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 박초롱초롱빛나리 유괴 살인 사건 | |||
<colbgcolor=#bc002d> 발생일 | 1997년 8월 30일 | ||
발생 위치 | |||
서울특별시 동작구 사당동 | |||
유형 | 살인 | ||
원인 | 피의자의 채무 | ||
혐의 | 약취ㆍ유인ㆍ매매ㆍ이송 살인죄 형법 제291조 1항 | ||
인명 피해 | <colbgcolor=#bc002d><colcolor=#fff> 사망 | 1명 (박초롱초롱빛나리, 8세) | |
피의자 | 전현주 (28세, 체포 당시 임산부) | ||
관할 | 서울서초경찰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 ||
결과 | 무기징역 | ||
재판선고 | 제1심 사형항소심 무기징역 (감형 및 확정) |
[clearfix]
1. 개요
1997년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이었던 '박초롱초롱빛나리'가 28세 임산부 전현주에 의해 유괴된 후 살해당한 사건. 피해 아동의 길고 독특한 이름 때문에 다른 유괴 살인 사건 보다 더 대중들의 뇌리에 깊게 박힌 사건이며 범인이 임산부로 밝혀져 당대 한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줬던 사건이다.2. 사건 내용
1997년 8월 30일 범인 전현주는 서울특별시 서초구 잠원동의 뉴코아백화점(현 뉴코아아울렛 강남점) 버거킹에서 콜라 한 잔을 구입해 마시며 서성이던 도중 영어학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귀가하던 피해자 박초롱초롱빛나리[1]를 목격하고 재밌는 곳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유인, 소품 제작실 겸 창고로 사용하던 사당동의 지하 창고로 유괴하였다.그리고 당일 저녁 총 3차례에 걸쳐 피해자의 부모에게 공중전화로 2천만 원의 몸값을 요구하였다. 전현주는 첫 번째 협박 전화를 한 뒤 피해자에게 수면제를 사탕이라고 속여서 먹이고 잠재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에서 깨어나 울면서 집에 보내달라고 애원하는 피해자를 교살했다. 대부분의 유괴, 납치 사건에서 범행 당일에 피해자가 살해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2] 이후 거치적거린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기고 시신을 등산용 배낭에 담아 창고의 출입구 쪽 계단 밑에 방치했다.
유괴 다음 날 전현주는 명동의 커피숍에서 피해자의 부모에게 "전화상에서 말한 액수의 금액을 준비하고 오라"는 내용의 전화를 하던 중, 발신지 추적으로 들이닥친 경찰의 검문에 걸리고 말았다. 경찰은 전화가 걸려온 지 9분 만에 신속하게 전현주를 포위했지만, 커피숍에 있던 13명의 사람(여자 12명, 남자 1명)을 검문하다 임신 8개월 상태인 임산부가 설마 범인이겠느냐며 현실적이지 않다고 가볍게 넘어가다가 그만 놓쳐버리고 만다. 심지어 엉터리 몽타주까지 만들어내 전국에 뿌려댄 탓에 10만 장의 종이가 휴지조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검문을 하는 경찰의 입장에서도 아이를 품고 있는 임산부가 어린이 납치 같은 중대한 아동 범죄를 저지를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전현주는 궁지에 몰리게 되자 반성은커녕 "아기가 배를 차서 몸이 좋지 않다."며 히스테리컬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내뱉어 동정이나 사려고 했고, 그녀의 후배들까지 형사들에게 "임산부에게 이래도 되느냐?"고 윽박지르며 전현주의 편을 들어주기도 했다. 비공개 수사 중이어서 자세한 설명을 할 수도 없던 경찰의 입장에서는 무리해서 임산부를 수색하기보다는 그냥 보내 주자는 판단을 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혐의점을 증명할 증거도 딱히 없는 상황에서 일반인도 아니고 만삭의 임산부를 체포하거나 했다가는 인권침해 논란으로 비화될 수 있기도 했다.[3]
임산부라는 말도 듣지 못했고, 또 같이 동행한 사람들이 신원을 확인하면서 항의를 하고 하기 때문에 그 사람들을 전부 다 돌려보냈습니다.
하태신 당시 서초경찰서장.
하태신 당시 서초경찰서장.
삐삐 내역으로 꼬리를 잡힌 전현주는 9월 12일 신림동의 한 여관에서 검거되었다.
참으로 애절하고 비통한 심정입니다. 살아서 부모의 품에 안기길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박나리 양은 이 세상에 살아있지 않다는 사실이 오늘 확인되었습니다. 천금 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으로, 지금부터 박나리 양 유괴 사건의 속보를 전해드립니다.
피해자의 시신이 발견된 당일 KBS 뉴스 9를 진행한 류근찬의 오프닝 멘트.
피해자의 시신이 발견된 당일 KBS 뉴스 9를 진행한 류근찬의 오프닝 멘트.
검거 당시의 전현주는 임산부였고, 2월에 결혼식을 올린 상태였다. 내무부 산하기관에 근무하던 고위공무원 아버지를 둔 전현주는 유복하게 자랐으며, 의사나 작가를 지망하고 있었으나, 본인의 의지와 달리 한신대학교 무역학과를 거쳐 응급구조학으로 전공을 바꾼 후 미국 유학에 올랐다. 사건 2년 전인 26세 당시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입학해서 총학생회 간부를 맡기도 했다. 커피숍에서 검문에 걸린 상태에서 전현주의 전화를 받고 달려온[4] 서울예대 후배들이 경찰에게 "임산부를 거칠게 대하지 말라!"며 항의하는 통에 경찰이 그냥 풀어준 것도 바로 이 때문인데, 물론 이들도 선배가 그런 인간 말종일 리가 없다고 판단하고 그런 것이었지만, 전현주가 충격적이게도 이런 추악한 범죄자로 밝혀지자 서울예대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비난이 얼마나 심했는지, 학교 이미지까지 추락해서 사건과 아무 관계도 없는 엄한 서울예대 재학생들이 학교도 못 다니고 휴학해야 했을 정도였다.
전현주는 사치와 낭비가 심한 터라 결혼 후 3천만 원의 빚더미에 앉게 되었고, 채무를 변제하기 위해 유괴를 계획했음이 밝혀졌다.
피해자의 어머니 한영희 여사는 범인의 검거 소식에 딸을 찾을 수 있으리라 굳게 믿으며 경찰서로 달려가 취재진들 앞에서 감사 기도까지 하였지만, 머지 않아 딸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는 소식에 충격에 빠지고, 사당동 어디냐고 외치며 넋을 잃은 그 모습이 지상파로 전국에 방영되었다. 당시 피해자는 서울원촌초등학교 2학년 5반에 재학 중이었는데, 사망이 알려지자 서울원촌초등학교 학생들은 분노와 슬픔을 감추지 못했다. 전현주의 자백에 따라 창고를 수색한 경찰은 등산용 가방에서 심하게 부패한 피해자의 시신을 발견한다.
유괴 소식에 PC통신을 중심으로 박초롱초롱빛나리 찾기 운동이 벌어졌고, 지상파 뉴스에서도 범인의 육성을 들려주며 캠페인에 동참했다.
단독 범죄로 결론났으나, 남편은 물론 피해자의 유가족도 전현주의 체포 직후부터 전현주의 단독 범행임을 믿지 않았으며 의문스러워하였다. 전현주가 체포되던 당시 그녀의 남편은 아내가 그런 인간이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접하고 망연자실하여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후 9월 17일[5] 사건 현장인 사당동의 지하 창고에서 전현주가 현장검증을 하며 범행 당시의 상황을 재연할 때, "현주야, 사실대로 말해! 너 아니잖아, 임마! 시키는 대로 했잖아!"라고 울부짖는 절규가 그대로 뉴스 전파를 탔다.
3. 그 후
검거 후 범인 전현주는 자술서에 검찰에 검거되기 전 부모가 자신에게 5번이나 자살을 권유했다고 썼다. 부모는 "네가 속죄하는 길은 자살뿐이며, 우리도 곧 따라갈 테니 두려워하지 말라"며 약국에서 살충제까지 구입해 줬다고 한다. 그래서 검거 당시 여관 내부를 촬영한 뉴스 영상을 보면, 테이블에 살충제 병이 그대로 나온다. 딸이 홀몸도 아니고, 임신까지 했는데다 산달이 다 된 만삭이었는데도 자살을 권했다는 점에서 부모가 얼마나 자포자기 심정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다. 경찰 조사 도중 전현주는 그런 부모가 걱정되었는지 동생에게 "부모님을 잘 보살펴 드리고, 자살하지 못하도록 막아달라"는 당부의 편지를 쓰기도 했다.범인은 전문가들에 의해 연극성 성격장애로 진단받았다.[6] 진술 도중에도 증언을 번복하고, 성폭행을 당했다거나 공범의 존재를 주장하는 등 동정심에 호소하고, 자신의 죄질을 낮추어 최대한 감형을 받고자 온갖 이유를 동원해 변명하려 애썼다. 이때 공범이 있다는 진술이 언론을 타면서 뉴스에서 공범에 의한 2차 피해를 경고하기도 했으며, 사람들은 끔찍한 범죄를 도와준 공범들의 존재를 믿었으나, 얼마 후 임산부의 단독 범행이라는 게 다시 밝혀지며 사회는 더욱 충격에 빠졌다.
서울지검은 진술조차 거짓을 반복하는 전현주의 죄질이 매우 불량하다고 판단해 사형을 구형했고,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지만, 결국 항소심에서 감형되어 무기징역이 확정되며 [age(1969-08-27)]세인 현재까지 교도소에 복역 중이다.
2000년대 초반 무렵까지 이런 극단적인 사회적 쇼크를 준 사건에 있어서 판사가 피고인을 유죄로 보고 양형에 하는 때에는 사형을 선고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는 점에서 당시에 상당히 이례적인 판결이라고 평가받았다고 한다. 그 이전 이 사건과 유사한 사건에서 관련 피의자들이 전원 예외 없이 이유 불문하고 사형이 선고되었던 선례가 있었고[7], 직접적인 예시가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피해자이자 존속살인범이 되어 버린 이은석 사건에서는 정상참작해서 무기징역이었던 반면 전현주는 딱히 법원에서 그런 고려를 해 줄 만한 사안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고작 무기징역에 그쳐서 당시에 여러 안 좋은 뒷말들이 있었던 듯 하다.[8]
범인 전현주가 만삭의 임산부 상태였기 때문에 만일 사형을 집행하게 될 경우 태아까지 같이 처형시키는 꼴이 되기 때문에 이제 태어날 아기만은 살게 해 주기 위해서 무기징역을 선고한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사형수가 임신한 경우 출산 후까지 기다렸다가 집행한다는 법조항[9]이 이미 있기에 잘못된 주장이다.
사실 그보다는 전현주가 전문가들에게 성격장애를 인정받은 정신병 환자이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한국보다 처벌이 훨씬 엄격한 미국에서도 흉악범 중에 제프리 다머의 케이스처럼 명백한 정신병 진단을 받을 경우 한 단계 아래의 처벌로 감형해주는 경우가 꽤 있다.
전현주는 그 뒤에 경찰병원에서 딸[10]을 낳았으며, 남편이 곧바로 아이를 데려갔고, 이후 미국으로 입양을 보냈다고 한다.[11] 통상적으로 범죄자가 임산부일 경우 인근 병원에서 출산 후 바로 주변 가족에게 아이를 인계한다. 만약 가족이 없을 경우 어쩔 수 없이 교도소에서 아이를 키우게 되지만, 생후 18개월이 되면 보육원으로 보내진다. 18개월 후부터는 서서히 인지능력이 생긴다고 보기도 하고, 교도소라는 환경 자체가 아이에게는 성장환경에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 장소이며, 무엇보다도 아무런 죄가 없는 아이를 교도소에 계속 놔둘 수도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보통 임산부 수형자들은 출산하면 1달 동안 형집행정지를 해 주지만, 전현주는 기간이 반토막나 2주만 받았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밝혀진 이유는 사회에 큰 충격을 준 유괴범이라는 점과 자칫 있을지 모를 불상사를 우려해 기간을 단축했다는 것.#
4. 범인
자세한 내용은 전현주(범죄자) 문서 참고하십시오.5. 여담
- 곽재은 유괴 살인 사건과 유사한데, 두 사건의 범인인 전현주와 홍순영은 금수저이고 범행 당시 젊은 나이에도 사치가 상당한 데다가 키도 150cm대로 단신이다. 결정적인 차이점은 홍순영은 사형당하여 생을 마감한 반면, 전현주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지금도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전현주는 설사 사형을 확정받았었더라도 대한민국의 마지막 사형 집행이 된 해가 1997년이었기 때문에 실제 집행은 되지 않았을 것이다.[12] 다만 그랬으면 현재 복역 장소인 청주여자교도소가 아니라 서울구치소 등지에서 복역하고 있었을 것이다.
- 박초롱초롱빛나리의 이름은 별처럼 빛나는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부친이 직접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 양친이 몇 번의 유산 끝에 간신히 얻은 딸이라 정말 귀하게 키웠다고 한다. 슬하 2녀인데 부모가 1956년생이기 때문에 33세, 35세에 태어난, 당시 기준으로는 늦둥이였고[13], 첫째인 박초롱초롱빛나리 본인은 1989년생이고, 여동생은 1991년생.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에 걸맞게 연예인이 장래희망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참혹한 범죄의 희생양이 되어 요절하면서 영영 그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 유괴 9일 후인 1997년 9월 8일은 피해자가 만 8세를 맞이하는 생일이었는데, 이 당시 아이의 행방이나 생사 여부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가족들은 어느 때보다도 슬픈 생일을 맞이해야 했다. 가족들은 주인 없는 생일상을 차리고 무사 귀환을 기원했지만, 나흘 후 범인이 검거되며 생일을 맞지도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져 안타까움을 더했다.
- 박 양의 빈소는 서울강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되어 장례식이 진행되었고, 박 양의 시신은 9월 13일 발인 후, 경기도 성남시 영생관리사업소에서 부모님이 생일 선물로 사 준 분홍색 곰인형과 빨간색 원피스와 함께 한 줌의 재가 되었다. 이후 화장된 유해는 대천해수욕장에 뿌려졌다.
- 이 사건 이후로 길거나 눈에 잘 띄게 아이의 이름을 짓는 사람들이 줄었다고 알려졌으나, 이 사건이 일어나기 4년 전인 1993년에 이미 성씨를 제외한 이름을 5글자 이내로 제한하는 규정[14]이 실시되었기 때문에 이 사건과는 관련이 없다.[15]
- 범인이 '범죄자' 하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스테레오타입 그대로의 '우락부락하고 무섭게 생긴 남성'이 아니였으며, 범죄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임산부였던 점도 사회적으로 굉장히 큰 충격을 주었다. 임산부들은 아이를 품고 있어서 모성애가 넘치고 착할 것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있기 때문. 교육계 일각에서는 '낯선 사람을 조심하자'는 유괴, 납치, 성범죄 방지 표어의 한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였다. 어린이 안전교육 교재는 대부분 '낯선 아저씨를 조심하고 경계하라'고만 서술된 경우가 많다. 아이들이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어린이집 및 유치원 교사, 학교 교사, 학원 강사, 방과후 교사, 지역아동센터 복지사 등도 대다수가 여성이기 때문에 아이들은 대체로 여성에게 친밀감을 느낀다. 대체로 낯선 할아버지, 아저씨, 형, 오빠는 극도로 경계하지만, 낯선 할머니, 아주머니, 언니, 누나는 그렇게까지 경계하지 않는다. 서구권 국가들은 1980년대부터 '낯선 사람 조심' 교육을 포기하고 '안전한 행동(protective behavior)'으로 교육 방식을 변경하였으나, 대한민국은 이러한 인식이 퍼져있지 않아 사건 이후로도 유사한 어린이 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2000년대 후반에서야 '낯선/모르는 사람은 따라가지 마라', '아는 사람이라도 무작정 따라가지는 마라', '누군가가 도움을 청하면 다른 어른을 찾아주어라'라는 식으로 새로운 안전생활 교육이 시작되었다.
- 임산부가 범인이라는 사실은 친절한 금자씨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회자된다. 전현주는 재판 과정에서 "공범이 있으며 성폭행을 당해서 범행을 저지르게 됐다."고 거짓 진술을 하여 언론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되기도 하였다. 아기를 출산해 교도소에서 죄수들이 아기를 보려고 난리였다고 한다. #
- 1980년대부터 성행한 금품 요구를 목적으로 한 어린이 유괴 살인사건이 이 사건을 마지막으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사실 1993년부터 금융실명제가 실시되면서 유괴범죄의 필수품이었던 가명 통장개설이 불가능하게 되자, 어린이 유괴범죄가 주춤하기 시작했고, 1997년만 해도 은행을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공공장소에서 본격적으로 CCTV가 설치된 상황이었으며, 정보통신 추적 기술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범죄의 성공 가능성이 매우 희박해지면서 당시에도 거의 사라져 가는 상황이었다. 1978년 정효주 유괴 사건을 시작으로, 1980년 이윤상 군, 1991년 이형호 군 유괴사건 등 피해 아동의 실명을 따 불리는 수많은 OOO 유괴사건도 1997년 박나리 양이 마지막이었다. 물론 그 뒤로 이런 범죄가 100%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이제는 한국 사회에서 성공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범죄가 되어 버렸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금품 요구를 목적으로 한 유괴사건에 대한 이야기이고, 성범죄 목적의 유괴 범죄는 그 이후에도 일어나곤 했다.[16] 금품 요구를 목적으로 한 유괴가 지속적으로 피해 아동의 부모와 접촉해야 해서 추적 기술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과는 다르게, 이러한 범죄는 한 번 아이 유괴에 성공하고 나면 이후 잠수 타면 되므로 범행의 양상이 훨씬 단순하기 때문에 위에서 말한 첨단 추적기술의 발달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 2021년 8월 25일에 KBS의 표리부동에서 <친근한 접근 아동유괴 범죄>라는 부제로 곽재은 유괴 살인 사건과 함께 이 사건도 같이 다루어졌다. 다만, 이름은 신원 보호를 위해 박 양으로 익명 처리되었다. 영상
- 2022년 3월 6일 알쓸범잡2에서 이 사건을 다루었다. 영상
- 훗날 새천년민주당 대변인과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경기도의원을 지낸 장전형[17]이 "범인 전현주를 호텔에서 목격했다"는 인터뷰를 했다. 1997년 9월 13일자 KBS 뉴스 9 영상 참고.
- 시그널 1회 에피소드인 김윤정 유괴 및 살인 사건의 모티브로 추측된다.
- 전현주는 현재 청주여자교도소에 수감 중인데, 1969년 8월 27일생([age(1969-08-27)]세)으로 아직 환갑도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들 할머니라고 오해할 정도로 노안[18]이며 다른 재소자들에게 불리는 별명이 피해자의 이름에서 따온 '초롱이'라고 한다.[19] 당사자 본인은 이렇게 불리면 매우 불쾌해 하며 살기등등하게 쳐다보는데, 그러다가 집단 폭행을 당해 격리된 적도 있다고 한다. 애초에 아동에게 범죄를 저지른 수감자는 교도소에서도 쓰레기 취급 받는 대상 중 하나이다.
- 범죄 다큐멘터리 그녀가 죽였다에서 이 사건을 다루었다.
- 범인인 전현주가 가석방 심사를 통과해 2025년 출소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단독' 타이틀로 세계일보의 보도기사, 2024년 7월 30일자로 가석방된다는 연합뉴스 보도기사 등이 다수 커뮤니티에 떠돌았으나 이는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편집하여 유포한 거짓 찌라시로 밝혀졌다.[20]
6. 관련 자료
7. 유사 사건
- 곽재은 유괴 살인 사건 (1990)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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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0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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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서울원촌초등학교 2학년으로, 1989년 9월 8일 생.[2] 증거를 최대한 인멸하기 위해 살해하는 것이다. 비슷한 사례로는 곽재은 유괴 살인 사건부터 이형호 유괴 살인 사건, 그리고 안양 초등생 유괴 살인 사건이 있는데, 이 중 안양 초등생 유괴 살인 사건의 경우는 범인 정성현이 우예슬, 이혜진을 납치해 성폭행을 시도하다가 저항하자 살해한 케이스다.[3] 이 당시는 문민정부 후반기 시절이어서 그 이전처럼 경찰이 용의자는 냅다 몽땅 잡아가서 취조하거나 할 수 없었다. 아무리 군사정권 시절이었다 해도 만삭인 임산부를 강하게 취조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4] 당시 서울예술대학교 남산캠퍼스는 명동역에서 직선거리로 200m에 위치해 있을 만큼 가까웠다. 연락만 된다면 몇 분 안에 도착 가능한 거리.[5] 1997년 추석연휴 마지막 날이었다.[6] 연극성 성격장애는 반사회성 성격장애, 경계선 성격장애, 자기애성 성격장애와 함께 B군 성격장애 범주에 속한다. 극적이고 감정적이며 변덕스러운 유형이다.[7] 예를 들어 젊은 여성이 단독으로 이런 범행을 일으킨 곽재은 유괴 살인 사건의 범인 홍순영의 경우 두 사건이 매우 유사함에도 전현주와 달리 사형을 선고받고 1991년 처형되었다. 물론 이 때는 아직 사형제가 공식적으로 시행되던 때였다.[8] 다만 존속살인은 일반 살인에 비해 형량 자체가 더 높다. 법적으로 유교 사상이 적용되는 희소한 예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현재는 지속적인 아동 학대의 피해자가 저지르는 존속살해는 정상참작이 들어가지만, 2000년대 초중반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고 그냥 패륜아처럼 다루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은석의 경우에도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아동 학대의 피해자로 보고 무기징역을 내리기는 했다.[9] 형사소송법 제469조, 사형집행의 정지. ①사형의 선고를 받은 자가 심신의 장애로 의사능력이 없는 상태에 있거나 잉태 중에 있는 여자인 때에는 법무부장관의 명으로 집행을 정지한다. ②전항의 규정에 의하여 형의 집행을 정지한 경우에는 심신장애의 회복 또는 출산 후 법무부장관의 명령에 의하여 형을 집행한다.[10] 1997년 10월 15일 생 (현재 [age(1997-10-15)]세).[11] 이후 남편의 근황은 불명이지만, 정황상 이혼한 것으로 보인다. 그때 태어났던 아이 역시 근황이 확인되지 않으나, 별 얘기가 없는 것으로 봐서는 미국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남편을 비롯한 가족들이 아이의 양육을 포기한 것에 대해, 아이는 아무런 죄가 없으므로 자신을 낳은 친모가 어떤 추악한 범죄를 저질렀는지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라 입양을 택한 것 아니겠느냐는 추측도 있다. 하긴, 원가족의 손에 키워졌을 경우 살인자의 자식이라는 굴레에서 아이가 아무것도 모르고 상처받지 않은 채 자라기는 매우 힘들었을 것이다.[12] 참고로 2024년 현재 남아있는 사형수는 모두 남성이다.[13] 사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엄마 기준 만 33살에 낳았다면 늦둥이 취급 받았다.[14] 1993년 2월 25일 제정된 호적예규 제485호 이름의 기재문자와 관련된 호적 사무처리 지침[15] 이 때문에, 아무리 성을 포함한 이름이 길어야 6글자(복성인 경우 7글자)가 최대다. 손고장난벽시가 글자 제한으로 그렇게 되었다. 웬만한 경우에는 카드형 신분증, 여권의 MRZ에 로마자로 풀어 쓴 이름이 들어가지며, 박초롱초롱빛나리의 경우에도 여권이나 영주권 카드 등의 웬만한 신분증 발급시 MRZ에 로마자로 풀어쓸 수 있긴 하나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여 이름에 들어가는 글자 수를 제한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16] 대표적으로 안양 초등생 유괴 살인 사건이 있다.[17] 1997년 9월 당시에는 새정치국민회의 대변인실 전문위원. 이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 당시 물은 셀프라는 발언으로 유명해진 그 사람이 맞다. 씁쓸하게도 장전형 본인도 훗날 비리로 인해 유죄 판결을 받았다.[18] 오랜 시간 동안 피부를 관리하지 않고 살아가면 50대라도 충분히 노인으로 오해 받을 수 있다. 당장 1980년대까지만 해도 농사짓는 사람들이 많아 햇빛에 장시간 노출되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피부관리라는 개념 자체가 미비했던 시대라 당시 50대의 나이는 오늘날의 60대 중반~70대 초반으로 보여 사실상 노인의 외모를 보였다. 전현주의 경우 50대에 접어들면서 자연히 세월의 흔적을 그대로 받고, 열악한 교도소의 환경과 그에 따른 스트레스를 장기간 받으면서 그만큼 노화 속도가 더 빨라졌을 가능성이 크다.[19] 사실 이런 별명을 붙이는 것도 그렇게 잘 하는 짓은 아니다. 전현주가 동정받을 가치가 있는 인간이라는 뜻이 아니라 피해자에 대한 고인드립이기 때문이다.[20] 해당 내용이 궁금하다면, '전현주 가석방'이라고 검색해 보기를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