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03 13:41:32

유제프 할레르 폰 할렌부르크

<colbgcolor=#e34234><colcolor=#fff> 폴란드 망명정부 교육장관
유제프 할레르 폰 할렌부르크[1]
Józef Haller von Hallenburg
파일:Generał_Józef_Haller.jpg
출생 1873년 8월 13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크라쿠프 대공국 유르치체
사망 1960년 6월 4일 (향년 86세)
영국 런던
국적
[[폴란드|]][[틀:국기|]][[틀:국기|]]
직업 군인
최종 계급 중장
경력 폴란드 망명정부 교육장관
1940년 ~ 1943년
참전 제1차 세계 대전
폴란드-우크라이나 전쟁
폴란드-소비에트 전쟁
1. 개요2. 생애3. 대중매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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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폴란드의 군인, 정치인.

2. 생애

크라쿠프 대공국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할레르 가문은 15세기 무렵 프랑켄 지역의 로텐부르크에서 폴란드 왕국에 이주해 온 독일계 가문이었는데 세월이 지나 폴란드에 동화되어 민족정체성이 폴란드인으로 바뀌었고, 당연히 그 역시 폴란드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외조부는 11월 봉기 당시 폴란드군을 이끌었으며, 아버지 헨리크 할레르는 1월 봉기에 참가한 경력이 있었다.

1882년 렘베르크로 이주하였다. 헝가리에서 중등 교육을, 모라비아 변경백국에서 고등 교육을 받고 테레지아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1895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군 소위로 임관하여 렘베르크 제11 포병연대에서 복무하였다. 1903년 알렉산드라 살라와 결혼하였고, 1906년에는 아들 에리크가 태어났다. 1910년 퇴역한 후 사회 운동에 뛰어들어 1912년 농민 협회의 감독관이 되었다. 1911년 시작된 소쿠(Sokół)[2] 운동[3]의 폴란드 분파에 참여하였고, 1912년 중반에는 소쿠 운동의 군사 훈련을 담당했다.

제1차 세계 대전 시기에는 유제프 피우수트스키가 창설한 폴란드 군단의 일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나 브레스트-리토프스크 조약 체결 후 독일 제국에게폴란드 군단은 골칫거리로 여겨졌기 때문에 공격당해 무장해제되었다. 할레르 자신이 지휘하는 제2군단도 5월 10일 카니우프(Kaniów)[4] 인근에서 독일군의 공격을 받고 궤멸되었다. 할레르 자신은 현장을 탈출하여 카렐리아무르만스크를 거쳐 프랑스로 이동,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폴란드인 디아스포라 및 폴란드계 독일군 포로로 구성된 푸른 군대(Armée Bleue)을 조직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 군대는 훗날 신생 폴란드군의 주축이 되었다. 1918년 폴란드 제2공화국이 수립되면서 신생 폴란드군의 장군이 되었고, 1920년 바르샤바 전투에 북부전선군 사령관으로 참여했다.

1926년 1월 31일 피우수트스키가 5월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자 쿠데타에 반대 의사를 표명하며 군에서 사임하였고 정치적으로는 사나치아(Sanacja) 정권의 반대파로 활동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는 폴란드 망명정부에 합류하여 1940년부터 1943년까지 망명정부의 교육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이 시기 사촌 스타니스와프 할레르를 잃었다.

2차대전이 끝나고 폴란드가 공산화되자 영국에 잔류하였으며, 이후 1960년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1993년 4월 23일 폴란드로 돌아와 그가 태어난 크라쿠프의 성 아그니에슈카 수비대 성당 지하에 묻혔다.

3. 대중매체



[1] 흔히 영어&독일어식 발음인 '할러'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폴란드어 발음은 '할레르'다.[2] 폴란드어송골매.[3]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같은 운동이 있었는데, 체코어슬로바키아어로는 소콜 운동이라고 불렀다.[4] 현 우크라이나 카니우(Кані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