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8-16 14:07:09

민주주의

민주제에서 넘어옴

국가의 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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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를 설명한 그림[1]

1. 개요2. 언어학적 의미3. 역사적 의미 변천4. 참된 민주주의의 조건
4.1. 연대 독재와 여론 편향을 막는 다양성4.2. 시위권, 저항권, 무장권4.3. 경제성장4.4. 패자부활의 제도적 보장4.5. 끊임없는 견제4.6. 지속되는 이유
5. 관련 논의들
5.1. 다른 사상들과의 관계
5.1.1. 민주주의의 반대는 공산주의인가?5.1.2. 자본주의와 반드시 결합되어야 하는가?5.1.3. 민주주의의 반대는 독재인가?
5.2.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논의
5.2.1. 정당 내부는 민주적으로 운영될 필요가 없다는 주장5.2.2. 정당 자체도 민주주의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주장
5.3. 민주주의 국가 속 시민들에게 받아들여지는 민주주의
5.3.1. 대한민국5.3.2. 미국5.3.3. 일본
6. 문제점 및 비판
6.1. 한계6.2. 의회 제도의 문제점6.3. 민주평화론은 사실인가?6.4. 여론의 취사선택
7. 형성
7.1. 고대 민주주의7.2. 중세 유럽의 민주주의
7.2.1. 주권론7.2.2. 자유와 법치7.2.3. 공공선과 시민권7.2.4. 자선과 복지
7.3. 근대~현대 민주주의7.4.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7.4.1. 개념의 도입 (개화기)7.4.2. 광복 이전 (일제강점기)7.4.3. 광복 이후7.4.4. 문제점
8. 민주주의의 분파
8.1. 고전8.2. 현대
9. 관련 발언
9.1. 비판적 의견
10. 기념일11. 기타
11.1. 매체에서11.2. 국명에 '민주'가 들어가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12. 관련 문서

1. 개요

우리의 정치 제도를 민주주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소수의 특권 계급이 아닌 시민의 손으로 통치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 국가에 봉사할 능력이 있다면 그가 가난하다고 해서 정치에서 소외되지 않습니다. 아테네에서는 정치에 관심이 없는 시민은 시민의 자격이 없는 자로 여깁니다. 우리는 민회에서 정책을 결정하거나 적절한 토론에 부칩니다. 이 점이 우리가 다른 나라와 다른 점입니다.

이 자리에서 우리는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그 위대한 사명, 즉 고귀한 순국선열들이 마지막 신명을 다 바쳐 헌신한 그 대의를 위하여 더욱 크게 헌신하여야 하고, 이분들의 죽음을 무위로 돌리지 않으리라 이 자리에서 굳게 결단하여야 하며, 이 나라가 신의 아래에서 자유의 새로운 탄생을 누려야 할 뿐 아니라,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가[2] 지상에서 사라지지 않아야 한다는 그 위대한 사명에 우리 스스로를 바쳐야 합니다.[원문]

에이브러햄 링컨 미합중국 제16대 대통령의 게티즈버그 연설.
| Democratic system

민주주의는 한 국가의 주권이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아닌 국가에 속한 모든 국민에게 있음을 확인하고, 국민의 권력을 기반으로 현실 정치를 구현하는 통치제도이다.

민주주의(democracy)는 이념이나 사상이 아니라, 군주제(monarchy), 과두제(oligarchy) 등과 같은 통치체제이다. 따라서 democracy의 번역은 '민주제' 혹은 '민주정치'/'민주정'이 적절하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민주주의라는 번역의 영향과 30여 년에 걸친 군사정권에 저항한 민주화 운동의 영향으로 민주주의를 제도라기보다 일정한 이념 또는 사상으로도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민주정을 시행하는 것’ 자체가 대한민국에게 있어서 큰 사상적 싸움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국사에 나온 것처럼 의외로 한국은 민주주의 발전이 상당히 빨랐는데 이는 다른 선진국에서는 귀족이나 자본가가 민중에게 순순히 권리를 넘기지 않은 것에 비해 급진적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또한 영어에도 이념에 해당하는 Democratism라는 단어가 있다.

2. 언어학적 의미

민주제 / 민주주의(Democracy)가 권위주의[4], 전체주의[5], 군국주의[6][7]와 반대되는 개념이라고 오해하기도 하는데, 권위주의적 사상들과 대립하는 개념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주의이다. 애초에 민주제 / 민주주의는 정부 형태를 가리키는 용어기 때문에, 전제 정치, 군주제, 과두제 등의 정부 형태가 민주제에 대치되는 말이라 할 수 있다.[8] 민주제는 다수에 의한 지배를 뜻하며, 꼭 자유롭지 않고 폭압적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민주정에서는 다수의 동의하에 독재와 소수자에 대한 폭력이 이루어질 수 있다. 민주주의와 전체주의가 양립불가능한 개념이 아니며, 파시즘과 같은 대중독재체제도 있다. 이렇게 자유주의가 부재한 민주주의는 비자유민주주의라고 불리며, 자유민주주의와 대립된다.

Democracy(민주제)라는 단어 자체도 과두제나 군주제 또는 독재 체제 등 권력이 특정 인물 혹은 집단에 독과점되는 체제에 대응하는 뜻이다. 민주주의라는 말은 그리스어의 'Δημοκρατία(demokratia)'에 근원을 두고 있는데, 'Δῆμος('인민' 혹은 '다수')'와 'Κράτος(지배)'[9]의 두 낱말을 합친 것이다. 이 중 'Δῆμος'를 '인민'으로 이해하는지, '다수'로 이해하는지에 따라 민주주의의 이념은 서로 다르게 구성될 수 있다.[10]

한자어 민주(民主)는 전통적으로 수식 구조, 즉 '민의 주인'으로 해석되어 제왕의 별칭으로 썼으나, 중국의 경우 1864년 만국공법의 번역 이후 'Democracy'의 번역어로 채용되면서 현대에는 주술 구조인 '민이 주인이다'라는 의미로 쓰게 되었다.

3. 역사적 의미 변천

고대 그리스의 Δημοκρατία의 의미는 현대의 민주주의와는 차이가 있다. 소크라테스의 처형을 본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11]의 서적에서만 그렇게 쓰이는 게 아니라 그리스 정치체제에 대한 적대자들과 비판자들의 보편적 멸칭이었으며 현대에는 이를 중우정치라고 칭한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를 사형시킨 그 사람들이 자신들이 중우정치를 원한다고 주장할 리가 없으므로 현실적으로는 민주주의가 중우정치와 동의어처럼 쓰였다. 따라서 비판자들이 아테네를 데모크리티아들에 휘둘리는 국가라 표현하면 그들 스스로는 극구 부인했다. 물론 데모크라티아들은 그리스의 정치체제는 Δημοκρατία가 맞다고 했고 테미스토클레스페리클레스처럼 데모크라티아의 지지를 받는 사람들이 각종 제도를 교묘하게 이용하거나 새로이 제도를 만들면서 집권하기도 했기 때문에 매우 애매한 문제다. 그러나 아테네 민주정 300년간 데모크라티아들이 민중의 지지를 이용하여 집권한 시기는 아테네 민주정의 위기라 칭하는 상황이었으며 매우 이례적인 상황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리스안에서 민주주의자는 다수 대중의 지지를 받아 그 의지를 체현한다고 주장한 참주들과 그 지지자들을 뜻하는 말로도 사용되었다. 이 참주들을 제거하기 위해 도편추방제라는 극약처방까지 하고 있었던 정치 제도인지라 이를 가리켜 현대의 직접 민주주의라고 칭하는 것은 너무나 거친 서술에 가깝다. 직접 민주주의의 목적은 대중의 의지를 보다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것인데 그리스의 정치체제는 이것을 편집증적으로 경계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표를 한다는 특징 때문에 대중을 선동하고 그 지지를 받는 참주들은 끊임없이 나타났고 이 참주들에 의해 그리스의 정치체제는 수차례 독재정과 왕정으로 변화하기도 했었다. 그러므로 실질적으로는 아테네 역시도 간접민주제처럼 돌아갔는데 이 경우에도 대의제인 현대 민주정과는 달리 '선거'가 아니라 '추첨'으로 공직자를 뽑았다. 왜 '추첨'을 했냐하면, 역시 다수 대중의 뜻을 모은다는 것을 알레르기적으로 경계했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자면 똑같이 공공의 일을 처리하는 행정담당자라 할지라도 선거를 거친 학생회장은 유세를 하고 공약을 걸고 새로운 무언가를 추진할 수 있는 권위가 생긴다. 그러나 주번에게는 그런 게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정해진 일을 정해진 관례에 따라 수행할 수 있을 뿐이다.

여기서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흔히 민주주의를 다수 대중들의 뜻과 의지를 구현하는 정치체제이므로 그리스 로마의 정치체제도 민주정, 공화정이라고 표현하나 정작 그 체제를 가지고 있던 국가들은 그것을 극히 경계했다는 것이 역설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 데모크라티아라 불리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리스와 로마의 정부를 끝장내려 시도하는 위험한 사람들이었다. 300년간 이어진 아테네 민주제가 페리클레스에 의해 무력화되고 로마 공화제 역시 민중파인 시저가 대중의 의지를 체현하여 박살내버렸던 것처럼 이들이 민주정을 유지하면서도 "다수파의 의지를 '내'가 구현"한다는 자들은 민주정과 공화정의 유지를 위해 반드시 제거해야 할 위험분자들이었던 것이다.

역사적으로 민주주의는 프랑스 혁명 전통에 따른 "다수 대중의 지배에 모든 사람들이 따른다."는 모토를 든 중앙집권적 민주주의와 영미권 전통에 따른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이 프랑스 혁명전통을 한나 아렌트는 사산되었다고까지 표현하면서 인민민주주의민주집중제 같은 사실상의 독재체제로의 이행을 야기한다고 주장했다. 민중파인 카이사르도 그랬지만 나폴레옹, 히틀러 등 민중의 지지를 체현하는 자들은 그 증거로 민주적 형태의 선거를 치르었고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이들의 정치체제에 호의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반면 그리스-로마의 전통은 이러한 중앙집중적 권력에 대한 편집증적인 경계로 미루어 보아 "누구라도 불필요하게 나를 동원할 수 없다."에 방점을 두고 발달한 연방주의, 지방분권적 혹은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더 가까울 것이다.

이 역설적인 단어 혼란 때문에 민주주의의 의미 그 자체를 대중이 이해하기 어렵다. 민주정을 파괴하는 것은 대중의 지지를 얻고 대중을 위한 정치를 하는 민중주의자인 페리클레스와 카이사르이며 다수 대중의 주권으로 정치를 행하는 것이 민주주의 정치체제이긴 하지만 다수 대중의 지지로 정치를 행하는 자들은 모든 시스템과 반대를 투표로 내리찍기 때문에 독재로 반드시 귀결되는 아이러니한 역사적 상황이 수없이 되풀이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리스 시대에도 클레이테네스등 데모크라티아들은 이를 긍정적인 정치체제이며 마땅히 아테네가 지향해야 할 바른 정치체제라 했고 그 반대자들은 데모크라티아들이 아테네의 파멸을 부를 자들이라고 싸웠던 것처럼 이름은 달라지지만[12] 다수결과 자유간의 모순과 긴장관계는 민주정안에 항상 내재되어 있다.

예를 들어 벤저민 프랭클린의 유명한 격언인 "민주주의란 두 마리의 늑대와 한 마리의 양이 저녁식사로 무엇을 먹을지 투표하는 것이며 자유란 완전무장한 양이 투표 결과에 항의하는 것이다"의 발언에서는 민주주의가 다수결과 동의어처럼 사용된다. 그러나 벤저민 프랭클린은 현대민주정을 설계한 미국의 국부 중 하나이다. 이렇게 화자에 따라 민주주의는 "다수결" "자유" 심지어는 "독재"의 다른 이름으로 쓰였다. 이처럼 같은 화자라도 민주주의란 단어를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하는 등 혼란스러운 단어이다. 따라서 어떤 정의를 통해 민주주의란 이런 것이다. 라는 말은 워낙 많은 사람들이 많은 의도로 사용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결국 공화정, 민주정이라고 칭해지는 정치체도를 비교하여 양태를 분석하는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는데 전체적인 흐름을 따져보면 결국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다수결, 중앙집권, 대중의 인기와 의지. 민중주의를 추구하는 민주파와 vs 자유, 지방분권, 시스템에 의한 견제, 대중의 인기[13]를 수단으로 독재하여 자유를 보장받는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여 민주정을 파괴하는 것을 경계하는 공화파가 끊임없이 갈등하고 있으면서 공존하는 정치체제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공화주의가 자유주의라는 거대 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또 하나의 제국인 민주주의에 속한 일개 속주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오히려 자유주의, 민주주의 양 사상이 법의 지배와 인민 주권이라는 양대 원리 위에 구축된 고전적 공화주의에 속한 속주들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사상은 각각 이러한 양대 원리 중 하나만을 강조하면서 나머지 하나의 원리는 그 의미를 축소한다. 물론, 자유주의자들이 자유주의 귀족정이나 자유주의 왕정에 맞서 자유 민주주의를 옹호하기 위한 방편으로 인민 주권을 찬양했던 적도 많았다. 그리고 민주주의자들이 인민 회의체(그리고 민중 선동가들)에 절대적 권력을 부여하는 포퓰리즘적이고 군중적인 형태의 민주주의를 막기 위해 법의 지배를 찬양하고 입헌적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경우도 있었다. 자유주의를 최고 통치권의 헌법적ㆍ법률적 제한을 통해 자유 수호를 위한 최선의 성채를 구축하려는 사상 전통으로 묘사하고 민주주의를 인민 주권의 장점을 찬양하는 사상 전통으로 묘사하는 것은 지금도 여전히 타당하다.

그런데 이러한 묘사를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양대 사상이 한층 넓고 비옥한 사상 체계인 공화주의 안에 포함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고전적 공화주의가 변형되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서로 다른 사상 전통으로 나눠진 것은 전혀 박수칠 일이 아니라 개탄할 만한 일이라고 주장할 수밖에 없다. 즉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마키아벨리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로크와 몽테스키외로 하는 한쪽과 루소로 하는 다른 한쪽으로 나눈 것은 인류 지성사에서 뼈아픈 손실이었다.
모리치오 비롤리, "공화주의", 영어판 독자들을 위한 소개의 글 中
왜 이런 양태를 보이냐면 공화정이 아닌 민주정이 오래 지속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민중파가 폭주해서 권력을 집중시키면 그 사람 자신이 나폴레옹처럼 민주정을 전복하고 군주가 되거나 카이사르, 레닌처럼 그 후계자가 바로 독재를 이루면서 민주정이 붕괴되어 버린다. 이런 걸 민주주의의 자기파괴적 경향이라고 하는데 그 브레이크를 거는 게 공화파라는 것. 반면 인민주권이 없으면 도제를 한가문이 독직하거나 10개의 가문 평의회가 모든 전권을 휘두르는 이탈리아의 공화정이나 로마 말기의 공화정처럼 귀족들의 과두정이 되는데 이러한 형태의 공화정은 오래 지속할 수는 있으나 바람직한 제도라고는 볼 수 없다. 따라서 현대에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체제는 현대에 이 둘의 견제를 명문화한 민주주의를 되살린 미국의 체제를 직간접적으로 모방하거나 이식한 체제만을 민주주의라 부르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민주공화국이라는 이름이 여러 나라에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공산권 국가에 우호적인 학자들은 사회주의권의 민주집중제, 인민민주주의 등을 민주주의의 범주에 넣어 소비에트나 중국 등도 민주주의 국가라고 칭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미국이나 유럽 등의 국가에서는 이들 체제가 민주주의라는 것을 부정한다.

물론 민중파가 언제나 자유에 대척하는 건 아니다. 공화주의와 자유주의간의 대립을 볼 때는 공화주의는 공동체 정체성을 강조하는 부분도 있기 때문에 정부기구를 옹호하기 마련인데 자유주의는 정부나 공동체를 안배하는 사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민중파가 자유의 문제에서 자유에 대척하는 방향에 서는데 그 이유는 민중파는 언제나 숫적 다수인 하층민을 대변하고 공화파는 민주제 안에서의 권력층의 지지를 받기 때문이다. 개인의 권리를 간섭하지 않는 방향으로 보장한다는 것은 지킬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환영받을 사안이지만 하류층은 잃을 게 없기 때문에 개인의 권리를 침해해서라도 공공복리를 증진시키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물지만 사안에 따라 대중들보다 엘리트들이 더 진보적인 때도 있는데 예를 들어 노예 문제나 난민 문제, 여성 문제 같은 안건이 그렇다. 대중의 인식보다 엘리트층의 인식이 더 진보적일 때는 자신들이 장악한 정부 기구를 통해 진보적 가치관을 대중에게 관철하려고 한다. 대중들은 이에 저항하기 때문에 민중파가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극단적으로 발현된 것이 남북전쟁 전후의 민주당과 공화당간의 대립이다.

대의제를 채택한 현대 민주주의는 로마 혼합정의 정신을 이어받은 권력분립론과 결합된 다수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간접 민주주의란 쉽게 말해서 극소수의 권력자들이 자기 권력의 정당성을 스스로 확보하는 모든 종류의 정치체제의 반대, 그러니까 선거를 통하여 피치자 스스로가 권력의 정당성을 부여하도록 하는 정치체제를 의미한다.

현대 민주주의는 특정한 하나의 사상이라기보다는, 오늘날의 서방 진영에서 누리고 있는 하나의 문화적 현상에 가까운 단어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개개인의 참정권과 연관성이 높은 단어이며, 따라서 반민주적인 폭정은 정치적인 논리가 빈약한 대상에게도 자유주의에 거슬러 반하여 사용될 수 있다. 즉, 일신의 자유에 해당하는 부분을 민주주의는 정치적인 논리를 통해 침범할 수 있다. 국민적 가치관(유교, 당파싸움, 정체성 정치, 집단적 인물평가, 연대감정에 치우쳐진 행동 규범, 호혜관계)와 국민 정서를 내세운 정치적 논리를 적용하여 이를 침범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가 곧 자유주의라고 볼 수는 없으며, 자유주의를 이루는 수단으로써 민주주의를 활용하는 태세가 잔재하는 것이다.

데모크라티아는 데모스가 다스린다라는 의미이므로, 이는 모순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표현들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고, 또한 정당하다고 여긴다. 왜냐하면 서구인은 민주정을 '다수(=데모스)가 다스린다'라는 순수한 의미의 민주정이라기보다는, 이것이 자유를 침해할 수도 있지만 일신의 결정권과 사생활 개념을 도입하여 자유주의의 수단으로서 사용되며, 사회주의의 비판을 수용하고, 공화주의와 혼합된 특정한 문화현상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특히 공화주의와 비교할 경우 수렴 진화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서로 비슷해졌다.

오늘날 민주주의는 대부분의 선진국이 채택하는 정치 체제가 되었다.[14] '만민의 정치적 평등'[15]을 기반으로 하고 있기에 인류가 이룩한 이상에 가장 근접한 정치체계이지만, 우민화 정책, 중우정치라는 거대한 덫이 있어 항상 경계해야 하기도 하는 체제. 건국 초기 미국의 민주주의 정치 체제를 관찰한 후 서술한 『미국의 민주주의』의 저자인 토크빌은 1권에서는 미국 민주주의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표명하고 있지만 2권에서는 인민재판을 비롯한 중우정치의 사례들을 제시하며 민주주의가 전체주의로 귀결될 가능성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하였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소크라테스플라톤 등이 끊임없이 경고했던 부분이었다.

4. 참된 민주주의의 조건

민주주의는 한 순간에 뚝딱 만들어지는 물건 같은 것도 아니고, 한 번 달성하면 그 레벨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붕괴되고 독재 정권이 들어선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시민들의 감시 안에서 바른 목적이 없으면 대중주의와 결합된 독재 정권이 다시 들어설 가능성이 있다.

민주주의가 구성되기 위한 요소로는 크게 5가지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참여(Participation), 다양성(Pluralism), 개발주의(Developmentalism), 보호(Protection), 성과(Performance)이다.
  • 참여란 선거나 토론 등을 통해 정당하게 정권이 들어서며 모든 사회 구성원이 동등하게 권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 다양성이란 복수의 정당을 인정하고, 사상과 종교 등에 있어 다양한 의견이 받아들여지도록 정부를 개방하는 것이다.
  • 개발주의란 정치적 관심을 갖고 정치란 무엇인지, 정치가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등을 인지하는 것이다.
  • 보호란 정부가 권력을 남용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견제하는 것이다.
  • 성과란 삶의 질적 향상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 의료, 치안, 교육 등에서 어느 정도 이상의 수준을 보여야 한다.

현실에서 거짓된 민주주의와 구분된 진정한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한 필수 요건은 대략 6가지로 나눌 수 있다. 출처
  1. 국민은 1인 1표의 보통선거권을 통하여 절대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2. 적어도 2개 이상의 정당들이 선거에서 정치 강령과 후보들을 내세울 수 있어야 한다.
  3. 국가는 모든 구성원의 민권(民權)을 보장하여야 하는데, 이 민권에는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가 포함되며 적법한 절차 없이 국민을 체포, 구금할 수 없다.
  4. 정부의 시책은 국민의 복리증진을 위한(국민을 행복하게 하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5. 국가는 효율적인 지도력과 책임 있는 비판을 보장하여야 한다. 정부의 관리들은 계속적으로 의회와 언론에서 반대의견을 들을 수 있어야 하고, 모든 시민은 독립된 사법제도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
  6. 정권교체는 (현 정부가 민주주의를 따른다는 전제하에서) 평화적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로버트 달은 민주적 과정의 필수적 특징들로 다음과 같은 기준을 제시한다.
  1. 효과적 참여: 구속력 있는 결정을 내리는 과정 속에서 시민들은 최종적 산출에 대한 그들의 선호를 표현할 적절한 기회 그리고 평등한 기회를 가져야만 한다. 그들은 문제를 의제에 올리고 다른 산출에 비해 어떤 것을 지지하는 이유를 표현할 적절하고도 평등한 기회를 가져야만 한다.
  2. 결정적 단계에서 투표의 평등: 집합적 결정의 결정적 단계에서 각 시민들은 그들의 선택을 표현할 동등한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들의 선택은 다른 시민이 표현한 선택과 동등한 비중을 갖는 것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결정적 단계에서 산출을 결정함에 있어서 이러한 선택들이, 그리고 이러한 선택들만이 고려되어야 한다.
  3. 계몽된 이해: 각 시민은 결정해야 할 문제들에 있어서의 결정이 시민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보장하는가를 (결정하는 데 주어진 시간의 범위 내에서) 알아내고 평가할 기회를 적절하고 평등하게 가져야 한다.
  4. 의제의 통제: 민주적 과정을 통해 결정될 문제들의 목록 가운데 어떤 문제들이 있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배타적 기회를 가져야만 한다.
  5. 참여의 포괄성: 단기 체류자나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다고 판명된 사람들을 제외한 결사체의 모든 성인 구성원을 포괄해야 한다.

맥키버 (R.M Maciver)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판별하기 위해 5가지 기준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언론의 자유, 결사/집회의 자유, 투표의 자유, 정권의 평화적인 교체, 민주적 선거 절차의 확립의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고 한다.

4.1. 연대 독재와 여론 편향을 막는 다양성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자유와 평등의 개념을 포함한다고 오해하는데, 민주주의는 다수에 의한 지배를 의미하며, 꼭 자유나 평등의 개념을 가진다고 볼 수는 없다. 다수의 동의에 의하여 소수에 대한 폭력을 일으키는 전체주의, 대중독재, 파시즘도 충분히 민주주의 하에서 가능하다. 자유주의가 부재한 민주주의들을 비자유민주주의라고 부른다.

시민들이 집단사고를 띄면, 보통 정치적 관심사가 방대해지지만, 일신의 선택권에 대한 개념이 미약해질 경우에는, 개개인의 권력으로 타인을 억누르는 특성이 드러난다. 정상적인 경제적 자립과 생산활동에 차질이 생길 정도의 집단사고로 인해, 그 이념적 내역과 사고가 방대하더라도, 정치적 명분으로 개인의 결정권을 침범하기 시작하는 사고와 이념적 함몰이 일어난다. '민주주의'의 전제는 계몽된 시민들의 정치참여도 있지만, 이 '계몽' 또한 방대한 집단사고가 개입되면 개개인의 권익이 일신의 선택권을 재단하고 무시하며 정치적 분야와 파벌에 집중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억압적인 집단통치체제를 띈다면 누군가를 신봉하지 않더라도 '정치에 매몰된 개개인의 권력'을 통해 신임하는 파벌에 가담해 타인의 권익을 침해해 들어간다. 그리고 일신의 선택권 개념이 미약해져 정치적 논리를 앞세워 파벌과 여론을 동원해 특정 인격에 대한 의혹을 확대생산하고 법망을 수정하여 인권을 합법적으로 침해하기 시작한다.

이는 민주주의를 강조할 때 개개인의 권력추구를 통해 개인의 자유를 얻는다는 개념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오히려 개개인의 권력이 정치적, 이념적, 지적 함몰로 인해 정작 중요한 일신의 선택권에 무감각해지는 이런 사례는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군주에 대한 신봉도 있지만, 더 넓게는 이런 연대의 집단사고를 통해 '민주주의'라는 개개인의 권력이 '한 파벌로 결집'하여 타인을 통제, 감시하는 방식으로 민주화를 유지하면서 상호간 자유를 억압하는 체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베네수엘라, 필리핀, 아르헨티나 등에서 국가의 통제와는 다르지만 시민의 파벌이 개개인의 권력을 앞세워 또 다른 개개인을 감시하고 억압하는 경향은 자주 발생하며, 이런 정치적 매몰은 정체성 정치, 기생적인 형태의 연대 권익 활동과 맞물려서 경제난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연대독재 행태가 강하게 발달하면, 중국처럼 국가가 시민을 선동하는 동시에 탄압하고 감시하는 일당 집단통치체제로 이행하기도 한다. 소위 독재자들은 과거의 군주와 같을 때도 있으나 이보다 상황이 좀 더 나아져서 투표 결과의 불확실성을 보장한다고 해도, 사실상 대통령을 임금처럼 받드는 사람들이 많다면 당연히 민주적인 사회라고 볼 수 없다.

4.2. 시위권, 저항권, 무장권

위에 서술된 민주주의의 필수 요건 6가지 외에, 저항권[16] 또한 민주주의의 기반이 되는 권리이며 저항권의 보장을 위해 무장저항권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저항권이란 국가권력에 의하여 헌법의 기본원리에 대한 중대한 침해가 행하여지고 그 침해가 헌법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것으로서 다른 합법적인 구제수단으로는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때에 국민이 자기의 권리,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실력으로 저항하는 권리이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자유를 지키기 위하여 실력으로 저항하는 권리"인데, 그 실력을 사용하기 위해서 총기류 등의 무장이 필수적이라는 것이 이와 같은 주장의 논지이다.

이미 헌법이 유린된 상태에서 기득권층에게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묵살될 가능성이 다분하고, 여기서부터는 (헌법을 유린했으므로) 정통성을 잃은 압제적인 정부에게 시민들이 직접 저항권을 행사하여 대항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무장권을 위해 총기가 필수 요소라는 것이 주요 논지이다. 이에 관해 경찰의 무력은 총기규제가 있는 국가에서도 저항권을 행사하는 시민의 무력에 우세를 점하기 힘들다는 반론도 있으나, 군이 투입될 경우 총기 없이는 저항권 행사가 짓밟힐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무장권의 필요성을 역설하기도 한다.

무장권 긍정론자들은 이에 관해 미국 독립 전쟁프랑스 혁명의 예시를 들어 근대 민주주의의 발상 과정은 모두 폭압적 정권에 대한 저항권 행사에서 시작되었다면서, 저항권은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이고 이 저항권이 실질적 의미를 가지기 위해 무장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중에서 저항권에 대해서는, 3번의 민권의 범위를 폭넓게 해석한다면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 등과 같은 자유권과 그 이외 평등권, 참정권, 사회권, 청구권 등과 더불어 자연권이나 저항권 등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4.3. 경제성장

어느 정도의 중산층 세력이 형성되지 않으면 상술한 조건을 충족하는 게 불가능하다. 다시 말해, 국가에 어느 정도 경제적인 기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17] 사실상 민주주의 성립의 근본 바탕이라고도 볼 수 있으며, 민주주의가 최선의 정치이념이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최선의 사회는 중간계급에 권력이 있는 사회라 보았다.

대한민국은 과거 독재정권의 영향, 북한과 대치 중인 특수 상황 등의 요인으로 인해 이러한 요소가 아직 제대로 성립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다. 이 외에 가부장적 권위주의, 연고주의, 지역감정, 군대 문화의 영향 등도 한국 민주주의의 비판받을 점 혹은 그 원인으로 꼽힌다. 부패상을 보여주는 정치인들과 이에 대한 한국인들의 불신도 높다. 언론의 정치적 편중 및 여론 호도에 대한 비판도 나오고 있는데, 이는 한국인들의 정치적 비판력이 편중되어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상황을 바꾸어 놓은 것은 시민이고, 앞으로 이러한 정치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시민뿐이다.

세계적 경제학자인 Robert Barro는 1997년의 연구 등에서 민주주의가 경제성장에 반드시 유리한 것은 아니나 경제성장이 민주화를 촉진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이정우 경북대학교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폴란드 태생의 미국의 정치학자 아담 쉐보르스키의 주장을 인용하여 아래와 같이 논설했다. 독재와 경제성장
"그가 1950년부터 1990년까지 세계 141개국의 자료를 분석한 결론을 보면 독재와 민주주의 사이에 투자율의 차이는 없고(갈렌슨의 추측은 틀렸다), 경제성장률에도 차이가 없다(새뮤얼 헌팅턴, 리콴유의 추측은 틀렸다). 즉, 독재라고 해서 경제성장률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쉐보르스키 본인의 인터뷰에 의하면 특정 정치체제가 경제성장과 비례적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볼 수 있는 확실한 근거는 아직까지 없지만, 정치적 갈등을 일정 수위 이하로 관리할 수 있다는 면에서 민주주의 체제가 장기적인 경제적 안정성에서는 더 우수하다고 볼 수 있다. 경제학자 대니 로드릭 역시 중국을 예시로 들며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효율적 메커니즘을 갖추지 못한 채 억압하기만 하는 국가들의 장기적 성장 전망에 대해 회의적 전망을 표명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임혁백 교수도 이와 같은 주장을 근거로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입장이다.

4.4. 패자부활의 제도적 보장

민주주의는 패자의 부활을 제도적으로 보장한다는 점에서도 우수한 정치체제이다. 과거 왕정이나 독재정 시대에는 권력을 잃는다는 것이 곧 죽음으로 귀결되었다. 소위 ‘삼족멸’ 같은 말도 그래서 생긴 것이다. 그래서 권력을 잡으면 반대파를 몰살하려 기를 썼고, 이는 곧 국가 역량의 쓸데없는 낭비로 이어졌다. 하지만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권력을 잃더라도 국민의 지지만 있으면 다시 권력을 획득할 기회가 찾아오기 때문에 평화로운 방식으로 국가가 유지될 수 있다. 이러한 특성들 때문에, 많은 이들은 민주주의를 '최고는 아니지만 최선의 정치체제'라고 일컫는다.

참된 민주주의는 일단 선거에서 승리한 지도부의 인사들도 다음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국민들의 뜻을 감안해서 정당 및 국가를 운영할 것을 요구한다. 다른 말로 시민들 앞에서 책임을 지게 만드는 것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들을 두게 된다. 물론 이 점이 항상 긍정적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나 국민 주권의 대의가 아닌 결과만을 놓고 보더라도 지도자가 시민들에게 책임을 지지 않고 자의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또한 민주주의는 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한 세력도 계속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것을 요구하며, 특정 인사들이 전권을 휘두르는 것을 막기 위한 여러 견제장치들을 두게 된다. 삼권 분립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장치들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정치체제는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 없다.

4.5. 끊임없는 견제

What signify a few lives lost in a century or two? The tree of liberty must be refreshed from time to time with the blood of patriots and tyrants. It is it’s natural manure.

한두 세기마다 발생하는 약간의 인명 손실이 무엇을 의미할까요? 자유의 나무는 때때로 애국자들과 압제자들의 피를 먹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자유의 나무에 주는 천연 비료입니다.
1787년, 토머스 제퍼슨이 존 애덤스의 사위 윌리엄 스미스에게 보낸 편지 중[18]

"민주주의는 독재자와 국민의 피를 먹고 자라는 것"이라는 토머스 제퍼슨의 말도 유명하다. 대부분의 국가의 민주주의는 한 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죽음과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혁명레 미제라블에 등장한 1832년 6월 봉기가 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도 4.19 혁명, 부마민주항쟁, 5.18 민주화운동, 6월 항쟁이라는 수많은 시민들의 죽음과 희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독재와 독재자가 사라지거나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걸로 모든 게 끝나는 것도 아니다. 민주주의는 집권하거나 주도권을 쥔 세력에 대해 끊임없는 견제와 비판, 감시를 당할 것을 반드시 요구하며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 권력과 권한을 전부 쪼개어 특정 세력이 전부 손에 넣지 못하게 잘게 쪼개고, 이들에 대한 자유로운 비판을 무조건적으로 허용한 체제이다. 표현의 자유, 언론의 존재, 삼권 분립, 투표가 이것을 위한 담론과 정치적 제도 및 사회 내부의 요소들이다.

중화권에서도 홍콩에서 홍콩 우산 혁명,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등에서 수많은 홍콩인들이 시진핑을 상대로 피를 흘리며 저항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 넓은 기준은 중국의 천안문 6.4 항쟁이 있다.

왕정제를 하는 입헌군주제 국가의 경우 실권은 총리가 쥐고 있지만 국왕은 딱 두 가지 권한만 제대로 갖고 있다. 첫째는 총리가 막 나갈 때 이를 차단하는 것이며, 둘째는 전쟁 등 국가에서 최고로 중대한 사안을 결정할 때 국왕이 결재해야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것이다. 일례로 포클랜드 전쟁 직전에 엘리자베스 2세가 결재를 하지 않았더라면 제 아무리 마거릿 대처라 해도 함부로 맞대응을 할 수 없었다. 영국군은 포클랜드 전쟁에서 엘리자베스 2세의 승인하에 마거릿 대처가 지휘해서 아르헨티나군에 맞서 싸운 것이다. 총리가 막나가는 걸 막는 것도 총리가 민의를 저버린다고 생각할 때, 민의를 등에 업고 권한을 사용하는 것에 가깝다.

4.6. 지속되는 이유

민주주의가 이렇게 단단한 것은, 복잡계적인 정치체계라는 점 때문이다. 민주주의 자체는 복잡성을 만들어내는데 이 복잡성이 민주주의를 망치는 게 아니라 도리어 민주주의를 더욱 강화시키는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이다. '복잡계'라는 것은 어떤 시스템을 구성하는 요소가 매우 많은 데다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어서 어디부터가 원인이고 결과인지 분리가 불가능한 상황에 놓인 것을 말한다. 현 시점 인간의 이해력을 벗어나 있다고 봐도 된다. 관찰자 입장에서는 개판이 따로 없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지지하기 때문에 오히려 견고함은 높다.

이를 좀 더 풀어서 설명해 보자. 독재와 권위주의는 '단순함'을 추구한다. 하나의 질서, 하나의 목소리, 하나의 진실만을 인정한다. 겉보기엔 이런 단순함이 체제를 더 강하게 만들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난다. 마치 한 그루의 큰 나무처럼, 강풍이 불면 한 번에 쓰러져 버리는 것이다. 반면 민주주의는 겉보기에는 복잡하고 혼란스럽다. 수많은 의견이 충돌하고, 다양한 이해관계가 부딪힌다. 마치 바람에 휘청거리는 갈대밭과 같다. 그러나 각각의 갈대는 휘어질지언정 부러지지 않고, 폭풍이 지나가면 다시 일어선다. 결국 독재의 '단순함'은 깨지기 쉬운 경직성을, 민주주의의 '복잡함'은 회복력 있는 유연성을 만들어낸다.

민주주의는 특정 계층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역설적으로 지극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정치체제인데[19] 이러한 이기적이라는 특징이 근본적으로는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의 본성과 가장 합치하기 때문에 도리어 모순이 없이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로 정치가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왕정, 파시즘],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유지상주의, 아나키즘, 자유주의, 공화주의, 집단주의, 공동체주의, 개인주의, 환경주의, 허무주의 많은 사상에서 자신의 사상이 인간의 본성과 가장 잘 맞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각자의 이득과 양보, 손해가 거미줄처럼 뒤엉키며 쉽게 움직일 수 없는 복잡성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단점이 되기도 하는데, 역설적으로 모든 정치 체제 중 전면적인 개혁이 가장 어려운 체제가 민주정이다. 전면적인 개혁을 실행하려면, 이해관계를 통한 이합집산을 완전히 박살내고 새롭게 줄을 세울만큼 유능하고 카리스마가 넘치는 인재가 필요한 것이 그 이유다. 민주주의의 관점으로는 민주주의는 애초에 통치자의 저점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고 민주주의에서 무능한 지도자가 나오면 몇년 뒤면 바꿀 수 있지만 왕정이나 독재에서는 이게 불가능 하다는 것.[20] 물론 왕정이나 독재는 저점도 낮지만 고점이 높아 철인 군주나 유능한 독재자가 나올 수도 있지만 민주주의의 저점이 쌓이고 쌓여서 저점이 낮지만 고점이 높은 다른 체제와 비교했을 때 경쟁력이 생기는 것.

때문에 타 정치체제와는 달리 민주주의는 상기한 이기심을 극히 절제해야만 생존이 가능한 위기 상황에서는 도저히 의견 통일이 되지 않고 표류하다가 이합집산하며 붕괴하기 딱 좋다. 이는 중동 지역에서 미국의 이익 창출을 위해 강제로 민주주의를 주입당한 국가들이 종종 보여주는 사례이다. 때문에 민주주의는, 상술했듯 권위의 붕괴로 인한 질서의 상실에는 상당한 내성을 보이며 버티지만 정작 외부의 위력에 의한 물리적 공격에는 상당히 취약한 모습을 종종 보인다. 미국은 남북전쟁 이후에는 자국 내에서 전쟁을 할 만큼 위기에 처한 적이 없는 데다, 세계대전 당시에도 유럽 본토와 대서양으로 분리되어 있기에 본토에 피해가 가지 않고, 오히려 세계대전 당시에 누린 경제특수로 초강대국으로 등극하여서 논외이며, 지금은 민주주의를 중요하게 여기는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도 세계대전 당시에는 지리적 여건으로 살아남은 영국 외에는 민주주의 체제로 생존한 나라는 없다. 나치 독일에 의해 무너졌다가 다시 재건되며 승전국인 미국에 의해 민주주의가 부활한 것이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하단 민주주의의 단점 부분에 후술. 반대로 파시즘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보여준 것처럼 부서끼리 충성 경쟁을 벌이다가 없는 부대에 명령을 내리거나 지도부가 결정한 비합리적인 전술이 채택되거나 하는 경우가 있다.

5. 관련 논의들

5.1. 다른 사상들과의 관계

5.1.1. 민주주의의 반대는 공산주의인가?

공산주의자들은 모든 나라 민주주의 정당의 단결과 협력을 위해 어디서나 애쓴다.
카를 마르크스, 《공산당 선언
부르주아 민주주의 아래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은 정치에 참가하는 자유가 아니라, 정치에서 배제될 자유를 누린다. (…) 진정한 민주주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블라디미르 레닌, 《국가와 혁명》
흔히 민주주의의 반대말로 공산주의를 꼽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는 올바르지 않으며, 공산주의 또는 민주주의에 대한 개념 혼동에서 기인하는 오해로 봐야 한다.

우선 형식적으로 민주주의는 정치적 범주의, 공산주의는 경제적 범주의 개념이다. 민주주의의 반대말은 소수 집단이 권력을 독점하는 독재정이며, 공산주의의 반대말은 사회와 개인을 독립적인 관계로 취급하고 사유 재산제와 계급을 옹호하는 경제적 자유주의 또는 자본주의이다.

그러나 경제와 정치 간에는 밀접한 상호관계가 존재하므로, 또한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는 경제와 정치 모두의 영역에서 논의될 때가 일반적이므로 이러한 형식논리적 비교만으로 양자 간의 관계를 일축할 수는 없다. "공산주의 경제 체제의 사회는 반민주적 정치 체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지 않는가"라는 반론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산주의가 무엇이며,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를 어떻게 파악하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공산주의 또는 (혁명적) 사회주의란 한 시대의 정치, 법, 종교, 문화 등의 형성에 영향을 끼치는 근본 요인을 경제적 생산으로 보아, 계급사회의 불평등한 생산관계로부터 비롯되는 착취와 모순을 해소하기 위하여 피착취계급의 급진적 혁명을 통해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 무계급 사회, 역사적 진보를 실현하려 하는, 칼 마르크스와 블라디미르 레닌에 의해 체계화된 사상 또는 운동을 의미한다. 이때 공산주의에서는 진정한 민주주의(다수 시민의 지배)란 공산주의 사회의 프롤레타리아 독재 또는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로만 성취될 수 있으며 자본주의 사회의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는 명시적인 신분제는 철폐되었지만 생산수단을 전유하는 자본가 계급이 정치권력을 독점하므로 인민의 의사가 사회 운영에 실질적으로 투영될 수 없다고 본다. 이러한 논리로 공산주의는 사회민주주의와는 달리 의회제 등의 대의민주주의를 거부하며 대신 소환제 등의 직접민주주의를 선호한다.

역사적으로도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는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었다. 최초의 공산주의 정부 파리 코뮌은 모든 공직자를 보통선거로 선출하고 직접민주주의적 제도인 소환제를 도입하였으며, 폐업한 공장의 경영을 노동자의 공동 경영으로 전환하고 노동자에 대한 임금 삭감을 금지하였다. 최초의 현실사회주의 국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은 건국 직후 양성평등과 소수자 차별 철폐를 미국보다도 먼저 법제화하였으며, 노동자가 직접 공장 관리인을 선출하였다. 쿠바 공화국에서는 현재도 참여민주주의적 제도를 통한 인민의 정치 참여 실험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서구식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도 민주화, 소수자 권리 운동에 공산주의가 중추적인 역할을 맡은 경우가 적지 않다.

한편 '프롤레타리아 독재(dictatorship of the proletariat)'에서 단순히 '독재(dictatorship)'라는 단어만 보고 공산주의가 반민주주의적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데, 칼 마르크스가 처음 용어를 창안한 당시까지만 해도 'dictatorship'에는 반민주적인 의미가 없었다. 'dictatorship'의 의미가 오늘날처럼 '소수자의 지배'로 변질된 것은 러시아 혁명 이후 공산주의에 대해 대대적인 탄압이 가해지면서부터이다. 양재혁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 명예교수는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두고 "99퍼센트에 달하는 노동자시민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한시적 과정" "1퍼센트의 자본가 계급에게 다시 정권을 빼앗기지 않을 때까지만 독점 자본가를 배제한다는 독재론" "민주적 논리"라고 평하였다.[21] 현실에서는?

5.1.2. 자본주의와 반드시 결합되어야 하는가?


자본주의는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민주주의와 불가분의 것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사례들을 볼 때 자본주의는 민주주의와 그다지 궁합이 좋은 체제는 아니다. 민주주의라는 단어의 어원이 된 고대 아테네의 경우만 하더라도 쿠데타를 여러 번 반복한 정치적 갈등의 근본 원인은 부유층이 전함을 굴리는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정작 정치적 목소리는 일반 시민과 똑같다는 불공평함에 기인했다. 주식회사에서 대주주일수록 더 큰 발언권을 가지듯, 부자일수록 국정 운영에 대해 더 큰 발언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근대 미국이 시작될 때도 격렬한 논쟁을 동반했을 정도로 꽤 유서 깊은 의제이다. 참정권을 일정 소득 이상 사람에게만 주자는 논리 등은 전부 이러한 자유주의 사상에서 출발한다.

5.1.3. 민주주의의 반대는 독재인가?

  • 임지현. (2013). "독재는 민주주의의 반의어(反意語)인가? -대중독재의 모순어법과 민주주의의 민주화-". KCI.#

결론부터 말하자면, 민주주의의 반대가 정확히 독재라고 보기 힘들다. 사실 사전적 의미의 '독재' 자체가 아이러니하게도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성립되는 체제다. 독재체제, 전체주의 역시 민주주의와 상반되는 개념보다는 민주주의가 오용된 체제에 가깝다는 것.

이는 민주주의의 기본 정의를 생각해 보면 쉽다. 민주주의는 국가의 권력이 최대한 다수에게 분배되는 체제의 형태다. 현실적으로 모든 국민에게 동등한 참정권을 부여할 수는 없기에 일정 나이 이상의 유권자나 귀화를 제외한 자연적 태생 국민에게 선거권, 참정권을 주는 등 여전히 제약은 있지만, 설령 그렇다고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국민이라면 여러 정치적 행위를 통한 의견 표출이 가능하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제도라면 권력이 최대한 1인에게 쏠리는 체제여야 한다. "그럼 그게 독재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독재도 원칙적으로는 권력을 가진 국민 대다수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체제에 불과하다.[22]여기에 해당하는 것은 전제군주제라고 봐야 한다. 독재는 민주주의의 한 형태이며 반대 개념은 절대왕정이라는 것.

대중들이 이러한 오해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일반적으로 독재라 하면 권위주의 독재를 떠올리는 경향이 있고 그 반의어로 자유민주주의를 연상하는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권위주의의 반의어는 아나키즘자유지상주의이며 민주주의와는 무관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국가 체제인 자유민주주의의 강한 대표성으로 인해 민주주의는 당연히 자유주의와 그 궤를 같이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정반대'라는 개념을 살펴보려면 민주주의 정의를 따져보고 민주주의의 정의를 충족하는 요건들을 뒤집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정의는 주권이 국민 다수에게 있다는 것이므로 민주주의의 반의어라면 권력이 국민에게 분배되지 않는 개념을 의미할 것이다. 즉 '민주주의의 반대'라 하면 민주주의가 아닌 다른 모든 것, 민주주의의 역을 지칭한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런데 모든 사례에서 독재가 한번 시작된 순간 대부분의 시민들은 권력을 잃고 나중에 의견의 자신의 의견이 다르더라도 강제로 따르게 시도한다. 당장 소련중국집단지도체제아돌프 히틀러나치 독일에서 시민들에 권력이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는가?

5.2. 대의민주주의에 대한 논의

학문적인 수준에서 벌어지는 좌우파의 진지한 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구분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23] 좌파 논자들은 현실의 자유민주주의가 실질적으로 부르주아들의 권리만을 보장한다는 주장을 하며 카를 슈미트에 이론적 기반을 두는 우파 논자들은 현실의 자유민주주의가 정치적 적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주장을 한다.[24] 조금 더 자세히 서술하자면 칼 마르크스로부터 시작되는 마르크스주의/공산주의 계열의 논자들은 현실의 대의제 민주주의가 형식적인 정치적 평등만을 보장함으로써 결국 경제적 권력을 지닌 자들의 영향력을 과대대표한다고 공격한다.

또한 '대의제'와 '민주주의'이라는 상극인 사상을 억지로 붙여놓은 결과가 대의민주주의가 남기는 부작용의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25][26] 현재의 민주주의가 대부분 대의민주주의이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것 같지만 사실이다. 단적으로 말해 선거는 귀족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27], 민주주의는 추첨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28] 이 때문에 대의민주주의 아래에서는 소수 엘리트 특권층의 독점이 발생하게 되며 대표의 독립성 때문에 공적인 고려에서 벗어나 일부 계층의 사적 이익을 대변하는 입법을 하거나 특정 계층에게 유리한 사회적 구조가 생기기 쉽다. 결국 대의제 아래서 의사결정 방식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어떤 원리로 굴러가는지 국민들이 아는 것, 그리고 대의적으로 뽑은 엘리트들이 일부 계층의 사적 이익을 대변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즉, 대표를 선출하기만 하고 정치에 대한 관심을 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5.2.1. 정당 내부는 민주적으로 운영될 필요가 없다는 주장

마르크스주의/공산주의 계열의 논자들이 아니라 해도 이러한 대의제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적 입장에 대해 동의하거나 찬성하지 않는 의견들이 있다. 로베르트 미헬스는 그의 저서 정당론(Zur Soziologie des Parteiwesens in der modernen Demokratie)에서 독일 사민당의 사례를 분석하며 모든 조직은 관료화, 집중화의 과정을 통해 과두제로 귀결된다는 과두제의 철칙(Ehernes Gesetz der Oligarchie)을 주장했다. 미헬스에 따르면 대의 민주주의 역시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지배되는 과두제다. 물론 미헬스의 이러한 과격한 주장은 현대 정치학자들에 의해 많은 반론이 이루어졌다. 조직 내부가 과두적인 것과 조직 사이에서 의사결정이 과두적인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오히려 정당 내부에서 국민투표적 과정이 증가할수록 정당 간의 민주적 질서에는 해롭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 논의를 확장하면, 사회의 민주성과는 별개로 조직의 민주성은 반드시 지향해야 할 가치는 아니라는 것으로 연결된다. 요컨대 민주주의는 당 안(in parties)이 아니라 당 사이(between parties)에 있다는 명제다.

쉽게 설명하자면, 민주정체에서 군대나 관료조직, 그리고 기업 내의 강력한 위계질서와 상명하복에 의한, 명백히 비민주적인 조직질서가 받아들여지는 것은 그것이 국가 혹은 사회 전체의 민주적 질서의 구축과 방어에 요긴하기 때문이다. 정당 내의 민주적 원리 역시 마찬가지다. 사회 전체의 민주성 증대에 필요하다면 정당 내의 위계질서 견고화도 용인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유럽의 의원내각제 국가들의 정당들은 원내에서는 교차투표를 허용하지 않으며 의원들이 정당 지도자의 지시에 복종하는 위계적 정당투표를, 내각에서는 장관들이 내각 내의 결정사항에 대해서 반드시 공개적으로 지지해야 하며 반대의사는 오로지 사임으로만 표출할 수 있는 내각의 연대책임(collective cabinet responsibility)을 특징으로 하는데, 정당 내의 민주성 측면에서는 매우 비민주적인 이러한 원칙이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은 의원내각제에서는 국가 전체의 민주주의 작동을 위해서 강력한 정당기율(party discipline)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정당 내에서의 민주성의 추구는 바람직한 목표이나, 그것이 국가 혹은 사회 전체의 민주성을 약화하지 않는 범주 내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 사회의 민주성이 당내의 민주성보다 상위의 목표이며, 그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혹자는 여기서 방어적 민주주의 개념을 끌어들여서 반박하곤 하는데, 이는 명백한 오독이다. "정당 내의 민주성은 바람직한 목표이나 그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사회 전체의 민주성을 약화하지 않는 범주 내에서다"는 것은 반대로 말하자면 "사회 전체의 민주성을 강화하지 않는 정당 내의 위계적 질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핵심 전제는 정치체제 자체의 민주성 증대다. 방어적 민주주의란 사회 전체의 민주성을 수호하고자 하는 것이지, 모든 결사체에 조직원리로서 민주성을 부과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랬다면 군대는 물론이고 사기업의 권위적 의사결정 구조조차 유지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방어적 민주주의와 사회 전체의 민주성을 강화하는 범위 안에서의 정당 내 권위적 의사결정은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일례로 방어적 민주주의의 이론적 기반을 세운 독일의 독일 사회민주당이나 기독교민주연합 같은 정당들은 여전히 강력한 정당기율을 간직하고 있다. 대부분의 유럽 의원내각제 국가들이 바로 이러한 위계적 정당 조직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볼 때 이것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5.2.2. 정당 자체도 민주주의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주장

대한민국 헌법 8조 2항은 "정당은 그 목적 · 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방어적 민주주의의 이념에 따르면 적어도 제도권 정당이라면 내부 역시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할 당위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지도자 원리 같은 것을 추종하는 나치당이나, 이슬람 극단주의를 추종하는 무슬림 형제단 같은 집단이 민주주의에 따라서 집권하고 오히려 민주주의를 말살해버리는 모순을 막아낼 방법이 없다.
정당 내부가 비민주적인 조직을 통해서 운영하는 편이 더 시민의 뜻을 효율적으로 반영한다면, 같은 논리를 국회나 정부에 적용하면 안 될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문제가 대두된다. 정당 내부가 비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낫다는 이념을 가지고 있는 것[29]은 정당 자체가 민주주의의 정치적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다. 비록 해당 정당이 당장은 '대외적으로는' 민주적인 가치를 부정하지 않겠다고 천명할 수도 있지만, 이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용인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군대나 기업과 같은 조직과 정당이라는 '정치적인 조직'의 경우는 분명하게 구별해야 한다. 관료들이 국정책임자의 정책에 대해 반대 의사 가지고 있을 때 이를 밝히며 사임하는 것은 관료조직에서 책임감을 보이는 일반적인 행동이다. 그렇지 않고 상급자의 지시를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행동한다면 관료조직이 제대로 운영될 수 없고, '속으로는 잘못이라고 생각하면서' 겉으로는 그것을 따르는 듯이 행동하는 것은 무책임함과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정치적 조직에 그대로 적용해야 할 이유는 없다. 이는 판사나 행정부 공무원들을 전부 선거로 뽑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오히려 민주주의를 집행하는 데 해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들어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선거로 뽑지 않는 편이 낫다는 주장과 동급의 궤변이다. 정치적 조직, 그것도 수권을 목표로 하는 조직이라면 당연히 정치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모든 조직'이 민주주의에 따라서 운영될 필요는 없다는 이유로 정치적 조직도 민주적으로 운영될 필요가 없다는 것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에 불과하다.

유럽의 정당들이 강한 기율을 가지고 있으니 비민주적인 조직이라는 것은 견강부회에 불과하다. 기율이 강하다고 해서 정당 내부에서 반드시 비민주적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무엇보다 해당 정당들은 정당 내부에 적용하기 위한, '민주주의'와 대립되는 어떤 다른 정치원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이념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과두제의 철칙이니 강한 기율이니 해봐야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상의 문제일 뿐 해당 정당들이 그런 이유로 정당 내부는 민주주의가 아닌 과두제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이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고, 내각의 연대책임을 운운한다 해도 유럽의 정당들이 그런 연대책임을 바탕으로 민주주의를 대신할 조직이념을 가진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현실적으로 모든 민주주의 국가들이 민주주의의 이념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정치체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국가적으로 민주주의를 적용해야 한다는 명제에 대한 반례라고 볼 수는 없는 것과 같다.

5.3. 민주주의 국가 속 시민들에게 받아들여지는 민주주의

정치와 관련된 소재인 데다가, 특히 세계적인 문화 미디어를 활발히 생산해내는 메이저 국가들 대부분이 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오히려 전제주의, 전체주의, 독재정치에 비판적인 시선을 갖는 경우가 훨씬 많다. 특히 민주주의의 본산인 유럽과 북미 쪽은 더더욱 그러하다. 단순히 '민주주의에 대한 절대적 지지'를 하지는 않는 독자라도 어쨌든 민주주의가 독재보다는 낫다는 사실에 절대다수가 동의한다.

문제는 대중문화에서는 주인공주인공 보정을 받는 말 그대로 '주인공'이라는 점이다. 여타 능력과 비중이 낮은 조연들과 무능력한 정부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주인공이 작품의 대부분이며, 이는 듣보잡 엑스트라 민중을 중시하는 민주주의보다 '한 명의 인물'을 중요시하는, 즉 독재적인 면이 더 강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게 된다.[30] 소년만화나 아메리칸 코믹스에서 말로 해결하려는 주인공과 폭력으로 해결하려는 주인공 중 어느 쪽이 더 많은지를 생각해 보고, 천재이자 멋진 주인공이 사건을 해결하는 카타르시스와 수많은 민중이 투표를 해서 공권력의 힘으로 적을 물리치는 전개 중 어느 게 더 독자의 마음에 들지는 명확하다. 이상적인 타협책으로 원기옥이 있다. 지구의 모든 유권자들이여, 나에게 표를 나눠줘![31] 심지어 그냥 모두가 떠받드는 히어로인 주인공이 최고권력을 가지고까지 있으면 캐릭터성이 없어서, 그냥 동료를 만들지 않고 혼자 다니는 스타일이거나, 은근히 엇나간 정의를 추구하거나, 공권력과 대립하며 사적제재를 일삼는 다크 히어로거나, 심지어 진짜 폭력적인 독재를 펼치려는 신세계의 신 지망자들이 더 주목을 받는다(...).

사실 작가와 독자 입장에서 따지고 봐도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위기나 공권력의 힘만으로 잡을 수 있는 악당, 별다른 갈등 없이 힘을 빌려주는 공권력 등이 사건 해결의 주가 되는 작품은 공권력의 힘으로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는 사건만 벌어지는 일상물이나 아예 정치담론이 주가 되는 정치물 등의 장르가 아닌 이상 재밌게 만들기가 쉽지 않다. 심지어 앞에서 예로 든 정치물이나 공권력의 한 축인 경찰 소재의 작품도 대부분 이렇게는 안 만든다는 것을 생각해 보자. 까놓고 말해 작품을 흥미롭게 만들 갈등 요소가 없으니까. 일례로 기껏 광선검 든 초능력자들과 스케일 큰 우주전쟁으로 판 다 벌려놓고 은하제국 황제가 제다이도 아니고 공화정부 경찰에 체포되는 엔딩이 나오면, 그런 스타워즈가 과연 재미있을까?

민주주의 정부가 악역으로 나와도 은하영웅전설에서처럼 민주주의 정치체제 자체가 썩은 경우는 드물고, 작중의 민주주의 정부는 몇몇 흑막에게 조종당하거나 정부 자체가 무능한 정도인데 그렇다고 공산주의나 전제정치가 더 좋다고 나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민주주의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게 하는 원흉[32]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 그리고 주인공이 선한 경우 민주주의 체제를 파괴하는 엔딩은 상당히 드물고, 보통 그런 엔딩은 주인공 흑화 엔딩일 가능성이 크다.

이밖에 미디어에서 민주주의 체제의 공화국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공화국 vs 제국 문서를 참고할 것.

5.3.1. 대한민국

대한민국 헌법 제1조
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민주주의의 나무는 국민들의 피를 먹고 자란다."
<사상계> (1960년 5월호)
비굴하게 짐승처럼 천한 목숨을 이어가든지, 아니면 인간다운 민주시민으로서 살기 위해 목숨 걸고 싸워야 한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김성용 프란치스코 신부의 5월 25일자 미사
민주주의는 정치의 본질이 피치자에 대한 치자의 지배나 군림에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공존할 수 있는 동등한 자유, 그리고 대등한 동료시민들 간의 존중과 박애에 기초한 자율적이고 협력적인 공적 의사결정에 있는 것이다.
2013헌다1 결정문
민주주의는 자정 장치가 정상적으로 기능하고 그에 관한 제도적 신뢰가 존재하는 한, 갈등과 긴장을 극복하고 최선의 대응책을 발견하는 데 뛰어난 적응력을 갖춘 정치체제이다.
2024헌나8 결정문
근본적으로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 이는 1962년 1항과 2항[33]이 통합된 적이 있고, 1972년 2항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국민은 그 대표자나 국민투표에 의하여 주권을 행사한다." 로 개정된 적이 있으나 현재 1항의 내용 그 자체는 단 한 번도 수정된 적이 없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 즉 대한민국 국체의 기본 중의 기본으로, 보수나 진보를 나누기 이전에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 민주화를 달성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대한민국은 민중의 힘으로 문민독재정권, 군사독재정권을 두 차례나 무너뜨린 위대한 역사가 있다.[34] 그것은 각각 4.19 혁명, 6월 항쟁으로 꼽을 수가 있다. 간접적인 사례로는 10.26 사건의 도화선이 된 부마항쟁이 있으며 실패했지만 직접 무장을 하여 총을 앞세운 군부 세력에 맞선 5.18 민주화운동의 역사도 있다.

이렇듯 대한민국은 세계에서도 가장 쟁취적으로 민주주의를 이룩한 국가 중 하나로 평가되곤 한다. 그렇기에 한국인들은 스스로 일구어낸 민주주의에 대한 선호도와 자부심 역시 매우 높으며, 한국 창작물 중 민주주의에 대해 부정적으로 언급하는 매체는 거의 없다. 심지어 민주주의의 대척점인 군부 독재 시절에 나온 독재 미화, 반공물조차도 일단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순정만화북해의 별 같은 작품에서조차 민주주의 혁명이 묘사된다.

당연히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좌우 양쪽, 그리고 인권적, 국가주의적 등 모든 관점에서 민주주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민주주의를 악용하는 경우도 많다. 우파 쪽에선 애국이라는 타이틀을 달아 진보 성향의 정당이나 대통령들은 전부 빨갱이, 종북 등으로 몰고, 좌파에서는 진보라는 타이틀을 달아 우파 성향의 인물을 모두 적폐, 토착왜구 등으로 묘사하며 진영논리를 펼친다. 우파들은 한국인들의 인식상 민주주의는 공산주의의 반대적 위치에 존재하기에 파시즘이나 군국주의를 민주주의[35]로 포장이 가능한 것이며 좌파 역시 한국에 존재했던 군부독재에 대한 대항으로 종북 행위를 민주주의로 포장하게 되었다는 유추가 가능하다.

또한 대한민국의 정치에서 이상적으로 보는 민주주의는 정확히 말하자면 엘리트주의 내지는 철인정치에 가깝다. 능력 있고 믿을 만한 지도자에게 나랏일을 맡기는 것과 동시에, 그 안에서 주권과 사회적 자유를 향유하겠다는 것. 어떻게 보면 조선시대의 정치 이념이 더 국민 참여적인 민주주의로 계승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에 대해 정당한 비판은 할 수 있되 아예 거스르는 행위는 위헌이다. 한국에서도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통해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임을 규정했다.

5.3.2. 미국

미국 미디어에서는 민주주의를 언뜻 보기에 과하게 찬양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미국은 이민자들에 의해 세워진 나라고, 그 문화도 세계 각지의 문화가 섞여 형성된 탓에 타국에 비해 '우리만의 것'으로 내세울 만한 게 부족하다. 이러니 미국인들이 확실히 자기들의 것이라 내세울 수 있는 민주주의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나아가 미국의 정체성으로 여기며 찬양하는 것도 당연하다.

실제로 현대 공화국들 대부분이 미국의 체제를 직접 모방하거나 강제로 이식받아 형성된 점을 생각하면 결코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다. 역설적으로 이는 많은 민주국가에서 국민들이 민주주의의 역사나 개념을 잘 모르는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자국민들이 스스로 연구해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미국에 의해 이식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프랑스와 함께 민주주의 부심으로 경쟁하는 사이지만 프랑스 혁명도 미국 독립혁명 직전의 이야기이고 직접적 영향을 받은 터라 종주권 수준의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36] 다만 프랑스식 민주주의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권력을 용인하므로 전통체제만 알던 외국인 입장에서는 뭘 하던 민중의 이름만 팔면 지배자는 뭘 해도 된다는 식으로 이해하기 쉽다는 장점은 있다. 하지만 프랑스는 바로 그 강력한 중앙집권적 전통 때문에 정권을 잡은 자의 폭주를 예방하지 못했고 수많은 학살과 공포정치 등으로 부침을 겪다가 결국 무너져 버린다. 이런 이유로 무늬만 민주주의인 독재 국가들이 프랑스 혁명을 팔아먹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를 두고 한나 아렌트의 평을 빌려 '사산된 공화국' 전통이라고도 한다. 물론 프랑스인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으며 프랑스에서 내세우는 공화국 전통 역시 라이시테 같은 초강경 세속주의나 지방정부의 실질적 자치에 대한 부정처럼 미국의 영향을 받은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들과 다른 점이 많다.

반면, 미국은 건국 당시부터 반연방파가 강력한 연방정부를 세우는 걸 극히 경계해서 연방의 군대마저 만들지 않을 정도로 폭정 방지에 신경 쓴 무척 안정적인 공화국이었다.[37] 이 점은 시몬 볼리바르가 미국을 경계하는 이유가 되기도 했다. 사실 현대의 모든 민주국가는 미국의 정치 체제를 모방했거나 2차대전 이후 독립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강제로 이식당한 국가들이다. 민주주의를 인정하지 않는 모든 정치세력은 미국이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데 민주주의를 제창하면 미국 혹은 소련이 인정은 물론 엄청난 물적 지원을 하다 보니 전 세계 피식민지 독립 세력들이 뭔지 이해도 못하면서 너도나도 민주주의를 표방하게 된 웃지 못할 희극이 전 세계 거의 대부분의 국가들 국호에 민주공화국 혹은 인민공화국이 들어가게 된 원인이다.

그런데 민주주의의 대한 역사와 철학이 프랑스와 미국 밖에서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게 문제였다. 독일마저도 전쟁에서 져서 강제 이식된 민주주의고 프/영은 독립 세력이 죽도록 미워하는 제국주의 본국에 왕정/허덕이는 국가이다 보니 눈치보고 참고할 만한 국가가 미국뿐인 것이다. 그러나 외형이나 명칭은 모방을 해도 그 내용은 자신들의 전통과 너무 달라 민주주의라는 체제 자체에 대한 이해가 지배층부터 민중들까지 전혀 없었다. 결국 미국에 의해 민주공화국 국호와 정부체제가 사실상 강제되었지만 실상은 전근대적 독재정으로 돌아가게 된다. 물론 민주공화국의 허울과 실질적 독재정인 상황 때문에 국민당의 삼민주의나 박정희 정권이 10월 유신에서 내세운 유신민주주의나 인도네시아 수카르노의 판차실라[38] 같은 요상망측한 내부 해석들이 나라마다 곁들어지게 된다. 그런데 그것들 전부 자기 나라에서는 금칠하기 바쁘고 온갖 궤변으로 정당화를 하지만 내부 철학이 빈곤하기 짝이없는 모조품들이어서 딱 자기 국경만 벗어나면 하나같이 열화판 모조품이라는 평가 이상을 받지 못하는 공통점이 있다.

사실 학문적으로도 민주주의의 철학이나 역사에서 미국 독립운동사와 건국의 아버지들의 논쟁 자체가 사실 수천 년간 명맥이 끊겨있던 고대에 있던 민주주의라는 걸 되살려서 잘 돌아가는 국가체제로 만들려면 어떻게 짜야 하고 망했던 이유가 어떤 것이었으니 안망하려면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현실 정치적 논쟁들이 치열하게 반복되는데 그걸 모르면 애초에 현대 민주주의 체제가 어떤 의도로 고안되고 운영되었는지 이해를 할 도리가 없다. 그런데 그걸 정치학이 아닌 초중등 역사시간에 배우는 국가가 미국이니 매우 민주주의적으로 정치적인 국민이 되는 셈이다. 결국 모든 모조품들의 원본으로서 자부심이 부릴만한 이유가 있는 셈. 그래서인지 가끔 굉장히 뜬금없는 상황에서 민주주의가 튀어나오는 느낌마저 있을 정도다.

영국 출신으로 할리우드에서 주로 활동하는 리들리 스콧 경의 영화들이 이 공식을 잘 따른다.

스타크래프트 시리즈만 해도 독재 국가인 지구 집정 연합, 테란 연합, 테란 자치령, 켈모리안 조합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39] 이들과는 대비되는 이념을 가진 레이너 특공대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며[40] 의회 민주주의를 채택한 우모자 보호령 또한 비교적 긍정적으로 묘사된다.[41] 프로토스 또한 정치체계가 심판관들이 거의 모든 걸 독점했던 스타크래프트 당시 대의회 체제에서 스타크래프트 2 시점에 와서는 기사단, 심판관, 학자, 암흑 기사 등 모든 계급과 부족이 각자의 의사를 대변할 수 있는 대표를 선출하여 위원회를 구성하는 신관회 체제로 변화한 바 있다. 그리고 이후에는 신분 체계를 없앤다. 심지어 저그마저도 초월체정신체의 철저한 계급과 절대 거역할 수 없는 명령체계를 갖추고 있던 사회에서 무리어미를 중심으로 한 자유로운 사회로 바꾸었다.[42]

세기말 막장 시대를 그린 폴아웃 시리즈도 사람들이 미쳐서 돌아가긴 하지만 뉴 캘리포니아 공화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는 비교적 좋은 세력으로 묘사되고, 카이사르의 군단 같은 전제군주제 국가는 악의 세력으로 묘사되는 것이 그 예이다. 다만 미스터 하우스 같이 민주주의를 비웃는 캐릭터를 중립적으로 다루긴 한다.

작중 민주주의란 단어는 나오지 않지만 코라의 전설에도 전제군주국인 흙의 왕국보다는 공화정 체제이자 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하는 공화국 도시가 더 낫게 나오며 특히 두 나라의 지도자인 흙의 여왕과 라이코 대통령도 둘 다 무능한 건 같지만 적어도 라이코 대통령은 자기 멋대로 권력을 휘두르지 않으며 국가원수답게 업무에 충실하고 특히 시즌 2, 4에서 공화국 도시가 큰 위협을 받은 상황에서도 현장에 남아 세계관 특징상 도움은 못 되지만 끝까지 사수하려는 책임있는 태도를 보인다. 반면 흙의 여왕은 무능할뿐더러 정치도 개판이라 자국 수도에서 빈민층들이 다 썩은 과일을 품질이 좋다고 팔아대는 사태인데도 손을 쓰지 못하고 제 욕심만 채우려다가 결국 암살당하고 나라가 개판이 된다. 그다음이 중요한데 그 후 3년 동안 무정부 상태로 흙의 왕국이 엉망이 되고 이를 수습한 등장한 독재자이자 정복자인 쿠비라의 악행, 그리고 그 모든 게 끝난 뒤 흙의 왕국의 새 왕이 될 우 왕자가 왕국 체제보다는 공화국 체제가 더 낫다고 생각해 자국을 공화국으로 바꾸려고 한 것, 특히 수인 베이퐁이 "여왕이란 건 시대에 뒤떨어지는 체제"라면서 까는 장면을 보듯 왕국보다는 공화국을 높이 평가하고 각 체제의 지도자인 흙의 여왕과 라이코 대통령 중에서 그래도 라이코 대통령이 더 나은 인물로 묘사한다. 다만 불의 제국처럼 전제군주제 국가에 대해서는 중립적으로 다룬다. 허나 같은 불의 제국이라 하더라도 폭군인 오자이는 주인공 일행이 까는 식으로 비판했다.

다만 민주주의 자체를까지는 않지만, 풍자의 수단으로 삼는 경우가 있다. 자유민주주의/밈 문서에서 나온 것처럼, '자유'와 '민주주의'를 추구한다는 미국이 그걸 명분삼아서 매우 지저분한 짓거리를 행하는 꼴을 비꼬는 것으로 표현하는 사례가 있다.

5.3.3. 일본

다른 민주국가들과 비슷하게 민주주의에 긍정적인 작품들이 대다수이다. 다만, 일본 매체에 민주주의에 부정적인 작품들도 적지 않으며, 그 원인이 일본의 우경화에 있다고 주장하는 쪽도 있으나, 이는 몇몇 작품들을 잘못된 예시로 삼아가면서 침소봉대 하는 것에 가깝다.

이 주장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일본 민주주의에 대한 발언을 첨부하는 경우가 있으나, 해당 발언은 일본의 우경화를 경계하면서 그 원인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피력하는 발언이지, 본 문단에서 설명하는 '민주주의 국가 속 시민들에게 받아들여지는 민주주의'에 대한 설명이 아니다. 즉, 발언의 의미를 무시한 잘못된 인용이다.

민주주의에 부정적인 작품들이 상당하다고 느끼게 되는 원인은 그저 은하영웅전설처럼 한국에서 가장 접하기 쉬운 외국 매체가 미국과 일본 매체라 그런 것일 뿐이다. 그중 미국 매체는 윗 문단에서 설명하듯 민주주의를 과도하게 띄워주기에, 상대적으로 일본 매체에 부정적인 작품이 많은 것 같다고 느끼는 것이다.

또한, 부정적인 작품이라고 들고 오는 예시도 자세히 따져보면 민주주의 체제 그 자체에 대해 부정적인 작품이라기보다는 한국 매체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민주주의를 이용해서 자기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하는 이들, 또는 그저 무능하기만 한 이들에 대해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작품들뿐이다. 위에서 예시로 든 은하영웅전설이 대표적인 오해 대상으로, 양 웬리라인하르트 폰 로엔그람의 회담 에피소드나 극중에서 그려지는 자유행성동맹 국민들의 국민성에 대한 묘사[43]를 보면 작가의 의도가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은 결코 아님을 알 수 있다.

6. 문제점 및 비판

6.1. 한계

Because democracy basicaly means, governments by the people, of the people, for the people. But the people are retarded.
민주주의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를 의미한다. 그러나 인민은 멍청하다.
오쇼 라즈니쉬
대중은 어떤 불행을 느끼거나 혹은 단순히 어떤 강한 욕망을 느낄 때, 단추를 눌러 엄청난 기계를 작동시키기만 하면 아무런 노력이나 투쟁, 의심이나 위험도 없이 모든 것을 영원하고도 안전하게 획득할 수 있다는 커다란 유혹에 빠진다. 대중은 "내가 곧 국가다."라고 말하지만 이것은 완전한 착각이다.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대중의 반역 La rebelión de las masas 中 13장」
민주주의는 어디까지나 인민에게 모든 권위(authority)가 존재하나, 그 인민들이 옳은 판단, 타당한 판단을 한다는 보장은 없다. 인민에 의한 민주주의 설명하기에 가장 단순한 국가가 고대 카르타고다. 카르타고는 민중들이 전쟁소식을 전달한 원로원부터 패전한 장군들까지 사형을 구형하는 형식을 취했는데, 그 덕분에 민중에 의해 카르타고군의 엘리트들이 다 갈려나가서 한니발 빼고 단 한번만 전투에서 승리하고, 민중의 분노로 의해 전쟁을 벌인끝에 고대 로마에게 완전히 철저하게 멸망 당했다.[44]

민주주의는 그 구성원들이 정치권력을 행사할 만큼 충분한 지식을 가질 가능성은 엘리트주의는 물론이고 1인 독재체재나 과두정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낮으며, 권위를 가진 구성원들 모두에게 필요한 만큼의 지식을 갖게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리고 만약 그것이 경제적으로 가능하다 하더라도 이상적인 민주 사회에서는 모든 인민이 정확한 정보와 정확한 판단능력을 가지고 있겠지만, 현실에서는 선거 홍보물마저 다 읽지 않고 투표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것이 경제적, 정치적 문제로 인한 거라면 제도적 문제이거나 외부적 문제라 볼 수 있겠지만, 구성원들이 '민주적'으로 관심을 갖는 것은 기피했지만 투표는 하고 싶다고 한다면?

그리고 순간적인 시대상과 사회구성원들의 성향 역시 강하게 반영된다. 간단하게 예를 들자면 세종대왕이 다시 현신해서 대통령에 당선된다 하더라도, ActiveX공인인증서 그리고 warning.or.kr을 무력화하는 일은 힘들 것이다. 아무리 저 셋이 기술적으로, 법적으로 하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실제로 아무리 보안 위협이 생겨나도 ActiveX를 종결한 건 결국 Microsoft라는 엘리트 집단이었다. 소수의 전문가들이라면 10년이나 20년 후를 보고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대다수 사람들의 생각의 단위는 한두 달조차 길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무엇보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교육을 정비하고 지식이 하위 계층까지 골고루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신의 권리를 모르는 이에게 권리를 줘봐야 남에게 그 권리를 뺏기고 결국 엘리트들이 다시 권리를 독점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그리고 엘리트들이 아주 선의에 가득 찬 이들이어서, 그들이 계몽운동을 아무리 전개해 봐야, 교육되지 않은 이들의 판단이 얼마나 서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 등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의무교육이 없었던 전근대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실현되지 못했다. 그런 고대 그리스도 시민들이 언제 공직에 뽑힐지 몰랐기 때문에[45] 정말 피나는 공부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앙심을 품은플라톤에게 중우정치라고 까였다.

또한 모든 사상에 존재하는 실현 주체의 부패, 실현 가능성의 문제를 떠나서도 민주주의 특유의 현실적인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나치로 대두된 인민 자체가 민주정을 거부하는 경우와 정부 권력이나 그 외의 권위가 정보를 통제하여 국민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면 어쩔 거냐는 문제가 있다.[46] 후자의 경우는 얼핏 보면 엘리트주의나 독재정부에도 가능할 것 같아 보이지만, 민주적 조직에는 위에도 말했지만 모든 구성원들이 필요한 정보를 가졌을 가능성이 희박하며, 군중심리가 적용된다.

역사적 사례를 들어보면 미국에서도 오랜 기간 동안 흑인여성투표권이 없었다.[47] 당시 시민권을 가진 대다수의 사람들 사이에서 흑인과 여성은 지적인 능력이 부족하다는 편견이 팽배했고 또 그렇게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미국 일부 주 내에서 다른 인종 간의 결혼을 금지한 법 역시도 비합리적임에도 불구하고 당시 시민권을 가진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것을 옳다고 여겼기에 불과 몇십 년 전까지 유지되어 왔다. 게다가 현재에도 논란이 많은 사회 현상들 중 일부는 개인의 합리적인 근거에 따른 찬반여부 보다는 다수의 판단이나 그 사회 내에서 공유되고 있는 관습, 편견 등이 적용되어 있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단순히 다른 의견을 가진 다수에 의해서 반대될 수 있다.

위의 구성원들 간의 정보의 불평등 문제와 교육 문제, 그리고 권력기관의 부패 문제, 언론경제의 유착 문제가 전부 합쳐져서 나온 미국식 민주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들 중 하나는, 미국이나 한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 대국 중 상당수가 민주국가라 칭하면서 자국민이나 타국민에게 민주주의의 이름만 주입하는 것도 크다고 볼 수 있다. 아래 명언에 나온 흰 고양이를 뽑을지, 검은 고양이를 뽑을지 고르는 것만 해도 민주주의가 아니라 엘리트주의에 더 가깝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민주주의가 정확히 무엇인지도 모르면서[48] 우리가 지금 최선의 체제를 가지고 있다는 막연한 생각에 빠져서 정치에 대한 관심을 내버리고 정치에 대해 막연히 혐오감만 가지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것은 민주주의 사회의 시민이 가질 법한 가치관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또 다른 한계는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할 비상사태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것도 있다.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고 협상으로 합의를 끌어내는 게 민주주의인데, 이게 양날의 검과도 같은 존재다. 다른 의견에 귀를 기울여서 독재자가 극단적인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걸 막고, 상대적으로 문제가 적은 결론을 끌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서로 의견이 크게 갈린다면 협상하는 과정에서 한세월 갈 수 있다.[49] 물론 이러한 사태를 대비해서, 현대의 민주주의는 매사에 국민들이 투표해 결정하는 게 아니라 투표로 대상을 고르고 권력을 위임하는 형태를 취하여 엘리트주의와 절충했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국가가 국민을 탄압하는 사태가 일어나는 걸 방지하기 위하여 권력에 제약을 두기 때문에 일부 사항에서는 국가가 뭘 강제로 하지 못하고 국민들의 자율에 맡겨야 하는데, 정작 국민들은 개개인의 권리와 이익을 우선시하여 공동체 전체에는 불리한 행동을 할 수 있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민주주의는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는 자유주의보단 공동체에의 의무와 협력을 중시하는 공동체주의, 공화주의와 궁합이 맞는 편이다.

민주주의의 또 다른 한계는 초장기적인 계획하에 실행되는 프로젝트를 실행할 수 없다는 것에 있다. 그러니까 임기라는 틀이 있고 그 틀 안에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정책만 실행이 가능하다는 문제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거보다 더 크면[50] 실행하기 힘들어진다. 그것 때문에 박정희경부고속도로 건설을 하면서 임기 안에 완공시키기 위해 정말 심할 정도로 무리했으며 문재인청와대 국민청원을 개설하고 성급한 종전 선언을 위해 준비도 되지 않은 채 북한과 친밀함을 과시하다가 성과 없이 끝났다.[51] 후임 대통령인 윤석열은 문재인의 청와대 국민청원을 취임하자마자 바로 폐지했다. 누가 대통령 또는 총리가 되느냐에 따라 정책 현안이 유지될 수도 있고 엎어질 수도 있다. 비단 대통령 뿐만이 아니라 지자체 사례를 보면 명확하게 나오는데 고양시의 경우 10대 시장이었던 이재준이 1970년대 세워지고 리모델링만 해서 쓰고 있던 현 시청을 신청사로 건립하기로 하고 모든 인허가 절차와 경기도와 중앙정부 승인을 받고 신청사 설계공모 당선작까지 발표하였으나 얼마 뒤 열린 지방 선거에서 낙선하고 11대 시장이 된 이동환이 취임 직후 백지화시켰다. 설령 연임이 되는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선거에서 이겨야 연임이 되는 것이므로 선거에서 진다면 결과는 똑같다. 따라서 전임 실권자가 정책을 실행하면서 완료하지 못한 채 퇴임하면 후임 실권자가 그 정책을 건드리지 않기를 하늘에 비는 수밖에 없다.

또한 민주주의도 다른 체제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국익을 이유로 국민들에게 중대한 정보는 철저하게 은폐하고 공개하지 않는다.[52] 폭로하는 순간 민주주의 국가에서 중대한 권리로 인정한다는 표현의 자유 존중은커녕 국가 기밀유출로 공익제보를 한 당사자들을 처벌해 버린다. 대표적 민주주의 국가라는 미국만 해도 중국과 마찬가지로 기밀 공개에 대해 아주 혹독하게 처벌한다. 공개를 한다 해도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꼼수를 부리는데 사건이 발생한 시기에서 수십 년이 지나서 공개한다. 공개 자체를 막을 수 없다면 공개를 뒤로 늦춰 공개 시점을 중요한 당시에는 공개하지 않고 수십 년 뒤에 공개해서 공개가 된들 이미 사건 자체가 대중의 관심을 받기 힘들게 해서 국가가 정보공개로 감내해야 하는 책임과 여파를 최소화 하려는 고의적 의도 때문이다.

결국 민주주의는 어디까지나 하나의 사상(idea)인 만큼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며, 그것을 어떻게 실현시키느냐는 사상을 실현시키는 주체에 달려있다. 민주주의는 이상이 아니며, 단지 통치를 받는 국민들에게 통치의 권한을 주는 일종의 현실정치 체제이기에 광범위한 인권 탄압이 나타나는 현실의 참주정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그 자체로 선악을 판단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53]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현재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민주주의를 절대선으로 인식하고 그러한 민주주의에 가장 부합하는 세력이 자신이라는, 정치에 극한의 정의의 기준을 데려오며 정치극단주의적인 논리를 펼치고, 그러한 정의를 가장 주요한 근거로 민주주의의 탈을 쓴 참주정으로 사회를 되돌리려는 정치극단주의 혹은 권위주의, 그리고 '타락한 엘리트들을 찍어눌러 줄 영웅'을 요구하는 포퓰리즘대중독재 세력이 매우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현재까지 주류 정치 이념이 된 것은 그나마 효율적이고 일정 수준 이상으로 발전된 국가들에서는 가장 안정적인 체제이기 때문이지 결코 민주주의 그 자체가 가장 정의로운 이념이어서가 결코 아님을 인지하여야 하는데, 일부 국가에서 지나치게 민주주의가 정의의 사도로 신격화되면서 그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54] 건설적인 토론과 비판에 대한 열린 태도야말로 민주주의 체제의 핵심 요소이며 이것은 심지어 민주주의 자체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누구라도, 어떤 사람에게도 (건설적인) 비판과 성찰이 허용되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인데, 그러한 민주주의를 신격화하면서 비판이나 단점에 대한 고찰조차 사문난적으로 이단시하는 태도는 결국 또 다른 방식의 독재이자 권위주의의 표상일 뿐이다.[55] 또한 적용 대상은 나라뿐만 아니라 학교 조직, 동아리, 협동농장이든 어떤 조직에서든 적용될 수 있고 그게 얼마나 잘 실현되느냐는 결국 구성원에게 달려있다. 민주주의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좋은 결과 또는 나쁜 결과가 나오며, 현재로서는 민주주의를 채용한 일부 국가들이 다른 정치체계를 택한 국가들보다 성공한 것이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되자 미국 조지타운대의 정치학자가 민주주의의 맹점에 대해 설명하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다만 이 설명은 학자 개인의 정치적 견해가 크게 개입된 설명이라 비판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다.

또한 다수의 선택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비록 정치적으로는 흔하지는 않지만 엄연한 진리가 존재함에도 다수가 거부하는 경우도 있으며[56], 인민이 항상 계몽되어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니다. 상술한 나치 독일의 경우도 엄연히 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선거를 통해 다수당이 된 경우다. 다수가 권력을 독식하게 되면 남은 것은 바로 소수에 대한 다수의 횡포이다. 다수결주의 하에서는 다수가 다수의 이름으로 소수의 기본권마저도 짓밟을 위험성이 항상 존재하며, 특히 다수와 소수가 변하지 않고 고정되어 있을 경우 소수는 항상 소수로 남아 정치적, 종교적, 이념적, 사상적, 문화적으로 자신의 의견이 절대 반영되지 않는 억울함을 겪게 된다.

때문에 민주주의와 독재 체제의 장단점을 비교하자면, 독재 체제는 변화가 쉬우며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효과가 빠르고 강력하고 치명적이다라고 할 수 있는 반면 민주주의 체제는 변화가 매우 더디고 경직되어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기가 매우 어렵거나 더디지만, 한 번 수렁에 빠지면 다시 헤어나오기도 매우 어렵다라고 말할 수 있다. 한 명 혹은 소수의 생각만 바뀌면 되는 독재정이나 군주정과는 달리 민주정은 전체 국민 중 51% 이상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6.2. 의회 제도의 문제점

의회주의 역사에서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실패와 패배뿐이다. 대중의 사회적 · 경제적 고통을 완화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개혁도 성공하지 못했다. 노동을 개선하고 보호할 법이 통과되고 제정되었다. 그런데 가장 엄격한 광산보호법이 있는 일리노이 주에서 작년에 가장 많은 광산사고가 있었다. 어린이 노동금지법이 있는 주에서 어린이 착취가 가장 심하다. 우리 노동자들에게 최대의 정치적 기회가 주어졌지만 자본주의는 오히려 그 기세가 절정에 달했다.

노동자들은 자신의 대변자들을 뽑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의 선량한 사회주의자 정치가들이 의회로 진출했다. 하지만 이들의 정직과 선량한 신념이 어떻게 되었는가? 정치에서는 선량한 의도조차도 오직 속임수와 요행으로 점철되어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막후 협잡, 흥미를 끄는 조작, 아첨과 거짓말과 속임수가 정치술이다. 사실 모든 말에 속임수가 담겨 있다. 이런 속임수의 말로 정치가는 성공한다. 여기에 완전히 비도덕적인 사람이 된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정치가로부터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요소는 전혀 없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은 또 바보같이 그런 정치가들을 믿고 밀어준다. 그리고는 또 배신당하고 속아 넘어간다.
엠마 골드만 - 아나키즘 - 그것은 무엇을 옹호하는가?
우리가 통상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대의민주주의는 결국 인민이 일종의 중앙화된 기관에 자신의 뜻, 권력을 위임하는 형태로서 존재한다. 그리고 이는 곧 표팔이라고 행해지는 정치인들의 권력 싸움으로 발전하며 인민들이 이에 대해 저항권을 상실하게 된다. 즉 이런 싸움 속에서 인민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위임하는 대상을 뽑지만 정작 그 대상이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아무 것도 행할 수 없는 형태를 가지고 정치인들은 표만을 받아먹고 공약이행을 안 하거나 미루는 등의 행동만을 보인다.[57] 심지어 민주주의의 기본 중 하나라는 삼권 분립조차 '엘리트가 인민을 뒤로 하고 자기들끼리 권력을 나눠먹는 형태'라고까지 공격할 수 있으며, 그 중에서도 사법부의 소수 엘리트주의가 가장 심하다고 비판받는다.

이런 행태가 발생하는 이유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대의제'와 '민주주의'이라는 서로 상극인 방식을 억지로 붙여놓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모순이 발생하는 것이다.

다만 현대 대의민주주의에 엘리트주의적인 요소가 들어간 이유는 중우정치에 대한 우려와 정치에도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플라톤을 비롯한 엘리트주의 측의 주장이 일정 부분 타당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민보단 법을 우선하는 법치주의가 무조건 민주주의의 잘못된 형태인지, 아나키즘이나 숙의민주주의가 대안이 될 수 있는지의 여부는 의견이 충분히 갈릴 수 있는 부분이다.

이 때문에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인민들이 권력을 위임하기만 하고 끝나지 않는다. 예를 들면 비영리 단체를 조직하여 인민들의 권리가 잘 보장되는가 감시하고, 언론은 권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현장을 고발하고 위임받은 권력자들을 감시하여 여론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러고도 제대로 되지 않으면 직접 실력을 행사하거나 물리적으로 권력을 교체해야만 할 것이다.

6.3. 민주평화론은 사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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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여론의 취사선택

민주주의에서는 여론이 그렇다고 해서 정치인들이 반드시 여론대로 따라서 정책을 행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국민의 지지를 기반으로 한다는 민주주의를 채택했다면서 정작 정치인들은 많은 경우 정책을 집행하거나 행보를 할 때 대중의 여론에도 불구하고 여론과 정 반대의 행보를 하며 여론을 깡그리 무시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갑론을박이 있으며 찬성 측과 반대 측 모두 나름대로의 이유를 거론하나 다수의 시민에 의한 지배, 국민의 나라의 주인이라는 민주주의에서 국민의 여론을 일방적으로 무시해도 되는지는 논쟁거리가 아닐 수 없다.

포퓰리즘, 팬덤 정치, 엘리트주의가 이러한 논쟁에 대한 담론인데 각자의 문제점들이 있다.

7. 형성

7.1. 고대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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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민주주의의 유명한 사례로는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있다. 그러나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부족한 점[58]이 많았고, 이에 대한 논쟁이 존재한다. 아테네의 제대로 된 민주주의 기간도 길지는 않고 민중파 귀족인 클레이스테네스에게 혈연 부족이 해체당하기 전까지는 귀족들도 있었다. 로마도 귀족파와 민중파의 대립이 있었으며 이들은 종종 서로를 학살하기도 했다.

의외로 평민들도 힘만 생기면 지배[59]받지 않으려고 했기에 아테네는 민주주의의 발상지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존 킨의 《민주주의의 삶과 죽음》에 따르면, 초기 민주주의는 고대 아테네가 아니라 시리아, 이란을 비롯한 지금의 중동 일대에서 발흥했다. 이때 민주주의는 지금과 같은 대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집단의 구성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회의를 함으로써 정책을 결정하는 '회의체 민주주의'였다. 이 민주적 자치제가 동서로 전파되어 기원전 1500년경 베다 시대부터 인도 아대륙에는 회의체가 통치하는 공화국이 하나둘씩 들어섰으며, 서쪽 페니키아의 도시국가(비블로스, 시돈 등)를 거쳐 그리스 아테네에도 회의체 민주주의가 자리를 잡았다. 기원전 5세기쯤 바로 이 아테네에서 "민주주의는 서방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것이며 동방의 '야만성'과 비교하여 서방의 우월함을 보여주는 상징"이라는 주장이 나왔는데 이는 현대에 와서도 사실처럼 받아들여진다. 아테네에서 민주주의는 '발전'했지 '발흥'하지 않았다.

하지만 위 주장은 적당히 가려들을 필요가 있다. 옥시덴탈리즘은 오리엔탈리즘만큼이나 나쁘다. 중동의 귀족연합체나 부족회의체 형태를 민주주의라 서술한다면 민주주의는 아프리카고 아메리카고 아시아고 전 세계 어디에서나 있던 제도이다. 그리고 이른바 "서구중심주의"를 비판한다는 대안으로 겨우 소아시아/카프카스 지방만을 포함해 서술한다면 인도아대륙과 동아시아 문명을 완전히 무시한 확장된 서구중심주의에 불과하다. 애초에 원래 권력국가가 커가면서 부족연합단계를 거치는 경우가 대다수기 때문이다. 신라의 박/김/석 3왕 협의체를 가리켜 민주주의라 칭하는 것이 어리석은 만큼 페니키아 정치체제를 민주주의라고 칭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일단 페니키아는 명시적인 귀족이 모든 도시에 존재하며 왕이 존재하는 도시가 대다수였다. 따라서 해당 서적과 같은 주장은 역사학자가 아니기에 전 세계 고대사에 이해가 없어서 중동만 딱 뒤져보고 "민주주의 비슷한 게 중동에도 있더라"는 식으로 "발견"한 정치학자나 할 수 있는 서술이라는 비판이 있다.

7.2. 중세 유럽의 민주주의

중세가 무식하고 포악한 국왕과 봉건 영주들이 불쌍한 농노들을 착취하는 미개한 광신적 암흑시대였다는 대중적 통념과 대조적으로 유럽에서 공화주의적 전통은 단 한 순간도 단절된 적이 없다. 수정주의 학자들이 무어라고 주장하건,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서구 문명의 중요한 요소를 구성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여기서는 중세 유럽의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살피도록 하겠다.

7.2.1. 주권론

중세 시대에는 오늘날처럼 단일한 국가 권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정치와 법, 재판을 담당하는 권한이 국왕과 영주, 그리고 교회에 이리저리 나뉘어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와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중세 기독교 교회의 막강한 권위였다. 교회는 로마 제국이 망한 뒤인 11세기 무렵부터 유럽 전역에서 무소불위의 힘을 휘둘렀다. 따라서 중세의 민주주의를 이해하려면 로마 황제와 교황이라는 두 개의 큰 축을 중심으로 당시 상황을 살펴보아야 한다.

중세 유럽인들은 로마 황제와 로마 주교인 교황이 기독교 세계 전체를 다스리는 두 개의 머리라고 생각했다. 9세기 신성 로마 황제 루도비쿠스 1세는 교회라는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 안에 교황과 황제가 공존한다고 말했으며, 유럽인들 역시 13세기까지 이 구조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11세기 들어 교황 그레고리오 7세가 교회의 독립을 선언하며 황제와 정면으로 충돌했고, 이후 200년 동안 세속 권력과 종교 권력 사이의 팽팽한 기싸움이 이어졌다. 학자들은 이를 두고 교황이 모든 권력을 가진다는 신정주의와, 두 권력이 나뉘어 있다는 이원론적 관점으로 나누어 격렬하게 논쟁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주목해야 할 것이 바로 교회의 회의 기구인 공의회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전통을 이어받은 공의회는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인 선거, 투표, 동의라는 요소를 품고 있었다. 공의회는 서구식 의회의 원형이 되었으며 교회의 입법과 사법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활약했다. 15세기에는 심지어 교회의 주권을 놓고 교황과 경쟁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러한 뿌리 깊은 전통 덕분에 교황부터 하위 성직자를 뽑을 때까지 성직자뿐만 아니라 평민인 평신도들도 투표에 참여하는 민주주의적 전통이 확립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이러한 민주주의적 요소는 시련을 겪었다. 1059년 교황 니콜라오 2세는 교황 선출권을 소수의 추기경 주교들에게만 한정했고, 황제의 역할은 그저 승인하는 정도로 축소했다. 이후 일반 평신도들의 투표권은 완전히 막혀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이 선거 결과에 동의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민주주의 관념은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13세기 초에는 추기경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교황을 뽑는 다수결 원칙이 채택되기도 했으나, 1227년 그레고리오 9세가 다시 소수의 권위 있는 합의를 중시하며 민주주의적 기세는 한풀 꺾이고 말았다.

반면 왕들이 다스리는 세속 영역에서는 권력의 정당성이 신에게서 나온다는 왕권신수설이 널리 퍼져 있었다. 왕은 거의 성스러운 종교적 존재로 여겨졌으나, 그렇다고 해서 백성들의 동의가 아예 필요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시칠리아의 루제루 2세는 귀족과 민중들의 지지를 받아 왕위에 오르며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했고, 신성 로마 황제 오토 1세의 대주교 역시 백성들에게 황제 선출에 동의해 줄 것을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신의 섭리를 믿던 시대에도 인민이 주권의 원천이 될 수 있고, 그들의 동의가 통치의 필수 조건이라는 사상이 분명히 존재했음을 증명한다.

수백 년 전 로마법에 담겨 있던 민주주의 사상은 중세 민주주의가 세워지는 데 든든한 기초가 되었다. 중세 법학자들은 로마법을 다시 연구하면서 '나라의 주인은 인민'이라는 주권재민의 요소를 확립했다. 로마법이 제시한 통치 모델은 이전의 관습법과 달랐다. 군주는 인민으로부터 통치권을 부여받은 존재이며, 법을 만들 권한이 있는 동시에 스스로 그 법을 지킬 의무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당시 지식인 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토마스 아퀴나스 같은 학자조차 군주의 권력은 인민의 동의에서 나온다고 보았고, 백성을 괴롭히는 폭군을 처단하는 것까지 긍정했을 정도였다.

중세 군주들은 로마법의 이러한 원리를 발 빠르게 받아들여 자신들의 통치를 정당화했다. 시칠리아의 루제루 2세는 민회를 거쳐 법을 통과시켰고, 신성 로마 황제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는 "인민이 주권을 넘겨주었기에 군주의 의지가 법적 효력을 갖는다"는 선언을 찬양했다. 13세기에는 황제의 권력이 백성이라는 인간 본성에 뿌리를 둔다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사상이 널리 퍼졌다. 심지어 황제 하인리히 7세는 교황이 대관식을 거부하자 로마 시민들을 선동해 지지를 얻어내며 강제로 식을 치르기도 했다. 이는 마치 고대 로마 시민들이 황제를 추대하던 모습과 흡사했다.

하지만 13세기 후반에는 권력에 대한 위험한 재정의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일부 법학자들은 군주에게 '절대 권력'이 있다는 용어를 만들어내며, 군주가 지상에서 신의 역할을 대신하므로 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들은 나랏일을 위해서라면 신하의 재산을 마음대로 뺏을 수 있고, 오직 신만이 군주를 심판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과도한 권력 옹호는 훗날 근대 초기 절대 군주제가 등장하는 발판이 되었다. 하지만 현실에서 황제의 힘은 갈수록 약해졌다. 각 나라의 국왕들이 "내 나라 안에서는 내가 황제와 다름없다"고 주장하며 황제의 보편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에서는 훨씬 더 앞선 민주주의가 꽃피고 있었다. 피사, 파비아, 시에나 같은 도시들은 이미 12세기에 시민들이 뽑은 '집정관'을 두어 도시를 다스렸다. 황제들도 도시의 자치권을 인정하며 이 흐름을 도왔다. 제노바는 황제로부터 스스로 재판하고 전쟁을 선포할 권리를 얻어냈고, 각 도시는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에 이르는 의회를 운영했다. 시민들은 "이 법은 인민이 만든 것"이라는 문구를 법령에 새겨 넣으며 독자적인 입법권을 행사했다. 특히 이탈리아 도시들에는 '포폴로(민중)'라는 세력이 등장해 귀족들의 횡포에 맞섰다. 이들은 '카피타노 델 포폴로'라는 민중의 대장을 선출해 자신들을 보호하게 했다. 이 직책은 현대 민주주의처럼 임기 제한이 있었고, 귀족이 시민을 해치면 엄벌에 처하는 등 보호막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비록 이러한 민중 정부는 도시 간의 끊임없는 전쟁과 분열로 인해 14세기에 이르러 소수의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형태로 변질되며 막을 내렸지만, 그들이 남긴 민주주의적 시도들은 서구 정치사에 깊은 자국을 남겼다.

중세 시대 제도 중 현대 민주주의와 가장 닮은 것을 꼽으라면 단연 '의회'를 들 수 있다. 당시 의회는 국가 통치의 핵심 기관이었으며, 특히 교회의 공의회에서 발전한 법률 이론들은 세속 국가의 의회 체제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었다. 이 시기에 탄생한 가장 중요한 의회 원칙 두 가지는 '전권(plena potestas)'과 'Q.o.t. 원칙'이다. 전권이란 의회에 참석한 대표자가 자기가 속한 지역 사람 전체를 대신해 결정하고 그 결과에 복종시킬 수 있는 대의제의 원칙을 말한다. 또한 Q.o.t.는 "모든 이에게 영향을 미치는 일은 모든 이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뜻으로, 왕이 세금을 걷거나 국가 중대사를 결정할 때 귀족, 성직자, 시민 등 이해관계자들의 동의를 반드시 구해야 한다는 민주적 근거가 되었다.

영국의 의회, 스페인의 코르테스, 독일의 제국 의회, 프랑스의 삼부회 등 유럽 전역에서 등장한 이 기구들은 왕과 협력하거나 대립하며 정치를 이끌었다. 이는 종교계도 마찬가지여서 교황조차 공의회의 눈치를 보아야 했다. 15세기 초 세 명의 교황이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며 싸우던 서구 대분열 시기, 콘스탄츠 공의회는 교황도 신앙 문제에 있어서는 공의회에 복종해야 한다고 선언할 정도로 강력한 권위를 과시했다. 비록 15세기 중반에 이르러 교황권이 다시 강화되며 공의회의 힘이 약해지기도 했지만, 왕과 신학자, 법률가, 시민들이 한자리에 모여 선거와 동의, 자문을 거쳐 대의제를 실현했던 경험은 훗날 민주 정부의 든든한 뿌리가 되었다.

중세의 주권 개념은 시간이 흐르며 흥미로운 변화를 겪었다. 처음에는 교황이나 황제가 전 기독교 세계를 다스린다는 거대한 '보편 주권'에서 시작했지만, 이 권력은 점차 왕과 제후, 그리고 도시 국가라는 작은 단위로 쪼개져 분산되었다. 주권의 분산 과정에서 일어난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13세기와 14세기에 권력이 공적인 영역에서 사적인 영역으로 이동했다는 점이다. 왕이 나라 전체에 대해 가졌던 권리처럼, 일반 시민들도 자신의 '사유재산'에 대해 누구도 함부로 침해할 수 없는 절대적인 권리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중세는 단 하나의 절대 권력이 지배하던 암흑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주권이 다양한 형태로 나뉘고 섞이는 과정 속에서 현대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는 원칙들이 하나둘씩 정립된 시기였다. 선거와 투표, 인민의 동의를 구하는 절차, 그리고 개인의 재산권을 존중하는 법치주의 정신은 모두 이 역동적인 중세의 정치 현장에서 싹을 틔웠다. 이러한 중세의 유산들은 훗날 인류가 더 평등하고 자유로운 민주 정부를 세우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7.2.2. 자유와 법치

중세 유럽의 자유는 성경의 가르침과 고대의 법사상, 그리고 게르만 부족의 관습이 결합하여 형성된 매우 구체적인 체계였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단순히 영적인 해방을 넘어 인간이 권력의 노예가 아닌 자유로운 존재로서 폭압적인 권위에 저항할 수 있는 신학적 근거가 되었다. 중세인들에게 자유는 목숨과 맞바꿀 만큼 중요한 가치였으며, 시간이 흐르며 합법적인 정치체제 내에서 개인이 갖는 '저항권'으로 이론화되었다. 이러한 자유는 특정 공동체가 외부 간섭 없이 스스로를 다스리는 공동체적 자유와, 부당한 강압으로부터 신체와 재산을 보호받는 개인적 자유라는 두 가지 방향으로 발전해나갔다. 법치주의는 이 두 형태의 자유를 보호하는 핵심 장치였고 중세 사회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권력을 제한하고 구성원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올바른 통치의 목표로 삼았다.

초기 중세의 자유는 주로 수도원이나 영주들에게 부여된 면책 특권의 형태로 나타났다. 클뤼니 수도원처럼 모든 외부 간섭으로부터 독립된 '로마의 자유'를 누리는 공동체들은 스스로 법을 집행하고 지도자를 선출하며 자율적인 질서를 구축했다. 이러한 자율적 문화는 이후 도시의 성장과 함께 더욱 정교해졌다. 영주들은 자신의 영지 내에서 사법권을 행사하고 상위 권력으로부터 세금 의무를 면제받는 '프랑키시아(Franchisia)' 지위를 누렸으며, 동로마 제국에서도 황제가 특정 토지 소유자에게 의무를 면제해 줌으로써 재산의 자유로운 처분을 보장하기도 했다.[60]

길드와 같은 자발적 결사체들 또한 중세 자유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초기 중세부터 뿌리내린 길드는 친족 집단 밖에서 구성원들에게 상호 지원을 제공하고 스스로 규칙을 만들어 내부 분쟁을 해결했다. 12세기 이후 노동이 전문화되고 도시가 성장함에 따라 이러한 규범은 더욱 공식화되었으며, 이는 정부의 간섭 없이 공동체의 문제에 관여하는 권한이라는 서구의 정치적 자유 개념으로 이어졌다. 중세 사회는 아무리 강력한 위계질서 안에서도 하위 구성원들의 의견을 듣는 협의의 문화를 당연하게 여겼으며, 이러한 민주주의적 사회풍토는 이후 독립적인 도시와 코뮌이 발전하는 비옥한 토양이 되었다.

결국 중세의 자유는 법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법을 통해 완성되는 개념이었다. 중세적 자유는 공동체가 자신의 일을 다스릴 권한을 갖는 동시에 개인의 재산과 권리가 적법한 절차 없이 침해당하지 않는 상태를 지향했다. 법치주의는 서로 다른 법 계층 간의 긴장을 조율하며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적절한 자유를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중세 유럽 사회는 개인이 스스로 집단을 형성할 수 있고 그 집단이 자체적인 문제를 결정할 권한을 가진다는 원칙 위에 세워졌다. 이러한 공동체 의식의 뿌리는 초기 중세의 길드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길드는 혈연관계를 넘어선 자발적인 사회 단체로서 구성원들에게 상호 부조를 제공하고 내부 분쟁을 스스로 해결하는 역할을 했다. 12세기 도시의 성장과 함께 길드는 특정 공예나 상인 집단을 중심으로 더욱 공식화되었고, 종교 단체를 포함한 다양한 형태의 형제회로 발전했다. 이들은 자신들만의 규칙을 세우고 구성원들 사이에서 공정하게 처신하는 것을 당연한 가치로 여겼다. 이러한 공동체 내에서는 강력한 위계질서가 존재하더라도 하위 구성원이나 전체를 대표하는 이들의 참여를 배제하지 않았다. 초기 게르만 부족 사회부터 이어져 온 문화적 풍토에서 기인한 전통은 비록 현대와 같은 민주주의는 아니었으나 그 원형적인 싹이 이미 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12세기 이후 이탈리아 북부와 플랑드르, 독일 라인강 유역 등지에서 집중적인 도시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이러한 자치적 요소들은 도시 정치의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자치 도시들은 왕이나 황제로부터 서면 헌장을 받아내어 자신들만의 특권을 확립했다. 이 헌장은 도시가 독자적인 법률에 따라 운영되고 재산권과 독립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도시들은 입법과 사법의 책임을 스스로 행사해야 한다는 길드 특유의 신념을 공유하며 혁명적인 도시 법령을 제정했다. 초기 발전 단계의 도시들은 일요일 미사 후 종이나 나팔을 울려 모든 자유 남성 시민이 참여하는 의회를 소집했고, 이들은 법률 제정이나 전쟁 선포, 공직자 선출 같은 중대한 사안을 투표로 결정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대규모 의회는 점차 소수의 상설 의회로 권력이 집중되는 경향을 보였다. 사회적 고위층들, 즉 '더 현명한 부분(sanior pars)'이라 불리는 엘리트들이 통치를 주도하게 되면서 시민 의회의 영향력은 줄어들었다. 또한 국왕의 권력이 강화되면서 도시의 지방 자치권은 왕국 전체의 대의 체제 안으로 편입되거나 축소되기도 했다.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이 자치권을 유지하면서도 효율적인 통치를 원했을 때 그들은 외부 도시에서 전문가인 포데스타를 초빙해 전권을 맡겼다. 권력 남용을 막기 위해 포데스타의 임기는 1년 남짓으로 짧았고 엄격한 법적 감시를 받았다. 이후 베네치아처럼 소수 가문이 권력을 독점하는 과두정으로 변하거나 만토바처럼 막강한 종신 통치자가 등장한 곳도 있었지만 피렌체는 끝까지 공화국 체제를 고수했다. 피렌체에서는 수백 명의 의원이 짧은 임기 동안 번갈아 통치했으며 발리아라는 특별 위원회가 법률 전문가들의 객관적인 조언인 콘실리아를 받아 권력을 견제했다. 이들에게 공동체의 자유란 곧 법을 엄격히 준수하는 체제를 유지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동로마에서도 전제정치에 맞서 자유를 지키는 가장 확실한 안전장치로 여겨졌다.

모든 공동체는 자신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고유의 관습을 기록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과정을 동질화라고 불렀다. 이는 누군가의 입김이 아니라 명확히 기록된 자신들의 법에 따라 심판받기 위한 노력이었다. 교회 역시 칙령을 통해 법적 체계를 입법적인 성격으로 다졌고 도시들은 오랫동안 이어져 온 관행을 콘수에투도라는 공식적인 법의 범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물론 저항도 존재했다. 왕들이 통치 편의를 위해 로마법을 앞세워 보편적인 성문법 체계를 강요하자 지역 공동체와 귀족들은 자신들만의 지역 관습을 유지할 권리를 강력하게 주장하며 이를 수집하고 기록했다.[61]

중세인들이 생각한 자유는 내 마음대로 하는 방종이 아니라 하느님이 정한 질서 속에서 자신의 신체와 재산을 보호받고 공동체의 의사 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뜻했다. 즉 올바른 질서에 순응하며 선하게 살 수 있는 권리가 곧 자유였으며 이는 저속한 욕망과 죄악의 노예가 되지 않는 것을 의미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중세인들은 수도사들이 일반인보다 더 자유롭다고 여겼는데 그들이 완전한 삶을 추구할 영적 자유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또한 중세 지식인들은 모든 인간이 본래 자유롭게 태어났다는 고전 이론을 수용했다. 비록 현실의 법이 모든 예속을 즉각 폐지하지는 못했지만 기독교 세계관 안에서 노예제는 점차 사라졌고 법 아래 모든 자유인은 동일한 보호와 특권을 갖는다는 사상이 싹텄다.

도시의 공기가 자유를 만든다는 말처럼 농노라도 도시에서 1년을 거주하며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면 자유인이 될 수 있었다. 도시 헌장은 개인에게 거래와 결혼의 자유, 재산 상속권, 그리고 법정에서 소송을 제기할 권리 등을 명문화하여 보장했다. 1249년의 크라이스트부르크 조약은 이러한 자유가 문서로 구체화된 대표적인 사례로 프로이센인들이 스스로 법을 선택하고 재판받을 권리를 획득했음을 보여준다. 비록 현실적인 제약으로 완벽히 실행되지는 못했으나 통치자가 함부로 침해할 수 없는 개인적 자유를 명시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 역시 왕의 권한을 제한하고 모든 자유민이 적법한 절차 없이는 처벌이나 권리 박탈을 당하지 않도록 규정하며 중세적 자유의 기틀을 마련했다.

마그나 카르타를 비롯한 중세의 수많은 헌장들은 무력 충돌의 혼란 속에서 탄생했다. 이는 단순히 군주의 자비가 아니라 귀족과 성직자, 도시민들이 자신들의 독립적인 관할권과 특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한 결과물이었다. 잉글랜드의 존왕이나 신성 로마 제국프리드리히 2세, 프랑스루이 10세 등 당시 군주들은 강한 왕권을 휘두르려 했지만 지역 공동체는 고대부터 내려온 관습을 근거로 이에 대항했다. 특히 마그나 카르타에 명시된 동료에 의한 재판 원칙은 정당한 통치자라 할지라도 법적 절차 없이 개인의 자유와 재산을 함부로 뺏을 수 없다는 중세 사회의 뿌리 깊은 전통을 담았다.

당시 기독교 세계에서 진정한 군주는 결코 폭군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동로마 제국에서는 황제가 공공 자산을 사유화하거나 자유민을 노예처럼 부리는 것을 경계했고 서구에서는 법치주의가 그 대안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중세의 법치주의란 통치자가 개인의 욕망이 아닌 사법 절차와 지역 관습, 그리고 정의와 합리성에 근거해 다스려야 함을 의미했다. 12세기 영국의 시인들이나 프라이징의 오토 주교는 왕이 동료의 재판 없이 고문을 행하거나 제멋대로 법을 어기는 무법 상태를 신랄하게 비난했다. 당시 법전들은 왕이 왕국의 지도자들과 함께 관습에 따라 다스려야 하며 타락한 의지보다 정의와 법이 앞서야 한다고 명시했다.

솔즈베리의 존은 그의 저서 폴리크라티쿠스에서 군주가 감정의 파도가 아니라 법에 대한 차분한 숙고를 통해 통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탈리아의 브루네토 라티니 역시 국가를 하나의 살아 있는 몸으로 비유하며 머리에 해당하는 통치자가 건강해야 몸 전체가 건강하다고 보았다. 만약 통치자가 공동체의 건강을 해치는 폭군이 된다면 병든 사지를 잘라내듯 그를 제거해야 한다는 과격한 논리까지 등장했다. 이탈리아 도시 국가의 행정관인 포데스타는 취임할 때 지역의 법과 관습을 수호하고 고아나 과부 같은 약자들의 권리까지 보호하겠다고 엄숙히 선서하며 군주의 권위가 인민의 의지로부터 비롯됨을 인정했다.

14세기 파도바의 마르실리우스는 더욱 혁신적인 사상을 펼쳤다. 그는 법을 만드는 근본적인 주체가 통치자가 아닌 시민 집단 전체라고 보았다. 통치자나 소수 권력자는 시민 공동체로부터 권한을 잠시 위임받은 대리인에 불과하며 중대한 결정을 내릴 때는 반드시 시민 의회와 협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교회 영역에도 적용되어 교황보다 공의회의 권위를 앞세우는 공의회주의로 이어졌다. 마르실리우스의 이론은 시민의 자율성을 극대화하며 현대 민주주의적 대표 원리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세 법학자들은 군주 권력의 범위와 한계를 정교하게 다듬으며 법치주의를 완성해 나갔다. 그라티아누스는 법이 공포될 때 제정되지만 오랜 관습에 의해 승인될 때 비로소 확정된다고 명시했다. 이는 아무리 강력한 왕의 명령이라도 공동체의 오랜 습속과 인민의 승인이 없다면 진정한 법으로 기능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결국 중세 유럽에서 군주의 의지는 인민의 의지와 법이라는 거대한 울타리 안에서 끊임없이 견제받았으며 이러한 전통이 오늘날 서구의 자유와 법치주의 개념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중세 법학자들은 군주가 법 위에 군림하는지 아니면 법에 복종해야 하는지를 두고 치열하게 논쟁했다. 발두스 데 우발디스는 군주조차도 일반 관습법에 복종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관습법이 자연법에 뿌리를 둔 인류 공통의 질서이기에 그 어떤 개인보다 권위가 높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바르톨루스 사소페라토 역시 인민의 묵시적 동의가 담긴 관습은 군주조차 무시할 수 없는 구속력을 가진다고 보았다. 비록 군주에게 '전권(plena potestas)'이 있다는 표현이 쓰였을지라도, 이는 신의 율법과 정의의 범주 안에서 공익을 위해 행사될 때만 정당성을 얻었다.

현대인의 눈에는 절대 권력처럼 보이는 표현들도 당시의 맥락으로 보면 엄격한 제한을 담고 있었다. 예를 들어 발두스가 "아무도 군주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고 물을 수 없다"고 한 것은 군주가 하느님처럼 전지전능하게 모든 상황을 숙고하여 내린 결정이라는 이상적인 전제 하에서만 성립하는 수사였다. 만약 군주가 이성을 버리고 사적인 욕망에 따라 행동한다면 당시 지식인들은 이를 '이성이 결여된 가짜 의지'라며 비판했다. 오컴의 윌리엄 같은 철학자도 진정한 통치자란 자연법과 이성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리는 사람이며 왕의 권력은 언제나 신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세 법학자들은 개인의 권리(ius)에 대해서도 정교한 이론을 발전시켰다. 이들에게 권리란 단순한 도덕적 올바름을 넘어 가난한 자가 구제받을 권리나 이교도가 재산을 지킬 수 있는 자연권까지 포함하는 개념이었다. 수자라의 귀도는 군주라 할지라도 정당한 사유 없이 타인의 재산이나 소송권을 뺏을 수 없으며, 만약 관리들이 법을 어기고 재산을 몰수하려 한다면 개인은 이에 저항할 권리가 있다고 단언했다. 이는 통치자의 명령보다 상위의 법적 권리가 개인에게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또한 중세 사회는 공동체가 스스로 단체를 조직해 자치권을 행사하는 것을 지지했다. 길드나 법인(universitas)의 구성원들은 스스로 재판관을 임명하고 내부 규정을 만들 자율권을 가졌다. 군주는 이러한 길드의 운영이나 재산권, 법적 방어권에 함부로 간섭할 수 없었다. 법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정부의 폭주로부터 공동체와 개인의 권리를 지켜주는 수호자이자 권력 제한의 틀로 인식되었다.

물론 중세의 자유가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이단자로 몰린 사람들은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지 못했고, 유대인 등 소수자들은 공동체의 의사결정에서 소외되는 차별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중세 사회가 정립한 법치주의와 자치권, 그리고 개인의 권리 보호에 대한 신념은 현대 서구 민주주의와 자유의 근간이 되는 소중한 유산을 남겼다. 중세인들에게 자유란 곧 법적 근거 없이는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당당한 권리였다.

7.2.3. 공공선과 시민권

중세 시민권의 핵심은 지역마다 미세한 차이가 있었으나 본질적으로는 시민들 사이의 평등에 있었다. 넓은 의미에서 라틴 유럽의 기독교인들은 모두 '레스 푸블리카 크리스티아나(Res publica Christiana)'라는 공동체의 일원이었다. 이들은 세례를 통해 로마법상의 시민권 개념을 계승했으며, 신의 섭리에 따라 고대 로마의 보편적 권위가 이어졌다고 믿었다. 이러한 사상은 모든 시민이 법 아래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세계주의적 관점을 반영한 것이었다. 로마 제국 말기에 이르러 노예를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시민권이 확대되자, 정부는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비시민이라는 비교 대상이 사라진 상황에서 새로운 시민권의 형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기독교적 정체성을 어떻게 확립할 것인지, 그리고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이주민들을 어떻게 사회에 통합할 것인지가 중요한 과제로 부상했다.

제국 전역으로 시민권이 확대되면서 엘리트의 특권적 지위는 다소 약화되었지만 도시 거주자들은 도시에 산다는 사실 자체로 또 다른 형태의 시민권을 누렸다. 12세기부터 이러한 도시 시민권이 법적 효력을 되찾으면서 과거의 보편적 시민권 개념은 점차 사라졌고, 시민들은 각자가 속한 도시의 법과 관습에 따라 권리를 부여받게 되었다. 중세 시민권을 이해하는 데는 세 가지 주요 요소가 있다. 첫째, 대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부활하고 로마법전이 재평가되면서 시민권을 재정의하는 이론적 기틀이 마련되었다. 둘째, 자치 도시들이 시민의 자격과 권리, 의무를 명시한 실질적인 법규를 제정했다. 이는 상위 권력으로부터 하사받은 형식을 취했지만 실제로는 지역을 규율하는 헌법 역할을 했다. 셋째, 법을 적용하는 과정에서의 유연성이다. 실제 관행에서는 수많은 예외가 허용되었는데, 덕분에 유대인이나 여성처럼 법적으로 소외된 이들도 일종의 준시민권 형태를 갖추며 실익을 얻기도 했다.

중세의 시민권은 단순히 누가 포함되느냐의 문제를 넘어 누구를 배제하느냐를 결정하는 정치적 사안이었다. 특히 현대의 시민권이 행정적 절차에 집중된 무미건조한 개념인 것과 달리, 중세 시민권은 항상 종교적이고 윤리적인 덕성을 요구했다. 시민에게는 올바른 행동과 공동체 참여가 필수적이었다. 재닛 콜먼은 이러한 이론을 이해하는 데 신학자들의 역할이 컸다고 분석했다. 그녀는 인간의 의지가 이성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에 따라 두 사상적 흐름을 구분했다. 신아우구스티누스주의자들은 인간의 타락 이후 상태를 고려해 공동체보다 개인을 앞세웠다. 오컴의 윌리엄 같은 이들은 시민이 이성만으로 국가의 본질을 다 이해할 수 없으므로, 각자가 자기 절제와 정직한 평판을 유지하며 평화롭게 공익에 기여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보았다. 반면 신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은 공동체에 대한 사랑이 자기애보다 우선하며, 공공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보다 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1260년경 번역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은 중세 도시 정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은 특히 선거제가 활발했던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에 적합했다. 그는 거주민과 시민을 구분하여 노동자, 노예, 어린이, 여성을 시민권에서 배제했다. 시민은 이성을 발휘하여 사법적 직책을 맡을 권리가 있었는데, 이 능력이 부족하다고 간주된 이들은 배제된 것이다. 그러나 중세 후기 스콜라 철학자들은 노동의 가치를 긍정하며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수정했다. 기술에 종사하는 것이 시민권 박탈 사유가 되지 않았으며, 솔즈베리의 존은 농민과 장인도 사회 전체의 건강에 기여하는 필수적인 존재임을 명시했다.

이러한 논의가 가장 뜨거웠던 곳은 이탈리아의 도시 국가들이었다. 브루네토 라티니는 오히려 기술을 추구하는 행위가 시민권을 정의하는 요소라고 보았다. 길드의 경제적 영향력은 이러한 이론을 실제 정치 현실로 만들었다. 피렌체에서는 길드 가입이 시민권과 공직 진출의 필수 조건이 되었으며, 1378년에는 노동자들이 완전한 정치적 권리를 요구하며 치옴피 봉기를 일으키기도 했다. 라티니는 장인과 여성에게도 시민권을 부여할 수 있는 진보적인 시민 개념을 제시했다. 이후 루카의 프톨레마이오스는 신민이라는 단어를 시민으로 대체하며 모든 시민이 군 복무 의무를 지는 동시에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탈리아 도시 정부의 고질적인 문제는 파벌 간의 폭력이었다. 단테 알리기에리신곡에서 이러한 분열을 비판하며, 결국 시민들이 자율적으로 화합할 수 있다는 기대를 접고 시민 사회라는 개념 자체에 깊은 회의감을 드러냈다.

단테 알리기에리는 이탈리아의 극심한 혼란을 해결하기 위해 권력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하강론적 질서를 대안으로 내놓았다. 그는 권위가 여러 갈래로 찢긴 상태와 시민들의 끝없는 탐욕이 이탈리아를 파멸로 이끌고 있다고 보았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모든 군주와 공화국 위에 군림하는 단 한 명의 보편적 황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단테의 이론에 따르면 이 황제는 교황의 간섭에서 완전히 독립적이어야 하며,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라 신의 계시와도 같은 로마법에 근거하여 세상을 다스려야 했다. 이는 우주의 유일한 통치자인 신의 질서를 지상에 그대로 투영하려는 시도였으나, 당시 현실에서 그만한 주권을 행사할 황제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분히 유토피아적인 성격이 강했다.

반면 파도바의 마르실리우스는 권력이 아래에서 위로 향하는 상승론에 기반하여 시민 사회의 평화를 설계했다. 의학자 출신이었던 그는 국가를 하나의 유기체로 보았으며, 시민 전체가 입법자로서 주권을 행사할 때만 진정한 평화가 유지될 수 있다고 믿었다. 마르실리우스는 입법 기능과 행정 기능을 엄격히 구분하여, 군주나 관리조차도 인민이 제정한 법을 단순히 집행하는 대리인에 불과하다고 보았다. 특히 그는 교황의 지배 욕구가 시민 사회의 갈등을 일으키는 핵심 원인이라고 비판하며, 신의 법이나 기독교 교리조차도 시민 주권 기관에 의해 법으로 제정되지 않는 한 인간 사회에서 강제력을 가질 수 없다고 못 박았다. 비록 그는 가구주나 부유층에게 더 큰 책임을 맡기는 등 제한적인 민주주의를 상상했으나, 모든 시민 간의 상호성과 공동체에 대한 기여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매우 혁신적이었다.

이처럼 단테와 마르실리우스는 사익이 공동체를 파괴한다는 인식은 같이했으나 그 해결책은 판이했다. 단테는 강력한 일인 통치를 통해 사익을 억누르려 했고, 마르실리우스는 다수 시민의 동의와 법치를 통해 공공의 이익을 실현하고자 했다. 군주제가 영원불변한 신의 질서에 기댄다면, 공화정은 역사적 시간 속에서 시민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가변적인 체제였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논의는 정치적 권력이 과연 어디서 오며 누가 그 권한을 가져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으며, 이는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이 겪었던 실질적인 위기와 파벌 싸움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중세 정치 사상의 정수라고 할 수 있다.

중세 시민권의 성격은 지역에 따라 크게 두 갈래로 나뉘었다. 스웨덴이나 스위스 같은 지역에서는 게르만 부족 전통에 따라 군 복무가 시민권의 원천이었다. 남성 보병 민병대가 무기를 들고 집회에 나와 동의의 표시로 창을 들어 올리며 발언권을 행사했다. 민주주의는 비귀족 대중이 무장하고 훈련받는 과정에서 싹텄다. 반면 상업이 발달한 도시에서는 상업 활동과 장인 생산이 시민권의 기반이 되었다. 황제나 영주로부터 '자유 도시' 헌장을 받아 봉건적 세금을 면제받으면서, 거주민들은 법적인 '시민'으로서 지위를 얻었다.

중세 도시는 법률적으로 '유니베르시타스(Universitas)'라고 불리는 일종의 법인체였다. 시민들은 서약을 통해 결속되었고, 스스로 '법령'이라는 혁명적인 헌법을 제정했다. 처음에는 마을 자율방범대 수준이었던 공동체들이 점차 행정과 사법 기능까지 맡게 되면서, 누가 시민인지, 공직은 어떻게 수행하는지, 이웃 간의 분쟁은 어떻게 해결할지 등을 법령에 촘촘히 기록했다. 성인 남성 시민들로 구성된 의회가 이 법령을 승인하며 공동체의 경계를 정했다. 시민권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었다. 법학자 바르톨루스는 시민권이 자연적인 권리가 아니라 오직 '민법'을 통해 부여되는 지위라고 보았다. 덕분에 이민자나 유대인도 세금을 내고 정해진 요건을 갖추면 법적인 보호와 권리를 누릴 수 있었다. 특히 여성은 정치적 참여는 제한되었으나 재산권에 있어서는 완전한 시민에 가까운 권리를 누렸다. 독일과 저지대 국가의 여성들은 가재도구를 자유롭게 처분하거나 직업 조합에 가입할 수 있었고, 남편에게 시민권을 물려주는 통로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러한 법적 시민권은 저지대 국가를 시작으로 독일, 스위스, 북부 이탈리아를 거쳐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신에게 더 유리한 법을 찾아 선택하는 유연성을 발휘하기도 했다. 반면 상업 도시 네트워크가 부족했던 남부 이탈리아는 시민권의 정의가 상대적으로 불분명했다. 북유럽의 스웨덴은 독일 모델을 받아들여 외국 상인들이 본국 시민권을 유지하면서도 현지 시민권을 얻을 수 있는 개방적인 체제를 구축했다.[62] 결국 중세 유럽의 이 다양한 지방 자치와 법적 실험들이 오늘날 자유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든든한 밑거름이 되었다.

동부 유럽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키예프 루스모스크바 대공국은 서구의 도시 전통과는 거리가 멀었다. 전통적인 의회는 법적 시민권을 형성할 만큼의 활력을 갖추지 못했고, 상인들은 차르 체제에 종속되어 있었다. 다만 모스크바에서 멀리 떨어져 몽골의 침략을 피했던 노브고로드 공화국은 예외였다. 이곳은 선출된 의회와 성문법을 갖추며 유럽 시민 사회의 동쪽 거점 역할을 했으나, 1478년 이반 3세에 의해 철저히 파괴되며 그 역사가 끊어졌다.

동로마 제국 역시 강력한 로마법 전통을 공유했지만, 모든 권력이 황제와 궁정에 집중되어 있어 독립적인 시민권 개념은 무의미했다. 그러나 이곳의 여성들은 경제적으로 상당한 권리를 누렸다. 지참금과 재산을 분리하고 남편 사후에 재산을 상속받아 가장이 되는 등 시장 경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비록 정치적 권리는 없었으나 경제적 주체로서의 입지는 확고했다. 한편 이슬람 세계는 지중해 도시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움마(신앙 공동체)'의 통일성을 중시했다. 이슬람 법원은 개인의 계약을 존중했지만, 법의 제정자가 오직 신(알라)뿐이라는 원칙 때문에 시민들이 입법이나 국정에 참여할 공간은 거의 없었다. 이들에게 시민이란 단순히 도시에 사는 사회적 존재일 뿐, 정치적 존재는 아니었다.

여성에게 시민권은 이론과 법, 실제가 따로 노는 복잡한 문제였다. 여성들은 남편의 고향과 자신이 살아온 도시 사이에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곤 했다. 이론적으로 로마법이 지배하는 곳에서 여성은 공직과 사법직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15세기 피렌체처럼 공적 공간이 급격히 '남성화'되던 시기에 여성들은 정치적 인맥을 활용하거나 형제회에 가입하는 등 대안적인 방식으로 자신들만의 시민권을 구축해야 했다. 이탈리아 코르네토 마을의 법령은 여성이 시청에 출입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증언이 필요할 때도 판사가 직접 여성이 있는 교회로 찾아가도록 규정했다. 정치와 행정은 확실한 남성들만의 영역이었다.[63]

중세 시민권의 역사는 현대 민주주의에 두 가지 시사점을 던진다. 첫째, 평등한 시민들의 '형제애'를 강조하는 공화국 체제는 오히려 군주제보다도 여성을 권력 구조에서 배제하기 쉬운 구조적 한계를 가졌다. 군주제에서는 여성이 여왕이 될 수 있는 가문 중심의 논리가 작동했지만, 공화국은 남성 시민들의 모임으로 정의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법적 시민권을 인정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중세 여성들은 기부, 자선 활동, 사업 관리, 시장 경제 참여 등을 통해 실질적인 시민으로서의 삶을 개척해 나갔다. 이론적으로는 불가능했고 법적으로도 모호했지만 현실에서 여성들은 이미 시민으로서 기능하고 있었다.

7.2.4. 자선과 복지

현대 서구 사회민주주의의 정교한 복지 정책은 사실 중세 기독교 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자선은 부자가 빈자에게 베푸는 단순한 호의가 아니라 종교적 의무이자 빈자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로 인식되었다. 기독교의 핵심 가치인 카리타스는 부유한 자들이 재산을 기부해 가난한 이들을 돕게 함으로써 공동체를 유지하는 비결이었다. 중세인들은 이를 영혼의 몸값이라 불렀는데 현세에서 가난한 이웃을 돕는 행위가 내세에서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는 상호 교환적 가치를 지닌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상은 후기 중세의 대중 신학을 통해 빈민 구제라는 실천적 행위로 정착되었으며 시민 공동체와 신앙 공동체 모두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마르틴 루터칼뱅으로 대표되는 종교 개혁은 구원이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교리를 내세워 선행이 구원의 직접적인 수단이라는 기존 관념을 무너뜨리는 듯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타주의를 다른 방식으로 설파했다. 이웃을 돕는 행위가 구원을 받기 위한 조건은 아니지만 이미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가 마땅히 보여줘야 할 감사의 표시라고 재정의한 것이다. 결국 형태는 바뀌었을지언정 약자를 돌봐야 한다는 기독교적 복지 사상의 초석은 시대를 관통하며 이어졌다. 고대 후기부터 종교개혁기에 이르기까지 가난과 자선에 대한 사상은 경제적 및 종교적 발전의 영향으로 극적인 변화를 겪으며 현대적 복지 개념으로 진화해 나갔다.

11세기 이후 도시화와 상업화가 진행되면서 빈곤을 바라보는 시선에 큰 변화가 생겼다. 흑사병 이후 노동력이 귀해지자 일할 능력이 있음에도 구걸하는 이들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커졌다. 이에 따라 가난은 두 부류로 나뉘어 질병이나 사고로 어쩔 수 없이 가난해진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는 가난과 게으름으로 인한 부당한 가난을 구분하기 시작했다. 기독교 공동체를 하나의 신체에 비유하는 은유가 확산되면서 모든 구성원은 사회적 지위와 상관없이 서로의 안녕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인식이 강화되었다.

이러한 인식은 점차 공동선이라는 개념으로 확장되어 도시 정부와 같은 세속 공공기관이 시민의 복지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발전했다. 정부가 국민의 신체적 안녕과 번영까지도 책임져야 한다는 이 개념은 민간과 공공 부문 그리고 종교 단체와 세속 단체 모두가 참여하는 사회 복지 사업의 제도화에 크게 기여했다. 결과적으로는 고대 후기부터 이어온 자선 기관 체계를 계승하며 현대 복지 국가가 수행하는 공공 복지의 초기 모델이 되었다. 중세 사회는 비록 일부 차별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와 법치주의 그리고 보편적인 복지 체계를 향한 문화적 토대를 마련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중세 후기로 갈수록 사회복지 활동은 더욱 다양하고 치밀해졌다. 수도원에서 빵을 나누어주던 전통적인 방식을 넘어, 이제는 마을과 도시 정부가 직접 관리인을 임명해 주민들을 돕는 공공 재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특히 '형제회'라 불리는 사적 단체들의 활약이 눈부셨는데 영국에서만 수백 개가 넘는 단체가 활동했을 정도였다. 이들은 직업별 조합이나 마을 단위로 맺어져 가난한 이웃과 과부, 고아를 돌보는 데 앞장섰다. 예를 들어 피렌체의 한 형제회는 위기 상황에서 도시 인구의 4분의 1에 달하는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도 했다. 이러한 단체들은 오늘날의 사회 보험과 비슷한 역할도 수행했다. 갑작스러운 실업이나 사업 실패, 질병, 사고를 당한 회원들에게 생활비를 지원하고 장례비까지 책임졌다. 더 나아가 이들은 자신들만의 울타리를 넘어 외부인들에게도 도움의 손길을 뻗었다. 도시와 종교 당국 역시 기숙사, 고아원, 요양원은 물론 나병이나 전염병 환자를 위한 전문 시설을 세우며 복지의 질을 높였다.

복지의 개념은 단순히 사람을 돕는 데서 그치지 않고 도시 환경 전체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확장되었다. 정부는 전염병을 막고 시민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도로를 포장하고 배수 시설을 정비했다. 쓰레기 수거와 공중화장실 설치는 물론 하수도 시설까지 도입하며 위생에 힘을 쏟았다. 소음이나 수질 오염을 일으키는 공장에는 벌금을 물리고, 불량 식품을 단속하거나 화재 예방 조치를 시행하는 등 생활 전반을 관리했다. 이러한 사업에 필요한 비용은 특별 지방세를 걷어 충당했다.

이런 복지 체계는 도시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시골 마을에서도 유산이나 기부금을 관리해 가난한 이들을 돕는 자선 단체들이 활발히 움직였다. 도시보다 시기나 규모는 조금 늦고 작았을지 몰라도, 마을 사람들은 형제회를 통해 서로 돕고 음식을 나누며 제도화된 복지를 실천했다. 결국 중세 유럽은 도시와 시골을 가릴 것 없이 기독교 정신과 공동체 의식을 바탕으로 오늘날 복지 국가의 초기 모델을 차근차근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7.3. 근대~현대 민주주의

현재의 민주주의는 17세기 계몽 사상가인 존 로크의 자연권 사상과 이의 뒤를 이은 18세기 장 자크 루소, 볼테르, 드니 디드로 등의 계몽주의를 기반으로 1688년 명예 혁명, 1776년 미국의 독립혁명과 1789년 프랑스 혁명(이른바 '3대 시민 혁명')을 통해 현실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고대 그리스의 직접 민주주의와는 구분되는 대의제 민주주의의 사상이 발달하였으며, 이는 오히려 직접 민주주의에 비해 우월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당시 프랑스와 미국에서의 대의제 옹호 논점이 미묘하게 달랐는데, 프랑스의 시에예스는 산업이 발달한 사회에서 사람들이 생업에 종사하기 위해서는 정치 역시 분업의 영역이 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대의제를 옹호하였으며, 미국의 매디슨은 다수의 전제를 막는 기제로서 대의제를 옹호하였다.

프랑스 혁명의 사상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유럽 정복과 나폴레옹 법전의 편찬을 통해 유럽 전체로 확산되었으나, 빈 회의 이후 복고주의적인 옛 귀족 및 자본가 계층과 민주주의를 완전히 쟁취하려는 시민과 노동자 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이 당시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중우 정치에 대한 우려와 참정권 확대에 대한 반대 등으로 현재만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했으며, 확대된 선거권의 경우에도 경제적으로나 대상자 차원에서 상당한 제약이 있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성격이 강했다. 1848년 혁명 등을 비롯하여 19세기를 '민주주의의 확산' 시기로 보는 시각이 강하지만, 19세기는 오히려 나폴레옹 3세의 전제정, 독일 제국 등이 세워지는 등 반동적인 움직임도 상당한 시기였다.[64]

그러나 당시의 전제 군주제 국가들은 4개의 제국을 무덤으로 끌고 간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왕정이 붕괴하면서 대개 민주정으로 전환하였다. 첫 번째 세계대전 이후 오스만 제국을 비롯해 패전국에서 떨어져 나온 식민지들 또한 왕정의 기반이 무너진 곳이 많았으므로 민주주의를 채택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 시기 선진국에서는 여성 참정권 또한 발달하였다. 그러나 식민지에는 이러한 민주 정책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았고, 이러한 민주주의의 확산은 각 식민지 독립 운동의 자극제로 작용하게 된다.

그러나 1차 대전 이후에도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도입되었을 뿐, 그 내용에 대해서는 호의적으로 보기 힘들다. 상당수의 새로운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당의 난립과 1년을 채 넘기지 못하는 정권의 유지 기간 등으로 인해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회의가 들끓었다. 특히 새로이 민주주의 국가로 합류한 동유럽은 민족 분규가 심각했으므로, 의회 민주주의는 각 민족과 지역, 정파 등이 어지럽게 섞여 자기 목소리만 낼 뿐인 공간으로 보였다.

입법부에 대한 회의는 '손쉽게 의견과 결정을 통일할 수 있는 강력한 행정부'에 대한 열망으로 변하였으며, 특히 러시아 내전세계 대공황 이후 방향 잃은 경제와 난파하는 내각들은 계획 경제 체제로 갈피를 잡은 '파시즘' 세력과 '프롤레타리아 독재' 정권에 호응하는 사람들을 출현시켰다.

그 결과 1938년 시점의 민주주의는 독재적 통치에 압도당했고, 나치즘, 파시즘과 같은 극단적인 국가주의 사상이 탄생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때 나치즘과 파시즘은 추축국 시민을 선동하여 결과적으로 '민주적'으로 보이는 도구를 통해 정권을 장악하였다. 이는 사회주의 확산에 따른 중산층의 불안감과 극우적인 사상의 유행으로 인한 것으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이는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탈산업사회론으로 유명한 미국의 사회학자 다니엘 벨은 파시즘의 등장이 민주적으로 이루어졌다는 해석에 대해 귀족주의적이며 경험적 근거 없이 대중의 판단력과 취향을 비하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으며,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달 역시 파시즘의 대두는 심각한 불평등 때문이었지 민주주의 때문이 아니었다는 반론을 제시한다. 권위주의 개념을 창안한 스페인의 정치학자 후안 린츠 역시 민주주의 체제의 붕괴는 의사결정권을 독점한 극소수 권력자들의 음모와 협잡에 의한 것이지 민주적 절차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노동 계급을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이에 대해 '부르주아 민주주의를 넘어선 민중의 정치 참여'가 양차대전으로 인한 전시 동원과 공업 노동의 활성화를 거치며 노동 계급의 성장과 밀접히 연관된다고 주장한다. 베링턴 무어는 민주주의 이행에 있어서 "부르주아 없이 민주주의 없다" 는 유명한 테제를 통해 부르주아 계급의 역할을 강조하였지만, 디트리히 뤼시마이어는 광범위한 경험적 연구를 통해 무어의 테제를 비판하며 민주주의 이행에서 노동자와 중산층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뤼시마이어에 따르면 민주주의로의 이행은 조직화된 노동계급이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여 공산주의에 대한 중산층의 두려움을 해소시키고 연합을 하였을 때 이루어진다. 이는 부르주아 계층을 배제하는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와는 다른 해석이다. 그러나 마크 마조워의 『암흑의 대륙』에 따르면 1차 대전 이후 등장한 의회 민주주의에 대해서 당시의 대중들은 수많은 당의 대립과 대공황 이후 방향을 잃은 정권 등으로 인해 환멸을 느꼈다. 그러나 이들은 중산 계층으로서 어느 정도 지위를 확보했기 때문에 극단적인 공산주의 이념에는 거부감을 느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행정부의 권력이 크게 집중되는 정부 형태를 원한 것이 결과적으로 나치즘과 같은 전체주의 체제를 불러왔다고 지적했다. 또한 전체주의에 대한 수정주의적 혹은 신문화주의적 시각에서는 집회, 대중 동원, 건설 산업 등을 통해 전체주의 정치가들이 대중의 호응을 얻어냈다고 파악하고 있다. 대중들에게는 실업이 가득했던 공황의 시대에 비하면 어찌 되었건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던 전체주의 체제가 매력적으로 보였으며, '개인의 자유'를 '대공황을 불러오게 된 방종'으로 파악하게 되면서 민주주의는 변질되고 쇠퇴했다는 것이다.

많은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전체주의 사상의 등장과 2차 대전은 어찌 되었건 사회 일반 구성원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뚜렷한 인식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사건이다. 이들이 민주주의로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은 전체주의 이념의 만행을 반면교사로 삼아 개인의 자유와 평등이 얼마나 중요했는가를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종결되고 서구 열강 하에 있던 식민지가 독립을 하면서 민주주의 사상은 전 세계로 확산되었으나, 진로는 각기 달랐다. 동아시아에서 대한민국일본, 대만은 민주주의 국가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반면 동남아시아아프리카 등 2차 대전 이후에도 남아 있던 식민지들은 '독립 영웅'이나 기득권자였던 백인의 주도로 독립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 때문에 소수 중심의 권력 구조에 대한 비판력이 떨어져 다수가 '신대통령제'로 불리는 독재 정권으로 이행하였다. 이외에 공산권에서도 민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표면상으로는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세울 것을 표방하고 식민지 해방 운동이 벌어졌으나 정권 성립 이후는... 현실은 시궁창이 되어 버렸다. 소련에 의해 점령된 동구권에서는 인민 민주주의라는 미명하에 나름대로 합법적 선거를 통해 공산당의 집권을 기도하였으나, 선거에서 불리하면 선거를 무시하고 권위주의 정권을 수립하였다. 많은 사례에서 볼 수 있듯, 기존의 전제정 아래에 놓여 있던 시민들의 무관심 및 무지로 인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면서 독재로 변질되는 나라가 지금도 상당히 많다.

7.4.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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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1. 개념의 도입 (개화기)

대한민국 역사에서 최초로 민주주의 개념이 소개된 것은 청나라의 위원(魏源)이 쓴 해국도지(海國圖志)가 1850년대 국내에 도입되면서부터이다. 해국도지는 아편전쟁 이후 위원이 서양의 각국에 대한 정보를 총망라하여 작성한 일종의 백과사전으로, 이 책에는 유럽과 미주 대륙의 입헌 민주주의 국가의 정체에 대해서도 언급돼 있었다. 이 책을 바탕으로 조선의 최한기(崔漢綺)가 1857년 지구전요(地球典要)라는 책을 편찬했는데, 이 책은 당시 조선인들이 바라본 서구권 국가의 민주 정치 체제에 대한 이해가 잘 드러나 있다.
도성(수도)에 공회소(의회)가 있다. 하나는 상원이라 부르고 하나는 하원이라 부르는 것으로 양분돼 있다. 하원은 서민들의 추천과 선택에 의해 뽑힌 재주와 학식 있는 자들로 구성된다. 나라에 대사가 있으면 국왕은 수상에게 유시하고, 수상은 상원에 알린다. 그러면 상원의원들은 모여서 공의하되 조례를 참조하여 그 가부를 결정한 다음 다시 하원에 알려 하원의원들이 윤허한 후 시행하고 만약 부결되면 그 일은 무산된다...(중략) 이러한 제도는 구라파 여러 나라들이 모두 시행하고 있고 영국만 그런 것은 아니다.[65]
지구전요에 실린 입헌군주제 개념

1789년 미국이란 나라를 세워서 콜롬비아의 워싱턴을 우두머리로 삼았는데, 그 길로 국왕을 세우지 않고 마침내 프레지던트[66] 한 사람을 두어 전국의 군사, 형벌, 부세, 관리의 출척을 총체적으로 관리하게 하였다. (중략) 프레지던트는 4년을 임기로 하여 임기가 차면 바꾸는데, 만일 그가 진실로 협조를 얻어 온 나라가 열복하면 한 번 더 연임[67]할 수는 있으나 세습하거나 종신하는 일은 없다. (중략) 프레지던트는 미국 내에서 거주하되 반드시 국내에서 14년 이상을 거주한 자로서 35세 이상이라야지 자격이 있다.
지구전요에 실린 대통령제 개념
1876년 개항 이후 한성순보에서는 <구미입헌정체>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군민동치합중공화의 두 정치 개념을 소개하며 헌법 제도와 미국의 대통령제를 소개하였다. 다만 이때까지는 이론상으로만 국내에 소개되었을 뿐이고 실질적인 민주주의의 실천은 1896년 독립협회가 성립되면서부터 출발하였다고 볼 수 있다. 독립협회는 독립신문을 통해 백성의 재산과 생명, 언론과 집회의 권리는 하늘이 부여한 '천부 인권'임을 주장하며 백성이 조선의 근본이자 주인임을 강조했다.[68] 1898년부터는 의회 개설 운동을 펼치며 국민주권과 민주정치를 점진적으로 실현해야 함을 역설했는데, 이해 7월 독립협회의 윤치호는 상소문을 올려 중추원을 의회로 개편할 것을 건의하였고, 11월 2일에는 중추원 관제를 새로 반포하여 관선의원과 민선의원의 선출, 의장과 부의장의 국왕 임명권을 공식화했다. 그러나 이러한 의회 설치 운동은 보수파의 모함으로 좌절되었고 11월 29일 수정된 중추원 관제안이 반포되어 입법부의 기능이라기보다는 국왕 자문기구의 역할로서 출범하게 되었다.

한편 민주정치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냈던 고종황제와는 달리 민간에서는 입헌주의와 민주주의 개념이 조금씩 퍼지기 시작하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만민공동회. 만민공동회는 1898년 2월 독립협회의 주도로 시작된 관민합동 연설회로 개설 초기부터 1만 명의 대중이 운집하여 그 세를 과시하였다. 그중 최대 규모로 열린 것은 1898년 10월 29일 열린 집회로, 한성부 주민과 독립협회, 국민협회, 협성회, 내각 각부 요인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이 집회에서는 1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렸고, 헌의 6조를 채택할 것을 결의하였다. 그러나 황국협회 계열의 수구파 대신들이 공화제 음모론과 박정양 대통령설을 퍼트림에 따라 고종황제는 독립협회 주요 인물들을 체포함과 동시에 협회를 강제로 해산하려 했고, 이에 수천~수만 명의 사람들이 광화문으로 나와 횃불을 들고 42일간 철야 시위를 했다. 이에 고종황제가 11월 10일 체포한 독립협회 인사들을 풀어줌과 동시에 명목상으로나마 헌의 6조를 수용할 뜻을 밝혔다. 비록 독립협회는 황국협회와 함께 1899년 해산되지만 만민공동회는 근대 역사 최초로 민중이 지도자의 뜻을 바꾸게 한 민주주의적 사건이라는 의의를 남겼다.

1900년대 이후에는 여러 지식인층 인사들이 민주주의 정체에 대한 책과 칼럼을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또는 학회 회보 등에 기고하였는데, 이중 가장 눈에 띄는 글은 보성전문학교 강사였던 선우순의 <국가론의 개요>이다. 이 글에서 선우순은 국체는 주권의 소재를 기준으로 하며 정체는 주권행사의 형식을 기준으로 구분한다고 소개한 다음, 몽테스키외아리스토텔레스의 3정체설을 인용하여 공화제에도 귀족공화제민주공화제가 있음을 서술하였다. 사학계에서는 이것을 민주공화제라는 용어가 최초로 한국에 소개된 시점으로 간주하고 있다.

7.4.2. 광복 이전 (일제강점기)

1910년 경술국치 이전까지의 민주주의 제도 도입 및 계몽은 대체로 입헌군주제에 맞춰졌으나, 그 이후로는 국내외 독립운동가들을 중심으로 민주공화국 수립 의견이 주류로 올라오게 된다. 1911년에는 무형국가론이 처음 제기되어 독립을 위해서는 무형의 국가를 먼저 수립하고 이후 독립전쟁을 거쳐 유형의 국가로 전환해야 함을 역설했고, 대한민국민회가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여 미주 지역과 연해주 지역 한인들의 중추 기관이 되었다.

국민주권과 민주공화국 건설의 의지가 더욱 명확해진 것은 대동단결선언문이 작성된 1917년부터이다. 이 문서는 주권상속의 대의를 천명하여 국가의 본질적 주권이 백성에게 있으며, 이 주권에 따라 백성의 국가를 건립해야 함을 주장하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경술년 융희 황제의 삼보[69] 포기는 곧 우리 국민 동지에 대한 묵시적 선위이니 (...) 황제권 소멸의 때가 곧 민권 발생의 때이며 구한국 최후의 날이 곧 신한국 최초의 날이다.
대동단결선언문 中
민주공화제 이념이 국체로써 명확해진 것은 고종이 2월달에 승하하고, 1919년 3월 1일 3.1 운동이 발발하면서부터이다. 3.1운동이 한창이던 1919년 3월 3일 발행된 <조선독립신문>에서는 임시국민대회의 개회와 임시대통령 선출 및 임시정부 수립 계획을 타진했으며, 민중들 사이에서도 대한 독립 만세라는 구호 이외에도 공화국 만세라는 구호가 함께 불리었다. 이때 3.1운동을 주도한 손병희의 공판 기록 중에는 3.1운동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독립운동을 통해 수립할 국가의 방향으로 민주공화국이 언급되어 있다. 이는 3.1운동의 본 목표가 독립운동을 넘어선 민주공화국 수립 운동이었음을 나타낸다.[70]

3.1 운동을 계기로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반포하여 국체를 민주공화제로 정하였으며, 2일 뒤인 4월 13일 정부의 성립을 대내외에 공식 선포하였고, 이를 통해 민주공화국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졌다.[71]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19년 건립되어 1948년 정식 정부로 승계되기 전까지 5차례의 개헌을 통해 민주 헌정 체제를 유지하였으며, 이는 1948년 제헌 헌법으로 이어져 대한민국 헌법 체계의 원형 헌법이 되었다.[72]

1941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대한민국 건국강령>을 반포하여 기미년 독립선언에서 시작된 민주공화국 건설의 청사진을 제시하였다. 건국강령의 주요 내용은 3.1운동을 바탕으로 수립된 국민공동체인 대한민국을 바탕으로 환국, 정부를 수립하여 보통선거제도로써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실시하고, 주요 산업의 국유화와 토지공개념 수용, 중소중견기업의 사영화로써 경제적 민주주의를 이루고, 국비로써 국민교육을 보장하여 수학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것이다. 이 건국강령의 본 내용은 1948년 제헌 헌법에 상당 부분 반영되어 대한민국의 정신이 균등, 균평, 공공에 기반한 민주공화주의에 기반하고 있음을 천명하였다.[73]

한편 좌익 계통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도 민주공화국 수립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1926년 상해에서 창간된 조선공산당 기관지 <불꽃>의 "조선공산당선언"에서는 광복 후 건설할 국가를 "일체 평등한 국민들의 직접, 비밀, 보통, 평등 선거로 구성된 입법부에 통치권을 위임한 민주공화국"으로 규정하였다.[74] 김두봉을 주석으로 옹립한 화북 지대의 조선독립동맹에서도 선언과 강령을 통해 독립동맹을 지방 단체로서,[75] 건설할 국가를 민주공화국으로 규정하였다.

7.4.3. 광복 이후

8.15 광복 이후 국내에서는 여운형을 주축으로 하는 건국준비위원회가 창설되었다. 건국준비위원회는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전국화되었으며, 일본인이 떠난 지역의 치안과 식량 배급, 귀환 동포들의 환영 등을 담당하여 사실상의 지역 정부 역할을 하였다. 건준은 8월 25일 당 강령을 반포하여 당면한 최우선 과제를 "강력한 민주주의 정권의 수립"으로 규정하고 좌우파의 연립과 반민족주의 세력, 반민주주의 세력의 배제와 대단결을 촉구하였다.

신탁통치 오보사건 이후로는 각 정파에서 독립된 신민주국의 헌법 초안을 작성하기 시작했는데, 임정 계열의 행정연구회와 비상국민회의에서는 <대한민국 헌법>이라는 이름으로, 민주주의민족전선 계열에서는 <조선민주공화국 임시약법>이라는 이름으로 헌법 초안이 마련되었다. 1946년부터는 좌우합작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했고, <좌우합작 7원칙>을 제시하여 좌우합작의 민주주의 정부 수립과 정치적 자유의 보장, 주요 산업의 국유화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좌우대립이 심화됨에 따라 단일된 민주공화국 헌법 초안 작성에는 실패하게 된다.

1948년 5월 10일 5.10 총선거가 실시되어 제헌 국회가 구성되었고, 헌법기초위원회를 설치하였다. 제헌 헌법은 유진오의 주도로 대한민국 건국강령과 1944년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주로 하여 만들어졌으며, 국호를 3.1운동으로 탄생한 대한민국으로, 건국의 정통성과 이념을 3.1정신으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기회의 균등과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국가의 목표로 정하였다. 헌법학계에서는 이를 두고 1948년의 제헌헌법은 1898년 만민공동회를 거쳐 1919년 3.1운동과 임시정부를 통해 시작된 민주공화국 헌법 혁명의 산물로 표현하고 있다.[76]

물론 그 뒤로 이승만의 민간 독재와 박정희, 전두환 등의 군사독재로 인해 민주주의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은 시기도 많았으나, 그들도 명목상 민주주의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독재정권에서도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는 봇물처럼 터져나왔고, 결국 제6공화국 수립과 문민정부 수립, 국민의 정부로의 정권교체를 통해 민주주의가 자리잡았다.

2010년대 이후 경제 위기로 인하여 주요한 민주국가들의 민주주의 지수가 조금씩 떨어지면서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하락세인 와중에, 대한민국은 아시아는 물론 세계를 통틀어도 민주주의가 탄탄하게 자리잡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근혜 탄핵, 윤석열 탄핵 등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 남을 이정표가 세워졌기 때문이다.

7.4.4. 문제점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독립 운동 단계부터 민주주의가 자리잡았다고 과장스러운 주장을 하는 경우도 가끔 나타나기도 하는데, 애초에 국민들조차 독립 이후의 이념에 대한 생각은 일치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각각의 이념 선전에 사상이 바뀐 사람이 수두룩했고, 독립 운동 단체들도 사적으로는 왕정복고-민주주의-파시즘-공산주의로 이념이 갈리면서 편가르고 견제하고 암살하고 있던 상태였다. 독립 이후의 정부도 대체불가의 엘리트들과 오랜 기간의 군주정과 유교 정서 덕분에 유사 독재가 가능했을 정도이다.

이런 문제들이 상당히 깔려있어서 정치인과 국민을 막론하고 자기와 다른 성향을 인정하지 않고 배척하는 분위기가 있다. 이렇기에 표현의 자유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는 한국 사회가 각기 반대 성향들의 표현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점이 최대의 비판점으로 꼽힌다. 또한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서열갑을관계, 국가 단위로 행해지는 문화 검열도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이는 지난 독재 정권들의 유산들을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것이 크고, 점차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점들이다.

8. 민주주의의 분파

똑같이 민주주의를 내걸고 있다고 해도,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8.1. 고전

고대르네상스공화주의 이론가들 사이의 공통된 견해는 민주주의가 작은 정치 집단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점점 커지는 로마 공화정제정으로 변하는 과정을 교훈으로 이해하고, 이들 공화주의 이론가들은 영토와 인구의 팽창이 필연적으로 폭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아주 연약하고 역사적으로 드물었는데, 결국 민주주의가 작은 정치 단위에서만 살아남을 수 있었고, 이는 민주주의 단위가 더 큰 정치 단위의 정복에 취약함 때문이었다. 몽테스키외는 작은 나라는 외부 세력에 의해 멸망하고, 크면 내부의 악에 지배되기 때문에 작은 나라로 간주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루소는 공화국으로 통치되는 것은 약소국가의 자연 재산이고, 군주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은 중간국의 재산이며, 전제 군주가 통치하는 큰 제국이라고 주장했다.

8.2. 현대

  • 집합적 민주주의
    집합적 민주주의 이론은 민주주의 과정의 목표가 시민들의 선호도를 이끌어 내어 그들을 모아서 사회에 적용될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견해의 지지자들은 민주적 참여가 투표에 집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종류의 연합 민주주의가 존재한다. 미니멀리즘 하에서,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정기 선거에서 정치 지도자 팀에게 통치할 수 있는 권리를 준 정부 시스템이다. 이 미니멀 리스트 개념에 따르면, 대부분의 이슈에 있어서, 시민들은 명확한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거나, 그들의 견해가 근거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지배"할 수도 없고 또한 하지 않는다.

    반면에, 직접 민주주의 이론에 따르면, 시민들은 그들의 대표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입법 제안에 대해서 직접 투표해야 한다. 직접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견해를 지지하는 다양한 이유를 제시한다. 정치 활동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을 수 있고, 사회적으로 시민들을 교육시키며, 대중의 참여가 엘리트들을 점검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들이 직접 법과 정책을 결정하지 않는 한, 진정으로 통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는 중간 투표자의 견해와 근접한 법과 정책을 만드는 경향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표를 얻기 위해 경쟁하고 있는 이기적이고 다소 납득할 수 없는 정치적 엘리트들의 행동을 보여 주는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바람직한 결과가 아니다. 안토니 다운스는 이념적 정당들이 개인과 정부 사이에서 중재적인 브로커 역할을 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1957년 저서 민주주의의 경제 이론에서 이 견해를 제시했다.

    로버트 달은 근본적인 민주적 원칙은 정치권의 모든 사람들이 집단적인 결정에 의해 동등하게 만족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당독재란 용어를 그런 민주주의를 이끄는 것으로 인식되는 일정한 제도와 절차가 존재하는 사회를 지칭하기 위해 사용했다. 이러한 제도에서 첫 번째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롭고 개방적인 선거의 정기적인 발생으로서, 이는 사회의 공공 정책의 대부분을 관리하는 대표자들을 선택하는 데 사용된다.
  • 숙의 민주주의(심의 민주주의)
    숙의 민주주의는 민주주의가 심의에 의해 통치되는 정부라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민주화는, 집합적 민주주의와 달리, 민주적인 결정이 합법적이기 위해서는, 투표에서 일어나는 선호들뿐만 아니라, 정확한 숙고가 선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당한 심사는 경제적 부나 이익 단체의 지원을 통해 얻은 의사 결정권자와 같이 불평등한 정치적 힘의 왜곡이 없는 의사 결정자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심사이다. 의사 결정자들이 진정으로 제안을 심의한 후에 합의에 도달할 수 없다면, 다수결의 원칙의 형태로 그 제안에 투표하는 것이다.
  • 급진 민주주의
    급진 민주주의는 사회에 위계적이고 억압적인 권력 관계가 존재한다는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있다. 민주주의의 역할은 의사 결정 과정에서 차이, 이견, 적대감을 허용함으로써 이러한 관계를 가시화하고 도전하는 것이다.
  • 의회민주주의(Parliamentary democracy)
    민주주의의 한 가지 실현이론. 직접민주주의와 대비하여, 간접민주주의의 대표적인 구현 형태이다. 의회민주주의에서는 의회의 존재와 의회를 통한 사회 합의, 의회의 권한을 중시한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국가에서 특히 중시된다. 자유민주주의를 넓은 의미에서는 간접민주주의, 그 가운데 대표적인 의회민주주의로 이해할 수 있다.
  • 심의민주주의
    의사결정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 질을 높이기 위해 자유롭고 평등하고 합리적인 시민들이 참여하는 공공토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하나의 시각이다. 근원적, 좁은 의미로는 대의제의 틀에서 공간적으로 의회의 심의를 전제하며, 현대적 대안민주주의로서는 의회를 넘어선 공간으로 확장된 심의를 논의한다.
  • 비자유민주주의
    선거권위주의, 준민주주의라고도 불린다. 선거와 권위주의가 결합된 혼합민주주의의 형태다. 통치자가 일단 선출되면 거의 마음대로 통치하며, 개인의 권리에 대한 존중이 덜한 대의민주주의의 형태 중 하나. 비민주주의는 아예 민주주의가 아닌 반면, 비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의 형태를 갖추긴 하였으나 자유가 제한된 형태라는 점에서 구분이 가능하다. 대한민국의 군부독재가 심화되기 전, 그러니까 10월 유신 이전의 박정희 정부 비자유민주주의 형태를 띠었다. 신생 민주주의 국가에서 나타난다.
  • 혼합 체제 / 반민주주의(半民主主義, Semi-democracy)
    민주주의와 권위주의가 혼합된 체제로 비자유민주주의와는 조금 다르며 反民主主義가 아님을 유의. 생활, 문화, 경제 등의 민생 부분에서는 민주적이나 정치 부분에서는 권위주의의 형태가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싱가포르를 예로 들 수 있으며 보통 독재정에서 민주정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보이는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이 민주화된 직후인 노태우 정부도 이전 군사독재의 잔재와 입김으로 인해 반민주주의 형태를 띄이기도 하였다.
  • 추첨민주주의
    추첨 민주주의는 역사적 사례도 가지고 있다. 추첨을 통해 보울레라는 대의체를 운영한 고대 아테네를 비롯해 고대 로마, 베네치아, 피렌체, 스위스, 바스크족 공동체 등에서 역사상 다양한 형태의 추첨 민주주의가 운용됐으며, 시민 배심이나 공론 조사 등 영미권의 배심제에서도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무작위 추출이라는 과학적인 통계 기법을 활용해 전체 국민의 축소판인 의회를 구성하자는 것이다. 변호사, 기업인, 전직 관료가 아니라 옆집 아줌마, 채식주의자, 유기농 농부, 반려 동물 주인, 성적 소수자, 비정규직, 결혼 이주자, 실업자 등이 2.5%의 확률 오차 안에서 시민을 대표하는 의원이 돼 진정한 대의제를 실현하자는 제안이다.
  • 다수제 민주주의와 합의제 민주주의
    아렌 레이파르트의 분류. 전자는 영미식 민주주의로, 후자는 유럽대륙식 민주주의로 대표된다. 기본적으로 Democracy의 Demos를 '다수'의 지배로 이해하는 다수정 원리의 바탕에서 현실적인 가치지향을 가미하여 구체화된다. 정치레짐으로서 민주주의를 파악하는 관점이며, 각각 경제레짐으로서의 LME(자유시장경제), CME(조정시장경제)와 긴밀한 연결성을 전제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 무정당 민주주의
    정당이 없는 민주주의 체제로 인구가 적은 국가에서 주로 나타난다.
  • 사회민주주의
    경제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되, 그 안에서 적극적인 사회주의 정책으로 경제적 불평등 해소를 추구하고, 정치는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이념이다. 다만, 혁명적 사회주의와는 다르게 폭력혁명을 절대적으로 거부하고 정당을 결성하고 의회에 진출하여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사회주의의 이념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9. 관련 발언

대체로 민주주의에 대해 그 자체를 찬양하기보다는 다소 냉소적으로 평가하면서도, '그래도 다른 것보다는 낫다'는 식으로 표현한 발언이 많다. 민주주의가 '가장 이상적인 체제'가 아닌 '가장 덜 나쁜' 체제임을 잘 드러내고 있는 것.
민주주의는 절대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며, 어느 역사를 보나 민주화를 위해서는 희생과 땀이 필요하다.
김대중, 저서 '옥중서신'(1984년) 중에서
132 이미 언급한 것처럼 사람들이 처음으로 결합하여 사회를 형성할 경우, 자연스럽게 공동사회의 모든 권력을 장악한 다수파는 그 권력을 이용하여 수시로 공동사회를 위해 법을 만들거나 그들이 임명한 관리를 통해 그 법을 집행시킬 수 있다. 그러한 경우 정부 형태는 완전한 민주제이다.
〈통치론〉, 저자 : 존 로크, 1690
한마디로 말해, 민주주의는 동료 시민에 대한 사랑, 바로 그것에 관한 것이다. …민주주의란 스스로가 옳다고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 체제다.
엘머 에릭 샤츠슈나이더
내가 민주주의를 확고하게 믿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내가 인생 초기에 보통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고 이들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충분히 잘 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나는 항상 힘을 얻는다.
로버트 달
모든 국가는 그에 마땅한 정부를 갖는다.

佛: Toute nation a le gouvernement qu'elle mérite. 英: Every nation gets the government it deserves.[77][78]
조제프 드 메스트르
민주주의의 나무는 국민들의 피를 먹고 자란다.[79] - 자유의 나무는 매순간 애국자와 압제자의 피로 새로워진다.

The tree of liberty must be refreshed from time to time with the blood of patriots and tyrants.
<사상계> (1960년 5월호)
민주주의는 좋다. 다른 제도가 더 나쁘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자와할랄 네루
민주주의에 대한 나의 개념은, 그 체제하에서는 가장 약한 자가 가장 강한 자와 똑같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마하트마 간디
이봐, 이상한 여자가 연못에 누워 칼을 줬다 해서 권력체제가 성립되는 건 아냐. 국가 통수권은 노동 대중으로부터 위임받는 거지 택도 아닌 호수의 의식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고.
농노 데니스, 몬티 파이튼의 성배
민주주의는 바다와 같아서 다양한 생각을 포용해가는 것을 본질로 한다.
김이수
민주주의는 결코 최종적 성취는 아니다. 그것은 지칠 줄 모르는 노력, 계속적인 희생, 그리고 의지에의 소명이요, 필요하면 그것의 방어를 위해 죽으라는 명령이다.

Democracy is never a final achievement. It is a call to untiring effort, to continual sacrifice and to the willingness, if necessary, to die in its defense.
존 F. 케네디
절망에 빠졌을 때, 나는 기억한다. 모든 역사를 통틀어, 언제나 진리와 사랑이 승리했다는 것을. 독재자도 살인자도 있었고, 그들에게 당장 대항할 수 없어 보여도 결국엔 무너진다는 것을. 이것을 생각하라, 언제나.

When I despair, I remember. that all through history the way of truth and love has always won. There have been tyrants and murderers and for a time, they can seem invincible but in the end, they always fall. Think of it. Always.
마하트마 간디
미국의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위해서라면 바다를 건너 싸울 것이지만, 투표를 하기 위해 거리를 건너지는 않을 것이다.

A citizen of America will cross the ocean to fight for democracy, but won't cross the street to vote in a national election.
윌리엄 E. 본
나는 민주주의를 신봉한다. 그것은 모든 인간의 힘을 풀어 주기 때문이다.
우드로 윌슨
민주주의는 교과서에 씌어 있지 않다.
조모 케냐타
민주주의란 자유인이 통치자가 되는 통치 형태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민주주의의 의식과 향연과 그 위대한 기능은 선거이다.
허버트 조지 웰스
나는 노예가 되고 싶지 않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주인도 되고 싶지 않다. 이것이 나의 민주주의 이론이다.
에이브러햄 링컨
민주주의는 인간의 존엄성에 기초를 둔, 즉 부자나 교육을 받은 사람이나 백인 등 몇몇 사람의 존엄성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존엄성에 기초를 둔 유일한 정부의 형태이다.
R.M.히친즈(미국의 교육자)

9.1. 비판적 의견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다수결에 대한 비판도 포함되어 있다.
추첨은 민주주의적이며 선거는 과두정치적이다. 재산자격에 기초하지 않은 것이 민주적인 것이고 이에 대한 제한이 있는 것은 과두정치적인 것이다.[80]
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중-
그들이 자유로운 것은 오직 의회의 의원을 선거하는 기간뿐이다. 선거가 끝나는 순간부터 그들은 다시 노예가 되어버리고, 아무런 가치가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장 자크 루소
단언컨대 민주주의에서는 다수의 시민이 소수를 상대로 가장 잔혹한 억압을 행사할 수 있다.
에드먼드 버크
민주주의란, 2마리의 늑대와 1마리의 양이 저녁 식사로 무엇을 먹을지 투표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투표를 통해 자신에게 돈이 생기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순간 공화국은 종식을 고하게 될 것이다.
벤저민 프랭클린[81]
51%의 사람들이 49%의 권리를 빼앗는 폭도들의 지배에 지나지 않는다.
토머스 제퍼슨
민주주의 사회의 선거란 무능한 다수가 부패한 소수를 당선시키는 것이다.
조지 버나드 쇼
민주주의란 쥐들이 흰 고양이와 검은 고양이 중 누가 자신들을 이끄면 좋은지 투표하는 것.
토미 더글러스[82]
민주주의, 진보, 자유, 평등 등은 현대의 신에 불과하다.[83]
에드워드 콘체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자신의 압제자가 될 수 있는 권리를 준다.
퍼시벌 로웰
민주주의는 개인들의 무지함을 모아놓은 것에 대한 어리석은 믿음이다.
H. L. 멘켄
민주주의와 독재주의의 차이는 민주주의에서는 표를 던지고 명령을 받지만 독재에서는 표를 던지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명령을 받는다는 것이다.[84]
찰스 부코스키
국민을 위해 만들어진 정부가 윗사람들과 기업 그리고 이익집단의 손에 떨어졌다. 민주주의라는 체제 위에 보이지 않는 제국이 세워졌다.
우드로 윌슨
민주주의는 다수결인데, 사람들로 하여금 책임의 소재를 흐리게 하며, 또한 바보 100명에게서 천재 1명이 나올리는 없다. 따라서 민주주의를 폐지시켜야만 한다.
아돌프 히틀러, 나의 투쟁.[85]
문제는 민주주의는 자유가 아니라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진짜 자유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단순한 다수주의다. 우리 건국의 아버지들은 이 사실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86]
론 폴
는 만일 우리의 양심과 이성이 그것을 비난한다면, 그런 법과 제도의 존재를 인정하고자 하는 어떠한 유혹에도 빠져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수파가 아무리 많다 한들, 그들이 우리의 원칙과 의견에 반대하는 것에 신경 쓰지 말라고 충고했다. 다수파는 때로는 조직된 폭도에 불과했다.
어거스트 본디 #
다수파가 소수를 지배할 권리가 있다는 원칙은 사실상 모든 정치를 누가 주인이 되고 누가 노예가 되는가를 결정하기 위한 단순한 경쟁으로 만들었다. 그 경쟁(아무리 유혈이 낭자하더라도)은 인간이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는 한,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라이샌더 스푸너 #
민주주의의 병폐 중의 하나는 당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당신이 선출한 그 사람을 참고 견뎌야 한다는 것이다.
W.포저스(미국의 저술가)
방 안에 다섯 사람이 있는데, 세 사람이 나머지 두 사람에게 자신들의 생각을 강요할 권리를 갖는가? 단지 수적으로 한 명 많다는 이유로 갑자기 나머지 두 사람의 몸과 마음을 소유할 수 있는가? 비열하고 추악한 미신이다.
오버론 허버트(Auberon Herbert, 19세기 영국 정치인이자 극작가)[87]
사람들이 몽둥이로 얻어맞고 있을 때, 그 몽둥이가 "민중의 몽둥이"로 불린다고 해서 더 행복해하진 않을 것이다.
미하일 바쿠닌

10. 기념일

11. 기타

일베저장소, 디시인사이드의 특정 몇몇 갤러리에서는 자신이 맘에 안 드는 상대에게 '민주화당한다', '민주화해버린다' 등의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자세한 건 민주화 문서 참고.

라디오에서 최양락 등이 진행하던 '삼김퀴즈'에서 나온 유일한 정답.

루리웹의 한 유저가 허스키 익스프레스라는 게임에서 민주주의를 이용해 개그를 하기도 했다. # 인권이 지쳤습니다 ㅠㅠ

☞읽을거리: 민주주의가 경제 성장을 가져옵니다 (Democracy does cause growth)

강력한 미국제 무기들을 '민주주의 배달기' 라고 부르기도 한다. 자세한 내용은 민주주의/밈 문서 참고.

국가 정체성 문제와 관련, 민주주의 1인 1표제의 한계점으로 유럽의 유라비아, 이스라엘의 하레디 문제가 예시로 거론된다. 민주주의 특성상 다수결제노포비아를 인정할 수도 없는데 높은 출산율을 바탕으로 세가 불어나 머리수로 밀어붙이니 이래저래 골치 아픈 상황. 반면 이런 논의를 다수의 횡포로 비판하는 의견도 존재한다.

2020년에 한국에서 첵스 파맛이 출시되자, 로이터 통신은 민주주의의 맛(A taste of democracy)라는 제목으로, 파맛 첵스를 논평했다. article

11.1. 매체에서

  • 게임 시드 마이어의 문명 시리즈에서는 명칭은 조금씩 바뀌어도 개근 중이다. 공통 사항은 아니지만 대체로 전쟁과 공격적 외교에 제약이 걸리는 대신 교역 등지에서 막강한 보너스를 가진다.
  • 여러 매체에서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내세우지만 정작 권위주의에 가까운 세력이 많다. 현실에서는 이런 민주주의를 교도민주주의라고 한다. 문서 참조.
  • 양산형 타임슬립, 대체역사, 전생물, 환생물, 이세계물 등지에서는 주인공이 이악물고 민주주의를 전파하는 장면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으며, 주인공의 능력이 평범하면 이념만 전파하고, 압도적인 능력이면 아예 국가전복을 노리는 클리셰가 많다. 단적인 예를 들면 군주제 국가임에도 주인공이 단지 민주주의 국가 출신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군주제 정권을 공화제로 갈아엎는다.
    하지만 정작 민주주의라는 걸 정확하게 이해한 작품은 드문 편이고, 단순히 주인공 출신이 민주국가라는 이유가 100%이다. 옛날까지 안 가도 현대에서도 어설프게 민주주의를 내세우려다가 망한 나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면 과연 현대인 천재론에 입각한 이고깽다운 어이없는 설정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이런 클리셰는 다른 이념 국가의 창작자들에게도 해당되는데, 대표적인 게 구소련 시절 창작자들.
    근래에는 이렇게 주인공이 민주주의를 무리하게 전파하려 드는 이고깽 작품들의 양산에 대한 반성의 의미에서 굳이 군주제 정권을 공화제로 엎어버리지 않고 다른 선택을 취하는 작품들도 생겨나고 있지만, 반대로 이러한 작품들은 민주주의를 부정적으로 묘사한다는 논란을 겪는 경우도 있다. 군주제와 공화제를 비교하면서 군주제 특히 전제군주제의 우위성을 역설하는 작품의 경우 그러한 논란의 대상이 되기 쉽다. 완전한 판타지 세계관에서는 소위 '고블린과 드래곤의 1표가 같을 수 없다'라는 이유로 민주주의가 불가능함을 설명하기도 한다.[88]
  • 대체역사 소설 왕의 귀환에서 550년 만에 살아난 로마 제국 최후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가 그리스 민병대에게 자신들은 제정이 아닌 민중의 지배(=민주주의)다라는 말을 듣자 이를 민중을 다스리는 이가 없는 무법지대 상태로 이해하는 대목이 있다.[89][90]
  • 게임 Hearts of Iron IV에서 이념으로 등장한다. 일반적으로 세력 가입, 선전포고, 괴뢰국 생성 등 게임의 핵심 요소를 이용하는데 불편하고 이 때문에 제일 노잼 이념으로 꼽힌다.[91] 독립보장이 자유로운 것과 선거를 통한 평화적 이념 교체, 영미가 동맹이라는 게 유일한 장점이라 할 수 있으며 특히 미국이 죽거나 타 이념으로 갈아타는 경우 그 판에서 민주 세력은 독일이 민주 루트를 가지 않는 이상 개망한 거나 다름 없다.

11.2. 국명에 '민주'가 들어가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다?

국가 제1세계 제2세계
독일 서독
독일연방공화국
동독
독일 민주 공화국
한국 남한
대한민국[92]
북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베트남 남베트남
베트남 공화국
북베트남
베트남 민주 공화국
예멘 북예멘
예멘 아랍 공화국[93]
남예멘
예멘 인민 민주 공화국
나라 이름에 '민주'가 들어가는 국가는 오히려 민주주의와 거리가 있는 경향이 있다.[94] 사실 공산주의 진영도 민주주의를 자처한다. 특히 공산진영은 냉전 시기 스스로를 민주진영이라 칭하고 서방 진영을 제국주의 진영이라 칭했다. 위의 예에서는 분단 국가를 비교하였지만 굳이 분단 국가에 한정하지 않더라도 국호에 '민주'를 넣은 나라 치고 제대로 민주주의를 하는 국가는 거의 없으며,[95] 오히려 공산주의 진영에서 더 자주 '민주주의'를 자처한 편이다. 반대로 안정된 민주주의 국가 혹은 선진국 중에 공식 국호에 '민주'가 들어간 나라는 없다.[96][97]

12. 관련 문서

자발적 복종 - 라 보에티
지도로 보는 세계통계 - 언론지수-정치지수-부패지수
[1] 수없이 치켜올린 손들은 '거수(擧手)'이다. 이는 정치에 참여한다는 국민의 의지를 의미하며 동시에 투표집회에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밝힐 수 있는 자유를 의미한다. 여러 개의 손들은 다수 시민의 의지를 의미하며, 저마다 다른 손의 크기와 길이는 나이성별 또는 신분에 구애받지 않는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평등을 의미한다. 무작위로 채색된 붉은색과 푸른색, 왼손과 오른손은 서로 다른 이념과 이해관계 그리고 이해를 상징하며 보편적으로 각각 좌파우파를 의미한다. 또한 두 색이 뒤섞여 보이는 것은 좌우가 공존하며 사회적 갈등을 인정하면서도 서로를 이해하는 민주주의의 특징을 의미한다.[2] 'the people'이 인민으로 번역된 이유에 대해서는 게티즈버그 연설 문서 참조.[원문] It is rather for us to be here dedicated to the great task remaining before us - that from these honored dead we take increased devotion to that cause for which they gave the last full measure of devotion - that we here highly resolve that these dead shall not have died in vain - that this nation, under God, shall have a new birth of freedom - and that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shall not perish from the earth.[4]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가 아니라 후안 린츠가 정의한 정치학 용어로서의 authoritarianism을 뜻한다. 제한된 정치적 경쟁이 이루어지나 정권 교체는 불가능한 국가가 이에 속한다. 민주주의도 민주주의 전통이라는 일종의 권위를 통해 이루어지므로 약간 모호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겠으나 권위권위주의는 다른 것이다.[5] 마찬가지로 정치학 용어로서의 totalitarianism. 정치적 경쟁의 통로가 완전히 막혀 있는 체제를 가리킨다. 나치 독일을 비롯한 파시스트 국가가 대표적.[6] 민주주의 국가에선 시민들이 곧 나라의 주인이지만 군국주의 국가에서 시민들은 국가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7] 만약 사상으로서의 순수한 민주주의가 아니라, 현대 서구국가에 퍼져있는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서의 민주주의를 뜻한다면, 독재도 민주주의의 반대말이다. 다만 하나의 사상으로서, 독재의 반대말은 공화주의에 가깝다.[8] 공산주의(Communism), 사회주의(Socialism), 권위주의(Authoritarianism), 파시즘(Fascism) 등의 정치-경제적 사상들은 각 정부 형태와 결합되어 사용된다.[9] 게이머라면 귀에 익은 단어일 텐데, 갓 오브 워 시리즈의 주인공 크레토스의 이름과 정확히 일치한다.[10] 이 구분에 대해서는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최정욱 교수의 논문인 『'Democracy'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다수정이다: 공화주의와의 차이를 논하며』를 참조.[11] 철인정치로 유명한 플라톤뿐만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조차 다수 대중이 다수의 힘으로 지배를 가한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았다.[12] 로마시대에는 옵티마테스와 포풀라레스라고 불렀고 미국건국 시기에는 연방파와 반연방파로 불렀다.[13] 대중의 인기는 그 이유가 비합리적일 수 있다. 카이사르처럼 군공이 이유일 수 있고 그냥 잘생겨서일 수도 있으며 히틀러처럼 대중의 피해망상을 선동해서일 수도 있다.[14] 물론 민주주의를 받아들이고 적용하는 방식은 국가마다 차이가 있다. 대충 예를 들면 가치중립적인 제도로서인지 아니면 가치지향적 이상으로서인지 등. 이 역시 고정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변화하는 것이다.[15] '모든 영역에서의 평등' 이 아니라 '정치적 평등' 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 현대의 마르크스주의/공산주의 이론가들은 현실의 대의제 민주주의가 형식적인 정치적 평등만을 보장함으로써 결국 경제적 권력을 지닌 자들의 영향력을 과대대표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오늘날의 대의제 민주주의에서는 이러한 비판을 받아들여 정치적 평등의 보장을 위해서는 다른 영역의 평등이 일정한 선에서 추구되어야 함을 강조한다.[16] '혁명권'이라고도 부른다.[17] 민주주의가 제대로 돌아가는 나라들 대다수가 절대 빈곤이 해결된 나라들이다. 한국도 60년대에 선거판에 막걸리와 고무신이 판쳤다. 이런데 혹할 정도로 가난한 사람들이 제대로 투표권을 행사할 리 만무하다. 한편 반대로, 국가의 부가 충분하다고 민주주의가 굴러간다고는 물론 보장할 수 없다. 자원의 저주에 걸린 몇몇 산유국을 보면, 1.국가는 떼부자이지만 국민은 가난하고 자원분배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거의 대부분의 산유국), 2. 국가가 국민들의 복리증진을 책임지지만, 정부 비판을 제한하고 정치 참여에 제한이 있는 경우(브루나이 등)이 있다. 즉, 경제적 기반이 국민들에게 있어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성립된다는 뜻이다.[18] <토머스 제퍼슨: 독립 선언문>, 차태서 옮김, 프레시안북 펴냄, 2010년, 80쪽[19] 사회 각층이 자기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서 토론하고, 투표하고, 이합집산하기를 도리어 권장하는 게 민주주의 체제의 특징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이타심과 공공심으로 타인을 위해 나서는 사람도 있긴 하나, 일단 그런 사람은 극히 소수인 데다 최소한 명예욕이라는 감정적인 분야에서 이익을 얻는다는 점에서 보면 결국 그러한 사람도 일정 부분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이다.[20] 역사 속에서 권력을 유지하는 건 잘 하지만 다른 부분에서 무능한 지도자가 얼마나 나왔는지 보자.[21] 양재혁. "3판 옮긴이의 말." Friedrich Engels. Ludwig Feuerbach und der Ausgang der klassischen deutschen Philosophie, 번역 양재혁, 돌베개, 2015, pp. 6-7.[22] 물론 많은 독재국가에서 반강제적으로 1인에게 몰아주도록 여러 탄압과 제도가 시행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례도 많고 이를 엄밀히 나누기란 불가능하다. 실제로 2000년대 초 러시아 등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독재를 인정해 준 사례 역시 적지 않다. 히틀러 역시 당시 독일 국민들의 적법한 지지로 총통이 되었다. 그러나 히틀러가 총통이 되는 데 있어 일반 민중이 아닌 힌덴부르크 등 수많은 반민주주의적 엘리트들의 입김도 부정할 수 없다. 북한 등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독재국가들의 경우 여기 항목 참조[23] 양자의 관계에 대해서는 수많은 이론들이 있기 때문에 관심 있는 사상가들을 찾아보자.[24] 좌파 정치이론가 중에서 슈미트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인물로 샹탈 무페와 에르네스토 라클라우가 있다.[25] 버나드 마넹 "선거는 민주적인가" (원서: 버나드 마넹. 『선거는 민주적인가』. 곽준혁 옮김, 후마니타스(주), 2004.)[26] 고성호. (2016). "국민을 위한 선거는 없다 – 다비트 판 레이브라우크". NAND KAIST 블로그.(보존) (원서: 다비트 판 레이브라우크. 『국민을 위한 선거는 없다』. 앙영란 옮김, 갈라파고스, 2016.)[27] 보통 아무리 작은 선거만 봐도 부, 지위, 재능, 명성에 의해 주어진 사회적 우월성을 누리는 사람이 대부분 선출되는 형편이다.[28] 최초로 민주정을 택했다는 아테네는 배심원, 500인 평의회 의원 등의 공직자를 선거가 아닌 추첨을 통해 선출했다. 오직 추첨제만이 소수 엘리트의 권력 독점을 방지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는 여러 사회 문제를 추첨을 통해 선출된 비전문가에게 맡기는 위험성을 감수하기 힘들기 때문에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테네의 민주 정도 그냥 추첨으로 뽑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후 여러 검증을 거쳐서 공직에 임명했고, 시민들도 추첨으로 공직에 뽑힐 것에 대비해 많은 공부를 해야 했다.[29] 단순히 '현실적으로' 과두정 비슷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30] 민주주의는 한 명이 날아다니는 체제가 아님을 생각해 보면 주인공 한 명의 활약을 멋지게 그려내기 위해서는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제약이 많다.[31] 말이 좋아 타협책이지 원작에서는 생명체의 '의사'와 무관하게 에너지를 뽑아먹는 방식이었다. 마인부우전에서 딱 한번 인간 상대로 에너지를 받았는데, 오공과 베지터는 무려 계왕의 빽을 업고도 지구인의 지지를 받지 못해 사탄과 연립정권(...)을 세워야 할 만큼 정치와는 연이 없는 캐릭터다. 표만 받는 걸 생각하면 차라리 라크쉬르가 더 목숨을 건 '민주정'에 가깝긴 한데, 정작 이 지도자는 전형적인 폭군이다.[32] 최종보스. 작품 외적인 입장에서는 주인공을 띄워주기 위한 아군 약체화의 영향.[33]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34] 다만 권위주의 정권이라고 죄다 독재는 아니다. 그 예시로 법과 정의 시기 폴란드, 나렌드라 모디가 집권 중인 인도 등이 있다.[35] 정확히는 자유민주주의. 공산진영에 반대하는 자유진영으로서의 한국의 정체성을 지칭한 표현으로 보인다.[36] 이념적 수입 뿐만이 아니라 워낙 짧은 간격 덕에 인적 수출까지 이루어졌다. 라파예트 참조.[37]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부터가 2번만 하고 물러나 이게 선례가 되어 대통령을 오래도록 해먹겠다는 일이 등장하지 않았다. (물론 더 해먹으려는 사람도 있었지만 일단 1~2번 하고 나서 시간 좀 지났다가 어떤 목적으로 다시 나온 경우였다. 하지만 이건 모두 실패했다.) 일단 처음부터 연방주의자와 반연방주의자로 갈라지고 남부와 북부의 대립이 있긴 했으며 특히 남북 대결은 결국 남북 전쟁으로 이어지긴 했지만 어쨌든 상당수 많은 대립은 의회 내에서 잘 해결했다.[38] 일신교 신앙, 정의와 문화적인 인간성, 인도네시아의 단결, 합의제와 대의제를 통한 민주주의의 지혜로운 길잡이, 인도네시아 국민에 대한 사회 정의, 민주주의라고는 하는데 종교가 들어가고 민족 지도자의 지도(guided democracy)에 따른 민주주의, 결국 독재자 말을 따르는데 민주주의라는 당최 뭔 헛소리인지 알 수 없는 소리지만 현재까지도 이것이 인도네시아의 지도 이념이다.[39] 물론 이중에서 테란 자치령은 아크튜러스 멩스크가 몰락하고 발레리안 멩스크가 집권하면서 나아졌지만.[40] 레이너 특공대의 행적은 테란 자치령의 행적과 거의 정 반대다. 특히 레이너 특공대는 테란 측 주인공 집단이다.[41] 우모자 보호령은 묘사가 별로 없긴 하지만 레이너 특공대를 지원하고 테란 국가들의 추악한 전쟁판에 쓸데없이 끼어들지 않는 등의 모습을 보인다. 달리 보면 국가의 영토를 넓힌다는 이유로 애꿎은 국민들만 죽어나가는 무리한 전쟁을 하지 않는 것. 물론 우모자도 전쟁에 아주 안 끼어든 건 아니다. 단 그것도 우모자의 생존이 걸린 일에 한정해서다. 실제로 레이너 특공대 지원도 발레리안의 어머니가 우모자 출신에 테란 자치령이 우모자도 집어삼키려고 노리는 중인 데다가 그 이전에 있던 조합 전쟁의 경우 켈모리아가 무너지면 다음은 우모자 차례니 순망치한의 입장으로 비공식적으로 켈모리아를 지원했다. 하지만 테란 자치령이 등장한 후 테란 자치령에 굽신거린(이 과정에서 켈모리아에서 이탈한 인물이 마일로 카친스키) 켈모리아보다는 낫긴 하다. 적어도 이쪽은 굽신거리지는 않으니까(굽신거리긴커녕 아크튜러스의 무례한 행위에 항의하기도 했다.)[42] 문명이라고는 없는 저그가 왜 이 변화를 거쳤냐면 초월체는 '초월체-정신체'의 독재정치에 가까운 명령체계의 장단점을 명확하게 꿰뚫어봤고 이를 뒤집어엎기 위해 사라 케리건을 칼날 여왕으로 변화시켜서 영입한 후 애지중지 키우며 정신체를 내버려두고 차기 후계자로 사실상 점찍었다. 케리건을 아니꼽게 보는 정신체더러 '군단은 케리건을 본받아야 한다'라면서 까는 건 덤이다. 특히 이 단점이 부각된 시기가 브루드 워인데, 절대권력자인 초월체가 없어지자마자 덜떨어진 후계자, 각각 딴집을 차린채 내전에 돌입, 외세로부터의 침략 및 후계자 납치,세뇌3단 콤보에 제대로 얻어 맞아 전 우주의 지배와 끝없는 진화를 꿈꾸며 한 때 온 우주를 공포에 몰고 간 천하의 저그가 열등한 인간에게 노예로 부려지거나 다른 종족에게 도움을 구걸해야 하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해버린, 죽은 초월체가 아이어에서 벌떡 일어나 대성통곡할 대환장 굴욕쇼가 펼쳐져 버렸다. 이런 위험천만한 체계를 저그를 어버이처럼 아끼는 초월체가 가만히 내버려두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43] 자유행성동맹의 정치가 극도로 부패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과는 별개로, 끊임없이 민주주의의 수호를 추구하는 자유행성동맹 국민들의 국민성에 대해서는 작중에서 상당히 긍정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극도로 부패한 정치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이 절망감으로 인해 정치적 무관심에 빠지지 않고 민주주의에 대한 자부심을 꾸준히 유지한다는 게 현실과 비교해 보면(특히 현실의 일본과 비교해 보면) 상당히 특이하게 보일 정도.[44] 민주주의는 아니지만 명나라 또한 자국의 수호신과도 같던 웅정필과 원숭환을 자기들 손으로 효수했다. 국민들이야 왕의 명령에 따라 자신들을 구해준 영웅이 죽자 축제를 벌이며 환호할 뿐이었고, 결국 명나라는 청나라가 오기도 전에 이자성의 난으로 망해버렸다. 왕이건 국민이건 정보가 통제된 상황에서 감정이 우선된 행동을 할 경우 그 국가의 제도가 왕정제민주주의건 망하는 건 피차일반이다.[45] 왜냐면 고대 그리스는 추첨으로 선출되었기 때문이다.[46] 전자는 워터게이트, 국정원 선거개입, 후자는 월스트리트 점령이나 정경유착이나 기업들의 언론 소유 등을 예시로 들 수도 있다. 괜히 버니 샌더스가 그들이 존재하기에 너무 크다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한 것이 아니다.[47] 미국의 모든 주가 여성 참정권을 보장한 것은 1984년도의 일이다.[48] 대표적으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불가분하다고 보거나 둘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미국식 민주주의의 영향을 줬다고 여겨지는 이로쿼이 연맹에서는 은행이 없었다.[49] 그래서 민주주의가 잘 정비된 국가라고 해도 경찰, 군대, 소방 등 위기 대처를 목적으로 한 집단은 수직적인 계급체계가 유지되고 있다.[50] 좋든 나쁘든 대한민국을 예로 들자면 대통령의 임기가 5년이므로 7년 이상짜리 정책은 실행하기 어렵다. 정권이 바뀌었을 때 그대로 실행되면 좋지만 백지화가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51] 그리고 그 친밀함을 과시한 것이 무색하게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북한에서 파괴해 버리고, 아예 김정은 측에서 대한민국을 별개 국가이자 적대국으로 칭하는 등 종전과의 거리는 더 벌어져 버렸다.[52] 물론 공개할 경우 실제 나라의 존립이나 사회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 때문에 부득이 공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겠으나 국민들에게 떳떳하게 밝힐 수 없는 사안을 추진하기 위해 국익을 들먹이는 경우도 있다.[53] 실제로 2017년 오토 웜비어가 북한에 억류되어 사망하였을 때 미국과 북한 관계가 극도로 악화되고 미국에서 북한 여행금지를 선포하는 등 국내외로 난리가 났지만, 정작 1년이 채 지난 2018년부터 한반도 화해 무드에 힘입어 잠시 동안 북미관계가 개선되었다. 그리고 1970년대 미국인들이 칠레의 인권탄압을 비판할 때 피노체트가 이렇게 각자의 자국에서 칠레를 비판하는 외국인들을 칠레로 잡아다가 무분별하게 고문하고 처형하였는데, 보통같았으면 칠레 정부는 이라크처럼 작살났겠지만 피노체트의 집권에 CIA가 기여했다는 상징성이 있어서인지 미국 정부는 그 빡센 자국민 보호조차 한 발 물러서서 딱히 눈에 띄는 대응을 하지 않았다. 물론 당시는 냉전이었다는 특수성을 고려해야 하지만, 어쨌든 민주주의=인권=선이라는 개념 자체는 현실 세상에서 그나마 들어맞을지 몰라도 완전히 동일한 개념은 아니라는 것이라는 사례를 보여준다.[54] 즉,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지적했던 민주주의의 중우정치와 참주정으로의 악화가 현대에 도덕성의 논리에 결부되어 점점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플라톤이 주장한 철인정치 역시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을 무시하였다는 문제가 있기에 현재까지 민주주의가 '차악'의 정치 이념으로써 주류로 살아남게 된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55] 실제로 이런 형태가 뒤틀려서 탄생한 게 공산주의, 즉 인민독재이다. 공산주의도 표면적으로는 대중주의/민주주의를 표방하며 모든 주권이 대중에게 있음을 강조하지만 이를 신성시하여 모든 비판을 봉쇄하고 척살하다 보니 이 꼴이 난 것이다.[56] 주로 과학적 사실이 존재하는 자연과학, 공학관련 이슈가 이런 경우가 많다.[57] 이를 미하일 바쿠닌과 같은 이들은 합법성의 독점이라고 말했다. 즉 국가의회가 제정하는 법을 무조건적인 선으로써 만들고 이에 반대하면 악으로, 범죄자로 모는 행동이다. 대의민주주의를 애초에 민주주의가 맞느냐라는 비판이 나올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다. 즉 민주주의의 정당성이 인민이 아니라 국가의회이 쥐고 있다는 비판.[58] demokratia란 개념 발전이 늦어서 민주주의를 주장하고 실현시킨 지도자들도 혼란스럽게 정치했고 귀족과두의회, 금권주의, 참주 등이 있어서 오늘날 대중이 생각하는 민주주의와 비슷한 기간은 짧았다.[59] 민주주의는 번역이 이상하게 되어서 그렇지 실제론 민주제에 가까워서 귀족제와 경쟁관계라 귀족들은 민중 대신 자신들이 지배하려고 했다. 자본주의의 아버지인 자유주의를 제외한 자유롭지 않은 민주주의 즉 illiberal democracy인 공산주의자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는 이유도 민중 즉 인민 출신이 지배하기 때문이다.[60] 이러한 특권들은 현대처럼 개인이 본질적으로 소유하는 권리라기보다는, 특정 권위로부터 부여받은 해방과 관할권의 성격이 강했다.[61] 이 과정은 지역마다 속도가 달랐는데 헝가리의 삼부법전이나 플랑드르의 사례처럼 16세기에 이르러서야 법전 편찬이 마무리되기도 했다. 중세 사람들에게 지역 법원에서 공동체의 관습대로 재판받는 권리는 그들의 자유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였다.[62] 스웨덴의 이중 국적자들은 보안관이나 시장 같은 핵심 직책을 맡지 못할 뿐, 부동산 소유나 무역, 길드 가입 등 대부분의 영역에서 본토인과 동등한 권리를 누렸다. 특히 독일 상인들은 스웨덴의 시민 생활에 깊숙이 참여하면서도 독일 본국과의 문화적·경제적 유대를 유지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들은 양쪽 공동체에 종교적 기부를 하며 발트해 양안의 관계를 이어갔으나, 15세기 후반 한자 동맹 도시들이 무역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이들을 탄압하면서 결국 단일 국적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63] 하지만 실제 재판 기록을 보면, 여성들은 벌금을 내거나 증언을 하기 위해 수시로 시청 궁전에 드나들었다. 즉, 여성의 공공장소 출입 금지는 가부장적 엘리트들의 희망 사항이 담긴 '법적 허구'에 가까웠으며, 현실의 공동체는 시민과 비시민, 남성과 여성이 뒤섞여 작동하고 있었다.[64] 프랑스 2월 혁명의 산물이었던 보통 선거권이 결국 나폴레옹 전제를 이끈 역사는 자유주의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65] 이때는 영국 국회에서 귀족원인 상원이 실권을 가지고 있었고 하향식 의사결정방식을 택했다. 현재와 같이 하원만이 실권을 가지는 제도로 변모한 것은 제1차 세계 대전 이후.[66] 백리새천덕(伯理璽天德)이라고 음역한다.[67] 당시에는 미국 헌법상 연임 내지 중임제한이 존재하지 않았으며, 다만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전례에 따라 스스로 자제할 뿐이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3선을 시도하였으나 낙선했고,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3선을 넘어 4선 연임에 성공한 이후 수정헌법 제22조에 따라 금지되었다. 아마도 미국의 관습적인 부분을 실제 제도인 것처럼 오인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로버 클리블랜드는 연임은 실패했으나 1차례 중임에는 성공하였다.[68] 조선의 뼈대를 만든 정도전자체가 백성이 근본이라는 민본주의를 기반으로 건국을 했으며 백성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개념은 18세기 영조 때부터 조정에서 자주 언급된 바 있으나 이것이 민간에서까지 퍼지게 된 것은 19세기 말부터이다. (출처: 헌법 일부인 국호 '대한민국' - 허완중)[69] 국민, 주권, 영토를 의미함.[70] 실제로 1910년대까지 소수 존재하던 복벽파는 3.1 운동을 기점으로 자취를 감추게 되고 복벽파 인사들도 민주공화제를 대세로 받아들인다. 1920년대부터는 민주주의 공화국 수립이 민족주의사회주의 계열 전 독립운동가들의 건국 목표로 자리매김하게 된다.[71] 출처: 서희경 (대한민국 건국헌법의 역사적 기원)[72] 출처: 서희경 박명림 (민주공화주의와 대한민국 헌법 이념의 형성)[73] 서희경 박명림 (민주공화주의와 대한민국 헌법 이념의 형성).[74] 박찬승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75] 이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중앙 정부로 간주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1941년 연안에서 열린 동방각민족반파쇼대회에서는 임시정부 주석 김구가 명예주석단으로 추대되었으며, 이듬해 진서북분맹 성립대회에서는 손문, 장개석, 모택동과 함께 김구의 초상화가 내걸린 바 있다. (출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도자들)(한시준).[76] 박명림 (한국의 초기 헌정체제와 민주주의: ‘혼합정부’와 ‘사회적 시장경제를 중심으로)[77] "Lettres et Opuscules"에 인쇄된 "Lettre 76"(1811년 8월 27일)에서 나온 문구로 프랑스의 보수전통주의자 조제프 드 메스트르(Joseph de Maistre)가 러시아 헌법을 제정에 관한 토론을 하면서 나온 말이다. 그리고 흔히들 프랑스 자유주의자인 알렉시 드 토크빌이 한 말로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라는 은근히 다른 의미로 잘 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언론에서조차 토크빌의 말로 잘 못 언급하는 경우가 있지만 사실 토크빌은 저런 말을 한 적이 없다. 메스트르와 토크빌이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들이기에 와전되어 것으로 보인다.[78] 그리고 이 말은 "국민은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라는 말과는 전혀 다른 뜻을 지니고 있다. 왕정이든 민주주의든 국가를 건설하면 그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는 뜻. 애초에 메스트르의 이 금언은 민주주의에 관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오용하고 있을 뿐이다. 좌우간에 자유주의 사상가였던 토크빌과 달리 메스트르는 오히려 후대에 의해 보수주의자로 왜곡 받는 에드먼드 버크와 달리 확고한 프랑스 혁명을 본질적으로 증오했던 반동 보수주의자였으며, 영미식 자유주의적 보수주의가 아닌 대륙식 권위주의적 보수주의, 그리고 먼 훗날 파시즘의 선조격으로 분류되는 극보수주의 사상가였다. 이 사람의 사상을 대표하는 내용이 프랑스혁명은 다른 건 다 죄악이었지만 기요틴이 상징하는 철권통치를 이룩한 것만은 확실히 부르봉 왕조보다 나았다는 주장일 만큼 마이스트르는 자유주의, 계몽사상적 '토론'과 '합의'를 경멸했고 힘에 의한 통치 그 자체를 숭상했다.[79] 제3대 미국 대통령토머스 제퍼슨의 발언에서 따온 말로 보인다.[80]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 자신은 민주주의자가 아니었다. 그가 이상적으로 여긴 정체는 민주정과 과두정이 결합된 혼합 정체로, 어느 한쪽의 특징만을 지닌 제도보다 더 균형 잡힌 형태였다. 그는 추첨으로 공직자를 선출하였던 당대 아테네인들의 인식과 마찬가지로, 선거는 실질적으로 일정한 재산이나 능력, 명성이 충분한 소수만이 권력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보다 권력을 집중시키게 되는 제도라고 보았고 반대로 공직자를 무작위 추첨으로 뽑는 방식은 이러한 조건과 무관하게 무작위적으로 선출되기 때문에 보다 민주적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추첨을 민주적인 것으로, 선거를 과두제적인 것으로 보았으며, 재산 자격 등 특정한 제한이 없는 제도를 민주적이라 하고, 제한이 있는 것은 과두적이라고 여겼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민주적 요소와 과두제적 요소를 적절히 결합하면 보다 중용적이고 안정적인 헌법 체제를 만들 수 있다고 보았고, 이러한 맥락에서 위와 같은 언급을 한 것이다.[81] 다만 프랭클린이 비판적인 의견을 낸 건 이런 결함도 있다 정도이지, 민주주의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이로쿼이와 로마등을 본떠 미국의 공화주의와 민주주의를 정립한 건 벤자민 프랭클린 본인이다.[82] 정확히는 그가 속한 캐나다 신민당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마우스랜드'에 나오는 대사다.마우스랜드 동영상[83] 즉, 이러한 것들은 숭배의 대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84] 독재를 옹호하는 내용이 아니고 본질적으로는 똑같다고 하는 것이다.[85] 다만 히틀러의 경우 여러면으로 타인들과 역할을 달리하는데 히틀러는 민주주의로 집권하여 독재자가 된 사람이며 또한 나라를 파탄냈기 때문. 본인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이야말로 본인이 한 말의 일종의 증인이 되었다.[86] 넓은 의미의 '자유주의 우파' 진영이 공유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시선이다.[87] 『민주주의를 넘어서』 프랭크 칼스턴Frank Karsten, 커렐 베크만Karel Beckman, 2014, A-북스[88] 일반적인 설정에서는 고블린과 드래곤의 무력이 하늘과 땅차이가 나기 때문에 고블린의 저항권이 성립할 수가 없기 때문. 아무리 고블린이 많아도 드래곤 하나가 모조리 없애버릴 수 있는 파워밸런스 설정이 일반적이다. 일반인과 소드마스터로 비유하기도 한다.[89] 다만 실제 로마 제국은 통설과는 달리 디오클레티아누스전제정 이후에도 시민 중심 정치라는 공화정 시대의 전통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라서, 민중 봉기에 의한 황제 교체가 자주 있었고, 시민을 대표하는 원로원이 황권을 견제했다. 물론 공화정 시대에 비하면 민주적인 요소가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로마 황제들이 정말 민주주의를 무법지대와 같은 것으로 인식할 정도로 민주주의에 대해 무지했던 건 아니다.[90] 다만 민주주의공화주의가 역사적으로 달랐음을 고려해야 한다. 서로 간의 비판을 수용하며 대의민주주의, 민주공화국으로 수렴한 오늘날과 달리 로마 제국 시대의 민주주의란 고대 그리스 폴리스(특히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를 의미했다. 황제가 다스리는 동로마 제국 시절에도 자국이 공화국이라는 인식은 존재했으나, 민주정은 중우정치와 거의 동의어로 쓰였다.[91] 상술한 문명 시리즈와의 큰 차이점이 드러나는 대목인데 문명은 정치/경제/문화/과학/종교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있고 이론상 전쟁 없이도 승리할 수 있는 게임이지만 하츠 오브 아이언은 게임 설계상 목적이 전쟁뿐인 게임이기에 전쟁하기 힘든 민주주의는 재미와 메리트가 없는 것이다.[92] 민국(民國)이 과거 청나라에서 republic을 민주지국(民主之國)으로 번역한 것의 준말이니 억지로 보면 민주가 들어간다고 볼 수도 있긴 하다. 여담으로 민국이 민주공화국의 준말이라 설명하는 경우가 있는데 틀린 설명이다.[93] 다만 북예멘은 제1세계보다는 제3세계에 더 가깝게 분류된다.[94] 다만, 위 표 중에서 건국 이후로 항상 민주적이었던 국가는 서독뿐이었으며, 역으로 베트남 공화국은 민주주의라 불러도 될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문제가 많았다.[95] 참고[96] 현대 민주주의의 선구자 미국은 미합중국, 일본은 일본국, 근대 민주주의의 선구자 프랑스는 프랑스 공화국, 노르웨이는 노르웨이 왕국, 이탈리아는 이탈리아 공화국, 벨기에는 벨기에 왕국, 네덜란드는 네덜란드 왕국 등 국호에 민주주의가 들어가 있지 않다.[97] 다만 동티모르 민주주의 공화국이 민주주의 지수에서 7.06점을 받으며 결함 있는 민주주의로 분류되어 총 167개국 중 43위, 국호의 '민주'가 들어간 국가 중 1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