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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슈트라우스 3세 Johann Strauss III | |
본명 | 요한 마리아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 Johann Maria Eduard Strauss |
출생 | 1866년 2월 16일 |
오스트리아 제국 빈 | |
사망 | 1939년 1월 9일 (향년 72세) |
나치 독일 베를린 | |
직업 | 작곡가, 지휘자 |
장르 | 경음악 |
가족 | 아버지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 어머니 마리아 클렝크하르트 남동생 요제프 2세 에두아르트 아나 슈트라우스 |
서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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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스트리아의 경음악 작곡가이자 지휘자.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남이다. 슈트라우스 1세에게는 손자이고, 2세에게는 조카인 셈. 슈트라우스 가문에서 사실상 작곡가로 활동한 최후의 인물이었다.2. 생애
빈에서 태어났고, 어릴 적부터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비롯한 악기들과 음악 이론을 배웠다. 하지만 할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와 마찬가지로 자식들이 음악가가 되는 것을 꺼렸던 아버지의 의향 때문에 가톨릭 인문계 사립 학교인 쇼텐 김나지움을 거쳐 빈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자퇴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정부의 교육 부서 공무원 자리를 얻어 회계사로 근무했다. 이 기간 동안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아버지의 재산을 상당 부분 탕진해 아버지가 파산 신고를 하게 만들기도 했다.하지만 아버지와 달리 조카에게도 음악적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 큰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2세에게 틈틈이 음악 교육을 받았고, 요한 2세의 춤곡들을 피아노 독주용으로 편곡해 음악출판사에 제공하는 등의 일거리를 받으며 차츰 음악가로 성공하기 위한 야심을 갖게 됐다. 1898년에 극작가 페르디난트 그로스와 빅토르 레온이 만든 대본으로 오페레타 '고양이와 쥐'를 발표해 작곡가로 전향했지만, 음악적으로 요한 2세의 재능에 미치지 못한다는 비평가들의 맹렬한 비판을 받았다. 오페레타의 미적지근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요한 2세처럼 오페레타에 나오는 선율들로 아홉 곡의 춤곡과 행진곡을 편곡 출판하면서 음악가가 되겠다는 결심을 굳혔고, 이듬해 회계사 일을 그만두고 요한 2세의 뒤를 잇는다는 의미로 요한 슈트라우스 3세라는 예명을 쓰며 작곡가로 전직했다.
1901년 아버지 에두아르트가 자신의 악단을 해체하고 은퇴하자 악단원들을 규합해 자신의 악단을 새로 조직했다. 1900년대 후반까지는 주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무도음악 작곡가 겸 지휘자로 활동하며 독일과 루마니아, 불가리아, 오스만 제국 등지에서 순회 공연을 했다. 1903년에는 도이체 그라모폰과 계약해 슈트라우스 가문의 춤곡들을 녹음한 여덟 장의 SP를 취입했는데, 이것이 현존하는 슈트라우스 악단의 최초 녹음 기록이 되었다. 하지만 회계사로 근무한 경력이 있었음에도 공연 수익 보전과 계산에 서툴러 1902년에 진행한 불가리아 공연 때는 현지 흥행주가 공연 수익 5000 프랑을 먹튀하고 잠적하는 사기를 당했고, 같은 해 영국에서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에 맞추어 계약한 축하 공연도 대관식이 급작스럽게 연기되면서 위약금도 못받고 돌아왔다.
이런 문제 때문에 재정난에 시달리자, 결국 작곡 활동을 포기하고 베를린으로 거처를 옮긴 뒤 주로 요한 2세와 요제프 슈트라우스, 아버지, 할아버지 요한 1세 등 슈트라우스 가문의 작품들을 지휘하는 지휘자로 활동하게 됐다. 1909년에는 토머스 에디슨이 자신의 음반 사업을 위해 만든 내셔널 포노그래프의 베를린 지사에서 음악 고문 직함으로 녹음 활동도 계속 했고, 유럽 각지에서 순회 공연도 이어갔다. 하지만 1차대전이 발발한 뒤 연주 여행과 무도회 횟수가 급락하게 되자 요한 3세는 결국 오랫동안 이어온 슈트라우스 악단을 해체하고 독어권 각지의 관현악단을 객원 지휘했다.
1차대전 종전 후에는 다시 국외 객원 지휘도 재개했고, 1916년에 아버지 에두아르트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잠시 고향으로 돌아온 것을 제외하면 남은 여생을 주로 베를린에서 보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와의 연결 고리가 끊어진 것은 아니었고, 1930년대 중반까지 간헐적으로 빈에서 공연을 지휘하기도 했다. 1934년과 37년에는 미국에서 순회 공연을 하기도 했다. 70대에 접어든 뒤에도 계속 지휘자로 활동했지만, 1938년 12월 말에 드레스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직후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어 이듬해 베를린 자택에서 사망했다. 유해는 오스트리아로 보내져 장례식을 치른 뒤 빈의 그린칭 묘지에 안장되었다.
3. 주요 작품들
- 오페레타 '고양이와 쥐 (Katze und Maus)'
- 왈츠 '실바나' (Sylvanien op.1)
- 왈츠 '레오니' (Leonie op.2)
- 프랑스풍 폴카 '품위있게' (Comme il faut op.3)
- 로코코 가보트 (Rococo-Gavotte op.4)
- 폴카 마주르카 '제국' (Empire op.5)
- 빠른 폴카 '슐라우 슐라우' (Schlau-schlau op.6)
- 용기병 행진곡 (Dragoner-Marsch op.7)
- 카드리유 '고양이와 쥐' (Katze und Maus op.8)
- 뮤제트 (Musette op.9)
- 왈츠 '빈의 인사' (Gruß aus Wien op.24)
- 왈츠 '세계는 용감한 자의 것' (Dem Mutigen gehört die Welt op.25)
- 부다페스트 폴카 (Budapester-Polka op.26)
- 행진곡 '단결된 힘으로' (Mit vereinten Kräften op.29)
- 왈츠 '운터 덴 린덴' (Unter den Linden op.30)
- 왈츠 '스케이터 여인' (Die Schlittschuhläuferin op.31)
- 왈츠 '빈의 선율' (Wiener Weisen op.32)
- 마주르카 '루드밀라' (Ludmilla op.35)
- 왈츠 '전성기에' (In der Blütezeit op.36)
- 폴카 '기쁜 마음으로' (Mit freudigem Herzen op.37)
- 왈츠 '시인의 사랑' (Dichterliebe op.38)
- 빌헬미나 왈츠 (Wilhelminen-Walzer op.39)
- 대관식 왈츠 (Krönungswalzer op.40)
4. 사생활과 사후의 평가
1894년에 마리아 에밀리에 카롤리네 호퍼와 결혼해 2남 2녀를 뒀다. 이 중 차남 에두아르트는 출생 직후 사망했고, 나머지 자식들은 비교적 장수했지만 모두 음악과 관계 없는 직업을 택했다. 결국 아버지 에두아르트의 동생 요제프 에두아르트의 아들인 지휘자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 (2세)가 슈트라우스 가문의 음악가로서는 최후의 인물이 되었다. 다만 슈트라우스 가문의 족보에 대한 이해가 불충분한 이들이나 문헌에서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 (2세)를 요한 3세의 아들로 잘못 소개한 경우도 있으니 주의.슈트라우스 가문 최후의 작곡가이자 처음으로 음반을 취입한 인물이라는 상징성은 있지만, 가문에서 가장 존재감이 없는 인물이기도 하다. 작곡가로서 남긴 작품들 대다수의 공연과 녹음 빈도가 지금도 매우 뜸한 상황이며,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신년음악회 무대에서도 선곡된 사례가 2022년 현재까지 전무한 실정이다.[1] 음반도 그나마 영국 등지에서 슈트라우스 가문의 춤곡을 담은 음반에 한두 곡 정도가 같이 실린 게 전부다.
[1] 오히려 칼 미햐엘 치러(1843 ~ 1922)등 다른 빈 음악 작곡가들의 무곡을 선택한 예가 많고 이 작곡가의 음악은 최근 자주 선택하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