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주 Jun heyun-ju | |
출생 | 1969년 8월 27일 ([age(1969-08-27)]세)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신길동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AB형[1] |
학력 | 한신대학교 (무역학 / 학사)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예창작과 / 중퇴) |
죄목 | 약취ㆍ유인ㆍ매매ㆍ이송 살인죄 |
범행일 | 1997년 8월 30일 |
체포 | 1997년 9월 12일 (체포 당시 28세) |
형량 | 무기징역 |
수감처 | 청주여자교도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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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초롱초롱빛나리 유괴 살인 사건의 범인.2. 생애
전현주는 육군 대령 출신의 아버지와 주부인 어머니 사이에서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아버지 전씨는 1990년에 예편한 뒤 내무부를 거쳐 산하 단체의 요직을 맡고 있었다. 직업군인이던 아버지를 따라 전국 각지를 이사다니며 유년기를 보냈고, 서울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다.어릴적부터 유복하게 자랐으며 바이올린과 피아노, 미술학원에 다닐 정도로 예술에도 소질이 있었다. 고교 생활기록부에도 '명랑하고 책임감이 있으며 미술에 재능이 있다'고 적혀있었다. 성적도 좋았다고 한다.
의사나 문필가를 꿈꿨으나 재수 끝에 4년제 대학 무역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때 전공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학생운동에 가담해 총학생회 간부를 지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취업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응급구조학을 공부하겠다며 미국 유학을 떠났지만 얼마를 못 버티고 돌아왔다.
1995년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 재입학했다. 이곳에서도 총학생회 간부로 활동하며 연극을 하던 최씨를 만난다. 전현주는 최씨와 사귀면서 학업은 뒷전이었고, 결국 수업일수와 학점이 모자라 제적 당했다.
전현주 부모는 딸이 최씨를 만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가난하고 직업이 일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현주는 임신 3개월인 상태로 1997년 2월 최씨와 결혼한다.
신길동 지하 단칸방에 신혼살림을 차렸으나 최씨의 인형극단이 실패하면서 수천만원의 빚을 지는 등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린다. 여기에 전현주는 허영심과 사치, 낭비벽이 심해 생활력이 없었다. 생활고와 독촉에 시달리자 결국 파멸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전현주의 어머니는 딸의 범죄 사실을 알고 직접 신고해 자수를 종용했으며, 피해자의 부모에게 딸을 잘못 키워서 죄송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아버지는 사건 이후 직장에서 퇴직했다.
3. 범행
자세한 내용은 박초롱초롱빛나리 유괴 살인 사건 문서 참고하십시오.유괴 범행 시나리오를 완성한 그녀는 1997년 8월 30일, 서울특별시 서초구 잠원동의 뉴코아 아울렛에서 문화센터로 영어수업을 받으러 오는 초등학생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유난히 용모가 깔끔하고, 옷차림이 고급스러워 보이는 소녀 박초롱초롱빛나리 양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던 박 나리양에게 접근하여, 재밌는 곳에 데려가 주겠다며, 박 나리양을 사당동의 한 건물 지하실로 데려갔다. 그 날 저녁 6시. 유괴 3시간만에 그녀는 공중전화로 박 나리양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나리가 잘 있다는 소식을 알린 채 첫 번째 통화를 끝낸다.
한편, 박 나리양은 불안감 때문에 그녀에게 집에 보내달라며 보채기 시작했다. 그녀는 박 나리양에게 수면제를 먹이려 했으나, 배고픔과 두려움에 떨던 아이는 잠을 이루지 못했고, 그녀는 박 나리양의 목을 졸라 살해한다. 유괴 범행 다음 날, 그녀는 비로소 돈을 달라는 요구 전화를 걸었으며, 악랄하게도 전 날 살해한 박 나리양이 현재까지 살아있는 것처럼 연기를 했다. 전화 발신지는 명동의 공중전화박스였지만 형사들이 들이닥쳤을 때는 아무도 없었다.
경찰의 접근을 눈치채지 못한 그녀는 그날 밤 9시에 박 나리양 집에 또 한통의 전화를 건다. 세 번째 전화의 발신지는 명동의 한 커피숍이었다. 수사를 진행하던 경찰이 그녀에게 다가오자 그녀는 자신의 대학 후배들에게 전화해 도움을 청한다. 그녀의 전화를 받고 온 후배들은 '임산부에게 왜 이러느냐', '아기가 놀라서 배를 찬다' 등 경찰에게 거세게 항의해서 설마 임산부가 범인이겠냐는 경찰들은 범인인 그녀를 눈 앞에서 보내주고 만다.
이후 그녀의 아버지가 경찰에게 전화를 걸었고, 경찰은 녹음된 테이프를 아버지에게 들려주었다. 그리고 녹음된 내용으로 꼬리가 잡힌 그녀는 9월 12일에 아버지의 신고로 신림동의 한 여관에서 검거되었다.
검거된 이후 그녀는 경찰서에 압송되는 과정에서 실신에 가까운 모습으로 포토라인에 찍혔는데, 당시 형사들의 증언에 따르면 멀쩡하다가도 언론에 노출되면 실신한 척 했다고 한다.
압송 되고 나서도 경찰에게 줄기차게 공범이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자신은 공범이 시키는대로 했을 뿐이라고 진술했지만, 조사 결과 해당 진술은 거짓말에 불과했으며, 정신과측은 그녀가 연극성 성격장애가 있다고 밝혔다.
4. 통화 내역
나리는 잘 있어요.
설마 신고한 건 아니겠지?
2천만원을 준비해.
설마 신고한 건 아니겠지?
2천만원을 준비해.
돈이 들어있는 은행카드를 가지고 명동 전철역에 내리면 10층 짜리 ○○ 건물이 있고, 거기 8층에 가서 기다려
돈으로 말고 카드로. 어떻게든 카드로 해. 그렇지 않으면 나리는 못 보는 거지. 시간 끌지 말고.
만약 신고를 한다거나, 딴 짓을 해서 그 카드가 우리 손에 못 들어오면 그렇다면 나리는 못 보는 거지.
지금부터 40분. 40분이야. 빨리해.
돈으로 말고 카드로. 어떻게든 카드로 해. 그렇지 않으면 나리는 못 보는 거지. 시간 끌지 말고.
만약 신고를 한다거나, 딴 짓을 해서 그 카드가 우리 손에 못 들어오면 그렇다면 나리는 못 보는 거지.
지금부터 40분. 40분이야. 빨리해.
5. 재판
서울지검은 진술조차 거짓으로 반복하는 그녀의 죄질이 불량하다고 판단하여, 사형을 구형했고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되었다.전현주도 처음에는 사형을 받아들이는 듯 했으나, 교도소에서 살아보니 교도소도 사람이 살아갈만한 곳이라고 고백하며 자신의 진술을 모두 번복해버리며 부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기를 출산 하다 보니 더욱 살고싶은 마음이 생겼다고 한다.
결국 항소심에서 감형되면서 무기징역이 확정되어 현재까지도 27년째 복역 중이다.
6. 기타
- 만삭의 임산부가 범인이라서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수감 후 낳은 아이는 남편이 데려간 뒤 미국에 입양을 보냈다.
- 이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에서 전현주의 엽기적인 행적이 공개되었다. 박 나리양을 살해하고 만삭의 몸으로 옛 연인에게 전화해 모텔로 불러낸 뒤 밤새 술을 마시며 놀았고, 친구들과 파티를 벌이는 등 살인을 한 사람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행동을 보였다.[2]
- 전현주의 대학 후배 증언에 따르면 그녀는 사교적이며 어울리는 사람도 많고, 미국 유학까지 다녀와 아는 것도 많았다고 한다. 옷도 잘 입고 씀씀이가 컸었다고.
- 체포 전날이나 체포 직전에 따로 샤워를 하지 않았는지 검거 현장 사진에 찍힌 전현주는 머리가 삭발이고, 엄청 지저분해보이는 모습이었다.
7. 근황
- 들려오는 말에 따르면 교도소 내 제 5공장이라고 알려진 곳에서 작업반장 노릇을 하고 있다. 전현주는 실제로 미국 유학을 더불어 대학을 두 번 다녀와 머리가 좋기 때문에, 특히 신인 교도관들을 본인 손에 쥐고 흔들며 못살게 굴고 본인이 교도소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왕처럼 생각한다고 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법을 지켜야 하는 교도관이라 이럴 뿐, 동료 재소자들에게는 후술하듯 멸칭으로 불리는 건 기본에 린치 당한 적도 있다. 교도소에서도 최하위 취급받는 아동 납치 살해범이기 때문에 동료들에게 무시당하자 그걸 교도관에게 풀고 있는 말 그대로 화풀이일 뿐이다.
- 현재 55세에 불과한 나이지만, 28세부터 오랫동안 꾸밈없이 교도소에 갇혀 있어 오늘날의 50대에 비해서는 상당히 노안이다. 그 탓에 죄수들 사이에서 할머니로 오해 받는다.[3]
- 전현주의 경우 27년째 복역 중으로, 가석방 심사 자체는 의무사항이라 매년 꾸준히 심사를 받고는 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전현주가 가석방 심사를 통과해 2025년 출소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단독' 타이틀로 세계일보의 보도기사, 2024년 7월 30일자로 가석방된다는 연합뉴스 보도기사 등이 다수 커뮤니티에 떠돌았으나 이는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편집하여 유포한 거짓 찌라시로 밝혀졌다.[4][5]
[1] KBS 뉴스[2] 보통 아기를 가진 임산부라면 술과 담배까지 끊지만 전현주는 아니었다.[3] 죄수들에게 불리는 별명이 피해자의 이름에서 따온 초롱이 또는 할매, 할머니다. 다만 이는 피해자의 입장에서도 고인드립으로 받아들여질 소지가 있기에 진심으로 피해자를 생각해서 이런 별명을 붙였다기보단 단순 조롱하거나 괴롭힐 생각으로 그런 별명을 붙이는 것에 가깝다.[4]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사건으로, 해당 사건이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가 되었기 때문에 사실상 가석방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전현주 본인도 가석방으로 나올 생각을 한다는데 잘 안되는 듯.[5] 해외의 경우도 레슬리 반 휴튼이 50년 넘게 심사를 받아서야 겨우 가석방 될 정도로, 전현주와 비슷한 유형의 범죄자는 가석방을 받을 가능성이 지극히 낮다. 하물며 모범수로 사는 것도 아니고 허구헌 날 교도관들을 괴롭히는데 더더욱 가능성이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