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30 01:33:05

해서파관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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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대혁명의 전개 순서
1959년 루산회의 해서파관 사건 5.16 사건
펑더화이 실각 펑전 실각 중앙문혁소조 설립

1. 개요2. 배경3. 전개
3.1. 문제의 해서파관이란?3.2. <신편 역사극 해서파관을 평함>3.3. 논전의 시작3.4. 2월 제강3.5. 펑전과 루딩이의 몰락
4. 결과5. 참고문헌6. 문화대혁명 중의 사건

1. 개요

"나는 해서를 장려하지만 좋아하지는 않는다. 우파의 해서가 말하는 것은 듣지 않는다. 좌파의 해서는 환영한다.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에 서서 결점을 비평하는 것, 그것은 옳다."
마오쩌둥의 해서에 관한 교시

1965년 11월 10일 4인방의 일원인 야오원위안이 베이징 부시장 우한(吳晗)의 희곡 <해서파관(海瑞罢官[1])>이 대약진 운동에 대한 비판, 즉 마오쩌둥을 비판한 것이라고 지목하면서 벌어진 필화 사건. 이 사건을 계기로 류사오치덩샤오핑의 몰락이 시작되었다. 중국판 조의제문이자 문화대혁명이 일어나게 된 직접적인 계기 중 하나로 꼽힌다.

2. 배경

1957년 마오쩌둥이 지식인들에게 자유롭게 발언할 기회를 제공하는 백화제방운동을 실시하였을 때 부주석 류사오치, 베이징 시장 펑전 등은 대중을 부추기면 통제 불능의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고 백화운동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는데 백화운동이 시작되자 당국의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불만이 쏟아져나왔고 당황한 정부는 반우파 투쟁을 벌여 지식인과 학생들의 반정부 운동을 가혹하게 진압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베이징 시장 펑전은 엄청난 활약을 하여 마오쩌둥이 '바늘 구멍 하나도 나지 않고 물 한방울도 통과시키지 않는 수정주의의 독립왕국'라고 나중에 씹을 정도로 베이징을 장악하였다.

1963년 12월, 상하이 시장이자 공산당 내부에서도 손에 꼽히는 극좌파인 커칭스가 문화 영역에서 급진적 혁명이 필요하다고 보고하자 마오쩌둥은 이에 동조하여 문화혁명에서 악당들이 봉건주의, 자본주의 가치관을 전파하고 있다면서 1964년 7월 중앙위원회 내부에 문학계와 예술계에 대한 통제를 위한 문화혁명 5인 소조를 조직하라고 지시했는데 건국된 지 십수년이 지난 시점에서 급진적 계급투쟁에 구미가 당기지 않았던 류사오치를 비롯한 온건파들은 마오쩌둥의 요구대로 문화혁명 5인 소조를 결성하긴 했지만 류사오치 지지자인 베이징 시장 펑전을 소조장으로, 정치국 후보위원 루딩이를 후보위원으로 삼고 저우양, 우렁시, 캉성을 조원으로 삼았다. 이 중 마오쩌둥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은 캉성 한 사람밖에 없었다. 펑전은 학술 토론을 조직해 문화계에 있어서 공산당의 간섭을 제한하려고 했고 마오쩌둥은 가뜩이나 펑전이 수도에 대한 장악력을 약화시키는 장애물이라고 껄끄러워하던 판에 펑전에게 더욱 불만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대약진 운동이 처참한 실패로 돌아가면서 수천만 명이 굶어죽는 참담한 사태가 벌어지고 마오쩌둥은 류사오치의 동의를 얻어 국가주석에서 물러났다. 마오쩌둥은 류사오치 등을 '중국의 흐루쇼프'로 생각하고 이들이 자본주의 노선을 추종하여 자신을 흐루쇼프가 스탈린을 비판했듯이 폄하하고 깔아뭉갤 것이라고 여겼으며 오인소조의 일원인 캉성으로 하여금 베이징대학을 비롯하여 베이징의 공산당원들의 성분을 조사할 것을 지시했다. 조사를 마친 캉성은 베이징대학 당위원회는 속속들이 썩었다고 발표했는데 펑전은 이를 알고 격분했다. 재조사가 실시되었지만 그럼에도 베이징대학과 베이징시 당위원회는 부르주아 노선을 취하고 있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에 1965년 1월 펑전이 직접 베이징 시 당위원회 위원들과 함께 반격에 나섰고 덩샤오핑이 그를 지원하였다. 이로 인하여 60여명의 관료들이 복권되었지만 마오쩌둥은 펑전을 몰락시키기 위해 좀 더 교묘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었다.

3. 전개

3.1. 문제의 해서파관이란?

이 무렵 중국에는 '해서파관'이라는 희곡이 있었다. 해서명나라 시대의 충신으로, 악명 높은 명 4대 암군의 일원인 가정제에게 죽을 각오를 하고 간언하다가 파면된 일화를 남긴 인물인데 마오쩌둥은 1959년 당 지도층에 해서를 배우라고 교시하는 등 그동안 해서를 매우 고평가해 왔다. 해서의 충심을 높이 사기도 했겠지만 그보다는 해서를 인용하면서 자신은 죄가 없고 거짓 보고를 올린 부하들이 잘못한 것이라는 논리를 합리화하기 위한 속셈이었다. 하여간 1959년 4월 상하이에서 해서를 다룬 호남성의 경극을 본 마오쩌둥은 크게 감명을 받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해서는 황제를 매도했지만, 그것은 충심에서 나온 말이다. 충성스러우며, 강직하고, 아첨하지 않고 간언하는 해서 정신을 제창하지 않으면 안된다."

먼저 마오쩌둥의 비서 후챠오무(胡喬木)가 해서 선전에 나섰고 연이어 해서를 칭송하는 수많은 연극, 저작물, 신문 기사들이 발행되었다. 명나라 역사학자이자 베이징 부시장 우한도 이에 동참해 1959년 6월 <인민일보>에 <해서가 황제를 욕하다(海瑞罵皇帝, 海瑞骂皇帝)>라는 글을 기고하였고 7월에 <해서를 논한다(論海瑞, 论海瑞)>를 집필하여 후챠오무에게 전달했다.[2] 우한은 1961년 1월 <해서가 황제를 욕하다>를 <해서파관>이라는 희곡으로 수정하여 연극으로 만들었고 1961년 2월 초연하였다.

하지만 1959년 루산회의에서 국방부장 펑더화이가 마오쩌둥에게 직언하다가 동년 8월에 파면된 이후 해서파관의 뉘앙스가 이상하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마치 해서가 펑더화이, 가정제가 마오쩌둥의 모습으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1962년 1월 개최된 7천인 대회에서도 실제로 여러 사람들이 펑더화이를 해서에 비유하여 마오쩌둥에게 충격을 주었고 이 때문에 마오쩌둥은 부랴부랴 해서파관의 상영을 금지했지만 해서파관의 각본 자체는 계속 인쇄되어 중국 내부에서 큰 인기를 누렸다. 마오쩌둥은 이러한 상황을 조직적인 반당음모로 생각했다. 1961년 3월부터 1962년 9월까지 베이징 시 당 위원회 서기처 서기 덩퉈(鄧拓)가 <베이징 만보>에 루산야화를 153회 발표하고 1961년 10월부터 1964년 7월까지 우한, 덩퉈, 랴오모사(廖沫沙) 등이 전선잡지에 <삼가촌찰기>를 66회 발표한 것은 숙청된 펑더화이, 황커청 등을 격려한 것으로 여긴 것이었으며 그 배후엔 대약진 운동에 관련해 마오쩌둥을 크게 비판한 류사오치가 있다고 여겨졌다.

이러한 문제를 처음 제기한 것은 마오쩌둥의 아내 장칭이었는데 해서파관을 관람한 후 중대한 정치적 과오를 가진 연극이라고 비판했다. 황제에게 간언한 봉건시대 관리를 미화하는 것은 우파에 의한 자본주의 부활 음모라는 것이 장칭의 논리였다. 장칭은 해서파관이 반혁명 연극이라는 것을 폭로해야 한다고 마오쩌둥을 설득했다. 초기에는 마오쩌둥이나 캉성조차도 장칭의 주장이 지나치다고 생각했으나 류사오치, 덩샤오핑에 대한 감정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장칭의 주장을 수용하게 되었다. 마오쩌둥은 상황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고 1965년 2월, 장칭을 상하이에 파견했다. 장칭이 맡은 일은 다름아닌 베이징 부시장 우한이 만든 희곡인 <해서파관>을 고발하는 것이었다.

3.2. <신편 역사극 해서파관을 평함>

상하이는 마오쩌둥의 심복 커칭스가 시장으로 있는 곳으로 커칭스의 심복인 잡지 맹아와 상하이 해방일보 총편집장, 중국 공산주의 청년단 상하이 루완구 공위 선전부 부장 야오원위안과 상하이 당조직 선전부장 장춘차오가 장칭을 돕기 위해 나섰다. 주석의 지시에 따라 야오원위안이 우한을 고발하는 논설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1965년 여름 병을 핑계로 휴가를 신청해 일선에서 물러나 요양원에 들어간 야오원위안은 그곳에서 우한이 농업 집산화에 반대하고 대약진 운동을 비판했다고 고발하는 장문의 논설을 발표했다. 이 글은 9차례 교정되었으며 마오쩌둥이 손수 3번이나 교정해주었다. 마오쩌둥은 장칭에게 야오원위안의 논설을 보여주면서 중앙위원회의 다른 지도자들도 열람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이에 장칭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문장을 지금 그대로 출간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요. 제 생각엔 저우언라이 동지나 캉성에게는 읽어볼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더 좋습니다."

1965년 11월 상하이 강평로에 위치한 중국공산당 상하이시 당위원회에서 장칭, 장춘차오, 야오원위안, 해방일보 편집국장과 부국장이 모였다. 해방일보 편집국장과 부국장은 서둘러 조판 인쇄해야 할 논문이 있다는 이유로 한밤중에 영문도 모르고 끌려나온 터였다. 장춘차오는 구두점 하나도 틀려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며 '논문'을 인쇄할 것을 지시했다. 야오원위안이 논문을 편집국장과 부국장에게 원고를 건냈고 1965년 11월 10일 양상쿤소련과의 내통, 기밀누설죄를 뒤집어쓰고 해임된 날 마오쩌둥은 상하이 <문회보>에 야오원위안의 논설 <신편 역사극 해서파관을 평함>을 발표하게 했다. 여기서 우한은 "지주 계급 국가를 미화하고 혁명을 불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계급 조화론을 선전한 것"으로 비난받았으며 해서파관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독초로 지목되었다.

그 직후인 11월 12일 마오쩌둥은 직접 상하이로 향하며 톈진, 지난, 쉬저우, 방부, 난징의 지도자들을 만났다. 중난하이의 복록거에 거주하던 류사오치도 야오원위안의 논평과 해서파관을 주의깊게 번갈아 가며 읽으면서 생각에 잠겼는데 그때 왕광메이가 펑전이 의견을 물어왔다는 소식을 전했다. 류사오치가 뭐라고 했냐고 묻자 왕광메이는 의견을 발표하는 것이 곤란할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했다. 이에 류사오치도 적절한 대답이라고 수긍하였지만 마오쩌둥의 칼날이 그를 겨누고 있다는 것은 마오쩌둥 외에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3.3. 논전의 시작

펑전은 대단히 당황했다. 맨 처음에는 부시장을 비판하는데 시 당위원회에 연락도 오지 않은 사실에 크게 불쾌해했으나 일개 문예 평론가가 베이징 부시장을 공격했다는 점에서 배후가 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우한을 보호하자니 수정주의 세력을 보호한다는 비난을 받을 것이고 우한을 내치자니 그동안 수정주의자를 부시장으로 두었다는 비판을 받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때마침 베이징 일보사 사장 범근에게 전화가 와서 야오원위안의 논설을 게재해도 될지를 묻자 펑전은 다음과 같이 지시했다.
"당 중앙 기관지 <인민일보>의 중요 사설도 아니니 전재할 필요는 없다."

인민일보를 비롯한 베이징의 신문사들에게 야오원위안의 논설을 싣지 말라고 지시했으며 문회보에 전화하여 야오원위안의 배후를 캐고자 했으나 실패했다. 이때 저우언라이가 개입, 마오쩌둥이 우한에 대한 비판을 지지하고 있다고 통고하자 펑전은 11월 28일 당 중앙 선전부와 베이징시 당위원회 책임자들을 모아 회의를 소집, 게재 금지를 철회하였다. 다만 "야오원위안의 논문에 어떤 사연이 있든 간에, 진리 앞에서는 누구나 평등하다."라고 하면서 이를 정치 투쟁이 아니라 학술 논쟁으로 소개하고 야오원위안의 논문의 원문에 생략된 우한의 경칭을 첨가하여 '우한 동지'로 고치게 했다.

11월 29일 베이징 해방일보와 베이징 일보, 당 중앙군사위원회 기관지 해방군보도 야오원위안의 논문을 게재했다.[3] 11월 30일 인민일보도 야오원위안의 논설을 게재하고 각계에 해서파관의 토론에 모두가 용감하게 참가하자고 호소했다. 이에 해방일보는 적극적으로 해서파관을 비평했다.

덩퉈가 펑전의 부탁을 받고 우한을 옹호하는 글을 베이징 일보에 발표했고 펑전도 우한의 해서파관이 펑더화이를 옹호하려는 내용이라는 주장이 학문적 논란이라고 우한을 옹호했다. 우한 본인은 초기에는 "나는 야오원위안의 비평이 두렵지 않다. 다만 내가 보기에 이는 거짓상표로 치장한 일종의 사이비 비평처럼 보인다. 이는 부적절한 행동 방식이다. 누가 감히 무언가를 쓸 수 있을 것이며, 누가 감히 역사를 배울 수 있겠는가?"라는 날선 반응으로 맞섰지만 이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였다. 그 사이 인민해방군 참모총장 뤄루이칭이 12월 8일 정치국 회의에서 10시간 동안이나 규탄을 당한 후 가택연금을 선고받았다. 이는 그가 펑더화이처럼 군 현대화를 주장했다가 펑더화이 노선으로 분류된 까닭이었다. 뤄루이칭은 격리심사를 통보받고 상하이에 감금되어 계속되는 강도 높은 조사를 당해야 했다. 1965년 12월 마오쩌둥은 항저우에서 천보다에게 다음과 같이 교시했다.
"우한이 쓴 해서파관의 핵심은 파관이다. 가정제는 해서의 관직을 박탈했다. 1959년에 우리들은 펑더화이를 파면했다. 펑더화이도 해서다."

3.4. 2월 제강

마오쩌둥은 상하이에서 항저우로 출발해 뤼산, 광저우, 난닝을 여행한 후 창사를 거쳐 우한시로 갔다. 1966년 2월 펑전은 캉성, 루딩이, 신화사 사장 오인소조를 이끌고 우한시에서 휴식 중이던 마오쩌둥을 찾았다. 이들은 2월 3일 작성한 <당면 학술 토론에 대한 문화혁명 오인소조의 보고 제강>, 이른바 2월 제강을 마오쩌둥에게 제출했다. 마오쩌둥이 펑전에게 물었다.
"정말로 우한이 반당, 반사회주의요?"

이에 캉성이 먼저 대답했다.
"반당, 반사회주의적인 독초입니다."

마오쩌둥이 "물론 누구든 상반된 관점이 있다면 당연히 표현해야겠지."라고 말하자 펑전은 우한을 옹호하고 나섰다.
"우리는 그 연극에서 제기된 학술 주제를 토론할 때 마땅히 '백화제방, 백가쟁명'이라는 주석의 지시에 따라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에 마오쩌둥은 당신들이 일을 끝냈으니 "나는 더 이상 볼 필요가 없겠군. 여러분이 알아서 할 일이오."라고 말하면서 펑전을 안심시켰다. 펑전은 2월 제강에 대해 주석이 비준했다고 여기고 가벼운 마음으로 우한의 고서점가에서 쇼핑을 즐기는 등 휴식을 취했지만 마오쩌둥은 2월 제강을 승인할 생각이 전혀 없었으며 오히려 이를 빌미로 무시무시한 철퇴를 준비하고 있었다.

3.5. 펑전과 루딩이의 몰락

1966년 3월 17일 항저우에서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확대회의가 소집되었다. 류사오치, 저우언라이, 린뱌오, 펑전, 캉성 등과 자치구, 성 중앙국 1서기 등의 주요 인사들이 참여했는데 마오쩌둥은 그 자리에서 펑전이 독립적인 왕국을 경영했으며 펑전, 우한, 우렁시 등을 자산계급 문화 전파자라고 맹비난했고 전국적으로 모든 대학, 중학, 소학까지 계급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고 발언하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
"학생들이 소동을 일으키게 하라. 우리에겐 맹목적인 믿음이나 규제가 필요없다. 우리는 새로운 지식분자, 새로운 관점, 새로운 창조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수들을 뒤집어 엎는 학생들이다."

한편 뤄루이칭은 3월 18일 혹독한 조사를 견디지 못하고 창문 밖으로 뛰어내려 투신자살을 시도했지만 발부터 떨어지는 바람에 다리만 부러졌고 이것은 그의 유죄를 결정적으로 입증해 버렸다. 류사오치는 "그는 머리부터 뛰어내렸어야 했는데, 살고 싶은 마음에 발을 앞으로 모으고 떨어졌다."고 비웃었고 덩샤오핑도 뤄루이칭이 "마치 얼음과자처럼 떨어지더라."고 조롱했다. 죽지 못한 뤄루이칭은 즉각 바구니에 담겨 비투회에 끌려나가 치욕스러운 조리돌림을 당했다.

3월 27일 마오쩌둥은 항저우에서 캉성과 장칭을 불러 베이징 시당 위원회와 중앙위원회 선전부가 좌파를 지지하지 않고 악인을 보호하고 혁명에 반대했으므로 해체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지금 베이징시 위원회의 상황은 '바늘 한개도 들어가지 않고 물 한방울도 스며들지 않는다'는 옛말 그대로다. 그렇기 때문에 해산시켜야 한다. (...) 우리는 염라대왕을 타도하고 귀졸들을 해방시켜야 한다."

마오쩌둥은 다시 한 번 우한을 반당, 반사회주의자로 비난했고 <전선> 잡지에 실린 <삼가촌찰기>를 비난하며 덩퉈, 랴오모사를 극렬히 비판했다. 캉성이 마오쩌둥의 이러한 의사를 저우언라이에게 전달했다. 저우언라이와 덩샤오핑은 즉각 펑전이 "마오쩌둥 사상에 반대하고 주석에게 반기를 들고 있다."고 맹비난하며 마오쩌둥의 의사에 충실히 따랐다. 4월말에 펑전은 가택에 연금되었다.

펑전 다음에는 오인소조의 일원이자 선전부장 루딩이가 숙청되었다. 그 역시 펑전과 우한을 옹호하였는데 1966년 2월 장칭린뱌오가 상하이에서 소집한 군사회의에서 두 사람은 "문학 영역과 대다수 교수들이 우리의 정치적 견해를 지배하려는 흑방 역할을 해왔다."고 맹비난했다. 특히 린뱌오의 아내 예췬은 루딩이의 아내 옌웨이빙과 깊은 원한이 있었다. 옌웨이빙은 린뱌오에게 예췬이 음란한 여자라서 바람을 피우고 있으며 린뱌오의 딸 린리헝에게 예췬은 사실 친모가 아니란 식의 비방 편지를 보낸 적이 있었다.

4. 결과

이어 1966년 5월 4일부터 18일까지 정치국 확대회의가 개최, 5월 16일에 마오쩌둥이 소위 5.16 통지를 회람시킴에 따라 5.16 사건이 일어나면서 펑전, 루딩이, 뤄루이칭, 양상쿤 등이 완전히 숙청당했다.

5. 참고문헌

  • 로더릭 맥파커 외, 중국 현대정치사 : 건국에서 세계화의 수용까지 1949~2009(서울: 푸른길, 2012).
  • 로스 테릴, 마오쩌둥(서울: 이룸, 2008).
  • 로스 테릴, 장칭 : 정치적 마녀의 초상(서울: 교양인, 2012).
  • 백승욱, 중국 문화대혁명과 정치의 아포리아 : 중앙문혁소조장 천보다와 '조반'의 시대(서울: 그린비, 2012).
  • 산케이신문 특별취재반, 모택동 비록 上(서울: 문학사상사, 2001).
  • 알렉산더 판초프, 스티븐 레빈, 마오쩌둥 평전(서울: 민음사, 2017).
  • 에즈라 보걸, 덩샤오핑 평전 : 현대 중국의 건설자(서울: 민음사, 2014).
  • 장옥법, 중국현대정치사론(서울: 고려원, 1991).
  • 장융, 존 핼리데이, 마오 :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 下(서울: 까치글방, 2008).
  • 중국공산당중앙당사연구실, 중국 공산당 역사 2권 하(서울: 서교출판사, 2014).
  • 프랑크 디쾨터, 문화 대혁명: 중국 인민의 역사 1962~1976(파주: 열린책들, 2017).
  • 현이섭, 중국지 : 마오쩌둥과 중국 혁명 평석 下, 대란대치편(서울: 인물과사상사, 2017).

6. 문화대혁명 중의 사건


[1] 정체자로는 海瑞罷官[2] 이때 후챠오무는 우한의 논문의 위험성을 직감하고 해서와 펑더화이는 같지 않으며, 해서는 우파가 아니라는 구절을 덧붙였다.[3] 다만 펑전의 지시대로 학자들 사이의 논전이라는 주석을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