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1 15:27:26

가톨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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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명칭과 표기
2.1. '가톨릭'의 뜻2.2. 한글 표기 '가톨릭'과 '카톨릭'2.3. '교회', '가톨릭 교회', '로마 가톨릭 교회' 등 여러 명칭
3. 가톨릭 교회가 믿는 바에 관한 교리
3.1. 4대 교리3.2. 가톨릭 교회의 성경3.3. 하느님이 누구인지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신앙 고백3.4. 성모 4대 교의3.5. 신학
4. 가톨릭의 전례에 관한 교리
4.1. 전례4.2. 모든 전례의 으뜸인 성체성사(미사)4.3. 일곱 성사4.4. 시간 전례(성무일도)4.5. 전례력과 전례주년4.6. 성체 현시와 강복 예식
5. 가톨릭 신자들의 삶에 관한 교리
5.1. 가톨릭 신자의 6대 의무5.2. 7대 죄악과 7대 주선5.3. 성윤리와 생명윤리에 관한 강한 보수성
6. 가톨릭 신자의 기도에 관한 교리
6.1. 주님의 기도6.2. 성모송
7. 특징
7.1. 베드로좌를 중심으로 한 일치7.2. 다양한 예법, 하나의 교회
7.2.1. 라틴 가톨릭 교회
7.2.1.1. 로마 가톨릭 교회7.2.1.2. 독신 성직자 제도
7.2.2. 동방 가톨릭 교회
7.3. 규모
8. 타 종파와의 차이
8.1. 비가톨릭 그리스도인에 대한 이해8.2. 정교회와의 관계
8.2.1. 필리오퀘 문제8.2.2. 성사교류8.2.3. 정교회와의 차이
8.3. 개신교와의 차이8.4. 의화에 관하여
8.4.1. 가톨릭·루터교·감리교 공동 선언
9. 오해
9.1. 성모 공경에 대한 오해9.2. 성경, 성인, 구원관에 관한 오해9.3. 기타 오해들
10. 문화11. 역사12. 동아시아에서의 가톨릭
12.1. 대한민국12.2. 중국12.3. 대만12.4. 일본
13. 비판14. 여담15. 관련 용어 및 관련 문서16. 인물17. 창작물에서의 가톨릭
17.1. 구마(엑소시즘)에 대한 오해와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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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가톨릭(Catholic) 또는 천주교()[2][3]는 로마의 주교[4]이자 바티칸 시국국가원수[5]교황(敎皇)을 주교단[6]의 단장으로 하는 그리스도교 교단이며, 성좌와 일치하는 교회를 통틀어 가리킨다. 그리스도교 교단 중 가장 신자 수가 많으며, 정교회와 함께 그리스도교 역사상 가장 오래된 교단이다.[7]

'가톨릭 교회'라고 불리지만, 교황좌가 있는 로마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로마 가톨릭 교회'라 불리기도 한다 (이 문서의 명칭과 표기 문단 참조). '교회(church)'는 본래 그리스도교 신앙 공동체를 뜻하는 것이나 대한민국에서는 개신교의 예배 장소와 구별하기 위해 건물 이름에 '성당'이라는 단어를 넣거나 '천주교(가톨릭) ○○교회', '○○ 천주교회' 같은 명칭을 쓴다.[8] 가톨릭 내부적으로는 '교회'는 오직 가톨릭만을 의미하기에 가톨릭 교회를 그냥 '교회'라고 자칭한다.
가톨릭의 기원은 기원후 1세기에 예수가 세운 그 반석 위의 교회이다.[9] 로마 제국의 박해를 받다가 313년 밀라노 칙령으로 로마 조정으로부터 신앙의 자유를 인정받으며 박해의 시대가 끝났고, 391년 테살로니카 칙령으로 로마의 국교(國敎)가 된 후 유럽 각지에 널리 전파되었다. 초기 교부들을 통한 그리스도교 교리의 보급은 근대 이전 서양의 정신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10] 그러나 제국 분열 후 로마와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교구 간의 오랜 갈등은 1054년 동서 교회의 분리를 가져왔으며, 교회는 가톨릭과 정교회로 나뉘어 서로를 파문하는 등 대립하였다.[11]

근대에는 지속적인 교회 일치 운동을 통해 양 교회 간의 화해 노력이 이루어졌다. 이는 분열의 종결과 완전한 재통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나, 교회의 화해 자체는 정치·사회·종교사에서 큰 의의를 가지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12]

대한민국의 가톨릭조선 후기 청나라로부터 '서학(西學)'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소개되었고 정약용남인 계열의 실학자들 사이에 전래되었으나, 조선 조정으로부터 강력한 박해를 받고 교세가 약화되었다. 가톨릭은 1886년 조선이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와 수교하면서 비로소 합법화되었으며, 이후 20세기 격동의 근현대사에서 종교적 구심점의 하나로 기능하였다.[13] 1969년 김수환이 한국인 최초의 추기경으로 서임되었고, 1984년에는 103위의 순교자가 시성되었다. (가톨릭/대한민국 문서 참고.) 대한민국은 교황청과 1963년 수교하였고, 국내 가톨릭 인구가 약 10% 수준으로 안정적인 교회 운영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다만 북한은 교황청과 외교관계가 수립되어 있지도 않는데다가, 북한 정부로부터 한국 가톨릭 교회의 활동도 보장받지 못하여 침묵의 교회로 불린다.

2. 명칭과 표기

2.1. '가톨릭'의 뜻

파일:external/catholictradition.org/tg-7.jpg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에 가톨릭 교회가 있듯이, 주교가 나타나는 곳에 공동체가 있어야 합니다.
「스미르나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 (35년?-104년?)[14]
그러므로 참종교를 찾으려면, 이교도들의 (사상적) 혼동 속에서도 찾지 말고 이단자들의 쓰레기 더미에서도 찾지 말고 (...) 오직 가톨릭catholici 또는 정교도orthodoxi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서, 다시 말해서 전일성(全一性)을 보존하고 정도(正道)를 따르는 사람들에게서 찾아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그리스도 종교이며 그의 교회의 친교라고 하겠으니, 이 교회는 가톨릭catholica이며 가톨릭이라 일컬어지고 있으니 그것도 자기 신도들에게서만 아니고 모든 적에게서도 그렇게 불린다. 좋든 싫든 간에, 이단자haeretici든 열교schismatum 추종자든 자기네끼리 말하는 경우가 아니고 외부 인사들과 말하는 경우에는 가톨릭교회를 가톨릭이라 부르는 수밖이 없다. 온 세상에 이 이름으로 불리는 이상, 이 이름이 아니고서는 달리 구분할 수 없는 까닭이다.
「참된 종교」,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354년-430년)[15][16]
830 '가톨릭'이라는 말에는 '전체성' 또는 '온전성', '보편성'이라는 뜻이 있다. 교회는 다음 2가지 뜻에서 보편적(가톨릭)이다.

교회는 그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므로 보편되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곳에 가톨릭 교회가 있다."[17] 교회 안에는 머리와 결합된 그리스도의 몸이 완전하게 존재한다.[18] 이는 교회가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구원의 완전하고 충만한 방법을" 그분에게서 받는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그 방법들은 올바르고 완전한 신앙 고백, 온전한 성사 생활 그리고 사도적 계승을 통하여 서품된 직무 등이다. 본질적으로 교회는 성령 강림 날부터 보편된 것(가톨릭)이었으며, 그리스도 재림의 날까지 항상 보편될 것이다.

831 교회가 보편된 또 하나의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전 인류에게 파견하셨기 때문이다.[19]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새로운 백성을 이루도록 불린다.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이고 유일한 이 백성은 모든 세대를 통하여 온 세상에 퍼져 나가, 처음에 인간 본성을 하나로 만드시고 흩어진 당신 자녀들을 마침내 하나로 모으고자 하신 하느님 뜻의 계획을 성취해야 한다. 하느님의 백성을 돋보이게 꾸며 주는 이 보편성은 바로 주님의 선물이다. 이로써 가톨릭 교회는 온 인류가 그 모든 부요와 함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그분 성령의 일치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려고 힘껏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830~831항
가톨릭(catholic)은 보편적(普遍的)이라는 뜻이다.[20][21] 즉 가톨릭 교회는 '보편교회'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어원은 그리스어 카톨리코스(καθολικός, katholikós) 및 라틴어 카톨리쿠스(catholicus)를 차용한 프랑스어 카톨리크(catholique)이다. 즉 한국어 표기 '가톨릭'은 직접적으로는 프랑스어, 어원적으론 그리스어 유래라 할 수 있다.[22][23]

여기서 말하는 '보편'은 모든 지역 교회들의 '합체'나 '여론의 총체'나 '세계' 등 산술적인 합계 개념이 아니다. 이는 '사람들'이 합체하여 '보편적인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사람'을 '사람'이게끔 하는 '사람의 보편적 요소'가 구체적인 '한 사람' 안에 있는 것과 같다. 곧, '교회들'이 합체하여 '보편교회'(가톨릭 교회)가 되는 게 아니라, '교회'를 '교회'이게끔 하는 '교회의 보편적 요소'(교회의 가톨릭적 요소)가 구체적인 '개별 교회' 안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가톨릭 교회'라는 말이 모순 없이 쓰이는 것이다.[24] 곧, 전세계의 모든 개별 가톨릭 교회들 각각 안에는, '교회'를 '교회'이게끔 하는 '가톨릭 교회'(보편교회)가 완전하게 존재하는 것이다.[25]

가톨릭 교회 이외의 교파들도 각자 자신이 보편적 교회임을 주장하고 있다. 개신교도 가톨릭(보편)주의를 주장하나,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26] 다만 일부 종파는 가톨릭 교회를 의식하여 가톨릭이라는 말 대신 유니버설(universal) 등 대체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2.2. 한글 표기 '가톨릭'과 '카톨릭'

제일 앞 음절을 카로 쓸지 가로 쓸지 갑론을박이 많은데, 한국어의 ㄱ·ㅋ은 어두에 올 때 어차피 양쪽 다 큰 틀에서는 무성 연구개 파열음 /k/로 소리나며, 차이는 무성 무(약)기음 /k/냐 무성 유기음 /kʰ/냐에 있다. 하지만 유럽 제어에서의 k는 대개 유기음보다는 무기음에 가깝다.[27] 아래에 적힌 ㅂ·ㅍ나, ㄷ·ㅌ도 마찬가지. 자세한 것은 성경/번역/한국어 표기 문제를 참조 바람.

물론 /ㄱ/가 어두가 아니라 유성음 사이에 놓일 때만큼은 유성음 /ɡ/로 실현되고, 이로 인해 외래어 표기에서 ㄱ은 본래 /ɡ/를 표기할 때에 쓰게 되어 있으니 /k/에 대한 표기로는 /ɡ/를 연상시키는 ㄱ이 적절하지 않다고 느낄 수는 있다. 그래서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자면 카톨릭이 맞지만, 1995년 제8차 정부언론외래어 심의공동위원회에서 전문 분야에서 쓰이는 관용을 존중하여, ‘가톨릭’을 대한민국 표준어로 확정하였다. 한국에서 ‘카톨릭’이라고 표기하거나 발음하는 건 개신교계에서 비하하는 맥락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서 가톨릭 신자들이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옛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자면 ‘카톨릭’이 맞기 때문에 과거 국어사전에는 카톨릭으로 실렸던 바도 있으나, 1995년 ‘가톨릭’이 표준어로 확정되면서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가톨릭’이 대표 표제어로 등재되어 있다. 관련 자료, 관련 글.

2.3. '교회', '가톨릭 교회', '로마 가톨릭 교회' 등 여러 명칭

천주교 내부에서는 공식적으로 스스로를 그냥 교회라고만 부르며, 다른 그리스도교 공동체와 구분하고 싶을때는 가톨릭 교회라고 부른다. 사실 대부분의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보편적인(catholic)' 교회를 표방하고 있긴 하지만.[28]

로마를 중심으로 하기에 로마 가톨릭 교회(Roman Catholic Church, Ecclesia Catholica Romana)로 불리기도 한다. 이 역시 가톨릭과 더불어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사용되는 용례이기도 하다.[29] 그러나 로마 가톨릭이라는 말은 가톨릭 교회 전체를 뜻할 때도 있지만, 동방 가톨릭을 제외한 로마 예법의 교회를 일컫는 의미로도 쓰이기에, 이러한 차이에 유의해야 한다.# 가톨릭 교회 전체를 로마 가톨릭 교회라고 부르는 것을 틀렸다고 단정해서는 안되지만, 자칫 동방 가톨릭 신자들에게 소외감이나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가톨릭 신자 스스로가 조심할 필요는 있다. 가톨릭 교회는 로마 예법 외의 동방 예법을 보존하는 23개 동방 가톨릭 교회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므로, 1.5%의 동방 가톨릭 교회를 포함한다는 것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는 '가톨릭 교회'라고 부르는게 더 적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종교개혁 이후 영국과 미국의 개신교에서는 가톨릭 교회의 보편성을 부정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로마교(Romanism)", "로마 교도(Romanists)", 혹은 "교황 추종자(Papist)"라고 비난 섞인 어조로 부르기도 하였으므로, 뉘앙스에 따라서는 '로마'에 대한 강조가 보편성과 대립되는 의미가 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로마 가톨릭 교회, 혹은 간단히 로마 교회라고 불리는 교회는 로마 교황을 으뜸으로 하는 전세계 교회를 일컫는 말로 시대에 따라 그 의미를 조금씩 달리해 왔다.

먼저 로마 교회라는 말은 로마 주교의 관할 아래 있는 지역교회라는 의미를 가진다. 로마에 교회가 세워진 것은 57년 이전으로 추정된다. 57~58년경 바울로가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당시 로마에는 그리스도교가 상당한 정도로 발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으로 보아 바울로 이전에 로마에 그리스도교를 전도한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사람이 바로 사도들의 우두머리인 베드로이다. 이러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입증하는 문서는 <글레멘스의 제1서한>인데, 이 서한은 주교명단의 첫머리에 베드로의 이름을 적고 있다. 이때의 로마 교회란 ‘베드로에 의해 창설된 교회’ 혹은 ‘로마의 교회’라는 한정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로마 교회라는 말은 또 '동방교회에 대립되는 서방교회'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로마에 뿌리박은 그리스도교는 황제 콘스탄티누스의 관용령 이후 급격한 발전을 보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많은 이단들이 속출하는 현상도 빚게 된다. 이때부터 로마 교회는 로마지방의 교회라는 의미와 함께 이단에 대한 정통교회라는 의미를 갖게 된다. 특히 동 · 서로마제국의 분열 후 격화된 교의논쟁으로 그리스도교는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로 분열되는데, 이때의 로마 교회라는 말은 동방교회에 대립된 교회로서의 의미를 갖게 된다.

마지막으로 로마 교회라는 말은 종교개혁 이후 분리된 프로테스탄트에 대해 보편적인 교회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로마 교회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즉 로마 교회는 ① 그리스도, 교황, 주교, 사제로 이어지는 가시적 제도(可視的制度)로서의 교회다. ② 칠성사의 집행으로 생명을 얻고 유지하는 교회다. ③ 미사를 신앙생활의 중심으로 하는 교회다. ④ 성서와 성전에 동일한 권위를 부여하는 교회다. ⑤ 성지 순례와 수도생활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는 교회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유럽 프로테스탄트에서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보편성을 부정하고 이를 로마 교황청 중심의 작은 교파로 인식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들은 로마 교회를 로마교(Romanism)라고 경시하면서 가톨릭 신자들을 로마 교도(Romanists), 혹은 교황 추종자(Papists)라고 비난 섞인 어조로 부르기도 하였다.

보편적 교회로서 로마 교회는 교황청 아래 세계의 여러 교구를 둔 중앙집권적 조직을 갖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교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천주교회, 가톨릭 교회, 로마 가톨릭 교회라는 말이 일반적으로 사용되며 로마 교회라는 말은 별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
가톨릭 대사전, '로마교회' 문서

한편 정교회에서는 세계적 교회(Ecumenical Church)란 명칭을 자주 쓰는데 이는 가톨릭 교회(보편적 교회)과 일맥상통한다. 물론 에큐메니컬(세계적)이라는 용어와 가톨릭(보편적)이라는 용어 모두 굉장히 풍부한 뜻을 가진 어휘이지만, 둘 다 '모든 민족, 모든 국가, 모든 지역이 믿을 수 있는 보편적(세계적) 교회'라는 엄청난 자부심이 묻어나는 간판이다. 둘 다 내부에서 스스로를 공식적으로 호칭할 때는 다른 수식어 없이 그냥 교회라고만 말하는 것도 동일하다. 예를 들어 '저희 죄를 헤아리지 말고 교회의 믿음을 보시어', '교회는 이것을 죄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등등. 따지고 보면 이것도 여타 잡다한 수식어 없이 교회라고만 칭해도 자신들을 완전히 나타낼 수 있다는 자부심의 표현이다.[30]

한자문화권에서는 천주교, 천주교회라고도 불린다. 천주(天主)는 '하느님'을 한문으로 옮긴 것으로, 마테오 리치의 저서인 천주실의에서 유래되었다. 조금 더 고전적인 표현으로는 '성교회(聖敎會)'라는 표현도 있다.[31] 대한민국의 가톨릭 교회는 공식적으로 '천주교' 명칭을 병용하여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천주교 ○○교구' 등으로 사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가톨릭을 천주교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지 한국사에서는 천주교, 세계사에서는 가톨릭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또한 한국 가톨릭 교회 내에서도 천주교가톨릭이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병용한다. 이는 이 단어가 19세기 후반 개화기에 들어와 정착되었기 때문인데, 조선 후기 사람들이 catholic을 '가톨릭'으로 인식한 것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된 이유 중 하나는 당시 천주교 선교사(신부)들이 라틴어를 공부하고 이탈리아어나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을 사용하였기 때문이다.[32] 이들은 처음 외래어를 한국어로 표기할 때 당연히 자신들의 언어를 기준으로 사용했다. 그래서 '카톨릭'이라는 말도 쓰였지만 한국 천주교의 공식 표기는 '가톨릭'이다.

천주교는 '로마 가톨릭'이라고 불러야 하고 '가톨릭'이라고 부르는건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간혹 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어원을 따지고 보면, 천주교도 정교회(orthodox, 정통 교회)라 할 수 있고 모든 그리스도교 종파는 '여호와의 증인'이나 '하나님의 교회'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이름을 쓰는 여호와의 증인하나님의 교회가 존재하므로 그런 식으로 부르는 사람이 없으며, 사회적으로 가톨릭=천주교로 합의가 되어있으므로 천주교를 가톨릭이라고 부르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없다.

한편 세계사 교육의 영향으로 개신교에 대응하여 '구교(舊敎)'라고도 불리나, 구(舊)의 어감과 신교를 승인하는 듯한 뉘앙스 때문에 천주교 내부에서는 지양되는 표현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보편교회를 지향하는 종교이다.

3. 가톨릭 교회가 믿는 바에 관한 교리

3.1. 4대 교리

파일:external/thecatholicspirit.com/WEB-Friday.jpg

가톨릭 교회는 엄연히 하느님을 흠숭하는 교회이다. 따라서 가톨릭의 교리 가운데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한 네 가지 교리는 모두 하느님에 관한 것으로 다음과 같다.
1. 천주존재(天主存在) : 하느님은 무(無)로부터 영원까지 언제나 항상 계시며,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완전하고 무한한 유일신이시다.
2. 삼위일체(三位一體) : 하느님은 오직 한 분이시지만 세 위(位)를 포함하여 계신다. 곧 성부, 성자, 성령이신데, 이 셋은 서로 높고 낮음도 없으시고 먼저와 나중의 구별도 없으시며, 그 자체로 온전한 한 분 하느님이시다.
3. 강생구속(降生救贖) : 인류의 조상 아담하와가 선악과를 따먹는 죄를 범한 이후, 모든 사람은 그 원죄(原罪)로 인하여 천당에 들어갈 기회를 잃게 되었다. 그러나 성자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인류의 모든 죄를 없애기 위하여 세상에 오시어 사람이 되시고, 마침내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구속(救贖) 사업을 완성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를 믿고 세례를 받으면 성자의 구속 공로로 천당에 들어가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4. 상선벌악(賞善罰惡) : 사람이 죽으면 하느님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하느님은 선을 행한 사람에게는 으로 갚아주시지만, 악을 행한 사람에게는 을 내리신다.[33]
이 4대 교리는 복잡한 율법이 아니며, 정말 기본적인 가르침이다. 그리스도교와 전혀 관련없는 일반인들도 대부분 이미 알고 있을 정도이다. 가톨릭을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교의 정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다른 그리스도교 교파에서도 대부분 통용되는 교리이다. 이 네 가지가 부분적으로라도 교리에 없다면 이단으로 취급된다. 심지어 아무리 심각한 이단조차도 3번과 4번을 부분적으로는 믿는다.

그래서 생명이 위독한 자가 대세[34]를 받는 등의 아무리 위급한 경우라도 이 4대 교리는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한다. 천주교 군종교구에서 주는 세례성사[35]에서도 4대 교리만큼은 반드시 주지시킨다.

한국 천주교에서는 4대 교리를 위와 같이 사자성어 형식으로 가르친다. 이는 한반도에 가톨릭이 처음 전파될 적에 가톨릭 교리를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해서 한자어로 번역한 것이 오늘날까지 내려왔기 때문이다.

3.2. 가톨릭 교회의 성경

가톨릭 교회가 성경에 관하여 취하는 입장은 아래와 같이 요약된다.
교회는 언제나 성경을 주님의 몸처럼 공경하여 왔다. 왜냐하면 교회는 특히 거룩한 전례를 거행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의 식탁에서뿐만 아니라 하느님 말씀의 식탁에서도 끊임없이 생명의 빵을 취하고 신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늘 성경 말씀으로 양식과 힘을 얻는다. 왜냐하면 교회는 성경에서 인간의 말뿐 아니라, "사실 그대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성경 안에서 사랑으로 당신 자녀들과 만나시며 그들과 함께 말씀을 나누신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03~104항.
이러한 정신은 가톨릭 교회의 여러 중요한 전례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전례 중 제일 중요한 미사를 먼저 살펴보자. 미사를 구성하는 두 축은 말씀 전례성찬 전례이다. 말씀의 식탁[36]이라고도 하는 말씀 전례 중에는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과 여러 규정에 의해 정해진 바에 따라 성경을 읽는다. 그리스도의 몸의 식탁[37]이라고도 하는 성찬 전례 중에 바치는 여러 기도들은 알고보면 성경에서 취한 것들이다.

시간 전례도 이러한 면모가 두드러진다. 저녁 기도와 아침 기도를 기준으로 보면, 시간 전례의 도입부나 초대송, 시편과 찬가, 성경 소구, 마리아/즈카르야의 노래, 주님의 기도 등이 모두 성경에 근원을 둔다. 사실상 찬미가와 응송을 제외하고는 모두 성경과 직접 연결된 셈이다.

보다 자세한 내용을 보기 위한 링크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 한국 천주교의 표준 성경인 『성경』 2005판에 관한 설명: 성경/번역 문서의 성경 (가톨릭, 2005년판 새 번역) 문단.
    • 이 한국어 성경 전체를 열람할 수 있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 공식 홈페이지: 가톨릭 성경.
  • 가톨릭 라틴 예법의 표준 성경에 관한 설명: 불가타 문서.
    • 이 라틴어 성경 전체를 열람할 수 있는 바티칸 공식 홈페이지: Nova Vulgata
  • 여러 그리스도교의 성경에 관한 일반적인 내용: 성경 문서.
  •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에 관한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의 차이에 관한 설명: 이 문서의 개신교와의 차이 문단.

3.3. 하느님이 누구인지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신앙 고백

앞의 4대 교리 문단에서 가톨릭 교회는 하느님을 흠숭하는 교회라고 언급하였다. 그러면 '하느님은 누구이고 어떤 분이냐?'에 관한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하느님, 야훼, 천주, 성부, 성자(예수 그리스도), 성령이 각각 누구를 가리키는 말인지, 그리고 이들간의 관계는 어떤지도 관심사가 된다.

가톨릭 교회가 하느님을 누구라고 믿는지에 대한 신앙의 종합을 '신앙 고백'이라고 부른다.[38]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가톨릭 교회 역사를 통해 생겨난 여러 신경 중 '사도 신경'과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이 두 가지가 교회의 삶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39] 가톨릭 교회의 방대한 신앙 세계의 핵심이 신경에 녹아들어 있으므로, 신경의 표현 하나하나를 깊이 들여다보면 가톨릭 교회가 하느님을 누구라고 믿는지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을 보기 위한 링크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사도 신경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한 분이신 하느님을
저는 믿나이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늘과 땅과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를 믿나이다.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님또한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외아들
영원으로부터 성부에게서 나신 분을 믿나이다.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
참하느님에게서 나신 참하느님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한 본체로서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나이다.
성자께서는 저희 인간을 위하여, 저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음을 믿나이다.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 나시고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저승에 가시어 사흗날에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또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저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수난하고 묻히셨으며
성서 말씀대로 사흗날에 부활하시어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심을 믿나이다.
그리로부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나이다.그분께서는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영광 속에 다시 오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이다.
성령을 믿으며또한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을 믿나이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
성부와 성자와 더불어 영광과 흠숭을 받으시며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나이다.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와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
죄의 용서와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아멘.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를 믿나이다.
죄를 씻는 유일한 세례를 믿으며
죽은 이들의 부활과 내세의 삶을 기다리나이다.
아멘.

3.4. 성모 4대 교의

가톨릭의 성모 마리아 4대 믿을 교리
{{{#!wiki style="color:#B2A45F; 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7BBFDE>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 <colcolor=#000000> 라틴어: Mater Dei, Dei Genetrix, Deipara
그리스어: Θεοτόκος(Theotokos)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 라틴어: Perpetua virginitas Mariae
그리스어: Αειπάρθενο(Aeiparthenos)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라틴어: Immaculata Conceptio
한자어: 무염시태(無染始胎)
하늘에 올림을 받으신 마리아 라틴어: Assumptio Beatae Mariae Virginis
한자어: 몽소승천(蒙召昇天)
}}}}}}}}}||


가톨릭은 이외에도 성모 마리아에 대하여 4대 교의를 정하여 믿을 교리로 가르친다. 여기서 '교의(敎義)'는 교회가 정한 믿을 교리를 뜻한다. 그러나 이는 성모 마리아께 대한 공경(恭敬)의 의미이지, 4대 교리처럼 하느님께 대한 흠숭(欽崇)의 의미가 절대 아니다. 숭배의 의미를 갖는 흠숭과, 존경의 의미를 갖는 공경의 차이를 명확히 구별해야 한다. 보통 예비신자 시절에 이걸 처음 배운다. 교황무류성을 통해 선포된 내용이므로 가톨릭 신자라면 반드시 믿어야 한다.
1. 천주모친 : 예수 그리스도삼위일체의 제2위 성자 하느님이시므로, 그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하느님의 어머니이시다.
2. 평생동정 : 성모 마리아예수 그리스도를 낳으시기 전과 후에 어떠한 아이도 낳지 않고 동정으로 사셨다.
3. 무염시태 : 성모 마리아는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잉태되실 적부터 원죄가 없으셨다.
4. 몽소승천 : 성모 마리아는 선종하실 적에[40]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하늘로 들어올림 받으셨다[41]. 성모 마리아는 원죄가 없으므로 공심판 때 일어날 육신의 부활을 기다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3.5. 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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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신학적으로 가톨릭에 대해 알고 싶다면 호교론(護敎論)을 펼치는 책으로는 볼티모어의 대주교였던 제임스 기본스 추기경교부들의 신앙이나, 개신교 목사에서 가톨릭 신학자로 전향한 스코트 한의 저작들[42]이 추천된다. 좀 더 부드럽고 생활 신앙적 가르침을 원하면 스코트 한의 저작들을, 강한 호교적/교리적 가르침을 원하면 <교부들의 신앙>을 추천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깊은 교리 공부를 하려는 사람이라면 두 스타일 모두 깊이 음미해 보는 것이 더욱 좋다.

가톨릭에서 자부심을 느끼는 것 중 하나는 교부(敎父)[43]들의 탄탄한 철학적 토대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고전 저작 중에서는 <고백록>, <신국론> 등 철학자로도 유명한 성 아우구스티노의 저작들과 토마스 아 켐피스준주성범이 제일 많이 권해진다. 특히 <준주성범>은 개신교에서도 신앙 교재로 쓸 만큼 깊이 있는 고전 걸작.[44]

단 평신도 사도직, 교리교육 봉사직 이상에게 추천될 정도로 찐한 책들이 많으니 신앙생활이 익숙해진 다음 신부님/수녀님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가며 차근차근 읽는 것을 권한다. 물론 고전 중에서도 <신심 생활 입문>이나 <성녀 소화(小花) 데레사 자서전>처럼 새내기 신자에게도 추천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일드한 책들도 있다.

4. 가톨릭의 전례에 관한 교리

4.1. 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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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모든 전례의 으뜸인 성체성사(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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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일곱 성사

입문 성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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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의 성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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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교에 봉사하는 성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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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시간 전례(성무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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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전례력과 전례주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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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성체 현시와 강복 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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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가톨릭 신자들의 삶에 관한 교리

5.1. 가톨릭 신자의 6대 의무

가톨릭은 신자가 되는 것도 꽤 번거롭고, 신자가 되어도 지켜야 할 것이 많은 종교다. 가톨릭 신자의 의무가 몇 가지 정해져 있는데 다음과 같다.
  • 1. 주일과 의무 축일 미사에 빠지면 안 된다. 한국 교회의 의무 축일은 모든 주일12월 25일 주님 성탄 대축일, 1월 1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이다.이 링크의 '미사 거행에 관하여' 탭 참조
    • 1-1) 많은 곳에서 '4대 의무축일'이라는 표현을 쓰며 그 의무 축일로 주님 성탄 대축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주님 부활 대축일, 성모 승천 대축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마치 주일은 의무가 아닌 것처럼 보일 우려가 있다. 그렇다고 '모든 주일과 성탄, 1월 1일, 부활, 8월 15일'처럼 표현하면 늘 주일에 오는 주님 부활 대축일이 표현상 두번 카운트된다는 논리적 문제가 있다. 그래서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 매년 발간하는 『전례력』에서는 4대 의무 축일 대신 위처럼 '주일과 주님 성탄 대축일과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과 성모 승천 대축일'이라고 언급한 표현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 2. 금육과 금식을 지켜야 한다. 금육은 매주 금요일이고, 단식은 재의 수요일과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데, 금육은 날개 달린 동물 또는 4발 달린 동물의 고기나 국물을 먹지 않는 것이고, 단식은 하루 1끼는 먹고, 1끼는 간단히 요기만 하고, 1끼는 완전히 굶는 것이다. 그리고 금육과 단식의 목적은 신자들을 괴롭히려는게 아니라, 금요일에 십자가 처형으로 수난당하고 죽음당하신 그리스도의 고통에 동참하자는 의미, 그리고 육고기나 식사를 절제함으로 인해 아낀 돈을 가난한 자들을 위해 자선하는 뜻으로 행하는 것이다.
    • 2-1) 금육은 만 14세 이상부터 죽을 때까지, 단식은 만 18세부터 만 61세까지가 그 대상이며, 그 외에 환자, 허약체질, 육체노동자, 여행자, 수험생 등은 사전 관면을 받으면 걸러도 된다.[45] 하지만 사순 시기주님 수난 성금요일을 제외한 금요일의 금육의 경우 1966년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의무적인 것이 아닌, 신자들이 육고기음식을 금하는 전통적 금육이나 혹은 가족기도, 선행, 자선, 금연, 금주 등 다양한 희생으로 대체해서 지킬 수 있도록 완화했다.[46] 또한 금요일이 교회가 지정한 대축일과 겹치면 그날 금육 의무는 자동으로 면제된다. 대표적으로, 주님 부활 대축일 후의 8일간인 부활 팔일 축제 동안에는 금요일이더라도 금육이 자동 면제되며, 이외에도 연중 시기에도 간혹 금요일이 대축일과 겹쳐 금육 의무가 없는 날이 있다. 인터넷에서 가톨릭 전례력을 검색하거나 성당 달력 등을 확인하여, 금요일에 작은 글씨로 '금육'이라는 글자가 없는 날은 금육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 2-2) 그리고 금육을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고통을 기억하고 가난한 자들을 위해 값비싼 고기를 먹지 않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따라서 금육일이라고 비싼 회를 먹는 행동은 취지에 다소 어긋나는 것이다.[47] 금육이라는 형식에 치우치지 말고 그 의미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 2-3) 전국의 가톨릭계 대학 학생식당 및 가톨릭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와 유치원 급식까지, 금요일 메뉴에서 육고기를 보는 건 쉽지 않다. 이 때는 생선이나 오징어 등 다른 단백질원이 제공되곤 한다.
    • 2-4) 단, 위에서도 서술했고, 신자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사실인데, 사실 가톨릭교회에서는 1966년 이후에도 사순 시기의 첫날인 재의 수요일, 사순 시기의 모든 금요일, 그리고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는 단식과 금육의 완화를 주지 않았다. 따라서 해당 국가 지역교회의 공식적인 관면이나 별도 사목적 지시사항이 없는 이상, 사순 시기의 금요일에는 고기음식을 피하는 방식의 전통적 금육을 지켜야 하고, 재의 수요일과 주님 수난 성금요일엔 가톨릭 신자들은 단식과 금육을 같이 종일토록 지켜야 한다. 단식의 방법에 대해서는 상술한 방법 참조. 또한 많은 신자들이 간과하는 사실이지만, 금육재와 단식재 역시도 교회법이 정한 중한 계명이므로, 이를 지키지 않았을 시 (관면도 안 받고 대체 행위도 안 했다면) 7성사와 영성체 전에 고해성사를 꼭 해야한다. 다만 한국천주교주교회의에서는 어쩔 수 없는 사정[48]으로 인해 금육을 지키지 못할 경우는 죄가 되지 않는다고 언급한 바 있다. 때문에 지킬 수 있는 경우는 최대한 금육/단식을 하고, 그러지 못할 경우에는 주일 등을 이용해 본당신부님께 말씀드려서 관면허락을 받거나 육식에 상응하는 다른 희생적 행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3. 교회법에 의해 1년에 1번 이상 고해성사를 보도록 하는데, 한국 가톨릭에서는 1년에 1~2회 의무적으로 고해성사를 보도록[49] 하고 있고, 이 때 신자 수를 집계하여 서류상 신자인 사람들은 따로 냉담자로 분류해서 신자 수에 집계하지 않는다. 신자들은 판공성사를 본 뒤 성사표[50]를 내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쩌다 신앙심도 깊고 성당도 매주 꼬박꼬박 나가는 사람이 판공성사를 못 봐서 냉담자로 처리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한다. 다만 판공성사를 3년 이상 거른 신자를 냉담자로 분류하여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에서 발표하는 신자 통계에서 제외시킨다는 주장은 약간의 오류가 있으며, 상세한 내용은 문서 참조.
    • 3-1) 한국천주교주교회의 2014년 춘계 정기총회에서 승인된‘주일 미사고해성사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 공동 사목 방안’은 「한국 천주교 사목지침서」 제90조 2항 “부활 판공성사를 부득이한 사정으로 위의 시기에 받지 못한 신자는 성탄 판공 때나 다른 때에라도 받아야 한다.”라는 규정에 대한 적극적 해석을 통해‘부활 판공성사를 받지 못한 신자는 성탄 판공이나 1년 중 어느 때라도 고해성사를 받았다면 판공성사를 받은 것으로 인정하기로 하였다.’ 물론 이런 경우에는 따로 성사표를 받아서 고해성사 하고 고해실 안에 있는 별도의 바구니[51]에 성사표를 제출해야 한다.
  • 5. 교무금을 내는 것도 신자의 의무이자 양심이다. 천주교회에서 도움을 받는, 다시 말해 찢어지게 가난한 경우가 아닌 이상 수입의 1/60에서 1/10까지 자발적으로 액수를 정해서 무조건 내야 한다. 수입에서 정해진 액수도 없다. 그냥 본인이 내는 대로 내면 된다. 1,000원을 내더라도 좋은 마음으로 내는 것을 더 선호한다. 이를 위해 대다수 성당 사무실에는 통장 리딩기와 결제장비들이 갖추어져 있다.[53]
  • 6. 가톨릭 교회의 혼인 교리를 존중하며, 혼인법을 잘 지켜야 한다.(혼인성사 참조.)

이것이 가톨릭 신자가 지켜야 할 가장 큰 6대 의무이며, 이 외에도 전교하는 것 등 많은 의무가 교회법 및 각종 교리서에 깨알같이 적혀 있다. 특히 이들 중 대죄(어기면 반드시 고해성사 봐야 될 죄)를 짓지 말아야 할 의무도 기본적으로 모든 신자들에게 있다. 대죄 문서 참고.

종교 중에서는 신자 관리가 대단히 명확한 편이다. 인구조사에서 집계되는 신자 수가 자체적으로 조사하여 발표하는 신자 수보다 많은 유일한 종교. 이는 매년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판공성사를 받지 않는 영세자를 종교활동을 하지 않는 냉담자로 간주하여 신자 집계에서 제외하기 때문이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기업체의 ERP시스템에 비견되는 통합된 전산 시스템인 양업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이를 바탕으로 냉담자 처리를 확실하게 한다.

한국 천주교는 1년에 두 차례(사순 시기대림 시기) 실시하는 판공성사를 3년 동안 하지 않거나 성사표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를 쉬는 교우(냉담자)로 분류하여 교적을 본당에서 교구청으로 이관하고, 판공성사표를 발급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적은 교구청에 보관하며, 당연히 신자 통계에 포함시킨다.

정부에서 발표하는 신자 수가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가 발표하는 교세 통계 상의 신자 수보다 더 많은 이유는 여러 가지 가운데 다음 2개 요인을 들 수 있다.

첫째 신랑과 신부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비신자일 경우 일정한 조건 하에 관면혼을 통해 가정을 이루게 된다. 혼인 당시 비신자였던 배우자가 여전히 세례성사를 받지 않은 상황에서 신자인 배우자와 자녀들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고, 자신도 세례를 받지는 않았지만 천주교에 대해 딱히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은 경우 정부에서 실시하는 인구조사에서 "우리 집은 천주교 믿어요."라고 응답하는 경우 교적에는 없는 사람이 정부 통계에는 신자로 잡히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둘째, 한국 천주교에서는 유아세례를 받은 아기들이 10살 안팎쯤 되면 교리를 배워 첫영성체를 하게 되며, 비로소 천주교 신자로서 교적을 갖게 된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신자 가정에서는 앞의 첫 사례에서와 마찬가지로 정부가 실시하는 조사에서 교적 여부에 관계 없이 신자로 응답한다.

5.2. 7대 죄악과 7대 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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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문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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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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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5.3. 성윤리와 생명윤리에 관한 강한 보수성

금욕배란주기관찰법을 제외[54]하고, 콘돔, 루프, 정관수술, 체외사정, 경구피임약모든 형태의 인위적인 피임낙태, 그리고 시험관 아기를 비롯한 인공수정을 교회의 가르침으로 강하게 금지[55][56]하고 있다.

비유적으로 설명하면, 꼬마 아이가 가스불이 켜진 주방에 간다면 부모는 "가지마!"라고 경고한다. 이는 아이에게 주방으로 가는 자유를 뺏으려고 하는 행위가 아닌, 아이가 해를 입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마찬가지로, 낙태를 죄로 여기는 것은 인간을 규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낙태로 인해 생명을 경시하는 더 큰 죄와 악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함으로 설명한다. 그렇기에 가톨릭에서 낙태는 당사자뿐 아니라 낙태를 주선한 이 역시 죄를 짓는 것이다. # #

그런 이유로 낙태의 부분 허용을 명시하고 있는 모자보건법 제 14조[57]전면 폐지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낙태 반대에 대한 가톨릭의 교리를 보다 세부적으로 자세히 파악하고 싶다면 낙태 문서의 '종교적 관점' 문단을 참조할 것.

낙태죄 폐지 이후에는 반대의 의미의 범위가 넓어졌다.

체외사정의 경우 그리스도교에서 인공 피임 금지의 근거가 되는 성경 구절인 창세기 38장 1-10절에서 문제가 된 행위가 바로 질외사정이었다(이것은 다른 종파들의 경우, 해석이 다른 경우가 있다). 배란촉진제 사용에 대해서도 교육할 때 겁을 준다. 교회법에서 살인, 유괴와 함께 교회와 직접 관련이 없는 행위에 대해 처벌 조항이 있는 드문 케이스.

그 중 낙태죄의 형벌이 가장 강하며, 일반적인 낙태와 사후피임약[58], 질내 피임 기구 등을 이용한 피임을 전부 포함한다. 낙태죄를 범한 게 확실한 사람은 자동 파문된다. 또 낙태에 협력한 사람도 똑같은 죄를 범한 것이 되어 마찬가지로 자동 파문된다. 원칙적으로 이 죄에 대한 사면권은 교황주교에게 있는데, 일반적으로 주교나 교황을 찾아가 고해를 청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낙태 여성들이 보다 쉽게 고해성사를 볼 수 있도록 배려하고자 자비의 희년을 시작하면서 낙태에 대한 사면권을 크게 확대했다. 즉 모든 사제에게 사면권을 준 것이다. 자비의 희년 1년 동안 적용되는 한시적인 조치였으나 무기한으로 바뀌어 회칙이 선포되었다.

그러나 한국 가톨릭에서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왜냐하면 서구와는 달리 여전히 가톨릭 교세가 강하지 않은 선교권 국가에 머물러 있는 한국에서는 주교들의 사면 권한은 이미 신부들에게 위임돼 있기 때문이다. 성품성사 문서 참조. 그래서 한국 천주교에서는 신부들이 예전부터 고해성사를 통해 낙태죄를 용서해 왔다.

교황의 이러한 결정은 가톨릭교회가 낙태를 받아들이거나 방조한다는 것은 아니다. 죄는 단죄하지만 죄를 뉘우치며 괴로워하는 사람들이 고해성사를 통해 용서받을 수 있는 길을 넓히겠다는 것이다. 낙태는 여전히 대죄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낙태는 비극이며 분명히 잘못된 행위"라고 했다. 다만 교회는 심판하고 단죄하는 교회가 아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처지에서 낙태를 선택하거나 강요당한 여성들, 깊이 깨닫지 못하고 낙태에 협조한 사람들, 낙태 이후 죄의식 때문에 신앙으로부터 멀어져간 사람들에게 이제 교회의 품으로 돌아오라는 초대를 하려는 것이다.

간혹 금욕도 강요한다고 잘못 아는 경우가 있으나, 사실 날짜계산법 자체가 가임기를 피하기 위한 1달에 약 10일 정도의 주기적인 금욕이다. 날짜계산법을 인정하는데 금욕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 모순된다. 가톨릭 성직자들과 수도자들은 평생 금욕하며 살아간다. 평신도들도 본인이 원한다면 평생 금욕을 지키며 살아갈 수도 있다.

또한, 배아줄기세포의 연구도 매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하느님이 주신 하나의 생명체인 배아를 연구를 위해 파괴하는 것을 살인 행위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인공수정 문제에 관해서도 마찬가지.

사형에 대해서는 프란치스코 교황 이전에는 조건부로 찬성했으나 이후 교리를 바꿔 사형 자체를 반대한다. # 이는 사형 선고를 받은 인간의 불가침성과 존엄성에 대한 공격이므로 사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바티칸 시국은 교황령 시점인 1870년에 사형 집행을 한 이후 더이상 사형 집행이 없었다가 1969년에 완전히 폐지했다.

현재 가톨릭에서는 성관계를 하느님께서 남녀 일부일처 부부 사랑의 표현과 자녀 출산을 위해 주신 성스러운 행위로 보고 있기 때문에, 이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모든 성행위, 또는 생명 연구를 위한 생명의 파괴를 반대하고 있다. 자위행위, 부부관계를 벗어난 혼전 성관계 및 혼외 성관계(간통 등), 동성 간 성행위, 동성결혼에 대한 반대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마지막으로 첨언을 하자면, 피임에 관한 신학적 견해는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 사이에서 꽤나 갈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당시 교황 바오로 6세가 "인간 생명" 회칙을 발표하며 모든 인공 피임 수단이 비윤리적이라고 선언하자마자 독일 주교들은 이에 반발하며 "쾨니히스타인 선언"을 발표하며 피임법을 쓸 것인가 말 것인가를 평신도들 개인의 양심에 맡기자고 주장했을 정도. 물론, 교계 제도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포함해 여전히 이 제도를 지지하고 있다.[59] 사실 이 논쟁은, 그저 성에 관한 논란이 아닌 "교회의 권위"에 관한 논쟁으로 대두되었을 만큼 매우 중요하다. 이에 관심이 있다면 하단의 링크에 첨부한, 상반된 의견의 두 칼럼을 참고해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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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가톨릭 신자의 기도에 관한 교리

6.1. 주님의 기도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주님의 기도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6.2. 성모송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가톨릭 교회가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하는\(전구를 청하는\) 이유와 그 기도의 성격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성모송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7. 특징

파일:가톨릭1.jpg
네 모퉁이의 글귀는 각각 가톨릭 교회의 4대 속성인 하나인 교회, 거룩한 교회, 보편된 교회,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의미한다.
파일:external/www.institute-christ-king.org/eucharist_hand.jpg 파일:external/grandmageri422.files.wordpress.com/catholic-3.jpg
성경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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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체 초대 교황 사도 성 베드로

7.1. 베드로좌를 중심으로 한 일치

두 명의 사도 베드로바오로가 로마에 설립하고 조직한 교회 (...) 가 지닌 수위권 때문에, 모든 교회가 이 교회에 동의해야 하는 것은 불가피한 문제다.
복된 사도들은 설립하고 건설한 그 교회를 리노의 주교 직무에 넘겨 (...) 지금은 엘레우테리오가 사도들로부터 제 12대로서 주교직의 상속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질서 안에서, 이러한 계승으로 말미암아, 사도들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의 전통과 진리의 설교가 우리에게 내려져 온다.
리옹의 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 (130년-202년), 《이단 논박(Adversus Haereses)》
누구든지 위의 사실들을 검토·조사해 보려 하면, 길게 논란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앙은 다음의 진리의 요약을 통해 쉽게 증명되며, 확신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주께서 베드로에게,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감히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6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부활 후에 그에게 내 양들을 잘 돌보아라[61]고 하셨습니다. 이렇듯이 주님은 그분(베드로) 위에 교회를 세우셨고 그에게 양들을 맡기셨습니다.
모든 사도에게 동등한 권한을 주셨지만, 하나의 교좌를 세우셨으며, 당신 권위로 일치의 기원과 이치를 제정하셨습니다. 베드로 역시 다른 사도들과 같은 사도였지만 베드로에겐 수위권이 주어졌는데, 이것은 하나의 교회, 하나의 교좌가 드러나기 위함입니다. 사도가 모두 목자이지만 한마음으로 사목하기 위해 그 양떼는 하나입니다.
베드로를 향한 이 일치를 견지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신앙을 보존하고 있다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교회가 베드로의 교좌 위에 세워져 있는데, 그 교좌로부터 떠나 있는 자가 어떻게 교회 안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주교들의 일치는 베드로의 교좌이자 으뜸 교회(인 로마 교회)에서 나온다.
카르타고의 성 치프리아노 주교 순교자 (210년-258년), 《가톨릭 교회 일치(Incilit de Ecclesiae Catholicae Unitate)》[62], 《서간(Epistula)》
이 신경은 사도들의 으뜸인 베드로의 사도좌가 있고 그곳에서 공적인 결정을 내렸던 로마 교회가 간직하고 있는 신경이다.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오 주교 (339년-397년), 《신경 해설(Explanatio Symboli)》
실로 하느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어 우리에게 내려오신 때부터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교회는 여기(로마)에 있는 큰 교회가, 구세주께서 약속하신 대로 지옥의 문이 결코 그를 이길 수 없는 유일한 기초라고 믿어 왔으며 지금도 믿고 있다.
크리소폴리스의 성 막시모 수도원장 증거자 (580년-662년), 《신학과 철학 소고(Opuscula Theologica Etpolemica)》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거룩한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하신 주님의 말씀, 곧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다."[63]"너희를 물리치는 자는 나를 물리치는 사람이다."[64]라는 말씀이, 그들의 뒤를 이어 그들을 따라, 가톨릭 교회의 교황들과 최고 사목자들이 된 모든 이에게 하신 말씀이라고 믿으며, 우리는 이 세상의 어떤 권력들도 총대주교좌를 다스리는 이들에게서 어떤 것도 절대로 불명예스럽게 하거나 그들의 주교좌에서 어떤 것도 제거하려고 할 수 없으며, 오히려 옛 로마의 교황 성하와 그다음 콘스탄티노폴리스(새 로마Nova Roma)의 총대주교, 그다음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그리고 예루살렘의 총대주교들이 모든 영예와 존경을 받기에 합당하다고 판단할 것을 결정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옛 로마의 교황 성하를 거슬러, (...) 사도들의 으뜸인 베드로좌에 반대하여 글로써 또는 글을 쓰지 않고 어떤 모욕을 야기시키는 그런 자만심과 대담함을 행사한다면, 그는 저들과 동등하고 같은 단죄를 받을 것이다.
만일 세속의 권력을 향유하거나 차지하면서 이미 언급한 사도좌의 교황이나 다른 총대주교들 중 어느 누구를 내쫓으려 시도한다면 그는 파문될 것이다. 더 나아가, 만일 보편 공의회가 소집되어 로마인들의 거룩한 교회에 대해 어떤 의심이나 논쟁이 생겼다면,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마땅한 경의를 가지고 제기된 문제에 대하여 알아보고, 도움을 받든지 도움을 주든지 해결책을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하지만, 결코 옛 로마의 교황들을 거슬러 감히 판결을 내려서는 안 된다.
제4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교령 21조 (869년-870년)
에우제니우스, 주교, 하느님의 종들의 종, 영원한 기록을 위해.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자 로마인들의 빛나는 황제 요안네스 팔레올로구스의 동의와, 우리의 공경하올 형제들인 총대주교들과 동방 교회의 다른 대리인들의 동의로, 후술할 내용에 대해. (...)
거룩한 사도좌와 로마 주교는 온 세계에 대한 수위권을 보유한다. 로마 주교는 거룩한 사도들의 우두머리 베드로의 후계자, 그리스도의 참된 대리자, 전체교회의 수장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의 아버지요 스승이다. 로마 주교에게는 거룩한 베드로 안에서 전체교회를 양육하고 이끌고 지배하는 충만한 권력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주어져 있는바, 이 사실은 보편 공의회들의 문서들과 거룩한 법령들 안에도 나타나 있다.
더 나아가 우리는 나머지 총대주교들의 교회법적 서열을 갱신하는 바이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가 로마 주교 다음의 둘째 지위를 보유하며, 셋째는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 넷째는 안티오키아 총대주교, 다섯째는 예루살렘 총대주교다. 이들의 모든 특권들과 권한들은 그대로 보존한다.
피렌체 공의회 SESSION 6 (1439년), 연합교령 《하늘들아, 기뻐 용약하라(Laetentur Caeli)》

예수12사도 중 하나인 베드로의 후계자라고 여겨지는 교황(敎皇)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현재 교황은 프란치스코. 초기 교회 시대의 교부들은 로마에 근거한 베드로좌와의 친교가 사도들로부터 이어져온 정통 교회인지 이단인지를 구분하는 강력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좀 더 자세한 해설과 이해가 필요하다. 일단 세간의 오해와는 달리, 가톨릭은 초대교회로부터 내려온 "베드로좌(교황청)와의 친교(일치) 포기는 정통신앙 이탈" 원칙을 지금까지 바꾸거나 포기하지 않고 유지하고 있다.[65] 다만 세부적인 정의나 적용은 조금 달라졌는데, 우선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처럼 7성사와 사도전승 전통, 신품성사를 통한 변함없는 사도로부터 이어진 성직 체계(주교-사제-부제)를 유지는 하는데, 가톨릭 교황청과의 친교, 일치는 끊어진 유형을 이교(離敎, Schism)라고 한다.[66] 반면 대다수 개신교 종파나 16세기에 사도전승 신품성사 예식이 끊어진 성공회이단(異端, Heresy)으로 규정한다.[67]

이교와 이단의 차이점은 이교는 가톨릭은 아니나 초대교회의 직계이며, 가톨릭과의 기본 믿을 교리(7성사 교리 포함) 역시 동일하되 교회의 최고 권위(교황)에 불복하는 상태이고, 이단은 가톨릭에서 필수적으로 여기는 믿을 교리를(하나라도) 고의적으로 부정하여 교회 자체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교회 밖의 신자 공동체라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개신교는 성체성사나 7성사 교리, 성모마리아에 대한 교리 등을 부정하므로 이단의 정의에 확실히 맞는다. 이교 종파나 이단 종파나 모두 고의적으로 이런 상태를 선택하거나 교리지식이 충분해져 가톨릭의 진리를 알게 되었으면서도 해당 타 교파에 남아있다면 고의로 죄를 짓는 그리스도인이 되며, 원칙적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본다. 이 원칙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현재까지 동일하다.

일단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에도 불가항력적으로(자기의 탓 없이 비고의적으로, 무지 등에 의해서) 가톨릭을 모르는 사람이 선하게 살 경우의 구원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 가톨릭 교리였고,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는 이를 공의회에서 직접 선언하여 교도권 차원에서 공식 인정한데다, 타종파를 대하는 태도나 사목 방침도 온건해졌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같은 삼위일체 하느님을 섬기고 있는 개신교인들에게 '너희는 이단 종파이니 구원받을 수 없다'고 직접적으로 말하고 다니는 천주교인은 많지 않다. 정교회의 경우에는 가톨릭에서 성사를 받기 힘들 때만 서로 성체성사까지 교류하고 있는 상황에, 같은 초대교회의 직계로 인정하는 종파라서 대외적으로 개신교보다도 더 온건한 편. 다만 성체성사의 유효성을 공유(비상상황에서의 상호 성사교류)한다는 사실이 교리적으로 해당 비가톨릭 교파의 교인이 구원이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실, 2차 바티칸 공의회 훨씬 이전에도 오리엔트 정교회나 네스토리우스파처럼 성체성사나 7성사의 유효성을 공유하는 교파들은 많았고 그때도 지금도 가톨릭은 해당 교파들의 성체와 성사가 유효하게 축성됨을 인정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해당 교파의 성체 축성의 (교회법상) '합법성'은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가톨릭을 알면서도 자기 탓으로, 고의로 거부하면 구원받지 못한다.

20세기 중반부터 가속화된 교회 일치 운동의 영향때문에 "엥? 가톨릭이 정교회나 개신교 다 인정한거 아니었어?" 라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데, 같은 삼위일체에 대한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교 종파로서 인정하는 것, 그리고 종교간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이들의 이교적/이단적 상태를 (원론적인 측면에서) 철회하려는 건 아니다.

일단 현재 가톨릭은 정교회에 과거 행해진 파문을 철회하였고(그러나 파문 철회가 정교회의 이교 상태를 해제하는 건 아니다) 오리엔트 정교회개신교와도 공격적인 단죄를 그만두고 끊임없는 화해와 대화를 시도하고 있다. 단, 교황공석주의나 교황청을 무시한 불법적 주교서품처럼 가톨릭교회 내부에서 로마성좌와의 화해나 친교를 거부하는 집단은 여전히 파문으로 단죄한다. 다만 이점에서 논란이 상당한 성 비오 10세회와 중국 천주교 애국회는 2018~2019년 기준으로는 파문당한 공동체까지는 아니고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은 공동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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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그리스도교 계열의 종교임에도 불구하고 연맹왕국인 정교회군웅할거개신교와는 달리 가톨릭은 철저하게 교황청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 방식을 택하고 있다. 이는 가톨릭에서 특정 교구나 성당이 비대해지거나 몰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중앙에서 일괄적으로 전체 통제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톨릭은 일부 트리엔트 전례를 따르는 지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교구에서 똑같은 교리와 똑같은 방식의 전례(성사, 시간 전례 등)를 진행한다. 대부분의 성당이 동일한 전례를 가지므로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성당에 가기 어려울 때는 다른 성당에 가더라도 같은 내용의 전례에 참여할 수 있다.

가톨릭교회 개별본당의 재정원천은 매주의 봉헌헌금(개신교의 연보돈)과 교무금(대개 1달의 1일치, 삼심일조<三什一租>를 권유한다)이다. 교회방침은 각 본당의 예산중 일정비율(7~10% 정도)을 본당의 이웃돕기, 사회복지에 사용토록 권유하고 있다. 그리고 교구 운영을 위해 본당 총재원의 일정비율을 교구납입금으로 보낸다. 신자가 많은 성당에서는 교구에 납입할 수 있지만 적은 경우 도리어 자기의 교구청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리고 교황청의 활동, 자선사업에 사용할 경비를 위해 매년 교황주일(성베드로 대축일 6/29에 가까운 주일)에 2차헌금(베드로헌금, Peter’s pence)을 하고, 이를 교황청에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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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그림의 Clero Secular는 지역 교구 계열이고, Clero Regular는 수도회 계열이다.

성직자는 주교품 > 사제품 > 부제품 순으로 품계가 나뉘어져 있다. 주교품, 사제품, 부제품에 서품된 성직자를 각각 주교, 신부, 부제라고 부른다. 교황이나 추기경, 대주교 등은 품계는 주교이되, 부여받은 직책[68]에 따라 불리는 이름이다. 예를들어 회사의 경우 부장, 차장, 과장등은 직급이지만 노조위원장, 체육부장, 민방위대장등은 직책인것과 마찬가지다. 교황이라는 직책과 추기경이라는 직책은 모두 주교품에 해당하며, 앞서 설명했듯이 주교품에 해당하는 성직자는 모두 주교라고 부를수 있으므로, 교황과 추기경도 주교라고 부를수 있다. 실제로 교황의 다른 명칭으로 "로마의 주교 (Episcopus Romanus)" "로마 관구의 관구장 대주교 (Archiepiscopus et metropolitanus provinciae ecclesiasticae Romanae)" 등이 있다. 사제 안에서도 각 본당의 주임신부와 보좌신부들(교구사제), 수도회의 수도사제[69]들이 있다.[70] 또한 성직자들과는 완전히 별개로[71] 수도자들 역시도 계급이 있다. 수도자는 각 수도회장상에게 순명할 의무가 있다. 또한 평신도들은 성직자의 교도권에 대해 무조건 절대 복종해야 할 의무가 있다.[72]

게다가 가톨릭은 여타의 종교에 비해 보고 체계가 매우 잘 발달되어 있으며, 그래서 사건이 발생하면 일반 신부에서부터 교황에게까지 순차적으로 보고가 들어간다. 그러면 사소한 사항은 주교 선에서 해결하고, 중대한 사항은 교황이 판단한다.

심지어 교구 신부들의 경우, 흡사 군대에서 장교들을 뺑뺑이 돌리듯 한쪽 성당에 눌러앉지 못하게 주기적으로 다른 성당에 발령난다. 왜냐하면 한 성당에서 신부가 오래 눌러 앉으면, 해당 본당의 평신도들과 결탁해서 횡령 등의 영 좋지 못한 범죄를 저지를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가톨릭은 사제를 출신 연고지 본당으로 발령보내지 않는다. 그래서 서품을 받은 뒤에 첫 미사만 출신 연고지 본당에서 집전하고 다른 동네를 떠돌게 된다.[73]

성경 스터디도 교구나 본당의 관리를 받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따라서 가톨릭 신자가 교구나 본당의 인준, 관리를 받지 않은 개인 성경 스터디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가톨릭 교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이것을 모르는 일부 신자들이 모 사이비 종교의 성경 스터디에 가입해서 해당 사이비 종교에 빠지게 되는 불상사가 발생하기도 한다. 이단이나 사이비가 아닌 정상적인 개신교에서 개설한 성경 스터디에 참여하는 것도 원칙적으로는 안 된다.

성경 번역본에 대해서는 전례용은 반드시 교회가 전례용으로 승인한 것만을 사용하며, 신자 개개인의 통독용 성경도 가톨릭 교회의 검열을 통과한(imprimatur) 번역본만 보는 것이 권장되어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개신교 성경을 개인 차원에서 보는 것을 막지는 않으나[74] 주위에서는 가톨릭용 내지는 교회의 검열을 통과한 공동번역(에큐메니컬) 번역본을 보라고 적극 권면할 것이다.

교회법을 봐도 가톨릭의 중앙집권적인 면모가 드러난다. 주교제 교파인 정교회성공회만 해도 각 지역 관구별(총대주교구)로 독자적인 교회법을 제정, 개정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대한성공회 교회법은 영국 성공회 교회법과 별개로 존재한다. 반면에 가톨릭에서는 교회법의 제정, 개정 권한은 오로지 교황청(바티칸)에만 있다. 각 지역 가톨릭 관구들은 독자적인 교회법을 제정할 수 없으며 단지 그 지역에 맞는 지침이나 세칙만 만들 수 있다. 단, 교회법에 대한 지역 보충 규정은 만들 수 있는데 이것도 교황청의 인준이 필요하다. 이는 전례 개정 문제도 마찬가지인데, 가톨릭에서는 한국어 미사 통상문 표현 하나 수정하는 것도 교황청의 인준이 필요하다. 교회 차원의 교과서라 할 수 있는 교리서도 교황청 차원에서 직접 편찬한 표준 교리서가 있다. 개신교 같으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

교파가 갈리는 개신교[75]에 비해 시간적으로도 공간상으로도 수직구조와 질서, 종횡의 짜임이 매우 치밀하다. 그만큼 덩치가 커지는 바람에 보수적인 종교가 되었다는 평도 있지만, 단일 조직으로서는 매우 철저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계서제를 통해서 하부 조직에 대해 상당한 통제력을 보이지만 이것도 완벽하진 못한 듯, 천주교 광주대교구에서 집단 파문사태까지 이를 만한 일이 하나 생겼다. 물론 모든 종교든 사람이 하는 일인 만큼 단점과 추태가 나타나기 마련인 법이며, 수십~수백 개 교파/교단의 통제가 아예 안 되는 개신교에 비해 아주 잘 관리된다고 할 수 있다. 개신교도 성공회와 같이 일부 체계가 잘 잡혀있는 교파/교단은 제외되지만 그것도 '교파/교단 내'에서의 통제라는 한계는 어쩔 수 없다.

이러한 중앙집권제는 교회 조직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전례에서도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목사의 성향에 따라 예배가 크게 달라지는 개신교와는 큰 차이점이다. 예를 들어, 전 세계 가톨릭 성당 중 라틴 예법을 따르는 곳에서의 그날의 전례는 모두 하나의 질서에 의해 돌아간다. 미사의 고유 기도문은 『Missale Romanum』에서 뽑은 기도문의 라틴어 혹은 모국어를 쓰고, 미사 중에 봉독하는 성경은 『Ordo Lectionum Missae』가 규정하는 바에 따라 선택된다. 비록 이것이 결과적으로 사용되는 기도문이나 성경의 몇 장 몇 절이 다 똑같다는 뜻은 아니며(미사 문서의 그날 미사의 고유 기도와 말씀이 전 세계가 모두 같은가? 문단 참고.), 트리엔트 미사나 동방 가톨릭 교회와 같은 다른 전례에서는 다른 방식을 쓰도록 허용하지만, 이러한 다름 또한 사도좌가 규정한 질서 안에서 운영된다.

이것은 중세 시절 정해진 미사 양식에 따른 것으로, 초기 카타콤에 숨어서 미사를 드리던 시절에도 신부들끼리 해당 일의 성경 구절을 짜맞추어 날짜에 맞게 미사를 봉헌했다고 한다. 이게 경신성사성에서 생각보다 잘 짜놨기 때문에 주일 미사에 3년 동안, 그리고 평일 미사에 2년 동안 빠지지 않고 참여하면 주요 성경 구절을 모두 통독할 수 있다. 1970년대 초에 이 독서 목록(라틴어: Ordo Lectionum Missae)이 나오자 개신교에서 참고하여 성서정과라고 부르는 비슷한 목록을 만들기도 했다. 여기에 성무일도까지 1년 동안 하면 거의 완벽하다. 이렇게 1970년 이후로 가톨릭은 공식적인 전례에서 가장 성경을 많이 읽는 종파라고 할 수 있다.

7.2. 다양한 예법, 하나의 교회

3. 동서의 이러한 개별 교회들은 비록 예법이 다를지라도, 이를테면 전례와 교회 규범과 영적 유산이 어느 정도 서로 다르다 하더라도, 똑같이 교황의 사목적 통치에 맡겨져 있다. 교황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보편 교회에 대한 수위권을 지닌 복된 베드로를 계승하였다. 개별 교회들은 동등한 품위를 지니므로, 어떠한 교회도 그 예법 때문에 다른 교회보다 앞설 수 없고, 같은 권리를 누리고 같은 의무를 지니며, 교황의 지도 아래 온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여야(마르 16,15 참조) 할 같은 의무를 지닌다.
9. 교회의 오랜 전통에 따라, 동방 교회의 총대주교들은 특별한 명예를 지니며 아버지와 수장으로서 자기 총대교구를 다스린다. 그러므로 이 거룩한 공의회는 각 교회의 옛 전통과 세계 공의회들의 교령에 따라, 총대주교들의 권리와 특전을 회복시키기로 결정하였다.
현대 상황에 어느 정도 적응되어야 하겠지만, 이 권리와 특전은 동서의 교회가 일치되어 있던 때에 널리 누렸던 것이다.
총대주교들은 자기 교회회의와 더불어 최고 권위를 이루고 총대주교구의 모든 문제를 다루며, 총대주교구 지역 안에서 자기 예법의 새로운 교구를 설립하고 주교를 임명할 권한을 가진다. 다만, 모든 사안에 개입할 수 있는 교황의 양보할 수 없는 권리는 유지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동방 가톨릭 교회들에 관한 교령 『동방 교회들(Orientalium Ecclesiarum)』 중
라틴 가톨릭 교회가 가장 잘 알려져있지만, 가톨릭 교회는 라틴 교회를 비롯한 다양한 예법의 교회들이 단 하나의 교리로 일치하여 유일한 보편 교회를 이루고 있다.

가령 가톨릭 교리서 라틴 가톨릭에서든 동방 가톨릭에서든 온전히 공유된다. 그러나 전례와 교회법 등 비교리적인 분야에선 다양성이 인정되며, 오히려 이 다양성이 교리의 단일성을 풍요롭게 한다는 입장이다.

7.2.1. 라틴 가톨릭 교회

절대 다수의 가톨릭 신자들이 속한 예법으로, 후술할 약 1,800만명의 동방 예법 신자들을 제외한 모든 신자들은 라틴 예법에 속한다.

라틴 예법은 "주로 로마 예법이지만 암브로시오 예법이나 일부 수도회의 예법과 같은 지역 교회의 예법도 있다."(교리서 1203항)
7.2.1.1. 로마 가톨릭 교회
가톨릭 라틴 예법 내부의 로마 예법을 따르는 교회를 '로마 가톨릭 교회'라 한다. 대다수의 가톨릭 신자들이 속해있기에 천주교회 전체를 '로마 가톨릭 교회'라 일컫는 경우도 있으나, 천주교 전체를 로마 가톨릭이라 일컫는 것에 대해서 동방 가톨릭 신자들은 불쾌감을 표하곤 한다. 따라서 천주교회가 동방 가톨릭을 포함한다는 것을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선, '가톨릭 교회'라는 명칭이 더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What is the difference between Catholic and Roman Catholic?
가톨릭과 로마 가톨릭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The Catholic religion is the religion of the Catholic Church—i.e., that group of churches in communion with the pope. If a group isn’t in communion with the pope, it isn’t part of the Catholic Church.
Within the Catholic Church there are a number of individual churches, sometimes called rites. One of these is the Roman rite or Roman church. It includes most of the Catholics in the Western world. A Roman Catholic is a Catholic who is a member of the Roman rite.
There are many Catholics in the East who are not Roman Catholics, such as Maronite Catholics, Ukrainian Catholics, and Chaldean Catholics. These are all in communion with the pope, but they are not members of the Roman rite, so they are not Roman Catholics.
가톨릭 신앙은 가톨릭 교회, 즉 교황과 친교를 이루는 교회 집단의 신앙입니다. 만약 한 집단이 교황과의 친교 속에 있지 않다면, 이는 가톨릭 교회의 일부가 아닙니다.
가톨릭 교회 안에는 때때로 예법(rite)이라 불리는 많은 개별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중에 하나가 로마 예법, 곧 로마 교회입니다. 이는 서방 세계의 가톨릭 신자 대부분을 포함합니다. 로마 가톨릭 신자는 로마 예법의 지체입니다.
동방에는 로마 가톨릭 신자가 아닌 가톨릭 신자가 많이 있으며, 가령 마론 가톨릭, 우크라이나 가톨릭, 칼데아 가톨릭이 있습니다. #
7.2.1.2. 독신 성직자 제도
라틴 예법에서 독신 성직자 제도를 택하고 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76] 원래 유대교에 기반을 둔 만큼 기혼 성직자가 옛날에는 허용되어 있었고 당장 사도 베드로만 하더라도 기혼자였다. 그리고 지금도 독신 사제는 라틴 가톨릭 교회의 '예법'이지 가톨릭 교회의 '교리'가 아니다.
[사제생활교령] 16. 하늘 나라를 위하여 지키는 완전하고 영구적인 금욕은 주 그리스도께서 권고하셨다. 시대를 거쳐 오며 또 오늘날에도 적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기꺼이 받아들여 훌륭하게 지키고 있으며, 교회는 언제나 사제 생활의 특수 형태로 이를 대단히 중시하고 있다. 그것은 목자다운 사랑의 표지인 동시에 자극이며, 또한 세상에서 영적 풍요의 특별한 원천이 되기 때문이다. 초대 교회의 실천과 동방 교회의 전통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이 그것은 사제직이 그 본질 자체로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동방 교회의 전통에서는 모든 주교와 함께 은총의 선물로 독신을 지키겠다고 선택하는 사제들도 있지만 그 밖에 대단히 훌륭한 기혼 사제들도 있다. 이 거룩한 공의회는 성직자의 독신 생활을 권고하지만 동방 교회에서 정당하게 시행하고 있는 다른 규율을 변경할 의사는 전혀 없으며, 혼인 안에서 사제직을 받아들인 모든 이가 성소를 끝까지 지키며 자기에게 맡겨진 양 떼를 위하여 그 생애를 온전히 아낌없이 바쳐 나가도록 커다란 사랑으로 격려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공의회 문헌이 말하듯, 영구적 금욕은 사제직이 그 본질 자체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가톨릭은 인식한다. 즉 라틴 가톨릭 교회 내부의 예법이지, 가톨릭 교회의 교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예법이 만들어진 원인은 나중에 교세가 퍼지고 나서 성직의 부자(父子) 세습 등 부작용이 많이 보고되어 일부러 금지시켜 버린 것이다. 또 다른 이유로는 성경에서 예수가 하늘나라를 위해 불구가 된 사람에 관한 칭찬("사실 모태에서부터 고자로 태어난 이들도 있고, 사람들 손에 고자가 된 이들도 있으며, 하늘 나라 때문에 스스로 고자가 된 이들도 있다.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여라."(마태 19,12)), 그리고 바오로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여 오롯이 하느님께 바치기 위한 독신이었던 것을 들기도 한다. 정치적인 이유로는 성직자가 결혼하여 그 자식이 성직에 종사하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교회의 재산이 외부로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는 의견도 있다.

라틴 가톨릭 교회의 모든 성직자들이 독신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부제의 경우 기혼자도 부제품으로 서품 되어 부제가 될 수 있으나 이 경우 종신부제가 되어 사제품으로 서품되지 못한다. 동방 가톨릭 교회의 사제 이하의 성직자들은 그들의 전통이 인정되어 기혼 사제도 있다. 그러나 이미 성직에 있을 때 배우자와 사별하면 재혼할 수 없다. 주교는 기혼자 중에서 서임될 수 없으며, 수도회 소속의 성직자는 결혼할 수 없다. 한편 정교회는 기혼자도 사제가 될 수 있지만 사제가 된 이후 결혼이나 재혼은 불가능하며, 주교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만 임명된다. 성공회는 주교를 포함한 모든 사제의 결혼이 허락된다. 하지만 가톨릭의 경우에도 다른 종파(특히 성공회와 정교회)의 성직자가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가톨릭 신부가 되었을 경우, 그 이전에 결혼한 것은 인정하여 계속 부부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배려하기도 한다. 가톨릭에서는 결혼의 불가해소성을 교리로 삼으므로 이혼도 원칙적으로 죄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 외국의 예를 보면, 성공회 등 다른 종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하여 처자식이 있는 신부도 종종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주교 등의 고위 성직자가 될 수는 없고 평신부에 머물러야 한다.

7.2.2. 동방 가톨릭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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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데아 예법 칼데아 가톨릭 시로말라바르 가톨릭
같이 보기: 기독교의 종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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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론 전례 가톨릭 교회에서 쓰는 십자가[77] 다른 동방 가톨릭 교회에서 쓰는 십자가

가톨릭 교회에는 라틴 예법이 아닌 고유의 예법(동방 예법, Eastern Rite)을 따르고 있는 동방 가톨릭 교회들이 존재한다. 동방 가톨릭 교회들은 지역별 전례와 교회법, 그리고 전통을 거의 그대로 가지고 있어 외관상으로는 정교회오리엔트 정교회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교리는 가톨릭의 교리를 따르며, 교황의 수위권 역시 인정하고 따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가톨릭 소속 동방 교회는,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알렉산드리아(콥트와 에티오피아 교회로부터 유래), 시리아, 아르메니아 교회에서 유래한 가톨릭 교회들까지 있다. 그 기원은 상당히 다양한데 정교회오리엔트 정교회 일부가 가톨릭으로 귀일[78]하여 생성된 교회가 많고, 심지어 이단인 네스토리우스파에서 나와 교황 수위권과 가톨릭 교리를 온전히 받아들인 칼데아 가톨릭 교회도 있다. 반면, 오래 전부터 교황 수위권을 받아들인 뒤 로마와의 일치가 끊어진 적 없이 독자적인 전통을 인정받았던 마론파와 같은 교회도 있다.

이런 배경이 있기 때문에, 종종 가톨릭 십자가와 정교회 십자가가 합쳐진 형태의 십자가를 가톨릭에서 볼 수 있다. 가톨릭은 물론,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개신교 신자들 모두가 쉽게 놓치는 부분인데, 이 십자가는 동서 교회의 하나됨을 의미하기에 굉장히 의미심장하다.

라틴 예법 가톨릭 교회 소속 평신도는 동방 가톨릭 교회의 전통과 규범을 존중하는 한 동방 가톨릭 교회의 전례에 아무 제한 없이 참례할 수 있고, 그 반대도 당연히 가능하다. 예법이 다를 뿐 같은 가톨릭 교회이고 다른 교회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의 가톨릭 신자도 동방 가톨릭 교회의 미사에 참례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고 거기서도 7성사는 다 받을 수 있다.

7.3. 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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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 수는 2021년 교황청 연감 기준 약 13.7억여 명으로 전체 그리스도교 인구의 절반을 초과하며, 이는 세계 인구의 17.8%로 약 1/7이 넘는 규모이다. #

여타 종교, 종파들과는 달리 구조적으로 교황청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왕권체제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교리 문제 등으로 갈라져 나간 경우에는 명칭부터 가톨릭이 아니게 된다.[79][80] 이러한 시스템과 축적된 역사적 연륜 때문에, 덩치가 커도 여전히 교황청을 중심으로 해서 믿음 공동체가 상당히 잘 뭉쳐 있다.[81] 따라서 가톨릭은 바티칸부터 명동성당은 물론 아프리카 오지 사막까지 모든 교리가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모두 같다.[82]

다만 '교리'가 같다고 해서 그 교리를 실생활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법에 대해 모든 신자들이 똑같은 해석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당장 개신교 출신 개종자의 개신교 세례 인정 문제에서도 영미권 가톨릭과 한국 가톨릭의 입장이 많이 다르다.[83] 이를테면 성직자수도자들이 정치적 의견을 내는 것에 대해서는, 지역에 따라서 심지어는 같은 교구수도회 안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물론 그렇다고 한들 지역 교회들간의 통일성이 크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며, 바티칸과 각 지역이 신학에서든 인사에서든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일례로 교황과 추기경들의 관계만 하더라도, 교황이 추기경들을 서임하고 그 추기경들이 교황을 선출하기에, 바티칸의 행보에 전세계 지역 교회들의 의사가 실질적으로 반영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또한 교리의 통일은 국제적인 성직자 인사 교류가 매우 용이하게 하여, 오늘날 바티칸에선 아프리카나 베트남 같은 비서방권 출신의 주교들이 활약 중이다.

워낙 신자 수가 많고 역사도 매우 오래되다 보니, 그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크다. 실제로 세계사 교과서에서 배우는 유럽의[84] 종교사와 관련된 대부분의 내용은 가톨릭과 관련된 내용이다. 근현대에 들어서 개신교 신앙 정체성을 가진 앵글로색슨 계열 초강대국(영국과 미국)보다 힘을 쓰지는 못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세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러한 막강한 영향력은 종교로서가 아닌 정치단체로서도 발휘되곤 하는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부작용을 알 수 있다.

오늘날에도 가톨릭 교회는 정신적 일체감을 가진 세계 최대의 초국가적 단일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 인구로 보면 이슬람보다 적다고 하는 의견도 있으나, 이슬람은 단일 종교집단이 아니며 전체 그리스도교처럼 다양한 종파가 공존하고 있다. 이슬람 최대 교파인 수니파는 가톨릭과 비슷한 인구 수를 지녔지만, 수니파는 개신교와 유사한 개교주의를 표방하기에 개신교처럼 여러 분파와 조직이 나뉘어 있고 분파간 대립을 한다.

체계가 잘 갖춰진 세계 최대의 초국가적 단일 조직으로는 UN도 있지만 유엔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 단위로 가입하는 조직이다.[85] 그리고 실제 유엔에서 근무하거나 파견된 인원들을 전부 합쳐도 백만명도 채 되지 않는다.

8. 타 종파와의 차이

8.1. 비가톨릭 그리스도인에 대한 이해

INTRODUCTION
서론

The Second Vatican Council, with its Dogmatic Constitution Lumen gentium, and its Decrees on Ecumenism (Unitatis redintegratio) and the Oriental Churches (Orientalium Ecclesiarum), has contributed in a decisive way to the renewal of Catholic ecclesiology. The Supreme Pontiffs have also contributed to this renewal by offering their own insights and orientations for praxis: Paul VI in his Encyclical Letter Ecclesiam suam (1964) and John Paul II in his Encyclical Letter Ut unum sint (1995).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과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 「일치의 재건」, 동방 가톨릭 교회들에 관한 교령 「동방 교회들」을 통하여 가톨릭 교회론에 대한 이해를 더욱 심화하였음은 누구나 주지하는 바이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바오로 6세의 회칙 「주님의 교회」(1964년)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하나 되게 하소서」(1995년)를 통하여 교황들도 통찰과 실천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였다.

The consequent duty of theologians to expound with greater clarity the diverse aspects of ecclesiology has resulted in a flowering of writing in this field. In fact it has become evident that this theme is a most fruitful one which, however, has also at times required clarification by way of precise definition and correction, for instance in the declaration Mysterium Ecclesiae (1973), the Letter addressed to the Bishops of the Catholic Church Communionis notio (1992), and the declaration Dominus Iesus (2000), all published by the Congregation for the Doctrine of the Faith.
이에 따라 교회론의 다양한 측면들을 더욱 명확하게 설명하려는 신학자들의 노력 덕분에 이 분야에서 수많은 글들이 쏟아져 나왔다. 실제로 이 주제는 가장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이 분명하지만, 때로는 정확한 정의를 내리고 잘못을 바로잡아 설명해야 할 필요도 있었다. 교황청 신앙교리성이 (교회에 관한 현대의 오류를 반박하는 가톨릭 교리) 선언 「교회의 신비」(1973년), (친교로서 이해되는 교회의 일부 측면에 관하여) 가톨릭 교회 주교들에게 보내는 서한 「친교의 개념」(1992년),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의 유일성과 구원적 보편성에 관한) 선언 「주님이신 예수님」(2000년)을 발표한 것도 이러한 목적에서였다.

The vastness of the subject matter and the novelty of many of the themes involved continue to provoke theological reflection. Among the many new contributions to the field, some are not immune from erroneous interpretation which in turn give rise to confusion and doubt. A number of these interpretations have been referred to the attention of the Congregation for the Doctrine of the Faith. Given the universality of Catholic doctrine on the Church, the Congregation wishes to respond to these questions by clarifying the authentic meaning of some ecclesiological expressions used by the magisterium which are open to misunderstanding in the theological debate.
이 주제의 광범위함과 관련된 여러 주제의 새로움은 지속적인 신학적 성찰을 요구한다. 이 분야에서 새로 발표되는 수많은 글 가운데 일부는 오류가 있는 해석에 물들어 있어서 혼란과 의혹을 낳고 있다. 신앙교리성은 이러한 여러 해석들에 관심을 기울여왔으며, 교회에 관한 가톨릭 교리의 보편성을 고려하여 교회론과 관련하여 신학 논쟁에서 오해받을 소지가 있는 교도권의 몇몇 표현들의 진정한 의미를 밝힘으로써 이러한 물음들에 응답하고자 한다.

FIRST QUESTION
Did the Second Vatican Council change the Catholic doctrine on the Church?
문의 1: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에 관한 이전 교리를 바꾸었는가?

RESPONSE
The Second Vatican Council neither changed nor intended to change this doctrine, rather it developed, deepened and more fully explained it.
답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에 관한 가톨릭 교리를 바꾸지 않았고 그러한 의도도 없었으며, 오히려 이를 발전, 심화시키고 더욱 완전하게 설명하였다.

This was exactly what John XXIII said at the beginning of the Council.[1] Paul VI affirmed it[2] and commented in the act of promulgating the Constitution Lumen gentium: “There is no better comment to make than to say that this promulgation really changes nothing of the traditional doctrine. What Christ willed, we also will. What was, still is. What the Church has taught down through the centuries, we also teach. In simple terms that which was assumed, is now explicit; that which was uncertain, is now clarified; that which was meditated upon, discussed and sometimes argued over, is now put together in one clear formulation”.[3] The Bishops repeatedly expressed and fulfilled this intention.[4]
이는 요한 23세가 공의회를 시작하며 한 연설에서 분명히 밝힌다.1) 바오로 6세는 이를 확인하였고,2) '교회헌장'을 반포하며 이를 자세히 설명하였다. "이러한 반포가 전통 교리에서 실제로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적합한 설명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바라셨던 것을 우리도 바랍니다. 과거의 것이 지금도 여전합니다. 교회가 수 세기 동안 가르쳐 온 것을 우리도 가르칩니다. 한마디로, 추정되던 것이 이제 분명해졌고 불확실하던 것이 이제 명쾌해졌으며, 숙고하고 토론하고 때로 논쟁하던 것이 이제 하나의 분명한 정식으로 종합되었습니다."3) 공의회에서 주교들은 이러한 뜻을 여러 번 표명하였고 또한 실현하였다.4)

SECOND QUESTION
What is the meaning of the affirmation that the Church of Christ subsists in the Catholic Church?
문의 2: 그리스도의 교회가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RESPONSE
Christ “established here on earth” only one Church and instituted it as a “visible and spiritual community”[5], that from its beginning and throughout the centuries has always existed and will always exist, and in which alone are found all the elements that Christ himself instituted.[6] “This one Church of Christ, which we confess in the Creed as one, holy, catholic and apostolic […]. This Church, constituted and organised in this world as a society, subsists in the Catholic Church, governed by the successor of Peter and the Bishops in communion with him”.[7]
답변: 그리스도께서는 단 하나의 교회를 "이 땅 위에 … 세우시고" 그것을 "가시적 집단인 동시에 영적인 공동체"로 제정하셨기에, 이 교회는 처음부터 수 세기 동안 언제나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며 그 안에서만 그리스도께서 몸소 제정하신 모든 요소를 찾아볼 수 있다.6)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유일한 교회이며, 우리는 신경에서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라고 고백한다[…]. 이 교회는 이 세상에 설립되고 조직된 사회로서 베드로의 후계자와 그와 친교를 이루는 주교들이 다스리고 있는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한다(subsistit)."7)

In number 8 of the Dogmatic Constitution Lumen gentium ‘subsistence’ means this perduring, historical continuity and the permanence of all the elements instituted by Christ in the Catholic Church[8], in which the Church of Christ is concretely found on this earth.
교회 헌장 「인류의 빛」 8항에 나오는 '존재한다'는 말은, 이 변함없는 역사적 지속성과 가톨릭 교회 안에 그리스도께서 세워 놓으신 모든 요소의 항구함을 의미한다.8)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교회는 가톨릭 교회 안에서 구체적으로 발견된다.

It is possible, according to Catholic doctrine, to affirm correctly that the Church of Christ is present and operative in the churches and ecclesial Communities not yet fully in communion with the Catholic Church, on account of the elements of sanctification and truth that are present in them.[9] Nevertheless, the word “subsists” can only be attributed to the Catholic Church alone precisely because it refers to the mark of unity that we profess in the symbols of the faith (I believe... in the “one” Church); and this “one” Church subsists in the Catholic Church.[10]
가톨릭 교리에 따라, 가톨릭 교회와 아직 온전한 친교를 이루지 않은 교회들과 교회 공동체들 안에도 성화와 진리의 요소들이 있는 만큼,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들 안에도 현존하고 활동한다고 올바르게 말할 수 있다.9) 그러나 "존재한다"는 표현은 가톨릭 교회에만 쓸 수 있다. 이 표현은 우리가 신경에서 고백하는(하나인 교회를 … 믿나이다.) 일치를 가리키며, 이 하나인 교회는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10)

THIRD QUESTION
Why was the expression “subsists in” adopted instead of the simple word “is”?
문의 3: 단순히 "이다"라는 표현 대신 "안에 존재한다"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무엇인가?

RESPONSE
The use of this expression, which indicates the full identity of the Church of Christ with the Catholic Church, does not change the doctrine on the Church. Rather, it comes from and brings out more clearly the fact that there are “numerous elements of sanctification and of truth” which are found outside her structure, but which “as gifts properly belonging to the Church of Christ, impel towards Catholic Unity”.[11]
답변: 이 표현은 그리스도의 교회와 가톨릭 교회의 온전한 동일성을 가리키기 때문에 교회에 대한 교리를 바꾸지 않는다. 오히려 이 표현은, 교회 조직 밖에서도 "성화와 진리의 많은 요소들"이 발견되지만 이 요소들은 "그리스도의 교회의 고유한 선물로서 보편적 일치를 재촉하고 있다."11)는 사실에서 비롯되며, 이를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It follows that these separated churches and Communities, though we believe they suffer from defects, are deprived neither of significance nor importance in the mystery of salvation. In fact the Spirit of Christ has not refrained from using them as instruments of salvation, whose value derives from that fullness of grace and of truth which has been entrusted to the Catholic Church”[12].
"그러므로 이 갈라진 교회들과 공동체들이 비록 결함은 있겠지만 구원의 신비 안에서 결코 무의미하거나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그 교회들과 공동체들을 교회의 수단으로 사용하시기를 거절하지 않으시고 그 수단의 힘이 가톨릭 교회에 맡겨진 충만한 은총과 진리 자체에서 나오기 때문이다."12)

FOURTH QUESTION
Why does the Second Vatican Council use the term “Church” in reference to the oriental Churches separated from full communion with the Catholic Church?
문의 4: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톨릭 교회와 온전한 친교에서 갈라져 나간 동방 교회들을 가리키면서 "교회들"이라는 용어를 쓴 이유는 무엇인가?

RESPONSE
The Council wanted to adopt the traditional use of the term. “Because these Churches, although separated, have true sacraments and above all – because of the apostolic succession – the priesthood and the Eucharist, by means of which they remain linked to us by very close bonds”[13], they merit the title of “particular or local Churches”[14], and are called sister Churches of the particular Catholic Churches.[15]
답변: 공의회는 이 용어의 전통적인 사용을 따르고자 하였다. "그 교회들은 비록 갈라져 있지만 참된 성사들을 보존하고 있다. 특히 사도적 계승의 힘으로 사제직과 성찬례를 지니고 있어 아직도 우리와는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다."13) 따라서, 그들은 "개별 또는 지역 교회들"14)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으며, 개별 가톨릭 교회의 자매 교회들로 불린다.15)

“It is through the celebration of the Eucharist of the Lord in each of these Churches that the Church of God is built up and grows in stature”.[16] However, since communion with the Catholic Church, the visible head of which is the Bishop of Rome and the Successor of Peter, is not some external complement to a particular Church but rather one of its internal constitutive principles, these venerable Christian communities lack something in their condition as particular churches.[17]
"각 교회에서 거행되는 주님의 성찬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교회가 세워지고 자라난다."16) 그러나 로마 주교인 베드로의 후계자를 가시적인 수장으로 삼는 가톨릭 교회와 이루는 친교는 개별 교회에게 외적인 보완이 아니라 내적인 구성 원리의 하나이며, 이들 존경할 만한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은 개별 교회라는 조건에서는 결함을 지니고 있다.17)

On the other hand, because of the division between Christians, the fullness of universality, which is proper to the Church governed by the Successor of Peter and the Bishops in communion with him, is not fully realised in history.[18]
다른 한편, 그리스도인들의 분열 때문에, 베드로의 후계자와 그와 친교를 이루는 주교들이 다스리는 교회 고유의 온전한 보편성은 역사 안에서 아직 완전하게 실현되지 않았다.18)

FIFTH QUESTION
Why do the texts of the Council and those of the Magisterium since the Council not use the title of “Church” with regard to those Christian Communities born out of the Reformation of the sixteenth century?
문의 5. 공의회 문헌과 공의회 이후 교도권 문서들이 16세기 종교 개혁에서 생겨난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에게 "교회"라는 명칭을 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RESPONSE
According to Catholic doctrine, these Communities do not enjoy apostolic succession in the sacrament of Orders, and are, therefore, deprived of a constitutive element of the Church. These ecclesial Communities which, specifically because of the absence of the sacramental priesthood, have not preserved the genuine and integral substance of the Eucharistic Mystery[19] cannot, according to Catholic doctrine, be called “Churches” in the proper sense[20].
답변: 가톨릭 교리에 따르면, 이 공동체들은 성품성사에서 사도적 계승을 보존하고 있지 않으므로 교회를 이루는 본질적인 요소가 결여되어 있다. 이러한 교회 공동체들은 특히 직무 사제직이 없는 까닭에 성찬 신비의 참되고 완전한 실체를 보존하고 있지 않으므로,19) 가톨릭 교회에 따라 고유한 의미에서 교회들20)이라고 불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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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ohn XXIII, Address of 11 October 1962: “…The Council…wishes to transmit Catholic doctrine, whole and entire, without alteration or deviation…To be sure, at the present time, it is necessary that Christian doctrine in its entirety, and with nothing taken away from it, is accepted with renewed enthusiasm, and serene and tranquil adherence… it is necessary that the very same doctrine be understood more widely and more profoundly as all those who sincerely adhere to the Christian, Catholic and Apostolic faith strongly desire …it is necessary that this certain and unchangeable doctrine, to which is owed the obedience of faith, be explored and expounded in the manner required by our times. For the deposit of faith itself, or the truths which are contained in our venerable doctrine, are one thing; another thing is the way in which they are expressed, with however the same meaning and signification”: AAS 54 [1962] 791-792

[2] Cf. Paul VI, Address of 29 September 1963: AAS 55 [1963] 847-852.

[3] Paul VI, Address of 21 November 1964: AAS 56 [1964] 1009-1010.

[4] The Council wished to express the identity of the Church of Christ with the Catholic Church. This is clear from the discussions on the decree Unitatis redintegratio. The Schema of the Decree was proposed on the floor of the Council on 23.9.1964 with a Relatio (Act Syn III/II 296-344). The Secretariat for the Unity of Christians responded on 10.11.1964 to the suggestions sent by Bishops in the months that followed (Act Syn III/VII 11-49). Herewith are quoted four texts from this Expensio modorum concerning this first response.

A) [In Nr. 1 (Prooemium) Schema Decreti: Act Syn III/II 296, 3-6]

“Pag. 5, lin. 3-6: Videtur etiam Ecclesiam catholicam inter illas Communiones comprehendi, quod falsum esset.
R(espondetur): Hic tantum factum, prout ab omnibus conspicitur, describendum est. Postea clare affirmatur solam Ecclesiam catholicam esse veram Ecclesiam Christi” (Act Syn III/VII 12).

B) [In Caput I in genere: Act Syn III/II 297-301]

“4 - Expressius dicatur unam solam esse veram Ecclesiam Christi; hanc esse Catholicam Apostolicam Romanam; omnes debere inquirere, ut eam cognoscant et ingrediantur ad salutem obtinendam...
R(espondetur): In toto textu sufficienter effertur, quod postulatur. Ex altera parte non est tacendum etiam in aliis communitatibus christianis inveniri veritates revelatas et elementa ecclesialia”(Act Syn III/VII 15). Cf. also ibid pt. 5.

C) [In Caput I in genere: Act Syn III/II 296s]

“5 - Clarius dicendum esset veram Ecclesiam esse solam Ecclesiam catholicam romanam...
R(espondetur): Textus supponit doctrinam in constitutione ‘De Ecclesia’ expositam, ut pag. 5, lin. 24-25 affirmatur” (Act Syn III/VII 15). Thus the commission whose task it was to evaluate the responses to the Decree Unitatis redintegratio' clearly expressed the identity of the Church of Christ with the Catholic Church and its unicity, and understood this doctrine to be founded in the Dogmatic Constitution Lumen gentium.''

D) [In Nr. 2 Schema Decreti: Act Syn III/II 297s]
“Pag. 6, lin. 1- 24: Clarius exprimatur unicitas Ecclesiae. Non sufficit inculcare, ut in textu fit, unitatem Ecclesiae.
R(espondetur): a) Ex toto textu clare apparet identificatio Ecclesiae Christi cum Ecclesia catholica, quamvis, ut oportet, efferantur elementa ecclesialia aliarum communitatum”.
“Pag. 7, lin. 5: Ecclesia a successoribus Apostolorum cum Petri successore capite gubernata (cf. novum textum ad pag. 6, lin.33-34) explicite dicitur ‘unicus Dei grex’ et lin. 13 ‘una et unica Dei Ecclesia’ ” (Act Syn III/VII).
The two expressions quoted are those of Unitatis redintegratio 2.5 e 3.1.

[5] Cf. Second Vatican Council, Dogmatic Constitution Lumen gentium, 8.1.

[6] Cf. Second Vatican Council, Decree Unitatis redintegratio, 3.2; 3.4; 3.5; 4.6.

[7] Second Vatican Council, Dogmatic Constitution, Lumen gentium, 8.2.

[8] Cf. Congregation for the Doctrine of the Faith, Declaration Mysterium Ecclesiae, 1.1: AAS 65 [1973] 397; Declaration Dominus Iesus, 16.3: AAS 92 [2000-II] 757-758; Notification on the Book of Leonardo Boff, OFM, “Church: Charism and Power”: AAS 77 [1985] 758-759.

[9] Cf. John Paul II, Encyclical Letter ''Ut unum sint', 11.3: AAS 87 [1995-II] 928.

[10] Cf. Second Vatican Council, Dogmatic Constitution Lumen gentium, 8.2.

[11] Second Vatican Council, Dogmatic Constitution Lumen gentium, 8.2.

[12] Second Vatican Council, Decree Unitatis redintegratio, 3.4.

[13] Second Vatican Council, Decree Unitatis redintegratio, 15.3; cf. Congregation for the Doctrine of the Faith, Letter Communionis notio, 17.2: AAS, 85 [1993-II] 848.

[14] Second Vatican Council, Decree Unitatis redintegratio, 14.1.

[15] Cf. Second Vatican Council, Decree Unitatis redintegratio, 14.1; John Paul II, Encyclical Letter Ut unum sint, 56 f: AAS 87 [1995-II] 954 ff.

[16] Second Vatican Council, Decree Unitatis redintegratio, 15.1.

[17] Cf. Congregation for the Doctrine of the Faith, Letter Communionis notio, 17.3: AAS 85 [1993-II] 849.

[18] Ibid.

[19] Cf. Second Vatican Council, Decree Unitatis redintegratio, 22.3.

[20] Cf. Congregation for the Doctrine of the Faith, Declaration Dominus Iesus, 17.2: AAS 92 [2000-II] 758.

-신앙교리성, 교회에 대한 교리의 일부 측면에 관한 몇 가지 문의에 대한 회신, 2007년 6월 29일[86]

{{{#!wiki style="margin:0px auto;display:table"
II. ‘자매 교회들’이라는 표현의 사용에 관한 지침}}}

9. 앞 단락들에서 제시된 역사적 준거들은 교회 일치를 위한 대화에서 자매 교회들이라는 표현이 지니는 중요성을 보여 준다. 따라서 이 말을 신학적으로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10. 사실 엄밀한 의미에서 자매 교회들은 오로지 개별 교회들(또는 개별 교회들의 집합, 예를 들어 총대주교좌 교회들 또는 수도 관구들)이 서로를 일컫는 말이다.7) 이렇게 자매 교회들이라는 말을 엄밀한 의미로 사용할 때에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는 모든 개별 교회의 자매가 아니라 어머니임을 언제나 분명히 하여야 한다.8)

11. 개별 가톨릭 교회와 비가톨릭 교회들에 대해서도 엄밀한 의미에서 자매 교회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로마 개별 교회는 모든 다른 개별 교회의 자매라고도 불릴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 상기한 대로, 가톨릭 교회가 어느 한 개별 교회나 교회 집단의 자매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것은 단순히 용어의 문제만이 아니라, 가톨릭 신앙의 기본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 교회의 단일성을 존중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사실 오직 하나의 교회가 있을 뿐이므로,9) 복수를 나타내는 교회들이라는 말은 개별 교회들에만 해당된다.
따라서 ‘우리 두 교회’와 같은 말은 오해와 신학적인 혼란을 일으키므로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이 말을 가톨릭 교회와 모든 정교회(또는 어느 한 정교회)에 적용시킨다면, 개별 교회의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신경에서 고백하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의 차원에서도 복수의 뜻을 내포하게 되어 교회의 실상이 애매하여진다.

12. 끝으로, 엄밀한 의미에서 자매 교회들이라는 표현은, 동방과 서방의 공통된 전통에서 입증된 것처럼, 유효한 주교직과 성체성사를 보존해 온 교회 공동체들에게만 사용될 수 있음도 유념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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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교황청 신앙교리성 사무처에서}}}
{{{#!wiki style="float:right"
2000년 6월 30일}}}
{{{#!wiki style="float:right"
예수 성심 대축일}}}

{{{#!wiki style="float:right"
장관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
{{{#!wiki style="float:right"
차관 타르치시오 베르토네 베르첼리 명예 대주교}}}

문헌 내 주석 전문 [접기・펼치기]
7.  위의 주(註) 2와 3에 인용된, 일치 교령 14항과 바오로 6세가 아테나고라스 1세에게 보낸 교황 소칙서 Anno Ineunte 참조.
8.  교황청 신앙교리성, 친교로서 이해되는 교회의 일부 측면에 관하여 가톨릭 교회의 주교들에게 보내는 서한 「친교의 개념」(Communionis Notio), 1992.5.28., 9항, AAS 85(1993), 843-844 참조.
9.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tium), 8항; 교황청 신앙교리성, 선언 「교회의 신비」(Mysterium Ecclesiae), 1973.6.24., 1항, AAS 65(1973), 396-398 참조.

-신앙교리성, 「자매 교회들」이라는 표현에 대한 공지, 2000년 6월 30일[87]

'교회'라는 말에 대한 가톨릭 스스로의 이해는 이러하다.
1. 가톨릭 교회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이며, 세상에 교회는 오직 하나만 존재한다.
2. 가톨릭 교회와 개별 교회(예: 한국 가톨릭 교회, 한국 정교회)의 관계는 어머니와 딸의 관계로 표현된다. 개별 교회들에 대해서는 여러개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3. 개별 교회들끼리는 자매의 관계로 표현된다.
4. 엄밀한 의미에서 루터교, 장로회 등은 교회 공동체(ecclesial Community)이지 교회가 아니다.
4. 그리스도의 교회는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한다(subsist).
5. 비가톨릭 교회들과 교회 공동체들 안에도 그리스도의 교회가 현존한다(present).
6. 그러나 비가톨릭 교회들과 교회 공동체들 안에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존재하지(subsist) 않는다.

여기서 정교회와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데, 가톨릭이든 정교회이든 교회는 오직 하나만 존재한다고 본다. 다만 가톨릭의 이해에 의하면 동방의 개별 교회들이 유일한 보편 교회로부터 분리된 것이고, 정교의 이해에 의하면 서방의 개별 교회들이 유일한 보편 교회로부터 분리된 것이다. 때문에 가톨릭과 정교회가 서로를 '유이한' 보편 교회로 본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8.2. 정교회와의 관계

정교회에 대한 가톨릭의 입장은 비록 역사적으로 갈라져 서로를 파문했던 적이 과거에 있을지언정, 오늘날의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는 교리적 차이도 대동소이하여 서로를 초대 교회의 직계 후손임을 인정하는 편이며 비교적 우호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다만 완전한 친교는 이루지 못하고 있으며, 가톨릭은 정교를 분리주의 교회(이교·離敎)로 본다.

과거에는 서방과 동방이 완전한 일치를 이루었으나, 서로마 제국의 서방교회에서는 6세기 말경 2차 중흥기를 누리는 아리우스파 이단에 대응하기 위해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 원본에 없는 "Filioque(그리고 성자)"라는 문장을 삽입했다.[88] 이에 9세기 후반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 포시우스(Photius)는 신학적으로 문제 있으며 더불어 신경에 어떤 변경도 금지한 에페소 공의회의 결정을[89] 위반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이 첨가를 강하게 반대했다. 또한 726년, 동방 황제 레온 3세가 성상 파괴령을 내려 반감이 증대된 것에 성직자 결혼 문제, 정치적 문제가 합쳐지면서 내내 불화를 겪다가, 1054년 로마에서 온 추기경 사절단과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인 미카일 케룰라리오스가 서로를 파문한 것으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 분리되었다(1차 교회분열). 이후 동방교회는 정교회의 이름으로, 서방교회는 가톨릭의 이름으로 역사가 갈라져버린다.

가톨릭에서는 정교를 가톨릭으로부터 떨어져나온 지역교회들로 인식하고, 정교는 그 반대로 인식하지만, 가톨릭과 정교의 주교직이 사도로부터 계승되어 욌다는 것은 서로간에 인정된다. 그렇기에 동서 교회의 분열은 주교들의 분열이지 훗날 벌어지는 소위 종교개혁과는 전혀 다르다.[90]

종교적 권위가 거의 힘을 잃은 오늘날에도 교황청으로 대표되는 가톨릭 교회의 정치적, 사회적 권위는 범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이건 단순히 가톨릭 교리를 받아들이느냐 교황을 범그리스도교의 수장으로 보느냐 마느냐와 같은 신앙/교리적인 문제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로, 정치/사회적인 문제이다. 일단 서두에서 언급한 대로 거시적인 측면 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가톨릭은 그리스도교 단일 종파 중 가장 오래되고 큰 규모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당장 정치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집단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단순히 가톨릭(20%)-개신교(43%)로만 나누자면 현재에도 미국개신교 국가라고 불릴 만하지만, 종파로 파고들면 가톨릭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데, 최다종파인 가톨릭이 2위 종파인 남침례회의 4배가 넘는다. 성공회가 국교인 영국도 가톨릭 교세가 만만치 않다.[91]

물론 가톨릭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곳, 예컨대 이슬람, 가톨릭과 서로간에 쌓인 게 많은 정교회권, 유난히 가톨릭에게 냉담한 북유럽도 있다.

하지만 이런 나라에서조차 정치/사회적으로 가톨릭이 차지하는 비중은 결코 낮지 않다. 교황청에서 새로운 사회 회칙을 발표하거나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언급을 할 경우 언론사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는 것을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당장 교황 베네딕토 16세콘돔 사용에 대해 유화적인 발언을 했을 때 각국의 언론사들의 반응만 보더라도.[92]

8.2.1. 필리오퀘 문제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필리오퀘 문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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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오퀘 문제는 가톨릭과 정교회 사이의 큰 논쟁거리이다.
그것은 "성자로부터도(라틴어로는 Filioque)"라는 구절을 추가한 것이다. 즉 "성부로부터 발하는 ...... 성령을 믿나이다."라는 구절에 서방 교회가 "성자로부터도"라는 구절을 추가함으로써, 성령께서는 성부에게서와 똑같이 성자로부터도 발하게 되었다. 이 구절은 589년 스페인의 제3차 톨레도 공의회에서 처음으로 추가되었고, 8세기 후반 이후 전 프랑크 제국에 급속히 전파되었는데, 부분적으로는 신성에 있어 성자-성부의 동등성을 강조하면서 거기에 잔존하는 아리우스주의자들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 교황들은 처음에 이 구절을 추가하는 것에 반대했다가 수용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동방 교회는, 특히 포티오스가 9세기 후반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로 재임하는 동안에, 신학적인 근거와 더불어 신경에 어떤 변경도 금지한 에페소 공의회의 결정을 위반하는 것이라는 이유로 이 첨가를 강하게 반대했다. 이는 11세기 동·서방 교회의 대분열의 주원인이 되었고, 이후 재일치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었다.
-노만 P. 탄너, 《간추린 보편 공의회사》, 김영식·최용감 옮김 (서울: 가톨릭출판사, 2010), 55-56쪽

여기서 포티오스의 주장은 2가지로 압축된다. 첫번째는 신경을 변경했다는 것이고, 2번째로는 신학적으로 그릇되었다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포티오스가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에페소 공의회(431년)가 변경을 금지한 신경은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이 아니라 니케아 신경(325년)이라는 것이다.
381년 공의회의 그 신경은 오로지 칼케돈 공의회가 열린 451년부터 비로소 공식적으로 알려지고 확증되었으며 "보편 공의회"로 명명되었다.
-안젤로 아마토, 《예수 그리스도》, 김관희 옮김 (화성: 수원가톨릭대학교 출판부,[math({ }^{2})]2014), 445쪽

즉 에페소 공의회(431년)가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을 변경 금지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이 문서실에서 "졸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칼케돈 공의회 이전 시기에는 동방에서도 그저 드물게만 알려지고 사용되었는데, 무엇보다도 니케아 신경의 배타적이고 독점적인 지위가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의 수용에 방해가 되었다. 그러다가 칼케돈 공의회에서 이 신경이 황제의 관리들에 의해 교부들에게 정식으로 강권되었고, 그리하여 거기서 이 381년 공의회가 추인받아 보편성을 획득했다.
(중략)
로마에서는 ··· 500년경까지만 해도 니케아와 에페소와 칼케돈 공의회 셋만 보편공의회로 인정했다.
-클라우스 샤츠, 《보편공의회사》, 이종한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5), 59-60쪽
이 교회회의는 이미 콘스탄티노폴리스 지역 교회회의(382년)가 교황 다마소에게 보낸 서한에서(키루스의 테오도레투스, 「교회사」Historia ecclesiae) "세계 공의회"로 불린다. 그렇지만 이 교회회의가 일반적으로 "세계 공의회"로 인정받은 것은 훨씬 나중 일이다.
-덴칭거,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소개

에페소 공의회가 겨냥하는 신경이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이 아니라 니케아 신경(325년)인 것은 언뜻 보면 매우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 왜 직전 세계 공의회가 아니라, 훨씬 전의 세계 공의회 신경을 겨냥한다는 말인가?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는, 세계 공의회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이해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공의회들이 "보편적"ōkumenisch인가라는 물음은 가장 까다로운 물음 가운데 하나다. 역사학자로서 교회론적으로 먼저 결단하지 않고는 결코 대답할 수 없는 물음이다. "보편적"(즉 "전반적"allgemein) 시노드와 지역적(부분교회적) 시노드의 명확한 구별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제쳐놓더라도, "보편적"이라고 주장했던 많은 시노드의 보편성이 오랫동안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오늘날까지도 논란되거나 부인되는 반면, 보편성 주장을 하지 않았고 실제로 전혀 보편적이 아니었으나 나중에 전체교회가 받아들인 시노드들도 있다. 후자의 대표 사례로는 그 신경이 오늘날 모든 중요한 그리스도 교파의 구속력있는 교리문서들 속에 들어 있는 저 공의회, 곧 381년에 개최된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를 들 수 있다.
-클라우스 샤츠, 《보편공의회사》, 이종한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5), 15쪽
니케아 공의회는 일차적으로 이전 공의회들도 했던 일 외에 다른 것을 하지 않았다. 공의회는 이단을 단죄하고 그것에 맞서 신경을 확정했다. 이전의 지역 시노드들과 비교해 보건대 니케아 공의회는 아직 질적이고 본질적인 우위성을 지니지는 못했고, 단지 양적으로 높은 지위를 누렸을 따름이다. 공의회 신경이 당시의 현실적 동기와 구체적 상황을 뛰어넘어, 전체교회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정통신앙의 시금석이 되리라고는 처음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이것은 예를 들어 갈리아 지방에서 아리우스설에 앞장서 대항한 걸출한 전사 푸아티에의 힐라리우스가 니케아 신경을 공의회 후 30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고, 갈리아 주교들 대부분 역시 360년경에도 이 신경을 거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잘 드러난다. 사실 공의회들은 뭐라 해도 시대와 상황에 메인 기구로 간주되었다. 그러므로 니케아 이후의 공의회들이 니케아 신경의 정식들을 간과하고 성부와 성자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정식을 만들어냈다 하더라도, 후대의 관점에 터해 거기서 전체 교회의 "교의"에 대한 침해를 보아서는 안 된다. 사실은 그 반대이니, 이 "새로운" 정식들의 실패를 통해 비로소 전체교회의 구속력있는 신앙규범으로서의 니케아 신경에 대한 의식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사실 새로운 상황에서 전승되어 온 신앙에 대해 끊임없이 새로운 정식화를 모색하는 것은 뭐라 해도 수긍이 가는 일이다.
-클라우스 샤츠, 《보편공의회사》, 이종한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5), 45쪽

사실 세계 공의회(혹은 보편 공의회)라는 말은 엄밀하지 않았다.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년)의 경우 이전의 지역 시노드들과 비교할 때 양적으로는 우위성을 지닐 수 있어도, 질적이고 본질적인 우위성을 지니지는 못했다. "공의회 신경이 당시의 현실적 동기와 구체적 상황을 뛰어넘어, 전체교회에 의해 받아들여지고 정통신앙의 시금석이 되리라고는 처음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가령 갈리아 주교들 대부분은 360년경에도 니케아 신경(325년)을 거의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년)의 경우는, 보편성 주장을 하지 않았고 실제로 보편적이지도 않았지만 나중에 전체 교회가 받아들인 시노드에 해당한다.

조금 더 깨는 사실을 말하자면, 제1차 니케아 공의회는 공식 문헌이라는게 있었는지조차 의심되고 있다.
공식 문서들이 전해 오는 에페소나 칼케돈 공의회와는 달리, 이 첫 보편 공의회는 회의록과 공식 문서가 없기 때문에 정확히 알 수 없다. 우리는 니케아 공의회에 관해 단지 결실, 측 카논(법규)들과 신경만 가지고 있을 뿐, 토의 과정과 내용은 모른다. 공의회의 진행과정에 관해서는 아타나시우스 같은 참석자들의 단편적 메모들과 하나 하나 매우 비판적으로 고찰해야 할 교회사가들의 기록들(예컨대 에우세비우스의 「콘스탄티누스의 생애」나 1백 년 뒤 소크라테스의 저술) 약간만을 가지고 있다. 도대체 공식 문서가 있었는지도 의심스럽다. 필경 고대 공의회들은 국가적 회합들의 관례를 넘겨받아 재판 기록들을 작성했지만 일반적으로 그밖의 자문회의들에 관해서는 기록을 남기지 않았던 것 같다.
-클라우스 샤츠, 《보편공의회사》, 이종한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5), 39-40쪽

또한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의 경우도 비슷하게, "문서들은 남아 있지 않다."
당시 동방 제국만 통치한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이 공의회를 소집했다. 당시 서방의 황제는 그라티아누스(375~383 재위)와 발렌티아누스 2세(375~392 재위)였다. 공의회에 참석한 주교 150여 명 가운데(소크라테스 『교회사』 5,8), 서방 사람들은 없었고, 로마의 주교 다마수스는 사절을 파견하지도 않았다. 이런 까닭에 공의회의 영향력은 처음엔 보잘것없었다. (중략)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문서들은 남아 있지 않다. 신경도 공의회 기록으로 보존되어 있지 않다. 공의회에서 결정된 법규들만 여러 교회법 모음집에 수록되어 있을 뿐이다.
-에른스트 다스만, 《교회사 II/2》, 하성수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16), 98쪽

물론 "무슨 시노드가 세계 공의회인가?"가 엄밀하지는 못했더라도 역사적으로 니케아 공의회와 신경은 정통과 이단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으로 점점 지위를 확립해나간 것은 맞기는 하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또 있다. 바로, 옛 사람들에게 제1차 니케아 공의회가 후대의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와 에페소 공의회에 비해서 '매우' 우월하게 인식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거의 기정사실화한 다음과 같은 가정이 생겨났는데, 칼케돈 공의회에서야 비로소 거기서 벗어나게 될 터였다: 공의회들은 니케아 공의회의 손바닥 안에, 높디높은 니케아 공의회의 넓디넓은 그늘 아래 있다. 공의회들은 니케아 공의회와 대등하게 병렬하지 못하며, 비록 엄밀하게 예속적인 의미에서는 아닐지라도, 아무튼 근본적으로 "니케아 공의회의 현실화"일 따름이다. 여타 공의회들은 무엇보다도 이런저런 진술들이 니케아 신경에 부합하는지 아니면 상치되는지를 규명해야 하며, 전자는 승인하고 후자는 단죄해야 한다. 모든 것을 판단하는 척도는 니케아 신경이다. 여기서 니케아 공의회는 일련의 공의회 중 첫 공의회가 아니라, "슈퍼(超) 공의회", 후대의 모든 공의회를 규정하는 규범이 된다. 바로 이런 공의회관에 터해 1차 에페소 공의회(431)가 개최되었고, 2차 에페소 공의회(449) ―이른바 "강도 공의회" ―에서는 이 공의회관이 더 극단화됐다.
-클라우스 샤츠, 《보편공의회사》, 이종한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5), 52쪽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칼케돈 공의회(451년) 시대에 이르러서야 오늘날과 비슷하게 변화한다.
그러나 어쨌든 칼케돈 공의회의 수용을 통해 공의회 이념의 발전과정이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다:
―새로운 단계의 본질은 이 수용에서 니케아 공의회 후 결정적인 둘째 걸음이 내디뎌졌다는 데 있다. 과연 칼케돈 공의회의 수용과정에서 니케아 공의회의 독점적 지위가 점차 와해되었고, 니케아 공의회의 권위는 유일무이한 것이 아니라 ― 새로운 이단들과 새로운 역사적 상황들에 대응하여 언제나 새로운 신앙정식들이 요구되고, 또한 모든 참된 공의회는 동일한 권위를 보유하기 때문에 ― 반복될 수 있는 것이라는 의식이 뚜렷이 대두했다. 이런 의식은 458년 황제가 칼케돈 공의회의 유효성에 관해 문의한데 대한 주교들의 답변 「코덱스 엔키클리우스」Codex Encyclius로 처음 나타났다. 여기서 모든 주교들은 원칙적으로 칼케돈 공의회의 니케아 및 그때까지의 모든 공의회와의 연속성과 일치를 강조했다. 그러나 어떤 주교들에게는 여전히 오직 니케아 공의회만이 이 일치의 척도요 준거점이었다. 그들은 강조하기를, 칼케돈 공의회는 니케아 공의회와 일치하기 때문에 유효하고 정통적이라 했다. 그러나 다른 주교들은 동등성을 강조했는데, 특히 크레타 주교들의 한 서간은 그때까지 네 차례의 구속력있는 보편공의회를 서로 일치하는 동등한 공의회로 열거했다.[93]
―이런 맥락에서 이제 처음으로 그때까지의 보편공의회들이 확정·명기되었고, 또한 낮은 등급의 공의회들과 명확히 구별되었다. 이제 "네 공의회"는 고정된 상투어가 되었다.
(중략)
―더 나아가 6세기부터는 "네 거룩한 시노드"라 하여 네 복음서에 견주기 시작했으니, 이 공의회들은 복음서들과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지고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략)
―다른 한편, 이제 넷이라는 고정된 숫자는 그것에 뒤이어 일련의 숫자를 꼽을 수 있게 했다. 과연 이 숫자는 뒤이은 보편공의회마다 고정된 서수序數를 부여했다: "다섯째", "여섯째", "일곱쨰" ··· 보편공의회. 이 줄은 원칙적으로 완결되지 않고 계속 추가될 수 있었으나 "가운데 끼어들기"는 허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이름 붙이기는 피상적인 셈하기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한 공의회의 자기이해에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으니, 공의회를 앞선 공의회들과 결합시키고 그 연속성에 편입시켰다.
어떤 공의회가 몇째 보편 시노드로 지칭됨으로써, 그 공의회는 자신의 권위를 공시하고 동시에 다른 공의회들과의 연속성과 한 계열 안에 정렬하게 되었다. 칼케돈 공의회 때까지는 없었던 일이다. 한 공의회의 고유한 권리 주장을 위해 꼭 필요한 이런 셈하기는 통상적인 일이 아니었다. 아무튼 바로 그런 일을 통해서 예컨대 381년 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가 그 연속선상에 "끼어들" 수 있었다.
-클라우스 샤츠, 《보편공의회사》, 이종한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5), 88-88쪽

즉 제1차 니케아 공의회와 '동급'의 여러 공의회'들'이라는 생각부터가 칼케돈 공의회(451년)스러운 생각이라는 것이다.

결국 정리하면 이렇게 된다:

첫째, 세계 공의회에 대한 인식은 역사적으로 발전한 것이지,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년)가 시작되는 순간에 오늘날의 형태로 갑자기 완성되고 출발한게 아니다.

둘째, 칼케돈 공의회(451년) 시기까지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년)와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으며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년)는 세계 공의회로 인식되지도 않았다.

셋째, 역사적 맥락에서 볼 때 에페소 공의회(431년)의 신경 변경 금지는 니케아 신경(325년)을 겨냥한 것이지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에페소 공의회는 무엇이라고 말했는지를 직접 살펴보자.
···거룩한 공의회는 성령과 함께 니케아에 모인 거룩한 교부들이 확정한 것과 다른 신앙 고백을 제시하거나 작성하거나 편찬하는 것이 어느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는다고 확정하였다. ···
-에페소 공의회, 치릴로파의 제6회기, 431년 7월 22일[94]

즉 역사적 맥락에서 보든 문장 자체로 보든, 에페소 공의회가 겨냥하는 것은 "니케아에 모인 거룩한 교부들이 확정한" 신앙 고백이다. 다시 말해 니케아 신경(325년)이지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이 아니다. 그렇기에 에페소 공의회의 신경 변경 금지는, 엄격한 의미에서 이해되어선 안되고, 다소 느슨한 의미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엄격한 의미로 이해해버린다면, 훗날 칼케돈 공의회(451년)에서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을 수용한 것 부터가 에페소 공의회를 위반한 것이라는 이상한 결론이 나올 것이다.
니케아 공의회의 신경은 유명한 설교가이자 알렉산드리아의 한 본당 신부였던 아리우스(?~336)의 가르침에 관한 논쟁을 통해 생겨났다. 이 논쟁은 삼위일체의 제2위격인 하느님 아들의 신성에 관한 문제였다. 니케아 공의회의 구성원들은 이 신경을 자신들의 믿음이 가장 잘 표현된 것으로 받아들이고, 비록 아리우스라는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하느님의 아들이 다소 부족한 신성을 가졌다는 그의 주장을 단죄하였다. 엄밀히 말해서 어떻게 이 신경이 받아들여지게 되었는지는 공의회의 기록이 부족하기 때문에 불분명하다.
(중략)
431년에 열린 에페소 공의회는 이 신경에 어떤 것을 첨가하거나 변경하는 것도 파문의 형벌로 금지시켰다(COD, p.65). 한편 451년 칼케돈 공의회에서는 다시 교착 상태에 빠졌다. 특히 더 이상 어떤 것도 추가하는 것을 금지하기로 결정한 에페소 공의회의 맥락에서 공의회의 많은 구성원들이 니케아 신경을 넘어서서 한 발짝도 더 나아가려 하지 않았다. 다른 한편 니케아 신경은 새로운 상황에 적합하지 않아 보였다. 특히 325년 이후 발생한 수많은 논쟁들을 고려할 때, 그 이상의 어떤 것을 언급할 필요가 있었다. 이때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대부제(archdeacon)는 381년 자기 도시에서 열린 공의회에서 선포되었던 신경을 해결책으로 제안했다. 하지만 이 신경은 선포된 이후 명백하게 교회 전반으로부터 주목받지 못하고 있었다. 칼케돈 공의회는 이 381년 신경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하고, 에페소 공의회의 금지령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이것이 325년의 신경과 본질적으로 하나이고 같은 것이라 단언하였다. 이로써 합법적인 개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노만 P. 탄너, 《간추린 보편 공의회사》, 김영식·최용감 옮김 (서울: 가톨릭출판사, 2010), 48- 51쪽

그리고 칼케돈 공의회(451년)의 교부들이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을 수용한 논리도 주목할 만 하다. 그들은 381년의 신경이 "325년의 신경과 본질적으로 하나이고 같은 것이라 단언하였다."
콘스탄티노플 신경이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놀랍게도 칼케돈 공의회의 제 2회기인 451년 10월 10일 콘스탄티노플의 대부제大副祭인 아에티우스Aetius가 공의회에 모인 교부들을 향해서 큰 소리로 "150명의 주교들의 신앙"[95]에 대해서 읽을 때였다. 그 후 이 신앙고백문은 칼케돈 공의회의 신앙정식이 만들어지기 전에 니케아 신경과 통합되었다. 니케아 신경의 교정본과 콘스탄티노플 신경의 교정본을 감수한 바 있는 도세티Dossetti는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 참석한 모든 희랍 교부들과 라틴 교부들이 칼케돈 공의회 제2회기나 아니면 칼케돈의 신앙정식을 만들때쯤에 다음과 같이 이구동성으로 재확인했다고 전한다.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콘스탄티노플 신경처럼 오로지 칼케돈 공의회에서 알려지고 승인되었음을 시인한다.[96]
콘스탄티노플 신경이 70년이 넘도록 침묵을 지킨 이유[97]에 대해서 아직 완전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는 잠시 접어 두고 그 신경의 출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칼케돈 공의회는 콘스탄티노플 신경을 이단규정을 간단하게 덧붙여서 니케아 신경을 본질적으로 추인하는 성격의 신경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니케아 신경과 콘스탄티노플 신경의 구조를 객관적으로 비교했을 때 콘스탄티노플 신경을 니케아 신경의 개정판 정도로 볼 수 없게 하는 어떤 편차가 보인다. "사실 이 두 텍스트는 전적으로 다르다."[98] 여기서 학자들의 의견은 양편으로 갈린다. 폰 하르낙과 같은 부류(F. J. A. Hort)는 콘스탄티노플 신경은 이미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 이전에 있었던 것으로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와는 무관하고 독립적이라고 한다. 반면 칼케돈 공의회의 회의록을 수집-편찬한 슈바르츠 등은 콘스탄티노플 신경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 자체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지만, 이 두 주장 모두 콘스탄티노플 신경은 니케아 신경의 재확인이라는 교회의 전통적인 입장을 소홀히 하고 있다.[99] 그렇다면 부인할 수 없는 이 상이성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해결책은 1936년 프랑스 신학자 르봉[100]에 의해서, 그리고 이어서 켈리,[101] 리터,[102] 도세티[103] 등에 의해서 제시되었다. 이들에 의하면 "니케아의 신앙"이라든가 "신경" 또는 "318명의 교부들의 해설(ékthesis)" 등과 같은 표현은 성문화된 어떤 텍스트를 구체적으로 지칭하기보다는 신경의 신학적 내용, 무엇보다 "동일본질" 같은 니케아 공의회의 키워드를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경"이라든지 "니케아 신앙"이라는 호칭은 니케아에서 결정된 신앙내용을 근본적으로 수용하고 숭앙하는 어떤 특정한 신경에 주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교의사적 추이에서 볼 때 "니케아 신앙"이란 말은 "동일본질"이란 말로 결정된 확고부동한 내용을 다양한 언어로 표현하는 신앙고백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너무나 다양한 나머지 그들 사이에서도 종종 확연한 차이를 발견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런 다양성 안에서도 신앙고백의 내용은 본질적으로 일치한다는 것이다. 니케아 신경을 약간 각색해서 세례 때의 신앙고백정식으로 사용한다든지, 신경의 말미에 이단에 대한 경고문구 등을 삽입한다든지 하지만, 이 정식들은 그래도 여전히 "니케아 신경"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104]
381년 콘스탄티노플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 본질에 있어서는 "니케아적인" 어느 한 지역의 신경을 선택해서 아폴리나리스 이단과 마체도니오 이단을 반박하기 위한 초석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공의회는 새로운 신경을 따로 채택하지 않고 단순히 반-이단적인 명문을 삽입하여 니케아 공의회의 교의적 결정을 재확인한다. 그러니까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새로운 신앙개조를 창작하지도 아니하고 니케아 신경과는 별개의 독립적인 신경을 보유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사실 도세티가 정확하게 지적했듯이 니케아와 콘스탄티노플 신경들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고, 단순히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105]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것은 정통성이 검증된 하나의 반-이단적 명문화를 삽입한 신경, 즉 니케아신경을 자구적으로 재생한 것은 아니더라도 본질적으로 재확인하는 신경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안젤로 아마토, 《예수 그리스도》, 김관희 옮김 (화성: 수원가톨릭대학교 출판부, [math({ }^{2})]2014), 428-431쪽

따라서 니케아 신앙을 고수한다는 것은, 신경의 텍스트 모든 글자를 엄밀한 의미에서 보존하자는 말이 아니다.

더군다나, 교회의 역사에서 볼 때 오직 세계 공의회'만'이 신경을 변경할 수 있다고 여겨지지도 않았다.
"니체아-콘스탄티노플" 신앙고백은 "사도"신경과 마찬가지로 오늘날까지 모든 그리스도 교회의 정통교리가 되었다.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가 니체아 공의회 신경을 넘겨받고 보완하였다는 가정은 (오늘날까지 신경의 출전에 관한 상황 연구가 어렵다 할지라도) 맞지 않는 것 같다. 공의회 문서들은 남아 있지 않으며 공의회 신경은 공식적인 형태로 칼체돈 공의회 문서에서 처음 전해지나, 그 이전에 이미 콘스탄티아(살라미스)의 에피파니우스가 자신의 작품 「정박자」[106](374년)에서 이 고백을 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른트 마누엘 바이숴Bernd Manuel Weischer는 후대에 니체아-콘스탄티노플 신앙고백이 「정박자」에 삽입된 것으로 본다. 따라서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신경을 공식적으로 결정하지 않았지만, 칼체돈 공의회를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 본문을 협의하거나 작성하였다는[107] 것이 오늘날[108]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견해이다.
-H. R. 드롭너, 《교부학》, 하성수 옮김 (왜관: 분도출판사, 2001), 407쪽
살라미스의 주교 에피파니우스: 「정박자」(Ancoratus), 374년

이 작품에는 두 양식의 신앙 고백이 들어 있다. 짧은 양식(118,9-13)은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150)과 매우 유사하며, 에피파니우스가 본래 니케아 신경을 인용한 자리에 후대 어느 필경사가 끼워넣은 것이다. B. M. Weischer, Qerellos IV 2: Traktate des Epiphanius von Zypern und des Proklos von Kyzikos(Äthiopistische Forschungen 6; Wiesbaden 1979) 49-51. 긴 양식(119,3-12)은 에피파니우스 자신이 니케아 신경을 확대시킨 양식으로, 교리 교육 때나 이단자들을 위한 세례 신앙 고백으로 쓰인 것이다.
(중략)
(ㄴ) 긴 양식
한 분이신 하느님, 전능하신 아버지,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를 저희는 믿나이다.
또한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아들, 하느님 아버지에게서, 곧 성부의 본질에서 나신 외아들,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 참하느님에게서 나신 참하느님,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본질이 같으시며 그분을 통하여 하늘과 땅에 있는 유형무형한 만물이 생겨났으며,
저희 인간 때문에, 저희 구원을 위하여 내려오시어 육이 되셨으며, 곧 성령을 통하여 거룩하고 평생 동정이신 마리아에게서 완전하게 태어나시어 사람이 되셨으니, 곧 성자께서는 죄 말고는 영혼과 몸과 정신과 인간의 모든 요소를 지닌 완전한 인간을 취하셨으며, 남자의 씨로도 아니고 인간 안에서도 아니라, 자신 안에서 유일하고 거룩한 일치로 육신을 이루셨으며, 예언자들 안에서 숨 쉬시고 말씀하시며 행하신 방법이 아니라 완전하게 인간이 되셨으며("말씀이 육신이 되셨으니," 그때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고 그분의 신성도 인성으로 바뀌지 않았나이다.), 〈육신을〉 자신의 거룩한 완전함과 유일한 신성에 합치시켰으며(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두 분이 아니라 한 분이시오니, 바로 그분이 하느님이시고, 바로 그분이 주님이시며, 바로 그분이 임금님이시옵니다.), 바로 그분이 육신으로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하셨으며, 바로 그 몸으로 하늘로 올라가셨으며, 영광 속에 성부 오른편에 앚으시며,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바로 그 몸으로 영광 속에 오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라 믿나이다.
또한 율법 안에서 말씀하시고 예언자들을 통하여 선포하시고 요르단 강에 내려오셨으며, 사도들 안에서 말씀하시고 성도들 안에 머무르시는 성령을 저희는 믿나이다. 바로 거룩한 영, 하느님의 영, 완전한 영, 보호자이신 영이시며, 창조되지 않으시고 성부에게서 발하시며, 성자께서 받아들이고 믿으신 분을 저희는 믿나이다. 하나이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를 저희는 믿으며, 회개의 유일한 세례를 믿으며, 죽은 이들의 부활과 영혼과 몸에 관한 공정한 심판을 믿으며, 하늘 나라를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
그러나 성자나 성령이 없던 때가 있었다거나, 무에서 생겨났다거나, 또는 하느님의 아들이나 성령이 다른 실체(히포스타시스)나 본질에서[109] 나왔다거나, 바뀌거나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하는 자들을, 여러분과 우리의 어미니인 보편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는 파문한다. 또한 우리는 죽은 이들의 부활을 고백하지 않는 자들과 이 올바른 믿음을 따르지 않는 모든 이단을 파문한다.
-덴칭거 42-45항

살라미스의 주교인 성 에피파니우스의 저작 「정박자」(Ancoratus)에서는 2개의 신앙고백을 전한다. 이 중 짧은 것은 후대의 가필이니 논외로 한다고 하더라도, 긴 것은 덴칭거의 소개문에서 보듯 "에피파니우스 자신이 니케아 신경을 확대시킨 양식으로" 여겨진다. 즉 로마도 알렉산드리아도 콘스탄티노폴리스도 아닌, 살라미스의 주교 역시도 니케아 신경의 텍스트를 수정한게 교회사의 현실이다.

결국, 서방 교회가 에페소 공의회의 신경 변경 금지를 위반했다는 것은 에페소 공의회 문헌 그 자체에서[110] 보든 역사적 맥락에서 보든 부적절하며, 에페소 공의회의 신경 변경 금지는 '텍스트'를 글자 그대로 보존하라는 의미로 이해될 수 없다. 만약 서방에 대한 그 비판이 타당하다면, 똑같은 원리로 칼케돈의 교부들을 단죄해야 할 것이다. 칼케돈 공의회 정신에서 볼 때, 이렇게 결론을 내리는 것이 훨씬 타당하다: "325년의 신경과 본질적으로 하나이고 같은 것"이라면, 신경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111]

그리고 서방 측의 필리오케 삽입을 독단으로 여길 필요도 없다. 니케아 신경은 살라미스의 성 에피파니우스에 의해서도 수정된 바 있으며, 589년의 톨레도 교회회의의 권위가 살라미스의 주교 '미만'인 건 당연히 아니며, 비록 레오 3세가 필리오케 삽입에 부정적이었다고는 하나 로마의 주교가 살라미스의 주교 '미만'인 것도 아니다.

8.2.2. 성사교류

가톨릭과 정교회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서로에 대한 파문을 철회하고 서로를 초대 교회의 직계 후손으로 인정한 이후, 성사교류를 맺어 각 교파의 신자들이 각자의 교회에서 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가톨릭 교회법은 정교회 신자들이 가톨릭 교리와 교회에 대한 존중심과 준비만 되어 있다면, 가톨릭 사제가 정교회 신자에게 성체성사, 고해성사를 배풀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가톨릭 교회법 844조 3항, 가톨릭 교회 교리서 1399, 1401항)

다만 이건 언제까지나 특수 상황에 처했을 때만 해당된다. 가톨릭 신자의 경우, 주일이 낀 상태로 외딴 섬으로 여행을 갔는데 가톨릭 성당은 없고 정교회 성당만 있을 경우 같은 경우에만 용인한다.

한편 정교회는 가톨릭 신자의 정교회 영성체 참여를 탐탁치 않게 보는데, 이유는 가톨릭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공심재와 금육, 금식 규정을 과거에 비해서 상당히 완화했기 때문에 (정교회의 입장에서) 그들이 모령성체를 할 여지가 높다고 보는 것이다. 정교회 신자 역시 정교회 성당이 거주지 인근에 없을 경우 불가피하게 가톨릭 성당에서 성체성사고해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 현재 정교회가 한국에서 교세가 적기 때문에 보통 정교회 신자들이 가톨릭에서 성사를 받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예가 군대로, 정교회 신자인 군인들은 가톨릭 성당에서 성체성사와 고해성사를 대신 받을 수 있다.

8.2.3. 정교회와의 차이

정교회는 가톨릭교회와 성사적, 교리적 측면에서 거의 일치한다. 하지만 교황 수위권과 무류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예법이나 일부 세부적인 교리에서 차이가 존재한다. 가톨릭교회와 마찬가지로 성서와 성전을 계시 원천으로 받아들이지만 정경 목록에서 차이가 있다.[112] 또한 니케아 신경에서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발하시고…”라는 구문 가운데 ‘성자에게서 발하시고’라는 문구가 잘못됐다는 신학적 입장을 동방 측이 내세운 필리오케 문제가 논쟁이 되기도 했다.

8.3. 개신교와의 차이

개신교와 가톨릭은 루터의 종교개혁이라는 큰 사건을 겪고 갈라진데다 교리적인 차이도 상당히 큰 편이어서, 일부 신자들은 이단으로 여기며 승인하지 않는다. 가톨릭에서 개신교를 '신교'라는 표현보다 '갈라진 공동체'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개신교에 대한 적대감정을 많이 누그러뜨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개신교를 '갈라진 형제들'이라고 에둘러 표현할 뿐이며, 성공회, 루터교회, 장로회 등 개신교 교단은 원론적으로는 '교회'가 아닌 '이단'으로 본다.

다만 가톨릭 교리에서 말하는 '이단'은 개신교 신자들의 용례와는 달리, '차마 그리스도교라 불러줄 수 없는 무언가'라는 의미가 아니다. 개신교에서 받은 세례는 가톨릭에서도 인정되며[113] 교리서는 '이단'을 '배교'와 구분하고 있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은 개신교의 구원론적 가치 및 가톨릭과의 특별한 관계를 인정한다.[114]가톨릭에서 '이단'은 '유사 그리스도교'가 아니라 '일부 교리가 틀린 그리스도교'에 쓰는 말이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단'이 공격적 단어인 건 분명하므로 개신교와의 대화에서 선호하는 단어는 아니다.

기본적으로 개신교와 그리스도교라는 공통된 틀안에 있어서 기초적인 사상은 같거나 비슷하지만, 세부적인 해석이나 신학적 입장은 개신교 종파에 따라 차이가 커진다. 가장 가톨릭과 비슷한 교리와 전례를 가진 개신교 종파는 성공회이며, 그 반대는 재림교회이다. 개신교는 유형적인 일치에 중요성보다는 성경만을 더 중요하다고 여겨서 통일된 신학은 없다.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교회론적인 차이이다. 가톨릭은 '교회'가 '하느님의 백성'(populus Dei)이자 '그리스도의 신비체'(corpus Christi mysticum, 그리스도의 뮈스테리온적 몸)로서 계시에 대한 정당한 해석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적극적으로 본다. 개신교와의 이러한 교회론적 차이는 성경, 성사, 각종 전통 해석에서 방법론적 차이로 이어진다.

가령 성경에 대한 관점 차이를 보자. 일부에서는 "개신교는 성경을 중시하고 가톨릭은 전통을 중시한다"고 이분법적으로 단순화하기도 하지만, 가톨릭에서도 계시에 대한 최고 권위는 당연히 성경이다. 단지 최고 권위인 바로 그 성경에 대한 '해석'이 교단마다 다른 것이다. 여기서 가톨릭은 '가톨릭 교회의 해석'이 단지 인간적이거나 학술적인 수준을 넘어, '그리스도의 신비체'(그리스도의 뮈스테리온적 몸)[115]로서 성경에 대한 정당한 관점을 정말로 줄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물론 성경에 대한 인간의 해석이 '발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따라서 지상의 교회가 하는 성경 해석이 그 시대의 맥락과 불가분이라는 건 가톨릭 교회 스스로도 인정을 한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발전하는 성경 해석을, 각각의 시대에서, 그 시대의 가톨릭 교회가 정당하게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이다.
  • 성전과 성경해석의 차이도 크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접기・펼치기]
>I. 사도전승

75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모든 계시를 자신 안에서 이루신 주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예언자들을 통하여 약속되고 당신께서 성취하시고 친히 전파하신 복음을 모든 진리와 윤리 규범의 원천으로 모든 이에게 선포하도록 사도들에게 명하셨다.”

사도들의 복음 선포

76 복음은 주님의 명에 따라 두 가지 방식으로 전해졌다.

- 구두로는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 그리고 그분과 함께한 공동생활에서 받은 것과 성령의 조언에 힘입어 배운 것을 설교와 모범과 제도로써 전달해 주었다.”
- 문서로는 “사도들과 그 직제자들이 성령의 감도로 구원의 소식을 기록하였다.”

사도적 계승으로 지속되는 복음 선포

77 “사도들은 교회 안에 복음이 영구히 온전하게 또 생생하게 보존되도록 주교들을 후계자로 세워 ‘자기 교도직의 자리를 넘겨주었다.’” 그러므로 “영감 받은 책들 안에 특별한 방식으로 표현되어 있는 사도적 설교는 세상 종말까지 지속적인 계승으로 보전되어야 했다.”

78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생생한 전달은 성경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성경과는 구별되는 것으로서, ‘성전’(聖傳)이라고 부른다. 이 성전을 통해서, “교회는 그 교리와 생활과 예배를 통하여 자신의 모든 것과 자신이 믿는 모든 것을 영속시키며 모든 세대의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거룩한 교부들은 이 성전이 살아 있음을 증언하고, 믿고 기도하는 교회의 관습과 생활 안으로 이 성전의 풍요로움이 흘러 들어온다고 가르친다.”

79 이처럼 성부께서 성령 안에서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전해 주시는 통교는 교회 안에 현존하며 작용하고 있다. “예전에 말씀하신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신부(교회)와 끊임없이 대화하시며, 성령께서는 복음의 생생한 목소리가 교회 안에서 또 교회를 통하여 세상 안에 울려 퍼지도록 하시고, 신자들을 온전한 진리 안으로 이끄시며 그리스도의 말씀이 그들 안에 풍부히 머물도록 하신다.”

II. 성전과 성경의 관계

하나의 공통적 원천

80 “성전과 성경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고 또 상통한다. 이 둘은 동일한 신적 원천에서 솟아 나와 어떤 방식으로든 하나를 이루며 같은 목적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둘은 모두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마태 28,20) 당신 백성과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하신 그리스도의 신비를 교회 안에 현존하게 하고, 그 열매를 풍부히 맺게 한다.

두 가지의 다른 전달 양식

81 “성경은 성령의 감도로 기록되었으므로 하느님의 말씀이다. 곧 주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사도들에게 맡기신 하느님의 말씀은 성전으로 후계자들에게 온전히 전달되는데, 후계자들은 진리의 성령에게서 빛을 받아 자신의 설교로 그 말씀을 충실히 보존하고 해설하며 널리 전파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82 그러므로 계시의 전달과 해석을 위임받은 교회는 “오로지 성경으로만 모든 계시 진리에 대한 확실성에 이르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이유로 이 둘을 똑같이 경건한 애정과 존경으로써 받아들이고 공경해야 한다.”

사도전승과 교회 전승들

83 우리가 여기에서 말하는 ‘성전’(聖傳)은 사도들에게서 유래하는 것으로서, 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모범에서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배운 것을 전달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리스도교의 제1세대에게는 아직 기록된 신약 성경이 없었으며, 신약 성경 자체가 살아 있는 ‘성전’의 과정을 증언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지역 교회에서 생겨난 신학적, 생활 규범적, 전례적 또는 신심에 관한 ‘전승들’은 사도전승과 구별해야 한다. 이러한 전승들은 독특한 양식들을 이루게 되는데, ‘성전’은 다양한 장소와 시대에 따라 적용된 여러 표현들을 이러한 양식 안에 수용한다. 이 전승들은 교회 교도권의 지도 아래 ‘성전’에 비추어 보존되거나 수정되거나 또는 폐기될 수 있다.

III. 신앙의 유산에 대한 해석

전체 교회에 맡겨진 신앙의 유산

84 성전과 성경에 담긴 “신앙의 유산”(depositum fidei)은 사도들을 통하여 전체 교회에 맡겨졌다. “거룩한 하느님 백성 전체는 이 유산에 충실하면서, 목자들과 일치하여 꾸준히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친교를 맺으며, 빵을 떼는 일과 기도에 항구히 전념한다. 그리하여 전해진 신앙을 고수하고, 실행하며 고백하면서 주교들과 신자들이 일치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의 교도권

85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이나 전해지는 하느님의 말씀을 올바로 해석하는 직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한을 행사하는 교회의 살아 있는 교도권에만 맡겨져 있다.” 곧 로마 주교인 베드로의 후계자와 일치를 이루는 주교들에게 맡겨져 있는 것이다.

86 “그렇지만 교도권은 하느님의 말씀 위에 있지 아니하고 하느님의 말씀에 종속되어 봉사한다. 이 권한은 전해진 것만을 가르치며, 하느님의 명령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것을 경건히 듣고 거룩히 보존하고 충실히 해석한다. 그리고 교도권은 하느님에게서 계시되어 믿어야 할 것으로 제시하는 모든 것을 이 유일한 신앙의 유산에서 얻어 낸다.”

87 그리스도께서는 사도들에게 “너희 말을 듣는 이는 내 말을 듣는 사람이다.”(루카 10,16) 하고 말씀하셨다. 신자들은 이 말씀을 명심하여 그들의 목자들이 여러 형태로 주는 가르침과 지도를 온순하게 받아들인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75-87항

가톨릭에서는 성경을 해석하거나 이를 대하는 관점에 있어서 사도로부터 내려온 전승인 '성전(聖傳)'을 중시하고 있다. 성경과 성전은 교회를 떠받치는 동등한 뿌리인 셈. 가톨릭이나 정교회에서는 기록된 성경과 달리, 명확히 기록되지 않은 형태로 교회의 초창기부터 전해 내려오는 가르침과 실천적 관행을 성전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 개인에게 말씀하신다고 가르쳐 성경 구절의 임의 해석을 허용하고 성전의 권위를 부인하는 개신교와 달리, 가톨릭은 성경이 교회의 성전이라는 맥락에서 발생했고, 바로 그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이것이 소위 카더라를 중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가톨릭 교회에서 말하는 '성전'은, 성경을 발생시켰고 성경을 해석해온 고대 교회의 맥락 중, 교회가 오랫동안 신앙으로 받아들여온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당연히 문헌 증거 등이 요구된다. 가령 고대 교회의 어느 문헌에 언급이 되었다 하더라도, 교회가 신앙으로 받아들여온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그냥 '문헌'이지 '성전'까지는 아니다. 가톨릭 교회에서 초대 교회로부터 이어져오는 성전 뿐만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생겨난 각종 생활규범이나 예법 등에도 '전승'이라는 말을 써서 종종 오해를 부르지만, 이러한 자잘한 '전승'들이 사도적 성전과 같은 권위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116] 제도권 가톨릭 신학은 "개별 전통들(traditiones)을 과대평가하여 ‘단 하나의 거룩한 전통(Traditio)'과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117]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다.

또한 가톨릭의 계시론은, 성경에 대한 명제들을 고대 수준에서 박제하여, 앵무새처럼 되풀이하자는 의미도 아니다. 계시에 대한 교회의 이해가 시대적 맥락에 불가분으로 결합된 건 당연히 가톨릭 교회도 인정하며, 따라서 당연히 가톨릭 교회의 성경 이해는 '발전'이 가능하다. 오랫동안 가톨릭이 신앙으로 받아들여온 성전들이, '명제를 고정시켜 박제한다'라는 의미가 아니라, 각각의 시대에 정당한 해석들을 제공하는 일종의 '엔진'이 된다는 것이 가톨릭 교회의 성전 이해이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는 당연하고 정당하게 현대의 비평적 성서주석학을 받아들인다.[118] 더 나아가, 성경에 대한 학술적인 분석에서는 사실 '가톨릭 성서학'이 '비그리스도교 성서학'이나 '개신교 성서학'과 거의 견해 차이가 없다. 단지 현대 성서학의 견해 중 특정한 견해를, 개별 가톨릭 성서학자 차원이 아니라 '가톨릭 교회'의 차원에서 책임질 수 있다는 게 가톨릭 성서학의 독특함이다. 가령 2022년에 원서가 발간된 권위있는 가톨릭 주해서인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The Jerome Biblical Commentary for the Twenty-First Century 머리말에서는, 오늘날 성서학에서 교단간의 차이가 얼마나 미미한지, 그러면서도 왜 지금도 '가톨릭 성서학'이 필요한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현대 성서학에서 눈에 띄는 특징 중 하나는 교회일치적 성격이 짙다는 점이다. 개신교. 정교회, 가톨릭의 간행물은 가톨릭과 개신교의 신학교, 그리고 신학대학에서 성경 교과의 참고 문헌으로 높이 평가된다. 가톨릭과 개신교는 '성서학회(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와 '신약성경학회(Society for New Testament Studies)'처럼 교파적으로 중립적이고 전문적인 학회뿐만 아니라, 명시적으로 '미국가톨릭성서협회(Catholic Biblical Association of America)'라고 고백하는 기관에서도 회원 자격을 공유하고 있다. 개신교와 정교회 학자들은 로마 가톨릭 학자들과 함께 협회에서 공식적인 직위를 맡고, 편집 위원회에서 활동하며, 공식 기관지인 〈계간 가톨릭 성경The Catholic Biblical Quarterly〉에 기사를 기고한다. 이와 같은 현상은 구약성경과 초기 그리스도교의 유다교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기여하는 글을 쓰는 유다인 학자들뿐 아니라, 신약성경 해석 자체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유다인 학자들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가톨릭 성서학의 한 산물로서 이러한 주해 자료를 제공하는 데 여전히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이전 두 판에서 우려했던 바는,[119] 이 선택이 혹여 개신교나 유다교의 성서학에 대한 거부나 의심으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오히려 우리는 가톨릭 안팎의 동료들에게 성경 해석에 대한 가톨릭의 접근법을 특징짓는 고유한 관점들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러한 특성 중 상당 부분이 특히 주류 개신교나 정교회와 공유된다 해도, 가톨릭의 성경 해석은 궁극적으로 가톨릭 신앙 공동체에 책임이 있으며, 가톨릭 전례, 영성, 그리고 교회론의 특징적이고 본질적인 역할에 대한 관심을 반영해야 한다.[120]
즉 성서학에서는 사실 오늘날에 가톨릭과 메인라인(근본주의X) 개신교의 차이는 거의 없는 것에 가깝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 해석의 궁극적 책임은 가톨릭 '교회'에 있다고 가톨릭 신앙은 믿는다. 또한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성전에 대한 견해 차이가 존재하는 것이다. 아주 유명한 예시로 성모 마리아에게 예수 외의 자녀가 있었는지의 해석 차이를 보자. 성서학적 분석("인간 저자가 동시대 독자에게 1차적으로 말하고자 한 문필적 의미는 무엇인가?")으로 말하자면, 성경 그 자체에서는 이를 알 수 없다. 어느 해석이 그나마 더 개연성 있는지 견해 차이는 학자 개개인마다 있지만, 남아있는 단서가 너무 적으니 성경 텍스트만으론 어느쪽으로도 확실하게 확답할 수 없다는 데는 가톨릭 학자이든 개신교 학자이든 동의한다. 하지만 평생동정이라는 성전에 근거하여, 가톨릭 교회는 성모 마리아에게 예수만이 유일한 자녀였다고 확언한다. 물론 이는 성전이 성경을 찍어누른 것이 아니라, 성전으로부터 성경과 모순 없는 해석을 도출한 것이다.

즉 가톨릭은 성경이 그 자체로 하느님의 말씀이며 (신앙과 도덕에 대해) 무오류한 진리를 담고 있다고 여기지만, 해석의 차원에서는 어디까지나 교회전승의 맥락 안에서 그 내용을 이해하라는 것. 교리 중에서도 성경에 명시적으로 언급된 것이 아닌, 교회의 전승(성전)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내용들을 몇 가지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말로써 구전돼 온 전승의 존재를 암시하는 내용이 다음과 같이 성경에도 나와 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 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 (요한 21,25)

나는 여러분을 칭찬합니다. 여러분이 모든 일에서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전한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코린 11,2)

배가 고픈 사람은 집에서 미리 먹어, 여러분의 모임이 심판받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 그 밖의 것은 내가 가서 일러주겠습니다. (1코린 11,34)

그러므로 이제 형제 여러분, 굳건히 서서 우리의 말이나 편지로 배운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 (2테살 2,15)

형제 여러분,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지시합니다. 무질서하게 살아가면서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을 따르지 않는 형제는 누구든지 멀리하십시오. (2테살 3,6)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주어지는 믿음과 사랑으로, 나에게서 들은 건전한 말씀을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2티모 1,13)

한편 개신교는 가톨릭보다는 상대적으로 전통에 대해서 회의적인 관점을 취한다. 다만 가톨릭을 거부한다는 틀만 공통될 뿐, 개신교 역시도 사실은 각 교단의 내부 전통을 중시하며, 스스로의 교단이 성경에 대한 정당한 해석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기실 루터교회이든 장로회이든,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들은 자신들보다 급진적인 교단들에 대항하여, 성경의 해석 전통과 교부들의 권위를 호소한다. 그러나 동시에, 교부들로부터 이어 온 가톨릭 교회의 해석 전통을 흔히 바리사이에 비유하기도 하며 그에 대항해서는 성경의 자증성을 주장한다. 이러한 이중적 입장으로 인해 개신교 신학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딜레마를, 성공회 신학자인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자조적으로 이렇게 평가했다.
성찬에 대한 개혁자들 사이의 심각한 불일치는 관주도적 종교개혁[121]을 항구적으로 두 개의 운동으로 분리시키는 일 이상의 역할을 했다. 그것은 루터가 아주 단순하다고 여겼던 그런 성경구절들의 해석에서도 일치를 이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널리 증명해보였다. 1510년대 말과 1520년대 초에는 낙관적인 성경주석관이 일반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에서도 분명히 나타났다. 그러나 1530년대 말에는 일반 그리스도인이 오직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에 능숙하며, 복잡한 언어학적 이론들에 익숙한 경우에만 성경을 이해할 수 있는 것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프로테스탄트 성경독자들은 성경해석의 수단으로서 어떤 '필터'를 제공받았다. 이러한 '필터'의 한 예로, 루터의 『소요리문답』(Lesser Catechism, 1529)은 독자들에게 성경을 이해하는 한 틀을 제공했다. 그런데 가장 유명한 성경 안내서는 칼빈의 『기독교강요』 ㅡ 특히 1529년의 최종판 ㅡ 였다. 이 책은 처음에 칼빈이 루터의 요리문답을 모델로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1541년도 불어판 서문에서 칼빈은 『기독교강요』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참으로 성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나아가게 하는 열쇠나 입구와 같게 될 것"이라고 진술했다. 달리 말해서 독자들이 칼빈의 "기독교강요"를 성경해석의 수단으로 사용해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쯔빙글리에게 쮜리히 시와 쮜리히 교회는 사실상 하나였고 동체였다. 다음 장에서 살펴볼 것처럼, 이것은 그의 교회론 및 성례론과 관련하여 특별히 중요한 문제였다. 결국 시의회는 신학적이고 종교적인 문제들에 개입할 권리를 갖게 되었다. 쮜리히의 종교개혁은 더 이상 올바른 성경해석에 관한 문제로 구애받지 않게 되었다. 시의회는 사실상으로 그들이 ㅡ 교황이나 공의회가 아닌 시의회가 ㅡ 쮜리히 시민들을 위해 성경을 해석할 권리를 갖고 있다고 선언했으며, 이러한 권리를 행사할 의도가 있음을 알렸다. 성경에는 실로 해석하기 애매한 경우들이 있는데, 시의회가 성경 해석자로 활동할 것을 일방적으로 결정함에 따라 쮜리히 종교개혁의 정치적 성공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었다. 바젤과 베른에서도 쮜리히의 모델에 근거한 비슷한 결정이 내려져 스위스 종교개혁을 강화시켰으며, 1530년대 중엽에 제네바를 정치적으로 안정시킴으로써 간접적으로 칼빈의 종교개혁의 성공을 이끌었다.

초기 개신교 내부의 세력 갈등은 성경해석의 권위가 누구에게 있느냐의 문제와 관련된다는 사실이 명백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권위를 갖고 있다고 인정받은 사람은 누구나 종교개혁의 다양한 갈래들의 이데올로기 ㅡ 곧 사회적, 정치적인 견해 ㅡ 에 사실상으로(de facto) 통제를 받고 있었다. 비슷한 방식으로 교황의 세속적 권위는 로마가톨릭교회에 대한 권위 있는 성경해석자로서의 역할과 결부되어 있었다.

.... 관주도적 종교개혁이 초기에는 각 사람이 성경해석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후에는 사회적, 정치적 결과를 염려하게 되었다. 1525년의 농민반란은 루터를 비롯한 일부 사람들에게 솔직히 개별 신자들(특별히 독일 농민들)은 성경을 해석할 능력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성경의 중요성을 그처럼 강조했다가 나중에 덜 교육받은 멤버들이 동일한 성경을 해석하게 될 것을(달리 말해서 관주도적 종교개혁자들과 다른 해석에 도달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여 성경으로 직행하는 일를 거부했던 것은 루터파 종교개혁의 아이러니의 하나이다. 예를 들면, 뷔르템베르트 공국의 학교규칙은 가장 유능한 학생들에게만 최종 학년에 신약성경을 배우는 일 ㅡ 라틴어나 헬라어로 배워야 했다 ㅡ 을 허락하도록 규정했다. 어쩌면 훨씬 다수였을 나머지 보통 학생들은 그 대신에 루터의 『소요리문답』을 읽도록 규정되었다. 직접적인 성경해석은 사실상 이렇게 소수의 특권을 지닌 집단의 몫이 되었다. 거칠게 표현해서 그것은 성경 해석자로 교황을 지목하는가, 루터나 혹은 칼빈을 지목하는가의 문제가 되었다. '성경의 명료성'의 원칙은 종교개혁 내부의 보다 급진적인 사람들이 성경을 해석했던 용례에 비추어 조용히 무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슷하게 모든 사람이 신실하게 성경을 해석하는 권리와 능력을 갖고 있다는 이념은 결국 오직 급진파들만의 소유가 되었다.
앨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 씀, 최재건 번역, 『종교개혁사상』(Reformation Thoughts: An Introduction) 제3증보판 255-259쪽

개신교의 '성경 이외의 성전은 불필요하고 성경만큼의 권위를 지닐 수도 없지만, 그러나 성경은 그 자체로 성경임을 완전하게 증거하기에 오직 성경만이 유일하게 권위를 지닐 수 있다'는 자증성 주장에 대한 가톨릭(과 정교회) 입장에서의 반박은, 그래서 도대체 성경 어디에 성경만이 교리의 유일한 바탕이 된다고 자증하는 내용이 있느냐?는 것. 역사적으로, (현재엔 외경이나 위경 취급받거나 교부들이 쓴 문헌들도 경전으로서 읽히던) 초세기 이후 AD 4세기 말에 성경 목록을 73권의 정경으로 확정한 건, 틀림없이 AD 1세기의 초대교회 시기부터 주교들과 교부들로부터 전승돼 온 성전으로 인한 보편교회의 권위이지, 성경의 어떠한 책 안에도 '무오류한 진리를 담은 정경 목록은 73권(혹은 66권)이다'라고 기록된 게 아니며 '성경의 각 내용은 성경에 직접적으로 명시된 성경 구절만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쓰여있지도 않다.[122][123]

애초에, 시기적으로 뒤늦게 교회의 결정을 통하여 정경이 된 경전 목록신앙의 유일한 기준이자 척도로 삼는 것은 어떠한 역사적, 객관적인 근거가 없으며 오히려 선후관계를 거꾸로 뒤집기조차 하는, 굉장히 인위적이고 자의적인 믿음으로 본다. 1~2세기부터 작성된 여타 교부 문헌들에도 현재까지 교회에 남아 있는 여러 성사와 관습들의 핵심적인 형태가 교차적으로 남아있는 것은 덤. 결국 자기 자신이 가톨릭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개신교 역시도 가톨릭에 대해, "오직 성경대로 따르지 않고 가르치지도 않는 비성경적인 가톨릭"이라 비방하며 스스로를 대비시키듯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한다기보단, 실상을 따져보면 기존의 가시적인 보편교회를 대체하는 개신교 신학자들의 권위를 새로이 내세우고 거룩한 전통(성전)을 대신해, (성경 어디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없는) 스스로가 만들어 낸 '개혁의 전통'을 통하여 성경 외부의 관점을 사용해 성경을 해석하게 되었을 뿐이라는 것.

또한 여기서 오해하면 안되는 중요한 사실은, 가톨릭의 성경과 성전에 대한 관계에서, "교리의 '일부는' 성경에 있고 '일부는' 성전에 있다"고 가톨릭이 교의적으로 확정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해석해도 가톨릭 교리와 충돌하는 건 아니고 또한 매우 인기 있는 해석이지만, 트리엔트 공의회는 "이 진리와 규범이, 기록된 책들'뿐만 아니라' ... 전승들 안'에도' 보존되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트리엔트 공의회 첫째 시기 제1교령)고 했을 뿐이다. 따라서 "가톨릭 교리의 모든 요소가 어떠한 방식으로든 간에 성경 안에 들어 있다"고 하더라도 가톨릭 교리와 모순되지는 않는다.
Sola scriptura[124]라는 원리는 궁극적으로 자기를 지양하는 공리이다. 적어도 그것이 무분별하게 이해될 때에는 그런 것이다. 이것은 Sola scriptura라는 종교개혁의 가르침이 성서의 소위 축자영감론(Verbalinspiration)의 구상과 내적이고 필연적으로 결합되었기 때문에 역사실증적으로 부당하며, 오늘날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에서도 이제는 가르치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서도 미루어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성서가 역사적이고 매우 분화된 모습으로서의 생성에서, 즉 독립해서 그것만으로, 말하자면 하느님께서 직접 초래한 산물처럼 이해되는 한에서 사람은 성서에 교회의 생활한 증언에 전혀 의존하지 않는 그런 권위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그러한 성서의 절대적인 축차영감설의 원리를 실제로 포기하지 않은 채, 또한 당시의 종교개혁 시대의 의미에서 Sola scriptura라는 원리를 견지할 수는 없다. 그것은 자기 모순에 빠지든가, 또는 결국은 오직 Sola scriptura가 아니라 둘째 것, 즉 인간의 불가피하고 실존적인 영의 체험을 유일한 신앙의 원리로 삼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사람은 이미 성서에서, 즉 구체적인 책들에서 참 성서(하느님 말씀)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원리, 즉 고작 성서 형성의 동기를 부여하는 원리, 궁극적으로 성서를 형성하는 원리라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런데 성서 그 자체가 성서를 증언한 교회 내의 존재라는 것을 전제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즉 성서에 쓰여진 것은 원래 모두 사도들의 선교이며 그밖에는 다른 어떠한 전통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의미에서 Sola scriptura라는 원리를 지지할 수 있다. 가톨릭 그리스도인에게도 전통과 교도직의 이해는 오직 성서 안에서만 그 내용을 이해할 원천과, "다른 것에서 규범을 받지 않는 규범"을 가진다. 적어도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의 시대에서는 성서에서 이야기되지 않아도 사도시대부터 전해진 특정한 신앙 내용을 중개하는 그러한 전통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신학자도 많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이것은 가톨릭의 교도직이 구속력을 가지고 가르치는 바가 아니며, 이에 관해서 이론(異論)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러한 생각을 한다고 해도 아직도 그러한 전통이 성서를 규범으로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 그러므로 가톨릭이기 위해 Sola scriptura라는 원리에 이론(異論)을 주창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것은 가톨릭의 교의학에서 말해도 인정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인정해야 할 원리인 것이다.
- 카를 라너(Karl Rahner). 『그리스도교 신앙 입문』(Grundkurs des Glaubens) 469-473쪽[125]

한편 교리 차이는 아니지만, 성서학에 대한 현장 사목 환경에서의 분위기 차이도 존재한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성서학에 있어서는 오늘날 가톨릭 성서학자와 개신교 성서학자간에 딱히 차이랄 것은 없다. 흔히 한국 개신교가 근본주의라 하지만, 예장통합 쯤 되면 신학교에서 비평적 성서학을 교육한다.[126] 그러나 개신교 특성상 안수 받고 자립한 목사는 신학교와 남남이며, 교리적 이단 시비가 걸린 게 아니라면 일선 목사가 누구 눈치를 볼 일은 없다. 따라서 "진화론은 창세기와 모순이다" 같은 매우 보수적인 현장 사목이 발생하는 것이다. 반면 가톨릭의 경우, 사제 서품 받은 후에도, 교도권을 매개로 대학 신학자들과 일선 사목자들이 강하게 연결된다. 때문에 비평적 성서학을 수용한 현장 사목 환경이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현장 사목이 신학교보다는 보수적이긴 하지만, "진화론은 창세기와 모순되지 않는다" 같은 관점은 일선 사목자들과 가톨릭 평신도들에게도 상식적으로 이미 받아들여져있다.
  • 성경의 권수 역시 다르다.
가톨릭은 구약 46권과 신약 27권을 합쳐서 73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는데 반해, 개신교는 구약 중 39권만을 정경으로 인정하면서 총 66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다. 차이가 나는 7권의 경전은 가톨릭에서는 '제2경전으로 그냥 동등한 정경으로 보지만 개신교에서는 '외경'이라고 호칭하여 정경에서 분리하고 있다. 현대의 개신교에서 외경을 아예 위경이나 금서로 치부하는 목사도 있고, 신학적인 가치가 있다는 목사도 있다.[127] 가톨릭과 개신교가 공통으로 인정하는 정경은 66권이다.[참고] 권수가 다른 이유에 대한 더 자세한 것은 성경 문헌 참고.
  • 기타 차이점
성경과 교회관을 빼면 나머진 전승의 수용여부나 여러 형식에서 차이를 보인다. 먼저 전구의 유무이다. 개신교는 성공회를 제외하고는 성인을 일체 인정하지 않고[129], 성모 마리아가 이 땅에서 천수를 누리고 죽었다고 여기는 반면, 가톨릭에서는 성전을 바탕으로 교황무류성을 통해 성모몽소승천을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으며 마리아가 일생을 보낸 후 죽음의 시기에[130] 에녹엘리야처럼 승천을 했다고 믿기 때문에 개신교와 가톨릭간의 마찰이 빚어진다. 정교회의 경우 전승으로 인정하는데, 이를 명확히 설명하는 교리가 없다.[131] 비칼케돈파나 네스토리우스교는 역사적 증거가 없기에 성모몽소승천을 부정한다.

개신교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과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성모승천이 외경을 찾아봐도 존재하지 않는다며 성모몽소승천을 부정하는 한편, 가톨릭에서는 초기 교회 시기부터 내려오는 성전을 바탕으로 성모 마리아가 죽을 때에 동정녀로써 승천하였다고 선포하였다. 5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서로 간의 교리적 차이가 너무나도 뚜렷해진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교' 자체가 아직 없었던 시절의 고대인들은 선하게 살았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세례받지 못한 유아나 의로운 고대인들이 가는 '고성소'가 있다고도 했었으며, 단테신곡에서도 고성소가 언급된다. 이 고성소라는 공간은 지옥은 아니지만 천국도 아니며, 참된 기쁨인 '지복직관(하느님을 직관적으로 알게 되는 것)'을 누리지는 못하지만 그 나름의 평화와 안정을 얻는 장소이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는 교황 첼레스티노 5세가 '고귀한 자리를 함부로 버린', 즉 자진 퇴위한 죄로 고성소에 들어가 있다(그런데 현실에선 훗날에 첼레스티노 5세를 성인으로 시성했다. 축일은 5월 19일).

하지만 고성소 자체가 신학적 가설일 뿐 가톨릭 기준으로도 '믿어야만 하는 교리'는 아니다. 이런 주장을 하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는 고성소가 아예 언급되지 않았다. 기존에 고성소에 갔으리라 말하던 영혼이 실은 모두 천국에 있으리란 것. 교황청 신앙교리성 산하 자문기구인 국제신학위원회는 무죄한 아기들을 천국에서 제외시키는 것은 "보잘것없는 이들"에게 대한 그리스도의 특별한 사랑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림보 개념에 대해 "지나치게 제한된 구원관"을 반영하는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렸다. 고성소에 대한 논란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교황이나 교황청 등이 공식적으로 선포하지 않는 한 가톨릭 신자들은 개인적으로 고성소를 믿든 믿지 않든 아무 지장이 없다. 믿지 않아도 이단이 아니라는 뜻이다.

개신교에서는 구원의 철회, 탈락 문제가 만년 신학 논쟁 대상인데, 가톨릭에서는 논의의 가치도 없이 이미 깔끔하게 정리된 주제다. 세례를 받고 사함을 받았어도 대죄를 짓고 고해성사를 보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 외 '연옥의 존재 여부'와 '성모 마리아의 위상'에 대한 오해가 있다. 연옥은 가톨릭 교리에서 인정하는 것으로 지옥에 떨어질 정도의 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으나 천국에 들어가기에는 모자라는 사람을 위한 장소로, 일종의 속죄의 장소이자 천국으로 가기 위한 이전단계 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즉 대죄를 짓게 되면 지옥으로 가는 직행열차를 타지만, 대죄를 인지하지 못하게 짓거나 자잘한 소죄만을 지은 경우 바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연옥에서 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며 정화의 단계를 거치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만이 사후에 존재한다고 가정했을 시, 죄를 지은 순서로 사람을 1열로 세우게 되면, 어느 선에서 천국행과 지옥행이 갈라져서 아깝게 지옥에 가는 사람과 석연치 않게 천국에 가는 사람이 발생하게 되는데, 연옥은 이러한 비합리를 해소하게 해준다.

죄를 지은 가톨릭 신자들이 고해성사를 하고 진심으로 참회하게 되면, 죄의 용서는 받으나 죄에 대한 대가는 남아있게 되는데 이를 잠벌이라 한다. 만일 살아서 이 벌을 다 갚지 않으면, 즉 기도와 선행 등으로 보속하지 않으면 남은 벌은 연옥에서 갚게 되는 것이다. 이 잠벌의 용서는 주교교황이 조건부로 주는 대사를 받으면 가능하되, 이를 연옥에 있는 영혼에게 양도 가능하다. 죽은 신자가 연옥에서는 더 이상 선행이 불가능하므로 오로지 은총으로만 영혼이 정화되는데, 살아있는 신자들의 대사 양도가 필수적이다. 이렇게 연옥에 머무르는 영혼은 자신의 기도와 천국에 소속된 이들의 기도, 그리고 이승에 속한 이들의 기도로 천국에 더 빨리 갈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연옥은 위의 고성소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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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에서 성모 마리아는 가톨릭 신자들에게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절대 예배와 숭배의 대상이 아니다. 당장 성모송의 끝구절부터가 "저희를 구원하소서"가 아닌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이다. 간혹 개신교 신자들이 가톨릭에서는 '반드시' 성모 마리아의 중재를 거쳐서만 기도할 수 있는 것처럼 오해하지만, 모든 가톨릭 신자들은 하느님에게 직접 기도한다.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신자들은 정확히 말하면 성모 마리아와 '함께' 성모 마리아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의 주님이신 하느님에게 기도한다라고 하지만. 사도신경의 구절 중 하나인 "모든 성인의 통공을 믿으며"에서 알 수 있듯, 가톨릭 신자들은 천국에 소속된 이들이 우리를 위해 하느님에게 간구할 수 있고 그로 인해 자신들이 도움을 받는다고 믿는다. 따라서 성모 마리아 뿐 아니라 천사나 성인들의 이름이 들어가는 기도 또한 다양하게 존재한다. 단 그들에게 전구를 요청하는 것이지 절대로 그들에게 구원을 해달라거나 자비를 베풀어달라는 기도는 할 수 없다.

그러나 하느님이나 예수의 이름이 들어가는 기도와는 달리, 자신들을 위해 하느님에게 빌어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가톨릭 신자들에게 성모 마리아성인은 신앙의 모범이고 공경의 대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132] 공경의 근거도 어디까지나 그들이 하느님에게 충실한 사람들로서 하느님의 은총을 받았음에 있다.

하지만, 개신교에서는 이런 성모 마리아, 성인의 개념은 물론 그들에게 자신들을 위해 하느님에게 빌어달라는 뜻인 전구 또한 인정하지 않는다. 전구가 없는 개신교의 기도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는 뜻을 가진 문장으로 마치는것 만이 인정된다. 개신교에서는 전구 대신 서로를 위한 기도로서 중보기도가 있으나 중보자는 오직 예수님뿐이므로 중보기도라는 명칭은 비성경적이라는 논란이 있어 대신 도고기도, 청원기도 또는 이웃을 위한 기도 라는 명칭을 제시하기도 한다.

또한 세부적인 사항으로 들어가면, 가톨릭과 정교회미사, 기도, 또는 마음을 다잡거나 어떤 일을 하기 전에 성호경과 함께 십자성호를 긋지만, 개신교에서는 하지 않는다. 가톨릭과 정교회의 성호 긋는 순서와 의미는 조금 다른데, 자세한 건 성호 문서를 참조. 그 외 가톨릭의 성당은 성상이 존재하며, 일반적인 십자가뿐만이 아니라 예수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형태의 십자고상을 사용하는데, 개신교의 경우는 성공회루터교회 정도를 제외하면[133] 예수가 없는 십자가만 사용한다.

가톨릭에는 7성사, 즉 세례성사, 견진성사, 성체성사, 고해성사, 병자성사, 성품성사, 혼인성사가 존재한다. 반면 개신교세례성만찬 외의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머지는 성사적 예식으로 그 흔적이 남아있다. 성품성사는 가톨릭 사제로 임명하는 의식이며 고해성사는 신자가 자신의 죄를 사제에게 고백하는 의식이다. 성체성사는 미사라고도 불리며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 구원을 위해 당신 자신을 십자가의 희생 제물로 바친 것을 기념하고 재현하는 제사이다. 미사의 후반부에 성체를 신자들에게 나눠주지만 성체를 신자들이 함부로 다루는 것을 금하고 있다. 또한 죄를 짓고 고해성사를 하지 않은 신자, 신자가 아닌 자에게는 성체를 주지 않도록 되어 있다. 이것은 개신교의 예배에서는 성찬이라는 형태로 존재하며 특별히 행해야 하는 날짜가 정해지진 않았다. 그리고 만인제사장을 인정하는 이유로 사제에게 죄를 고백하는 고해성사는 없다.
가톨릭 개신교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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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권 66권
믿음과 선행 후술 후술
성모 마리아 하느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 평생동정, 무염시태(원죄없음), 성모승천 하느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만 인정[134]
성직자 주교(독신), 신부(독신), 부제 (남성만 가능) 성공회루터회에만 있음[135]
수도자 수사/수녀(독신) 성공회루터회에만 있음
십자성호 있음 성공회루터회에만 있음[136]
묵주 있음 성공회루터회에만 있음[137]
성상 있음 성공회루터회[138]에만 있음
십자고상 사용 성공회루터회[139]를 제외하고는 십자가 틀만 사용하거나, 십자가 또한 인정하지 않기도 한다.
성사 7성사 모두 인정 세례성만찬[140]만을 인정
고해성사 있음 성공회루터회[141]에만 있음
교단/종파 단일[142] 다양하게 존재[143]
  • 목사가 혼인이 가능한 것에 대해 개신교에서 말하는 만인제사장설에 따르면, 목사는 성직자가 아닌 평신도 목회자이기 때문이다. 정확히 하자면 성직자와 평신도의 영적인 구분을 부정한다. 즉 삼위일체 하느님을 믿는 모든 신자는 사제라는 말로서, 각자 맡은 직무만이 다를 뿐이라는 교리다. 가톨릭에서도 비슷한 개념의 '평신도 사도직'이 존재한다. 하지만 목사와는 다르다.
  • 혼인성사는 성례(개신교에서 성사를 일컫는 말)로 인정받지 못한다. 교회에서 결혼 안 한 사람은 혼인한 게 아니냐는 문제가 있기 때문. 교회에서 결혼예배를 드린다고 다 성례가 아니라, 교회의 표지로 교회에서만 할 수 있는 행사라야 성례로 본다.
  • 장로회 중 보수적인 교단[144]이나 침례회[145]에서는 원칙적으로는 십자가를 교회 밖에서만 예배당의 표지로 쓰고, 교회당 내에서 사용하는 것은 우상숭배로 간주한다. 다만 장로회 중에서도 에큐메니컬 성향의 교단[146]에서는 교회당 내에서도 십자가를 쓴다. 물론 감리회나 그 영향을 받은 교단[147]에서는 십자가를 사용한다. 교파마다 다르다.
  • 테오토코스하느님의 어머니라는 뜻이다. 물론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보다 높다거나 하느님 이전에 존재한다는 뜻이 아니고, 하느님을 낳는 은총을 누린 여인이라는 뉘앙스다. 대다수 그리스도교 신앙에 의하면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면서 또한 하느님이다. 마리아가 예수의 인성만을, 혹은 육체만을 낳은 것이라는 주장은 이단이 된다. 성자가 마리아에게서 인간의 육체를 취했다는 것은 맞으나, 그 결과로 마리아가 낳은 것은 단순한 인간이 아닌 인성과 신성이 겸비된 성자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하나의 실체이므로, 인간만을 낳았다는 말은 잘못된 주장이다. 이런 교리가 정식화된 것은 초창기의 네스토리우스파 이단과 관련이 있다. 근데 가끔 칼케돈 신조를 인정한다면서 테오토코스에 회의적인 개신교 신자도 눈에 띈다.[148]
  • 한편 주된 교리의 차이와는 별도로,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진 차이점으로 , 담배 등에 대한 허용이 있다. 개신교에서는 교파마다 교리가 다양해서 술담배 등에 대한 입장도 다양하지만 한국의 개신교에선 음주 및 흡연을 기본적으로 자제할 것을 권장한다. 음주의 경우 (에페 5:18)[149]을 근거로 한다. 흡연은 아메리카 대륙의 발견 이후에 생긴 것이기 때문에 성경 어디에도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하지만, (1고린 3:16~17)[150]을 들어,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주술의식에 사용하던 행위를 할 수 있겠냐는 입장이다.[151] 혹은 같은 구절을 두고 자신의 몸을 헤치는 것을 알면서도 그 행위를 행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래서 목사 등 목회자들은 물론이고 보수적인 신자들은 담배를 하는 경우 그 사실을 숨기려고 노력한다. 물론 개신교 신자 중에서도 음주 흡연자가 꽤 많고, 장로회의 창시자인 종교개혁가 장 칼뱅은 지독한 골초였으며 포도주를 즐기는 편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반면 가톨릭에서는 , 담배에 비교적 관대해서 성직자들도 지나치지만 않으면[152] 이나 담배를 즐기는 경우가 많다. 소설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에서 돈 까밀로 신부가 시가포도주를 즐길 수 있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8.4. 의화에 관하여

이 부분은 상당히 길고 난해한 주제이므로 따로 서술한다.

개신교와 갈라진 교리적 원인 중의 하나로 신앙과 선행의 관계에 대한 차이가 있다. 개신교이신칭의(칭의론)라고 해서, 오직 은총과 믿음으로써 '의롭다'고 칭함받을 수 있다고 하며 이를 '칭의'라고 한다. 반면 가톨릭은 은총과 믿음으로써 '의로워진다'고 주장하며 이를 '의화'라고 부른다. 단순히 칭함받는 게 아니라 실제로 의로워지는 것[153]이기 때문에 은총을 보존하려는 개인적인 노력인 뒤따르는 선행,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라 5,6)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이다. 가톨릭의 4대교리 중 하나가 바로 '상선벌악'. 개신교에서의 선행의 의미는 '구원받은 자로서 행해야 하는 의무' 혹은 '구원받은 자에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행위'에 가깝다. 유교식 표현으로는 '극기복례'를 일부 말하는 셈.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개신교에서는 몸(행위)과 마음(믿음)을 분리된 것으로 여기는 것에 반해 가톨릭은 선행을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으로 보기 때문이다. 선한 행위를 믿음과 이분법적으로 딱딱 분리하지 않는 이유는 가톨릭 교회가 개신교 주류 중 하나인 칼뱅파와는 달리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데 인간의 자유의지를 어느 정도 긍정하기 때문이다.[154] 인간이 본인의 의지로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언제든지 그 자유의지로 은총에서 멀어질 수 있는 것이고 본인의 참된 믿음을 증명하는 것에는 계명을 지키고 사랑을 실천하는 등의 '실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를 인간의 공덕 그 자체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펠라기우스주의(행위구원)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우선 하느님이 내려주는 은총이야말로 구원에서 가장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은 가톨릭 교회의 핵심적인 가르침이다. 어떻게 보면 감리회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의 신학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155]

그러므로 보수 개신교 신학자 특히 칼뱅파 복음주의자들이 가톨릭 의화교리를 세미펠라기우스주의라고 까는 것도 가톨릭 신학 측면에선 상당히 억울한 것이 가톨릭 구원관 역시 구원은 무조건 하느님 은총으로만 가능하다고 되어 있기 때문이며 다만 그 은총을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는다거나 선행에 소홀하고 악에 빠져 살다가 잃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 뿐이다. 다시 설명하면 의화는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으로 100% 이루어지지만 사랑으로 행하는 믿음인 선한 행위가 그 의를 잃지 않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 뿐이다. 애초에 교회론과 성사론 등이 달라서 구원관의 타협이란 불가능하긴 한데 그렇다고 세미펠라기우스주의라고 까는 건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모욕이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펠라기우스 본인을 이단이라 정죄한 게 보편교회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개신교에서 칭의-성화-영화라고 해서 구원의 3단계를 이야기하는 것을 가지고 첫 걸음을 떼기위한 '칭의'를 강조하는 것을 가지고 믿음으로 모든 죄를 사해진다는 면벌부가 아니냐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데,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개신교든 천주교든 믿음으로 의롭게 된 인간은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예가 자캐오(삭개오). 그는 회개한 이후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남의 것을 빼앗은 것은 4배로 갚겠다고 이야기하였다. 즉 의롭다 칭함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애초에 자신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므로 면죄부 따위를 구입할 필요가 없는 사람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자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잘못을 통회하게 되는데, 통회란 스스로의 잘못을 아파하는 것이다. 이 통회를 단지 성당이나 교회에 나와서 "할렐루야~ 나의 죄를 사하소서~"라고 했으니 앞으로 반성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엉터리다. 결국 따지고 보면 믿음으로 의로워지고 구원 받는다는 기본 교리는 똑같고 사소한 표현과 관점의 차이인데, 개신교 일각에서는 가톨릭이 행위구원론을 주장한다며 끊임없이 왜곡된 음해와 비방을 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156]

1999년, 가톨릭과 루터교회가 "의화(칭의)는[157] 오로지 하느님의 은총이며 이를 믿고 받아들임으로써 구원을 받을 수 있지만, 이것의 실현을 위해 믿음의 징표인 선행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구원관에 합의하는 공동선언문을 발표하였으며, 2006년 감리회가 이 공동선언에 동참함으로써 이 문제에 관해서는 외형적으로나마 점차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화해와 일치의 물꼬가 트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매우 지엽적인 사건.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루터회 전체와의 합의가 아니다. 루터회 세계 연맹과만 합의가 이루어 졌고 이에 속하지 않은 미주리 시노드 등은 당연히 서명 안했다. 외려 모든 감리회가 소속된 WMC가 합의했다는 점에서 감리회 전체와 합의가 이루어진 셈.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와 관련하여 말을 한 적이 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이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루카 복음 22:37~40, 공동번역성서)" 즉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게 둘 다 중요하다는 것.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을 어기는 것이니까.

결국 가톨릭이 '행위 구원론'을 민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간단히 말해,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서 구원은 오직 은총만으로 이루어지며, 인간의 응답이라는 관점에서는 오직 믿음만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개신교도 공유하는 가르침이다.

2006 일반적으로, ‘공로’(meritum)라는 말은 공동체나 사회가 그 구성원의 행실에 대해 마땅히 주는 보상을 가리킨다. 그것이 선행일 때는 상이 주어지고, 악행일 때는 벌이 주어진다. 공로는 정의의 덕과 관계되며 정의의 원리인 공평에 상응하는 것이다.

2007 엄밀히 말해서, 하느님 앞에서 공로를 내세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모든 것을 우리의 창조주께 받았기 때문에, 그분과 우리 사이의 차이는 이루 헤아릴 길이 없다.

2008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공로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 은총에 협력하도록 자유로이 안배하셨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하느님의 어버이다운 활동은 인간을 감도하심으로써 시작되며, 반면에 협력을 통한 인간의 자유로운 행실은 그 뒤를 잇는 것이다. 따라서 선행의 공로는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의 은총으로 돌려야 하고, 그다음으로 신앙인에게 돌려야 한다. 실제로 인간의 공로 자체도 당연히 하느님께 돌려 드려야 하는데, 인간의 선행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주도와 도움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인간공로를 이해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앞에서 언급했듯이 하느님 앞에 인간공로가 불가능한 영역과, 피조물의 공로는 유비적인 의미에서 공로라 칭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인간이 하느님 앞에 공로를 얻을 수 있는 근거는 인간이 하느님의 모상이며, 성화은총에 의하여 인간이 동등하지 못한 수준에서 유비적으로나마 하느님의 진정한 상대자라는 점에 있다. 물론 상대자가 된 것은 인간의 독립된 지위 때문이 아니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의해서이다. 이로써 공로의 교리는 구속된 인간의 본질적인 가치를 긍정하는 셈이며 인간이 하느님의 도움으로 자신의 존재를 완성시킬 수 있음을 의미한다.
-가톨릭 대사전, '공로' 문서
사실 의화는 오로지 은총만에 의하여 이루어지되 인간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으며, 오로지 신앙만이 의화시키나 진정한 신앙에는 선행이 없지 않다. 의화는 유일회적(唯一回的) 사건이면서도 일생에 걸친 과정이다 하느님 앞에서 인간은 아무 것도 내세울 수 없으나 성서는 공로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다.
-가톨릭 대사전, '의화' 문서
은총은 선물이니만큼 어떤 강요도 없이 받아들여져야 한다. 따라서 은총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상대방으로 삼으신 인간의 반응과 관게없는 하느님의 일방적인 행위로 볼 수 없다. 다시 말해서 은총에는 증여의 성격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즉 은총은 당사자의 일방이 자기 재산을 무상으로 상대분에게 줄 의사를 표시하고 또한 상대방이 이를 수락함으로써 성립하는 계약이라고 할 수 있다. 요약해서 말하면 은총 문제에 있어서는 그 차원과 성격은 다를지라도 하느님의 입장과 동시에 인간의 입장도 고려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계시되신 하느님은 ‘우리를 위한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가톨릭 대사전, '은총론' 문서
예를 들어 장애인용 의자에 앉아 있는 환자는 자기 힘만으로 돌아다닐 수 없다. 그러나 그 환자 곁에 있는 다른 어떤 사람이 그의 의자를 밀어주면서 자발적으로 그를 도와준다면 그것은 가능하다. 이 경우 환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으로써는 일으킬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 자신이 운반되는 것에 동의하는 일이다. 이것이 다름 아닌 은총 질서 속에서 인간이 일으킬 수 있는 원인이다. 즉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사랑할 수 있도록 자신을 내어놓거나 거부하는 것이다. 이 표현에서 드러나는 수동형 동사(dejarse amar: 자신을 내어놓는 것)는 구원 질서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역할을 보여주는 데 있어 능동적인 표현보다 훨씬 더 적절하다. 왜냐하면 이 수동형은 구원 질서 안에서 인간의 자유가 순전히 '수용적'(受容的)이라는 점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자유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느냐 받아들이지 않느냐의 차원에서 행동하는 것이지 무엇을 생산하기 위한 차원에서 행동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호세 안토니오 사예스, 《은총론》, 윤주현 옮김 (화성: 수원가톨릭대학교 출판부, 2011), 283쪽[158]

엄밀한 의미에서는 가톨릭 신학은 하느님 앞에서의 인간 공로를 부정한다. 하느님 앞에서 인간 공로가 가능하다고 가톨릭이 말할 때는, 유비적(類比的, analogous) 의미에서 공로라고 불리는 것이지 일의적(一義的, univocal) 의미에서의 공로가 아니다. 물론 다의적(多義的, equivocal) 의미에서의 공로도 아니다.[159] 비유하자면, 아버지가 자식에게 증여를 할 의사를 표하고 자식이 이를 수용했다면, 그 증여의 공로는 아버지에게 돌려야 한다. 그러나 아버지가 의사를 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식이 이를 거절했다면, 증여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자식 탓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의화된다면 하느님 덕분이고, 어떤 사람이 의화되지 않는다면 그 사람 탓이다. 따라서 인간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하느님 앞에서 공로를 내세울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가톨릭적 관점에서 볼 때 오직 은총으로 인간은 의화한다. 또한 자식이 아버지의 증여 의사에 동의하여 증여가 이루어진다는 의미에서, 오직 믿음으로 의화한다고도 가톨릭은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선행 역시도 강조하는 이유는, 야고보서에 '행함(실천)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나와있듯이 진정한 신앙에는 선행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진정한 신앙에 있다는 그 선행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갈라티아서 5장 6절은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라고 서술한다. 후술할 트렌토 공의회 문헌에서 보듯, "선행은 얻은 의화의 열매와 표징에 지나지 않으며 의화의 증대 요인도 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서술이다. 또한 역시 트렌토 공의회 문헌에서 보듯, "예수 그리스도 바로 당신께서" "의화한 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당신의 능력을 주입해주시"며 "그분의 능력은 그들의 선행을 이끌고 동반하며 또한 뒤따르는데, 그 능력 없이 선행만으로는 결코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거나 가치 있는 것이 될 수 없다." 그렇기에 오직 은총으로 의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은총'이 의화시키는 것과 '선행이 의화의 증대 요인'이라는 것이 모두 가톨릭의 가르침인 것이다.

어찌되었든 가톨릭 교회에서는 개인이 착한 일만을 해서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세례성사를 통해 '오직 은총'과 '오직 믿음'으로 의화된다고 가르치며,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인 선행도 중요시하는 것이다.[160]

끝으로, 트렌토 공의회(=트리엔트 공의회) 6차 회기에서 의화에 관하여 선언한 것들 중 일부를 서술하겠다. 이는 해당 공의회가 개신교 신학자들을 의식하였고, 이들에게 가톨릭의 교의를 분명히 하는 것을 목적 중 하나로 하였기 때문이다.
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와 통교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의인이 될 수 없긴 하지만, 죄인의 의화는 지극히 거룩한 그 수난 공로로 의화하는 자들의 마음에[161] 성령께서 작용하심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이 확산되고 그들 안에 자리 잡을 때 실현된다. 그 결과로, 의화과정에서 인간은 죄의 용서와 더불어 자신이 가지처럼 붙어 있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의 용서에 천부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모든 선물을 받는다. 즉 믿음, 희망, 사랑이 그것이다. 희망과 사랑이 없는 믿음으로는 인간은 그리스도와 완전한 일치를 이루지 못할 뿐 아니라 그분 신비체의 살아 있는 구성원도 될 수 없다. 이런 연유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요, 무용이라고[162] 말하는 것과 그리스도 안에서 할례를 받고 안 받고는 의미가 없으며 오직 "사랑으로 표현되는 믿음만이 중요하다"라고[163] 말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옳다.
제6차 회기 의화에 관한 교령. 제7장 죄인의 의화가 무엇이며, 그 원인들은 무엇인가
인간은 믿음을 통해서[164] 그리고 무상으로[165] 의화한다고 사도(바오로)가 말하였는데, 이 말은 가톨릭교회가 옹호하며 표명해온 항구하고 일치된 견해로 이해되어야 한다. 즉 우리는 믿음으로 의화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은 인간 구원의 시작이요, 온갖 의화의 기본이며 뿌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믿음 없이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없기 때문이고",[166] 그분의 자녀로서 그분과 친교를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167] 또한 우리는 무상으로 의화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의화에 앞서 그 어떤 것도, 믿음이나 행업도 이 의화 은총을 얻는 전제 조건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의화가 은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그것은 진정 공로로 얻어지는게 아니며, (앞서 언급한 사도의 말대로) 만일 무슨 공로가 있어서 의화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더는 은총이 아니다."[168]
같은 교령. 제8장 믿음을 통하여 무상으로 주어지는 죄인의 의화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베풀어진 하느님의 자비 없이는 죄가 용서되지 않고 용서된 적도 없다는 믿음은 필요한 것이다.
같은 교령. 제9장 이단자들의 헛된 믿음을 거슬러
이제, 받은 은총을 지속적으로 간직했든, 잃었던 은총을 다시 회복했든, 이처럼 의화한 자들에게 사도(바오로)의 다음과 같은 말이 제시되어야 한다. "언제든지 주님의 일을 열심히 하십시오. 주님을 위해서 하는 노력은 결코 헛되지 않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169] "하느님은 불의한 분이 아니시므로 여러분이 보여준 선행과 사랑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170] 그리고 "여러분은 신념을 버리지 마십시오. 그 신념에는 큰 상이 붙어 있습니다."[171] 그러므로 끝까지 선하게 행동하는 사람들과[172]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공덕으로 하느님의 자녀에게 자비롭게 약속된 은총인, 또한 하느님 바로 당신께서 하신 약속에 따라 그들의 선행과 공로에 신실하게 부여해야 할 상급인 영원한 생명이 주어져야 한다. 실로 이것은 사도(바오로)가 자신의 투쟁과 달음질 이후에 자신에게 예정되어 있고, 정의의 심판관에 의해 자신에게 수여될 것이며, 자신뿐만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는 모든 이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말하였던 바로 그 정의의 월계관을 의미한다.[173] 예수 그리스도 바로 당신께서 지체들의 머리로서, 그리고 가지들을 위한 포도나무로서[174] 의화한 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당신의 능력을 주입해주신다. 그분의 능력은 그들의 선행을 이끌고 동반하며 또한 뒤따르는데, 그 능력 없이 선행만으로는 결코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거나 가치 있는 것이 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의화한 자들이 삶의 처지에 따라서,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한 일들을[175] 통하여, 하느님의 법을 충만하게 만족시키고, 때가 오면 (그들의 은총 지위의 상태에서 죽는다는 조건으로[176]) 영원한 생명을 얻을 자격을 갖추는 데 그들에게 더 이상 부족함이 없다는 것을 믿어야한다. 실로 우리 구세주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샘물처럼 솟아올라 영원히 살게 할 것이다."[177]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의로움은 마치 우리에게서 나온 것처럼 세워지는 것이 아니며, 하느님의 의로움을 무시하거나 거부하지도 않는다.[178] 우리 안에 머물면서 우리를 의화하기 때문에 우리의 것이라고 하는 그 의로움은 바로 하느님의 의로움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공로에 힘입어 그 의로움이 우리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아울러 비록 성경에서(보잘것없는 당신 제자들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사람은 상급을 못 받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시고 또한 사도가 "우리는 지금 잠시 동안 가벼운 고난을 겪고 있지만 그것은 한량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가져다줄 것입니다"라고[179] 증언하실 정도로[180]) 인간의 선행에 비중을 상당히 많이 부여하고 있다고 해서, 당신의 은총이 인간들의 공로가 되기를 바라실 정도로 모든 인간에게 그토록 좋으신 분이신[181] 주님을 믿고 그분께 영광을 드리는 대신에 자기 자신을 신뢰하거나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는 일을 그 어느 그리스도인도 해서는 결코 안 된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182] 그리고 "우리는 실수하는 일이 많기"[183] 때문에, 우리 각자는 자비와 선만큼 엄격함과 심판도 눈앞에 두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양심에 거리끼는 일이 조금도 없을지라도 자기 스스로 자신을 심판해서는 안 된다.[184] 인간들의 전 인생은 인간의 판단에 따라 측정되고 심판되어서는 안 되고, 하느님의 판단에 따라서 행해져야 한다. "그분은 어둠 속에 숨겨진 것을 밝히실 것이며 마음속의 생각들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러면 그때에 하느님으로부터 각자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185] 하느님은 성경에 쓰인 대로, "각자에게 행실대로 갚아주실"[186] 분이시다.
이러한 의화에 관한 가톨릭의 가르침에 이어서(이 가르침을 각자가 성실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는 의화할 수 없을 것이다.)[187] 본 거룩한 공의화는 다음과 같은 조항들을 첨부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정하였다. 그리하여 모두가 마음에 간직하고 따라야 할 사항들뿐만 아니라, 피하고 멀리해야 할 사항들도 알게 하기 위함이다.
같은 교령. 제16장 의화의 열매, 곧 선행의 공로와 그 공로의 성격
1. 만일 누가 인간이 예수 그리스도의 중개로 주어진 하느님의 은총 없이 인간 본성의 힘으로 행하거나 법의 가르침에 힘입어 행한 자신의 선행만으로 하느님 앞에서 의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파문받아야 한다.
2. 만일 누가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은총이 단지 더욱 쉽게 의롭게 살게 하고, 더욱 쉽게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뿐이기 때문에, 비록 힘겹고 어려울지라도, 마치 은총 없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의로운 삶과 영생을 구현할 수 있는 것처럼 주장한다면, 그는 파문받아야 한다.
3. 만일 누가 의화 은총을 얻는 데 성령으로부터 내려오는 영감(靈感) 없이, 그리고 그분의 도움 없이 필요한 만큼의 믿음, 희망, 사랑 그리고 회개를 실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파문받아야 한다.
(중략)
10. 만일 누가 우리에게 공로가 되어주신 그리스도의 의로움 없이 인간이 의화한다고 주장하거나, 바로 그 의로움으로 인해서는 허울뿐인 의인이 된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파문받아야 한다.
(중략)
24. 만일 누가 인간이 받은 의로움이 하느님 대전에서 선행을 통해서는 보존되거나 증대되지도 않고, 선행은 얻은 의화의 열매와 표징에 지나지 않으며 의화의 증대 요인도 되지 못한다고 주장한다면, 그는 파문받아야 한다.
같은 교령. 의화에 관한 법규들.

결국 의화에 관한 핵심 키워드를 3가지 꼽는다면 다음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
  • 오직 은총
  • 오직 믿음
  •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갈라 5,6)

8.4.1. 가톨릭·루터교·감리교 공동 선언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화와 루터교 세계연맹의 『의화 교리에 관한 합동 선언문』, 1998년 6월[188]

의화 교리에 관한 합동 선언문은 30년이 넘는 루터교와 로마 가톨릭 간 교회 일치 대화의 결과들을 요약하고 있다. 합동 선언문은 1999년 10월 31일에 가톨릭 교회와 루터교 세계 연맹에 의해 부록이 첨가된 공동 성명서에서 받아들여졌다.
출전: The Pontifical Council for Promoting Christian Unity, Information Service Nr. 98 (1998/III), Vatican City, 83-86.

3. 의화에 대한 공동 이해
14. 최근 루터 교회와 로마 가톨릭 교회가 성경에서 선포된 복음을 함께 듣고 특히 신학적 대화를 나눈 것은 의화에 대한 이해 안에서 공통점을 이끌어 냈다. 그것은 근본 진리 안에서 의견 일치를 포함한다. 개별 서술 안의 다양한 전개는 근본 진리와 일치를 이룬다.

15. 의화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업적이라는 것이 우리의 공동 신앙이다. 성부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셨다. 그리스도의 강생과 죽음과 부활은 의화의 근거이며 전제이다. 따라서 의화란 그리스도 자신께서 우리의 의로움이시며, 우리는 성부의 뜻에 따라 성령을 통하여 그 의로움에 참여한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공동으로 고백한다. 우리는 우리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에 대한 믿음 안에서 오로지 은총으로 하느님께 받아들여지며,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선행을 하도록 하시며 부추기시는 성령을 받는다.[189]
16.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에 이르도록 하느님에게서 부르심을 받았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이 구원을 받으면서, 오로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의화된다. 신앙 자체는 말씀과 성사 안에서 신자 공동체에서 활동하시고, 하느님께서 영원한 생명 안에서 완성하시는 신자들의 삶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을 통한 하느님의 선물이다.

17. 우리는 의화에 대한 메시지가 특별한 방법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 행위에 대해 신약 성경에 나타난 증언의 중심을 가리키고 있다고 공동으로 확신한다. 이 메시지는 우리 죄인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용서하시고 새롭게 창조하시는 하느님의 자비 덕분임을 말해 주고 있다. 그 자비를 우리는 선물받을 뿐이며, 믿음 안에서 얻지만, 어떠한 형식으로도 보답할 수는 없는 것이다.
18. 따라서 이 메시지를 받아들이고 전개하는 의화 교리는 그리스도교 신앙 교리의 한 부분만이 아니다. 그것은 서로 내적인 연관 안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신앙 진리와 본질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외화 교리는 교회의 모든 가르침과 실천이 끊임없이 그리스도를 지향하고자 하는 푀할 수 없는 시금석이다. 루터교 신자들이 이시금석의 고유한 의미를 강조한다면, 그들은 모든 신앙 진리의 연관성과 의미를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가톨릭 신자들이 여러 시금석을 따를 의무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은 의화 메시지의 특별한 기능을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루터교 신자들과 가톨릭 신자들의 공동 목적은 그리스도를 모든 것에서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한 분이신 중개자(1티코 2,5-6)로서 모든 것에 대하여 신뢰할 수 있는 분이며,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성령 안에서 당신 자신을 주시며 당신의 새로운 선물을 선사하신다. …

5. 도달한 의견 일치의 의미와 영향

43. 의화 교리의 근본 진리 안에서 우리의 의견 일치는 교회의 삶과 가르침에서 실행되고 보존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또 다른 설명이 필요한 여러 중요한 문제가 있다. 이 문제들은 특히 하느님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의 관계, 교회론, 교회 안의 권위, 교회의 일치, 직무와 성사, 마지막으로 의화와 사회윤리 사이의 관계에 대한 가르침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도달한 공동 이해가 그러한 설명을 위한 적절한 토대를 제공해 주고 있다고 확신한다. …
세계감리교협의회와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문

감리교 성명서
1. 루터교 세계 연맹과 로마 가톨릭 교회는 공식 승인을 거쳐 1999년 10월 31일 “루터교 세계 연맹과 가톨릭 교회의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성명서”에 서명함으로써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문”을 확정하였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통하여 하느님의 은총으로 얻어지는 의화 교리의 기본 진리에 대한 공동의 이해를 분명하게 설명한 이 실질적인 합의는, 로마 가톨릭 교회와 루터교가 16세기 서구 교회 분열의 주요 원인이었던 신학적 논쟁과 관련하여 중요한 합의에 이르렀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2. 세계감리교협의회에 소속된 우리 교회들은 이 동의를 매우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문”에서 설명하는 의화에 대한 공동 이해(15-17항)가 감리교의 교리에도 부합한다고 선언합니다. 우리는 특히 하느님의 구원 활동을 삼위일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다음 항들을 만족스럽게 생각합니다.

15. 신앙 안에서 우리는 모두, 의화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역사(役事)라고 확신합니다. 성부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고자 당신 아드님을 세상에 파견하셨습니다. 의화의 토대와 전제는 그리스도의 강생과 죽음 그리고 부활입니다. 그래서 의화는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의 의(義)가 되심을 뜻하며,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여 이 의(義)에 참여하게 됩니다. 우리는 다함께 고백합니다. 우리의 어떤 공로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에 대한 믿음 안에서, 오로지 은총에 의해 우리는 하느님께 수락되어, 우리를 선행으로 준비시키고 부르시면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을 받게 됩니다.
16. 모든 사람은 하느님에 의해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서 이 구원을 받을 때에 우리는 오로지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의화됩니다. 신앙은 그 자체로서 성령을 통하여 주어지는 하느님의 선물이며, 이 성령께서는 신자들의 공동체 안에서 말씀과 성사를 통하여 일하시면서, 동시에 하느님께서 영원한 생명 안에서 완성으로 이끄실 삶의 쇄신으로 신자들을 인도하십니다.
17. 우리는 또한 의화 메시지가 특별한 방식으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 활동에 대한 신약 성경 증언의 핵심으로 이끌어 간다는 확신을 공유합니다. 곧, 죄인들로서 우리가 얻게 되는 새 생명은 오로지 하느님께서 선물로 부여하시고 우리는 믿음으로 받게 될 뿐, 결코 어떤 방식으로도 공로로 취득할 수 없는, 용서하고 새롭게 하는 자비의 덕임을 말해 줍니다.
3. 우리는 종교 개혁 이래로 루터교와 로마 가톨릭 교회 사이에 논쟁의 대상이 되어 온 의화 교리의 몇몇 중요한 쟁점들에 관하여 공동으로 선언한 내용에 동의합니다(공동 선언문, 19.22.25.28.31.34.37항 참조). 나아가 우리는 이 쟁점들에 관한 루터교와 가톨릭 교회 각자의 입장에 대한 설명(공동 선언문, 20-21.23-24.26-27.32-33.35-36.38-39항)을 수용하며, 이러한 강조점의 차이가 두 교회 어느 쪽과도 감리교를 갈라지게 하는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와 루터교 세계연맹: 의화 교리에 관한 합동 선언을 위한 공식 공동 성명서와 공식 합동 선언문의 부속 문서(Annex), 1999년 10월 31일[190]

공식 공동 성명서로써 루터교 세계연맹과 가톨릭 교회와 의화 교리에 관한 합동 선언이 인준되었다. 동시에 두 당사자는 대화를 계속 이루어야 할 의무를 지닌다. 첨부된 부록(Annex)은 양편이 도달한 의견 일치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이전의 상호 교리 판견들은 더 이상 오늘날 대화 당사자들의 교리와 맞지 않는다.
출전: The Pontifical Councio for Promoting Christian Unity, Information Service Nr. 103 (2000/I-II), Vatican City, 4-6.

…더욱 완전한 교회 공동체를 이루고, 다양성 안의 일치에 이르기 위하여, 또 여전히 남아 있는 차이점들 안에서 서로 "화해"를 이루고, 더 이상 분열시키는 힘을 갖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필요한 명료화 작업으로서, 공동 선언문 자체에서 특별히 언급된 쟁점들(선언문, 43항)에 대하여, 이미 이루어진 합의를 바탕으로 하는 지속적인 대화가 각별히 요청된다. 가톨릭 신자들과 루터교 신자들은 의화 메세지를 오늘날의 인간들에게 적합한 언어로 설명하고자, 그리고 우리 시대의 개인적 관심사와 사회적 관심사 양편과 관련시켜 이해하고자, 공동의 증언 안에서 교회 일치적으로 계속해서 노력할 것이다.
이 서명 행위로써 가톨릭 교회와 루터교 세계연맹은 의화 교리에 관한 합동 선언문을 전체적으로 추인한다.

공식 공동 성명서의 부속 문서

1. 이하의 설명은 의화 교리에 관한 합동 선언문에서 의화와 기본 진리와 관련하여 도달된 합의를 강조한다. 그래서 과거 시대의 상호 단죄들은 합동 선언문에서 발표된 것과 같은 가톨릭 교회와 루터교의 의화 교리들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하게 된다.

2. "우리는 함께 다음과 같이 고박한다. 우리의 어떤 공로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구원 행위에 대한 믿음 안에서, 오로지 은총에 의해, 우리는 하느님께 받아들여지고, 우리를 선행으로 준비시키고 부르시면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는 성령을 받게 된다"(선언문, 15항).
가) "우리는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인간의 죄를 용서해 주시며, 동시에 죄의 구속력(拘束力)에서 인간을 해방시키신다는 것을 … 함께 고백한다"(선언문, 22항). 의화는 죄의 용서이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의 선물을 베풀어 주심"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다(선언문 22항). "그러므로 믿음으로 의롭게 된 우리는 하느님과 더불어 평화를 누립니다"(로마 5,1).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과연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1요한 3,1). 우리는 성령의 활동에 의해서 진정으로 그리고 내적으로 새로워졌으며, 우리 안의 그분의 역사에 언제나 의지할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2코린 5,17). 의화된 이들은 이러한 의미에서 죄인들로 머무르지 않는다.
그렇기는 하지만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1요한 1,8-10; 참조: 선언문, 28항). "우리는 모두 많은 실수를 저지릅니다"(야고 3,2). "뜻 아니한 허물을 누가 알겠습니까? 숨겨진 잘못에서 저를 깨끗이 해 주소서"(시편 19,13). 그리고 우리는 기도할 때에 오직 세리와 같이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루카 18,13). 이것이 우리의 전례들 안에서 다양한 양식으로 표현되어 있다. 우리는 함께 다음과 같은 권유를 듣는다. "그러므로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여 여러분이 그 욕망에 순종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로마 6,12).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들 안에서 죄의 권세와 그 작용에서 오는 끊임없는 위험을 상기시켜 준다. 가톨릭 신자들과 루터교 신자들은 합동 선언문 29-30항에서 표명한 것과 같이 이 주제에 대한 상이한 접근 자세에도, 함께 이러한 정도까지, 의인인 동시에 죄인으로서 그리스도인을 이해한다.
나) "사욕 편정"이라는 개념은 가톨릭과 루터교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루터교의 고백 문서들 안에서 "사욕 편정"은 인간 존재의 자기 추구 욕망으로서, 영적으로 이해된 법의 빛으로 볼 때 죄로 간주된다. 가톨릭의 이해에서 사욕 편정은 세례 이후에도 인간 존재 안에 남아 있는, 죄로부터 오고 죄를 향하도록 압박하는 한 경향이다. 여기에 포함된 상이성에도, 루터교의 관점에서 욕망은 죄가 공격을 가하는 틈이 된다. 죄의 세력 때문에 전체 인간 존재는 하느님을 거스르는 경향을 지닌다. 이 경향은, 루터교와 가톨릭 양편의 개념에 따를 때, "인류를 위한 하느님의 원초 계획과 부합하지 않는다"(선언문, 30항). 죄는 인격적 성격을 지니며, 그렇기에 인간을 하느님과 멀어지게 한다. 그것은 낡은 인간의 이기적 욕망이고, 하느님에 대한 신뢰와 사랑의 결여이다.
세례에서 선사된 구원의 실재와 죄의 세력에서 오는 위험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죄의 용서와 세례를 통한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성의 쇄신이 강조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의화된 이 또한, "공격을 가하는 죄악의 세력 앞에 끊임없이 내던져져 있으며(로마 6,12-14 참조), …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에 대하여 평생 투쟁하여야만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선언문, 28항).

다) 의화는 "오로지 은총에 의해서만" (선언문, 15-16항), 오직 신앙에 의해서만 발생하고, 인간은 "행위와 상관없이"(로마 3,28; 참조: 선언문, 25항) 의화된다. "은총은 신앙이 한 인간 안에서 시작될 때 뿐만이 아니라, 신앙으로서 존속하는 한, 신앙을 이룩한다"(토마스 아퀴나스, 「신학 대전」II/II 4, 4 ad 3). 하느님의 은총의 역사(役事)는 인간의 활동을 배제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 곧 기꺼이 하고자 하는 마음과 그 일을 할 힘을 주시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구원을 위하여 애쓰도록 부름 받는다(필리 2,12 이하 참조). … "성령께서 말씀과 성사들을 통하여 우리 안에서 재생과 쇄신의 당신 역사를 시작하시는 즉시, 우리는 성령의 힘으로 협력할 수 있고, 또 협력하여야 한다는 것이 확실히다"(협약 정식, FC SD II,64-65; BSLK 897,37 이하).
라) 의화된 이가 믿음과 바람 그리고 사랑 안에서 하느님과 나누는 친교인 은총은 언제나 하느님의 구원과 창조의 역사에서 받게 된다(선언문, 27항 참조). 그러니 이 은총을 헛되게 하지 않고 그 안에서 사는 것이 의화된 이들의 책무이다. 선행을 하도록 권고하는 것은 신앙을 실천하도록 권유하는 것이다(BSLK 197,45 참조). 의화된 이들의 선행은 "그들의 소명을 확인하기 위하여, 곧 다시 범죄함으로써 소명으로부터 추락하지 않도록 행해져야 한다"(Apol. XX,13; BSLK 316,18-24; 2베드 1,10 관련. 또한 FC SD IV,33; BSLK 948,9-23 참조). 이러한 의미에서, 루터교 신자들과 가톨릭 신자들은 합동 선언문 38항과 39항에 언급된 "은총의 보존"에 대해서 함께 이해할 수 있다. 확실히, "의화된 이들에게 전제되거나 뒤따르는 것이 무엇이든, 신앙의 자유로운 선물은 의화의 바탕도 아니고 그것을 공로로 받게 되는 것도 아니다"(선언문, 25항).
마) 의화로 우리는 아무 조건 없이 하느님과 친교를 누리게 된다. 이것은 영원한 생명의 약속을 포함한다. "사실 우리가 그분처럼 죽어 그분과 결합되었다면, 부활 때에도 분명히 그리될 것입니다"(로마 6,5; 참조: 요한 3,36; 로마 8,17). 최후 심판 때에, 의화된 이들도 그들의 행업에 따라 심판받게 될 것이다(마태 16,27; 25,31-46; 로마 2,16; 14,12; 1코린 3,8; 2코린 5,10 등 참조).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에 찬 선고가 당신의 뜻에 일치하는 우리 삶과 활동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승인하실 것이라는 심판을 대한다. 그러나 우리의 삶 안에서 그릇된 모든 것은 드러날 것이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되지 않을 것이다. 협약 정식 또한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신앙인들은 성령꼐서 그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선행들을 행하여야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고 명백한 명령이며,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저들과 더불어 기뻐하시고, 현세와 미래의 생활에서 그들에게 상급을 베풀어 주실 것을 약속하신다"(FC SD IV,38). 어떠한 상급도 우리가 주장할 권리를 지니지 않는 은총의 상급이다.

3. 의화 교리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척도이며 시금석이다. 어떠한 가르침도 이 기준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의화 교리는 "우리 교회들의 모든 가르침과 실천을 지속적으로 그리스도께 향하도록 하는 불가결한 기준이다"(선언문, 18항). 이와 같이 의화 교리는 교회의 근본적인 삼위일체 신앙 고백의 전 맥락 안에서 그 나름의 진리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모든 것에서 그리스도를 고백하며, 하느님께서 성령 안에서 그분을 통하여 당신 자신을 내어 주시고, 그분의 새롭게 하시는 선물을 부어 주시는, 곧 그리스도를 한분 중개자(1티모 2,5-6)로서 그 무엇보다도 신뢰함을 공동의 목표로 한다"(선언문, 18항).

4. 가톨릭 교회의 논편은 루터교 시노드나 루터교 세계연맹의 권위를 의문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가톨릭 교회와 루터교 세계연맹은 대화를 시작하였으며, 서로를 동등한 권리를 지닌 대화 상대로서(par cum pari) 전진적으로 대해 왔다. 교회 안에서 권위에 대한 상이한 개념에도 불구하고, 두 대화 당사자는 상대방의 교리 결정 과정을 존중한다.

9. 오해

가톨릭은 2000년에 이르는 긴 역사만큼 외부의 곡해 내지는 오해도 많다.

9.1. 성모 공경에 대한 오해

동정 마리아께서는 성부의 뜻과 성자의 구속 사업과 성령의 모든 활동에 전적으로 헌신함으로써 교회를 위하여 신앙과 사랑의 모범이 되신다. 이로써 마리아께서는 “교회의 가장 뛰어나고 유일무이한 지체”[191]가 되시고, “교회의 전형”(typos)[192]이 되신다.
-교리서 967항
우리는 앞에서 교회와 그 기원, 사명, 목적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제 마리아께 눈을 돌려, 그분 안에서 교회의 신비와 “신앙의 나그넷길”을 걷는 교회를 관상하고, 이 나그넷길이 끝난 다음 본향에 들어선 교회의 모습을 묵상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끝맺음이 될 것이다. 바로 그곳에서 마리아께서는 “모든 성인의 통공 안에서, …… 지극히 거룩하신 불가분의 삼위일체 하느님의 영광”[193] 안에서 교회를 기다리고 있으며, 교회는 마리아를 주님의 어머니이며 자신의 어머니로 공경한다.
예수님의 어머니께서는 어느 모로든 하늘에서 영혼과 육신으로 이미 영광을 받으시어 내세에 완성될 교회의 표상이 되시고 그 시작이 되시는 것처럼, 이 지상에서 주님의 날이 올 때까지 순례하는 하느님 백성에게 확실한 희망과 위로의 표지로 빛나고 계신다.[194]
-교리서 972항

성당에 설치된 성모상이나 성인에 대한 전구 교리를 바탕으로, 성모 마리아[195]를 믿는 종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보수 개신교의 프로파간다도 한몫하는데, 때로는 이러한 잘못된 이해를 바탕으로, "가톨릭에서는 삼위일체성모 마리아를 끼워넣는다", "비성경적이다"는 주장을 한다. 영국과 미국 개신교 선교사가 한국에 와서 선교할 때 천주교가 마리아 믿는다고 한 소리가 지금까지 이어져오는 여파도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개신교의 영향력이 워낙에 강하다보니 비그리스도교 신자들도 이렇게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위에도 언급되었지만 가톨릭에서는 죽은 이의 영혼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준다는 교리가 있다. 이 중에서 가장 하느님과 가까운 사람이 바로 예수를 낳은 성모 마리아이기 때문에, 또한 하느님인 예수가 어머니의 부탁이라면 틀림없이 들어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최고위 성인으로서 공경하는 것이다. 즉 하느님을 경배하는 성도는 산 이와 죽은 이를 구분짓지 않으며, 바로 이 성도의 가장 선두에서 하느님을 경배하는 이가 바로 성모 마리아이다. 그러나 영미권 반가톨릭적 단체에서는 성모 마리아가 대신 경배받는다는 식으로 왜곡하여 비방하고 있다.

성당 입구나 마당에 성모상이 서 있는 것 역시 '마리아교'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공격을 불러일으키는데, 본래 성당 마당에는 그 성당이 세워진 곳이 순교자의 무덤일 경우에 해당하는 순교성인의 상을, 혹은 그 성당의 수호자의 상을 세우는 것이 관례이다. 한국에서는 많은 성당이 그 성당의 수호자 대신 한국 천주교의 수호자인 성모 마리아상을 스스로 택할 뿐이다. 천주교의 교리에서 성모 마리아는 가장 완벽하고 훌륭한 믿음의 인간으로서 존경받는 자이고, 예수삼위일체론 교리에 따라서 하느님으로 믿고 따르는 것으로 가르친다는 점에서, 둘의 대우는 엄연히 다르다. 광화문에 세종이순신의 동상이 있다한들 우리나라가 세종이나 이순신을 신으로 모시는 나라가 아닌, 위인으로서 공경하는 것과 같다.

성경의 어떤 훌륭한 인물이라도 특별히 언급하여 칭찬하는 경우가 없는 개신교 입장에선 오해가 있을만도 한데, 성모송 또한 여타 기도문과 같은 성경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예수님의 탄생 예고
26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27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
28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196]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197]

(중략)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42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198]
루카 1,26-28.41-42

성모송에는 마지막의 저희를 위해 빌어달라는 부분이 있는데. 가톨릭에서 인정하는 전구(轉求)를 구하는 것으로[199] 성모 마리아에게 직접 비는 것이 아닌, 하느님에게 기도를 전달해 달라고 간청하는 내용이다. 서방 교회의 기도문 중 하나인 성인 호칭 기도를 들어봐도, 성부, 성자, 성령(삼위일체 야훼)에게는 '자비를 베푸소서'(miserere nobis)라고 하지만, 성모 마리아 이하 성인들에게는 '우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ora pro nobis)라고 한다. 사실 '저희를 보호해주소서' 같은 형태로 기도할 때도 있긴 하나, 이 또한 같이 기도해준다는 전구의 개념 안에서 이해해야 한다.

즉 가톨릭을 성모 마리아를 믿는 종교로 착각하는 건, 마치 연예인 매니저한테 말을 걸어 연예인에게 선물을 전달해달라며 건네주는 것을 보고, 연예인의 팬이 아니라 매니저의 팬으로 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성모 마리아를 신으로 모시는 그릇된 신자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톨릭에서는 이를 잘못된 성모신심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잘못된 성모신심은 교황청에서도 엄연히 금지하고 있고, 교계에서 최대 파문에 이르는 이단적 교리다.

또한 성모 공경은 성인 공경의 연장선이면서도, 교회론과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교리서에서 썻듯이 성모 마리아는 가톨릭 교회의 전형(typos)이며, 실제로 요한묵시록에서도 '교회'를 '메시아의 어머니'의 모습으로 묘사한다.
그리고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 여인은 아기를 배고 있었는데, 해산의 진통과 괴로움으로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 이윽고 여인이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 사내아이는 쇠지팡이로 모든 민족들을 다스릴 분입니다.
-요한묵시록 12장 1-2.5절[200]

그렇기에 가톨릭 신자가 성모 마리아에게 사용하는 호칭들 다수는, 이를테면 동정녀, 그리스도의 어머니, 하늘의 모후 등등은 에클레시아(교회)에게 그대로 적용 가능하다. 비유컨대 성모 마리아는 가톨릭 교회의 '프로필 사진'이라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성모 공경은 그리스도 흠숭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파일:왕좌에_앉은_에클레시아.jpg
왕좌에 앉은 에클레시아(교회), 12세기, Prüfening Abbey, Bavaria

파일:Santa Maria in trastevere 모자이크.jpg
Santa Maria in trastevere의 모자이크. 그리스도 옆의 여인은 성모 마리아이지만, 또한 '가톨릭 교회'이기도 하다.[201]

다음으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가톨릭 신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앙리 드 뤼박 추기경의 저작에서 발췌한 교회 찬가를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 무릎 위에 앉아서 제가 모든 것을 재웠고 날마다 계속 모든 것을 깨우치는 이 위대한 어머니는 복되시나이다! 바로 그분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명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그분의 복음을 우리 손에 쥐어 주시며 우리가 이를 해석하게 도와주십니다. ...... 거룩하신 어머니, 유일하신 어머니, 흠 없으신 어머니! 오 위대하신 어머니! 거룩한 교회, 참 하와, 산 이들의 유일한 참 어머니시여!"[202]
여기서 "거룩하신 어머니, 유일하신 어머니, 흠 없으신 어머니, 위대하신 어머니, 거룩한 교회, 참 하와, 산 이들의 유일한 참 어머니"는 바로 가톨릭 교회를 말하는데, 거의 누구나 교회 수식어와 성모 수식어가 호환됨을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위에서도 언급했듯 성모 마리아는 가톨릭 교회의 전형(typos)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톨릭과 개신교가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서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믿나이다"라고 하더라도, "교회를 믿는 것"과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다른 의미의 '믿음'이며, 결코 교회를 신으로 흠숭하는 것이 아님은 명명백백하다. 그렇기에 그 교회의 전형(typos)인 성모 마리아는 아무리 수식어가 붙더라도 '교회라는 면에서' 고찰되어야 하는 것이다. 교회가 신이 아닌데, '교회의 전형'이 신이라는 게 말이 되는가?
무엇보다도 이는 교회 신비의 "역설적" 특성 때문에 가치가 있다. 교회는 거룩하게 하는 어머니면서도 거룩해진 백성, 소집하는 주체이면서도 소집된 이들(congregans et congregata), 생명을 낳는 주체이면서도 "위에서부터 새로 난" 이들의 친교(communio), 하느님 용서를 베푸는 주체이면서도 언제나 정화되는(semper purificanda) 죄인들의 공동체, 전 인류의 종말론적 목적이면서도 언제나 힘겨운 여정 중에 있는 "작은 양떼"인 것이다. 하느님의 이 거룩한 교회는 바로 그 구조적이고 축소할 수 없는 이중적인 측면들에 따라 실제로 마리아 안에서 교회에 "맞갖은" 인격적 모습을 발견한다. 마리아께서는 "동정 성모님, 당신 아드님의 따님이시여, 어느 피조물보다도 더 겸허하고 높으신 분이시여!"[203]라 불리는 분이시다.
-《앙리 드 뤼박: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마르코 스프리치(번역: 박성희)

이러한 교회론적 관점에서 접근하면, 성모의 중보를 더욱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다. 분명히 말하자면, 가톨릭적 관점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유일한 중보자'이다. 그러나 '이차적인 의미에서' 교회는 중보자이며, 성모의 중보는 바로 이 이차적 의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유일한 중보자이시니 성모 중보 개념은 우상 숭배'라는 논리는, 중보 개념을 일의적으로 오독한 것이다.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믿음의 대상이니, 사도신경에서 교회를 "믿사옵나이다"라고 고백하는 개신교는 우상숭배 종교란 말인가?
교회는 여러 차례 공의회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는 참으로 하느님이시요 동시에 참으로 사람이심을 선언하고 가르쳐 오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중보자이심을 고백하면서도 구원 역사 안에서 사람들의 역할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중보자이신 예수님은 당신 교회를 맡을 사람들을 부르시고 또한 당신 몸의 지체들을 당신의 구원 사업, 즉 중재 사업에 참여하도록 하십니다. 즉 사도로 부름을 받은 사람들, 또 그들의 후계자로 교회를 책임 맡은 사람들 역시 이차적인 의미에서 중재자인 셈입니다.

교회 역시도 세상의 구원을 위한 성사, 다시 말해 중재 역할을 떠맡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 역시 같은 의미입니다. 아울러 교회는 사도 신경 안에서 “성인들의 통공”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성인들이란 교회가 시성식을 치르고 성인으로 선포한 사람들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통하여 하느님과 함께하는 의인들을 모두 지칭합니다. 이 가르침은 하느님은 살아 있는 사람들만의 하느님이 아니라 이미 죽은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하느님이시고 그 능력을 발휘하시는 하느님이시라는 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고, 죽은 이들 역시 살아 있는 우리들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의인의 기도가 더욱 힘이 있다는 것을 아브라함의 중재 역할(창세 12,2-3; 18,16-33)이나 모세의 기도를 통하여 보여 주고 있습니다.

교회는 무엇보다도 성모 마리아의 중재 기도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 제8장에서는 성모 마리아가 하느님의 말씀에 순명하였고, 정결을 보존하였으며, 누구보다도 예수님을 사랑하였고 그분을 철저히 따랐던 분임을 강조하면서 어머니로서의 중재 역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첫번 기적이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성모 마리아의 간청으로 이루어진 것은 그 좋은 본보기입니다. 이 때문에 가톨릭 교회는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으소서.”라고 끝맺는 성모송의 기도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경향잡지, 1993년 1월호, 조규만 바실리오 신부

이런 연유로 가톨릭 신자들 앞에서 마리아 숭배라 주장했다가는 기나긴 일장연설이 시작될 수 있다. 저런 말을 하는 것 자체가 가톨릭에 대한 오해를 갖고 있음을 의미하며, 신자들은 그것을 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절대 하지 말자.

한국의 개신교에서 성모 마리아의 위상은 매우 낮거나 없다시피한 경우가 많은 데다[204][205], '그게 숭배지 어째서 공경이냐'고 따지는 '들을 귀조차 없는' 극우 개신교 신자도 몇몇 있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반박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요약하자면, 성인 중의 한 명으로, 특히 교회의 전형(typos)으로서 공경할 대상으로 여기는 것이지 성모 마리아 자체를 신앙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아니다.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를 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것이 성모 마리아를 신으로 여기기에 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가톨릭에서 기도란 성인에게 바칠 수도 있고, 성인과 함께 하느님께 바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성인 자체가 어떤 신성한 초월적 권능을 지녔다고도 믿지 않는다. 성모 마리아를 비롯한 성인들에게 가톨릭 신자가 기도할 때 적지 않은 경우 ‘저희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소서’라는 구절이 들어가는데, 이것이 가톨릭의 기도에서 성인의 위치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구절 중 하나일 것이다. 물론 개신교의 관점에서는 성인들의 전구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므로, "예수님이 하느님이랑 우리를 같이 연결해주셨는데 왜 마리아한테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냐"는 비판을 한다. 그러면서 가톨릭을 보고 마리아를 믿는 종교라고 한다.

아무튼 위에서 설명한 가톨릭에 대한 오해나 비방은 주로 反에큐메니즘 정서가 강한 보수파 개신교에서 주장하는 것으로[206], 에큐메니컬 운동에 참여하는 개신교 교단들[207]은 대체로 천주교를 자신들과 다른 전통을 고수하는 교회 정도로 보지, 이단 내지는 그리스도교의 탈을 쓴 이교(異敎)로 비방하지는 않는 편이다. 사실 에큐메니컬 교단들도 성유물, 성인 공경, 성모 마리아, 고해성사에 관한 가톨릭 교리에 대해서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는 식으로 신학적으로 비판하는 등 긍정적으로 보진 않긴 하다. 그저 비방을 하지 않는다는 것. 단, 예장통합, 대한감리회와 같은 중도~보수 혹은 중도~진보 성향의 에큐메니컬 계열에서도 가톨릭을 유대교이슬람처럼 '믿는 신만 같은 타 종교'로 보는 시선이 적지는 않다.

아래에 쓰인 것은 주로 가톨릭에 대한 오해를 보기 쉽게 정리한 것이다. 위 문단에서 언급되었던 것들도 많지만, 이런 오해들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했으며, 작성에 있어서 현직 교리교사의 간략한 의견과 함께 천주교 인천교구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의 의견을 참고했다.

9.2. 성경, 성인, 구원관에 관한 오해

  • 가톨릭은 신앙과 성경 가르침에서 이탈된 종교가 아니다. 오히려 신앙과 성경, 그리고 성전에 충실한 역사가 가장 긴 종교이다. 이에 대해 교회의 역사성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전승에 대한 폭넓은 이해가 필요하며, 이단에 대한 현대적 시점과 핵심에 대한 본질적 일치의 관점이 중요하다.
  • 가톨릭 신자들은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이 아니다. 선행을 통한 인간적인 화해와 협력이 바로 하느님의 은총의 결과로 보기 때문에 선행이 중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행위구원론이나 펠라기우스주의가 아니다. 가톨릭 교회는 하느님의 은총이 구원의 필수 조건이라고 가르치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을 통해 하느님의 은총에 도달할 수 있고 선행은 하느님의 은총을 보존하기 위한 은총을 통한 개인적인 노력이다.
  • 가톨릭을 행위구원론이나 종교무관심주의, 다원주의(종교가 없거나 어떤 타종교인도 다 구원받는 걸 인정하는) 종교라고 오해하는 시각도 상당수 비신자부터 근본주의적 일부 개신교도들까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유명한 오해이다. 이 역시도 절대 사실이 아니다.
가톨릭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가톨릭 신앙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신앙과 상관없이 착하게만 살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일이 역사상 단 한번도 없다. 만약 이게 가톨릭의 교리라고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을 위해 이 땅에 내려온 이유도 설명할 수 없고, 인류의 속죄와 구원을 위해 십자가 수난을 당할 당위성도, 가톨릭이라는 가시적 종교도, 교황과 교리가 존재할 이유도 설명할 수 없으며, 그 주장 자체로 '행위구원론'이라는 이단이 된다. 굳이 비신자의 구원 가능성을 얘기하자면 자기 탓이 아닌 무지나 시대적·장소적 한계 등으로 '신앙을 가지지 못했으나', 양심의 명령에 따라 살고 착한 삶을 산 사람들에 대한 구원의 가능성까지 부정하지는 않으나, 이러한 구원의 '가능성' 자체는 가톨릭 교회에 들어가서 일생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에 비해 매우 힘들다고 본다. <여기에 물이 있다>와 같이 신앙 초심자들에게 특화된 유명한 가톨릭 교리 해설서 등에서도 확실한 구원의 길인 예수 그리스도와 가톨릭 교회에 대한 믿음 없이 소위 '착한 양심'만으로 구원의 가능성을 바라는 것은 대단히 어리석다는 점을 강조한다.
가톨릭이 고의적으로 가톨릭 교인이 되기를 거부하는 타종교인이나 무종교인, 무신론자의 구원도 모조리 인정한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일부 개신교 신자들이나 비종교인, 세속적 종교다원주의자, 무신론자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의 논의와 가톨릭의 구원관에 대해 완벽하게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가톨릭도 종교다원주의를 이단으로 배격한다. 다만, 구원은 하느님께서 주관하고 하느님의 은총의 결과물이므로, 또 개인의 죽을 때의 마음상태 변화에 따라 변수가 생길 수 있는 문제이므로 개개인의 구원 여부에 대한 입장을 가톨릭 교회 공식 차원에서 확답하는 건 지양하고 있긴 하지만, 교리적으로 특정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208] 없는지[209]의 범위는 명확히 제시한다.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전의 가톨릭이 지녔던 사목적, 대외적인 배타성을 탈피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일 뿐이지 가톨릭의 구원관을 타종교까지 확장한 것이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가톨릭의 구원관인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 문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낙원/기독교, 지옥(기독교) 참조.
  • 상기 문단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가톨릭 교회는 성모 마리아와 성인성녀들을 숭배하지 않는다. 본래 그리스도교의 근본이였던 만큼 하느님이 믿음의 대상이며, 삼위일체이신 하느님만이 흠숭의 대상이다. 성모 마리아성인들에 대한 공경의 대상 중에서 가장 높은 공경, 즉 상경(上敬)의 대상이다. 즉 가톨릭에서 성모 마리아는 모든 성인들 중에서 가장 으뜸된 자로 보고 있기 때문에 존경받는 것이다. 정리를 하자면, 천주는 흠숭, 성모 마리아는 상경, 성인은 공경이라고 할 수 있다.[210] 사제서품식 때 부르는 성인호칭기도에서도, 성부와 성자와 성령에게는 ‘저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라고 하고, 성모 마리아를 비롯한 성인들에게는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라고 한다.
  • 가톨릭 교회에서는 천상의 모후(Regina Caeli)라는 표현을 흔히 쓴다. 모후는 임금의 어머니란 뜻이고[211], 어디서 주워들은 건 있어서 아들 쫓아내고 왕위를 찬탈한 측천무후나, 예전 조선시대에 어린 왕을 대신해 수렴청정하는 대왕대비나 대비[212]를 연상시키고는 '예레미야서에 나타난, 사람들이 과자를 구워 바치는 하늘의 여왕'이니 하면서 우상숭배 운운하는데 완벽한 오해임이 분명하다. 성모 마리아가 성자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를 몰아 내고 ‘내가 구원의 길이다’라고 한 적 없고, 감히 피조물이 창조주 하느님을 지배한다는 발상 자체가 어처구니 없음을 아무리 얘기해 주어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까지 가톨릭 교회가 책임질 문제는 아니다.
  • 묵주 기도는 성모 마리아의 발 아래에 장미를 바치는 것에서 유래한다. 어디까지나 성모 마리아와 '함께' 하느님에게 바치는 기도로서, 어머니와 자녀가 함께 기도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다만 그 어머니가 동시에 하느님의 은총을 가득히 받은, 예수의 어머니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기도에 깊은 의미가 실린다. 묵주 기도를 바치는 신자는 복음에 나타나는 예수의 생애 전반을 묵상하게 되어있다. 묵주 기도를 포함해 성모님에게 드리는 모든 기도는 정확히 말하면 성모님에게 '함께 하느님께 청하여 주시기를', 혹은 '저(희)를 위하여 하느님께 빌어주시기를' 과 같이 청하게 되어있다.[213]
  • 일부 개신교인들의 가톨릭 비방으로, "그들은 혼인을 금지하고, 또 믿어서 진리를 알게 된 이들이 감사히 받아 먹도록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어떤 음식들을 끊으라고 요구합니다"라는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서간(디모데전서) 4장 3절의 성경구절을 가톨릭에 대입해, 이것이 "가톨릭의 성직자, 수도자 혼인금지와 금육 교리를 성경이 단죄한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다. 이는 초기교회사와 그리스도교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드러나는 비방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해당 성경구절이 단죄하는 행각은 성직자의 혼인금지나 금육이 아니라 당시 영지주의 일부 종파에서 주장했던 극단적인 결혼금기와 유대 민족적 성향의 그리스도교 분파에서 자주 저지르던 특정 음식 거부를 이단적 사상으로 보아 단죄한 것이다. 초대교회 시기에는 이런 이단들이 창궐하여 극도로 과한 금욕주의를 강요하는 일들이 종종 있었는데, 예를 들어 초기 교회 신학자이자 호교론자중 한명이었던 타티아누스(120~172)는 나중에 이러한 이원론적인 극단주의에 빠져 '영지-엔크라트'파라고 불리는 이단종파를 창설하여 결혼 자체를 죄악시하고 고기와 포도주를 신자들이 먹지 못하게 했으며, 심지어 미사(성찬예식) 때 미사주로 포도주 대신 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214]
애초에 가톨릭은 혼인을 금지하기는커녕 혼인성사로 볼 정도로 소중히 여기며, 사제의 혼인 금지는 초대교회가 아니라 중세에 들어서 실용주의에 가까운 이유로 확립된 것이다.
  • 또한 일부 개신교인들의 유명한 레퍼토리 중 하나로, 교황이 인격적으로 문제가 많을 때가 많음에도 교황무류성을 주장하고, 심지어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로 불린다는 이유로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비난하는데 앞장서는 개신교 교파들도 많은데, 가톨릭의 교황(그리고 주교들)은 공식적으로 사도들의 후계자이다. 사도들이 신약성경 후반부에서 한 전교 행적과 초대교회 수립 등이 그리스도의 사명을 받아, 성령의 은총으로 그리스도의 지상에서의 '역할'을 지속해서, 대신해서 한 업적이듯이, 교황직과 주교직도 사도들 이래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교황 역시 '그리스도의 지상 대리자'라는 호칭을 받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이것은 교황이나 가톨릭의 주교, 사제 개개인의 인품이나 개인행실과는 상관없다. 또 교황이나 주교들을 신격화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사도들의 역할을 이어받는 것을 의미하는 표현일 뿐이며, 또 개신교에서도 신약성경 내용에서 사도들의 개인적 행적, 실수 등과는 '별개로' 성령의 힘을 입어 공개적으로 행한 교리선포들[215]은 신앙적으로 무오류하다고 인정하는 것처럼, 사도들의 적법한 후계자인 교황 역시 신앙과 도덕 차원에서의 교리선포가 무오류함을 지니는 것은 가톨릭 교리상 당연하다. 교황 무오류성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교황무류성 문서를 참고하자.

9.3. 기타 오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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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주교 신자가 아니거나, 일부 개신교 신자들, 그리고 교리지식이 다소 부족한 상당수 천주교 신자들이 가지고 있는 오해 중 하나로, 천주교는 1939년 이후로 조상제사전면 허용했다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사실 전면 허용이 아니라 일부 미신적 요소[216]를 제외했다는 전제 아래 조건부로 조상제사 참여를 허용한 것이다. 이러한 원칙들을 지키지 않는 일반적 유교 조상제사는 천주교에서 여전히 우상숭배의 죄이다. 자세한 관련 원칙과 허용/금지사항에 대한 것은 이 문서 참조
  • 특히 한국 천주교에서 묵주는 목에 걸면 안된다는 인식이 있지만 원칙적으로 금지된 일은 아니다. 다만, 묵주목걸이 용도가 아니라 기도를 도와주는 도구이기 때문에 액세서리 목적으로 걸고다니는 것은 지양해야한다. 그래서 묵주를 목에 걸 때는 옷 안으로 걸도록 권유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평신도들이 좀 큰 묵주를 목에 걸고다니는 경우도 꽤 있다. 묵주를 어떻게 하고 다니든 본인의 자유이며 케바케이다. 성물 자체를 우습게 여기거나 종교적 이유가 아닌 다른 목적으로 착용하고 다니는 것이 큰 잘못인 것이다.
  • 천주교 마산교구에서 임진왜란 당시 천주교 신자였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짓고 주둔하던 웅천왜성에서 자신들의 신앙활동을 위해 예수회 소속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 신부를 불러 미사를 드렸던 것을 근거로 "세스페데스 신부가 하느님의 손길을 전했다"라며 성역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기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웅천왜성 축조에서의 가혹함을 지적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유성룡이 기록한 징비록에는 '경상도 지역 왜구들의 강간이 극심해, 조선의 순수한 혈통이 끊겼다'고 남기고 있으며, 웅천왜성을 축조하기 위해 동원된 조선인들은 굶주림 때문에 인육을 먹었다는 내용도 전하고 있다"

    그러나 웅천왜성에 가톨릭 신자들이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를 기억하는 의미를 부여한다고 한들, 그것 자체는 웅천왜성 축조의 가혹함을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다. 간단한 비유를 하자면, 남한산성 성지가 '신라 문무왕이나 조선 인조의 국토 방어 의지'나 '축조에서의 노동 환경' 때문이 아니라, '순교가 일어난 곳'이기 때문에 성지인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당연한 사실이지만, 임진왜란은 종교전쟁이라 보기 어려우며 오히려 예수회 선교사들은 일반적으로 히데요시가 명분 없는 전쟁을 일으켰다고 생각했다.[217] 이러한 인식은 Alessandro Valignano가 1592년에 총장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벌써 조선국을 정복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 전쟁은 아무런 명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로지 그(히데요시)의 정복욕에 의한 것입니다.



    Alessandro Valignano, Adiciones(1592) del Sumario de Japon, Adicion 4, IV, 487.

    또한 당사자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 신부조차도 왜군의 침략에 비판적이였다.
    아무도 원하지 않은 전쟁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무모함에 의해 저질러졌다



    세스페데스 신부의 보고서 中 #

    더군다나 박철 교수(전 한국외대 총장)는 "세스페데스 신부를 왜군 종군신부로 모는 건 역사 왜곡"이라며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박 전 총장은 “세스페데스 신부가 조선에 온 것은 극비리에 이뤄졌으며, 그 배경에는 1566년부터 가스파르 비렐라 신부가 ‘꼬라이’ 땅에 복음을 전파하고자 한 숙제를 실천에 옮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전 총장의 설명에 따르면 도요토미 히데요시(풍신수길)가 1587년 천주교 추방령을 발표한 터라 세스페데스 신부의 조선 방문은 극비리에 이뤄졌고, 도착한 후에도 1년 동안 웅천 왜성의 은밀한 곳에 칩거하면서 복음 전파 시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1년 만에 체류 사실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귀에 들어가자 세스페데스 신부의 조선 방문을 도왔던 일본의 지방 제후들이 신부를 황급히 일본 땅으로 돌려보냈다.

    박 전 총장은 “체류 당시 영내에 머물면서 왜군에 잡혀온 조선인 포로들만 접촉했으며, 일본군 천주교 병사들을 대상으로 미사세례성사를 집전한 것을 두고 종군신부라고 규정하는 건 역사적 비약”이라고 말했다.

    또 “일본으로 돌아가는 도중 대마도에서 귀족의 자손으로 보이는 어린아이 포로를 데려가 비센테(Vicent)라고 세례를 주고 보살핀 것으로 기록에 나온다”며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의 참화에 대해 보고서를 만들어 일본에 있던 예수회 부관구장 신부에게 알림으로써 유럽에 전쟁의 진상과 조선 왕국의 존재를 최초로 알린 것은 매우 중요한 역사이며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박 전 총장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종군신부’ 논란의 발단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그는 1930년 일본 역사학자 야마구치(山口正之)의 ‘세스페데스의 서간문 연구’ 논문에서 왜군의 ‘종군신부’라고 단정지은 것이 시초라고 설명했다.

    그는 “1930년대 일본의 조선 식민지배 당시 야마구치에 의해 왜곡된 주장이 아직도 국내 일부 교회사 연구에서 받아들여지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 즉 애초에 히데요시와 정치적 이해 관계가 일치하지 않고[218] 명분을 비판한게 예수회 선교사들이며, 세스페데스가 '히데요시 몰래' 조선에서 미사와 세례를 집전하고 조선인 포로들과 접촉한 것을 가지고 임진왜란과 엮어서 비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임진왜란 당시의 예수회가 조선 정부에게 물자라도 지원했냐고 하면 그건 아니지만, 조선인에게 해를 끼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1598년 9월 4일에 나가사키에서는, 일본 교구장 세르게이라 주교가 신부 12명을 소집하여 '조선인 노예 매매에 관한 대책회의'를 열고는 그 잔혹성을 고발한 기록도 고스란히 문서화되어있는 등 예수회 선교사들과 조선인들이 원수졌다고 볼 근거는 없다. 훗날 마산교구장이 된 배기현 콘스탄틴 주교는[219] 교구의 대화 노력이 부족했다면서, 이 문제에 비판적인 신자들과 더 소통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한국 가톨릭이 세스페데스를 통해 임진왜란을 정당화한다거나 미화했다고 보기엔 어렵다.
  • 엑소시즘을 하려면 교황청의 허가가 있어야 한다.
    • 해당 문서 참고.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주교의 권한이다.
  • 가톨릭 신부들은 아동성애자들이다.
    • 국내 가톨릭에서는 딱히 상관없는 문제이나 서구권에서는 몇몇 막장 신부들의 아동 성범죄 행태[220]가 드러나면서 크게 이슈가 되었다. 특히 교황청이 해당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더 가중되었다. 캐나다에서는 엄청 심하게 일어난적도 있다. 그러나 통계상 가톨릭 성직자가 다른 직업이나 다른 교단 성직자보다 특별히 더 심한 것은 아니다. 20세기 후반 동안 가톨릭 성직자 중 아동 성학대 의혹을 받은 수치는 약 4%정도로, 이는 다른 교단 성직자의 수치와 일치하며, 공립학교 교사(6%)보다 낮은 수치이다. 물론 사람들이 성직자에게 원하는 건 '우리와 똑같은 세속적인 사람'이 아니라 '뭔가 다른 사람'인 만큼 이런 수치도 뼈아픔은 분명하고 그래서 언론들과 전세계 교구들에서 난리가 난 것이지만, 가톨릭 성직자가 특별히 다른 집단보다 아동성범죄를 자주 일으켰다 보긴 어렵다.
  • 니케아 공의회에서 성경의 정경화가 이루어졌다.
    • 니케아 공의회는 주로 삼위일체론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공의회였고, 정경 목록을 정하기 위한 공의회는 아니었다. 서방교회의 정경 목록은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정해졌다. 카르타고 공의회는 지역 공의회였지만 서방교회 전체는 여기에서의 정경 목록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후 카르타고 공의회 정경 목록은 트렌토 공의회때 보편 공의회(세계 공의회)의 레벨로 재확인 되었다.
  • 가톨릭교회는 정치적으로 진보 성향이다.
    • 한국과 라틴 아메리카의 성직자들의 진보 성향이 전체적으로 강한 건 사실이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성직자들 개개인의 정치 성향이 진보로 기울어진 것이지 가톨릭 교회 그 자체는 특정 정치성향을 공식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 진보적인 성향으로 평가받는 프란치스코 교황 역시도 어디까지나 개인 자격으로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일 뿐, 교황의 수위권 혹은 교도권을 통하여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게 아니다. 가톨릭 교회는 부자와 가난한 자들이 모두 믿을 수 있는 보편적인 교회를 추구할 뿐, 피지배자만의 교회, 착취받는 자만의 교회 같은 것은 지향하지 않는다. 당장 신자 십수억 규모의 초거대 종파가, 공식적으로 특정 정치 성향을 교리적으로 지지한다면 가루가 되도록 까일 것이다(...) 그나마 가톨릭이 지지하는 정치 성향이 있다면 반전주의 정도.[221] 가톨릭의 성향은 진보나 보수로 요약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다. 가령 정치적 진보 이미지가 있는 한국 가톨릭은 과거나 현재나 확고한 반공 스탠스이며,[222] 정치적 보수 이미지가 있는 유럽 가톨릭은 노동 운동과 깊게 연루되어 있다. 또한 바이마르 헌법[223]과 독일연방 기본법[224]에 명시된, 그리고 오늘날 대한민국 헌법과 민법의 재산권 개념을 관통하는 명제인 Eigentum verpflichtet(소유권은 의무를 수반한다)를 독일 주교 빌헬름 엠마누엘 폰 케텔러[225]가 주장하였다. 즉 가톨릭 교회 전체는 물론이고, 지역 교회도 정치적 보수나 진보로 요약하기는 힘들다.
    • 가톨릭 신자 중에는 보수 성향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박근혜 정부 시절 대통령경호처 군사관리관을 역임한 황대일 예) 중장, 황 장군의 동기이자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 시절 국가위기관리센터장을 역임한 김정수 예) 중장, 윤석열 정부 초대 국방부장관 이종섭, 현 국방부장관인 신원식 모두 독실한 가톨릭 신자이다.
  • 면벌부는 죄를 없애주는 문서이다.
    • 죄를 없애는 게 아니라 보속을 면제해 주는 것이다. 면벌부, 고해성사 문서를 참조하자.
  • 그리스도교, 특히 중세 가톨릭 교회 때문에 중세시대에 고대 로마 시대에서 기껏 발전시켜왔던 유럽의 문명을 지체시키고 퇴보시켰다.
    • 중세 문서 참조. 현재 역사학계에서는 이미 식은 떡밥이다.
  • 중세 가톨릭은 교리적으로 천동설을 공인했다.
    • 신학자들의 관심대상은 삼위일체론이 어떻고 실체변화가 어떻고였지, 저어기 우주에 박힌 별들이 아니었다. 교리적으로 천동설을 공인한 적은 없고, 단지 당시의 주류 자연철학 이론이던 천동설에 대해 '신학적으론 이러이러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다'고 이런저런 썰들을 붙였을 뿐이다. 즉 현대 가톨릭이 진화론을 보고 '신학적으로는 이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과 다를바가 없다. 갈릴레오의 종교재판의 경우 지동설 그 자체의 참-거짓 논증 때문이 아니라, 갈릴레오가 지동설을 주장하면서 야기된 일련의 정치적 사태에 대한 재판이었다. 더 자세히 언급하자면, 그의 저서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에 나오는 캐릭터 중 하나가 교황을 풍자한다는 루머 때문에 재판을 받았다.
  • 가톨릭은 예수 없이도 구원이 가능하다/가톨릭은 선행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 종교다/가톨릭은 가톨릭을 고의적으로 믿지 않아도 구원이 가능하다고 보는 개방적인 종교다.
    • 전형적인 보수 / 근본주의 개신교 진영의 마타도어이기도 하고, 근본주의 개신교 진영이 아니라도 생각보다 엄청나게 많은 비종교인들 역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가톨릭에 대한 대표적인 편견 및 고정관념 중 하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셋 다 틀렸다. 가톨릭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교리를 버린 적이 없으며 이는 애초에 전통적인 그리스도교 종파인 이상 앞으로도 영구히 포기할 수 없는 원칙이다. 또한 가톨릭은 선행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행위구원론을 이단으로 배격한다. 구원의 여정에 있어 선행의 중요성을 부정하지 않으나, 그리스도와 가톨릭교회에 대한 믿음은 없이 선행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한 오류이다. 마지막으로 가톨릭은, 가톨릭을 믿지 '못한' 비신자들의 구원 가능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톨릭에서 인정하는 구원의 가능성은 불가항력적인 무지나 불가능을 전제로 한다. 즉 시대적인 한계나 또는 물리적인 제약의 한계 등으로 복음을 듣지 못하거나 가톨릭을 믿지 못한 사람 중 자기 문화권의 양심을 최대한 지키고 선한 삶을 산 사람의 구원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일 뿐이고, 이 구원의 가능성이라는것도 타종교에 무슨 신적 권능이나 구원요소가 있어서가 아니라, 복음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와 능력 때문에 구원받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결정적으로, 가톨릭을 믿을 수 있는 상황(이미 선교를 접한 상황이라거나)에서 가톨릭 믿기를 고의적으로 거부한 비종교인/타종교/타종파인은 아무리 나름대로 선하게 살았다 주장하더라도 구원받을 수 없다.

      또 오해의 여지가 다분한 내용 중 하나는, "가톨릭은 어느 누구도 지옥에 갔다고 단언한 적이 없다"는 말인데, 말 자체는 사실이나, 이건 '가톨릭 교리 = 만인 구원설'이나 '하느님은 자비로우시니까 죄인들도 회개없이 다 구원받는다'는 식의 주장이 아니다. 가톨릭교회의 입장에서는 어떤 특정 사람이 죽어 지옥에 갔는지, 천국이나 연옥에 갔는지는 그 사람의 회개하는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는 이상 같은 인간의 능력으로선 파악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저 확답을 내리지 않고 그 사람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가톨릭에는 어떤 사람이 정확히 천국에 가고 어떤 사람이 정확히 지옥에 가는지의 확정된 기준이 없다"는 식의 글도 오류 중 하나인데, 특정 사람이 사후 지옥인지 천국행인지에 대한 확답을 지양할 뿐이지 사람들의 구원 범위와 여부에 대한 기준[226] 은 확실하고 분명하게 존재한다. Extra Ecclesiam nulla salus 참조.
  • 가톨릭 신자들은 교황청에서 인정한 성모 발현 기적들을 믿어야 된다.
    • 이건 의무적으로 믿을 필요는 없다. 자신이 믿기 어렵다면 믿지 않는다고 해도 신앙적으로 잘못이 아니다. 이렇게 '반드시 믿어야 할 의무는 없음'은 꼭 성모발현이 아니더라도 다른 천사나 성인의 발현, 환시 등의 사항에도 마찬가지다. 즉, 교황청에서 인정한다는 표현은 곧 "믿어도 괜찮다" 라는 거지 "믿어야 한다" 가 아니다.[227]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이른바 ‘사적’ 계시들이 있었고, 그중의 어떤 것들은 교회의 권위로 인정받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것들은 신앙의 유산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그리스도의 결정적 계시를 ‘개선’하거나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한 시대에서 계시에 따른 삶을 더욱 충만하게 살 수 있도록 돕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 교도권의 인도에 따라, 신자들은 신앙 감각으로 이러한 계시들 가운데에서 그리스도나 성인들께서 교회에 하신 진정한 호소를 식별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67항



      그러므로 사적 계시는 교회의 승인을 필요로 합니다. 자주 정신적 착란 현상과 혼동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거짓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적 계시가 교회의 승인을 받았다고 공적 계시가 되는 것도 아니요, 모든 신자들이 반드시 믿어야 할 신앙의 내용일 수도 없습니다.


      우리 시대의 큰 신학자였던 스킬레벡스는 사적 계시의 교회 승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습니다. “어떤 발현이나 사적 계시에 대한 교회의 승인은 … 그 역사적 진실이나 권위의 절대적인 오류가 없다는 입증이 결코 아니다. 그것은 다만 충분한 증거가 조사를 통해서 나왔고 그래서 우리가 이성적 바탕 위에서 발현의 신적 권위를 받아들이는 데 조심스럽게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비준하는 것에 불과하다. … 사실상 교회는 발현이 일어난 그 장소에서 마리아가 특별한 방법으로 공경을 받을 수 있다는 공식적 허락이상의 무엇을 주고 있지 않다. … 교회가 선언하는 것은 교회의 판단으로 그것이 신앙과 윤리적 가르침에 반대되는 것이 없고, 그리고 거기에는 인간적 신앙에 의해 이루어지는 조심스러운 승인과 그들의 신심을 위해 충분한 징후들이 있다는 것이 전부이다.”[228]



  • 가톨릭은 여자를 혐오하는 미소지니 기반의 종교이다?
    • 주로 페미니즘을 공부한 사람들이 오해하는 부분, 보통은 가톨릭에 국한되지 않고 그리스도교의 모든 종파들을 여혐종교라고 지칭한다. 그 이유를 천천히 들어보자면 이러한데, 첫 번째로 역사적으로 그리스도교는 여성을 차별하는 사상을 가지고 있어 그에 영향에 따라 오늘날에게 크게 영향을 끼쳤다라는 이유. 2번째는 여성 사제를 인정하지 않는 부분을 이유를 들어 여자를 혐오하는 종교라고 언급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여자를 혐오하는 사상을 전파하는 종교가 아니며, 문명권의 역사를 하나하나 짚어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오히려 여성들의 권위를 올려준 역할을 수행했고, 여성 사제를 허용하지 않는 것도 차별을 위한 것이 아니다.
    • 역사적 부분으로 보았을 때 로마 문명권에는 그리스도교가 국교로 선포되면서 이전에 상대적으로 미약했던 복지적인 부분을 상당히 많이 발전시켰는데, 보통 빈민 구제에 대한 부분이 중점이 되었고, 당대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소유물과 음식을 복지로써 하층민에게 도움을 주었고, 남성과 여성 모두 교사와 지도자가 될 수 있었다. 또한 그 중 부유한 여성들은 교회 성장에 크나큰 기여를 하였다. 병원과 수도원이 설립되면서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가난을 극복하지 못한 자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또한 그리스도교의 영향력 덕분에 모성애에 대한 부분이 크게 주목되었다.
    • 중세 초기~근세까지 집어보면 여성들이 군사적 지위를 가진 사례가 있다. 앞 항목에 언급된 것과 같이 그리스도교 신앙은 주님 앞에서는 성별, 지위의 구분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기반으로 전제하기 때문인데, 대표적인 예로는 교황청으로부터 직접 승인받은 영광의 마리아 기사단(Ordo Militiæ Mariæ Gloriosæ)이 있다. 군주의 역량에 따라 평민 여성들에게도 입단의 길을 열어줄 수 있도록 기사단을 창설하기도 했고, 이 외 유명한 튜튼기사단, 구호기사단과 같이 다양한 방향으로 입단할 수 있었다. 십자군 전쟁 당시에도 사라센 병력들의 기록에는 여성 성전기사단을 포로로 잡았다는 내용도 있다. 군사적 지위를 가지는 것은 국가의 재산과 안정을 수호하는 면에서 중요한 것으로, 성별을 떠나 여성들에게 신분에 상관없이 기회를 제공하도록 발판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사 문서를 참고하길 바란다.
    • 그리스도교 신앙이 지배했던 유럽은 아랍, 동양을 비교해봐도 여성 지도자의 숫자가 매우 많은 편이다. 가톨릭이 여성을 혐오하는 종교였다면 애초에 권력층에 올라설 수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특이하게도 살리카법을 언급하는 페미니스트들이 있는데, 살리카법은 가톨릭 교리가 아니라 위에서 언급된 게르만 국가였던 프랑크 왕국의 법이다. 이 살리카법이 시행된 배경에 대해서 이해하려면 이 시기의 시대적인 흐름에 대해서 많은 이해가 필요하다.[229]
    • 가톨릭 예비신자 교리서에 성모 마리아를 가장 존경하는 성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우리와 교회의 모범이신 마리아- (예비교리서 제 14과 109쪽으로부터)

      성모 마리아께서 낳으신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 하느님이시니, 마리아께서는 하느님의 어머니이시기도 합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순명의 정신으로 성령에 의한 동정 잉태를 받아들여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심으로써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였습니다... (중략) 그러므로 가톨릭교회에서는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 우리와 교회의 모범이신 성모 마리아를 가장 사랑하올 어머니로 받들며, 그분께 자녀다운 효성을 바치는 것입니다. (교회헌장, 53항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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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문화

흔히 개신교를 믿는 것을 '교회 다닌다', 가톨릭을 믿는 것을 '성당 다닌다'고 해서 가톨릭에서는 교회라는 말을 쓰지 않는 것으로 착각하는데 아니다. 가톨릭에서 '교회'라는 용어는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에 나오는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라는 추상적인 개념으로, 교회 건물이 아닌 모든 신자들의 공동체임을 일컫기 때문이고, 교회가 모이는 장소가 '성당'이기 때문에 '성당에 다닌다'는 표현이 나온 것이다. 가톨릭의 헌법을 ‘교회법’이라고 부르는 것만 봐도.

개신교의 경우, 일제강점기만 해도 교회라는 단어를 가톨릭과 같은 용법으로 사용하고, '교회당(敎會堂)', 예배당' 등의 단어를 사용했으나, 이후 용법이 변화해서 현재와 같이 되었다. 물론 개신교에서도 교리적으로는 교회는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성도들의 모임으로 정의한다. 일단 한국에서 성당이라고 부르는 곳에 가서 간판을 보면 '교회'라는 명칭을 쓰는 곳이 더 많다.[230] 오늘날에 가톨릭 교회를 성당이라고 부르는 것은 개신교의 교회와 혼동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목적이 크다. 구분하자면 교회는 개념, 성당은 그 교회가 모임 장소로 이용하는 건축물을 말한다.

해외에서의 가톨릭 교회도 성당(cathedral)이라고 표기하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 해외에서 사용하는 cathedral이라는 용어가 교회와 성당을 구분하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는 잘못된 것이다. cathedral은 정확히 주교좌 성당, 즉 대성당을 의미하는 것으로 교구 내의 일반 성당들은 그대로 church로 표기한다. 개신교회[231] 중에서도 과거 대성당이었던 곳을 개조해서 사용하거나,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교회들에 cathedral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서양의 가톨릭 교회의 경우 제일 붐비는 일요일 오전 10시 교중미사를 무조건 대성당에서만 거행되는데, 그러다보니 외국인인 한국인들은 대성당의 존재만 알고 있어 서양도 한국처럼 개신교회와 천주교회를 구분하는 걸로 인지하는 듯.

또한 천주교 성당이면 어디를 가든지 동일한 성경구절과 동일한 신학적 배경을 가진 곳이다. 성당마다 차이가 있는 것은 각 성당의 외형과 규모(크기), 신부님의 강론 스타일, 실내장식의 분위기 등 사소한 것들 뿐이다. (같은 교파라도) 목사장로들의 성향에 따라 분위기가 매우 다른 개신교 교회와는 차이가 있다. 개신교의 경우 이사를 가더라도 이전까지 다니던 교회를 계속 출석하는 경우도 많고, 이사를 가지 않더라도 교파와 목회자의 스타일 내지는 이런저런 이유로 교회를 옮기는 경우도 있다(교인 수평이동). 그러나 천주교의 경우 집 근처의 성당에 다니는 것이 원칙으로 되어 있고, 굳이 집에서 먼 성당에 다닐 이유가 없다. 물론 이사간 동네가 이전 동네와 가까울 경우 교구가 다르지만 성당을 옮기지 않는 경우도 왕왕 있다. 물론 개신교의 경우 교회들마다 따로 헌금을 받아 운영하기 때문에, 헌금 수입의 감소 등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교회 자체적으로도 신자의 이탈을 꺼리기도 한다. 또한 개신교 신자들은 교회에서 집사, 권사, 장로 등의 직분을 받을 때 거액의 직분 헌금을 내는데, 그런 큰 돈을 내고 나면 다른 교회로 옮기기도 아깝다는 이유도 있다.

가톨릭은 신자들이 교리와 그 권장사항을 따르길 강하게 요청하지만, 신자들이 그 권장사항을 지키지 않는다고 외적으로 신앙을 박탈하는 경우는 현대에는 많이 없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가톨릭에서 '콘돔이나 루프, 정관수술 등의 인공피임을 금지한다'는 교리가 있지만, 최소한 한국 가톨릭의 신자들이 콘돔을 사용하든 말든 외적인 신앙생활에서 보이기에는 자기가 대놓고 이 사실을 밝히고 다니지 않는 이상 제재받지 않는다는 뜻이다.[232] 물론 참된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왜 콘돔 사용을 금하는지 그 뜻에 대해 고찰해 보아야 할 것이며, 그 뜻에 따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고해성사를 할 순 있어도, 현실에서 그런 사유로 가톨릭에서 따로 처벌하는 일은 찾기 힘들며 성당에서 추방되는 경우도 없다. 파문은 옛날에는 분명 신앙 외적인 부분에서도 한 사람을 나락으로 빠뜨리는 처분이었지만, 현대의 파문은 신자가 뉘우치고 돌아올 때까지 일시적으로 교회를 통한 은총을 유보하는 것에 가까우며, 파문 결정도 대단히 신중히 하며 나중에 복권될 기회도 충분히 준다.[233]

가톨릭에서는 선교를 권장하고 대단히 중요한 행위로 본다. 단, 포교행위를 함부로 하지는 않는다. 물론 가톨릭도 전교(포교)를 하고, 각종 외방전교회, 교황청 전교회를 비롯한 선교회들도 대단히 많으며, 선교 역사도 대단히 길다. 지정된 수도회수도자(수사/수녀)와 여기서 오래 훈련 받은[234] 소수의 평신도를 중심으로 해당 교구의 철저한 통제 하에 시행한다. 교육만 성실히 받으면 그 외 자격 조건은 없다. 하지만 대부/대모가 될 견진성사를 받은 사람을 권하는 편이다(이끌어 오는 사람의 대부/대모가 되는 일이 많으니까). 18세 이하의 청소년도 포교단 할동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긴 하나, 한국의 교육 현실 때문에 실제적으로 활동하는 곳은 보기 힘들다. 또 개인적 차원의 천주교 전교는 다른 종교들과 마찬가지로 칭찬받을 덕목이자 준 의무차원으로서 적극 권장한다.

포교와 전도는 분명히 칭송받을 덕목이다. 그러나 가톨릭에서는 그것이 곧바로 구원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선교는 좋은 것을 이웃과 나누려는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참된 복음은 말과 설득보다 모범적인 행동과 그리스도적인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 본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신자들의 삶에서 드러내는 실천이 곧 구원의 길이고 은총이고 선행이며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천주교인으로 주위에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곧 최고의 선교활동 중 하나라고 말씀하시는 신부님도 계신다.

한국 사회에서 80년대 중반 이후 가톨릭 교세가 크게 확장한 데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2번에 걸친 방한과 시성식 영향이 컸지만, 사회 약자를 돕고 정의로운 일에 나서며, 가르침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는 간접적인 포교가 예수천국 불신지옥 식의 막무가내식 협박성 포교와 달리 대중에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 것도 있다.

만약 십자가 짊어지고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친다거나, 길거리에서 휴대용 물티슈 나누어 주면서 '예수 믿고 구원 받으세요'하는 행위가 전교의 전부다라고 정의한다면, 가톨릭 교회는 그런 의미의 전교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다. 그렇지만 전교는 그리스도교 신앙인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사명이고 구원에 이르는 길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오 복음 28:20) 그리고 가톨릭 교회에서 전교를 정의한 성경 구절을 들자면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복음 13:35)가 그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원칙적으로 다른 종교의 예식을 허락하지 않는다. 가령 가톨릭 신자가 개신교 목사의 자녀와 성당에서 혼인성사를 올리면서 개신교식의 혼인예절을 하게 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문화적 존중 차원에서 이들의 예식을 비난하거나 탄압하지는 않으며, 전통 예식이라도 종교적인 의미가 퇴색된 경우에는 허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지난 시대에 저질렀던 탄압과 무자비에 대한 일종의 반성의 결과. 또한 그러한 문화를 가톨릭 속에 받아들인 것이다. 한국 천주교에는 미사 중에 국악곡을 부르는 경우도 있고 한복 입은 아기 예수성모 마리아의 상도 있으며, 아프리카에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빙글빙글 돌고 춤추면서 야외 미사를 드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가톨릭 신부가 되기 위한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철학은 물론이고 불교, 이슬람 등 타 종교에 대해서도 필히 공부하게 되어 있다. 예로 외국에 있는 한인 성당과 한인 절은 서로의 기념일에 화환을 보내기도 했다.

특히 예수회는 전통적으로 세속 학문과 철학 연구에 있어 전문적인 학자 사제들을 배출해왔다. 풍부하고 객관적인 내용으로 전세계 철학도들의 필독서인 철학사 시리즈의 저자가 영국예수회 신부 프레데릭 코플스톤(Frederick Copleston)일 정도. 그만큼 문화와 학문에 대한 개방성이 개신교에 비해 매우 크다고 평가된다. 광주광역시살레시오고등학교에서는 실제로 철학이라는 과목 명으로 학교의 재단인 살레시오 수도회 소속 수사님이 강의하는데, 개신교는 물론이거니와 이슬람, 불교, 유교에 대해서도 균형잡힌 내용을 담고 있다. 더 무서운 사실은 생물 과목을 강의하는 교사가 신부님이라는 것. 당연히 진화론을 부정하지도 않는다. 이 학교는 지나다니다 보면 전대 교장 신부님이 수레를 끌고 다니며 제초작업이나 나무를 다듬곤 하는 곳이기도 하다.

천주교는 조상제사조건부로 허용한다. 1939년, 교황 비오 12세가 "유교 문화권의 조상 제사는 민속적 관습일 뿐 가톨릭의 교리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고 새로이 규정하였기 때문이다. 단, 신위나 신주, 제방은 금하며 사진을 놓는 것만 허용된다. 자세한 것은 제사/종교별 입장의 천주교 문서 참조. 사진이 없어 제방을 놓아야 하는 경우는 신위(神位)라는 글자를 빼고 이름만 써야 한다. 그래서 사실 제사를 허용했다기보다는 토착화의 일환으로 조상 추도 의식 내지는 조상의 영혼을 위한 기도식을 제정했다고 보는 편이 맞다. 이는 유교에서 조상 혼백의 개념이 일반적인 신앙의 대상과는 거리가 상당히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유교에서 조상의 혼백은 숭배의 대상도 아니고 가문의 길흉화복과 전혀 무관하며, 단지 자식으로서 예를 갖추는 것 뿐이다. 공자가 "괴력난신에 대해서 논하지 말라"고 못 박은 것도 이런 취지이다. 조상의 혼백이 길흉화복과 연관된다는 믿음은 도교와 민간 신앙이 뒤섞이면서 발생한 것이다.

물론 유교에서도 조상이 돌아가시더라도 예를 다해 잘 모시면 선한 행동이 보답받는다는 정도의 믿음은 있지만 그 정도는 타협 가능한 수준이고, 기복만을 위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유교에서도 대차게 비판받는다. 오로지 보상 정도로만. 일본에서는 신사 참배도 동일한 맥락으로 허용한다.

사실 조상을 추모하는 의식은 서양에서도 있다. 마을 어귀의 가족묘지에 기도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정도의 추모 의식이 그것이다. 다만 묘지가 아니고 집에서, 묘비가 아니고 신위 앞에서, 묵념이 아니고 절을 하고, 저녁 음식이 아닌 제사상의 음식을 나눠 먹는다는 점에서 단순한 추모를 넘어선 우상숭배라는 오해를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1791년 순교한 복자 윤지충 바오로의 공초에서 이러한 개념이 상충하면서도 대립하는 요상한 컬처 쇼크를 볼 수 있다.
문초관 : 네 죄목은 신주를 불태운 것. 죽을 죄를 지었지?
윤지충 : 천주학 역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누가 나무 쪼가리가 내 부모라고 가르쳤습니까?
문초관 : 여기가 서양이면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는데 여기는 조선이다.
윤지충 : 조선에서도 5대째 되면 신주를 불태웁니다.
문초관 : …4대까지가 성현이 정한 육신의 도리이다.
윤지충 : 그거 누가 정한 것입니까?[235]
문초관 : ……매우 쳐라!

그래서 아시아에서, 특히 한국에서 상당한 수의 순교자가 발생한 것도 영향이 있다. 지금의 한국 천주교에서는 유교적 요소를 제외한 명절의 차례 역시 교회 공동체의 일로 승화시켰고, 심지어 설이나 추석 때 성당에서 합동 차례를 지내기도 한다. 특히 설날에는 합동 차례가 끝난 뒤 주임신부가 세뱃돈을 나눠 주기도. 본래 주임신부 개인 돈으로 나눠주는 것이 원칙이라 한다.

이렇듯 현대의 천주교는 지역문화에 대해서 굉장히 관용적이고 현지화도 상당한데, 이는 천주교의 지향점이 '어느 국가 어느 민족이라도 믿을 수 있는 보편된(catholic) 교회'이기 때문이다.

상당히 논란이 되는 작품인 다빈치 코드에 대해서도, 그저 픽션적인 작품이라는 단순한 결론만 내려두고 신경쓰지 않는다. 금서라고 칭하거나 반박하는 일도 없다. 2009년에 교황청에서 찰스 로버트 다윈진화론에 대하여 인정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미 1950년경에 교황 비오 12세가 "진화론은 인간의 발전에 유용한 과학적 접근"이라고 긍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발언을 상기하면서, 이에 대해 창조론은 그에 발맞춰 다른 방향으로 해석 가능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교황청 부속기관인 로마 산타 크로체 대학의 신부이자 교수인 주세페 탄젤라 니티도 "4세기에 활동한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노나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책에서도 진화론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며 교황청의 견해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진화는 가설 이상의 사실"이라고 밝히며 "진화론이 가톨릭의 교의에 모순되지 않는다"고 말했기 때문에 공식적인 언급만 없다 뿐이지, 사실상 교황청진화론을 인정하고 있다.

다만 "하느님이 만물을 창조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는데, 이건 가톨릭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교 전체의 근본적인 교리이기 때문이다.[236]

가톨릭에는 수도회라는 독특한 문화가 존재한다. 특정한 구역에서 특정한 목표만을 추구하는 사제/수도자들의 모임을 일컫는다. 남자 수도자는 수사(修士), 여자 수도자는 수녀(修女)라고 하며, 수사들 중에는 성품성사를 받아 성직자이면서 동시에 수도자인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을 성직수사, 수도사제, 수사신부 등으로 부름) 메이저 수도회가르멜회, 예수회, 아우구스티노회, 프란치스코회, 베네딕토회, 도미니코회 등이 있다. 우리나라에는 남자 수도회가 약 30여 곳, 여자 수도회가 약 130여 곳이 있다. 생각보다 매우 많다. 우리가 볼 수 있는 대부분의 신부수녀는 교구 소속 신부이거나 교구에 파견된 수녀이며, 수도회 소속 신부/수사/수녀는 대외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수도회이거나 특정한 목적의 외출이 아니면 수도회 밖으로 나오는 일이 매우 드물기 때문에 보기가 힘들다.

봉쇄수도원이라고 하여 평생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물론 괴롭히려는 것이 아닌, 그만큼 철저한 구도(求道)와 봉사를 한다는 뜻이므로 오해는 하지 않도록 하자. 수도회를 다룬 작품 중에서는 카르투시오회에 관한 내용을 담은 《위대한 침묵》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매우 추천할 만하다. 물론 진짜로 수도원 담벼락 안에만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신자들과 신부들이 가지는 관계도, 개신교에서 신자들과 목사들이 가지는 관계와 다소 차이가 있다. 교리적으로 파고들면 개신교는 '교회의 권위란 적법한가?'에 대한 의문에서 분리된 종파이기에 '교회와 신자'라는 관계에 있어서는 가톨릭보다 신앙을 다소 개인주의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신부(목사)와 신자의 관계에서는 정반대의 경향이 나타나는데, 오히려 가톨릭이 개신교보다 이 관계를 덜 중시한다. 교구사제들은 몇 년마다 교구에서 다른 본당으로 뺑뺑이 돌리는 신세인 반면, 목사들은 자의로 이적하거나 숙청 당하지 않는 이상 해당 지역 신자들과 수십년씩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기 때문이다.[237] 또한 신자들이 교육을 받을 때도 가톨릭은 전세계가 동일한 교리를 공유하므로, 사제들이 가르치는 내용은 그 스타일에 차이점은 있을지언정 동일하다. 반면 개신교는 같은 교단 내에서도 목사들 개개인의 해석이 차이가 날 수 있고, 정말 심각하게 막 나가지 않는 이상 뭐라고 지적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서적 등을 통해서 공부한다고 하더라도 가톨릭 신자들은 일단 '가톨릭' 타이틀[238]만 제대로 붙어있다면 상대적으로 안심하고 읽는 경향이 있는 반면, 개신교 신자들은 자신이 배운 것과 다르지는 않는지, 혹시 문제 있는 목사의 서적은 아닌지 등등을 짚어가며 읽는 편이다. 때문에 가톨릭 신자의 경우 상대적으로 본당신부 이외에 정보를 취할 경로가 많으며, 본당신부와의 관계가 개신교 신자들이 목사와 가지는 관계와 차이가 있다.

비유하자면, 가톨릭의 신부는 초 거대 프랜차이즈에서 근무하는 언제든지 대체가능한 '직원'에 가깝고, 개신교의 목사는 어떤 특정한 협회에 소속된 '회원'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교단에서의 대우나 신자들과의 관계에서도 당연히 차이가 나는 것. 때문에 가톨릭 내부에서도 신부들과 신자들의 관계가 (개신교에 비해) 너무 냉랭한 게 아닌가 하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239]

가톨릭의 신부를 프랜차이즈의 가맹점 점주로, 개신교 목사를 자영업자로 비유하는 경우도 있는데, 어떤 비유든 본질을 파악하는데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다.

지금도 유럽 가톨릭교회에는 우리나라 개신교처럼 한 번 소임지가 정해지면 평생 그곳에서 사목하고 있는데, 이것과 우리나라처럼 일정기간 사목 후 정기적으로 이동하는 경우 일장일단이 있고, 어떤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다만 사제와 신자들 사이의 관계에는 일정한 간격이 필요한데, 이는 과거 성직자와 평신도는 엄격히 구별되어야 한다는 권위주의적인 사고가 아니라 사제와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맺어진 관계가 되어야지, 예수 그리스도는 배제된 채 사제와 신자 간의 인간적인 관계가 우선할 경우 위험할 수 있다. 또한 사제가 소수의 특정 신자들과 특별한 관계를 갖게 되면 공동체의 유지에 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앞서 언급된 것처럼 우리나라 사제들은 붙박이가 아니라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이동하기 때문에 사제와 신자들의 관계가 개신교 예배당과 같을 수 없다. 이러한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개신교 예배당 분위기에 익숙한 시각에서 보면 사제와 신자들의 관계가 냉랭하다는 오판할 수도 있다. 또한 이는 서로 다름의 문제이지, 비교의 문제는 아니다.

10.1. 한국 가톨릭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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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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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동아시아에서의 가톨릭

동아시아에서 가톨릭 신자 비율이 높은 지역은 대한민국, 마카오, 홍콩 등이 있다. 동아시아에서 가톨릭의 교세는 큰 편이 아니다. 일단 중국종교의 자유가 인정되지 않고, 북한은 아예 침묵의 교회이다. 대만일본은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지만 불교도교, 신토 같은 전통종교의 입지가 커서 가톨릭을 비롯한 그리스도교가 힘을 잘 쓰지 못한다. 마카오와 홍콩은 국가가 아닌 중국의 특별행정구로 일개도시 크기이기 때문에 인구가 적다. 그나마 가톨릭 교세가 가장 큰 곳이 대한민국이다. 대한민국의 가톨릭 신자 수는 600만명 안팎으로 아시아에서는 5위이며, 아시아 1~4위권은 인도와 동남아시아 국가들이다.

12.1.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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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 중국

명나라때 전래되었고, 명말 마테오 리치와 같은 고급 선교사들의 활약으로 지식인 층을 중심으로 선교되었으나, 대신급인 서광계 등이 가톨릭 신자였다. 이후 청나라가 대륙을 지배했어도 아담 샬 등 서양 선교사들은 계속 활동했다. 청나라 조정은 서양 선교사들의 지식을 환영하여 주세페 카스틸리오네처럼 황제의 측근이 되기도 하고, 베이징에는 천주교 성당이 여럿 세워지기도 했으나, 천주교의 포교는 대체적으로 꺼렸다.[240] 게다가 초기 예수회 선교사들은 유교의 천(天), 도교의 상제(上帝)를 천주교의 하느님으로 해석하여 중국전통의 개념을 천주교적으로 해석했는데, 이후 여러 교파의 선교사들이 중국에 와서 선교활동이 과열되다보니 예수회의 활동을 견제하기 위해 이런 예수회의 해석이 이단이라고 교황청에 고자질하였다. 결국 1715년 교황 클레멘스 11세는 회칙을 발표하여 이런 행위를 금지했고, 청나라는 이에 맞서 천주교를 공식적으로 금지하게 되고, 이런 조치는 19세기 아편전쟁에서 패해 해외 선교사 활동이 공식 허가될 때까지 계속된다.

아편전쟁 이후 서구열강의 침입이 본격적으로 개시되었고, 중국의 민족주의자들은 천주교-개신교를 모두 이런 서양의 앞잡이로 보았다. 그리하여 1949년 집권한 중국공산당은 모든 서방세력을 중국에서 몰아낼 것을 결정했고, 천주교-개신교도 그 대상이 되었다. 천주교 자체를 박멸하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서방 선교사들은 중국에서 추방되고, 천주교의 자산들은 국가로 몰수되었다. 그리고 각 그리스도교단들도 국가의 통제를 받도록 재조직되었다. 교황청이 중국 공산당 정부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톨릭 사제들도 중국공산당에서 자체적으로 임명한다. 이들의 집단을 '중국천주교애국회(中国天主教爱国会)'라고 한다. 이 천주교 애국회에 속하는 걸 거부하는 신부들은 감옥에 가거나 가택 연금되었다.

가톨릭 사제들은 모두 교황의 정식 승인을 받은 주교들이 임명해야 하지만 중국공산당은 자기들이 자체적으로 신부를 뽑아 임명한다. 심지어 주교 서품도 교황청의 승인없이 공산당에서 해버린다. 본디 성직자 서품, 특히 주교 서품에 대한 최종 승인은 교회법상 '전세계 주교단 단장'으로서의 교황이 행하는 고유한 권한이기 때문에 교회법상 명백한 불법이다.[241]

예전에는 이런 당의 통제에 반발하는 일부 가톨릭 신자들[242]은 정부 통제하의 교회가 아니라 지하교회에 나가고 있었다.[243] 하지만 중국도 점점 교단차원이 아니라 개인의 신앙에 대해서는 풀어주는 추세이며, 허가되지 않은 종교 모임(지하교회)가 금지되긴 하지만, 적발되면 수용소로 보내는게 아니라, 연행해서 조사하고 딱히 반정부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았으면 풀어주고 있다.[244] 중국에 성경을 밀반입하면 처벌된다는 주장이 있으나, 1950-60년대 이야기이고 현재는 중국의 인터넷 온라인몰에서도 성경 및 기타 종교 경전(쿠란)도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다.#

때문에 애국회라 불리는 관영 단체를 바티칸은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중국과 외교관계도 수립하지 않고 중화민국(대만)과 수교중이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07년에 "교회를 수하에 두려는 '국가단체'는 가톨릭 교의와 양립할 수 없다"는 입장을 천명하였다(참고: 중화인민공화국 가톨릭 교회의 주교와 신부, 봉헌된 이들과 평신도들에게 보내는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의 서한).

그러나 교황청으로서도 급속히 성장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국력을 무시할 수 없고, 애국회에 소속되어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들의 신앙심이 없는 것도 아니고 중국도 현재의 천주교도들은 중화인민공화국 출범 이후 태어난 사람들이 태반이라 딱히 반체제활동을 할 가능성도 적기 때문에, 교황청과 마찰을 빚으면서까지 가톨릭에 간섭할 필요도 없는 셈이라, 2000년대 이후로는 물밑에서 양측이 서로 의견을 교환한 후, 서로 합의된 인사들을 애국회가 임명하고, 교황청이 추인해주는 형식을 택하고 있다. 특히 주교에 관해서, 일단 애국회 소속으로 서품을 받았어도 교황청에 순명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주교들을 사후 승인하고 있다. 실제로 적지 않은 중국인들이 바티칸과 공산당 양쪽에서 인정받고 당당히 활동하고 있다. 2007년 기준으로 이런 의사를 전달하지 않은 '일부 극소수'[245] 주교가 있지만, 중국에 없는 것은 바티칸과 중국 공산당 양자가 모두 동의하는 주교회의이지, 양자에게 모두 합법적인 중국인 주교가 아니다.

이는 위에서 링크한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서한에서도 밝히고 있는 바이다.
일부 주교들은[246] 교회 생활에 대한 부당한 통제에 굴복하지 않고 베드로의 후계자와 가톨릭 교리에 온전히 충실하려는 열망에서 비밀리에 축성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밀스러운 상황은 교회 생활의 정상적인 특징이 아니며, 역사가 보여 주듯이, 목자들과 신자들이 이러한 방법에 의존해 온 것은 오로지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신앙을 온전하게 보존하고, 교회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되는 문제들에서 국가 기관의 간섭에 저항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교황청은 이러한 합법적인 목자들이 필요하다면 사회적 효력을 위해서도 정부 당국의 인정을 받고, 모든 신자가 자신이 살아가는 사회 환경 안에서 신앙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특수한 상황의 압력 아래 놓인 다른 목자들은[247] 교황의 위임 없이 주교품을 받는 데에 동의하였으나, 곧이어 베드로의 후계자와 다른 형제 주교들과 이루는 친교 안에 받아들여지기를 요청하였습니다. 교황은 그들의 성실한 마음과 복잡한 상황을 고려하고 이웃 주교들의 견해를 참작하여, 그들이 주교 재치권을 온전하고 합법적으로 수행하도록 교회의 보편 목자의 고유한 책임으로 허락하였습니다. 교황의 이러한 결정은 그들 축성의 특수 상황에 대한 이해와 완전한 친교를 재건하려는 깊은 사목적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경우에 사제와 신자들은 자신의 주교가 합법적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충분히 알지 못한 까닭에 여러 가지 심각한 양심의 문제가 생겨났습니다. 더욱이 인정받은 주교들 가운데 일부는 그들의 합법성을 입증할 분명한 표지를 제시하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까닭으로, 해당 교구 공동체의 영적 선익을 위하여, 일단 그러한 인정을 받았으면 되도록 빨리 공개되어야 하고, 인정받은 주교들은 베드로의 후계자와 이루는 온전한 친교의 확실한 표지를 점점 더 제시하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일부 극소수 주교들은[248] 교황의 위임 없이 서품을 받았고 필요한 법적 허가를 요청하지 않았거나 아직 받지 못하였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교리에 따라 이들은 합법적이지 않다고 여겨져야 하지만, 유효하게 서품된 주교들에게 성품을 받았고 가톨릭 주교 서품 예식이 존중된 것이 확실하다면 유효하게 서품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교황과 친교를 이루지는 않지만 성사 집전으로 비록 합법적이지는 않다 하여도 그들의 직무를 유효하게 수행합니다. 필요한 조건들이 성립되어 이러한 목자들도 베드로의 후계자와 모든 가톨릭 주교와 친교를 이룬다면 중국 교회가 얼마나 더 영적으로 풍요로워지겠습니까! 그러면 그들의 주교 직무가 합법화될 뿐만 아니라, 그들은 중국 교회가 로마 주교와 전 세계 다른 모든 개별 교회와 결합된 가톨릭 교회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사제와 신자들과도 더욱 풍요로운 친교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중화인민공화국 가톨릭 교회의 주교와 신부, 봉헌된 이들과 평신도들에게 보내는 베네딕토 16세 교황 성하의 서한〉
교황청은 지난해 9월 22일 중국과 주교 임명에 관한 ‘잠정협약’에 서명했다. 이 협약으로 교황청은 불법으로 서품된 중국 주교 7명을 인정했고, 이들을 각각 교구장 주교로 임명했다. 현재 중국의 모든 주교들은 교황청과 중국 정부 모두에게 인정받고 있다. 협약 이후 중국에 새로 임명된 주교는 아직 없다.
2019년 3월 10일 가톨릭신문 기사

더군다나 위 기사가 나왔던 시기를 기준으로 한다면, 모든 주교들은 교황청과 중국 정부 모두에게 인정받고 있었다.

따라서 애국회의 사람들을 모조리 '가톨릭 신자가 아니다'라고 취급해버리는 것은 가톨릭 입장에서도 옳지 않다. 이 단체의 구성원들을 교회법적 합법으로 끌어안는 것은 바티칸이든 중국 공산당이든 오래 전부터 원하고 있는 바이며, 서로 동의한다.

다만 대화가 막히는 주제는 2가지로, '주교 서품권'과 '바티칸-중화민국(대만) 관계'이다. 이러한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몇몇 언론들이 관영 단체에 대한 바티칸의 호의적 태도를 마치 교황청이 굴복한 것처럼 간주하면서 오해를 낳고는 하는데, 교황청은 주교 서품권을 포기한다고도 중화민국(대만)과 단교한다고도 발표한 적이 없다. 이미 공산 국가인 베트남에서도 바티칸과 베트남 공산당 양측이 동의하는 주교들이 당당히 활동하고 있기에, 바티칸과 공산당 양측의 동의를 얻는 주교라는 개념은 전례 없는 일이 아니다. (참조 기사번역)
In mainland China, there are also some bishops of the clandestine churches not yet recognized by the government. Some may still be living in situations deprived of freedom and are unable to exercise their episcopal ministry. Consequently, a future bishops’ conference in China would have to include all the legitimate bishops of the open Church as well as the clandestine bishops.To strive for and protect the legitimate authority of the bishops of the clandestine churches in China, Rome should also conduct a dialogue in order that these bishops be recognized by the government as legitimate. Some people are worried that the illegitimate bishops are being treated with excessive leniency in Sino-Vatican negotiations puts the principles of faith and communion of the church in second place. Such worries are unnecessary.If the Holy See has any intention of forsaking the principles of faith and communion of the church, there would actually be no need for it to dialogue and negotiate with the Chinese government. The unceasing dialogue actually represents the unwavering stance of the Holy See towards this question.

중국 본토에는 정부에 의해 아직 인정받지 못한 비밀 교회들에 속한 주교들도 있다. 일부는 아직도 자유를 빼앗긴 상태에 살고 있을 수 있으며, 자신들의 주교 직무를 실행할 수 없다. 그 결과, 장래의 중국 주교회의는 공식교회의 모든 합법 주교는 물론 이들 지하교회 주교들도 포함시켜야 할 것이다.(편집자 주[249]- 공식교회의 상당수 주교는 주교 서품 전후에 교황청과 의사소통을 통해 합법 주교로 인정받은 상태이다.)
중국에 있는 지하교회 주교들의 합법적 권한을 추구하고 보호하기 위해, 로마는 이들이 정부에 의해 합법으로 인정받도록 하는 대화를 실행해야 한다. 일부 사람들은 이들 합법 주교가 중국과의 대화 속에서 (교황청이) 너무 양보함으로써 교회의 일치와 신앙이라는 원칙들이 뒤로 밀리는 가운데 처리되고 있다고 걱정한다. 그런 염려는 불필요하다.
만약 교황청이 교회의 일치와 신앙의 원칙들을 내버릴 생각이 있다면 중국 정부와 대화하고 협상할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끊임없이 대화를 해왔다는 것 자체가 이런 물음에 대한 교황청의 확고한 입장을 대변한다.
통혼 추기경, 홍콩
원문번역

또한 지하교회가 처한 어려움은 당면한 현실이며, 이들에게 '이대로가 좋으니 그대로만 있어다오'라고 생각하는 것은 가톨릭적 관점에서 옳다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바티칸 입장에서는 하루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교황청과 중국 당국의 대화는 오랫동안 이루어지고 있으며, 베트남 등 여러 특수한 사례들을 참조하여 주교 서품이 논의되고 있다.

한편 중국 영토이지만 특별행정구인 홍콩, 마카오 교구는 로마 교황청의 정상적 수위권 아래 놓여 있다. 그래서 중국 추기경은 본토가 아닌 홍콩의 추기경과 마카오 추기경, 대만 추기경의 3인으로 치기도 한다.

홍콩마카오그리스도교가 교세가 큰 편으로, 가톨릭/개신교 합쳐 2016년 기준 700만 인구 중에서 적어도 12% 이상인 87만 명이나 되는 그리스도교 신자가 있다. 이 정도 숫자면 센트럴의 거리 하나는 그냥 매꾸어 버리는 규모로, 그 중에서도 과반수가 가톨릭을 믿고 나머지는 성공회장로회 등 개신교다. 홍콩에서 가톨릭은 개신교 교단인 성공회, 루터회, 침례교 등과 함께 사립학교 대부분을 갖고 있으며, 최근 우산혁명이나 범죄인 인도법 반대시위 등 민주화 운동에도 그리스도교가 적극 참가해 젊은 층으로부터 민주화 종교라며 호응을 좋게 얻고 있다. 홍콩교회는 반공 및 진보 성향이 강한 편으로 젊은 층 중에서 최근 들어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다가 그리스도교를 믿게 되는 층도 많다. 당장 홍콩 범죄인 인도법 반대 시위에서 불리는 민중가요는 Glory to Hong Kong이라는 노래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는 집회에선 Sing Hallelujah to the Lord라는 성가도 많이 불린다. 홍콩 가톨릭의 경우 사회적 영향력도 강한 편이다. 홍콩 섬 완차이에는 가톨릭 교도 공동묘지가 해피밸리(Happy Valley) 쪽에 있다.[250]

마카오는 아시아 최초로 주교를 맞이한 곳으로 포르투갈인과 중국인의 혼혈 중국인인 마카이엔사는 대대로 가톨릭 신자들이며 도미니코회 로사리오 관구가[251] 마카오에 있고, 마카오의 성 요셉 신학교에서 도미니코회원들이 양성되고 있다. 그리고 마카오 인구 대부분을 차지하는 대륙인들도 토착 마카이엔사들과 섞이게 되고 영향을 받으며 조금씩이나마 가톨릭 신자가 되고 있다.

12.3. 대만

파일:대만천주교주교회의.png 대만의 천주교 교구
타이베이관구 타이베이 · 가오슝 · 신주 · 화롄 · 자이 · 타이중 · 타이난
교황청 직속 진먼-마쭈
밑줄: 대교구

가톨릭의 본산인 바티칸중화민국, 즉 현재 대만을 실효지배하는 정부의 얼마 남지 않은 수교국이자 유럽에서는 유일한 수교국이기도 하고, 중국 대륙을 다스리는 공산정부인 중화인민공화국과 바티칸의 마찰로 인해 대만 가톨릭의 입지는 중국 본토에 비해 그나마 좋은 편이다.

하지만 수적으로 대만의 가톨릭 신자는 전체 종교인 비율 중 아주 소수인데, 2010년대 기준으로 많은 통계들이 대만내 가톨릭 신자를 1~2% 대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다만 마잉주 전 총통이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대만은 전통적으로 전통 종교의 교세가 강했던 곳으로 70%의 대다수 인구는 유교와 도교와 불교 그리고 대만 원주민의 토속 신앙 등이 섞인 혼합 전통종교를 믿고 있다. 이외에는 불교의 교세도 상당히 강하다. 이런 이유로 그리스도교가 들어갈 여지가 크지 않은 상황이다.

이외에는 하나의 중국을 비롯한 양안관계와 바티칸과 중국 그리고 바티칸과 대만의 관계도 대만 가톨릭 교회에 있어서 주목할 점이다. 프란체스코 교황 즉위 이후 중화민국(대만)과 단교하고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수교하려는 움직임을 보인 바 있는데, 이는 대만의 가톨릭 인구가 적으니 차라리 중국과 수교하여 이미 대만 내 가톨릭 신자보다 더 많은 신자를 두고 있는 중국과 홍콩/마카오 내 가톨릭 교회를 중국 공산당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중국인들을 상대로 포교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 입각한 것이었다. 하지만 종교적 자유가 보장된 대만과 달리 중국 내 가톨릭 교회는 지하 교회를 제외한 공식 교회들은 사실상 중국 공산당의 어용 교회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고, 수교를 위해 중국 공산당이 추천한 인물을 주교로 임명하겠다고 약속한 것이 알려지며 사실상 중국 공산당에 주교 서임권을 내줬다는 비판을 듣고 있는 중이다. 또한 중국 측에서는 바티칸에 하나의 중국의 원칙에 따라 중국과 수교하기 위해서는 바티칸도 대만과 단교하라 주장하고 있는 중인데, 만약 이에 따라 바티칸이 대만과 단교할 경우 대만 내 가톨릭에 대한 이미지는 상당히 안 좋아질 것으로 보인다.

12.4. 일본

파일:일본천주교주교회의 로고.png 일본의 천주교 교구
도쿄관구 도쿄 · 삿포로 · 센다이 · 니가타 · 사이타마 · 요코하마
오사카관구 오사카타카마쓰 · 나고야 · 교토 · 히로시마
나가사키관구 나가사키 · 후쿠오카 · 오이타 · 가고시마 · 나하
밑줄: 대교구


센코쿠 시대 무렵 일본과 무역을 하던 스페인, 포르투갈의 예수회 선교사들로부터 전래되었다. 센코쿠 시대의 다이묘들은 서양 세력과의 무역으로 이득을 챙기기 위해 가톨릭 전래를 허가하였고, 직접 로마에 가서 교황을 만난 덴쇼 소년사절단도 있다. 오토모 소린이나 다카야마 우콘(2017년 시복), 이치죠 카네사다, 고니시 유키나가, 소 요시토시, 구로다 조스이 등 스스로 가톨릭 신자가 되는 다이묘도 있었다. 이 때 개종한 사람들은 일본에서 키리시탄으로 불렸고, 다이묘의 경우는 키리시탄 다이묘라 불렸다. 조선보다 일찍, 선교사에게 직접 전래받았던 터라, 안정적으로 교세를 넓힐 수 있었다. 하지만 시마바라의 난이 발생하고 진압된 이후 에도 막부와 각 번의 영주들에 의해 일본 전역에서 박해가 이뤄졌다. 이 내용은 카쿠레키리시탄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세속주의의 영향 등으로 무종교 비율이 높은 동아시아권임을 고려해도 일본의 가톨릭은 독보적으로 비중이 낮다. 모든 그리스도교 종파를 합쳐도 전체 인구의 약 1% ~ 2% 수준에서 오르내리는데 그치며 가톨릭만을 고려하면 2013년 기준으로 44만명 수준이라 0.3% 남짓에 불과하다. 신자는 전국적으로 고르게 분포하는 편이며 예외적으로 카쿠레키리시탄의 영향이 있는 나가사키 교구는 인구대비 신자 수가 4% 수준으로 상대적으로 높다.

역대 추기경은 6명이 있었으며 최초의 일본인 추기경인 도이 타츠오 베드로(도쿄 대주교) 추기경을 시작으로 타구치 요시고로 바오로(오사카 대주교), 사토와키 아사지로 요셉(나가사키 대주교), 시라야나기 세이이치 베드로(도쿄 대주교), 하마오 후미오 스테파노(요코하마 주교), 마에다 만요 토마스 아퀴나스(오사카 대주교) 순으로 서임되었다.

이 가운데 도이 베드로 추기경은 1963년 콘클라베(바오로 6세)에, 시라야나기 베드로 추기경과 하마오 스테파노 추기경은 2005년 콘클라베(베네딕토 16세)에 각각 참여한 바 있다. 현행 추기경은 마에다 토마스 아퀴나스 추기경이 재임중이다.

일본은 신토불교의 입지가 매우 크고, 이 두 종교를 제외한 종교들에 대해 일본인들은 대체적으로 무관심한 편이다. 이 때문에 일본인들은 일반적으로 가톨릭을 비롯한 그리스도교를 다른 나라의 문화나 종교라고 생각하고 별 관심을 두지 않으며 다른 종교로의 개종 의지 또한 크지 않기 때문에 포교에 어려움이 크다.

한 때 한국 사회에서 차별받던 백정들 사이에서 가톨릭을 믿게 된 경우가 많았던 것처럼, 한 때 일본 사회에서 차별받던 부라쿠민 계층이 만인 평등을 내세워 선교하던 가톨릭을 받아들여 그들 사이에서 퍼진 일도 있다. 20세기 말~21세기에 접어들며 부라쿠민이 일본 사회에 동화됨에 따라 부라쿠민 대상 선교 운동은 사실상 중단되었다.

일본은 가톨릭 교구 설정의 역사가 한국보다 오래되다 보니, 한국 천주교와 다르게 전교 지역이 아니라서 인류복음화성이 아닌 주교성 관할지역에 속한다. 하지만 한국 천주교는 일본에 선교 사제를 보내는 관구 중 하나다. 일본은 신자 및 사제의 부족으로 교구 아래 소교구는 공동선교지구로 운영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 경우 본당의 주임이 부임하지 않고 선교 사제와 교구사제 몇 명이 공동으로 여러 본당을 담당한다.

신학교는 도쿄 가톨릭 신학원과 후쿠오카 가톨릭 신학원 2곳이 있다. 도쿄 가톨릭 신학원이 도쿄관구와 오사카관구의 사제 양성을 담당하고 후쿠오카 가톨릭 신학원이 나가사키관구의 사제 양성을 담당한다. 이 두 학교는 2009년 일본 가톨릭 신학원 도쿄 캠퍼스와 후쿠오카 캠퍼스로 잠시 통합되어 철학과 1~2학년(1~2학년)과 부제 과정(6학년)는 도쿄 캠퍼스에서, 신학과 1~3학년(3~5학년)은 후쿠오카에서 양성을 담당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운영상의 문제가 지적되어 한쪽 캠퍼스를 폐지하는 안이 논의되었으나 두 신학교의 역사를 모두 존중하여 2019년 다시 분교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일본에 대해서는 대중 영상 매체의 영향으로 가톨릭계 사립학교 아이들은 절대적으로 선량하다고 인식하는 경향이 꽤 있다.

13. 비판

가톨릭은 흔히 중세=암흑기라는 공식과는 다르게 로마시대의 문화 지식을 보존함과 동시에 빈민구제 등으로 한때는 유럽사회의 정체성 확립에 큰 역할을 하였으나 절대권력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말처럼 안정기에 들어서면서 타락하기 시작하였고 특히 왕과 제후 등 세속세력과 손잡고 또하나의 지배층으로 군림하기 시작했다는 비판이 종종 가해지지만, 이는 중세사를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파악한 것이다.

'교계', 곧 성직자들이 중세의 정치 권력과 사회 권력을 가지고 있던 건 사실이지만 기본적으로 역사학계는 '지배자 = 착취자'라는 단순 논리에 결코 동의하지 않으며, 애당초 가톨릭 교회가 중세 내내 단일한 성격의 집단으로 남아있었던것도 아니고,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일괄적으로 타락했던 것도 아니다. 수도원 운동을 비롯한 교회 내의 쇄신운동은 중세 내내 지속되었던 운동이었다.

또한 '왕과 제후 등 세속세력과 손잡고'도 사실을 과도하게 단순화한 서술이다. 세속 권력층과 손을 잡거나 대립하는 문제는 각 개별 사안과 시대마다 판이하게 달랐다. 그리고 개혁적 성향의 교황이나 주교들은 세속 권력과도 대립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근대 무렵에 제국주의의 선봉이었다는 것도 지나치게 상황을 단순화한 것이다. 선교가 식민정책에 이용될 수는 있지만, 선교사와 정치적 침략자의 이해관계는 명백히 달랐다. 당장 정치적 관점에서 보면 가톨릭 교회가 '원주민' 사제를 양성하는 것 부터가 침략자에게 역효과를 내는 행위였고, 실제로 (특히 파리외방전교회처럼 비교적 나중에 생겨난 선교 단체일 수록)[252] 대놓고 원주민 성직자 양성을 강조하여 제국주의와는 거리를 두었다.[253]

또한 근대 초에는 아메리카에서 노예제 퇴출 운동을 벌였다. 비록 이런 노력이 '현장의 어려움을 이해 못하는 책상물림들의 먹물 놀음'으로 여겨져 성공을 거주진 못했으나, 앵글로 아메리카에 비해 라틴 아메리카의 노예제는 점차 덜 가혹해져갔다. 곧 영국 식민지에서 노예가 법적인 사유재산으로 간주된 반면, 에스파냐 식민지의 노예는 계약직 하인제도와 탈법적 관행 등이 섞인 훨씬 복잡한 '현상'이었다.
왕과 교회는 다른 사유 재산권과 마찬가지로 노예 문제에도 개입할 수 있었고, 그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실제로 개입했다. 로마 가톨릭에서는 노예제도를 필요악으로 보았다. 아프리카인이라고 영혼이 없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라틴아메리카 농장 노예는 버지니아 담배 농장 노예보다 자유를 얻기가 더 쉬웠다. 실제로 브라질 동부 바이아의 노예들은 돈을 주고 자유를 찾기도 했다. 1872년까지 브라질에서는 흑인과 물라토 인구의 4분의 3이 자유를 얻었다. 쿠바와 멕시코에서는 노예가 자기 몸값을 정하고 그 돈을 다달이 나누어 갚는 방식으로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브라질 노예들은 영국령 서인도 노예들보다 더 많이 (매주 일요일과 성축일 35일) 쉴 수 있었다. 브라질을 시작으로 노예의 토지 소유권을 인정하는 것이 라틴아메리카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노예법은 점차 덜 가혹한 방향으로 개선되었다.
북아메리카 노예 소유주들은 자기에게 인간이든 토지든 자기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1760년 무렵 노예인구가 영국계 미국인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할 정도로 증가하자 이들은 계약 기간이 보통 5~6년으로 정해진 백인 계약 노동자와 평생 주인 소유인 흑인 노예 사이에 분명한 선을 그었다. 1663년 제정된 메릴랜드 법에 이것이 잘 반영돼 있다. “이 지방의 모든 흑인 또는 다른 인종 노예는 … 평생 주인을 섬겨야 하며 흑인이나 다른 인종 노예의 모든 자식은 그의 아버지처럼 노예가 된다.” 북아메리카 노예제도는 점점 더 엄격해졌다. 1669년의 버지니아 법에서는 주인이 자기 소유 노예를 죽이는 것은 중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1726년 사우스캐롤라이나 법에는 노예가 ‘재산(나중에 ‘순수동산으로’ 바뀜)’이라고 분명히 못 박고 있다. 육체적 형벌이 허용된 것은 물론 법으로 성문화되어 있었다. 사정이 이러자 캐롤라이나에서 도망친 노예들이 국경을 넘어 스페인령 플로리다로 도망가는 일이 빈번해졌다. 플로리다 정부는 노예에게 자율적인 정착지 건설을 허용했고 가톨릭교로 개종하는 것도 인정해주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보았듯 영국령 국가에서 노예들이 죽어나갔던 것과 비교하면 이것은 정말 놀라운 발전이었다. 버지니아의 한 치안판사는 ‘흑인 노예제도’ 핵심에 흐르는 긴장감을 다음과 같이 훌륭하게 포착했다. “노예는 재산일 뿐 아니라 이성적 존재이기도 하므로, 주인의 ‘재산권이 침해되지 않는 범위’에서는 법정에서 그 인간성을 인정받는다.”
-니얼 퍼거슨[254] 지음. 구세희,김정희 번역. "시빌라이제이션"(CIVILIZATION : The West and the Rest)
본인이 전해 들은 소식은 ... 로마 황제인 카를 5세가 ... 탐욕에 광분한 나머지 인종에 반대하는 비인간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을 억누르기 위하여 공적인 법령으로 그에게 예속된 모든 이에게 서인도인들이나 남인도인들을 노예의 신분으로 만들거나 감히 그들의 재산을 약탈을 하지 못하도록 금지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인은 이 인도인들이 인간이며 따라서 신앙을 가져 구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교회의 품 밖에 있더라도 그들의 자유나 그들의 소유에 대한 주권이 빼앗기거나 주권을 빼앗아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고, 그들이 노예 제도로 말미암아 절멸되지 않고 오히려 설교와 모범으로 생명에 초대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또한 그러한 불경한 인간들의 포악한 감행을 억눌러, 부정과 불행으로 비참해진 토착민들이 그리스도 신앙을 받아들이는 성향을 갖도록 배려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본인은 신중하신 주교님께 ... 위임하는 바, 주교님께서는 ... 어떤 신분에 위치하든 모든 이에게 어떤 방법으로든 위에서 언급한 인도인들을 제멋대로 노예 신분으로 만들거나 그들의 재산을 약탈하지 못하도록 파문벌로 ... 엄격하게 금지하십시오.
교황 바오로 3세가 톨레도의 대주교에게 보낸 소칙서 《Pastrorale officium》, 1537년 5월 29일[255][256]

그리고 마녀사냥에 대해서도 이해가 피상적인 사람들은 가톨릭에 그 비판의 화살을 돌리는 경우가 있다. 이런식의 피상적인 이해는 중세 말기에서 근대 초기까지의 사건들을 대충 마녀사냥과 얼기설기 엮어서 '교회의 권위를 되찾고 사회 불만의 방향을 돌리기 위해 마녀 사냥을 행했다'는 식으로 성급한 결론을 내는데, 이 역시도 현재 역사학 연구 성과를 조금이라도 알면 그런 쉬운 단순화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일단 근대 초기의 마녀사냥은 대부분 세속권력에 의해 행해졌고, 교회법정은 오히려 소극적이었다. 심지어 가톨릭권보다도 개신교 국가였던 스코틀랜드, 독일 지역들, 북아메리카에서도 광범위하게 행해졌다. 교회법에 의한 이단재판소가 가장 활발했던 스페인, 이탈리아 등지에서 오히려 마녀 사냥이 가장 적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마지막 마녀사냥'인 세일럼 마녀 재판은 가톨릭과는 거리가 먼 영국령 식민지 아메리카에서 일어났다. 때문에 마녀사냥의 원흉을 가톨릭 교회로 단순화할 수는 없다. 자세한 것은 Darren Oldridge (eds), The Witchcraft Reader (Routledge, 2019) 참고. 16-17세기 유럽의 학살은 결코 가톨릭 교회 혼자서 원흉 소리 들어가며 책임질 문제가 아니며, 한 집단에게 책임을 돌릴정도로 간단한 현상도 아니었다. 물론 중세 가톨릭 신학 혹은 대중신심이 근대 초의 가톨릭 신자들과 개신교 신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는 말할 수 있겠으나, 장 자크 루소에게 전체주의의 책임을 묻고, 프랑스 혁명소련의 책임을 묻는 식의 간접적인 방식만이 가능할 뿐이다.
가톨릭권 남유럽은 처형률이 가장 낮은 축에 들었고, 에스파냐 종교재판소는 로마 종교재판소와 마찬가지로 마녀들이 저지른다는 소행에 회의적이었다.
-Peter Marshall 지음. 이재만 옮김. "종교개혁"

2차대전 당시 우스타샤라는 크로아티아의 정교유착 파시스트들은 독일에 적극적으로 부역하며 세르비아 정교인 및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엄청난 전쟁범죄를 저질렀으며, 이는 남슬라브 지역의 종교 갈등과 깊은 연관이 있다. 이러한 진상을 무시한 채 한국 가톨릭계가 이들을 독립군으로까지 묘사하며 칭찬하는 왜곡기사를 쓴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당시 <기관총을 든 신부님>이라는 글로 이걸 통렬하게 까던 하영식 기자에게 일부 신부들은 지나친 표현이라고 적반하장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다만 일부에서 상황을 단순화하는 것처럼, 크로아티아 가톨릭 교계가 우스타샤에 적극 부역한 것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당시 교계의 우스타샤 비판이 사적인 영역에서 이뤄졌고, 공적으로 미온적이었다는 데 있다.[257]

또한 스페인 내전 당시 스페인의 가톨릭계는 프란시스코 프랑코의 권위주의 반군을 지지했으며 이후 프랑코가 죽을 때까지 강압적인 독재를 하여 많은 피해자들이 나올 때도 스페인의 주류 가톨릭 고위층에선 침묵했다. 물론 스페인 내전 이전 때부터 공화정부가 성직자들과 신자들을 학살하는 경우도 있는 등 가톨릭 교회를 강력하게 탄압해서 내전 당시에 프랑코 편에 선 것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258]

게다가 스페인 가톨릭에서 프랑코 정권에 대해 아주 지지만 한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바스크 지방의 가톨릭 교회는 스페인 내전 때부터 오히려 가톨릭 교회를 탄압한 공화전선의 편이었고, 다른 스페인 가톨릭 교회와 성직자들도 프랑코 집권 이후에는 종종 몇몇 성직자들이 쓴 소리를 하고 프랑코의 독재 통치에 간접적으로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프랑코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는 했다. 가톨릭의 수호자라고 프랑코 스스로가 떠든 바람에 이들을 대놓고 탄압은 못했다. 그리고 프랑코가 늙어 죽어가던 집권 말기 땐 결국 스페인 가톨릭 주요 성직자들까지도 프랑코의 독재에 불만을 드러냈다. # 반공정책을 펴고 가톨릭을 수호했다고 하지만 자유와 인권을 억압한 프랑코의 강압적이고 비상식적인 독재 통치에 스페인 가톨릭 교회조차도 결국 엄청난 염증과 답답함을 느꼈다는 얘기.

무엇보다 오해해선 안되는 것이, 친프랑코 행보 등만을 보고 19-20세기 초 가톨릭의 정치 성향을 '반동' 한 단어로 요약해서는 안된다. 프랑코에 협력하기도 했지만, 한편 독일에선 케틀러(Wilhelm Emmanuel von Ketteler, 1811-1877) 주교[259]가 노동 운동에 헌신했고[260] 바티칸에선 레오 13세가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를 발표하여 유럽권 노동 운동의 새 장을 열었던 게 당시 가톨릭이다.[261] 당장 독일연방공화국 기본법 제14조 2항 및 바이마르 헌법 제153조 3항에 박혀있고 간접적으로 대한민국 헌법 및 민법의 재산권 개념을 관통하는 다음 문장부터가 케틀러 주교의 주장이다.
Eigentum verpflichtet
(소유권은 의무를 수반한다)
그리고 레오 13세의 노동관은 당대 '우파'와 일치하지 않았다
흔히 말하기를 임금은 고용주와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합의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고용주는 합의된 임금을 지불함으로써 할 바를 다하고 그 이상의 것은 아무것도 더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고용주가 합의한 임금 전부를 지불하지 않거나 노동자가 계약한 작업을 완수하지 않을 경우에만 불의가 저질러지며 또한 고용주와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만 국가의 개입이 정당할 뿐이고 그 밖의 다른 경우에는 절대 허용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이런 논리 전개는 공정한 판단을 내리는 사람에게 쉽게 납득되지도 않고 모든 사람에게도 인정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든 측면에서 사태를 관찰할 줄 모르고 또 결정적인 몇 가지 고려해야만 할 사항을 빠뜨리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한다는 것은 생활의 다양한 요구, 특히 생계 유지에 필요한 것을 마련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다. “이마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얻어 먹으리라.”(창세 3,19) 그러므로 인간의 노동은 인간이 날 때부터 타고난 두 가지 특성을 지니는데, 인격적인 특성과 필연적인 특성이 바로 그것이다. 인격적인 특성이라는 이유는 활동의 힘이 인격 안에 천부적으로 내포되어 있으며 그 힘을 발휘하고 활용하는 사람에게 전적으로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필연적인 특성이라 함은 노동의 결과가 인간이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수적이며 또 생명 보존이 자연에 의하여 부여된 불가피한 의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격적인 특성에 비추어서만 고찰해 본다면 노동자가 정당한 수준에 못미치는 임금으로 계약할 수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그가 노동을 원하는 만큼 제공할 수 있으므로, 그가 원해서 적은 임금에 만족할 수도 있고 실제로 그것마저 포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격적인 특성과 함께 필연적인 특성도 고려되어야 하기 때문에 현실에 비추어 도저히 그렇게 할 수는 없다. 이 두 가지 특성은 논리상으로 구별되지만 실제로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사실 생명의 보존은 의무이고 이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은 죄악이므로 아무도 그 의무를 저버릴 수 없다. 여기에서 필연적으로 생계 유지를 위한 것을 취득할 권리가 나오며, 가난한 이는 노동으로 취득한 임금을 통해서만 그렇게 할 수 있다. 따라서 노동자와 고용주가 양자 합의로 계약을 체결하고 임금을 분명하게 결정하더라도, 쌍방간의 자유 의사를 우선하고 능가하는 기본적인 정의가 항상 반영되어야 한다. 임금은 노동자가 검소한 생활, 말하자면 최소한의 안락한 생활을 유지하는 데에 미흡해서는 안된다. 만일 노동자가 궁핍 때문에 강요되거나 더 큰 악이 두려워서 더욱 힘든 조건들을 받아들인다면, 또 원하지도 않는데 고용주와 기업주가 부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면, 그것은 폭력을 당하는 것이며, 이에 정의가 항의하는 것이다.
-교황 레오 13세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또한 19세기 독일의 문화투쟁의 경우 '세속주의와 교권주의의 대결'이라고 극도로 단순화되기는 하지만, 실상을 뜯어보면 가톨릭-개신교-좌익리버럴이 손잡고 비스마르크와 대결한 것이다.
1870년대 중반에 가서, 자유주의 좌파는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이 운동에 반대하기 시작했다. 갈수록 급진적인 반교회 운동의 조치는 독일 보수주의에서 '성직자' 분파를 형성한 많은 프로테스탄트에게 불안감을 주었다. 이들은 '문화투쟁'의 진정한 희생자는 가톨릭 교회나 가톨릭 정치가 아니라 종교 자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크리스토퍼 클라크, 《강철왕국 프로이센》, 박병화 옮김 (서울: 도서출판 마티, 2020), 765-766쪽]
19세기 가톨릭이 민주정에 반대했단 것도 사실이 아니다. 19세기 가톨릭이 반대한 것은 무신론, 이신론적 세계관이지 민주정이 아니었으며, 가톨릭 국교화를 세속국가에 강요했다는 통념도 사실이 아니다. 19세기 교황인 레오 13세는 초기 10년 동안 정치권력의 기원에 관한 문제를 집중해서 다뤘는데, 이러한 그의 정치사상을 떠받치는 근본 개념을 회칙 Diuturnum illud(1881)과 Immortale Dei(1885)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만약 (간접)민주정을 '본성적으로 백성에게서 유래하는 권력이 통치자에게 위임된 체제'로 이해한다면, 그런 의미에서는 레오 13세는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레오 13세는 권력이 하느님으로부터 유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정을 시민의 정치 참여 내지는 권력을 수행하는 사람을 세우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그런 의미에서는 레오 13세는 분명하게 민주주의자였다. "레오 13세가 백성의 의지 편에서 이루어지는 선출 형태에 대해 반대하거나 권력에 대한 시민들의 적절한 정치 참여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262]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은 같은 방식으로 고유한 자신의 본성에 있어서 유사하며 또한 실천적인 삶에 있어서 평등하다. 이렇게 해서 각 사람은 자기 자신의 주인이며 어떠한 이념에 의해서도 다른 사람의 권력에 종속되지 않는다. 그는 원하는 것을 자유롭게 생각하고 어떤 사안에서든 자시의 마음에 드는 것을 행할 수 있다. 그 누구도 다른 이들에 대해 명령할 권리를 갖지 않는다. 이러한 원칙 위에 기초한 사회에서 권력은 다름 아닌 민중의 원의로서, 민중은 자신의 유일한 주인이며 자신에 대헤 명할 수 있는 유일한 주체이기도 하다. 민중은 자신이 복종할 사람들을 선출한다. 그러나 대표자에게 명령하는 권리를 양도하는 것이 아니며 이 대표자는 민중의 이름으로 이 권리를 수행한다.[263]
... 이렇게 해서 분명히 드러나는 것처럼, 국가는 자기 자신에 대해 실력을 행사하는 수많은 주인이자 통치자들이다. 언급한 바와 같이, 민중 그 자체가 모든 권리와 안전의 원천이며, 따라서 국가는 어떠한 의무로 인해서도 하느님 앞에서 강압적으로 판결하지 않는다. 국가는 공적으로 어떠한 종교도 서약하지 않으며 수많은 종교 가운데 참되고 유일한 것을 추구하지도 말아야 하며 그 종교 가운데 어느 하나도 선택하지 말고 원칙적으로 어느 한 종교를 위한 호의도 보이지 말아야 하고 이 모든 종교들로 인해 국가의 규율에 누가 되지 않도록 각 종교에게 모두 동등한 권리를 부여해줄 것이다. 또한 이러한 원칙들로부터 따라오는 것은, 종교적인 사안에 있어서 모든 것은 개별 사람들의 임의에 맡겨지며 각 개인은 자신이 선호하는 종교를 따르든지 아니면 그 가운데 아무것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 모두를 거부함이 합당하다.[264]
-교황 레오 13세. 〈Immortale Dei〉(1885).[265]
이러한 권력 이해는 권력의 본질에 대해 교회 바깥과는 다른 전제를 깔고 있으나, 시민의 근대적 정치 참여, 대의제 민주주의 등에 대해서 유사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종교의 자유에 대해서도 비슷하게 말할 수 있다. 레오 13세는 시민은 참된 종교를 찾기 위해 자신의 자유를 사용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입장이었기에 현대 세속국가가 말하는 의미에서의 종교적 자유를 주장한 것은 아니다. 원칙적으로 가톨릭이야말로 국가가 따를만한 유일하게 올바른 신앙이라는 믿음은 레오 13세가 결코 포기하지 않았으며, 이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후의 가톨릭 교회에서도 똑같다. 그러나 실천적인 결론에 있어서는, 국가가 여러 예배에 대해 관용을 보여야 함을 당연히 주장했다.(Diuturnum illud 18항)[266]

물론 민주주의에 대한 이런 시선이,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화들짝 놀란 가톨릭 교계 안에 갑자기 뜬금없이 생겨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중세와 근대 초 신학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있는 유서깊은 담론이다.
벨라르미노(Robert Bellarmine, 1542-1621)와 수아레스(Francisco Suárez, 1548-1617)는 시민 통치자가 자신의 권력을 정치적 공동체로부터 직접 부여받았다고 주장하였다. 사실 그들은, 모든 합법적 권위가 궁극적으로 신으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시민 통치자가 자신의 권위를 궁극적으로 신으로부터 받는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통치자의 권위는 공동체로부터 직접적으로 온 것이다.

... 정치적 주권은 신민에서 온 것이라는 주장은 11세기 로텐바하의 마네골트(Manegold von Lautenbach)가 제안한 것이었다. 시민 통치자들에게는 이행할 신뢰가 있어야 하고, 만약 그가 습관적으로 자신의 지위를 남용한다면 그는 폐위되어야 한다는 확신은 12세기에 솔즈베리의 요한(John of Salisbury), 13세기의 아퀴나스(Thomas Aquinas), 그리고 14세기에 오컴(William of Ockham)에 의해 제시되었다. 벨라르미노, 수아레스와 같은 저술가들이 정치적 주권은 신민에게서 온 것이라는 이론의 보다 형식적이고 명시적인 진술을 부여했다는 사실이 의심의 여지없이 그 당시의 구체적인 역사적 자료에 대한 반성에 크게 기인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단지 초기의 스콜라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의 일반적인 관념을 계승했을 뿐이다. 스페인의 예수회 일원인 마리아나(Juan de Mariana, 1536-1624)가 정치적 억압에 대한 치유책으로 폭군살해가 필요하다고 한 그의 불운한 진술을 했을 때 (그의 언급의 일부는 프랑스의 앙리 3세의 암살에 대한 옹호로 해석되었으며, 이로 인해 그의 저서인 『왕과 왕실 기관』(De rege et regis institutione, 1599)이 프랑스 의회에 의해 불태워졌다), 그의 원리는 억압에 대한 저항이라는 합법성의 원리에 다름 아니었다. 이 억압은 비록 마리아나의 결론이 오도되었기는 하지만 중세에서 통용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르네상스시대의 스콜라철학자들은 한편으로는 교회와 관련하여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적 공동체와 관련하여 다만 시민 통치자의 지위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였다. 또한 그들은 정치적 사회의 기원과 본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다. 수아레스에 관한 한 분명한 것은 그가 정치적 사회를 본질적으로 동의나 합의에 의존하는 것으로 간주하였다는 점이다. 신민들과의 계약에서부터 군주의 권력을 끌어내었던 마리아나는 정치적 사회의 기원을 정부에 선행하는 자연 상태를 따르는 것으로 보았다. 조직화된 국가와 정부를 향한 주요한 첫 걸음을 그는 사유재산의 제도 안에서 발견하였다. 자연의 상태라고 하는 마리아나의 가설에서 수아레스가 마리아나를 추종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비록 그가 인간들 사이에서 국가와 같은 그러한 연합체가 시초부터 생겨났다는 점을 분명히 생각했더라도, 그는 적어도 종족들의 장들이 자발적 동의를 한 것이 국가의 기원을 이루었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수아레스가 이중 계약이론, 즉 하나는 종족들의 장들 사이의 계약, 다른 하나는 그렇게 형성된 사회와 그 사회의 통치자 또는 통치자들 사이의 계약을 주장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 정치적 사회는 인간에게는 자연적인 것이고, 정부는 사회를 위해서 필수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와 정부는 순수하게 임의적인 것이거나 규약적인 인간의 발명품이 아니다. 다른 한편 비록 자연이 정치적 사회를 필요로 한다 하더라도, 특정한 정치공동체의 형성은 통상 인간의 합의에 의거한다. 다시 말하면, 비록 모든 사회가 어떤 지배적인 원리를 가질 것을 자연이 요구한다 하더라도, 자연은 어떤 특정한 정부형태를 확정하지도 않았고 또한 특정한 개인을 통치자로 기획하지도 않았다. 어떤 사례들에서는 신은 통치자를 직접적으로 명시했다(예를 들면 사울이나 다윗). 그러나 보통의 경우 정부의 형태를 결정하는 것은 공동체의 결정사항이다.

정치적 사회가 어떤 종류의 합의에 기초한다는 이론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으며, 심지어 우리는 고대세계에서도 합의의 전조를 발견할 수 있다. 중세 시기 파리의 장(Jean de Paris)은 자신의 『왕권과 교황권』(Tractatus de potestate regia et papali, 1303년경)에서 자연의 상태를 전제하였고, 원시인들이 아마도 어떤 특정한 계약을 맺지는 않았을지라도 그들은 그들의 더 합리적인 동료들로부터 공동의 법률 아래 함께 살 것을 권유받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로마의 에지디오(Egidio Romano)는 13세기에 정치적 사회의 기초에 대한 가능한 설명들 중 하나로 계약이론을 제안하였다. 16세기에 마리아나(Juan de Mariana)와 함께 이 이론은 명료화되었다. 같은 세기에 도미니코회의 비토리아의 프란시스코(Francisco de Vitoria)는 계약이론을 암시하였으며, 예수회의 몰리나(Luis de Molina) 역시 그 이론의 대단히 명료한 진술을 하지는 못했지만 비토리아를 계승하였다. 그래서 사회계약이론의 전통은 점점 성장하였다.
-Frederick Charles Copleston 지음. 이남원·정용수 옮김. 《후기스콜라 철학과 르네상스 철학》 456-459쪽
결국 가톨릭이라는 거대 종교가 한 세기 동안 한 대륙에서 보여준 정치적 행보를 "좌익이다/우익이다"라고 단순화하는 것부터가 무리가 있으며, 이러한 행보들을 억지로 합쳐서 '하나의 정치적 성향'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그냥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당시 가톨릭에선 진보적 행보도 보수적 행보도 있었구나' 하는 게 훨씬 합리적인 결론이다. 좌우에 걸친 근대 가톨릭의 행보는 유럽 노동운동, 이베리아 독재 등 여러 곳에서 족적을 남겼으며, 이를 억지로 합쳐 '플러스 마이너스를 해보니 근대 가톨릭은 이렇다고 결론 내리기는 어려운 것이다.

한편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쇄신 때문에 공의회 전후의 가톨릭 신학 사조를 극단적으로 다르게 보고는, 마치 가톨릭이 다른 종교가 된 것 처럼 오해하는 경우도 있으나, 공의회가 어느날 갑자기 가톨릭 신학 사조를 뒤집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공의회를 뒷받침하는 신학 사조가 교계 내부에 '이미' 있었기에 2차 공의회가 열릴 수 있었던 것이다. 당장 로마노 과르디니, 앙리 드 뤼박,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 등부터가 공의회 전 활동한 신학자들이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보고된 바는 없지만 해외에서는 신부의 아동 성범죄 사례가 많이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가톨릭 내부에서 사제들의 아동 성범죄를 인지하고도 이를 은폐하려 한 정황들이 있다는 것이다. 베네딕토 16세도 이 사건들의 은폐에 연관되었다는 의혹도 제기된 바 있어 베네딕토 16세가 그렇지 않다고 해명한 일도 있다. 피해 아동의 상당수가 남자아이라는 것이 특기할 만한 점이라 볼수있다. 자세한 내용은 가톨릭 아동 성범죄 논란 문서 참조.
한국에서도 신부의 성추행 사건이 터졌고, 외국에서도 있었다는 게 뒤늦게나마 밝혀졌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원칙적으로 신자들의 정치활동에 대해서는 권장하는 편이다. 실례로 가톨릭이 국교였던 적이 있는 이탈리아그리스도교 계열의 정당들이 다수 존재하는데, 그 정당들 대부분은 가톨릭 계열이다. 독일 같은 경우도 그리스도교민주동맹을 통해서 가톨릭교회의 정치적 입김이 강하다. 그러나 성직자들이 정치적 발언을 하는 건 허용할지라도, 성직자들이 정당을 만들거나 선출직에 진출하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교황청은 성직자 및 신자들의 사회활동을 위한 사회교리서를 통해 교회가 허용하는 사회활동의 범위를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는 여러 조항에서 정치활동은 사제가 아닌 평신도(신자)들의 몫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편 현 교황 프란치스코는 오래 전부터 "사제들도 거리로 나가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따라서 이런 독일이나 이탈리아의 사례를 볼 때 요즘 논란이 되는 정의구현사제단은 어느 쪽에서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대로 교회법에서 어긋난다고 보기는 힘들다. 정의구현사제단한국 천주교 내의 비공식 조직으로,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이 한국 천주교의 전체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에 대해서는 한국 천주교 내부에서도 찬반 양론이 첨예하게 갈리고 있지만, 국정원 대선 개입에 대한 정부 비판, 4대강 사업 비판 등은 주교회의에서 대체적으로 정의구현사제단과 입장을 같이 하는 편이다.

고로 주교회의의 결정사항은 가톨릭교회의 공식 입장이다. 정의구현사제단은 가톨릭교회의 비공식 집단이라 아무리 목소리가 커도 영향력이 별로 없으나, 어느 쪽에서 일방적으로 정의구현사제단=가톨릭 때리기로 바뀜으로써 가톨릭교회가 자기 식구 지키기로 돌아선 게 크다. 그리고 가톨릭교회는 일제강점기 시절 등의 부끄러운 역사 때문에, 입장을 명확하게 밝힐 걸 요구당하면 대체로 사회정의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린다.

그렇다고 가톨릭 어느 쪽에서 일방적으로 주장하는 대로 정치성향이 어느 쪽으로 기울었다고 보기 힘든 게, 가톨릭교회는 노무현 정부 시절 사학법을 주교회의 차원에서 반대하며, 한기총과 연대했다. 또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거부권 사용을 종용했고, 그러지 않을 경우 법률 불복종 운동을 하겠다고 협박했다.

당시에도 내부적으로 가톨릭교회가 주교회의 차원에서 일방적으로 편들면서 정치에 개입하는 것에 논란이 있었고, 특히 가톨릭 교리상 별 상관도 없는 문제였기 때문에 평신도들이 가톨릭 계열 재단법인 등 높으신 분들의 이기적인 밥그릇 챙기기라고 말이 많았다. 그러나 주교회의가 이런 흐름을 총괄하고 결정권도 있기 때문에, 한국 가톨릭은 주교회의를 통해 당시 사학법 개정에 대해서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재밌게도 당시 정치적인 사학법 반대 입장을 주교회의에서 통과시킨 건 정진석 니콜라오 (당시) 대주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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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에서 발간한 책 황사영의 신앙과 영성* 천주교는 황사영에 대해 내심 옹호하는 행동을 취하고 있다.* 한국의 역사에서, 반역 및 국가전복을 기도한 황사영 백서 사건이나 사회적 정의와 상관없이 자기보신주의만 내세워서 욕을 바가지로 먹은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 주교를 비롯하여,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까지는 한국 가톨릭의 수치스런 역사라고 일부 계열에서는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황사영에 대해 '수치스러운 역사' 등으로 낙인찍는 것은 인터넷 상에서는 빈번하지만 정작 학계 내의 논의는 훨씬 더 복잡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황사영이 조선 정부의 입장에서 반역자라 하더라도, 국가 폭력 앞에서 민이 무조건 충성을 바쳐야 하느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 사학계의 조선시대사 연구의 거두인 정두희 교수나 서강대학교 사학과의 계승범 교수 등이 대표적. 황사영 백서에 대한 다층적인 논의가 이루어지는 것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주장한 역사학자도 있다.

사실 박해와 이에 대한 저항이 복잡하게 얽히던 시대는 다층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역사학적으로도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16세기 영국만 해도 황사영 백서와 유사한 행동을 한 천주교 신자들이 많지만, 현재 영국 사학자들은 이들을 객관적으로 보고 연구하지 수치스러운 역사나 매국노 운운하는 자극적인 워딩은 하지 않는다. 가령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가톨릭 사제였던 존 제라드 같은 사람은 진짜로 황사영처럼 백서까지 썼고, 런던탑에서 탈옥해서 스페인의 도움으로 망명했다. 그러나 이 인물을 다룬 BBC다큐멘터리에 출연한 사학자는 제라드 신부를 매국노라고 성토하기는커녕 '굉장히 용감한 사람'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또한 천주교에서 국내의 천주교 성지들을 성역화하는 사업을 벌이면서, 천주교 성지 중 다른 종교 시설들과 겹치는 곳들을 천주교만의 성지로 바꾸는 짓을 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천진암[267]/주어사 터를 놓고 불교계와 벌이는 갈등은 오랫동안 지속 있으며, 서울 서소문 역사공원을 천주교 중심으로 만드는 것에 대해서도 천도교에서 발끈하고 있다.

사실 서소문 역사공원의 경우 현재 천주교에서 직접 움직이는 게 아니라 서울시에서 '관광지 산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물론 본문에 링크한 유튜브 영상에 보이듯이 스타트는 가톨릭에서 한 게 맞다. 문제는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 이후 전 세계의 가톨릭 신자들을 대상으로 관광 상품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 이곳은 천주교 순교자만 처형당한 게 아니라, 동학의 2대 교주 해월 최시형, 녹두장군 전봉준을 포함한 동학농민운동의 중요 인물들이 처형된 곳이다.

특히 천도교는 일전에 교조 최제우의 순교지인 대구 관덕정에도 천주교 대구대교구가 성지화 사업을 벌여 성당을 지으면서 강하게 반발한 적이 있는데다, 서소문 역사공원 사업과 관련해 '겉으로는 역사기념관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지만 "순교 성지 관련 시설 건립에 필요한 예산 확보"란 말을 쓰는게 말이 되느냐'면서 이번 사태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참조 영상

이 와중에 가톨릭 측에서 서소문 성지화 사업과 관련해 불교 측을 폄하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안 그래도 승암산 이름 문제, 천진암, 주어사 문제 등에서 가톨릭과 마찰을 빚은 전례가 있는 불교 측에서도 서소문 성지화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염수정 안드레아 추기경의 과거를 지적하며 불쾌해하는 중이며, 가톨릭프레스에서는 천주교 측의 성지화 사업이 결국은 돈 때문이라 보며 비판하였다. #1#2#3[268]

또한 주교들의 인사 관련 부정적 행위(링크)직무이탈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더욱이 앞서 서소문 성지화 사업과 관련해 불교 폄하 발언을 한 우리신학연구소 연구이사 박문수 씨가 추가적인 불교 폄하 발언을 해 불교 측에서 예민하게 반응하는 중.[269] 더군다나 박문수 씨는 진보 계열 천주교인으로 진보적 언론인 '가톨릭뉴스 지금여기[270]'와 새로 창간되는 '가톨릭평론' 일간지 편집위원을 겸하면서 불교와 천도교 관련 행사나 단체에도 활동 참여 경력이 있는 인물이라 타 종교와의 마찰이 계속되고 있다. 천주교 내부에서도 이런 성지화 작업에 열중하는 교단의 행보에 경종을 울리는 여론이 존재하나, 그렇게 두드러진 상황은 아니다.

또한 천주교 측이 주어사 터에 있던 해운대사 의징(海運大師義澄)의 부도비를 1973년 11월 멋대로 가져간 사실까지 언급되는 등 불교계에서 점차 날을 세우고 있다.

그 외에 2009년에 가톨릭, 불교, 성공회, 원불교의 여성 수도자 모임인 삼소회 주관으로 열린 각 종교 성지순례 행사에서 가톨릭과 성공회, 원불교 측이 보인 무례한 행위와 음식과 관련된 교단 간 규정 등으로 반감이 쌓이던 중 영국 성공회 캔터베리 대성당 행사에서 기도문 낭송 행사로 충돌이 벌어진 사례도 있다. 다행히 나중에 서로 화해했지만. 혹자는 해당 기사만 보고 성공회 측 문제라고 하지만, 여행의 시작 기사를 보면 일행 중 수녀들에 대해 천주교와 성공회 수녀라고 되어 있다.

영국은 다른 개신교가 주류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가톨릭으로부터의 독립과 투쟁을 통해 국가 정체성을 형성했고, 국가적으로 성공회를 밀고 있고, 가톨릭교도들을 탄압했다. 17세기부터 가톨릭교도가 공직자가 될 수 없는 것은 물론, 선거권도 갖지 못하게 한 법률이 19세기 초까지 있었다. 영국에서는 현재도 계승률(Act of Settlement)에 의해 왕위를 성공회 신자에게만 허락하며, 한 번이라도 가톨릭교도였던 사람은 성공회로 개종/원복하더라도 왕위계승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미국 역시도 개신교 문화권이다보니 가톨릭 신자들이 역사적으로 차별을 받아왔다. '중세=아무튼 암흑시대, 가톨릭=암흑시대를 만든 만악의 근원'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사실 중세 가톨릭을 만악의 근원 취급하는 건 영미권에서 꽤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인식이긴 하다. 이 와중에 성공회를 포함한 개신교는 개혁적이고 근현대적이고 과학적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물론 한국의 개신교인들은 말할 것도 없지만 말이다. 가톨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미국에도 그대로 이어졌다.[271]

한국 내 그리스도교계에서 개신교의 비중이 높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개신교는 현대적이고 개혁적인 종교라는 인식 때문에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이미지인 가톨릭을 밀어내고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다.[272] 다만 21세기 들어서 개신교의 근본주의가 마음에 들지 않는 신자들이 가톨릭으로 옮겨 가는 일이 늘어나서, 내부적으로는 위기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디테일로 들어가보면 개신교는 단일 종파가 아니고, 명백히 이단으로 낙인찍힌 군소 교파들도 개신교 통계치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교파별 분류를 할 경우 가톨릭 신자 수가 가장 많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다만 현대에는 영국 자체가 종교색이 많이 희석되어서 영국 내 차별은 많이 줄어들었다. 한국처럼 영국에서도 점차 가톨릭 교세가 확장되는 추세다. 미국의 경우도 라틴아메리카 출신의 이민자가 늘어나고[273] 라틴계열을 포함한 미국 내 모든 가톨릭 신자가 2017년 기준으로도 국민의 5분의 1 이상(22%) 차지하기 때문에 가톨릭의 입김이 상당하다.

2021년 5월 캐나다에서 가톨릭이 운영했던 원주민 기숙학교에서 200여구의 어린이 유해가 발견된 것에 이어 6월에 추가적으로 700여개의 이름 없는 무덤이 발견되어 많은 충격을 주고 있다. 캐나다 정부는 1863년과 1998년 사이에 원주민의 백인 문화 강제 동화를 위한 기숙학교를 운영하면서 15만 명의 원주민 어린이들을 강제적으로 끌고 갔는데, 이 기숙 학교의 70% 정도를 가톨릭에서 운영했다. 이곳에서는 신체적, 성적 학대가 자행되었고 열악한 환경 때문에 6천명 정도의 원주민 어린이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런 어린이들의 유해와 무덤이 대거 발견된 것이다. 캐나다 정부는 2008년에 진실화해위원회를 설치하고 조사를 벌여왔고 공식적으로 사과했는데, 가톨릭측의 사과가 미흡하다는[274] 비난이 일고 있다. 교황청에서 직접 나서서 사과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으며, 이에 대한 분노로 여러 가톨릭 성당이 방화되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에 대해 슬픔을 표시하긴 했지만 역시 공식적 사과는 아니라는 점 때문에 캐나다 총리와 원주민들은 공식적으로 사과하라고 항의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막대한 보상금을 지불해야 하는 부담감 때문에 교황청이 섣불리 사과를 하지 못하는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이에 대해 캐나다 교회는 토론토 대교구장의 사과와 더불어 주교회의가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고#, 프란치스코 교황과 원주민들의 만남을 추진하려고 하고 있으나 팬데믹 상황 때문에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교황을 위해 변호를 해주자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피해자들을 직접 대면해서 사과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2015년 교황이 볼리비아를 방문했을 때도 교황은 현지 원주민들을 직접 만나 식민지 시대 가톨릭교회의 만행을 사과한 적이 있다. 관련 기사

가톨릭은 전통적으로 여성 사제를 인정하지 않고 있고 이에 대해 성차별적이라는 비판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신부(성직자) 문서의 해당 부분 참고. 그리고 위에서 언급된 보수적인 성윤리(피임 금지 등)에 대해서도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 있다.

14. 여담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역대 두 번째 가톨릭 신자 미국 대통령이다.
  • 법원에서 판사나 검사가 입는 법복의 유래가, 사실은 가톨릭 성직자의 복장을 따라 한 것이다.[275]
  • 가톨릭 신자가 아니더라도 동방정교회 신자 그리고 성공회 신자는 가톨릭 신자처럼 세례명을 가지고 있다.[276]
  • 천주교 신부가 성공회 신부로 개종할 경우 사제교육을 처음부터 다시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회에 대한 약간의 보수교육만 받으면 성공회 사제로 활동 할 수 있다. 성공회에서는 가톨릭의 성품성사의 유효성을 그대로 인정하기 때문. 성공회는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의 성품성사를 모두 그대로 인정하기 때문에, 이런 조치는 정교회 신부에 대해서도 똑같다.
  • 가톨릭의 로마자 표기인 catholic을 띄어쓰기하면 cat holic, 즉 '고양이에게 환장하다'라는 뜻이 되어서 이를 다룬 언어유희가 오래 전부터 있다. 구글의 밈들 한국에서도 가톨릭대학교 과잠바에 써있는 'Catholic Univ.'를 보고 '고양이에 미친 대학'으로 오해하거나, 서울 모처에 있는 가톨릭 용품 공방에서 간판에 'Catholic gift'라고 써놨는데 동네 주민들이 '고양이 장난감 같은 거 파는 곳인가보다'라고 하고 지나갔다는 등 여러 사례가 있다.
  • 가톨릭이 처음 동아시아에 전파되었을 당시 동아시아 사람들은 예수가 뭔가 석가모니 비슷하게 왕(조물주)의 직함을 버리고 일반 평민들과 생활한 것과 둘 다 똑같이 천당과 지옥이 있다는 이유로 가톨릭이 불교의 한 종파라고 오해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기리시탄 승려(キリシタン僧侶, 예수를 숭배하는 승려)라는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 일본에 다수 존재했다.

15. 관련 용어 및 관련 문서

16.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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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창작물에서의 가톨릭

많은 애니메이션에서 은연 중에 복선으로 많이 이용되며, 현실과의 갭이 크다 못해 100억 광년 정도 거리가 있다는 것은 두 말 하면 잔소리, 세 말 하면 입 아프다.

창작물 중 주인공이 가톨릭 소속 혹은 가톨릭을 참조한 세력인 경우 주인공의 꽉막힌 소속집단으로 자주 출현한다. 주인공이 가톨릭 소속이 아닌 경우가 당연히 더 많으며[278], 이런 경우는 제3세력으로 등장하거나 적대 세력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타 종교나 타 그리스도교 종파에 비해 체계가 계급적이고 뚜렷하게 잡혀있기 때문에 구현하기가 쉽기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가톨릭이 2차 창작등에서 많은 태클을 걸지 않는것도 한몫을했다.

성공회미국 대통령 최다 배출 종파라는 나름의 위엄이 있지만, 영국만의 종교라는 이미지가 워낙 강하여 거대 세력으로 설정하기가 어렵고, 루터회청교도개신교는 종파 수도 많고 조직체계가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가톨릭과 비슷한 시스템의 정교회는 가톨릭에 비해 세계적인 인지도가 현저히 덜하다. 구세군의 경우는 뚜렷한 조직체계와 군대를 연상시키는 시스템 때문에 잘 다루면 그럴 듯한 물건이 나오지만, 인지도가 미미하며 기껏해야 자선 등의 이미지로 알려지는 정도다. 즉 세계의 메이저 종교들 중 오랜 역사,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지도, 뚜렷한 조직 체계, 많은 신자 수 같이 창작물에서 써먹기 좋은 요소들을 전부 다 가지고 있는 단일 교단이 가톨릭 말고는 마땅히 없는 것이다. 또한 가톨릭은 교단 역사에 중세 시절의 이단심문소, 파문, 마녀사냥, 면죄부, 종교 개혁 같은 부정적인 면모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기점으로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 중 타 종교 및 세속주의적 가치관에 대해 유화적인 태도를 가진 교단으로 변한 현재의 모습, 20세기 세계 각지에서 반독재 투쟁에 동참했던 수많은 가톨릭 성직자들 같은 긍정적인 면모가 전부 존재하기 때문에 선역, 악역, 선악이 모호한 제3세력 중 어떤 성향으로 설정해도 묘사하기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즉 현실에 존재하는 종교들 중에서 가장 참조하기 편하고 굴리기도 편한 종교가 가톨릭이기 때문에 창작물에서도 그만큼 자주 이용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 고전 게임이나 소설 등에서 퇴치를 위해 전투를 하러 가는 그룹에 신부님이나 수녀님이 있을 경우, 대부분 역할은 회복이나 버프를 주는 역할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다만 최근으로 올 수록 창작물 속 가톨릭, 혹은 가톨릭을 모티브로 한 종교집단의 사제나 수녀들의 역할도 다양해지고 있다. 대표적인 역할변화가 바로 악마나 이단을 제거하기 위해 교단에서 극비리에 양성한 무력집단이라는 설정의 전투신부나 전투수녀 같은 경우. 이 경우 역할에 맞는 과격함이나 잔혹함을 나타내기 위해 중세 마녀사냥에서 모티브를 얻는 경우가 많고, 그에 따라 일단 이단이다 싶으면 앞뒤 안 가리고 오만가지 수단을 동원해서 상대를 갈아버리는 광신적인 캐릭터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 다만 현실의 가톨릭은 적어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종교들 중 호전성이 낮은 축에 들어가는 교단이기 때문에, 이를 반영해서 작중 전투신부나 전투수녀로 묘사되지만 그게 교단의 비밀 무력집단 소속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원래부터 존나 센 사람이 신부 혹은 수녀를 하고 있어서 그렇다.는 설정도 자주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교단 비밀 무력집단 소속 이단심문관 캐릭터들과 달리, 이 유형의 캐릭터들은 평상시에는 지극히 멀쩡한 신부/수녀이고 타 종교나 무신론자 등에 대해서도 너그러운 태도를 보이지만 '누가 봐도 확실하게 악으로 분류할만한 대상'에게는 어지간한 이단심문관 캐릭터들과 동급 혹은 그 이상으로 냉혹하고 무자비한 것으로 묘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279]
  • 당연하게도 성가가 서브컬쳐에 별로 반영되지도 않는다. 이는 다른 종파의 성가도 마찬가지다. 간혹 있다 해도 원곡을 반영하기보단 관련 작품의 오리지널 성가(스런 OST)가 대부분이다.

17.1. 구마(엑소시즘)에 대한 오해와 진실

2009년에는 실제로 퇴마사를 교황청 내에서 단체로 육성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뭇 오타쿠들을 충격과 공포에 빠뜨렸다. 사실 굉장히 성경의 가르침에 부합하는 내용이다. 사도들이 악마를 쫓아냈다는 기록이 신약 여기저기 나와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전에도 신자들 중에서도 알 사람은 많이 알았던 공공연한 사실이었고, 사실 성직자 과정 중의 일부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알고 보면 딱히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지금은 폐지되었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성품성사 중 7품급 가운데 '구마(驅魔)품'이 3번째 품으로 존재하기도 했다. 또한 구마기도는 묵주기도 등의 다른 기도를 하되 청하는 바를 '구마'로 하면 되기 때문에 그 자체는 일반 신자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쉽게 얘기하면, 묵주기도주님의 기도든지 좋으니 생각나는 통상기도문 중 아무 거나 외면서 지향을 마귀를 몰아내 달라고 하면 된다. 예를 들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명령한다, 마귀야 물라가라." 라고만 해도, 성경 중 예수가 마귀를 몰아내는 장면을 읽고 나서 같은 말을 덧붙여도 구마 기도가 된다.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 미사와 세례성사 때 하는 '마귀를 끊어버림' 예식 역시 구마 행위이다. #

다만 성직자에게 특별히 유보되는 것은 한국 가톨릭에서 흔히 '엑소시즘'이라고 불리는 '장엄구마식'인데, 이 장엄구마식은 남용할 때 폐해가 너무 큰 관계로 반드시 해당 교구장의 허락을 받도록 교회법으로 규정했다.[280]

이 장엄구마식을 전문적으로 행하는 성직자들이 흔히 알려진 '엑소시스트'들이며 현재 한국 가톨릭 성직자 중 엑소시스트라 할 만한 사람은 알 수 없다. 구마에 관한 강론이나 구마를 할 수 있지만, 알려져 보았자 대다수 신자들에게 좋을 것이 없으며, 무엇보다 구마사제는 본인과 구마사제가 소속된 교구의 주교만 알고 있기 때문에, 같은 교구의 성직자라도 누가 구마사제인지는 알 수 없다. 더욱이 장엄구마식을 따로 배우지는 않는다. 기도문을 찾아보면 되기 때문이다.

가톨릭에서는 세례성사를 받은 신자 누구나 구마능력이 생기는 것으로 보며, 신심의 차이로 그 정도가 다를 뿐이라고 한다. 그런데 구마기도문을 일반 신자가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또 의외. 다만 이는 장엄구마식에 쓰이는 기도만 해당한다. 미카엘 대천사와 성모 마리아에게 바치는 긴급한 구원의 기도 같은 것에는 사실상 구마를 청하는 기도도 많다. 심지어는 수호천사들에게 악마로부터 보호해줄 것을 청하는 기도도 있다.

다만 좀 더 추상적인 개념에서 악으로부터 보호를 비는 것과, 구체적으로 대상을 영적인 악의 존재로 지정하고 물러갈 것을 명하는 것은 차이가 있다. 그 밖에 성령쇄신지도신부들도 뛰어난 구마능력을 갖고 있다는데, 정신과에 가야 할 사람이 엑소시즘 권한을 받은 성직자에게 올 가능성이 많거니와, 현대 가톨릭에서는 그러한 정신이상 증세에 대해 악마의 영향이라고 여기는 것을 마지막 가능성으로 미루는 것이 교리이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673항에 대해서는 구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교회가 어떤 사람이나 물건이 마귀의 세력으로부터 보호되고 마귀의 지배력에서 벗어나도록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공적인 권위를 가지고 청하는 것을 구마(驅魔, exorcismus)라고 한다. 예수님께서 이를 행하셨으며 교회는 마귀를 쫓아내는 권능과 의무를 예수님께 받았다. 세례를 거행할 때 간단한 형식의 구마를 행한다. ‘장엄 구마’(magnus exorcismus)라고 하는 마귀 쫓는 예식은 주교의 허가를 받아서 사제만이 행할 수 있으며, 교회에서 정한 규칙을 정확하게 지키면서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구마는 마귀를 쫓아내거나 마귀의 지배력에서 구해 내는 것이 목적이며, 예수님께서 교회에 주신 영적 권한으로 행하는 것이다. 질병, 특히 정신 질환은 마귀들린 것과는 전혀 다르며, 질병은 의학이 치료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마를 행하기 전에 질병이 아니라 마귀들린 것임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673항
이처럼 엑소시즘이라고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는 악한 존재로부터 구해달라고 하느님께 도움을 구하는 종교적 의식이다. 하지만 '신앙의 힘으로 악한 존재를 물리친다'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인식 때문에 영화나 게임, 소설 등 많은 창작물에서 엑소시즘을 '신앙이 깃든 무기와 도구로 무장한 사제가 악마와 맞짱떠서 때려죽이는 일'로 그려내는 경우가 많고, 이런 창작물들 때문에 보통 사람들도 구마사제(엑소시스트)를 무슨 '가톨릭 내 대 악마 전투집단' 정도로 착각하고 있으니 문제다.

이를 다룬 창작물로는 1973년 개봉한 영화 엑소시스트, 2013년 개봉한 영화 컨저링, 2015년 개봉한 영화 검은 사제들, 2019년 개봉한 사자변신, 2018년 OCN 드라마 손 the guest, 2018~2019년 OCN 드라마 프리스트가 있다.
[1] 전 세계 교구 및 수도회 사제 가운데 연감에 보고된 수의 합계이다.[2] 사단법인 한국천주교주교회의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1962.09.08. (법인설립허가일), 문교부. [3] 동양에 전래될 당시 마테오 리치의 영향으로 '천주'라는 표현은 가톨릭을 동양에서 칭하는 또다른 이름으로 자리잡게 되었다.[4] Episcopus Romanus[5] Princeps sui iuris Civitatis Vaticanae[6] Collegium Episcoporum[7] 동서 대분열 전에는 정교회와 완전히 일치되어 있었고, '가톨릭'과 '정교'는 동의어로 쓰였다. 동서 대분열 이전 교회의 합법적 법통이 로마에 있는지 콘스탄티노폴리스에 있는지는 양측의 시선이 다르지만, 아무튼 이 일치된 교회는 AD 1세기에 세워진 가장 오래된 교단이다.[8] 영어로는 'church'로 같다. 대성당은 'cathedral', 경당은 'chapel'이라 부른다.[9] 물론 개신교에서는 현대의 가톨릭 교리가 예수가 바란 교리라곤 생각하지 않겠지만, (21세기 가톨릭의 교리가 예수가 바란 교리이든, 혹은 변질된 교리이든) 초대 교회의 조직 자체의 역사가 오늘날의 가톨릭과 정교까지 이어진다는 건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초대 교회의 합법적 법통이 지금의 로마랑 콘스탄티노폴리스 중 어디에 있는지만 양측 시선이 다를 뿐이다.[10] "Religions in Global Society". p. 146, Peter Beyer, 2006[11] Cross, Frank Leslie; Livingstone, Elizabeth A. (2005). "Great Schism". The Oxford Dictionary of the Christian Church, p. 706. Oxford: University Press. ISBN 978-0-19-280290-3.[12] Metropolitan Philaret. "A Protest to Patriarch Athenagoras: On the Lifting of the Anathemas of 1054". Orthodox Christian Information Center, December 1965.[13] 《한국과 제3세계의 민주변혁》, 제2부 한국의 민주화, "현상과 전망: 한국 가톨릭 교회의 민주화운동 -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중심으로", 경남대학교 극동문제연구소, 1989.[14] 분도출판사의 박미경 역주판으로부터 발췌.[15] 분도출판사의 최원오 역주판으로부터 발췌.[16] 아우구스티노가 '가톨릭'과 '정교'를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17]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스미르나인들에게 보낸 서간」, 8,2: SC 10bis, 138면(Funk 1, 282).[18] 에페 1,22-23 참조.[19] 마태 28,19 참조.[20] 국제음성기호 표기는 /ˈkæθ(ə)lɪk/, /ˈkɑːθ(ə)lɪk/.[21] 한불자전에서 쓰인 번역어로는 '공번되다'로 표현한다. 그래서 과거의 사도신경을 보면 '거룩하고 공번된 교회'라는 표현이 있었다. 1996년부터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로 표현이 바뀌어 있다. 이 표현이 바뀔 즈음에 성호경에도 '성신'이라는 표현이 '성령'으로 바뀌었다.[22] 관련 기사 1, 관련 기사 2.[23] 어원이 종교 자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교가 해당 어휘를 선택한 것이므로, catholic은 종교가 아닌 분야에서의 보편성에도 사용될 수 있는 어휘이며, 영어에서 가톨릭의 명사형인 catholicity는 실제로 "보편성"이라는 의미의 일반명사이다. 논문 등 격식을 갖춘 문서들에서 종교와 무관한 사회적 보편을 말할때도 catholicity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물론 가톨릭이라는 종교가 유명하다보니 이를 신경써서 universality를 대신 쓰는 사람들도 있지만 배타적인 수준의 압도적인 빈도는 아니며, catholicity는 영어권에서 일반명사로 충분히 많이 사용된다.[24] 만약 '보편'을 '전체'나 '세계' 등 산술적 합계 개념으로 이해해버리면, '한국 가톨릭 교회'는 '한국 전체 교회'나 '한국 세계 교회'라는 그 자체로 모순된 단어가 된다.[25] 반면 정교회와 개신교에 대해서는 '존재한다(subsist)' 대신 '현존한다(present)'는 표현을 쓴다. 곧, 가톨릭 신학적으로 말해서, 예장합동에는 가톨릭 교회가 '존재'하진 않지만 '현존'하는 것이다.[26] 다만 성공회는 1922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정교회의 사도전승 인정을 필두로, 예루살렘 정교회, 알렉산드리아 정교회, 키프로스 정교회, 루마니아 정교회 등 정교회 일부가 사도전승을 인정했다.[27] 한국에서 유럽 제어의 무성 파열음을 모두 유기음이라 생각하는 이유는 영어, 독일어 등 게르만어파의 영향이 크다.[28] 종교개혁자들은 자신을 보편된 교회(catholic)라고 했다. 실제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제25장에서는 교회의 보편성을 직접 언급하고 있다. 가톨릭의 유형적 교회관과 달리, 개신교는 교회관이 비가시적이고 우주적인 무형적 교회를 보편 교회라고 본다.(Invisible Universal Catholic으로 말한다.) 지상의 교회는 불완전하게 본다. 오늘날에 자신들을 가톨릭 신자라고 칭하는 개신교인이 없지만, 개신교 또한 Catholic의 개념만큼은 인정한다.[29] 관련 자료.[30] 가톨릭 교리상 개신교는 '교회'가 아니다. 교회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뿐이며, 개신교는 교회의 속성을 가지고 있지 못해 '교회적 공동체(ecclesial community)', '그리스도교적 공동체'로만 지칭할 수 있다. 즉 개신교는 교회가 아니라 교회와 유사한 커뮤니티(공동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한국 군대 등에서 일반인들이 천주교와 개신교를 편하게 지칭할 때 '성당', '교회'라고 부르는 것을 생각하면 굉장한 아이러니이다. 또한 가톨릭 성당은 비록 대부분 정식 명칭에서 '천주교 ○○교구 ○○성당과 '천주교 ○○교구 ○○교회'가 혼용된다.[31] 한편 일본에서 쓰던 명칭으로는 [ruby(天主公教会, ruby=てんしゅこうきょうかい)](천주공교회), 또는 줄여서 [ruby(公教会, ruby=こうきょうかい)](공교회)가 있다. 다만 현대 일본에서는 한자 표현보다는 대체로 그냥 가톨릭(カトリック)이라고 지칭한다.[32] 이와는 대조적으로 한국의 개신교의 용어는 영어와 독일어의 영향이 크다. 아우구스티누스를 가톨릭에서 '아우구스티노', 개신교에서 '어거스틴'이라고 부르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33] 간혹 이 교리가 비성경적이라며 부정(!!!)하는 일부 사람들이 있는데, 착각이다. 묵시록 22장 12절과 요한 5장 29절, 마태오 25장 46절 등은 상선벌악으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공의(公義)로우심을 확실히 증거하고 있다.[34] 생명이 위독한 자가 세례를 원하는 경우 등 위급한 경우에 한하여 사제가 아닌 평신도와 (세례 줄 의도만 있다면) 비신자도 4대 교리만을 가르친 다음 약식으로 세례를 줄 수 있는데, 이를 대세(代洗)라고 한다.[35] 흔히 군복무시에 세례받는 경우가 이에 속한다.[36]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28항.[37]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28항.[38] 『가톨릭 교회 교리서』 187항.[39] 『가톨릭 교회 교리서』 193항.[40] 죽음 후 부활하여 승천한 것인지, 죽음을 겪지 않고 승천한 것인지는 교리적으로 고정된 게 없다.[41] 절대 예수 그리스도처럼 자력으로 승천한 것이 아니다!![42] 대표적인 저술로 <영원토록 당신 사랑 노래하리라>)[43] 많은 가르침을 남긴 학자[44] 개신교에서는 주로 <그리스도를 본받아> 혹은 <그리스도의 모방>이라는 제목으로 부른다.[45] 이 관면 허락은 전통적으로 소속 본당 본당신부에게 허락받는 게 원칙이다.[46] 금육의 실천은 다음과 같다. 14세 이상의 모든 천주교 신자들은 연중 모든 금요일에 육고기 식사를 하지 않거나(이 경우에도 계란이나 고기기름으로 만든 양념, 우유 등은 먹어도 된다) 또는 육고기 식사를 부득이하게 하는 대신 특정한 자선, 선행, 가족들과의 기도 등을 할 수 있다. 또 고기를 먹는 대신 술담배를 즐기는 사람은 금연이나 금주 같은 다른 금욕방식으로도 금육재를 지킬 수 있다.[47] 단, 일선의 몇몇 신부님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금요일에 금육을 지키기 위해 비싼 생선회 같은 요리를 먹는 건 금육을 어긴 것이다!" 라는 식의 말은 과장이 심한 말이다. 금육재의 '취지'과는 다소 위배될지 몰라도, 일단 금육재를 존중하고 이 계명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고기음식을 피하는 노력을 했기에 가톨릭신자가 금요일에 어떤 육고기도 일부러 먹지 않는다면, 다른 어떤음식을 먹던 그 자체로 금육재의 계명을 지킨 것이다.[48] 의무적으로 가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 금요일 직장 회식자리라든지, 공립학교나 비가톨릭계 미션스쿨에서 단체 급식을 먹는데 금요일에 고기가 나온다던지 하는 경우.[49] 교구마다 차이가 있다.[50] 양업시스템이라고 불리는 한국 천주교만의 시스템으로 완벽하게 전산화 되어 있어 신자별로 고유번호가 부여되어 있으며, 이를 바코드 형태로 표시한다. 판공성사를 보고 성사표를 내면 이를 바코드 리딩 방식이나 수동전산입력방식으로 처리하며, 성사표를 못 챙겨갔다 하더라도 물론 성사를 보지 않고 전산상으로만 처리될 수 있는 허점이 있으나 성사를 본 사실을 성당 사무실에 접수하면 이를 신뢰하고 보통은 전산상에 성사를 본 것으로 처리한다[51] 또는 성당에 따라 성당 사무실에 제출하라는 곳도 많다[52] 한국 가톨릭에서는 이 기간을 사순 시기가 시작되는 재의 수요일(보통 2월 말~ 3월에 있다)부터 여름에 있는 삼위일체 대축일까지 연장해서 적용하기로 결정하였다. 따라서 꼭 주님 부활 대축일 당일이나 사순 시기에 판공성사를 못봤더라도 삼위일체 대축일 전에 1번 이상 고해성사 및 영성체를 하고 성당 사무실에 성사표를 제출하면 냉담자로 집계되는 일도 없고, 이 의무도 충족된다. 도저히 너무 바빠서 이 기간에 못한다면 성탄 시기에라도 판공성사를 꼭 볼 의무가 있다. - 한국 지역교회법인 천주교 사목 지침서 참조.[53] 한국 천주교는 우리은행을 주거래 은행으로 삼고 있어 우리은행 전산망을 끌어오는 방식으로 알려져 있다.[54] 원래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1960년대 회칙 《인간 생명》을 통해 배란주기관찰법을 공식 허용해주기 이전에는 건강상 허약하거나 병 때문에 출산이 힘든 부부들을 제외하면 월경 주기를 이용한 배란주기관찰 자연피임법도 금지였다. 비오 11세의 1930년 회칙 《정결한 혼인》(카스티 콘누비이) 등에서 이런 옛 원칙을 확인할 수 있다.[55] "부부행위를 앞두고, 또는 행위 도중에, 또는 그 자연적인 결과의 진행 과정 중에, 출산을 불가능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거나 수단으로 하는 모든 행동은" 근본적으로 악이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판 6쇄 844쪽)[56] 교회는 1세기부터 모든 인위적 낙태를 도덕적인 악으로 단정하였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2판 6쇄 816쪽) "범죄 사실 자체로", 그리고 교회법으로 정해진 조건들에 따라, "낙태를 주선하여 그 효과를 얻는 자는 자동 처벌의 파문 제재를 받는다."(같은 쪽)[57] 여러 사정으로 인지될 사안들에 대해 낙태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조항이다.[58] 가톨릭에서는 이것을 낙태약으로 간주한다. 성폭행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할 때도 포함.[59] “피임 방법 사용에 습관이 된 남편들이 아내를 존경할 줄 모르며, 아내의 몸과 마음의 균형을 무시하고 아내를 자기 정욕에 봉사하는 도구로 삼아버려…”("인간 생명" 회칙 17항) 등에 근거한 판단일 것이다.[60] 마태 16, 18-19[61] 요한 21, 15-17[62] 치프리아노의 이 글은 베드로의 수위권을 강조하지 않은 다른 사본도 있는데, 그 때문에 과거에는 수위권 (강조) 사본이 위조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의 학자들은 두 사본 모두 치프리아노의 저작으로 여기며, 둘중에서 수위권 사본이 먼저 쓰여졌다고 본다.[63] 마태 10, 40[64] 루카 10, 16[65] 이러한 교회관은 에큐메니컬 진영 일각에서 '가톨릭만의 독선적이고 오만한 교회관'이라는 비판이 있긴 한데, 한편으로는 이게 가톨릭 교회의 정체성의 근간이므로 가톨릭 교회가 이것을 포기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66] 역사책에서 서구대이교 할 때의 그 '이교'가 맞다. 아예 비그리스도 종교를 뜻하는 '異敎'(이교)와는 한자가 다르다.[67] 성공회를 제외한 세계 모든 개신교 교단은 사도전승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중세 교황권력의 강화를 위하여 만들어낸 교리라고 본다.[68] 추기경은 보통 주교품을 받은 이가 받는 직책이며, 사제품에 있던 성직자가 임명될 경우 추기경 직책과 주교품을 같이 받는다. 교황은 그 추기경들 사이에서 뽑혀 로마 주교가 되며, 이 주교가 가지는 직책이 바로 가톨릭 교회의 최고 지도자, 교황 직책이다.[69] 수도자인 동시에 사제. 수사신부, 성직수사라고도 한다.[70] 그러나 보좌신부가 주임신부에게 순명할 의무를 지니는 것은 아니다. 보좌신부가 순명할 대상은 어디까지나 교구장 주교이다. 또한 주교의 사목권은 교황 직책을 맡은 사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사도들에게 부여한 것을 시작으로 하여 안수를 통해 끊어지지 않고 전해지는 사도전승에서 나오는 것이다. e.g., 주교/한국 천주교 주교단의 사도 전래 참고.[71] 수도자성직자는 수평적 개념이며, 어느 한쪽이 낮은 것이 결코 아니다. 여기서 전체 교회의 수장인 교황은 예외이다. 베네딕도회아빠스이든 수녀원의 총장이든, 수도회의 총장들은 주교급으로 대우 받는다.[72] 흔히 가톨릭의 성직제도를 설명할 때 군대에 비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예수는 군통수권자, 교황은 국방장관, 주교들은 주요 장성에 해당하는 군대조직이라 할 수 있다.[73] 이것의 배경이자 기반이 되는 성경 구절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루카 복음 4,24)”다. 이 대목은 예수가 자신의 고향인 나자렛에 가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했지만 동네 사람들이 예수를 예언자로 보지 않고 예전에 보던 동네 꼬마라고 수군거리며(“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루카 4,22)”) 희대의 어그로꾼으로 판단하고 예수를 벼랑 밖으로 내몰아 던지려고 했던(루카 4,29) 내용이 나온다. 다른 이유도 있는데 해당 사제를 꼬꼬마 시절부터 지켜봐온 어르신들이 사제의 말을 제대로 안 들을 위험(즉 사제에 대한 불순명)도 있기 때문이다.[74] 그것을 행했다고 해서 고해성사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으나[75] 영미권에서 개신교를 일컫는 Protestant라는 의미는 '저항하는 자들', '항의하는 자들'이라는 뜻이다, 종교개혁 문서 참고.[76] 1123년 제1차 라테란 공의회에서 최초로 의무화되었다#[77] IC XC는 그리스 문자로 각각 이오타, 시그마(중세 그리스어 서법), 카이, 시그마이다. 그리스어 ΙΗΣΟΥΣ ΧΡΙΣΤΟΣ(IESOUS ChRISTOS, 예수 그리스도)의 약자이다.[78] 가톨릭 소속이 아니던 이런 교회들이 나중에 다시 가톨릭과 일치하는 것을 '귀일'이라고 한다.[79] 성공회의 경우 한자말로 풀어쓰면 '거룩하고 보편된 교회'이기 때문에 가톨릭과 뜻이 통하기는 하지만, 원어로는 Anglican이라 Catholic이 아니다. 다만 성공회도 스스로 가톨릭임을 표방한다.[80] 예외도 있다. 독립 가톨릭 교회들은 대다수가 교리 문제 등으로 천주교로부터 갈라져 나갔지만 여전히 가톨릭이라는 명칭을 쓰고 있다.[81] 동일한 가톨릭 안에서도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보면, 역사적 경험이 축적된 행정적 효율성은 놀라운 수준이다. 교의적인 것과는 별개로, 중세에는 교통통신이 미발달했기에 이탈리아 지역만 벗어나도 로마의 행정력으로 통제하기 힘들었다. 반면 현대에는 교통통신 문제가 완화되었고 일종의 '판례'가 그동안 축적되면서 로마와 각 지방이 더 긴밀히 연결되었다. 로마의 통제력이 강화되었을 뿐만이 아니라 로마에 끼치는 각 지방의 영향력도 강화되었는데, 이는 교황들의 출신 국적을 보면 알 수 있다. 과거 교황직은 이탈리아(아비뇽 시절엔 프랑스) 출신에게 집중되었으나, 20세기의 요한 바오로 2세를 시작으로 이탈리아의 수석 주교인 교황을 비이탈리아인이 40년 넘게 차지하고 있다. 로마에 끼치는 각 개별 교회의 영향력이 드러나는 부분이다.[82] 동방 가톨릭의 경우 전례와 규율이 라틴교회와 다르지만, 교리는 라틴교회와 완전히 동일하다.[83] 영미권 가톨릭은 웬만한 개신교 세례를 인정하여 개종자에게 재세례(정식 영세)를 베풀지 않지만(인터넷에서 영미권 가톨릭 신자들에게 개종자의 영세 문제에 대해 문의하면 '재세례(정식 영세)는 결코 없다'는 단호한 답변을 달아준다), 한국 가톨릭은 2012년 주교회의 의결에도 불구하고 일선의 사목 현장에서는 개신교 세례를 사실상 불인정하고 있다. 개신교 교파마다 삼위일체에 관한 입장이 상이한데 사목현장에서 일일이 예외를 따져볼 수 없다보니 일괄적으로 불인정하는 듯하다.[84] 다만 그리스와 동유럽은 제외.[85] 가톨릭 성당에 열심히 다니는 대한민국 국민 A씨는 틀림없이 가톨릭교회의 일원이지만, 대한민국이 UN 회원국이라 하여도 A씨 개인을 UN 회원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86] 영문 번역 출처: #; 한국어 번역 출처: 덴칭거[87] 출처: #[88] 589년 제3차 톨레도 교회회의에서 추가됨.[89] "거룩한 공의회는 성령과 함께 니케아에 모인 거룩한 교부들이 확정한 것과 다른 신앙 고백을 제시하거나 작성하거나 편찬하는 것이 어느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는다고 확정하였다."(번역 출처: 덴칭거) 사실 에페소 공의회가 변경을 금지한 것은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이 아니라 니케아 신경(325년)이고, 역사적 맥락에서 보더라도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381년)은 "선포된 이후 명백하게 교회 전반으로부터 주목받지 못하고 있었"다.(노만 P. 탄너, 《간추린 보편 공의회사》 51쪽)[90] 가톨릭에선 정교를 이교(離敎)로, 개신교를 이단으로 보면서 둘을 구분한다.[91] 영국 내 가톨릭 신자 수와 냉담자를 뺀 성공회 신자(실질적으로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는 성공회 신자) 수가 비슷비슷하다고 한다.[92] 여담으로, 베네딕토 16세의 콘돔 사용에 대한 유화적인 발언에 대한 논란은 인터뷰 저서인 《세상의 빛》에 나온 발언이었는데, 이 발언이 알려지자마자 언론에서는 "가톨릭이 콘돔 등 인공피임을 허용하는 발언을 했다"는 식의 오해와 설레발을 피력하는 기사들을 연이어 냈었다. 그러나 교황청에서는 즉각 반박성명을 내고, 언론의 설레발은 오해에 가까우며, 가톨릭은 콘돔을 비롯한 인공피임이 죄라는 원칙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밝혔다.[93] (책 속 주석)E. Schawartz 등 편 Acta Conciliorum Oecumenicorum (1914~) II, 5:97, 6-13.[94] 번역 출처: 덴칭거 265항.[95] (책 속 주석) 참조: ACO II,I,2, pp. 79s. 도세티는 칼케돈 공의회의 제2회기에서 낭독된 그리스어 텍스트는 "정통성이 확실하게 보존된" 텍스트임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G. L. Dossetti, II simbolo di Nicea e di Constantinopoli. Edizione critica, Herder, Roma 1967, p. 269). 아에티우스는 황제의 문서고에서 이 텍스트를 찾아내어 읽었을 것으로 추정된다.(상동, pp. 171, 269.) 이 텍스트는 681년 제3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도 그대로 발견된다. 도세티에 의하면 슈바르츠(E. Schwartz)는 칼케돈 공의회의 제2회기에서 낭독된 니케아와 콘스탄티노플 텍스트는 "원본"(allo stato puro)이었던 반면에, 칼케돈 공의회 제5회기와 제6회기에서 작성되어 451년의 신앙정식에 삽입된 텍스트는 공의회 교부들에 의해서 "잘 손질된"(armonizzati) 텍스트였다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슈바르츠는 칼케돈 공외희의 신앙정식에 대한 교정본에(ACO II,I,2, pp. 127s.) 전해진 것과는 확연히 다른 니케아와 콘스탄티노플 텍스트 원본을 수록하게 했다는 것이다.(참조: G. L. Dossetti, Il simbolo di Nicea..., p. 269.) 그러나 도세티는 Lebon, Kelly, Ritter 등과 함께 이 이론에 동의하지 않는다.(상동, pp. 269-284.)[96] (책 속 주석) G. L. Dossetti, Il simbolo di Nicea..., p. 264.[97] (책 속 주석) 참조: A. De Halleux, "La réception du symbole oecuménique, de Nicée à Chalcédoine", in Ephemerides Theologicae Lovanienses 61(1985), pp. 5-47.[98] (책 속 주석) J. N. D. Kelly, I simboli di fede della chiesa antica. Nascita, evoluzione, uso del credo, Dehoniane, Napoli 1987, p.300.[99] (책 속 주석) 참조: J. N. D. Kelly, I simboli..., pp. 298-301.[100] (책 속 주석) J. Lebon, "Les anciens symboles dans la définition de Chalcédoine", in Revue d'Histoire Ecclésiastique 32(1936), pp. 809-876.[101] (책 속 주석) 참조: J. N. D. Kelly, I simboli..., pp. 318-327.[102] (책 속 주석) A. M. Ritter, Das Konzil von Konstantinopel und sein Symbol, Vandenhoeck & Ruprecht, Göttingen 1965.[103] (책 속 주석) 참조: G. L. Dossetti, Il simbolo di Nicea.., pp. 24, 277-284.[104] (책 속 주석) 참조: 위의 책, p. 278.[105] (책 속 주석) 참조: G. L. Dossetti, Il simbolo di Nicea.., p.284.[106] 《Ancoratus》[107] (책 속 주석) 이와 다른 견해에 대해서는 Kannengiesser: EECh(Encyclopedia of the Early Church, 2 vol., Cambridge 1992 Église et Théologie, Paris.) I, 195-6쪽과 DH(H. Denzinger, Enchiridion symbolorum definitionum et declarationum de rebus fidei et morum. Quod emendavit, auxit in linguam germanicam transtulit et adiuvante H. Hoping edidit P. Hünermann, Freiburg/Br.[math({ }^{37})]1991.), 150쪽 참조. 칸네기서는 바위서(Weischer)의 결과를 알지 못한 것 같다. 마찬가지로 이와 다른 견해를 제시하는 아브라모브스키(L. Abramowski)와 리터(A.M. Ritter)의 최근의 토론 참조.[108] 이 책의 한국어판은 1994년판을 바탕으로 함.[109] 니케아 신경의 파문조항에서는 히포스타시스와 우시아가 동일시된다.[110] "거룩한 공의회는 성령과 함께 니케아에 모인 거룩한 교부들이 확정한 것과 다른 신앙 고백을 제시하거나 작성하거나 편찬하는 것이 어느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는다고 확정하였다."[111] 정교 측에서는 다음과 같은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필리오케 삽입구는 1014년경에 아마도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2세가 교황 베네딕토 8세를 압박해서 삽입된 것 같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트집을 잡을 수 있다면,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은 칼케돈 공의회에서 "황제의 관리들에 의해 교부들에게 정식으로 강권"(샤츠, 《보편공의회사》 60쪽)되었다는 것을 거론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지상 교회의 교의적 결정 중 역사적 맥락으로부터 분리되어 결정된 것은 없거나 거의 없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112] 정교는 경전을 확정할 규범 마련을 위해 어떠한 법적인 결정도 내려 본 적이 없었으므로, 성경 사용에 다양한 입장을 보여 왔다.[113] 한국의 동네 성당들에서 개신교 세례를 실질적으로 불인정하려 하는 건, '개신교 세례는 인정할 수 없다'는 교리적 이유 때문이 아니라 '세례를 받았다는 걸 증명할 수 없다'는 행정적 이유 때문이다. 그마저도 주교회의에서는 과거보다 행정적 인정을 더 널널하게 해석하려는 편이다.[114] "그리스도교의 적지 않은 거룩한 행위들도 우리와 갈라진 형제들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각각의 교회공동체의 다양한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로 이루어지는 이 행위들은 의심 없이 은총의 생명을 실제로 낳아 줄 수 있으며, 또한 이 행위들이 구원의 친교로 들어서는 문을 열어 줄 수 있다고 말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이 갈라진 교회들과 공동체들이 비록 결함은 있겠지만 구원의 신비 안에서 결코 무의미하거나 무가치한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그 교회들공동체들을 구원의 수단으로 사용하시기를 거절하지 않으시고, 그 수단의 힘이 가톨릭 교회에 맡겨진 충만한 은총과 진리 자체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Unitatis Redintegratio 3)
[115] 뮈스테리온mystērion은 불가해(不可解)한 것, 혹은 바로 그 불가해한 것을 가리키는 '가시적 표지'(=성사)를 말한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뮈스테리온적 몸'이란, '가시적 표지로서의 그리스도의 성사가 되는 몸'을 의미한다. 따라서 가톨릭 교회론에 의하면, '교회'는 단지 법적이거나 인간적인 '법인'이 아니라 '성사적 단체'이며, 지상에서 그리스도를 정당하게 대리한다.[116] "우리가 여기에서 말하는 ‘성전’(聖傳)은 사도들에게서 유래하는 것으로서, 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모범에서 그리고 성령을 통하여 배운 것을 전달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리스도교의 제1세대에게는 아직 기록된 신약 성경이 없었으며, 신약 성경 자체가 살아 있는 ‘성전’의 과정을 증언하고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지역 교회에서 생겨난 신학적, 생활 규범적, 전례적 또는 신심에 관한 ‘전승들’은 사도전승과 구별해야 한다. 이러한 전승들은 독특한 양식들을 이루게 되는데, ‘성전’은 다양한 장소와 시대에 따라 적용된 여러 표현들을 이러한 양식 안에 수용한다. 이 전승들은 교회 교도권의 지도 아래 ‘성전’에 비추어 보존되거나 수정되거나 또는 폐기될 수 있다."

가톨릭 교리서 제83항
[117] 마티아스 아우제Matias Augé, 《전례란 무엇인가: 역사, 기행, 신학, 영성》Liturgia: Storia, Celebrazione, Teologia, Spritualita, 장신호 주교 • 윤종식 신부 번역,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22, p.72[118] 참고로 현대 가톨릭 성경 해석의 대헌장‘’Magna Carta''으로 평가 받는 비오 12세 회칙(1943년) 《성령의 영감》Divino Afflante Spiritu에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새로운 것은 무엇이나 새롭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배척해야 하고 의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과격한 논리를 혐오해야 한다. 무엇보다 그들은 교회가 반포한 규범과 법들 가운데 신앙과 윤리에 관한 교리 문제가 있는데 성서에 포함된 무수한 문제들-예를들어 율법적이고 역사적인, 지혜에 관계되고 예언적인 문제들-과 관련하여 교도권에 의해서 그 뜻이 명확하게 정의된 성서 본문은 소수에 지나지 않으며 그나마 역대 교황들의 가르침이 이의 없이 그 정의를 받아들인 성서본문은 더욱 많지 않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중요한 많은 사정들이 아직도 재능과 기술을 갖춘 가톨릭 주석가들의 자유로운 토론과 해설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하여 주석가 개개인은 전체의 유익을 위해, 거룩한 교리의 항구한 발전을 위해, 그리고 교회를 보호하고 교회에 영광을 가져오기 위해 자신의 몫을 바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제47항)
[119] (발췌자 주석) 본 주해서의 이전판인 1968년판과 1990년판을 말함.[120]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 창세기》, 주원준 번역, 성서와함께, 2023, pp.14-15에서 발췌[121] (발췌자 주석) 공권력 주도적 종교개혁. 곧, 잉글랜드 성공회, 독일 루터주의, 스위스 개혁주의처럼 공권력(국왕, 영주, 시의회)이 주도한 종교개혁을 말한다.[122] 이에 대해 보통의 개신교는 "성경은 전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 바로잡고 의롭게 살도록 교육하는 데에 유익합니다."라는 티모테오 2서 3장 16절을 근거로 들지만 이는 '성경은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였기에 유익하다'는 내용일 뿐인 반면, 가톨릭과 정교회가 성경이 교회의 권위를 증언하는 것으로 여기는 구절은 티모테오 1서 4장 15절의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교회로서, 진리의 기둥이며 기초입니다."[123] 이러한 직접해석이 아닌 간접해석으로 인해 도출되는 가장 대표적인 그리스도교 교의가 바로 삼위일체론이다![124] 발췌자 주석: "오직 성경". 책에는 '성서지상주의'로 번역되어있으나, 발췌문에선 Sola scriptura로 옮겼다.[125] 라너의 주장은, 프로테스탄트 개혁가들의 Sola scriptura는 자기 지양적인(자기 파괴적인) 공리이지만 가톨릭의 관점에서는 Sola scriptura를 훨씬 단단하게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126] 다만 성서학이 현대에 수렴했다고 하더라도, 일선 평신도가 사적으로 가톨릭 바깥에서 성경 모임을 갖는 건, 규율 이전에 신천지 등의 사이비 종교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 설령 신천지가 아니라 100% 개신교 신자라 하더라도, 일선 개신교 사목 현장과 가톨릭 사목 현장의 분위기 차이 때문에 서로 감정이 상할 가능성이 높다. 개신교의 해석이 궁금하다면, 사적 만남을 가지기보다는 서구권 개신교 성서학자의 학술서를 읽는 게 낫다.[127] 정교회는 구약 49권과 신약 27권을 합쳐서 76권을 정경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성공회개신교와 마찬가지로 39권을 인정하고 있다.[참고] 마르틴 루터는 성경을 전지전능한 하느님의 말씀이 적힌 유일한 종교적 교범으로 보았고,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인지 확인 불가한 출처가 부정확한 부분은 과감하게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2경전은 초대 교회 시절 히브리어 사본을 찾아내지 못했고, 불가타 라틴어역을 저술한 히에로니무스도 히브리어 사본이 없는 제2경전의 신뢰성에 의문을 가졌다. 이런 교부들의 불신을 반영해서 구약성경을 재편한 그는 우선적으로 구약의 헬라어 부분인 제2경전을 위와 같은 이유로 삭제했다. -연옥 문서에서 발췌. 그리고 제2경전의 히브리어 사본들이 20세기에 발견되었다.[129] 그렇기에 사도신경라틴어 "communionem sanctorum", 즉 "모든 성인의 통공"을 "모든 성도의 교통함"으로 번역하였다.[130] 마리아가 들어올려질 때 사망했는지 살아있었는지는 특정되지 않았다.[131] 성모 마리아가 사망한 후 사도 토마스가 마리아의 무덤을 방문했을 때 무덤이 비어있었다는 것은 인정한다.[132] 가톨릭에서는 성모 4대 교의에 의해 마리아의 원죄 없음(성모무염시태)을 따를 교리로 선포했으며, 이는 공경의 대상을 넘어 원죄가 없음을 고백해야 하는 매우 중요한 교리적 절차를 기다리고있다. 성경은 예수 이외의 원죄 없으신 분을 언급하지 않기에 이는 교리적 논쟁의 씨앗을 남기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앞서 언급한 성전(聖傳)을 인정하지 않는 개신교 교리 관점에서 본 주장이며, 가톨릭 교회는 과거 공의회로부터 성모 4대 교의를 믿을 교리로써 확립하였다.[133] 다만 이 두 교파도 십자가만 사용하는 경우도 없지는 않다.[134] 예수의 육적인 어머니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렇지 않다. 그렇게 되면 개신교는 431년에 에페소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받은 네스토리우스가 되며 칼케돈파가 아닌 비칼케돈파가 된다. 어쨌든 예수의 신성과도 관련되기 때문에 테오토코스를 공식적으로는 인정. 성모 마리아에게는 육체만 취했지만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분리없이 모두 낳았기 때문이다. (신성과 인성이 완전히 분리될 수 있다면 네스토리우스이다) 그러므로 예수의 신성을 낳은 성모 마리아는 성자 예수와 같은 위격인 성부 하느님의 어머니도 된다. 별도로 성공회테오토코스는 당연히 인정하고, 무염시태, 평생동정, 성모승천은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지만 성공회 신자 개인이 무염시태, 평생동정, 성모승천 신앙관을 취하는 것을 이단시하지는 않는다. 다만 한국 개신교만은 끝까지 "예수님 육신의 어머니"라 하고 있다.[135] 근본적으로 만인제사장을 받아들이므로 그리스도와 평신도 사이에 사제는 필요없다는 입장. 평신도이자 일종의 가르치는 장로인 목사가 대체. 사제는 아니지만 설교와 예배를 할 독점적 권한은 있다. 무교회주의나 침례회 아니면 일반 장로급은 이런 일을 하는데 매우 제한적이다. 남성만 목사가 되는 교파도 있고, 여성 목사를 허용하는 교파도 있지만 일반적인 개신교와는 다르게 성공회, 루터회는 이런 사제 제도가 있다.[136] 해외에서는 감리회 교인들도 십자성호를 긋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나, 국내의 감리회 교인들은 전혀 하지 않는다.[137]루터회에서는 거의 하지 않는다. 구습이 많이 남아 있는 일부 북유럽 루터교회 정도에서만 존재[138] 다만 두 교파 모두 성상 없는 인테리어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실재로 성상을 설치하지 않은 예배당도 존재한다. 특히 루터회의 경우,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교회에는 성상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또한, 루터회의 경우 크기가 큰 성상은 거의 없으며, 예수상 이외의 성상은 거의 만들지 않고, 공경하거나 성상에 직접 기도하는 행위도 하지 않는다.[139] 다만 루터회는 십자고상이 설치된 교회도 있으나, 다른 개신교 교회와 같이 십자가가 설치된 교회도 많다[140] 횟수는 교단마다 다르다. 성공회는 2개만 정식으로 인정하고 나머지 5개는 준성사(예식)로 취급한다.[141] 단 루터회에서는 거의 하지 않는다. 가톨릭 전통이 남아있는 일부 루터회에서만 시행.[142] 동방 가톨릭을 예로 들며 종파가 여러 개가 있다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으나, 동방 가톨릭은 교황의 수위권에 속해 있는 엄연한 가톨릭 교회와 일치된 종단(宗團)이다. 전례의 형식이 다를 뿐이다. 물론 정교회에서는 동방 가톨릭의 교황수위권 인정을 반대하지만. 또한 구 가톨릭교회, 성 비오 10세회 등의 공동체를 가톨릭 교회의 일부로 인정한다면, 가톨릭 내부에서도 이상적인 일치 상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다.[143] 감리회, 장로회, 루터교회, 성공회 등이 존재한다.[144] 한국의 경우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등 보수 성향 장로회의 상당수. 다만 예장합동을 제외하고는 교회당 내 십자가 거치 금지를 교단헌법에 명시하지는 않았다.[145] 한국성서침례친교회에서는 십자가 거치 금지가 암묵의 룰로서 비교적 잘 지켜지는 편이다. 그러나 기독교한국침례회의 경우 개교회주의가 강한 특성상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며, 특히 텃밭인 대전 지역 교회들의 경우 오히려 대다수가 강단에 십자가를 거치하고 있는 실정이다.[146] 한국에서는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등이 대표적.[147] 성결교회, 구세군, 오순절교회 등.[148] 그런데 당시 고대 그리스의 영향권에서 여신 숭배가 광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네스토리우스도 교리적으로 위에 서술된 정도의 내용을 명확히 아는 신자들이 테오토코스를 사용하는 것을 문제 삼지 않으려해서, 안티오키아 주교가 크리스토토코스(그리스도의 어머니)를 여신 숭배를 억누르기 위한 용어로 제시한 것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여신 마리아가 신과 관계를 맺었다는 그리스 신화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문헌이 있다. 출처 : 크리스토프 바우머, 안경덕 옮김, 《실크로드 기독교 동방교회의 역사》, 서울, 일조각, 2016.[149] 술 취하지 마십시오. 방탕한 생활이 거기에서 옵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야 합니다.[150] 여러분은 자신이 하느님의 성전이며 하느님의 성령께서 자기 안에 살아 계시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만일 누구든지 하느님의 성전을 파괴하면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하느님의 성전은 거룩하며 여러분 자신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151]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주술의식에 사용하던 것을 서양(유럽)인들이 기호품화 시켰다고 알려져 있으나 신대륙 발견 이전부터 이미 남유럽에서 자생했었다는 설도 일부에서 제기된다. 무엇보다 여기서의 이 개신교 입장이라고 하는 것이 사실 언제 어디서 나온 이야기인지 출처조차 알 수 없는 정도로 (현재 개신교인들도 생소한 이야기일 정도로) 현재 다루지 않는 입장이다.[152] 가톨릭 교회의 교리서 2290항에 의거, 흡연과 음주, 약물의 '남용'을 금지하고 있다.[153] 전능하시고 전지하신 하느님이 의로운 자라고 불러주시면 그대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지, 그것을 따로 의롭다고 ‘칭함 받음’이라고 구분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뜻이다.[154] 몇 번이고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지만 펠라기우스의 자유의지론과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155] 물론 존 웨슬리는 기본적으로 루터식 이신칭의를 인정하였기 때문에 결은 많이 다르다. 감리회와 가톨릭 둘 다 선재은총을 강조하지만 가톨릭 의화교리는 그 이후 인간이 응답을 통해 은총을 받아들인다는 과정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반면 존 웨슬리는 칭의 과정에서 '인간의 응답'이라는 개념을 인정하지는 않았고 오히려 하느님의 선재은총 자체가 인간에게 그대로 작용하시어 스스로 죄인임을 느끼게 하고 칭의로 이끈다고 주장했다. 오히려 과정적인 측면은 칭의 이후 중생과 성화와 관련해서 더 중요히 다루었다.[156] 인간의 의지가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데에 중요한 것이냐의 문제로서 행위구원론과는 전혀 상관없지만 개신교 주류의 뿌리인 칼뱅파의 예정설과 차이가 있기 때문에 오해를 많이 산다. 물론 원죄 이후 인간은 태생적으로 죄에 가까워질 수 밖에 없다는 가르침은 가톨릭 교회도 당연히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을 토대로 하고 있으므로 받아들이는 부분이지만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라는 측면에서의 자유의지를 논하는 것이다.[157] 의화와 칭의는 한자어에서는 다르지만, 영어로는 어차피 둘 다 justification으로 어휘 자체는 동일하다.[158]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의 두 교수인 M.Flick과 Z.Alszeghy의 견해를 소개하는 부분.[159] 유비(類比)란, 일의(一義)도 다의(多義)도 아닌 개념으로, 가령 "A는 얼굴이 예쁘다"와 "A는 마음씨가 예쁘다"에서 두 문장의 '예쁘다'라는 말은 일의적 뜻이 아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의적인 것도 아니며, 서로 다르면서도 어떤 같은 근거 때문에 같은 표현을 갖게 된 것이다. 이때 '유비'가 성립한다. 또다른 예시로, 신학적인 차원에서 볼 때 유(有)(라틴어: ens, 영어: being)를 일의적으로 파악한다면, 하느님의 유와 인간의 유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결론이 도출되어 범신론이 성립한다. 반대로 유를 다의적으로 파악한다면, 하느님의 유와 인간의 유는 완전히 다른 의미라는 결론이 도출되어, 감각적·물질적 인식에서 초감각적·비물질적 인식에 도달할 수 없다는 말이 되므로, 불가지론이 성립한다. 따라서 토마스 아퀴나스를 중심으로 하는 스콜라 학파 학자들은 유의 일의성과 다의성을 거부하고 유의 유비성을 인정한다.(참고: 정의채, 《형이상학》 4판 171-177쪽)[160] 물론 개신교라고 해서 '예수님 믿기만 하면 대강 살아도 천국감요'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를 믿으면 죄의 회개도 필요 없이 천국 간다"는 식의 구원파는 100% 이단이다.[161] 참조: 1코린 12,11[162] 야고 2,17.20.[163] 갈라 5,6[164] 참조: 로마 3,28 그리고 다른 곳들.[165] 참조: 로마 3,24.[166] 히브 11,6.[167] 참조: 2베드 1,4.[168] 로마11,6[169] 1코린 15,58[170] 히브 6,10[171] 히브 10,35[172] 마태 10,22[173] 참조: 2티모 4,7-8.[174] 참조: 요한15,1 이하.[175] 참조: 요한 3,21[176] 참조: 묵시 14,13[177] 요한 4,13-14[178] 참조: 로마 10,3[179] 2코린 4,17[180] 참조: 마태 10,42; 마르 9,41.[181] 참조: 교황 첼레스티노 1세, 「갈리아의 주교들에게 보낸 서간」 제12장(PL 50,336; D 141번.[182] 참조: 1코린 1,31; 2코린 10,17(예레 9,23-24).[183] 1코린 4,5[184] 마태 16,27; 로마2,6; 묵시 22,12[185] 1코린 4,5[186] 마태 16,27; 로마 2,6; 묵시 22,12[187] 참조: 아타나시오 신경의 초반부.[188] 번역 출처: 덴칭거 5073-5074[189] (문헌 내 주석) "모두 한 분 그리스도 아래"(All under One Christ), Nr. 14: Growth in Agreement, 241-247 참조.[190] 번역 출처: 덴칭거 5081[191] (교리서 내 주석) 교회 헌장, 53항.[192] (교리서 내 주석) 교회 헌장, 63항.[193] (교리서 내 주석) 교회 헌장, 69항.[194] (교리서 내 주석) 교회 헌장, 68항.[195] 중화권인 홍콩, 마카오에서도 가톨릭을 성모 마리아나 다른 신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교"로 엄연히 분리한다. 홍콩 교회와 마카오 교회는 天主堂이라는 말이 개신교, 가톨릭을 아우르는 교회의 뜻으로 쓰인다. 홍콩의 종주국이었던 영국이 반가톨릭 정서가 있는 나라라 개신교와 가톨릭을 철저히 분리해 그렇지. 그 배경은 당연히 정치적인 문제였다. 성공회 참조.[196] 삼종기도 첫 부분: 주님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 ...[197]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198] ...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199] 정교회의 성모송에는 없다. 개신교 신자들이 성모송을 접할 때 가장 난감해하는 부분.[200] 더 학술적으로 말하자면, 이 구절의 여인이 성모 마리아 그 자체를 뜻한다고는 확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교회'를 '메시아의 어머니'의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고는 무난하게 말할 수 있다. 곧, '여인'은 교회와 마리아를 동시에 뜻하는 것으로, 혹은 1차적으로는 교회를 2차적으로는 마리아를 뜻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201] 해설: Thus (as at Santa Maria Maggiore) even though the woman represented is obviously Mary — we are after all in a church dedicated to her —, she is above all the "Lady Church", young and splendidly attired for her eternal nuptials. Christ bears a book with the invitation to his "chosen one" to herself become his throne —"Veni electa mea et ponam in te thronum meum" —, and the "chosen one" (the Church) displays a scroll on which we read words drawn from the Canticle of Canticles: "Laeva eius sub capite meo, et dextera illius amplexabitur me". "His left arm is under my head, his right embraces me" (Cant 2:6; cf. 8:3).
따라서 (산타 마리아 마죠레에서처럼) 이 여인은 명백히 마리아로 표현되지만 - 어쨌든 이 교회는 그녀에게 봉헌된 곳이다 -, 그녀는 무엇보다도 "Lady Church"이다. 젊으며 그녀의 영원한 결혼식을 위해 찬란하게 복장을 갖췄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선택된 이"인 그녀를 그분의 왕좌에 어울리도록 초대하는 책을 가지고 계신다. - "Veni electa mea et ponam in te thronum meum" - 그리고 "선택된 이"(교회)는 스크롤을 드러낸다. 거기서 우리는 아가에서 나온 말들을 읽는다: "Laeva eius sub capite meo, et dextera illius amplexabitur me". "그이의 왼팔은 내 머리 밑에 있고 그이의 오른팔은 나를 껴안는답니다"(아가 2,6; cf. 8,3).
[202] 《앙리 드 뤼박: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마르코 스프리치(번역: 박성희)[203] (책 속 주석) 단테의 「신곡」(Commedia Divina) "천국편" 33곡(1-39절)에서 다룬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전례 기념 참가에서.[204] 그럴만한게 성모공경을 인정하는 성공회루터교회가 한국에서는 소수 교파다. 루터교회가 오리지널 신교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홍콩싱가포르영국령이었던 관계로 루터회와 성공회가 사실 더 많다. 웨일스가 극성 루터회 지방이고 성공회는 잉글랜드의 국교이기 때문. 장로회도 예장통합처럼 스코틀랜드계의 융통성 있는 개신교라 복음주의지 근본주의는 아니다.[205] 다만 에큐메니컬 계열 교단에 속한 교회들은 예배 시간에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설교를 종종 하고는 한다.[206] 이들은 가톨릭과의 교류나 대화 같은 것을 가톨릭 세력에 의해 순교당한 프로테스탄트들에 대한 배반으로 보기에(단순한 배반이 아니라 신성모독급의 배반으로) 이들은 다른 개신교 교단(에큐메니컬 계열)에 비해서 천주교를 배척하려는 정서가 더 강하다.[207] 대한민국 기준으로 성공회, 감리회, 예장통합, 기장 등으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소속된 교단들이다. 이 중 성공회는 성모 신심도 그럭저럭 남아있고 묵주도 있다![208] 가톨릭 교회의 신자가 되어, 세례성사를 받고, 가톨릭 교회가 규정한 믿어야 할 교리(도그마)를 모두 충실히 믿고, 교회법에 명시된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하고, 대죄를 짓지 않았거나 이미 지은 대죄를 회개+고해성사로 용서받은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불가항력적(자기 탓 없이) 무식이나 무지로 인해 이러한 사실을 몰랐더라도, 하느님의 은총의 힘으로 충실하게 자신이 알고 있는 한의 최대한의 선과 보편적 도덕률과 양심의 명령을 따르며 종교적 진리를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도 천주교 신앙을 악의적 의도 없이 알지 못했다는 전제 하에 구원의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209] 가톨릭 신앙을 알게 되었으면서도 가톨릭 신앙을 가지기를 거부하거나, 믿어야 할 교리를 알게 되었지만 하나라도 의도적으로 거부하거나, 고의적으로 냉담자가 되거나 타종교(불교, 이슬람교 등) 혹은 타종파(개신교나 정교회 등)로 이탈하거나, 배교하거나, 대죄=중죄를 알고, 이를 지었으면서 상등통회(고해성사 문서 참조)를 거부하거나, 지속적으로 죄에 머물기를 고집하거나, 고해성사를 거부하거나 등으로 참다운 회개를 하지 않았을 경우는 구원받을 수 없다.[210] dulia와 cult는 둘 다 공경으로 번역된다. dulia는 여기서 언급한 성인 공경을 의미하며, cult는 하느님에게도 바칠 수 있는 것이다.(성체 공경이라고 할때의 그 공경이 cult이다) 성인에 대한 cult는 cultus라고 주로 쓴다.[211] 성경에서는 2열왕 2,13-19, 예레 13,18; 29,2 등에 나타나는 지위이다.[212] 대개 사극에서 수렴청정하는 대왕대비나 대비는 구렁이 같은 대소신료들로부터 어린 왕을 보호하기 위해 강한 이미지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213] 마찬가지로, 십자가의 길 역시 예수 곁에서 수난의 고통을 겪은 마리아와 함께한다는 목적이다. 이는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 부속가에도 남아있다.[214] 출처 : 아델레 스카르네라 저, 《4천년의 기도, 단식》, 가톨릭 출판사, 155~156p.[215] 예를 들어 사도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나 사도 바오로의 서간문 등.[216] 대표적으로 '신위'가 적힌 신주, 축문, 합문 등[217] 예수회 선교사제들의 일반적 인식은 다음을 근거로 한다. <왜란 시기 예수회 선교사들의 일본과 조선 인식 - 순찰사 알렉산드로 발리냐노의 일본 방문을 중심으로 ->, 교회사 연구 제49, 2016년 12월(한국교회사연구소 발행), 김혜경(대구가톨릭대학교 인성교육원 강의전담교수)[218] 1587년에 이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선교사 추방령을 내렸다.[219] 최상단의 비판 기사에 나온 미사를 봉헌하였으며, 당시는 아직 주교가 아니었고 신부였다.[220] 그것도 피해자 대부분이 여자아이가 아닌 남자아이. 즉 동성애와 소아성애가 결합된 형태.[221] 이건 당연한 거다. 사랑과 관용을 내거는 만큼 이것만은 까일 거리가 없다. 게다가 전쟁 좋아하는 민중도 별로 없고.[222] 공산주의의 박해를 받은 한국 가톨릭은 당연히 확고한 반공 스탠스이다. 오늘날에는 북한에 더 온정적으로 바뀌기는 했지만, 정치적 의미에서의 공산주의에는 결코 동의한 적이 없다. 게다가 반공보다는 반독재와 반주체사상에 가까운 청년층과는 달리, 해방 직후에 원산지 직송 정품 레닌주의의 박해를 받은 한국 가톨릭은 공산주의 그 자체에 부정적이다. 게다가 5공 시절만 해도, "공산주의자들이 교구를 와해시키고 주교님을 잡아가고 신학교를 폐쇄했어요" 하는 기억을 가진 실향민 사제들이 교계에 넘쳐났었다. 당장 대형 수도원인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만 해도, 공산주의자들의 박해로 교구(면속구)가 와해되고 주교아빠스가 순교한 수도자들이 남쪽에 피난 와서 세운 것이다. 그런 상황에 교계의 친북은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소리다.[223] 제153조 3항[224] 제14조 2[225] Wilhelm Emmanuel von Ketteler, 1811-1877[226] 가톨릭 신앙을 알게 되었으면서도 가톨릭 신앙을 가지기를 거부하거나, 믿어야 할 교리를 알게 되었지만 하나라도 의도적으로 거부하거나, 고의적으로 냉담자가 되거나 타종교 혹은 타종파(개신교나 정교회 등)로 이탈하거나, 배교하거나, 대죄=중죄를 알고, 이를 지었으면서 상등통회(고해성사 문서 참조)를 거부하거나, 지속적으로 죄에 머물기를 고집하거나, 고해성사를 거부하거나 등으로 참다운 회개를 하지 않았을 경우는 구원받을 수 없다.[227] 성모 관련해서 "교황령으로" 반드시 믿어야 한다고 정한 교리는 성모몽소승천성모무염시태 둘 뿐이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개념과, 예수가 그리스도 즉 선택받은 구세주이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삼일 뒤 부활하였으며 다시 재림할 것을 믿는 것은 그리스도교로서 너무나 기본적인 교리이기 때문에 교파 막론하고 (가톨릭이든 정교회이든 개신교이든 간에) 당연히 반드시 믿어야 하는 교리이다.[228] (문헌 내 주석) E. Schillebeeckx, Mary, Mother of The Redemption, London 1964, 197쪽 이하(H. Graef, Mary, a History of Doctrin and Devotion, London 1994(4판), vol. 2, 84쪽. 재인용)[229] 게다가 역사를 거시적으로 보면, 살리카법은 긴 시간 동안 유지되지 못했다.[230] 교세가 급격히 확장된 90년대 이전에 지어진 성당은 "천주교 ○○교회" 라는 식으로 명판이 붙어 있는 데가 많고, 이후 지어진 곳은 주로 "천주교 ○○성당"이나 "○○성당" 같은 명판을 달고 있다. 성당 이름은 행정구역명을 따라 짓는 것이 원칙이다. 다른 지역에 같거나 비슷한 이름인 성당이 이미 있을 경우, "오금동 성 요셉 성당"처럼 주보성인의 이름을 넣거나 "수리동성당" 이라고 행정구역명까지 넣어서 다르게 짓는다.[231] 단, 성공회의 경우 주교좌가 있는 성당을 cathedral라 한다.[232] 단, 이는 콘돔이나 다른 교리위반에 대한 묵인 내지는 허용이 절대 아니다. 이는 외적인 측면일 뿐이고, 실상 콘돔, 루프, 정관수술, 체외사정 등의 인공피임을 한 신자는 대죄를 짓게 된다. 즉 회개하고 인공피임행위 일체를 그만두지 않는 한 7성사를 받으면 안되고, 그 상태로는 죽어서도 구원받을 수 없으며, 또 이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필히 고해성사를 보아야 한다. 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도 바오로 6세 교황은 1968년의 교황회칙 《인간 생명》을 통해 이를 매우 엄격하게 재확인시켰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공식 가르침에서도 가족 계획이라는 명목 하에 불임수술과 인공피임을 하는 행위는 죄가 되는 행위라고 규정하고 있다.[233] 예를 들면 죽기 직전이라면 어느 신부에게든지 회개하고 파문을 철회받아 교회로 돌아올 수 있다. 당연하지만 진정한 회개는 필수다.[234] 대략 3개월 이상 교육 과정[235] 조선시대 유교 제사에서 5대째에 신주를 불태웠던 이유는, 유학자들이 영혼이 사후 120년(4대) 이후에는 자연스레 소멸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그리스도교 종파인 천주교는 신주를 우상숭배라 보고 영혼불멸을 믿기 때문에, 성리학 사회에서 가치관이 양립하기가 힘들 수밖에. 마테오 리치 신부를 비롯한 적응주의 선교와 보유론(천주교는 유교적인 문화관을 보충하는 종교로서 동아시아의 사람들에게 포교될 수 있다는 가치관)을 지닌 사제들도 한나라 시대 이전의 초기 유교를 긍정적으로 보았지, 성리학은 그다지 긍정적으로 보지 않았다.[236]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현대 가톨릭 교회는 진화론 등등 자연과학의 영역에 대하여 교회가 인정한다거나 불허한다거나 하는 식의 입장은 표하지 않는다. 따라서 진화론을 어떻게 생각하던지간에 그건 신자 개개인의 생각에 맡기고, 다만 "진화론이 교회와 모순이 있는건 아니다"고 오해할 여지를 설명해줄 뿐이다. 쉽게 말해서 철학자가 자연과학에 대하여 인정을 하네 마네를 논할 자격이 없듯이, 성직자 역시도 그러하다고 보는 것이다. 또한 영혼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 역시도, 자연과학을 거슬러 주장을 했다기보다는 자연과학이 다루지 않는 영역에 대하여 종교적 믿음을 표현하는 것으로 봐야한다.[237] 수도사제는 목사들처럼 몇십 년 동안 한 지역에 자리잡는 경우가 있으나, 가톨릭 신자들이 가장 많이 마주치는 사제는 교구사제이다.[238] 가톨릭 관련 서적들은 원칙적으로 교황청/주교회의/개별 교구의 검열을 받도록 되어 있다. 이런 검열을 통과한 책들은 imprimatur를 받게 되는데, 이런 책은 가톨릭 신자가 안심해도 좋다.[239] 물론 개신교 스타일에도 단점이 존재하는데, 목사들은 월급쟁이가 아니므로 자기 생계는 자기가 알아서 챙겨야 한다. 게다가 먹여살려야 할 처자식도 있다. 때문에 돈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흑화에 취약하다. 게다가 개념 제대로 박힌 사람이 '생계를 유지할 수 없어서' 목사 때려치우는 경우도 많다.[240] 일본 막부처럼 대놓고 탄압하지는 않았으나, 허가된 지역 이외에 내륙으로 들어가 선교를 하다 적발된 선교사는 처형되었다.[241] 단, 교리적으로 무효인 건 아니다. 이건 동방 정교의 주교들이 가톨릭 입장에서도 어쨌든 주교인 것과 같은 원리이다. 때문에 어떻게든 유효하게 서품 받았을 경우, 나중에 교황에게 승인 받아서 '교회법적 합법 주교'로 바뀔 여지는 있다.[242] 중국의 가톨릭이나 개신교 등 그리스도교 신자는 대부분 한족들이다. 이슬람불교, 원시종교가 대부분인 소수민족들에게는 드물게 있지만 현재 꾸준히 늘고 있다.[243] 중국은 외국인에 한해서 종교의 자유를 온전히 인정하기는 하지만, 외국인이 운영하는 종교시설에 자국민이 출입하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244] 미국 국무부가 운영하는 자유아시아방송기사를 봐도 2021년 선전시의 지하교회(개신교) 목사와 신도들이 연행되었지만 조사후 10시간만에 풀려났다고 한다.[245]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사용한 표현이다.[246] 지하교회 주교들.[247] 애국회 소속이지만 교황과의 친교가 이루어져 교회법적 관점에서도 합법적인 주교들.[248] 애국회 소속이며 교황과의 온전한 친교가 이루어지지 않은 주교들[249] 위키의 편집자가 아니라 기사 편집자의 주석[250] 해피밸리는 홍콩 경마장이 있는 곳으로, 영국군6.25 전쟁 당시 중공군과 전투를 치르던 언덕 이름을 해피벨리라 붙이기도 했다. 그래서 전투 이름도 해피밸리 전투이며 영국군의 대표적 승전이다.[251] 한국, 중국, 대만, 마카오, 홍콩, 일본, 미얀마, 동티모르, 베트남, 베네수엘라, 스페인도미니코회가 소속되어 있다. 그리스도교 비율 상 실제로는 한국, 홍콩, 마카오, 동티모르만 아시아에서 제대로 활동한다. 미얀마나 일본은 가톨릭이 극소수이고 중국 대륙은 정상적 로마 교황청의 수위권 내에 있지 않다.[252] "기울여야 할 노력의 우선 순위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적합한 사람들을 선발하여 성직자로 양성시키는 일. 둘째, 새 신자들을 적절히 돌보는 일. 셋째, 비신자들의 회개를 위해 노력하는 일. 여기서 둘째보다는 첫째가, 셋째보다는 둘째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 우선 순위를 절대로 뒤바꾸지 말 일이다."(파리외방전교회 회칙 1장)[253] 작정하고 식민지로 만들고 싶으면, 원주민 성직자 양성을 막아서 원주민 교회의 유럽 교회 종속을 유도하면 된다. 파리외방전교회가 프랑스군을 박해 타파의 카드로 만지작거리거나 일본의 조선 지배를 눈 감는 등의 오류는 저질렀으나, 조선인 사제 양성을 최우선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254] 참고로 퍼거슨은 (영국 입장에서의) 소위 '국뽕'과 非영미권 과소평가로 악명 높은 사학자이다. 그런 퍼거슨도 영미권 노예제 만큼은 라틴 아메리카와 비교하여 정말 열심히 깠다.[255] Denzinger 한국어판 1495항에서 발췌[256] 파문벌로 위협하는 처벌 규정은 이후 에스파냐측의 요청으로 1538년에 취소되었지만 에스파냐의 속권도 이 문제에서 손을 놓은 건 결코 아니었으며, 상기한 퍼거슨의 글에서 보듯 점차 개선되었다.[257] 1998년 시복되었으나 우스타샤 관련으로 비판을 받는 크로아티아 추기경 알로이지예 빅토르 스테피나츠(Alojzije Viktor Stepinac)에 대해서, 크로아티아계 미국인 역사가 요조 토마세비치(Jozo Tomasevich)는 저서 War and Revolution in Yugoslavia, 1941–1945: Occupation and Collaboration에서 역사가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1) 개인들과 집단들을 돕는 사적인 행위에서는 "그의 행동이 항상 성공적이진 않았지만 최고의 칭찬을 받을 가치가 있다(deserves highest praise, although his actions were not always successful, 563쪽)" (2) 그러나 "세르비아 대상 제노사이드와 우스타샤 정권에 대한 스테피나츠의 언행에는 심각한 결핍이 있다.(there are serious shortcomings in Stepinac’s statements and actions toward the Ustashe regime and its genocidal actions against the Serbs and the Serbian Orthodox Church, 564쪽)", "스테피나츠 대주교도 그 나라의 어떤 가톨릭 주교도 ... 공적 저항의 말을 하지 않았다.(neither Archbishop Stepinac, nor any other Catholic bishop in the state...uttered one word of public protest, 537쪽)"[258] 공화주의와 가톨릭의 드잡이질은 프랑스 대혁명까지 올라가는 오랜 기원을 가진 문제이다. 1789년 5월 5일 베르사유의 삼부회나 같은 해 7월 14일의 바스타유 공격때만 하더라도 혁명과 교회 사이에는 그 어떤 종교적 이해관계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교회 재산의 처리 문제, 성직자기본법(Constitution civile du clergé), 혁명 정부의 학살 등을 거치며 공화주의와 가톨릭은 감정의 골이 깊게 파여버렸다. 현 시점에서 "누가 먼저 때렸냐"를 따지는 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같은 난제가 되어버렸지만, 다행히 오늘날엔 공화주의에서도 성직자기본법과 공포정치의 문제점은 인정하기에 공화주의와 반가톨릭의 결합은 역사의 유물로 전락했다.[259] 카를 마르크스와 동시대에 활동한 마인츠의 주교. 또한 프랑크푸르트 국민의회 의원이기기도 하다. 단순히 사람들의 양심에 호소하는 것을 넘어, 정치적이고 구조적인 사회 문제를 다루었으며, 레오 13세의 회칙 "새로운 사태"에 중요한 영감을 제공했다.[260] 케틀러 뿐만이 아니라,프랑스의 구스타브 드 크로이(Gustave de Croy) 주교, 루이 드 벨마(Louis de Belmas) 주교, 피에르 지로(Pierre Giraud) 주교 등 근대의 수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비슷한 활동을 하였다.[261] 회칙 '새로운 사태'는 공산주의를 분명히 반대하지만, 동시에 노동 운동에 친화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사실 이상할 것도 없는 게, 오늘날에도 노동 운동은 공산주의의 동의어가 아니다.[262] 호세 안토니오 사예스(José Antonio Sayés) 지음. 윤주현 옮김. 《교회론》(''La Iglesia de Christo) 603쪽.[263] Eorum principiorum illud est maximum, onmes homines, quemadmodum genere naturaque similes intelliguntur, ita reapse esse in actione vitae inter se pares: unumquemque ita esse sui iuris, ut nullo modo sit alterius auctoritati obnosius: cogitare de re qualibet quae velit, agere quod lubeat, libere posse: imperandi aliis ius esse in nemine. His informata disciplinis societate, principatus non est nisi populi voluntas, qui, ut in sui ipsius unice est potestate, ita sibimet ipsi solus imperat: deligit autem, quibus se committat, ita tamen ut imperii non tam ius, quam munus in eos transferat, idque suo nomine esercendum.[264] Quo modo, ut perspicitur, est respublica nihil aliud nisi magistra et gubematrix sui multitudo: cumque populus omnium iurium omnisque potestatis fontem in se ipse continere dicatur, consequens erit, ut nulla ratione officii obligatam Deo se civitas putet ut religionem publice profiteatur nullam; nec debeat ex pluribus quae vera sola sit,quaerere, nec unam quamdam ceteris anteponere, nec uni maxime facere, sed singulis generibus aequabilitatem iuris tribuere ad eum finem, dum disciplina reipublicae ne quid ab illis detrimenti capiat. Consentaneum erit, iudicio singulorum permittere omnem de religione quaestionem; licere cuique aut sequi quam ipse malit, aut omnino nullam, si nullam probet. Hinc protecto illa nascuntur; ex lex unius cuiusque conscientiae iudicium; liberrimae de Deo colendo, de non colendo, sententiae; infinita tum cogitandi, tum cogitata publicandi licentia.[265] 한국어 번역은 호세 안토니오 사예스의 《교회론》 한국어판에서 발췌. 라틴어 원문은 바티칸 홈페이지에서 발췌.[266] 오늘날 영국에서 성공회와 다른 종교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선(다른 종교에 대한 성공회의 원칙적 우위를 공인하되, 실천적 면에서의 관용을 보이는 것)과 비슷한 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267] 가톨릭 입장에서 반박하자면, 엄연히 가톨릭 교계가 돈을 들여 구매한 사유지이며, 매입 당시는 폐사된 지 오래였다. 남의 종교가 구매한 사유지에 "우리 것도 넣어라"라면서 '부탁'을 넘어 '항의'를 하는 건 무리한 요구이거니와, 천진암이 천주교를 도와주다가 몰락했다는 불교측의 주장은 가설의 영역이다.[268] 마지막은 가톨릭프레스의 기사가 아니고, 발행인이자 편집자인 김근수가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이다.[269] 링크된 법보신문은 친 주류종단 성향의 불교 언론이다. 참고로 박문수의 글에서는 불교포커스를 조계종에서 훼종 언론으로 분류하는 데 대해 언론 탄압이라고 주장하지만, 불교포커스와 같은 진보 성향이면서 불교포커스보다 더 강력하게 조계종단 비판을 하던 불교닷컴의 경우는 소송까지 갔다가 법정에서 패소해 배상한 경력이 있고, 이런 불교계 진보 언론들은 동국대학교/사건사고 문서의 2015 총장 선거 종단 개입 사태와 관련해 물의가 드러난 몇몇 학생들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싸고 돈 전적도 있다. 물론 사건사고 문서에 나오듯이, 그렇다고 조계종이 잘한 건 건 아니다. 당장 조계종만 해도 선학원을 상대로 소송에서 이겨 놓고도 기사 제목을 빌리자면 백기투항하는 행위를 보이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동도 보이고 있다.[270] 비가톨릭 언론사로 치면 오마이뉴스쯤 된다.[271] <만들어진 신>에서는 재미있는 설문이 나온다. 어떤 대통령 후보자가 대통령직을 수행할 충분한 능력과 자격은 갖추었지만 흑인이거나, 여성이거나, 가톨릭 신자이거나, 유대인이거나, 동성애자이거나, 무신론자일 경우, 그에게 투표하겠냐고 묻는 설문이었다. 여기서 가장 부정적인 응답이 나온 파트는 무신론자인데, '가톨릭'이 여기에 후보로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미국 주류사회에서 가톨릭의 인식은 그리 좋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멀지 않은 과거인 1960년대만 해도 존 F. 케네디가 가톨릭 출신으로 대통령이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화제였을 지경이니.[272] 이는 가톨릭이 예비신자 교리로 인해 개신교보다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높다는 점도 한 몫 했다.[273] 비록 히스패닉 인구 중 개신교 개종 비율이 높아진다고는 하지만[274] 후술한 링크에서 보듯, 주교의 사과는 있었다.[275] 한동일 법으로 읽는 유럽사 참조-유럽에서 교회법을 공부하는 사람은 당연히 성직자들이었고 그에 맞는 성직자 복장을 입었는데 나중에 교회법을 이외의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교수 등)도 성직자와 같은 복장을 따라했다. 또 현재 주교는 한 지역구의 종교지도자 정도이지만 중세 유럽에서는 현재의 도지사+지방법원장 정도의 역할을 수행했다[276] 한국천주교회는 이들 두 교회의 세례를 유효한 것으로 인정하므로 다시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 물론 교리교육은 다시 받아야 한다.[277] 시작은 개신교 계열의 수도원이었으나, 한국에선 주로 가톨릭에 의해 보급됨.[278] 주인공을 가톨릭(혹은 가톨릭을 참조한 교단) 소속으로 설정했다는 것은 결국 주인공이 성직자나 수사/수녀라는 얘기인데, 당연한 얘기지만 이러면 주인공과 관련된 로맨스 묘사가 불가능해지니까 당연히 작가 입장에서 꺼려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가톨릭이 아니라 가톨릭을 참조한 가상의 교단이라면 성직자의 혼인에 대한 부분만 가톨릭 대신 성공회 혹은 정교회 쪽을 참조하는 방법으로 넘어갈 수 있지만 실제 가톨릭 교단 소속으로 설정했다면 답이 없다.[279] 예시로 든 캐릭터의 경우에도 포스트 아포칼립스 상황에서 순수한 선의로 사람들을 돕고 있으며 광신적인 면모도 전혀 없는 모범적인 수녀로 묘사되지만, 동시에 작중 손꼽는 인간 쓰레기나 그 패거리들 같이 '명백한 악인'들을 망설임없이 죽이거나 고문하는 면모 또한 보여준다.[280] 남용될 때의 폐해도 폐해지만, 장엄구마식은 묵주기도로 하는 구마가도나 그 외 여타 구마기도와 달리 엄연히 전례의 형식을 갖춘 "전례"이다. 장엄구마예식서 또한 각종 전례예식서를 모아놓은 로마 예식서에 포함되어 있다. 따리서 본질적으로 그 권한이 사제에게만 부여된 것은 본질적으로 당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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