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30 07:47:13

사회성/기술 및 예시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사회성
1. 개요2. 비언어적 의사소통 기술
2.1. 외모2.2. 불분명한 말하기2.3. 불분명한 듣기2.4. 몸짓 언어
2.4.1. 중요성
2.5. 기분2.6. 문화적 소양
3. 눈치
3.1. 기분 변화 파악 미흡3.2. 자신과 이야기하기 싫어하는 사람에게 불필요한 말 붙이기3.3. 앞서 가기
4. 사회적 규범
4.1. 불문율
4.1.1. 예의4.1.2. 분위기에 맞는 주제4.1.3. 수용 의식
4.2. 완곡어법
4.2.1. 분노
5. 사회적 거리
5.1. 물리적 거리와의 차이5.2. 배척
5.2.1. 차별 당하는 경우5.2.2. 집단에서 배척당하는 경우 점검/대응5.2.3. 개인에게 배척당하는 경우 점검/대응5.2.4. 지인에서 친구로 발전하는 데 실패5.2.5. 공적인 집단의 경우
5.3. 사교
5.3.1. 오랫동안 배척당한 경험 이후 새로운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5.3.2. 사회적 지위5.3.3. 유아 연기
5.4. 자기 공개5.5. 부담을 주는 행위
6. 화제 선정
6.1. 상대가 꺼리는 화제6.2. 무책임한 조언6.3. 분란 유발성 주제와 말싸움
7. 통념을 넘어선 질문
7.1. 자랑7.2. 상대의 열폭에 직면7.3. 상황만으로 확인 불가능한 경우7.4. 상대방이 모르거나, 관심없는 주제
8. 무시9. 폄하
9.1. 남의 자랑거리를 폄훼하는 태도9.2. 공통 상식에 대한 혼동으로 인한 강요9.3. 상대가 무식하다고 전제하고 이야기하기9.4. 호의에 대한 반응9.5. 상대의 말을 면전에서 무시(경청 거부)9.6. 나쁜 말 옮기고 퍼뜨리기
10. 관심없는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음
10.1. 혼자만의 관심사에 대해 길게 이야기함10.2. 사족이 너무 길어 본론을 파악하기 힘듦10.3. 상대가 자기 볼 일을 보고 싶어하는데 알아채지 못함10.4. 상대방이 재미없어하는 주제에 대해 길게 이야기함10.5. 상대방과 너무 다르게 살아와서 공통된 대화 주제를 찾기 힘듦
10.5.1. 흔한 공통 관심사
11. 개그 실패12. 원활하게 대응하지 못함
12.1.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신호를 보내지 못함12.2. 어색한 침묵 지키기12.3. 잘 모르는 것을 티냄12.4. 산만한 대화 주제의 변경12.5. 부적절한 모방
13. 화법의 문제
13.1. 유머의 관점이 다른 사고방식13.2. 부적절한 표현 사용13.3. 표현법과 눈치에 대한 이해부족 및 팩트에 집착하는 소위 아싸 화법
13.3.1. 하소연에 대놓고 초치기13.3.2. 상대방이 말을 꺼낸 이유를 모르고 일방적으로 훈계만 함13.3.3. 주의할 점
14. 원활하지 않은 의사소통
14.1. 말하기14.2. 듣기
15. 부탁하는 기술
15.1. 부탁해서는 안 되는 사람에게 부탁하기15.2. 부탁해놓고 충분히 보답하지 않기15.3. 부적절한 부탁15.4. 부탁을 거절당했을 때
16. 협상
16.1. 자신의 주장만 고집16.2. 막말
17. 지나치게 이질적인 경우18. 반목
18.1. 피해의식18.2. 타인의 잘못을 캐내서 비방하기18.3. 아웅
19. 갈등 해결책 미흡
19.1. 이해관계19.2. 이상한 사람 대상
19.2.1. 착취19.2.2. 비약19.2.3. 상대방의 사회성 부족
19.3. 거짓말
19.3.1. 피학적 해방19.3.2. 거절하기 위한 거짓말19.3.3. 비밀 유지19.3.4. 과장
19.4. 갑질
20. 긍정적인 요소 쌓기
20.1. 호의냐 호구냐20.2. 배려/오지랖20.3. 칭찬20.4. 공격성20.5. 마음챙김
21. 결론

1. 개요

사회성에 관한 기술 및 예시를 서술한 문서.

2. 비언어적 의사소통 기술

2.1. 외모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외모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같은 행동을 하여도 호감인 사람(A) / 비호감은 아닌 사람(B) / 비호감인 사람(C)의 행동은, 결과의 차이를 불러오기도 한다.

신체적 매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들로부터 사교성, 이타성, 지적 능력, 유능함, 배려 등의 긍정적인 특질(特質)들을 더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평가를 받았다.[1] 그리고 매력적인 외모는 구직 활동이나 학업, 직장 등 여러 사회적 상황들에서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비자들은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판매원이 신체적 매력이 낮은 판매원에 비해 보다 친절하고, 유능할 것이라 여겼으며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판매원의 물건에 대해 더 높은 구매의도를 나타냈다(마케팅 수법으로도 활용된다).[2]
  • 냄새
    첫인상으로서 마이너한 요소이지만, 부정적으로 작용할 경우 남들이 무심코 넘어가던 냄새조차 악취로 느낄 수도 있다. 깨끗한 옷이나 속옷을 자주 갈아입지 않고 더러운 것이 묻었는데도 방치한다. 머리가 떡지도록 샤워나 목욕을 하지 않는다. 입/땀/술/담배냄새가 심한 사람인데 관리를 하지 않는다 등등 이러한 습관들은 몸에서 악취를 풍기게 만들고 평가도 나빠진다. 또한 본인은 좋은 냄새라 생각해도 상대방은 아닐 수 있다.[3] 향수도 본인에게 어울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용은 삼가도록 하자. 때에 따라 체취를 숨겨야 하는 경우 데오드란트를 도포하는 것을 고려해 보자.
  • 불결
    손톱, 발톱, 수염, 코털을 제때 다듬지 않는다. 손톱 사이에 때가 껴있다. 코를 훌쩍인다. 옷에 비듬이 떨어져 있다. 더러운 것을 만지거나 화장실에 다녀온 후 손을 씻지 않는다. 음식을 손으로 집어 먹는다. 발모벽으로 인해 흔적을 남긴다. 비염[4]이나 아토피도 상당한 애로 사항이 된다.
  • 개성
    현대에는 개인주의가 인정되면서 튀어보이는 성향을 내보이기가 상대적으로는 쉬워졌지만 트라우마나 생각 차로 싫어하는 부류들로부터 배척받을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이는 문신[5]이나 염색, 피어싱, 장신구, 코디 스타일, 체형 등이 있다.

술, 담배, (합법)마약류 등 껄렁껄렁함을 넘어 생식 능력을 저지시키는 요인들은, 후손을 남기는 것이 사회에 융화되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에게나 통하는 거지 관리만 잘하면 사회성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그러나, 미성숙한 집단에서는 신체적인 특징도 사회성 부족의 판단 요인이 될 수 있다(예: 거북목, 어좁이). 서열을 과시하기 위해서라면 성적 진화에 뒤쳐지는 부족한 요인도 배척되는 요인이 될 수 있고 관련되지 않은 특징이더라도 이 또한 튀어보인다면 마찬가지다.[6]

외모가 좋으면 옆에 있기만 해도 개개인의 평균치를 올릴 수 있는 게 가능하며 이로 공생하는 입장에선 상대의 결점을 트집잡기가 껄끄러워진다. 이 때문에 사회 부적응자라고 들을 만한 것들도 개성으로 묻어가기 쉬우며 기생할 시에도 사회성이 역전될 수 있다. 여기서 외형마다 다르게 적용하는 허들의 차이를 알아채지 못 하고 자기딴에는 "그냥 대화하면 친구가 생기는데 왜 그러한 노력을 안 하는 거냐?", "사람들은 다 성격 좋고 친절한데 왜 저 인간은 의심만 하고 성격이 꼬였냐. 저러니까 사회성이 없는 거지."라면서 번식 본능에 의거하여 고분고분 받아주는 환경의 차이로 사회적 능력을 기르는데 관심도 없는, 개인 발전에 무심한 업보라며 본인과는 다른 생존 전략인 좁은 인간관계를 택하는 사람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오해하기 쉬운 건, '외모가 좋다 → 사람 상대하는 능력이 출중하다'라는 점인데, 친화적으로 다가오고 마찰도 적고 하니 그만큼 사람 상대하는 노하우도 쉽게 터득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되는 건 사실이지만 싸가지 없이 행동해도 주변이 오냐오냐 받아주니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공감능력까지는 발달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욕을 먹어도 '다른 사람들은 이런 걸로 굳이 문제삼지 않았는데 이 사람 너무 예민하다'라며, 정작 본인의 사회적 기술의 부재를 돌아볼 기반이 마련되지 않고 이어진 문제가 추후 늙고 뒤늦게 알아채거나 끝내 모른 채 옛 버릇 그대로 꼰대 마인드에 탑재되면 그것대로 문제가 된다.

돌아와서 본인이 개성이고 싶은 것들이 장애 요소로 취급받는다면 외모가 준수하지 않은지 확인해봐라. 답은 의외로 간단했던 것일 수 있으며 번식 본능은 이 문서를 정독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외모는 자산처럼 모든 사회적 기술을 섭렵할 순 없지만 이만한 것도 없다.[7] 돈이 된다면 성형이나 시술을 통해 상대방에게 자신의 잠재를 인정해줄 포용력을 획기적으로 개선시켜 인간관계의 시행착오를 단축시킬 기회가 될 수 있다. 꼭 사회성 향상 목적이 아니어도 자신의 결점을 제거하는 것은 자존감과도 직결되니 결과적으로 도움을 준다.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정석적인 다이어트헬스, 몸에 잘 받는 식습관[8]으로 몸을 가꾸는 것도 나쁘지 않다. 메이크업도 남녀를 떠나 주름이나 을 가리기 위해서 배워두면 좋다.

하지만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자기 자신의 외모 수준에서 좀 더 가꾸라는 말이지, 의도적으로 연예인같은 사람의 외모가 되려는 시도를 할 경우 성형 괴물처럼 부자연스러운 인상을 보이게 되고 역효과가 나게 된다. 미남 미녀들 중에서도 부자연스럽게 절세를 흉내내려고 하는 사람보다, 일반인에 비슷한 외모와 연애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지만 이런 사람들은 그 반대로 본인부터 성격이 삐딱하기 때문에 피하면 그만이다.

외모가 좋아서 질시를 받아도 못생긴 사람보단 자원을 지켜 낼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다. 이성을 소개시켜 주는 등 번식 욕구를 해소할 만한 정보를 제공해 윈윈 관계를 만들어내면 조직에 흡수되는 걸 반대하는 측을 견제할 수 있다.

2.2. 불분명한 말하기

학술 용어로는 이런 언어적 의미를 가지지 않은 음성적 특징을 준언어(言語, Paralinguistics)라고 한다.

말을 했는데 상대가 바로바로 알아듣기 힘들어하고 되묻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대화가 계속 끊기면 상대는 지쳐하거나 불쾌함을 느낄 수도 있다. 듣는 사람에 따라 이해력 차이가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못 알아듣지는 않는다. 하지만 못 알아듣는 사람이 갑의 입장에 있다면 자신이 손해를 보므로 이게 싫다면 고쳐야 한다.
  • 발음이 불분명하고 어눌한 경우
    구시렁대는 건 부정적인 반응을 준다. 특히 지적당하고 있을 때라면 그냥 싸우자는 거다.
  • 말더듬이
    "아...어...음...글쎄..."처럼 듣는 사람 입장에서 계속 끊긴다.
  • 음색
    어조가 단조롭고 책을 읽는 듯한 말투인 경우
  • 강약
    소리가 지나치게 작거나 큰 경우[9]
  • 완급
    속도가 지나치게 느리거나 빠른 경우
  • 음성적 잉여표현(군말)
    지나치게 많은 군말이 섞이면 상대가 대화를 한 번 만에 알아들을 확률이 줄어든다.

여기에서 문제를 느낀다면, 자신의 말을 녹음하여 들어보고 목소리, 말투, 단어, 어법 등에 대해 스스로 분석하고 평가해 보기도 한다. 방송 대본, 신문을 소리내어 읽거나 실제 상황을 녹음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 녹음해서 듣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반복하다보면 익숙해진다.

팁을 주자면, 발음은 모음의 정확도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입을 크게 벌려 모음을 정확히 발음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서 소리를 뱉듯이 말해야 발음이 좋아진다. 앞서 녹음기를 통해 말을 빠르게 한다면 천천히 말하는 것도 방법이다. # 상대가 듣기에 명료하고 강세가 확실한 목소리는 첫인상과 함께 긍정적인 효과를 주며 설득력도 좋아진다. 발성법을 익히는 것도 좋다.

또, 언어임을 지각할 수 있는 체계에서의 불분명한 말하기는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이 잘 되어 있다면 문제를 적게 겪는다. 영어에서 'paraphrase'라 하는 방법인데, 상대의 배경지식 부족으로 무언가 못 알아 듣는 것 같다면 전혀 다른 표현으로 바꾸어 다시 전달하는 것이다. 아래 경우들을 포함하여 화용 언어의 이해가 미숙한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사례 1
A: "전과자가 재범이 되면 더 가혹하게 처벌을 받아."
B: "응??? 뭐라고???"
A: "더 가혹하게 처벌을 받는다고."
B: "재범이가 누군데?"
A: "재.범."
B: "그러니까 걔가 누구냐고."
A: "...넌 왜 말귀를 못 알아듣냐?"
B: "...아니, 왜 이야기하다가 시비를 걸고 그래?"
사례 2
A: "전과자가 재범이 되면 더 가혹하게 처벌을 받아."
B: "응??? 뭐라고???"
A: "더 가혹하게 처벌을 받는다고."
B: "재범이가 누군데?"
A: "범죄를 저질렀다가 다시 범죄를 저지르면 더 심하게 처벌을 받는다고."
B: "아... 재범. 그래."
사례 1 과 2 만 봐서는 B가 사회성이 더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불분명한 말하기라는 것에 초점을 둔다면 A가 사회성이 떨어져 있다.

비슷한 발음일 경우 한 글자 씩 같은 발음이 들어간 단어를 따로 제시해 이해시킬 수 있다. 지을 지으로 알아들을 시, "양떼 할 때 '양'."이라고 못박는 것처럼 말이다. 안 그럼 이런 상황이 나올 수 있다. #
사례 3
A: "전과자가 재범이 되면 더 가혹하게 처벌을 받아."
B: "무슨 의미지?"
A: "더 가혹하게 처벌을 받는다고."
B: "재범과 전과자는 관련 없는데."
A: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전과자고 여기서 다시 범죄를 저지르면 재범이 되니 가중처벌 된다고."
B: "확실해?"
A: "...무슨 의미지?"
B: "너도 확실하지 않은 건 마찬가지 아니야?"
사례 3 은, 전달 방식에 문제가 없고 불분명하지도 않은데 화자의 외적 환경[10]이 쌍방으로부터 그 의미의 정확한 출처를 증명하지 않아도 넘어갈 만큼 무시하기 힘들 정도로 티가 날 시 발생한다. 재범으로 인한 가중처벌의 예외조항이 있는지를 돌려서 말한다는 게 표현의 부족으로 오해가 생긴 걸수도 있어 증명자료를 보충해주면 해결되지만, 대부분은 여기서 계속 이어가다 말싸움까지 번지게 되고 결국 서로에게 사회성이 없는 것처럼 비춰지기 쉽다. 이때는 그냥 없던 셈치고 다른 주제로 넘어가거나 각자 제 갈 길 가는 게 현명하다.[11]
C: "저거."
D: '서류를 뭉치는 걸 보니 스테이플러를 달라는 뜻이겠군'
행위로 의사 전달을 추론하는 것중 지시대명사로 상대의 의중을 파악해내는 것이 있다. 일부 행동만으로 추론할 수 없게 혼잣말로 의도를 흘려 알아서 해석하라는 식으로 떠넘기는 경우도 있고, 너무 멀어서 뭐를 지시하는 건지도, 심하면 턱을 까딱거리는 방향으로 판단해야 할 상황도 나온다. 순서를 생략시킨 지시 속 숨겨진 요구를 파악해 내 꾸미는 센스는 눈치가 있어도 알아채기 힘들다.[12] 사투리를 해석하라는 것 이상으로 막나갈 경우, 아예 상대가 알아먹지 못하도록 언어를 바꾸기도 한다.

본심이 따로 노는 상황에서 말이 나오려다 마는 순간을 캐치하여 실제 상대방이 전달하고자 할 목적을 추론할 수도 있다.[13] 이를 역이용해 알력다툼 도중 특정 파벌의 지지를 암묵적으로 밝히는 용도로도 사용될 수 있다.

2.3. 불분명한 듣기

비언어적 부분에 있어서도 듣기는 사회성에 영향을 끼친다. 경청 문서로.

2.4. 몸짓 언어

스튜어디스 학원이나 대기업에서 신입 사원의 품위나 직무교육 같은 것에 있어서도 아래 사항들은 중요하다.
  • 눈맞춤(Eye-contact)
    • 초점은 '난 상대방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듣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 여러 사람과 말할 때는 말하기 전에 전체를 둘러 보며,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눈맞춤을 한다.
    • 이야기와 관계 없는 대상(예: 지나가는 다른 사람, 바깥 경치, 땅 등)에 집중해 응시하거나 이야기하는 도중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면 거부감을 주기 쉽다. 반대로 잘 모르는 사이에서 사람의 눈을 빤히 응시하거나 상하로 훑어보는 건 비교대상으로 취하려는 걸로 보이니 이 역시 불쾌감을 주기 쉽다. '내 앞에 알짱거리지 말고 비켜라'라는 공격성도 될 수 있다.
    • 야리는 건 체급이 큰 사람이 쓸 땐 위협, 비슷할 때는 기싸움으로 쓰인다. 말 없이 지속되는 경우도 있으며 1분을 넘기기도 한다.
  • 표정
    침울하고 슬픈 표정은 많은 상황에서 주변의 어그로를 끌고, 표정 자체만으로 온갖 종류의 뒷담화를 듣고 사회에서 소외당하게 만들기 쉽다. 무기력한 표정 역시 마찬가지다. 반대로 과하게 웃으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한다. 이 중간을 지켜서 온화한 표정, 밝은 표정, 은은한 미소를 지으면 사회적으로 손해를 적게 본다. 사회성에서 문제를 겪는다면 싫더라도 미소를 짓고 밝은 태도로 다니는 게 도움이 된다.[14]
    • 표정관리는 매우 중요한 비언어적 대인기술이다. 표정은 별도의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에게는 의도와 상관 없이 얼굴에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배우, 사기꾼 등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지속적으로 교정하면 다양한 거짓 감정을 표정으로 표현할 수 있다.
    • 사람이 상대의 감정을 파악하고자 할 때는 입과 눈썹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입술을 오므리는 건 의견에 불응하겠다는 전조로 받아들이고, 언어학적으로 먼 조소(嘲笑)일지라도 상대는 이러한 변화를 통해 눈치챌 수 있다.[15]
  • 몸짓언어(Body language, Gesture)
    • 걷기, 서기, 앉기, 인사하기, 악수하기 등의 자세.
    • 몸을 숙이는 각도
      흔히 호의와 관심을 가진 상대방에게는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반대로 자신을 과시하려 하고 상대방을 지배하려는 태도를 보이면 가슴을 펴고 목에 힘을 준 상태로 몸을 약간 뒤로 젖히는 자세를 취한다.
    • 어깨에 힘을 뺀다. 겨드랑이를 벌리지 않는다.
    • 등은 곧게 펴고 자연스럽게 한다. 말할 때 등치기나 고개를 앞으로 숙이지 않는다.
    • 턱을 내밀지 않는다.
    • 걸을 때는 몸을 정도 이상 흔들지 않는다. 땅을 끌지 않는다.[16]
    •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건 상대의 높낮음과 상관없이 삼간다.[17] 물건에 대고 할 때도 오해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18]
    • 가능한 고개를 끄덕이는 각도가 과도한 것도 교정해야 한다.[19]

2.4.1. 중요성

시민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이들은 마을공동체적 의사소통을 남에게 시도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들은 이질적인 사람은 배제하거나 왕따시킨다. 같은 말을 해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도 모르느냐, 왜 눈을 그렇게 뜨냐, 너 내가 마음에 안 드냐" 등 이미 꼬아보는 시선으로 상대의 태도를 평가하려는 의사소통을 한다. 이것을 언어사회학에서는 'judgement communication'이라 하는데, 상대방의 감정을 자기 스스로 미리 판단할 뿐 실제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소통은 문제의 본질이나 상대방의 진짜 감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태도를 주관적으로 판단한 뒤 잘못된 오해를 혼자 끌어올리면서 시비 거는 것이다. 이런 식의 판단 및 의사 소통은 개인의 스트레스를 높이고 사회를 무질서하게 만든다. 같은 말에 대해 말한 사람은 싸울 의도가 없다는데 듣는 사람이 혼자 피꺼솟해서 싸우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갑과 을의 관계에서 우위에 서게 되면, 하급자의 자세, 눈맞춤, 인사, 표정, 말투 등을 근거로 해서 하급자가 자신을 싫어하는지 판단하는 요소로 쓰게 된다.

상대방이 잘못하는 것이므로 사실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것을 100% 맞춰주기도 힘들고 맞춰주는 게 합리적이지도 않다. 하지만 상대방이 느끼기에 스스로 화가 나고 기분이 나쁘다고 하므로, 갈등을 최소화하려면 거기에 맞춰주는 수밖에 없다. 그 대상이 자신의 상관이나 상사라면 더더욱. 이와 반대되는 의사소통은 'feeling communication'인데, 남의 감정을 판단하는 게 아니라 내 감정을 드러 내는 것이다. "너의 이런 행동은 나를 해쳐."같은 거 말이다.

2.5. 기분

  • 자기비하
    다른 사람 앞에서 하소연이나 자기혐오적인 말을 꺼내고자 할 때는 그게 정말 필요한 이야기인지 재고해봐야 한다. 똑같은 문제를 반복해서 자학하면 점점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쉽다. 친근한 사이에서는 자학을 원동력으로 삼아 자신을 채찍질하고 위로를 듣는 것은 있을 수 있으나, 그건 매우 친한 사이에서나 문제가 안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매우 친한 사이여도 이게 반복되면 틀어질 수 있다. 남이 자학을 할 때마다 다독여주긴 힘들다. 이런 사람은 답정너라고 볼 수도 있는데, 자신이 진정될 때까지 위로해주길 바라는 발화 태도이며 자신이 듣고 싶은 위로가 남의 입에서 나와서 자신이 납득할 때까지 위로해 줘야 풀린다.
  • 기분이 나쁠 때는 친근하지 않은 사람에게 털어놓지 말고 스스로 추스르도록 하는 게 좋다. 친근하지 않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기분이 나쁘다는 걸 드러내면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쉽다. 보통 감정기복이 문제이니 하지 말라고 표현하기 쉽지만, 이는 여러 기분 중 슬픔, 분노 등 대인관계에 악영향을 주는 기분만을 의미하는 것이다.[20]
  • 본인 입장에서만 기분을 망치는 원인을 상대가 예측할 수 없는 상태에서 화풀이[21]하는 건 삼가야 한다. 변덕스러운 분노는 굴욕감을 줘 적대시할 위험이 크다. 날씨에 구애 받지도 말아야 한다. 덥다고 해서 시비거는 건 사회인으로서 결격사유다.
  • 때에 따라 기분을 조절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상사에게 꾸지람을 들을 때 쾌활함을 감추거나 티키타카하는 장소에서는 음침함을 멀리하는 등 낄끼빠빠가 즐비한 곳에서 이 능력은 매우 중요해진다. 이때 감정실금(emotional incontinence)을 지녔다면 처신하기가 고달퍼질 수 있다. 우울증의 전조 증세로 인식되는 한숨도 부정적인 이미지는 물론 상대방의 심리적 기운도 쫙 빠지게 만드니 자주 하면 안 되며 감정이입도 과몰입하면 그것대로 골치다. 특히 눈물은 남성에겐 민감한 생체반응이고 따라서 잦은 하품은 오해의 여지를 준다.

2.6. 문화적 소양

음악, 미술, 문학, 스포츠, 쇼핑, 여행, 요리, 커피, 연예인, 드라마, 영화, 예능, 반려동물 등 문화자본에 대한 이해가 높고 경험이 풍부한 것은 타인과 만남을 이어나감에 있어서 매우 큰 도움이 된다. 책이나 신문, 잡지 등도 가끔씩 읽어둠으로써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흥미로운 주제를 기억해 두면 공감대를 형성해 이야기가 잘 통하는데 도움이 되니 가끔이라도 독서를 통한 지식습득을 해놓는 것이 좋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상대방을 즐겁고 유쾌하게 해준다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호감도가 대폭 오를 가능성이 크다.
  • 장소 선정
    • 만남의 목적에 적합한 대화장소/문화시설 등에 대한 정보도 중요한 사회적 기술에 들어간다. 부적절한 공간에서 만남을 잡거나 적절한 대화 장소를 찾지 못해 우왕좌왕하면 만남의 분위기가 서먹해지기 쉽다. 일반적인 지리정보 외에도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으려면 이런 장소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게 중요하다.
    • 음식점, 카페, 문화 시설, 여행지 등
  • 장소 관련 지식
    일상적인 대화의 시작은 날씨, 풍경, 장소, 음식, 차 등 공통으로 즐기고 있는 것에서 많이 나오는 편이다. 이 때문에 이런 주제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면 사회적인 대화를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3. 눈치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눈치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대상이 내보내는 신호 중 비(非)중성자극을 분류 및 증폭함으로서 상대방이 추후에 거칠 의도를 짐작할 수 있도록 도운다. 사회학습을 통해 발달할수록 더욱 다양한 신호를 캐치할 수 있으며 이는 무의식이어도 본인에게 피해가 덜 갈 만한 예지를 대신할 통찰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사람이 처한 환경마다 눈치의 해석도 달라서 전혀 문제가 없는 행동임에도 예민해지는 발작버튼이 될 수가 있다.

  • 상대의 기분 변화를 빠르게 알아차린다. 이때 말의 내용 같은 언어적 증거가 전혀 없더라도, 말투나 표정 등 비언어적 증거를 통해 알 수 있어야 한다.
  • 상대의 기분 변화에 맞춰서 무슨 언행을 해야 하는지 안 찾아봐도 미리 알고 있다.

이 둘 중 하나가 빠지면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 눈치가 없는 답답한 사람이다는 소리를 듣기 쉽다. 한국 사회는 서구 사회에 비해 비언어적 단서를 중시하며 그만큼 정서적 오해가 깊어질 수 있다.

눈치는 빠를지라도 순간의 입방정 때문에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도 결과적으로 눈치가 없다고 표현한다.[22] 이는 상대의 불확실한 시그널을 억지로 해석하기 위해 정작 주변이 자신을 보는 시선에 아랑곳할 여유를 갖다가 답을 내리려는 데에만 집중하여 눈치가 없어보이는 거다. 반대로, 이해하지 못한 척 눈치가 나빠 보이는 전략을 써 먹는 부류도 있다. 이럴 것이, 장기적으로는 최대한 빨리 눈치채 반응해봤자 최선의 선택을 할 여유까지는 없는 게 대부분이며 차라리 나사 빠진 순발력보다는 선택적 백치미를 통해 무르기가 가능하도록 상대에게 비춰지는 자신의 눈치 수준을 조절하는 게 더 낫기 때문이다.

꼭 눈치가 좋게 보이고 싶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이유는 없다. 위처럼 상황에 맞게 눈치 없는 척을 해야 할 때가 있고 굳이 그것을 지적질해도 될 만한 명분을, 주변이 이해할 정도로 이성적이란 확신도 없거니와 서로가 무조건적으로 받아줄 수 없는 예외 상황에 대한 부담감을 대적한다고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고지능자가 중심인 집단에서 정상지능에 속한 사람이 저지능자인 것처럼, 상대가 눈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본인이 그 기준을 너무 높게 잡거나 아니면 자신이 가장 눈치가 없었던 건지를 되돌아보는 게 좋다.

눈치도 중요하지만 내 눈치가 상황에 맞는 것인지를 확정해주는 게 직관이며 이는 일상의 영역으로 배우기엔 한계가 있다. 직접 사회에 나와서 시행착오를 거치고 당해 봐야지 현실 감각을 개선하는 객관화를 무의식에 심는 과정을 통해 직관을 향상시킬 수 있다.[23] 어찌보면 관찰력이 요구된다는 점에서 독심술의 원리와도 겹친다. 이 역시 이론만으로는 실전에 써먹기 힘들다는 공통점이 있다.

타인의 결론, 발상을 베껴서 따라하는 관찰력도 사회적 기술로만 따지면 효율이 좋은 눈치력 중 하나이다. 자신의 아이디어로 둔갑할 수 있으면 더욱 좋겠지만, 직장 내 매뉴얼도 없는 상황에 먼발치에서라도 보고 익혀야 하는 정보 및 불문율같이, 약속했지만 굳이 알려주지 않는 방침들은 상대가 보기엔 지식재산권을 위반하는 것같진 않은 선에서 수집하여도 트러블 메이커라는 평가로부터 벗어나기에 충분하다. 이를 일머리라고도 하며 여기서 라인을 잘 타면 요직에 앉을 수도 있다.

3.1. 기분 변화 파악 미흡

예시: 지인을 만나서 반갑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반응이 이상스레 적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가족이 아프다고 한다.
여기서는 얼굴 표정으로 상대의 기분 변화를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다. 이런 문제가 있다면 사람의 기분을 관찰하는 데에 좀 더 애써야 한다.

사람을 상대해 본 경험이 적은 케이스, 혹은 일찍 취직해서 직장생활을 한 사람과 그 나이에 직장 경험이 거의 없거나 있어도 알바 경험 정도가 다인 또래의 사람을 비교하면 확실히 구별이 가능하다. 사람을 많이 상대해보지 않은 사람이 비교적 상대방의 표정, 언어, 혹은 무언의 행동에서 드러나는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 늦거나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눈대중으로 상대가 무슨 감정인지 알 수 있는 상황에서 호기심이 발동해 질문하는 것은 실례다. 친한 사람이 사망하거나 실연, 시험에 낙방해서 감정에 고취된 사람에게는 슬픈 감정이 느껴지는 걸 예상할 수 있고 이를 굳이 자신이 예상하는 게 맞는지를 증명하려고 묻다간 손절당할 수 있다. 위로해준답시고 괜찮냐고 물어보는 것도 상대에게는 무례하다 여길 수 있다. 본인의 현 감정상태를 타인이 눈치챈다는 게 그리 좋게 느껴지지 않을 수 있고, 함부로 감정을 들춰서 공개하는 것이기에 이때는 살을 붙이기보다는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주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남들이 알아채기 힘든 미세표정(micro-expression)을 간파하는 건 얼마나 몸을 잘 사리는지의 능력과도 버금간다. 이러한 능력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사람도 있지만 일반적으론 학습해도 거짓말 탐지기와 비슷하게 유의미한 정확도를 기대할 순 없다. 그래도 갈등을 조기 해결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영역이므로, 본인이 얼마나 표정을 잘 구별해 낼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면 해당 영상을,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같이 눈두덩이로 제한된 상황에서 표정을 구별해보고 싶다면 RMET(영어)를 거쳐보자.[24]

권력이 부정적으로 상호작용할 시 공감능력이 저하되는 경향성을 띤다. # 이는 자신이 어디에 속하느냐에 따라 예외에서 벗어날 수 있으며 아무리 숙달한들 달라질 수도 있다는 의미이다.

가능한 곁눈질, 눈 굴리기보단 주변시(peripheral vision)를 통해서도 대략적인 상황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면 처신에서 유리하다. 단, 상대도 본인처럼 주변시를 거쳐서 나온 결과이겠거니 판단해선 안 된다.

동공의 크기는 상대가 얼마나 표정을 능숙하게 감추느냐와 상관 없이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없기에 자신에 대한 선호도를 더욱 정확하게 알아 낼 수 있다.

3.2. 자신과 이야기하기 싫어하는 사람에게 불필요한 말 붙이기

사회적 거리상 상대가 '잡담을 붙일 관계가 아니다'라고 판단한다면 대화를 진행할 수 없다.[25] 예를 들어 카페에서 친구들과 토론을 하고 있는데 옆 테이블 사람이 툭툭 치더니 끼어들어 나의 신상에 관해 묻는다고 상상해보자.

사회적 거리상 대화가 가능한 관계라고 해도 상대가 대화하기 싫어하는 상황이면 대화를 진행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사람이 바쁘거나 피곤하거나 아프거나 초조하거나 당황해 있으면 일상 대화를 할 기분이 아니다. 표정, 말투, 상황 등을 통해 기분을 파악하는 능력이 떨어지면 이런 사람에게 억지로 말을 붙이다 기분을 나쁘게 만든다. 반대로, 기분이 나쁘다는 걸 파악했을 때 적당하게 대처하는 사회적 기술이 떨어지기 때문에 화를 돋워 기분을 나쁘게 만든다.
  • 옆에서 위로해줄 수 있다고 판단하면 상대를 풀어주려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때는 주의해야 하는 데 기분 나빠 있는 걸 눈치채고 풀어 주려고 말을 붙이다 되레 화를 겪는 경우도 있다. 명심해야 할 것은, 아무한테 기분을 풀어 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친한 사람이 기분을 풀어 주려고 하면 기분이 한결 좋아지나 안 친한 사람이나 싫어하는 사람이 기분을 풀어 주려고 하면 자신을 신경 써 준다는 것을 알아도 오지랖이라고 느끼기에 오히려 기분이 더 안 좋아진다.
  • 위로해줄 수 없다고 판단된다면 빨리 헤어져서 보내주는 편이 낫다. 그리고 직장에서라면 상사가 그 위의 상사한테 깨진다든지 해서 순간적으로 기분 나빠 있는 상태라면 안 좋은 보고는 그 시간을 피해서 하는 것이 더 낫다. 반드시 필요한 말이 아니라면 기분이 좋아질 때까지 기다린 다음에 말을 붙이는 게 좋다. 기분 나빠 있는 사람에게는 접근할 때 더 조심해야 한다. 원래 눈치라는 게 기분 나쁠 때만 적용되는 개념이다 보니 기분 나쁠 때는 바른 말을 해도 화를 돋운다.

3.3. 앞서 가기

앞서 가기는 상대의 말과 행동으로 인한 상황을 예견하거나 지적하는 지적(知的) 자만이며 본인의 사고 능력(=눈치력)이 남들과 같은 일반화된 불문율이라 오인하고 눈치를 일종의 경쟁 요소로 우열을 가리려는 것에서 인간관계를 극히 피곤하게 만든다. 한 마디로 아는 척.
*공통
(맞는 말이어도 남들이 듣기에 난해하거나 본인의 서열이 낮을 시 상대가 주의를 주며) "앞서가지 마라."
(자신이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지만, 행동력이 빠른 상대가 먼저 선수를 치며 하는 말이) "넌 눈치가 없냐?"

사람이 하루동안 발휘할 수 있는 집중력은 한정돼있으며 이를 어느 곳에 써야 효율적일지 받아들이는 것도 개개인마다 다르다. 여기서 갈등이 생기는 원인은, 주의 용량(capacity)을 의지에 한하여 리필할 수 있다는 오류를 범하는 것에서부터, 별 같잖은 경우에서도 이러한 원리원칙주의자들의 만연한 사적 침범으로 인하여 집중력을 할애해야 할 기회를 잃으면서도 그 실익이 현저히 적다고 판단되는 인지부조화에 기인한다. 이것을 상대에게 따지기 위해 시간을 낭비하기도, 해명하기도 꼴사납기 때문에 넘어가는 게 대부분이며 이를 받아들이는 측도 '내 말이 맞으니 따지지 않는다'라고 착각해 사고가 굳히게 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26] 이렇게 굳혀진 가치관은 그냥 입 닫고 소신 껏 하면 되는 유사 접대술을 상식 인냥 외압을 넣어 주변에게 자신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던 무능한 인간으로 상기된 인상을 조작하는 일반화를 일삼는다.

명심할 점은, 눈치의 수준이 사회성의 주요 요소인 건 맞지만 정보격차마저 해소하진 못 한다. 사실 남보다 행동이 빠르다는 건 불확실성이 내재되면서도 답을 원하는 군중의 수동적 잣대로 인해 신중히 판단하는 것보다 손해를 보게 되더라도 겉으로 풍기는 자신감을 보이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 때문에 생겨난 강박관념이기도 하다. 하지만 맹목적인 아비투스의 모방은 갈등만 부추길 뿐이며[27] 제 아무리 똑똑하더라도 눈치만으로 문외한을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애초에 본인의 논리가 완벽하더라도 괘씸죄 당첨은 물론이거니와 수틀리면 모르면서 왜 나불대냐는 해명이 번거로워서라도 무심한 척 하는 게 더 낫다는 건 면피가 중요한 조직을 조금이라도 접하면 알 수 있으며 상대가 자신 기준의 올바른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굳이 앞서가 그 상황에 따른 당위성을 강구할 권리는 없다.[28] 항상 상위를 대할 때처럼 사회성이 좋은 척 연기할 여유는 본인이 인식하는 정보 그 이상을 앞서갈 수 없다.

남들도 '이 정도 눈치는 다 갖추고 있을 것이다'라며 자신보다 느린 사람을 비방하지 말자. 상대는 어떻게 해야 하는진 알고 있지만 내가 다루면 상황이 더 꼬일 것 같아서 신중해진 걸수도 있다. 아니면 실행하기 전에 본인의 쓸데없는 훈수질로 선수를 쳐서 빈정이 상하거나 상대의 꼬봉같이 보이지 않기 위한 자존감 보호와 이로 인한 반발 심리에 '내가 뭘 하든 제 눈에는 트집잡힐 것들인데 노력해봤자 뭐하나'라는 식으로 효용이 감소한 것도 원인일 수 있다.[29] 본인이 상대보다 사회성이 좋다고 그 상대의 사회성이 안 좋은 게 아니며, 상대가 눈치가 없다고 사회성도 없는 게 아니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이 그 상황에서 응당 지적해야 할 입장을 대변하는 사안인지,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고 자기 할 말만 읊어대는 자뻑인지, 잘 모르면서 아는 듯이 떠들어대는 게 아닌지를 항시 의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시간 개념을 받아들이는 관점 차이도 원인으로 작용한다. 예시로, '이걸 듣고 이해한 뒤 판단하려면 2초가 필요하고 이걸 상대도 알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A와, '이건 0.5초로도 충분히 판단할 수 있고 이 이상 걸린다는 건 사회성이 부족한 것이다'라는 B가 있다. 빨리빨리 문화에서는 B가 맞는 말이지만 이는 정답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만 가능한 이상론이다. 무지 상태에서는 상대가 나와 같은 지식을 공유한다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 사회성이 부족한 게 단지 그에 관련된 지식의 부재 때문에 그렇게 보이기도 한데 이것마저 사회 부적응자 취급을 하게 된다면 자신들이 속한 영역 내 지식이 열린 사회에까지 영향을 주어 전체적으로 사회에 내재된 가치를 오염시킨다.[30] 또 반응 시간이 느리다는 핑계로 빠릿빠릿하지 못하다며 사회성에 흠이라도 있다는 마냥 파고 드는 건 정답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상황에선 무의미한 짓이다. 내 의사를 상대에게 전달하지 않는다 하여 이를 모른다고 하지는 않는다. 이는 제3자 기준에서 오지랖이라 판단하여 잠시 상황을 지켜보는 것인데 간섭하기까지의 시간을 상대가 용인하지 않아서 생기는 훈계질은 사적 판단으로 오류가 일어나도록 자폭을 유도한다.

이처럼 의견을 수용하지 않고 결론내는 습관이 문화로 굳어진다면 필연적으로 의미 왜곡이 발생하게 된다. 본인에게는 전혀 불순한 의도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상대방은 완곡어법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어 인명 중시 체계가 중요한 조직에서 이러한 오류는 치명적으로 작용한다. 이와 비슷한 용어로 교토식 화법이라는 우스갯소리로도 알려져 있지만, 눈치의 의의를 돌려서 멕이기 위한 목적으로 받아들여 상대로부터 과도한 완곡어법을 강요하고 이것을 당연하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다. # 이는 결국 개개인마다의 사회망 형성이 불순한 목적의 실리적 놀음이었다라는 인간혐오를 유발한다.

또한, 이러한 앞서 가기의 폐해가 사적영역과 공공영역이 혼합된 환경에서 주로 일어날 시에는 서열이 낮은 사람의 반론권이 억압된다. 이미 상대는 그 상황의 정답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언변 우위를 점했기 때문이며, 본인이 느끼기에는 서로의 영역 안에 타인도 동시에 존재하는 중이라 착각하니까 사회성이 낮아보이는 게 당연하다.[31] 사람은 생각보다 당신이 처한 상황에 대해 관심이 없다. 굳이 말 안하면 상대가 자신이 피해를 받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는 경우가 많으며 피해라고 여길만한 이유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당신의 논리가 반드시 옳아서 상대의 말문이 막힌 게 아니며 이 역시 상대가 스스로의 무지함을 인지해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다. 더 대화해봤자 피곤해질 것 같으니 그냥 포기한 것이다. 예로서 A와 B의 상황에서의 눈치력을 동시에 만족해야 할 시, 이 중 어느 것을 우선순위로 두어 처리할지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요점은 공통적으로 일단 하나를 집중해서 끝내는 게 실수 없이 처리할 수 있음에도 이들은 동시에 하지 않는 것 자체를 실수로 여긴다. 함정으로는, 두 가지 이상의 일을 문제없이 처리하는 멀티형 인간은 매우 드물며 선천적으로 타고나야 하니 일반인은 주의력 분산으로 실제 사고까지 이어질 수 있기에 싱글코어를 지향하도록 진화됐지만, 현대사회로 오며 시시각각 변하는 환경에 익숙해지고 이것이 다수의 현상이 되어 결국엔 시간효율성의 극대화로 여러가지 일을 처리하는 게 능력으로 자리잡은 이상 '멀티테스킹=사회성'이라고 자찬하며, 남들이 보는 것보다 출력값(결과)은 썩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관계망의 밀도로 변명하여 논지를 흐린다.[32] 결국 이러한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선술한대로 약자는 말이 없으므로 후자의 억까가 평준화되어 마땅한 사회 부적응의 명분이 되어 버린다.[33] 따라서 대부분 이러한 해결책은 상대가 관할하는 영역에서 빠져나오는 것 말고는 없으며 억지로 어울려봤자 덧 없는 완벽주의 성향을 강요한다는 점에서 본인이 먼저 미치거나 진중한 대화는 일절 없는 산 송장으로 대해주는 게 최선이다.

현상이 미칠 영향력이 일시인지 연속인지는 상대방 역시 어느 정도는 앞서 고려하고 있기도 한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방관자의 속성이기 이전에 왜 그 많고 많은 사람들이 본인이 지적할 때까지 가만히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자. 대개는 본인 혼자만 생각한 게 아닐 것이다. 당사자에게 본인의 행동이 주는 피해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이 가능한 수준이었다면 알아서 지적할 일이 없도록 했을 것이며, 피해를 줬다고 해도 그 수준이 유의미하거나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여, 본인딴엔 집단에게 그 범위까지는 아닌 '선은 지켰다'라는 배려를 했을지도 모를 상황에서 억하심정을 얻어서도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본인이 특출나서 범위를 예상해 상대를 따지려 해도, 방관자를 이해시킬 수 없으면 너무 앞서 가는 것과 다르지 않으며 굳이 일을 크게 만들려는 사회 부적응자로 보인다. 정의로운 사회 구조는 집단의 총의를 이끌어야지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며 개인에게는 맥락상의 사적영역을 자아로부터 분리시키는 무탈함을 길러서 평이한 사회생활을 유지하는 게 현명하다.

위 정의된 의미를 보았듯, 이는 꼭 불순한 의도로 사용하는 것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제3자의 기준에서 우열을 가르는 먹이를 제공하려는 목적 이외에, 가정(假定)의 범람을 생각만으로 만족하여 절제를 실천할 목적으로도 사용되며, 자신 또는 지위를 지키기 위함에 있어 공격성을 드러내야 할 시 준수해야 될 필수요소에 해당한다.
유형 1. 개입
A: "이건 OO야. 왜냐하면..."
B: "ΔΔ이기 때문이죠."
(A가 할 말을 도중에 가로챈다)
이때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눈치가 빠르다고 맞장구치는 경우와 동의 없이 끼어들어 조직 내 자신을 무식하게 보이게 만든 불쾌감으로 인해 보복하는 경우이다. 일단 사이가 가까우면 무례하더라도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지만, 문제는 정말로 그렇게 넘어갈 거라고 B가 착각할 때이다. B의 답이 사실이든 아니든 수평적인 관계에서는 크게 상관은 없다. 중요한 건 본인이 상대방의 위치에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눈치는 상황의 유연한 대처를 하기 위해서나 쓰는 거지 끼어들어서 불쾌해질 가능성이 높을 시엔 끝까지 듣고만 있는 게 좋다.[34] 왜냐하면, 주체가 무시된 분별 없는 앞서 가기는 자칫 상대의 발언을 뺐는 월권으로 의도되기 십상이며 권위가 추락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은 당신을 적으로 돌릴 것이기 때문에 이미 한번 수직적인 관계였다면 그냥 그대로 쭉 처신 잘 하는 게 좋다.

내적인 이유로서는 자신의 능력을 알아 봐 달라는 인정 욕구로 인한 것이 있으며 상대방 또한 같을 시 서로의 인정 욕구가 부딪치는 형태가 반복되어 갈등으로 치달을 수 있다.
A: "이건 너(B)의 잘못이라 생각해. 왜냐하면..."
C: (허락 없이 개입하며) "그건 A의 문제 아닌가?"
B: (자연스럽게 C의 발언에 동의한다)
갈등 중 갑자기 C가 중재하여 지적 자만을 행하는 경우이고 당사자(A)가 이해해줄 거라 판단하여 앞서 가는 거다. 여기서의 문제는 아무런 연관도 없는 제3자로부터 나의 의견이 묵살된다는 점이다. 망언으로 상황을 정리하고 본인으로서 상황이 종결되는 것도 더 파고 들면, 궤변을 너무 당연한 듯이 말해 사람을 벙 찌게 만들어 말문이 막히는 걸 본인이 똑똑하다고 착각하는 것이며 항변할 힘이 없는 걸 C가 아는 경우라도 외부에서는, B가 A보다 우월하다는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사전에 작당하기 위한 수적 강세를 웬만큼 눈치가 빠르지 않는 한은 모르고 넘어간다.[35] 어차피 자기네들끼리의 문제이고 책임에서 자유로운 관찰자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분노한 A가 감정을 표출한다면, C측이 제공한 의도의 불확실성에서 확정적인 A의 궤변으로 항변은 조작되어 책임을 떠넘기는 분위기를 형성하고 'A의 명예는 공개적으로 훼손해도 된다'라는 차별을 조직 내에 심어준다.[36] 그러니 영업방해로 쫓아낼 게 아니면 끼어들지 않는 것이 서로에게도 좋다.
A: "이거(B') 이렇게 하는 거 맞아요?"
(이전에도 나한테 B'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는데 스스로가 지적한 행동을 할 시 B에게 해명하도록 유도하던 중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C가 끼어들며)
C: "맞다고요."
형평성의 상대적 관점에서 오는 갈등에서 상대에게 유도신문을 하기 위해 돌려서 구사하는 경우도 있다. B가 권력으로 넘어가려 할 시 주변에 풍자할 의도로 역질문을 해 반성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37] 이때, B는 자신의 이익에 따라 C가 작당한 듯 흘러가도록 제3자의 시선을 조작할 우려가 있어, 여기서 아무것도 모르는 선의의 C가 덤탱이 씌일 수 있고 A도 걸려들 수 있다. C가 보기에는 책임을 따져도 시간낭비할 가치가 없는 주제라 일방적으로 대화를 끊어도 되는 걸수도 있다 생각하겠지만 서로가 대면하지 않을 때의 분위기를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안다고 함부로 끼어들다간 원한을 살 위험이 높으니 주의해야 한다. 분위기가 험악해질 걸 예상해 화제를 반전하려는 선의였어도 A가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똑같이 A와 C가 사회 부적응자로 묶여서 조작당한다.[38] 입장을 바꿔서 C가 알고도 B'를 묵인했다면 B의 주도로 이루어진 정치질로서 자발적인 아웅으로 거론되지 않게 끊어내는 결속력이 사전에 모의됐다는 것이니 따져봤자 A만 나대는 인간으로 찍히게 될 수 있다. 즉 익명이 아니면 상대가 알든 모르든 관망하거나 내막에 관련된 사람끼리 해결하도록 무시하는 게 각자 신상에 좋다.

유형 2. 거리감
A: "안녕하세요? 여쭤볼게 있는데요."
B: "..."
(대강 말투를 보아하니 길을 묻는 척 포교하려는 것 같으니 무시한다)
A: '뭐지? 사회 부적응자인가?'
A와 B 모두 앞서 가기를 이용했다. B는 사전 경험으로 자신의 이익이 불분명한 앞서 가기로 대화를 받아주는 것보다 무시하는 게 크다고 생각해 최대한 현명하게 보이기 위해 A를 피했다. 이에 A는 단순히 길만 물어볼 목적이었다 하더라도, B의 의도를 'B의 입장이었다면 보이는 나(A)의 형상'을 앞서가 이해하려 하기보단, '사람이 말을 하면 얘기는 들어봐야 되지 않나?'라며 사회적 거리가 확립되지 않은 채로 편향된 앞서 가기를 통해 사회 부적응이란 오류를 일으켰다. 이는 사회적 거리를 대체할 수 있다는 규범이 상대방 또한 자신과 같은 신념을 지니고 있다고 간주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문제이며 결국 앞서 가기로 서로의 의도가 차단된 것이다. 대화 없이 미지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는 욕심은 각자에게 자조랍시고 의사결정에 혼란을 일으키게 된다. 인간관계의 갈등에서 양쪽 의견의 수렴은, 무시하는 B의 사회성이 떨어지거나, 무시하는 게 현명했기에 사회성이 우수하다는 평가로 나뉠 수 있는 관찰자의 한계를 고려하여 다수로부터 누구누구의 대처가 적절하다 할지라도 일단 들어는 보는 게 의외로 상대의 의도를 쉽게 알아내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아무리 눈치가 좋더라도 사람의 인성 및 사회적 능력은 개인의 역량으로 쉽게 판단내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C: "안녕~."
D: "..."
C: '...혹시 나 싫어하나?'
D 입장에서는 인상 파악에 영향을 주는 요인[39]을 제외하면, C가 나에게 인사를 건네줄 만큼 친하지 않는 애매한 관계이며 만일 인사를 받아줬더라도 다른 사람에게 인사를 건냈던 거라면 개쪽일테니 명예 보존을 위해 유예시켰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또한 사회적 거리를 앞선다는 건 대의명분으로서 자신을 이용하겠다란 흑심을 가지기에 충분하니 인사를 하기 전 대상자 주변에 내 지인으로 오해받을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고 나서 아이컨텍을 유지하며 다가가거나 그냥 포기하는 게 낫고 만일 인사가 거부돼 추해지더라도, 인사 자체가 사회성 부족으로 보진 않기에 인사를 안 받아 준 상대보다는 부정적인 평가가 덜하다.

앞서 가기는 사회적 거리에 따라 변칙적이다. 인사를 했을 시 상대가 받아줄지 말지는 사회성과 관련이 없는 것처럼 가령 어느 정도 친해져야 개그로도 활용하는 게 앞서 가기인데, 이러한 조건을 무시하고 무조건 보상 없이 눈치력을 강요하는 것은 치장으로서의 목적과도 부적합하다.[40] 저 사람이 지금 당장 내 앞에서 실수를 보였다고 다른 곳에서도 똑같이 실수할 거라 판단하는 건 매우 위험한 사고방식이다. 거지가 쓰레기를 주우라는 명령에 코웃음 치는 걸 보고 지위가 바뀐 경찰의 명령에도 똑같이 반응한다고 단정할 수 있는가? 당신에게 보이는 실수는 그저 긴장할 필요가 없는 사적영역에 있었거나 당신에게 잘 보일만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E: "받으세요."
F: (거절하며) "괜찮습니다."
언뜻 보면 E의 호의를 F가 무시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기선 악의를 가지고 행동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사회적 리스크에 따른 자기 보호로부터 오는 이익 대비 의미 왜곡으로 호소력이 조작되는 동질성 오류를 방지하기 위한 명예 보존에 기인하다. 리스크를 세분화하면, 1) 지속적인 관계임을 증명하기 위한 피로감을 막기 위해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려는 완곡어법. 2) 배후 또는 플라잉 몽키로부터 착취당할 명분을 막기 위한 주도권 유지 목적의 사전 차단.[41] 3) (음식일 시) 이물질을 통한 위해 가능성.[42] 4) 대상의 착오 및 유도[43]가 얽혀 있어 이에 대처할 바엔 처음부터 무시하는 게 F 입장에선 호의를 알았더라도 최선이었음을 역으로 앞서서 이해해야 한다. 자신의 선의를 제대로 전달하지 않아서 생긴 착오이거나 분위기상 의도를 알려주지 않아도 상대가 호의로 알아듣고 받아주겠거니 하는 안일함이 문제일 수도 있다. 함정으로는, 그 분위기조차 결속력으로 인하여 F를 제외한 E의 구성원만 알 수 있도록 왜곡될 우려가 있다.[44] 이렇듯 사람을 알아가는 단순한 과정에서도 앞서 가기는 자기 보호를 위해 쓰이는 사정상 매우 빈번하게 벌어지는 갈등 양상이며 이에 무시당했다고 상대에게 따지지 말자. 상대방은 자기 주제를 알고 거리를 두는 걸수도 있기에 섣불리 사회성 없는 인간이라 판단하지 않는 게 좋으며 보복의 명분도 되어선 안 된다.

위의 사고방식이 계도로 악용되는 경우, 대답의 지체를 사회 부적응으로 매도해 혼란을 줘서 욕받이로 만드는 게 가능하다. 또한 가문의 명예나 관리로서 앞서 가기를 내세우는 건 당장의 취지로서는 좋겠지만 완벽주의에 가까운 강요나 다름 없는 교육관은 자식에게 극상성이다.[45] 최악의 경우, 명예를 더럽혔다는 이유로 사적제재를 정당화한다.
G: "□□에 대해 궁금해."
H: "그러게, □□는 뭘까?"
I: (보다 못해 끼어들며) "검색해보면 되잖아요."
G, H: "...?"
I가 꺼낸 말은 해결법으로만 봤을 땐 문제가 없다. 하지만 여기선 허락 없이 영역을 침범했다는 것이고 행인이어야 할 거리감을 좁힌다면 되려 혐오감을 얻게 된다. 또한 분위기상 적용될 수 있는 요소를 배제하였는데, 누구나 알 만한 상식을 모르는 척 하는 건 일종의 추임새로서 사교를 돋으려는 걸 모르고 '정신(사회성)이 제대로 박혀있으면 모르는 걸 티내지 않겠지'란 앞서 가기가 되려 본인의 사회성 부족을 상대에게 증명하고 있다. 이는 G, H가 만든 친밀 영역에 속하지 않는 입장에서, 상식과 사교를 혼용하는 머저리들이라고 공공영역에 밝혀내는 상황은 사교의 일부임을 무시하는 것 이상으로 불쾌감을 주고 적을 만들게 된다. 티키타카를 위해 모르는 척 연기하는 것이기도 한데 어디서 미지의 인물이 어정쩡 다가와 교정하려 든다면 어이가 없는 게 당연지사. 이때는 답답해도 상대가 먼저[46]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신경 끄는 게 좋다.

일방적 구면(舊面)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앞서 가기 중 상대방의 시각에서는 미지의 인물 단계에 걸쳐있지만 본인이 구면이라고 정의하는 상식의 기준이 다를 시, 타인도 나처럼 같은 영역에 있다고 인식한 만큼 친해질 수 있고 자기 틀에서만 상정한 거리만큼의 간섭(오지랖)을 이해해 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47] 공통점이 불분명한 미지의 단계에서는 설령 구면이어도 그 즉시 친밀 단계로 점프할 수는 없으며 공감대가 있는 환경도 초면에 준하는 단기간의 의사소통만으로는 개인역 수준의 물리적 거리만큼의 답을 제시하긴 어렵다. 애초에 상대는 본인을 공공역에도 들어서지 못 하는 존재라고 인식할 수도 있으니 괜히 친해졌다고 생각해 아는 척 하다간 적대적 단계로 들어설 수가 있다.[48]
*관상을 보아하니 대화 나눌 것 없이 사회성이 떨어진다는 걸 알 수 있겠다.
*저 사람은 외동이니까 성격(사회성)이 안 좋겠네.
*못생긴 것들은 성격이 더럽다.
신념이 극단적으로 확장될 경우 유사과학을 신봉하여 사회성을 외형으로만 판단하는 오류를 범한다. 주로 사회를 겉핥기 식으로만 배운 사람이 하는 오류일 수도 있지만 같은 환경에서 오랜 기간 지내고 자라온 사람에게도 이러한 편견은, 같은 문제일지라도 관심도에 따라 더 비판적으로 다가가는 건 사람을 대상으로 판단해도 다르지 않으니 충분히 왜곡될 수 있다. 이는 인물을 평가할 때 자신이 속한 환경에 따라 사회 성숙도가 달라지게 되는 원인을 제공한다.[49]

또한, 겉으로 티는 안 낸다 해도 무의식에서 나오는 미세표정은 감추기 힘드므로 이를 눈치챈 상대방은 과거 학습으로 '저 인간은 나의 외적 또는 과거의 흔적으로 가치를 평가하려는구나'를 알 수 있으며 또다시 미세표정에서 나오는 신호를 교환하여 '역시 내 신념은 틀리지 않았다'라며 신념이 더욱 확고해지는 결과를 낳게 된다.

유형 3. 일방적
(직장에서)
A: "아까 부탁했던 업무 다 끝내셨나요?"
B: "끝냈으니까 이걸 하고 있겠죠?"
(식당에서)
A: "몇 명/이세요?"
B: "보면 몰라요?"
→ 직장의 경우 눈치가 있다면 내가 다른 업무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아 이미 끝냈다는 걸 알 수 있을텐데 굳이 물어봐서 짜증나게 만들었으니 비꼬는 것이고, 식당의 경우 뒤이어 오는 사람이 또 있냐는 물음에 앞서 한 눈에 봐도 몇 명인지 알 수 있는데도 똑바로 처리 안 하니 직원을 탓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일신상의 사유로 모임에 참석하지 못할 시)
C: "죄송해요. 꼭 오고 싶었는데 아쉽습니다."
D: "그럼 왔겠죠."
→ 그렇게 오고 싶었으면 참석을 했으면 될 일이지 지금 와서 변명해봤자 뭐가 달라지냐며 비꼬는 것이고 죄송하다는 말을 꺼내는 건 내가 비꼰다는 걸 알고 있으며 이에 동의하는 것이라고 앞서 간다.

(계산 후 들고 갈 게 많아 보이는 것을 확인하며)
E: "비닐 드릴까요?"
F: "그럼 이걸 그냥 들고 가요?"
→ 위 C, D와 비슷하게, 눈치가 있다면 상대도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비닐이 필요한 걸 알 수 있을 텐데 그럼에도 물어봤다는 건 본인을 조롱할 의도라는 것이겠거니 나 역시 비꼬아도 정당행위라며 작위적으로 판단하고 내뱉는다.

(전화가 걸린 상황)
G: "여보세요?"
H: (여러 가지 지시를 한다)
G: "OO대로 하면 되는 거죠?"
H: "잘 안 들리는데 좀 똑바로 얘기할래?"
G: (다시 읊는다)
H: "너 나랑 장난치냐?"
→ 수신자의 마이크 이상이거나 발신자의 스피커 성능이 저하된 경우이다. H는 이러한 고장의 가능성을 무시한 채 G가 본인의 지시가 맘에 안 들어 고의로 못 알아듣게 말을 웅얼웅얼 거린다고 판단해 책임을 묻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눈치가 좋을지라도 정서 지능이 낮으면 상대가 느끼는 상황을 배제한 채 자기 중심적으로 세상을 판단하게 된다. 이게 심해지면, 영역 침해를 하면서까지 타인의 관점을 멋대로 해석해도 된다는 근거를 만들게 되며 그보다 낮은 눈치력을 지닌 집단이나 그렇게까지 높은 수준의 눈치를 요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상대에게 불쾌감을 전달하는 걸 정당화시킨다. 반대로, 정서 지능이 높은 만큼 상대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불쾌하게 만드는지도 잘 알기 때문에 지능적으로 남 기분 망치게 하는 게 취미인 경우 스트레스 풀이로서 악용할 수 있다.

정확히는 자기 기준에서 이성적이지 않는 무질서를 혐오하는 것에 가깝다. 세상은 자신이 생각하는 관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대 또한 자신과 일원화되어 있다는 정의관을 진리라 여기며 이는 상대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너(상대)도 내가 불쾌할 것을 예상하고 말을 한 것일테니 나도 너를 불쾌하게 만들더라고 그냥 받아들여라'라는 억지도, 본인이 이렇게 해석하도록 만든 상대를 지목하여 책임을 양비하려는 목적[50]으로도 적합하기에 알게 모르게 관계망에 광범위한 훼방을 놓으며 눈치 없는 것은 물론 눈치 없는 척을 하는 행위, 이성보다는 감성적으로 판단해야 할 분위기[51]에 좋든 싫든 그러한 연기를 하여 상식인을 유지해야 하는 상황과 실제 선의의 목적임에도 의도를 비꼬는 등 굳이 자신이 신호를 주지 않아도 눈치가 좋은 집단에 오냐오냐 길들여졌을 시에도 이러한 악화일로를 보이게 된다.

'내가 저 상황이라면 이렇게 할 텐데'라는 건 결과론적이며 실제 본인에게 닥칠 시 예상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식적이지 않으면 지적해도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문제는 개개인의 상식은 다르며 잘못할 짓 역시 흔히 '욕 먹기 전에 알아서 고치면 되는 거 아닌가?'라는 것도 관찰자에서나 그렇지 비난 받을 걸 각오해 얻는 이득이 크다면 본인이 안 할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계획을 개인으로만 정의할 수 있다는 맹신은 그 자체에서 오는 의문을 탄압하는 것만큼 무의미하다. 상담 및 자문은 외부에서 판단할 수 있는 본인에게는 한심하다고 느껴질지라도 어릴 때 현 자신의 위치에서 이보다 한심한 질문을 했던 것도 답 해주던 조력자의 존재가 원판을 만든 것처럼, 듣고자 할 의지가 없는 사람의 이견보다는 거래관계에서 수요의 지속성을 위한 신뢰 표본이 그나마 주류에 가까운 해결책을 얻을 수 있게 명성과 따라가야 하기 때문에 사회성 부족을 알아가는 대안을 위한 자구적 교정과도 일치한다.

보통 무례함과 같이, 위 같은 예시들의 예지라는 부수적인 요인의 연쇄로 쌍방의 공격성을 촉발시켜 말다툼으로 치닫는 게 주 패턴이다.
(배달을 시킨 구성원들)
I: "배달 왔다."
J, K: "잘 먹을게."
L: "응? 근데 내껀 어딨어?"
I: "니가 뭔데?"[52]
I가 돈을 내는 거라면 해당 예시에서의 법적 문제는 없다. 그러나 부당한 상황을 L이 납득할 만한 근거가 과거에 L이 해놓은 실수에 따른 앙심을 위한 보복 중 사회로부터 얻는 이득이 현저히 적은 본인이 만든 눈치의 기준에 벗어나는 게 그 이유라고 한다면, L은 상대방의 딴지에 대항할 권리가 없어지는 쪽으로 분위기가 흘러가게 된다.[53] 또한, 사적영역 내 중간관리직에 대항할 자격은 이미 과거 급조된 'I의 눈치력'에 불응한 결과로서 사적영역에서 보여준 행적의 여파가 공공영역에서도 별반 다르지 않게 적용될 것이라 확증한 이후일테니 L이 반박해봤자 I의 입장에서는 변명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이다.[54] 결국 과거 자신 기준에 불응한 건 사실이니 교정 가능성도 없다는 논조로 반박해 상대의 묵인을 통한 자신(I)의 근거를 주변인에게 간접적으로 옳았음을 조작하여 조직 내 권력을 유효화할 수 있으며 여기까지 온다면 사실상 피해자 스스로가 구성원에게 이미지를 쇄신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영역에 끼어드는 건 상대의 과거에 했던 잘못을 빌미로 더는 동의를 묻는 것이 무의미해지기에, 상대방의 입장을 들어보지 않고도 강제도출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성이 주력인 판단을 할만한 시간이 남아서 반박할 준비도 충분한 I로 인해 그나마 있는 체면을 사리기 위한 L의 무기력으로서 이를 본 3자(J,K)에게, 궤변으로 자만하는 것을 더 우월하다 판단하게 만들어 사회 자본을 더럽힌다.[55] 따라서 후천적으로 사회성 및 대인 기술이 발달한다 하더라도 사적영역에서는 사회 부적응자로 인식된다.[56]

이러한 수동공격적 사고는 아무리 본인이 상식인으로서 자부하는 행위에서도 법치주의로 다룬다면 위법이 되는 경우가 있다.[57] 위 예시는 조롱의 의도를 서술을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잘 느끼도록 과장하기 위하여 좀 뜬구름 잡는 상황으로 연출한 것이며 실제로는 피해자가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착각이거나 예민하다고 느끼도록 조작할 수 있을 정도의 치밀한 앞서 가기를 활용하여 법적은 물론 도의적으로도 문제가 된다는 해석을 도출하기도 난해할 정도이다.[58] 대표적인 사용처는 수평관계를 연기하는 갑이 포진하기 쉬운 환경이며 이후는 대부분 유형 1 중 3번 째 양상으로 흘러간다.

유형 4. 관행
(초면끼리 자기소개를 하는 중)
A: "너 나이가 몇이야?"
B: "빠른년생이라 일단은 XX살 입니다."
A: "근데 어쩌라고?"

(전자레인지 알림이 울린다)
C: "왜 (음식) 안 꺼내?"
D: "응? 니거 아니야?"
C: "알림 계속 울리잖아."
D: "너가 알아서 꺼낼 줄 알았지."
C: "알림이 다 됐으면 누군가라도 꺼내야 하는 건 상식 아니야?"

(남자가 여자를 배려하는 상황)
E: "아, 너(여자)는 쉬고 있어. 오빠가 알아서 할게."
(F 또는 다수에게)
E: "야, 같이 도와."
F: "??... 도와주겠단 말 안 했는데?"
E: "진짜 눈치 없네."
A와 B의 상황에서는 대화로만 봤을 시 시비걸릴 포인트를 집기가 난해한데, 상대(B)가 간략하게 답하는 것이 더 어울리는 상황에서 이러한 자기 공개에 살을 덧붙히는 의도는, 서열에 따른 도전의식으로 오해석하여 시비걸어도 된다는 명분을 주게 되므로 정말로 그렇게 받아들인 상대로부터 대화가 꼬이는 것에 가깝다.[59] '안 물어봤다'라고 순화할 것도 아니고 다짜고짜 서열을 경화시키려는 A의 원인도 있지만 이를 확장하는 건, B가 이러한 의도를 앞서 생각하지 않아 부적절한 처세술을 보인 점과 더불어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는 심증을 대비해 여론 공세에 독박 쓸 것을 예상하여 최소한의 의사를 지키지 않은 게 A의 입장에서 문제가 된다면 서열상 중대한 문제로 변화한다. 여기서 문제라고 하는 건 겉보기엔 A의 과민반응이겠지만 이를 결정하는 건 그러한 공세에 합세하는 제3자의 과반이 정할 몫이다. 따라서 B는 정말로 순수한 의도로서 수평관계로 전향하려는 사교에 의한 시도이겠지만 상대방에겐 객기로 보이는 것이다.[60] 초면에는 부연설명할 거 없이 필요한 말만 하자.

C와 D의 상황은, D에게선 C의 소유물에 간섭해도 된다는 동의를 받지 않은 상태인지라 C가 직접 꺼낼 것이라 판단하였고 이를 C 역시 자신(D)이 음식을 꺼내지 않고 방치하는 의도를 어림잡아 예상할 것이라 앞서 간 게 오착이 된 것이다. 사실 지적하기 전에 먼저 와서 끄지 않았고 D에게 대리권을 주지 않은 C의 책임이 크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나의 의도를 말하지 않아도 '결국 그 위험수를 예상해 내가 그런 선택을 할 것이란 예상도 하는 것이 기본 아닌가?'라고도 상대방이 알고 고려할 만큼의 눈치가 있다고 과대평가하는 게 문제다.[61] 아무리 친구라 해도 물건은 함부로 건드는 게 아니다. 되려 신뢰는 한치의 실수로도 사라지는 신기루 같은 존재이니 선택을 보류하는 쪽으로 일단락하여 상대와의 관계를 이어나가기 위한 차악으로서 단절을 무마하려는 선의일 수도 있고 이는 꼭 실재해야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결국 선의로서의 무대처가 외관상의 산파한 사실만을 편향하여 바라보는 제3자에 의한 이기적 개인주의자로 조작돼 불순한 인간으로 매도당하기 쉽다는 점을 간과한 거다. 하물며 동의를 구한다는 것도 역으로 동의를 구하지 않고도 자조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니 의도가 와전되어 세간에서 흔히 가만히 있으면 될 걸 굳이 일을 키워 수습하지 못 하게 만드는 경우도 이러한 심리적 영향 때문이기도 하다.[62]

E, F의 상황은, 자신(E)의 가치관이 마땅히 해야 할 신념으로 자리잡아서 생겨나는 갈등이다. 본인에게는 이성을 배려한다고 생각하겠지만, F나 그 조직에게는 나 or 우리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상대방 편의에 이용되었단 사실에 불쾌감을 느낀다.[63] 애초에 이 대화는 그 의도를 알았어도 문제라고 여겨질 사회적 격차[64]가 있는 형식이므로, 배려받는 여성(들)과 같은 보수를 받는 조건을 추가하면 E가 상사일지라도 당하는 측은, 따지는 것을 '눈치가 없다'고 치부하는 걸 납득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찮아도 E의 의도는 아무리 선의였어도 남이 보기엔 마킹을 위한 노동력 갈취로 오해받을 수 있기도 하니 공익에 가까웠어도 뒤에선 평판이 추락할 수 있다. 문제는 공익이 아닌 사익으로서 타인에게 억지로 동조해야 할 상황이 의외로 많이 벌어지며 갈라치지 말았어야 할 인간관계에 불똥을 흩뿌려 쓸데없는 논란을 점화해 개개인의 처신과 윤리 수준을 상향 평준화시킴으로서 무대처로 일관하는 사익에 편승하는 부조리를 제공한다.

해당 유형은 대처가 불가능할 정도로 일상과 직장에서 녹아들어있다. 본인의 판단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질거란 소망은 상대에겐 사교 또는 그러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순수한 의도조차 앞서 가기로 악용되어 오해의 소지를 낳기에 수직관계 내 친목으로 오는 불관용이 수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이유도 주변인으로부터 '좋게 넘어가지 않고 일을 키워 모두를 피곤하게 만든다'는 쪽으로 조작될 것임을 미리 눈치채고 알아서 숨 죽이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눈치챘겠지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같이 무궁무진한 상황이 존재하며 필요에 따라 직접 만들 수 있다. 위의 예시들은 이론으로 규합된 극히 일부를 나타낸 것으로서 어떤 건 실전으로 터득해야만 알 수 있는 등 별 이유없이 갑질하려고 꼬장부리는 무의미한 신경전에 적절한 완급 조절과 대응법의 분화 역시 구사자의 화법과 성음 파형에 따라서도 천차만별로 나뉘어진다. 사회 규범을 넘어 실생활과 양식을 조합한 앞서 가기를 위키에 전부 담아내기에는 여백이 부족하며 글로 마스터하기에도 불가능하다. 상대방 성향에 따라 더 앞서야 하거나 덜 앞서도 되는 상황 역시 남이 보기엔 매우 난잡한 예시가 될 수 있으므로 따로 서술하지 않는다.

앞서 가기를 통한 이중 추론이 무의미해지는 경우는 대표적으로 자발적으로 형성된 내집단이 주도하는 괴롭힘이다. 닫힌 사회로만 좁히면 본인이 먼저 원인 제공을 했을 공산이 크며 여기서는 이를 의도하지 않았든 사회 부적응자처럼 보인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65] 두 가지 전부 자신의 잘못이 명백한데 처우에 무심하면 상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신의 명예를 조져버릴 심산이기 때문에 지적할 상대가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재구성이 가능하다. 드물게 상대의 정신상태가 문제를 만든 경우도 있다. 여기서 사회인이 할 수 있는 대처법이라곤 조직을 나가거나 일적으로만 소통하는 현상 유지이다. 개인이 해결한다면 윤리의식을 지킬 게 아니라 외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본인이 앞서 가기로 상대를 논파하려 들거면 먼저 상대방이 왜 그랬는지 이유[66]라도 듣고 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자신을 배려한 것을 앞서 가기로 오해했던 걸 수 있기 때문이다. 욕설을 받아들이는 관점 역시 모욕감을 받았다고 느끼는 것만을 기준으로 손절하면 안 된다. 표정이 안 좋은 건 본인이 싫어서가 아니라 몸이 아픈 게 표정으로 드러나서 오해한 걸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진짜로 욕을 하는 것일지라도 진심으로 걱정돼 충고하는 걸수도 있다.[67] 인간관계는 사소한 오해로 망가진다. 대화도 없이 사람의 속마음을 판가름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손절 이전에 본인이 먼저 화를 내려놓고 열린 마음으로 들어주는 것이 자신의 편을 지키는 지혜가 되기도 한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공감능력이 부족하거나 사회적 경험이 없어서 눈치를 터득하지 못했어도 지능 지수가 일반인과 차이가 없다면 상황별 정보를 암기하고 타인과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도록 신호를 조합해, 심리적인 타당성을 만족하는 의도를 추론할 수 있도록 앞서 가는 능력을 기른다면 보통 사람 이상으로 행동력이 개선되는 게 가능하며 눈치를 대체할 수도 있다. 단, 이러한 추론에 의존해서 생기는 부작용으로는, 직감과는 달리 에너지를 몰아서 쓰기 때문에[68] 뒤가 허당인 경우가 많고 예상 밖의 행동의 연계가 이어진다면 버퍼링에 빠질 수 있다. 또한 상대방은 매우 괴상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는 데 반해 정작 당사자는, 추론의 결과가 눈치있는 상대가 생각한 결과와 비교하여 충분한 교차점이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겉으로 봤을 땐 고의로 눈치없는 짓(도발)을 하고 있다고 오해할 수 있다. 이렇듯 사회성이기만 하는 사회성을 암기한 앵무새는 상대가 이어서 하는 말을 놓치기도 쉬워 서로가 불편해질 수 있다.

사용자에 따라 의식이 개입되는 의사결정은 문서마다 고르게 분포되는 실용성은 물론 후천적인 사회적 기술들을 아우르는 대전제로서, 부조리를 탄생시켜 기술의 가치를 퇴색시키거나 반대로 갈등을 악화시키는 편향으로부터 방어하는 체계를 보완시킬 수 있는 양날의 검이 된다.

4. 사회적 규범

4.1. 불문율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불문율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불문율은 집단마다 다르다. 아예 장애인, 외국인 등 외관상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과 큰 차이가 나는 외부인이라면 이들에게 이런 불문율을 지키지 않는다고 화 낼 일은 없지만[69], 갑을관계에서 자기 밑에 있는데 눈치(불문율에 따라) 기분을 맞춰주지 않는다면 상대방은 자신의 상식과 전혀 다른 행동을 하는 사람 때문에 심각한 분노를 느낄 수도 있다.

가령 '호주 출신의 백인'이 한국 기업에 취직해서 회식에 참석하지 않으려 한다고 해서 상대가 분노하지는 않는다. '여기서는 원래 이래야 한다'는 변명이 따를 뿐이다. 하지만 '호주 출신 재외동포(한국어 가능)'이 한국 기업에 취직해서 회식에 참석하지 않으려 들면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온갖 뒷담화와 비방을 한다.

자신이 전혀 다른 집단에 속해 있는 사람에게 숙이고 비위를 맞춰야 할 때는, 가급적 그에 대한 준비를 많이 해 두는 게 좋다. 이로 인해 적응이 어려워지는 것을 사회학에서는 'Habitus'라고 하며, 신분 상승을 차단하는 요소로 지목한다.

사회적 의사소통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어려워하는 사회성 요소이다. 꼭 거기까진 아니어도 눈치 나쁜 사람들도 어려워한다.[70]

4.1.1. 예의

권력자에게 서열관계 내에서 한국인 하급자에게 요구되는 예절을 지켜야 험한 보복을 당하지 않는다.[71] 다만 권력 차이가 없는 상황에서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상하관계의 예절을 요구하는 경우는 예외다. 자괴감이 들고 훈장질 당하고 기분이 나빠진다면, 그 사람과 마찰을 빚기보다는 관계를 끊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공공장소에서 떠드는 사람에게 가서 따져야 할 시)
A. "실례지만 조용히 해주세요. / 죄송하지만 목소리 좀 낮춰주시겠어요?"
B. "입 좀 닥치세요."
원만한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언어 순화로 예의를 지켜야 될 필요가 있다. 상대에게 원하는 것을 알아듣게 설명하는 전달력도 중요하지만 이를 잘못 해석하여 B의 표현을 사용한다면, 제 아무리 '상대가 먼저 불쾌감을 줘서 나도 똑같이 대우했다'라는 논리는, 본인의 의도는 납득이 될지라도 현 상황을 악화시킬만한 이유가 되지 않으며[72] 자신의 의사를 확실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라도 상대방에게, '내가 잘못한 건 아는데 너의 언행이 띠꺼우니 물고 늘어져 책임을 분산시켜야겠다'는 빌미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지 않는 것은 결국 감정을 관찰자 입장에서도 소모시키는 잠재적 여파를 고려하지 않는 개입인의 사회성을 재고받을 수 있고 이는 대리여도 같다.[73] 즉 전달력도 중요하지만 상황 중재와 책임 회피를 위해서는 A의 표현을 사용하는 게 여기서 다루는 예의의 목적성과 부합하며 여기서 더 강하게 표현한다 해도 쿠션어를 뺀 "조용히 좀 해줄래요? / 목소리 좀 낮춰주실래요?"까지가 한계이다.[74] '하여튼 → 여하튼'같이 별 거 아닌 차이로도 듣는 사람에겐 세심하면서도 자극되지 않도록 예의의 격이 나뉘어진다. 자기 편리적 공격성이 다분한 말투는 대개 적을 두게 되며 아군을 위해 쓰이더라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성향과 같이 있으면 본인도 같은 짝으로 취급당해 평판이 낮아지니 위선자만 남고 서서히 떨어져 나간다. 이러한 말투는 한시라도 빨리 고쳐야지 본인 신상에 좋을 것이다.

친하지 않은 사이에서의 반말은 혼잣말이나 작업 연상 과정 도중 성조를 올리지 않고 끝맺는 조건하에서 허용된다.[75] 이외에 반말로 들리기 쉬운 경우는, "-했어요. / -할게요." 할 때 '요' 소리를 또박또박 안 하고 작게 흘리거나, "-하시거나 ..."에서 '하시던(든)가'로 잘못 말 할 때 비아냥하는 것처럼 들려 반말로 준하게 변한다. 질문에 답할 시엔 마무리가 밋밋한 것보단 옥타브를 올려서 발음해야지 개긴다는 오해를 받지 않는다. 이건 메시지를 보낼 때에도 동일하다.[76] 뒤에 내 말에 안 따르면 보복한다와 같은 뉘앙스를 띄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며[77] '뭐- / 아니-'같은 군말은, 그냥 말하기엔 딱딱할 때 이를 풀어 줄 목적으로 붙일 수 있다. '엄 / 흠 / 습...'은 '너도 솔직히 이건 아니지?'라는 의미도 추가할 수 있다. 공용 물품의 소유를 암시하는 빈말도 아예 자극하지 않기를 원한다면 이 역시 빼는 걸 고려해야 한다.[78] 이 모든 경우에서 이어지는 반응은 상대가 말을 마칠 때까지는 지연하는 게 좋다.

본인 안방마냥 소란을 피우는 건 예의가 아니다. 생일 파티를 위해 모이거나 술판을 가지는 사람들의 친교도, 도서관이나 지하철같은 공공장소에서 주최한다면 남이 보기엔 그저 사회 부적응자일 뿐 얼마나 사교적인지와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무례는 어느 정도 용인될 수 있다. 감정을 드러낸다는 건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는 자기중심적 사고이지만, 인간의 사고가 마비되는 극한의 상황에서는 민감군에 한정해서도 책임을 묻기도 뭐하다. 이때는 상황에 맞게 예의를 지켜야되는 분위기인지 굳이 지키지 않아도 상대로부터 피해를 받는다고 하기에는 애매한 분위기인지에 따라 대처방식을 달리해야 한다.[79]
(상대방 사이로 지나가야 할 시)
A. "잠시만 지나갈게요."
B. "비켜주세요."
C. "꺼져주세요."
뒤에 존댓말만 붙이면 공격적인 표현도 순화가 된다고 생각하여 내뱉은 것이 상대에게는 비속어가 될 수 있다. 불쾌하게 만들 의도는 아니었어도 일상에서 들을 시의 묘함은 사회에선 굳이 그러한 방식으로 말을 했어야 될 필요성이 있었나를 곱씹게 하며 본인을 얕잡아 보기 위함으로 확대해석하기에 이른다. 특히, C는 평어였어도 상당히 공격적인 직언으로서 만일 상대가 남이라면 매우 무례하다 받아들여 싸움날 수도 있다.[80]

압존법에서의 실수도 순화 과정을 받아들이는 입장 차가 달라서 무례하다 느끼는 것이며, 현재는 새로운 개념인 사물존칭이 이를 대신한다.
(실수한 사원에게 주의를 줘야 할 시)
A. "다음부터는 이런 일 없게 똑바로 신경 써주면 좋겠습니다."
B. "다음에도 또 이런 일 발생하면 가만히 안 둘 겁니다."
C. "당신이랑 어울리는 사람 수준도 알 것 같네요."
D. "부모가 그렇게 가르쳤어요?"
B까지는 선을 지킨 편이나, C부터는 조롱이며 모욕죄까진 아니더라도 화해가 무색해진다.[81] 욕을 할 상황이 안 나오는 게 가장 좋지만 총대를 메야 할 시 사실 위주로만 지적하되 최소한의 선은 지켜야 한다. 개인의 문제를 주변 지인들까지 싸잡아서 연루시키지도 말고 패드립은 어느 상황이든지 간에 절대 금물이다.[82] 상대가 '나를 직접 욕하는 게 부모욕보다 더 기분 나쁘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혀를 차는 것 정도는 관찰자에게도 허용된다.
(상사에게 허락받아야 할 시)
A. "XX하러 가겠습니다."
B. "XX해도 되겠습니까?"

A. "-할까요?"
B. "-하나요? / -해도 되나요?"
본인의 의지를 내포하여 전달하기보다는 상대에게 명령권을 공유하는 형식으로 말하는 게 좋다. 권위적인 사람에게는 A의 말이 '누구 맘대로 그렇게 하도록 허락해 줬나?'라는 월권으로 해석된다. 이게 아니어도 B의 형식으로 전달하는 것이 허락하는 측에게도 책임을 전가할 수 있을 명분이 생겨나고 또 주변인에게 공손하다는 인상을 주기에 평판 유지로서 더 안정적이다. 후자의 상황 역시 내가 마지 못해 하겠다는 뉘앙스를 상대방에게 보여서 찍히게 된다.
(상사에게 사과[83]해야 할 시)
A. "죄송합니다."
B. "불편했으면 사과드리겠습니다."
C. "기분 나쁠 수 있었던 점에서 사과드리겠습니다."
중대하지 않은 사소한 부분에서 격식에 찬 표현을 쓰는 것은 상대를 비꼬는 완곡어법이 될 수 있다. B의 경우, 자신(상사 포함)의 언행을 제3자에게 하여금, '네 성격이 이것도 못 받아줄 정도로 쪼잔한 건 알지만 나는 너그러우니 이해하겠다'라는 완곡어법으로 전달될 수 있으므로 간단명료한 A의 표현이 더 예의가 있다. 범죄까진 아닌데 그에 가까운 실수를 한 경우, 묻어간다는 뒷말로 인해 비호감으로 찍히지 않도록 C의 표현을 빌리는 게 나으며 "이러이러(가급적 본인이 벌인 행동 위주로 해석)하여 좋지 않은 감정을 느낄 수도[84] 있었던 것에 사과드립니다."로 우회해, 상대의 반응을 눈치챔과 동시에 분리시키는 센스를 발휘하여 관련인은 물론 제3자가 악의적으로 실수를 병합할 여지를 남겨서는 안 된다.

불쾌한 말이나 상황은 애초에 만들지 않거나 최대한 삼가는 게 예시들의 공통이다. 만일 알아가는 과정이 상대가 불쾌할 수 있다면, 제3자로부터 상대의 니즈가 밝혀질 때까지 침묵하는 게 가장 좋다.[85] 알고 싶은 것이 불쾌해질 수밖에 없는 주제라면, 윗선의 눈에 거슬리는 때가 바로 얘기를 다룰 타이밍이며 다수가 저울질하면 가세해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 이 점만 준수하면 사회성의 절반은 커버가 가능하다. 본인과 연류돼있거나 친분상 어쩔 수 없이 먼저 말을 꺼내야 한다면 "기분이 나쁠 수 있겠지만... / 이런 말 하긴 좀 뭐하지만..." 등과 같이, 상대방에게 감정 동요에 대처할 시간을 주는 게 배려이고 또한 이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는 공동 책임에 대한 억제력이 보충된다.

친밀해지기 위한 신체 접촉은 하더라도 손목, 어깨, 등, 머리 순으로 다가가야지 상대에게 불미스러운 오해를 사지 않으며 이마저도 이성(특히 남→여)이라면 사회적 평판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언어적 위주로만 접근하거나 더 진행하려면 불쾌감을 느끼지 않도록 본인의 지위 유지에 특히 신경써야 한다.[86] 격려하는 듯 신체를 두드리는 행위도 같다. 가능하면 접촉 자체를 안 하는 게 가장 좋지만서도 그것이 불가피한 상황[87]에서는 설혹 닿아도 성추행에 얽히지 않는 부위로 향하도록 손을 등에다 대거나 아예 만세 동작을 하여 성욕에 근거하지 않았음을 어필할 수 있도록 방어해야 한다. 동성끼리 신체적 접촉이 허용되는 범위는 여성에게 더 관대한 편이나 아이와 접촉할 때(예: )는 보호자의 허락을 받는 건 필수다.

위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둬서 상대의 말을 듣더라도 썩소를 짓거나 짝다리, 팔자걸음,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는 등 보기에 반항하는 듯한 태도를 드러내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성격이 급한 걸 티내는 과격함[88]은 남이 보기엔 무례하며 갈등이 일어난 것으로 오해해 분위기가 흐려진다. 뒷사람을 배려하는 세심함[89]도 요구되며 때에 맞게 예민함[90]에 수응해야 한다. 안 지켜도 될 것같은 시덥지 않은 이유도 상대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으니 최소한 알아둬서 나쁘진 않을 것이다. 예의 이전에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는지도 잘 판단해야 한다.[91] 이외에 기타 예의와 관련해서는 무례, 민폐, 식사 예절, 접대 문서를 참조하자.

4.1.2. 분위기에 맞는 주제

꼭 싸움날만한 주제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곳에서 부적절한 주제(저속한 주제, 지나치게 사적인 주제, 상대방이 싫어하거나 숨기고 싶어하는 주제 등)를 많이 이야기하고 다니거나 이것으로 인해 문제가 생기면 사람들이 피한다. 상대가 의견을 피력할 만한 장소 이외에 사상을 드러내게 만드는 것은 수치심을 느끼게 하고 상대방을 무례하다 여기게 된다. 특히 이런 세심한 요소에 신경쓰지 않아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은 '밀폐된 공간에서의 1:1 대화'와 '음식점, 카페, 술집 등 개방된 공간에서 불특정 다수가 들을 수 있는 대화'를 구분해야 한다. 반대로, 상대의 주제가 현 분위기와 어우러지는지, 통념상에서도 맞는지 파악할 줄도 알아야 한다.

자신과 어울리는 주제를 구분하는 능력이 미흡할 시 생기는 문제로는, 알아듣기 애매한 지시나 응대를 독자적으로 소거해 주제에 벗어나게 만드는데서 발생되는 혼란이다.
의사: "어떻게 오셨어요?"
환자: "걸어서(B)요."
의사: "그러니까 여길 왜(A)..."
의사 입장에서는 개인 간 사담보다는 어디를(A) 치료받고 싶은지를 듣는 것이 현재의 상황과 어울린다. 그러나 여기서 환자는, 의사가 질문하는 의도를 병원에 온 목적이 아닌 말 그대로 병원에 온 방식을 묻는 주제로 판단하는 것이고 이는 사회성이 부족하면서도 어쭙잖게 모방하려고 할 때 주로 나오는 실수이다.

(A)와 (B) 중 현 상황에 맞는 주제의 해석에서 적어도 (A)가 (B)보다 더 자연스럽다 생각하고 피질문자 역시 이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각기 다른 해석을 동시 대응하려다 어색한 말이 나오는 것은 결과적으로 주제파악을 못 하는 인간으로 보이는 건 똑같기에 '설마 해당 질문이 통념상 (A)임을 서로가 알고 있을테니 다른 답을 듣기를 원하는 건가?'라며 (B)라는 위험수를 고르기보다는 그냥 기존에 맞게 대응하는 것이 여러모로 더 낫다. 이는 전문가에게 "인터넷에선 이러이러하게 하라던데요?"와 같이, 분위기에 맞지 않는 출처 자료를 주제와 통합하려는 시도도 포함된다.

말을 못 알아 듣는 척 계속 동문서답하여 시간을 끌어야 하는 자리(예: 청문회)에서는 예외다.

4.1.3. 수용 의식

사람은 안정된 상황을 좋아한다. 논란을 일으키지 않는 사람과 어울리기를 선호하므로 알게 모르게 사회 시스템 안에서 구성되는 불문율을 자신의 논리로 지적하여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은 조용히 넘어가는 게 미덕으로 자리잡은 조직 내에서 안티테제로 취급된다. 개인의 힘만으로 사회적 합의를 비판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그저 주제도 모르고 나대는 자칭 열사로 보일 뿐 유도리가 중요한 문화권에서는 상극이다.
편의점 점원: "저기, 그거 드시면 안 돼요."
손님: "왜요?"
편의점 점원: "아직 계산 안 하셨잖아요."
손님: "지금 할 건데요?"
편의점 점원: "..."
이유를 굳이 따지자면 법적으로는 아직 계산한 것이 아니기에 물건은 편의점 소유이고, 편의점 소유인 물건을 자신의 것이 아님에도 취식하였으니 범죄 행위이다. 실무적으로도 손님이 카드를 가져왔을 때 안 읽힌다든지 잔액부족, 한도초과가 떴을 경우 상당히 난처한 상황이 생길 수 있다. 그리고 알바가 현금 환불을 할 경우 가게 주인은 알바가 도둑질을 한다고 오해하고 해고할 가능성도 있다. 또 여러 명이 계산 전에 따서 먹고 있을 때 계산 안 하고 먹튀하는 자가 생길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여러가지 이유가 있기 때문에 먹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설명해줄 편의점 직원은 없다. 황당한 진상 손님이 정말 사람을 당황스럽고 화나게 만든다 정도로 취급할 뿐이다. 사회 통념과 기본 상식을 잘 읽어내지 못하는 것 역시 사회성이 부족한 것이다.
(불문율, 지시에 대해) "왜죠? 근거가 있나요? 그런 규정도 있나 보군요. 그것이 도움이 되나요?"
(조직이 보는 앞에서) "이러한 것(=관습)에 따르기 싫다."
마찬가지 이유로, 대등한 수평관계나 갑과 을의 수직관계에서 불문율에 대한 이유를 물어봤자 친구 사이가 아닌 한 설명을 들을 수 있을 확률은 거의 없다. 오히려 고지식하니 답답하니 융통성없니 하는 말만 들으면서 소외당할 확률이 더 높다. 애초에 어른의 사정은 설명하려면 난처하기 때문에 불문율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웬만하면 불문율은 알아서 터득해야 한다. 불문율을 미리 알지 못했다는 것만으로 사회생활에 장애[92]가 있다고 평가하는 경우도 있으니 새로운 집단에 들어갈 때는 적절한 준비가 필요하다.[93][94]

다수가 불문율과 다른 노선을 탈 시에 예외적으로 기존에 있던 합의가 갱신된다.[95] 이 때문에 잘못은 아니지만 다수에 따르지 않아서 생기는 경우엔 잘못으로 몰릴 수 있다. # 단, 참여 의사를 보였을 시 조직 분위기에 따라 본인도 맞춰줘야 될 성의가 요구된다. 소수가 막강해질 것을 미리 대비하는 게 좋다.

다수가 제시하는 규범에 따르지 않는 것이 수용을 거부한다는 의도로 결론내면 안 된다. 다수가 정한 진리는 영원하지 않다. 가령 소수인 왼손잡이가 튀어 보인다며 고치라는 오른손잡이의 말을 수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사회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며, 체질상 알레르기가 있어서 음식을 가려야 하는 상황에서 소수파를 따라간다고 비하하는 건 강제할 필요가 없는 합의를 바꾸는 상대방의 사회성이 없는 것이다.[96] 다수가 소수를 비난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역으로 본인이 소수파일 시 다수파의 (비)논리를 따라야 할 것이다. 이미 약속한 현상을 꼬집기 이전에 그 접근 방식에서 오류가 없는지를 우선적으로 검토하여야 하며 그 과정을 거친 다수-소수끼리는 개별적 공간으로 인식해야 한다. 식사 중 기도하는 등 종교와 관련된 것 역시 사회 규범상 용납할 만하다면 틔더라도 수용해야 하며 이러한 의식은 문서의 의의를 관류한다.

상대의 말이 헛소리(=논리적이지 않다)라고 해서 꼬치꼬치 캐물으려고 들면 안 된다. 논리를 따지는 건 직장에서나 하지 일상에서는 사회성 부족으로 본다.

4.2. 완곡어법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완곡어법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초중고 시절의 돌려 말하는 표현과 성인 시기의 돌려 말하는 표현은 다르다. 여기 해당하는 경우는 대부분 사회 경험 부족에 해당하므로, 눈치 없는 사람이라면 혼자 생각해서 이 표현들을 모두 빠르게 해결해내기는 어렵다. 특히 중산층 이상으로 갈수록 이러한 이해력은 더 절실히 요구된다. 중산층 이상에서의 의사표현 방식은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돌려서 표현하는 경우가 많고 이는 고맥락 문화권에서 보다 더 복잡하게 얽힌다. 일본과 같이 돌려 말하는 정도가 심한 곳이라면 신경을 많이 써야 하며, 여자어같이 성별마다 의도를 다르게 눈치채야 하는 경우도 있다. 문장 부호나 이모티콘도 사용자에 따라 완곡될 수 있다.

본인의 의견이 기각/지적당하지 않게 우회하는 부언어의 집합이기도 하며 이를 해석할 수 없는 측에게 사회성이 없다는 여론을 유도하는 트릭으로도 이용된다. 물론 당사자는 사회성이 평균 이하이도록 조작된 사실을 알지 못하게 만드는 게 이 문단의 기능이다. 또한 보여지는 기작을 조정하여 상대가 직접 해석하도록 개입시켜 쌍방의 의중을 가릴 수 있게 도와 문제를 만든 측이 책임을 지지 않기도 한다. 눈치만으로 알아채기 힘든 이러한 정치성 완곡어법은 이 문서를 통해서는 익힐 수 없으므로 직접 필드에 나가서 터득해야만 한다.

공통적으로, 뒤늦게 본뜻을 알았다고 해도 실제 의미를 면전에 대고 한 말대로 대응하면 안 된다. 상대는 쉽사리 인정하려 들지 않을 것이고 그 해석이 확정적이어도 말을 안 한 이상은 일방으로 확장된 앞서 가기로 뒤짚어씌어지기 때문이다. 이 또한 본인이 알게 된 경로와 같이, 사람들을 거쳐서 들은 거라면 도중에 완곡됐을 수도 있다.

사용자의 맥락을 모르면 일단 수긍한 후 뒤이어 진짜 저의를 캐낼 복합 멘트로 무마할 수도 있다.[97]

즉석으로 요구사항을 써넣는 수기(手記)는 상업적으론 직설적이어야 하며 돌려서 표현하는 것은 지양된다. 원인 규명을 하는 곳이 따로 있다면 본인은 그 단서만 쥐어주면 소임을 다 한 것이다.

4.2.1. 분노

  • 넌 정도 없는 인간, 의리도 없는 인간, 사나이 같지도 않은 인간이다. 난 너를 가족같이 생각했는데 너에게 정말 실망했다.
    - 보증, 사채, 보험 가입 등 무리한 요구를 하면서 거절하지 못하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려는 목적으로 자주 쓰이는 화법이다.
  • 젊은 사람이 왜 fresh한 생각이 없냐? 요즘 젊은이들은 패기가 없어. 요즘 젊은 것들은 의지가 없어. 헝그리 정신이 부족해.
    - "난 경력이 많기 때문에 스펙이 낮아도 젊은 사람들보다 잘났어."라는 말을 하고 싶을 때의 관용어구이므로 그냥 웃어 넘기면 된다. 여기에다 대고 창의적인 생각을 내놓거나 뭔가를 개선하려 하면 윗사람을 무시하고 윗사람이 자기 친구인 줄 안다며 화낸다. 꼰대이므로 귀담아 들을 필요 없다.
  • 말대꾸하지 마라, 변명하지(핑계대지) 마라, 어디서 어린 놈이 어른에게 대들어? 어른이 말할 때는 잠자코 들어라, 어디서 말대답이야? 뻥치지 마라.
    - 내 생각이 옳지 못한 건 알겠지만 난 어른이기 때문에 무슨 꼬장을 부려도 된다. 이 조직(우리 집)에서는 내가 왕이기 때문에 내 말이 곧 법이다. 너는 나보다 어리기 때문에 너 같은 놈한테는 무슨 부당한 짓을 해도 되고 사과할 필요도 없다. 나는 너 같은 놈 인정할 생각도 없고 사람 취급할 이유도 없으니 억울하면 네가 이 조직(우리 집)에서 나가라. 네 말은 언제나 틀렸고 넌 거짓말쟁이이다.
  • 건방진 놈, 그렇게 잘났으면 어디 네 마음대로 잘 살아 봐라. 네깟 놈이 잘 살아 봤자 얼마나 잘 사는지 내가 똑바로 지켜볼 거다.
    - 난 그냥 네가 마음에 안 들고 꼴 보기 싫다. 넌 이 시간부로 나한테 찍혔고, 난 네가 이 조직(학급)에서 스스로 나갈 때까지 악랄하게 괴롭히겠다. 너 이제 회사(학교) 생활 끝난 줄 알아라.
  • 이런 식으로 말씀하시니 정말 당황스럽네요. /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 너 내가 만만하냐? 말을 참 싸가지 없게 하네?
  • 하고 싶으면 해봐.
    - 하면 피를 볼 것이란 의미. 대부분 상대방은 분노를 표하지 않는, 떠볼 의향으로 해보는 것이지만 본인이 넌씨눈이라 진짜로 한 후폭풍으로 상대가 분노를 느낄 수 있다.[98] 또한 별 뜻 없이 깽값을 받기 위한 도발을 할 때 나오는 패턴이기도 하다.[99]
  • 뭐라고요? / 다시 한번 말해봐요.
    - 목소리를 깔고 얘기한다면 정말로 몰라서 되묻는 것은 아니며 본인이 화났다는 걸 어필하거나 상대에게 번복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5. 사회적 거리

학술 용어로는 사회적 거리학(Proxemics)이라고 한다. 누가 자신의 적인지, 누가 자신의 아군인지 피아식별이 잘 되어야 한다. '나를 좋아하고 나랑 친해지고 싶어하고 내가 친해지고 싶은 사람'을 찾아서 먼저 다가 가고,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싸움을 피하면서 조심스럽게 멀어져야 한다. 이를 반대로 바꾸어서 '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소한 트집을 잡아서 엉망으로 대하고, '나를 증오하는 사람'에게 오해를 풀고 과거를 잊자며 먼저 다가가는 경우 인간관계는 끝장이다. 이간질뒷담화를 즐기는 사람은 웬만해선 아군으로 생각하지 않고 지인 정도의 거리에서 멈추는 게 좋다. 그런 사람들은 조금만 수틀려도 바로 적으로 돌아 서기 때문이다. 특히 더이상 상대에게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절교를 통보한다.

5.1. 물리적 거리와의 차이

물리적 거리에 따른 상대방의 반응은 자기 자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싫어하는지, 자기 자신이 배척당하고 있는지 등을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된다. 또한 물리적 거리에 대한 지식은 자기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과의 갈등을 줄인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과는 업무상의 중요한 문제가 아닌 한 최대한 멀리 떨어지고 얼굴도 보지 않는 것이 싸움을 적게 일으킨다. 호감이 가지 않는 사람의 행동을 보면 짜증나거나 비웃게 되는 경우가 많고, 말을 붙이는 자체가 스트레스이기 때문이다.
  • 인간관계의 8가지 단계
    어떤 집단이나 어떤 개인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알아차려야 한다. 행동, 말의 내용, 어조, 표정, 몸짓, 사회상식 등으로 판단한다.
  • 애정 단계
    부모-자식, 부부, 애인 등에서 나타나는 관계이다. 스킨십이 적극 허용되는 단계.
  • 절친 단계
    형제, 매우 가까운 친척, 매우 가까운 친구 등에서 자주 나타나는 관계이다. 스킨십이 어색하지 않은 단계.
  • 친밀 단계
    서로 간에 주기적으로 가까워지려는 시도를 하는 관계. 1:1로 밥 먹자는 게 전혀 어색하지 않고 그런 제안이 거절당할 거라는 걱정도 들지 않는 단계. 하지만 스킨십은 어느 정도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삼가자.
  • 지인 단계
    일부러 멀어져야 할 이유도 느끼지 않고, 의도적으로 가까워지려는 시도도 하지 않는 단계. 여럿이 끼여서 대화를 하거나 밥을 같이 먹고, 가벼운 인사 정도는 주고받는 정도이지만 상대에게 1:1로 무언가를 하자는 제안이 오면 핑계를 대어 거절하고 싶은 관계.
  • 미지의 인물 단계
    상대방이 존재하는 줄은 알고 같은 집단 내에 소속되어 있지만 사회적으로 주고받는 의사소통이 없는 관계. 하지만 같은 공간에 있어도 불쾌함은 없다. 매일 같은 시간 학교에서 마주치는 타반 학생, 모르는 행인, 반에서 알고만 지내는 사람 등을 말한다. 아직은 잰걸음으로라도 거리를 신경쓰는 단계.
  • 불신 단계
    공적인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친절하기는 하지만 그 외에는 최대한 멀어지기를 원한다. 모종의 이유로 서운함, 비호감이 생겨 조용히 거리를 둘 경우 이 단계에 해당한다. 배려형 개인주의자나 내향성을 가진 사람들이 손절을 하고 싶을 때 주로 선호한다. 서로 가벼운 인사조차도 일절 나누지 않는 단계. 보통은 화해해도 이 단계를 넘어서서 친해지기는 힘들다.

여기까지는 대인관계를 형성하면서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단계이다. 하지만 후술할 나머지 두 단계부터는 본인도 타인도 감정을 비롯한 에너지 소모가 크므로 아래 두 단계까지는 웬만하면 가지 않는 것이 좋다.

* 증오의 단계
공적인 상황에서도 친절성이 현저히 떨어지고 의도적으로 그 사람을 회피하려는 행동을 보인다. 이쯤부터 싫어하는 티가 나기 시작하는 단계. 소위 말하는 은따가 이 단계에 해당한다.

* 적대적 단계
대하고 있으면 기분이 확 상하는 것을 느끼며, 심할 경우 자기 시야에 포착되거나 한 공간에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불쾌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 인내심이 바닥나면 왕따, 집단괴롭힘 등 직접적으로 배척하거나 물리적인 폭력을 가하기도 한다. 피사체로 남기는 것도 불쾌한 수준.
  • 사회적 거리와 물리적 거리와의 관계(퍼스널 스페이스)
    Hall[100]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 친밀역, 0~60cm
      부모-자식, 부부, 애인 등에서 나타나는 거리. 웬만한 스킨십으로는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 개인역, 60~120cm
      형제, 친구, 가까운 친척 등 심적으로 매우 가까운 관계에서 나타나는 거리. 가벼운 스킨십을 시도해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 사회역, 120~330cm
      대부분의 1:1 상황에서 나타나는 거리.
    • 공공역, 330cm~
      여러 사람이 함께 이야기하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거리. 1:1일 경우에는 너무 멀어서 어색하다.

사회적 거리와 표면상의 관계는 다를 수 있다. 가족이라고 해서 왕따가 없진 않으며, 얼핏보면 서로 친하지만 적일 수 있고 사정 때문에 애매한 관계를 유지해야 할 상황도 벌어진다. 인간은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배신할 수 있는 동물이다. 본인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며 외부의 강압이 들어와도 배신을 하지 않겠다라는 보장은 하기 힘들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이치지만 본인이 범인(凡人)에 속해있다면, 사람에 대한 감정적인 기대치를 버려 정에 종속되지 않는 이성적인 사고를 유지하고 내면의 혼란을 일으키려는 플라잉 몽키로부터의 모략질에 놀아나지 않는 혜안을 기르는 게 최선이다.

자신과 사회적 거리가 가까운 사람(친구, 인연)과 사회 부적응자처럼 보이는 낯선 사람 간의 물리적 거리를 강제로 벌리고자 할 때, 스킨십 할 겸 백허그를 해 심리적 오염원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다. 이는 공공영역에서도 눈치 못 채게 시도가 가능하다.

모든 거리와 상관 없이 상대방 의류에 닿지 않게 해야 한다. 너무 뒤에 바짝 붙어서 걸으면 신발 밑창이나 바지 밑단이 집힐 수 있다. 자신이 뒷걸음질을 해도 마찬가지다. 계단에서는 굴러 떨어질 수 있으니 한 보폭 이상은 벌리는 게 안전하다. 그림자는 상대가 고의로 밟는다는 생각이 안 들게만 하면 된다.

5.2. 배척

사회적 거리 관련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는 감각이 필요하다. 자신이 다가오는 것을 거부하는 사람에게 친해지려고 다가간다면 정상적인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다. 성인기에는 폭행이 동반되지 않는 괴롭힘도 있기 때문에 잘 구별해야 한다. 이런 문제에 시달리는 사람은 아래와 같은 판단을 항상하여 자신의 행동과 상대의 반응을 관찰해야 한다.
  • '이 사람은 내가 다가오길 바란다'
  • '이 사람은 나에 대해 더 알고 싶은 호기심이 없다'

모든 사람과 잘 지내야 한다는 잘못된 인지도식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 자신을 싫어서 배척하는 상대나 단체와 친해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극히 우울해지고 비굴하게 애원하거나 공격적인 반발 등의 반응을 보일 수 있다. 그런 사람들한테 인정받으려고 애원하는 시간과 노력으로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챙기고 그들에게 더 잘 해주자.[101]

자신이 어떤 집단에 통합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혐오감을 유발할 요소를 제거하는 것에 집중하는 게 낫다. 또한 배척은 민족의 크기에 상관없이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며 지시에 따라 없는 사람 취급당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므로 배척이라는 의미 자체에 크게 속상해하지 말자.

5.2.1. 차별 당하는 경우

자신이 바꿀 수 없는 요소로 배척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걸로 배척당한다면 그 집단에는 죽을 때까지 끼기 어려우니, 괜히 끼려들지 말고 다른 집단을 찾아가야 한다.[102] 성인기에는 차별당하는 이유를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는다. '너는 차별받고 있기 때문에 말을 섞기 싫어'라고 말했다가는 도덕적 비난을 받기 쉽기 때문에[103] 다른 핑계를 둘러대거나 침묵한다. 인종차별만 해도 과거 노골적인 형태에서 점차 미묘하고 숨겨진 형태로 증가해 기어코 자신이 차별을 당했는지도 모를 정도까지 수법이 진화됐다.
  • 성 역할 / 성차별
    여자들끼리 카페 가서 수다 떨 때 남성이 끼려고 하거나, 남자들끼리 모여서 담배 필 때 여성이 끼려고 하면 배척당한다.
  • 지역 차별
  • 정치질
  • 물타기질
  • 각종 차별을 하다가 피해자가 불만을 드러내거나 시정을 요구하면 피해자를 대상으로 극심한 배척을 보인다. 쫓아내려고 거짓말을 꾸며내고 모함하는 경우도 있다. 갑과 을 문서로.
  • 인종차별, 제노포비아, 호모포비아
  • 장애인, 정신질환자 차별
    초중고등학교에서의 집단괴롭힘 문제도 이들 중 하나다. 집단괴롭힘 피해자들 중 아스퍼거 증후군, ADHD, 경계선 지능, 사회적 의사소통장애 등을 앓고 있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증장애아를 위한 특수학교를 세워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남성 한정으로, 아무리 질환을 숨기고 집단에 적응해도 병역 여부로 까발려질 수 있다.[104]
  • 외모지상주의에 의해 못생긴 사람을 차별하는 경우도 많다. 반대로 외적으로 뛰어난 사람을 차별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 혐오감을 줄 수 있는 취향이 있을 경우 기피대상이 될 확률이 높다.
  • 상대의 생김새가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닮아서
  • 성격, 성향, 환경 및 요건 등에 관한 차별
    폐를 끼치는 등 여러 원인을 가지고 빙자하거나 이유가 있어서 배척하기가 가장 좋은 원인들이기에 손쉽게 차별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디시인사이드, 페이스북같이 유머를 빙자한 인싸와 아싸의 화법 차이를 비교해 아싸에 대한 비하와 오타쿠의 화법에 대한 혐오, 미국의 클리크 사회의 적스와 너드 간의 갈등이 있으며, 그 화법이 되기까지 미비했던 배경(예: 고아편부모)이나 소지하고 있는 브랜드(예: XXX 쓰는 사람은 걸러라)를 노릴 수도 있다.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차별당할 수 있을 만한 부분들도 찾아 보면서 꼬박꼬박 새겨듣고 환경을 투영하는 말투를 고치도록 신경쓰는 노력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
  • 사회적 지위
    사회에서는 암묵적으로 개개인 간의 사회적 지위의 차이가 있다. 종사 직업, 소득, 학벌, 가문 등등. 이를 생각하지 않고 억지로 끼어들려고 하면 비웃음을 사거나 심한 모욕을 당하기도 한다. 애초 아비투스가 맞지 않아서 어울리기도 쉽지가 않다.
  • 나이 제한
    친목단체에서는 집단의 구성원보다 지나치게 어리거나 지나치게 나이가 많으면, 억지로 끼려고 할 시 싫어하는 경우가 많이 보인다. 갑과 을이 존재하는 직장 등의 단체에서는 우두머리나 권위자보다 나이가 많은 하급자는 싫어한다.
  • 상대가 약하기 때문에, 약자를 괴롭히면서 희열을 느끼는 무리들.

딱히 이유가 없이 배척하거나 괴롭히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이유를 찾거나 개선하려고 하지 말고 집단을 떠나는 게 좋다. 이유없이 사람을 혐오하면서도 그게 용인되는 집단이라면 자정 작용도 이루어지지 않고 외부 감시도 없는 썩은 집단이기 때문이다.

차별을 받지 않으려면 본인부터 말조심을 해야 한다. 배척 요소는 본인 선에서 숨길 수 있을 때까지 함구하는 게 좋으며 뒤늦게 드러나는 게 무섭다고 하여 자기 공개에 포함할 필요도 없다. 약점 발설은 상대에게 존중을 얻어낼 수 없다. 우여곡절 매력으로 만들어서라도 친해지고 싶고 또 실제로 친해졌어도 상대가 권력을 가지게 될 시 당신의 약점을 이용해 차별을 소재화 할 것임은 뻔하다.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싶지 않다면 차별을 해서 얻는 사회적 이익 대비 손해를 예상하지 못하도록 정보를 제한해야 하고 욕만 먹고 끝낼 수 있다면 조용히 묻어가면 된다.

상황에 따라 차별받을 만한 요소를 숨기면서 다가가는 수법도 존재한다. 억지로라도 가까워지기 위해 쓰는 경우가 많지만, 이에 따른 뒷감당은 개인 차원에서 처리하기 힘드므로 이를 전문적으로 활용하는 유형[105] 이외엔 실제 시도하는 사람은 몇 없다. 차라리 능력을 기르거나 차별 요소를 더이상 만들지 않는 것이 우호적인 인상을 어필할 고효율의 보험이 된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많은 사회 집단들은 알게 모르게 많은 부분에서 차별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조직에서 살아남고 존경받거나 성공한 사람들 중 주류 인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는 인종이나 민족, 성별들도 있어 왔다. 나쁘게는 야쿠자 오야붕 중에 조선인 출신이 있는 등 범죄조직같이 아무리 약자에게 가혹하고 흉악한 집단 속에서도 살아남거나 존경받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천재들처럼 부족한 사회적 기술을 순수히 능력만으로 극복해서 성공한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사실 본인의 능력도 어느 정도 있지만 악점을 감추고 차별을 극복할 만큼의 사회성이 있기 때문이다.

5.2.2. 집단에서 배척당하는 경우 점검/대응

끼어도 될지 말지 고민되는 자리가 있고, 자신을 끼워주고자 하는 제안이 없는 상황이라면 끼면 안 된다. 이건 평범하게 집단에 소속되어 있더라도 해당되는 이야기다.[106]
  • 부른 사람이 없는데 그 자리에 참석하기, 억지로 끼기
  • 끼어도 되냐고 묻기
  • 끼워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품거나 화내기
  • 그런 모임이 존재하는지 확인하기, 모임이 재미있었는지 묻기, 모임이 재미있었겠다며 부러워하는 등 끼워 줬으면 하는 기대를 내비치기
  • 자신이 뭔가 잘못해서 끼워 주지 않냐고 묻거나,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냐고 묻거나, 자신을 끼워주지 않는 이유를 묻기

단순히 끼어드는 것 외에도 이런 행동들을 해도 집단의 격한 거부반응과 배척을 불러올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안에 당신을 끼워주기 끔찍하게 싫어하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을 것이며, '당신을 싫어하는 그 사람 혹은 집단'이 그 모임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가(즉 사회적 거리가 머나 가깝나)에 따라서 당신의 행동대처 요령이 두 가지로 나뉜다.
  1. 당신과 싫어하는 집단을 뺀 나머지 전원이 싫어하는 집단을 '어쩔 수 없이 끼워주는 존재'라 생각하는 경우
    이쪽은 당신이 행동을 잘 하면 된다.[107] 그러면 최소한 그 무리 모임의 다른 사람들에게서 인정을 받을 수가 있다.
  2. 당신을 싫어하는 집단이 그 무리에서 중요한 구성원일 경우. 또는 그 사람들이 더 친근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경우
    탈퇴하고 자신과 잘 맞는 사람들 속에서 교류하는 게 낫다. 쉽게 탈퇴할 수 없는 집단일 때에는 모임에 끼려고 하지 말고 모임에서 배척당한 사람들끼리 친근하게 지내거나, 모임 외의 관계를 통해 당신을 싫어하지 않는 구성원들과 친근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 억지로 끼려고 시도했다가는 아무리 가볍게 넘어가더라도 무시 및 '불쾌하니 나가달라'는 요구를 받으며, 조금만 심해지면 노골적인 모욕이나 배척을 당한다.

만일 소외당한다 싶으면 어울리려 하지 마라. 이 경우 "어차피 널 계속 소외시킬건데 눈치없이 끼어 들 생각하지 말고 그냥 군말없이 나가 달라."라고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보니 사실상 소외되는 입장에선 억울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억지로 어울리려 한다면 더 비참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안타깝지만 그 집단 자체를 영영 포기하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

5.2.3. 개인에게 배척당하는 경우 점검/대응

대인감정에서 혐오감(disgust)은 '싫고, 거부하고 싶고, 멀리하고 싶은 감정'을 말한다. 이런 거부감은 혐오스러운 대상을 배척해 멀리하는 행동을 촉발할 뿐만 아니라, 혐오스런 대상이 가까이 있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게 한다.
흔히 '수용할 수 없는 사람'과 지나치게 근접해 있으면 더욱 혐오감이 증대된다. 이는 그가 멀리 떨어져 있으면 친분가능성이 저하되지만 가까이 있게 되면 그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이를 회피하기 위해 혐오감이 증대되는 것일 수 있다.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적극적으로 접근해 올 때 그 사람이 더욱 싫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권석만, 인간관계 심리학, 1997
중학생 이하라면 '불편하다, 연락 그만하라, 절교하자, 만나기 싫다' 정도의 직접적인 면박을 주는 식으로 관계를 단절하는 것이 보통이다. 또는 화난 표정을 통해 심기를 드러내거나 무례한 태도를 취한다.

하지만 그 이상의 단계에서는 갑과 을에서 갑이 을을 쫓아내는 것이 아닌 이상 그런 식의 배척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혐오감을 느끼는 상대가 혐오감을 느끼는 것에 대해 통보해 주리라 기대하는 것, 혹은 그런 통보가 없다고 해서 인간관계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마주하게 될 수 있다. 이게 지속되어 쌓이게 될 경우에는 화해조차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오며, 관계 회복이 매우 어려워진다.[108]

인성이 훌륭한 사람이라면 배척하고 차별하기 전에 갈등을 원만히 해소하기 위해 그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야기할 것이다. 따라서 인성이 훌륭한 사람과는 싸울 일이 거의 없으므로 물어볼 필요가 없다. 반대로 소인배라면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맞춰 주며 종처럼 살살 기지 않는 한 싸울 일 투성이이며, 이런 이들은 이유를 물어 봤자 배척당하는 사람 욕만 할 뿐 절대 스스로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다. 따라서 소인배는 진짜 이유를 가르쳐주지 않으므로 물어볼 필요가 없다. 상대를 대상으로 따진다고 해서 배척을 안 당하는 게 아니다.

자신이 차별받는 대상도 아니고 상대방이 자신을 싫어하지 않는다고 해도, 숙련된 사회기술을 배워야 한다. 학술 문헌(Asher and Dodge, 1988)에 따르면 배척아동(Rejected)은 또래집단에 소속되는 과정에서 또래집단에 너무 빨리 소속되려 하기 때문에 높은 위험부담을 갖는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고 한다.

예를 들어 지나치게 물리적으로 가까이 접근하는 경우 좋지 않다. 별로 자신과 친해질 생각이 없는 사람(지인, 모르는 사람)이라도 60cm 이내로 접근하면 거부감을 주기 쉽다. 이런 상대에게 스킨십을 시도하면 대부분 혐오감을 느낀다.

5.2.4. 지인에서 친구로 발전하는 데 실패

학업/직업, 서비스 이용, 거주지 등의 이유로 의무적으로 얽히는 사회적 관계가 있다.[109] 이들과는 의무적으로 만나야 할 때 만나고, 같이 일을 해야 할 때 하게 된다.

그중에는 의무적인 사회적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유독 친밀한 관계가 있다. 이들과는 농담하고 웃고 떠들기도 하고 이들 중 더욱 친밀한 사람과는 밥을 먹어야 할 때 혼밥하는 대신 같이 먹기도 한다. 그러다 그렇게 만나야 할 의무가 없어질 때 자연스럽게 헤어져서 더이상 보지 않는 남남이 된다.

일이 종결되어 자연스럽게 헤어지기 전에 '상대를 짜증나게 하는 사건사고'가 터지거나, 한쪽에서는 더 가까운 관계가 되고 싶어하고 반대쪽에서는 친근한 지인 이상의 관계를 전혀 원치 않을 경우 배척하는 관계로 변한다. 일단 이렇게 되고 나면 쉽게 되돌릴 수 없다.

'일 때문에 의무적으로 만나지만 친밀한 관계'와 '의무를 제외하고도 1:1로 만날 수 있으며 의무가 종결된 후에도 종종 만날 수 있는 관계'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 한쪽은 의무를 넘어 더 친해지고 싶어하고 한쪽은 의무 수준에서만 어울리고 싶어한다면 관계는 진전되지 않는다. 일회성일 경우 '이상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황당한 사람' 취급을 받고 관계가 진전되지 않는 상태가 유지된다.

따라서 친근한 지인이라 할 만한 관계를 더 가까운 관계로 전환하고자 할 때는 상대가 자신에 대해 느끼는 친밀감을 주의하여 관찰하여야 한다. 가급적 다가가지 말고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여야 하며, 다가가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관계의 단절까지 각오하고 다가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도 '나와 친근한 지인으로 지내는 데 불만은 없지만 나와 친구가 되기는 싫다'라는 것이 보이는 반응들을 관찰해야 한다.

일 등 의무가 종료된 이후 특정인에게 읽씹 또는 안읽씹을 하며 친해지고 싶은 의사가 없음을 표현한다.[110] 또는 '만날 일정'에 대한 질문을 하는데 질문한 내용에는 대답하지 않고 전혀 다른 화제를 꺼냄으로써 만나고 싶은 의사가 없다는 것을 대신 표현한다. 이런 표현들은 접근해 오는 사람을 대상으로 친구로 지내기도 싫고 적으로 지내기도 싫으며 그냥 지인 정도의 거리를 적절하게 유지하다가 의무의 종결과 동시에 마찰 없이 헤어지고 싶어하는 것이다.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들이 많은 집단에서 오래 있다가 갑자기 사회성이 높은 사람들이 많은 집단에 속하게 되면 이런 갈등을 겪기 쉽다. 전자의 집단에서는 평소 관계 자체가 아주 냉랭하고 사무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더 친해지고 싶다는 의사 표현은 매우 눈에 띈다. 후자의 경우 다들 사회성 높게 친밀한 의사소통을 하기 때문에 서비스업 종사자의 의무적인 감정노동 역시 '자신과 친해지고 싶어하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기본적으로 배타적이며, 보수적이다. 매슬로우의 욕구계층이론에서 생리적인 욕구(본능적인 것) 다음으로 안전의 욕구가 있는데, 모르는 사람이나 처음 보는 사람은 그 사람에 대한 정보가 없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안전 욕구에 의해 방어적이 된다. 이런 안전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는 서로 정보를 교환하거나, 어떤 계기에 의해 만나야 한다. 하지만 전자는 다소 위험하고[111], 후자는 그나마 낫지만 혈연, 학연, 지연 등을 제외하면 역시 쉽지는 않은 편이다. 또, 더 친밀해질수록 더 많은 교류를 맺게 되고, 더 많은 교류를 맺을수록 서로간에 피해를 주거나 싸울 일도 늘어난다. 억지 핑계라도 대어서 만나고 싶은 매력적인 이성도 아니고, 유머감각이 무척 뛰어난 사람이 아니고, 금전적이나 직업적으로 큰 이득이 생기는 것도 아니라면 굳이 새 친구를 사회에서 찾는 위험부담을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112] 따라서 친구로 하는 게 매우 큰 금전적/연애적 이익을 주겠다는 판단이 들지 않는 한 사회적 관계를 넘어서 1:1 친교를 맺는 것은 배척이 기본값이다.

이들 중 소수(약 10%)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기를 원한다는 선호를 드러내기도 한다.[113] 이런 사람들과 친구가 되고 싶다면 그 사람들이 친구로 사귀고 싶어 할 만한 취향을 만족시켜야 한다. 외모 관리가 잘 되어 있다면 이성과 친구관계를 만들기는 쉽다. 특히 단점이 두드러지면 더 그렇다.

종교단체의 전도꾼들이 당신에게 말을 거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당신이 말 거는 것을 무시하고 지나쳐 버린다 해도 당신의 인간성이 나빠서 그런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싫고, 관심없는 이야기를 들으니 짜증나기 때문에 무례하게 대하는 것이며 당신의 자유이므로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마찬가지로 만일 당신에게 지인으로서의 매력조차 느끼지 못하는 상대가 있다면, 그 사람이 당신이 말을 걸 때 단답을 하거나, 부탁이나 호의를 거절하거나, 식사를 하자는 등의 제안을 거절하더라도 그건 그 사람의 자유이다. 아무리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모든 사람과 친해질 수는 없다. 예를 들어, 아무리 학교에서 반장을 했어도, 그 반장이 반의 모든 학생과 친한 것은 아니다.

5.2.5. 공적인 집단의 경우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직장생활/부조리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단순히 친구관계라면 싫어한다 해도 멀어지면 그만이지만, 서로간에 공동의 업무가 있는 상황에서 사적인 악감정 때문에 업무상 불이익, 소통 거부, 일감 몰아주기 등이 생긴다면 단순히 '친근함' 문제로만 받아들이기는 힘들어 상대가 나를 적으로 둘 이유가 없게 만들거나 공격성을 보여서라도 생산성을 위한 상호존중관계를 이루어내야 한다. 이럴 때 약자나 소수자가 집단에서 소외되고 정치질을 감내할 수도 없다면 차별을 받게 되는 것이다. 집단 분위기가 굉장히 삭막하고 인간관계 스트레스가 심한 곳이 있다. 이런 걸로 배척당한다면 파벌에 속해서 보호받든지, 그 집단을 나가는 게 좋다.
  • 갑과 을 집단에서 상대평가 경쟁에 이권이 달려 있을 경우(도덕적 해이에 의한 견제와 방해)
    직장에서 나보다 잘난 동기가 자기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해주면 나는 인사고과에서 밀리다 승진 처지고 이직을 하게 될 것이며, 나보다 잘난 후배가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면 승진이 뒤바뀌면서 갑질도 못 하고 존댓말을 꼬박꼬박 써야 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집단 전체의 목표보다 사사로운 이익의 추구를 위해 누군가를 일부러 헐뜯고 견제하는 경우가 많다. 집단적 부조리에 물어뜯기고 있는 것이므로 안 끼워준다고 상처받을 필요는 없다.
  • 신분을 가지고 배척하는 경우
    이런 걸로 배척당한다면 신분을 바꾸기 전에는 그 집단에는 끼기 어려우니, 괜히 끼려고 들지 말고 다른 집단을 찾아가든지 신분을 바꾸려고 하는 게 좋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차별하는 자들과 사귀려고 아양을 떨며 비굴해지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려 노력하자. 사회성이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끼는 건 불가능하니 안 끼워준다고 상처받을 필요 없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푹 숙여서 굽신굽신대지 않으면 싸움이 난다. 이들은 다른 사람을 함부로 괴롭히는 악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별로 가까이 지내지 않는 것이 좋다.
  • 직장이나 군대 등 강한 소속의식을 가진 집단인데, 자기 자신의 신분은 외부인이거나 아르바이트생이거나 비정규직인 경우
    집단에 소속되어 동질감을 느낀다는 것은, 집단에 소속되지 않은 외부인을 차별하는 데서 형성된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이 정규직에게 친해지려고 접근한다면, 정규직이 정규직에게 친해지려고 접근하는 것과는 계급 때문에 반응에서 큰 차이가 나게 된다. 또 퇴근 후 개인적인 술자리나 회식 2차 같은 데 위에 적어놓은 사람이 끼려고 하면 욕을 먹는다. 이건 자기 자신의 사회성이 떨어지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 계급에 의해 차별받고 있든지, 아니면 조직의 우두머리가 자기 자신을 정규 구성원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또는 똥군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 권위주의에 의한 꼰대질을 약자가 거부하는 경우
    이런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을 강자로 인정하면서 벌벌 떨면서 굴종하는 모습을 보기를 원한다. 즉 정반대로 강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이거나, 합리성을 요구하거나, 토론과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 하거나 하면 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서열과 어긋나므로 점점 관계가 악화되고 부글부글 끓게 된다. 그렇다고 벌벌 떨면서 굴종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어려운 것이, 손해를 떠넘기거나 일을 공짜로 시켜먹으면서 부려먹거나 모욕하는 등 약자 입장에서 손해가 되는 행동이 많다. 애초에 인간적으로 해결할 생각이면 갑을관계이더라도 사람을 착취적으로 대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동등한 인간으로 취급할 생각이 없으며 양보할 생각도 없고 대화할 생각도 없고 사과할 생각도 없다. 이 경우 집단을 관두는 것, 참으면서 빙그레 쌍 모드로 나가는 것, 내부고발로 충분한 엿을 먹이기 등의 대책이 좋다. 상대가 마음을 고쳐먹기를 원한다면 2~3년으로는 안되고, 7~10년 정도 걸린다. 이것도 신세대로 물갈이되고서야 시도할 수나 있지 같은 인간상끼리 권위를 양위하는 집단에서는 성격을 고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5.3. 사교

유머 감각이 없고 외적으로 매력을 주는 사람도 아니라면 공통의 취미나 관심사[114]를 함께하여 상대방에게 즐거움을 주어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래서 동호회나 온라인 카페 등을 통해 사람을 사귈 수 있다. 정식으로 개설된 인터넷 동호회카페정모에 참여하는 것이다. 갑작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아닌 정식으로 인원, 시간과 장소를 잡아놓고 만나기 때문에 서로 부담이 덜하다. 또한 처음 온 사람에 대한 경계심 및 텃세가 강하지 않다. 오프라인 역시 온라인 동호회만큼 많은 편은 아니지만 원리는 비슷하다. 다만, 본인의 성향에 잘 맞는 동호회 및 카페에 가야 효과적이다. 맞지 않는 곳을 가면 효과가 없거나 역효과가 날 수 있다. '공통의 취미/관심사'가 아니라 '그냥 심심한 사람, 동창, 동성, 이성' 등 지속적인 즐거움을 주고 받기 힘든 모임에 가는 것도 효과가 없기 십상이다. 또, 몇몇 위험한 정모 및 번개도 존재하니 잘 가려서 가야 한다.

댓글, 쪽지, 페이스북 메시지 등 전형적이지 않은 방법을 통해 사람을 1:1로 만나기는 어렵다. 그런 시도 자체가 불쾌감을 불러 일으키기 쉽고, 조금이라도 불쾌감을 일으킬 경우 이상한 방식으로 추근덕댄다는 식으로 소문이 나게 되는 경우도 있으니 주의. 예를 들어 높은 사람에게 취준생이 접근한다면 취업에 대한 질문을 한다는 목적밖에 없다는 것을 상대방도 잘 안다. 여성이 남성에게 접근하는 쪽, 미인이 이성에게 접근하는 쪽이 그 역에 비해 성공률이 더 높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의사소통 기술에 있어서는 이 문서의 2번 문단을 인용하여 기분 나쁜 사람 혹은 피하고 싶은 사람이 되지 않을 정도의 기본적인 능력만을 함양하고 대신 그 외의 다른 요소, 이를테면 학력이나 재산, 몸매, 외모, 패션, 예체능 계열의 특기 등의 장점을 만들어서 자신의 매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 굳이 당신에게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에 나오는 연예인들처럼 입담 좋게 말하는 능력이 없더라도 당신이 최소한의 기분 나쁜 사람 혹은 피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고,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했거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 베풀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사람들은 당신에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이를 만족할 시에도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되면 친절, 창조성[115], 활기, 이타적 처벌을 통한 정직성 관리도 고려해 보자.

만일 상대에게 장난을 치고 싶다면 지금 나의 행동이 장난임을 상대가 알 수 있게 신호를 주거나 암시시켜주는 매너가 필요하다. 이는 관찰자여도 적용된다.[116]

5.3.1. 오랫동안 배척당한 경험 이후 새로운 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

"일반적인 사람들은 나와 만나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는다."라는 걸 느끼지 못한 채 의식적으로 연락이 끊긴 옛 친구와 지인들을 찾아다닌다면, 추가적으로 거절을 당하면서 세상에 대한 큰 환멸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딱히 남에게 피해를 줄 만한 별다른 마이너스 요소가 없다고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오랜 배척을 경험한 사람은 인간관계 경험의 부재로 인해 또래 세대의 일반적인 관심사나 유머, 세상 사는 얘기 등을 나누면서 즐거움을 줄 능력이 없는 경우가 많다. 또한 과거 배척으로 인해 남아있는 마음의 상처는 직접적으로든 은연중에든 자신감의 부족 or 과잉, 부정적이고 염세적이거나 지나치게 낙천적인 가치관, 소심한 태도 or 공격적이거나 방어적인 태도로 나타날 수 있으며, 이런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개 무난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면서 살아온 사람은 배척당한 경험이 있는 타인의 소극적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비록 노력 끝에 위 단점을 해결했다 하더라도 당장 새로운 관계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다행히 사회활동을 이어나가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기회가 생기면 좋겠지만 여기까지 밀려난 사람이라면 학업이나 취업과 같은 사회활동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확률이 크다. 이 경우 배척당한 사람 스스로는 인간관계의 개선을 통해 자신감과 안정을 찾은 다음 그 원동력을 통해 학업/취업에서 성공하기를 바라지만, 그걸 받아주기를 바라는 상대방은 성공과는 상반된 사람들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개선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배척당한 사람이 다가가다가 다시 거절당할 경우 상처가 더 심해지기도 쉽고, 성공을 제쳐두고 인간관계 개선에만 매달리다가 학업/취업에서 손해를 보는 일도 생긴다.

피해의식을 겉으로 드러내지 말자. 상호관계에서는 스스로를 낮출 필요가 없다.[117] 말 거는 것에 움츠리면 안 되며 비관적 가치관, 특히 냉소주의는 사교로서 독이다. 연기를 독학해 사무적인 성격을 반사하고 남은 정신력을 활용하여 실제 관계 중에 피해의식이 드러나지 않도록 제어하는 것이 중요하다.

5.3.2. 사회적 지위

인간관계를 위해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자신에게 열심히 투자를 하라'는 조언을 잘못 받아들이면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들라'는 식으로 오해하기 쉽다. 실제 의미는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사람들에게 높은 가치를 인정 받으면 인간관계를 맺기 쉽다'는 말과 같다. 어차피 내가 잘 나가게 되면 사람은 알아서 몰려들기 마련이다. 그중에서 적은 숫자라도 나에게 도움이 될 만한 사교성이 좋은 사람들과 링크되어 있어야 하는 게 키포인트이며 세상 만사가 그렇듯 인간관계 또한 이해득실에 의해서 이뤄지는 것이니, 세상의 수요를 잘 살피고 그에 충족할 수 있는 쓸모있는 사람이 되어 간택당하는 것[118]이 중요하다. 더 자세한 사항은 인맥 문서로.

다단계나 사이비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게 쓸모 없다면 같은 집단에 속해 있지 않는 한 관계가 진전되지 않고 점점 멀어지게 된다. 냉정하게 느껴지겠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그게 본능에 따른 합리적인 선택이다. 이런 '쓸모'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직업, 학벌이라는 사회적 지위와 재테크와 관련된 상징적 지위이다.

내세울 게 없다면 인간관계에 연연하지 말고 취업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특히, 백수 상태에서 사회인과 친밀한 관계를 새롭게 맺으려고 시도하는 건 위험하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을 때와는 달리 사회에서는 마치 드라마 같은 우연이라도 있지 않는 이상 격차가 큰 사회인들과 대등한 관계를 맺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뭔가 내세울 게 있더라도 사교성이 낮다면 억지로 먼저 나서서 두루두루 사귀려고 하는 것은 어색함을 자아내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본인의 사교성이 집단이 합의한 사회적 지위를 대체하는 잠재적 지위에 걸맞은 만큼 따라오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기다리는 쪽의 포지션을 택하는 것이 좋다.

5.3.3. 유아 연기

성인이면서 아이같은 말장난이나 행동, 표현을 모방하여 친목을 도모한다. 진심으로 어린아이로 돌아가려는 욕구발산보다는 이해관계를 위함으로서, 예측 불가능성을 매력으로 삼는 사람이 많을 시에 적합한 사교 행위이다. 선택적 퇴행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으며, 사람에 따라 너무나 당연히 받아들여져서 연기라고 생각한 적도 없었을 수 있다.[119] 격식을 차리지 않아도 되는, 일상과 유사하게 대의적 평등에 어울리는 행위로서 이는 명백한 을로부터 주도되기에는 부자연스럽고, 적정선을 넘도록 특화된 등급이라도 오래 지속할수록 피로감 대비 수용도가 낮아져 중장기적 인간관계 유치로서는 불리해진다. 실행자는 사회 심사를 마쳤다는 조건이 붙어야지 그 범위에 대한 신경성을 누그러뜨릴 수 있으니 해당 기술의 자유도가 없는 사람에겐 안 하느니만 못 하다.[120]

공통적으로 어릴 때의 버릇이나 도착증, 퇴행성 질환을 제외한, 본인이 제어[121]할 수 있으면서도 애처럼 행동하려는 욕구의 전반을 의미하며 그 양상은 아래와 같다.
*애교
우는 척 하거나 징징댐, 엉뚱한 표현, 어리광.
*발음의 변형
코맹맹이같이 말을 못 알아듣게 하거나 극히 빠른 속도로 분절을 뭉갬[122], 된소리[123]를 끼거나 마무리함.
*고의로 예절을 어김
못된 장난, 과격한 행동, 간접적인 공격성.
*비이성적 의사소통
사회적 지능에 반(反)함[124], 괴성(怪聲)의 은어화[125], 퍼포먼스[126]
*적의가 미묘한 행위
불안정한 사회적 거리, 소극적 아웅(건망증).

굳이 인싸까지 가지 않아도 30대까지는 수직관계임에도 개방적인 환경에서의 간헐적인 농담 따먹기, 연애 과정이나 친하게 (연기)할수록 승진을 위한 추천을 받아내는 것이 더 유리해질 시 주로 보이며, 40대 이후부터는 영유아의 재롱을 받아주는 것[127] 이외에 직업(예: 성우, 배우)이 요구되지 않으면 모자란 사람으로 취급받을 확률이 높다.[128] 초면이나 공적인 장소에서는 시작하여도 급전개가 아닌 반존댓말이 오간 뒤 스몰토크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유아화가 진행되고 경박함을 넘어 연극으로 확장된다. 명명(命名)이라는 인칭 암시를 대체하거나, 연애의 부산물로 플러팅과 이를 당하는 쪽 모두 성적 열망에 따라 연기를 체제화하기도 하며 드물게 을질로서 사용된다.[129] 가정에서는 어지간하면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 의사소통 방식 중 하나이며 실제로는 사이가 좋지 않아도 외부에서는 보이는 대로 화목하다고 추측하는 신호로 오인하기도 한다. 일부 유아용 매체나 상품을 혐오하는 사람이 이를 향유하려는 상대에게 자신의 사상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다.[130][131] 또한 심리적으로 예속되려는 순리가 강하게 적용받는 환경에서는 그렇지 않은 입장에서 보기엔 이해하기 어려우며 이를 보고 연기하는 것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다.[132] 발음이 연속적이며 물 흐르듯 해야 하기에, 진입장벽은 높지만 몇 시간이고 할 체력만 된다면 사적도, 공적도 아닌 어떠한 경계선을 유지한 채 갑으로부터 고급 정보를 캐낼 수 있고[133][134] 무엇보다 체감 시간이 빨라지니 단순 업무에서 이러한 궁합은 빛을 발한다. 물 올랐다 싶으면 10초 이내로 사용 빈도를 조정할 수 있으며, 시야가 차단되어도 음파가 도달하면 해당 기술은 유효하다.

유형성숙이란 진화적 요소는 나이에 맞지 않는 성향을 일부 상쇄시켜 준다. 하지만 어른이라는 사회적 위상과는 먼 부자연스러운 피학을 사용하면서까지 인간관계를 지속해야 한다는 점에서 상대방 또한 유아화에 굴종되어 권력과 순수가 섞인 불협화음을 당하기도 쉬우며 이는 돌려 말해 '사교성이 떨어진다'라고 통용되는 어리숙함은 아싸의 표준에 속하는 게 아닌, 그러한 의미에서 세탁할 의지를 유아 연기에 쏟아부을 정도로 내면을 감추어 상대가 불쾌하지 않게 의사표현을 하기 위함에서 너가 불쾌해져도 토달지 말고 넘어가라는 밑밥으로 변형되어 사용되고 실제로도 그렇게 써서 도발하는 경우가 왕왕 있기에 젊은 층 중심으로 파벌이 고착화된 환경 속 을을 겨냥한 여론몰이로서 사용되는 것도, 갑을관계가 형성된 환경에서의 분위기 메이커로 평판이 좋아지지만 이조차 기회주의적으로 자신의 편의를 위해서만 남발할 시 동세대들에게조차 위험인물로 비칠 우려가 있어도 자신의 이익으로 상쇄할 자신이 있다는 신호를 가식으로 경고해도 사회생활의 재치로 넘겨진다는 점에, 순수하게 관계를 이어나가는 시도를 이해하지 못 하는 상황이 생겨나는 이유도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미 한 번은 '위상에 어긋나는 개성이 사회화로서 큰 오점이 아닐 수도 있다'라는 피해의식이 내면을 보호하려는 무의식적 기제로 전환된 것이기도 하다.

위의 현타를 거치는 과정이거나 이를 거치지 않아도 될 건강한 심리 상태임에도 원체 매사에 진지하여 사교에 연연하지 않는 상대에게는, 진심으로 친해지기 위해 유아 연기를 하여도 '지금 이 인간이 나와 제대로 대화를 하고 싶긴 한 건가?'라며 조롱하는 것이라 오해받을 수 있으며 이에 무턱대고 부적응자로 취급하는 건 삼가야 한다. 감정노동의 범위를 예측하기 위한 피로감[135]을 감당하기엔 타산이 안 맞기에, 결국 퇴사하면 남이 될테고 주변 이간질에 언제 적이 될지도 모르는 관계를 유지하려고 장단 맞추는 자체가 시간낭비라 생각되는 건 유아 연기에 긍정적이더라도 배제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나마 오프라인과 달리 온라인에서는 각 미디어마다 이러한 유아 요소가 알게 모르게 녹아있어 거부감은 덜하다.[136]

유아화로 합의된 연극과 연관되지 않는 위치에서 벗어나기 전 고려해야 할 사항은, 현재 상황이 자신과 동일 선상에서 이루어지지 않음과 동시에 이루어진 '척' 처세를 유지해야 하며 파벌 내 수직, 수평관계가 난잡하게 바뀌는 상황을 강제할 시 중의적 의사[137]나 뛰어난 눈치력을 터득해내야 한다. 상대가 불시에 성격 테스트를 할 때, 이해관계라면 내가 잘못한 게 있는지 되새기거나 반박할 수 있는 유연함이 주어지지만, 유아 연기가 적용되는 상황에서는 수직력을 허무는 특수성으로 인하여 상대가 단순 연기이며 장난이었다 넘기는 가능성을 예측해야 하는 동시에 이러한 전환을 위한 중의적 의사를 증명할 표정 관리를 항시 의식하는 중압감을 지녀야 한다는 뜻이다.[138] 유전적 정결에 따른 압박으로 인하여 자의로 유아 연기에 동참한다고 보이도록 연기해야 할 수도 있다.[139] 따라서 유아 연기를 하는 상대의 대화에 끼려고 할 때 극도의 거리감을 보이는 것도, 실제 사회적 거리가 멀다는 근거를 통해 서로 간의 관계를 추론할 수는 없다.[140]

특히, 타 영역에서의 지시는 명령권자의 재량에 따라 본인도 연계될 수 있음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예로 각각 A, B 영역 내 흐름이 서로 공유되지 않는 친밀함을 보여준다고 가정할 시, 유아 연기가 허용된다면 A에서의 흐름이 B의 흐름과 양립하는지의 여부는 크게 중요해지지 않는다. 더 자세히 설명하면, A 영역에 속한 본인이 아무리 관찰자 입장이라도 타 친목 집단(B의 흐름)에서 떨어진 명령 체계를 본인의 영역(A의 흐름) 또한 공유 및 적용되는 것마냥 해석하는 건, 사회초년생 시각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만약에 이를 상대가 아웅할 시 나에게 선을 넘는 행위라는 걸 잘 알고 있을 것임을 앞서가 판단하여 B 영역의 결과가 A(본인) 영역과 공유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겠지만 모든 영역에서의 유아 연기는 면피를 위한 공공영역의 대체[141]라는 걸 모르는 것에서부터 문제가 되어 오류를 범해 낚이기 쉽다. 여기서 해야 할 처신은 이러한 연기가 일종의 암묵적 협박임을 미리 캐치하여 중의적인 태도를 취하는 센스가 필요하다.[142]

사적영역에서는 유아 연기가 성립될 수 없다.[143][144] 아래의 예시들은 모두 공공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들이다.
예시 1
(A는 B 조직과 서로 공유되지 않는 친밀 영역의 관찰자라고 가정)
B[145]: (할 일을 가리키며) "가위바위보해서 진 사람이 다 맡아서 하기로 하자."
(A를 제외한 B 조직이 서로 모의한 끝에 B가 당첨 됨)
B: "우(웨)에~ / 끼에엑!!!! 내가 다 해야 !!"
(B가 A에게 다가가며) "저거(B가 할 일) 처리하세요."
A: "무슨 말이죠? 그건 B(님)이 할 일 아니었나요?"
B: "닥치고 하라고요."
대화형 예시를 곁들이면, B 조직에서 보이는 유아 연기는 표면상 결과가 중첩되는 상태임을 A에게 예고하는 것이다. 이러한 밑밥을 보이지 않고 무작위로 행동하는 안하무인 조직도 있으며 친밀 영역과 모의도 그들만의 연기였을 수도 있다. 여기서는 그나마 대놓고 유아 연기를 보임으로 중의적 의사에 따라 반응할 시간이 주어지는 자체가 A 입장에선 운이 좋은 편이다. 체면을 중시하는 압박감을 못 느끼는 갓 사회초년생이나 세상이 자기중심대로 돌아간다고 착각하는 어른이가 주로 이런 비상식적 사교도 사회의 일부라며 무례를 정당화한다. 이 중 대다수는 늦어도 30대 중반 이후에는 얌전히 완곡어법으로 돌려서 지시하게 되지만 조직 내 강자로 군림한 경험이 많던 사람에게는 사실상 습관화되어 감정노동을 강요하는 건지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결론적으로는 나이대를 불문하고 지금 내 자신이 동세대의 사교관념과 같다는 희망을 버려야 하며 친목질을 지속하기 위한 희생양을 만들려는 허례허식 과정임을 공연하기 위한 가능성을 앞서 인지하도록 경계하는 마음가짐을 지니는 게 현명하다.

직장이 아닌 일상에서의 의사소통은 그 논리 내 진실 여부가 그리 중요하게 작용하지 않는다. 남이 엉뚱한 표현을 해도 실질적인 혼란을 유발할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굳이 교정하려 들지않는 수용적 태도가 필요하다. 상대방 역시 이러한 연기가 허용되는 환경에서만 받아준다는 걸 알고 대화에 임한단 뜻이니, 이를 본인에게 시연하는 건 거꾸로 자신을 적으로 두지 않으려는 객관적 신호이자 자신이 속한 영역이 직장과는 다른, '공과 사'와 같은 딱딱한 순리를 대체하려는 유아적 요소로서 사회적 합의를 받아들여야 한다. 어찌 보면 연기가 사회성의 양면을 띄는 이유이며 뒷담화로 인해 정보가 와전되는 원리 역시 이러한 유아 연기로 인한 서열 중립화라는 괴기 문화 속 근거 없는 뻘소리의 상호작용이 누적되다 기억 왜곡을 유발하는 태생적 한계가 겹쳐 유아화가 허용된 영역에서 사실 검증이 되지 않는 정보가 공공연히 집단에 퍼져있는 걸 영역이 다른 관찰자[146]의 시각에서, 이미 교차되었음을 측근이 증명했겠거니 판단하여 '어느 정도 사실에 근접하니까 내 귀에까지 들어왔겠고 만일 거짓이어도 최소한 나는 최초로 정보를 퍼트린 주동자로서의 책임과 무관하다'라는 심리가 작용해 당사자에겐 금시초문에서 모함 수준까지 정보의 질을 왜곡시키는 물타기에 동조할 수 있으며 이를 아웅으로 일관하여 사실관계를 피곤하게 만들기도 쉽다. 이렇게 연기로 책임을 무마하는 원리가 통하게 되면 양념을 칠 수 있으며 이를 노려 공로를 날름 가로채는 상황도 발생한다.[147]

실제 장애인이 유아 연기를 하면 조롱거리이지만 정상인의 유아 연기는 장애 티를 의식적으로 조절 가능하다는 것이니 변칙적인 사회적 거리의 적응력이 우월함을 증명하는 수단이 되는 것이 가능하다. 즉 미성숙을 커버하기에도 충분한 능력이 이미 갖춰졌다는 뜻이니 어리숙함을 모방하는 행위도 정치력을 과시하는 기술이 될 수 있다.[148] 비동의성 영역 침해의 사전 경고를 대체할 수 있는 공격성에도 만족하기 때문에 관찰자 입장에서는 친해 보이지만 실제 까고보면 서로가 상당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149]

애교도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보여 주듯이, 유아 연기라고 해서 성인 남성이 못하리란 법은 없다.[150] 끼리끼리 정보가 공유되는 걸 방지하는 변형 화법은 사교에 도움이 되면서 동시에 언어학적 이타성을 누릴 목적으로도 찰떡이기에 성별은 장식이다. 헛소리도 등급에 따라 다르다. 잘 사용하면 매몰의 극대화로 상시 정보 교류 가능 상태로 만들 수 있지만, 이것이 우열을 가리기 위한 방패막으로 작용된다면 젊은 층의 정치질을 폐쇄적으로 이어나가는 데에 두각을 나타내고 아래와 같은 예시들이 이어질 수 있다.
(명목상으로는 A가 B가 형성한 친밀 영역에 속한 상황이라고 가정)
B: "이거 봐봐요. 귀엽지 않아요?"
(휴대폰에 있는 이모티콘을 친밀 영역에 공유한다)
B'[151]: "A씨는 어떻게 생각해요?"
A: "아~ 요새 나온 것 중 가장 잘 뽑힌 것 같네요."
B: "저기요, 근무 시간에는 계속 일에 집중해야죠?"
(B, B'는 마저 이모티콘에 대해 담론한다)
여기서 A는 B 영역의 대화에 끼라고 한 적이 없다. 무슨 씻나락 까먹는 소리겠지만, A가 보기엔 겉으로는 끼어도 된다는 암묵적인 친밀 영역의 동의가 이루어졌다고 앞서 가기를 확정했겠지만 유아 연기로 지배한 상황은 논리가 통하지 않으며 이를 개그로서 무력화된다는 걸 고려하지 못했다. 유아 연기로 이루어진 대화 내 핀트는 책임에서도 자유로운 것이 강점이기에[152] 대상을 지목한다는 의도를 상실함에 있어 이러한 시도는 예상할 수 없어야 재밌는, 사회적 거리가 불안정해야 묘미이기에 친밀 영역에 속한 그들의 입장에서는 낀 적이 없다고 하면 그런 것이다. 이는 친한 척해서 B의 영역이 위트있다는 걸 C[153]에게 전시하기 위해서 또는 아무개(D)같이 잘 보이지 않아도 되는 시각에선 없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영역을 농담으로 치환하는 건 구색을 맞추기 위해 색다른 자극이 필요하고 이를 사람을 대상으로 해소하여 나중에 영역에 끼워줄 만한 사람을 색출하기 쉽도록 생태계를 자정하는 역할도 할 수 있다. 결국 위 대화 흐름의 의도는 본인이 영역에 들어올 만한 자격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며 평가를 아웅하여 영역에 넣을지 말지도 실세 마음이다. 이러한 속임수에 당하지 않으려면 본인이 정말로 친구로서의 사교를 위한 영역에 참여했다는 확신을 사전에 지배인(=실세)에게 신호를 받았는지 아니면 단지 계약관계에 따른 연기자로서 친한 척을 보여 주변인에게 이익을 얻기 위한 도구인지를 잘 판단해야 한다. 참고로 이 예시는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어떤 상황인지조차 가늠하기 힘들다. 쉽게 설명하면, 겉치레로서 겉치레다운 인물을 고르기 위한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 할 수 있겠다. 여기서 더 가면, 내집단의 관심사는 유아스러움에 의한 '방출'로 집중되고 공격성의 순화가 거창해지는 단계로 들어선다.

현실적으로 계약관계에 따른 유아 연기의 의의는 상호 이익에 따라 합의된 장애 연기를 통하여 사교를 모방하는 것이니 실제 장애인이 하는 것보다 거부감은 덜 하겠지만, 이 과정에서 따라오는 역함이 사람마다 극명하게 갈리는 것도 적의는 결국 상대적이기 때문에 내실의 이익에 따라 대상의 불규칙성을 강제하여 사교와 반목을 한 끝 차이로 추락시켜 이의 해명을 위한 부연설명을 해야 하는 피로감을 누적시켰기 때문이다.
(규율상 잡담은 지양해야 한다고 들었지만 C 영역에 속한 A가 먼저 말을 건낸다)
B: (A 역시 그렇게 신경쓸 만한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하였고 자신도 그렇게 보여서 꺼낸 것으로 해석하고 말을 받아 줌)
A: "근데 누가 대화하라고 했죠?"
B: "...네?"
C: "B씨, 잡담하지 말라고 했을텐데요?"
B: "저 분(A)이 먼저 말을 걸었는데요?"
C: "어쨌든 잡담한 건 맞잖아요."
A: "B씨 어디 아픈거 아니에?"
무경험자 입장에서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보충하자면, 우선 A는 유아 연기를 통하여 책임을 B에게 돌리고 있다. 예시로 보았을 땐 아무리 규율을 지키지 않고 넘어가버린 것을 언질하는 C의 지적이 맞다고 해도 A의 잘못이 면제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인 사고이나 여기서는 C의 영역에 책임이 포괄되지 않게끔 거론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상황임을 B는 예상하지 못 했기에 벌어지는 촌극이다. 사석이 아닌 갈등의 주체들은 이성이 지배하는 실리를 추구하면서 본인 이미지가 깎일 건덕지 자체를 만들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일반적이라 여겨지므로, 보통 이런 식으로 대화하다간은 정신적인 문제를 의심해봐야 할 지경이라 지능적이라면 정치질로서의 실익이 적다는 걸 A와 C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며 이를 주변이 바라보는 입장을 바꿀 수 있게 권력을 뻗혀 다른 접근법으로 친목을 위시한 권력놀음을 다수에게 납득시키는 도구로서 희생양의 필요성과 이러한 불신을 비명료화된 다수의 의견을 왜곡하거나 축소하는 과정을 용이하게 해주는 유아 연기는 자신들의 관할 내에서 책임을 공유하지 않아도 되는 실용성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며 이를 실행하는 경우가 위 예시에 함축한 대화의 불건정성이다. 이때, B가 외관상의 영역만을 탐구하여 앞서 행위를 예상한다 치더라도 유아 연기라는 극도의 변칙적이고도 이성적인 척을 하는, 영역 내에서만 알아듣는 은어로 분절을 뭉개는 흡사 광대 행위가 주변이 볼 때 거부감이 들겠지만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주류들도 본인에게만 손해가 오지 않으면 무심하다는 사내 분위기와 윗선의 자유분방한 성향상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서 사장의 권한에 버금가는 C가 구축한 완장질로서 계를 타게 된다면 비주류는 이를 수용해야만 하는 방향으로 변질된다. 결국 얍삽하거나 아부를 떨어 어울릴 만한 가치로 선택된 A는 C와 비슷한 권한에 버금가는 입지를 위해 지속적으로 밑밥을 깔아 B의 신뢰를 얻든 말든 특정인의 앞담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게 넘어가게 해주는 C의 영역을 신뢰하는 연기를 통해 신뢰를 과장하여 오는 권력에 따라오는 반사이익을 얻고자 하는 주변인의 모방[154]에 의해 신뢰를 공유한다고 믿는 것이고 자신에게도 그러한 권한이 부여됐다고 착각한다. 이때, 사적영역이 난립하여 조작된 B의 사회적 문제가 공공영역에 드러날 시 바로 이 점을 노려 'B는 우리(C 영역)가 봤을 때 뭐가 이상해서 한번 우연히 시험해본 결과가 우리가 나아가고자 할 생태계와 대조적임을 증명하게 되었고 이러한 조직의 결성 요건(=유아화)이 조직에 어울리는지를 판단하기 위한 필요악이었음을 사내 이익을 위해 용인해야 하지 않겠냐?'로 만일 상대(B)가 따져도 이러한 모호성을 이용해, '우연 → 관철'로 조작하는 사내정치의 필요성에 의문을 지니는 B에게 관찰자 입장에서 찐따 티를 공언하여 간접적으로 반문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주류와 함께했다고 윗선이 두둔할 명분을 주어 일전에 합의된 규율의 예외 사항이 B로부터 시작됐다고 선동하여 이전의 규율을 무효화시킨다. 이 구도가 반복되면 상호 보완적 규율의 존재 의의가 역전되어 정체성은 붕괴되고 책임론은 와해된다.[155]

B가 항의하면 부조리를 상위에게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미 C 영역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종속된 꼬리 물기[156]에 강제로 함구해야 하는 쪽으로 권력이 작용하게 되고 조직 체계가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은 축출해 내 입지를 좁히면 될 일이다. 또한, 체계화가 불필요한 비선형성 언동으로 집속된 공격성은 수평·수직관계의 중간지대에서 가치평가로 위장한 자기보호성 심리조작으로 전환돼 주동자 전임을 가능케 하므로, 전달해봤자 "왜 나(우리)한테만 따지냐. (이미 전임 완료된) 다른 사람에게도 따져야 되지 않느냐?'라며 책임의 공정성을 준수하지 않은 상대를 갖다 책임을 무마시키는 게 가능하다. 그리고 이를 노렸다면 최악이다. 위 대화에서 B가 이를 앞서 예상해 무반응으로 일관하면 C로부터 거쳐간 다수의 입김에 의해 사회 부적응자라고 매도하는 여론이 형성된다. 그렇다고 반응하다가는 의도된 규율에 위반한 B의 책임으로 사회 부적응자로 왜곡하여 군말 없이 사회적 합의에 따르는 것이 기본 덕목이라는 한국식 집단주의에 따라 이중성을 정당화하는 가불기를 선사한다. 문제는 이게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고 공공에 의한 편향을 사적영역에 접목시켜 추론하려 든다는 점이다.[157] 결국 타겟은 참다참다 폭발하지만 주변이 볼 때는 C 영역에서부터 이미 언질된, 찐따의 이미지로 조작한 B의 사적영역이 기정사실화 되어 C가 주도한 부조리와 새로운 사람을 C의 영역에 편입시키는 명분을 동시에 납득시키는 구도를 형성하고 이를 반복한다. 여기서 혼란스러워진 분위기는 이를 주도해줄 권력의 입막음용으로 주류에게 이양되어 사규 내 차별을 용인시켜 조직 내 공공영역과 사적영역을 재분리한다. 이 말은 지식 부족으로 유아 연기가 만연한 상황에서 적용되는 규율마저도 거짓일 가능성으로 조작할 수 있어 본인이 들어올 때 당시 지켜야 할 규칙은 실은 효력이 없었다는 가능성과 함께 사전에 눈치챈 규율의 모순점이 이미 영역권에 들어오기 전 유사한 사례를 거쳤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며 머리가 잘 돌아가는 인텔리에 소속되었다면 더욱 치밀해서 외부인이 보았을 때 이러한 행각을 묵인하는 B에게 답답함을 느낄 수 있고[158] 또 왜 이리 예민하냐며 되려 나무라는 것도, 유아 연기 중 적의가 미묘하다는 건 지인이 보기에 정말로 그렇게 보이도록 합심할 수도 있다는 뜻이므로 아웅과는 다르게 상대가 적의를 느꼈어도 제3자가 그렇지 않다고 몰아갈 시 설명하기가 난감해지고 이는 법에 유식하든 아니든 본인이 직접 꼬리를 내리도록 만드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어떤 사람은 놀고 어떤 사람은 쌔빠지게 일을 하는 구도를 고착화시키는 등 사회적으로 일하러 왔는데도 업에 충실하지 않는 친목질이 난무하여 오는 해악은, 어찌 보면 학창시절 때의 순수함을 성인기에도 이어가려는 피터팬들의 추억팔이를 직장에서의 이면으로 이러한 유아 연기의 방향성을 나타내고자 하는 욕망의 기류 속 양아치들의 옛 버릇 못 고친 불순한 사상을 직장에서도 끌고 와 정치질의 소재로 써먹으려는 것도 탈출구로서 재미를 추구하는 법을 사람에게 표출하는 게 제격인 사람들이 사교를 이끌어나가는 주류로 자리매김 되었기에 가능한 패악이며, 자기들 편하게 일하려는 명분을 만들기 위해 무관한 사람을 활용하여 권력에 따른 특권의식을 통해 암묵적으로 위화감을 퍼트리는 작업질은 이미 이미지가 박제돼 시체 취급을 당한 경험자라면 매우 심대하다 느낄만 하다. 이는 아무 일 아닌 척 능청떠는 연기로 인하여 서술을 보고 있는 관찰자 입장에서도 이해할 수 있게 정렬한 예시가 아닌 그들 영역에 속한 사람만이 알 수 있도록 은밀하고 지저분하게 이루어지는 상황을 앎의 가시성에 따라 그 의도가 왜곡되게 상대가 노렸을 가능성도 산재하도록 의식을 확장하여 '사회에 따른 우리에게 책임을 돌릴 수 없다'라는 여론을 위한 밑작업으로서 자기 검열에 의한 앎의 기준 또한 오염됐을 수도 있다는 다수의 물음 속에 끼어들어 자신만의 이기주의를 사회의 당연한 풍조로 편입시키려는 과정임을 부정할 수 없다.[159] 유아 연기는 문외한도 본심을 숨기기 좋은 방법이다. 이런 요소가 젊은 층의 권력 놀이로 채택되어 쓰이는 이유는 상위 계층의 지력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중장년층 역시 추구하는 방향성에서 규합이 어긋나서 생기는 외압은 넓은 측면의 유아 연기라고 정의할 수 있지만 단지 그렇게 안 보일 뿐이며 이는 중상모략에 초짜인 만큼 본심을 숨기려고 상극을 연기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본성을 산전수전 다 경험한 시각에서는 미성숙한 것들이 비정상 속 정상 연기를 하기 위해 애쓰려는 구경거리로 보이는 건 변함이 없으며 결국 치장된 사교로서 상종이란 단어로 추락될 만큼 그 의미는 올바르게 나아가야 할 사회성과 상극이다. 따라서 유아 연기를 건전한 조직 생태계를 위해 기여한다는 상대의 바람을 해석할 안목은 이 문서를 읽는다고 생겨나지 않으며 이를 늘리려면 해당 예시와 비슷한 환경에 들어가거나 아니면 그냥 체념하고 유아 연기를 연마하여 고단수의 돌려 까기로 어울리는 척을 하여 이익을 뽑아먹는 방향을 궁리하는 수밖엔 없다.

성향상 유아 연기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냥 주저리 떠들어대든 신경 안 쓰고 자기 할 거 하면 되지 않나? 왜 그리 예민하냐'라고 어림 짐작하여 생각할 수도 있을텐데 여기서 연기를 하는 영역 내에 들어온 이상 반응을 안 할 수가 없도록 장난질을 하지 않는 경우에나 그런 속 편한 선 긋기가 가능하다. 상대가 유아 화법을 구사할 시 지시 문형이 같이 섞여 있다면 듣는 입장에서는 신경 안 쓰면 여느 때나 같은 유아 연기라고 여기겠지만, 은유적인 지시임을 미처 눈치채지 못 하고 넘어간다면 이는 자신의 의사를 무시하는 것으로 보이게 된다. 결국 주제의 모호성을 이용하여 상대에게 혼란을 주어 논점이 어디로 튈지 모르게 대화를 변칙적으로 조정하여 입맛에 맞게 폐쇄적으로 돌변해 제3자 기준의 왜곡된 해답이 나오도록 유도하는 게 이들의 무기이다.[160] 이는 정보 통제 + 약점 드러내기식 답정너 화술과 같다.
(유아 연기를 관망하는 B)
A: "어떻게 생각해?"
B: "예? 뭐를요?"
C: "B가 말을 못 알아듣네."
여기서 단순히 질문의 의도를 안다고 끝나는 게 아닌, B의 반응이 궁금해서 연기하는 것이라 C도 말을 못 알아들었다고 해서 떠보려는 의도가 사라지진 않는다. 이 말은 결국 B가 알아들었다 하더라도 A가 조작하면 될 뿐이며 C가 동조해 사회 부적응이라 과장하면 B는 사회 부적응자 당첨이다.[161] 여기서 정말 중요한 넌센스로 작용하는 것은, 결국 이것이 일과 관련된 사항이라 사후를 대비해서라도 반강제로 유아 연기에 숨겨진 의미를 추론하기 위하여 오는 피로를 무시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게 되며, 현재 집중된 관심사가 공통된 것인지 급조된(=한) 것인지에 대한 구분이 어려운 점도 헛점을 집요하게 파고 들 목적이었다면, 사적영역까지 침범당해 업을 난입하는 상황까지 와도 면책이 가능하도록 조치를 취했단 의미이니 사실상 누적된 실수로 조작된 평판을 내세워 문제제기에서 멀어지고 배타성을 띠는 인물이 따져봤자 덤탱이만 씌이게 된다. 이러한 인지·행동적 과부하는 확증편향에 가두어 눈 앞에 있는 사실도 아리송하게 하여 그들 말마따나 주변에게 띨빵하다고 하대할 구실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다루는 소재가 사적인지 공적인지 구별 가능하다고 해서 이에 맞다고 해 줄 기대도 못한다. 유아화 상태에서는 사회적으로 객관적이어야 할 정보는 주관식, 기존의 주관식에서도 철저한 주관식으로 서식된다.

이의 현상은 일종의 커뮤니티에서 비롯된 공적 네임드화를 사회화시킨 것으로 본다. 현실에서는 익명에서 하던 것처럼 생각 없는 말을 내뱉을 시엔 책임을 져야 한다. 유아화는 이때 익명에 준하는 핸디캡을 가짐에도 이익을 취하도록 선전케 하는 회원제 형식의 축제로서 이러한 본질은, 연기에 동참하지 않는 사람에게 허용된 사적 주제를 제한할 권리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별 의미 없는 헛소리도 상대방에겐 '우리가 이렇게 톡 쏠만큼 결속이 좋다'는 의도가 되며 이러한 심리적 방벽을 깨고 주제에 낀다면 일하는 중에 딴짓하는 사회 부적응자가 될테고 그렇다고 끼지 않으면 사회성 없는 사람으로 낙점이니 대응 난이도가 아주 뭣같다.

유머를 받아들이는 관점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각기 살아온 환경이 다르니 적용하는 방식도 다른 건 당연한데 이게 일과 유머를 분리하지 않는 극한의 환경에 처하게 될 시 사람을 웃기려는 시도를 선을 넘는 면책에 대한 동의를 받으려는 개수작으로 학습하여 분위기를 환기시키고자 노력하는 사람에게 왜곡된 시선을 가지는 등 감정 기복으로 사교를 누리려는 사변적인 화술에 대하여 매우 인색해진다. 이것이 재미가 없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의 일부이다.

예시 2
(C의 지시로 위에 올려진 짐을 꺼냄)
C: "이야~ D는 키가 커서 잘 닿네요? 역시 신은 공평해~에."
D: '?... 뭐지? 그러니까 본인(C)은 지금 키가 작은 대신 나보다 우월하다는 뜻인가?'

C: "이야~ D는 키가 커서 잘 닿네요? 나는 키가 작은 대신 잘 생기고 역시 신은 공평해~에."
D: "그 말은 제가 못생겼단 뜻인가요?"
C: "농담이잖아요. D씨 꽤 예민하네?"
또한, 유아 연기는 상대방의 명예를 훼손하는 쪽으로 악용하여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명분이 생겨난다. 본인의 유전자가 우수하다는 걸 은근히 뽐낼 수 있고 상대의 열등함을 강조하여 부정적인 사고를 반추(反芻)시킨다. 이러한 화법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으면 유아 연기를 하는 사람을 혐오하게 될 수도 있다.[162] 이는 모방 대상의 나이대, 빈도, 동조성에 따라 조직의 풀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며 인싸력을 모방한다는 건 그럴 만한 환경인 외적 조건도 만족한다는 거니, 아싸의 유아 연기가 어울리지 않는 이유 역시 동세대의 사교성이 그들만의 리그로 끌려가기 때문에 조직 내 불순한 유아 연기에 항의하는 것은, 불쾌하든 말든 나의 의사는 외적 조건으로서 무시할 만 하다는 뜻이니 통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자기들끼리 알아듣는 욕설을 눈치채더라도 은어의 모호성을 토대로 면죄도 수월하다. 아예 본인이 예민하다며 매사에 부정적이라 친밀 영역에 끼지 못한다고 조롱해 책임을 돌리기도 쉽고 그냥 우리들끼리 하는 얘기인데 왜 예의 없이 끼어드냐면서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말종도 있다. 어찌나 심한지 일종의 밈인 타인 NPC화라고 할 정도로, 개인적 우화같은 청소년기의 자기중심적 사고가 성인에게도 옮겨갔나 싶을 정도다.

예시 3
(어디서 고함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E: "아저씨(F), 나랑 장난해요? 예!?"
관찰자: '뭐지 서로 싸우나?'
(E, F는 서로가 유아 연기임을 알고 있다)
상황이 심각한 척 연기하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상대방이 알아차리기 쉽도록 사회적 거리와 어울리지 않는 표현[163]을 쓰며 관계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정말로 일방이 고함이나 정색으로 다투는 것처럼 보인다. 효율성과 먼 명령이라면 이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재량껏 가요나 트로트를 트는 것처럼 동요, 애니 곡같이 공감대를 형성해 가벼운 일탈로 흥을 돋아 분위기를 환기하기 쉽기 때문에 AI 보이스로 자신의 의사나 개그 코드를 공유하는 것 또한 순수한 사교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집단이 자발적으로 행하는 유아 연기 중 그나마 몇 없는 순기능으로서 작용한다.

조직 내에서는 유아 연기를 유지하되 한쪽만 진심이라 느끼도록 위해를 가해도 골자는 같다. 단지 소리만 안 지를 뿐이다. 사실 갈구는 소리가 안 들리게 음악을 크게 트는 걸수도 있다.

간혹 한쪽이 앞서 나가서 친한 척 하는 과잉 반응은 상대방에겐 '내가 우스워 보이나?'라고 잘못 해석하게 만들 수 있다. 이는 괴성을 활용한 의사소통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의 불합치로서,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 위치(서열)에서 친해질 목적의 잉여표현은 되려 상대를 향한 도전으로서 모욕을 줄 의도로 행동했다고 오해하는 거다.

예시 4
G: "이건 너(H/I)의 문제이다."
H: (우는 척 하며) "흐엥~ ㅠㅠ." / "아, 그만 말 해. 머리 아파."
I: (문자상에서) "네, 다음부터 주의하겠습니다 ." (이어서) "아, 실수 ^^."
선택적 약자로서 면책을 얻어내기 위한 작업으로, 본인 불리할 때만 동정심을 호소해 문제를 없던 것으로 조작하여 상대를 예민함으로 화제를 전환한다. 상대도 같은 행동을 했으면서 정작 본인이 할 때는 불만이냐고 실컷 도발을 하는 쪽에게 논리적으로 따져서 반박을 못할 지경이 되면 유아 연기로 과장 문단 내 예시 중 S, T 상황으로 연계시켜 자기가 먼저 도발하여 상대를 화내게 만든 뒤 나한테 화냈으니 감정적으로 대처해도 된다는 변명거리로 정당화시키는 이러한 개논리에 당해본 사람은 위와 비슷한 낌새를 보이면 상대를 같은 인간으로 대우하기가 힘들어진다. I의 경우, 고의였어도 오타라고 우겨서 면책받을 수 있다. 이런 실수가 반복된다는 걸 알아도 그 적의가 미묘한 특성상 심증만으로는 괜히 따지는 쪽이 이상해진다.

신체적 약자화로 이득을 얻는 경우에는, 본인이 태생적으로 배가 자주 아픈 편이라고 뻥까서 농땡이를 피러 가는 것처럼 이는 기성세대라고 해서 다르지 않으며 아까까지는 날라다니던 인간이 부정적인 흐름에 동기화가 되는 것마냥 갑자기 몸이 축난다고 따지려 드는 걸 끊어서 문제를 없는 것으로 만드는 건 위처럼 본인 편해지려고 술수를 쓰려는 과정과 같다. 이처럼 졸렬한 행위는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쓸 수만 있다면 매우 유용한 유아 연기에 해당된다.

상대의 추궁을 회피할 때 쓰이는 유아 연기는 꼭 약자 행세뿐만이 아닌데, 그리 어른스럽지 않은 해결책으로 정상적인 사고능력을 약화시켜서 제대로된 해명을 어렵게 하는 것. 즉 화난 만큼 목소리가 커지는 사람에게는 논리가 통하지 않듯이 육체적 강자에게는 상대가 힘으로 보복당할 수 있을 걸 염려하여 반박을 포기하는 것을, 본인이 또박또박 올바른 소리를 했으니 상대도 자신의 논리를 인정했다고 착각하기 쉬우며 문제는 이게 일회성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상대가 보기에 '자신의 기준에서는 피해를 줄 만한 행동이 아닌데 왜 고쳐야 하지?'라는 생각으로 교정해 봤자 시간이 지날수록 억지성이 드러나게 되고 이를 행동으로 표출하는 것을 보는 강자의 눈에는 '문제 있는 행동을 본인 입으로 안 하겠다고 말을 했건만 안 지키고 또 하고 있네'라며 보복할 명분을 만들 수 있다. 사적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논리도 별로 중요하지 않으므로 이러한 원인을 내 말을 어긴 상대방의 인성 문제로 돌릴 수가 있게 된다.

무의식적으로 유아 연기가 드러나는 경우 이미 본인이 유아 연기를 자각할 수 없을 정도로 주변인에게 개성으로 안착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164] '바보'스럽다는 약점은 어떤 사람에게는 죽이 잘 맞아서 순수함을 대리만족시켜 줄 시너지로 사교에 보탬이 될 수 있으며 그러기 위한 외형이 개성과 안 맞으면 '띨빵'하다는 어감으로 족칠 것이기에 알아서 자각할 것이다. 생리적인 만족감도 상대는 부자연스러운 유아화로 인한 연기의 고의성을 시인하는 행위로 의심받을 수 있다.[165] 당연히 멍청하게 보인다고 사회성 부족이 아니다.

이쯤 되면 왜 이게 사교 문단에 속해있냐는 주객전도 격 모순을 드러내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사교와 연관시켜 자기 보호를 위한 경각심을 보조하는 기술로 사용할 수 있다. 본질을 말하면, 결국 멍청해보이는 척을 하여 상대가 먼저 책임의 주체로 따지기를 포기하게끔 노림으로써 추종 조건만 적합하다면 적대 파벌이 불쾌하지 않도록(정확히는 제3자에 의해 불쾌하다는 티를 내는 게 손해로 비춰지도록) 거절하기가 능해지는 걸 활용하여 공적 괘씸의 총량을 덜어낼 수 있으며[166] 위의 예시들은 유아 연기가 통하는 가벼운 가십 위주의 창구, 즉 공공영역에 드러난 문제도 이를 이용해 감추기 용이하다는 이야기이고 이게 불쾌한 입장에서도, 친한 사람끼리 모인 곳에서 지적해봤자 태클이라고 느낄 확률이 높아 알아서 떨어지도록 만드는 심리적 트릭을 구사하기에도 좋다.

인간관계도 딱 친해지고 싶은 만큼만 친하다는 것을 이 기술에 대입해 재정의하자면, 친한 척 하는 노고를 봐서라도 사사건건 개입하지 말라는 유착이자 최측근이라는 것을 이용해 정보통을 겸직할 수 있고, 이러한 정보의 희소성은 내부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도록 하여 공정성 제기가 반박될 것이라는 무력감을 예고해 선동과 날조로 말려 죽이는 은밀한 전략으로 조직 평정에서도 그 유리함을 만족한다. 즉 사교로서의 유아 연기는 상호 자칭하는 공개적 맞담[167]과 그 무해성이라는 잠재력의 집합체로서 인간관계에 변칙성을 증대하여 정보 독점을 취할 요량으로도 쓰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168] 냉혹하게 들리겠지만, 당신의 존재는 연기하는 사람에겐 도구일 수 있고 단지 당신을 이용해 일감을 줄일 명분이 된다면 그대로 행할 뿐이다. 현재도 이런 유형이 사회 도처에 사교로 위장해 있기도 하다는 것을 알아둬야지 뒤통수를 예방할 수 있다.

유아 연기는 친교, 순수성, 지위 개선이라는 세 가지 조건이 인정되어야지 이상적으로 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소기의 성과[169]만 달성하면 위 조건들을 지키지 않아도 개인에게는 유아 연기가 이루어졌다고 본다. 여기서 어린이의 습성을 따라한다는 걸 상대가 뒤늦게 알아도 이를 받아들이게 할 수 있을 조건과 자신을 비교했을 시 동등[170]한 유아 연기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겠느냐를 따져도 결국 이익을 얻는 데에 성공한다면, 제3자가 인정할 순수성에 들지 않는 계산된 유아화에 의한 목적성 또한 유아 연기에 포함된다.

종합하면, 활력을 도모하기보다 사람을 가지고 노는 듯한 대화로 이루어지기 쉬운 이유가, 어쨌든 상황이 꼬여도 인문적으로 성역화된 유아(幼兒)는 성인이어도 선의로 유지된다는 근거로서 이를 정상으로 세탁해줄 수 있기에, 설령 악의였어도 서로가 순수하다는 핑계로 피해자에게 장난을 받아줄 인성이 덜됐다고 책임을 덮어씌우기도 편리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연기의 주 기능은 신뢰보다는 친목. 과정일 뿐 결과가 아니니 사실상 집단이 제정신이든 아니든 차이가 없다. 사용자에 따라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꽃밭이 되거나, 파벌 유지를 위한 정치질의 꽃이기도 하며 아싸리 중첩되기도 하는 등 이러한 양면성은 모든 사회적 기술 중 가장 독보적이다.

5.4. 자기 공개

자기 공개는 관계 형성에 중요하다. 자신의 신상명세나 속마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상대방과 더욱 돈독한 관계가 될 수 있다. 여기는 적당한 범위가 중요하다. 자기공개로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지나치게 말하지 않아서'보다는 '지나치게 많이 말해서'인 경우가 많다. 세상에는 말을 퍼뜨리기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대학 동기와 단둘이서 술먹고 웃고 떠들면서 뒷담화를 하더라도 다음날이면 험담의 대상에게 고스란히 다 들어가고 이야기를 퍼뜨린 사람은 나라는 누명을 덮어쓰기도 쉽다. 따라서 뒷담화나 자신에게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는 말은 지인 사이에서는 절대로 하면 안 된다.[171] 대학 동기, 회사 동기, 같은 동호회 사람 정도라면 최대한 이런 이야기를 듣는 쪽이 되어야 한다. 지인은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원수가 될 수도 있는 그런 사이이다. 스트레스 받아서 뒷담화를 참을 수 없다면 절대 상대방과 커넥션이 없는 그런 곳에다 하는 게 낫다. 또는 동네 친구나 오래된 동창처럼 뒷담화가 퍼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는 친구 사이에다 하는 게 좋다.

자기 공개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개될 가치가 있어 보이는 상황에서 진행하는 게 이상적이다. 상대가 본인을 같은 영역에 소속하려는 중임을 유추할 수 있는 단어로 반응을 끌어도 통과의례(관심도)에 만족했다는 것까지는 뜻하지 않으므로, 실제 들어갔다고 생각해 반응했다간 낭패를 볼 수 있다. 자신의 수준이 조직에서 바라봤을 때 공개를 받아줘서 상대에 속한 조직을 추켜세울 만한 인간인지를 메타인지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 좋다.
갑: "너 나이가 몇이야?"
을: "그러는 XX(갑)님은 나이가 몇인데요?"
갑: "지금 너한테 물어보고 있잖아."
본인의 서열이 높다고 해서 상대에게 자기 공개를 강요할 권리를 얻은 게 아니다. 설령 내가 먼저 정보를 밝힌다 해도 일방적으로 발설한 것이라면 공개를 들을 의사를 권하지 않은 것이고 이에 대한 반발심에 역질문으로 회피하거나 거짓말이 나올 수 있다.
갑: "내가 이러이러 해서 짜증났지? 나한테 욕해도 돼~."
을: "아니요. 사양할게요."
갑: "욕하라니까."
자기 공개는 자기소개 이외에 인성을 시험할 목적으로도 악용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술을 강요하여 절제력을 알아보는 방법이 있으며 고의로 화나게 하거나 위 예시와 같이 그렇게 보이도록 연기하라는 경우이다.[172]

온라인상에서 활동을 유추할 만한 닉네임이나 정황을 의심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술주정으로 분위기에 동조[173]할 수 있으니 무의식에게 정신을 맡기는 건 내공이 쌓인 뒤에나 즐기자. 사생활을 직장에 있는 사람까지 알지 못 하도록 공적과 사적계정의 분리가 필요하다. 이에 관련해서는 개인정보 유포 중 대책 문단이나 인터넷 프라이버시 문서로.

이미 본인에 대해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자신만큼은 입을 무겁게 해 신뢰감을 유지해야 나중에 뒤탈이 없다. 험담은 동귀어진하자는 꼴이며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없다. 관계를 끊어내야 하는 때가 온다면 상대 또한 자신의 행동에 미련이나 쌓인 게 없어야지 깔끔하게 성립될 수 있다. 사과를 제때제때 하지 않고 존중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으면 공개용 성품에 누를 끼치게 되고 나중에 본인의 인생이 순탄할 때 찾아오는 족쇄가 되어 있을 것이다. 온라인이라도 적을 만들지 마라. 익명이어도 겸손을 유지하는 것이 추후 신변을 보호할 수 있다. 세상에는 미친 인간이 많으며 이러한 마음가짐은 그로 인한 타겟이 될 확률을 매우 낮춰준다.

마스크로 외모를 가려서 간접적으로 자기 공개를 거부하는 의사를 밝히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원래부터 유명한 사람이라면 신비주의로 인하여 사람이 꼬이는 부작용이 있고 대부분은 피부 관리, 아니면 마기꾼같이, 외모에 자신이 없거나 좋지 않은 기억 때문에 움츠러드는 심리를 보호받기 위하여 억지로 감추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상대방은 무슨 감정으로 듣고 있는지를 알아내기 어려워 긴밀한 관계로 진행되기가 힘들고 사람들과 어울려서 정보를 공유받을 만한 신뢰감을 형성하기도 어려워진다.

자신이 1차적으로 공개해도 될 정보를 나누어 비밀을 유지할 필요 없이 당당히 거래를 할 수 있다면 가장 무난하고, 본인에게 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정보를 비밀로 꾸며 고의로 퍼트려진 척할 수만 있다면 비밀을 유지할 자원을 거짓 주동자로부터 뽑아낼 수도 있고 보통은 신뢰를 얻기 위해 부풀리는 과정 중 운 좋게 얻어 걸리는 편이다.

장신은 자신의 위치를 강제로 드러나게 한다. 이러한 시인성은 매력이자 동시에 지목당할 위험을 높인다.

5.5. 부담을 주는 행위

친하지 않거나 신뢰가 깊지 않은 사이에서 진지한 이야기를 한다든가, 정보 공유를 닦달하거나[174] 가족관계를 캐묻고 이성이 있다면 소개시켜주라고 꼬드기거나 잘 나가니 원래 친했던 것처럼 행동하는 둥 이를 통한 근거없는 칭찬과 호들갑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상대방을 좋게 보고 있지 않은데 이런 소리를 들으면 비호감은 더욱 심화되는 것은 뻔한 이야기이다. 상대방과 자신의 관계가 어떠한지 파악한 다음에 이러한 행위가 부담을 주지 않을까 고민하고 나서 행동할 것을 요구한다.

그 근거가 담백한 인간미라는 속물로서, 본인이 먼저 선을 그은 사람에게 목적이 드러나게 하는 사탕발림은 '주변 사람에게 이미지 관리 할 겸 마침 친한 척 할 수 있는 순한 양을 (재)활용하겠다'라는 의미를 내포한다. 쓰이게 될 사람은 사회적 거리를 따지는 게 무색한 남남임에도(예: 상대 애인) 깍듯이 모셔야 하는 음성적 폭력[175]이 이러한 유형에 해당한다. 서열이 낮으니만큼 보복당하니 '내가 이리 마음씨가 곱다'라는 인증에 강제 동참해야 할 때는 연기를 위한 부담감이 배가 된다.

굳이 얘기를 꺼내서 거리가 멀어졌다는 자책을 느낄 필요가 없도록 해야 한다. 관찰하는 입장에서는 모를 사회적 거리의 절대값이란 실제로 일어날 시 그 두려움이 박탈감으로 변한다. 급격한 태도 변화는 삼가자.

6. 화제 선정

  • 분위기 파악에 자신이 없다면 말수를 줄이고 조용히 있는 게 답이다. 자주 나서려 하거나 튀는 행동도 하지 말고, 돌직구 및 불필요한 말을 자제해야 한다. 원래 말 없고 조용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게 거부감 드는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보단 훨씬 낫다. 이럴 때는 경청하고 공감이라도 잘 해준다면 중간은 갈 수 있다.
  • 상식적으로 누가 들어도 거북한 이야기인데 자기 혼자 모르는 경우도 문제의 원인일 수 있다. '공감능력이 부족하다'는 핀잔을 듣는 경우다. 여기에 해당한다면 사회생활 경험을 늘려야 한다.
  • 화제가 바뀌는 텀이 매우 짧은 경우, 생각한 것을 정리한 뒤 말을 하는 타입이라면 막상 꺼낼 쯤 이미 다른 주제로 넘어가버려서 발언권이 축소되는 경우가 잦다. 이에 해당되면 상황 판단력과 반응속도를 단련해야 한다.

6.1. 상대가 꺼리는 화제

짜증나거나 결론이 안 나는 이야기, 답이 뭔지를 알고도 꺼내려는 사족을 들으면서 기분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런 이야기가 나온다 싶으면 눈살을 찌푸리며 관계를 끊어버리는 게 대부분이다. 상황별 응집을 만족시키는 화제를 가늠할 수 없다면 미리 경고를 하거나 생각만으로 끝내는 게 좋다.

6.2. 무책임한 조언

말 그대로 조언을 가장한 아는 척을 하여 가르치려 들거나, 훈수,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기, 나쁜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 의지드립에 기반한 비난은 대인관계에 몹시 해롭다. 지적질, 훈장질, 잘난 척, 꼰대질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런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은 "상대를 도와주려 하는데, 내가 언니/형/오빠/누나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상대가 고깝게 받아들였을 뿐 상식 선상의 이야기인데 뭐가 문제냐?"라고 반론하기도 하지만, 명쾌한 답을 못내는 것과 상대가 이를 들어줄 만큼의 증명이 안되는 사람의 조언은 다르며 만일 후자라면 듣는 사람의 기분을 더욱 나쁘게 하고 인간관계 유지에도 해롭다는 건 알아두자.

본인이 해결책을 제시하지도 않을 거라면 평가사가 적임 인냥 고삐 풀지 말고 눈치껏 조용히 있는 게 서로에게 좋다. 세대가 달라서 이해 못하는 건 아는데 굳이 문제 삼아서 '나 때는 안 그랬다. 너의 노력 부족이다'와 같이 상대에 대한 가치관을 통달한 듯 쉽게 결론내는 건 충격요법식의 조언이 아닌 그냥 노망이다. 차라리 간접적으로 배울 만한 현인으로 거듭나게끔 자기관리에 집중해 상대방의 동력을 이끌어내는 편이 낫다.

6.3. 분란 유발성 주제와 말싸움

정치, 종교, 성차별, 징병제 등 타협의 여지가 극히 적고 갈등을 쉽게 일으키는 주제는 가급적 이야기하지 않는 게 좋다. 미숙한 사람들은 상대방의 생각이 자신과 다르면 상종 못할 사람으로 보기도 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이쪽 문제를 많이 일으킬 경우 인터넷에서 키보드 배틀을 하거나 누군가를 비웃는 글/댓글을 쓰는 등 독설을 날리는 습관을 버리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키보드 배틀을 통해 상대방을 꼼짝 못 하게 하고 상대방을 분노하게 하는 기술을 얻을 수 있지만, 이런 기술은 오프라인 상에서의 대화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되고 오히려 인간관계를 방해한다. 상대가 기분 나쁜 말을 하거나 기분 나쁜 의견을 가지고 있을 때 점점 적게 싸우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상대가 해주도록 설득하는 기술을 키워야 한다.

그나마 이러한 경우는 한국 사회에서 많이 보기는 힘든 유형이다. 아무리 사회성이 떨어지고 다른 건 눈치가 없더라도 이것만큼은 스스로도 위험하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도 하고, 이런 류의 경우 대부분이 오프라인 상에서 얼굴 보고 드잡이질이나 말싸움하기는 부담스러워하니 인터넷상에서 익명으로 푸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 전형적인 키보드 워리어 일수록 현피나 고소를 다른 사람 못지않게 무서워하고, 익명에 숨어서 자기 할 말만 하는 심리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프라인상에서 보는 경우는 생각 외로 적다. 물론 악플러나 키보드 워리어 중에 그런 걸 생각 안하고 마구 하면서 몸에 밴 사람도 없지는 않다. 그런 경우 정말 오프라인에서도 나대다가 피를 보는 경우도 생기므로 주의해야 한다.[176]

나이를 묻는 것 또한 상황봐서 하거나 가급적 아예 언급 안 하는 게 좋다. 초면에 대놓고 나이 묻는 게 아니더라도 쓸데없이 서열을 조장하는 문화에 질려하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충분히 분란의 요지가 생길 수 있다.

7. 통념을 넘어선 질문

허용되는 질문은 사회적 거리에 따라 갈린다. 예를 들어 KTX 동반석을 구하면서 표를 파는 동행인에게 '표는 구했느냐, 가격이 얼마냐, 몇 시 차냐' 정도를 묻는 것은 괜찮다. 그런데 '뭐하러 가시느냐, 일정이 어떻게 되냐' 등 본래 목적과 관계없는 질문을 하면 다들 꺼린다. 오지랖에 해당되는 사생활 침해성 질문 역시 나쁘다. 또한 책임을 묻는 듯한 질문은 상급자-하급자 관계가 아닌 한 자제하는 게 좋다. "그거 정말 맞아요? / 확신할 수 있어요? / 장담할 수 있어요?"같은 질문을 하려면 그에 걸맞은 돈을 지불하고 해야 할 것이다.

7.1. 자랑

남들이 자신을 알아주기 바라는 마음에서 잘난 척, 나르시시즘과 같은 행동을 하면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쉽다. 설사 자신이 정말 잘나서 잘난 티를 내고 다녔다 해도 마찬가지다. 권력자, 부자라고 해도, 상대방이 별로 친해질 생각을 못 느낀다면 친해질 수 있는 관계는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잘난 점을 드러냄으로써 상대에게 더 큰 시기심을 불러오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열등감이 강한 사람 앞에서 자신의 잘난 점을 자랑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누구나 남보다 우월해지고 싶고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호감을 주고 싶다면 자기 자랑을 즉시 그만두어야 한다.[177]

자랑을 하더라도 자동차 자랑, 직업 자랑, 전문직 자격증 자랑같은 것들은 문제가 그나마 덜한 편이다. 연봉 자랑과 학벌 자랑은 어디 가서든 직업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한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상의 취급은 받기 힘들며, 할 거면 친구나 지인 측으로부터 본인이 할 말을 대신 꺼내야 자연스러운 상상력을 동원해 과대평가하도록 돕는다.

한국인의 사회문화적인 부분도 있다. 친구 사이에서 미국인이나 유럽인에게 연봉을 물어보는 것은 그렇게 이상하고 기괴한 일로 받아들여지지 않지만[178], 한국인 사이에서 그런 질문은 매우 무례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179] 설사 인터넷에 모두 공개되어 있더라도.

자신의 과거를 자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시대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는 등 현실에서 패배한 사람으로 보이기 쉽다. 예를 들면 "내가 입사했을 당시에는 말이야...", "내가 20대에는 아주 인기가 많았는데 거기 비하면 너는...", "옛날엔 내가 아주 잘 나갔는데..."와 같은 말이 바로 이런 경우다.

인정받고 싶은 심리 때문에 자기 자랑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해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사례가 있다. 인정을 받고 싶을수록 자기 자랑을 줄이는 게 이득이다. 조사 내용은 아래와 같은 방식이다.
* 남 앞에서 능력을 칭찬받았을 때, A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다'는 식으로 과시적인 반응을 보이고, B는 '운이 조금 좋았을 뿐'이라는 식으로 비하적인 반응을 보인다.
*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이 광경을 보여주고 어느 쪽이 호감이 느껴지고 능력이 우위인지 설문조사를 했다.
* 초등학교 1, 2학년의 경우 A, 3학년 이상은 B가 호감이 느껴진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학년이 올라갈수록 B가 유능하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늘어났다.

다만, 주변 사람이 아니라 칭찬하는 사람에게 잘 보이려면 A처럼 솔직하게 "감사합니다."라고 하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잘난 척, 잘난 티에 대한 문제가 있다면 본인의 자신감이 지나치게 부족한 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유명 연예인이 사촌 오빠에게 "저 다 아시죠? 저 TV에서 못 보셨어요?"라고 묻는 경우는 없다. 왜냐하면 본인이 원래 잘한다고 남들이 다 인정해 주면 굳이 입에 꺼내서 잘난 티를 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설사 상대가 몰라준다고 해도, 상대가 일반인이면 굳이 상대에게 인정받아야 할 필요성 자체를 못 느끼는 게 대부분이다. 객관적으로 자기가 잘 하고 자신이 아는 전문가들은 자기가 잘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겸손하게 "잘 몰라."라고 하거나, 아예 말을 안 꺼낸다. 즉 자화자찬이 발동하는 부분은 대개 남에게 인정받지 못할 때이다.

특히 상대를 깎아내릴 목적으로 자신의 친구, 지인, 동료 등을 자랑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평판에 매우 큰 악영향을 불러온다. 이런 문제를 일으킨다면 자신의 현재 상태에 대해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권위를 빌리려는 심리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런 식으로 남의 이야기로 일관하는 사람은 정작 자기 자신이 잘 나가는 이야기는 잘 하지 않는다.
*(금수저 집안으로서 한 달에 2,000만원은 있어야 살 만하다고 진심으로 생각함) "우와~ 어떻게 한 달을 200만원으로 버틸 수 있는 거야? 나한테 알려주면 안 돼?"
*(남들도 본인처럼 부모님이 등록금 정도는 다 내 줄 형편이라고 생각함) "그 나이대는 X 정도는 다 모아두고 있지 않아?"
드물게 본인이 사는 환경이 남들보다 특출나거나 그렇게 여기는 환경 속에 본인의 노력으로 남들이 하기 힘든 결과를 달성했다고 착각할 때[180] 자신과 비슷한 위치에 올라온 상대나 또는 아래라고 생각하는 밑바닥 인간에게 다그치거나 대견하다는 식의 호기심은 상대에겐 '내 주위에는 다 성공한 사람밖에 없어서 유복하다'는 티를 내어 돌려 깐다고 생각하며[181] 결국 시기심을 느낀 상대는 거리를 두게 되고 이를 이용해 먹으려는 하이에나들이 주변에 포석할 확률이 높아진다. 본인이 자랑할 목적이 아니더라도 남들에게는 답정너식 위신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인지하여야 한다.
A: "어디 사세요?"
B: "아, 이 근방이요."
A: (이 주위에 오피스텔이 많으니 상대도 똑같은 곳에서 산다고 생각하여) "그래요? 여기 맛집은 어디가 유명해요?"
B: "잘 모르겠네요."
A: "언제부터 거주했는데요?"
B: "얼마 안 됐어요. 부모님이 제가 이곳에 일한다고 집(=아파트)을 막 장만해줘 가지구요."
A: (헛웃음을 내며) "하..."
의도치 않게 자랑이 되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 B가 문제라고 한다면, 이런 대화 형식이 이어질 때까지 경청을 과하게 했다거나 괜히 진실을 밝혀 상대의 기분을 잡친 것이다. 기분 나쁜 솔직함은 내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상대가 그렇게 느껴지면 이미 늦은 거다. 올바른 대처는 아래와 같이 서로 간의 격차를 숨기고 해당되는 계층의 아비투스를 관찰하여 이를 통계치에 대입해 모방하는 것이다.
A: "여기 맛집은 어디가 유명해요?"
B: (상대와 비슷한 환경을 모방하여) "배달시켜 먹는 편이라 잘 모르겠네요."
A: "배달도 좋죠. 근데 물가가 많이 올랐더라구요."
B: (별로 체감은 안 들지만) "맞아요, 요새 시켜먹기가 무서워요."
애초에 각 계층별 리즈를 알아내는 것 말고는 관심사가 제한된 일면식이라면 얻는 게 없으므로 B는 A가 처한 환경 및 가치관에 흥미를 느끼는 게 아니라면 위의 대처를 쓰면서까지 관계를 유지하지 않는다.

참고로, 돈과 관련된 것들은 꼭 사실이 과장되게 전달돼 바람잡이들을 끌어 들이기 때문에 욕봐서라도 입방정 떠는 지인을 솎아내 같은 계층끼리 어울리게 된다.[182]

7.2. 상대의 열폭에 직면

세상엔 온갖 종류의 열폭 종자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자랑을 하는 것은 자칫 자기 자신을 위험하게 만들 수도 있다. '남을 해코지할 때 기뻐하는 감정'[183]이라고도 한다. 이런 이야기를 실천에 옮기는 것은 심한 소인배에게나 있는 일이지만, 사람의 본성은 겉으로만 봐서는 쉽게 알 수 없기 때문에 미리 조심해야 한다.
  • 친하게 지내던 고등학교 동창이 부잣집 아들과 결혼을 한다면 앞에서는 웃으면서 잘 됐다면서 축하해주고 집에 와서는 온갖 안 좋은 이야기를 지어낸 후 그 집 아들의 메일로 쏴버려서 파혼시킨다. 그리고 다음에 그 동창을 만나면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꾸몄는지 모르겠다, 괜찮다 더 좋은 사람 만날 거다' 등등 위로를 해주면서 속으로 실실 웃는다.
  • 분명 친하게 지내던 동기인데, 좋은 회사로 이직을 하는 것이 알려진다면 겉으로는 축하해주고 뒤로는 회사 사람들에게 몰래 다 퍼뜨려서 그만둘 때까지 은따를 시킨다. 그리고 그 동기를 만나면 누가 그런 나쁜 소문을 퍼뜨렸는지 모르겠다고 위로를 해준다. 더 심하면 이직하는 회사에 엉뚱한 투서를 넣어 이직을 방해한다.

꼭 이런 해코지를 당하지 않더라도, 듣는 사람보다 잘난 것을 이야기하면 겉으로는 티를 안 내도 자신을 시기하고 미워하는 사람이 생기고 어디선가 뒷담화로 씹히기도 십상이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자기가 못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든 남을 깎아내려야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 나중에 처지가 뒤집히면 (가난하다고 생각했는데 돈을 더 많이 번다든지) 허영심 때문에 태도를 싹 변화시켜서 적대적으로 대하든지 관계가 끊기는 경우도 많다.

열폭은 꼭 사회적으로 못난 사람이 잘난 사람에게만 하는 것이 아니다. 특히 갑을관계에서 위쪽에 위치한 사람이 하급자를 시기하여 방해하고 괴롭히기로 마음먹는다면, 극도로 투명한 몇몇 조직 외에는 헬게이트 당첨이다. 이 때문에 시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언행은 서열관계 하에서는 항상 주의해야 한다. 가령 후배가 선배보다 일을 더 잘 한다고 상사에게 인정받는다든지, 나이 어린 사람이 나이 많은 사람보다 더 똑똑하다고 인정받는다든지 하면 인간의 본성 때문에 시기심이 불타오른다.

7.3. 상황만으로 확인 불가능한 경우

별 생각 없이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게 의도치 않게 다른 사람의 불편한 부분을 건드린 경우 상황만으로는 무엇이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들었는지 확인할 수 없다. 말할 때도 상대방 표정이 예기치 못하게 어두워진다면 어물쩍 다른 화제로 전환하는 게 필요하다. 그럴 자신이 없다면 명절증후군 문서를 읽고 타인을 기분 나쁘게 하기 쉬운 주제를 알아 두는 것도 좋다.
  1. "저희는 아이가 셋이라서 키우느라 너무 힘드네요~."라고 했는데 눈앞에 있는 사람이 불임으로 몇 년째 고통받고 있는 경우. 또는 그 사람이 사고로 인해 소중한 자녀를 잃은 경우.
  2. 아동을 대상으로 자원봉사를 하는 과정에서 결손가정의 아동에게 부모 이야기를 하는 경우. 혹은 엄마와 사별하였거나 별거하고 있는 아동 앞에서 자신의 엄마 자랑을 늘어놓거나 엄마의 얼굴을 그려보라는 경우.[184]
  3. 큰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 앞에서 작은 고통을 하소연함. 예를 들어 30대 후반까지 노총각, 노처녀로 고통받고 있는 나이 많은 사람에게 20대 중후반인 사람이 "집에서 나이 때문에 결혼 압박이 심하다."라는 이야기를 매우 힘들다는 듯이 꺼냄. 또는 50점 맞는 친구 앞에서 "97점이라니 죽고 싶다."라거나, 평생 돈 걱정 없이 살아온 사람이 "학업에 열중할 바에 차라리 돈 걱정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식의 토로를 진지하게 꺼냄.
    • 다만 이 경우들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결혼 압박의 경우 이제껏 결혼도 못하냐는 식의 심한 인격모독을 당하는 사람일 수도 있으며, 시험 점수의 경우 100점이 아니면 실패자 취급(운동의 경우 금메달이 아니면 실패자 취급)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는 것일 수도 있다. 눈에 보이는 결과만으로 고통의 크기를 판단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또한 공감 여부도 당장 처해진 환경 차이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지며 실제 본인과 같은 위치에서 보이는 사회성과, 격차가 있는 사람에게 보이는 사회성은 차이가 날 수 있다.

이 사람이 나를 긁으려고 선타기를 하는 건지 애매할 수 있다. 이땐 그냥 흘려도 대수롭지 않을 것들에 대해 예민한 티를 내지 말고 무시해야 한다. 반응을 하되 본인도 대수롭지 않은 듯 평시 상태를 유지하며 외면해야 하는 것이다. 토라진 티를 내보이는 건 자살이다.
(벽간소음이 나는 부근에 B가 있는 것을 보며)
A: "시끄러우니까 좀 조용히 있어."
B: "어? 내가 낸 소리 아닌데?"
A: "그럼 왜 거기서 서성이는데?"
B: "원래부터 쭉 여깄었는데."
A: "그러니까 왜 굳이 거기에 있어서 욕을 먹냐고?"
B: "???"
상대에게 확인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책임을 묻기도 한다. 만일 상대가 상황 확인이 가능할 시, 오해받지 않게 처신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를 살리지 못 한 사람이 문제가 있다라며, 사회성 부족으로 오해받을 만한 상황을 대비하지 않는 것이 사회성에 하자가 있다는 식으로 까내리는 것이다. A의 입장에선, 현재 상황을 알리든가 아니면 본인과 관련되지 않게 멀리 떨어지는 것을 택해야 했었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B는 '이러이러한 이유로 사회성에 문제가 있다 → 상대에게 내가 그렇게 한 이유[185]를 답함 → 눈치채기 힘든 상황을 알려 주는 센스가 없으니 사회성에 문제가 있다'라는 논리에서 추가적인 해답을 준비해야 된다. 결국 A부터가 '왜 문제가 되기 전에 피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부분 본인도 그렇게까지 예민하게 처리할 만큼, 일상에서 엄격히 구분할 수 있는 건지에 의문을 얻을 상대의 입장이나 서로가 마찬가지로 헷갈린다는 뜻이다.

7.4. 상대방이 모르거나, 관심없는 주제

가장 흔한 패턴이다. 나는 알고 있지만 상대방이 모르는 것[186], 상대방이 전혀 관심 갖지 않는 분야에 대한 이야기나 주제 등이다. 혹은 상대방이 싫어하거나 반감을 가질수도 있는 내용, 주제도 해당된다. 이런 것을 자주 말하거나 언급할 경우 상대방의 반감을 사기 쉽다. 신약에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는 풍자어를 잘 생각해볼 문제이다.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거나, 전혀 모르거나, 관심없는 사람에게 애써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말하거나 밝힐 필요는 없다.

성격적으로 공감할 수 있을 기회가 적은 사람에게 주제를 대입해봤자 해결책을 제시해 줄 것이라고 기대하긴 어렵다. 연애 상담을 동성에게 부탁하는 걸 예로 들 수 있다. 여성이 남자친구의 행동이 맘에 안 든다고 같은 여성에게 상담을 하다간 무작정 헤어지라는 말만 들을 것이다. 차라리 남성에게 물어보는 게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화는 부추기지 않을 것이다.

8. 무시

원만한 인간관계가 어렵게 되는 주요 원인 중 하나이자, 기껏 구축된 좋은 인간관계도 순식간에 파탄내버릴 수 있는 모욕적인 태도이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상대방이 무시당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바로 끝장난다. 심지어 무시는 친한 친구 사이뿐 아니라 부모자식, 형제자매 등의 혈육 간의 사이마저도 처음 보는 남보다도 못한 사이로 만들어 버린다. 때문에 좋은 인간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싶다면 결코 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사이가 좋아도 무시는 올바른 형태의 인간관계가 아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사단이 터진다. 오래 가는 인간관계는 상호존중이다.

무시를 당할 경우 상대방이 사과를 하지 않는다면 똑같이 맞대응하는 노선을 가는 것도 한 방법이다. 무시로 인해 관계가 파탄날 경우 무시를 당한 상대방이 잘한다고 해서 수습될 문제가 절대 아니기 때문이다. 무시는 절교의 방법 중 하나라서, 애초에 먼저 무시를 한 당사자가 파탄의 근본 원인을 제공했기에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무례한 언행에 대해 사과하여 자신이 잘못했음을 명확하게 시인해야 만이 원만한 인간관계의 수습이 가능하고 이마저도 서로의 존재를 포기할 정도로 척을 두는 쪽으로 마무리되는 경우도 있다.

본의 아니게, 서로 얘기하는 도중 난입한 상대방[187]으로 인해 대화가 끊기고, 이를 좁은 인간관계를 지향하는 사람에겐 무시를 당했다 느낄 수 있다. 대부분 인싸같이 두루두루 어울려야 하는 휘발성 인간관계에 속할 시 많이 보이는 편이다. 상대가 말을 이어나가는 중에 맞장구를 시도하려다 묻혀서 실패한 상황도 비슷한데 이때도 자신이 무시당한 것에 띠껍다는 표정을 내보여선 안 된다.

침묵하는 것이 꼭 상대를 무시한다고 볼 수는 없다. 자신이 생각하기엔, '상대가 호응을 해주어야 내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반면, 상대는 '과묵하게 들어주는 것이 상대를 배려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 주변인은 대화를 무시한 채 그냥 조용히 있고 싶은데 티키타카가 강제되는 감정노동을 내 선에서 끝낼 수 있도록 중재하는 역할을 맡아 이권을 챙기기 위하여 말을 자제하는 경우도 있으니, 그 의도가 중립을 유지한 채 서로 피해는 끼치지 말자는 신념하에 이루어지는 것과 본인을 무시하기 위해 의도된 것과는 거리가 멀며 굳이 그렇게 하여 오는 이득도 없다. 눈을 피하는 것 또한 본인을 싫어한다는 근거가 될 수 없다. 괜히 쳐다보다가 오해를 살 수 있고, 마치 동물원 내 구경거리가 된 듯 관람당하는 입장에서 불쾌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해 준 것이거나 상대방의 시선 공포증 때문이기도 하니 정말로 혐오감만으로 눈을 피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드물게, 의도를 추론하기 위해 반응을 해주는 것이 상대에게 수치심을 주는 것이라고 판단하여 무반응 내지 무관심으로 회피(예: 손톱 어루만지기, 먼 산 바라보기, 지나가는 인물/물체 관찰하기 등)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본인의 수치심으로 다가오는 사람도 있다. 이럴 땐 사회성에 문제가 있다고 여기기보다는 무슨 반응을 해줘야 더 자연스러운지를 누락시킨 자신의 전달력의 부재인지를 돌아보고 만일 맞다면 이를 수정하고 의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A: "질문 있는데요."
B: "응 뭐라고?" / "너희들 뭐해?"
(사람들이 모인 쪽으로 말하면서 떠남)
상대의 질문을 회피해야 할 시, 대놓고 무시하기는 힘들어서 주변 사람을 활용해 거부권을 행사하기도 한다. 서로가 바라보는 영역의 동시성을 비틀어 질문자에게 '너의 질문이 들어오기 전에 이미 바깥 영역이 간섭했다. 이 이상 이어가는 건 저들에겐 무례다'라고 암시하는 것이다. 주로 위법과 관련하여 해명하거나 약속을 어물쩡 넘기려는 경우에 사용되며 이때의 거부권은 우호 성향끼리 공유할 수 있다.

상대방의 부탁을 어기는 것도 무시로 본다. 중첩되면 시너지가 되고 실수 역시 반복되면 공격을 받게 된다.

무시는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는 초등 논리가 아닌, 본인을 뛰어넘는 후속 경쟁자에게 굽신거리기 위한 처세술마저 신경 써야 될 귀찮은 과정을 조속시키기 때문에, 후배의 직급이 역전되는 만큼 무시한 입장에서 토 쏠리는 상황도 없어 자원이 뛰어넘지 못 할 확신이 있는 게 아니고서야 상대가 나를 밟아야 할 빌미를 만들지 않도록 자극해선 안 된다. 갑질과 비슷하게 상대방의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객관적으로 나보다 아래인지를 알 방도가 나올 때까지는 같은 위치(수평 관계)인 척 연기는 해야 한다.

자진해서 조직을 나가게 만들 필요가 있을 시에 쓰이는 방식은, 대상이 시야에 잡혀도 본인은 안 보이는 척 존재감을 없애거나 철저한 사적 무생물 상태로 놓는 것이다. 잘 보여야 되는 사람의 배척 타입에 맞게 연기해야 할 인격과 심적 온도를 재조정하는 수고가 요구되며 이때 사교에 집중하면서 특정인의 음역을 걸러내는 피로감은 교체 주기에 따라 반비례한다. 인생 친구나 동반자일 경우 그렇게 보여야 되는 인물에게 할 최소한의 예우를 위해 상호합의 하에 무생물로 취급할 영역을 정해놔야 한다.
C: "그것도 몰라?" / "이건 사회생활 할 때 기본인데 지금껏 뭐했어(요)?"
(실은 본인도 몰랐거나 옆에서 대신 답하여 알게 됨)
여기서 제3자가 위의 예를 보고 짐작할 수 있는 건, 질문을 했으니 모르는 것이 확인된 상대방에게 본인은 알기 때문에 모르냐고 말했겠거니 핀잔을 주는 상황으로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확인차 알아보기 위해 추가 질문을 거는 것보다는 그냥 그러려니 넘어가 주는 것이, 상대(C)가 정말로 알고 있는 상태인지라 신변에 이상을 줄 가능성을 추론한 것에 따라 상대 또한 이를 앞서 알고 있다면 굳이 아는 상태임을 증명하지 않고도 긍정적인 평가를 얻어 낼 수 있다. 즉 사회 지식이 없어도 무시에서 오는 인식 개선을 노려 평가자의 사회성을 반짝 좋아지게 할 수 있다.

'무시를 할 수 있다'는 상태가 상대의 경험 유무를 확증시키지 않는다.[188] 또한, 그냥 관심이 없을 뿐인데 상대는 무시로 오해[189]할 수 있어서 꼭 말을 하고 말고에 따라 실제 유능해서 이를 뽐내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

9. 폄하

여기 해당하는 경우들은 안 해도 되는 말을 쓸데없이 해서 화를 불러오는 경우이다. 독설가라고도 하며, 이상한 반응 역시 여기에 들어간다.[190]
  • 잘난 척하고 싶은데 자랑할 만한 거리가 없는 사람, 비교의식에 휩싸여 열등감을 폭발하는 사람에게서 쉽게 나타난다.
  • 자동적으로 의미없는 말대꾸를 하는 말버릇도 있다. 이런 문제를 느낀다면 뭔가 안 좋은 주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무조건 뜸을 들이는 게 좋다.
  • "제가 왜요? 그것도 모르세요? 됐거든요. 아닌데요."와 같은 말투는 재수없다는 인상을 준다. 이런 말은 친한 사이 + 장난스러운 말투가 아니라면 안 하는 게 백번 낫다.
  • 상대방 기분을 고의로 나쁘게 하는 농담[191]이나 제스처[192], 호응[193]

넉살좋게 넘기거나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는 것도 한두 번이지, 보통은 듣는 사람에게 모멸감과 분노를 유발하기 쉽다. 인간관계를 필터링 당하거나 뒤끝으로 인해 보복을 당하는 경우도 있으니 자제해야 한다. 굳이 안 만들었어도 될 적을 만든다는 점에서 반드시 고쳐야 할 습관이다.

9.1. 남의 자랑거리를 폄훼하는 태도

* (자녀가 명문대에 입학하게 되어서 기뻐하는 사람에게) "요즘 A대학 나와도 다 성공하는 거 아니라면서? 내가 아는 OO은... 대학 잘가도 하등 소용없어."
* (부친이 B라는 직업을 하고 계시다고 소개하는 사람에게) "B직업은 전망이 굉장히 나쁘다던데 잘 하시려는지 모르겠네요. 경쟁이 치열해서 돈도 안 될 텐데요."
* (고가의 물건을 싸게 사서 기뻐하는 사람에게) "굉장히 비싸게 사셨네요? 저는 그 반의 반 값에 샀는데..."
* (고가의 카메라를 새로 사서 기뻐하는 사람에게) "카메라를 왜 C제품을 사셨어요? 사진 좀 찍는 사람이면 D제품을 써요. 그건 잘 모르는 초보자들 위주로 쓰는 거죠."

고가의 물건을 살 때는 상대방도 자기 나름대로 다른 사람에게 묻기도 하고 비교도 해 가면서 온갖 고민을 해서 어렵게 결론을 내려서 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도 "잘 모르니까, 별 생각 없이 그런 제품을 샀다니 순진하네."같은 이야기를 한다면, 말하는 사람은 자기를 전문가처럼 띄우는 것이 되고 물건을 산 사람은 잘 모르면서 일을 함부로 저지르는 경솔한 사람으로 취급한 것이 된다.

물론 당신 말이 맞고 상대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의견을 논박당하고 나서 기분 좋아할 상대는 드물다. 당신이 돈 대주고 투자하고 시킨 거 아니면 상대의 자랑거리를 폄훼하면 안 된다.

노력을 통해 달성한 결과물은 자랑거리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 어떤 것도 괜찮다. 그것이 거짓말이어도 흥에 겨운 나머지 기존에 했던 거짓말과 충돌하는 내용을 뱉어서 상대가 사기꾼임을 알아챌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은가.

9.2. 공통 상식에 대한 혼동으로 인한 강요

* 너는 이런 것도 모르냐? 이런 것까지 말해줘야 하냐? 이런 것까지 일일이 가르쳐줘야 하냐? 이런 것은 상식 아니냐?
* 그와 나의 관계의 특성상 당연히 이런 것을 해 주어야 하는데 해 주지 않았다. 그것은 나를 무시하는 것이다. 내가 말하지 않아도 당연히 해 주어야 하는 거 아니냐?
* 이런 것은 당연한 것 아니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냐? 네가 인간이냐?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남을 비난하거나 무언가를 강요하는 일이 잦아지면 싸움이 나기 쉽다. 자기 자신이 주장하는 것이 실제 일반 사회와 거리가 먼 내용이라면 더더욱 싸움이 나기 쉽다.[194] 그런데 이런 강요를 자주 하는 이들은 자신의 행동이 잘못된 것을 모른다.
A: (지나가는 아이를 보며) "애기 모자 이쁘다."
B: "저거 비니인데."
A: "그래? 모자랑 비니랑 거기서 거기 아닌가?"
B: "학교 안 다녔어? 저게 모자냐?"

C: (호의 삼아) "과자 드세요."
D: "이건 사탕인데요?"
C: "..."
결론부터 말하면, 비니/사탕은 모자/과자의 뜻을 포함하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오류가 없다. 그러나 표현에 따른 공통 상식의 갭이 다를 경우, 본인은 특징을 만족하는 뜻으로 전달하는 것이 옳다고 여기는데 상대가 그 이외의 단어로 나타내 이를 부적절하다고 시비를 가리는 것이다. 성체인 개를 '강아지'라면서 뜻을 다르게 표현하는 것을 교정하는 건 사실 문제는 없지만 소통을 하는 입장에선, 혹시 상대가 이런 것까지 신경써서 따지려 들 걸 방지해 해명을 준비하고서 얘기를 꺼낼 만큼의 표현이 아닌, 정말로 그냥 하는 소리인데 '왜 굳이 이런 걸로 걸고 넘어지려고 하는 거지? 본인도 어느 정도 알아들었으면 좀 조용히 넘어가 주면 안 되는 건가?'라고 불쾌하게 만들어서 얻는 이익은 토론에서나 수용할 만하지 일상에서는 아는 척 해봤자 딱히 얻어낼 게 없다. 상대가 사탕이란 단어를 몰라서 과자로 돌려 말한 건 아닐테고 피해를 끼치는 것도 아니니[195] 그때그때마다 사실관계를 따지기보단 속으로 담아두고 친해진 뒤 장난삼아 꺼내는 방식으로 보류해야 한다. 지적당하는 측도, 어떤 이에겐 자신의 표현이 집 주소를 말하라는데 지구라고 답문한 수준의 괴리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으므로 싸우기 보단 너그럽게 이해해주기를 권장하며, 가능할 시 상대가 원하는 상식에 맞게 표현법을 수정해줘야 한다.

시간이 지나야지 육안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항까지는 상식에서 벗어난 망상 수준인지라 그냥 넘겼다가 이를 재차 깨달은 상대를 보는 명령권자의 시점에게는, 공통 상식을 못 알아먹은 주제에 의구심을 품기까지 하여 해석을 요하는 것을 역으로 사회성이 없다고 넘겨짓는 경우도 있다. 이는 지시를 받은 수행자와 본인이 속한 집단과 공유돼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될 것이란 절차가 각자의 시각에서는 따로 놀기 때문에, 단순 시간 개념으로 생각하는 한쪽과 달리 다른 한쪽은 상식이 아닌 능력/기교라고 받아들이게 되고, 설령 시간 개념 및 흐름에 따른 현상의 변화는 어림짐작 알고 있어도 책임을 덜기 위하여 확인차 물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 상대에게는 이를 일머리가 없다고 지적하면서도 체득의 차이를 공통 능력이라며 강요하는 추태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196]
(현장에 있는 E, F가 작업 중)
F: "아,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혹여나 다른 위험 요소가 우리가 지나야 할 동선과 겹치는지 확인하기 위해 대기하는 것이며 이런 의도를 E가 눈치채고 있을 것이라 판단한다)
E: "저기요, 뭐 하세요?"
F: (뒤에 있던 E에게) "네?"
E: "멀뚱멀뚱 있지만 말고 빨리 가라고요."
간략하게는, 빨리빨리 풍조보다는 안전사고가 발생되는 상황을 막으려는 F의 의도를 알아채지 못 하고 꼬장을 부리는 것이다. 또는 쫄은 것이라 판단하여 '유경험자'스럽지 않다고 한심하게 바라보는 것이기도 하다.

유경험자(E)와 반경험자(F) 간 공통 상식이 벌어지는 원리를 보강하면, A'와 B' 또는 그 이상의 선택지가 있더라도 E의 시각에선, 그 집합을 구분짓는 단서는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결정되게끔 경우의 수가 줄어들테니 이를 통해 '일반인의 눈치력만으로 자신과 비슷한 결론에 도달할 것이고 F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라고 생각하겠지만, 아예 모르거나 또는 반(半)만 알아서 따라해야 하는 상황에서, 오히려 추론 가능한 눈치의 공통 범위로 들어오기 위한 F의 간접적인 찔러 보기를 눈치채지 못한 걸수가 있고 정작 이러한 단서는 눈치가 있을수록 시간을 허용한다는 완곡어법도 정보에 따라 전혀 이해할 수 없고 되려 혼란을 가중시키는 문제를 E도 알고 있는 상황에서 지시를 내리는 자격을 지닌 사람이거니와 멋대로 판단하여 결정을 미루는 게 아니라는 기대치와 이를 웃도는 '사전 지식 = 공통 상식'이라는 망각에서 오해를 부르기 쉬운 것이다.
(G가 책상을 옮기기 위해 H 보고 위에 있는 짐을 치워달라고 지시한다)
G: (짐이 많아서 애를 먹는 H를 그냥 보고만 있는 채로) "시간 없으니까 빨리 좀 치워줄래?"

I: "바닥에 쓰레기 좀 치워라."
J: "네." (쓰레기를 줍는다)
I: "야."
J: "네?"
I: "(나) 지나가게 비키라고."
→ 수행범위가 본인(I)의 동선과 겹칠 경우를 대비하여 자신의 지시를 후순위로 따르지 않아서 생기는 길막을 예상하지 않은 J를 개념이 없다고 판단한다. 명령에 즉시 반응하는 것이 똑부러지고 성실한 인상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를 공통 상식에 벗어났다라고까지도 확장한다.
독선적 사고가 조직을 지배하면 전형적인 갑질임에도 '내 상식이 옳(았)다'로 박아 이를 전체를 대표하는 공통 상식으로 둔갑하게 된다. 최악으로는, 최상위 서열을 침해받지 않는 선에서 복수(複數)의 상위로부터의 명령 이행순위를 조정하는 처세를 공통 상식으로 간주하는 막장 상황까지 발전하고 '그냥 갑질하고 싶은 건가?' 수준의, 일반 상식과 동떨어진 자신만의 공통(으로 보이는) 상식을 강요하는 걸 권리로 안다.

상식에 따르지 않는 것과 이치에 어긋나 보이는 건 서로 다르다. 상식은 시간에 따라 그 의도가 현격히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본인이 있던 곳에서는 상식이지만 그게 아니게 된 곳에서는 상식을 따르려다가 되려 사회성이 떨어져 보일 수 있다.[197]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이치도 있다. 그것은 위험을 회피하려는 본능이며 예방책이 마련돼도 상대방에게는 변명하는 걸로 보인다.[198] 이러한 회피 본능조차 너무 지나쳐서 틔는 행동으로 인식하면, 틔지 말아야 한다는 상식이 우선돼 사회성이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199] 이외에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알 것들이니 상대의 지적이 나올 때까지는 묵묵히 진행하는 것이 틔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나중에 사고가 일어나 더 틔어 보이는 상황을 막기 위해 상대를 보채서라도 확실하게 따져 본 뒤에 행동해야 한다는 측 간의 상식 충돌도 있다.

마땅히 알 만한 상식과 관련한, 한 수 이후에야 알 수 있을 행위 또한 사회성이 좋다면 당연히 알 것이라고 속단해서는 안 된다.[200] 사람들은 누구나 서로 다른 성장환경에서 서로 다른 경험을 해오며 살아왔다. 갈등을 피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서로 다를 수 있음을 이해하고 아무리 사소한 상식일지라도 조언을 가장한 강요를 납득한다는 의사를 듣고서 진행해야지 상대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다. 다수가 인정하는 상식에도 명령조는 피하면서 지적질하되 대화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자신의 기호를 상식으로 둔갑시키는 괴팍한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상사로부터 식단표가 뭔지 답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걸 모르는 건 '센스가 없다'고나 할 수 있지 상식이 없는 것과는 맞지 않는다. 물가를 반영한 가격 예측도 수시로 변동되는 정보이고 애초에 본인도 몰라서 묻는 것이니 상식도 아니다.

9.3. 상대가 무식하다고 전제하고 이야기하기

"너는 모르겠지만.", "네가 이것까지 알 리는 없겠지만."과 같이 상대가 알 수도 있을 법한 내용을 말하면서 '자신만 알고 상대방은 당연히 모를 것이다'라고 전제하고 이야기하면 옆에서 보기에는 상대를 매우 무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연히 상대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빠진다.[201] 이런 이들은 "열등한 네가 뭘 안다고 우월한 나를 가르치려고 들고 말대답하냐, 너의 의견은 들을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나오며 특히, 인터넷에서 이런 태도를 보이는 이들의 경우 다중이학력위조나 경력 위조를 통해 조작하는 경우도 있으니만큼 더더욱 설득력이 없다.

9.4. 호의에 대한 반응

자신을 도와 준 사람에게 감사를 충분히 표현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를 손해 보게 만든다.
  • 필요한 물건을 빌려달라고 해서 빌려줬을 때
    1. "고마워요 잘 쓸게요."
    2. "이거 많이 낡았네요. 별로 필요 없겠는데." / "원산지 안 좋네."
  • 동료가 쓰레기를 대신 버려 줌
    1. "고마워요."
    2. "그래, 이렇게 최소한 하나라도 잘 하는 게 있어야지."[202]
  • 처음 보는 사람(전입 온 직장동료 등)이 선물을 가져옴
    1. "망고주스 너무너무 맛있네요! 안 그래도 배고팠는데 정말 고마워요."
    2. "저 망고주스 싫어하는데..." / "유통기한 짧은 거 안 먹는데..."

설사 자신에게 필요가 없다 하더라도, 안 친한 사이에서는 함부로 '필요 없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게 좋다. 버리더라도 몰래 처리[203]하거나 성 전략적으로 활용[204]하는 게 좋다. 또한 이미 받은 건 상대가 순수하게 전달받을 수 있도록 반응이 간결해야 한다.
A. "감사'합/하겠습'니다."
B. "감사'한/할' 것 같습니다."
B의 반응에 붙혀진 뒷말은 상대에겐 '감사하지 않는 점도 없지 않아 있다'라고 비꼬는 거라 받아들여지니 그냥 안 하느니만 못하다. 이외에 치례상의 표현이 아니어도 결과는 비슷하다.[205]

어떤 사람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반응을 하지 않을 시 폄하한다고 여기며 이는 골 때리게도 아래 예시처럼, 받는 측이 호의임을 인지하지 못했어도 '내 호의를 거부했으니 나를 향한 공격으로 간주한다'라고 해석할 수 있다.
(탕비실에서 휴식하고 나가는 A를 멈춰 세우며)
B: "왜 안 먹고 가요?"
A: "뭐가요?"
B: "제가 A씨 먹으라고 테이블에 올려뒀잖아요."
(보아하니 앞전에도 B일 수도 있을 호의를 눈치채고 있었지만 착오 가능성으로 B → C[206]에게 전달할 의도일 수 있어 명예가 추락되는 걸 막기 위해 일부러 방치하는 게 낫겠다 판단하여 간 보려고 모르는 척함)
A: "아 저 먹으라고 둔 거였어요?"
B: "그럼 여기 우리 말고 누가 있다구요?"
여기서는 A, B가 아닌 다수가 섞여 있었어도 B → C 구도 가능성은 변하지 않으므로 상대(A)에게 호의임을 알아챌 정도의 신호를 주고 행동해야 한다. 착오 가능성을 방기한 사유를 갖다 호의를 무시했다고 따지는 것은 위험수를 강요하는 것이며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있는지를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우연히 경로에 포함돼 중첩된 것을 호의로 착각할 수 있다. 안 해주면 본인도 손해를 보는 상황이거나 직업상 그래야 하는 상황으로서, 가령 문을 여는 타이밍에 상대도 나가기 위해 나보다 먼저 연 것 뿐일 땐 자발적으로 하는 호의랑은 다르며 그린라이트라 하기에도 애매하다. 그래도 목례 정도는 하는 게 예의다.

9.5. 상대의 말을 면전에서 무시(경청 거부)

상대가 말할 때 그것이 쓸모없고 어설픈 오지랖에 불과하여 아무것도 얻을 게 없다 하더라도, 그것을 상대가 느끼게 만들면 분노를 사게 된다. 뭔가 상대가 도움을 주려 시도할 때 그것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상대의 말이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있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줘야지 상대가 자신에게 호감을 유지한다. 옳고 그름만 따지자면 무능한 이야기를 하면서 오지랖을 부리는 쪽이 잘못된 것이지만, 옳고 그름은 멀고 상대의 주먹은 가깝다.

대표적으로 "응 아니야."와 같은 말투가 바로 이 경우에 정확히 해당한다.

또 다른 예시로 아래의 상황을 들 수 있다.
학교 선생: "수업 시간에 졸면 모두 대학 못 갑니다. 여러분 선배들 중에 수업시간에 다른 책 펴놓거나 졸았더니 모의고사에서는 정말 좋은 성적을 받았지만 다들 대학입시에 실패했습니다."
A. "아, 그래요?" (피식)
B. "저희 언니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대학 잘 간 언니 오빠들은 거의 다 학교 수업시간에 잠자고 학원으로 다 공부했다던데요. 특히 융통성없게 학교 수업만 들은 언니들은 수시에서 미끄러지면 거의 다 재수라고..."
C. "그게 정말 상관이 있나요?"
D. "네 알겠습니다. 앞으로 수업시간에 성실하게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실제로는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다음에도 수업시간에 다른 책을 펴 놓으려고 계획 중)

이때 비호감을 얻지 않는 대답은 D가 유일하며, 나머지는 미움을 산다. 학교라면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이지만 직장이라면 괘씸죄에 의해 피의 보복을 당한다. 물론 D처럼 말했는데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것을 들켰을 경우 순응하지 않는 사람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수준까지 떨어진다.[207]

E: "이거 XX야."
F: "헛소리 하지 말아줄래?" / "그건 니 생각이고."
E: "G가 말한 거 내가 대신 얘기해 주는 건데?"
실은 말을 꺼낸 E 역시 다른 사람에게 들었던 것을 전달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 여기서 F는 별 생각 없이 내뱉어도 된다고 생각했다가 어째서 헛소리인지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 지경까지 갈 수 있고, G의 서열이 높으면 괘씸죄의 소지가 된다. "~한(온)데."와 같이 상대도 누구한테서 들었던 것이겠구나라는 힌트를 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며 간혹 이러한 상황을 노린 지능적인 경우를 대비해 아무리 면전에서 무시해도 될 만한 대화여도 우선 상대에게 숨겨진 대명사가 무엇인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는 물어 볼 필요가 있는 이유다.

9.6. 나쁜 말 옮기고 퍼뜨리기

A: "C 말이야, 정말 그렇게 살아서는 안 돼."
B: "그래?"
B: "A가 그러는데 너 진짜 그렇게 살지 말라더라."
C: "..."

이러면 A와 C는 크게 싸우게 되고, A와 B도 크게 싸우게 된다. 뒷담화를 퍼뜨리지 않았으면 A가 평소에 C를 싫어하더라도 그렇게 크게 싸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광경을 지켜본 D는, B에게 뒷담화를 했을 때 또 언제 크게 터뜨릴지 모르기에 경계하게 되고 B와 대화하는 사람에게조차 경계심을 늦추지 않기도 한다. 남의 뒷담화를 전달하는 사람과는 관계를 멀리 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단체 생활을 파탄내기 딱 좋다.

상대가 보는 앞에서 서로 귀에다 대고 대놓고 '우리 나쁜 말 한다' 식으로 과시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는 별 거 아닌 주제였어도 상대방 눈에는 찝찝해진다.

불미스러운 문제를 모두에게 공론화시켜 해결해야 하는 책임감이 본인에게 주어졌다고 믿는 경우 맘대로 주변에 발설하는 것에 대한 죄의식이 흐려지게 된다.[208] 여기서 문제는, 나의 기분이 곧 타인과 같다는 근거로 상대를 납득시키려 한다는 점이며 '내가 불쾌하면 남들도 똑같다'라고 본인도 상대의 문제를 알게 되어 불쾌해졌으니 퍼트릴 자격이 주어진다고 믿기 때문에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기저가 완성되며 이러한 순환 논리를 근거로 상대를 압박할 수 있다. 하지만 심각하지 않아도 될 상황에 유난 부려서 부풀리는 과정으로 납득을 강요하는 건 옳지 못하다. '조용히 넘어가 주면 될 것을 왜 굳이 말을 꺼내서 일을 크게 만드는 거지?'라고 구설수에 오르는 걸 싫어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어떤 갈등이든 간에 불특정 다수에게 전파된다면 상황이 더 심각해질 수 있으며 갈등 원인도 왜곡될 수 있다. 단순히 나쁜 말로서 비유될 것 같으면 당사자들끼리 알아서 해결하도록 내버려두는 게 나을 때도 있다.

나쁜 말로 공공의 적을 만들어 씹고 뜯는 것을 자기들끼리만 공유할 수 있다면 적절한 회심의 기회가 된다. 이때 이간질 할 대상에 대한 가치 평가를 거친 후에 영향력을 가해야 하고 본인이 모르는 것또한 상대는 알고서 했다는 고의를 극구 부인해야 할 수준까지 가지 않도록 선을 지켜야 한다.

뒷말을 할 거면 악담보다는 차라리 칭찬을 하는 것이 나중에 상대에게 알려졌을 시 반발이 적다.

10. 관심없는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음

이런 사람들은 재미없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한다. 이러면 "얘는 좀 아니다/분위기 깬다."라는 이야기를 듣기 쉽다.
  • 이야기 주제를 선택할 때 자신 혼자 관심있고 다른 사람은 관심없는 이야기, 자신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 주제를 반복한다.
    • 이러면 사회성 없어보이기에 딱 좋다. 원래 사람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게 남의 이야기 듣는 것보단 편하지만 그건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생각하면 사람은 자기 이야기를 더 잘 들어주는 타인을 좋아한다. 반대로 사람은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 그중에서도 자기가 듣기에 별로인 이야기를 계속 하려는 사람이랑 어울리는 걸 싫어한다. 그걸 들어준다는 건 자기의 시간과 감정을 동시에 소모해야 하고 그럴수록 자기와 대화하는 상대가 어울릴 가치가 없다는 인간이라는 것만 실감하게 된다.[209] 따라서 좋은 방법은 상대의 말을 먼저 들어주고 맞장구쳐주는 것이다. 자신이 상대의 말을 잘 들어준다고 무조건 호감적인 관계로 발전하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밉보이지는 않는다.
    • 사회성이 없는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게 어쩔 수 없이 엮이는 사람들이라면 몰라도 단순 친구관계조차 '그럼 내 이야기는 언제 하냐? 다른 사람 이야기만 듣고 끝내라는 건가?'라는 심리를 참기 힘들어진다는 것이다.[210] 그러나 달리 보면 그게 '언제든지 헤어지고 다시 만들 수 있는 수평적인 관계'를 만들어가는 탐색과정이기도 하다. 굳이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동등한 관계에서 상대가 자신처럼 타인의 의견은 궁금해하지도 않고 자기 하고픈 이야기만 계속하는 사람이라면 매달릴 필요 없이 헤어지고[211], 자기 이야기를 하다가도 상대의 이야기도 궁금해하면서 의견 교환의 기회를 주는 사람이라면 함께 대화해보면서 공통 주제를 찾아가면 된다.
    • 청자의 반응도 잘 살펴야 한다. 사람이 듣기 싫다면 말로는 내색하지 않아도 눈빛, 표정, 몸짓 등에서 '지겹다', '이거 언제 끝나지?', '그만하면 안 되나' 하는 의사를 옅게나마 드러내기 시작한다. 청자가 집중하는데 한계가 오면 시선을 딴데로 돌리거나, 때로는 직접적으로 주제를 돌려보려는 발언을 하거나[212], 몸짓을 하는 게 잦아지거나 하는 신호를 보낸다. 발언자는 이를 잘 읽고 청자의 의견을 물어보며 다른 주제로 돌리거나 대화를 끝내야 한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대면기회가 적거나 눈치가 나쁘면 이걸 읽어내기가 힘들다. 이런 건 다양한 사람들을 감이 잡힐 때까지 많이 만나봐야 해결되는 문제다. 참고로 이를 시도하기에 가장 쉬운 상대는 가족이다. 가족은 가장 가까운 사회관계고 발언자가 사회성이 낮아서 하고픈 이야기만 하는 걸 어느 정도는 참아줄 수 있다. 가족의 생각과 경험에서 기인한 적절한 조언을 기대해볼 수도 있고 가능하면 본인의 문제를 알아듣게 설명해 줄 것이다. 그러나 가족 역시 발언자에게 조언이 어려울 만큼 대화스킬이나 사회성이 낮거나 관계가 나쁘면 크게 도움이 안 된다.
    • 집단상담을 받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전문가가 상담에 참여하는 집단원들을 지도하고 보조한다. 그들은 집단원들이 언제 어느 주제로 이야기를 하고 언제 그 주제로 이야기하기를 끝내야 하는지의 타이밍을 잘 알려준다. 단, 이것도 될 때까지 참여해야 하고 훈련을 통해 사회성이 나아지는 기간도 케바케여서 아주 오랜 기간 동안 훈련을 해야 제대로 나아지는 경우가 없지 않다. 그러나 여기까지 왔다면 이를 본인의 사회생활에 있어 문제라고 인식하다는 것이니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문제가 없다는 사람보다는 심리적인 거부감은 덜해 기타 다양한 문제들도 집어서 추가적인 개선사항을 알 수도 있다. 이건 교육자 신분이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 경력자 앞에서 무경력자가 말하는 것.
    • 대개 경력자 입장에서는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 별 관심을 주기 어렵다. 경력자가 열을 내어 가르치려 할 때 무경력자가 경청하는 것은 대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무경력자가 자신만의 규범을 내세워 경력자를 가르치려 들거나 경력자의 어려움을 무경력자가 폄훼하면 좋은 반응을 얻기 어렵다. 인터넷이나 아르바이트 등 짧고 얕은 경력을 통해 얻은 지식은 내용의 정확성이나 중요성에 상관없이 상대에게 비웃음을 사고 정보적 약자로 취급받기 쉽다.
    • 특정 주제는 경력자 앞에서 무경력자가 말하는 것 자체가 좋은 반응을 얻기 어려운 주제도 있다. 예를 들면 (여성 포함) 군면제자가 군필 앞에서 군대 이야기를 한다면 좋은 반응을 얻기란 어렵다.[213]

10.1. 혼자만의 관심사에 대해 길게 이야기함

내가 축구광들을 좋아하지 않는 까닭은 그들이 이상한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축구에 열광하지 않는 까닭을 이해하지 못하며,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을 자기네들과 똑같은 축구광으로 간주하고 한사코 축구 얘기를 늘어놓는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들의 태도와 비슷한 예를 들어 보고자 한다.

나는 리코더를 연주할 줄 안다(나의 연주 솜씨는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루치아노 베리오가 공개적으로 천명한 바에 따르자면 그렇다. 어쨌거나 한 대가가 그토록 많은 관심을 가지고 나의 연주를 계속 들어주었다는 것은 여간 기쁜 일이 아니다). 이제 내가 기차를 타고 있다고 가정하고, 맞은편에 앉은 승객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이런 물음으로 말문을 연다고 치자.
"프란스 브뤼헨이 최근에 새 CD를 냈는데, 그거 들어 보셨어요?"
"실례지만, 뭐라고 하셨지요?"
"<눈물의 파반> 말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초입 부분이 너무 느린 것 같더군요."
"죄송하지만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군요."
"판 에이크에 관해서 얘기하고 있는 거에요. (또박또박한 말투로) 블록플뢰테 말이에요."
"음...... 저는 그 방면에는 당최...... 그게 활로 켜는 악기인가요?"
"아하, 이제 알겠네요. 그러니까 그 분야에 대해서는 아시는 게 전혀......"
"그래요. 문외한입니다."
"그거 참 재미있군요. 그래도 수제품 쿨스마를 손에 넣으려면 3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아시겠지요? 그런 점에서 보면 흑단으로 만든 뫼크가 낫습니다. 시중에 나와 있는 것 중에서는 최고죠. 가젤로니[214]에게서 직접 들은 얘기입니다. 그건 그렇고, <데르드러 둔 다프너 도버르[215]>의 5번 변주곡 정도는 들어 보셨겠지요?"
"금시초문인데요. 사실 저는 파르마에 가는데......"
"아하, 알겠어요. C보다는 F로 연주하는 것을 좋아하시는군요. 어떻게 보면 그 편이 더 듣기가 좋지요. 말이 나왔으니 얘긴데요, 뢰이예[216]의 소나타 하나를 찾아냈는데, 그게 어떤 곡이냐 하면......"
"뢰이...... 뭐라고요?"
"그 곡보다는 텔레만의 환상곡들을 한번 연주해 보셨으면 해요. 해내실 수 있겠어요? 설마 독일식 운지법을 사용하시지는 않겠지요?"
"아시다시피, 저는...... 독일에 관해서라면...... 독일의 BMW는 대단한 차죠. 그래서 독일인들을 존경하기는 합니다만......"
"알겠어요, 무슨 말씀이신지. 바로크식 운지법을 사용하시는가 보군요. 좋습니다. 다만,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 사람들은......"
이런 식이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모르겠다. 어쨌거나 독자들은 나와 마주 앉은 그 불운한 승객이 더이상 참지 못하고 열차의 비상 제동 장치를 잡아당긴다 해도 그의 심정을 이해하리라고 믿는다. 그런데 우리가 축구광을 만날 때에도 바로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

(중략) 그는 내가 축구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는 게 아니다. 그는 축구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다.
- 움베르토 에코,「축구 이야기를 하지 않는 방법」

평범한 상대가 이해하리라 기대할 수 없는 종류의 이야기를 한다. 예를 들어 고졸 학력인 아주머니에게 석사과정 중에 느끼는 영어 논문 쓰기의 어려움에 대해 길게 설명하거나, 여성에게 군대 내무반의 괴로움에 대해 길게 늘어놓는다거나 남성에게 여성 사무직의 고통에 대해 말한다. 상대가 이런 이야기는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는데도 상대를 이해시킬 때까지 억지로 반복한다. 이런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더라도 짧게 끊으면 '자신은 이런 상황이다'를 설명하는 정도로 끝나므로 상대도 대화에 참여할 수 있지만, 길어지면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 때문에 점점 짜증을 느끼게 된다. 갑을관계 하에서의 갑이라면 '이런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하는 네가 상식부족'이라며 책임을 떠넘기는 사람도 있지만, 평등한 관계이거나 을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한다면 관계를 불편하게 만드는 원인 제공을 하고 있는 셈이 된다. 그리고 자신만의 관심사를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하고 있을 때 사회성이 부족한 쪽에서 못 알아들으면 그 다른 사람을 바보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특이한 관심사를 가지는 게 나쁜 건 아니며,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끼리는 그런 이야기를 얼마든지 해도 된다. 하지만 상대가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화제를 꺼내면 엉뚱하다는 소리와 혐오감밖에 얻지 못한다.
  • 자기 직장이나 자기 전공에서만 쓰는 전문 용어.
  • 석사 이상의 경우 자기 전공분야에 대해 비전공자와 이야기할 때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 언제든지 상대를 지루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 대중문화. 특히 대중문화에 관련된 말은 팬이 아닌 사람에겐 길이를 불문하고 삼가는 것이 좋다. 상대가 대중문화에 대해 관심도 없고 잘 모를 뿐더러, 불쾌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세계를 휩쓰는 방탄소년단조차도 보이그룹 팬 외에는 의외로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국민 다수는 케이팝을 콘텐츠가 아니라 일본과 북미에서 수출 실적을 거뒀다는 '사회면 뉴스'로 접하기 때문이다. 대중교통 분야도 마찬가지. 대중교통 동호인이 아닌 사람에게는 대중교통 이용에 실질적 도움이 되는 지식(배차정보, 노선 등)이 상대방에게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관련 지식을 뽐내지 않는 게 좋다. 또한 스포츠의 경우에도 전날 있었던 대표팀 경기와 같이 국민적인 관심사 정도는 잡담 화제로 적절할 수 있지만, 해외축구와 같이 '매니악한' 화제는 듣는 사람이 이해하지 못할 수 있으므로 부적절하다.

10.2. 사족이 너무 길어 본론을 파악하기 힘듦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강연 또는 발표를 하는 상황이거나, 몸통에 해당하는 부분을 바로 말하는 것보다 서론에 소위 밑밥을 던지고 시작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경우가 있다. 이때 적절한 사족은 분위기를 휘어잡으면서 뒤에 올 내용을 쉽고 재밌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준다.

이처럼 잘 쓰인다면 매우 효과적인 화술이지만, 일상 대화에서 지나치게 긴 서론이나 부적절한 밑밥은 대화를 피곤하고 재미없는 것으로 만들 뿐이며 발화자를 '말은 많이 하는데 재미는 없는 사람'으로 전락시킨다. 더구나 자신이 커뮤니케이션에 자신이 없다면[217] 두괄식 화법으로 말문을 트는 게 훨씬 좋다.
나쁜 대화의 예 1
A: "인터넷 중독 문제는 정말 심각해."
B: "한번 생각해봐. 나무위키에 내가 투자하는 시간이 한 달에 얼마나 되겠어?"
A: "모르겠는데."
B: "일주일에 5시간이라 치자. 그리고 1년에 52주, 최저임금을 곱하면 얼마지?"
A: "150만원쯤 되겠네. 그런데 그걸 왜 갑자기 구체적으로 계산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도대체 너는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B: "그만큼 인터넷 중독 문제가 심각하다는 거지."
나쁜 대화의 예 2
선생님: "여러분의 꿈이 뭔가요? ㅇㅇ 학생 발표해보세요."
학생: "아 제 꿈을 말하기에 앞서 저에 대해 소개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음... 제가 일단 제 특징부터 말하자면 저는 생각이 많고, 사려깊은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저는 그리고 리더십이 있는 사람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물론! 제가 리더가 된다고 해도 거기 따라주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 때 3번의 반장 선거에서 전부 떨어졌는데 중학생 수준에선 제 리더십이 발휘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심지어 중학교 때 저를..."

이런 문제를 자주 느낀다면, 본론을 먼저 이야기하는 두괄식 화법을 의식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또, 예시/사례/일화/구체적인 통계 자료 인용/명언/관련된 농담 등에 대해서는 상대가 그 주제에 매우 관심있다는 확신이 들지 않는 한 길게 말하지 않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그리고 친교를 위한 이야기라면 재미없는 부분은 과감히 쳐내고 재미있고 중요한 부분만 살려야 한다. 여기서도 수위와 완급조절은 필요하다.

10.3. 상대가 자기 볼 일을 보고 싶어하는데 알아채지 못함

상황 때문에 이야기를 듣기 싫어하는 상대방이 있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상대방의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길게 말을 붙이면 상대방이 싫어한다. 예를 들어 길에서 아주머니를 만났다고 하자. 만약 아주머니는 이야기를 적당히 끊고 은행 볼일을 보러 가고 싶은데 나는 그런 사정을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이야기를 길게 이어나간다면 상대를 화나게 만들 수 있다.

이런 문제를 겪는다면 대화를 끊고 싶어하는 상대방의 표정을 관찰하는 게 좋다. 몸짓도 잘 살펴봐야 한다. 상대가 대화를 할 때 시선을 어디에 두는가를 잘 지켜보면[218] 상대의 표정과 감정 파악에 도움이 된다.

10.4. 상대방이 재미없어하는 주제에 대해 길게 이야기함

상대가 관심을 느끼는지 아니면 재미없어하는지를 이야기 도중에 눈치채지 못한다. 상대방이 대화가 지루하다고 생각한다면 비언어적인 신호로 티가 나게 된다. 하지만 여기 해당하는 이들은 눈치 문제 때문에 이런 신호를 잘 알아채지 못한다. 사실 지루한 대화로 상대에게 짜증을 유발하는 것은 이런 비언어적 신호를 읽는 능력의 문제가 크다.

단 한 번이라도 거부감을 나타냈다면 그 상대방은 그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기 싫어하므로 다시는 그 주제를 꺼내지 않는 게 좋다.

문과-이과, 공부 잘함-공부 못함, 부자-일반인, 남자-여자, 학생-직장인 등 각자의 상황에 차이가 있을 경우,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주제가 상대방에게는 아무 관심을 주지 못하거나 심지어는 불쾌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항상 조심해야 한다.

인사치레로서 하는 대화는 재미가 없는 스몰토크 중 하나이며 어쩔 수 없이 대화는 하겠는데 그냥 빨리 끝낼수록 좋은 만큼, 상대방이 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사생활에 관련된 대답이 길게 이어진다면 불쾌해질 수 있다. 서로 교감할 목적의 대화 역시 한 사람당 20초 이상 늘어지게 된다면 대부분 상대는 피곤해진다.

10.5. 상대방과 너무 다르게 살아와서 공통된 대화 주제를 찾기 힘듦

사람을 만나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게 적절한 화제인지를 찾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긴다. 나이, 성별이 다른 경우, 파견, 이직, 취업 등 특이한 상황에 의해 자신과 전혀 다른 집단 속에 덩그러니 속하게 되는 경우에도 문제가 생긴다.

이런 경우 자신이 속한 집단에 있는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을 가지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기 힘들다. 따라서 집단에서의 적응을 위해서는 해당 구성원의 관심사를 파악하고 그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이 도움이 된다.[219] 해당 주제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 자신감이 없어서 대화에 못 끼어들거나 최소한 대화를 알아듣지 못할 일은 없다.

예를 들어 로맨스 영화에 대해서 하나도 모르는데 주변 사람들이 다들 로맨스 영화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면, 30시간 정도 투자해서 역대 유명한 로맨스 영화 10편 정도를 챙겨 보면 누굴 만나든 두세 편 정도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아이돌 가수 B에 대해서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그 가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면 10시간 정도 투자하면 그 가수의 신상정보를 다 외우고 그 가수가 부른 유명한 곡을 몇 번씩 반복해서 듣고 최근 뉴스까지 다 섭렵하고 다음날 "어제 가수 B 나온 공연 봤어?"같은 말을 꺼낼 수 있다.

10.5.1. 흔한 공통 관심사

공통된 관심사를 찾고 공유하는 게 핵심이다. 일상 대화일 경우 공통된 취미가 중요하다. TV나 영화는 대중 지향적인 매체라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재미있게 기획하고 비용도 많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예능, 코미디, 스포츠 등은 대화를 시작하기 좋은 소재다. 프로스포츠, 여행, 맛집 탐방, 패션 역시 대중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요소이다.

성별로 나누어보자면, 여자 집단에서는 요즘 인기 있는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220], 예능, 요리, 카페, 음악공연(뮤지컬, 오페라, 대중가요 콘서트 등), 화장품, 패션, 요즘 인기 있는 연예인 등이 서로 이야기할 수 있는 소재이고 남자 집단에서는 여행, 자동차, 군대, 축구, 게임(대중성 있는 게임 위주), 영화, 요즘 인기 있는 유명인(배우, 가수, 모델, 운동선수, ...) 등이 이야기할 수 있는 소재이다.

10대 때는 놀이공원도 가고, 게임도 적정선에서 즐기고, 이런 것이 또래 집단의 흐름에 적응하는 좋은 방법이다. 고등학생일 경우 TV, 영화에 많은 시간을 쏟기 힘들기 때문에 공부, 친구, 선생, 부모, 급식에 대한 이야기가 주된 공통 관심사가 되기도 한다. 여유가 되면 여행도 가고, 봉사활동 및 대외활동도 다양하게 해보는 것이 좋다. 이는 취업 시 스펙(특히 자기소개서)에도 도움이 되며, 직장생활에도 대화할 때 도움이 된다.

마이너한 주제여도 반짝하여 대중적인 관심사로 등극했다면 상대도 어떻게든 공감하고 맞춰 줄 의향은 생긴다. 근데 알아간 시간이 적은데 알아 준 자체만으로 좋다고 설명하는 측의 진도가 너무 빨라서 예열되기도 전에 팍 식는 게 문제인지라, 앎의 간극을 좁히도록 신경 쓰면서 너무 들뜨지 않게 마음을 추스려야 할 필요가 있다.

타인이 듣고 싶어할 만한 이야기, 타인이 궁금해 할 만한 이야기가 없는 사람이라면 만나면 재미가 없다. 이러면 사람들은 그와 이야기하는 것이 전혀 흥미롭지 못하기 때문에 그와 친해져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 한다.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 역시 그런 콘텐츠의 일종이고, 꼭 그런 사람이 아니더라도 좋은 경험이든 나쁜 경험이든 자신만의 경험을 갖출 필요가 있다. 나이 든 사람이 나이 어린 사람과 대화할 때 대체로 부가적인 손익(연애, 금전 등) 외에는 큰 흥미를 못 느끼는 것 역시 나이 어린 시기의 경험은 나이 든 사람 입장에서 대개 시시한 경험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을 주제로 연결점을 찾으려는 시도도 처량해 보인다.

사교적인 가벼운 이야기만으로 끝나면 별로 친해진다는 느낌을 못 받게 된다. 사람들끼리는 굳이 대중문화나 스포츠와 관련된 이야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위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공통 관심사가 적은 사람들끼리 만나서 어색할 때나 통하는 이야기이다.

싫어하는 것을 특정하는 관심사는, 좋아하는 것에 정직성을 넣는 번거로움이 없으니 좀 더 진솔하게 접근할 수 있다.

11. 개그 실패

유머상대를 기쁘게 할 때에만 의미를 갖는다. 자기가 말하고 자기 혼자 웃는다면 그 개그는 실패한 것이다. 여기에다가 눈치도 없어서 한쪽은 이게 웃으라고 하는 말인지 긴가민가 얼타고 있는데 자기가 재밌는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경우 개그를 시도하면 시도할수록 점점 상대의 기분이 나빠진다. 연달아 실패한다 싶으면 해당 상대 앞에서 개그를 자제하는 것이 사교를 위해 훨씬 유리하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가 폭발하여 어중간한 내향인으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

시쳇말, XX개그같이, 아는 사람만 이해하는 유머는 그 의도를 한번에 이해시키기가 어렵고 이에 부연설명하는 과정이 상당히 추해질 수 있다. 가장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현재의 정보와 괴리감이 클수록 횡설수설하는 괴짜에서부터 정신병까지 의심받을 수 있다. 섹드립, 고인드립[221], 지역드립 등은 취향을 심하게 타므로 점잖은 자리에서 비웃음을 사기도 쉽다.

개그의 특수성으로 인하여 실패했음에도 법적 문제가 적은 관용적인 스트레스 해소 수단 중 하나이며 이는 신체적인 폭력 또한 개그의 소재로서 충분하다.[222] 다만 개그에 동조하는 사람이 다수일 때 한정이며 프로불편러나 트라우마가 있는 사람에게는, 개그를 다루는 사람의 특징과 관련된 불신감을 심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비슷한 특징의 사람이 하는 개그 실패를 유도한다.[223] 위생과 관련된 개그는, 작게는 물건에 흠집을 내거나(예: 상대가 구매한 신발을 밟기) 심하면 입에 들어가는 걸로 하다가 잘못돼 소송당할 수 있기도 하니 할 곳을 잘 구분하는 게 좋다.

상대에게 불시에 지목된 대상이 설마 질문을 하리라곤 예상을 못 했는데 하필 그게 잘 모르는 분야여서 김 빠지게 만든 책임에 비난이 집중되는 상황은 사람에 따라서 충분히 억울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개그 실패라고 선언하는 쪽이 사회성 부족으로 보이게 된다. 예의범절에 어긋나는 행위예술(예: 스탠드업 코미디, 관객모독, 돈두르마 쇼 같은 참여형 개그)도 좋게좋게 넘어가는 것과 개념이 없다고 하는 것중 어느 쪽이 이득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문화 지식도 사회적인 평가에서 중요해진다. 단, 이것도 미디어에 던져지면 진영에 따른 줄타기를 잘 해야 한다.

혼자만 선을 넘어야 재미인 분위기라고 착각[224]하는 경우도 문제지만, 이러한 분위기가 지배적일 시 군중과 합세하여 윤리적인 차원까지 개입하는 개그 실패도 있으며 이때 분위기에 너무 심취한 나머지 주변에 대비되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아 조롱의 의도가 아니었어도 비난을 당할 수 있다. #, # 또 다른 경우는 유머를 악용해 불만을 왜곡하는 것이다. 이는 유머 감각(개그)을 사회성의 척도로 대체하려는 사람이 다수인 조직에서는 그 목적성이 퇴색될 확률이 높아 사실상 정치질을 우회하려는 기술로 변질되기 쉽다.

이러한 현상은, 두루두루 잘 지내는 게 이득이라 생각하는 타입과 돈을 벌기 위해 다니는 거지 굳이 친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타입이 있듯이, 무분별한 확증으로 인하여 유머로 사회적 거리를 허무는 것이 사회성이라 편향시키고 이에 수용하지 않는 것을 이기적 개인주의자같은 사회적 암덩어리로 멸칭하여, 가족같은 분위기에 기대어 배척을 옹호하고 내집단의 정보 우월성 표출, 책임에서 자유로운 익명성에 가까운 유아 연기로 개그의 목적성을 왜곡시켜 온라인의 친목질처럼, 실제 사회에서 선을 넘는 유머를 사회의 덕목 중 하나로 받아들이게 되는 현상을 재고하지 못 하게 만드는 문제와 사상을 양산시키게 한다.[225] 결국 인간관계에 염증을 느끼는 비율이 많아지는 것도, 수직적인 사회를 파편시키기 위해서 존재했던 개그가 정치질로서 선도되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사실 어지간히 입담이 좋지 않는 한 99%의 개그 시도는 아재개그나 썰렁한 분위기로 끝나기 때문에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위에 있는 예시인 윌 스미스의 크리스 락 폭행 사건처럼 전문적인 코미디언들조차 잘못하면 험악한 분위기로 끝난다. 물론 자기 감정을 통제해 매스컴에도 아주 나쁘지 않게 보도될 수준으로 덮을 수 있겠지만, 일반적이거나 미숙한 사람들이 저런 상황에서 더 잘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기 때문이다. 일반인들은 굳이 개그로 분위기를 띄우지 않더라도 프로불편러 수준으로 차갑게 끼얹지 않는 한 재미없거나 이상한 사람으로 몰릴 일도 없기에 눈치 없이 썰렁한 유머로 분위기를 망치는 것은 미숙한 사람들이 하는 실수에 가깝다.

직장의 대자보 역할인 단체 채팅방 내에서는 익명에서나 하는 것처럼, 정치 관련이나 '', ' / '같은 축약어 및 훈수 두기를 활용한 도발식 개그는 장려될 수 없다. 커뮤니티에서 나올 만한 저급한 말투를 무의식에서 배출하는 걸 방지하기 위해 항상 어떤 환경이든 실제 사람과 마주보며 대화한다 생각하고 싫다면 자동 완성 기능이라도 꺼놓자.

반응을 해서 개그를 망치는 상황도 있다. 모르는 사람들끼리 하는 얘기를 엿듣다 같이 뿜어서 분위기가 싸해지는 것이다. 고의가 아닌 상황[226]이 우스꽝스러워도 지나가듯이 조롱하는 건 상대가 개그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사회적 거리가 멀면 자학성 개그여도 이에 동참하면 안 된다.

복화술이든 그렇다고 연기하든 모형에게 책임을 넘기는 것은 이미 논란이 될 법한 언행을 시도한 경우 실패할 확률이 크다. '이 글은 고양이가 썼다'와 같이, 유기체여도 실현 가능성이 없으면 실패한다.

성별을 알 수 없는 중성적 외모를 지닌 사람에게 성차별 요소가 있는 개그를 칠 때는 신중해야 한다. 동성인 줄 알고 이성을 희롱하는 개그를 쳤는데 같은 이성이라면 인생 하직할 수 있다.

상호작용하지 않는 감탄[227]도 상대는 이를 웃기라고 지르는 건가 싶은 어색함을 느끼고 이것을 '실패'로 보아, 원래부터 의도된 개그였다고 판단해 사회성 부족으로 끼워맞출 수 있다.

12. 원활하게 대응하지 못함

맞장구, 리액션, 웃음 등이 과장되거나 영혼이 없어서 상대방이 기이함이나 불쾌감을 느낄 정도인 경우.

12.1. 이야기가 재미있다는 신호를 보내지 못함

A가 B와 친해지고 싶다고 하자.
  • A는 B에게 여러 차례 인사를 했는데 B는 그냥 목례만 하거나 인사를 받아주지 않은 적이 많았고, B가 먼저 인사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 A와 B가 우연히 같이 걸을 기회가 생겼는데 B가 말을 걸지 않아서 A 입장에서도 B가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안 하고 싶어하는지 알 수 없었다.
  • A가 B에게 열심히 말을 걸었는데, B는 단답[228]으로 끊어버렸다. 말주변이 없고 단답형으로 뚝뚝 대화를 끊어버려서 어색한 침묵이 흐르게 되면, 상대는 자신을 사회성 떨어지는 사람으로 평가하기 쉽다.
  • A가 열심히 화제를 제시하였으나 B는 화제를 제시하지 않아서 A가 이야기를 이어가기 힘들었다.
  • A가 B에게 말을 걸 때 무표정하거나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여러 차례 대응하였다.
  • 전혀 엉뚱한 대응을 했다. 가령, 상대가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 배고파!"라고 하는 등 엉뚱한 반응.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 A는 B와 친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거나, B가 자신과 친해지고 싶지 않아한다고 받아들이게 된다.

만약 B의 의사가 정반대로 'A와 친해지고 싶다'라는 것이었으면 B는 완전히 삽질을 한 셈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관계에 부정적인 신호를 주는 요소들을 파악하고 그런 요소들을 드러내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좋다.

12.2. 어색한 침묵 지키기

담배 피우러 가자는 것과 비슷하게 커피를 마시러 가자는 것은 '대화를 하자'라는 뜻이므로, 진짜 커피만 마시거나 현 주제와 관련 없는 것에 너무 정신팔려 있으면 곤란하다. 특히 상위가 지시하는 거라면,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안이나 안건에 대하여 의견을 모의해 알짜배기 정보를 얻을 수도 있으니 이권을 향상시키고자 한다면 끼리끼리에 거부감이 없어야 한다.

대화 중 휴대폰을 오랫동안 쓰는 것, 이어폰을 끼고 있는 건 보통 어색해서라도 둘 중 하나가 나가겠지만[229] 계속 있으면서 한쪽만 개인 영역을 확보하고 공공영역에 비위를 맞는 쪽이 따로 노는 등 부정적인 제스처를 취하면 상대와 상종하기 싫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져 거부감을 사기 쉬우니 미리 상대에게 양해를 구한 상황[230]이 아니라면 자제해야 한다. 보는 시각에 따라 이어폰을 낀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 개인 여가에 함부로 끼어드는 비매너 행위라고 간주될 수 있다.

최대한 단답형(네 / 아니오)이 나오지 않는 개방적인 주제로 대화를 유도하는 게 좋고 민감한 정보를 걸러낼 수 있는 방향으로 선택권을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들어주기만 할 줄 아는 사람들이라 아무 말 없이 정적이 가득한 뻘쭘한 상황도 흔하다. 무언가를 얻겠다면 중간만 가선 안 된다. 말재간을 단련하자.

12.3. 잘 모르는 것을 티냄

이야기에 끼게 되더라도 가급적 주제의 핀트를 알아내려고 대화를 끊기보다는, 얌전히 들으면서 상대 반응에 집중하고 머리 속으로 추론해야 한다.

전문적인 지식을 모르는 경우라면 차라리 다른 사람들이 이해는 해 주지만, 일상적인 대화에서 잘 알아듣지 못하면 분위기 망치네라고 되어 이야기 자리를 재미없게 만든다. 개인이 아닌 다수가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무지를 밝히는 건 약점이 된다.[231] 상대가 얘기를 끝마치고 질문할 거 없냐고 물을 때 하거나 아니면 같이 들었던 사람에게라도 몰래 해야 한다. 나보다 서열이 높은 사람들끼리의 대화를 끊을 때는 조직에 손해가 올 만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이때, 단순히 질문을 할 목적이었다면 개념 없는 인간으로 찍힐 수 있다.

꼭 상대방이 말하는 내용을 모두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상대방에게 적절한 설명을 해달라고 부탁하고 그 설명에 대한 호응을 하는 것은 상대의 기분을 덜 잡치게 만든다. "흥미있어 보인다, 나도 집에 가서 보겠다." 등의 대응을 할 수 있다. 다만 이런 상황이 반복되어 상대가 '내 이야기만 하는 것 같다'고 느끼게 되면 나쁜 평가를 피할 수 없으니 주의하자.

12.4. 산만한 대화 주제의 변경

  • 대화 주제를 독점해서라도 이야기에 끼려고 함
갑: (캐비넷을 어디 놓을지 토론하고 있다) "캐비넷을 중간에 놓자."
을: "중간에 놓으면 가려. 그러니까 바깥쪽에 놓자."
병: "그런데 이거 보니까 어제 본 TV프로그램 생각난다.(~~~쏼라쏼라)"
갑, 을: "..."
간혹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은 자기가 끼지도 못하는 주제에 대해 억지로 화제를 돌리며 대화에 끼려고 하는데, 이런 짓은 될 수 있으면 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낄 데 안 낄 데를 구분해야 한다. 필요하지 않은 자리에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끼게 된다면 낀 사람도 괴롭고 나머지 사람도 괴롭다. 알아서 눈치껏 피할 자리는 피하고 낄 자리는 끼자. 저런 짓이 반복되면 그 사람은 관종 취급받으며 기피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멈출 때까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참아야 한다.
  • 동문서답식 대화
A: "직장생활이 너무 힘들지 않나요?"
B: "그래도 돈을 받는 만큼 많이 놀 수 있어서 좋아요." (O)
C: "힘들어서 요즘 죽을 것 같아요." (O)
D: "출퇴근 길에 버스를 타는데 가다 보면 유명한 커피숍이 있어요. '나무카페'라고..." (X)
어떤 사람들은 이야기의 중심 내용이 뭔지 이해하지 못하고, 관계없는 다른 이야기로 점프해 버린다. 더이상 상대의 주제를 맞춰 줄 의향이 없어 자연스럽게 무시하기 위한 상황에서는 원활한 대처법이 될 수 있지만, 친밀한 관계에서 대화 화제를 바꾸는 건 서로 간에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에서 하는 게 좋다.

요컨대 산만한 것은, 타인을 무시하려는 게 아닌 '내가 당장 이 얘기를 꺼내지 않으면 까먹을 수 있다'라는 강박이 원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방 역시 대화 흐름이 끊겨 까먹게 되는 건 마찬가지라 중요한 논지 순으로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이 좋다. 아니면 미리 메모를 하든지.

12.5. 부적절한 모방

원활하게 대응하려는 척을 하려다 되려 역효과를 내는 것으로서, 이는 위의 문단에 속하지 않도록 너무 과하게 반응하려다 아래와 같은 사달을 만들어낸다.
A: "그래서 이러이러 했는데."
B: "했는데?"
A: "그렇게 여차저차 하고 가더라고."
B: "갔는데?"
A: "...그냥 조용히 들으면 안 돼?"
간혹 추임새를 과하게 적용해 불쾌감을 주는 경우가 있다. 본인은 맞장구 치려고 하는 건데 상대에게는 하던 말을 끊는 것도 짜증난데 주변에게 서로의 관계에 불미스러운 사심을 해명해야 하는 수고를 준다. 이는 애랑 대화하듯 유아 연기를 포괄하는 연애 시기에서나 어울리는 대화 방식이다. 이런 거 받아줄 정도로 관계가 진전되지 않으면 안 쓰는 게 예의다.
C: "좀 너무하다 생각 안 해?"
D: "어, 그렇게 생각 안 해." / "너무하다 생각 안 홰에~?"
항변의 종결어미를 따라하는 경우도 있는데, 반향어처럼 그냥 홀린 듯 따라하는 게 아닌, 우스꽝스럽게 발설하는 거라면 조롱 이상의 모멸감을 주기에 친한 사이에서도 가급적 삼가야 한다. 단, 진지하지 않는 상황이면 상급자가 먼저 장난삼아 따라하기도 한다.

성별에 따라 어울리는 감탄사를 바꿔서 모방할 시 어색해질 수 있다. 특히 남자가 여성의 감탄사(예: "어쩜.", "어머.")를 따라 할 시 동성이라면 소름이 끼칠 수 있다.
E: (F를 향해) "그거 그냥 □□(하)면 안되는데?"
F: "□□(하)지 말아요?"
E: "내가 언제 □□(하)지 말라고 했는데?"
상대가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을 제거하여 모방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다. E는 '그냥'이란 부사를 빼먹어서 마치 F는, 본인에게 꼬장을 부린다고 주변에 오해받게 만들기 위해 돌려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고 이에 명예를 훼손시키는 모방에 대하여 의문을 표출하는 것이다. 추가로, 앞에 추임새(예: 아~)가 붙게 되면 상대에게는 비꼰다고 확인사살 하는 격으로 그 의도를 더한다.[232] 보는 시각에 따라 단순히 E의 과민반응으로 보이겠지만, 본인이 말실수를 많이 하는 편이라 그동안 상대가 참고 넘어갔다가 예민해진 것을 사이코라고 오해한 걸수도 있으니 피차 욕을 듣더라도 상대를 탓하기보단 자신이 먼저 타인에게 어떻게 대했는지를 먼저 돌아봐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충돌은 그 사유가 꼭 중해야 만이 터지진 않기 때문이다.
G: (대충 나를 흉보는 욕)
H: "하하하."

I: (대충 본인만 아는 전문용어)
J: "아하~."
아무리 독립된 성향을 추구하는 공간일지라도 영역 밖 평판에 작용되는 관성은 유지된다. H가 웃음으로 넘어는 것은 상대에게는 기분 좋게 분위기 맞춰주고 동시에 본인의 품격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란 이미지 쇄신보다는, '이 사람은 지 욕하는 것도 모르고 쳐 웃기나 하네. ㅂㅅ'과 같이 수동적인 인간으로 보여져 평판에 악영향을 끼친다. 웃음은 사교를 유연하게 하는 순기능이 있지만 상황에 따라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 흥이 깨지기를 두려워 억지로 웃어주기보다는 비칭하는 대상이 누구인지는 알고 대응하라는 소리다. 자신이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공개적이든 어떻든 확실히 따져야 한다. 꽉 막힌 성격으로 보이는 게 무서워 계속 참다가는 공용 샌드백이 되어 버린다. 이외에도 사과해야 하는 상황에서 웃음으로 퉁치면 무개념으로 찍히게 된다. 사용자도 알아둬야 할 것은, 웃음은 잘못하면 매우 공격적인 화법으로 바뀌기도 쉬운데, 정색하는 것보다 웃으면서 비꼬는 것이 상대에게는 어차피 농담이기 때문에 따지지 못한다는 악의로서 이러한 부적절한 미소는 모방하는 대상에 따라 더욱 불쾌해진다.[233]

12.3 문단처럼, 모르는 티를 내보이지 않으려는 J의 반응 역시, 눈치 빠른 상대에게는 아는 척하는 것을 역으로 들켜서 원래 모른다고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식하고 한심하게 보인다. 이럴 때는 솔직히 모른다고 하는 게 '내가 저 사람과 어울리면 이상한데에 엮이겠구나'라고 평가받는 것보다 낫다. 아니면 대꾸를 하지 않는 식으로 방어적으로 나서야 한다. I도 예외는 아닌데, 말을 어렵게 해서 본인이 똑똑한 척을 할 때 재수 없으면 해당 분야의 전문가나 지식이 해박한 사람이, 저 인간이 지금 알고는 하는 소리인지를 대번에 눈치채서 개쪽을 당하기 십상이다. 상대가 인자한 편이라면 남몰래 수정해 주기도 하지만 귀찮아서 혼자 지껄이도록 놔두는 경우도 있다. 공통적으로 본인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는 알아야 한다.

말은 안 하지만 잘 하는 것처럼 보이고 싶을 시 이에 해당한다. 손을 주머니에 넣고 자전거를 탄다든지 운전대를 발로 집고 몰다든지 등등 하더라도 굳이 위험한 건 맞지만 본인이 이를 감수할 만큼의 깡이 있다는 걸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안달난 티를 낼 필요까진 없다.[234] 이외에도 이해 못 했는데 알아들은 척하다가 일이 커지면 가중제재된다.

13. 화법의 문제

13.1. 유머의 관점이 다른 사고방식

* (가위가 어딨냐는 질문에) "그걸로 나 찌르려고?"
* (선 넘는 질문[235]에 불쾌감을 드러내는 사람에게) "나 그런 말 안 했는데? / 나랑 말장난하자고?"
* (초면에 나이를 캐물은 뒤 상대가 나보다 많을 시) "그동안 그 나이먹고 뭐 했어요?"

반말도 듣기에 좋은 반말이 있듯이, 존댓말인데도 화법에 따라 기분이 나빠질 수 있고 상대의 감정을 비틀 목적이 농후한 위 예시들은 반말 그 이상의 모욕감을 준다. 유머는 웃을 만한 분위기를 만드는 건데 이들에겐 분위기를 썩창내는 것도 유머라고 받아들인다.[236] 이렇듯 타인의 배려심이 절개된 공격적이고도 자기중심적인 결론형 화법은, 직장이나 일상을 불문하고 갑분싸 시키기 쉬우며 본인딴엔 재치있게 말한다고 생각할 진 몰라도 상대는 의도와 상관없이 불쾌하게 만들기 쉽다.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붙임성은 긍정적인 방향의 사회성과는 뒷전이며, 그게 아니더라도 확대해석하여 결론을 내 쓸데없는 해명을 요구하는 건 의도를 왜곡하고 서로의 이해관계에 오해를 사기 쉬운 화법이라 메리트가 전혀 없다.

다만, 아래 문단의 피해의식과 겹쳐 이러한 양상을 보이는 게 대부분이라 어찌 참작은 가능한 것에 비해 유머를 권력놀음에 차용하여 반응을 떠보기 위해서 쓰는 경우도 있다.[237] 이와 비슷한 아싸 화법도 남을 헐뜯더라도 친해지려는 열의라도 있지만, 이건 전체를 불쾌하게 만든다. 한술 더 떠서 이런 화법을 쓰는 사람이 약자면 패죽도록 보복을 당할테고 이게 가능하다는 건 결국엔 상위인 위치에서 실패한 개그를 한다는 걸 모르는 게 아닌[238], 그냥 스트레스를 유머스럽게 풀 만한 희생양을 원하는 흑심으로 기작을 주관하겠다는 완곡표현이며 재미있어서 하는지라 그 자체로 악질이다. 분노하거나 꼬운 표정을 지을 시 농담이었다고 넘어가면 되기 때문에 책임을 회피하기 쉽고 피해자는 쫌생이 취급받을까 참는 상황이 많아 이같은 형태의 갑질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는다. 슈뢰딩거의 개새끼라는 단어가 따로 있을 정도. 본사에 파견 나온 관리직이라면 파벌의 단합만으론 어찌할 수 없으며 기타 다양한 방식을 통해 가학성 취미를 가진 사람이 한 명이라도 유입돼 권력을 잡고 유아화된 상태로 폭정을 부리면 그 내부는 정신병 양성소가 되고 이의 대처법을 모르면 조직을 나와서도 극도의 인간혐오가 도질 수 있다. 마치 게임으로 치면, 앞으로도 개선되지 않을 버그다. 악성 바이러스면 갈아엎기라도 하지 이는 파고들지 않으면 모른다.

이런 망나니스런 화법은 (본인 입장에서) 굳이 사람으로 대우할 필요가 없는 비정규직에게 주로 행하며, 모욕으로 걸고 넘어질 줄 아는(사회 물 먹은) 사람에게는 초면에 기싸움을 한 뒤 피할지를 결정하는 편이다. 인간은 공포를 느끼면 사고가 언다. 감정의 동요에 저항할 수 있는 수평관계에서만 익숙하다면 이에 당황하고 이 텀은 상대에게 따질 타이밍을 놓치게 할 재량권이 된다. 유머와 공포는 종이 한 장 차이. 이미 유머라고 느끼는 것은 그 상황을 공포라고 느끼는 사람이 비정상이도록 설정된 상대의 영역권에 놀아나는 것일 수 있다. 이때, 주변 사람 및 다수가 불쾌감이 들지 않는다 하여 자신의 불쾌감이 정상이 아니라고 단정지으면 안 된다. 이미 갑질을 하는 사람이 사전에 분위기를 매수했을 확률이 높다. 대부분 시비를 거는 쪽은 윗 서열이기에, 주변 사람은 딴지를 걸어봤자 보복이 뒤따르는 걸 알아서 별 수 없이 용인하는 2차원적 권력하의 괴롭힘임을 인지해야 한다.

유머라 읽고 시비를 거는 쪽에 조예가 깊은 기질은 되도록 적을 만들면 안 된다는 상식을 역행하는 자체로 나사가 빠져있지만, 아무 이유 없이 공격하고 이에 대해 불쾌감을 나타내면 그것을 이유로 다시 공격할 게 뻔하니 그냥 친한 척 빨아먹을 만큼 발라내 버리거나 최대한 상종하지 않는 것을 권장한다. 하지만 원채 강직하면 모를까 경험이 부족한 사회초년생 입장에서는, 현재는 녹음같이 합법적인 증거취득으로 방어할 수 있다는 걸 상대도 알기에 알아서 몸을 사리는 게 대부분인 것을 모르고 '당장은 문제가 없어 보이니 본인에게(도) 원인이 있다'라고 생각하여, 지금 마주보는 게 사이코라는 것도 모르기 쉽다. 말이 안 되니까 가능한 말장난. 상대가 굳이 이래서 얻는 게 없다고 생각하니까 할 수 있는 것이다.[239]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며 이것이 그 한계이다.

13.2. 부적절한 표현 사용

비하적이거나 차별적인 단어, 너무 가벼운 어감의 단어, 일부 인터넷 유행어 등 부적절한 표현은 상대방의 기분을 매우 나쁘게 하며, 대화의 상대방을 직접 지칭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본인의 이미지가 크게 실추될 수 있다.
  • 지나가던 노인을 가리켜 '노땅', '틀딱'이라는 표현 사용.
  • 임의의 중국인을 가리켜 '짱깨'라는 표현 사용.
  • 연애 경험이 없는 사람을 두고 '아다', '총각', '처녀'라는 표현 사용.
  • 직장인을 대상으로 '200충'이라는 표현 사용.

비하적 표현 외에도 사실에 가까워지는 표현도 기분을 나쁘게 할 수 있다.
  • 실종자, 납북자 등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사람의 가족을 대상으로 '유가족'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 설사 사망이 확실해 보이더라도 가족들은 듣기 싫어하는 표현이다. 그냥 '가족' 등의 표현을 쓰는 게 낫다.
  • 자신의 위치를 공개하여 오는 수치심을 방지하기 위해 비슷하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지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아르바이트로 전전하는 자신의 상황을 드러낼 시 '직장인'으로 에둘러 표현해도 어쨌든 거짓말은 아니니 나중에 상대가 따져도 착각이라며 넘어갈 수 있다. 또 무직인데 '프리랜서'로 표현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중의적인 표현 역시 상대가 지금 당장은 알아듣지 못할 때를 노려 달아날 시간을 벌기 위해 사용하는 것일 수 있다. 본명을 숨기는 것도 범죄자와 동명이인이라 자칫 피학적이게 만드는 표현으로 분위기가 안 좋아지는 걸 막기 위해서도 그러하다. 이외에 사회 순리를 순화하기 위한 표현도 이에 해당한다.
  • 상황을 받아들이는 대상의 감정이 예상된다고 해도 이를 말하는 건 자칫 상대의 자존심을 건들 수 있다. "우냐?", "웃기냐?" 등이 있고 이는 특히 된소리에 취약해진다.[240]

쓰이는 용례에 따라 전달하고자 할 의도가 완전히 달라져서 도발이라 느낄 수 있다.
  • '유감'이라는 의미는, 일상에서 쓰는 '죄송', '미안'과는 다르게 외교나 조문할 때 알맞으며 이외에는 상대를 조롱하는 어색한 표현이 되기 쉽다. '우렁차다' 역시 곡소리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상대의 신체·정신적 하자를 갖다 '자랑'으로 빗대면 안 된다.[241]
  • 문어 중 상대를 위한 존칭인 '당신'은 구어로 사용될 시 그 의도를 전달하기 어렵다. 언쟁이 붙었을 시 이러한 표현은 '너한테 시비걸고 싶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 사물에다 붙이는 '(가격이) 싸다', '먹는다'라는 단어를 사람에게 쓰면 상대는 성관계를 암시하는 저속한 의미로 받아들인다. 함부로 가치를 평가하는 단어 역시 명백히 사물에 대입했어도 소유자 입장에서는 불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의존명사도 가려서 써야 한다.[242]
    • 지시 대명사인 '이/저것(들)'은 공적으로 사람을 지칭할 때 사용하면 안 된다. '그쪽'도 사용에 주의해야 한다.
  • 별명은 그 용례가 실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단어일지라도 당사자에게는 불쾌감을 줄 수 있다.[243] 상대의 특징을 귀엽게 나타내고자 할 의도였어도 이와 관련된 트라우마가 있었다면 선을 그을 수 있다. 수평관계라면 '새끼'같이 순화된 욕설을 애칭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상당한 모멸감을 느낄 수 있다.
  • 사상을 의심받지 않는 건 매우 중요하다. 혐오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은어는 그 의도를 몰라도 썼다는 이유만으로 매장당할 수 있으며, 아무리 사회성이 좋더라도 시시각각 갱신되는 용어의 의미를 확실히 알고 있지 않은 상태로 말하다간 큰일날 수도 있다.[244] 더 자세한 사항은 일베저장소/용어, 메갈리아/용어 문서로.
    • 어감이 이상한 단어 또한 쓸 시 주의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봇(洑)물', '존망(存亡)'이란 단어는 보X물/X망으로 잘못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단어로 대체할 수 있는 걸 굳이 썼다는 것을 가지고 '고의로 불쾌하게 만들려고 한 거 아니냐'고 오해를 살 수 있다. 처음부터 오해살 만한 표현을 안 하는 것이 좋지만 듣는 쪽 나름이라 사실상 무리다.[245]
    • 초성체는 공적에서 자제해야 한다. 욕설은 순화돼도 모욕죄가 성립될 수 있고 그렇잖아도 커뮤니티발을 연상시키면 해명해야 한다.

13.3. 표현법과 눈치에 대한 이해부족 및 팩트에 집착하는 소위 아싸 화법

아싸 화법이란, 2020년대를 전후로 커뮤니티에서 유행하는 화법 비교 글에서 등장한 용어이다. 보통 인싸 화법 VS 아싸 화법이란 식으로 회자되며 설명충의 특징도 여기에 속한다. 딱 잘라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대화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 하고 상황에 안 맞거나 툭 튀는 어설픈 짓과 직설적인 단답형, 지엽적인 사실관계에 집착하여 분위기를 깨는 경우 아싸 화법으로 정의된다. 요점을 풀어 말하자면, 가벼운 잡담을 심도 있게 따지기에는 불필요한 상황과, 화법 이해를 제대로 알지 못해 판단(눈치)력이 낮아 보이거나 벙찌게 만드는 엉뚱한 화법, 이른바 사회성(사회지식)이 낮아 보이는 화법이라고 보면 된다.

예를 들면, 아래 짤방 같은 것이다. 출처는 고파스
파일:CPxIq.jpg

혈액형을 주제로 한 대화에서 보이는 태도도 아싸 화법과 인싸 화법을 분간하는 예시로 거론된다. 상대방이 혈액형 얘기를 했을 때, 논쟁이 아닌 대화 목적으로 악의 없이 꺼낸 이야기인 것을 간파하고 잘 맞춰 준 것이다.[246] 이외에 더 다양한 경우들은 악성 댓글이 판치는 플랫폼의 대댓글을 관찰해보면 알 수 있다. 그중에서 뭔가 악의는 없어 보이는데 분위기를 깨트리는 욕망이 글귀를 압도하는, 현실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지만 딱히 신경꺼도 지적될 일도 없을 견해에 살을 보태 조용히 넘기는 꼴을 못보게 만드는 경우 십중팔구 이런 유형에 해당한다.

아싸 화법 구사자가 사회적 위치가 높은 사람일 경우, 대개 본인의 문제점을 확실하게 깨닫지 못한다. 반대로, 진짜 팩트인데 아싸 화법으로 몰아가는 경우도 있으므로 말한 사람이 정말 사회성에 문제가 있는지, 사회에 문제가 있는지 판단하기 애매한 지점도 분명 존재한다.[247]

게다가 원래 사회성이 가정 환경, 즉 부모의 성격과도 관련이 있는지라, 본인이 저렇게 사회성 없는 화법을 구사한다면 은연 중에 부모의 화법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무시 못한다. 부모가 자기를 닮아서 그렇다는 걸 인정하지 않고 '왜 너는 눈치 없이 말해서 욕을 먹느냐'며 자식을 질책하는 것이 평소에 들은 대화라면 기분을 상하게 하는 화법을 구사하는 것을 개선하지 않고, 그러한 방법도 모르고 거쳐갔을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여기서 부모 자식 간에 대화가 단절되고 유화롭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법을 배우질 못 했으니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상대는 직설적인 대화라고 느껴져서 분위기가 깨지는 것이다. 만일 이러한 화법을 구사한다고 생각이 들면, 평소 부모와의 대화에서 어떤 부분이 본인의 맘을 상하게 했는지를 떠올리고 그런 순간을 캐치하여 상대에게 같은 화법을 쓰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중요한 건, 남의 말을 끝까지 잘 듣고만 있어도 중간은 간다는 것이다.

사실 관계를 명확하게 구분짓는 직장생활을 사회성의 일부라고 받아들이는 것까진 좋은데 이를 직장과 관련이 없는, 서열을 멀리하려는 조직에서도 대화법을 걸러내지 않아 그저 나릇나릇하게 대화하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확신에 찬 정곡이 아싸 화법으로 보일 수 있다. 이것이 일상에서 이루어지면, 실제 일상에서 하던 행동을 직장에서 해대는 연기보다 더 당위가 없다.

주의해야 할 점은, 현실은 예상 문제집이 아니기 때문에 이미 공개된 아싸 화법을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보통 남들이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포인트에 집착하는 것은 성격에 따라 천차만별이며 이를 역으로 노려 아싸인 척하는 인싸 화법으로 쓰려는 사람이 있고, 나름 일코는 잘 하고 살아 온 사람이 평상시에는 원만하게 넘어가다가 예상치 못한 포인트에서 급발진, 흥분하는 경우도 있어 인터넷이나 커뮤니티와 달리 실제 사회에서 널린 예시가 인싸인지 아싸인지의 구분처가 모호해 따로 찾아서 예방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공통적이라 한다면 이러한 유형의 사람들은 말을 잘 끊고 눈에 보이는 대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지라 이질감을 느끼기도 쉬워 블랙리스트에 넣기에는 수월하다는 점이다.

성인기에 다다라 사회생활을 접해 봤음에도 왜 아싸 화법을 고치기 힘든 것인지에 대한 해석과 관련한 영상도 있다. # 만일 이러한 문제로 고심하고 있다면 이것 말고도 다른 사회 관련 영상이나 커뮤니티를 참고해도 좋다. 단, 홍보 목적의 지적 허영심도 섞여 있어서 정확성은 보장받기 어렵다.

본인은 사회성이 좋으니 사회성 없게 반응 할 자격이 주어졌다고 생각해 사회성 없는 상대방에게 아싸 화법을 내리꽂는 경우도 있다.

13.3.1. 하소연에 대놓고 초치기

남의 슬픔이 있으면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는 게 아니라, 팩트에 너무 집착해 양비론이나 냉소적인 태도, 부정적인 태도로 말하는 경우도 소위 아싸 화법으로 분류된다. 다만 친한 상황에서 장난치려고 일부러 초치는 것은 제외한다.
  1. 열심히 해보겠다며 의지를 다지고 있는데 실패한 사람의 이야기를 굳이 꺼내며 망하기 십상이라고 말하는 경우.
  2. 상대가 "A가 나를 해코지했어."라고 하는데, "어느 한쪽 말만 듣고 일방적으로 말할 수 있니? 너도 원인 제공을 했겠지."같은 식으로 말하는 경우.[선을넘는경우] 또 그 원인이 되는 약점을 개선하지 않는 것을 의지박약이라며 조롱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3. 상대가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이야기를 꺼낼 때 "나도 피곤해 네 징징댐 듣기 싫어."같은 식으로 말하는 경우. 아예 대놓고 집단 내 물을 흐리게 만드는 피해자를 혐오하는 경우도 있다. "(꼬우면) 다음 생엔 XX로 태어나."같이 실현 불가능한 제안을 하는 경우도 포함이다.

13.3.2. 상대방이 말을 꺼낸 이유를 모르고 일방적으로 훈계만 함

예시 1. 불가항력적 원인일 시
(지하철 연착으로 인해 20분이 더 걸렸을 때)
인싸 화법: "그럴 때 진짜 짜증나죠."
아싸 화법: "그럴 경우에 대비해서 더 일찍 나오면 되는 거 아닌가요?"

(예보에선 맑았는데 비가 올 시)
인싸 화법: "맞아, 날씨 잘 안 맞더라."
아싸 화법: "처음부터 우산을 갖고 왔으면 됐잖아?"
후자는 사실관계만 따지면 맞는 말이긴 하지만 있어날 가능성이 낮은 비정상적인 상황이므로 달갑게 받아들일 사람은 없다. 상대방이 이런 일로 푸념을 한다면 같이 공감해 주거나 돌려서 얘기하는 게 일반적인데 반해 소위 아싸 화법 구사자들은 사실관계에만 집착해 후자와 같은 뚱한 반응을 보이며 이는 의도가 어떻든 간에 어그로로 보일 수밖에 없어 배척 대상이 된다. 허무맹랑한 쓴소리는 신경 끌 준비라도 주지 여기는 깜빡이도 없고 해결책이랍시고 자업자득으로 몰아세우는 데에 혈안이 된 인간과 상종을 당하는 것이 더더욱 기분을 잡치게 만드는 거다. 아싸 화법도 쓰기 나름. 가벼운 츳코미가 될 수 있고, '너를 왕따시킬거다'라고 판단할 수 있으니 기왕 쓸 거면 낄끼빠빠는 잘 하자.
예시 2. 상대와 친해지고 싶을 시
A: "이거에 대해서 궁금한데 알려주실 수 있나요?"
B: "그건 제가 아니라 관련된 쪽에다가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A: "혹시 외국어 할 줄 아세요?"
B: "본인이 알면 뭐 되는 줄 아시나요?"[249]
의도적으로 친해지기 위해 물꼬를 잡으려고 질문하는 경우 상대가 시큰둥하게 반응할 시 아싸 화법을 구사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답하는 측도 책임을 지게 만들도록 상대가 응수할 가능성을 미리 염두에 두어 필요한 말만 하고 터치 안 하는 사무적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 선을 긋는 과정을 상대는 적의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사실 B는, A는 물론 다른 사람들이 나에게서 얻는 이익이 별로 없다는 걸 스스로가 잘 알기 때문에 먼저 다가와서 친해지려는 기대를 아예 버린 상태일 수도 있고 '굳이 나한테 묻는 것보다는 검색을 하는 게 더 빠를텐데 무슨 수작이지?'라는 의심도 이전에 한번 당해봤던 경험이 있어서 계속 알려줘야 하는 처지가 될 수 있으니 예민해진 것이다.

은어화한 구식을 상대가 알아듣고 맞장구 쳐줄 것이란 기대심이 유아 연기로 오해석되는 경우가 있다. 상대 입장에서는, 한번 거쳐진 순수한 궤변 역시 본심이라고 오해할 수 있게 만드는 화법을 구사했다고 예민하게 받아들이며 흐름을 해석할 수 없는 외부에서는 어쨌든 문장 구조상 헛소리가 맞으니 소문이 와전될 조건은 충분하니 이의 보복으로서 자신의 분풀이는 정당하다라고까지 살을 붙힐 수 있게 된다.
예시 3. 상대에게 반응해야 할 시
A: "이거 여기다 옮기세요."
B: "여기다 옮기라는 말씀이시죠?"
A: "귀가 먹었어요?"

B: "이렇게 하면 되나요?"
A: "뭐?"
B: "(더 자세히) 이렇게 하면 되나요?"
A: "뭐?"
B: "..."
A의 의사결정에 관여했다는 것을 조직에게 공언화하여 지시를 번복하지 말라는 경고성 빈말로, 여차하면 '내가 이렇게 지시한 적 없다'고 뒷북치지 말라는 B의 소극적인 공격성을 보이는 것이거나 주변 잡음으로 지시를 오인해 피해를 끼치는 걸 막기 위한 일종의 보험이다.[250] 여기서 A가 일일이 말로서 반응을 보여야지 알아듣는다고 생각하는 타입이라면, B의 적극적 경청을 대신하는 비언어적 신호 중 고개를 끄덕이거나 입술같은 국부의 변화, 눈 크게 뜨기 같은 것들은 되려 도발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개인 간 이어도 정말로 못 알아 들어서 확인 차 질문하는 것은 같으며 공통적으로 본인이 재차 말할 수도 있다고 상대도 예상하고 있었다면 크게 불쾌해하지는 않는다.[251] 하지만 후자와 같이 재차 질문할 시 불쾌해한다면 A가 아싸 화법을 구사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A의 의도는 '너(B)의 답으로 인하여 기분이 더러워졌으니 내가 원하는 반응을 보일 때까지 비아냥 댈거다'라는 의미이다.

해당 문단의 예시들은 자랑, 상식 강요와 일부 병용된다.

13.3.3. 주의할 점

흔히 오해하기 쉬운 것이지만, 상대방의 비위를 무조건 맞춰주라는 게 아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상대방 말의 속뜻을 파악하고 반응해야 하며 잘 모르겠다면 일단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이는 수능 언어영역 문제를 풀 때 지문을 끝까지 다 읽고 풀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같은 이야기라도 다른 사람들과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유독 특정인 앞에서만 갑분싸가 된다면 이는 그 사람이 아싸 화법으로 대응했을 가능성이 높다. 인터넷 공간으로 치면, 본문 다 안 읽고 댓글부터 달아서 싸움 나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다.

때에 따라 상대방이 현재 본심을 내보일 수 있는 상황인지도 고려해야 한다. 존댓말로 돌려서 말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하필 낮춤말보다는 변명만 늘어놓는 것처럼 보이는지라, 자연히 직설이 기품있게 보이면서 (억지로) 동조하는 다수결로 본인을 정답으로 치켜세우는 것이 정말로 사실을 얘기한다고, 설령 사실이더라도 이를 통해 상대방을 무안하게 만드는 것은 정작 사실이 중요할 때 정정해 줄 수 있는 손길을 차버리는 것이다. 조용히 대답하는 습관을 기르는 게 나중에 틀리더라도 이를 아는 선에서만 체면이 낭비되게 수정할 수 있다. 또한, 자신과 다름을 반지성주의라면서 무조건적으로 배척하는 관념에서 멀어져야지 상대방의 고충을 헤아릴 수 있고 이에 따른 보험은 말을 누그러트리며 오는 심심한 과정인 것이다.

14. 원활하지 않은 의사소통

불분명하게라도 나타낼 수 있는 소통력이 부적절하게 전달되는 경우이다. 이의 주된 문제로는, 언어 능력 부족인 문맹, 모어가 충돌[252]할 시 생겨난다. 수어가 필요한 청각장애인 또는 비·준언어적 표현 및 암시 할 수 없을 정도로 신체가 결손된 장애인도 포함될 수 있다. 상황이 따라주지 않아서 발생할 수 있는 등 구사 가능한 사회적 기술은 타인이 볼 때는 달라지며 여기서는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어도 사회적 평가에 영향을 주게 된다.[253]

14.1. 말하기

말이나 글을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면 사회에서 소외되기 쉽다. 상대가 이해하는데 혼동이 있을 것 같다면 귀찮더라도 쉽게 풀어서 이야기해야 한다. 그 외에도 원래 있는 말로 나타낼 수 있는 건 유창한 티 내지 말고 그냥 말하는 게 좋다. 혼잣말(특히 자문자답) 역시 너무 남발하면 혼란을 주게 된다.

서로 간의 거리가 멀면 온전히 소리가 전달되도록 방해 유무(예: 마스크)를 체크해야 한다. 이는 독순술을 사용하는 사람을 고려하기 위함도 있다.

속마음은 상대가 알아들을 수 없으니 전달 횟수에 포함할 수 없다. 텔레파시는 아직은 시기상조이다.

14.2. 듣기

잘 듣는 것이 말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했던 얘기를 또 하게 만드는 사람에게는, '내 얘기를 지금껏 뭘로 들은 거냐?' 싶은 듯 날을 갈게 되고 계속 못 알아 들으면 상대는 점점 '내 말을 일부러 무시한다/이를 즐기려고 한다'같은 부정적인 평가를 주게 된다.[254] 문화권을 불구하고 3번 이상 되물을 시 표정이 썩는 건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며 특히 이름은 한번 알아내면 앞으로도 되묻지 않는 게 좋다. 간혹 정말로 못 알아듣는 척 하는 경우 '너에게는 거부권이 없으며 토달지 말고 하라'는 의미이며 이는 보통 상사-부하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이때는 반대로 상사의 표정이 썩고 부하만 눈새가 되는 분위기가 된다. 앞전에 예시 3 중 A, B 상황 또한 비슷하지만 일면식 없는 사람일 경우 상대가 확실히 공격대상으로 지정할 수 있다는 게 차이점이다.

정보의 실익은 온라인보다는 인맥같이 폐쇄된 구조에서 알아가는 데에 그 효율이 갈리게 된다. 일단 상대에게 비밀에 준하는 말을 들었다는 건 어쨌든 당신에게 정보를 뿌려도 이를 악용하지 않는다는 신뢰를 얻었다는 것이므로 여기서 설파하다간은 위험인물로 박혀 더는 질 좋은 정보를 얻기가 어려워진다. 잘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에게 들은 얘기를 꺼내도 되냐고 동의를 받든 아니든 간에 끝까지 입 밖에 꺼내지 않는 것을 엄수하는 것이 추후 필요할 때 상대로부터 제대로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신임을 쌓을 수 있다는 얘기다.[255] 듣던 것을 기록만 한 채 잊어버려도 좋다.

사회적으로 부족한지를 따지기 전에 상대가 환경적으로 알아듣기 애매할지도 모른다는 걸 앞서 추론할 필요가 있다. 상대 옆에 기침을 하는 사람이 있다거나 째지는 웃음소리, 안내 및 경적음 등으로 자신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들은 것 같으면 제스처로 물건의 형태, 목적, 수량을 이해하도록 배려해줘서 눈치/이해력을 보조해야 한다. 이때, '나는 제대로 말 했으니 이해 못한 건 순전히 이 인간 탓이다'라며 신경질적으로 대우하는 건 삼가자.

사회성에 관련된 책을 읽는 것보다 그냥 묵묵히 들어주는 사람이 있는 것만으로도 심리적 위안을 얻는 사람도 있다. 재치 있게 말 못할 것 같으면 이 부분을 공략하면 좋을 것이다. 이 역시 자세한 사항은 경청 문서로.

15. 부탁하는 기술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서로 많은 도움을 주고받는다. 그런데 이쪽 기술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상대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는 기술이 모자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며, 심한 경우에는 대놓고 무시당하거나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밉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본인은 물론 생판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들도 거르지 않는 경우도 있다.

15.1. 부탁해서는 안 되는 사람에게 부탁하기

  • 자신을 미워하는 상대에게는 공적인 사안이 아닌 한 부탁을 하면 안 된다.
  • 자신을 무시하고 하찮게 여기는 상대에게 부탁을 할 일이 있다면 상대가 얻을 수 있는 것을 그 자리에서 1:1로 정확하게 제시해주지 않으면 100% 무시당한다.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사람들에게 이런 취급을 받을 가능성은 낮아진다.
  • 알고 지내고 싶지도 않고 만나고 싶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불쾌하거나 무관심한 상대에게도 자신의 필요가 생기면 부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상대를 호구 취급하는 태도이다.

15.2. 부탁해놓고 충분히 보답하지 않기

꼭 매사를 돈으로 보답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가르침이든 어떤 정보의 제공이든 물건을 빌려주든 뭐든 보답이 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충분한 보답이 없으면 사람은 조만간 지치고 짜증낸다. 그리고 조만간 관계가 끊길 것이다.
  • 물건을 빌렸다가 고장내지 않고 가만히 갖다 주면 상대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았으니 아무 보답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정말 많다. 빌리는 데 드는 시간, 물건의 감가상각비, 고장내거나 분실할 만한 위험성, 빌려주는 사람이 들이는 시간과 그 비용을 고려하지 않은 미련한 생각이다. 사소한 보답이더라도 제때제때 하는 것이 좋다.
  • 그 부탁을 들어줄 때 상대가 얼마나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생각해보고 부탁을 해야 한다. 개중에는 시간을 빼앗는 것이 힘만 조금 들 뿐 별로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는데, 설사 아무 기술도 없는 무능력한 사람을 데려와서 부탁한다 해도 최저임금 이상 챙겨주지 않으면 조만간 다툼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 특히 비싼 인력을 데려와서 일을 시킬 때는 하찮은 일을 시키더라도 해당인이 돈을 벌 수 있는 가치만큼 돈을 줘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조만간 다툼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치대생이 방학 때 쉬고 있다고 해서 상하차 노가다를 도와달라고 해놓고 시급 3천원을 준다면 근시일 내에 그만두겠다 하고 절연을 해 버린다. 이런 사람들은 과외를 구해서 최소 시급 만원 이상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 부탁을 들어줄 때에 상대방이 얼마만한 대가를 받는지 충분히 눈에 보여야 한다. 절친한 사이라면 모르겠으되, 알게 된 지 1년 될까말까한 사람이라면 언제든지 관계가 끊길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일을 도와줄 때마다 재깍재깍 하루 단위로 보답을 하든지 하는 게 좋다.

15.3. 부적절한 부탁

  • 불법적인 부탁은 절대 하지마라.
  • 상대에게 리스크를 떠넘기는 것은 돈을 빼앗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자신은 위험부담을 지기 싫어하고 상대방에게 위험부담을 져달라고 해놓고, 상대가 거절하면 '좋은 기회를 제안했는데 감히 거절을 하고 나를 창피하게 만들었다, 배짱이 없다, 나를 함부로 대한다' 등 비방을 한다. 이런 경우는 대개 무례하게 취급될 만한 이야기이다. 특히, 기회를 주겠다고 해 놓고 거절한다고 해서 욕을 하는 것은 매우 무례하고 천박한 행위이다. 어느 부탁이나 그렇듯 부탁으로 얻는 목적이 분명해야지 상대방도 리스크를 계산할 수 있고 이는 본인에게도 이 부탁이 왜 위험한지를 알 수 있는 기회가 된다.
  • 직업적인 특성도 고려해야 한다. 예술가는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성취감이 직업적으로 중요하다. 예술가에게 일을 부탁하면서도 크레딧에 이름을 넣지 못하게 하거나, 워터마크를 넣지 못하게 하거나, 저작자의 표기나 곡명의 표기를 해 주기를 거부하는 등 이름을 알릴 기회를 막는다면 다툼이 생긴다.
  • 보증 부탁은 절대 하지 말자. 농담이 아니다. 몇 년, 아니, 몇십 년 지기 친구관계도, 심지어 가족관계도 한방에 박살내 버릴 수 있는 부탁이다. 이것이 왜 그런거냐면, 신용불량자가 될 경우, 빚을 갚을만한 능력이 되는 제3자를 보증인으로 삼는 것인데 전당포에서 물건을 맡긴후 돈을 빌렸다 쳤을 때 후에 그 돈을 갚을 능력이 되지 못할 경우 해당 물건이 전당포의 소유가 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돈을 못 갚을 거면 대신 갚아줄 사람을 데려오라는 것과 같기 때문에 사실상 본인과 타인의 인생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그러므로 애초에 신용등급이나 요금 등의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불필요한 빚을 지지 않도록 주의하자.[256]
  • 간혹 부탁을 가장한 지시나 명령으로 혼란스럽게 만드는 경우, 상대는 이를 불쾌한 부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행자를 도구화하여 결과의 목적성을 만족하는 경우에도, 일에 대해 지시하는 게 아닌 엉뚱하게 활용하기 위해서 부른 것이라면 상대는 어이가 없을 것이다.[257] 아예 부탁이라는 의도도 유추하지 못 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258] 이럴 땐 공통적으로 그만한 보상을 한 뒤 공손하게 보내줘야 나중에 뒷탈이 없다. 처음부터 명령이라고 확실하게 못 박아야지 그나마 상대를 덜 기분 나쁘게 만든다. 계약관계라면 이 과정은 대개 생략된다.
  • 선행된 과정이 거절을 방해하는 경우, 정보 취득성 질문 그 이상으로 본인에게 손해가 올 것 같다면 물건을 받았어도 다시 소유자에게 회부하면 그만인데, 선물(예: 음식, 기프티콘)을 선심 쓰듯 준다고 냅다 받게 만드는 상황을 노린 뒤 거절할 수가 없도록 압박한다면, 받게 된 측도 부채감 내지 이미지에 영향이 갈 것을 우려해야 하기에 별 수 없이 부탁을 받아들이게 되고[259] 이 과정 중 불법이 엮일 수 있다. # 처음부터 이러한 부정적인 낌새를 눈치채고 거절하면 됐겠지만, 마케팅의 기법으로써도 치밀하게 쓰이는 등 알게 모르게 일상 속 무의식에 녹아들어 있으며 사용자에 따라 아주 서서히 진행시켜 발을 못 빼게 할 수도 있다. 갑을관계에서는 '너한테는 거절의 의무가 없으니 불이행 시 반항으로 간주한다'처럼, 암묵적으로 동의 여부를 생략해 강매와 비슷하게 진행되는 경우도 많아 철벽을 치기도 난감하고 사회적으로 해가 되는 약점(예: 범죄 전적, 나체 등)을 상대가 쥐고 있다면 심각해진다. 참고로 단순히 급하다는 것 또한 거절을 방해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260]
  • 상대가 먼저 부탁하지 않았다면 들어줘서는 안 된다. 이런 경우는 보통 도리상 해야 할 일이며 상대가 부탁하지 않아도 '실은 부탁하고 싶을 것이다'를 예상하는 게 이상하지 않고, 되려 하지 않는 것이 눈치가 없다고 할 만한 반사회적 사유가 있을 시에 성립된다. 이를 상대방이 안다면 그런 부탁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들어 책임을 따질 수 있다.[261] 예정 될 부탁을 만든 뒤 앞서 들어줬다며 과정이 생략된 상대에게 대가를 요구하는 지능형도 있다. 일상에서 흔히 하는 청소도 상대에게는 암묵의 룰이며 잘 모를 땐 본인이 그걸 당해도 득이 된다고 여기는가로 판단할 수 있다.

15.4. 부탁을 거절당했을 때

  • 부탁을 거절당했을 때에도 관계를 계속 지켜나가려면 예의를 지켜야 한다. 저주나 다름 없는 뒷담화를 퍼붓는다면 당연히 관계는 끊어진다. 이럴 작정이라면 애시당초 부탁을 하지 말고 돈 주고 사람을 고용하는 게 좋다. 이것을 가지고 몽니 부린다고도 한다. "다른 사람들은 다 내 부탁을 들어주는데 너는 쪼잔하고 참을성이 없어서 나의 부탁을 거절하는구나?", "너는 예의도 없고 어디 가서나 실패할 인간이야.", "네가 치사하게 이럴 수 있니, 네가 인간이니?"와 같은 말이 바로 이런 경우다. 간혹 부탁을 거절하는 태도를 집어서 사회성이 없다고도 할 수가 있는데, 정말로 없는 쪽은 매정하게 선을 긋는 사람이 아닌, 주변에 피해를 끼치는 걸 알면서도 부탁을 강요하는 쪽이다.[262]
  • 부탁의 거절은 거절하려는 입장에서도 짜증나는 일이다. 특히, 정보가 비대칭인 상황에서 실익을 계산하는 것은 매우 번거로워서 확실하게 거절하기도 애매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쏘아붙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263] 처음부터 거절당할 게 확실한 부탁은 가급적 하지 않는 게 좋고 이런 상황까지 오게 된 경위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하거나 별 거 아닌 것같이 느껴지지 않도록 절박함을 드러내야 한다. 실실 웃지 마라.

16. 협상

16.1. 자신의 주장만 고집

예를 들어 갑과 을이 공동으로 작업을 하고 있는데, 힘이 많이 들지만 잘 안되고 있다.
갑: "지금 이 방법은 잘 안되고 있어. 방법을 좀 바꿔 보자."
을: "이 방법은 틀리지 않아. 계속 하기만 하면 조만간 성공할 거야. 내가 너보다 이 분야에서 경력이 더 많아. 네가 감히 뭘 안다고 주제넘게 나한테 간섭이냐. 참견하지 마라. 네가 후배 주제에 어디서 버릇없이 구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도 있는데 넌 똑같은 이야기를 해도 그 따위 방식으로 말해야 하냐. 망할 때까지 해보고 그때 가서 안 되면 달리 생각해봐도 되는 거 아니냐.[264] 시끄러워. 네가 전문가도 아니면서 간섭하지 마라."

물론 결과가 가장 중요하니만큼 을이 하자는 방식대로 해서 성공하면 미움은 사지 않는다.

그런데, 거절할 때 갑의 의견을 자세히 들어보지도 않고 잘라 버리는 사람이라면 '융통성 없다, 완고하다, 생각이 틀에 박혀 있다, 고집스럽다, 남의 의견을 무시한다' 같은 소리를 듣는 사람이 많다 보니 실패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일수록 책임을 지울 희생양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신의 의견만 고집하는 사람이 그 희생양이 되어 미움을 사기 쉽다.

사고가 유연한 사람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다른 방법은 없나' 혼자 궁리해보기도 하고, 도 읽고,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는 등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본다. 특히 자신보다 위계질서가 낮은 사람(후배 등)이 내놓은 아이디어라 해도 함부로 평가절하하지 않고 활용한다.

반대로 아집으로 가득찬 사람일수록 자기 생각을 고집한다. 남에게 물어보는 것은 자존심을 깎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잘못된 방식을 고수하고, 다른 사람이 내놓은 아이디어는 들어보지도 않고 신분, 경력, 학력 등을 문제삼아 평가절하해 버린다. 그리고 실생활과 관련있는 일이면 '학자들이 실생활에 대해 뭘 아냐'라는 입장이기 때문에 대학 교과서나 논문은 일단 무조건 무시한다. 이런 식으로 살아가면 일이 잘 되면 오히려 천운에 가깝고, 대부분 다 망한다. 혼자 망할 경우 사교성에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여럿이 관련되는 일에서 이상한 고집을 부리다 망하면 평판과 관계에 큰 악영향을 준다.
갑: "지금 이 방법은 잘 안되고 있어. 방법을 좀 바꿔 보자."
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네 생각은 어때? 추천해줄 만한 것이 있니?"

이런 식으로 상대의 의견을 일단 들어보는 열린 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만일 을(실제 을이든 간에)이 의문을 드러낼 시 그 답문 형식은 대개 후천적으로 얻어내야 한다. 이는 1인 2역으로 가상의 논쟁 상대를 만들어 쉐도우 복싱하듯 대화 패턴을 연습하여 훈련할 수 있다.

또한, 아무리 상황이 좋더라도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일에서 스스로의 기준, 스스로의 계획대로 모든 일이 진행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래 걸릴 수도 있고, 돌발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이런 것을 가지고 상대방의 태도와 인격을 탓한다면 평판이 나빠지기 쉽다.

16.2. 막말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논리적 오류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상대를 질리게 하여 먼저 나가 떨어지게 만든다. 언뜻 보면 논리는 그럴싸해 승기를 잡을 때는 유용하겠지만, 실속을 따져보면 논점일탈의 연속이라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설득으로서는 거리가 멀다.

갈등 상황을 넘기겠다고 흐지부지 끝내는 건, 한쪽(만)이 옳지 않은 행동으로 밝혀졌을 시 본인 역시 막말을 한 것으로 비춰지기 쉽다. 이는 양시론이어도 같다.

성인의 협상 과정이 아동보다 고급지게 이루어진다는 착각은 버리자. 막말은 본인이 우기는 걸 알고 있다고 해서 제어할 수 없다. 알면서도 도발하는 사람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치하겠지만, 상대도 이를 즐기는 상황이라면 막말로 화답하는 것도 세상살이를 위해서는 필요하다. 자신을 논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는 기대를 버려라.

가능하면 본인이 막말을 할 수 있는 위치에서 협상을 진행하면 좋다. 상대에게 '함부로 땡깡부리면 즉시 손절이겠구나'라는 것을 알게 해 주어 기빨리게 만든 뒤 타협 안 하고는 못 배기게 해야 한다.[265] 결국 협상도 그나마 나은 속임수를 설득시키는 입담과 힘의 원리로 지배된다. 금전이 오가는 협상은 불법에 가까운 이익을 위한 에누리를 잘 타느냐 또는 불법이어도 합법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막말을 논리적으로 잘 포장하는지가 여기서 말하는 사회적 능력이다.

최대한 말이 되게 풀어서 해설하는 '자비의 원리'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 잘 풀리면 상대방 스스로가 논리적 헛점을 깨닫고 정정할 수 있다.

17. 지나치게 이질적인 경우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권석만[266]은 타인에게 혐오감을 느끼게 하는 사람의 특징으로 크게 3가지를 들었다.

1. 공격적인 사람.

2. 지나치게 이질적인 사람. 사람들은 동일한 속성을 지닌 소속집단에는 쉽게 애착을 느낀다. 반대로 이질적인 사람을 대할 때는 처음에는 호기심을 느끼다가, 나중에는 이런저런 혐오감을 느끼기 쉽다. 다른 속성을 지닌 경쟁집단을 대할 때는 경계심과 거부감이 증가하는 것과 비슷하다. 상대방이 나와 괴리가 크면 익숙하지 않고, 그 속성과 반응을 예상하기 어려우며, 쉽게 위험한 사람으로 판단한다.

3. 심리적으로 소화하기 어려운 사람. '심리적인 소화'는 대상의 여러 가지 속성이 자신의 가치관과 일치하여 자신의 친분 상대로 수용하기 쉬움을 말한다.[267]

어떤 집단이 형성되어 있고 그 구성원들이 자신을 꺼림칙해 할 때 그 집단에 끼어들어가는 것은 정말 대단한 수준의 사교성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중소기업 대리에서 대기업으로 이직을 하게 된 김갑돌 대리를 보자. 갑돌 씨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뽑냐, 우리 회사를 만만하게 본다, 제멋대로 행동한다, ..."면서 은따를 당하고 있다.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여기서 갑돌 씨가 그만큼 사교성이 떨어지는 사람이었다면 이직을 허락받을 만큼 평판이 좋지도 못했을 것이고, 예전 회사에서 좋은 성과를 내기는커녕 도태되어 버렸을 것이다. 적대적인 태도와 우호적인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자연스레 융화되려면 차라리 "나 친구 많아. 너희의 인정은 굳이 안 받아도 돼." 정도의 태도를 드러내며, 신분, 학벌, 직업 등에서 차이가 있을 경우 그것을 드러내서 혐오감을 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 가령 100명이 꼴통인 학교에서 1명이 갑자기 공부를 한다 생각해보자. 결과는 뻔하다. 그 반대는? 이 역시도 뻔하다. 주변 사람들과 다른 점을 최대한 숨기고 오래 유지하다 보면 자연스레 융화될 수 있다. 이질적인 부분을 많이 드러낼수록 집단에 끼일 가능성은 낮아진다.

상대의 패턴을 녹화해서 보여주면 그동안 습관이 배여 잘 알지 못 했던 이질적인 구석을 깨닫도록 도울 수 있다. 본인 스스로 찍어서 실천해도 좋다. 일상에서 하던 통화녹음으로 '튀면 안 된다'를 과하게 실천해서 더 튀어보이는 목소리를 내고 있던 건지도 확인할 수 있다.

18. 반목

분노 조절 능력은 사회성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분노에 관련된 행동들은 쉽게 상대를 기분 나쁘게 만든다. 쉽게 분노하는 경우가 문제가 되는 경우, 갈등이 생긴 후 해결하는 노하우도 미숙해서 계속해서 적을 만들고 이전투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의 언행에 쉽게 감정이 상하거나, 상대에게 쉽게 잘못한 것을 따지고 캐묻거나, 상대에게 화를 내는 것은 모두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만든다. 남 앞에서 기분 나쁘다는 티를 낼 때는 그 관계가 파탄날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해야 할 것이다. 친목 집단이라면 그나마 다행인데, 상대방이 '오냐 한번 우리 죽어 보자' 식으로 나오게 되면 자신은 직장을 잃거나 사회적으로 따돌림을 당할 수 있다.

오히려 상대가 이렇게 강한 분노를 품을 때까지 사이가 나빠지는 걸 모른 체 하고 있던 주변인들의 묵인에 화를 내야 한다. 정말 상대가 그렇게 나올 정도로 수위 조절을 못해 왔다면, 문제는 거기 있는 것이다.

상급자가 하급자 한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몰아줘 버리는 것은 비정상적인 조직관리에 속한다. 능력있는 상급자는 그렇게 하급자 한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몰아주고 '니 잘못 니 탓'하는 일차원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다. 무능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268] 이런 유형은 조직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별 관심도 없다. 그저 돈을 주니까 나와서 일하고 스트레스를 조직원에게 풀어버리고는 잘하는 척 하는 것뿐이다. 이런 조직 형태가 오래 지속되면 필연적으로 그 한 사람 때문에 그가 속한 조직 내의 효율성이 마이너스가 되어 버리고, 그것은 곧 돈을 내다버리는 행동이 되며 조직에 작든 크든 손해를 가져온다. 단기간만 일하고 나갈 존재가 아니고서야 안쓰느니만 못한 것이다. 이런 상급자가 퇴사하지 않는 것은 인사/감사팀의 잘못이다.

때로는 상대가 일방적으로 잘못했고 나는 잘못한 게 없는 상황이라도 내 의도를 관철시키거나 나에게 불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화난 티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반대로 화를 내는 것이 오히려 만만하지 않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소극적으로는, 앞을 길게 이어 발음하는 방식[269]이 있으며 적극적으로는, 반복적인 외마디 발음(약 0.2초 미만)으로 경고하는 방식[270]이 있다. 리듬을 타서 입을 다물게 할 수도 있다. #

분노를 참거나 해소하기 위해선 본인에게 맞는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경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축구에서 공격수로 활약을 하면서 공격성을 해소하는 것이다. 화가 풀릴 뿐만 아니라 체력도 좋아진다. 몰두할 만한 취미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다. 이외에 규범 내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문단 20.4를 참고하자.

18.1. 피해의식

무시배척을 많이 당하면 이런 성격이 생긴다. 남들이 본인을 혐오하다가, 나중에는 스스로가 '나는 어차피 무시를 받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들은 주변 사람들이 보여주는 의도, 동기를 마음 속으로 곱씹는다. 게다가 타인을 계속 의심한다. 심지어는 관계가 매우 가까운데도 긴장한다. 어쩔 때는 주변을 적대한다. 아래는 피해의식을 보여주는 어구다.
"누가 내 뒷담화를 하지? 어째서 나에게만 화를 내지? 내가 남자(여자)인데, 어째서 이런 업무를 떠안았을까? 왜 내게 일을 떠넘길까? 내가 xxx한 사람인데 왜 이런 하찮고 단순한 것을 시키지? 모두가 나를 싫어하고 따돌린다. 그대는 어째서 나에게 거짓을 말하는가? 혹시 뒤에서 조종하는 놈이 누구인가?"

그런데 상대를 원망하거나, 상대에게 하소연을 하거나, 상대가 왜 그런 기분 나쁜 태도로 대하는지 물어봤자 상대가 대답하지 않는다. 설령 대답해도 아주 두루뭉술할 뿐이다. 정말 희소한 일이지만 아주 솔직하게 자기 의도를 말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을 싫어하는 상대라면 자신을 기분 나쁘게 하려는 의도로 그렇게 대했을 것이고, 자신을 좋아하는 상대가 그런 식으로 자신을 대했다면 이런 캐물음은 자신을 싫어하게 만든다.
을: "정말 기분 나쁘네요. 도대체 왜 저만 가지고 그러시는데요? 왜 저한테만 그걸 숨기는 건데요?"
갑: "핫핫핫! 그건 OOO!^#♥#*~)하기 때문이야. 이제 오해가 풀렸니?"
을: "네! 고마워요!"

이딴 건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실제로 대부분의 상대는 잔뜩 화나서 온갖 뒷담화를 쏟아내고 을은 대부분 회사를 떠난다.

정: "A는 B야."
병: "한테 물어봤는데 아니라던데?"
정: "무슨 소리야? B 맞는데?"
병: "어, 사실 너 말이 맞아." / "아니면 어쩔건데?"
정: "???"
간혹 의심이 돋아 상대가 거짓말을 한다고 가정하고 역질문을 던지는 경우가 있다. 위 예시 중 교차 검증을 거쳤다는 건 거짓이며 이를 사실인 척 꾸며서 '혹시 모르니 떠보다가 진짜 사실을 내뱉으면 나야 좋지' 싶은 투로 상대방의 사실이 타당한지 시험해보는 것이다. 또한 소문이 본인에게는 제외됐는지 알아보기 위한 트릭이기도 하다. 이처럼 말장난은 잘만 사용한다면 알고자 하는 진실에 가깝게 취조가 가능하지만 문제는 '불신감 하나는 풀고 만다'가 이유가 될 시, 실제 본인에게 오는 피해를 예방하는 것보다 못한 결과를 감수해야 한다. 이러한 역질문은 앞서 가기와 비슷하면서도 자신의 거부 의사를 알아서 판단해 보라는 간접적 개입을 통한 관행 회피 목적도 다분하다는 차이점이 있다.

혐오감을 받는 원인을 제거해서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혐오하지 않게 만들면 이런 피해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 특정인만 반목해도 문제가 많지만, 세상 전체를 원망하고 증오하는 태도도 자주 혐오감을 불러 일으킨다. 이러한 반사회적인 사람과는 혹시라도 얽혔다가 봉변을 당할까봐서도 슬슬 피한다. 본인이 이런 문제를 느낀다면 인지도식 문서를 참고해도 좋다.

18.2. 타인의 잘못을 캐내서 비방하기

지적을 할 때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 기분 나쁜 티를 내면서 '상대방의 잘못이고 나의 잘못은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럴 때 웬만큼 인격 수양이 된 사람이 아니라면 자신의 잘못을 지적할 때 기꺼운 마음으로 인정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대개 화를 내면서 지적한 상대방을 역으로 비난한다. 지적한 사람을 역으로 비난할 건수가 없을 때는 '고자질한다, 융통성 없다, 고지식하다, 원리원칙대로 한다' 등 지적한 것 자체를 비난의 대상으로 삼기도 한다. 누명을 뒤집어썼을 때는 물론이고 세상 누가 봐도 잘못한 경우에도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사람들이 꽤 있다. 우선 지적을 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나도 저지르는 잘못을 가지고 상대가 잘못했다며 비난한다면 상대는 화가 날 것이다.

그리고 지적을 할 때 비난을 적게 받으려면 상대방의 잘못 여부에 관계없이 상대방을 탓하거나 기분 나쁜 내색을 보이지 않는 것이 좋다.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 소리를 들으면 '내가 이 내용을 잘 몰라서 못 알아들었으니 좀 더 자세히 설명해달라'는 식으로 스스로에게 책임을 돌리는 식의 발화를 한다.

본인의 잘못을 변호할 목적으로 상대가 실수한 전적을 캐내기도 한다. "너도 예전에 이러이러해서 깨졌는데 뭐가 잘났다고 나를 지적하냐? 너는 나에게 지적할 만한 깜이 안 된다."란 식으로 말이다.[271] 하지만 물증이 있는 잘못은 일상이나 직장에서의 파벌을 통한 정보 조작으로 없앨 수 있는 수준이 아닌 대부분이 범죄에 연류될 급의 증거로 남겨졌다는 의미니 혹여나 상대방도 실수하는데 본인만 뭐라하냐고 따지는 건 적어도 상황 봐서 하는 게 좋으며 그 집단 내에서 오래 있어야 하거나, 레퍼런스 체크(reference check)에 대비하려면 깔끔하게 실수를 인정하는 게 좋다.

캐내더라도 기억에 오류가 없었는지를 복기해야 한다. 기억이란 본인이 만든 상대방의 허상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오해는 없던 사실로 생겨날 수 있지만 한번 생긴 응혈은 없애는 게 어렵기에 뭔가 미심쩍으면 본격적으로 비방하기 전 대화를 거쳐보고 나서 판단해야 한다.

18.3. 아웅

기억 안 나는 척 연기하거나 당당하게 거짓말을 하는 둥 본인의 고유 언어 및 행동적 약속을 어긴다. 순수하게 사교 목적으로도 쓰이는 유아 연기와 인정 욕구를 위한 앞서 가기와는 다르게 이는 사회적 거리가 멀다면 100% 악의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갑: (을과 대면하여) "A' 대로 해."
을: "이렇게(A') 하란 말씀이시죠?"
갑: (일을 마친 을에게 다가가며) "나 너한테 이렇게 하라고 시킨 적 없는데?"
을: "A' 대로 하라고 지시했었잖아요?"
갑: "그런 적 없다고."

병: "예전에 나한테 빌려간 돈 언제 갚을 거야?"
정: "나 너한테 돈 빌린 적 없는데?"
병: (증거를 보여준다)
정: "아아, 까먹었네."[272]

위 대화의 기저는 본능적인 책임 회피가 깔려있다. 일반적인 수평관계에서 할 경우 살인나기 딱 좋지만, 유아 연기의 부작용과 권력이 상호적일 시 표면적으로는 수평관계를 지향하고 있을지라도 대놓고 말장난을 하는 상대는 사내 정치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없던 것으로 만들 자신이 있는 믿음과 정치질이 합쳐 상습적이고 은밀하게 일어난다.[273] 본인이 꺼낸 말을 무를 수 없을 때에도 임시방편으로 쓰이며 만일 실패 시 거짓말을 인정한 것보다 후폭풍이 크지만 실익이 명예를 역전하면 별 감흥이 없을 수도 있다.

현실에서는 내가 이 말을 해서 무슨 이득이 있는가를 잘 설득하면, 알고도 모르는 척 해선 안 될 행위조차도 지식 부재의 면제가 적용되며 함께 뭉치면 뱉은 말을 없던 걸로 만들 수 있다. 그런고로 고의로 분노하게 만든 뒤 주변에다가, 자기 편에게 감정 조절 못하여 대드는 사람을 열등하다고 세뇌시키는 방향으로 조장하여 추후 상대가 자신의 잘못을 지적할 시 까임방지권을 얻기 위해 아웅을 활용하기도 한다. 태연하게 조목조목 맞받아치는 사람과 억울해서 흥분해 분노하는 사람을 제3자가 보았을 때 누가 더 사실에 근거하여 얘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지는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으며 최소한 자기 감정을 조절 못하는 건 사회통념상 어리숙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사실 불문하고 공통분모이다. 분노는 비방이 아닌, 서로만이 도발이라고 눈치챌 수 있는 답답한 상황에서도 유발된다. 이때 최선(?)을 다하는 상대방의 농간에 넘어가지 않도록 감정 조절력을 길러야 한다.

때문에 아무리 답답해도 먼저 분노를 보이면 안 된다.[274] 되도록 사내 정치에 가담하지 않는 결정권자가 듣는 앞에서 의견을 내거나 상대가 내게 만들어야 한다. 허위 사실이라도 평판 추락에 가담하는 당사자와 분리된 상황에서 하는 녹음은 불법이니 듣는 사람이라도 많으면 이를 의식해 쉽게 내빼진 못할 것이다.[275]
A: "밥 먹을까?"
B: "그러자."
A: "얘들아, 오늘 B가 식사 비용 전부 내준대~."
B: "무슨 소리야?? 나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A: "너가 방금 쏜다고 했잖아?"

C: "이 사람이 나 성추행했어요!"
D: "무슨 말씀이시죠?"
E: (사전에 C와 입을 맞춤) "맞아요. 지금까지 쭉 지켜봤는데 저 사람이 계속 만졌어요."
D: "???"
이는 '원 화자 → 상대'의 직접 구도가 아닌, '(화자로부터 조작된)상대 → 제3자'를 표적하는 것도 가능하며, 정치질 이외에 논란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환경에서도 성립된다. 또한 표정관리만 잘하면 본인이 지어낸 거짓말을 통해 내막을 모르는 다수를 선동할 수 있다. 즉 상대는 없는 사실을 지어낸다고 따지겠지만, 제3자 입장에서는 본인이 사실로부터 발뺌한다는 화자의 '거짓'을 근거 삼아 화자가 지정한 사람의 명예를 실추하는 게 가능하다. 그나마 A, B의 상황은 악의여도 귀엽게 넘어갈 수 있는 수준에 속하고, 누명을 씌워 뽑아먹으려는 것은 물론 범행을 위해 아예 전문적으로 다가가는 케이스도 존재한다. 방지책은 무턱대고 사과하지 않는 습관[276]을 기르며 CCTV 위치, 블랙박스, 통화녹음으로 자기 변호를 위한 증거 마련에 철저하게 대비해놔야 한다. 은 매우 유용한 아웅 수단이다.
F: "흠흠~ H에 대해서 어떨까."
G: (상대가 혼잣말을 자주 하는 편이라 이번에도 단순히 흘러가는 듯이 자기결론을 할 것으로 예상하여) "..."
F: "사람 말 무시해요?"

I: "OO에 대해서 왜 그랬떠엽!"
J: (상대가 애기어를 구사함으로서 이번에도 단순히 장난식으로 말하는 것으로 예상하여) "그냥 그랬쪄엽!"
I: "나랑 장난해요?"
상대방의 고유된 습관과 일관되지 않은 언행불일치로서 의도를 오인[277]해 양측에서 고의의 유무가 어긋나 생기는 것으로, 누구의 잘못이냐를 떠나 본인도 상대 측 동조자의 주장하에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한 책임을 넘기거나 그렇게 보이도록 조작하는 게 대부분이며 상대방이 제대로 전달할 목적이었다면 애매한 분위기로 넘겨짚지 않도록 신호를 더 흘려서 설명했어야 될 일이니 알아들어야 하는 입장에서는 꼽 주려고 간 봤다고밖엔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패드립 및 성적 비하, 제3자가 판단할 시 상식적으로 할 이유가 없는 발언을 감추기에도 용이[278]하며 이러한 환경에서 시비가 걸리면 전 예시의 D 상황처럼 딱히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은 없다. 여러 사람들과의 소통으로 추출한 빅데이터를 가지고 초면에서부터 뭔가 부자연스럽거나 쎄한 풍채를 보이는 사람을 미리 걸러내어 자정하는 감각을 익히는 게 최선이다. #
K: (L에게 대뜸 질문을 하며) "나이가 몇 살이에요?"
L: "XX살 입니다."
K: (무시하고 원래 담소를 나누던 사람들과 하던 얘기를 계속한다)

M: "스케줄이 있어서 바쁘니까 빨리 먹읍시다."
N: (동의하며 식사를 한다)
M: "혹시 ΔΔ에 대해 관심 있나요?"
N: "아... 네. 그건 왜 물어보시죠?"
M: "죄송한데 스케줄 때문에 빨리 먹어야 돼서."
N: "...??"
인간관계, 특히 초면에서는 나의 답과 상대방의 의도를 서로 교환하는 것이 불문율이다. 여기서는 이를 아예 없던 걸로 만드는 유형이다. 내가 먼저 시작해 분위기를 망친 업보를 주변에서 인지하게끔 하는 무시와는 다르게, 상대가 먼저 물꼬를 트는 동시에 맥락을 없애는 것이다. 결국 떠볼 목적이었단 걸 부정할 수 없게 되어 불쾌감은 커지지만 드물게 상대가 분위기상 답변자에게 피해를 끼칠 우려를 늦게라도 인지하여 맥락을 없앤 걸수도 있다. 이때는 무턱대고 쏘아대기보단 이후 상대방이 아웅이라 생각되지 않도록 해명할 걸 염두에 두어 유예해야 한다.[279]

유아적 요소를 가장한 조롱문화는 가스라이팅에 적합하며 조직 와해, 개개인마다의 능력과 협동을 저하시킨다. 또한 이에 넘어가 '이 집단에서 만큼은 선을 넘는 것이 당연하다'고 수용한다면 구두(口頭)로만 이루어지는 모호한 진실 속 주동자는 뒷전에 본인만 덤탱이 쒸울 위험이 있으니 상대방 말에 과몰입하지 말고 뜬금없이 시비를 걸어도 당황하는 기색을 내보이면 안 된다.

상대 입장에서는 '눈치가 없다=상대가 먼저 적의를 보였다'라고 해석하고 이에 불쾌감을 받아 보복할 구실로 이러이러했다고 항변하는 게 납득은 갈 수 있겠지만 문제는 이게 일반화되면 본인이 피해를 받지 않았는데도 상대에게 해악을 끼치도록 악용하기 쉬워진다는 거다. 심하면 이게 유아 연기인지 아웅인지 구분하기 힘들며 중첩해도 차이가 없는 상황도 많이 발생해 이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상대의 의도를 적의로 증명하는 선입견을 가지게 만드는 부작용이 동반되며 사회성이 좋은데 스스로를 사회 부적응자라고 믿게 만드는 원인도 이러한 과정에서 오는 의미 왜곡이 사회가 인식하는 정상의 범주를 교란시켰기 때문이다.

남을 속여서 이득을 취하는 것도 사회성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굳이 부정은 하지 않겠지만 할 거면 사람 봐 가면서 해야 한다. 장난으로라도 하는 농담조차 통하지 않는 사람도 있으며 특히 과 관련된 문제는 웃으라고 꺼내는 주제가 아니기에 입을 잘못 놀리다간 죽을 수도 있다는 건 알아둬야 한다.

참고로 이 문단은 과장과 일치하는 요소가 많아서 구분이 어려울 수 있는데, 명백한 차이점은 아래와 같이 해명 중 '간접적으로라도 그 주제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지의 여부다.
*나는 그런 식으로 말 안 했다. → (과장)
= 인정하되 너가 오해한 것도 있다.
*나는 그런 말 자체를 안 한다. → (아웅)
= 그런 말을 한 적도 없거니와 나를 모함하려 든다.
함축하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부정하고 기억도 못한다'라는 걸 사실답게 연기하는 것으로서 "처음부터 말을 제대로 했으면 벌어지지 않을 아웅할 상황을 만든 네 책임도 있다.", "과장하는 것으로만 보일 수도 있었다."라며, 상대로부터 훼손된 (상대를 제외한)신의에 대한 책임에 집착하여 태세전환을 시도할 수 있다. 또한, 이젠 활용가치가 없으니 버려도 그만인 사람이라 분노를 유발시켜 스스로가 손절하도록 노리는 차선책이기도 하다.

단, 행위의 부정이 '안 된다'라는 언어로 표출했다는 것을 부정한다고 해서 이를 아웅으로 해석하면 곤란하다. 상대가 A가 발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결과를 만들었다는 것이 A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인지했다는 근거가 안 된다. 상대는 안 된다라고 주장하는 대리인일 뿐이었고 정작 상대가 생각한 A와 눈치껏 판단했을 상대의 A는 충돌할 가능성이 있다.[280] 따라서 본인과 상대가 의미하는 바를 미리 매칭시켜야 하며 이때는 질문도 불사한다.

오리발 내미는 것을 착안해 유아 연기에 속한다고도 생각하겠지만, 다른 사람에게 비호감으로 찍히는 만큼 친목 영역에서의 실익을 기대할 수 있기에 사용하는 것이지 이마저도 과장과 같이 인간관계를 영위하기 위해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일상에서의 아웅은 사교에 전혀 도움이 안되고 이걸 오직 자신의 야욕을 위해서는 쓸 만하다고 생각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그 범위도 소극적으로, 또 은밀히 좁혀서 사용하기 때문에 이것도 생존에 필요한 묘수라고 여기겠지만, 결국 '얼마나 잘 속이느냐?'는 사회성의 제1 목적이 아니기에 역설적으로 사회성이 좋아보이게는 포장할 줄 알지, 실상은 이 문서가 존재하는 의도와는 다르게 흘러간다.[281]

19. 갈등 해결책 미흡

인간관계에는 필연적으로 갈등이 있다. 갈등을 잘 해결하는 것이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 중요한 대인기술이다. 갈등 해결이 미숙하면 서로간에 갈등이 증폭되고 확산되면서 양쪽이 심한 감정 손상을 입는다. 그 후 서로 간의 공격으로 인해 어느 한쪽이 자신의 권리를 손상당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대개 인격이 성숙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인간관계를 유지해 나가면서 일어나는 갈등은 상당히 단순하며 대화, 기다림(시간)을 통해 해결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여기서 갈등이 증폭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지나치게 직선적이고 강하게 표현하는 경우
    이성적으로 생각해 봤을 때 '자제해야 한다'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충동적인 성격 때문에 화나서 자제하지 않고 말한다.
  • 자기중심적 사고
    예를 들어 상대가 납득할 수 없는 비난, 사회통념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요구를 한다.
  • 상대의 비위를 거슬리는 말을 하는 걸 본인은 모름
    예측 능력의 부족 때문이다.
  • 상대가 기분이 나빠진 이유나 내용에 대해 전혀 들으려 하지 않음
    생각 및 관점의 차이, 가치관, 이익의 충돌 등일 경우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것조차 아예 인정하지 못해서 문제를 일으킨다. 상대방이 자신에게 화를 낼 때는 '너의 행동을 고쳐서 나를 더이상 기분 나쁘지 않게 만들라'가 핵심이다. 이 의도를 지켜 주지 않으면 상대는 화를 내거나 더이상의 대화를 거부하게 된다.

한쪽이 기다려서 해결될 문제라면 그나마 간단히 해결된다.[282] 하지만 대화나 기다림 정도로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이 세상에는 너무 많다. 상대가 무뢰한일 경우 싸우거나 법적 조치를 취해야만 겨우 해결이 가능하다. 만일 사기를 칠 작정으로 주문한 물건과 다른 물건을 보낸 후 거짓말을 하는 가게가 있으면 법무사 끼고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하겠다고 내용증명을 보내야 간신히 떨어져 나간다. 의사소통이 안 되어서 그런 게 아니고, 원래부터 거래처를 속이고 한탕 해먹겠다는 마음이나 하급자를 노예처럼 부리겠다는 마음이 강한 철면피라서 그런 것이다. 어떤 건 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이건 누구에게나 귀중한 것이기에 내 돈 쓰기보다는 소송, 싸움 등의 수단을 더 선호하기도 한다. 이 수단 안에서 해결이 안되면 상당히 힘들어진다. 갑과 을, 법적으로 상대가 정당한 경우, 천재지변 등의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사회성이 좋다고 갈등이 알아서 피해가지도 않는다.[283]

또한 미성숙과 갈등을 동일선상으로서, 자존심 싸움이라는 유아적 행위로 과장하여 해석하는 외부로부터 묵인을 강요받고 학습된 결과, 비판에 개입하는 걸 미성숙이라 비꼬는 바람잡이의 존재로 인해 악습을 방관하는 게 관계의 신의가 돼 버리는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이 때문에 대화 없이 기다리기만 하는 것을 능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도 한데, 이는 상대방 눈엔 갈등으로부터 토껴 버리는 것으로 오해해 무책임으로 비춰질 수 있다. 갈등을 해결하지 못하면 본인도 손해를 보는 상황인지를 잘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흔히 말싸움의 다음 단계로 진입한 사람들 중 하나를 붙잡는 광경을 보았듯이, 갈등 해결 의지라곤 없는 상황에서 포옹하거나 어깨를 감싸 서로의 거리를 벌려 사전에 유혈 사태를 막는 진정용으로 쓰이곤 한다. 상대가 무기를 들었을 시 아예 그 자리를 뜨는 것이 좋다. 본인이 충분히 제압 가능한데도 불구하고 줄행랑치는 건 괜히 겁쟁이라서 그런 게 아니다. 상대를 도발해 자존심과 갈등 해결을 모두 다 챙기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며 감당할 자신이 없어도 비난받지 않기 때문이다. 제3자에 의한 도발로도 몸싸움이 벌어질 수 있으며, 구경하고 싶어서 (실제 싸울 분위기가 아니어도) "싸워라. 싸워라 ㅋ."라며 고의로 갈등을 부추기는 상황도 이와 같다. 정말로 예민한 사람은 "에?", "아?", "하?"라는 외마디로도 극단적인 상황이 일어날지를 미리 예지하여 피신한다.

'어차피 말해봤자 도움도 안 될 것이다/외면할 것이다'를 마음 속에 깔고 전전긍긍하다 정작 말했으면 갈등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의 도움을 놓쳐 악화되는 상황도 종종 발생한다.

사과는 득될 게 없으면 안 하는 게 좋다. 만일 해야겠다고 마음 먹는다면 대리로 전달하는 것, 술기운을 빌려서 하는 것, 상대가 비몽사몽한 상태에서 하는 것은 피하자. 나와는 관련 없는 사람들이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지 않는다고 하여 해결이 안 된 것처럼 트집을 잡아서는 안 된다. 이미 비밀리에 화해를 마쳤을 수도 있고, 공개했는데 본인이 못 본 걸수도 있다. 성인 이전에는 표정 연기 좀 하면 그럭저럭 넘어간다.

19.1. 이해관계

돈, 권력, 이성문제 등이 걸린 경우, 어느 쪽이 옳고 그르고에 관계 없이 갈등이 쉽게 벌어진다. 그리고 이런 '핵심적 이익'의 범위는 사람에 따라 넓게 해석될 수 있다. 합리적인 말은 이익을 빼앗기는 상대를 절대 누그러뜨리지 못한다. 이런 갈등 요소가 걸려 있을 경우 어떤 설명을 하더라도 변명이라는 둥 헛소리를 한다는 둥 말을 막아 버리고 소리를 지르는 등 대화를 거부하고 트집을 잡히게 된다. 다만 "내가 이익을 보기 위해 네가 손해를 봐야 한다."라고 말하면 사회적 지지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예의가 없다, 인간성이 없다, 이 없다, 잘난 척을 한다' 등의 공격적 완곡표현을 써서 비난한다.
  • 돈, 권리
    신문 배달을 끊고 다른 신문으로 바꾸겠다고 하거나, 보험을 가입해주겠다고 해놓고 29일 안에 청약을 해지했다고 해보자. 이러면 직장에 찾아와서 쌍욕을 하면서 30분 넘게 소리를 지르는 경우도 있다.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상대로 몇천원 정도의 문제로도 죽일 듯이 싸우는 사람들도 있다. 서비스업에서 업자가 잘못했는데도 소비자에게 뒤집어씌우는 것 역시 돈을 보상해 줘야 할까봐 아까워서 생기는 문제이다. 직장에서 "누가 잘못을 저질렀느냐, 누가 제대로 못하느냐." 등 논공행상은 돈, 권력이 동시에 걸린 문제라서 쉽게 싸움이 벌어진다.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 해도 돈과 권력을 빼앗기기 싫어서 거짓말을 하면서 잘못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가령 부하의 귀싸대기를 때리고 회사 돈을 훔치다 걸리고 심지어 사람이 죽거나 다치더라도 정작 그것 때문에 징계를 당하면 '부당해고를 당했다'면서 항의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은 알지만 권력은 가지고 싶기 때문에 자신이 잘못하지 않았다고 우기는 것이다. 직장에서 하급자가 자신보다 잘 하면 자신의 명예가 흔들릴까 두려워 일부러 숨기고 욕하면서 괴롭히는 것도 이런 사례이다.
  • 이성 문제
    여자친구 앞에 있는 남자에게 다른 남자가 기분 상하는 말을 했을 때 쉽게 싸움이 나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이익을 실현할 이성의 반응으로도 관계는 갈라진다.[284]

평범한 문제의 경우 둘이서 원만히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지만, 돈/권력/이성문제가 걸린 상황에서는 이기적이고 착취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의 수가 훨씬 늘어난다. 특히, 권력관계가 없을 경우 욕하고 소리 지르는 정도가 한계이지만, 직장 상사라거나 군대 선임 등 권력관계로 얽혀 있을 경우 쥐어짜듯이 착취하면서 괴롭히는 상습적 갑질에 시달리게 된다.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자기 자신을 탓하거나 자기 자신에게서 문제점을 찾으려고 노력하면 안 된다. 문제는 예절, 인간적인 정, 태도에 있는 게 아니라 실제로는 상대방이 핵심적 이익을 얻고 싶어하며 나에게 손해를 강요하는 마음가짐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대가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그런 불평등한 요구를 나에게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런 요구가 나왔다는 거 자체가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증명이다. 이 때문에 약자가 강자를 공격하거나 강자가 약자를 공격하는 것을 보았을 때 꼭 한쪽이 잘했고 다른 쪽이 잘못했다고 섣불리 받아들이거나 한쪽 편을 들면 안 된다. 실상을 알고 보면 한쪽이 떼를 쓰면서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중일 수도 있고 정반대로 부당한 모욕을 당한 사람이 정당한 항의를 하고 있는 중일 수도 있다.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상대방이 스스로 자신의 잘못을 알아차려서 부당한 요구를 관둘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그렇게 자기반성을 할 만한 사람들은 그런 문제로 그런 갈등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해야 할 것은, 상대와 나의 관계가 갑과 을인지, 평등하고 지속적인 관계인지, 아니면 스쳐 지나갈 관계이고 나에게 해를 끼칠 수 없는지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
  1. 갑과 을 문서에 설명되어 있다. (일반인-공무원, 부하-직장상사, 언론, 정치인, 하청업체-원청업체, 대학원생-교수, ...)
  2. 상대에게 이것이 얼마나 부당한 요구인지를 설명하든지, 내 쪽에서 양보하면서 부당한 요구를 들어주든지, 싸우고 관계를 끊든지 하는 방법이 있다.
  3. 대개 화를 내고 관계를 끊는 쪽으로 해결된다.

대개 이런 잘못을 한 사람의 잘못을 밝힐 경우 상대방은 그것이 정당한 이의제기였더라도 부당한 공격이라고 주장하며 보복을 가하고 이내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사람의 앙심은 몇 년, 몇십 년씩 오래 간다. 따라서 1:1이 아니라 다른 모두에게 부당함을 호소하려면 외부 개입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더 자세한 사항은 소원수리, 내부고발 문서로.

19.2. 이상한 사람 대상

적어도 다음 경우에 대해서는 적절한 대책을 세워 놓을 필요가 있다. 많지는 않지만, 순진무구한 사람이 사이코패스같은 사람들을 만나서 이용당하는 안타까운 사례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반대로 대응이 제대로 될 경우 저런 사람들이 쪽박을 차고 역관광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 자기 자신부터 정신병이 있기 때문에 바보같은 판단을 하거나 조직에 분란을 일으키기 좋아, 실체가 드러나면 결국 나쁜 사람으로 몰려서 쫓겨나기 때문이다.

직접적이진 않지만, 성격적 아류에 관해서도 참고하는 것이 좋다.

19.2.1. 착취

누가 봐도 도를 넘은 무례한 사람을 대하면서도 '내가 잘 하면 상대도 언젠가는 내 마음을 알아줄 것이다, 내가 잘 하면 언젠가는 상대도...'같이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를 착한 아이 증후군이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다. 세상에는 별의별 악랄한 사람들이 있다. 멀리 볼 것 없이 나무위키만 보더라도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문서를 지우고 다른 사람들이 당황해하는 것을 보며 즐거워하는 반달리즘 행위 등을 볼 수 있다. 세상에는 사람들을 괴롭히면서 집단괴롭힘이나 은따에서 오는 뒤틀린 즐거움을 느끼는 종류의 사람도 있다. 세상 누가 오더라도 교화시킬 수 없는 사람, 누가 보더라도 비정상적이고 불균형한 관계를 요구하며 착취적이고 악의적인 사람도 있다. 소인배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소인배가 세상에 있다 하더라도 얽히지 않으면 피해볼 일이 없기 때문이다. 절대로 안 고쳐지니만큼 관계를 의도적으로 끊든지 이직을 하든지 무시해 버려야 해결된다. 다만 모든 소인배를 피할 수는 없다. 나 자신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소인배에게서 지키려면 사회경제적 힘 역시 길러야 할 것이다.
  • 친교나 거래 목적으로 인간관계를 맺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이용하고 등쳐먹기 위해 인간관계를 맺는 사람들. 맨입으로는 이런 행동이 쉽지 않기 때문에 협박, 비난, 욕설, 비꼬기, 뒷담화 퍼뜨려서 인간관계 망가뜨리기, 고함, 갑질을 통한 불법행위, 범죄 등이 수단으로 추가된다. 이러한 정신적 착취를 일삼는 '에너지 뱀파이어'들은 지인이라고 할 수 없고 그냥 뭔가를 빼앗을 수 있는 셔틀로 생각하는 거다.
    • 심한 경우에는 보증, 사기, 다단계, 사이비 종교 등으로 상대를 완전히 등쳐먹는 경우가 있겠다. 전부 상종도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지만, 특히나 보증은 해당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정상적인 인생을 영위하길 원한다면 가족 간에도 서주면 안되는 것이다. 간혹 운운하며 사회성 부족으로 엮으려는 개논리를 펼칠 때도 있는데, 그딴 같잖은 걸로 인생 퇴갤하는 것보다는 낫다.
    • 돈을 애매하게 빌려가서 떼먹는 경우.
      이때 갚으라고 하면 적반하장으로 화내거나 연락을 끊거나 돈 빌려준 사람에 대한 뒷담화를 한다.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며 모함한다,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든다, 치사하고 치졸하다, 돈 몇 푼 가지고 탐욕스럽게 행동한다." 등의 소리를 하는 습성이 있다. 상황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듯이, 고액이라 말해도 될 수준으로 쌓일 경우 몇년간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사람이 순식간에 돌변해 돈을 떼먹는 경우도 많다. 전문적인 사업가라 해도 이런 돌변을 감지해 낼 능력은 없으므로 떼먹히는 경우가 있기에 따라 친교를 유지하고 싶으면 그냥 돈을 빌려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아라. 또한 빌리지도 않는 것이 좋다. 자신이 위의 예시와 같은 사람이 될지도 모름을 명심하자.
    • 뭔가 부탁을 해놓고 이에 응하지 않았을 시, 적반하장으로 자신이나 자신의 가족을 비난하는 경우.
      "우리가 남이가? 이런 부탁을 거절하다니 네가 나를 그따위로 봤냐? 내가 형으로서, 내가 친구로서, 내가 누나로서 너를 참 좋게 생각해왔는데 너의 이기적인 행동에 실망했다!"

      "그런 것 하나 하나 가족과 의논해야 하다니, 정말 소심하고 한심하고 찌질하다, 멍청하고 아둔한 것 같다."

      이런 멘트를 통해 죄책감을 유발하는 경향이 있는데, 정말로 아끼는 사람에게는 함부로 이런 말로 상처 주기 힘들기 때문에 절대로 이런 말을 하지 않는다. 이런 이들의 마음 속에는 삥 뜯겠다는 생각밖에는 없다고 보면 된다. 마음이 약해서 넘어 가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압박하는 것이다. 죄책감을 유발해서 통념적으로 안 되는 것을 억지로 얻어내기 위해 당신을 비난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예 관계를 끊어놓아야 한다. 이런 부탁에는 주로 돈을 빌려 달라, 보험을 들어달라, 투자를 해달라 하는 종류가 많다.
  • 받는 만큼 주지 않는 사람들.
    몰라서 이러는 경우도 많으므로 소인배라고 딱 찍어 부르기는 애매하지만 대하는 입장에서 인간관계를 끊는 쪽이 유리하다는 점은 똑같다.
    • 자기가 필요할 때는 나를 찾지만, 내가 필요해서 그를 찾을 때는 무시하는 사람. 자기가 만나기 귀찮으면 바쁘다고 무시하거나 읽씹을 한다.
    • 내가 도움을 주었을 때는 잘 받아먹다가 나에게는 도움을 주지 않는 사람.
      가령 밥, 술을 얻어먹을 생각으로 접근하고 얻어먹는다. 하지만 내가 사달라고 하면 "무슨 물건이라도 맡겨놓으셨냐, 내가 그래야 할 의무가 있느냐, 좀 그렇다." 등 불만을 늘어놓거나 연락을 끊어버린다. 또는 몇 년간 연락이 없다가 갑자기 결혼을 한다고 청첩장을 보낸다. 기쁜 마음으로 결혼식에 참석하고 10만원 정도의 축의금을 냈는데, 내 결혼식에는 오지 않는다. 축의금도 내지 않는다.
    • 부탁해 놓고 그에 걸맞은 보상을 하지 않는 사람.
      예를 들어 변호사 면허 소지자에게 10시간 일을 시켰다면, 그것이 노가다든 법률 상담이든 뭐든 간에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최소 30만원의 경제적 보상은 해줘야 한다. 아니면 변호사가 부탁하는 사람을 상대로 어떤 반대 부탁을 했을 때 들어줘야 한다. 이걸 일당 3만원 주면서 충분한 보상을 했는데 왜 나를 무시하냐며 퉁치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이상 상대할 필요가 없다. 사실 지적할 필요도 없는데, 왜냐하면 이런 이들은 이런 점을 지적받으면 "다른 사람들은 공짜로 해주는데 왜 너만 돈을 요구하냐! 치사하고 더럽다!"하고 욕을 한 뒤 자신을 위해 공짜로 봉사할 사람을 찾아서 동분서주한다.

19.2.2. 비약

자주 적을 만들어서 싸우고, 갈등을 풀어 내려는 노력조차 안 하고 사과만 바라는 싸움꾼과는 쉽게 싸움이 일어 난다. 몇 해를 잘 지내도 한 번만 비틀리면 관계가 끝난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과는 가깝게 지낼수록 싸울 일이 늘어난다. 이런 이들이 누군가를 뒷담화하면 거기에 끼지 말고 무시하라. 다음은 주의 대상들이다.
  • 뒷담화 대상의 실명을 거론하고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는 사람
    가령 보통 사람들이 "모질게 대하는 차장이 있다. 나에게 부당하게 D를 주었다. 화난다"라고 이야기한다면, 이들은 "마라도 출신인 김철수 차장이 나에게 부당하게 D를 주었다. 화난다."라고 말하고 다닌다. 상대와 관계를 되돌려 놓으려는 사람은 이렇게까지 직접 상대를 깎아 내리지 않는다. 이렇게 상대를 깎아 내리면 당사자에게도 내용이 들어갈 확률이 무척 높다. 이런 뒷담화를 하는 사람은 상대와 관계를 회복할 생각이 없고 상대의 귀에 들어가는 것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뜻이다.
  • 여러 사람 앞에서 누군가를 대상으로 욕설, 고함 등의 폭언을 저지르는 사람
    당하는 사람이 나이가 어리거나, 사회적 위치가 낮아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사람들은 아랫사람에게도 매우 정중하다. 이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자신의 폭언으로 인해 고통받아도 자기합리화를 통해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부류다.
  • 개인적인 친교가 없는 사람 앞에서도 다른 사람에 대한 뒷담화를 하는 사람들
    예를 들면 간장 두 종지 같은 것, 또는 거래처와 회식을 하는 와중에 직장동료 김철수에 대해 뒷담화를 한다. 뒷담화를 한다는 사실이 퍼뜨려져도 후폭풍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이다.
  • 고의로 생긴 일인지, 자신의 착각으로 벌어진 일인지, 의사소통의 부재로 인한 오해로 벌어진 일인지 불확실한 상황에서 고의로 했다고 우기고 떠벌리고 다니며, 나중에 상황이 밝혀진 후에도 정정하지 않고 사과하지도 않는 부류
    악의적으로 상대를 망가뜨리기 위해 거짓말을 꾸며내는 부류도 있지만, 습관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항상 이간질하는 부류도 있다.
(저녁 5시)
A: "C가 오늘 결석했네? 무슨 일이지?"
B: "더이상 우리하고 스터디하기 싫대. 시간낭비라서 앞으로 자기 혼자 하겠다더라."
(10분 후)
C: "지각해서 미안해."
A: "너 불참하겠다고 다른 아이들하고 이야기된 거 아니었어?"
C: "무슨 소리야? 버스가 막혀서 그랬어."
A: "B 네가 아까..."
B: "내가 뭐? 지각한 사람이 잘못한 거잖아. 다른 사람들은 제시간에 오는데 왜 자기 혼자 늦는대? 스터디에 열의가 없는 거지."
평범한 사람은 아래의 반응이라서 매우 다르다.
"전화하자." (상황을 풀어보려는 방책을 내 놓는다)
"심심하면 결석이나 지각이네. 이런 놈은 당장 내쫓아야지." (불만스럽다고 얘기할 뿐, 거짓말을 꾸미지 않는다)
"몰라. 늦게라도 오겠지 뭐." (모르면 모른다고 얘기한다)

이런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 중에는 평범함을 넘어서는 자기만의 조율법이 정상이라 받아들여 주변 사람을 자신과 급이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실제로 성격장애인 경우도 있다. 이게 병인지를 몰라서 치료를 받으러 가지 않는 것을 보고 주변인들은, 병이라는 생각보다는 '성격 더러운 사람이네'하고 넘어가기 때문에 모르는 경우가 많다.

비약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자주 실수하는 것 중에, '상대가 반응을 안 함 = 사회성 부족'으로 확장하여 뒷담화의 신빙성을 보충하려 든다는 점이다. 여기서는 상대방으로 하여금 '이 사람이랑 대화한 결과 사회성이 좋음을 객관적으로 보증한다 → 다수의 근거로 저 인간의 수준(=사회성)이 증명된다'의 과정이 중립적으로 전달되기엔 헛소리를 퍼트릴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상대방의 사회성이 의심되기 때문에 차라리 듣고만 있는 게 낫다고 판단해 함구하는 것일 수 있다.

19.2.3. 상대방의 사회성 부족

가령 혼자만의 기대를 가지고 사회적 거리를 넘는 부탁을 한다든지, 자신에게 부탁을 해놓고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든지... 이런 경우 자신이 참아 주든지 상대에게 사회성을 가르치든지 하는 수밖에 없다.[285]

사실, 상대 역시 본인의 사회성 부족 문제를 자각하고는 있고 또 개선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사회성은 그 이론을 알더라도 이를 실전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에 관한 해답을 알려주는 발판이 있어야지 터득할 수가 있기 때문에 최대한 가깝게 모방하려다 퇴짜맞는 경우가 생겨나게 되며 각자가 정한 정상인의 기준에 어울리는 보상 순리가 그들에게는 이미 낙인을 찍혔기 때문에 애매한 기준의 당위가 널널한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라고 치부하여 오는 박탈감으로 근본부터가 사회성을 개선하여 오는 가치가 전무해진다고 판단하게 된다.

상대가 받아들이는 사회성이 경험상에서 모방된 최적의 결과값이라 해석할 수 있다면 결국 사회성 부족을 지적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사실은, 지적당한 상대에게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떠넘기는 무책임에서 비롯된 게 크며 듣는 이는 '정상적인 지능이면 문제가 되기 전에 미리 파악하고 빈틈을 찾아 수정해 적용할 것이다'라는 제3자의 비정상의 정상화의 가능성을 객관화하기보다는, 상식으로서 배척당하지 않기 위해 마땅히 자신이 따지지 못한 상황을, 사회생활을 잘 하려면 사람들끼리 부대껴야 하며 집단에 동화하는 것을 의무로 강조하여 오는 갈등 속에서 '욕을 안 먹기 위해 욕을 먹으며 무지를 공유한다'라는 모순과 개인의 책임으로 인식하도록 조장하는 편의주의적 사고에 지배된 기성세대의 조언에 반강제로 순응해 이에 제기를 당한 기존의 문제를 감추기 위해 나온 기제 간의 충돌이 개인 간의 치부로 '드러났다'며 과장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드러난 실수마저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자기 검열의 순환논리에 빠지는 과정 또한, 스스로의 한계를 정하도록 방관한 집단과 동화되기 위해 왜곡된 꼬리표를 타인에게 강요해 소속감을 증명하는 자체로 사회성이 좋다고 위안을 삼으려는 잘못된 인지도식으로 인한 것이다.

후천적으로 선별된 긍정적인 가치관은 당사자에겐 뜬구름 잡는 소리가 되었고 이를 공감능력 미달[286]로 억압해 순응시켜 촉발하게 된 문제점은, 진화적 특혜 역시 당연하다는 듯 아량을 탄압하여 사회성을 증명하려는 사람들로부터 도덕적 해이를 부추겼다는 점이다. 사회성 부족. 즉 찐따를 멸시하는 그들만의 당위성을 보충하기 위해 정작 과거였던 자신은 모든 상황에서 사회성을 대체할 수 있는 외적 요건을 신격화하는 동시에 갈구하려는 이중성에서 도피하려는 연기를 평준화시켜 (자신 기준의)아랫 계급에게 패악을 부리는 특혜를 후천적이자 동시에 '선천적으로 물려 받은 척' 하기 위한 올려치기라는 인습적 과시로 회귀하게 되었고 이에 반발한 아랫 계급에게는, 사회성을 기르는 것이 특혜를 물려받지 못한 부류와 같은 대우를 받는 활로가 되었으며 이의 존재는 후천적으로 정립한 노력의 산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최선이자 사회성을 편익으로만 이용하는 주류로 인해 허락된 척 강요하는 동시에 사회성의 원 의미를 희석시키며 추후 그 주류의 방향성이 뒤집어질 시 오게 될 혼란을 납득시킬 명분을 만족할 수 없는 욕구불만으로 원초성을 불특정 다수에게 해소하는 추태를 여론의 도구로서 행사하여 인간의 밑바닥을 증명할 뿐이다.

본인의 사회적 선망과 그 환원 가치가 퇴색되는 회의주의가 만연해진 이상 현재 자신이 알고 있는 게 정상인으로서 당연하게 거쳐야 될 성인식급 위상을 지니는 규율이라 할지라도 그게 미래에서도 마냥 긍정적으로 유지가 된다는 보장을 할 수가 없다. 지금 보는 행동이 어딘가 모자라 보일지라도 시대를 지나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었던 것들이 태반이다.[287] 이의 파생 중 드러난 선천적인 개성을 약점으로 치부해 봤자 사회 전체의 이익에서 나의 이익으로 낙수한다는 보장도 없으니, 주류에 맞게 받아들여 오는 실익이 개인 입장에서는 부적응을 구분하여 오는 실익보다 크기 때문에 과거의 근거를 가지고 부적응의 유무를 따지는 건 무의미하다. 각각의 사회성 부족은 돈이 되면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쟁취 할 기회주의자의 재화이다.

정리하면, 각자 서로가 사회 부적응을 현실에 맞게 보완해주는 포용력이 필요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으니 물고 뜯고 안달나는 것이다. 진영 논리로 머릿수를 채워서 사실 여부를 결정하는 다수 앞에 소수는 침묵을 유지해야 그나마 남아있는 자존심이라도 지킬 수 있으니 이를 해결하는 건 무척 어렵고 서로가 적의라 느껴도 실수이겠거니 넘어가는 관용이 첫 발을 내딛어가는 걸음마 단계에 위치한 입장에서는 소망일 것이다.

정보 획득을 위해서는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을 배려하는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하다. 친하게 지낸다까지는 아니나 본인이 먼저 다가가면 그 사람만이 알고 있는, 굳이 물어보지 않았기에 담아두고 있던 고급 정보를 알아낼 수도 있다.

19.3. 거짓말

사람들은 보통 거짓말 하는 사람을 싫어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불편한 진실에 대해 말하는 걸 더 싫어하기 때문에 눈치를 봐야 된다.

19.3.1. 피학적 해방

어떤 주제는 상대방이 느끼기에 솔직한 게 아니라 불쾌한 것이다. 거짓말을 하라는 게 아니라 굳이 숨겨도 되는 부분을 모두 밖으로 꺼내지 말라는 것이다. 누구나 이런 컴플렉스와 개인사가 있는 만큼 그것을 자랑이랍시고 입 밖에 꺼낼 필요는 없고 상대도 본인의 평판을 올리기 위해 위로하는 척하며 퍼트릴 것이니 거짓말이라도 아닌 척 하는 게 백번 낫다.

물론 이런 이야기가 '자기 개방'으로서 상대방과 더욱 큰 친밀감을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런데 그건 친근한 사이에서나 통하지, 먼 사이에서는 절대 통하지 않는다. 이는 자기 개방을 하느냐 마느냐가 아닌 상대방의 자기 개방 속도에 맞춰주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이다. 지나치게 쑥스러워하다가 망하는 경우보다는 지나치게 서두르다가 망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 개인사, 가족사: 전과, 이혼, 불륜, 불행한 과거, 정신과 기록.
  • 과격한 정치적, 종교적 의견.
  • 자신의 창피한 고민 털어놓기.
  • 특히 연애를 하면서 현재 연인에게 과거 연애사를 꺼내는 경우가 이런 문제를 많이 불러 일으킨다. 그걸 듣고 좋아할 사람은 없다.

19.3.2. 거절하기 위한 거짓말

거절은 무조건 필요한 사회기술이다. 모든 사람들 부탁을 다 들어줄 수는 없는 세상이다. 돈, 시간, 에너지를 포함한 모든 자원은 유한하다. 독자가 가장 아끼는 사람들 부탁만 들어줘도 모자라다. 따라서 어떤 부탁을 받았을 때 그것을 들어줄 필요가 있는지, 들어주고 싶은지, 거절하려면 어떻게 거절해야 욕을 적게 먹을 것인지를 따져보면서 대답해야 한다. 상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으면 상대가 친하든 말든 기분 나빠할 것이다. 다만 어떻게 거절하는지 방식에 따라 덜 기분이 나쁜가와 더 기분이 나쁜가만 있을 뿐이다. 거절할 때는 적당한 핑계를 만들어야 하지만 정말 말같지도 않은 부탁은 딱 잘라야 한다.
  • 딱 잘라서 거절하기 (나쁜 핑계)
    "싫어요."라고 말하는 정도만 되어도 소인배에 의해 인정머리 없니 인간같지도 않니 하는 온갖 누명을 덮어쓰게 된다. 명명백백하게 진상을 밝힌다면야 아무것도 두렵지 않으니 소용이 없지만, 상대가 소인배 소리를 듣고 다닐 정도에 염치없는 부탁을 함부로 하고 다닐 정도면 거짓말을 꾸며내어 이간질을 하며, 보통 사람들은 그럴듯한 이간질을 들으면 일일이 확인해보지 않고 불쾌감을 느끼기 때문에 앙칼지게 거절하면 골치아픈 일에 얽히기 쉽다. 반대로 상대에게 얻을 것이 없고 보복할 걱정도 없는 사람이라면 신경질적으로 날카롭게 거절해도 피해를 보지는 않는다.
  • 안 되는 이유 설명하기 (나쁜 핑계)
    "이러저러해서 안 된다. 못 하겠다." 이러면 급한 처지에 있는 상대방은 의지와 노력의 부족이라며 비난하기 쉽다. 특히, "귀찮다.", "배고프다."와 같이 너무 솔직한 핑계는 높은 확률로 배척한다.
  • 굉장히 미안해하며 거절하기 (나쁜 핑계)
    이게 왜 나쁜 핑계냐면, 상대방이 나쁜 놈일 경우 이걸 역이용하여 다른 수작을 부리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 확인하기 어려운 거짓말 (좋은 핑계)
    "가족과 약속이 있다. 요즘에 회사 일 때문에 바쁘다. 그날은 약속이 있다. OOO 때문에 아프다." 이런 핑계는 확인하기도 어렵고, 섣불리 비난하다가는 상대방이 나쁜 놈 취급 받기 쉬워서 확인해보지 않고 그냥 넘어간다. 다만, 개념없는 나쁜 놈의 경우 '무슨 약속이냐? 무슨 일 때문에 바쁘냐?'고 캐물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딱 잘라 거절하고 관계를 끊어라.

이런 핑계를 부탁받을 때마다 하다가는 그냥 자신의 부탁을 들어 주기 싫어한다는 것을 상대방이 눈치챌 수 있다. 그러므로 들어줄 수 있는 부탁은 적절히 들어 주면서 의심을 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19.3.3. 비밀 유지

세상에는 계약 말고도 철저히 숨겨주어야 할 비밀이 있다. 가령 교사가 기초수급자 아동의 신상명세에 대해 떠벌리고 다닌다면 해당 아동에게 큰 상처를 주는 것부터 시작해 심지어는 교직을 잃게 될 수도 있다. 상사가 사표를 냈는지 아닌지 동료들은 궁금해 할 수 있지만, 사실을 확인해 줄 경우 직장에서 잘린다. 게다가 모르고 비밀에 대해 물어 봤는데 '듣는 사람에게 해가 될 정도로 위험한 비밀'을 전달해 줄 경우 듣는 사람과도 인간관계가 나빠진다.
  • '치사하다, 별거 아닌 비밀로 비싼 체 한다, 우리 사이에 이런 것도 숨겨야 하냐, 남 비밀은 듣기만 하고 너는 안 알려 주냐' 등 공격적인 압박을 하기도 하고, '힌트라도 주고 카테고리라도 알려주는 등 아주 약간만 알려주면 더이상 귀찮게 하지 않겠다'면서 회유하기도 한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비밀을 캐내서 퍼뜨리기 위한 수단이다. 정말로 중요한 사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억지로 숨기려는 비밀을 단순히 재미있다는 이유만으로 캐내려 들지 않으며 상대의 처지를 아주 하찮게 얕보고 있다는 것을 의심할 수 있다. 타인의 비밀은 알았을 때 재미있는 것이므로 이런 사람들을 상대로 비밀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걸핏하면 '조금만 말해달라,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라고 말하나 며칠 있으면 온 동네에 다 소문이 나있는 것을 볼 수 있다.[288]
    적에게 비밀이 누설되지 않게 하려거든, 그 비밀을 친구에게 이야기하지 않도록 하라. - 벤저민 프랭클린

    무조건 침묵이다. 아무리 아는 것이 많더라도 절대 손톱만큼이라도 확인해 주면 안 된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거나 조직을 탈퇴(가급적 몰래)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어영부영 관계를 정리하다간 그동안 비밀을 알면서도 꺼내지 않았던 것에 대해 '나한테만 알려주지 않았다'는 배신감을 느낀 상대방에게 오해였다고 따지기가 힘들어진다.
  • 비밀을 지키지 않는 사람과는 절대 비밀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289] 비밀을 알려주는 게 우정이나 인의를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이를 발설해도 당연할 뿐더러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들에게 비밀은 공공재이며 떠벌리다간 뭐가 진실인지도 분리가 불가능한 지경까지 와전된다. 부모 역시 비밀을 유지한다는 보장이 없다. 평소 친구끼리 허울 없이 얘기하는 성격이라면 더더욱 알려주면 안 된다. 본인이 비밀을 까도 된다고 앞서서 판단할 수 있을 상대의 약점을 저격해 방심하다 새어나가는 경우도 있다.[290] 남 이야기가 아니면 대화를 이어가지 못하는 인간들도 많다. 우스갯소리로 꺼내는 말 전부 만담에서 까발려질 각오를 하고 입 밖으로 내뱉어야 한다.
  • 말은 연결되지 않겠지만 엉뚱한 말을 붙여서 대화를 돌려 보려고 시도하는 것도 좋다. 20~30분 실랑이를 벌인다면 상대가 제풀에 지쳐 포기할 수도 있다.
    • 위를 보충하자면 엉뚱한 말, 즉 헛소리를 하면 상대방이 '내가 이해를 잘 못한 건가'라고 생각하면서 더이상 묻지 않을 수도 있다. 상대방이 또 묻는다면 엉뚱한 말을 흥분하면서 강조하면 (화를 내는 것이 포인트) 상대방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내가 이해가 안 되는 건가', '나 때문에 화가 난 건가. 이 이상은 물으면 안 되겠다' 하면서 더는 묻지 않는다. 또는 헛소리라서 상대방이 무시할 수도 있다. 아예 거짓말을 위한 거짓말을 지어내 종결시키는 방법도 있다.
  • 비밀을 알아서 얻는 이익이 없도록 처음부터 하향 평준화하는 법을 습득해 연기하는 것도 좋다. 깊은 인간관계를 지향하는 사람에게는 친한 척 유세떠는 인간들을 분류하는 피로감을 덜 수 있고 거의 매일 같은 옷만 입거나 후줄근하게 다니는 등 스스로를 낮추는 연기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291] 단, 이것도 임시방편이니 주변에 흔적이 남기면 쫑난다.[292]
  • 본인 좋자고 만든 거짓말을 유지할 수 없으면 상대가 알아낼 때까지 잠자코 있는 것보단 사실대로 털어놓는 게 솔직하다는 평가라도 얻는다. 자원이 떨어져 나가기를 원치 않는다면 신뢰를 최우선으로 잡아 방어하는 것이 몹시 중요하다.

19.3.4. 과장

누가 봐도 거짓임을 알 수 있을 정도의 익살스러운 방식에서 입장 차에 따라 겨우 거짓이란 걸 깨닫는 교묘한 방식까지 다양하며 본인이 과장하는 걸 인지 못하는 케이스도 있다. 개그로 사용할 때는 조직 성향에 따라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만 까내리기 위하여 사실을 과장하는 것도 알게 모르게 혼용하여 대화에 쓰이고 있다는 게 불편한 진실이다.
힘들어 죽겠다. → (과로사할 수준까지는 아닌 피로감)
XX한테 뒤지게 맞았다. → (실제 폭행이 아닌 욕설 또는 잔소리)
XX한테 욕 들었다. → (팩폭으로 인한 자존심 하락)
위의 예시는 평소 일상에서 사용하는 온건한 경우이며 사교에서 대화의 물꼬를 틀기 위한 감초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 1. A는 B다.
  • 2. A는 B일 수 있다.
  • 3. C로부터 'A는 B다'라고 할 수 있다.

'B라고 한 적이 없다'라고 1이 말한다면 아웅이며, 2는 가능성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걸 우선시하기 때문에 'A는 B일 것이다'로 화법에 따라 아웅으로 보이더라도 사실을 왜곡하지 않으므로 과장이다. 3은 타인(C)에게 들은 사실과 책임 회피를 동시에 만족하기에 안하무인 태도로 명예를 보존할 수 있다. 이를 본 관찰자는 3의 연계로 소문이 퍼지기 쉽고 정보 오염에도 취약해진다. 여기서 2의 화법을 통한 C의 과장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 문제가 된다.
(행인이 쓰레기를 버리는 것을 A가 목격한다)
B: (A 옆에 있던 사람) "저기요. 왜 안 치우세요."
A: "쓰레기는 방금 저 사람이 버린건데요?"
B: "누가 됐든 먼저 발견한 사람이 치워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이를 보충하면, 도덕적으로 길거리에 쓰레기를 버리는 것, 방치하는 것 모두 문제가 되며 B가 이 점을 지적하는 건 없던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행위이다. 생명과 직결된 사안이면 과장해서라도 주의를 줘야 한다. 다만 여기서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으면서 남이 보기엔 실제 그렇게까지 했다고 보이게 만드는 것이 문제이고 A가 마치 직접 쓰레기를 버린 것처럼 보여지는 관찰자의 시점을 고려하지 않았다. 예시에서의 C를 상황적 맥락으로 바꿔도 차이는 없으며 A가 보는 B의 행위를 자신으로서 원인이 제공됐다고 오해하게 만들어 C가 원래부터 없었던 것으로 조작하는 자기 검열을 유도할 수 있다.[293] 이는 원칙과 도덕적 완벽주의를 강요하는 사회 속 남이 한다고 우리도 따라서 해야 한다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 근거를 사실을 기반으로 과장하면 양반이고 자신이 오해석한 거짓을 과장해 일부 사실과 섞여 사람을 선동해 인과관계를 왜곡시키는 경우도 있다. 해명을 누구한테 시킬지는 분노 조절 이상으로 중요하다.
(약속된 장소로 나와야 할 시)
D: "우리 몇 시까지 도착해야 한다고 했지?"
E: "X시까지 가야 할 걸."
(도착한 D, E를 향해) F: "늦었잖아."
D: "어? X시에 모이는 거 아니었어? 너(E)가 말한 거랑 다른데?"
E: "나 그런 말 안 했는데."
상대에게 의견을 피력할 땐 보통 확언보다는 가능성으로 책임을 회피하는 처세술을 이용한다. 여기서는 화자가 사용한 과장을 눈치채지 못하여 생기는 문제이다. 먼저 D는 과장이더라도 사실로 판단하고 실행하는 게 책임 회피를 위해서 더 이득이다. 왜냐하면 이행하지 않아 발생한 리스크는 의견을 무시한 본인의 책임으로 돌아갈 것이고 이에 확실하게 답하라고 따지는 건 입이 가벼운 사회 부적응자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 직장이라면 상명하복의 구실로 복종을 거부했다는 괘씸죄도 추가해 입장이 난처해진다. 하지만 만약에 악의를 가지고 제시한 E의 논증이, '그럴 수도 있다'를 과장으로 덧씌우는 게 지시자 입장에서 명예를 대변하는 쪽으로 사실인 척 포장되어 왜곡하는 것이라면, 나의 지시로 상황이 잘못 돌아가서 책임을 지게 될 시 말을 못 알아들은 상대 책임으로 덮으려고 고의로 은어를 섞어 상대를 어리버리 타게 만들어 '안 해도 되는 걸 굳이 했냐? 융통성이 없다'와 같은 도박성 과잉행동을 유발해 눈치가 좋은 사람을 솎아내 수동적 존재로 명예를 추락시키는 동시에 '내가 없으면 이 집단이 나(D)로 하여금 돌아가지 않는다'를 제3자에게 비교시켜 본인의 권력을 드높이려는 전략적 아웅으로서 이는 사회성을 스스로 배워나가야 하는 대부분의 사회초년생이 낚이기 쉬우며 이를 가지고 나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판단해 따지려 들다간 되려 역관광당할 수 있다.[294] 결국 E의 입장이나 이를 바라보는 쪽에서나 상대(D)가 확답인 것처럼 말을 지어낸 건 사실이다.

이 외에도 주로 사용하는 방식은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애매하게 끝내는 경우.
"-걸.", "-겠지.", "-할지도?", "-할 수 있다."[295], "-할 가능성이 높다/낮다.", ...
*앞절에 군말이나 부사를 붙이는 경우.
"음~.", "어~.", "그게.", "아마.", "대략.", "대강.", ...
*진위가 불분명한 경우.
"내가 알기론.", "-라고 생각한다.", "너 말이 맞다.", "너가 생각하는 게 맞다.", ...
이는 유아화된 말투나 해요체로 바뀌어도 같다.
"어.", "그래.", "사실이다.", "내 말이 맞다.", ...
상대방의 면피가 가능한 경우 위와 같이 외부 개입이 전혀 없는 형태로 끝내어 만일 사실과 다르면 따질 수는 있다. 그전에 '내 말이 틀릴 수도 있다'라는 것을 미리 못 박아 해명하는 데에다 시간낭비하지 않게 하는 게 보통이지만 그게 아니라면 '그렇게(까지) 말한 적 없다'고 아웅하러 들 가능성이 높다. 가능하면 교차검증으로 얻어낸 결과와 충돌하는지를 거쳐야 하며 이마저도 상대가 진짜로 믿고 있는 경우 현실상 나에게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대화가 이루어지는 게 타당한지를 직시하는 거 이외에 방도가 없다.
G: "저기요."
H: "네?"
G: "왜 컵에다가 빨대 꽂고 마셔요?"
H: "???(무슨 의도지?) 뭐가 잘못됐나요?"
G: "보는 제가 기분이 나빠서요."
남들이 보기엔 전혀 이상하지 않은 행동에 의미를 부여해 충분히 지적할 만한 사안으로 과장시킨다. 앞전에 있는 앞서 가기를 통한 인지도식을 근거로 삼는 과장은, 자신은 이해하지만 이를 상대에게 똑같이 설명하기가 힘들어서 듣는 쪽이 먼저 대화를 포기하게 된다. 여기서 G의 의도를 약간이나마 납득이 되게 해석하자면, 본인은 호모포비아라 이러한 커밍아웃[296]에 공격성을 표출해도 된다고 합리화해 단순히 일상에서 할 만한 행위인지를 본인 잣대를 들먹여 납득시켜보라고 강요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문제는 직장같이 이를 받아들이는 사상이 다르다고 체면이 오를 직접적 사안은 아니기에 안 지킨다고 제재하지 않으며 마찬가지로 미디어에서 논하는 문제라 지칭하는 것들은 막말로 배가 처불러서 없던 문제도 만드는 어그로성 과장이 확장된 것에 가깝다.[297] 실제로는 타인은 남들에 대해 큰 관심이 없으며 자신과 같이 동급의 문제로 감화해줄 기대보다는 미디어가 생산한 거짓말에 놀아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하고 당신의 견해를 받아줄 만큼 현대인의 시간은 썩어나지도 않다는 걸 알아야 한다. 당장 대화하고 있는 사람조차 주장만으로 바뀔 정도로 아둔하지 않으며 지적해서 바뀌는 것도 아닌 흠결있는 행위를 하더라도 당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면 그만인데 굳이 이를 문제로 전환해 선도하여 발생하는 부가 가치를 논리정연하게 설득한다 해도 본인 맘대로 바뀌지 않아 생기는 상황을 앞서가 폄하한다고 자기 기준의 정상인이 될 거란 기대는 버려야 한다. 억지에도 정도가 있다.
(복장을 바라 봄)
I: "그거 뭐에요?"
J: "네? 뭐가요?"
I: "왜 그렇게 입었냐고!?"

(보이콧이 유행일 시)
K: "그거 일본 제품 아니야?"
L: "어, 근데?"
K: "너 매국노야?"
L: "???"
시기에 따라 특정 트랜드에 예민해져서 과장하여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I, J의 상황은 선거철이라는 분위기 속 J는 I가 자신의 옷 색깔로 정치 성향을 보여준다고 과장하여 해석할 시 문제가 되며 이는 중립을 유지해야 하는 공무원들에게 특히 민감하다. 상황을 바꿔 인내심에 간섭하지 않는 게 예의였다면, 계절에 맞지 않는 옷을 입어서 심기를 거스를 때[298]에도 같다. K, L의 상황은 반일 감정으로 형성한 불매 운동이 남들 또한 같은 국민인 이상 자신들이 정의롭다고 정한 반향에 따라야 할 공동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며 해당 국가에서 제조된 상품을 소지하거나 구매한 것만으로도 거부 의사를 표명하는 반동행위라고 과장하여 해석하는 것이다. 비슷한 예시로 "너 계속 투정부리면 저 아저씨가 이 놈한다."와 같이, 아이를 훈계하기 위해서 타인을 써먹는 건 그나마 용인이 되지만 이게 극단으로 치달아서 자신이 분위기에 심취한 나머지 불특정 다수도 자신처럼 해당 사건이나 분위기에 동조한다고 확대해석하여 이와 반대되는 성향을 배척해도 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게 문제로 삼을 일인가?'라며 이상하게 생각하지만 주류가 아니니 묵살되고, 비주류 역시 이론상 눈썰미만 있다면 사유를 과장해 사회 부적응자로 몰 수 있다. 위의 경우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찬반이 잇는 극히 일부의 예이며 이의 대상은 모두가 적용될 수 있다.

이런 식의 기분상해죄상대방의 욕구를 자극하는 방향으로 악용되기도 한다. 자신이 상대로 하여금 피해를 받았다고 억울함을 밝히면 호소받는 측은, 도덕적으로 무결하고픈 욕구를 자극해 이를 증명하려는 의사에 가까운 정보로 교환할 가능성이 높다. 좋게 포장해서 감수성이라고 할 수 있으면 양질의 정보를 얻을 수도 있다. 이는 상대를 모함하여 해명을 떠넘길 시에도 같다.
(편의점에 방문한 M에게 점원이 친한 척 말을 건낸다)
점원: "날씨가 참 좋죠?"
M: "네? 네..."
(일을 마치고 N에게) "너 앞으로 저 편의점 가지마."
N: "엉? 왜?"
M: "아무튼 가지 말라고."
거꾸로 이러한 성질이 권력과 연관될 시 욕구가 제한되는 쪽으로 엇나갈 수 있다. M과 N의 상황은 M이 느끼기에는, 고객과 점원은 상하관계라고 생각하여 인사치레를 벗어난 티키타카는 선을 넘는 행위로서 N에게 대리로 보복을 강구하는 것이다. N도 M의 돈으로 사는 거라면 단골이여도 그러려니 하겠지만 내 돈 내고 사는 것조차 본인(M)에 대한 반항으로 과장하여 해석한다면 갈등이 생겨나게 된다. 이는 자신의 이념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불복종으로 간주하는 사고방식과 비슷하며[299] 이에 맞춰야 하는 입장에선 고역이다. 온라인에서도 예외는 아니며 실제 법적으로 간다고 응수하는 사례도 있다. 여기서 타인의 권익을 침해하는 방향이 된다면 이를 상대가 진짜상해죄로 콩밥 먹이게 할 수도 있으니 쓸 거면 신중해야 한다.
(홈트를 하는 O에게)
P: "너 운동하는 거 시끄러워. 어제 아랫층에서도 올라왔다고."
(본인이 나가 있던 시간 대에 맞춰 아랫집을 방문해 사과함)
아랫층 거주인: "네? 우리는 올라간 적이 없는데요?"
O: "야, 어떻게 된 거야??"
P: "그렇게 될 정도로 시끄럽다는 의미였는데..."
상대에게 전하는 표현을 자기만 알아먹는 식으로 과장하여 오해를 사게 만드는 경우 본인은 그저 농담을 써서 범위를 확장하는 걸 상대가 이를 알아서 축소할 거라 앞서 판단한 것이고 상대는 농담할 상황이 아닌데 한쪽만 따로 논다고 생각하여 짜증을 유발한다.[300] 다른 예로 상대가 자신의 상태를 보고 절주하라고 진지하게 권유하는 와중에 "그럼 죽지 뭐."라고 희화화할 시 조언하는 측이 가족이라면 본인도 피해가 오기 때문에 신경쓰는 걸 고려하지 않는 무책임한 언행에 분노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상대와의 논쟁에서 "헤어져.", "이혼해."같이 상황을 과장하거나 위해를 가해보라고 떠볼 시에도 자조적인 가정을 강제하는 무책임에 말다툼으로 번질 수 있다. 여기에 사적 감정을 제3자에게 적용하는 경우 서로에게는 각자 없는 존재가 된다. 이때, 제3자가 간섭시킬 만한 정보를 요구 시 소통 불가능성에 따른 사유가 과장될 수 있다.[301] 이는 알면서 모르는 척 한다고 아웅하는 게 아니라, 노코멘트로 대응하여 스스로를 변호할 관용을 내려치기 해 가능성을 없는 것으로 과장하는 뒤끝의 일종이다.
Q: "오늘 고기 쏜다!"
(Q가 주선하는 회식을 진행하는 도중 R이)
R: "여기 냉면 추가요."
Q: "잠깐, 무슨 소리지? 누가 냉면 시키래?"
R: "네? 분명 Q님이 대표로 쏘신다고..."
Q: "나는 고기 쏜다고 했을텐데? 다른 거 시킬거면 각자가 알아서 계산해."
(생각해보니 고기를 쏜다고 했지 고기 이외의 것도 자신의 수중에 포함시키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는 걸 깨달음)
조직 내 이권을 향상시키기 위한 작업에서는 과장을 축소하여 말하는 게 보편화되며 주선자의 의사에 따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포괄적인 해석이 상대가 의도한 것이라 판단하여 과장해도 된다는 동의를 구하지 않아도 넘어가줄 거라 생각하여 생겨나는 불일치가 있다. 대표로 쏘는 사람이 사전에 예외 조건을 합의하지 않고 뒤늦게 따진다면 돈을 내고도 추잡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으며 만일 이성(異姓)에 의한 축소의 개념을 예외적으로 용인한다면 성차별로 찍혀 평판이 추락할 수 있다. 소속 집단이 먼저 주선자를 선별한 경우에는 세대에 따라 개입의 강도에서 오는 책임 여하가 달라질 수 있고 본인의 자랑거리를 들어달라는 겸 한 턱 쏘는 자리여도 꼽주는 주체까지는 그 역효과를 탕감할 수 없다.
(S의 책임이 더 커서 T가 사과를 요구 함)
S: "그래, 사과하겠는데 너(T)도 문제가 있던 건 알지?"
명백히 S의 책임이 더 중하다 판단되고 실제 법적으로도 T가 피해자임에도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라며 은연 중 선처를 요구해 제3자에게 서로의 잘못을 '동등하다'로 보이도록 상대적으로 무결한 T의 대처를 과장[302]하는 술수는 잘못된 태도이다. 그럼에도 잘만 하면 쌍방의 책임으로 독박 쓸 일은 막을 수 있기 때문에 결과가 좋았어도 비슷한 레파토리를 거치는 건 타인의 영역에 끼어들어 책임을 본인의 잣대로 평가하려는 인간의 생존 본능이 유희적으로 진화됐다고 생각하는 게 편하다. 한 마디로 잘 되면 내 덕, 안 되면 니 탓, 수틀리면 서로의 업.

그 원인이 상대로부터 촉발되었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제3자에게 '저 사람이 기분 나쁠만한 행동을 했다'라고 얼추 줏어 들은 걸 가지고 사실관계를 따지려 한다면 추후 S의 책임이 드러나더라도 T로부터의 까임방지권을 얻게 되는 구실을 공언화하는 불상사를 당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제3자에게 T의 의도를 과장하여 해석하라는 뒷말이 나온다면 S의 책임을 목격하고도 따질 수가 없는 환장할 상황이 펼쳐지게 된다. 이 외에도 아웅과 같이, 악의적으로 무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중간중간 넣어서 사실관계를 훼손하는 방식으로도 애용된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같이 사소한 실수를 지적하여 상대의 논리를 거짓으로 과장시키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것도 못 지키는 인간의 논리는 거짓과 동급으로 자신을 납득할 깜냥이 안 되는 미개인인 마냥 이미지가 생명인 기업이 신경 쓸 일을 개인 간에서도 꼬투리를 잡아 붕 뜨게 만들어야지 직성이 풀리는 태도는 기본 소양에서 어긋난다. 일상에서의 언어 축약은 전달하는 과정에서 큰 문제가 없다면 공문만큼이나 문장구조를 준수해야 할 필요성이 적고 대부분이 구어로 이루어지니만큼 과도 교정은 불필요하며[303] 논리적 오류가 없다면 그냥 넘어가주는 것이 매너이다. 단, 성 전략으로 다가갈 시엔 학습 수준과 지능의 척도를 예상할 수 있는 정보가 되기 때문에 사회적 능력에 속한다.

언어가 아닌 행동 방식을 과장하는 경우, 바쁘지도 않는데 할 게 많은 척 일부러 빠릿빠릿 움직이거나 숨을 헐떡여 상대의 심부름을 거절하기 용이하도록 쓸 수 있다. 또 흔적을 이용해 납득하게 만드는 방식도 있다. 원래 하자가 있었는데 뻥쳐서 한 번에 수리받거나 뽕 뽑을 겸 병원에 죽치고 입원하는 경우이다. 잉여물을 통해서도 증명할 수 있다. 책상에 아무것도 없는 것보단 뭐라도 있는 게 농땡이 핀 걸 들켜도 아주 논 것은 아니었다고 변명할 수라도 있기 때문이다.

과장을 일상화하는 것을 모토로 삼는 인터넷 커뮤니티는, 외부에서는 실제 마주보며 논쟁에 쓰이는 부언어로서의 의미 보조가 없어지니 이에 익숙해지면 실생활에서까지 온라인에서 습득한 과장 문체를 툭 던져서 사람을 무안하게 만드는 무례함을 인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애당초 커뮤니티는 사회성을 기르는 곳이 아니며 이를 국가마다 문화권에 따른 면책 사유의 일부가 될 수는 없다. 실제 사회와 미디어에서 보여주는 사회를 같은 영역이라며 끌어들이지 않는 것이 중간은 간다. 억지로 배울 게 있다면, 그 안에서 혐오를 유발하는 요소의 유사성을 탐구하여 이를 멀리하기 위한 탈사회화의 본고장으로 자신을 비교하는 것이 자학하는 것보다는 나아질 순 있겠다.
한번 더 (실수 or 지시불이행)하면 죽이겠다. → (실제 살인이 아닌 경고 차원)
사람을 협박할 때도 쓰여진다. 대상자에게 공포심을 심어주기 위해 사용하니만큼 말솜씨에 따라 긴장을 줄 수 있지만 상식적이라면 법을 어기면 사회성이 좋더라도, 아니 좋은 만큼 더욱이 비난을 당할 각오를 해야 하니 실행까지는 옮기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다. 과거 인권 의식 미비로 성행했던 엄벌주의 역시 미성숙으로 인한 과장에 불과하며[304] 대다수는 어떻게 죽일지, 어떻게 시체를 처리할지까지는 상세히 계획하지 않은 채로 입 밖에 꺼낸다. 가족같이 공개되지 않는 영역에서는 한 단계 상향해서 보복해도 처벌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지만[305], 사랑의 매라고 넘어갈 정도로만 끝내는 게 미래의 자원 요구 절차로서 편해진다.
(내 말에 안 따르면) 그거 불태운다. 박살낸다. 던져버린다. 내가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 등등.
감정적인 배출을 통해 본인의 속상함을 표현해야 직성이 풀리는 경우, 대부분이 일방적인 과장으로 끝나게 되며 상대의 말에 따라 기존의 사실을 과장해 다루기 쉽도록 수를 쓰는 것으로 이는 유아 연기와도 연계된다. 위 예시처럼 막말을 즐겨하는 편이라면 정말로 과장을 실현할 수도 있을 당당함으로 인해 역겨움을 느끼게 되며 "너가 뭘 잘못 했는데?"와 같이, 추론하도록 강요하는 감정노동으로 진을 빼는 방식과 "니가 죽든 말든 나와 상관 없다.", "꼬우면 죽여라."로 도발하여 이성적으로 조율하려는 배려조차도 부정시켜 분노를 옮길 수 있다. 나중엔 자기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게 되며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손해를 감당해서라도 상황을 악화시키려는지, 그 과장의 의도를 묻지 않고 넘어가는 것도 한두 번이지 이런 말투가 계속 반복되면 대개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되기가 어렵다. 투박하게 스스로를 파괴시켜 상대를 협박하는 경우에는 당장 손절하지 않으면 본인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버리기가 좀 그렇다면 상담이라도 권해보자.[306]

자가당착보다 사람마다 영역에 속한 사회적 기대치가 따라오지 않아서 생기는 불씨로 인해 거짓이라 느끼는 대상의 전도가 발생되기도 한다. 원래 전하고자 할 목적에 '고의로 거짓을 흘러 명예를 훼손시킬 심산이었다'로 확증하는 경우가 인간의 성질을 세분화할수록 이러한 경향은 잦아져, 영역에 따른 사회성이 다르게 적용되니 자기 딴에는 상대가 나를 배척한다는 편향으로 응수해야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있다는 식으로 본인의 추측을 과장하여 상대의 착오를 가능성으로 오염시켰다는 아웅으로 조작하기에 이른다. 이땐 따지기도 뭐한 상황이, 명백한 착오였음을 상대도 은연 중 알았더라도 서로의 결과론이 공존하는 환경에 위치할 시 거짓에 가까운 맥락을 검증하는 책임은 듣는 쪽에도 입증책임이 가해지기 때문에 책임 회피성 발언이 성립되는 조건 우회[307]로 결백을 주장하는 사견 역시 명예 보존으로서 주변인의 시각에는 아웅으로 비치는 게 자연스럽다.

이러한 앞서 가기와 과장이 엮이면 끔찍해진다. 시간 개념의 부조화는 동의의 불관용을 간접적으로 동조시키는 주 요인이며 타인을 자신의 분신으로 여기는 성향이 결합되면 매우 위험해지는 이유로, 이는 3차원 권력의 허언을 과시하여 '너의 행위로 인한 사회적 제약은 그 급부로 나의 명예도 훼손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민폐라 규정하여 이를 지적해 억압하는 나의 명령은 정당하다'는 논리로 단지 눈에 거슬린다는 변덕도 상대방 탓으로 돌릴 수가 있게 된다. 교정할 마땅한 근거도 없는데 '세상은 원래부터 그랬다'라는 시대착오로 내면 검열을 타자화하기에 이러한 지리멸렬적 사고는 사회성의 원 의미를 외도하게 만드는데 공헌했다.[308] 순종화 과정 중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객관적 사실을 바탕으로 세습한 경험이 시대에 따라 그 일환이 항상 결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신생 세대들이 일궈낸 비정상의 탈피 과정 중 재평가가 될 것임을 고려하지 않은 극단적 신념 중시는 과거 사회 부적응 요소가 자본주의와 개인화로 인해 등재할 이유에 만족하지 않는 특성으로 탈바꿈시킨 용례로 반면교사하기에 이르렀으며 과장을 실재화시키는 시도도, 부정적인 방향의 자기암시를 명예와 동일시하여 비정상을 도축하는 쪽으로도 사고를 단순화해서 오는 근거 없는 확언에 힘입은 혐오와 무시의 대척점을 수면에 공개시한 부작용도 함께 부각시키는 사회 기조의 단면을 여실히 증명시켜줬다.

이는 범죄가 양지로 돋아나는 원리와 비슷하게 우월감으로 얻는 이익이 개개인의 윤리의식을 통한 공익을 넘어서는 경우에 등장하는 현상으로, 만연한 평균 올려치기로 정보를 조작하여 자신의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소위 평균치에 맞지 않게 올려치기 하는 풍경으로 인해 전체적인 자존감을 깎는 사실상 사회 자본으로부터 오는 신뢰를 왜곡시킨 근원이다. 또한, 불문율에 반하는 걸 비정상이라며 상대 책임을 과장하여 폄하하는 몰상식한 현상은 우울증, 정신장애같이 나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거나 앞으로도 그럴 일 없다는 듯 피해의식을 징징거린다는 식으로 쉽게 내뱉는 사람을 계몽으로서 정당행위라며 사회적 평가를 왜곡시키게 만들었다. 이는 나름 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필요악으로, 이 역시 상대 입장에서는 자신을 납득시키려는 상대가 나와 같은 상황에 처해졌을 시 똑같은 상황에서도 자의적으로 해결하라는 의지를 전달한다는 것은 불성실하지만 그렇게 되도록 스스로 단련해야 사회성이 좋아진다라는 그들 기준의 참교육으로 고압을 부린 걸수도 있다. 그러나 이의 책임으로 당신이 상대와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될 시 그들만의 계몽을 거친 사람에게 도움을 받을 생각은 현실을 주입한 이상 일절 하지 않기를 쌍방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렇듯 올려치기는 기성세대와는 다른 쪽으로 선택적인 서열 문화를 합리화시켜 본인들이 정한 사회 부적응자의 기준에서 축출해낸 욕받이로서 수평관계를 유지하려는 돌려까기의 대체어가 되었으며 이러한 공동체식 개인화는 책임 분산을 위한 유사 관료제로 사회성의 의도를 변질시키는데 일조했다. 개개인의 사회성을 올곳게 교정시킬 수 있게 변호할 만큼 군중심리를 탈습하지 않았고 혐오는 돈이 되기에 부적응에서 오는 결과를 과장시키는 자칭 정상인들로 인하여 닫힌 사회에 무력감을 투영시켰다.[309] 이는 현실을 제대로 볼 기회를 얻어내는 행위를 약점이라 비하하여 피지배층끼리 카르텔을 조장하여 지배층을 모방하는 선민사상은 신세대 시각에서 사회성을 내집단 중심으로 편입할 도구로 답습해 "사람들과 대화해보면 느는 건데 이마저도 노력하지 않으니 너는 글렀다."로 반문하여 사회성이 낮은 너와는 나와 격차가 다르다는 신념을 당연시하게 받아들이니 제대로 개선시킬 수 있을리도 없다. 제대로된 사람을 거르는 안목이 없어도 '주변에 사람이 많다 → 사회성이 좋다고 착각한다 → 사회성은 사람이 많을수록 알아서 느는 것이다 → 사회성을 기르려는 대상을 사회 부적응자라며 내려 치기할 자격은 인간의 양 = 사회적 질 이라는 현상유지로서 본인을 근거한다'라는 논리로 조롱하는 것이니 정작 사회성을 어떻게 기르는가에 대한 답에는 뻔한 레파토리만 반복되는 것이다.[310]

결국 무관심으로 자립한 사회관을 이전 세대가 규정한 동일선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비정상이, 개인주의가 개성으로 인식하는 주류가 사회 구성원으로 권력을 계승한 이후 사실은 정상이었으며 개성으로 존중받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아버린 탈억압적 해탈이 '비정상은 사실 정상이어도 된다'라는 영웅 심리에 의거한 선후관계의 맹목적 변형에서 발생하는 주관이 다른 결집 간의 정상화, 그로 인한 단합이 이루어낸 소수 욕망이 불문율을 재해석하여 그들만의 세대 교체 가속화로 갈등을 일으키고 출세를 목적으로 자신과 같은 세대가 인식했던 정상인의 범주를 아웅하여 돈벌이로 의도를 무마시키는 게 가능하도록 선동하는 냄비근성식 논리 역전 현상이 복합적으로 연계되어 유행에 부합하지 않는 인간상을 혐오하는 분위기가 생겨나게 되고 내집단의 우월성을 위한 올려치기가 양측 모두의 우열 경쟁으로 '가만히 있었는데 사회성이 떨어졌다'라고 느낄 만큼 독자적인 사회성을 추종해 기존에 있던 상식과 스스로 만든 이론을 까내리는 모순이 반복되는 것이다.[311]

19.4. 갑질

어른의 사정에 의해 서열이 있으며, 직장에서는 직급, 군대에서는 짬으로 그 서열이 결정된다. 그런데 주변의 감시가 없는 닫힌 사회에서는 이런 갑질이 모욕감, 분노를 안겨주고 심지어 범죄에 해당하는 행동을 하더라도 제때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평생동안 절대갑으로 살아가면서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할 필요가 없는[312] 것이 아니라면 이런 갑질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갑질을 하는 사람은 약한 사람이 갑질에 복종하지 않는 것이 사회성이 부족한 것이라고 윽박지르기 십상이지만, 일방적인 인실X이 이루어질 경우 갑질을 하는 쪽이 오히려 사회성이 부족한 것이다.

아랫 사람은 갑질에 당하고만 사는 호구가 절대 아니다.[313] 갑질하다간 기업이나 정부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따라서 갑이라고 해도 갑질을 하지 않고 올바른 리더십을 발휘하는 것이 건전한 사회성을 가진 것이다.

반대로 짬이나 계급이 높은 사람이 욕설, 고함, 비웃기, 생각없는 명령 등 갑질을 당하면 해당 조직 탈퇴 전에는 대항하기 힘들다는 것을 납득하고 갑질과 서열, 그리고 상대방이 기대하는 자신의 언행에 대해 알아 두는 것이 좋다. 갑질한다는 것은 보복 가능성이 별로 없다고 믿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더 자세한 사항은 내부고발 문서로.
A: "네네, 관심 없습니다. 끊어요."
B: (전화를 마친 A에게) "야."
A: "어?"
B: "평소에도 그렇게 싸가지 없게 전화 받냐?"
모르고 봤을 때 갑질로 보이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 광고나 스팸성 전화에 대고 퉁명스럽게 말하는 건 갑질이라기보다 호구가 되지 않거나 그렇게 보이기 싫은 것이다. 또 같은 사람이어도 인간관계에서 보이는 실제 거리와 전화상에서 보이는 거리는 차이가 있기 때문에 실제 구사하는 화법이 내가 안 보이는 곳에서도 똑같이 이루어지는 고유 언어로 포괄시키는 건 억측이며 지인끼리의 통화였어도 B가 도중에 끼어서 훼방을 놓는다면 그 지인 또한 A와 같이, B가 맘대로 껴도 될 만큼 자신의 서열도 낮게 본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갑질을 공유할 정도로 존중하지 않는 영역 침범은 예의가 아니다.[314] 참고로, 청취 도중에 보이는 몸짓언어로 존경 여부를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
(수리 기사가 기기를 보수함)
C: "수고하셨습니다."
(나가고 난 뒤)
D: "아까 그 새끼가 어디 고장났다고 했대?"
이는 아예 직접적으로 대면해서 갑질한 것이 아니기에 굳이 당사자에게 가서 D가 비하한 사실을 전달할 필요가 없다.

갑질이라고 판단하기 이전에 응대를 제대로 했는지부터 스스로 생각하고 반박하자. 적절한 대우를 하지도 않았으면서 자신에게 욕하는 게 무작정 갑질하는 것이라고 판단해 염장을 지르면 쌍으로 손해다. 사회에 나가면 욕 먹을 각오는 해야 하며 을의 위치에서는 본인이 불만있다고 해서 쉽게 해결되는 게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 이는 해당 영상을 참고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또한, 지시를 부탁하듯이 했다고 해서 본인한테 선택권을 준 것이라고 착각할 수가 있는데 그냥 닥치고 하라는 거다.[315] 살갑든 공손하든 당신의 위치는 을이란 걸 잊지 말자.

본인이 갑질을 할 거라면, 상대에게 자신의 서열이 높다는 걸 밝힌 뒤에나 하자. 존재만으로 상대의 개념을 시험해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본인을 외부인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나댄다면 누구나 벙찔 것이니 무늬만 수평관계인 상황에서도 실제로 서열 정리를 완료했음을 눈치챌 수 있는 분위기 이후에 벌어진 행동으로 보복하는 건 삼가자.

20. 긍정적인 요소 쌓기

사회성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은 대개 (-)적인 요소들 때문이 많다. 하지만 (+)적인 요소를 통해 사회적 관계를 키울 수도 있다. 이러한 의무감들이 쌓이면 상대는 자신에 대한 좋은 말을 해 주거나 부탁을 들어주려고 노력하게 된다.

20.1. 호의냐 호구냐

호구라서 문제가 되는 경우, 상대는 자신이 아무리 부탁을 많이 들어줘도 나한테 뭔가 부탁할 일이 있을 때만 연락하고, 안부를 묻거나 만나서 시간을 보내자는 등 친교를 위한 연락은 일체 하지 않는다. 직접 만나자거나 내가 부탁할 일이 있으면 거절하는 등 황당한 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 같은 밈이나, '헌신해봤자 헌신짝 된다'는 관용어구가 생겨나기도 했다.

인간관계에 있어 (-) 요소가 매우 큰 상태라면 사소한 (+)로 인정받으려 해도 잘 안 되니 주의할 것. 대표적인 경우가 연애이다. 연애를 위해서는 배려, 칭찬, 선물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매력을 느끼게 하는 게 중요한데, 여답돼로 불리는 사람들은 매력을 키울 생각은 않고 지속 불가능한 호의로 자꾸만 민낯을 드러내기 때문에 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호의에 따른 노골적인 호혜성은 서로의 상징적 위치가 결핍된 약한 관계를 이끌어내기 때문에 보상을 목적으로 상대가 호의를 베풀었다고 짐작하다간 역효과 날 수 있다.[316] 뭔가 속셈이 있구나 싶어 호구가 되지 않게 호의를 의심했는데 되려 호구가 되는 거다.

연애 외에도 자신이 인간적인 매력(친근함)이 없어서 만날 때마다 한심하게 보이고 재미없는 만남이 이어진다면 그 관계는 아무리 호의를 주더라도 유지될 수 없다. 또, 자신을 우습게 여기고 계속 부려먹을 생각만 하는 사람에게 잘해줘봤자 그 상대가 자신을 인간적으로 좋아할 가능성은 없다. 따라서 호구가 되고 일방적으로 무시당한다는 생각이 들면, 부탁을 해보거나 만나서 식사를 하자고 제안해보고, 거절당하면 관계를 끊는 것도 답이 될 수 있다.

유지할 만한 호의여도 이를 반복한다면 의사결정에 혼란을 가할 수 있다. 인사를 이름으로 대신하는 경우를 들 수 있는데, 이땐 분명 호의긴 해도 지시용으로 꺼내는 사람이 있다는 걸 경시할 수 없으니 헷갈리게 된다.

20.2. 배려/오지랖

어떤 행동을 통해 상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은 상대의 기분에 따라 배려라고 불리기도 하고 오지랖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A집단에서 통하는 배려는 B집단에서는 민폐나 간섭에 가깝게 보일 수 있으며 반대로 C집단에서는 똑같은 행동이 무관심에 가깝게 보일 수 있다. 이를 막으려면 새로운 집단에 갔을 때는 최소 2주일 정도는 상황을 둘러보고 그 다음에야 배려를 시작해보자.
  • 공무원 학원에서 선생이 자신에게 옆자리에 잠자는 학생을 깨우라고 해서 깨웠다. → (적절한 행동)
  • 공무원 학원에서 수업을 듣지 않고 잠자는 '모르는 학생'이 있기에 선생이 말하기 전에 미리 깨웠다. 비싼 수강료를 내고 잠자면 그 학생에게 손해가 되는 데다, 선생이 지적한 뒤에야 깨우면 자고 있던 학생이 창피해 할 것이기 때문이다. → (부적절한 행동)
  • 공무원 학원에서 한 학생과 이야기를 트고 함께 밥을 먹으며 지내기 시작했는데, 그 학생이 수업 시간에 잠을 자기에 선생님이 말하기 전에 미리 깨웠다. → (부적절한 행동)
  • 공무원 학원에서 한 학생과 이야기를 트고 함께 밥을 먹으며 지내기 시작했는데, 그 학생이 수업시간에 잠을 자기에, 왜 그렇게 많이 조느냐고 물어보자 그 학생이 잠이 많아서 고민이며 잠을 안 잘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하기에, 자신이 깨워줘도 되냐고 묻자 상대가 고맙다고 했다. 그 후 그 학생이 수업시간에 잠을 자기에 선생님이 말하기 전에 미리 깨웠다. → (적절한 행동)
  • 공무원 학원에서 한 학생과 이야기를 트기 시작했는데, 그 학생이 수업시간에 잠을 자기에, 수업시간에 자는 것은 매우 버릇없는 행동이고 선생에 대한 예의가 아니며 이는 내가 스터디 관리자도, 깨워달라고 부탁을 받지 않는 것과는 상관 없이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이고 앞으로 이런 사건 사고를 다시는 일으켜서는 안 된다고 엄중히 경고했다. → (매우 부적절한 행동)

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은 오지랖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편이다. 이때 주의할 점은 "상대가 원하는 배려는 무엇인가?", "지금 상황에서 상대는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 "이 배려를 하면 상대방이 싫어하지는 않을까?"라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헌신도 헌신 나름이다. 원치 않는 헌신을 해놓고 상대방이 고마워하길 바란다면 시간과 노력을 낭비해서 미움을 사는 짓에 불과하다.
  • 선물
    생일을 챙겨주거나, 집에 갈 때 택시 대리 비용을 내 주거나, 술자리가 끝나고 숙취해소 음료를 건네주는 등의 선물이 도움이 될 수 있다. 결혼식이나 장례식 같은 경조사를 꼭 챙기라는 것 역시 같은 종류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역시 사회성이 부족한 방식으로 할 경우 역효과를 낼 수 있다. 어른들 중에는 사위나 며느리에게 음식을 선물할 때 분리수거장에서 주운 페트병을 씻어서 담아준다든지, 자기가 먹고 있던 걸 준다든지, 썩어가는 걸 준다든지 하는 보편적이지 않은 위생관념을 가진 경우가 있다. 이런 '선물'은 받고도 사람을 불쾌하게 만든다. 부정타는 것또한 마찬가지로 고인의 의복을 선물한다든지, 제사 때 치른 음식을 준다든지 등등 유사과학이어도 불순하게 작용한다면 찝찝해진다. 음식 궁합도 신체에 따라 피해를 줄 수 있다.
  • 상대방의 불편함을 해소
    상대방이 더워하면 에어컨을 튼다든지, 상대방이 추워하면 히터를 튼다든지, 동료가 우산이 없으면 길을 조금 돌아가서라도 우산을 씌워준다든지, 상대방이 싫어하는 음식은 미리 빼놓는다든지,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동료가 있다면 도와준다든지 하는 식으로 상대방의 상황에 맞춘 배려를 한다.
  • 조심스럽게 먼저 접근하기
    간혹 '내 생일을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다, 내가 사람들로부터 배척을 당한 건가?'하는 경우를 찾아볼 수 있다. 만일 내가 1년간 아무에게도 생일축하 메시지를 보내지도 않았고 아무에게도 생일 선물을 챙겨주지도 않았다면 이런 결과는 당연한 것이다.
  • 솔선수범
    성실함을 넘어, 다들 귀찮아하거나 꺼리는 일이 있다면 내가 먼저 능동적으로 빠릿빠릿하게 한다. 남미 원주민 방언으로는 'Mamihlapinatapai'라고 하는데, 자신을 편하게 해 주는 행동을 싫어할 사람은 소인배 외에는 드물다. 아는 사람이 무거운 걸 들고 걸어오고 있으면 상대가 부탁하지 않아도 같이 들겠다고 나선다든지, 아는 사람이 청소를 한다고 빗자루질을 하고 있으면 쓰레기통을 찾아 가져온다든지. 특히 성실성은 군대에서 요구하는 능력으로 선임이나 간부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데 멀뚱멀뚱 지켜본다든지 쓱 보고 지나친다든지 하면 십중팔구 욕을 먹기 마련이다. 자신이 도울 수 없고 그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라 하더라도 "도와드릴 거 있습니까?"하고 물어는 봐야 한다. 군대뿐만 아니라 모든 조직생활에도 그렇다.

또한,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잘해 주려고 접근하면 좋은 소리를 듣기 힘들다. 아무리 잘 맞춰 주더라도 뭔가 꼬투리를 잡아 욕을 먹게 되니, 웬만하면 얽히지 않는 쪽이 좋다.
A: "지금 몇 시에요?"
B: "아 지금 3시 42분 51초 네요."

C: "여기 입사한 지 얼마나 됐어요?"
D: "대략 1달 됐습니다."
E: "67일 째 입니다."
상대방의 질문에 필요 이상으로 집요하게 전달하려는 경우에 오히려 부자연스러움을 연출한다. 전문가만 알아듣는 어려운 단어로 상대방을 혼란스럽게 만든 뒤 알아서 떨어져 나가라는 뉘앙스와 비슷한 불쾌감을 줄 수 있으며, 정확히 전달해봤자 기억을 해줄 정도로 사회성에 문제가 없는 평범함과는 멀어져서 되려 역효과 나기 쉽다.[317] 단, 밀집도에 관한 질문(예: "거기 사람이 얼마나 있냐?")일 경우, 맥락에 따라 '많다/적다'나 몇 명인지 확실히 알아야 하는 상황 모두 일어날 수 있다.

과도한 친철도 부적절하다. 부담스럽거니와 친절을 베푸는 이유가 납득이 안 되면 등쳐먹기 위해 포악함을 숨기려는 협작질로 보이기 쉽다. 가급적 가면이 두꺼운 걸 티 나지 않게 해야 한다.

20.3. 칭찬

칭찬 직후에 비난하면 불쾌감을 극대화시킬 위험이 높다. 처음부터 화나게 만들 목적[318]이었다면 상관없지만, 상대의 행동을 바꾸거나 상대의 기분을 좋게 만들 목적이었다면 반드시 칭찬으로 마무리 해야 한다.
A: "자네, 꼼꼼하고 세심해서 매사에 실수가 없군."
B: "감사합니다."
A: "그런데 느릿느릿해서 답답한 것 같아. 그런 식으로 일을 망쳐놔도 되겠나?"
B: "..."
과거의 행동을 비난한 직후에 칭찬하는 것은 직장생활에서 상대의 행동을 바꿀 때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나에 대한 판단을 달리하고, 나의 장점을 알고 칭찬해주는구나 하게 되고, 더욱더 자신의 장점을 발전하고, 더욱 노력하고, 상대방이 나를 판단한 것에 대해서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게 한다.
A: "자네, 평소에 느릿느릿해서 답답하더군."
B: "죄송합니다."
A: "그런데 오늘 보니 느릿느릿한 게 아니라, 꼼꼼하고 세심해서 실수가 없던 것이더군. 앞으로도 이렇게 꼼꼼하게 진행해주면 고맙겠어."
B: "감사합니다!"
칭찬은 필요할 때만 사용하는 게 좋고 남발하면 효과가 낮다.[319] 굳이 칭찬하면서 부정적인 이야기를 섞어야 할 이유는 없다. 상대의 행동을 고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칭찬만 하는 게 낫다. 하는 사람은 칭찬이라고 했는데 듣는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말들도 있다. # 아래와 같은 이야기를 함부로 하고 다니다 큰 곤란을 겪기 쉽다.
* OO대 출신은 다들 외우기나 할 줄 알고 잘난 척이나 하는 밥맛이라던데, 자네를 보니 그 말이 틀렸음을 알겠군.
* 다른 여자는 더치페이 문제니 군대 문제니 해서 별로인데 너는 그러지 않아서 좋다.
* 나는 수준 낮은 한국 남자는 만나지 않는데 너는 그나마 낫네.
기성세대 기준에서 칭찬이겠지만, 멸칭에서 오는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은어화하는 과정 중 의도치 않게 욕설이 된 것도 있다. 이는 어느 한쪽만을 탓할 순 없다.
  • 상대방이 완곡어법으로 판단한 경우
* "착하네." → 찐따.
* "순하게 생겼다." → 써먹을 가치가 있어 보인다.
* "잘하네." → 적어도 그것도 못하는 멍청이는 아니었다.

현재로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의미가 달라진 언어를 세대가 다른 사람 입장에서도 칭찬으로 받아들일 거라 생각하겠지만 당사자에겐, 상태 변화를 주변이 알아차리게 직설하여 개인 간에서 조직으로 평가받게 하는 입방정을 좋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다. 특히 관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감추고 나와야 하는 경우 이를 들어내는 건 상처가 된다. 립서비스를 할 때 자주 일어나는데, 심하면 아래와 같이 자신이 돌려 까기를 당했다고 느낄 수 있다.
* "잘 생겼네요." → (자신의 외모가 평균치에도 한참 밑도는 걸 안다) 사람들이 흘깃 보며 본인의 외모를 평가받게 만듦.
* "통통하네." → (자기 관리에 무심한 것을 본인도 안다)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외모 관리에 신경을 안 쓰는지를 평가받게 만듦.[320]

문장은 칭찬인데도 억양에 따라 모순어법으로 해석하여 쿠사리 먹을 수도 있다. 소극적으로 비꼬는 반목과 비슷하게, 성상부사를 길게 발음하는 건 아이와 놀아주거나 성인에게는 모멸감을 줄 때 쓰인다.
* "이 분은 아(~)주 전문가 수준이십니다." → 한번 이 녀석 하는 꼬라지 보고 웃어라.
* "참(~) 대단하십니다." → 오구오구.

칭찬은 면대면으로 진행하기를 권장하며 과장이 트리거가 되어 나쁜 쪽으로 결론이 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대개 과대평가된 갭을 제거하는 일치성 조정을 통해 폄하에 합세한 사람과 같은 선상에 놓이기 쉽기 때문에 본인이 나쁜 말을 옮기는 데 불을 지폈다고 오해받을 수 있다.

20.4. 공격성

사람은 살면서 각자의 이해가 상충되어 시비를 가려야 하는 상황이 오기 마련이다. 하다 못해 거슬리는 행위 전반을 실수라고 하듯이, 선을 넘는 기준도 제각기 달라 사회생활을 할 때 공격성을 표출하는 건 그리 이상할 것도 아니고 이는 꼭 특정 나라에만 보여지는 국민성이 아니다.

사람들과 갈등 없이 살아가는 게 사회생활의 덕목인마냥 과신하는 경향은 개인의 권리가 군중에 종속되고 존중받지 못하는 수동적 위치로 조작당하기 쉽다.[321] 참을성은 존경을 받을만한 상황에서나 따지는 거지 상대가 무례를 범하는 상황인데도 꾸역꾸역 참기만 하는 건 만만한 이미지를 새겨넣는 무모한 관용이다. 때문에 상대방 또는 준 집단 측으로부터, 본인이 하는 행동(예절의 수준)에 따라 나는 너에게 친절할 수 있고 나쁘게 대우할 수 있으며 이 역시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관계임을 반드시 각인시켜야 한다. 경운기 웃음이라도 내면 알아서 상대가 찝찝함을 느끼고 공격을 자중하겠지란 기대는 절대로 통하지 않는다.

상대가 먼저 선을 넘는다면 이에 대응해야 한다. 웃으면서 넘어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대부분은 의도를 이해하고 태세전환을 하거나 그에 비슷한 대우를 하려는 노력을 보인다. 조곤조곤하게 말하든, 서로 장단 맞춰서 조롱하든 온갖 수사학을 동원해 따질 땐 따져라. 지금 당장에는 요주인물로 찍히겠지만, 자기 할일을 잘 하면 윗선에게는 '남에게 휘둘리지 않아 책임감이 있어 보이니 믿고 맡길 수 있겠군'이라며 줏대있는 사람으로 신뢰감을 어필할 수 있으며 선을 넘으려는 후발주자에게 경각심을 줄 수 있는 등 올바르게 활용하면 사회적 평판에 기여할 수 있다. 살벌한 분위기를 자아낼 천성이 못 된다면 '나를 비꼬기 위해 꺼낸 건 알고 있으니 너가 내뱉은 말에 해명해보라'고 완곡하여 미러링이라도 해야 한다. 역설적으로 그 나쁘다고 배운 공격성은, 상대나 집단에게 존중받기 위해서라도 써야만 할 때가 온다는 것을 숙지하여야 한다. #1, #2 상대가 지속적으로 욱하는 포인트를 노릴 시 역공하는 방법도 있다. #3 이에 능숙해지면 어장의 군기를 다지고 선(線)무새들의 치하를 끊어내 실권을 잡을 수 있으며 의외로 주변이 보기에 그 수준은 과격하지만 않는다면 뒷수습도 크게 어렵지 않다. 주의할 점은, 야금야금 넘다가 상대의 임계점마저 초과해 직접 따지는 게 아닌 바깥에다가 신고를 하게 만들도록 자신의 공격성을 조절하지 않는 때에 있다. 당장은 상대가 말 없이 넘길 수도 있지만 이는 본인의 행동이 옳아서 넘어가는 게 아닌, 언제 터트리는 게 좋을지를 기다리기 위한 계산일 수 있다. 그러니 공격하더라도 폄하라고 생각되지 않도록 존중해줘야 추후 감정이 누적되는 걸 막을 수 있다.

혹여 상대에게 공격할 시기를 놓쳐 자꾸만 선을 넘나들어 기분을 잡친다 해도 이 역시 감정적으로 대처하여서는 안 된다. 이때는 나긋하게 의도를 물어보는 선에서 안 끝난다. 상대가 불쾌하게 만들 목적이 아니었다고 변명하든 말든 상관 없이 '네 말은 내 기분을 잡치게 한다'고 똑똑히 알려서, '내 언행은 남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겠구나'를 알도록 느낀 바를 전달(=경고)해 스스로 반성하게 만들어야 한다. 이럼에도 '니 기분 나쁘라 한 소린데 어쩌라고?'라는 식으로 반응한다면, 마음이 아픈 사람이라 생각하고 절대로 일반인의 생각을 공유한다는 희망을 가지지 말아야 하며 일적으로만 협력하는 게 본인 정신건강에 이득이다.[322] 최후의 수단으로 법을 이용하는 건 좋지만, 사회 초년생으로 보일 시 얕게 알겠거니 하여 본인이 잘못 알고 있다[323]며 정정하는 척 괘씸죄로 몰아세울 수 있다. 놀아나기 싫으면 철저히 공부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오기 전 상대방이 먼저 선을 넘지 않도록 지위의 탈선을 예견해 공격성을 보일 필요는 없다. 후배 기어오르지 않게 미리 초치지 말란 소리다. 환경에 맞지 않는 인간상이 분명 있을 것이고 이때는 협박을 하고 싶겠지만 되도록이면 '날 건들면 피곤해질테니 여기서 끝내는 게 좋을 거다'라는 식의 완곡어법을 적극 사용하거나 본인이 책임질 수 있을 만큼의 공격성만을 보여라. 당하는 쪽도, 상대가 세 보인다고 해서 나의 공격성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 속단하지 말자. 숨겨진 패는 상대에게는 미지의 공포이다. 비폭력대화로도 허무하게 해결되는 경우도 있으니 외관상 말이 안 통할 것 같다고 뚱해있는 건 좋은 대처가 아니다.

아래는 공공영역에 속하는 법적 성인[324]에게 금기시되는 공격성이다.
*공갈 및 절도
실물 자산일 시, 절도하기 쉽도록 방조하게 만든 피해자에게 책임을 따지기도 하겠지만[325] 어쨌든 공공영역에까지 언급된다면 범죄인 건 같다. 이는 상대가 손해를 끼친 만큼 청산하겠다고 맘대로 빼돌리는 것도 포함된다. 떡하니 다른데 본인 이니셜이라고 우기는 건 통하지 않는다.
*도구로 위협
상대에게 위해를 암시하도록 위협하는 건 유아 연기나 조력자의 아웅으로도 넘어가기 힘들다. 완구용품 또한 마찬가지며[326] 사람에게 던지기라도 하는 날엔 치료비는 물론 처벌까지 받을 수 있다. 둔기도 아닐 법한 걸로 장난스럽게 후리는 건 허용된다.[327]
*증거가 남기 쉬운 부위의 위해
머리채나 멱살 잡기, 정강이, 성대, 명치, 귀 같은 은밀한 부위 역시 증거는 남지 않더라도 cctv나 목격자가 있으면 뒷수습이 힘들어진다. 따귀도 멍은 안 나지만 소리가 새어나올 수 있고, 젖게 만드는 건 권장하지 않는다. # 하반신은 보이지 않으면 한결 자유롭다.
*수위 높은 언행
산재 방지 및 적법한 사규 유지에 불필요한 공포 분위기를 조성[328]하거나 주변인의 신변을 위협하는 것이 있다. 시선을 피한 채 욕하는 것도 포함된다. 여성화 된 욕설은 남성을 대상으로 할 시 더 관대하다.
*무리한 요구
사회 규범에 어긋나는 명령[329]을 내리거나 위에 서술된 예시를 대리에게 사주한다.
*대상 오류
노인의 경우, 힘조절까지 하면서 공격해야 할 상황이 잘 안 나오고 그렇게 한들 공격한 쪽의 평판이 나빠지기 쉽다. 정치질과 그로 인한 눈치 부족에서 면제되는 어린이의 경우, 성인에게 적용되는 관행에 불응한다는 이유로 보복하는 건 부적절하다.[330] 가상 세계에서의 공격성조차 신생아 ~ 아동을 대상으로 할 경우에는 예외다. 기타 유형은 아동 학대 문서로.
보면 알 수 있듯이, 어릴 때 도덕 시간에 졸지 않았으면 굳이 숙지하라고 안 해도 알 만한 것들이지만, 잘만 사용한다면 사회적 지위를 거쳐 사회성을 증명할 수완이 좋아 그중에서도 언행은 양측이 받아들이는 게 주관적이며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게 만드는 치밀함(예: 귓가에 대고 욕설)과 함께, 공용 연락망 대신 사선으로 직언 및 녹음이 불가한 기종을 노리는 등 통신매체를 이용한 공격성을 우회하는 쪽에서는 위에 금기시된 유형 중 현재까지도 일상에서 쓰임새가 가장 자유롭다.[331]

반대로, 돌려서 표출할 수 있는 공격성 중에서는 주시(注視)[332], 한숨 쉬기, 가래 끓기[333], 템포를 맞춰 손가락이나 발끝으로 책상/바닥을 두드리거나 피젯 토이를 만지작 거리기 등이 있다. 이것도 성격이 급한 사람이 쓰면 '더이상 지체하면 보복하겠다'라는 강도 높은 공격성으로 전달되는 경우가 있다. 줄을 스는 장소에서 빨리 처리하지 않는 앞사람에게 경고를 줄 때도 쓰인다. 기제식[334]이라면 강도를 높일 수 있다. 필체나 조합 패턴에 걸리지만 않게 주의한다면 공개된 장소에서도 시도가 가능하다. 드물게 자기결정권을 위한 반항일 수 있다.

일부는 굳이 말로서 자신의 기분이 어떻다 표현하는 게 질려 처음부터 트집잡을 건덕지를 미연에 막기 위해 떡대를 기르는 경우가 있다. '여차하면 당신을 무력으로라도 제압할 수 있다'를 무의식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회적 수단이 바로 원초적인 공포심을 주입하는 것이므로, 상대방도 예의를 지킬 확률이 높아지며 본인 역시 타인을 대하는 여유가 넓어진다. 즉 스트레스 내성에 따라 사회적인 평판은 극을 이루겠지만 중재자로서의 위치를 고수하기가 더 쉬워진다. 단, 메타인지가 부족하다면 상식적으로 통용되는지의 여부를 떠나 잘못된 관념을 주입하는 사회적 문제를 야기[335]하기도 하니 본인부터가 무력을 사용할 상황을 판단할 자격이 있다고 맹신하지 않는 자각이 필요하다. 다른 방법으로는, 현실 영향 없는 다양한 시뮬레이션인 상상 속에서의 공격 환상을 이용하는 것이다. 상대를 죽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시 상상에서 만족하여 행위 불능에 대한 부당함을 해소한다.

공격성이란 공방이 허용된 환경이 아닌 바깥에서 보이는 건 겉으로는 권장하는 기술이 아니기에 각자 자신에게 맞는 공격 방식을 알아가야 하며, 공격하는 중인 것을 알기 어려운 미묘한 수단이 있다면 이를 우선한다. 우연으로 인한 돌발 상황(예: 길 가다가 서로 못 봐서 부딪힘)에서도 가능한 충격을 덜 주는 방식[336]으로 가해야 하며 이외에는 정상(正常)적인 공격성이라고 하기엔 힘든 것들이다.
(지나가는 도중 어깨빵을 당하며)
행인: "아, 죄송합니다."
나: "아."
행인: "죄송합니다."
나: (더 크게) "."
행인: "뭐?"
자기를 업신여기는 것 같다는 이유로 무작정 공격성을 드러내면 안 된다. 따질 땐 따져도 상대가 사과를 했다면 공격성을 누그러트릴 필요가 있다. 위 예시 중, 한 단어를 반복적으로 읊는 것은 '죄송하단 말로 끝내지 말고 정신적 치료비를 보상하라'라며 시비 걸기 위해서도 쓰이는데, 여기서 행인은 '혹여 불쾌할 수 있는 건 나도 이해하고 있다' 식으로 먼저 사과하여 책임을 덜어낼 의도였다면 굳이 공격당한 측이 반격하지 않아도 서로의 사회성에 문제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술 기운같이 이성적 판단이 둔해질 경우, 한쪽이라도 피하지 않아 결국 꼭지가 돌고 신체적인 대화가 오가 종국에는 관찰자 입장에선 누가 먼저 스쳤는지가 중요하지 않는 상황까지 갈 수 있다. 자신이 얻고자 할 자존심이 목숨값과 비교할 만 한지를 생각해봐야 하며 평상시에도 상대가 본인을 언제든지 죽일 수 있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대화에 임해야 한다. 때에 따라 본인도 상대를 죽여야 하는지를 숙고해야 하겠지만, 법으로 해결하는 것도 정상의 범주이니 면전에서 판을 넓히는 건 위험하다. 상대가 공격성에 못 이겨 협박죄로 역관광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적은 한번 보고 말 사이라도 가급적 만들어선 안 되며 이는 예의의 연장선이다.
A: "길 좀 물어볼게요. 여기가 어딘지 아시나요?"
B: "저는 잘 모르겠네요."
A: "모르면 다예요?" / "아는 게 뭐예요?"

C: "이거는 이렇게 하는 거야."
D: "이해가 잘 안 됩니다."
C: (나즈막하게) "ㅆㅂ놈이..."

E: "XX는 OO야."
F: "아닌데. XX는 ΔΔ야."
E: "아니야. OO 맞아."
F: "만약에 아니면 나한테 맞는다."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안 해줬다는 이유로도 공격성을 드러내면 안 된다. 성향에 따라 증거가 안 남는 선에서 남에게 시비 거는 것을 권리라고 여길 수 있는데 이는 매우 오만한 생각이다. 당신은 그 영역에서만 약자가 아닐 뿐이지 상대가 그 법을 공격성의 대리 삼아 방어한다면 그 영역조차도 상대의 일부가 될지도 모른다. 공격을 받는 쪽이라면 이런 뒤가 없는 말투는 상대가 자신을 우습게 보지 않도록, 피곤한 일에 엮이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공격성을 띠게끔 과장하는 것에 가까우며 긴장을 타게 만들어서 먼저 실수하도록 유도해 실권을 다지려는 기강임을 알아야 한다. 앞으로 볼 사이 아니라고 필터링 없이 내뱉는 건 정작 잃을 게 없다는 걸 증명하는 꼴이 되어 서로가 밡힌다.
"누가 이렇게 이쁘게 했어요?"
"요새 편한가 봐요?"
"재밌죠?"
반어법이 포함된 공격성으로서 '지금 당장 이 짓을 한 당사자는 자수하거나 색출해내라'는 완곡어법이다. 은근한 협박을 행사하고자 할 때 사용된다.

공격성이 군중에 의해 이루어지는 경우 신체에 직접적으로 해를 끼치는 방식보다는 행동학적 단합으로 발언권을 뺏는 방식을 즐겨한다. 이는 갈라 치기를 하는 상황에서 더 자주 보이게 되며 상대가 하는 말을 청자들이 못 알아듣게 휘파람을 불어대거나 환호성, 박수[337] 및 발을 이용한 타격음, 감정 조작[338], 댄스를 추어 훼방을 놓는 수법도 있고 의도가 그렇듯이 개그 실패보다 고의성이 짙다.[339] 군중의 목적 달성으로만 한정한다면 긍정적인 요소이며 일상에서도 대상을 억압할 때 효과적이다. 여기서 상대가 특정하지 않은 도발에 발끈해 자백[340]하는 꼴이 되는 상황의 예외가 발생할 수 있다.[341] 남의 시간을 미끼로 삼는 지능형도 있다. 버스 출입구 또는 엘리베이터 문을 붙잡아 나에게 따질 수록 기다리고 있는 사람에게 민폐를 끼칠 것이니 알아서 수그리게 하여 본인의 논리가 옳게 되도록 마무리한다. 상대가 주변 눈총에 못 이겨 똥 밟은 셈치고 꼬리 물기를 포기해 그냥 넘어갈 것을 노리는 걸 수 있다.

어릴수록 같은 강도의 공격성으로도 큰 효과를 보인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에게 과장하여 엄포를 놓으면 성인 입장에서는 재밌는 광경이지만 당하는 쪽은 두려움으로 인해 사실로 받아들이는 순수한 면이 드러나게 되고 이를 잘 사용하면 훈육으로서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반대로 성인이라고 해서 정신이 성숙한 사람만 있는 건 아닌지라, 사회 부적응으로 인해 내성적이다 못해 심성이 꼬인 사람에게 욕을 해야 할 때는 공격 수위를 낮출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유형은 왜 욕을 먹는지를 이해하도록 설명해도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쳐 당신을 저격할 궁리만 생각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본인이 애기 달래 듯 갱생시킬 성격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포기하고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게 낫다.

공격자를 우대하는 사회적 관습이 있다고 해서 시대를 거듭하여 면제가 되지는 않는다. 대표적인 예가, 남녀마다 다른 교육관에 따라 공격성을 인지하는 수준의 차이로 인하여 책임이 차별화된다는 선입견이다. 현대사회에서의 관습은 감정 억제의 중추로서 맥을 다했다. '설마 상대(남성)가 여성인 나를 때리겠어?'와 같은 안일한 생각은 더이상 통하지 않으며, 단순히 당신을 사랑해서가 아닌 몸을 맛보기 위해 인내하는 것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하며 연애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도발하다간 눈 돌아가서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항상 인지하여야 한다. 관습이 살아있는 동안 지속될 거라는 기대를 버려라. 만일 없어진다면 그땐 당신이 보복 대상이다.

위 예시를 보듯이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공격성이 더 많다. 심지어 부정적인 공격성을 훈계하기 위한 과정도 충고→오지랖→공격성. 즉 내가 욕 먹지 않으려고 지적을 포기하는 게 더 이득인 결과 적의로 과장된 것을 진실이라며 자위하게 되었고 이는 서로 다른 세대끼리의 연결 고리를 헐게 만드는 이기적 개인주의로 전체적인 인의마저 퇴보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어떤 방식이 옳고 그른 공격성이라고 콕 집어 나열해 봤자 본인이 인간다워지기 위한 사회 기술의 활용 환경 및 공격으로 인식하는 범위에 따라 모두 다르게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는 화합을 위해서 필요악 개념으로 인지하거나 또 어떤 이에겐 사람의 가치를 뽑아먹기 위해서 있다고 믿는 것이고 이것이 상대방에게는 잘못되었다 여겨도 이미 그런 환경을 지나와서 각인된 관철은 바꾸기가 극도로 어렵기 때문에[342] 공격성의 완급조절이 앞으로의 선택에 있어 긍정적으로 다가온다는 결과를 실전에서 드러나도록 노력하는 것이 후대에게 그릇된 공격성을 통해 사회의 선순환을 방해하지 않도록 모범을 보이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20.5. 마음챙김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체화한 사회기술 간의 갈등이 불안감, 수치심, 혼란을 넘어 더욱 심해질 경우, 불특정 다수에게까지 증오를 전파할 수 있다. 이를 완벽함으로 미봉시키다보면 번아웃, 노이로제로 발전하며 사회로 재기할 수 없는 수준으로 악화될 수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누적된 스트레스는 회복탄력성으로도 분명 한계가 온다.

특히 반격(공격성)이 서툴거나 원인을 제공하는 집단에서 벗어날 수조차 없다면, 내면에서라도 이러한 환경에 따르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하며 전염되는 감정에 따라 성품이 절여지지 않도록 마음을 추르리는 방향으로 집중해야 한다. 심리상담을 받거나 다양한 취미를 만드는 게 좋으며 때때로 이를 덜어낼 수 있는 마음 저장소[343]도 도움이 된다. '나에게 이러는 의도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거칠 만큼,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근심할 정도로 내성도 없는 상태에서는 자기 보호에다 할애 할 체력을 갖다 사사로운 감정놀음에 투자하기보다, 상대의 말을 그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훈련을 해야 한다. 싫어하는 인간을 닮지 않겠다고 부정만 하면 시야를 넓힐 수 없다. 범죄자에게도 배울 점은 있고 관점을 바꿔 장점을 끄집어내봐야 한다. 배신도 인간혐오가 아닌 수요와 공급에 따른 몸값의 표상으로 전환하여 자신의 가치를 숙고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가족, 의형제, 동반자와 관련되지 아니한 나머지 일들은 염탐하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에 투자하는 게 좋다. 당신과 관련도 없는 사람의 논란거리 및 사건 사고에 대한 가십은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 가십에 팔린만큼 현실감각은 약화된다. 신경 끄는 기술을 익히고 남과 비교 선상에 놓이지 않도록 자신을 속여야 한다. 도피성 힐링도 만능이 아니며 과도한 인상관리는 선택지를 좁히는 망상으로 발전할 수 있다. 환각, 환청을 의식적으로 만드는 보조 인격을 통해 심리적 공간을 벗어나는 방법도 있다. 삶에 찌들어 마음을 챙길 여유가 없거나 세뇌를 하는 극한 상황에서의 보험으로 혼잣말을 나누어 줄 상상친구는 성인에게도 필요하다. 이해가 안 되면 본인 스타일의 애착 인형이 가상의 존재가 되어 떠다니며 원할 때마다 소통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는 고객응대 중 따지는 상대가 알아서 지칠 때까지 들어주어야 할 때 또는 이 사람이 믿고 따를 만한 상등품인지 테스트 해 보려고 시부릴 때 내 몸을 조종하는 인격을 통해 '내가 니 이빨에 자극받을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다'라는 품위를 보이고자 할 감정 방어를 하는 것과도 비슷하다. 가상의 경쟁 상대에 그치지 않고, 보육이 필요한 존재가 있다고 생각만 해도 의지 각성이 가능하다.

당장에 사회성을 보완할 실질적 대안은 아닐테지만, 스트레스가 인상에 박혀 추후 새로운 관계를 형성할 때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은 장기적으로 아군을 잃지 않게 처신하는 편법이 될 수 있으며 이렇게 생겨난 여유는, '저 사람에게서 보여지는 미성숙은 어느 부분의 사회적 결점으로 치부될 수 있는가?'란 논증을 거쳐 이의 개선점을 학습하여 사회성을 모방할 수 있는 체력을, 또 필요에 맞게 위로하는 연기를 구사하기에도 충분해진다. 이를 위해 자취를 하든 타협하든 간에 사회적 가면을 안치할 개인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명상도 좋다. 정신적 공해에서 벗어나 자신이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뭐가 준비돼있어야 하는지를 곱씹자.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라는 속담도 교훈이 될 수 있는 것처럼, 결국 개인의 안녕에 있어 무심함이란 자격도 사회성을 배우는 과정에서 필요한 것이니[344] 사회성의 허무함을 느낄 정도까지만 안 가도록 주의하면 탈진을 늦출 수 있다.

다가가고는 싶은데 친해질 수 없는 군중 속 허탈감은 영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으로 빗댈 수 있다. 여기선, 웃음꽃을 피우는 만발을 목격한 외지인 신분이 그간의 영향력을 의심하게 될 수준까지 진전되는 대부분의 경연이 이에 해당할 텐데, 모든 사람은 완벽하지 않기에 격해질수록 파리들을 부른다. 상대방도 본인과 같은 생각이지만 별 수 없이 어울리는 척해서 단물만 빼먹고 빠지는 사람도 있다는 얘기다. 도파민을 뿜어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며 그 이상은 예기치 않은 사고를 만든다. 좋게 쳐줘도, 낳고 자라난 단지 외 인간은 철저한 비즈니스 관계이다. 언제든지 배신당할 수 있으며 실제 당했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여기서 사회성이 없다고 자학하는 내면의 적을 조심하자. 뭘 해도 안 될 사람은 그냥 본인 할 일에 집중하는 것이, 친해지려는 노력이 괜히 위험인물로 보여지는 것보다 덜 꼴사나운 긴급처방이다. 향신료(사회 기술)도 특성에 맞는 상대에게나 맛(사회성)이 있겠다고 가늠하지 무작정 상대에게 뿌린다고 본인이 다룰 수 있어 보이는 게 아니다. 티키타카만이 사회 기술을 대표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자.

모든 사람에게 무해하려면 본인이 그만큼 신경써야 하며 반대로 둔감해질 수만 있다면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를 덜어 낼 수 있다. 이러한 바탕은 상대가 추후 무엇을 우선순위에 따라 행동할지를 예측하는 것을 기반으로 한 둔감-예민의 타결 문제로까지 뻗치고, 불편하지만 익숙해져야 할 환경[345] 내외로 심층 연습이 이루어져야지 둔감의 이점을 극대화한 예민의 최소선이 확립된다. 같은 행동을 했어도 다른 사람과 비교해 '이 사람만큼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보통이었나?'라는 기준에서 벗어나면 그때 신경 쓰고, 그게 아니라면 둔감 모드로 이어가는 거다. 피해를 끼칠 경우의 수를 지겹도록 확장하는 것도 결국 '너의 둔감함이 딱히 피해를 주는 건 없으니 이해하겠다/넘어가겠다'라고 상대를 추스리도록 하는 자기실현적 배포와 무심의 사이 합리적이라는 둔감함으로 이기적이라는 인간상에서 빗겨가기 위함이다. 또한 사회적 기술과 동떨어진 개인만의 합리도, 이러한 잠재력이 분기점을 노려 다수가 합리적이고 싶은 사회 기술을 확립해나가기 위한 전환을 노릴 수만 있다면 그쪽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사회생활을 하면 알 수 있을 아주 기초적인 정보들도 일단 모으다 보면 방대해진다. 각자의 기본적이어야 하는 사실은 그만큼 모르면 누구에게나 기본도 모르는 인간이 되는 건 같으니 이를 막으려면 철저히 서술하는 게 낫기 때문이다. 당신이 보고 있는 사회성 부족은, 상대도 어느 부분이 부족한지를 정확히 알고 있지만 이보다 더 피해를 끼치는 결점을 수습하는 데 집중하느라 튄 파편을 제어하지 못 해서 발생한 짜맞추기일 수도 있다. 이때 나에게 사회성이 없다고 지적할 시 너도 마찬가지라면서 이기려 들 필요는 없다. 그 사람 또한 당신과 같이 결점을 파악해 본인보다 먼저 지적한 거였을 수 있다. 당신도 어느 누구에게는 완벽하진 않지만 이를 인정하고 받아주려는 사람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모든 사람이 각각 불편한 부분을 다시금 모든 사람에게 골라서 적용하다간 본인이 먼저 미쳐버릴 것이니 그냥 넘어가도 뭐라 말이 나오는 게 더 이상한 오프라인의 기준을 따라가도 최소선으로서는 충분하다.

21. 결론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한 조건은 알고보면 꽤나 복잡하고 알아야 할 것도 무척 많다.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이 친구와 같이 다니는 걸 보고 교제가 마냥 쉽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이며 조금씩 배워나가야 한다. 게다가 착하거나 나쁘다는 조건은 상대적일 뿐이니 상대방이 착하다고 해서 본인이 원하는 말과 행동만 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다. 평생 상대방 기분을 100% 맞출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그런 사람은 얼마 못 가 호구로 전락한다. 물론 나쁜 사람들은 피해야 하지만 싫은 소리를 한번 했다는 이유로 곧바로 손절하는 건 그다지 옳지 못한 일로 한두 번 용서하거나 경고라도 해서 기회를 줄 줄도 알아야 한다.

사회성의 두루뭉실한 정의 특성상 상황을 통일할 수 없는 난해한 변칙성을 띄는 이상 모든 사람이 적절히 받아들일 수 있는 조율을 구현해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346] 즉 맹신해서 얻는 이득이 개인인지 조직인지를 떠나 다른 환경에 처한 시각에서는 전혀 도움이 안되며 그렇다고 이 문서를 근거로 자신의 의견을 강요할 수는 없다. 애초에 문헌이나 논문에 근거한 객관적 사실로 뇌피셜이라 생각되는 서술을 논파한다고 해서 상대의 의도를 정형화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울린다'라는 의미를 사회생활 그 자체의 의의로 과장하는 원인도, 타인의 기대에 부흥해야 한다는 컬트가 일반화된 풍경에서 배우고 자라 굳어진 강박이며 인맥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 또는 관계를 과시할 목적으로 도구화하여 현실을 도피할 자문력을 증진시킬 인문(仁聞)적 보험[347][348]을 구축하는 예비 정동을 가지고 사회성을 운운하고 타인의 입장에 과몰입해 억지 공감을 유도하는 현상을 환멸하는 것은 '남들과 다른 가치관을 지닌다는 건 멘토로서 적격하다'라는 사상과 동조해 사회성의 예외[349]를 만드는 행위를 정당하다며 이를 오염시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기조를 형성했다. 따라서 이 문서 또한 맹신하지 않는 유연한 관용[350]이 요구되며 대중이 정한 승자 기준의 사회관을 선망한다면 형식적인 사고화에 갇혀 임기응변을 길들이는 기회를 잃을 수 있다. 명문화된 사회성은 사문화로 위장한 개개인의 의도를 벌충하지 못한다. 이 문서도 그러한 빙산의 일각에서만 정리된 표면상의 관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항상 예외가 있을 수 있고, 몇몇 정보를 가지고 사회를 판단하다가는 자가당착에 빠지게 될 위험도 크다. 상대방의 의도를 책망하기보다는, 내가 상대의 상황이었다면 상대에게 바라는 것을 실천할 수 있을지 입장을 바꿔보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이 문서는 다수의 경험에 의한 실증적 방법론을 총망라한 결과물이기 때문에 어떤 이에겐 사회에 나가기 위한 지식으로서 도움이 될 수도 있고, 또 단순 뇌피셜들을 짜집기한 것뿐인, 읽어봤자 해가 되는 찌라시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351] 이는 저마다 사회생활을 할 시 알아야 될 지식의 필요성이 다 다르기에, 세 줄 요약으로도 정리할 수 있을 선에서 논문 수준으로 그 격차가 어지간히 비대해질 수 있다는 점이 낯선 것도 있다. 만약에 '이 문서가 풍부하니 읽다 보면 알아서 사회성이 좋아지겠지?'라고 생각한다면 방향성을 잘못 잡고 있는 것이다. 기본은 단순하지만 파고 들면 끝이 없는 이러한 증축은 문서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라는 것만 알 수 있게 해 주는 초석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상황에 따라 다르고 그 기술이 달리 적용되는 미묘함을 이해하려면 직접 사회에 뛰어들어 체화하는 게 가장 효율적임은 자명하다. 이 문서도 실제 사회를 비추기엔 새발의 피. 그만큼 사회 지식이 없기에 색다르다고 착각하는 것이고 각각의 사회 기술들을 독립적으로 정의한다 해도 변수는 실전에서 얻어지므로 구분이 애매해지기 때문에 단지 남에게 피해를 덜 끼치면서 교정하게끔 도움을 줄 뿐이지 이론만 알아서는 분란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352] 백문이 불여일견. 이곳에 서술된 모든 정보들은 위키가 존속하는 한 세대가 교체되고 다른 환경을 접한 사람들에 의해 수정돼 물갈이되는 건 필연이므로, 역발상하면 악용할 수 있더라도 기존의 관계에 영향이 가지 않도록 자신을 보호할 수단을 짚어보기 위한 참고용으로만 받아들이기를 강력히 권장하는 바이다.


[1] Adams, 1977; Blöte, Miers, & Westenberg, 2015; Dion, Berscheid, & Walster, 1972; Eagly, Ashmore, Makhijani, & Longo, 1991; Goldman & Lewis, 1977; Miller, 1970[2] 윤성욱, 설상철, 황경미, 2003. 다음 논문에서 재인용.[3] 영역 침범성이 다분한 후각을 찌르는 계열(예: 호불호 갈리는 음식, 공공장소에서 양치질)이라면 사람에 따라 악취로 느낄 수 있다.[4] 이는 외모에 물리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다.[5] 특히 이런 경우 같은 행동을 해도 더욱 기피되기 쉽다. 두피나 눈썹 문신은 멋들어진 인상을 주기에는 효과적일 수도 있지만, 이 외에는 양아치나 과거 조직폭력배들이 주로 했었기 때문에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 꽤 있다. 이로 인해 단정한 이미지가 중요한 조직에서는 상당히 불리해진다. 과장 보태서 어떤 이들은 "나는 쓰레기다. 알아서 걸러라."라고 광고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6] 교정이 가능한 돌출입에서부터 안면비대칭, 동서양을 가르는 안와상융기두형의 차이, 심지어 남이 부러워 할 만한 동안도 사회 물을 덜 먹어보인다는 이유로 신뢰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7] 사람들은 외모로 차별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러한 연기가 도덕의 무결성을 증명하기 쉬운 모범답안이기에 환경에 맞게 본성을 드러내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오는 이득을 고려하여 사람에게 친절을 보이는 거지 당신이 그럴만한 자격을 가졌다고 착각하면 안 된다.[8] 나쁜 식습관(예: 패스트푸드, 가공식품, 배달 음식 등) 자체가 사회성 부족이라 할 수는 없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건강을 해쳐 피부톤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사회적 능력과 관련 있다.[9] 청각에 문제가 있거나 본인 발음이 어눌함을 인지하여 크게 하는 게 습관이 된 경우가 있다. 반대로 상대방에게 크게 말하는 것이 시비를 거는 것이라 배워 작아진 걸수도 있다.[10] 표정에 거짓이란 게 티가 나거나 개인적인 원한, 아니면 겉보기에 지적장애와 같은 멍청이라고 판단할 시.[11] 이의 방식을 역전시켜서 이용하면 타인에게 설파하면서 신뢰하게 만드는 수법에 통달한 사기꾼의 전형적인 수법과 비슷하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지금 하는 말이 터무니 없단 걸 알지만 너무도 확신에 차있는 상대방의 표정과 전달력 때문에 순간 혹 하게 된다.[12] C의 지시가 단순히 스테이플러를 달라는 걸 넘어 본인(D)이 직접 찍으라는 의미까지 담긴 것이었다면 이에 속한다. 또한 '한번'과 '한 번'이라는 차이에서 오게 되는 지시 강조와 수량의 구분, '모든 사람'에서 나를 포함시키는지와, 합류 시기를 현 일을 끝내는 시점의 전후 중 어디에 넣는 게 상대의 의도와 더 적절한지, 다음에 오게 될 지시(예: 여기까지)를 단순 중지로 볼지 아니면 이전 지시의 결과와 중첩시켜야 할지를 구분해야 할 때는 난해해진다.[13] 나의 행동을 보며 "그거 사람들이 ㅎ... 싫어해."라는 상대방의 반응에서, 'ㅎ'을 혐오로 발음하려다 멈춘 것으로 판단해 모종의 순화할 이유가 있었음을 알아낼 수 있다.[14] 만약 표정관리가 전혀 안될 정도로 감정이 힘든 상황이라면 인간관계보다는 그 상황을 원만하게 해결하는데 집중해야 한다.[15] 외국인이 자기들 언어로 인종차별적 발언을 해도 상대는 이를 알아들을 수 없으니 그냥 넘어가(야)겠지만, 뭔가 좋은 의미로 한 게 아님은 표정을 통해 알 수가 있다.[16] 돌이 채여 상대방에게 날라가면 시비거리가 된다.[17] 각 국가를 방문하기 전 손 모양에 따른 인식 차이를 알아두어야 한다.[18] 수량을 체크할 때 손가락을 허공에 튕기는 건 상대가 보기엔 명령질하려는 걸로 보인다.[19] 어느 행동이나 그렇듯 과장하는 건 자칫 상대방에게 '일단 너 말에는 동의를 하는 척 티는 낼 테니 좀 짜져 있어라'라는 의미로 전달될 수 있다.[20] 따지고 보면 월경도 마찬가지로 변덕이 심하지만 일단은 고통스러우니 이해해줄 순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공과 사가 구분된 상태에서다.[21] 이는 징크스, 미신, 숫자 금기, 의 내용 등 납득이 안 되는 원리를 가지고 상대가 따르지 않은 것을 본인도 피해를 입었다고 따지는 경우로 들 수 있다.[22] 특히, 상대방의 눈치 없는 행동을 보며 혀를 차거나 헛웃음을 보이는 건 신체적 보복이 뒤따를 수 있다. 아무리 답답하더라도 차분히 대응해야 뒷탈이 없다. 맞는 척(맞장구)을 해주어 당장은 무안하지 않게 배려하는 것도 눈치이기도 하고.[23] 맛보기로 이를 겨냥한 게임으로 모의 테스트를 해볼 수 있다. 물론 이의 근거로 사회성의 우열을 따질 순 없으니 유의하자.[24] 참고로, 동서양마다 감정에 따른 얼굴 근육이 관할하는 부위가 달라서 눈 이외에 입술을 통해서도 상대의 감정을 파악할 수 있는 경향성을 보인다. 특히 서양 문화권은 혐오에 있어 윗입술이 들리는 정도로 그 차이를 구별하기 쉽다.[25] 간혹 분명 친구인데 잡담을 붙일 관계가 아니라고 느낄 때가 있는데, 이럴 땐 일단 말을 걸어보고 반응을 보자. 머뭇거리는가 싶다가도 괜히 더 가까워지면 친해지겠거니 다가가다간 자칫 혼자가 된다.[26] 예시로, '1+1 은 3'이라고 진지하게 말하는 상대에게 굳이 본인의 시간을 들여 정정해봤자 그에 따른 이익은 없고 주위 사람이 보기에 할 일 없는 것들의 개뻘짓이라 비춰질 우려도 있어 그냥 맞다며 넘어가는 것을 상대방 측은 내 말이 맞으니 설설 긴다라고 착각하는 것이다.[27] 상류층이라도 교양같이 고차원적인 눈치가 요구되는 건 공식 석상에서나 사용하지 일상같은 사교 영역에서는 별개이다. 문제는 사용처를 구분하지 않고 남발하는 추태도 모자라 강요까지 하면서 이에 따르지 않을 시 눈치가 없는 사회 부적응자라 폄하한다는 것이다.[28] 훈계 시 가능하면 1대1 로 하려는 것도, 본인이 오해하고 있을 가능성도 다분하며 이미지 관리로서 돌려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29] 사회성은 되도록 적을 만들지 않는 것을 골자로 하며 위법 행위를 하는 상대방을 방관하는 건 정말로 그 행동이 법에 저촉되는 걸 몰라서 무시하는 게 아닌, 상대를 적으로 만듦으로서 불똥이 튀는 걸 감당할 만큼의 이득이 없다는 것을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눈치와 도덕성과는 관련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30] 특히, 자신과 똑같은 과오를 한 사람에게 적용할 시 인간의 불완전성에 소급하여 판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람은 본디 실수를 하며 이를 지적하는 사람 역시 실수할 수 있다는 경각심을 지니고 겸손해야 하는데 정작 앞으로 평생 실수를 안 할 것이기에 상대를 비난할 자격이 있다고 맹신하는 오류를 범한다.[31] 이는 자신이 상대와 어느 정도는 강제로 친해져야 살아남는 환경이었을 확률이 높고 그만큼 나의 부족함과 실수를 어쩔 수 없이 보여야 하는 경우도 많으니 상대는 다른 곳(공공영역) 역시 이곳(사적영역)에서와 같이 사회성이 낮다고 예상하는 거다.[32] 내 논리가 틀렸어도 너보다 인간관계가 넓은 것을 '사회성이 좋다=우월하다'라고 확장하여 자신의 잘못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내빼면서 정작 자신과 같은 잘못을 한 사람에겐 지지리도 집요하게 파고들어 그 집단 내 사회성이 낮은 너의 의견은 틀렸다로 조작한다. 이건 본인이 진심으로 인간관계를 업으로 생각하고 상대방은 잘한 게 없으니 관계망이 좁고 사회성이 낮다는 건 그만큼 의견의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니 이를 어림잡아 '니 인격적인 문제 또한 그런 잘못에 관여하지 않았다고는 말 못하겠지?'라고 자신의 인간관계를 사회의 기여분이라 착각해 죗값을 흥정하는 거다. 또 상대의 주변인이 직접 교차검증하여 따질 가능성도 적어 자신의 지적을 맞받아칠 수고도 덜어지니 가지고 놀아도 괜찮을 것이란 거만이 깔려 자기가 우월하다고 착각해 틀린 말을 했어도 상대방이 친구(사회성)가 없다는 걸 드러내 내 논리가 옳든 아니든 "그렇게 따지려드니 친구(사회성)가 없는 거다."와 같이, 너나 잘해라로 상대를 무안하게 만들기 쉽다.[33] 100%의 집중력을 동원해야 상황을 해결하는데 난데 없이 상대가 끼어들어 본인은 동의하지도, 인지하지도 않았던 다른 상황을 들먹여, "조금만 신경쓰면 눈치챌 수 있던 걸 알아채지 못하다니 참으로 멍청하구나."라고 핀잔을 주면 분노를 느끼게 된다. 집중력이 끊기는 건 덤.[34] 설령 맞다고 해서 B의 우위를 인정한다는 확증도 없다. 되려 의미 왜곡을 이용해 질투로서 보복받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35] 눈치챈다는 건 보통 조롱 목적으로 말을 따라한다던가 천성이 띠겁게 말하는 걸 좋아하거나 본인이 속한 영역에까지 피해가 와 눈치 안 채는 게 더 이상한 경우이다.[36] 이는 수평관계 내 서열 문화가 세속되는 원리이다.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한쪽만 유달리 표정이 썩는다면 이러한 과정을 거쳐갔을 확률이 높다.[37] 이는 상사가 B를 갈굴 때의 답정너식 화법 중 하나이다.[38] A의 사회성이 평균치라면 욕을 안 들으려고 성실함을 어필하여 굳이 C가 조율할 필요 없이 실드를 받는 게 가능하며 다른 사람도 은연 중 B의 이득으로 돌아가는 걸 눈치챘어도 C대로 하다간 묵살될 거란 리스크를 전체가 알고 있다고 앞서가 관망하는 것을 알아야 한다.[39] 저시력, 햇빛, 색각 이상.[40] 최소한 치장한다는 건 이 사람에게 잘 보일 시 얻게 되는 확실한 보상이 있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것인데 여기서는 그런 것도 없다. 조직에서의 사적 난립은 지양해야겠지만, 사적영역에서의 조직문화를 관여하는 건 이들이 원하는 인과율에 비해 사람이 복종할 만한 보상체계(기대)와는 거리가 멀다.[41] 자신이 호의를 받을 만큼 조직에 기여한 게 없거나 사회적 거리를 좁히려는 과정이 전무할 때.[42] 작게는 커피에 가래침을 뱉거나 압정, 바늘, 커터날, 농약 등을 넣어 상해를 초래, 약물에 의한 강간이나 납치, 극소수로는 실험.[43] F가 아닌 다른 사람이 받을 물건을 자신에게 준 것으로 착각하여 생기는 상황이며 구성원의 주도하에 누명을 씌우는 것도 이와 같다.[44] 이는 주변 인물이 외향성에 가까워 좋게 받아주는 게 당연하다고 배운 사람에게는 호의를 받아주지 않는 신중함을 이해하지 못하여 반감을 가지는 케이스가 생기고 이러한 심리는 끼리끼리 자라난 주변인의 조언으로 '악의로서 자신의 선의가 더렵혀졌다'라고 조작당해 서로 다른 성향을 지닌 사람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게 되는 원인이, 앞서 가기로 심증을 스스로 추론하지 않고 조직을 통한 책임 회피와 다수결을 만족하려는 재해석적 욕구가 평형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중상모략의 기저에 만족한다.[45] 100가지의 실수 중 하나라도 지키지 않는 게 전부 지키지 않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고 한다면 누구나 후자를 택하고 일탈할 것이다. 자신의 행동거지가 항시 감시받을 수 있다는 상태를 알게 하는 건 감시자의 방식대로는 좋겠지만, 그 방식이 굳이 사회에서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라면 이만한 시간낭비가 없다. 명예 보존을 위하여 생각 없는 말을 꺼내는 걸 극도로 조심하고 또 이를 당연하다 여기고 자라나지만, 정작 사회에서는 생각 없는 말임에도 웃고 떠드는 소통의 창구가 될 수 있음을 깨닫고 판이하게 다른 사교술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얘기를 꺼내봤자 붕 뜨게나 하지 진지충같이 오명이란 오명은 다 뒤집어씌인다. 이는 허탈감과 동시에 양측을 향한 증오를 양산한다. 절제가 있어도 내면은 삐뚤어진다. 사람 미치는 거다.[46] "알려줄 사람 어디 없나?"보다는, 본인을 지목하여 "알려줄 수 있나요?"라고 특정성을 만족할 시.[47] 상대 입장에서는 생판 초면인 남인데 친구의 친구라는 이유로 연결지어 구면인 것처럼 대하는 경우도 이에 해당된다.[48] 혹시나 유형 1 이 진행될 만큼 관계가 진전됐다면 껴도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그 명분이 그저 자신의 답답함이라면 애초에 주변으로부터 좀 무관심해질 필요가 있다.[49] 부자, 사업가, 연예인, 메이저급 인플루언서같이 서민들이 평생 벌어도 못 모을 돈을 지니는 만큼 고충이 따르지만 일반인은 공감하기 힘들다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50] 가장 흔한 예로는, 집단이 정의한 1차원적 사고가 지극히 상식적인 대처법 인냥 피해자 또한 가해자에게 괴롭혀도 될 명분을 제공했으니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이를 꾸짖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긴다.[51] 유흥 목적의 티키타카, 어린아이의 재롱, 유족의 대응 등 이에 이미지 관리 안 한다고 따져봤자 본인의 이미지만 나빠진다. 이를 애써 외면하기보단 같이 공감해주는 척이라도 하는 게 타인이 바라보는 상식인의 기준에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52] 조직으로 비교하면, I는 파벌의 우두머리, J,K는 플라잉 몽키, L는 I의 우월성을 보충하기 위한 도구이다.[53] 상대가 반박하지 못하는 건 설마 이런 걸로 과거를 들먹일 정도로 예민하지는 않음을 앞서 생각했기 때문이다. 딴지를 거는 측은 본인도 예상한 토론이라 생각하겠지만, 당위성을 해명하는 입장에서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끼어드는 상황이니 준비기간도 사회자도 없는 이상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 쉽다. 일부 악질은, 주위 사람이 보았을 때 '잘못을 했으니 알아서 긴다'라는 상식을 이용해 지적당하는 사람이 당해야 하는 사람으로 탈바꿈시키는 경우가 있다.[54] 이는 자연 상태의 관찰자에게도 적용된다. '괜히 그런 말을 했겠어?'싶은 밑밥을 제공받고 모종의 적대관계로 이어질 트리거가 있었음을 설득(당)해 같이 앞설 명분을 공유한다. 이는 지적할 거리. 즉 잘못인 것처럼 만들어야 할 때 유용해진다.[55] 한치 앞을 예측하기도 힘든 상황 속 이성만 차리면 모든 상황을 통제할 수 있다는 원론적인 오지랖은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 배부른 상황에서나 할법한 가짜 지성이다. 이들에게는 묻지마 범죄자에게 칼부림 대상으로 흉기에 찔린 피해자에게 '왜 멀찌감찌 이상신호를 보고도 도망가지 않았는가? 이에 대해 피해자도 안일했던 책임이 있다'라고 반문할 정도로 자신이 예상하는대로 세상이 돌아간다고 판단하며 상황을 복기할 여유가 없는 위급한 상황에서 피해자는 그걸 몰라서 찔리진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이론으로만 땜빵해 사회성이 좋은 척 연기하는 거다.[56] 외람이지만, 잘나디 잘난 연예인의 부모가 출현하여 자식 평을 할 때 한심하다며 비꼬는 듯한 묘사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방송이니까 아웅떠는 것도 있지만, 일반인과 비교하면 아무리 공공영역에서는 우월하더라도 사적영역의 모습으로 각인된 부모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진심이기도 한다는 뜻이다.[57] 범죄자를 대상으로 한 폭행을 정의로서 응징한 가해자의 변명으로 자주 거론되지만 문제는 감정적으로는 분노를 느끼지만 위해를 가하면 위법임을 아는 다수의 상식인의 존재를 망각한다는 점이다.[58] 이와 비슷한 예시가 있는데, 이 역시 엄밀히 말하면 영역 외에 있는 사람에게도 남겨줘야 할 법적 근거나 의무는 없으며 도의적으로는 문제가 되겠지만 그뿐이다.[59] 그러니까 A가 느끼기엔 '너(B)같은 노예가 왜 나랑 말을 길게 이어나가려 하는 거지? 주변이 보기에 너랑 나랑 친해지려는 것같이 보이잖아. 불쾌해'이다.[60] 여성 한정으로, 나이가 적다는 걸 어필하여 본인의 나이에 맞게 땡겨준다는 의미로 돌려 까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61] 여기서 C가 D의 행위를 메타화할 수 있는 눈치력을 지녔다면 이 또한 동의받지 않은 상황에서 최선의 방책인 무대처를 상대(C)가 모를리가 없다고 판단할테고 어찌 보면 C는 주변인에게 나쁜 의도로 소문을 퍼트릴 것을 예상하지 않았을리도 없다는 것을 D가 아는 걸 아는 상태일 것을 예상하는 것도, D에게는 C에게 요구하고자 할 사회적 능력의 기본 소양일 수 있다.[62] 남들이 보기엔 이 상황에선 이러이러하게 대처하는 게 당연할지라도 개인에게는, 영역이 다른 상황이 경합하여 오는 무수한 예외 상황의 공통 대처가 예기치 못하는 상대의 딴지에 인성 부족으로 정보가 와전돼 조리돌림 당하는 게 정확하다. 괜히 윗선이 하지 말라고 한 거 하다가 밥줄이 끊길텐데 어디서는 왜 안 했냐고 따지면 대체 무슨 장단에 맞쳐줘야 하는지도 그렇고 각 분야와 동 떨어진 해결책으로 둔갑한 거짓짝으로 이는 뉴스 포털, 유튜브 댓글을 보면 이 분야의 진수를 알 수 있다.[63] 이러한 점을 해학적으로 연출해 낸 영상도 있다. #[64] 또는 관례상 맞장구 쳐준건데 이를 사회적 거리가 허물어졌다고 오해해 받아줄 거라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친해졌어도 이런 식으로 선을 넘게 된다면 불신을 안겨 준다.[65] 인간은 외관에 지배된다. 모자라 보이는 게 이유인 것도 슬프지만 맞을 수 있다.[66] 그 이유조차 상대를 납득할만하게 의미를 조작할 수 있으니 본인이 뒷담화나 험담을 퍼트리는데 가담하진 않았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 만일 맞다면 이유를 조작해 험담할 때 쓰일 수 있다는 걸 상대방도 알기 때문이다.[67] 보통은 '내가 X되냐? 니가 X되지'라는 심정으로 상대방에게 별 충고도 안 하고 알아서 밑바닥으로 떨어지기를 바라는 속내를 가진 사람도 많다. 근데 굳이 당신에게 시간을 들인다는 건 중립적이진 않더라도 최소한 나의 문제를 재고해볼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이 사람과 관계를 이어나가야 하는지도 더 빨리 판단할 수도 있다. 허나 편향이 난립한 커뮤니티처럼 홍보를 위해 개인의 경험을 각색한 정보로 인맥을 걸러내다간 곁에 둬야 하는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기회마저 손절하고 만다.[68] 마치 외국인이 현지인을 바라보는 입장처럼, 과잉 인지 상태에서 가장 이상적인 추론을 내는 정상인의 연기에만 혈안이 돼있기 때문이다.[69] 그 집단이 정상인처럼 보이는 걸 불문율로 둔다면 장애인이나 사회성이 부족한 인물 또한 희생양이 될 수 있다. 일례로 과거 장애인 놀리기가 유행이었던 교내 환경이 주 예시.[70] 이런 사람들은 명시화된 규율이나 알려주는 규율은 익힐 수 있으나 사전조사와 현장에서 경험하는 것만으로는 바로 알기 힘든 불문율을 파악하기가 어렵다.[71] 다만 비인간적인 내용이 많아 지키기 쉽지 않다. 그리고 해당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아무 예절을 지키지 않고 비인간적으로 대한다 해도 상급자가 하급자의 예절을 트집 잡으며 예절을 지키라고 지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예절의 문제가 아니라 기분나쁨의 문제이다.[72] 언쟁의 원인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언쟁을 악화시키는 건 십중팔구 어느 한쪽에서 시작된 무례함이다.[73] B가 대상에게 전달할 말을 C한테 대신 부탁할 때, C는 곧이 곧대로 얘기해선 안 되고 필터링을 거쳐야 한다.[74] 온라인에서 보이는 개연성 없는 사이다식 대처법으로 상대에게 망신을 주려는 얄팍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사회에서 이런 식으로 위해를 가한다면 절대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는다. 남을 까고 싶다면 본인도 진흙탕에 뒹구는 걸 각오해야 한다.[75] 이것도 외모에 대한 지적은 아무리 친하더라도 보편적으로 무례하다고 여긴다. 이는 부정적인 상태를 상대가 느끼게 해 줄 목적이었어도 같다(예: 얼굴이 안 좋다 / 안색이 안 좋아 보인다).[76] 글은 말보단 오해를 사니 만큼 마침표 하나로도 그 의미가 달라지는데, '그러세요.'를 '그러세요?'로 잘못 칠 때, 허락을 구하는 상대는 '그래서요?'로 비꼬는 것처럼 들린다.[77]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대신 "-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겁니다."는 목소리를 안 깔아도 협박조로 들린다.[78] "이거 잠깐 사용하겠습니다."와 "이거 사용하겠습니다." 중 사용 기한이 명확한 전자가 원래 자기 것마냥 가지려드는 여지를 주지 않는다.[79] 제재하고자 하는 범위가 추상적일 시 개개인마다 준수해야 할 선의 한도에 있어 제재에 겹치지 않게 적절히 조절했다고 생각하는 경우, 사람이 없어도 공공장소라면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측 간에 갈등이 생겨날 수 있다. 영화관에서 떠들면 안 되는 안내사항을 보고 '아 그럼 안 들리게 소곤소곤하는 정도는 되겠구나!'라며 행동하는 사람은 상대방이 보기엔 똑같이 떠드는 것처럼 보여 선을 넘는다(=예의가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80] 앞에 붙는 경칭 이외의 표현(예: 아저씨, 아줌마)도 발음에 따라 시비로 느껴지니 주의해야 한다.[81] 현실에는 D보다 훨씬 악독한 표현도 널렸다. 단지 위키 규정상 적을 수 없을 뿐이다.[82] 이를 순화한 패드립 순한맛 버전이 있는데 이것도 실생활에서 쓰면 제정신으로 안 본다. 트래시 토크도 이와 관련된다면 문화에 따라 호응할 순 있어도 비매너인건 다르지 않다. 탈룰라는 고의가 아니니 제외.[83] 정확히는 사과를 요구한 것이 확실지 않은 중립적인 상황.[84] '기분 나쁜 것(=나쁠 테니)에 사과한다'라고 상대의 기분을 확정한다면 지적하는 측이 '본인이 이런 걸로 화날 정도로 속이 좁다는 걸 나도 안다'라는 완곡어법으로 해석해 역으로 털릴 수 있다.[85] 나보다 먼저 상대의 영역에 들어온 사람에게 힌트를 얻어 조합한 뒤 적용하는 것이다. 관찰자 입장에서 스몰토크를 통해 엿들은 정보를 취합하여 대상의 관심분야를 미리 조사할 수도 있다. 단, 이는 상당한 관찰력은 물론 이러한 상황을 만드는 유도신문에 능해야 하며 잡담에 긍정적인 유한 성격이어야 한다.[86] Colarelli & Haaland, 2002[87] 안전사고 방지, 가축수송 및 급정거, 먼저 가는 상대방보다 빨리 지나가야 할 시, 졸다가 옆 사람에게 닿거나 손이 엉덩이 주변을 스치게 하는 상대의 행동 반경을 예측하기 어려운 모든 상황.[88] 바쁘다고 물건을 세게 놓거나 손이 아닌 발로 치우거나 차는 행위, 상대방이 집고 있는 물건을 낚아채거나 용무가 있다고 이를 던지는 것(예: 거스름돈, 자동차 키).[89] 문 뒤에 사람이 대기 중일 걸 대비해 천천히 열거나 잡고 기다리는 에티켓 이외에도, 배려가 사람에 따라 오해를 부르는 경우에는 이해하기 쉽게 과정을 가공하는 이중적인 세심함을 보여야 할 때도 있고, 뒷사람이 갑이면 보복당하지 않게 일부러 못하는 척해야 할 수 있다. 사람이 빠져나오게 할 최단 거리를 유지하는 것도 들어간다. 힘의 차이를 인지(예: 병뚜껑 조이는 세기)하거나 미리 메뉴를 고른 상태로 오는 것, 또한 다같이 식사하려는 사람들로부터 공용 위생이나 본인이 자리를 애매하게 잡아서 다른 곳에 착석하기를 원하는 듯이 눈치를 주는 것에 응해야 할 수도 있다.[90] 알람, 음역대, 전자음 간격이 생각 이상으로 거슬린다거나 이어폰 소리가 새어나와 숙면에 방해된다며 볼륨을 낮추라고 할 시, 균형미를 방해하는 기물 배치, 앉는 자세, 반복운동(예: 다리 떨기, 스트레칭을 위한 도리도리)을 보기가 사나울 시, 날인 각도 및 서명 위치, 국기, 로고, 한계효용의 기호성(예: 각각 온도에 맞는 특색을 지닌 음식들을 한 곳에다가 포장하는 것) 등 명예가 있는 상징 및 조형물에 대한 무례, 소비자도 아니면서 구색에 맞지 않는 요구 사항.[91] 점원끼리 얘기하고 있는데 도중에 계산해달라는 손님에게 예의가 없는 사람이라고 하진 않는다.[92] 심하면 자폐성 장애로까지 치부해 생사람 잡는 경우가 있다.[93] 하나 이렇게 경험해야지 알 법한 특정 집단에서의 불문율은 급조됐을 가능성이 높은 이상 도덕의 성숙도와는 멀어지며 파벌에 따라 결정되는 공적 친목질 요소에 불과해진다. 주객이 전도될 만큼의 핑계가 통하는 곳에서는 결국 범죄도 불문율로서 합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니 개인이 아무리 위법임을 지적해도 '예민하다. 이런 걸로 문제 삼으면 사회생활 못한다'라며 나대는 걸로 비춰지기 쉽고 또 그렇게 되게끔 가스라이팅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최소한 본인은 다른 집단에 속해야 할 시에도 이러한 불문율을 단순 가학성 취향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 정당하다고 추종하지 않는 사고방식부터 사전에 터득해야 할 것이다.[94] 가령 '남성이라면 여성보다 궂은 일을 도맡아 해야 한다'는 것에 불만을 가진다고 해서 이를 여미새가 실권을 잡은 조직에서 받아들여진다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수용 의식이 없다라며 보복할 여지를 만든다. 결국 필요 이상으로 피곤해지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힘이 없는 걸 커버치기 위한 피곤함을 대비하는 게 바로 여기서 말하는 적절한 준비와 그에 따른 사고방식인 것이다.[95] 많은 사람이 좌측으로 다니면 우측통행보다는 좌측통행을 우선해야 한다. 단,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올라가야 하는데 봉 손잡이가 좌측에 있을 시 개인도 다수의 효력을 지닌다.[96] 굳이 비유하자면, 채식이 용인된 공간 내에서 채식주의를 비난하는 행위.[97] "바빠?" → "네(수긍하고), 무슨 일인가요?(방어하기)".[98] 상사가 부하에게 본인한테 욕을 해보라고 하거나, 반말해도 된다고 떠볼 때 정말로 요구대로 했을 시.[99] 꼬우면 때려보라고 종용하는 경우이며 대부분 도발하는 측은 잃을 게 없다. 목숨 빼고.[100] Hall, 1966, The hidden dimension[101] 만약에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을 제외하고도 그런 사람이 50% 이하밖에 안 된다면(즉 과반수 이상에게 배척당한다면), 반드시 자신을 돌아보자. 배척당하는 건 본인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지만, 만약 50%를 초과한다면 본인에게도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이를 방치한다면 남은 사람들도 결국 당신을 떠날 가능성이 매우매우 높다.[102] 다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고, 상대방이 그 이유를 알려준다면 횡재했다 생각하고 재빠르게 고치는 것이 좋다. 차별한다는 게 좋은 짓은 아니지만, 상대가 차별까지 할 정도라면 본인도 주위에 많은 민폐 또는 피해를 입혔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103] 이러한 류의 차별은 엄연히 법으로 금지하는 나라들도 여럿 있을 정도로 상당히 심각한 행위이다.[104] 미필이면 사회성이 좋아도 온도 차가 생길 수 있다. 특히 면제라면, '군대 갔다왔냐?'는 질문에 부드럽게 반응하기 힘들고 수평관계여도 남초라면 위계질서와 연관된다. 같은 군필이어도 급이 나뉘는 판이니 병명을 집요하게 캐묻진 않더라도 '군대 경험 없음 = 철이 안(못) 듦 = 사회성 부족'이라는 편견으로 인해 같은 실수를 해도 사회 부적응자로 몰리기도 쉽다. 그나마 예외 사례가 세간에 알려진 이후 대놓고 편가르는 경우는 사라지고 있다.[105] 신분 세탁, 다단계, 사기꾼 등.[106] 이런 경우에는 당사자가 집단과 어울려놀기를 귀찮아하거나, 아니면 집단 내에서도 잘 맞는 사람들끼리만 놀다보니 생겨나는 현상이다. 만약 가끔씩이라도 친구가 불러서 집단과 어울린다면 아래의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되는 것이, 애초에 당사자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아예 부르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이라면 싫어도 매일 봐야 하는 사이니 어쩔 수 없이 지내는 경우가 많지만, 대학교로 진학한다면 서로 학교도 달라져서 안 부르면 만날 기회도 없으니 자연스럽게 인연이 끊어지기 마련이다.[107] 만약 당신이라면 짜증나는 사람들하고 다니고 싶겠나, 아니면 그냥 평범한 사람하고 다니고 싶겠나? 당연히 평범한 사람하고 다니고 싶을 것이다.[108] 가능성이 높은 건 아니지만 차라리 직설적으로 이유에 대해 물어보고, 만약 상대방이 이유를 이야기해준다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곧바로 고치는 것이 좋다. 억지로 화해하자며 강요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불쾌함만 줄 뿐이며 비호감적인 요소를 더할 뿐이다. 만약 이렇게 물어봤는데도 무시로 대응한다면 그 인간관계는 그냥 포기하도록 하자. 이미 악화될 만큼 악화된 것이며 상대방에게는 당신에 대한 일말의 정조차 남지 않은 것이다.[109] 같은 반 학생, 동아리 동기/선후배, 조별과제 조원, 학과 동기/선후배, 단골 손님과 종업원, 직장 동료/선후배, 거래처 등.[110] 가끔씩 일이 끝나면 차단을 해 버림으로서 약간의 틈조차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111] 이론에 의하면 어떤 욕구는 이전 단계의 욕구를 충족시켜야 다음 단계를 만족시키지만, 이런 경우는 건너 뛰고 바로 다음 단계로 가는 경우다.[112] 직장생활 경력이 5년 이상 쌓이고 나면 대충 90%의 성인은 그런 관계를 원하지 않는다. 그 외의 경우, 아직 본인이 접하지 않던 인간군상을 전지적 시점에서 체험할 목적으로 친한 척 하는 게 대부분이다.[113] 잘 웃거나, 호응을 잘 해주거나, 예의상 대화를 계속 이어가려 하는 정도를 말하는 게 아니다.[114] 광의의 덕후를 의미. 애니나 만화뿐만이 아니라 학문, 스포츠, 예술, 그 외 기타 등등 모든 매니악한 관심사.[115] 답이 있어도 이를 말하지 않고 최대한 길게 사족을 붙이는 요소에 해당한다고도 볼 수 있다.[116] 몰래카메라, 그에 파생된 사회실험 컨텐츠의 실험대상에게는 상황극이라는 목적성을 알리는 게 매너이다.[117] '나 같은 거'식의 자학처럼, 이러한 호의를 정말 받아도 되는지 안달난 티를 보이면 상대는 질려서 나가 떨어진다.[118] 갑에게 간택'된다'면 후발주자의 질투를 유발하므로, 조속히 당하는 측이었다로 입을 맞추는 것이 본인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가중 책임을 덜어내기 위한 여론전에서도 유리하다.[119] 공동체의 명예가 소모되는 하한선을 정의하는 건 어려워서 어디까지를 유아가 할 만한 행위로 볼지는 개인차가 있다. 그렇기에 앞서 그 명예가 모든 이해관계를 대표하는 친목은 아니라는 점이다.[120] 인싸의 색채라고 보는 것도, 사회적 재심을 할 필요가 없는 만큼 받아 줄 가능성이 높아지는 현상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하다.[121] 이 조건은 매우 중요하다. 감정 통제를 못할 정도의 상황에서의 유아화는 실행 가능성이 낮다고 하여 유아 연기를 통한 이익 산출 행위로 보지 않는다. 분향소에서 우는 사람들 모두가 '울어야지 본인에게 떨어지는 게 있다'는 이유로 우는 척 연기하는 것이라 해석할 수 없듯이, 유아퇴행도 정신은 멀쩡한데 그런 연기를 하는 것으로 정의를 내리는 건 아주 다르다. 그렇게밖에 설명이 안 되는 기괴함 속에서도 진심으로 감정 이입을 하는 사람도 있다.[122] 혀놀림이 자유분방하면 흡착음으로 들릴 수 있다.[123] '떱', '엽', '찌' 등 성향과 탁도에 따라 세기 및 사용처가 다르다.[124] 아래 아싸 화법 문단에서와의 차이점은, 자신이 사회성이 낮아보이는 화법을 구사하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다는 것이며 이를 즐길 수 있을 환경이 충족된다.[125] "악악! 악악악!!"을 번갈아가며 교차해 소통하거나 동시수행(예: 기침이나 하품을 괴상하게 지름, 기지개 킬 때 나오는 신음을 과장, 문을 열고 나오면서 괴성)을 일종의 신호로서 주변에 이목을 끌게 함.[126] 발작, 덩실대기, 물개박수, 제자리 점프, 우악스러운 자세 등 남이었으면 모자라 보일 법한 신체의 뒤틀림.[127] 정말 순수하게 놀아주기 위한 목적 외에 인격의 풍요성을 증명할 수단도 되기에, 어떻게 하면 사적영역에서의 순수성을 타인에게 주입할 수 있을지를 고심한 뒤 실전에서 연기하여 주변 평가를 개선시키는 정치적 목적이 여기서 설명하는 연기의 의도와 접점하고 이에 부적절한 건 실행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보아 연기와는 상이하다고 상대는 판단한다. 나머지는 유괴욕구 해소가 있지만 이건 사회적 기술도 아니니 제외한다.[128] 표정을 동화하지 않고도 티키타카가 가능한 사적 메신저를 예외로 유아 연기를 용인하는 부류도 있고, 띠동갑이라면 성인끼리 내리사랑을 따라하는 유사 관계에서도 재롱을 받아 줄 겸 어울리기도 한다. 진화적으로 건강한 이성일 때 더 유해지며 이에 말꼬를 트려고 먼저 유아 연기를 시도하는 중장년층도 있다.[129] 계약직 신분으로서 일정 기간만 하고 나간다고 사전에 명시했다는 것을 핑계로 조직을 와해시켜도 유아 연기로 책임회피를 하면서 띵까띵까 정치질을 할 수 있다. 성비의 불균형으로 정적인 사내문화에 고조된 소수의 합의로 의도치 않게 공멸하는 케이스도 있다. #[130] 다 큰 성인이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완구를 즐기거나 과자를 먹는 것, 돈가스를 미리 먹기 좋게 잘라놓는 것도 애같다며 못마땅 해 하는 사람도 있다.[131] 성인이 아닌 상태에서도 가능하다. 아이인데 어른을 동경한 나머지 자신을 성인이라 생각하고 유아 매체를 접하는 같은 나이대의 사람을 경멸하는 반(反)유아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132] 대표적으로 신의 존재성과 그 안식을 얻고자 자아를 퇴행시키는 통성기도.[133] '말이 나와서 꺼내는 건데...'와 같이, 정보를 교환할 땐 상대 또한 이 말이 나오기까지의 책임이 있음을 납득시켜야 하며 그중 유아 연기가 모종의 관계를 거쳤다는 강력한 입증 방식이 된다. 친한 척이라도 해야 정보 공유를 요구할 수 있고 교류할 가치가 있으니 겸사겸사 친해지는 것. 호감작이라는 집단 광기 때문에 벌어진 별 수 없는 필연이었다는 것으로 축약해도 족하다.[134] 친한 척 말고도, 다른 갑에게 얻어낸 정보를 교환하는 대가로 회사 내에서 금지(예: 열창(熱唱), 전자기기, 음식물/동물 반입, 신상 추궁, ...)되는 행위에 대한 변호를 따낼 수도 있다. 끼어들기도 단순 줄서기만이 아닌 우회적인 금전 혜택을 예약할 수도 있고, 성실성 면에선 최악인 지각도 개구쟁이라는 매력으로 승화시키는 등 눈쌀이 찌푸려지는 광경은 본인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다.[135] 유아 연기에 익숙지 않은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이 조직한테 적용되면 즉흥적으로 그들만의 내규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직장에서 이루어지는 대다수의 의도는 친밀감 형성이 아닌 완장을 얻기 위한 후까시에 가깝다. 따라서 이러한 연극에 혐오감을 느끼는 기전은 공과 사를 무시한 단발적 주제가 추후 의사결정에 확정적으로 적용될 예정인지를 판단해야 할 피로감으로부터의 방어기제일 것이다.[136] 이는 속칭 똘끼가 돈이 된다는 자본주의가 플랫폼의 패러다임을 세탁했기에 가능한 횡보이다.[137] 중의적 표현과 비슷하나 편의상 수평관계를 연기하는 수직관계에서 시비걸릴 시의 면피술로 통합한다.[138] 상대와 대화, 아니 듣고만 있는 걸로도 가슴을 찌를 듯하거나 토악질이 나올 정도의 역겨움을 느끼는 때가 바로 이러한 특수성이 가미된 상황이다.[139] 심지어 수혜자가 본인에게 직접 적대적 의사를 암시했다고 해도, 사교적인 분위기를 용인하지 않는 비협조인으로 조작되어 성숙함을 등가교환당한 사회 부적응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유생물로 존중받고 있었다는 연기를 하는 게 본인의 평판 및 수혜자로부터 떡고물을 얻어 낼 여지 면에서 더 유리하게 작용한다.[140] 거리감을 내비친 관계가 가족이 아닐 확률이 실제 혈육일 확률보다 높다는 근거로선 미흡하다. 실제 거리상 친구인데 친구 같지도 않은 관계가 있다는 말이다.[141] 사적영역에 속해 있지만 이러한 영역을 창설한 의도는 난잡해진 서열을 유아 연기로 퉁치려는 무질서이기도 하는지라 공공영역의 교집합이며 직장에서의 텃세, 끼리끼리 문화 역시 면피의 목적이니 어쩌면 예견된 현상이다.[142] 유아 연기도 결국 면피를 위해서 존재하기에 해당 연기가 주류인 영역에서 할당량을 배분하는 논의를 거치더라도, '저건 연극이며, 나는 영역권 밖에 있으니 저들이 싸지른 건 어차피 내가 치워야 하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형성되겠구나'를 먼저 예측하여 상대로부터의 신호를 받을 준비와 동시에 영역권에 있는 척 연기해야 할 상황을 강요하는 정치질에 대비하는 눈치력이 여기서 중요해진다.[143] 아무도 안 보는 개인공간에서는 상호작용을 목적으로 연기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참고로 공개된 장소에서 사적영역에서나 할 법한 행동(예: 덕질, 코스프레, 동심열망 등)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누구한테 이익을 얻고자 일부러 하는 게 아닌 자기 만족을 위해서이니 이 또한 완전히 같다고 볼 순 없다. 단, 자본에 의거한 유아화라면 당사자는 유아 연기가 아니어도 제3자는 유아 연기로 본다.[144] 익명에 의한 유아화 역시 순전히 의도였어도, 개인공간에서의 지위 충족이지 실제 사회적 이익을 체감하게 해 줄 매개인 제3자의 의사 전달 체계가 불안정하고 동의 여부도 무의미하기에 서로 충돌한다. 그렇다고 본인임을 증명하면 익명이 아니므로 모순이다. 그 이익이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것이라면 악플도 유아 연기가 성립된다고 보겠지만, 직장(공공영역)에 알려봤자 사회적 지위를 얻지 못 해 별 의미가 없다. 그저 각자의 기질에 따라 유사하게 보일 뿐 생각 없는 공간이란 으레 그렇듯이, 소수이기에 특정할 수 있는 사회 기술은 가상 세계에 있을 다수의 연기자로부터 그 의도는 부정되고 만다.[145] B 조직에 속한 사람이어도 같다.[146] 간단하게는 실세와 관련된 측근들이 말하는 정보를 옆에서 듣는 사람.[147] 도중에 껴서 지켜만 봤는데 이를 모르는 상사가 와서는 "이 정도는 기본이찌~이."라며 은근슬쩍 본인도 한 것처럼 빨대를 꽂기. 여기서 인증은 거짓되지만 공로를 분담할 시엔 진짜가 된다.[148] 이러한 양상은 외모가 인정되면 좋다. 애초에 좋은 유전자를 감식하는 게 얼굴이니 생식 본능에서도 이러한 유아 연기의 가치는 장애 연기의 체면 상실을 아득히 상회하며 하자가 있는 사람이 함부로 시연하다가는 장애화 당첨이다.[149] 언뜻 보면 조직 내 약점을 개방하는 자폭성도 들어가 있어, 이것이 관계의 정밀성에 기인된 것인지 아니면 실제 본인 이익에 편중한 것인지 관찰자로서 모호해지기 쉽다. 이를 악용해 약점이 있는 척 연기(≈과장)하여 민감성 높은 사람을 색출해 내 밀고할 기획일 수도 있다.[150] 이땐 속칭 '까분다'라고 통용된다.[151] B 조직에 속한 사람.[152] 유아 연기를 쓴다는 건 정상인이라면 책임을 져야 하는 모욕을, '유머로 받아들여라. 안 그럼 넌 진지충이다'라는 걸 강요하는 것이다. 결국 상대도 별 수 없이 거리를 좁혀야 하는 외압이 작용했던 셈이라 조직 전체를 위한 이타성이라는 징벌로서 위와 같은 낚시에 걸린 것.[153] B의 영역으로부터 무작위라는 우연으로 조작된 상위 개체 또는 플라잉 몽키.[154] 정확히는 유아 연기에서 오는 권력 과시에서 학습된 욕망과 미성숙에서 탈피하지 않은 사고방식이 결합된 맞장구의 자동화.[155] 문제를 주도한 조직에게 행하는 일벌백계도 말만 그럴사할 뿐 의도를 제대로 주입하기 힘들다. 또한 지적한 측이 정세를 위해 사실을 왜곡할 가능성도 있어 추후 제3자에게 보복을 예상하도록 심각성을 전달시킬 명분으로서 부적합하며 더욱 양상이 치밀해지는 부작용을 만들어 낸다.[156] 유아 연기에 동참할 시 영역이 정한 불순함을 해명하는 과정에서 자진해 관할 영역을 나가도록 이성적인 척 거리를 형성하여 찝찝함을 느끼도록 만드는 게 대부분이며 유아화가 가능하다는 건 치매도 연기할 수 있다는 거니 상황에 맞게 지성을 변화하여 대우하는 불관용을 만족하도록 실드해줘서 군중 속 고독을 극대화시킨다. 이는 해당 영역 주동자나 그 일원이 탈퇴하지 않으면 이러한 양상은 반복되고 C 영역으로부터 당한 보상심리로 인하여 같은 구도가 반복되는 케이스도 있다.[157] 이의 과정은 문단 3.3의 유형 3 중 I~L 상황의 해석으로 갈음한다.[158] '정치판에 끼면 B 꼴날 수도 있다'라는 걸 잘 알고 있는 관계자에겐 잠자코 있으면 알아서 콩고물이 떨어지는 입장이니 오냐오냐 받아주는 게 이득이며 관찰자 또한 우스운 구경거리이므로 이것을 후속 경쟁자를 견제하기 위한 작업에 의해 겉으로는 동의한 척하는 것을 갖다 규율의 동의로 조작하고 유아 연기의 변칙성으로 그 자율권이 상대측으로 넘어왔을 경우 영역 외의 문제는 과장하고 자기 편끼리는 축소하니 자연스래 이성을 추구하는 진취적인 공동체로 윤리를 위임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다. 즉 우리(C의 일원)는 실수하지 않으니 B를 유배시킬 자격이 주어진 거고 이에 토 달면 새로운 규율로 B의 영역을 공유시키는 게 가능하며 이 모든 건 조직으로서의 공동 책임이 된다.[159] 때문에 자신이 그래도 인싸 축에 속해 유아 연기와 비슷한 행위로 사교를 증진하기 위해 사용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에겐 이러한 권력놀음을 입맛대로 기강하기 위해 사용하는 사람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는 점에서 억울함을 느낄 수 있다.[160] 이해하기 쉬운 예로는, 자신과 다른 이름으로 지시했는데 못 알아 들었다고 따지는 거다. 하지만 여기서 반응한다고 해도 "니 이름이 아니잖아?"라는 매우 합당한 사유를 들이밀면 사회 부적응자가 되고 이에 따져도 예민하다며 제3자에게 자신의 부적응을 납득시킨다.[161] 여기서 '질문의 요지 → 유아 연기의 감상평 → 일에 관한 결과 → 사회성 부족'에서 밑줄 친 선후관계가 바뀌어도 상황은 같으며 이 역시 앞전에 서술된 가불기와 동일하다.[162] 사용자 입장을 변호하자면, 농담의 전조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듦으로서 내가 아닌 다수를 위한 이익의 총합을 고려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있고, 또 이걸 쓴다해도 상대방은 대개 웃고 넘어가니 실제 악의가 없는 경우도 있어 피해자에게는 불쾌감을 주려는 심증의 확신도 부족해 트집 잡기도 애매하기에 자연스럽게 책임 우회로 변질되는 것이고 이를 관찰하는 일부가 대놓고 불순하게 이용하려고 유아 연기를 사용하는 것이 시대상이 반영돼 남을 불쾌하게 만들더라도 되도록이면 암묵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개념이 생소해짐에 따라 그 일부의 책임을 전가시키기 위하여 악의로 덧씌어진것을 모르고 친목을 다지려는 사람들에겐 목적이 오염되었다는 사실에 억울하다 느낄 수 있다.[163] 위에서처럼 20대로 보이는데 다른 나이대의 호칭으로 부르거나 서로 수평관계로 합의했는데 "저기요."라는 어색한 표현을 둠.[164] 연기를 하는 당사자도 본인이 유아화 상태임을 모르면서 할 수 있고, 연기법 따낸 후 비위도 강해져서 유아 연기에서 사회 스킬로 승격돼 본인도 연기 중이란 걸 잊어버린 경우도 있다. 조직 내 연기가 통상적이라면 본인의 감각을 위탁 가능하다. 따라서 목적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반사적으로 튀어나왔으니 유아 연기에 위배되지만, 상대는 친목을 위한 유아화를 거행한다고 받아들여 본인은 애매해져도 연기로서는 유효해진다.[165] 식사 후 포만감으로 배를 두드릴 때 이를 본 상대는 '나이 처먹고 뭐하는 건가' 싶은, '안 해도 될 만한 행동(=유아 연기)을 굳이 해 혐오를 사고 싶나?'라고 오해해 사회성을 의심받을 수 있다. 항상성에 의한 대사량도 들어갈 수 있다.[166] 주의할 점은, 사적에서도 통한다는 건 아니며 원한 살만한 주제는 잘못 쓰다가는 아웅과 같은 상황으로 간섭될 수 있다.[167] 마주보고 대화하든 맞+담배를 하든 간에 결국 유아 연기는 이러한 중용을 만족하면서 상호간 이동식 부스 도입의 뚜렷한 간소화를 정신적으로라도 가능케 한다. 담배를 서로 같이 태우려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면, 물리적 거리는 좁힘과 동시에 사회적 거리를 늘려 부적격 인간을 걸러 내 어장이 썩히지 않게 하기 위한 것 이상으로 본인들이 있는 곳이 바로 부스라는 선전 효과를 내현한다. 이는 공개된 사적 비밀방으로 비유해도 같다.[168] 더 나아가면, 본인의 자원이 공매(空賣)로 재생산되어 포장한다는 걸 부정하도록 설계되는 사회학적 폰지사기도 가능해진다. 상대로부터 만들어진 사회성을 실제 자신의 사회성인 것마냥 가상의 패를 만들고 이를 실제 능력으로 연기하면, 비록 껍데기이지만 상대에게는 능력에 따른 자원의 분배로 해석할 여지를 주어 일시적으로나마 사회성을 몰아줄 수 있다고 보는 것을 노리는 셈이다.[169] 자본, 스트레스 해소, 쾌락, 우월감, 경험 및 대응 축적 등.[170] 연기가 성행한다고 해서 본인을 같은 연기로 볼지는 미지수이며 순수성만으론 심사를 뒤집을 수 없다. 따라서 친해진 상태에서나 하는 보조용에 머문다.[171] 입방정이 헤픈 사람이 나의 신상정보(주소, 도어락/전화번호, 가정사 등)를 다른 사람들에게 읊어댄다고 생각해보자. 아주 끔찍하다.[172] 가능한 대처로는, 본인이 먼저 원하는 대로 시연해보라(위 예에서는 먼저 욕 해보라)고 권유하는 방법이 있다.[173] 술 기운을 빌려 개인 방송을 하는 중이라고 말을 하던가 미풍양속에 반하는 활동이나 창작, 심지어 범행을 자백하는 경우도 있다. 기타 사담이라고 해도 어떤 괴짜가 작정하고 조사하다 보면 약점이 될 수 있으며 추후 언쟁할 때 협박용으로 쓰일 수 있다.[174] 주식, 코인같은 종목을 추천해 달라거나 상대의 USB나 휴대폰 검사같이 개인정보를 알아내기 위해 보여달라고 반강요하는 게 있다.[175] 이는 가족애를 남들에게 보여 줄 시에도 흔하다. 가정폭력을 겪(었)는데 원래부터 사이가 좋은 것마냥.[176] 향간에서는 악플이라는 것이 인간의 다중성에 근거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오프라인에서 반듯해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인터넷에서는 악플을 다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진심과 본성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것은 진용진 채널의 악플러들을 인터뷰 한 영상에서 어느 정도 증명되었다.[177] 본인 외모가 매우 절륜해 갖다 버리는 것보다 들러붙는 사람이 많더라도 적의를 유도해선 안 되며, 굳이 외모가 아니더라도 사회에서 일부 편협한 유전적 우의에 속한 상태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그걸 가지지 못한 사람을 천대하는 건 되도록 피하는 게 신상에 좋다.[178] 기업비밀 유지 때문에 말해주고 싶어도 대답이 금지되어 있는 경우는 있다.[179] 정 물어보고 싶으면 그 사람의 직업의 연봉을 물어보자. 물어보는 주체에서 흥미가 있는 것은 답변자가 아닌 직업에 관한 것이고, 답변자는 어차피 자기 중심적으로 답변을 하게 된다.[180] 이러한 결과를 오롯이 본인의 노력이라 생각하고 이보다 못한 사람을 노력 부족이라고 여기거나 심하면 본인이 우월함을 정당화한다.[181] 상대 또한 자신의 환경이 그간 살아오면서 타인과 일반적이지 않다는 걸 깨닫고 겸손해지는 편이 더 유리하다고 배운 경험이 있어야지 그 위치를 풍파로부터 버텨냈다고 확정했을 테니 이런 질문을 꺼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즉 본인을 이미 상대를 넘볼 수 없는 아랫 계급으로 인식했기 때문에 조롱하는 것이라고 오해하는 거다.[182] 인간관계 고민 중 주변 사람이 보았을 때 성격이 변했다는 건 돌려 말하면, 본인의 위치는 성격이 급변하지 않아도 유지되는 발전 없는 상태라는 뜻이다.[183] 독일어에선 Schadenfreude, 영어에서는 epicaricacy.[184] 애니메이션 천방지축 하니에서 자신을 엄마에게 버려진 아이라고 여기고 있는 주인공 하니가 학교에서 엄마의 얼굴을 그려보는 시간에 엄마의 얼굴을 돼지처럼 그리고는 그 그림을 마구 찢어발기며 우는 장면이 나온다.[185] 알렸다 해도 뭐 어쩌라는 식으로 반응하거나 본인이 그런 질문을 할 정도로 쫌생이로 보이냐며 앞서가는 꼴로 만들어 내뺄 것을 감수할 만큼 내가 아는 상황을 주변에 알릴 의무가 없다고 여기게 되고 A 역시 그럴 것이라고 예상할 시.[186] 한국사회에서 대표적인 예는 군대를 현역으로 갔다온 젊은 남성이 여자 앞에서 군대 얘기를 하는 경우.[187] 가장 흔한 이유로는 인사, 나보다 더 친한 사이라는 명분. 통화 중일 시엔 이를 못 보고 끼어 든 걸 수 있다.[188] 예로, "요즘 군대는 보이스카웃이다."라고 무시하는 상대가 군필이라는 근거는 없다.[189] 자기소개 중인 상대방 옆에서 폰을 보는 것처럼, 예의 없는 무관심일 경우 이에 속한다.[190] 영어로 참여 부족이나 부정적인 태도로 기분을 망치는 사람을 속어로 'Party pooper'(줄여서 'Pooper')라고도 하는데 말 그대로 똥싸개란 뜻이다.[191] 보통 이게 어떤 상황인지 겪어본다면 선을 넘는 농담을 실수로 하는 것과 반응이 어떤지 떠볼 때의 표정 차이와 말투에서 인지할 수 있다. 주로 젊은 꼰대 층이 사회초년생이나 나이가 적은 사람에게 행한다. 그냥 지나가는 사람을 활용(예: "저기 니 남친 지나간다~.")하는 경우도 있다.[192] 삿대질, 눈 찢기, 체취 맡기, 캣 콜링 등. 이를 사각(死角)에서 하는 것도 포함된다. #[193] 험담이나 사건에 처한 대상을 향해 비웃기(예: 서열싸움에 져서 물러나는 사람에게 "쟤 도망간다 ㅋㅋ."라고 박제), 이러한 과정을 비꼬아 표현(예: 갈구는 것을 '추가 수강'으로 가공)하여 조직에 재인증, 상대의 말이 우스꽝스럽게 느껴지도록 성대모사를 하거나 동물 흉내 및 울음소리를 내기, 그밖에 무슨 의미인지를 곱씹다가 폄하한 것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하는 시간차 공격 등.[194] 가령 상대가 조심해봤자 제어할 수 없는 외부 요인조차 자신의 상식을 우선순위로 두는 것의 예외가 아닐 경우 문제가 된다. 본인이 지나간 자리는 항상 정리정돈을 마치는 것이 공통 상식이라고 알고 있는데, 상사의 지시에 반응하여 미처 치우지 않고 자리를 뜬 사람에게도 행동거지를 탓할 시 갈등에 불이 붙는다.[195] 상대가 말을 하다가 잠시 묵인하는 것도, 당장 꺼내려는 말이 듣는 사람에게는 듣기 거북하겠다 싶어서 유의어를 되짚어 보는 과정이 여기서 설명하는 피해를 방지하기 위함으로 상대에게는 이것을 버퍼링이 걸렸다고 여기는 거다.[196] 개인의 지식이 사회화의 다음 단계로 진행되었다고 착각하면서 이에 따른 착화의 부진이, 사람마다 개별적인 사회적 능력이라는 공통 상식에 멋대로 하자가 있다고 뒤집는 데서 이러한 갈등이 발생한다. 한 예로, '요새 애들은 우리보다 더 빨리 배우겠지?'라는 본인이 정한 일상이론을 누구나 아는 정론인 것처럼 결론을 내 학습 속도와 사회성의 상관관계를 통제하려는 것이다. 혹여나 공통 상식이 겹쳐도 '이럴 땐 그냥 조용히 있는 게 상식 아닌가?'라는 외집단의 암묵지(tacit knowledge)를 만족하지 못해 정보가 이전 집단과 엮여있냐 아니냐에 따라서 구분짓는 과정에 혼란을 느껴며 과잉행동을 유발하도록 부추긴다.[197] 대표적으로 귀두컷을 들 수 있다. 두발자유화 이전에는 단정한 스타일이 사회성의 평가 기준 중 하나였지만, 현재는 사회성을 겉으로나마 좋아 보이게 만드는 이치를 깡그리 씹어먹는 이러한 형태를 상식이라고 강요한들 되려 문제가 개선되기보다는 놀림감이 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198] 가스불을 켜놓고 자리를 뜨는 행동은 주변에 생명을 침해하는 요인을 떠넘긴다는 압박감을 주며 이는 타이머라는 예방책도 안전불감증을 완벽히 차단하는 방법이 아니니 상식이 없다고 판단한다.[199] 신호등 건너기 전 좌우를 살필 때 대놓고 고개를 돌려서까지 보려는 행동을 상대에 따라 꼴값 떠는 부적응의 징조라고 볼 수 있다. 방화문 또한 그 중요성을 모르면 통행을 위해 항상 열어 놓는 게 상식으로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닫고 가는 쪽이 꽉 막혔다고 여긴다. 역시 헬멧을 쓰는 것도 가오 없는 행동(=찐따)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200] '불결한 건 누구나 다 싫어한다'가 상식이더라도 이러한 상황을 만드는 매운 음식을 섭취하는 이유만으로 코찔찔이같이 사회성 부족으로 보일 경우로부터 멀어지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니 사회 부적응자라고 칭할 수 없다.[201] 구글에서는 이를 또라이 판별의 중요 요건으로 삼으며 이런 태도를 내보이면 입사에서 바로 탈락시킨다.[202] 나름 칭찬이라고 했을 수도 있지만, 이건 "넌 (할 줄 아는 건/제대로 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 이거라도 할 줄 알아야지 ㅉㅉ."라고 하는 것과 같다.[203] 인증이 까다로운 상대라면, 본인의 물건을 사용하는 빈도를 체크하는 것에 대비해 몇 달 간 보관하고 나서 처리 할지 말지를 결정하는 게 좋다.[204] 관심 없는 사람이 준 기프티콘을 꼬시고 싶은 사람에게 선물하기.[205] 호의가 아닌 사과해야 하는 표현 역시 돌려서 말하면 괜한 화만 돋구게 된다.[206] A가 B와 C가 사전에 모의된 영역 내에 함부로 들어왔을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순 없다.[207] 이는 당연하다.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 중에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들을 봤는가?[208] 나쁜 의도가 아닌 진심으로 조직의 평화를 위해 나서는 사람도 존재한다. 이나저나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는 건 같다.[209] 가족이나 가깝고 자주 만나는 친척관계, 직장상사나 직장동료, 고객처럼 싫어도 자주 봐야 하는 사람이 저러면 넘어갈 수 있지만 그런 감수해야 할 부분이 없는 단순한 친구나 지인 관계라면? 결국 저런 게 누적될 때 따라오는 건 관계의 단절이 될 수밖에 없다.[210] 간단히 말해 대화 주제 교체의 타이밍을 재기가 힘들다는 것이다.[211] 사실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은 이런 사람들을 만나보는 것도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 입장에선 공통된 문제를 공유하는 사람과 대화해보고 자기의 대화법에서 뭐가 문제인지를 어느 정도 알 수 있다.[212] 발언자가 설령 비언어적 신호를 못 읽어도 청자의 언어적 신호를 읽었다면 빨리 그 주제로 이야기하는 것을 마쳐야 한다. 청자가 현재 주제의 대화를 그만하고 싶다는 투의 발언을 꺼냈다는 건 비언어적인 눈치 주기가 안 먹히니까 더 강하게 '빨리 끝내고 싶다'라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213] 굳이 비유를 위해 성별을 반대로 한다면 (의료인이 아닌) 남성이 산부인과 관련 이야기를 여성 앞에서 하는 것도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기 어려울 것이다.[214] 이탈리아의 플루트 연주자. 영어판에는 골웨이로, 프랑스어판에는 랑팔로 되어 있다.[215] Derdre Doen Daphne D'over.[216] 플랑드르 지방 겐트 출신의 음악가 가족. 장(1680~1730), 자크(1685~1746), 장바티스트(1688~?) 삼형제 모두가 플루트를 위한 소나타를 남겼다.[217] 서론만 말하다 끝나버리는 경우, 본론과 서론이 동떨어진 경우, 본론 자체가 대화 주제로 적절치 못하거나 재미가 없는 경우 등.[218] 상대의 시선이 말하는 사람이 아닌 딴곳으로 향해있다면 대화에 집중을 못하거나 집중할 마음이 없다는 뜻일 가능성이 크다.[219] 국가정보원 항목에서 2006년 방송자료를 보면, 산업스파이 관련 정보를 캐내기 위해 '용의자의 기업에 주식투자를 하고 있는 주식 전업투자자'로 위장한 요원들이 용의자의 기업을 방문해서 기업에 대한 여러 가지 질문을 한다. 용의자에게 전혀 의심받지 않은 채 2시간 동안 대화하기 위해 전날 12시간 동안 주식투자에 대해 공부를 한다. 자신의 상식만 가지고는 10분도 대화를 끌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관심있어하는 사회적 말하기 주제에는 관심이 없는데, 그 사람들과 사교적 말하기는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이야깃거리를 찾아서 A4 수십장 정도 분량으로 글로 써서 외우는 것도 방법이다.[220] 애니메이션은 어린이들만 본다는 인식이 있지만, 성인들을 위한 애니메이션도 매우 많다.[221] 예를 들면, 중국, 일본같이 국가 감정이 좋지 않은 곳에서 일어난 테러, 자연재해와 관련한 사망자 소식에 위안을 받았다든가 훈훈함을 느꼈다든가 숫자 놀음(예: 아홉수인 것을 보고 '한 명만 더 죽으면 딱 떨어지는 건데' 라면서 아까워하는 것)을 한다든가 음식에 비유하는 등 이를 사람들이 공감해 줄 것이란 기대는 고이 접어두자. 현실과 커뮤니티는 다르다.[222] 이는 동의하지 않아도 개그였다면 심각하게 보지 않는 건 어느 국가든 비슷하고 문화권에 따라 허용 가능한 폭력의 범위가 다를 수 있다. 해당 영상과 같이 한국에서는 방송사고급이 다른 나라에서는 좀 과격하다 싶은 개그일 수 있다. 물론 도를 넘는 경우(연령 제한) 얘기가 달라진다.[223] 못생긴 외모라는 이유만으로 적이 많아지는 결과를 낳는 건 아니다. 못생긴 만큼 같은 실수에 따른 보복의 강도가 강해 스스로가 노력하는 것도 있고, 상대 측이 보기엔 평범함에 속할 확률이 낮은, 즉 기분 나쁘게 만들었던 표본의 차이가 적다는 건 잘만 처신하면 다수의 적의 표본으로부터 멀어지기 쉽다는 것을 의미하니 사회적 지능이 높다면 적절한 사람 대우를 얻어내기도 수월하다.[224] 화재 상황도 아닌데 "불이야!"라고 외치기.[225] 더욱이 사람에 대한 관심이 없어 딱히 따지지도 않으니 상대 역시 본인의 생각을 재고하지 않는 게 보통이다. 이러한 대립은 내집단에서의 정보 격차 또한 심화시킨다.[226] 빙판길에 넘어진다거나 발을 헛디딘다거나 구조물에 부딪힘.[227] 물건을 들어올릴 때 '영차~ / 어이짜!' 하는 기합을 내거나 어깨가 결려서 '아구구' 라고 하는 것.[228] "아, 그래요?/그렇구나.", 심하면 "아~ (네).".[229] 셋 이상 시 눈을 휘젓거나 눈꺼풀을 치켜드는 사인을 통해 한 명만 두고 나가는 방법이 있다.[230] 윗선의 지시를 실시간으로 대응하기 위해 수시로 확인해야 하거나 보청기를 껴야 하는 경우.[231] 호기심 및 지적 탐구심도 질문형으로 변하면 크게 다르지 않다. 본인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건 굳이 상대가 알아서 도움이 되는 경우가 별로 없다.[232] 악의였다고 조작당할 위험도 크다. 상황이 더 나빠져서 욕설이 오가도 F가 먼저 자초한 것을 명분삼아 주변인을 납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233] 자신의 대답을 들은 사람이 웃으면서 "헛소리 하지 말아라."라고 답 한다면 정색한 것보다 더 기분 나쁘면 나빴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이다.[234] 유아 연기와 비슷하지만 단순히 남한테 보일 목적으로 애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도 이를 즐길 수 있는 분위기에서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차이점이다.[235] (외관을 훑으며)"너 왜 이리 못생겼어?", (부모가 죽은 사람에게)"왜 돌아가셨어?", (웅얼웅얼거리는 사람에게)"너희 어머니가 걸레라고?" 등등 상식에서 벗어난 질문.[236] 분위기를 곱창내는 것이 어떻게 유머가 될 수 있냐며 이해가 안 되겠지만, 이는 일종의 신병 놀리기로서 당하는 사람은 부당하지만 '원래 이런 게 당연한가?' 싶은 아리송한 사회 초년생으로 바꿔서 비유해보면 된다.[237] 호기로운 것도 서열을 과시하는 쪽으로 비틀면 매우 역겨운 상황을 연출하며 이에 대응을 해야만 하는 측은 혼란스러워진다. 이는 화자(특히 남성)가 성 정체성을 교체한 듯한 상태에서 이루어질 시 더욱 불쾌해진다. 쉽게 말해, 제대로 말할 수 있음에도 일부러 가지고 노는 듯한 살가운 말투와 가성으로 시비를 건다고 생각해보자.[238]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본인보다 서열이 높은 사람에게도 이런 말을 한다면 나를 죽여줍쇼라는 꼴이 될 테고 지금의 위치에서 하대할 수도 없다. 즉 기분 나쁘게 하는 법을 안다는 거고, 본인도 조절이 가능하다는 뜻이므로 고의다. 따라서 관점이 다른 척 연기하는 것일 수 있다.[239] 위처럼 패드립을 뜬금없이 할 사람은 상식적으로 없다고 생각할테니 본인은 패드립을 해도 상대에게 "상식적이라면 내가 이런 말을 하겠냐?"라며 아웅할 수 있다.[240] "삐졌냐?", "쫄았냐?", "띠껍냐?", "꼽냐?" 등 이러한 맥락에선 본인이 순간만 잠깐 느끼다 마는 상황에서도 상대로 인해 실제로 감정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소인배로 낙인 찍히면 사회적 거리와 상관 없이 반발심이 강해지며, 이는 '-고 그래?'라는 종결어미로 이어진다면 더욱 발작하게 된다.[241] 상대의 요구에 대해 '시·청각이 안 좋아서 / 잘 모르겠어서 / 허약해서'라는 이유로 들어주기 곤란할 시 그걸 자랑이냐고 비꼬는 것.[242] (존칭) 분 > 명(名) > 년/놈 > 마리/개(個) (비칭).[243] 집단 내 동명이인이 있거나 이름이 특이해서 가명삼아 별명으로 불리기를 합의한다면 예외.[244] 풍자 목적이라면 순화하여 표현할 수는 있다. 물론 신중해야 한다.[245] 헛듣기 쉬운 외국어나 숫자 18과 같이 욕으로 들리는 경우(예: 시발점, 시바견 등)는 그나마 앞에 부연을 넣으면 빈축은 사지 않는다. 이마저도 직접 발음하지 않고 돌려 말하는 게 나은데 직업 특성상 그게 어려운 환경이라면 행운을 빈다.[246] 여기서 관심사는 혈액형과 성격의 상관관계가 아니다. 따라서 혈액형을 맹신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어차피 핀트가 어긋난 것이다.[247] 예외적으로, 정보 정정을 시도하려는 사람이 먼저 무시하는 뉘앙스로 말을 꺼냈다면 이건 그 사람이 아싸 화법을 구사했다고 볼 수 있다.[선을넘는경우] "괴롭힘 당하는 사람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 "사기 당하는 것들이 멍청한 거지.", "자살해라."와 같이, 이성이 관여하기 쉬운 위치에서 당하는 측에게 '이런 것도 생각 못하냐'라는 논리는 2차 가해가 되기 쉽다.[249] B는 '한번 대화해 볼 상대를 물색 중인데 너도 나만큼은 하냐?'는 의미로 이해했다.[250] 관례상 언제 밥 한번 먹자 같은 빈말도 이와 비슷하게 상호 간에 피해는 끼치지 말자는 약속 중 하나이다.[251] 꼭 가까이 와야지 말을 시작하는 경우도, 꼰대라기보단 확실하게 알아듣도록 설명해야 하는 사람에게 앞전의 이유로 한번에 못 알아들으면 책임을 져야 하니 원활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앞서 예상한 것을 '나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나?'식으로 고압적으로 위협한다고 오해할 수 있다.[252] 다만, 돌려 말하는 고맥락 구조보다는 간결하지만 소통은 문제가 없을 정도에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253] 남들이 알아볼 수 있게 쓴 글조차 악필이라면 실제 사회적 능력 대비 낮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254] 이 역시 기준은 다양해서 대화에 끼지도 않은 상대가 '나와 같은 영역에 있어서 억지로 들었겠으니 기억해 낼 수도 있겠지'와 같이, 타인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타입도 있다.[255] 이런 점에서는 차라리 정보를 흘려도 의도를 따져나가는 수준 이하에서 머물고 있을 저맥락 구사자(유럽언어기준 B2 ~ C1)가 같은 인물과 비교해 정보의 악용 가능성을 낮게 측정할 수 있는 이유다.[256] 여담으로 성경에서도 보증을 꺼리면 심신이 편안하다고 적혀 있다.[257] 일상에다 적용해보면, 형/누나가 고래고래 불러서 한다는 말이 방에 불 꺼달라는 똥개훈련이라고 생각하면 된다.[258] 마이크 성능 테스트 겸 랜덤으로 점원 이름을 골라 부르게 한 뒤 도착하는 시간을 재는 것. 상대방은 이것을 부탁이라기보단 '이게 무슨 그 군기 테스트인가?'라며 부탁과 지시 선이 모호해지는 것에 혼란스러워진다.[259] 받던 걸 배로 토해내기를 바라는 상대의 기대에 부흥해야 하는 이해관계 난립에서 이루어지는 호의의 순환 역시 이러한 과정에 압박감을 느껴 지양하려는 사람에게는 여타 부적절한 부탁과도 다를 게 없어질 수 있다.[260] Langer, E., Blank, A., & Chanowitz, B. (1978). The mindlessness of Ostensibly Thoughtful Action: The Role of “Placebic” Information in Interpersonal Interactio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36(6), 635-642.[261] 예: 안락사가 나을 수준의 부작용을 겪는 사람이 대리로 수술동의서를 작성한 사람에게 '살리라고 부탁한 것도 아닌데 왜 살렸냐'며 책임을 따짐.[262] 들어줌으로서 끼치는 피해에 무지한 쪽의 경험 부족을 지적할 수 있겠지만 사회성 부족을 운운하여 독박 씌울 순 없다.[263] 같은 직급의 상위 지시가 충돌할 시 어느 한쪽을 받아들이면 다른 쪽 지시를 한 상사를 물 먹인 것이 되므로 부탁을 거절하는 것과 들어주는 것 모두 꺼려진다.[264] 회복 불가능한 상태까지 끌고 가서 더이상 복구 불가능한 경우에 해당.[265] 정 모르겠으면 아예 상대의 협상 조건에 대고 '이해를 못 했으니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보라'며 반복 요구 시 이에 굴복해 본인 조건에(만) 맞는 협상에 동의를 받을 수 있다. 이는 설명을 길게 해야 할수록 더욱 확실하게 데미지를 꽂을 수 있다.[266] 권석만, 인간관계 심리학, 1997[267] "나는 사람 안 팬다."를 굳이 얘기한다는 건 상대 입장에서는, 이걸 자랑이랍시고 말할 정도면 대체 얼마나 우리들의 상식과 괴리되어 있는 거냐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된다. 이건 '우리 개는 안 물어요'와 일맥상통하며 결국 숨겨진 의미를 해석하면 '니가 나한테 맞더라도 내가 정한 상식에 따르지 않은 니 탓이니 처신 잘해라'라는 뜻이다. "난 내 편만 신경 쓴다." 역시, 나의 불만에 맞장구 치지 않는 사람도 적으로 간주할 테니 알아서 조심하라고 압박하는 것이다. "나는 성격이 좋다 / 돈 욕심 없다 / (너보다) 사회성이 좋다." 등등 다양한 베리에이션이 존재한다.[268] 정작 누군가 상급자 자신의 잘못을 밝히려 하면 철저히 보복한다.[269] 예를 들어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에. ~에."와 같이, 각각의 숨겨진 의미는 '내가 이런 걸로 고마워해야 되냐?', '굳이 이런 이유로 내가 사과해야 되냐', '꼭 말을 해야지 알아 들었다 하냐'로 떠보기식의 도발이다. 당연하게도 본인의 밥줄과 연관돼있는 윗선한테는 쓰지 않으며 친밀한 수직관계이거나 이와 비슷한 수평관계에서 말장난이면서 진심이 아예 없다고는 못 한, 상대가 받아줄 만한 도발로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다.[270] 상대방이 더는 입을 열지 못하게 "에?", "아?", "헤?"를 단순 반복한다. 이는 비밀 유지 목적도 겸한다.[271] 이러한 논리는 결국 완벽한 인간만이 본인을 납득할 수 있단 소린데 그런 사람이 웬만한 직장에 있을리도 없고 설령 있다고 당신과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상황이 오겠는가?[272] 여기서 말하는 요지는 까먹은 척 연기하는 것이다. '정'이 돈을 갚으려는데 '병'이 빌려 준 사실이 기억나지 않는 척을 하는 건 후술하겠지만, 거짓말은 선의의 목적도 포함되니 문단 18과 어울리지 않는 아웅은 뺀다.[273] 따진다 해도 본인의 의도가 농담이었다는 듯이 되려 "뭐 이리 예민하냐?"며 반박할 수 있고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하도록 세뇌한다.[274] 그나마 피해가 덜 가는 측면에서이다. 파벌이 알아서 커버쳐주는 상대방이 먼저 분노를 보여도 집단은 당신이 이겼다고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되려 이것을 '잠재적으로 피해를 끼칠 그들 입장의 반동분자'로 재해석하여 당신이 먼저 한 실수라 조작하여 '알아서 짜져 있으라'라는 무언의 압박을 가할 것이다. 어차피 그들에게는 집단의 분위기를 깨트리려는 당신의 존재가 이미 적으로 간주된다.[275]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누가 먼저 말장난을 시작하여 불쾌하게 만든 것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 제대로 정신이 박혀있는 사람은 각자에게 큰 관심이 없다. 농담 따먹기로 인생 허비하는 게 자기관리보다 부질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어차피 상대가 거짓으로 물타기한 걸 들켰어도 유아 연기에 동참하지 않는 당신을 적으로 조작해 함구하여 얻는 이득이 크면 될 뿐이며 당신을 위해 증언해 줄 사람은 이미 나가고 없을 공산이 크다.[276] 만일 위의 무고죄에 관련하여 피해자가 먼저 사과한다면 성추행의 고의성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 불리해진다.[277] 앞서 가기의 유형 3 중 G, H의 상황과 비슷하지만 '성격이 급변한다는 걸 예측할 수 있는가?'에서 차이가 있다.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상대를 놓는 게 아닌, 상대를 중심으로 그간 봐왔던 상대가 나를 대하던 기억과 일치하는지 초점을 두기 때문이다. 쉽게 비유하면, 초면인 사람에게 친한 척할 때 상대가, "당신이 뭔데 나와 친한척이냐?"로 반문하면 이전 집단에서 경험한 반응과는 이질적이므로 사회성이 부족하다로 앞서 판단이 가능하지만 원래부터 친했던 사람이랑 대화하는데 갑자기 상대가 "내가 너랑 친구냐?"와 같이, '상황이 급변될 것이다'를 예측하는 게 불가능하다면 아웅하는 거에 가깝다. 더 쉽게 표현하면, 나를 향해 자신 쪽으로 손을 휘젓는 것이 가까이 오라는 제스처인 건 알지만 예의 없는 행동이라 사회성이 없다고 판단하면 앞서 가기. 도착하니 하는 말이 '내 눈에 알짱거리지 말고 꺼져라'라는 제스처였다면 아웅이다.[278] 뜬금포로 패드립을 날려 상대가 격노해도 제3자 입장에서는 '본인이 지킬 게 많은데 그런 말을 했다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로 보아 '내가 그런 말을 해서 얻는 게 무엇인가?'만 잘 전달하면 일어나지 않은 것이 되어 따지는 쪽이 모함하려고 드는 것으로 판단한다.[279] 만일 그 이유가 있었다면 돌려서라도 말해줄 것이고, 직접 물어볼 시 눈치 안 봐도 되는 1대1 에서조차 '그런 질문 한 적이 없다'고 반응하면 나쁜 의도로 쓰인 것이다.[280] 나는 '모른다'는 의미로 고개를 휘젓는 걸 상대는 '아니다'란 부정을 나타낸 것으로 고개를 끄덕여 서로가 같은 뜻으로 전달한 것으로 오해한다. 이러한 예시와 같이, A의 의미로 전달한 것을 상대는 B이자 동시에 A로도 같은 제스처가 나올 만한 의미라면, 본인은 상대가 아웅한다고 쳐도 애초에 의미가 공유되지 않았기에 아웅 할 조건에 맞지 않는 거다. 여기서 발생된 전달자의 사회적 피해는 고스란히 본인 몫이다.[281] 따지고 들면, 처신만 잘하면 타인을 기망해 성공할 수 있다는 사상이 사회에 인정되고 있는 건 이를 증명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때문에 별 수 없는 자연의 이치라고 여기는 생존자 편향을 답습하는 데에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소수에 의해 도덕의 무결점을 인간 본성에 빗대어 동등한 위치로 작위하려는 미디어 양식장에 역으로 속은 것에 가깝다.[282] 예를 들어, 어느 사무실에서 공사가 시끄럽다고 항의가 들어온다면, 그 사람들 쉬는 날 공사를 진행하면 된다.[283] '사회성이 좋으면 갈등은 사라진다. 즉 갈등이 생겨나는 건 사회성이 없다는 뜻이 된다'라는 오해를 할 수가 있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만 접하면 자신의 위치는 정체된다. 사회적 지위를 높여 사회성을 증명하려면 어쩔 수 없이 새로운 갈등 양상을 접하고 이러한 학습을 반복해야만 한다. 사회성이 없는 게 갈등을 만드는 상황이라면, 반대로 부적응자들을 신경써서 갈등을 만드는 측 역시 사회 부적응자라는 논리가 된다.[284] 한 예로, 내가 다른 사람과 싸우고 있는데 옆에서 같이 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밉보일 수 있다.[285] 눈치와 비슷하게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만으로 그 대상을 스트레스 풀이로 쓰면 안 된다. 못 배운 게 괴롭혀도 된다는 암묵적 동의가 아니며 최소한 괴롭히고 싶어도 잘못된 이유를 알게하고 그 죗값에 해당하는 불쾌감만 줘도 충분하다.[286] 돌려 말하면, 본인이 이해해봤자 이익이 없기에 상대로 책임을 돌리는 것이다.[287] 키덜트와 같이, 유아스러운 취향도 '할 수도 있겠다' 수준으로 인식이 개선되었고, ASMR도 이상한 도착에 빠진 사회 부적응자로 더는 인식되지 않으며, 이의 발전으로 길에서 손을 휘젓는 것도 그렇게 괴짜로 보일 광경이 아니게 됐다. 기타 부적응자로 취급될 만한 짓거리도 마케팅으로 승격하는 등 자본주의로 인한 태세의 전환은 지금도 쭉 이어지고 있다.[288] 심지어 살 좀 보태서 아예 당사자도 못 알아들을 지경의 거짓된 정보를 비밀이랍시고 말하는 상황을 외부인이 봤을 때, '저 사람이 반응을 안 하는 이유가 이 사람이 하는 비밀이 사실이기 때문이다'라며 그저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니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당사자를 이용해 주변에서 북치고 장구치게 만들어 최초 발설자의 책임이 일부 면제되도록 무반응으로 오해를 사도록 방조한 측에게도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가능하다.[289] 뒷담 까는 것을 취미로 하거나, 집단 내 실세나 그 측근. 협박할 구실로 비밀을 캐려는 사람. 이런 사람들에게 자신의 약점이라도 공유했다간 집단을 떠나도 본인들 맘대로 누설돼 씹고 뜯으며 최악의 경우, 부풀린 사실을 악용하여 불건전한 부탁을 강요해댈 수 있다.[290] 주변에 있는 사람의 귀가 나쁘다는 이유로 안 들리겠지라며 대놓고 말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때는 본인이 누설하고도 부정할 명분도 된다.[291] 부자가 서민의 습성을 이해하려는 것도 이와 비슷한데 가치관까지는 알아보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정보화 사회라 하여도 실제 각각의 계층이 인지하는 가치관은 그 계층을 체험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들고 금수저가 말하는 레파토리 중 '실패해도 그걸 경험삼아 딛고 일어나면 언젠간 성공할 수 있다'라는 것도, 그 언젠간을 유지해 줄 기회가 일회성으로 끝나게 되는 아랫 계층에게는 위화감을 준다.[292] 휴대폰 결제내역 잔액을 엿보거나, 친인척 중 병원비를 마련해야 할 시 그 준비기간에 따라 수중에 보유한 재산이 어느 정도인지 예상이 가능하다.[293] 'A가 B(투기)를 방관했다'를 제3자(C)로부터 맥락마저 중첩되어 'A가 B를 했다'로 오해하게 하여 C가 거짓말을 한다는 심리를 느껴 반발심을 가지게 된다. 쉽게 비유하면, 직장 동료가 싸지른 똥을 내가 대신 치워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여기에 치워야 하는 쪽도 싸지른 사람과 같이 원인 제공을 했겠구나 / 같은 짝이겠구나라고 오해하며 수치심에 그냥 없던 것으로 넘어가는 게 이미 엎질러진 거 자신을 위해서라도 은폐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또 반발심을 억누르기 위해 대리를 쓰는 방식과 같이, 실행력 좋은 개(犬)를 축출하여 내가 나서지 않아도 대신 압력을 줌으로서 평판을 유지하는 동시에 입맛대로 조직을 조종하는 게 가능하다. 만일 문제가 생겨도 '이의 책임은 앞서간 저 자의 독단이지 나의 의도가 아니다'로 아웅이 수월해 꼬리 자르기에도 용이하다.[294] "그거 빨리 해야 될 걸?"이라고 넌지시 찔러보는 말에도, 만일 해야 되는 상황이면 "왜 내가 하라고 할 때 안 했냐?"며 따질 수 있고, 그게 아니라면 "그것을 해야 한다고 지시한 게 아니었다."라며 상대가 뻘짓 한 것이라고 내빼면 된다. 과장을 완곡하여 표현한 잘못을 따져봤자 상대는 예상한 것이지 상황을 확신한 건 아니기 때문이다. 지시받을 때 이런 함정에 걸리지 않도록 귀기울여야 한다.[295] 계약서에 장난질 할 때도 쓰인다. '해야 한다'와 비슷하지만 엄연히 다르며 여기서는 '지 꼴리는대로 할 수 있다'의 의미에 더 가깝다. 주로 정규직 시켜준다고 꼬드겨 자원을 뽑아먹을 때 쓰이며 이를 사전 차단하기 위하여 작성 시 반드시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296] 그러니까 굳이 빨대를 꽂으면서까지 수고를 들이는 탈마초의 특징을 보이는 것을, 본인이 게이임을 '증명'하고 있다고 확장시켜 상대방에게 미디어가 만든 성소수자의 특징을 따라하는 명분이 있다고 단정짓는다. 반대로, 여성이 컵째로 마시는 행동을 여성스러움을 해친다고 불쾌감을 느끼는 과장도 앞의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297] 이러한 프로불편러들로 인해 마땅히 제재할 만한 사유로 과장시켜 지적당해 신변에 영향이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만연한 역접(예: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 제 말이 다 맞는 게 아니지만~ / 물론 일부가 그렇겠지만~ / 예외란 게 있지만~" 등등)으로 문맥을 어지럽히는데에 큰 공언을 했다. 세상엔 별 것도 아닌 것에 입싸움을 하려면 할 수 있는, 하고 싶은 사람이 상상 이상으로 공존한다.[298] 여름인데 긴팔을 입고 나온 사람을 보며 '안 그래도 더운데 더 덥게 생겼다. 저렇게 반사회적으로 다니는 것은 민폐니 / 저 인간은 내 반응을 즐기려고 나왔던 걸테니 보복해야겠다'.[299] 본인이 맘에 안 드는 정치인(점원)이 상대방이 지지하는 정당(편의점)에 껴있고 이를 바꾸는 데에 응하지 않는다면 불복종으로 보아 보복하는 것.[300] 그나마 솔직하게 해명한 P가 양심적이라 생각하겠지만, 가족이나 동거인에게는 아웅해봤자 이득이 없으니 별 수 없던 수순이다.[301] 부부싸움 시 먼저 말하는 쪽이 지는 거니 아이를 중간 다리로 삼아 "엄마 or 아빠한테 가서 나의 의도를 대신 전해라."라며 쓸데 없는 신경전을 벌이는 과정이 있겠으며, 무관한 관찰자의 잘못을 과장하는 것도 포함된다.[302] S의 행동으로 불쾌해졌다 → T가 표정 관리를 하지 않았다 → 이를 본 나(S)도 불쾌해졌으니 처음부터 T의 책임도 있었다며 본인의 잘못을 제3자에게 축소되게끔 연기.[303] 발음법 또한 얼마나 조화로운지가 차지하는 비중이 더 크며 이를 교정하면 어색해지기 쉽다.(예: 효ː꽈 → 효ː, 마싣따 → 마따) 이는 문법 나치를 일상으로 가져오는 것만큼 엄밀히 구분해야 할 개념은 아니다.[304] 흔히 경험했던 수련회 지도사의 패악질로 비유하면, 당시에는 협박이나 폭행을 관찰하여 이를 가지고 신체적 위해를 가할 권한이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자라고 보면 단지 알바들의 군대놀이였음을 알 수 있다.[305] 가족이니 좋게 끝내는 게 낫다는 주변의 만류로 분노를 억압한다. 순응을 강요받기 쉬운 미성년자가 특히 그렇다.[306] 위와 같이 별 되도 않는 쌉소리로 언어의 맥락을 일그러트리는 과장적 요소는 유아 연기에서의 유아화와도 겹치는 요소이며 둘 중 어느 기술이 선후관계를 지니는지 구분이 어렵고 상대가 침묵하면 더더욱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이로 인하여 단순 장난성인지 분노의 전 단계를 알아 봐 달라는 건지 헷갈려 버려 저의를 추론하기에는 안목을 길러놨어도 에너지는 패시브다. 익살스러운 과장은 상대가 좋다가도 진지할 때는 신뢰를 망친다.[307] 초기 조건에서 내가 이 말을 하였을 시 최소한의 명분을 마련해야 한다. 거짓일 시 확언하지 않았다는 출구전략과 사실일 시 사실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연기로 신뢰감을 높이는 경우 모두 능청스럽게 해내야 한다.[308] 심리적으로 자신이 당연시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서 지적당할 시 벙찌며 제대로 된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다. 무의식에서 하고 있던 때는 논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유도 안 듣고 지 혼자 지껄인 뒤 내빼면 당신의 논리는 그럴싸해 보이는 것이고 지적했던 행동을 할 시 한다는 변명도 그럴싸해 보이는 것도 상대에게 지적당하기까지 의식적으로 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졌기 때문이다.[309] 그렇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다면 축복받은 거겠지만, 정작 그들 역시 관계망의 넓이로 사람을 판단하는 오류에 빠지기 쉽다.[310] 이 문서를 들어온 이유는 어차피 이에 대한 고민을 털어봤자 진지하게 임하지도 않을 것이고 뒷담의 대상으로 변질될 걸 알기에 이러한 몰지각에서 빠져나와 당도한 곳도 결국 과공감적 배타성만이 난무하는 패배자 무리라는 자조이기도 할 것이다.[311] 인싸의 유행을 종잡을 수 없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312] 튼실한 기업체를 운영하고 있거나, 어려운 상황에서도 반드시 자신을 지켜 줄 조직의 핵심 구성원이든지, 금융수익만으로도 돈 많이 버는 경우를 말함.[313] 혹여나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윗사람에게 갑질을 당하고 있다면 이 점을 잘 알아두고 반드시 대응해야 한다.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항의하고 맞서면 이길 수 있다.[314] 비대면의 대상과 서열을 낮추고자 하는 사람 간의 사회적 거리가 가깝다고 해서 쌍으로 우습게 여겨도 된다는 근거는 없다. 유유상종이라지만 멍청한 인간과 어울리는 사람도 멍청할 것이라고 속단해 쌍으로 멍청이로 취급해선 안 된다.[315] 지시하는 측 역시 본인도 이건 아닌 것 같아 고민했지만 상부에서 까라니 별 수 없이 내민 걸수도 있다. 이때 시도하는 척이라도 해 보는 게 시작부터 따지려 드는 것보다 낫다.[316] Shackelford & Buss, 1996[317] 기억을 해 준다고 좋아해선 안 된다. 특이한 사람은 나쁜 기억의 동음이의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서 유언비어로 조리돌림 당하기 십상이다.[318] 정말로 본인이 칭찬을 한 것이겠느냐라고 상대방이 칭찬으로 이해한 착각을 비꼬는 경우 역시 포함한다.[319] 외모, 키, 지능 같은 것들은 많이 듣고 자랐기 때문에, 타고난 부분보다는 후천적으로 노력해서 얻어낸 것을 칭찬하는 게 더 잘 통한다.[320] 자신의 취향에 맞아서 사랑스럽거나 통통한 사람이 집안이 부유해 보인다는 인식 속에 살아온 사람이 악의 없이 꺼낸 말일 수도 있지만 상대는 '통통함 = 뚱뚱함 → 자기 관리 무심'으로 돌려서 까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불쾌할 수 있다.[321] 이는 사회화 시기 때 분위기를 망치는 것을 사회 부적응으로 왜곡하여 교육시키는 원인도 있다.[322] 하나 이의 문제는, 친구라면 위 대처에 변칙성이 많아 무턱대고 단정하기 곤란하며 또 계속 봐야만 하는 관계라면 손절이 깔끔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323] 제3자가 아닌 녹음도 형법상 불법이라거나 회사 규율에 맞지 않게 제작된 증거는 불인정된다고 구라치는 경우.[324] 그러니까 미성년자끼리의 공격성은 여기서 다루지 않겠다는 의미다. 제재하는 쪽도 커리어 문제 때문에 공공영역으로 넓혀지는 걸 막으려 할 테고, 성인끼리여도 환경이 폐쇄적이라면 굳이 개입하지 않는 건 이나저나 똑같다.[325] "그렇게 중요하면 잘 보관하면 됐을 것이지 그러한 노력을 하지 않은 너의 탓도 있다.", "실제로 이런 상황이 나지 않게 가르치려고 훔쳐 간 척 해봤다." 등.[326] 비비탄총을 얼굴에다 겨냥하는 것. 당근칼같이 한때 논란이 일었던 물건도 위협이 될 수 있다.[327] 장갑, 페트병, 뿅망치, 스펀지, 하리센, 신체 중 손허리손가락관절(metacarpophalangeal joint, MCP) 등 문화권에 따라 그 범위는 달라진다.[328] 고함, 욕설, 서열과시성 호기(豪氣), 낮잡아 보이는 용어(예: 면상, 이빨, 눈깔, 아가리)를 활용한 갈굼.[329] 이상한 흉내 내보라 하기, 말싸움 중 통행에 방해가 된다는 사람에게 다른 곳으로 지나가라고 윽박, 요구에 응할 때까지 억류(못 나가게 문을 등진 채 서 있는 것도 포함) 또는 보복의 형태를 명료히 알려주지 않음.[330] 예외적으로, 분란을 일으킬 신호나 전조를 회피할 수 있는 방법 또는 이를 활용해 정치력을 길들이는 지반을 미리 예습하도록 교육시킬 목적이라면 어린이여도 포함된다.[331] 정계(政界)에서는 경쟁자 제거를 통한 사회적 지위 향상을 노리는 기술이 더 풍부해지며, 일부는 일상 영역에서 하기엔 리스크가 커서 현실성이 없다.[332] 대략 2초를 넘어가면 타인은 어떠한 의도가 있음으로 받아들인다. 이는 시선이 다른 곳에 가 있어도 상대가 겹쳤다고 느끼는 우연성에서도 적용되며 시비가 걸릴 수 있다.[333] 의도가 아니었어도 가래가 껴있는 상태로 입으로 숨을 쉴 때 공기가 빠져나오는 도중 소리가 끊길 수 있으며 상대방은 이를 헛웃음을 내는 강한 공격성으로 오해해 곤란해질 수 있다.[334] 벽보, 현수막, 게시판 등.[335] 근육질인 사람을 적으로 돌릴 상위개체가 드무니 본인이 뭐라하든 수동적 중재가 미비하여 비뚤어진 사상을 학습하고도 정상이라 인지하는 경우가 생긴다.[336] 최대한 고의성이 없게 손바닥같이 접촉 면적을 넓혀서 충돌해야 하며 무의식으로라도 팔꿈치로 찍으면 안 된다. 특히 얼굴은 견적이 세다. 운동을 해서 반사적으로 주먹이 날라갔다는 변명은 안 통한다.[337] 피아노 치는 사람에게 박자 안 맞게 박수를 치기.[338] "울지 마~. 울지 마~."라며 실제론 울지 않는 상대를 사실인 마냥 서서히 큰 목소리로 합창한 뒤 발언을 끊는 것이다.[339] 토론 관람객의 경우,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는 허용되지만 직접적으로 호응하거나 야유하는 등 중립을 어긴다면 제재를 받는다. 이런 환경에서 패널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는 테러에 준하며 나를 쫓아내라고 광고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바깥에서는 주동자임을 특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인파에 섞여 신호를 주어 군중 질서를 파괴해도 책임에서 벗어나기 쉬우며 이를 잘 녹여낸 사례가 존재한다.[340] 예시로, 범행을 저질렀는데 피해자가 누군지도 모를 사람에게 악담을 퍼붓자 이를 보고 본인에게 한 것이라고 판단하여 언성을 가하는 경우.[341] 추측으로 인해 모욕감을 느낄 시 실제 행한 사람이 보복해도 자백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 정황은 실제로 했다는 증거가 안 되니 오리발 내밀면 그만이고 상대가 늦게나마 깨달았어도 이미 손 때고 없다.[342] 애초에 말로 잘 설득할 수 있었다면 법이 지금처럼 체계화될 이유도 없다. 현실이 이러니 강제성을 개입시켜 인간다움의 최저선이라도 지키자는 거다.[343] 일기, 블로그, 감정쓰레기통 대체 어플 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스스로를 반면교사로 삼는 기록물이 될 수 있다.[344] 모든 사람의 대화를 이끌어가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끌어 갈 수 있다는 건 모든 순간을 집중하여 들었다는 것이고 점점 갈수록 들어서만은 아닌 편파된 정보를 정렬할 에너지를 소모해야 하기 때문에 인간관계가 넓은 만큼 쉽게 피로해지며 이렇게 쌓아 온 사회성이 아무리 좋든 마음의 여유는 넓어지지 않는다. 각자 정해진 양에 미지의 상태에서 오는 사회적 불안이 차지하는 것들을 쏟아내는 과정의 반복이다. 만일 새로운 환경에서 생활하는 데에 지장이 없다면 위와 같이 필요한 정보만 빼내는 기술이 텃거나 헛소리가 주류로 돌아가는 관계 유지 목적의 대화 구조이거나 드물게 기억술을 사회에 응용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난 것이다.[345] 편한 관계(가족, 친구)에서 사회성을 터득하는 것도 효과가 없진 않지만, 낯선 환경에 들어가야지 익숙함에 속아 그동안 본인의 사회성을 과대평가했던 건 아니었는지를 체크할 수 있다.[346] 극단적으로, 사회가 합의한 규범을 거부하기만 하면 이득이 되는 사상을 바꾸려면 규제가 있어야 하는데 이는 사찰을 해도 그 반례가 주류가 되는 요인인 생존 욕구와 관련된다면 결과적으로 합의점은 붕괴되고 종속성을 위배하는 양상으로 돌아간다.[347] 본인의 사회적 능력으로 치환이 가능한 사람. 예를 들어, 재화를 통해 사회성이 좋아보이게 투자할 수 있다면 여기서 그 피해를 받을 예정인, 돈 빌린 뒤 안 갚고 관계를 끊어도 될 사람은 물론 이것도 모르고 원래 이 사람 능력이구나 싶어 혹하는 사람들도 보험이 될 수 있다. 이는 사회성과 대인의 수준, 총량에 따른 인륜 착시를 순환시켜 동시 만족하도록 연기할 수 있다. 역으로 외적 자원이 부족(=제3자에 의한 사회적 평가 미달)한 사람(들)에게 소속돼 특정인의 사회성이 좋아 보이게 만드는 보험도 있으며 수평관계 역시 인맥질과 일맥상통하다.[348] 이는 직장 및 사회 체계 또한 상호 보완적인 중립을 집성하여 사회적 망(罔) 역할을 통한 비례억지전략으로서 기회 적체를 유도할 수 있도록 한다. 아무리 생산성을 중시하는 조직일지라도, 독대로 인간관계까지 갈라놓는 제재 방식은 본인 또한 그 공동 책임에 앞장서야 되니, 조직적 선약을 핑계로 협조성을 거부하는 공동 목표의 저항권을 위해 인간관계의 필요성이 대두된다는 점은 내선을 뛰어넘는 데에서도 의의가 있다.[349] 젊은 꼰대같이, 기존의 꼰대를 부정하면서 실상은 자신이 피해를 끼치는 총량이 타인보다 크며 '나는 틀리지 않았다'라고 되려 상대의 사회성 부족으로 떠넘기는 오류를 범한다. 이는 일반적으로 타인의 입장도 존중해줘야 하는 것이 사회성의 요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예외 사항을 만들었으며 해당 문서가 길어지게 된 원인 중 하나이다.[350] 현실적으로 이러한 관용은 현생이 여유로운 사람들의 소관으로서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실천하기는커녕 받아들이기도 버겁다. 그나마 타인의 오점을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게 관용의 최선이며 이마저도 체력이 넘치는 일부 악질로 인하여, 사회성은 배려하는 것보다 실수하지 않고 또 이를 덮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피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자연주의적 오류를 양산해 사교 내 조롱(정확히는, 그렇다고 받아들여야 하는 외압)으로 느낄 수 있는 선의 평균이 상향되었다.[351]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어떤 문서든 간에 가독성은 고사하고 맞춤법도 안 지켜진다면 열람자 입장에서는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으며 방향성도 합치되지 못한다면 진정성마저 유머로부터 배격된다.[352] 심리학 자료만 읽어서 사회화가 완료된다는 건 경제학 논문만 읽어서 부자가 된다는 말처럼, 실전에 써봐야지 용례를 아는 것들은 레퍼런스의 핵심을 걸러 낼 기반이 없는 상태에서 정보 과잉을 유발해 오용을 범한다. 학술 내용만 발췌해 통합하는 건 각 문화의 예사(例事)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는 만큼 서술의 진정성이 보충되지 않는다. 과함과 실전성 사이에 있을 법한 예시를 드는 이유도 그러한 무분별한 관계를 신시대에 맞게 설득하기보다는 피하기 위함과 관련이 있다.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문서의 r2004에서 가져왔습니다. 이전 역사 보러 가기
파일:CC-white.sv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다른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 펼치기 · 접기 ]
문서의 r2004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문서의 r (이전 역사)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