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4 01:45:09

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

서양 음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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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프란츠 사버 볼프강 모차르트
Franz Xaver Wolfgang Mozart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Franz_Xaver_Mozart_%28Wolfgang_Jr%29_1825.jpg
예명 볼프강 아메데우스 모차르트 2세
Wolfgang Amadeus Mozart, Jr.
출생 1791년 7월 26일
합스부르크 제국
(現 오스트리아 빈)
사망 1844년 7월 29일 (향년 53세)
오스트리아 제국 카를스바트
(現 체코 카를로비바리)
국적 파일:오스트리아 제국 국기.svg 오스트리아 제국
가족 친할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1719년~1787년)
친할머니 안나 마리아 모차르트(1720년~1778년)
아버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년~1791년)
어머니 콘스탄체 모차르트(1762년~1842년)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프란츠 사버[1] 볼프강 모차르트(Franz Xaver Wolfgang Mozart, 1791년 7월 26일 ~ 1844년 7월 29일)는 오스트리아작곡가, 피아니스트 및 음악 교사.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여섯 아이 중 막내아들(4남)이자, 형(차남)인 카를 토마스 모차르트(Karl Thomas Mozart, 1784년 9월 21일 ~ 1858년 10월 31일)와 함께 유아기에 죽지 않고 살아남은 두 명의 아들 중 막내이다.

외양이 아버지 모차르트와 닮은 점을 이용하여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2세라는 이름으로 활동했지만, 음악가로서의 명성이 그렇게 높지는 못했다. 이유는 그 시대에 불어닥친 낭만파의 기조를 따라잡지 못하고 빈 고전파 양식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확실히 그의 작품에서는 아버지의 스멜이 진하게 배어 있지만, 그렇다고 아버지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것도 아니었는데, 태어난 지 4달 만에 아버지를 여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머니 콘스탄체는 덴마크의 외교관 게오르크 니콜라우스 폰 니센과 재혼했다. 한편 이름 '프란츠 사버'는 모차르트의 제자인 '프란츠 사버 쥐스마이어(Franz Xaver Süssmayr, 1766년~1803년)'의 이름에서 따온 것인데, 몇몇 음모론자들은 이 때문에 프란츠 사버가 사실은 모차르트가 아닌 쥐스마이어의 아들이라는 주장을 펼친 적도 있었다. 물론 사실무근이며, 당시에 흔히 쓰이던 이름이다.

어렸을 때부터 역시 음악적 재능을 보였던 형 카를 토마스도 어렸을 때는 아버지처럼 되고 싶어 프라하를 거쳐 이탈리아 밀라노로 유학까지 갔었지만, 어느새 흥미를 잃고 조용히 접은 뒤 그 자리에서 공무원이 되어 죽을 때까지 거기서 살았다.

다음은 마치 베토벤의 초기 작품 같이 과도기적인(...) 그의 작품 몇 개이다.


피아노 4중주곡 g단조 Op.1: 1악장. 9살 때 작품이다.


첼로 소나타 E장조 Op.19: 1악장. 아버지는 첼로를 싫어해서 첼로를 위한 곡을 작곡한 적이 없다.


피아노 협주곡 2번 E장조 Op.35: 1악장

2. 생애

신성 로마 제국 오스트리아 대공국 에서 출생했으며 프란츠 사버 볼프강은 어머니 콘스탄체가 기대를 많이 건 아이였다. 그래서 아버지처럼 5살 때부터 음악활동을 했고, 어린 나이에 바로 위의 피아노 4중주곡을 작곡했다. 요제프 하이든, 안토니오 살리에리[2], 요한 네포무크 훔멜[3] 등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뒤 13세 때인 1805년 4월에는 빈의 '테아터 안 데어 빈(Treater an der Wien)'에서 메이저 데뷔하였다. 이 극장은 마술피리의 시나리오 작가이자 아버지의 동료인 시카네더의 극장이었는데, 사람들은 그의 곡과 연주를 듣고 모차르트가 살아돌아왔다고 극찬했다고 한다. 그 때 이름을 널리 알리는 데 성공한 프란츠 사버는 음악교사 스카우트도 제의받아 1808년에는 렘베르크(Lemberg)로 가 폴란드 백작 빅토르 바보로프스키(Wiktor Baworowski)의 두 딸을 가르치기도 했다. 보수는 제법 괜찮았지만 피트카민(Pidkamin)이란 곳에 잡은 거처가 워낙 외진 곳이라서 쓸쓸함을 이기지 못한 그는, 이듬해 도시로 나가 부르시틴(Burshtyn)의 폰 야니체브스키 백작의 딸들을 가르쳤다. 그러는 와중에도 종종 콘서트를 열어 자신과 아버지의 작품을 연주하는 활동을 계속했고, 2년 후 다시 렘베르그로 옮겨 20년이나 음악교사와 연주 활동을 했다.

물론 렘베르그에만 머무르지 않고 유럽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연주 활동을 계속했고, 결과는 연이은 성공이었다. 특히 1826년에서 1829년까지는 400명의 아마추어 가수들로 이루어진 '성 체칠리아 합창단'을 조직해 지휘하였다. 1820년대에 간행된 〈안톤 디아벨리의 주제에 의한 50개의 변주곡(Vaterländischer Künstlerverein, 파트 2)[4]〉에는 카를 체르니, 프란츠 슈베르트, 프란츠 리스트와 함께 50인의 작곡가 중 한 명에 이름을 올리는 영예도 안았다. 그가 작곡한 변주 테마는 28번째.

1838년 거처를 으로 옮긴 프란츠 사버는 자신의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테움(Internationale Stiftung Mozarteum) 설립식에서는 합창지휘자로 초청받았다. 거기서 모차르트의 아들이란 점을 이용해 아예 음악감독으로 눌러앉았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1841년부터는 카를스바트로 거처를 옮겨 그곳에서 후에 이름 있는 피아니스트가 될 에른스트 파우어 등을 가르치는 등 제자 양성에 힘썼고, 그곳에서 위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53세. 모차르트의 아들로서 충실히 살았고 그에 걸맞은 성공적인 삶을 살았지만, 정작 본인은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 사후에는 묻혀버렸다. 문제는 형인 카를 토마스마저 처자식이 없었기 때문에 여기서 모차르트 가의 대가 끊겼다는 사실이다(...). 그의 유산은 후원자였던 요제피네 데 바로니카발카보(Josephine de Baroni-Cavalcabò)에게 넘겨졌다고 한다.

프란츠 사버는 발랑 까진 낙천적인 아버지와는 달리 성격이 내성적이고 겸손하기까지 했기 때문에 아버지와 비교되는 것을 부담스럽게 여겼다고 하며, 평생 홀로 지냈기 때문에 처자식도 없었다. 그는 53세에 사망했는데 아버지보다야 오래 살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장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5]게다가 모친인 콘스탄체 모차르트가 죽은 후 겨우 2년 뒤에 사망한 것을 감안하면 더더욱(..).[6]일각에서는 그가 더 오래 살 수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와 아버지를 자꾸 비교하는 바람에 그 스트레스 때문에 수명이 줄었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한다. 당대에 그를 만나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무척 점잖은 신사이지만 어딘가 짓눌린 듯했다'고 증언했다. 아버지에 대한 부담이 크기는 컸던 모양.

오스트리아 제국 보헤미아 왕국의 카를스바트(Karlsbad, 현 체코 카를로비바리·Karlovy Vary)에서 병사했다. 그의 묘소에는 삶을 축약하는 묘비명이 새겨져있다. "Sohn des grossen Mozart, dem Vater ähnlich an Gestalt und edlem Gemüte. Der Name des Vaters, sei seine Grabschrift, so wie seine Verehrung des Ersteren der Inhalt seines Lebens war."('위대한 모차르트의 아들로 모습과 고귀한 마음은 제 아비와 같았도다. 아비의 이름이 그대 비문일진대, 공경함이 그대 생활의 요체였노라.')


[1] 독일어 발음은 [ˈksaːvɐ](크사버)에 가까우며 독일어 표기법을 적용하면 '크사버' 또는 '크사퍼'로 표기할 수 있으나 관용적으로 '사버'로 표기한다.[2] 살리에리 증후군이나 영화 아마데우스때문에 사람들이 자주 오해하는데, 실제로는 안토니오 살리에리모차르트는 서로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고, 서로 간에 딱히 열폭을 한 적도 없다. 다만 모차르트의 성격이 보통 모난 게 아니어서 살리에리가 그 점은 싫어했다고 한다.[3] 훔멜은 아버지 볼프강의 제자다.[4] 33개의 변주 테마로 이루어진 파트 1베토벤이 맡았다.[5] 당시 유럽 사회는 유아사망률이 워낙 높아서 문제였지 유아기를 넘긴 것 치고는 당시 기준으로도 다소 평범하다 볼 수 있다.[6] 물론 이건 콘스탄체가 향년 80세로 지금 기준으로도 장수한 것도 한몫했다. 친형 카를과 고모 난넬도 각각 74세, 78세로 나름 오래 살다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