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9 19:51:00

개발제한구역

1. 개요2. 현황3. 역사4. 문제점
4.1. 사유재산권 침해4.2. 파편화된 도시개발 초래4.3. 대도시 부동산 가격 상승 초래4.4. 녹지 없는 그린벨트4.5. 그린벨트 해제를 둘러싼 이해 갈등
5. 해외 사례
5.1. 영국5.2. 이란5.3. 뉴질랜드5.4. 미국5.5. 일본 (시행 X)5.6. 중국 (시행 X)
6. 여담7. 다른 법률상 개발제한8. 관련 문서

1. 개요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제38조(개발제한구역의 지정) ① 국토교통부장관은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방지하고 도시주변의 자연환경을 보전하여 도시민의 건전한 생활환경을 확보하기 위하여 도시의 개발을 제한할 필요가 있거나 국방부장관의 요청이 있어 보안상 도시의 개발을 제한할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되면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또는 변경을 도시·군관리계획으로 결정할 수 있다.
②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또는 변경에 필요한 사항은 따로 법률로 정한다.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3조(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등) ① 국토교통부장관은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방지하고 도시 주변의 자연환경을 보전하여 도시민의 건전한 생활환경을 확보하기 위하여 도시의 개발을 제한할 필요가 있거나 국방부장관의 요청으로 보안상 도시의 개발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면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해제를 도시·군관리계획으로 결정할 수 있다.
②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해제의 기준은 대상 도시의 인구·산업·교통 및 토지이용 등 경제적·사회적 여건과 도시 확산 추세, 그 밖의 지형 등 자연환경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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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그린벨트 표지
개발제한구역()은 도시 주변의 녹지를 보존하기 위해 지정한 구역을 일컫는 말이다. 그린벨트(green belt)라고도 부른다. 그린벨트는 온실농사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하여 영국에서 최초로 사용하기 시작한 말이다.

영국 런던에서 최초로 본격시행되었으며, 현재 전세계 약 20여개국에서 시행되고 있다. 한국은 영국과 더불어 그린벨트가 가장 발달한 나라 중 하나이며, 세계적으로 그린벨트 정책을 언급할 때 영국의 사례와 함께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국가 중 하나다.

한국의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은 박정희 대통령이 1971년 처음 도입하였다. 급속한 발전에 따른 도시, 일부 지역들의 무분별한 팽창으로 인하여 교통, 주거, 환경 등이 악화될 조짐을 보이자 이를 줄이기 위해 도입하였다. 도입 시기에는 반대파로부터 혹독한 비난을 받았지만, 이후 진영을 불문하고 효과가 탁월했던 정책으로 평가될 정도로 대한민국의 환경 보존에 아주 크게 기여하였다.[1]

한국의 경우 말로는 개발'제한'이지만 실제로는 개발금지구역이라 할 정도로 시골 상태 그대로 낙후되도록 강제하는 게 현실이었고, 국가가 강제로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한 것이기 때문에 시장경제에 맞지 않는 법[2]이라는 비판과 급속한 성장에 따른 환경 훼손, 난개발 및 무분별한 도시연담화 억제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는 평가를 동시에 받고 있다. 또한 그린벨트 규제는 부동산 가격 상승을 촉발하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모든 공공녹지 규제는 주택가격 상승에 기여한다.

서울특별시의 경우 그린벨트 면적이 149㎢으로, 전체 면적(605.2㎢)의 약 25%이다. 2018년경에는 문재인 정부더불어민주당이 집값 안정을 명분으로 서울시의 그린벨트를 완화하려 시도하기도 하였으나,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이 그린벨트 해제 절대 불가 방침을 천명하면서 정부와 강하게 대립하기도 하였다.

2.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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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이전의 구 그린벨트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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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이후의 그린벨트 현황.

개발제한구역 현황(국토교통부 브이월드)

개발제한구역법 시행령에서는 개발제한구역은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 방지, 자연환경 및 생태계를 보호하여 도시민의 건전한 생활환경 확보, 국가보안, 도시의 정체성 및 성장 관리를 위한 경우 등의 기준으로 그 대상을 정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린벨트 지역 내에서는 건축물의 신축·증축, 용도변경, 토지의 형질변경 및 토지분할 등의 행위를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국토교통부 장관, 시·도지사, 시장, 군수 등의 승인 또는 허가를 받아 구역설정 목적에 위배되지 않는 한도 안에서의 개발행위는 가능하다.

개발제한구역 중 생산녹지는 농경·목축·임업·수산 등의 경제적 목적을 겸하고 있으며,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광활한 농장·유원지·임야 및 산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반적인 개발제한구역 중에는 농가나 넓은 정원을 보유하는 주택·학교 등의 건설물이 점재할 수 있다. 즉, 개발제한구역은 시가지를 구분하는 대상(帶狀)의 공원을 이루고, 또 비상시의 피난로로서 이용된다.

차단녹지는 주택 등을 공장배기가스·소음으로부터 방지하는 동시에 대도시의 시가지가 무제한으로 팽창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도시 외곽에 도시민의 쾌적한 환경을 제공하려는 목적에서 설치된다. 한국에서는 1971년 7월 30일 서울특별시 지역을 시작으로 도시의 무질서한 확산을 방지하고, 도시주변의 자연환경을 보전하여 도시민의 생활환경을 확보하는 동시에 보안상 도시개발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도시 주변지역에 대한 개발제한구역을 설치할 수 있도록 도시계획법을 제정하였다.

그린벨트 지역 내의 토지 중 종래의 목적으로 더이상 사용할 수 없거나 애초에 나대지인 경우는 토지매수청구권이 인정되는 것으로 헌법 판결이 났다. 이런 경우에는 토지 소유주는 사용도 못 하는데 개발도 하지 못하는 채로 아무도 사 주지 않을 땅을 껴안고 재산세만 매년 내는 눈물이 앞을 가리는 상태에 처하게 되므로 권익 침해가 극심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1998년 헌법재판소에서 개발제한구역제도에 대해서 헌법 불합치 판결이 나왔으며, 2003년 서울지방법원에서는 토지개발권 사유제 하에서 그린벨트 토지 보상제를 실시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3. 역사

고려와 조선시대에 지금의 그린벨트와 유사하게 특정지역을 '금산'이라는 지역으로 지정해놓고(예: 한성부 성저십리) 나무를 베는것을 금지하는 법이 있었다. 무분별한 벌목을 방지하여 비상시에 쓸 목재를 아끼고 산사태를 예방하려는 목적에서 도심지 확장을 억제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들어 한성부 일대의 인구가 증가하게 되면서 금산지대 지정이 유명무실해져갔고, 일제시기 들어와서는 민둥산도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현대적인 그린벨트는 급격한 도시화 과정에서 도심 내 녹지면적이 개발난에 휘말려 사라질 것을 우려하여 박정희 정권 시절 관련 법을 만들고 서울 근교 일대를 개발 제한 구역으로 지정했다. 그린벨트를 제정하는 과정에서 그레이터 런던의 사례를 벤치마킹했다. 다만 그린벨트가 항상 녹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데 그린벨트의 취지가 어반 스프롤 현상[3]난개발을 방지하기 위함이므로 녹지가 아닌 지역에도 그린벨트가 지정되는 경우가 있다.

국내에서의 그린벨트 제도는 1960년대 이후 서울의 과밀집중을 해소하기 위한 대도시의 인구분산대책의 하나로 논의되다가, 1968년 김신조 사건을 계기로 안보적인 이유로도 필요함을 절감하게 되면서 급물살을 타 전격적으로 지정되었다. 수도 방위를 목적으로 각종 군사시설을 서울 외곽에 재배치하기 위해서 광범위한 공간을 확보할 필요가 생겼고, 서울북한이 상상 이상으로 너무 가깝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면서 그린벨트로 서울의 성장을 억제해면서 거점개발방식으로 지방의 대도시를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이상이 1972년 제1차 국토종합계획의 기조였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부산 경부축에 성장이 집중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으며, 경부축 외의 거점개발은 사실상 실패했다.

다만 서울특별시의 경우 시계지역을 그린벨트로 지정함에 따라 도시 연담화가 약간은 억제된 측면이 있다(단, 광명시의 경우는 제외[4]). 부천-서울 시계(고강동-신월동, 역곡동-온수동), 의정부-서울 시계(호원동-도봉동), 성남-서울 시계(복정동-장지동), 안양-서울 시계(석수동-시흥동)처럼 그린벨트 지정 이전부터 주요 교통망이 형성되었던 지역 간선도로 주변은 그린벨트 대신 '풍치지구'나 '전용주택지구'로 지정해놓았다. 특히 경인선 지역(서울-부천 시계)은 일제강점기부터 시가지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서울시가지와 부천시가지는 그린벨트로 완전히 분리되어있지는 않다.

1971년 7월 30일, '서울시청을 중심으로 반경15km 지점의 해발고도 100m인 토지'를 기준삼아 폭 2~10km의 서울·경기 땅 454.2㎢가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로 최초로 지정되었다. 1972년 8월에는 그린벨트가 2배로 확대되어 반지름 30km 이내의 6개 위성도시를 총망라한 68.6㎢ 지역이 개발제한구역이 되었다. 그리고 1977년까지 여천을 마지막으로 8차례에 걸쳐 전국 주요 도시 외곽지역에 그린벨트가 설치되어 전 국토면적의 5.45%에 달하는 광대한 규모의 녹지대가 형성되었다. 서울 외에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된 도시는 부산광역시·대구광역시(1972년 당시 : 정부 직할 부산시와 경상북도 대구시)·춘천시·청주시·대전광역시·울산광역시(당시 경상남도 울산시, 경상남도 울주군)·창원시(당시 마산시·진해시통영시(당시 충무시진주시·전주시·광주광역시·여수시·제주시 등 13개 도시이다.

전두환 정권에서는 그린벨트 해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보류되었고, 노태우 대통령때부터 처음으로 그린벨트 개발이 시작되었다. 당시 1988 서울 올림픽을 전후해 체육·휴식공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미사리 조정경기장, 과천 경마장시설, 태릉선수촌, 제주특별자치도 공설운동장, 진해시 선수전지훈련장 등 전국 30곳의 112만평의 그린벨트가 이때 개발되었다. 정부의 개발제한구역 '무조건 고수' 원칙도 이때 '제한적 활용'으로 선회됐다. 관련 기사

그린벨트 해제는 김대중 정부에 들어서 상당히 가속화됐다. 당시 외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외국인 투자와 서민 주거안정을 목표로 수도권 입지규제 완화 등을 추진하면서 역대 정부중 가장 많은 면적을 해제했다. 1999년부터 그린벨트 내에서도 3층 이하의 단독주택, 26 종류의 근린생활시설을 설치하는 개발행위는 가능하도록 풀어놓아서 수익성있는 아파트를 못 지을 뿐이지 야트막한 전원도시 정도는 꾸릴 수 있게 되었다. 2001년에는 마산을 제외한 모든 비광역시의 그린벨트가 해제되었다. 무질서한 도시확산 가능성이 더 이상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시 그린벨트 그룹이 1그룹 수도권, 2그룹 부산, 대구권, 3그룹 인구 100만이상 권역, 4그룹 중소도시로 구분되었고, 1~3그룹은 부분해제, 4그룹은 전면 해제 되었다. 당초 1그룹을 제외한 전그룹의 전면해제에서 최종안은 후퇴하였다.

노무현 정부에서도 2번째로 많은 654㎢를 해제하는 결정을 내렸고,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에서도 각각 75.18㎢, 32.8㎢의 해제가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초기에 그린벨트 해제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서울 집값이 폭등하면서 정권의 아킬레스건이 되자 집값 안정을 위해 그린벨트 해제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2018년에는 처음으로 서울특별시 내의 그린벨트가 해제되었으며, 3기 신도시 계획을 진행시키기 위해서 앞으로도 상당한 양의 그린벨트 해제가 예상되었다. 그러나 같은 당 소속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이 그린벨트 해제에 격렬하게 반대하면서 당내 갈등이 불거졌다. 이후 2020년 7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성추행 사건으로 피소 후 자살하자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서울특별시내 그린벨트 추가 해제 검토를 했으나 직후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5]했다.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서 재빨리 서울시내 그린벨트 해제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단, 3기 신도시 일대의 그린벨트는 2019년 12월 해제했고 3기 신도시의 부속 택지지구로 예상되는 곳들은 2020년 12월까지 순차적으로 개발제한구역에서 해제할 예정이다. 3기 신도시 관련으로 약 100㎢의 그린벨트 해제가 예상되고 있다.

2024년 서울시는 모든 그린벨트 구역을 해제할 것을 알렸으며 관련 투기 및 거래현황을 모니터링할 전망이다.

그린벨트 제도는 본질적으로 개인의 사유재산권을 제한하여 공공의 후생 향상을 꾀하는 정책으로, 영국과 한국 외에는 제대로 시행되고 있는 나라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반시장적이고 사회공학적인 정책이지만 무분별한 도시확산 방지와 자연보호라는 측면에서 장단점이 공존하는 제도다. 그런 한국의 그린벨트를 만든 것은 보수 세력의 우상인 박정희였고, 반대로 그린벨트 해제를 가장 많이 했던 정부는 진보 진영의 우상인 김대중 정부였다는 것이 흥미로운 점이다. 박정희는 시장자유주의자라기 보다는 국가주의자였고, 국가 주도의 그린 벨트가 그의 정치 성향과 걸맞은 부분이 있었으며, 반대로 김대중은 기업에 우호적인 면이 있기는 했으나 사실 그린벨트 이러한 지도자의 성향 문제보다는 두 대통령의 집권기의 사회 상황이 전혀 달랐던 것이 훨씬 큰 영향을 주었다.[6]

4. 문제점

4.1. 사유재산권 침해

자연보호를 빌미로 사유재산권을 침해하는 정책이라며 그린벨트 정책 자체를 비판하는 사람도 많다. 특히 그린벨트 지역에서 사는 토박이 입장에서는 조상 대대로 물려져온 땅이 강제로 수용된 거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억울한 측면이 있다. 특히 국내 그린벨트 제도에 비판적인 사람 중 일부는 런던의 그린벨트는 국유지인데 비해, 한국의 그린벨트는 7할이 넘는 비율이 사유지라는 점에서 그린벨트의 부당성을 설파하기도 한다.(폐지론자들의 주장)

거기다 군사정권 시절부터 보상조차 거의 없다시피하다. 사실 이러한 보상의 문제는 한국의 도시계획 제도의 구조에서 나온다. 현행 법률상 도시계획에서 보상하는 경우는 도시계획시설이나 도시계획사업의 경우에만 해당되는데, 개발제한구역은 용도구역의 일종이라서 해당되는 경우가 없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용도구역은 보상을 할 이유가 없다. 자기 땅이 주거용지라서 공장을 못 짓는다고 보상을 해달라는 식의 주장을 받아주면 용도지구라는 것을 운용할 수 없긴 하다. 문제는 이런 논리를 재산권이 극히 침해당하는 개발제한구역에까지 가져와서 쓰고 있는 것.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에서 본래의 용도로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경우에는 매수청구를 할 수 있게끔 되어 있기는 하나 구역의 지정에 대한 보상과는 그 성격이 다르고 그 보상 역시 미비한 것이 현실이다. 그린벨트 지정 후 (1)종래의 목적으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거나 (2)나대지[7]인 경우는 강제수용당하는 급으로 고통이 크다고 보아 보상이 없는 것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린 적도 있다(89헌마214등).[8] 하지만 국토균형개발과 자연보호의 목적을 근거로 공익을 위해 사익을 희생할 수도 있다는 식의 논리도 만만치 않은 만큼 그린벨트 제도 자체의 폐지는 아직 요원해보인다.[9]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미비한 보상 제도에 대한 보완은 당연히 필요할 것이다.

4.2. 파편화된 도시개발 초래

스프롤 현상으로 대표되는 무제한적인 도시팽창은 막았지만 비지적(飛地的) 확산[10]이 대신 일어나는 문제점이 생겼다. 서울 바로 근교[11]에 택지가 개발되지 못하다 보니 훨씬 먼거리에 위치한 파주시, 용인시, 광주시 등지에서 엄청난 난개발이 일어난 것이다. 때문에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개발된 경부선(서울-안양-수원축), 경인선(서울-부천-인천축)을 제외하곤 서울 도심이 끝나자마자 뜬금없는 녹지대가 펼쳐치고, 그렇게 한참을 더 가면 다시 위성도시가 나오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심지어 군사정권 시절부터 개발된 경부고속도로(서울-성남-용인-화성(동탄)라인조차 서울시계를 벗어나 판교에 다다르기 까지 광활한 녹지대가 펼쳐져있다. 출퇴근 시간이 길어지면 여가시간이 짧아지고 이는 사회적, 경제적 측면에서도 큰 손실이다.

차라리 그린벨트가 없었다면 종주도시와 가까운 지역에 시가지가 형성되므로 연결 교통인프라를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건설할 수라도 있지, 용인이나 광주처럼 먼 거리에서 시가지가 무계획적으로 들어설 경우에는 연결거리가 과다해지는 등 추가적인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도 문제다. 만약 이런 지역에 통근을 위한 광역철도를 건설하려 한다면, 중간의 그린벨트로 인해서 중간수요가 없어서 타당성이 떨어져 건설에 난항을 겪는 경우가 많으며[12] 상대적으로 쉽게 만들 수 있는 광역버스를 만든다 하더라도, 운행 거리가 길어져 회전률이 낮아져 적자가 심해지기 때문에 버스 회사에서 노선 개설을 꺼리는 경우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서울시가 광역버스로 인한 도심 혼잡과 공해비용을 줄이겠다는 이유로 3대 도심 중 하나인 강남역의 신규 노선 개통을 철저히 막고 더 외곽인 양재역으로 노선을 잘라버리는 등 외곽지역 주민들의 고충이 날로 커져가고 있다.

특히 수도권에서 이 문제가 심각한 이유는 개발의 방향이 매우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북쪽은 안보 이슈로 인해 정책적으로 개발을 제한해왔고, 동쪽은 상수원보호 때문에 역시 본격적인 개발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시가지 확장이 가능한 곳은 정남향 뿐인데, 그 사이에 거대한 그린벨트가 가로막고 있으니 필요 이상으로 서울과의 거리와 통근시간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버렸고 정부의 인프라 투자는 이런 확장을 전혀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강남-안성 사이에 편도 거리만 무려 80km가 넘는 광역버스가 운행되는 상황은 아무리 봐도 정상이라고 하기 힘들다.

게다가 그린벨트 내부의 지자체에서도 개발압력이 높아지자 그린벨트로 지정되지 않은 기존 취락지구를 개발하는 꼼수가 널리 퍼져서 남양주시의왕시, 시흥시는 아예 도시 전체가 파편화되어 버렸으며, 멀쩡한 평지, 멀쩡한 역세권을 놔두고 산기슭에 아파트 단지가 올라가는 극도로 기형적인 개발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서울 내에서도 마찬가지로, 내곡동, 암사동, 방이동의 유휴부지를 팽팽 놀리면서 굳이 성북동이나 난곡동, 상도동 산비탈에 아파트를 층층이 박아넣는 폐해를 관찰할 수 있다.

서울역에서 경의중앙선을 타고 운정역까지 가 보면 이때까지 언급한 모든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일단 한국항공대역에 오면 갑자기 녹지가 나오더니, 행신역에 들어가면서 또 갑자기 도시가 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비지적 개발이 무엇인지 직접 눈으로 보여준다.

능곡역부터는 서울->문산 방향 기준 열차 오른쪽(능곡뉴타운)에는 시가지가 있는데 어째서인지 열차 왼쪽(한강변)은 아무것도 없는 나대지이다. 그 뒤로도 열차 왼쪽에는 일산신도시운정신도시가 보이는데 열차 오른쪽에는 농지밖에 없는 광경을 계속 확인할 수 있다. 철도 연선부지를 가치있게 활용해야 한다는 상식을 개나줘버린 현장이 질리도록 나오는 것이다. 그중 가장 백미는 바로 대곡역인데 대중교통의 편의를 만끽할 수 있는 환승역임에도 불구하고 그린벨트로 지정된 절대농지라 똥냄새밖에 맡을 것이 없다. 그린벨트 탓에 위성도시 주민들은 긴 환승시간과 통근시간을 강제당하고, 대중교통 사업자는 수익성을 훼손당하고 있다.

야당역운정역으로 가보면 열차 왼쪽은 운정신도시로 통합적인 택지 개발이 이루어졌는데, 오른쪽은 그린벨트 덕에 토지구획정리의 기회를 박탈당한 채로 기존 취락지구에 난개발이 진행되어버린 모습을 보여준다. 마을버스조차 지나가기 힘든 좁고 꼬불꼬불 꼬인 농로(였던 것)을 도로 삼아 제멋대로 지어 올린 다세대주택들 때문에 이 지역 주민들의 생활 수준은 바닥을 치고 말았고, 제대로 된 택지개발의 기회 역시 최소 몇십년간은 물건너가고 만 것이다.[위성사진] 운정, 야당역 동쪽 지역은 상대적으로 행정이 미비한 파주시 관할이라 이 사달이 나고 말았다.[14]

4.3. 대도시 부동산 가격 상승 초래

현재 서울은 다른 나라 대도시와 비교해 봐도 인구밀도가 매우 높다. 특히 서울 면적 자체가 다른 대도시에 비해서 결코 넓은 편이 아닌데다가 산지가 많아 거주지로 활용하지 못하는 땅이 많다. 게다가 분단 국가의 수도라는 특수성 때문에 서울시내나 외곽지대 적지 않은 땅이 군 관련 시설로 전용되어 그 부지는 물론이고 그 인근 지역까지 고도 제한 등 제약이 가해진 경우가 많다.[15] 거기에다가 그린벨트까지 있으니 인구밀도가 높아지고 집값이 치솟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 때문에 집값을 올리기 위해 그린벨트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그린벨트 존재 때문에 신도시가 서울에서 더 먼 곳에 지어지고 그렇게 먼 곳에 신도시가 지어지면 출퇴근 시간은 길어지고 그때문에 사람들은 가급적 서울 도심을 벗어나지 않으려 하고 그러다보니 서울 집값만 계속 오르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모든 공공녹지 규제는 주택가격 상승에 기여한다.

4.4. 녹지 없는 그린벨트

그린벨트 지역들이 제대로 녹지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라서 당장 서울 근교의 그린벨트들만 봐도 조금만 평탄하다 싶으면 농경지로 도배되어 있다. 이 농경지라는 것이 대부분의 도시근교농업이 그렇듯이 상품작물 재배를 위한 것이라서 실제로는 은색의 비닐하우스 천국이다. 따라서 말만 녹지인 사시이비 녹지일 뿐이지 실제 도시 녹지의 주된 임무인 공해의 완충, 열섬효과 저감, 휴식처 제공 등은 고사하고 오히려 새로운 공해를 창출한다. 여기에 비닐하우스 농업의 특성상 농약과 화학비료 같은 농업용 쓰레기나 폐기물도 빈번하게 배출되기 때문에 말이 좋아 녹지지, 그냥 농공단지나 다름없는 식이다. 실제로 그린벨트라는 곳인데도 어울리지 않게 소규모 영세 공장이 들어서 있는 아이러니한 풍경도 드물게 보인다. 녹지 확보라는 관점에서는 차라리 통합적인 택지개발로 공원 등을 확보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16]

외국의 그린벨트 지역과 다르게 거주민에 대한 주택의 신축 등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 영국과 스위스 같은 경우 아담하고 이쁜 전원주택이 그린벨트의 녹지와 어우러져 녹지로서의 미관을 잃지 않으면서 도심 거주민들의 휴양지 역할도 기능하고 있으나, 미친 인구밀도로 워낙 농지가 부족한 한국은 도시 외곽이 비닐하우스 천지로 도배되어 있다.

그래서 그린벨트 거주민들의 사유 재산 침해 문제와 더불어 그린벨트를 녹지로서 미관을 유지하며 아름답게 유지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미비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나 아직 관련 개정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게다가 서울이 세계적인 대도시치고는 상당히 이례적일 정도로 산지가 매우 많은 지형이기 때문에 자연보호 및 녹지공간 보전 측면에서 그린벨트가 필요하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한국 대도시 대부분이 분지 지형인 특성상 그린벨트 제도가 폐지된다해도 개발이 불가능한 산지(자연녹지)가 상당수 남을 것이라는 얘기. 즉, 현재 그린벨트가 모두 해제되어 택지로 개발된다 해도 서울은 다른 세계적 대도시들에 비해서 충분히 많은 녹지를 보유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직된 그린벨트 정책으로 이렇게 보전되어야 할 산지들이 대신 쓸려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4.5. 그린벨트 해제를 둘러싼 이해 갈등

그린벨트를 풀어 물량 공급을 하게 되면 당연히 인근 대도시의 부동산 가격은 하락세를 그린다. 이러한 그린벨트를 풀지 않고 묶어 놓음으로서 주로 인근 대도시의 부동산 가격을 상승시키고 높게 유지시킨다. 도시내 재개발이냐 그린벨트 해제냐의 갈등이 이것 때문이다. 해제 하면 안정적인 가격으로 새로운 아파트 등의 주택 공급이 가능하지만 인접 도시의 부동산 가격이 하락한다. 이 말은 대도시내 아파트 등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들의 자산이 하락한다는 이야기이기도 한다.

한국 국민들의 재산중 평균 75%가# 부동산이기에 자신의 자산 가치가 하락할 수 있는 그린벨트 해제는 민감한 문제이다. 또한 그린벨트가 해제 될 때 정부는 당해 공시지가를 기준으로 측정한 가격을 그린벨트의 토지주들에게 보상을 한다. 토지주 입장에서는 민간 시장가로는 공시지가에 3배 이상으로 거래되는 토지의 가격이 정부가 수용하면 대부분 1.0 ~ 2.0배 사이로 가치 측정되며, 또한 이에 대한 거부권없이 강제 수용 당한다. 토지주들은 이것이 정부가 긴 세월 개인의 사유지를 그린벨트로 묶어 놓고 인근 도시의 부동산 가격 임의적 상승 조절 및 필요할 때마다 싸게 구입해 개발하기 위한 허울뿐인 정책이라며 자본주의에 어긋나는 반 시장적인 정책이라며 반발한다. 원 토지주들은 40년을 넘는 세월동안 세금만 내며 어떠한 개발도 못하는 땅을 강제로 끌어 안고 있었는데 긴 세월에 대한 정부의 보상에 불만을 품는 셈.

반면 정부의 입장은 다르다. 토지 보상은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린벨트 해제로 인한 임대주택 공급 및 부동산 가격 안정 등 공공의 이익이 크다는 판단과 함께 녹지 보존으로 인한 공공에 복지에 모두의 이해가 있다는 입장이다.

토지주, 원주민, 정부, 환경론자들과 부동산 기득권층, 투기꾼 등이 복잡히 얽혀서 그린벨트 해제는 소요 되는 절차와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고 예민하고 조심스러운 문제다.

그린벨트는 대한민국의 후손에게 남겨줘야할 자연 유산이면서도 토지주들의 정당한 재산인 동시의 그 자손들의 유산이기도 하다. 또한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사회이면서 개인의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사회다. 옆 나라 중국처럼 정부가 모든 토지를 갖고 임대하는 형식이 아니다.

현재 대부분의 그린벨트를 시행하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대한민국의 그린벨트 토지는 사유지인만큼 나라가 매입해 국유지 전환을 하여 보존을 하든지 사유지로서의 정당한 권리를 부여해야 할지 정해야 한다.[17]

5. 해외 사례

5.1. 영국

파일:영국그린벨트.jpg
잉글랜드의 그린벨트 지도

개발제한구역이란 개념은 19세기부터 주장되어 왔으나,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1935년부터이다. 이후 1938년부터 그레이터 런던 지역에 세계 최초로 개발제한구역이 설정되었고, 2차대전 후인 1947년 도시 및 농촌 계획법(Town and Country Planning Act)이 제정되면서 전국으로 확대되었다.

1947년 기존시가지를 제외한 모든 토지의 개발권을 국가가 소유해 토지 소유자의 개발권 상실에 대한 보상하여 당시 3억 파운드(약 80조 원)을 들여 보상을 하고, 엄격하게 개발을 진행하는 허가제이다. 또한 그린벨트 내 거주하는 주민이 거주를 위해 건축하는 실거주 목적의 주택 과 생활시설에 대해서는 규제가 한국에 비해 널널하다. 영국의 그린벨트는 대부분 국유지로 중요한 토지는 국가가 소유함으로써 개발에 대한 잡음을 사전에 줄인 덕분이다.
  • 영국의 그린벨트에 관한 영국 의회 자료#
    평야가 많은 잉글랜드의 지형적 특성상 대다수가 잔디밭이며, 주변에는 대부분 중산층이 살고 있다.

5.2. 이란

테헤란 그린벨트가 존재하며, 테헤란은 오랜 동안 환경오염이 심각한 문제라서 녹지대를 많이 만들었는데, 이란 혁명이 있었던 1979년에는 75개이지만, 2017년에 2,211개로 도시 및 교외 전체 지역에서 크게 증가했다. 이러한 조치가 여름 기온을 최대 4℃까지 낮추었다. 앞으로도 녹지대를 확대할 예정이다.

5.3. 뉴질랜드

더니든 타운벨트(Dunedin's Town Belt) 라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그린벨트가 존재한다. 1860년대 있었던 골드러쉬로 인해 도시가 팽창하자 막기 위해 만들었다.

5.4. 미국

미국의 경우 그린벨트 도시(메릴랜드 주의 그린벨트, 위스콘신 주의 그린데일, 오하이오 주의 그린힐 등)는 복지정착의 일환으로 국가가 토지를 매입해 국유지로써 활용해 건설하고 있다.

5.5. 일본 (시행 X)

일본은 그린벨트를 시행하지 않는다. 일본에 가보면 한국처럼 도시가 비지적현상 없이 쭉 끝없이 이어진 도시형태를 볼 수가 있다. 이런 상황을 잘 보여주는 지역으로는 사이타마현이 있다. 다만 현재 일본은 따로 그린벨트라는 제도를 두고 있지는 않되 자연보호지역이나 문화유산 등의 인근 근처, 농업지구 등에 대해서는 필요에 따라 국유지로의 매입을 통해 개발제한을 등의 법령을 따로 제정하고 있다. 지자체에 따라 '시가화조정구역'(市街化調整区域)이란 개념이 있어서 이게 실질적 그린벨트 역할을 하나 이 역시 한국, 영국의 그린벨트와 같지 않다.

일본에서는 과거 도쿄 지역의 난개발의 가속화와 산업과 인구의 무분별한 집중으로 인한 인프라 문제가 심각해지자 이에 대해 개선의 필요함을 느끼고 두차례에 걸쳐 그린밸트 지정 논의가 있었지만 시행되지 않았다.

1932년에 만든 도쿄 대도시권 녹지계획은 전쟁을 치르는 시기 군부에 의해 군용시설 설립 필요성에 의해 취소되었다.

1958년에 다시 필요성이 부각되어 수도권정비기본계획을 세우고 사이타마와 치바, 카나가와, 도쿄 동서부 지역 등 근교지역에 그린벨트를 지정하고 이를 대처하기 위해 외곽에 위성도시들을 개발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1965년에 철회되었다. 1958년 수립한 수도권정비기본계획이 철회된 이유는 몇 가지를 들 수 있다.
  • 일본은 한국과 다르게 패전 이후 지속적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한국에 비해 사유재산 보호에 더 철저한 면이 있다.
  • 당시 토지주들의 극심한 반발과 국유지 매입을 위한 비용문제
  • 일본인들은 한국인들과 달리 도시가 녹지로 끊어지지 않고 오히려 연담화된 형태를 더 선호한다.[18][19]
  • 한국과 달리 단독주택에 대한 선호가 강하다.[20]
  • 일본은 도시의 확장 제한과 인구분산 해결책을 강하게 추진해나갈 정치적 세력이 미약했다.

5.6. 중국 (시행 X)

그린벨트라는 이름으로 따로 시행되는 정책은 없다. 참고로 중국의 모든 토지는 국가소유이며 이를 국민에게 장기 임대해주는 형태이다. 따라서 개발에 대한 모든 권한은 중국 정부가 갖는다. 이 권한을 정부가 부동산 개발업체나 개인에게 권한을 위임해주거나 일부 인정해주는 식이다. 탄소 발생율, 스모그 현상 등의 저감을 위해 공장을 중국의 동해안쪽으로 이전시키고 녹지지역을 확대하고 있다.

6. 여담

  • 보통 도시의 무리한 팽창을 억제하고 환경보호를 위한 것으로 설치되나, 경제학 콘서트에 의하면 개발될 수 있는 땅을 제한하여 도심의 땅값을 올리는 데 이용될 수도 있다고 한다. 실제로 영국의 경우 그린벨트가 집값을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게 한다면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 고양시의 그린벨트에서 일제가 세운 위령비가 발견되기도 했다. #
  • 박정희 대통령은 그린벨트의 설정을 직접 지시했을 뿐 아니라, 그 후에도 지속적으로 챙겼다고 한다. 그린벨트 전담 비서관을 두고 본인의 헬기까지 내주었다고.
  • 서울시내 주요대학의 관련학과 교수들이 모여 그린벨트의 초안을 그렸는데, 그 과정이 참 아스트랄하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가 있은 후, 새벽에 교수들의 자택에 헌병들을 보내 서울시내 모 호텔로 연행하여 일주일 내로 구체적인 계획을 요구하였다고 한다. 당시는 통금이 있었던 시절이고 군사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때인데 일언반구 설명도 없이 헌병들이 들이닥치니 교수들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변변한 지도도 없이 어떻게 그런 걸 하느냐고 항의하니 서울시내 군사작전용 지도를 싹 쓸어다 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 그린벨트가 처음 설정될 시, 그린벨트가 뭔지 몰랐던 시민들이 나라에서 하는 거니 뭔가 좋은 것인 줄 알고 '내 땅도 그린벨트에 넣어달라'고 민원을 넣기도 했다고 한다. - 출처: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
  • 2020년 기준 그린벨트 면적이 가장 넓은 도시는 서울이 아니라 대구이다. 참고로, 그린벨트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는 의왕이며(84%), 광역자치단체 중에선 대전이다(56%). 대전은 대구 다음으로 그린벨트가 넓다.
  • 2018년 박원순 전 시장은 서울 내 그린벨트 해제는 절대 안 된다며 도심 내 재개발을 통한 부동산 공급을 천명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김현미 국토부장관은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부동산 공급을 내세우고 있어 정부와 서울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결국 서울 내 부동산의 미친 듯한 상승으로 인해 각종 부동산 규제가 더해졌고, 2019년 박원순 전 시장은 그린벨트 훼손 파악에 대한 용역을 맡겨 정부에 기존 입장에 비해 한발 물러서는 것인가 라는 관측이 나왔다. 이후 서울시장이 오세훈으로 바뀜에 따라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2020년 7월 1일 부로 서울시의 2/3에 해당하는 만큼의 공원이 공원일몰제로 사라진다. 그린벨트 혹은 사유지임에도 자신의 땅이 공원으로 강제로 묶여 있던 토지주들은 땅을 개발 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 각 지자체에서 부랴부랴 땅을 사들이고 있으나 비용문제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

7. 다른 법률상 개발제한

이 법률이 아닌 다른 법률로 인해 개발이 제한되는 경우이다. 이 때에는 관련 유관부서의 협조가 필요하다. 규제가 복수적으로 적용되어 있는 지역도 있고 여기에 이권을 둘러싼 정치적인 입김까지 들어가기 시작하면 상당히 문제가 복잡해지고 개발이 상당히 지연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다음의 경우가 있다.
최근에는 주로 공항과 연관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 모든 민용, 군용 공항은 원활한 항공기 운용을 보장하기 위해 상당히 넒은 범위에 고도제한구역이 지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각지에서는 공항을 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국방부나 공군 각종 항공관계자들의 반대와 인근 지역에 대체부지를 마련하기 어렵다는 등의 이유로 진전이 느린 상황이다.

8. 관련 문서



[1] 이러한 환경 정책에 힘입어 한국은 빠른 시기로 환경 보존, 번성에 성공한다. 이후 UN 산하 식량농업기구(FAO)에서 1982년 보고서 영국, 독일, 뉴질랜드와 함께 꼽으며 “한국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산림녹화에 성공한 유일한 개발도상국이다”라고 격찬하였다. 이후 산림청도 2001년 4월 5일 식목일에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려 ‘숲의 명예전당’에 헌정하고 기념비를 경기도 광릉에 있는 국립수목원 뜰에 세웠다.[2] 특히나 토지소유주 입장에선 그야말로 철천지원수나 다름없다.[3] Urban Sprawl. 도시계획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도시화가 도시에서 농촌지역으로 무분별하게 나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어로 명확한 번역은 없다. 대신 스프롤 현상 문서를 참고하자.[4] 지금의 광명시 북부 지역은 서울 편입을 염두에 두고 1960년대말부터 서울특별시의 도시계획에 따라 이미 주거지역으로 개발되어 왔기 때문에 광명-서울 시계(광명동-개봉동, 철산동 북부-구로동, 철산동 남부-가산동, 하안동-독산동) 쪽은 애초부터 그린벨트는 커녕 풍치지구로 지정조차 되지도 않았다. 자세한 내용은 행정구역 개편/수도권/서울개편론/광명시 서울 편입 참조.[5] 리얼미터에서 여론조사를 한 결과 서울시내 그린벨트 해제에 대해 응답자의 65%가 반대하고 찬성률은 23%에 그쳤다. 서울시에서는 반대 비율이 70%를 넘었다.[6] 박정희 정권에서 그린벨트를 처음 지정할 당시 서울시 안에서도 개발할 땅은 넉넉했다. 서울시 역사상 최대 규모의 개발 계획인 강남 개발이 한참 진행중이었고, 정권 차원에서 서울에 사는 꼴을 보지 못하겠다고 생각한 빈민들은 아예 그린벨트 밖으로 쫓아내 광주대단지를 만들어 사대문안을 정리했다. 이 광주대단지는 후에 정부와 서울시의 삽질로 인하여 광주대단지 사건을 불러와 정권에 뼈아픈 오점을 남겼지만 당시로서는 이처럼 개발할 땅도 많고 사람들을 마음대로 몰아내는 폭거를 벌여도 크게 항거하지 못하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했기에 굳이 그린벨트로 지정할 외곽까지 손을 댈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그에 반해 김대중 정권이 집권한 1990년대 후반기~2000년대 초반의 경우 서울에서 대규모로 개발할 수 있는 땅이 거의 남지 않았으며, 민주화가 자리 잡으면서 정부의 강제적인 재산권 침해 행위에 대한 국민의 저항은 훨씬 심해졌다. 여기에 IMF를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서울시민)들의 부동산에 대한 욕구는 여전히 강하여 공급에 비해 수요는 많았기에 서울 안에서 대규모 개발이 불가능했던 이상 할 수 있는 일은 이전 정권부터 추진한 경기도권의 신도시 개발을 제외하면 서울 안에서는 그린벨트를 풀어 서울 내 택지를 공급하는 방법 이외에는 없었다. 이러한 문제는 그린벨트의 해제가 본격적으로 이뤄진 노태우 정권 이후부터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모든 정부가 지닌 숙제였다.[7] 지상에 건축물 등이 없는 대지.[8] 주의할 점은 이 때도 헌법 23조 1, 2항에 반하는 것이지, 3항에 의하여 보상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와 같이 23조 3항의 범위를 수용 그 자체의 규정으로만 보는 독일식 분리이론에 가까운 헌재의 입장을 독일과 달리 23조 3항에 있는 사용, 제한이란 문구는 왜 무시하는지 비판하는 견해도 유력하다. 뭔 소리야 즉 공공복리를 위해서(2항)라 해도 그에 비해 재산권 침해(1항)가 과도하다고 했지만, 보상을 지급할 의무(3항)가 있다는 말은 하지 않은 것. 헌법상 3항의 수용, 사용, 제한의 경우에는 정당한 보상을 지급해야만 한다. 이에 독일과 달리 한국 헌법은 수용(개발사업 등) 뿐만 아니라 사용과 제한(그린벨트의 경우)도 대상인데 왜 이는 언급하지 않냐는 것.[9] 문제는 그린벨트 목적이 과도한 도시 팽창으로 자연훼손 등을 막기 위해 만든 법이지만 상술했듯 국가가 개발하고 싶을 땐 해제하여 개발하겠다는 단서를 달았으며, 실제로 그린벨트의 대부분은 그렇게 풀려 개발되었다는 것이다. 그린벨트를 만든 목적이 도시 팽창을 막거나 지속적인 자연보존과 관리를 위해 이루어진 것인데 도중에 풀어버리면 안한 것과 별반 다를 바 없기 때문에 자연보존이란 단어 자체가 그냥 허울좋은 명분에 불과하다고 비판받아도 할 말 없는 상황이 된 것. 이렇다보니 결국 나중에가서 이걸 해제해버리면 그동안 사유지를 제한받고 보상은 못 받은 주인만 손해를 보게 된다.[10] 개발제한구역을 건너뛰고 위성도시가 개발되는 현상. 영어로는 'leapfrog development'(개구리뛰기 개발)이라 부른다.[11] 2000년대까지는 예외가 광명시. 원래 광명은 시흥군 서면 시절 서울 편입 예정지 개념으로 서울시 도시계획으로 개발된 베드타운이었지만 위성도시 육성이라는 명분으로 서울 편입이 무산되어 구로구 편입 대신에 광명시 승격이 이루어지면서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위례신도시, 고양 향동지구, 하남 미사지구, 구리 갈매지구, 남양주 별내지구 등 서울 시계지역에 조금씩 개발되고 있긴 하다.[12] 최근에는 전철 건설의 트렌드가 바뀌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90년대에도 일산선이나 서울 8호선처럼 지상으로 뺄 수 있는 곳은 다 뺐고, 반대로 신분당선이나 분당선 수원 연장, 서울 7호선 인천 연장, 진접선 보면 알겠지만 수요와 필요성만 있으면 전통적인 방식으로 지하로 쑤셔박는 사례도 차고 넘친다.[위성사진] 파일:파주시난개발.jpg[14] 고양시의 백마역 인근은 고양시에서 재빨리 관리처분지역으로 못박아서 난잡한 빌라촌이 되는 상황은 막았다. 파주시의 난개발은 왕년의 레전드였던 용인시를 떠올리게 할 정도이다.[15] 대표적으로 용산 광대한 지역을 차지하고 있던 용산 미군부대가 있다. 만약 이곳이 진작에 주택지로 개발되었다면 서울시 구조가 많이 달라졌을 것이고, 강남을 비롯한 서울 집값이 지금만큼 폭등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용산이 아니더라도 서울시내에는 의외로 이곳저곳에 많은 부대가 적지 않은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과거 육군본부, 해군본부, 공군본부, 공군사관학교, 종합행정학교, 상무, 특전사 예하 부대, 수방사 예하 부대, 정보사 등 많은 부대가 서울시내에 있다가 지방으로 이전했다. 위례신도시도 종행교를 비롯한 여러 부대가 이전해가면서 그 부지에 건설된 것. 지금도 육군사관학교, 국방부, 서울공항 그리고 특전사, 수방사 예하 부대 등 여러 부대들이 알게 모르게 서울시나 서울 바로 바깥의 곳곳에 숨어 있다. 그리고 군부대는 아니지만 국방부 관할 시설인 국립현충원 역시 상당히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16] 특히 과천시선바위역 일대가 그렇다. 그리고 판교신도시 개발 이전의 판교도 비닐하우스 천지였다.[17] 단, 한국 법원은 적절한 보상이 이루어진다면 그린벨트 규정 자체는 합헌이라고 보고 있다. “헌법상의 재산권은 토지소유자가 이용가능한 모든 용도로 토지를 자유로이 최대한 사용할 권리나 가장 경제적 또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입법자는 중요한 공익상의 이유로 토지를 일정 용도로 사용하는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 따라서 토지의 개발이나 건축은 합헌적 법률로 정한 재산권의 내용과 한계내에서만 가능한 것일 뿐만 아니라 토지재산권의 강한 사회성 내지는 공공성으로 말미암아 이에 대하여는 다른 재산권에 비하여 보다 강한 제한과 의무가 부과될 수 있다.”(헌법재판소 1998. 12. 24. 선고 89헌마214)[18] 한국에서는 도시 연담화는 행정구역 통합 논의의 아주 좋은 빌미가 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로 서울권의 광명시와 대구권의 경산시. 반면에 일본의 경우 도시가 연담화된 지역에서 통합 논의가 한국에 비해서 덜 나온다. 사이타마현도쿄도 편입론이 광명시의 서울 편입론에 비해 약한 것도 이것.[19] 이는 행정동과 유사한 개념이 없는 탓으로도 볼 수 있다. 일본의 경우 행정 관련 서비스는 대부분 시역소(시청), 정역장(한국의 군청에 해당) 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며 최말단 단위까지 관할하는 관청을 거의 두지 않는데, 연담화되었다고 섣불리 도시를 통합해버리면 주민들 입장에서 애로사항이 꽃피기 때문이다.[20] 일본은 맨션이라는 고급 아파트를 제외하면 한국형 아파트 단지들은 주로 국가나 지자체에서 공급하는 임대아파트가 대다수이며 지방에서 도시로 올라온 대학생, 외노자, 기초생활수급자 등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사는 데라 빚을 져서라도 단독주택에 살려는 사람들이 많다. 이러한 문화 차이는 인천국제공항과 나리타 국제공항 주변만 봐도 확연히 알 수 있다.[21] 공항시설법은 민간용 공항에 적용되는 규제이다. 청주공항 같은 민항기와 군용기가 모두 사용하는 겸용 공항의 경우 군사시설 보호법과 공항시설법상의 규제가 동시에 적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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