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2 15:49:23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제국원수

<colcolor=#191919>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전쟁기(1918).svg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장성급 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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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8da9c5> 제국원수
k.u.k. Fieldmarschall / k.u.k. Großadmiral독일어
cs. és kir. Tábornagy / cs. és kir. Főtengernagy헝가리어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육군 제국원수 계급장.svg
육군
제국원수
<colcolor=#000,#fff> 빌헬름 2세 | 에드워드 7세 | 프리드리히 대공ok, s | 오이겐 대공 | 프란츠 콘라트 폰 회첸도르프c | 헤르만 쾨베시 폰 쾨베슈하저ok | 알렉산더 폰 크로바틴m | 프란츠 로어 폰 덴타 | 에두아르트 폰 뵘에르몰리 | 스베토자르 보로예비치 폰 보이나 | 메흐메트 5세 | 요제프 아우구스트 대공
제국상급대장
k.u.k. Generaloberst독일어
cs. és kir. Vezérezredes헝가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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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상급대장
프리드리히 폰 벡지코프스키c | 요제프 페르디난트 대공 | 에두아르트 폰 파어 | 아르투어 폰 볼프라스 | 프리드리히 폰 게오르기 | 카를 폰 플란처발틴 | 빅토어 단클 폰 크라시니크 | 카를 테르스찬스키 폰 나더시 | 파울 푸할로 폰 브를로크 | 카를 크르지테크 | 레오폴트 잘바토어 대공 | 카를 대공ok | 카를 폰 키르히바흐 | 아돌프 폰 레멘 추 바렌슈펠트 | 카를 게오르크 후인 | 헤르만 쿠스마네크 폰 부르크노이슈테텐 | 벤젤 폰 부름 | 자무엘 폰 허저이 | 레오폴트 폰 하우어 | 빅토어 폰 쇼이헨슈투엘 | 슈테판 사르코티치 폰 로프첸 | 요제프 로트 폰 리마노바와파누프 | 아르투어 아르츠 폰 슈트라우센부르크s, c | 후고 마르티니 폰 마와스투프 | 루돌프 슈퇴거슈타이너 폰 슈타인슈테텐m | 알로이스 쇤부르크하르텐슈타인
해군
대제독
빌헬름 2세 | 알베르트 빌헬름 하인리히 | 카를 1세ok | 안톤 하우스
병과대장
General der Waffengattung / Admiral독일어
Gyalogsági tábornok, Lovassági tábornok, Táborszernagy / Tengernagy헝가리어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육군 병과대장 계급장.svg
육군
병과대장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기병, s, † | 페터 페르디난트 대공보병 | 블라지우스 폰 셰무아보병, c | 막시밀리안 치체리치 폰 버차니보병 | 오스카르 포티오레크포병 | 알프레트 크라우스보병 | 카를 폰 루카스보병 | 프란츠 숄츠 폰 베네부르크포병 | 데죄 콜로슈바리 폰 콜로주바르기병 | 루카스 슈냐리치보병 | 하인리히 추르첸탈러 폰 헬름하임보병 | 구스타프 스메칼포병 | 루트비히 쾨넨호라크 폰 회헨캄프보병 | 알프레트 폰 셴크보병 | 오이겐 폰 쇼이러포병 | 지몬 슈베르트너 폰 슈베르트부르크보병 | 슈테판 보가트 폰 코스타녜바츠 운트 파노스보병 | 요한 폰 헨리케츠보병 | 빅토어 베버 폰 베베나우보병 | 게오르크 폰 레만기병 | 빅토어 폰 녜고반포병 | 테오도어 요제프 폰 호르트보병 | 프리드리히 게르스텐베르거 폰 라이히세크 운트 게르스트베르크기병 | 아달베르트 소르시히 폰 제베린보병 | 파울 케스트르자네크보병 | 루돌프 폰 브루더만기병 | 아돌프 폰 브루더만기병 | 프란츠 다니엘 폰 드리나뮌데포병 | 모리츠 아우펜베르크 폰 코마루프보병, m | 리보리우스 폰 프랑크보병 | 카를 쿠크포병 | 샨도르 수르머이보병 | 하인리히 쿠머 폰 팔켄펠트기병 | 카를 스코티보병 | 페르디난트 골리아 폰 즐로타 리파포병 | 이그나츠 폰 코르다기병 | 루트비히 마투슈카보병 | 하인리히 폰 파트보병 | 안톤 리포슈차크보병 | 요한 폰 잘리스제비스포병
해군
제독
카를 슈테판 대공 | 메사로시 카롤리
중장
Feldmarschallleutnant / Vizeadmiral독일어
Altábornagy / Altengernagy헝가리어
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육군 중장 계급장.svg
육군
중장
요제프 메츠거 | 알베르트 아벨레 폰 운트 추 릴리엔베르크 | 아담 브란트너 폰 볼프스찬 | 프란츠 폰 비쿨릴 | 펠릭스 레오폴트 폰 툰호헨슈타인 | 테오도어 폰 가브리엘 | 가브리엘 프란츠 마렌치 폰 탈류노 운트 탈가테 | 스타니슬라우스 폰 푸할스키 | 루돌프 페퍼 | 게저 루카치치 폰 쇼모랴
해군
부제독
호르티 미클로시
소장
Generalmajor / Rear Admiral독일어
Vezérőrnagy / Ellentengernagy헝가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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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소장
게오르크 도마슈니안 | 율리우시 비야크 | 니콜라우스 로고샨 폰 카란제베슈 | 에두아르트 피셔 | 알프레트 폰 발트슈테텐 | 에리히 폰 딜러 | 하인리히 폰 클람마르티니츠 | 스타니슬라우스 폰 셉티츠키
해군
소제독
-
※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상급대장, 대장, 중장, 소장은 각각 미군의 대장, 중장, 소장, 준장에 상응.
※ 윗 첨자 : 전사
※ 윗 첨자 ok : 총사령관(Oberkommandierender)
※ 윗 첨자 s : 총사령관 대리(Stellvertreter)
※ 윗 첨자 c : 참모총장(Chef des Generalstabes)
※ 윗 첨자 m : 전쟁성 장관(Kriegsmini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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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육군 제국원수 계급장.svg
Die k.u.k. Feldmarschälle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제국원수
파일:Franz Conrad von Hötzendorf(portrait photography).jpg
▲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육군 제국원수
프란츠 콘라트 폰 회첸도르프. 원수 칼라장을 착용하고 있다.
1. 개요2. 계급의 발전
2.1. 육군2.2. 해군
3. 제국의 멸망 이후4. 목록5. 특징6.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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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최종 계급인 제국원수에 올라섰던 인물들에 대한 문서이다. 따라서 군주가 아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제국원수 9인을 다룬다. 황제인 카를 1세의 경우 군주로서 자동적으로 제국원수 직위를 가졌기에 본 문서에서는 제외한다.

2. 계급의 발전

2.1. 육군

오스트리아 육군, 일명 제국 및 왕국 원수(독: Kaiserlicher und königlicher Generalfeldmarschall, 헝: Császári és királyi tábornagy) 계급은 신성 로마 제국의 전통을 이어받은 k.u.k. 육군의 최고 계급으로, 오스트리아 제국이 설립된 직후인 1805년부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멸망하는 1918년까지 존속했다. 오헝 제국 육군 장성급 장교 계급은 준장이 없이 소장-중장-병과대장, 그리고 바로 제국원수로 넘어가는 구조였다.[1]

오스트리아의 원수 계급은 19세기 내내 유능한 군인들을 꾸준히 원수들로 진급시켰던 이웃 독일 제국군과 달리 실질적인 계급으로 기능하고 있지는 않았다. 나폴레옹 전쟁부터 보오전쟁까지 크고 작은 전쟁이 많았던 오스트리아 제국 시절에야 이런저런 군인들이 원수로 진급했으나, 대타협 이후 제1차 세계 대전 발발때 까지 약 50년 동안 새로이 원수에 임명된 오헝 제국의 군인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황제 프란츠 요제프 1세를 제외하면 이탈리아 독립운동들을 진압한 공으로 1867년에 진급한 에드문트 추 슈바르첸베르크 원수, 그리고 1863년에 진급하여 36년간 제국군 감찰관으로 복무했던 테셴 공작 알브레히트 대공만이 1차 대전 이전까지 존재했던 이중제국의 유이한 육군원수였다. 그마저도 이들은 전부 오스트리아 제국 시절에 진급해서 이중제국 시절까지 복무한 이들이었다. 그 외에는 독일 제국 황제 빌헬름 2세와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에게 친선우호 명목으로 명예 원수 칭호를 준 것이 다였다. 그래서 사실상 오헝 제국군의 장성급 장교단은 소장-중장-병과대장 세 개로 구성되었다.

참고로 여기서 오헝제국군의 중장은 독일과 달리 Feldmarschallleutnant, 직역하면 부원수로 번역되기 때문에 수관급 장교로 오해할 수 있는데, 실제로 근세에 사령관인 제국원수를 보좌하는 부장들에게 주어지던 직책명에서 유래한 만큼 어느 정도는 맞다. 그러나 19세기 시점에서는 그 위치 상, 그리고 업무 상 엄연히 중장으로 부르는 게 적절하다. 그리고 오헝 제국군에는 준장이 없었기에, 이 계급은 현대 한국군 계급에 대입하면 일개 소장급 계급에 불과하다.

어찌되었건,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후에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총사령관테셴 공작 프리드리히 대공이 리마노바-와파누프 전투에서의 승리를 거뒀다는 이유로 1914년 12월 8일에 대타협 이후 군주가 아닌 사람으로써는 최초로 원수로 진급한다. 그러나 프리드리히 대공합스부르크 가문의 일원이었고, 그의 총사령관 직책은 명예직일 뿐이었다. 실제로 전반적인 지휘 통솔은 참모총장프란츠 콘라트 폰 회첸도르프 보병대장이 하고 있었기에 그의 원수 계급 또한 총사령관 직책과 마찬가지로 사실상의 명예직이었을 뿐, 프리드리히 대공의 원수 진급은 그저 황실의 권위를 상징하는 정치적 의미가 강했다.

1915년, 병과대장과 제국원수 사이에 타국의 대장에 대응하는 제국상급대장(k.u.k. Generaloberst) 계급이 도입되면서 최종적인 계급 체계가 완성된다. 참고로 상급대장이 뒤늦게라도 도입된 이유는 독일 제국군 때문이었다. 한창 제1차 세계 대전이 진행되던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지휘를 받기 싫었던 독일 제국군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장성 계급중에 상급대장이 없다는 걸 떠올리고 이를 이용해서 파울 폰 힌덴부르크 상급대장을 제9군의 사령관으로 임명하는 꼼수를 썼다. 오헝군에는 없는 계급이지만 명목상 병과대장보다는 한단계 높은 직급이기 때문에 이를 구실로 동맹군의 지휘권 확보에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었다. 때문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지휘부측은 독일군에 대한 지휘권 확보라는 목적을 위해 황실의 인원인 오이겐 대공을 급히 제국상급대장으로 진급시켰으며, 한달이 지나고서는 고를리체-타르누프 공세에서 승리했다는 명목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실질적인 지휘관 프란츠 콘라트 폰 회첸도르프 보병대장을 제국상급대장으로 진급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1916년, 야전에서 구르던 오이겐 대공[2]콘라트가 원수로 진급하면서 제국원수 계급은 실질적으로 기능하는 계급이 되었다. 그리고 카를 1세의 즉위와 함께 군 지휘부가 재편이 되면서 아르츠 제국상급대장이 참모총장이 되었다. 카를 1세아르츠제국군 전체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정치적 결정으로 카포레토 전투의 성공과 케렌스키 공세의 성공을 기념한다는 명분을 가지고 크로바틴쾨베시를 동시에 진급시켰다. 이들은 야전에서 구르던 지휘관들로 제국원수들은 이름에 걸맞게 각각 전선의 방면군을 야전에서 지휘하게 되었다.

특히 1918년 초에 집중적으로 이뤄진 제국원수 승진은 전쟁 막바지의 위기 상황과 관련이 있다. 카를 1세제국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능력 있는 지휘관들을 대거 승진시켰고, 이는 로어, 뵘에르몰리, 보로예비치 등의 제국원수 임명으로 이어졌다. 특히 非독일계인 쾨베시[3]보로예비치의 승진은 제국 내 여러 민족의 충성심을 확보하려는 시도로도 해석된다. 이후 1918년 10월 24일, 제국의 멸망이 확정되었을 때 카를 1세헝가리만이라도 남기기 위해 당시 헝가리인들의 많은 지지를 받고 있던 요제프 아우구스트 대공을 제국원수에 진급시키기도 하였다.

이렇게 1918년까지 총 9명의 장성만이 이 계급에 올랐다. 제국원수들은 제국의 다민족적 특성을 반영하여 다양한 민족 출신으로 구성되었다. 물론 대다수가 오스트리아의 지배 계층이었던 독일계였지만 헝가리계도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했고, 소수의 슬라브계도 있었다. 대표적인 독일계 인물이 세계대전 당시 참모총장 프란츠 사버 콘라트 폰 회첸도르프, 헝가리계로는 헤르만 쾨베시 폰 쾨베슈하저, 체코계로는 에두아르트 폰 뵘에르몰리가 그리고 크로아티아계로는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 전선 사령관 스베토자르 보로예비치 폰 보이나가 있다. 또한 상술한 대로 타국의 군주들에게 수여된 사례도 존재한다. 이는 당대 국가들의 특징 중 하나였다. 상술한 빌헬름 2세, 에드워드 7세 말고도 오스만 제국 파디샤 메흐메트 5세가 받았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이전 오스트리아 제국 시절에는 영국 총리이자 육군 원수인 아서 웰즐리도 오스트리아 제국 육군 원수 계급을 받았는데, 군주가 아닌 일개 외국 군인이 무공을 인정받아 수여받은 케이스로는 유일하다.[4]

2.2. 해군

한편 해군의 대제독(독: Großadmiral, 헝: Főtengernagy) 계급은 독일의 대제독과 달리 상급대장에 해당한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해군에는 원수가 없었다.

3. 제국의 멸망 이후

제국 패망 이후 오스트리아 연방군에는 원수 계급이 없기에 신규 진급자도 없다. 다만 제국군 원수였던 에두아르트 폰 뵘에르몰리가 오스트리아 병합 이후 나치 독일에서도 명예원수 계급과 예우를 받았던 적은 있다.

오헝 제국의 원수들 중 가장 오래 살았던 사람은 1962년에 사망한 요제프 아우구스트 대공이다.

4. 목록

<colcolor=#191919>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9인의 제국원수
순서 사진 이름 임명 출생-사망 최고 직위/보직 민족/출신 대표 전투/공적 비고
1 파일:Erzherzog_Friedrich_Herzog_von_Teschen.jpg 프리드리히 1914년
12월 8일
1856년
6월 4일 *
1936년
12월 30일
k.u.k. 육군 총사령관(1914-1916)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1차 세계 대전 초기 세르비아 전선 지휘 명목상의 총사령관, 실권은 콘라트가 장악
2 파일:Eugene,_Archduke_of_Austria.jpg 오이겐 1916년
11월 23일
1863년
5월 21일 *
1954년
12월 30일
티롤 방면군 사령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이탈리아 전선 방어 작전 지휘 발칸 전선과 이탈리아 전선에서 성공적 지휘
3 파일:Franz Conrad von Hötzendorf(oil painting).jpg 콘라트 1916년
11월 25일
1852년
11월 11일 *
1925년
8월 25일
k.u.k. 육군 참모총장(1906-1917) 독일계 제1차 세계 대전 초기 전략 수립, 갈리치아 전투 실질적인 제국군 최고 지휘관
4 파일:F.M.v._Kövess_(BildID_15718304).jpg 쾨베시 1917년
11월 5일
1854년
3월 30일 *
1924년
9월 22일
k.u.k. 육군 총사령관(1918) 헝가리계 발칸 정복 작전 성공적 수행 제국 최후의 총사령관(1918)
5 파일:Krobatin_Alexander_FM_1849_1933_photo.jpg 크로바틴 1917년
11월 5일
1849년
9월 12일 *
1933년
12월 28일
전쟁부 장관(1912-1917) 슬로베니아계 카포레토 전투 승리 전쟁부 장관 출신 제국원수
6 파일:Rohr_Franz_1865_1927_Gdk_Austria_1911.jpg 로어 1918년
1월 30일
1854년
10월 30일 *
1927년
12월 9일
제1군 사령관 독일계 이탈리아 전선동부전선 방어 성공 가장 낮은 출신 성분의 제국원수
7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General_Eduard_von_B%C3%B6hm_Ermolli_w%C3%A4hrend_des_ersten_Weltkriegs.jpg 뵘에르몰리 1918년
1월 31일
1856년
2월 12일 *
1941년
12월 9일
제2군 사령관 체코계 세르비아 침공, 동부전선 지휘 나치 독일 명예원수
8 파일:440px-Svetozar_Boroëvić_von_Bojna_1914.jpg 보로예비치 1918년
2월 1일
1856년
12월 13일 *
1920년
5월 23일
이손조 방면군 사령관 크로아티아계 이손초 전투에서 이탈리아 왕국군 격퇴 슬라브계 출신 유일 제국원수
9 파일:Joseph_August_of_Austria_(1872-1962)_in_1917.jpg 요제프
아우구스트
1918년
10월 24일
1872년
8월 9일 *
1962년
7월 6일
티롤 방면군 사령관 헝가리
합스부르크
이탈리아 전선 지휘 마지막으로 임명된 제국원수

5. 특징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군부의 특성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능력주의적 승진이 가능했지만, 여전히 신분제의 영향력도 강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 순수 군사적 공적으로 원수가 된 경우[5]와 군사적 공적과 신분이 모두 고려된 경우[6], 그리고 신분이 주된 요인이었던 경우[7]를 통틀어 봤을 때, 4:3:2 비율이었다.

6. 같이 보기


[1] 여기서 주의해야할 점은 Reichsmarschall 또한 제국원수라고 번역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혼동하기 쉬운데, 사실 Reichsmarschall를 가리키는 단어로 사용하기엔 제국원수는 적절한 번역이 아니다. 다만 번역어 문제는 비록 오류를 내포하더라도 한 번 정착을 하면 변경이 어려운 문제가 있어서 '부득이하게' 제국원수로 표기하는 것이다. 반면에 k.u.k. Feldmarschälle의 k.u.k.는 Kaiserlich und Königlich를 줄인말로, 번역하자면 제왕국(帝王國)이라고 읽는다. 따라서 이쪽이 더 제국원수라는 의미에 들어맞는 번역이다.[2] 테셴 대공 프리드리히의 동생. 당시 이손초 전선의 3군과 11군 사령관이자 튜튼 기사단 단장.[3] 그런데 쾨베시는 좀 달리 봐야하는 것이, 부계쪽은 헝가리 귀족 출신의 헝가리계였으나, 그 중에서 오스트리아에 정착한 분파의 후손이었다. 또한 모계로는 트란실바니아 작센인의 혈통이 흐르고 있었다. 이처럼 독일어로 교육받으며 독일계 문화에서 자란 쾨베시는 분명 헝가리인의 정체성도 갖고 있었지만, 독일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좀 더 강한 편이었다. 따라서 쾨베시는 주로 독일계로 간주된다고 할 수 있다.[4] 사실 웰즐리는 모국 영국과 오스트리아 말고도 하노버, 네덜란드, 포르투갈, 프로이센, 러시아 그리고 스페인군 원수 계급도 받은, 8개 국군의 원수다.[5] 콘라트, 쾨베시, 로어, 보로예비치[6] 오이겐, 크로바틴, 뵘에르몰리[7] 프리드리히, 요제프 아우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