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6-24 12:17:26

정대현(1978)

파일:나무위키+유도.png   넥센 히어로즈의 좌완투수에 대한 내용은 정대현(좌완투수) 문서를, B.A.P의 멤버에 대한 내용은 대현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정대현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7 2008 2010

수상 기록
1996년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 MVP
2012년 한국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MVP

SK 와이번스 등번호 1번
강병규(2000) 정대현(2001) 제춘모(2002)
SK 와이번스 등번호 21번
조규제(2001) 정대현(2002~2011) 백인식(2012)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38번
김근호(2011) 정대현(2012~2016.05.31) 노경은(2016.05.31~ )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28번
고원준(2016) 정대현(2016.05.31~2016) 안태경(2017)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41번
강승현(2016) 정대현(2017) 김대우(2018~ )
}}} ||
파일:/image/076/2011/10/16/2011101601001238000107761.jpg
여왕벌이라는 별명을 얻은 영광의 SK 와이번스 시절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2012081201001149800097151.jpg
말년에 부상으로 부진했던 롯데 자이언츠 시절.
옷만 다르다. 심지어 신문사도? 위에 사진 사직구장에서 찍은거다
동의대학교 야구부
이름 정대현(鄭大炫 / Tae-Hyon Chong)
생년월일 1978년 11월 10일 (만 [age(1978-11-10)]세)
출신지 전라북도 군산시
학력 군산중앙초-군산중-군산상고-경희대
신체 185cm, 103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언우타
프로입단 1997년 고졸우선지명 (쌍방울 레이더스)[1]
소속팀 SK 와이번스 (2001~2011)
롯데 자이언츠 (2012~2017)
지도자 경력 동의대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2019~)
등장곡 SK 시절: 이효리 - Any star
롯데 시절: Where you have you gone dj myno remix
병역 병역면제[2]

1. 소개2. 플레이 스타일3. 선수 경력
3.1. 아마추어 시절3.2. SK 와이번스 시절
3.2.1. 2001 ~ 2007 시즌3.2.2. 2008 시즌3.2.3. 2009 시즌3.2.4. 2010 시즌3.2.5. 2011 시즌
3.3. 롯데 자이언츠 시절
3.3.1. 2012 시즌3.3.2. 2013 시즌3.3.3. 2014 시즌3.3.4. 2015 시즌3.3.5. 2016 시즌3.3.6. 2017 시즌
4. 국가대표 경력
4.1. 제14회 인터콘티넨탈컵 대표4.2. 2000 시드니 올림픽 대표4.3. 제15회 인터콘티넨탈컵 대표4.4.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4.5. 제24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대표4.6.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4.7.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4.8.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대표4.9.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4.10. 2015 WBSC 프리미어 12 대표
5. 지도자 경력6. 라이언 사도스키 리포트7. 별명
7.1. 이대호 킬러
8. 기타9. 연도별 주요 성적

1. 소개

SK 와이번스, 롯데 자이언츠의 언더핸드 투수. 한 시대를 풍미한 대한민국 역대 최고의 정통 언더핸드 투수. 주로 구원 투수로 등판했으며 임창용, 오승환과 함께 대한민국의 대표 마무리 투수 중 한 명. 영문명은 Chong Tae-Hyon.[3]

SK 와이번스에서 전성기를 보내고 이적한 롯데 자이언츠에서는 노쇠화와 부상 때문인지 기대만 못한 성적을 냈다. 그럼에도 국제 대회에서는 가히 최종병기라고 불릴 만한 기량을 자랑한다.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산 증인.

2017년 은퇴 후 일본세이부에서 코치연수를 받고 2018년 동의대학교 야구부 코치로 재직중이다.

2. 플레이 스타일

타석에서 보면 정대현 선수 공이 얼마나 많이 움직이는지 말을 못합니다. 이 선수가 컨디션이 좋은 날 구속이 135km까지 나가는 날이 있는데, 그때는 진짜 정대현 선수의 공은 건드릴 수가 없어요."[4]
마해영.
정지원 : "선수 시절에 정대현 선수와 상대했을 때 어땠습니까?"
마해영 : "그냥 마운드에 정대현 선수가 있으면 대타로 바꿔줬으면 했어요"(…)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해설을 맡은 정지원마해영의 대담 중에서



완벽한 정통 언더스로 투수로, 고창성 등의 투수들은 언더인가 사이드암인가 논쟁이 오가기도 하지만 정대현은 논쟁의 여지없이 모두 언더핸드로 분류한다. 구속은 느려서 속구가 130km/h 초반대다. 물론 언더핸더임을 감안하면 그렇게 느린 편은 아니다. 하지만 제구력과 무브먼트가 아주 좋다. 뜬공보다는 땅볼이 매우 많으며, 덕분에 적은 이닝을 틀어막는 데 아주 적합하다.

정대현의 무브먼트는 특히 더 격렬해서 베이징 올림픽 야구 때 정대현과 불펜에서 호흡을 맞춰 본 포수 강민호는 "정대현 선배가 말하길, '형은 똑바로 가는 공이 없다. 직구 사인이 나면 공이 약간 휠 거다'라고 했다"라고 말할 정도로 볼 끝이 더럽다. 3루, 1루 덕아웃에서 볼 때 정대현의 공은 던지는 순간 아래로 살짝 내려 앉다가 위로 솟구친 뒤 홈플레이트 앞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정대현의 공을 받아본 지 얼마 안 된 포수들은 절대로 미트질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이유가 볼 끝이 몹시 더러워서 엄지손가락이 부러질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파일:external/lh6.googleusercontent.com/%25EC%258B%25B1%25EC%25BB%25A4.gif
이제는 볼 수 없는 SK 와이번스시절

파일:084b5d382052850f3d96187b56be02bc.gif
롯데 자이언츠시절

최고의 무기는 단연 씽카볼 싱킹 패스트볼.

궁내 채고의 씽카볼 투슈 국내 최고의 싱킹 패스트볼 투수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뒷받침용 구종으로는 싱커와는 반대의 무브먼트를 가진 일반 커브, 110km/h 후반대의 업슛성 커브[5], 스트라이크존 바깥쪽에서 안쪽 코너로 절묘하게 걸치는 백도어성 슬라이더 등의 변화구를 구사한다. 덕분에 전성기 정대현은 우타자들에겐 악몽같은 존재로 군림했었다. 좌타자들에겐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주로 사용하는데, 아무래도 우타자에 비해서는 좀 성적이 떨어진다.

완급 조절과 수싸움 역시 뛰어나다. 프로 생활 내내 보크를 단 한 번도 기록하지 않고 은퇴했다는 점도 특이한 점.[6]

단, 내구성이 좀 약한 편인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 단점은 더 심해지고 있다. 그래서 팀 전체가 처지고 불펜 사정이 특히 더 급하게 돌아가던 SK의 2010년 여름에도 정대현만큼은 투구수와 이닝을 꼭 지켰었다. 물론 지켜준 만큼 잘 막았지만. 정대현 본인은 유리몸이라는 시선에 대해 스탭들의 관리 차원이지 공을 못 던질 정도의 몸은 아니라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실제로 통산 등판 경기가 600경기가 넘고 순위로는 15위, 구원 등판 경기는 9위다. 결코 유리몸은 아니지만 단지 과도하게 굴리지 않았을 뿐이다. 김성근의 혹사를 비켜나간 거의 유일한 투수.

또한, 위에서 말한 내구성과 이어지는 부분으로 운동능력이 매우 떨어지는 편이다. 채드 브래드포드 스타일 투구폼과 맞물려 주자견제와 투수 수비가 매우 약하다. 몸이 둔하고 무릎 수술 경력으로 달리기가 힘들어 1루 커버도 매우 느린 편이었다. 땅볼유도형 투수로서는 치명적인 결점이지만, 이런 치명적 결점에도 불구하고 통산 2점대의 방어율을 기록한 것이 역설적으로 그의 공이 얼마나 위력적이었는지를 증명해 주었다 할 수 있겠다.

3. 선수 경력

3.1. 아마추어 시절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00903001257840B5.jpg
대학 선수 시절 (출처 : 포토로)
파일:external/photo.isportskorea.com/20000914124823494A3.jpg
국가대표 시절 (출처 : 포토로)

전라북도 군산 출신으로, 본인의 말로는 중학교 시절엔 불같은 강속구 투수였으나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사이드암으로 바꿨다고 한다. 군산상고 재학 중이던 1996년에 봉황대기에서 백차승과의 맞대결에서 승리하고 결승에 올라온 김수경의 인천고를 꺾고 군산상고를 우승시켰다. 그리고 2000년 경희대학교 재학 시절 아마추어 신분으로 시드니 올림픽 드림팀에 합류하여 미국전 2게임에 선발로 등판, 비록 편파 판정으로 승리를 따내진 못했지만, 각각 7이닝 무실점과 6⅔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여 '미국 킬러'란 별명이 붙었으며 동메달 획득에 기여했다. 단, 정대현은 이 때 병역특례를 받은 것이 아니고 원래 면제였다.[7]

3.2. SK 와이번스 시절

파일:1487428789_daehyun.jpg

3.2.1. 2001 ~ 2007 시즌

파일:external/www.sksports.net/Large_200107312315346184_510.jpg
팔이 없다. 자라나랏 팔! 양의지?
입단 초기 시절.

경희대 졸업 후 2001년 계약금 4억 7,000만 원에 SK 와이번스에 입단하여 주로 마무리 투수로 활동했다. 많은 이들이 잘 모르고 있는 사실이지만, 원래는 옛 연고 지역 팀인 쌍방울 레이더스의 고졸 2차 우선지명된 것으로, 쌍방울 해체 후 선수단과 지명권을 인수한 SK에 입단하게 된 것이다.[8]

입단 초기엔 '패스트볼이 너무 느리다.', '언더 보기가 귀한 국제 무대에서나 통하지 국내에서의 경쟁력은 없다', '선발로 뛰기에는 너무 단조롭다.'는 평도 많았고 출전 기회도 적었지만, 투구시 팔 각도를 조금 위로 올려 고치는 등네?? 피나는 노력 끝에 2004년부터 불펜중간계투 보직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기 시작했으며, 2007년에 팀에 김성근 감독이 부임하면서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김성근 감독은 많은 불펜 투수들 가운데 정대현을 주전 마무리 투수로 세우고 용병을 선발 투수(레이번, 로마노)로만 뽑는 결단을 내렸고, 이는 대성공을 거두어 78⅓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0.92에 27세이브를 세우며 SK의 수호신으로 자리잡게 된다. 참고로 국내 프로야구 역사에서 0점대 평균자책20세이브 이상을 한 시즌에 동시에 기록한 선수는 선동열과 정대현, 유동훈, 오승환까지 4명뿐이다. 2007년 이래 SK의 불펜진 운용을 벌떼야구라고 지칭한 데에서 나온 별명이 바로 여왕벌.

3.2.2. 2008 시즌

2008년에는 다소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언더핸드 투수의 특성 탓인지 몸 상태가 나빠진 까닭에 블론세이브 수도 치솟고, 특히 올림픽 직전인 7월엔 7점대 방어율을 기록하는 등 여러모로 망가진 상태였지만, 미국전 등을 의식해 우려 속에서 베이징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었다.

파일:/image/003/2008/08/13/NISI20080813_0007970645_web.jpg
베이징 올림픽 야구 경기에서는 원래 주력 마무리로 낙점됐으나 방어율 99.9라는 전설의 사진만 남기고 사라진 한기주, 배탈로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던 오승환을 대신해 중요한 고비에 등판해 상대 팀의 추격을 끊고 승기를 되돌리는 역할을 착실하게 수행함으로써 국제전에 강한 면모를 다시금 선보였다.

그리고 아마 최강 쿠바와의 결승전에서 류현진을 구원하여 등판[9]했고 놀랍게도 실실 웃으면서 너무나 편안한 모습으로 올라와서 야구 팬들에게 충격을 선사했다. 김경문 감독도 놀랐다고. 9회 1사 만루의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상대 타자는 쿠바 타선의 중심 타자인 율리에스키 구리엘.

시작부터 한복판에 스트라이크 2개를 꽂아넣어서 한국에서 야구 좀 봤다 하는 사람들의 99%를 식겁하게 했다. 허구연 해설도 순간 긴장.[10] 그리고 제 3구째에 아악~! 뜨블프레이! 뜨블프레이! 병살로 경기를 매조지하여 한국의 우승을 결정지었다.

당시 병살을 잡아내는 장면.
본격 애국자 모드 발동
허구연: "고의 씽볼 투슌데"[11]
한광섭: "저 오다가 정말 직각으로 하나 떨어져주면 좋은데요, 자 투나씽!" 딱! 앍! (유격수!) 뜨블프레이! 뜨블프레이! 고앵민! 고앵민! 아아아아앍! 우승이에요! 증대혀~! 하아아아아ㅏㅏ앍ㄺ~~~

등의 멘트 때문에 DC 야구 갤러리에서는 고의 싱볼러, 직각으로 불린다.

그 후 귀국해서 프로에서는 또 고전했다. 정말로 국제전에선 남다른 면모를 보이는 듯. 2008 시즌 성적은 방어율 2.67에 4승 3패 20세이브, 블론세이브가 7개나 되는 부진한 성적이었으나 한국시리즈에서는 올림픽 당시로 돌아간 듯이 맹활약했다. 특히 3차전에서 역시 올림픽 때와 마찬가지로 9회 1사 만루의 상황에 등판, 그 해 타율, 출루율 1위, 최다 안타를 기록한 김현수를 상대로 그 또한 병살을 잡고 승리를 따내어 당시 언론에서는 올림픽에서 중요한 찬스에서 활약한 두 선수가 명암이 엇갈렸다고 평했다.[12]

하지만 한국시리즈 우승 후에 맞은 아시아 시리즈에서는 초라한 성적을 내는 바람에 팀은 아시아시리즈 등정에 실패했다. 이건 대만 퉁이전에서 앞서 선발로 나왔다가 난타당하며 회생불능으로 불을 질러놓은 채병용의 탓이 크지만, 정대현의 구위도 상당히 떨어져 있었던 것도 사실.

3.2.3. 2009 시즌

2009년 각 구단 감독들의 새해 덕담을 다룬 기사에서 김성근 감독이 "올해는 정대현이 세이브왕이 될 것"이라고 하였는데, 팔꿈치 부상이란 악재로 장기간 결장했다. 정대현이 없는 사이 마무리 공백은 이승호가 메웠다. 다행히도 빠르게 복귀에 성공해 이승호 앞에서 셋업맨으로 주로 뛰었고, 시즌 후반기 이승호가 구위저하로 부진에 빠지자 클로저로 돌아가는 등, 보직을 오가면서 불펜의 중추로 맹활약했다. 시즌 최종 성적은 56경기 52.2이닝 2승 3패 10세이브 13홀드 방어율 1.20. 심지어 피홈런이 적어서 FIP는 그 2007년보다도 미세하게 낮다.[13]

3.2.4. 2010 시즌

2009 시즌 종료 후 무릎 수술에 들어갔고 재활에 전념하다가 2010년 5월 7일 부로 1군에 복귀했다. 6월 10일, 김광현이 대 삼성전에서 아웃카운트 하나 남겨놓고 노히트 노런의 대기록을 안타 때문에 이루지 못한 후 인터뷰에 "오늘 너무 수고했다. 개인적인 소견은 신명철에게 힘을 빼고 승부했어야 했다. 다음 기회에 꼭 이루길 바란다. 수고했고 덕분에 잘 쉬었다"(…)라는 말을 남겼다.

2010년 7월 20일, 복귀 이후 이어졌던 26경기 무실점 기록이 송지만에게 3루 강습 안타를 맞고 깨졌다. 이후 송지만에게 교회오빠라는 별명이 생겼다. 부상 위험 때문에 작은 이승호가 마무리를 맡았기 때문에 이 해에는 주로 중간계투로 활약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0년 한국시리즈 4경기 중 3경기에 등판하여 1⅔이닝 2피안타 1피홈런 3탈삼진 1실점 1자책점 평균자책점 5.40, 1홀드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4승으로 우승했다.

3.2.5. 2011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정대현(1978)/2011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시즌 후 FA 자격을 얻어 메이저리그 진출을 노렸으나 성사되지 못하고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3.3. 롯데 자이언츠 시절


3.3.1. 2012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정대현(1978)/2012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3.2. 2013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정대현(1978)/2013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3.3. 2014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정대현(1978)/2014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14년 5월 3일 SK전에서 100홀드를 기록하면서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100홀드-100세이브를 동시에 달성하였다.

3.3.4. 2015 시즌

2014 시즌 후 팔꿈치 수술을 받아 5월 초 복귀 예정이었는데, 실제로는 6월 말이 되어서야 실전에 투입되었다.

6월 24일 화성 히어로즈와의 퓨처스 경기에서 첫 실전 투구를 한 뒤 7월 26일 상무전까지 총 9경기 9 1/3이닝 탈삼진 6개 1실점을 기록했다.

7월 28일 1군 엔트리에 복귀하였고, 같은 날 사직 LG전에서는 7회 초 무사 1루 상황에 강영식 다음으로 등판하여 2K 퍼펙트로 이닝을 마무리하면서 성공적인 복귀를 알렸다.

하지만 8월 2일 홈런 포함 3실점으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8월 8일 한화전에선 8회에 등판해 1볼넷 2홈런 3실점(승계주자-홍성민 2점 제외)으로 아웃카운트 하나 잡고 강판. 조인성에게 쓰리런 홈런을 얻어맞으며 BS를 기록한 것이 이 날 재앙의 시초였다.

그 후로 8월 13일부터 9월 27일까지는 내내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그 사이 8월 15일엔 첫 승을, 9월 1일에 시즌 2승을 거뒀다. 롯데의 가을야구에 한 줄기 희망이 되었고, 실제로 극적인 가을야구 막차 티켓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이었지만, 9월 중순부터 델동님의 신묘한 운용으로 DTD 6연패를 당하면서 사실상 가을야구는 물건너갔다.

그 와중에도 방어율은 꾸준히 떨어져 2.6이 되었다. 2015 시즌 롯데 불펜이 롯데시네마라는 별칭을 얻을 정도로 불을 많이 질렀던 만큼 롯데 팬들의 심정은 내년엔 제발 풀타임으로 밥값 좀 해 달라고. 2015년 최종 성적은 ERA 2.95 19경기 2승 1패 3홀드 3세이브 18 1/3이닝 WHIP 1.25로 경기를 많이 뛰지는 못했으나 클래스는 아직 여전함을 보여준 시즌이었다고 할 수 있다.

10월 7일 발표된 프리미어 12 대표팀 최종엔트리에 선발되었다. 선발된 투수중에서 유일하게 20이닝 이하의 활약만으로 선발되었다. 프리미어 12 직전의 평가전인 2015 서울 슈퍼시리즈 2차전 8회말에 등장하여 공 여덟개로 쿠바 타선을 완벽하게 틀어막으며 자신이 국제용 투수라는 것을 직접 증명했다. 대회 내에서 포지션은 마무리 이현승 앞을 든든하게 틀어막는 셋업.

여담으로 쿠바 대표로 정대현의 최대 피해자 율리에스키 구리엘이 나왔는데, 덕아웃에서 후배들이 삼진 당하는 장면을 보며 어이가 없었는지 웃기만 했다(...). 그리고 구리엘 본인도 11월 16일 8강전에서 정대현과 다시 만났는데, 2구만에 또 유격수 땅볼로 물러나며 7년만의 해후는 막을 내렸다.

2015 시즌을 끝으로 4년 계약 기간이 끝났지만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한 기간이 길었던 관계로 FA 재자격을 얻지 못해 시즌 후 1억 8,000만 원 삭감된 3억 2,000만 원에 연봉 계약을 했다.

3.3.5. 2016 시즌

일단 아프다는 이야기 없이 시즌을 시작했다. 롯데 팬들이 프리미어 12에서 한 활약 반만 해줘도 좋겠다고 수근대던 중 개막했고, 4월 1일 개막전에서 2:0으로 팀이 앞선 7회 1사 1루에서 등판. 견제구가 빠지면서 1루 주자 서건창이 3루로 진루했고 이택근에게 희생 플라이를 내주면서 실점했다. 이후 강영식으로 교체되었다.

4월 2일에는 밀어내기 볼넷을 주면서 패배에 공헌했다.

4월 5일 사직 홈 개막전에서는 오랜만에 솔리드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7회 1사까지 완벽한 투구를 보였던 박세웅이 강영식으로 교체되었고, 강영식은 박정권을 1루수 땅볼로 잡아내는 듯 했으나 베이스커버가 미묘하게 늦는 바람에 출루를 허용했다. 하지만 정대현이 올라와 이닝을 종료시켰다. 박세웅과 손승락의 호투에 가렸지만 팀 승리의 디딤돌이 되었다.

2016 시즌 들어 특히 더 불을 지르는 모습을 많이 보였는데, 의외로 5월 20일 기준 홀드 7개로 공동 4위다. 문제는 이 홀드가 한두 타자 겨우 아웃카운트 잡고 주자를 스코어링 포지션에 허용한 다음 후속 투수가 잘 막아서 기록했다는 것. 승계주자가 있는 경우엔 아웃카운트를 잡고 실점하지 않은 경기가 단 두 경기에 불과하다.

5월 26일 LG전에서 선발 투수 레일리의 뒤를 이어 7회 1사후 등판하여 잘 막고 내려갔고 이후 팀이 역전하면서 첫 승을 기록했다.

6월 3일 NC전에서 강영식이 남긴 두명의 승계주자에 점수를 허용하며 결국 패배의 원흉이 되었다. 결국 조원우 감독도 인내의 한계가 온 건지 다음날 바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되었다. 명목은 골반 부상이지만, 성적만 보면 1군 마운드에 남는 것이 신기한 수준. 이 날 기준 평균자책점이 4.40, 승계주자 실점은 9점, 승계주자 실점율은 .600이었다.

그런데 예상을 깨고 7월 29일 이정민을 대신해 1군에 복귀했다. 수원 kt전에 6회말 2사 1, 2루 상황에 등판해서 황재균의 호수비로 분식회계 없이 넘어갔고, 8회 2사까지 무실점으로 틀어막는 활약을 펼쳤다. 이게 부활의 발판인지 일시적인 일인지는 미지수.

그리고 8월 4일 넥센전에서 8회에 등판하자마자 6월 19일 이후로 홈런이 없던 김하성에게 시즌 15호 홈런을 맞고 윤석민에게도 안타를 허용해 단 공 4개만 던지고 강판당했다. 그리고 8월 8일부로 다시 2군행. 이후로는 1군 등판이 없는데, 이번엔 윤길현이 정대현의 포지션을 이어받아서 롯데 팬들의 속을 제대로 뒤집어놓았다(...). SK투수출신들의 롯데 속 뒤집기

2016년 성적은 결국 빼도박도 못하는 먹튀. 나이가 들어가면서 구위와 무브먼트가 하락하면서 볼카운트 싸움에서 밀리고, 결국 볼넷으로 출루시키거나 억지로 존에 집어넣고 맞아나가는 경우가 늘었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노쇠화와 연결된 문제라는 것. 곧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인지라 나아질 가능성도 그렇게 크지 않다. 언더핸드 투수가 드물어서 '낯설다'는 장점을 활용할 수 있는 국가대항전과는 달리 국내에서 정대현은 분석당할대로 당한 투수라 통하지도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3.3.6. 2017 시즌

1월 말이 되도록 연봉 계약을 못한 것은 물론[14] 전지훈련 명단에서도 제외되었다. 1월 31일, 2억 삭감된 연봉 1억 2천에 계약했다고 한다#

그러나 한 번도 1군에 오르지 못한 채 시즌을 마감하게 되었다. 롯데 불펜이 박진형-조정훈-손승락의 필승카드를 갖추었기에 특별히 올릴 필요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시즌이 종료된 후, 17년 간의 프로 생활을 끝내고 은퇴했다. 은퇴식을 치르지 못해 아쉽기보단 본인 스스로 2군에서 마음으로 은퇴식을 치뤘기에 후회는 없다고.

4. 국가대표 경력

특이한 투구 폼의 생소함과 불펜투수로서의 확실한 실력을 갖춘 정대현은 2006년 이후 선수 선발이 다른 곳에 방점이 찍혀 있던 아시안 게임 두 번을 제외하고, A급 국가대표팀이 참여하는 모든 국제대회에 선발되었다.

1999 14회 인터콘티넨탈컵, 2000 시드니 올림픽, 2002 15회 인터콘티넨탈컵,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07 제24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2008 베이징 올림픽 대륙별 플레이오프, 2008 베이징 올림픽,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2015 WBSC 프리미어 12로서, 2015시즌까지 총 9개 대회이다. [15]

최상급 선발진이 출전하지 않은 대륙간컵을 제외한 시드니 올림픽부터 1회 프리미어 12까지의 정대현의 성적은 34이닝 5실점로서 평균자책점 1.32이다. 내구도의 문제가 있기에 길게 던지지는 못하지만, 궁내 체고의 싱카볼 투수로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영광의 순간들에 크게 기여한 핵심 불펜 요원이였으며 전설이 되었다.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은 정대현은 무적이 된다 카더라

이런 신기할 정도의 국제성적은 아무래도 정대현 자체가 좋은 투수이고(통산 방어율이 2.13인 투수다!) 별로 흔하지 않은 투구폼인 언더핸드 투수여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16]정규 시즌 때는 약점인 내구도나 체력이 드러나지만 단기 승부인 국가대표 때는 그런 면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덕도 큰 듯.

4.1. 제14회 인터콘티넨탈컵 대표

정대현이 처음으로 국가대표가 된 것은 호주에서 열린 1999년 14회 인터콘티넨탈컵(대륙간컵)으로서, 1~3학년생들 위주로 출전한 이 대회에서 정대현은 네덜란드와의 경기에서 8.2이닝 10탈삼진 무실점을 비롯해, IBAF 공인 경기[17]에서 역대 처음으로 쿠바를 이기는 데[18] 중계로 2이닝을 던지면서 혁혁한 공로를 세웠다. 총 성적은 18.1이닝 3실점 21탈삼진.

4.2. 2000 시드니 올림픽 대표

파일:PqafY1M.jpg
이런 대륙간컵에서의 호투를 기반으로 정대현은 쌍방울 레이더스에 지명된 상태였지만, 아직 대학생 신분인 유일한 아마추어 선수로서 2000 시드니 올림픽에 선발된다. 정대현은 미국과의 예선전과 준결승전 2경기에 모두 미국 선발 로이 오스왈트 상대로 선발로 등판해 7이닝 5탈삼진 6피안타 무실점, 6.1이닝 3피안타 6탈삼진 2자책을 기록하며 호투했으나, 두 경기 모두 결국 패했다. 하지만, 결국 한국이 처음으로 올림픽 메달을 획득하는데 크게 기여했으며 최종 성적은 13.1이닝 2실점 11탈삼진.

4.3. 제15회 인터콘티넨탈컵 대표

2002년, 정대현은 아마와 프로가 섞인[19] 15회 인터콘티넨탈컵 대표팀에 선발된다. 쿠바에서 열린 이 대회에서 정대현은 도미니카와의 예선전에서 9이닝 11탈삼진 1실점으로 완투를 하기도 하면서 호투했으나, 아쉽게도 쿠바와의 결승전에서 7회 투런홈런을 맞아 6이닝 2실점을 함으로서 우승을 하지는 못했다. 최종 성적은 20.2이닝 3실점 24탈삼진.

4.4.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

파일:external/post.phinf.naver.net/mug_obj_148642929200059079.jpg

2006년 제 1회 WBC에 선발된 정대현은 예선 1라운드 중국전 1이닝 무실점 2탈삼진, 예선 2라운드 멕시코전 1이닝 무실점 3탈삼진, 미국전 1.1이닝 2실점 1탈삼진으로, 널널한 중국전을 제외하고는 동아시아권 팀인 일본이나 대만전에서는 기용되지 않았다. 미국전에서는 9회초에 켄 그리피 주니어에게 적시타, 알렉스 로드리게스에게 희생 땅볼을 내주면서 2실점 했다. 최종 성적은 3.1이닝 2실점 6탈삼진.

4.5. 제24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대표

파일:200712022305341101_1.jpg

2007년, 아시아 야구 연맹에 배정된 1장의 베이징 올림픽 본선 진출티켓이 걸려있었던 12월 대만에서 열린 2007 제24회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한국대표팀에 2007시즌 SK의 첫 우승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은 정대현은 국가대표 마무리로 선발되었다. 이전까지는 언더핸드의 낯섬을 무기로 미국이나 중남미팀을 상대로 등판하는데 역할이 한정되었지만, 리그에서도 인정받은 안정감으로 이 대회부터는 동아시아 팀과의 경기에도 등판하기 시작했다. 필리핀과의 경기는 의미가 없는 상황에서 대만전에서 9회말 0.2이닝 무실점으로 경기를 매조지했고, 일본전에서 9회초 등판해 1.0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한국은 결국 2위로 올림픽 진출에 일단 실패했다. 최종 성적은 1.2이닝 무실점.

4.6. 2008 베이징 올림픽 대표

파일:/image/001/2008/08/16/PYH2008081605050001300_P2.jpg

2008년 3월초에 3장의 출전권을 두고 있었던 베이징 올림픽 대륙별 플레이오프 국가대표팀에도 팀의 마무리로서 참가하였다. 한때, 오른쪽 팔꿈치와 왼쪽 무릎 통증을 호소하면서 실전에 한동안 나서지 못해 역할을 해줄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부호가 붙었다. 하지만, 디미디어 티렉스싱농 불스와의 평가전에서 정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멕시코전에서 9회초 등판해 1.0이닝 무실점 삼자범퇴 마무리, 대만전에서 1점차 8회말 2사 2루 상황에서 등판해 9회 2사 1,2루 위기에 몰리기도 했지만 1.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내면서 팀의 마무리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최종 성적은 2.1이닝 무실점.

2008년 시즌 중 전 시즌과 달리 부상등으로 인해 한참 부진하던 정대현이 과연 제대로 된 활약을 해줄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 한국이 결승에서 쿠바와 맞붙었을 때 류현진이 8회까지 잘 던지고 9회까지 올라왔으나 1사 만루 상황을 만들었다. 이때 만루가 되는 볼넷에 포수 강민호가 볼판정에 항의하자 퇴장 명령이 떨어졌다. 문제는 올라올 포수가 없었던 것인데, 부상을 안고 있던 진갑용이 올라오면서 김경문 감독에게 정대현을 마무리로 추천했다고 한다. 김경문은 당시 윤석민을 올리려 했는데 왜인지 진갑용 말대로 정대현을 올렸다고. 그 결과는 다들 아시다시피. 참고로 윤석민은 당시 매우 긴장하고 있었는데, 진갑용이 보기에 정대현은 전혀 긴장하고 있지 않았다고 한다.[20] 그리고...


허구연: 고의 씽볼 투…(한광섭: 네!)
한광섭: 자 오다 정말 직각으로 하나 떨어져 주면 좋은데요. (투수 투구동작) 자, 투나씽!
(타자 타격)
한광섭(허구연): 유격수! (아악!) 잡았어요! (뜨블프레이! 뜨블프레이!) 어! 1루로-!!(고엥민! 고엥민-!!) 아아악-!![21]
허구연: 아아앆-!! 우승이에요~! 증대여~~!
허구연: 하으아아아아아아!!! 샤우팅이라기 보다는 비명, 거의 혼절하셨다
한광섭(허구연): 대한민국~! (예~!) 우승입니다~! (예~! 우승이에요!) 베이징 올림픽 야구 우승! 대한민국!!
-MBC 중계진의 우승 순간 멘트

한국 올림픽 야구 금메달의 마침표를 장식하며 직각갑이라는 별명을 획득했다.

경기별 성적은 예선 미국전 중계로 2.2이닝 1실점, 예선 일본전 0.2이닝 무실점 마무리, 결승전 쿠바전 0.2이닝 무실점 마무리로, 최종 성적은 4.0이닝 1실점 7탈삼진.

4.7.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

파일:/image/001/2009/03/08/PYH2009030806740001300_P2.jpg

2009년 제 2회 WBC에도 출전한 정대현은 예선 1라운드 중국전 0.2이닝 무실점, 예선 2라운드 멕시코전에서 0.2이닝 무실점 1탈삼진, 준결승 베네수엘라전 0.1이닝 무실점 1탈삼진으로 불펜의 핵심요원중 하나로서 활약하였다. 최종 성적은 1.2이닝 무실점 2탈삼진.

4.8.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대표

파일:external/imgnews.naver.com/NISI20101116_0003689860_web.jpg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은 KBO가 늘상 방점을 두던 선수 선발 기준을 소홀히 한건 아니지만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의 부진을 씻어야 한다는 과제가 있었고 자신의 개인적인 목적으로도 동기부여가 확실히 되던 선수들과 그 선발기준 대상자는 아니지만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선수들을 선발하였고, 정대현 또한 포함되었다. 무릎 수술을 받고 7월에야 복귀한 정대현은, 공 8개로 타자들을 그야말로 농락하면서 파키스탄전에서 1이닝 무실점했고, 준결승 중국전에 마무리로 등판해서 0.1이닝 무실점을 함으로서, 딱 두 경기만 등판하고 금메달 포상금 2억과 함께 추가적인 연금포인트를 획득했다.(...)[22] 최종 성적은 1.1이닝 무실점.

4.9.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

파일:/image/311/2013/02/28/1362056637692_59_20130228222104.jpg

2013년 제 3회 WBC에서는 본선 1라운드 네덜란드전에서 0.2이닝 무실점, 호주전에서 0.2이닝 무실점 1탈삼진으로 본선 1라운드 3경기 중 2경기에 나왔으나, 팀의 모종의 사정으로 인해 더이상 등판할 기회가 없었다. 최종 성적은 1.1이닝 무실점 1탈삼진.

4.10. 2015 WBSC 프리미어 12 대표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33669_46801_2144_99_20151106085907.jpg

커리어 사상 마지막 대표팀. 2015년 프리미어 12 국가대표팀에도 당연스럽게 선발된 정대현은 어느새 국가대표팀에서 최고참이 되었다. 팔꿈치 수술과 재활로 인해 시즌 중에는 딱히 큰 역할을 하지 못했지만, 국가대표 체질인지 평가전을 겸한 서울 슈퍼시리즈에서 베이징 기억이 남아있는 쿠바 대표팀을 괴롭히며(....) 건재함을 알렸다. 예선 도미니카전 8회말 등판하여 1이닝 무실점 1탈삼진, 예선 멕시코전 8회말 1사에 등판해 1.1이닝 무실점, 8강전 쿠바전 8회말 1사에 등판해 율리에스키 구리엘로부터 베이징에서의 그 코스로 유격수 앞 땅볼을 유도한걸 포함해 1.1이닝 무실점 2탈삼진, 준결승전 일본전 9회말 등판해 0.2이닝 무실점 1탈삼진, 결승전 미국전 8회 1사에 등판해 0.2이닝 무실점 1탈삼진으로 최고참이자 불펜의 핵심 요원으로서 역할을 다하면서 우승에 이바지하였다. 이 대회에서 정대현 스스로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준결승에서 한국이 4-3으로 역전에 성공한 9회 말에 올라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타자였던 야마다 테츠토를 상대로 바깥쪽으로 걸치는 제구로 거의 가지고 놀다시피 하며 삼진을 빼앗아 반격의 예봉을 꺾어버렸다. 그 해 트리플 쓰리를 달성한 야마다가 공격을 풀어주기를 바랬던 일본 입장에서는 충격적인 결과였다.[23]최종 성적은 5이닝 무실점 5탈삼진.

5. 지도자 경력

은퇴 후 일본으로 건너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은 뒤 2019년부터 정보명 동의대학교 신임 감독의 요청을 받고 동의대학교 야구부 코치로 선임되었다. # 몸집이 퉁퉁해졌다 아직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 정식 지도자로 등록되지는 않은 상태.

6. 라이언 사도스키 리포트

  • 세계 최고의 우완 언더핸드 중에 하나. 82-84마일의 느린 속도에도 불구하고, 직구의 무브먼트와 제구력, '프리스비' 슬라이더와 스크루볼 타입의 체인지업이 느린 속도를 만회하고도 남는다. 한국의 오른손타자들에게는 악몽 같은 존재였다. 구원투수로만 기용된다. 좌타자들은 상대적으로 나은 성적을 올렸다.
  • 채드 브래드포드형의 투구폼 스타일의 투구폼 때문에, 슬라이더가 떠오르면서 오른손타자의 바깥쪽으로 꺾인다. 좌타자에게도 백도어성으로 던진다. 체인지업은 좌타자에게만 던지는데 가장 약한 구질이다.
  • 높은 공을 던지도록 유도하고, 센터 방면으로 타구를 보내려는 타자들이 그나마 성공적이었다.
  • 가장 운동능력이 떨어지는 선수 가운데 하나다. 무릎 수술을 받았고 움직임이 둔하다.

7. 별명

가장 대표적인 별명은 역시 여왕벌. SK 시절 김성근 감독의 운영을 벌떼야구라고 불렀는데 그 중 가장 관리받으면서 마지막에 나온다고 해서 여왕벌이 되었다. 여기서 여왕벌을 그대로 영어로 옮긴 '퀸비'(Queen Bee), 롯데 이적 후 생긴 여왕갈매기 등의 별명이 파생되었다. 롯데 이적 후 먹튀가 되자 불나방으로 격하되었다.

2008년 베이징의 활약으로 '직각갑', '궁고의 카볼 투수' 등등의 별명이 생겼다. 이 때문에 2012년 SK로 이적한 임경완의 별명 중 '작각갑'이 생겼다. 그런데 2013년 이후 정대현이 먹튀가 되면서 이번엔 정대현이 정경완, 증경완, 증대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롯데 이적 후엔 롯데(or 꼴데)+정대현으로 '롯대현', '꼴대현', 부상으로 드러누우면서 '침대현', 2012년 이후 꼴갤 한정으로 혀엉..., 머북이 등의 별명들도 붙었다.

7.1. 이대호 킬러

이대호의 담당 일진. 중요한 상황에서 이대호가 타석에 들어서면 전담 투수로 나올 때가 있었다. 이 때문에 야갤에서 정대현을 부르는 별명이 생겼으니 이름하여 돼지 도살자. 혹은 돼지도 살자 미국에서도 돼지 도살자돼지도 살자 버전이 있다. 이대호9경기 연속 홈런타격 7관왕을 기록하는 등 타격 능력이 절정에 이르렀던 2010년에도 어김없이 9타수 무안타로 막아냈으며, 6월 27일 사직경기 6회말 상황에서 김광현이 무사 1, 2루 상황을 자초하고 다음 타석에 이대호가 들어서자 어김없이 구원 등판, 깔끔한 6-4-3 병살타를 유도하고 결국 그 이닝을 무실점으로 마무리했다. 8월 18일 경기야말로 백미. 1사 만루에 이대호 타석이 되자 당연하다는 듯이 정대현이 등판, 이대호 한 명 만을 잡아낸 후 내려갔다. 이쯤되면 불쌍할 지경. 이대호도 "대현이 형만 없으면 4할에 50홈런은 칠 수 있었다" 라고 한탄하기도.[24]

2011년 6월 14일 경기에서는 9회초 2아웃 상황에서 이대호가 나오자 어김없이 등장. 그 결과는 초구 쳐서 투수 앞 땅볼…. 이대호:아 쫌!!! 야갤에서는 시구 드립이 흘러 넘쳤다.시구 정대현, 시타 이대호 시구 도축[25] 하지만 다음날 경기에서 3년 9개월(…)만에 안타를 허용했다. 그래도 후속타자 강민호를 병살로 잡아내서 위기 탈출. 돼지야! 내가 안타를 내줬던건 병살타를 잡을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2루에서 돼지를 잡는 고급도살!! 이대호: "대현이 형이 마운드로 나올 땐 단 한번도 홈을 밟아보지 못했어요..."

2011년 7월 8일 문학 경기에서 다시 만났다. 7회초 김주찬손아섭의 안타로 무사 1, 3루 상태에서 이대호가 등장하자 어김없이 정대현이 등판했다.. 결과는 이대호의 희생플라이로 1점 획득. 하지만 이미 6회말에 진명호가 불을 질러 7점을 내주면서 이미 승부가 기운 상태인데다 이대호 이후 강민호와 대타 홍성흔을 각각 우익수 플라이와 삼진으로 잡아내며 고비를 넘겼다.

그리고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도 이대호에게 동점 적시타를 허용하였다.

2013년 작가본능을 발휘하기 시작하자 한맺힌 모 롯데팬의 뉴스 댓글 曰
"정대현 이 새끼는 롯데랑 원수졌나 롯데에 없을 때는 돼지 타율 다 깎아먹더니 롯데 와서는 경기 다 쳐말아먹고 진짜 롯데한테 무슨 원수를 졌냐"

2017년 이대호가 롯데로 복귀해 같은 팀이 되며 마주칠 일이 없어졌다. 그런데 kt의 동명이인 투수를 상대로 롯데 타선이 폭발하는 동안 이대호가 단 하나의 안타도 때려내지 못하여 오랜만에 회자되었다.

어느 야구 동네에서는 한국선수가 많이 거쳐간 팀 타선을 단체로 호구잡는 자가 있다.

8. 기타

  • 파일:external/pds18.egloos.com/f0018015_4e1a79974426e.gif
    수싸움이 굉장이 능한 편. 1루에 대주자 양종민이 나가 있자 주자 견제를 할 거라는 싸인을 준 후 견제.[26] 1-3 불리한 볼카운트에서 양종민은 도루를 시도했고 결국 양종민은 도루에 실패했다. 또한 정상호 문서에도 있지만, '상호야 생각을 해 생각을' 짤방으로 유명하다.
  • 여담으로 오승환만큼이나 표정이 없다. 그래도 팬서비스는 꾸준히 해주는 모양. 롯데 시절에도 특유의 무표정으로 무심한 듯 시크하게 해줄 건 다 해주었다. 2008 베이징 올림픽 시절에 이진영이 썼던 베이징 일기에 따르면, 정대현이나 오승환이나 떼놓으면 말이 없는데 붙어 있으면 뭔 말을 그렇게 조잘조잘 많이 한다고 한다(...). 정대현 본인도 오승환과 친한 편이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고향이 비슷하고 마무리 투수라는 보직이 겹쳤어서 그런 듯.
  • 인터뷰를 잘 안 하는 것같다. 영상 찾기가 쉽지가 않다.
  • 프리미어 12 결승전 해설을 하던 역시나 국가대표 단골이었던 이승엽은 정대현이 극히 말수가 적다고 하면서, 나중에 하이라이트를 보고서야 정대현도 같이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 출전했던걸 알았다는 드립을 치기도 했다 (...) 사실일 지도... 진실은 저 너머에...
  • 경희대 재학 시절, 선배 홍성흔의 방졸이었다. 자고 있는 정대현을 깨워서 라면을 끓어오게 했는데 라면 하나는 기가 막히게 끓였다고 극찬한 바 있다. 관련 기사 그런데 사실 홍성흔의 나쁜 일면을 볼 수 있는 일화이기도 하다. 말수 적고 별다른 불평도 없는 편인 정대현이 홍성흔에게 "너무 맞았다"고 말한 적도 있을 정도니...
  • 직각갑이라는 별명 때문에 정대현과 비슷한 스타일을 구사하는 언더핸드 투수들에게 -각갑이라는 별명이 붙는 경우가 있다. 칰각갑, 작각갑[27], 족각갑 등등...
  • 야외 구기종목인 야구 선수임을 감안하면 꽤 하얗다. 다른 선수들 사이에 있으면 혼자 둥둥 떠보일 때도 있을 정도. 피부가 꽤 좋은 듯.

9.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1 SK 와이번스 18 16⅔ 0 0 0 0 5.40 19 11 20
2002 24 42 1 0 0 0 3.21 37 11 30
2003 37 51 4 3 2 8 2.29 33 20 34
2004 52 69⅓ 2 3 2 16 2.34 62 19 50
2005 20 24⅓ 1 0 3 6 0.37 10 6 18
연도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06 59 74⅓ 8 4 15 11 1.94 55 26 52
2007 60 78⅓ 3 2 27
(3위)
3 0.92 50 32 65
2008 49 60⅔ 4 3 20
(4위)
0 2.67 51 25 50
2009 56 52⅔ 2 3 10 13
(4위)
1.20 40 21 43
2010 49 45 4 1 4 8 1.40 31 8 47
2011 53 54⅔ 3 3 16
(5위)
11 1.48 43 28 39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사사구 탈삼진
2012 롯데 자이언츠 24 28⅓ 2 0 1 5 0.64 12 8 26
2013 58 51⅓ 5 4 1 16
(5위)
3.33 56 29 34
2014 60 42 4 2 2 13 4.07 40 19 27
2015 19 18⅓ 2 1 3 3 2.95 16 9 17
2016 24 17⅓ 1 0 0 8 5.19 24 13 7
2017 1군 기록 없음
KBO 통산
(15시즌)
638 709 46 29 106 113 2.13 555 272 552


[1] 지명권 양도로 SK 와이번스 입단[2] 흔히들 시드니 올림픽으로 인한 예술체육요원이라고 알고 있는데,이미 군대를 면제받은 상태에서 시드니 올림픽에 참여한 것이다.[3]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 맞춰 적은 것으로(반달점 bréve는 빠졌지만), 2000년 개정 이전 당시 표기법에 맞게 적었으나 표기법에 맞춰 쓰는 사람이 오히려 적어서 특이하게 보이는 경우 중 하나다.[4] 135km가 프로선수치고 뭐가 빠르겠냐고 하지만, 정대현은 공이 느린 대신 무브먼트가 매우 좋다. 그리고 보통 언더핸더들은 오버핸드들과 구속 비교 시, +10km로 쳐준다.[5] 싱커가 땅볼 유도용으로 쓰인다면 업슛성 커브는 주로 헛스윙 유도용으로 쓰이는 또 다른 필살기다. 솟아오르는 정도가 심해, 쳐도 내야 플라이에 그친다.[6] 사실 언더핸드라 견제 자체가 상당히 힘들기도 하다. 프리미어 12선동열이 굳이 김인식과 상의해서 좀 더 견제하기 편한 좌완 투수인 이현승으로 바꾼 것만 봐도...[7] 정대현이 이 때 병역 특례를 받은 것으로 나온 기사가 몇 개 있으나 ## 다른 기사들에는 정대현이 아닌 박진만이 들어가 있다.##(같은 사람이 쓴 기사로 2008년 3월과 8월에 쓴 것인데, 앞 기사에서 이미 방콕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병역특례를 받은 홍성흔, 원래 면제인 김수경을 병역 특례를 받은 것으로 넣었다가 지적을 받았는지 뒷 기사에서는 바로잡았다.) 참고로 박진만은 2000년 초에 아버지가 병역 면제를 브로커에게 청탁한 일로 인해 면제가 취소되었다가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로 정식으로 특례를 받았다. 박진만 자신은 고교 시절 유급의 원인이었던 무릎 부상 때문에 면제가 됐다고 주장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언급을 꺼리고 있다. 그리고 정대현이 병역특례를 받은 게 맞았다면 기초군사훈련을 이수했다는 기사가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8] 현재 SK에 뛰고 있는 선수들 중 쌍방울의 유산으로 박정권이 있다.[9] 원래 코칭 스탭에서는 윤석민에게 콜했는데 진갑용이 '감독님, 대현이가 좋습니다'라고 해서 올라왔다.[10] 정작 SK 와이번스 관계자들은 심드렁했다는데, 훗날 밝힌 이유는 "대현이는 모든 공이 다 실투예요." 마무리 투수로서 절대 뛰어난 제구가 아님에도 대담한 승부를 바탕으로 좋은 성적을 올린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11] 사실 정대현이 던진 초구와 2구는 모두 슬라이더였다. 그리고 2구가 실투였다는 건 함정[12] 그리고 베이징 올림픽 야구 정대현이 병살 잡는 장면의 음성을 씌운 플짤이 나돌기도 했다. 완벽한 싱크로에 다들 감탄.[13] 2007년 2.55, 2009년 2.54[14] 등록일수 미달로 2년 연속으로 FA자격 재취득에 실패했다.[15] 2007년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와 베이징 올림픽 대륙별 플레이오프는 베이징 올림픽 출전권과 관련된 대회라 베이징 올림픽 하나로 묶을수도 있을 것이나, 각 대회가 열리는 기간에 텀이 있었으며, 대회마다 로스터 변경이 있었기에 별도로 기재한다.[16] 대표적인 예가 그를 상대한 구리엘이다. 베이징 올림픽의 병살로 별 거 없는 타자 취급 받지만 쿠바에서는 특급 스타인데다 2017년 월드시리즈 우승 멤버로 나름의 활약을 보인 엄연히 메이저리그 주전급의 실력을 가졌음을 증명한 타자다.[17] 올림픽, 세계야구선수권=야구 월드컵, 인터콘티넨탈컵. 당연히 이때는 WBC나 프리미어 12가 없었다.[18] 모든 국제대회로 확대하면 1978년 할렘대회에서 승리한적이 있다.[19] 프로 14명, 아마 10명. 1977년 니카라과 대회 이후 첫 우승을 노리던 대회였고, 프로선수는 채병용과 같은 신인부터 송지만과 같은 리그 최고급 선수나 장원진같은 고참급까지 골고루 선발되었다.[20] 정작 진갑용김경문 감독에게 정대현을 추천하고는 아차 싶었다고 한다. 김경문 감독이야 선수 기용에 관해 본인이 결정하는 편인데, 그런 감독이 덜컥 본인이 추천한 선수를 바로 올렸으니...[21] 사실 이 부분은 허구연의 샤우팅이 워낙 커서 한광섭의 중계는 잘 들리지 않는다…[22] 정대현은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20점),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90점)로 이미 최상한선을 채워 이를 일시불로 수령하지 않았다면 월정금 100만원을 받으며, 최상한선 110점을 초과한 광저우 아시안 게임 금메달(10점) 포인트로는 일시 장려금으로 150만원을 받을 수 있다.[23] 경기를 중계한 일본 TBS 방송의 해설자는 일본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유명했던 사사키 카즈히로였는데, 정대현의 투구를 서너개 지켜보더니 "컨트롤이 엄청나게 좋다"라고 말했다. 사사키가 해설 내내 한국 선수들을 한수 아래로 보는 시야를 은근히 드러낸 것에 비하면 대단한 칭찬이라 할 수 있다.[24] 이대호 항목에도 기록되어 있지만, 이 시즌 이대호의 대 SK전 타율은 0.197이다. 그 다음은 대 넥센. 0.338.[25] 이때 정대현이 등판하자 이대호 본인도 어이없었던지 SK 덕아웃 쪽을 보며 허탈한듯 웃음을 지었다고. 김성근 당시 SK 감독도 마주 웃어줬다는 후문.[26] 위 짤에 나온 장면 다음에는 견제를 하지 않았다. 한때 문서 내의 서술이 잘못되어 있었다.양종민을 이인구라고 하지 않나. 싸인 주고 견제를 했다 하지 않나. 그런데도 견제사당했다고 하지 않나. 초구 던지기 전에 한 번, 1-1에서 한 번씩 견제를 하였다.[27] 작이라는 글자는 작다는 뜻이 아닌 작가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