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서가 있는 경우만 기재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의 상급대장, 대장, 중장, 소장은 각각 미군의 대장, 중장, 소장, 준장에 상응. ※ 윗 첨자 † : 전사 ※ 윗 첨자 ok : 총사령관(Oberkommandierender) ※ 윗 첨자 s : 총사령관 대리(Stellvertreter) ※ 윗 첨자 c : 일반참모장(Chef des Generalstabes) ※ 윗 첨자 m : 전쟁성 장관(Kriegsminister)
스메칼은 1863년 10월 16일 당시 달마티아 왕국의 차라에서 향토방위군 대위의 아들로 태어났다. 스메칼은 빈 공과군사학교 포병과를 졸업하고 1883년에 포병소위로 임관했다. 1886년부터 1888년까지는 고등포병과정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하여 참모본부에 배속되었고, 1891년에는 카샤우의 제6군단 사령부로 전출되었다. 여러 기동훈련에서 참모로 근무하며 전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쌓았고, 이는 여러 저술로도 이어졌다. 1892년 참모본부 대위가 되어 1894년부터 1896년까지 빈 포병생도학교에서 전술과 군제를 가르쳤다. 이후 2년간 제28보병연대 중대장을 지냈고, 1898년에는 소령으로 황립 및 왕립 전쟁성에서 근무했다. 1903년부터는 제49보병연대 대대장을 지냈고, 1905년 대령 진급 후 1907년에는 연대장이 되었다. 1911년에는 올뮈츠의 제9보병여단장이 되었다.
전쟁이 발발하자 스메칼은 제9보병여단을 이끌고 크라시니크 전투와 루블린 전투에 참가했다. 1914년 10월에는 중장으로 진급하여 제45향토방위보병사단장이 되었다. 이 사단을 이끌고 갈리치아와 1915년 봄에는 카르파티아 산맥에서 전투를 벌였다. 그리고 1915년 5월에는 고를리체-타르누프 공세를, 이후 1915년 5월과 6월 사이에 프셰미실 요새 탈환을 위해 프셰미실 공방전을, 그리고 1915년 7월에는 루블린 점령전에 참가했다. 그러나 스메칼의 부대는 1916년 6월 루츠크 지역에서 대규모로 이뤄진 브루실로프 공세로 인한 큰 패배를 겪었고, 이로 인해 스메칼은 7월에 해임되었다. 이후 프셰미실 군관구 부사령관이 되었고, 1918년 2월에는 포병대장으로 진급하여 모스타르 군관구사령관이 되었다. 같은 해 9월 자진 사임했고 1919년에 퇴역했다.
스메칼은 야전포병 지휘와 운용에 관한 전술 문제집(1896-1898), 1897년판 러시아 보병 훈련교범 연구(1898), 아스페른-에슬링겐 전투(1899), 포병 정찰 업무(1900), 보병사단 예하 사단포병 지휘와 운용(1901), 포병정찰업무의 수행(1901), 보병공격에 관한 새로운 고찰(1907) 등 많은 군사 전문서를 저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