
3. 도이치 메렌오파바(트로파우)독일계 지역[13]
4. 뵈멘프라하(프라크)체코계 지역[14]
5. 슬로바켄란트브라티슬라바(프레스부르크)슬로바키아계 지역
6. 베스트갈리치엔크라쿠프(크라카우)폴란드계 지역
7. 오스트갈리치엔리비우(렘베르크)우크라이나계 지역
8. 웅가른부다페스트헝가리계 지역[15]
9. 제클러란트테르구 무레슈(노이마르크트 암 미에레슈)헝가리계 지역[16]
10. 지벤뷔르겐클루지나포카(클라우젠부르크)루마니아계 지역
11. 트리엔트트렌토(트리엔트)이탈리아계 지역
12. 트리에스트트리에스테(트리에스트)이탈리아계 지역
13. 크라인류블랴나(라이바흐)슬로베니아계 지역
14. 크로아티엔자그레브(아그람)크로아티아계 지역
15. 보이보디나노비 사드(노이자츠)세르비아계 지역

4.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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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8년 3월 혁명 이후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1830.8~1916.11, 재위 1848.12~1916.11)는 신 절대주의(바흐 절대주의) 통치를 유지했지만 많은 불만을 샀다. 게다가 오스트리아가 독일 연방의 프로이센 왕국을 무시하며 타협을 거부해서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지고(1866.7), 독일 연방에서 강제로 쫓겨났다.(프라하 조약)[17]

이런 상황이었던 1867년 오스트리아 지역의 인구는 4,500,000명[18]으로 전체에 비하면 일부에 불과했다. 오스트리아 정부와 황제는 가장 강력한 저항 세력이자 제국 안에서 2번째로 많은 인구 비중을 차지하는 헝가리인들[19]과 '대타협'(Ausgleich)을 맺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 체제를 만들었다.

대타협은 본래 합스부르크 가문의 오스트리아 황제가 가지고 있던 헝가리 왕위를 분리해서 헝가리 왕국과 의회를 독립시키고, 헝가리의 왕위만은 계속 합스부르크 황제가 차지하는 일종의 동군연합이었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 간에는 공동의 중앙 정부 조직이 있었으므로 단순히 칭호만 공유하는 인적 동군 연합(personal union)이 아닌 물적 동군 연합(real union)으로 간주된다.

이 타협에 의거하여 오스트리아 제국의 황제는 헝가리 왕의 자리에 올랐으며, 제국의 중요한 업무인 국방, 재정, 외교만 동일한 대신이 관장하고 나머지 사항은 두 국가가 따로 내각과 각료를 두어 처리하기로 하였고 재정 분담금과 관세 등의 사안은 10년마다 조정하기로 합의하였다. 한편 헝가리의 불만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양국의 군대에서는 독일어를 공용어로 채택하였다.[20]

하지만 헝가리 왕국 내에서조차 슬로바키아인, 크로아티아인, 세르비아인, 루마니아인 등 다수의 민족 집단이 있었다. 오스트리아 제국에도 이탈리아인, 슬로베니아인, 체코인, 폴란드인, 우크라이나인이 소수 민족으로 있었으며, 유대인도 많았다.

이런 상황에도 제국은 발칸 지역으로의 팽창을 멈추지 않았다. 당시 주요 국가가 1884~1885년의 베를린 (연합) 회의 뒤에 아프리카로 급속히 팽창했던 반면에 해군력이 뒤떨어졌던 오스트리아는 가까운 발칸 반도를 식민지로 삼고자 했다. 이런 발칸 식민화를 오스트리아의 동진 정책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러시아 제국의 남진 정책과 충돌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많은 국민은 황제 프란츠 요제프와 오스트리아 군대를 지지했고, 프랑스를 패배시킬 정도로 강력한 독일 제국이 오스트리아를 지지해줬기 때문에 정복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독일과 이탈리아가 있는 서쪽과 남쪽으로는 판로를 확장할 수 없었던 오스트리아 정부 입장에서는 동쪽의 발칸 반도로 확장하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있는 결정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으로부터 벗어난 발칸 국가들은 오스트리아의 지배에 쉽게 들어가려 하지는 않았다.

또한 1890년대를 전후해서 오스트리아 제국을 주도해 온 독일계가 독일 민족 국가의 영향으로 오스트리아를 떠나 독일에 편입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런 분리 세력으로 인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방침도 변경되어서 원래는 제국 소속의 소수 민족들이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발칸 반도의 현상 유지 정책을 펼쳤지만, 이 시기부터는 제국을 이득으로 다시 하나로 묶기 위해 무력을 과시하고 영토 확장을 계획했다. 이런 팽창 정책으로 발칸 반도를 노리던 다른 주요 국가였던 러시아와 협력하려고 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와 오스만 제국이 전쟁을 하면서 상황이 좋지 않아졌을 때 발칸 반도에서의 영향력을 늘리려고 하였으며, 이후에는 불가리아, 세르비아와 전쟁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세르비아는 연달아 일어난 두 전쟁을 빠르게 승기를 잡아서 큰 손실을 얻지 않았고, 원래 오스트리아의 영향력을 받던 루마니아마저 세르비아와 동맹을 맺은 대가로 원하는 것을 얻자 오스트리아의 지배력을 거부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러시아와 영토에 대한 영향권을 합의했으나, 러시아가 이러한 조약 변경을 다른 주요 국가들에게 알리고 인정받기 전에 1908년 튀르크가 '통일 진보 위원회(청년 튀르크당)'가 일으킨 혁명으로 혼란에 빠지자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합병해 버림으로써 세르비아 왕국러시아 제국의 분노를 사게 된다.[21] 이러한 조치는 남슬라브 민족들에게 분노를 일으켰고, 러시아도 적대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당시 제국을 도와준 국가는 오스만에 영향력을 얻으려는 독일 뿐이었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주요 동맹은 독일만 남게 되었다. (게다가 독일의 빌헬름 2세는 적극적인 러시아 배제 정책을 펼쳤다.)

오스트리아는 법적으로는 사상을 심각하게 탄압하는 것으로 되어있지만, 오랜 다민족 국가의 역사로 인해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것에 관대한 국가였기 때문에 실제로는 심각한 탄압을 받지는 않았다. 이런 형식적이고 권위적인 통제와 느슨한 집행 방침을 당대인들은 '슐람페라이'적 관행이라고 불렀다.

검열은 형식적이었고, 수많은 글에서 여러 사상가와(심지어는 아나키스트도) 학자들이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해냈다.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공산주의 운동가인 블라디미르 레닌, 레프 트로츠키, 이오시프 스탈린조차 오스트리아에서 상당히 자유롭게 활동했다. 스탈린은 오스트리아에 머무는 동안 민족 문제에 관한 마르크시즘 저서를 집필하기도 했는데, 그 자신이 조지아 출신이고 러시아도 오스트리아처럼 다민족 국가였다. 또한 1911년 제국 의회에서는 이탈리아계 정당 소속 의원이 이탈리아계 영토의 분리를 주장하고 있었다.[22]

1907년 남성 보통 선거권이 도입된 이후 오스트리아 쪽 제국 의회의 정당 구성을 보면 과격한 민족 세력이나 사회주의 계열 정당들까지 의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온건하긴 하지만 사회주의파였던, 빅토르 아들러의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이 오스트리아 원내 제1당이었다.[23]

오스트리아의 사회 보장 제도는 당시 세계 최고 수준이었다. 제국의 관료들은 선진적인 복지 정책들을 도입했고, 국민들의 생활 수준도 당대 유럽에서 생각보다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노숙자 같은 사람에게도 사회 보장의 혜택은 골고루 돌아갔고 몇년 간 별다른 직업을 갖지 않고 노숙자용 무료 숙소에서 잠을 자고 무료 급식소에서 식사를 하면서 보냈다. 이밖에 공립 대학이나 고등 교육도 무료였는데, 재능만 있으면 돈이 없어도 얼마든지 교육받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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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는 당대 유럽인들이 이상하게 여길 정도로 전통적으로 정부, 황실, 군대에 대한 인기가 높았다. 먼저 합스부르크 왕조는 1278년부터 수백년동안 지배 체제를 유지하며 1806년까지 신성 로마 제국의 제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는 독일에서 일어난 개신교의 전파와 오스만 제국으로 대표되는 무슬림의 침공을 막는 역할을 수행했고, 합스부르크의 지배자들은 (스페인 합스부르크도) 자국을 정통 기독교 신앙의 보루로 여겼으며, 국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군대는 대외 전쟁보다는 경찰과 같은 치안 사무를 주로 맡고 있었고, 군사 훈련이 힘들지 않았으며[24] 규율이 엄격하지도 않았다. 상관의 명령을 받지 않은 행동이라도 결과가 좋으면 주는 훈장[25]도 있었다. 또한 군대의 제복이 당대 유럽에서 가장 화려했고[26] 황실의 권위를 세우기 위한 각종 행사를 많이 벌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들 중에서도 트란실바니아갈리치아 같은 지방은 특히 미개발된 곳이었기 때문에, 그런 곳에 치안을 위해 군대가 주둔하는 것은 합스부르크 황제의 힘을 과시하는 중요한 선전 효과를 주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헝가리, 보헤미아, 롬바르디아 등 다른 지역들에서 모여 국가를 지키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군대는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취하는 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 한 문필가는 제국이 없어진 이후 사람들이 더 이상 '깃털 달린 모자를 쓴 군인들'을 볼 수 없다는 것에 매우 불평한다고 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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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오스트리아 합중국이라는 명칭의 황태자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제안하고, 정치가 아우렐 포포비치(Aurel Popovici)[27]가 1906년 세부 안건을 작성한 방안.

비록 독일계들은 헝가리인들에게 권력을 배분하고 불만을 잠재울 수 있었지만, 다른 민족들은 여전히 동등한 주권이 없었다. 또한 아무리 독일계와 헝가리인들이 인구의 상당수를 점하지만 둘을 합해도 겨우 약 44%(독일계 약 24%, 헝가리계 약 20%) 정도라, 제국 내 반도 안되는 민족 세력이 모든 권력을 휘두르기는 어려웠다. 그나마도 오스트리아 지역의 인구는 저 비율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고 헝가리도 주변 지역을 행정 구역상 묶어 지배하면서 비율을 늘렸는데도 저 수준이어서 나머지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등의 인구가 더 많을 정도였다. 독일계와 헝가리인을 빼면 크로아티아인만 그나마 제한된 자치권을 누릴 수 있었고,[28] 그 밖의 나머지 민족(보헤미아인,[29] 슬로바키아인, 폴란드인, 우크라이나인, 루마니아인 등)은 제대로 권리를 행사할 수 없었다. 헝가리는 합스부르크가에 정복을 당한 게 아니라 혼인으로 왕관이 넘어가며 합쳐진 것이라 헝가리 귀족들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에 순종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헝가리의 전통을 준수할 것을 요구할 정도여서 그나마 자치를 누리게 한 것이고 19세기 격렬한 반발 끝에 합스부르크 가문으로부터 자치권을 보장을 얻어낸 영향으로 배타적인 성향이 있었기 때문에 헝가리 내 다른 소수 민족들은 자신들의 안전과 민족의 정체성 유지를 걱정할 정도였다.[30]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은 이런 민족 갈등을 해소해, 좀 더 체제를 안정화시키기 위해 전 국토 내부 경계선을 민족과 언어권 위주로 다시 만들자고 제안했다. 새로 편성한 각 지역에 자치권을 줘 제국을 아예 연방 국가로 만들자는 대오스트리아 합중국(Vereinigte Staaten von Groß-Österreich, United States of Greater Austria)을 말하는 것이었다.[31] 이 계획 아래 각 언어나 문화 정체성을 살리고 민족 갈등도 줄이자는, 다른 사람도 아닌 황태자가 본인이나 독일계의 기득권도 선뜻 내놓겠다는 방안이었다.

헝가리는 자신들의 영토와 이권이 대폭 줄어들 것을 우려하여 이 방안에 강력하게 반대했다.[32] 그리고 남슬라브인과 통합하려는 세르비아 왕국의 민족 세력도 이 방안이 실시되면 제국 내의 남슬라브인이 제국에서 이탈하려 하지 않을 것이므로 위기를 느꼈으며, 이후로도 이 방안을 추진한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 남슬라브인을 회유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1914년 사라예보 사건으로 대공을 암살해 버리게 된다. 격노한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제1차 세계 대전을 일으킨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군대는 언어가 달라서 의사 소통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대부분 독일인인 장교들과 슬라브족 출신 병사들은 아예 말을 서로 안 하기도 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군대의 장비가 부실하고 장교들의 기강이 해이한 것은 부분적으로는 적은 군비 탓이기도 했다. 적국의 첩보 기관에 매수되는 장교들이 나오기도 했는데, 1913년 일어난 레틀 대령 사건은 오스트리아 군부 최악의 일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벌어진 제1차 세계 대전에서는 러시아군이나 이탈리아군을 상대로도 고전을 면치 못해 러시아군의 브루실로프 공세에 무너졌고 이탈리아군에겐 비토리오 베네토 전투에서 처참하게 패했다. 쾨니히그레츠 전투는 독일 제국군의 실적과 극적으로 대비되는 것이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동맹국으로 참여했다가 패배한 이후, 민족 자결주의에 따라서 승전국들이 함께 패전한 헝가리를 비롯해 체코슬로바키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트란실바니아, 갈리치아 같은 곳들을 모두 분리시켜 버렸고 그 이후 오스트리아는 스위스보다 조금 큰 국가로 전락하게 되었다. 합스부르크 가문도 1918년 11월 제위에서 밀려나서 제국은 해체되었다.

처음 연합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해체시킬 생각은 없었다. 1917년까지만 해도 같은 제국인 러시아가 연합국으로 남아 있었고 발칸 반도에서의 전황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러시아가 혁명으로 무너지고 결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도 해체되고 만다. 이후 해체된 제국 내의 독일어권 지역에서는 독일계 오스트리아 공화국을 수립, 민족자결주의의 원칙에 따라 제국 내 모든 독일어권 지역들을 영토로 선포했으나 이미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국가들과 연합국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현재의 오스트리아의 영토만을 가지게 된다.
폴란드인이나 아일랜드인 같은 '억눌린 민족들(submerged nations)'이 독립을 위해 이미 투쟁하고 있기는 했지만, 서유럽에서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심지어 러시아에서도― 민족주의는 응집력으로 작용했다. 그러나 합스부르크 군주국은 전적으로 '억눌린 민족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18세기에는 지배적인 독일계 엘리트 계층이 있었지만 심지어 이 독일인들에게도 이제는 북쪽에 새로운 독일 제국이라는 인접한 조국이 생겼다. 1867년 합스부르크 제국은 '억눌린 민족들' 가운데 가장 강력한 마자르족에게 헝가리 왕국이라는 준 독립국 지위를 부여하여 스스로를 '이중 군주국'으로 재편했다. 헝가리 왕국은 독일인이 우세한 지위를 차지한 '오스트리아인들'과 군주(1848년 이래로 줄곧 통치한 프란츠-요제프 황제), 군대, 재정, 외교만을 공유했다. 독일인처럼 (그리고 사실 부다페스트에 국회의사당을 건립할 때 웨스터민스터 국회의사당을 본뜰 만큼 크게 찬탄한 영국인처럼) 마자르족은 스스로를 지배 민족이라고 여겼고 헝가리 왕국 내 슬라브 소수 민족들 ―슬로바키아인, 루마니아인, 크로아티아인― 을 강압적으로 통치했다. 이중 군주국 서쪽에서는 독일계 '오스트리아인'이 북부(체코인), 북동부(폴란드인과 루테니아인), 남부(슬로베니아인과 세르비아인)의 슬라브족뿐만 아니라 신생 이탈리아 왕국이 탐내는 알프스 산맥 남사면의 이탈리아권(독일어권 남 티롤도 포함)을 다스렸다. 부다페스트의 거친 마자르족 소지주들과 달리 빈의 합리적 관료들은 피지배 소수 민족들에게 관용을 베풀려고 노력했고 독일인과 동일한 권리를 부여했다. 그 결과 빈의 정부 기구는 마비되고 황제가 칙령으로 통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합스부르크 제국의 풍성한 문화 융합은 분명히 빈을 지적·예술적으로 활기 넘치는 독특한 도시로 만들었지만 그곳의 지식인들은 우려와 함께 때로는 절망감에 사로잡힌 채 미래를 내다봤다.
-Michael Howard, <제1차 세계대전> 中

수백년 간 제국을 통치해온 합스부르크 가문의 권위는 제국 내 국민들은 물론 다른 유럽인들에게까지도 선망의 대상이 될 정도로 오랜 역사와 정통성을 갖고 있었지만, 동시에 합스부르크 제국은 합스부르크 가문의 작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기도 했다. 오스트리아는 구조적으로 민족 세력에 호의적이지 않기 쉬웠고, 과거 대독일주의에도 반대했다. 만일 민족주의에 의거해 독일인들이 독일인들의 제국을 만드는 것이 타당하다면, 동시에 제국 내 다른 민족들이 자신들의 민족 국가를 만드는 것도 막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1850년대 슈바르첸베르크 백작 등이 주창한 오스트리아가 바라는 통일안은 '독일인들의 민족 국가'가 아니라 합스부르크 제국이 갖고 있는 모든 영토를 신생 독일 제국에 편입해야 한다는 대오스트리아주의에 가까웠다.
그러나 친오스트리아 슬라브주의는 사실상 제1차 세계 대전 마지막까지도 여전히 체코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었다.[33] 1917년 1월 말까지도, 체스키 스바즈(Českého svazu)의 최고 회의에서는 두 번이나 황제에 대한 충성을 맹세했다. 1917년 1월 24일의 회의에서는 우리의 신념은 흔들리지 않는다. 세계 대전 이후에도 체코 민족에게 속하는 모든 권리는 제국의 틀 내에서 그리고 오스트리아 군주국 내에서 성취될 것이다라고 했으며, 1917년 1월 31일에 회의에서는 체코 민족은 합스부르크의 군주국 이외에는 아무런 미래도 없으며, 발전의 조건도 찾을 수 없다라고 선언했다. 또한 1917년 5월 30일 제국 의회에 참여한 체코 의원들도 황제와 제국을 지지하면서 민족들이 자유롭고 평등한 연방 국가로 전환되어야 한다고 요구했다.[34]
<합스부르크 제국의 영향과 체코-슬로바키아의 문화적 자기 이해>, 김신규

헝가리는 민족 억압책을 펴, 오스트리아 같은 사상적인 다양성이 없었다. 헝가리의 강압적인 마자르화 정책으로 슬로바키아인은 체코인과 연대해 헝가리에서 독립하려고 했다. 그 결과 탄생한 국가가 1918년의 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이다. 체코(보헤미아) 민족 세력들은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날 때까지는 완전한 분리가 아니라 헝가리 이중 제국 같이 제국 내에서 동등한 주권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중에 체코슬로바키아의 초대 대통령이 되고 국부로 대접받는 토마스 마사리크조차도 이 노선을 고수했다. 체코의 또 다른 분리 운동가 팔로스키도 체코가 제국이라는 틀을 깨고 나올 경우 독일과 러시아에게 휘둘리게 될 것을 걱정하고 제국 내에서의 자립을 추구했다.

5. 황제

대수 이름 재위
1 프란츠 요제프 1세[35] 1867년 ~ 1916년
2 카를 1세[36] 1916년 ~ 1918년

6. 국가



<Kaiserhymne>[37]이라 불리며 <Volkshymne>[38]라고 불리기도 하는 곡으로 요제프 하이든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이자 오스트리아 제국의 초대 황제인 프란츠 2세의 생일날인 1797년 2월 12일에 맞추어 그에게 바친 곡이다. 황제 4중주 <Emperor Quartet> 작품 76의 3번에 포함되어 있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붕괴되는 1918년까지 쓰였다. 독일의 국가인 <Deutschlandlied>의 멜로디로 사용되고 있으며 찬송가 245장인 <시온 성과 같은 교회>의 곡조로도 사용되고 있다. 또한 오스트리아 제국 시절 <Gott erhalte Franz den Kaiser>[39]라는 제목으로 황실 찬가이자 국가로 불리기도 했다. 한편 이 곡조는 제국이 붕괴한 후 1919년에 들어선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에서도 1929년부터 파시즘 정권이 독재 체재를 강화하기 위해 헌법을 개정하면서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이 사라진 1934년까지 <Sei gesegnet ohne Ende>[40]라는 제목으로 국가로 사용되었으며 헌법 개정 후 들어선 오스트리아 연방국의 국가로도 1934년부터 나치 독일에게 합병당하는 1938년까지 쓰였다.


2011년, 제국의 마지막 황태자였던 오토 폰 합스부르크[41]의 장례식에서 연주되기도 했다. 합스부르크 황실의 마지막 후예[42]답게 그의 장례식에는 스웨덴의 국왕 칼 16세 구스타프, 리히텐슈타인의 대공 한스 아담 2세, 불가리아의 전 차르인 시메온 2세, 몰타의 기사단장, 요르단의 왕자, 보헤미아의 공작, 오스트리아의 전 총리를 비롯한 전세계의 왕족과 명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 > 사이에 있는 부분은 2번 부르라는 표시다.
가사
1 Gott erhalte, Gott beschütze
Unsern Kaiser, unser Land!
Mächtig durch des Glaubens Stütze,
Führt er uns mit weiser Hand!
Laßt uns seiner Väter Krone
Schirmen wider jeden Feind!
<Innig bleibt mit Hapsburgs Throne
Österreichs Geschick vereint!>
2 Fromm und bieder, wahr und offen
Laßt für Recht und Pflicht uns stehn;
Laßt, wenns gilt, mit frohem Hoffen
Mutvoll in den Kampf uns gehn
Eingedenk der Lorbeerreiser
Die das Heer so oft sich wand
<Gut und Blut für unsern Kaiser,
Gut und Blut fürs Vaterland!>
3 Was der Bürger Fleiß geschaffen
Schütze treu des Kaisers Kraft;
Mit des Geistes heitren Waffen
Siege Kunst und Wissenschaft!
Segen sei dem Land beschieden
Und sein Ruhm dem Segen gleich;
<Gottes Sonne strahl' in Frieden
Auf ein glücklich Österreich!>
4 Laßt uns fest zusammenhalten,
In der Eintracht liegt die Macht;
Mit vereinter Kräfte Walten
Wird das Schwere leicht vollbracht,
Laßt uns Eins durch Brüderbande
Gleichem Ziel entgegengehn
<Heil dem Kaiser, Heil dem Lande,
Österreich wird ewig stehn!>
5 An des Kaisers Seite waltet,
Ihm verwandt durch Stamm und Sinn,
Reich an Reiz, der nie veraltet,
Uns're holde Kaiserin.
Was als Glück zu höchst gepriesen
Ström' auf sie der Himmel aus:
<Heil Franz Josef, Heil Elisen,
Segen Habsburgs ganzem Haus!>
6 Heil auch Öst'reichs Kaisersohne,
Froher Zukunft Unterpfand,
Seiner Eltern Freud' und Wonne,
Rudolf tönt's im ganzen Land,
Unsern Kronprinz Gott behüte,
Segne und beglücke ihn,
<Von der ersten Jugendblüthe
Bis in fernste Zeiten hin.>

7. 기타

다이스가 제작한 게임이자 제1차 세계 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FPS 게임배틀필드 1에서 동맹국독일 제국, 오스만 제국과 함께 등장 세력으로 나온다.

브램 스토커드라큘라가 쓰여졌던 1897년의 드라큘라 성이 있던 트란실바니아 지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헝가리 왕국 쪽 영토였다. 드라큘라 백작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귀족이었다.

셰리든 레파뉴의 소설, 카르밀라의 배경도 대타협 후인 1871년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다.

사운드 오브 뮤직의 등장 인물이자 모델인 폰 트라프 대령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해군 잠수함장이자 사령관 출신이다. 제국이 해체되고 오스트리아 공화국이 수립된 뒤에도 오스트리아에 정착한 것이다.

2012년 국내에 정발된 요제프 로트의 소설 라데츠키 행진곡은 제국이 존속하던 기간의 한 가문의 일대기를 다룬다.

올림픽이나 국가 사이의 축구 경기에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보헤미아 3개 팀이 출전했다.

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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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르푸르
주요 국가 + 괴뢰 국가/종속국 }}}

[1] 제1차 세계 대전 때는, 참전을 명령하는 징집 선전문이 무려 15개 언어로 작성되어 포고되기도 했다. 정확히는 독일어, 헝가리어, 체코어, 폴란드어, 우크라이나어, 루마니아어, 슬로바키아어, 이탈리아어, 슬로베니아어, 크로아티아어, 세르비아어, 보스니아어, 루신어, 이디시어 등.[2] 카카니아(Kakania)로 불리기도 했다. 오스트리아의 소설가 로베르트 무질(Robert Musil)의 장편 소설 <특성없는 남자>(Der Mann ohne Eigenschaften) 제8장의 제목이 카카니엔(Kakanien, kaiserlich und königlich에서 첫 알파벳 독일어 발음인 Ka und Ka에서 따온 말)이고 영어로 Kakania로 번역되었다.[3] 원래는 루마니아의 영토였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 소련이 베사라비아(현재의 몰도바, 오데사 주 일부, 체르니우치 주 북부 일부)와 함께 부코비나 북부 지역을 가져갔다. 현재는 체르니우치 주에 속해있다.[4] 남부 일부는 현재의 슬로베니아.[5] 원래 크라쿠프 자유시오스트리아가 관리하는 독립 국가였으나 1830년 러시아 내 폴란드인들이 봉기를 일으키자 호응해서 곧바로 진압당하고 대공국 지위로 합병당한다.[6] 영어로는 스티리아(Styria)로 불리며 부르크뮐러의 에튀드 Op.100 중 하나인 '스티리아의 여인'에서 나온다.[7] 남부 일부는 현재의 슬로베니아 동부.[8] 쥐트티롤 지역인 남부 티롤은 이탈리아인이 많은 지역이었고,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이탈리아에 포함되어 현재의 볼차노 자치구가 되어있다. 나머지 티롤 지역은 오스트리아에 잔류.[9] 오스트리아 부르겐란트 주, 헝가리 전체, 슬로바키아 전체, 우크라이나 남서부, 루마니아 대부분, 세르비아 북부. 루마니아 지역인 트란실바니아, 세르비아 지역인 보이보디나가 합쳐져 있다. 두 지역을 구별하는 지도도 있고, 같이 묶어놓는 지도도 있다.[10]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의 공동통치국인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이 지도에서 제외했다.[11] 기존의 오버/니더외스터라이히, 잘츠부르크, 슈타이어마르크, 케른텐, 티롤, 포어아를베르크, 뵈멘 남부 독일계 지역 통합.[12] 기존의 뵈멘 북부 독일계 지역.[13] 기존의 메렌, 슐레지엔 중 독일계 지역 통합.[14] 기존의 뵈멘, 메렌, 슐레지엔 중 체코계 지역 통합.[15] 헝가리 본토. 현재의 헝가리의 국경선과도 거의 비슷하다.[16] 트란실바니아 내부의 헝가리계 지역.[17] 비스마르크는 웬만해서는 오스트리아와 타협하고 싶어했다. 스스로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 모두 있어야 진정한 독일 국가를 이룬다.'고 말했을 정도다. 하지만 오스트리아가 프로이센과 주권 국가로서의 평등한 협상을 거부하자 끝내 오스트리아를 독일 연방에서 쫒아냈다.[18] 오스트리아/인구 참조.[19] 오스트리아와 마찬가지로 그나마 민족의 인구는 조금 더 적었고 주변 지역을 합쳐야 이 정도의 인구가 되었다.[20]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치세 후반기에 헝가리 의회가 군대 내의 독일어 사용에 대해 불만을 품고 헝가리어를 동등한 위치로 올리려고 하자, 황제는 헝가리 국민의 투표권을 개정해 빈민과 농민이 대거 참정권을 가지도록 해서 언어 운동을 주도한 헝가리 귀족들을 제압하려고 했다. 그러자 언어 운동 지지자들은 재빨리 황제에게 지지를 보냈다.[21] 이때 세르비아는 군대를 동원해 오스트리아를 공격하려고 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원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했다.[22] 제국 내에서 이탈리아인이 많이 사는 곳은 제국의 대도시 중 하나였던 트리에스트 인근, 달마티엔 지역, 쥐트티롤의 트렌티노 일대였다.[23] 독일 제국에서도 빌헬름 2세가 합법화시킨 이후 사회민주당이 주요 정당으로 등극하고 1912년 총선에서 원내 1당이 되었을 정도로 사회주의가 유력하기는 했다.[24] 대학생은 1년만 복무하면 되었다.[25] 테레지아 훈장. 병사가 상관의 명령을 받지 않은(직접적인 명령 불복종은 제외) 자발적인 행동으로 공을 세웠을 경우 포상한다.[26] 출신 민족별로 군복 색깔이 달랐다.[27] 포포비치 본인은 루마니아 혈통이었다.[28] 크로아티아는 1848년 헝가리 봉기 당시 헝가리의 분리에 반대하고 합스부르크가에 충성을 바쳐서 진압에 찬성했기에 혁명 실패 후에 헝가리에서 분리시켜서 자치권을 줬다. 현재 크로아티아의 민족 영웅인 옐라 치치가 바로 이 진압을 주도한 장군. 그러다 1867년 대타협으로 다시 헝가리 권역으로 이전당하자 극심한 반발을 했다.[29] 원래 헝가리처럼 자치권이 있었으나 30년 전쟁 때 합스부르크 가문을 폐위하고 비텔스바흐 가문의 팔츠 선제후를 옹립한 보복으로 박탈. 그래도 공업화가 잘 된 지역이어서 산업이 발달한 편이었다.[30] 헝가리에서 민족 운동 발생 시의 진압병 중 다수가 슬로바키아 농민 출신 징집병들로 민족 사이의 갈등에 이용당했다.[31] 대오스트리아 합중국은 임시 명칭이지 그가 반드시 국호도 이 이름으로 고쳐야 한다고 주장한 적은 없다. 만약 프란츠 페르디난트의 개편안을 따랐다면 새 국호를 따로 논의해서 결정했을 것이다. 아마 황태자의 재편성 계획이 실행되었으면 오스트리아-헝가리의 공식 국호처럼 아주 길고 거창한 명칭을 공식 국호로 정했을 가능성이 높다.[32] 이중 제국의 행정 구역상 헝가리의 권역은 현재의 헝가리 본토 외에도, 슬로바키아 전역, 우크라이나 남서부, 루마니아의 3/4 가량, 세르비아 북부, 오스트리아 부르겐란트 주까지 포함하고 있었다.[33] Bartoš, J. et als. (1995) 267.[34] Bakke, Elisabeth (1999) 185.[35] 페렌츠 요제프 1세.[36] 카로이 4세.[37] 독일어로 <황제 찬가>.[38] 독일어로 <민중의 노래>.[39] <주여 프란츠 황제 폐하를 보호하소서>.[40] <끊임없이 축복받으세>.[41]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제인 카를 1세의 장남이다.[42] 합스부르크 가문은 오토 대공의 아들인 카를 폰 합스부르크가 이었다. 합스부르크 가문이 제위에 올랐던 시절을 경험한 마지막 인물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