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04 17:40:34

순정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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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특징3. 클리세4. 그림체5. 역대 일본 순정만화 판매순위6. 한국 순정만화의 흐름7. 한국 순정만화의 왜색시비
7.1. 손상익의 유럽 콤플렉스론7.2. 반박
8. 순정만화가 목록9. 주요 작품

1. 개요

여성들을 주 독자층으로 하는 여성향 만화.

작품의 캐릭터와 스토리, 분위기 등이 여성(특히 사춘기 언저리의 여성)에게 특화되어 있으며, 작품의 중심을 이루는 테마가 주인공과 그 상대 사이의 연애(사랑)인 작품이 대부분이다. 소재는 각양각색으로 학원물, 직장물, SF나 판타지 등 다양하지만 어느 경우에나 작품의 핵심은 사랑이다. 주인공에게 사랑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 작품은 순정만화가 아니다.[1]

무엇이 순정만화인지 정확히 필설로 정의를 내리기는 의외로 어려우나, 작품을 읽고 그것이 순정만화인지 아닌지는 거의 누구든지 판단할 수 있다. 유명한 표현을 빌리자면, "보면 안다"는 식.[2]

일반적으로는 특유의 눈 큰(...) 미남미녀가 등장하는 미형 그림체 및 얘들이 어떻게 이어질까 하는 젊은 남녀의 애정행각 위주의 플롯으로 진행된다는 데서 구별점을 찾을 수 있을 듯 하다.

일본에서는 소녀만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좀 더 나이 많은 독자층을 대상으로 하는 레이디스 코믹이란 분류를 덧붙인다. 그리고 한국의 순정만화와는 분류 기준이 일치하지는 않으며, ebookjapan 등의 일부 전자서적 사이트에서는 이토 준지의 작품이 소녀만화로 분류되어 있다. 순정만화가 이토 준지

순정만화 중 18금 성적 묘사가 들어가 성인향이 된 종류는 틴즈 러브, 줄여서 TL이라고 부른다.

여성 만화가들이 많이 그리는 편이다. 드물게는 남자들도 이를 접하는 사람들이 있고 남자 만화가가 순정만화를 그리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서도 《달려라 하니》의 이진주, 《요정 핑크》의 김동화, 《영심이》의 배금택, 그리고 김영하, 허영만도 이곳에 참여했다.

2. 특징

주로 남성들을 주 독자층으로 하는 소년만화가 보다 직관적인 형태의 자극적 묘사에 집중하는 편이라면[3] 순정만화는 보다 심리적인 측면에서의 인간관계에서의 자극적 묘사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른바 한 성별의 캐릭터가 다른 성별의 여러 캐릭터와 관계를 맺는 하렘 구도를 예로 들면 대체적으로 소년만화에서는 이러한 캐릭터들간의 관계로 발생하는 갈등을 메인 스토리에 있어서 일종의 양념처럼 처리하는 경향이 강하다면[4] 순정만화에서는 캐릭터 자체의 개성 묘사도 묘사지만 심리 묘사에 막대한 비중을 할애함에 따라 대부분의 스토리가 이 갈등 묘사를 집중으로 확장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순정만화 특유의 이러한 인간관계 구도를 가져와 남녀 성별을 바꾸어 적용해서는 남자 취향으로 바꾼 《미유키》와 《오렌지 로드》 이후로 이런 류의 장르가 소년만화 쪽에서도 많아졌지만 원조가 원조다 보니 순정만화들에서는 이런 장르가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편 연애적인 요소가 있으면서도 소녀로서 혹은 성인 여성으로서의 자아를 돌아보며 고민하는 내용을 다루는 경우도 제법 되는 편이다. 한국의 강경옥, 문흥미, 이진경, 일본의 아시하라 히나코, 사쿠라자와 에리카, 오사카 미에코 등등의 만화가들이 그린 작품이 이런 경우. 이 외에도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나가는 여성을 중심에 놓고 주인공의 극복담을 다루는 식도 예전부터 지금까지 많이 쓰이고 있다. 그 밖에 연애 요소가 첨부되긴 하지만 가족 혹은 여러 인간들 사이에 엮이는 정을 주요 소재로 하는 작품 또한 자주 인기를 끄는 편.

이런 다양한 경향 때문에 순정만화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논의가 자주 벌어지기도 한다. 남녀 연애가 나오면 순정만화라고 하자니 연애요소의 비중이 천차만별인 데다 연애 요소가 약한 경우도 있는 등 장르 전반을 딱 정의하기가 애매하기 때문이다. 라이트 노벨의 정의에 대한 것과 비슷하다 볼 수 있는데, 그래서 아예 라이트 노벨처럼 순정만화 잡지에 연재하면 순정만화라는 식으로 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순정만화라고 보기 어려운 《바나나 피쉬》 같은 작품들도 어쨌든 순정만화로 분류된다.

이야기나 플롯 면에서 드라마화에 어울리는 편이기도 하다. 최근의 《노다메 칸타빌레》나 《오토멘》 같은 경우 외에도 일본에선 예전부터 순정만화를 드라마환 경우가 자주 있고, 한국의 경우 《풀하우스》 같은 인기작이 있으며, 2009년엔 《탐나는도다》가 드라마화되기도 했고, 2010년에는 《매리는 외박중》이 드라마화되었다.

이 계열의 만화 심의는 소년 만화와는 전혀 다른 심의 기준을 지닌 듯하다. 소년 만화라면 진작에 빨간 딱지를 붙이거나 잘렸을 심히 에로한 장면이 버젓이 등장한다. 규제가 덜한 일차적인 이유는 직접적인 성기 묘사를 아예 안하기 때문 일 것이다. 실제로 《애완소녀》 보면 할거 다하지만 성기는 투명하게, 아니 아예 공기로 묘사한다. 그러면 더 야해보인다 그외에도 컷연출로 교묘하게 하반신을 묘사하지 않거나 옷이나 소품으로 다 가린다. 직접적인 성적묘사보다는 감각적인 성적묘사가 여성독자에게 더 어필되기 때문. 그렇다고 모든 순정만화들이 야한 건 아닌데, 《연애지상주의》와 《애완소녀》, 《패왕애인》 같은 일본의 Sho-Comi에서 연재된 만화들이 막 가는 경향이 다분하고 그걸로 팔아먹는데 성공해 놓으니 체감상 심하게 느껴지는 듯.

더불어 그린 만화가들이 여성이 많지만 남성도 적지 않게 있었다. "만화의 신"으로 불리는 테즈카 오사무, "만화의 철인"인 요코야마 미츠테루도 초기 작품 중에 순정만화 작품들이 있으며, 명랑만화가로 알려진 김진태만 해도 순정만화를 10여 작품이 넘게 그린 바 있었으며 김형배도 여러 편 단편으로 순정만화를 그린 적이 있다. 그 밖에 이상무이우정도 단편으로 순정물을 그려 연재하기도 했다. 다만 일본 순정만화를 베껴서 억지로 그리던 남성 만화가들도 있는데, 이는 합동출판사라는 거대 출판사의 강압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어처구니없게도 이런 강압으로 순정물을 그리던 만화가 중 하나가 무협만화가로 유명했던 故 이재학.

6~70년대 무렵에는 소녀 코믹마가렛 소녀 프렌드가 주간으로 나오면서 주간 잡지가 일본 순정만화 잡지의 대세가 되기도 했으나, 월 2회 간행이나 월간 연재가 더 효율이 좋다는 점이 나타나면서 주간으로 나오던 잡지들도 격주간이나 월간으로 전환, 주간으로 나오는 순정만화 잡지는 사라지게 되었다. 현재 일본에서 격주간(실제로는 월 2회간)으로 나오는 순정만화 잡지는 소녀 코믹(Sho-Comi), 마가렛, 하나토유메(이상 소녀만화 잡지) YOU, 키스, BE・LOVE(이상 레이디스 코믹 잡지) 정도. 참고로 일본의 소년만화 잡지는 현재 주간은 4개밖에 없으며 격주간은 아예 없고 나머지 대다수는 월간. 청년만화나 성인향 만화잡지 쯤 가면 주간이나 격주간이 꽤 많다.

3. 클리세

순정만화/클리셰 참고.

4. 그림체

이쪽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순정만화'라는 말만 들으면 전형적인 극 고전 순정만화(70년대 순정만화로 대표되는 《유리가면》, 《베르사유의 장미》) 등을 떠올리며 순정만화 그림은 항상 변함없다며 까기도 하지만, 잘 보면 역대 소년만화 그림이 항상 대세에 따라 바뀐 것과 같이 순정만화도 대세에 따라 그림체가 바뀐다. 순정만화 업계에서 성인만화처럼 공장 작업을 하는 공장장들의 예로는 김영숙, 한유랑, 황미리, 나하란 등이 있다. 시리즈를 수십, 수백 권 냈으나 그림체가 똑같은 수준이다.

그림체 측면에서 보자면 전형적인 '순정만화 그림체'는 전반적으로 사물의 입체성(원근법 등)과 구조성(인체비례 등)을 대략적으로 표현하는 대신에 평면적인 디테일(옷의 무늬, 액세서리, 머리카락 등)을 섬세하게 그리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특성은 일반적으로 '평면적이다'로 요약된다.

5. 역대 일본 순정만화 판매순위

아래 집계의 경우 완전판이나 문고본이 있는 경우 그게 판매량에 포함된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고 한데다 집계 시점에 따라서도 차이가 나는지라, 아주 정확한 건 아니다. 어디까지나 참고용.
순위 총 발매부수 현재 시점 권당 부수 제목
1위 5,900만부 37권+완전판 꽃보다 남자
2위 4,300만부 19권 시점 226만부/권 나나
3위 3,600만부 50권 시점 왕가의 문장
4위 3,340만부 42권 시점 유리가면
5위 3,103만부 15권 시점+문고판 모모는 엉뚱해(마루코는 아홉살) 이게 왜 순정만화지[5]
6위 2,800만부 30권 시점 83만부/권 두근두근 투나잇
7위 2,600만부 20권 시점 130만부/권 노다메 칸타빌레
2,700만부 23권 시점 56만부/권 장난스런 키스
9위 2,650만부 76권 시점 35만부/권 아시리짱(천방지축 아리짱)
10위 2,500만부 19권 시점+문고판 포함 유한클럽
11위 2,000만부 12권 시점 스케반 형사
12위 1,920만부 24권 시점 80만부/권 생도제군!(한국 해적판 제목은 남녀공학)
13위 1,820만부 78권시점 23만부/권 파타리로
14위 1,800만부 23권 시점 78만부/권 후르츠 바스켓
15위 1,770만부 18권 시점 98만부/권 아기와 나
16위 1,700만부 13권 시점 131만부/권 겐지 이야기
17위 1,600만부 23권 시점 69만부/권 아름다운 그대에게
1,600만부 28권 시점 57만부/권 하늘은 붉은 강가
19위 1,500만부 10권 시점 150만부/권 베르사이유의 장미
1,500만부 18권 시점 83만부/권 에이스를 노려라
1,500만부 27권 시점 56만부/권 바사라
22위 1,410만부 12권 시점 118만부/권 동물의사 Dr.스쿠르
23위 1,400만부 18권 시점 67만부/권 피치걸
24위 1,380만부 18권 시점 77만부/권 환상게임
25위 1,300만부 09권 시점 144만부/권 캔디캔디
1,300만부 21권 시점 62만부/권 나의 지구를 지켜줘
27위 1,200만부 12권 시점 100만부/권 카드캡터 사쿠라
1,200만부 17권 시점 71만부/권 러브 콤플렉스 LOVELY COMPLEX-
1,200만부 18권 시점 67만부/권 엑스
30위 1,115만부 17권 시점 66만부/권 그와 그녀의 사정(그 남자! 그 여자!)
31위 1,100만부 17권 시점 65만부/권 악마의 신부
1,100만부 22권 시점 50만부/권 보이!
33위 1,060만부 18권 시점 59만부/권 미소녀 전사 세일러 문
34위 1,028만부 19권 시점 54만부/권 바나나 피쉬
35위 1,000만부 10권 시점 100만부/권 아이들의 장난감
1,000만부 20권 시점 50만부/권 천사금렵구
1,000만부 꽃의 아스카조!
1,000만부 쾌감 프레이즈

6. 한국 순정만화의 흐름

한국 순정만화의 선구자격 작품은 김정파(1924~1992)가 1956년에 지은 그림소설식 만화 〈흰 구름 가는 곳〉이다. 그러나 김정파의 만화는 그림이야기처럼 완전한 만화의 형태가 아니어서 오늘날의 순정만화 효시라기보다는, 과도기 단계의 최초 작품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김정파 이후, 1957년 4월에는 완전한 형태의 순정 만화 《영원한 종》이 한성학에 의해 창작, 발표돼 소녀들의 인기를 끌었다.

한성학의 뒤를 이어 곧바로 등장한 권영섭[6]1960년대 초반 청순가련형 소녀 '봉선이'를 등장시킨 일련의 소녀 만화를 발표해 순정 만화 영역을 확실히 다져나갔다. 그는 <오손이 도손이>, <은색의 십자가>를 비롯 <울밑에선 봉선이>, <봉선이하고 바둑이> 등의 대표작을 남겼다. 이범기은 1960년대 초반 <장희빈>, <강화도련님>, <단종애사> 같은 역사 소재의 순정만화로 인기를 얻었고, 김용도은 <인어공주>, <세공주>, <비엔나> 등 전형적인 여성 취향의 그림체로 1960년대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던 남성만화작가로 꼽힌다.

그리고 박수산(1940~1984)은 1960년대 정상의 인기를 확보했던 순정만화작가 가운데 한 사람이다. 단국대 법대 재학 중 꾸준하게 순정만화를 발표해 왔으며 남성작가이면서도 섬세한 여성 심리의 표현에 탁월, 페미니즘 작가로 분류해도 좋을 만한 작품들도 다수 남겼다. 엄희자의 스승이자 남편으로 알려진 조원기도 <섬아이> 등 깔끔한 그림의 순정만화체 작품을 많이 발표했다. 부호(본명 김성연)를 비롯, 《나미와 유령건반》의 조애리(본명 강휘모), 《코스카》의 장희정(본명 황정하)등도 여성 이름의 남성 작가로 당대 순정 만화계의 맥을 이었던 작가였다. 이렇듯 당시 우리 순정만화계는 남성들에 의해 주도된 것이 특징이다.

당대 대표적인 순정만화 작가들로는 원로격인 송순히는 《재생》, 《생명》 등의 묵직한 내용의 순정만화를 발표해 여성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고, 장은주는 《철없는 여자》로, 김기백의 부인 민애니는 《인어언니》로 우리 순정만화를 확고한 위치에 올려놓은 여성 작가였다. 그의 뒤는 이성희, 이해경(본명 이미라) 등이 이어 여성 순정만화의 계보를 형성했다. 특히 이해경은 하반신 불수의 신체적 결함을 극복하고 만화가로서 인간승리를 보여준 표본이었다. 최진희 도 《수선화》, 《뷔엔나 숲의 이야기》로 당대 소녀들의 인기를 끌었다.

1960년대의 우리 순정만화를 이야기할 때 엄희자를 빼놓을 수 없다. 엄희자는 한국 초창기 순정만화의 그림체를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1960~70년대 초반 발표작품의 수적인 면에서나 질적인 면에서 이 분야 최고 작가로 손꼽혔다. 깔끔한 터치와 군더더기 없는 인물 묘사로 1970년대에는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을 원작으로 한 《사랑의 멜로디》를 만들어 소화해 내는 등, 뛰어난 그림 실력을 발휘했다. 엄희자 문하에서 배운 차성진은 엄희자 이후 사실상 맥이 끊어진 우리 순정만화의 맥을 잇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엄희자의 전성기가 지난 1970년대 들어 우리 순정만화는 잠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만화 검열제로 소재가 제한된 데다 만화방 중심의 만화책 유통마저 합동출판사가 독점한 데다 당시 만화방을 독차지한 사내아이들의 등쌀로 인해 소녀들이 만화방을 가길 꺼리게 된 것이 큰 원인이었다. 민애니 가 남편을 따라 명랑만화가로 전향하거나 1981년까지 혼자 순정만화의 맥을 잇던 엄희자가 남편 조원기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간 것도 이러한 모습을 대변한다.

그럼에도 여중고생 잡지 <여학생> 등지에 《상급생》 등을 지은 이혜숙 등도 있었다. 그러나 이혜숙의 만화는 일본 만화를 그대로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아 독창적 작품성은 인정받지 못하나, 꾸준한 창작으로 우리 순정만화의 맥을 이었다는 점만은 높이 살 만하다.

한국에서 순정만화가 다시 등장할 기회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일본만화 《캔디캔디》가 한국 소녀들의 인기를 끌면서 다시 생겼다. 이후 《올훼스의 창》, 《베르사유의 장미》, 《안젤리크》, 《롯데롯데》, 《유리가면》, 《유리의 성》 등 전형적인 일본 소녀만화가 캔디캔디의 성공을 등에 업고 잇달아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거의가 국내 작가들의 창작품인 양 위장된 채 버젓이 작가의 이름까지 표지에 내세우고 시중에 팔린 소위 해적판 만화의 대표적 사례이다. 정영숙, 황수진, 김영숙 등이 이 시기 해적판 순정만화 표지에 단골로 나온 작가들이었다. 그러나 일본에서 온 순정만화들이 표절 시비에도 불구하고 흥행에 성공하자 아예 이러한 만화들의 그림체나 줄거리를 따라한 소위 아류 순정만화들이 우리 작가들에 의해 생산되기 시작했다. 그런고로 1970년대 후반 들어 우리 만화계에선 거의 비슷한 그림체와 내용으로 일관된 온갖 순정만화가 작가의 이름만 달리한 채 양산되는 진기한 현상을 낳기도 했다.

1980년 초중반에 들어 한국 순정만화는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1980년대 초반 들어 차성진, 김동화&한승원 부부, 이혜순, 이진주, 이보배, 황미나를 필두로 김혜린, 김진, 신일숙, 강경옥 같은 작가들이 도서출판 프린스에서 만화방용으로 발매한 만화들로 데뷔한 것이다. 《베르사이유의 장미》 같은 서사극 스타일의 일본 순정만화에 영향받은 이들 2세대 순정만화 작가들은 각기 서사극 스타일의 대 장편을 내놓으면서, 각 작품에서 단순한 답습이 아니라 작가 개개인의 주제와 개성을 강렬하게 선보여 큰 성공을 거둔다.

인기 좋은 만화는 빌려간 독자들이 자기들이 좋아하는 장면들을 마구 잘라내는 바람에 나중에 읽는 사람들은 보다가 중요한 장면들이 다 날아가 분통 터트리는 일이 마구 벌어지기도 했다만 뭐.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이렇게 순정만화판이 돈이 된다 싶으니 순정만화 공장을 차려 시장에 들어오는 인간들이 여럿 생겼고, 김영숙(이란 필명을 쓰는 영감)부터 해서 나하란, 한유랑 등 지금까지도 살아남아 있는 공장장들이 발을 들이댄 것도 1980년대부터다.

만화방에 있는 순정만화의 장면들을 오려가는 일이 자주 벌어졌는데, 점점 커져가는 순정만화 수요층과 이렇게 소장 욕구가 큰 여성들의 성향과 만화방용 시스템과는 다른 창작을 하고자 하는 작가들의 시도가 맞물리면서 순정만화 전문 잡지에 대한 요구가 나오게 된다. 그리하여 1988년 한국 최초의 순정만화 잡지인 르네상스가 나온다.

르네상스는 한국 순정만화계에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이렇게 등장한 잡지를 통해 작가들은 만화방용 단행본이란 방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작가들은 자신들의 창작욕을 충족시킬 수 있는 단편에서 중편 정도의 작품을 그려낼 수 있게 되었고, 한편 이런 환경 속에 기존 만화방용 단행본에서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던 현대의 일상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그리던 만화가들이 새삼 주목받을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이는 90년대 한국 순정만화의 중흥기로 이어진다.

뿐만 아니라 르네상스는 처음으로 신인 공모전을 개최했고, 이를 통해 전통적인 문하생 출신이 아니라 ACA 등에서 아마추어 활동으로 능력을 단련하다 프로로 등장하는 3세대 순정만화 작가 집단이 처음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르네상스는 창간과 함께 순식간에 순정만화 독자층을 끌어들이며 큰 인기를 끌었고, 이를 본 사람들이 이 판에 뛰어들며 순정만화 잡지 창간 붐이 일어나게 된다. 모던 타임즈를 비롯해 하이센스, 미르, 요요, 투유, 터치, 미니, 실루엣, 화이트, 쿠키, 치치, 칼라, 윙크, 이슈, 화이트, 댕기, 나나, 펜팬, 밍크, 슈가, 파티, 나인, 아디 등 무수한 잡지가 쏟아졌고 발매일에는 서점 앞에 줄을 서는 광경도 간혹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등장했던 여러 잡지들은 연재중단작만 왕창 남긴 채 거의 사라졌고, 그 와중에 좀 더 어린 독자층으로 노리고 등장했던 잡지인 나나만 살아남아 어느 정도 자리를 잡는 데 성공한다. 또한 90년대 그야말로 '르네상스'를 이루며 일본 만화와 확연히 구분되는 독자적인 화풍과 작품 세계를 구축해나가던 한국 순정만화 역시, 이어진 대여점의 범람과 출판만화 시장의 몰락에 따라 침체기로 접어들었다.

여담인데 김형배이우정같은 만화가들도 단편이긴 해도 순정만화를 연재하거나 책을 낸 바 있다.

7. 한국 순정만화의 왜색시비

7.1. 손상익의 유럽 콤플렉스론

만화평론가 손상익의 견해에 의하면, 순정만화가 일본 만화의 한 아류로 창작되어 이 땅에 정착된 시기는 1970년대 중반 《캔디캔디》가 한국에 들어오면서부터였다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전에도 한국 만화 창작경향에서 일본 만화의 표절시비는 공공연히 있어왔다.

1970년대 중반 이후 순정만화의 일본 베끼기는 그 범위나 깊이에서 과거완 다른 커다란 차이가 있다. 한국의 순정만화 작가는 일본 만화를 단기간 또는 일부를 복제한 걸 넘어 오랜 기간 동안 완전한 형태의 일본 소녀만화를 그대로 재현해 국내에 도입해 정착시켰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캔디캔디》 이후 《올훼스의 창》 등이 잇달아 한국에 소개되면서 한국 순정만화의 주인공들은 남녀 분간이 잘 안된, 소위 '여성화'된 캐릭터가 주를 이루게 되었다. 이는 당대 일본 순정만화들이 유럽을 소재로 한 작품이 많았기 때문에 등장인물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화려한 의상에 기다란 금발을 늘어뜨린 것이 그 원인이었다.

사실 일본 소녀만화에 유럽을 무대로 한 작품이 많은 것에는 상당한 역사적 배경이 있다. 이로운 것은 기꺼이 들여오는 '이이토코토리(良いとこ取り)'가 내면화된 일본은 네덜란드 등 서구세력에 의해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먼저 개화를 했고, 이로 인해 유럽에 동경심을 품은 것이다. 실제로 임진왜란 때 일본은 포르투갈 상인에게서 들여 온 철포(조총)을 썼고, 네덜란드 상인을 위해 나가사키에 '데지마'란 인공섬을 만든 것도 그렇다. 메이지 유신 뒤 일본은 기모노 대신 유럽식 슈트제복을 공식 복장으로 썼다. 또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일본 헌법은 독일 제2제국 헌법을 모방한 것이다.

일본은 수백년 간에 걸친 유럽문화 유입과정을 통해 그들 스스로를 유럽에 편입하고픈 열망을 지닌 국가다. 개화기 일본을 대표한 석학 후쿠자와 유키치탈아입구 논리도 같은 맥락에 속한다. 후쿠자와의 격언은 현재도 대다수 일본인들이 심정적으로 동의하는 형편이다. 일본인들은 스스로를 '바나나'라고 표현하는데, 바나나 겉은 노랗고 속은 희듯, 겉모습은 동양인이지만, 속으로는 유럽인이란 의미다. 이를 '명예 백인'이라고도 한다. 또 하우스텐보스 탄생과정 역시 이러한 심정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이런 보편적인 일본인의 사고는 언어, 대중문화 취향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일본의 가타카나는 영어 등 외국어의 전용 표기이고, 웬만한 용어 역시 영어 그대로 발음을 자기들의 국어로 만들어버린다. 또 각종 문학작품에 유럽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은 것도 이런 사고방식과 무관하진 않다. 이런 콤플렉스는 '우리가 아무리 유럽 흉내를 내도 유럽엔 포함 안 됨'이란 한계를 자각하면서 생긴 것이다. 《캔디캔디》, 《베르사유의 장미》, 《뾰로롱 꼬마마녀》, 《올훼스의 창》, 《꽃의 천사 메리벨》, 《꽃천사 루루》 등 소녀만화류 대다수가 유럽이 배경이거나, 등장인물이 유럽인 일색인 것도 이런 일본인들의 '유럽 콤플렉스'에서 기인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배경 속에서 만들어진 일본 소녀만화를 아무런 의식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한국 만화계이다. 1990년대까지 한국 순정만화 소재의 대다수를 차지한 유럽 이야기, 이를 통하여 한국 독자에게도 '유럽 콤플렉스'를 그대로 주입시킬 소지가 있는 것이다. 몇몇 순정만화가들은 '순정만화는 일본이 원류이니 그런 식으로 그려야 순정만화가 만들어진다'는 식의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기까지 했다.

1980년대 이후 한국 만화작품에 대한 왜색시비가 거론되자 순정만화는 그 때마다 도마에 올랐다. 그럼에도 대다수 순정만화가들은 이런 지적에 아랑곳 않고 생소한 서구식으로 이름을 붙여 창작을 지속해 마비된 가치관을 그대로 드러내왔다. 그러나 순정만화의 탈 일본풍 움직임은 1980년대에 가서야 황미나에 의해 소재의 차별화, 그림체의 변화 등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7.2. 반박

일본 소녀만화에 유럽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이유는 1960~70년대에 활동했던 꽃의 24년조 등의 만화가들이 그당시 유행하는 대체역사물 등의 시대물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 뿐이다. 그 중에서 중세 유럽의 문화가 소녀만화의 우아한 배경, 비극적 감수성을 표현하기에 적합했고 그래서 인기를 얻은 것에 가깝다. 마치 일본인들이 유럽에 편입되고 싶은 '유럽 콤플렉스'라는 보편적인 집단적 무의식을 공유하고 있어 유럽 배경의 소녀만화가 등장했다는 것은 편향적 일반화에 가까운 착각일 뿐이다.

1970~80년대 일본에서 일어난 소녀만화의 르네상스는 소년만화 중심이였던 일본만화 시장에 변혁을 일으켰다. 당시 소년만화는 상업적인 목적으로 소모적이고 자극적인 만화들이 자기 복제되어 찍어 나오는 경향이 있었는데, 감성적인 내레이션이 적극 활용되어 인물들의 관계와 심리묘사에 주력한 작가주의적인 소녀만화들이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고 만화를 넘어 일본 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소녀만화에 예술적 영향을 받은 만화가, 영화감독, 소설가, 음악가 등은 수없이 많다. 일본 소녀만화를 표절하는 것은 법적, 도의적으로 옳지 않은 일이지만, 일본 소녀만화가 쌓아온 문학적 가치를 판단하지 않고 마치 '유럽 콤플렉스'라는 병균을 옮기는 감염체 정도로 생각하는것은 편협한 생각이다.

8. 순정만화가 목록

9. 주요 작품


[1] 일례로 나의 지구를 지켜줘는 외계인들이 지구에 환생해 지구의 운명을 걸고 다투는 초능력 SF지만, 핵심 테마는 남녀 주인공간의 사랑이었기에 순정만화로 분류된다.[2] "I know it when I see it." 표현의 유래[3] 소년만화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배틀물 등에서 나타나는 피 튀기는 싸움 장면 등.[4] 소년만화에서 하렘 구도를 가장 많이 활용하는 러브 코미디 장르의 경우 러브를 소재로 코미디에 집중하는 경향이 많고, 이에 따라 일반적인 다른 소년만화의 대표 장르들에 비해서는 심리 묘사에 많은 장면을 할애하는 편이지만 여전히 캐릭터의 심리 자체보다는 행동이나 캐릭터 자체에 대한 묘사의 비중이 더 큰 경향을 보인다. 사실 이게 소년만화의 주 독자층들에게 잘 먹히기도 하고.[5] 이 작품이 순정만화 판매순위에 들어가는 이유는 순정만화 잡지인 리본에서 연재되었기 때문.[6] 1992년부터 6년간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을 지냄.[7] 강풀의 순정만화를 그려서 이 단락에 있다. 강풀이 처음부터 노린 것인데 제목을 순정만화로 지으면 자기도 순정만화가라고 소개할 수 있어서 그렇게 제목을 지었다고 한다.[8] 월간순정 노자키 군 문서 참고.[9] 영웅열공전같은 만화를 생각하면 왜? 하겠지만 이래뵈도 순정만화 꽤 그린 분이다. 사라진 월간 애니잡지 모션에서 한 인터뷰를 보면 "순정만화가들이 부럽더군요. 소년만화를 그리면서 팬레터를 받아본 게 얼마나 되던가 했는데 순정물을 그리니까 팬레터를 엄청 많이 받았어요." 이런 말도 한 바 있다.[10] 이 문서에 왜 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1001을 그린 전력이 있으며, 덴마도 <식스틴>같이 특정 에피소드는 순정물인 게 있다.[11] 애매함. 일단 본인이 변신(정확히는 나이를 16살로 올리고 염색한 것에 불과하지만)하고 보조하는 마스코트 캐릭터의 존재라는 마법소녀의 기본 공식을 따르고 있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는 흔한 마법 소녀물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다. 그렇다고 얘가 학생이라도 학교엘 안 가니 학원물에 넣기도 애매하고, 판타지도 아닌데 순정만화 자체가 일상물이라는 장르를 포괄하고 있어 구분이 모호하다. 변신 소재만 빼면 아래의 유리가면처럼 스포츠물 계열에 넣을 수 있다.[12] 한국에서 유행했던 막장 드라마에 비유될 정도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