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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아이돌/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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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1세대 아이돌 이전( ~ 1996년)3. 1세대 아이돌(1996년 ~ 2002년)4. 1.5세대 아이돌(2000년 ~ 2004년)5. 2세대 아이돌(2004년 ~ 2007년)6. 2.5세대 아이돌(2008년 ~ 2013년)7. 3세대 아이돌(2013년 ~ 2018년)8. 3.5세대 아이돌(2019년 ~ 현재)9. 세대 구분의 모호성
9.1. 의견을 반영한 세대구분

1. 개요

일러두기 : 한국 아이돌, 나아가서 K-POP의 역사를 알기 위해서는 태동기를 포함한 현 시대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의 역사적인 배경지식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목록에 적혀있는 가수들의 명단에는 아이돌 컨셉이 아닌 가수들도 포함되어있는데, 1980년대 후반을 포함한 2010년대 이후 현재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의 역사적인 배경지식을 모두 설명하기 위함이다.

볼드체는 그 당시 인기를 많이 받았거나, 현재 큰 인기를 누리고 있거나 인지도가 낮거나 팬덤이 부족한 것이 아닌 괜찮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가수들이다. 다만 3세대 이후 아이돌의 경우는 대부분이 현재 왕성한 활동 중인 관계로 팬들의 잦은 수정이 벌어지고 있으므로 기준에 맞는 아이돌 그룹에만 볼드체를 적용하도록 하며, 기준은 다음과 같다.

걸그룹 : '초동 3만 장 이상, 가온 월간차트 3개월 이상 진입, 3회 이상 지상파 음악방송 1위 달성, 신인상 3개 이상 수상[1], 본상 1개 이상 수상[2]' 중 1개 이상 만족
보이그룹 : '초동 10만 장 이상, 가온 월간차트 3개월 이상 진입, 3회 이상 지상파 음악방송 1위 달성, 신인상 3개 이상 수상[3], 본상 1개 이상 수상[4]' 중 1개 이상 만족

2. 1세대 아이돌 이전( ~ 1996년)

1세대 아이돌 이전
구분 팀명 (데뷔년도)
보이밴드 산울림 (1977) 송골매 (1979) 들국화 (1985) 시나위, 백두산, 부활 (1986)
소방차 (1987) 제3세대 (1988) 야차[5] (1989) 015B (1990)
서태지와 아이들[]사실상 대중가요계의 레전드이자 최종보스. 1990년대를 대표하는 우상이자 아이콘 같은 존재였다.], 더 블루 (1992) 노이즈, 듀스, 솔리드, 잉크, 모자이크, 전람회, E.O.S (1993)
윤도현밴드(YB), 토이, DJ DOC (1994) R.ef, 터보, , 패닉, 드렁큰타이거[7], 육각수 (1995)
클론, 구피, 아이돌(IDOL), 킵식스 (1996)
걸그룹 세또래 (1987) S.O.S, 애플, 칼라[8] (1993)
코코 (1994) 쎄쎄쎄 (1995) 비비, 에코 (1996)
혼성그룹 현이와 덕이 (1976), 세대교체 (1988) 철이와 미애, 1730[9] (1992) (1993)
룰라, 투투, 마로니에, , [10] (1994) US[11] (1995) 마운틴[12](1996)
남성솔로 신중현 (1958) 전영록 (1975) 이수만 (1977) 구창모 (1978) 조용필[13]. (1979)[14] 이문세 (1983)
김광석 (1984) 김승진 (1985) 박혜성[15], 이승철 (1986) 변진섭, 유재하 (1987) 박남정, 신해철[16]흑역사 아닌 흑역사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팬들은 넥스트 때보다 이 때의 신해철을 더 좋아한다는 게 함정(...)이다.] (1988)
김현철, 이승환[17] (1989) 윤상[18], 심신, 신승훈, 이현우, 윤종신, 현진영 (1990)
임재범 (1991) 김민종[19], 김건모, 김원준, 신성우, 손지창, 이덕진 (1992)
강산에 (1993) 서지원, 박진영[20], 김경호[21], 김정민, 성진우 (1994)
박지원, 임창정[22], 김성재 (1995) 포지션 (1996)
여성솔로 윤시내 (1974) 나미, 민해경 (1980) 정수라 (1982) 이선희 (1984) 박미경, 원미연 (1985) 김완선, 조갑경 (1986)
이미키, 이지연 (1987) 안혜지[23], 김혜림, 이상은, 양수경, 신효범 (1988)
강수지 (1990) 이재영 (1991) 하수빈, 최연제, 윤영아, 박준희 (1992)
이소라, 엄정화[24] (1993) 이예린[25] (1994)

1987년 소방차세또래를 시작으로 남성 가수 쪽은 노이즈[26]이 있었고, 여성 가수 쪽은 김완선을 중심으로 이지연, 이상은, 강수지, 하수빈 등의 솔로가수들이 엄청난 팬덤을 구성했다.

물론, 위에서 언급된 가수들이 데뷔하기 이전에도 1970~80년대의 포크송 음악을 주도한 세시봉김광석을 중심으로 포크음악이 뿌리를 내렸다. 그리고, 락의 대부 신중현을 중심으로 산울림, 송골매, 들국화, 백두산, 시나위 등등의 락그룹으로 이어져내려오면서 록 음악이 뿌리를 내렸고, 당대의 주류음악이었던 트로트 가수들이 군웅할거로 경쟁하던 가운데에는 가왕 조용필이 있었으며, 1970년대의 남진-나훈아의 라이벌 구도와 1980년대의 김승진-박혜성의 라이벌 구도가 존재했지만, 이들은 10대~20대뿐만 아니라 전연령층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했다.

1980년대 초반~1990년대 당시의 영미권 팝음악은 다양한 장르의 탄생[27]과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같은 대스타의 등장에 힘입어 세계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국내에서도 이들 영미권 팝스타의 인지도는 한국의 10~20대 연령층에게도 영향력이 엄청났었다. 동네 레코드샵에서 빌보드 싱글 핫 100 복사판을 나눠줬을 정도였고, 별로 유명하지 않았던 유로댄스 가수[28]들의 내한공연에서도 만석을 채웠을 정도였다.

1980년대의 10대~20대들은 신디 로퍼, 마돈나같이 유명한 가수들은 알고 있어도 당대 대한민국의 대중문화를 비롯한 유명한 가수들은 트로트 장르를 비롯한 연령층이 높은 기성세대의 가수들이 대세였던 시대였다.

물론, 1980년대 당시에도 댄스 곡을 부르는 가수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나미, 윤시내, 민해경처럼 댄스 곡으로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이 있긴 했었지만 이들은 10대~20대만 타겟으로 노리는 가수들이 아니었다. 특히, 윤시내는 그 악명높은 "공부합시다"를 불렀던 가수였다. 이런 가사를 부르는 가수들이 과연 나이가 어린 학생들의 취향에 맞았겠는가? 공교롭게도, 민해경은 "공부합시다"와 안티테제의 가사를 담고 있는 "내 인생은 나의 것"을 부르면서 메가히트를 기록했다.

이 노래의 안티테제라고 부를만한 노래는 민해경의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윤시내의 '공부합시다'와는 다르게 학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4주 연속 1위를 했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니 부모님들은 더 이상 간섭하지말고 노터치!"라는 가사[29]의 내용 때문에 빡치신 일부 부모님들의 압력으로 인해 금지곡 크리를 맞았다는 흑역사가 있었다.#

이처럼, 1980년대 당시의 10~20대는 그들의 취향에 맞는 음악에 목이 말라있었다.

1980년대 초반~후반의 10~20대 연령층은 미국의 마이클 잭슨, 컬처 클럽, 듀란 듀란, 프린스같이 유명한 외국 가수들은 알고 있었지만 당대의 유명했던 10대~20대 사이에서 취향에 맞았던 한국의 가수들은 사실상 가왕 조용필 정도로 인지도가 높았었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 트로트포크같은 음악이 대세였던 시대였기 때문에 이미 한 물 가버린 노래 정도로 인식하고 있었고 취향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30]

그리고, 1980년대에는 헐리우드 유명 여배우이자 당대 최고의 섹스심볼이었던 브룩 실즈소피 마르소, 피비 케이츠 등등 이른바 책받침 3대 여신이라 불리면서 남학생들이라면 누구나 책받침에 사진을 붙이고 다녔던 시대였다. 그러나, 한국 영화계는 군사독재정권의 영향으로 검열을 비롯한 여러가지 이유로 인해 그야말로 암흑기나 다름없었다.

전두환의 군사독재정권 이후 3S정책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애마부인, 산딸기 시리즈 같은 한국형 에로영화가 주류였기 때문에 어린 학생들은 당연히 영화관에 쉽게 드나들기 어려웠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안 그래도 헐리우드 영화나 홍콩 영화같이 외국 영화에 밀렸던데다, 국내 영화계의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가장 떨어졌던 1980년대에서 그나마 나오는 한국 영화들은 청소년 관람불가 투성이였으니.... 그래서, 한국의 영화 배우들은 10대~20대들 사이에서 대중문화계의 아이콘이 되기에는 살짝 부족했던 시대였다.

결국, 국내의 음악시장은 군사독재 시대의 병크나 다름없었던 검열 등의 영향으로 새로운 장르의 탄생보다는 기성세대들의 취향에 맞는 음악 위주로 만들어졌었다. 한 마디로, 댄스나 랩, 힙합을 비롯한 새로운 장르[31]를 받아들일 토양은 이미 1980년대 초중반부터 무르익었지만 한국의 대중음악계는 영미권의 영향력이 강했어도 검열같은 제도적인 미비와 음악인들의 역량이 부족해서 10대~20대의 취향에 맞는 수준으로 맞춰주지 못했던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데뷔하기 이전, 한국의 기성세대 음악인들은 "한국의 대중음악은 한국어의 한글 구조상 절대로 랩이 불가능하다."는 선입견[32][33]이 있었던 것과, 1990년대 대중가요계의 판도를 뒤바꿔놓은 데뷔곡 난 알아요를 혹평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런 상황에서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음악성을 겸비한 대한민국 아이돌 그룹의 태동은 10~20대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대중음악의 수요에 불을 당긴 셈이다. 땔감은 이미 1980년대 중후반부터 충분히 쌓여왔지만 본격적으로 불을 붙인 가수들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유래 없는 경제 호황과 생활 수준의 향상으로 마이마이로 대표되는 휴대용 카세트 테이프 플레이어가 본격적으로 보급되고, 그에 따라 음악시장의 수요도 커지면서 당시의 젊은 세대는 그에 걸맞는 컨텐츠 또한 마련되기를 요구하여 왔으나, 그 거대한 수요를 잡을 문화 아이콘은 부재인 상태였다.

오죽하면, 10~20대의 취향에 맞는 컨텐츠의 부족은 당시에는 합법적으로 수입이 전혀 금지되었고 쉽게 접하기 힘들었던 J-POP까지 손을 거치면서 쿠와타 케이스케, 코무로 테츠야, 오자키 유타카 등 당대 일본에서 유명했던 음악들 또한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때에 암암리에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했었다.

그리고 당시 일본은 80년대를 거치며 아이돌 전성시대를 맞이하던 시대, 따라서 해적테잎이나 수입경로로 당대 마츠다 세이코로 대표되는 수많은 일본 아이돌들의 음악도 이미 암암리에 유행하던 시절이다. 참고로, 그 시절은 반일감정이 지금보다 훨씬 컸을 때였고 인터넷으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매체들이 많지 않았을 때였는데도 그런 불리함을 딛고 J-POP이 암암리에 유행했을 정도였다. 이처럼, 1980년대~1990년대 당시의 10~20대들은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음악을 비롯한 대중문화 컨텐츠에 목말라하고 있었다.

사실, 지금 아시아 지역에서 인기를 끄는 K-POP의 성공 배경은 30년 전의 한국 상황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성장으로 10~20대들은 새로운 음악을 원하고 있었지만, 각국의 사정으로 자국 내에서 그러한 컨텐츠를 만들어 낼 역량이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 공백을 K-POP이 뚫고 있는 것이다. 당장에 국내 3대 기획사(SM, YG, JYP) 수장부터가 80년대 중후반 10~20대 시절 국내의 문화컨텐츠가 부족했던 시절을 직접적으로 겪었던 세대였다. 답답해서 내가 만든다. 그 결과가 지금 아시아를 휩쓰는 K-POP...

그리고, 19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점점 나이가 어린 가수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면서 10대~20대에게 본격적으로 마케팅을 하는 그룹들이 만들어졌고, 미국발 음악이었던 힙합을 중심으로 한국 대중가요계에 큰 영향력을 끼치기 시작했다. 뉴 에디션, 뉴 키즈 온 더 블록(NKOB) 등 10대에서 20대 초반을 묶어서 만든 가수 그룹들[34]이 대한민국 아이돌의 형성에 영향을 끼쳤으며, 1990년대 이후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에서는 뉴 잭 스윙, 힙합, R&B가 대유행하는 시대가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K-POP이 태동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한국 아이돌은 10~20대를 비롯한 대중문화계의 아이콘이 되기 시작했다.[35]

SM엔터테인먼트이수만 대표가 김완선(발탁나이 83년 14살, 86년 데뷔)을 3년 동안의 혹독한 스파르타 훈련으로 데뷔시킨 한백희(전 가수이자 김완선의 이모)에게 조언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36] 1990년에 데뷔한 현진영의 경우, 이 대표의 지시로 2년 정도의 트레이닝을 거치고 데뷔했다. 한편 한때 SM엔터테인먼트와 라이벌 관계를 형성했던 DSP미디어이호연 대표는 한밭기획 전무이사 시절 소방차를 기획해 성공을 거둔바 있다. 이 성공을 바탕으로 한밭기획에서 독립해 대성기획(후에 DSP미디어로 명칭변경)을 설립했다. 소방차의 성공을 보고 한국에도 아이돌이 뜰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고 살던 집을 털어 창업했다고 한다.

오늘날과 같은 본격적인 대한민국 아이돌 그룹의 효시로 거론되는 가수는, 1990년대 초반의 서태지와 아이들로 보는 것이 중론이다.# 이후 1년 뒤 듀스의 데뷔를 더해서 두 그룹이 대한민국의 대중음악계에 끼친 영향은 실로 엄청났다.#

물론 소방차, 박남정, 김완선 등이 한국의 댄스 가수, 아이돌의 효시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팝과 뉴 잭 스윙, 힙합 등의 흑인음악을 기반으로 한 현대 댄스뮤직과는 다른 기존의 성인가요를 빠른 템포로 바꾼 것에 불과한 음악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으며 흑인음악을 기반으로 한 첫 남성 솔로 댄스 가수로는 현진영이 있긴 했었지만... 활동기간 내내 원톱을 찍었다고 보기는 힘들었으며 이들은 모두 다 당시의 트로트포크음악으로 대표되는 한국음악계의 주류문화를 완전히 바꿔놓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 이전의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의 주도권은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30~40대의 기성세대가 가지고 있었지만, 두 그룹의 충격적인 데뷔는 10~20대에게 대중음악계의 주도권을 넘겨주게 되는 획기적인 변화가 불기 시작한다. 특히, 서태지와 아이들 이후 한국의 대중가요계는 성인가요같은 트로트와 포크음악 위주에서 10대~20대 취향의 댄스 음악 위주로 재편되었으며, 노이즈, 듀스, DJ DOC, 룰라와 같은 댄스 그룹들이 점점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듀스는 미국발 흑인음악이었던 힙합이라는 장르를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서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고 발전시킨 아이돌이자 뮤지션이었다. 듀스가 현역으로 활동했던 시기에는 서태지와 아이들노이즈 등과 같은 소속사의 그룹 룰라의 그늘에 가려져서 활동기간 내내 정점을 찍었다고 하기엔 약간 모자란 면이 있는데, 1위 경력은 거의 없는 편이고 실제로 당시 한국의 빌보드 차트라고 불리울만큼 공신력이 컸던 가요톱10에서도 1위 경력이 전무하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테디 라일리의 주도로 만들어진 뉴 잭 스윙을 받아들여서 대중적이고 세련된 힙합 음악으로 대중화를 이끌었고 듀스가 데뷔한 이후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서 힙합이라는 장르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섞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1990년대 중, 후반에 데뷔한 1세대 아이돌 그룹들도 서태지와 아이들, 그리고 듀스의 영향을 크게 받았기 때문에 두 그룹이 자신들의 우상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꽤 많았다. 그래서 현재 활동하는 연예인들 중에서도 서태지와 아이들과 듀스의 팬이었던 사람들이 정말 많다. [37]

그리고 아이돌 그룹의 특징인 짧은 활동기간과 컴백 시스템[38], 하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이 '휴식기와 컴백기' 라는 개념을 혁명적으로 가져오게 되면서 이 모든 개념이 생기게 되었다. 무대 구성, 격렬한 안무, 아이돌 멤버들의 캐릭터 기믹 부여, 그리고 립싱크 등 현재 한국 아이돌의 기원이 되는 모든 시스템들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 당시에는 연습생 개념이라는 것은 희박했다고 하더라도, 백댄서 등의 기회로 연예계로 입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을 정도로 연습생 시스템의 기반을 다졌다고도 볼 수 있다.[39]

이후 한국의 대중음악 시장에서도 10대~20대를 대상으로 하는 시장이 굉장히 발달하였으며, 이들은 10대들의 자긍심과 저항을 표현하면서 인기를 얻기도 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대한민국 대중가요계는 댄스가수 위주로 재편되기 시작했으며 비교적 나이가 어린 가수들이 대중음악의 주도권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전의 70~80년대는 30, 40대의 가수들이 대중음악의 주도권을 갖고 있었다.

국내에서 걸그룹(Girl Group) 혹은 소녀 그룹(少女-)이라는 용어는 1993년부터 언론에 처음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40] 이후 1997년경부터 S.E.S 핑클 등 10대 후반 20대 초반의 젊은 여성들이 그룹을 만들어 가요계에 데뷔하면서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했다.[41] 일반적으로 대중가요에 종사하는 어리고 젊은 여성 가수의 집단적 구성을 일컫는 용어다.

아이돌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상에서 특정인에게 최초로 아이돌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것은 차범근이며, 여성의 경우는 김완선. 서태지와 아이들의 데뷔년도인 1992년 이후 처음 사용된 사람은 손지창. 아이돌, 아이돌 스타, 틴아이돌 스타, 하이틴 스타[42], 틴에이지 그룹, 인기 댄스 그룹 등의 표현이 중복되어 사용되었다. S.E.S,까지만해도 "아이돌 그룹"이라는 말은 찾아보기 힘들며 "인기 아이돌 스타" "인기 그룹" "인기 댄스그룹"이라는 표현을 많이 썼다. 심지어 IDOL이라는 그룹은 이름 자체를 아이돌로 쓸 정도로 당시에는 아이돌이라는 표현이 생소하였다. '아이돌'이라는 용어가 고착된 것은 인터넷 신문 등에서 2000년 초부터 10대들에게 인기를 얻는 가수를 지칭하는 단어로 '아이돌'을 자주 사용하면서부터다.

서태지와 아이들 이전, 아직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보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는 1세대 아이돌 성립 전 문화를 향유한 세대는 대략 1970년대 초반~ 후반 출생 세대가 된다. 대략 70년대 후반 출생자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 년도 기준 중-고등학생) 부터는 1세대 아이돌문화를 직접 향유한 세대로 친다.

3. 1세대 아이돌(1996년[43] ~ 2002년[44])

1세대 아이돌
구분 팀명 (데뷔년도)
보이그룹 H.O.T.[45], 구피, 언타이틀, IDOL, 하모하모[46] (1996)
젝스키스, NRG, 지누션, 태사자, UNO(우노), TNB (1997)
신화, OPPA[47], 이글 파이브[48], 팬클럽, EVE, 1TYM, 스피드, 포맨 (1998)
god, 플라이 투 더 스카이, 클릭비, Y2K, A4, 피플크루, 야다, 플라워 (1999)
걸그룹 뚜띠[49] (1996) 베이비복스[50], S.E.S., 디바 (1997)
핑클, 한스밴드[51], 써클[52] (1998)
클레오, 티티마, O-24, 애즈 원[53], 타샤니, See U, 두리안 (1999)
혼성그룹 UP[54], 콜라[55], 자자, 주주클럽[56], 영턱스클럽 (1996)
줄리엣[57], 자우림, 스페이스A, 소호대[58], 고구려 (1997) S#ARP, 코요태, 비쥬, 오룡비무방[59](1998)
남성솔로 김연우, 이현도, 이지훈 (1996) 홍경민, 박완규, , 유승준 (1997)
조성모[60], 최창민 (1998) 강현수, 김범수, 박효신 (1999)
여성솔로 소찬휘, 에코, 리아, 양파 (1996) 박지윤 (1997)
김현정, J.ae, 박정현, 이소은, 박기영, 루머스 (1998)
유채영[61], 이정현, 백지영[62], 소냐, 샤니, 채정안, 이수영[63] (1999)


1990년대 Kpop Idol History.



1997년 8월, 당시 1세대 아이돌 댄스그룹의 조상격이자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H.O.T젝스키스의 공연장면.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되고 1996년 하반기 이후 H.O.T.의 데뷔를 기점으로 현재 말하는 아이돌 전성시대로 1세대 아이돌의 정의가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H.O.T.를 비롯한 1세대 아이돌 가수들이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기 시작하는 1998년부터 가요톱10이 종영하고 뮤직뱅크가 방영되기 시작했다. 사실 이건 1997년 IMF 사태로 공중파의 음악 순위프로그램이 전부 폐지되었던 것의 영향이었다.

참고로,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를 발표하던 날, 전국의 초, 중, 고, 대학생들은 너 나 할 것없이 모두 다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와 허탈감에 빠졌으며 심지어 3대 방송사 9시 뉴스의 메인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리고, 당시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했을 때 대중들의 반응은 현재 현역으로 활동하는 아이돌 가수들의 팬들만 아쉬워하는 수준이 절대로 아니었다. 그래서 다음 날 학교에선 서태지 은퇴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오르내렸다. YS가 은퇴시켰다는 음모론이 나왔다고 카더라

당연히 1980년대~1990년대 청소년들의 영원한 우상이라고 불리던 인기 최정상의 아이돌이 어느날 갑자기 뜬금없이 은퇴 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이 서술의 내용이 단지 서태지와 아이들을 띄우기 위해서 말하는 것도 아니고, 과장을 조금 덧붙여서 거짓말이 아니라 거의 대통령이 하야를 했다는 반응과 거의 비슷했을 정도로 대한민국의 10~20대 정도의 학생들은 너 나 할것 없이 모두 다 큰 충격에 빠졌으며 "사실상 대중가요계가 텅 비었다!"는 반응까지 나왔을 정도였다. 심지어는 당장 1년 전에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보다도 그 실질적인 임팩트가 컸다.

그래서, 다음 날 학교를 가면 학생들 사이에서는 서태지 은퇴에 관한 이야기가 자주 오르내렸다. 서태지의 골수 여학생 팬들은 해체를 반대한다면서 매일마다 서태지의 소속사나 집 앞에서 시위를 벌였을 정도였다.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조윤진이 서태지와 아이들의 광팬으로 나오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을 정도로 시대고증에 너무 잘 맞았고 골수팬들의 충성도는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극 중에서 조윤진이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하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은 나머지 아예 식음을 전폐하자 삼천포가 못내 안타까워하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왔을 정도로 골수팬들의 반응은 거의 다 그랬었다.

물론, 당시에는 충격받고 밥만 안 먹은 것 정도는 축에도 못 꼈다. 그 당시 언론의 핵심은 자살소동에 가 있었기 때문이다. 300명 자살예비조 같은 흉흉한 소리가 돌던 시기였다. 다행히 실제로 죽은 사람은 없었지만, H.O.T.젝스키스가 해체를 했을 때도 이런 반응은 아니었다.

당시의 증언을 빌리자면, 나이어린 초등학생들 고학년 사이에서도 "도대체 왜 해체하는데?"라는 말밖에 안 나왔다. 초등학생들도 저학년들은 시끄럽고 알 수 없는 노래를 한다고 싫어하는 친구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고학년들은 서태지와 아이들을 싫어하는 반응은 거의 없었다. 형, 누나, 오빠들이 매일마다 서태지의 음악을 들었고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어서 만화를 보면서도 공중파 음악방송 할 시간에는 당연히 채널을 돌리니까 노래 들으면서 랩 열심히 연습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막 나타났던 케이블 음악채널에서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는 정말 지겹게 흘러나왔다. 초등학생 고학년 정도라면 서태지와 아이들은 늦게나마 듣고 자랐기 때문에[64] 싫어하지도 않았고 무대에서의 퍼포먼스는 멋지게 느껴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 세대는 H.O.T.젝스키스의 데뷔를 보면서 1세대 아이돌을 응원하는 중심세력이 된다. 이런 이유로, 앞으로도 아이돌 가수들이 은퇴를 했을 때 서태지와 아이들처럼 큰 충격을 받는 대중들의 반응은 앞으로도 나오기가 어려울 것이다. 물론, 가왕님은 은퇴하실 일이 없으시니까 이런 반응은 안 나온다.

1996년 H.O.T.의 데뷔를 시작으로 1세대 아이돌 시장이 열리고,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가 1대 아이돌 붐이라 불리는 1세대 아이돌의 전성기였다. 보이그룹은 1990년대 후반에 전성기를 맞은 H.O.T.젝스키스 세대가 선발주자로 2000년대 초반에 전성기를 맞은 신화god 세대가 후발주자로 구분된다. H.O.T.가 아이돌의 정석을 확립해 거대 팬덤을 형성했다면, god는 탈아이돌성을 어필해 대중성을 잡았다. 선발주자들이 H.O.T.의 영향을 받아 정통파 아이돌의 양상을 띄었다면 후발주자들은 레드오션에서 살아남기 위해 차별성을 확보하려 노력한 것.

걸그룹은 1997년 11월 S.E.S.의 데뷔를 기점으로 1998년 핑클과 양강구도를 형성하며 걸그룹 경쟁이 시작되었다. 둘은 전통적인 청순파 걸그룹의 양상을 보여주었는데, S.E.S.는 신비주의를 핑클은 친근감을 어필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리고, 라이벌이 없는 독보적인 3인자 베이비복스가 있었고 걸그룹 최초로 섹시 컨셉을 시도해 S.E.S., 핑클과의 차별성을 확보한다. 물론, 그 이후로 몇 팀이 한꺼번에 1위를 다투는 춘추전국시대같은 혼돈양상은 있었지만 베이비복스처럼 독보적인 3인자 이미지의 걸그룹은 현재까지도 전혀 없다.#

1세대 아이돌 중 1군 걸그룹으로 통하는 S.E.S.-핑클의 양강구도로 라이벌이었고, 베이비복스는 사실상 2군 걸그룹으로 군림했지만, 히트곡 수는 이들에게 꿀리지 않았고, 걸그룹 중에서 거의 최초로 섹시컨셉을 시도한 걸그룹이다. 히트곡은 <야야야>, <Change>, <Get Up>, <Killer>, <Missing You>, <Why>, <배신>, <인형>, <우연>, <나 어떡해> 등, 히트곡이 많았다. 현재로 비교하면 전성기 시절의 2NE1 정도로 비슷한 위치였다고 봐야 한다. 더구나, 당시 베이비복스는 2000년 이후 같은 시기에 활동한 샤크라디바, 클레오등과는 크게 격차를 가지고 있었으며 팬덤이나 대중성, 음반 판매량 역시 S.E.S. 핑클을 바로 이어서 항상 3위를 기록했었다. 그야말로 라이벌이 없는 걸그룹계의 3인자였다. 또한, 총 음반 판매량이 100만장을 돌파한 몇 안되는 걸그룹 중 하나이기도 하다. 현재 역대 걸그룹 총합 판매량 5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1위는 S.E.S, 2위는 TWICE, 3위는 소녀시대이다.

다만, 1980년대 초중반에 태어난 세대들은 서태지와 아이들과, 1세대 아이돌의 문화를 둘 다 향유하였다. 1980년 이전 세대를 "서태지 세대"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고, 통상적으로 1980년생~1987년생들이 H.O.T., 젝스키스, S.E.S., 핑클, 베이비복스 등을 보고 들으면서 자란 세대이며, 1986년생보다 2살 어린 1988년생까지 국민학교의 마지막 입학세대[65]"윈도우 98 세대", "국초딩 세대", "이해찬 세대", "7차 교육과정 이전 세대", "중학교도 의무교육없이 돈 내고 다니던 세대"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66]

1990년대 중후반 당시 국민→초등학교 고학년~중고생이었던 1980년생~1987년생들도 나이가 어렸을 때이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를 늦게나마 듣고 자란 경우가 많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은 사실상 거의 없었으므로...[67] 그 국민→초등학교 고학년~중고생들이 대학생, 20대가 되면서 1세대 아이돌 문화의 주축이 되었다. 1996년~1999년경 국민→초등학교 4, 5학년 정도였던 1987년 이후 세대들(1987년~1989년생)은 서태지와 아이들 등의 1세대 이전 아이돌의 문화는 거의 모르고, 그 이후 세대인 H.O.T., 젝스키스, S.E.S., 핑클, 신화, god 등 1세대 아이돌들의 음악을 조금씩 접하게 된다.[68]

특히 1997년~2000년 당시는 그룹 못지않게 솔로 또한 아이돌 스타로서 상당한 인기를 누리던 유일한 시절이다. 남성솔로의 경우 1997년 김경호, 임창정, 스티브 유, 1998년 조성모 등이 1세대의 날고 긴다는 아이돌 그룹들과 가요순위에서 직접적으로 경쟁을 하면서도 엄청난 팬덤을 몰고 다니면서 이 시대를 풍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여성솔로의 경우 역시 1997년 소찬휘, 엄정화, 1998년 박지윤, 김현정, 1999년 이정현, 백지영 등이 상당한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된다.

2000년 BoA를 기점으로 트레이닝은 더 혹독해지며 일본, 미국 진출과 관련해서 외국어도 공부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보아의 경우는 1세대와 1.5세대 사이인 과도기에 데뷔했지만 소속사의 물량공세를 감안한다면 큰 인기를 얻지 못했고, 오히려 1.5세대 아이돌에 들어서면서 빛을 발하게 된다.

대략 1980년대 초반~중반 정도 출생 세대가 1세대 아이돌 문화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당시 청소년이었던 세대가 2010년대에 이르러서는 가장 구매력이 좋은 현재 30대~40대가 되었는데 그들의 당시 문화코드를 관통한 토토가의 대 성공은 당시의 한국 아이돌의 영향력을 잘 알지 못하였던 90년대 이후 출생 세대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그때의 분위기를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응답하라 1997은 당시의 팬덤 문화를 잘 재현한 드라마.

4. 1.5세대 아이돌(2000년 ~ 2004년)

1.5세대 아이돌
구분 팀명 (데뷔년도)
보이그룹 문차일드(M.C The Max), UN, 량현량하 (2000)
K-POP, 오션, 디베이스, 에픽하이, 브라운 아이즈, JTL (2001)
바이브, 제이워크, 블랙비트, Q.O.Q, 악동클럽, 노을, F-iv[69], 4U[70] (2002), 버즈, 더 크로스, 테이크, NELL[71], 브라운 아이드 소울, 투샤이, 원투 (2003)
V.O.S, SG워너비 (2004)
걸그룹 샤크라, 파파야 (2000)
쥬얼리, 밀크, 슈가, 투야, KISS, S[72], 걸프렌드[73], 보이스코[74] (2001)
SWi.T, 신비, 스위트, 이삭 N 지연, LUV, 데자뷰 (2002)
빅마마, 7공주, 모닝 (2003) Shyne (2004)
혼성그룹 체리필터[75] (2000) 더 자두, 거북이 (2001) 퍼니[76](2003) 클래지콰이 (2004)
남성솔로 은지원 (2000)
성시경, 싸이[77], 강타, 문희준, 강성훈, 이재진, 리치, 론[78] (2001)
, 휘성 (2002) SE7EN, 이정[79], JR (2003) 이승기, 테이 (2004)
여성솔로 보아, 화요비, 왁스, 정인 (2000)
장나라, 하늘, 죠앤, 다나, 유리, , 페니, 이가희 (2001) , 미나 (2002)
거미, 렉시, 이효리, 바다, 유진, 채연, 서연[80], 유니, 솜이 (2003) 럼블 피쉬[81] (2004)


2000년 ~ 2008년 Kpop Idol History.

2000년대부터는 조성모를 비롯해 발라드 가수들이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1세대 선발주자인 H.O.T는 사실상 활동을 중단했으며 젝스키스 또한 돌연 해체[82]를 선언하여, 아이돌 1세대 팬덤이 주도하던 문화현상은 일단락되었다. 그 바람에 아이돌 팬덤의 영향력이 전보다 약해지기 시작했는데 이에 따라 1세대 후발주자들은 선발주자들과의 차별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1999년 데뷔한 god는 탈아이돌성과 친근감을 내세워 국민 아이돌에 등극했고, 1998년 데뷔한 신화 역시 2000년대 이후 남성적인 반항아로 컨셉을 틀며 제 2의 보이그룹 라이벌 구도를 확립한다. 이후에는 아시아 시장을 노린 독특한 그룹명과 멤버 작명을 선보인 동방신기와 보이밴드 컨셉의 버즈가 1군급 인기를 구가했다.

걸그룹 또한 양강 구도를 형성했던 S.E.S가 해체하고, 핑클의 활동도 잠정 휴지기에 들어갔음은 물론, 베이비복스 또한 이전의 인기를 유지하지 못함에 따라 이들이 차례로 물러난 2003년경부터 원더걸스, 소녀시대가 등장하여 인기를 끌기 시작한 2007년까지의 4년은 사실상 '진공상태'라고 봐도 될 정도로 1세대 선배그룹의 인기를 계승한 걸그룹은 없다시피 했다. 아이돌 팬덤이 형성된지 햇수로 5년이 되어, 그 시장이 충분히 성숙해가자 사회적 메시지와 강렬한 퍼포먼스로 무장했던 1세대 아이돌의 문법은 다소 유연하게 바뀌게 되었고, 컨셉에서도 다양한 시도가 이어졌다. 또한 2000년대 초반은 소몰이 창법으로 대변되는 팝발라드의 전성기가 되어, 퍼포먼스 위주의 아이돌 그룹의 인기는 다소 쇠퇴하였다.

그만큼, 1세대 이전 출신의 수많은 컴백 가수들이 명곡을 쏟아냈기 때문에[83] 음반시장은 대한민국 역대 최고 정점을 찍었지만 인터넷국민PC의 대중화로 소리바다같은 P2P 방식의 음원 공유 사이트가 활성화하면서 불법 다운로드 이용자가 점점 증가하는 바람에 음반 시장 규모의 수명을 단명시키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덜 부각되었지만 가수 제이의 2집 히트곡 '어제처럼'이 R&B 대중화의 서막을 알리기도 했고, 윤건과 나얼이 의기투합한 브라운 아이즈는 단 2장의 앨범으로 가요계를 평정하다시피 했다.[84]

결국, 2001년부터 1세대 아이돌의 영향력과 음반 시장의 규모마저 하락하기 시작했으며 1세대 아이돌의 1인자였던 H.O.T.2001년 5월 13일에 공식적으로 해체[85]되었으며, 6월 초부터 R&B 보컬 그룹 브라운 아이즈가 '벌써 일년'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하게 되면서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의 흐름이 본격적으로 새롭게 바뀌기 시작했다.

2002년부터는 음반 시장의 규모가 가파르게 축소되어 큰 타격을 받게 되자 수많은 음반 매장들이 문을 닫게 되었고 인터넷 발달로 인해 불법 다운로드는 멈출줄 모른 채 계속 확산되고 있었다. 2002년부터는 S.E.S의 해체와 핑클의 잠정적인 활동 중지로 1세대 아이돌 최후의 주역 걸그룹들마저 물러나게 되었다. 시대의 흐름과 겹쳐 god는 사실상 방송 활동을 거의 하지 않은데다 멤버 탈퇴로 타격을 받게 되고, 2004년 신화의 대상 수상을 마지막으로 1세대 아이돌의 전성기는 막을 내리게 된다.

다른 솔로 가수들 및 일부 댄스 그룹들이 과거 1세대 주역 아이돌 그룹들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면서 음악시장의 대중적인 트렌드는 예전의 1세대 아이돌 스타일의 음악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동방신기쥬얼리가 각각 보이밴드와 걸그룹의 다크호스로 급부상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는데 이 시기부터는 특히 1세대 아이돌 그룹이 대부분 해체되거나 활동중단을 하게 되면서 기존 멤버들이 솔로로 데뷔했지만 그렇게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그 중에 가장 성공한 케이스는 다름아닌 핑클의 이효리였다.

남성솔로에서는 1세대에서 독보적 존재였던 유승준의 부재로 인해 신인으로 데뷔한 SE7EN의 양강구도가 2003년에 본격적으로 형성되었으며, 여성솔로 중에는 1세대 말에 데뷔해서 다소 고전하다가 1.5세대에 들어서면서 2002년부터 빛을 보게 된 BoA장나라의 양강구도를 중심으로 팬덤의 영향력이 크게 확대되었으며, BoA장나라보다는 약했지만 하늘, 죠앤이 엄청난 팬덤을 몰고 왔다. 그리고, BoA장나라와 차별된 스타일의 섹시코드를 주축으로 하는 미나, 채연, 유니 등의 여자 가수들까지 데뷔하게 되면서 2003년부터 여성 솔로 가수들의 치열한 경쟁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는, 한창 불어닥친 R&B 열풍을 바탕으로 휘성, 박효신, SG워너비, V.O.S, 브라운 아이즈, 브라운 아이드 소울, 플라이 투 더 스카이[86], 이정 등 가창력과 보컬을 강조한 남성 솔로 또는 그룹 R&B 아티스트들이 음악시장의 대세를 차지하면서 아이돌 그룹 가수들은 상대적으로 부침을 겪게 된다. 여자 가수들도 또한 이수영은 1세대 아이돌 시절부터 데뷔했으나, 인기도에서 다소 밀려있었다가 2000년대 중반 발라드의 여왕으로 대성공을 거뒀으며 빅마마, 거미, 박화요비 등의 정통파 보컬리스트들이 이 시기부터 전성기를 맞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시기는 여성팬덤의 지지가 탄탄한 보이그룹보다 걸그룹의 타격이 커지게 되면서 2007년까지 걸그룹은 사실상 궤멸상태였다. 밀크, 신비SM 엔터테인먼트에서 내놓은 걸그룹마저 처참한 실패를 겪은 시기다.[87] 보이그룹의 경우, 동방신기H.O.T의 빈자리를 채워가면서 1인자로 대동단결하는 와중에 SS501[88], 파란[89], 그리고 굳이 보이그룹으로 분류하자면 버즈[90] 정도가 명맥을 유지했다.

또한, 혼성그룹의 대중적인 인지도와 인기는 2000년대 중반까지만 이어졌으며 이쪽 계열에서 가장 인기가 높던 쿨의 활동이 미약해진 2000년대 후반부터는 뚜렷한 활동이 크게 줄어든데다가 아이돌 그룹들이 발표한 새로운 형식의 음악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바람에 혼성그룹의 비중이 거의 공기화가 되기 시작했다.

정리하자면, 이 시기를 대표하는 노래방 대통령은 SG워너비, 브라운 아이즈, 버즈, 엠씨더맥스, V.O.S, 빅마마 등 발라드와 소몰이창법으로 무장한 가수들이었다. 위에서 설명했듯이, 당시 대중가요계의 대세는 소몰이창법[91]을 위시한 R&B발라드 열풍의 시대였다.

그러다가 2000년대 후반에 들어 2세대 아이돌을 중심으로 대중가요계가 다시 재편되기 시작했다. 이는 R&B 열풍이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서 변질되면서 R&B를 가장한 이른바 소몰이창법의 미디엄 템포 발라드를 조영수, 류재현 등 유명 작곡가들이 계속 확대재생산하는 이른바 '양산형 소몰이'가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너도 나도 비슷한 음악들이 범람하게 되면서 대중들이 쉽게 식상해졌기 때문인데 발라드로 한 시대를 풍미했으나 몇 년이 지나지 않아 급격하게 쇠퇴하게 되었는데, 천편일률적인 노래들에 대중이 염증을 느끼게 된 것이다.
또한, 2000년대 초반은 철저한 비주류에 있던 힙합 뮤지션들이 뛰어난 음악성을 기초로 본격적으로 주류 문화에 편입되기도 한 시기이기도 했다. 다만, 이때 당시의 힙합 매니아들은 아이돌 팬덤과는 물과 기름과도 같은 극단적인 대척점에 있었기 때문에, 힙합을 표방하는 아이돌 그룹은 1TYM, 디베이스 등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힙합 팬들에게는 그리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이와 같은 인식의 변화는 2010년대 Show Me The Money가 흥행한 이후에야 사그라들게 되고 지코와 같은 아이돌형 래퍼도 등장하게 되면서 한국 아이돌의 장르적 분화도 뚜렷해지게 되었다.

사실, 2000년대 중반은 일부 평론가들이 한국 대중가요계의 암흑기라고 부르면서 유독 까였던 시기[92]인지라, 그에 따라 음악적 평가가 온당하게 이루어지지 않기도 하였다. 소몰이창법 항목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지속적인 최루성 음악과 뮤직비디오의 성행으로 인해 많은 질타를 받았다.

그러나, 이 시기를 무조건 한국 대중가요계의 암흑기라고 부르는 것은 너무 극단적인 반응이다. 2007년 원더걸스빅뱅으로 인해 시작된 아이돌 전성시대 이후 또 다시 너무 오랫동안 후크송만 부르는 양산형 아이돌 mk2만 나오는 것이 반복되어버리다보니,[93] "이 시절의 가수들은 가창력도 좋았고 가사도 좋은 명곡들도 흘러넘친다!" 라고 다시 그리워하는(...) 여론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히든싱어, 슈가맨 등의 음악예능의 성공에는 과거의 노래를 그리워하는 시청자들의 반응이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 시기의 노래들이 1세대 아이돌과 1.5세대 아이돌의 팬을 자처했던 사람들과 그 아랫세대에서도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그저 추억보정 하나만으로 치부하기에는 큰 어폐가 있다. 실제로, 이 시대의 음악들은 2010년대 현재까지도 노래방 애창곡 순위에서도 최상위권으로 많이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94]

시기상으로는 80년대 중후반~90년대 초반 출생자들이 이 시기 팬덤문화에 영향을 미쳤다. 물론 시기상 큰 차이가 없는 만큼 1세대 아이돌 문화를 향유한 세대와도 팬덤 층이 겹친다. 그리고 아직도 인터넷상에서 회자되고 명맥을 잇는 태조 왕건이나 야인시대가 유행한 것이 이때 시점인데, 당시 청소년 세대였던 이들이 컨텐츠를 본격적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된 시점인 2010년대에 이 시대의 아이돌들과 위 컨텐츠들이 재조명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5. 2세대 아이돌(2004년[95] ~ 2007년)

2세대 아이돌
구분 팀명 (데뷔년도)
보이밴드 동방신기[96], TRAX (2004) 슈퍼주니어, SS501, 먼데이키즈, 파란 (2005)
빅뱅, 배틀 (2006)
FT아일랜드, 초신성, 티맥스, 타키온 (2007)
혼성그룹 익스 (2005) 타이푼 (2006), 8eight (2007)
걸그룹 천상지희 The Grace, LPG, 레드삭스, 더 빨강[97], 가비엔제이, 다미앤주니어, i-13, 퍼퓸, 카사 앤 노바 (2005)
브라운 아이드 걸스, 씨야, 키로츠 (2006)
원더걸스, 카라, 소녀시대, 블랙펄, 써니힐[98], 베이비복스 리브[99], 캣츠, 가비퀸즈 (2007)
남성 솔로 KCM (2004) 이루 (2005) 케이윌 (2007)
여성 솔로 윤하[100], 데이라이트 (2004)
아이비, 메이비, 임정희, 제시카 H.O (2005)
레이디 제인, 장리인 (2006)
손담비, 지아, 서인영, XENO, 세이 (2007)

2세대 아이돌 열풍의 시작은 2007년 하반기에 발매된 원더걸스의 <Tell Me>였다. 2007년 상반기까지 소몰이 창법을 구사하는 발라드 가수 또는 그룹이 인기를 끌고 있던 가요계에 <Tell Me>는 듣는 음악에서 보고 따라하는 음악으로의 변화의 시작점이었으며, 후크송과 포인트 안무라는 신개념 히트 요소를 가요계에 처음 창조했다. 이후 카라, 소녀시대가 잇따라 큰 인기를 끌면서, 댄스 음악이 다시 가요계의 1순위 주류로 자리잡으며 본격적인 아이돌 전성시대를 열게 된다.

이때부터 아이돌의 음악과 춤은 단연 화제가 되었으며[101], 특히 2007~2008년 가요계를 석권한 동방신기[102], SS501[103], 슈퍼주니어[104], 빅뱅[105], FT아일랜드[106], 소녀시대[107], 원더걸스[108]브라운아이드걸스[109]카라[110]는 아이돌 시장을 이끌며 단연 끝판왕으로 자리잡았다.

한편 슈퍼주니어의 경우, 데뷔는 생각보다 빠르지만 멤버들의 예능에서의 활약을 통해 롱런하고 있었다. 브라운 아이드 걸스의 경우 잘 알려져 있다시피 애초에는 보컬 그룹으로 데뷔했으나 가열차게(...) 실패한 뒤, 일렉트로닉 뮤직을 장착해 아이돌 시장에 뛰어들게 되며 대중적 호응을 얻었다. 원더걸스는 무리한 미국 진출의 후유증으로 개점휴업상태가 길었고, FT아일랜드는 아이돌보다는 음원 중심의 발라드 그룹으로 노선을 변경한 듯하다.

이 시기에 이르러 YG(빅뱅, 2NE1), SM(소녀시대,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JYP(2PM, 원더걸스)의 3강 구도가 뚜렷해졌다. 여기에 DSP (카라, SS501)도 상당한 팬덤 지분을 갖고 있었던 정도.

이 시기부터 1990년대 이후 출생자들이 팬덤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199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인터넷 환경이 완전히 본격화된 시점 이후 (2000~2002년)에 공교육을 받게 되어 인터넷 사용에 익숙하고 싸이월드와 같은 1세대 SNS가 아닌 트위터,페이스북과 같은 SNS에 좀 더 익숙한 편이다. 멜론과 같은 음원사이트로의 재편이 이미 완성된 시점에 곡을 구입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게 되어 컨텐츠의 소비 경향 또한 뚜렷한 차이를 보이게 되었다. 후크송의 유행, TV 음악프로의 영향력 감소, 1달 미만으로 극단적으로 짧아진 활동기간 등은 당시의 문화 소비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분위기는 2.5세대 아이돌에까지 이어진다.

6. 2.5세대 아이돌(2008년 ~ 2013년)

2.5세대 아이돌
구분 팀명 (데뷔년도)
보이그룹 샤이니, 2AM, 2PM, 유키스, 에이스타일, 스매쉬 (2008)
비스트, 엠블랙, SHU-I (2009)
씨엔블루, 제국의 아이들, F.CUZ, 인피니트, 틴탑, 대국남아, 레드애플, 엑스크로스 (2010)
B1A4, 블락비, 보이프렌드, 마이네임, M.I.B (2011)
B.A.P, BTOB, EXO, 울랄라세션, 빅스, JJ Project, 뉴이스트, 에이젝스, 빅스타, 크로스진, 24K, 백퍼센트 (2012)
SPEED, 방탄소년단[111], 탑독, HISTORY, 소년공화국 (2013)
걸그룹 다비치[112] (2008) 2NE1, 포미닛, 애프터스쿨, 티아라, f(x), 레인보우, 시크릿, JQT, HAM, 브랜뉴데이 (2009)
miss A, 나인뮤지스, 걸스데이, 씨스타, 걸스토리, 바닐라루시, 베베미뇽, VNT (2010)
라니아, Apink, 브레이브 걸스, 쇼콜라, 파이브돌스, 스텔라, 달샤벳, 치치, 코인잭슨, 벨라 (2011)
EXID, 스피카, AOA, 크레용팝, FIESTAR, 더 씨야, 갱키즈[113], 타이니지, 헬로비너스, 타히티, 15& (2012)
레이디스 코드, 베스티, 2EYES (2013)
혼성 그룹 남녀공학 (2010)
남성 솔로 태군[114], AJ[115], 청림[116], 서인국 (2009) 허각, 제이클리[117] (2011) 노지훈, 백청강 (2012)
여성 솔로 아이유, JOO, 문지은 (2008)
NS윤지, 김소리, 메이다니, 박봄 (2009)
현아, G.NA (2010) 한그루 (2011)
에일리, 주니엘, 이하이, 백아연, 안다 (2012)
앤씨아, 혜이니, 지헤라 (2013)


My Top 50 Kpop songs.(2008-2013)

2.5세대 아이돌의 특징이라면 그룹에 확실한 캐릭터가 있다는 점, 애초부터 일본이나 중국 등 해외 진출을 노리고 기획되었다는 점, 멤버별 파트가 보다 체계적으로 나뉘었다는 점 등이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특징은 일렉트로니카를 전면적으로 도입하며 소위 'K-POP 사운드'를 만들었다는 것. 이전까지의 아이돌 음악은 현재와 같은 일렉트로니카 중심은 아니었다.

소녀시대의 데뷔곡은 팝/락인 '다시 만난 세계'였으며, 슈퍼주니어는 SMP인 'Twins', 팝/락인 'Miracle'이었다. 카라 역시 팝/락인 'Break It'이었고, 잘 알려져 있다시피 빅뱅의 데뷔 당시 컨셉은 힙합. 그러나 재미를 못 보다가, 원더걸스의 뒤를 이어 일렉트로니카를 도입하면서 하나둘씩 대박을 내기 시작했다. 한편 이 일렉트로니카 도입에 있어서 절대 빠지지 않는 팀은 보컬그룹으로 데뷔했다가 걸그룹으로 변신한 브라운 아이드 걸스.

2000년대 후반~말기의 가요계는 아이돌이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들이 없으면 한국 가요시장 자체가 망할 정도로 이들은 불법 공유로 신음하고 있는 한국 가요계에서 특정 소비층을 가지는 가수들이다. 가온차트 기준으로 2010년 앨범 판매량 1위부터 12위까지가 전부 아이돌 가수다. 2012년 들어서도 한터차트 기준 10만 장 이상 앨범판매을 판매한 가수 8 팀(or 솔로) 중 7팀이 아이돌[118][119]이었다. 하지만 이 앨범 판매가 노래를 듣기 위해서가 아닌, 팬질의 일환으로서 단순히 소비하기 위해, 또는 아이돌의 순위를 높여서 대리만족을 얻기 위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특히 대형기획사의 경우 머친다이징, A.B.C 버전앨범 등의 상술이 점차 심해지고 있다.

여기서 음반형 아이돌과 음원형 아이돌이 갈라지게 되는데[120], 전자는 거대 팬덤을 가지고 팬덤을 통한 수익을 위주로 하는, 거의 대부분의 보이그룹들이 속하며 후자는 팬덤 기반은 미약하지만 노래를 대중들에게 널리 알리는데 주력하여 거기서 나오는 음원 수익을 주로 하는, 거의 대부분의 걸그룹들이 속한다.

허나 보이 그룹인데도 음원 성적이 좋은 그룹도 있고[121] 걸그룹인데도 음반 성적이 좋은 아이돌도 있다.[122] 아이돌의 음원 성적은 사건 사고로 인한 이미지 하락, 그룹 자체의 하락세 등등 으로 쉽게 떨어지고 한 번 궤도에서 떨어지면[123] 회복이 거의 불가능 하나 음반(팬덤) 성적은 위와 같은 이미지 하락, 하락세의 영향을 받아도 거의 떨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아이돌 중 중견 아이돌이 된 10년 이전에 데뷔한 그룹들은 전성기에 비해 떨어 졌으나 평균은 유지 하고 있는 음원 성적(포미닛) 거기에 팬덤도 갖춘 그룹(소녀시대, f(x), 동방신기, 2PM) 음원 성적도 음반 성적도 안 좋아 사실상 활동 중단인 그룹(애프터스쿨, 시크릿 등) 아직도 전성기에 필적하는(빅뱅) 등으로 나뉘어져 있다.

또한 아이돌이 범람하게 된 결정적 이유 중 하나가 한류. 동아시아권에서 한국 아이돌들이 인기를 얻기 시작하고, 이에 편승해 시장성이 넓은 중국이나 일본 등에서 수익을 얻기 위한 아이돌이 급격하게 늘어났다. 덕분에 명백하게 국내의 아이돌 수요(?)에 비해서 공급과잉이 된 상황. 동아시아권에서 '한국의 인기 아이돌'이라는 타이틀로 활동하고 있는 몇몇 아이돌 그룹들을 보고 있자면 정작 한국에서는 듣도보도 못한 인지도 바닥의 아이돌 그룹인 경우도 꽤나 있을 정도다.

나이 많은 남성팬, 일명 '삼촌팬'들이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여성 아이돌들의 선정적인 의상/안무 등이 늘어난 것도 이 시기의 특징이다. 남성 아이돌 역시 나이 많은 여성팬들의 인기를 끌기 위해 짐승돌이니 뭐니하면서 노출이 많이 늘어난 편. 이 탓에 선정성 논란도 많이 불거졌다. 이러한 아이돌들의 나이가 대체적으로 어린 것이 가장 큰 문제.

그나마 TV쇼에서는 규제로 인해 많이 점잖은(?) 편이지만, 규제를 받지 않는 행사에서는 기본이 쫄티, 초미니스커트, 핫팬츠, 이런 식이다. 몇몇 아이돌들이 도끼자국 노출(?) 등으로 화제가 되고 인터넷에 도끼자국 사진이 돌며 유명세를 타게 된 이후로는 이것도 홍보전략이 되어 의도적으로 도끼자국이 잘 보이도록 꽉끼는 옷을 입고 하반신을 강조하는 춤을 추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덕분에 직캠이라고 검색해서 나오는 물건들은 막말로 란제리쇼같은 느낌이 대부분(…)이다.

뮤직뱅크등의 TV 음악방송 1위를 기준으로 유망 아이돌과 듣보 아이돌 등으로 나뉘기도 하는데. 과거에는 음반 점수로 1위가 가능했기 때문에 음반형 아이돌이 유리했다. 그래서인지 비록 아이돌이 꽉 잡은 음악시장이라고는 하지만 종종 아티스트들이 앨범판매 덕에 1위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예를 들어 2008년 넬의 기억을 걷는 시간.

본업인 가수 이외에 연기나 예능 프로그램으로도 활발히 진출하고 있으며, 한편으로 외모와 연예인적인 요소의 중요성이 강화되어 가고 있다. 이 때문에 오히려 가수에게 중요한 요소들은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고, 아이돌에게 제대로 된 가수 자격이 있느냐는 논란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도 그럴게 카우치 사건 이후로 실력파 가수들은 완전히 사장되고 갈려버려서 경쟁자가 같은 아이돌 밖에 안남았으니 가창력보다 외모가 훨씬 더 중요해질 수 밖에 없게 된것이다.


KPOP TOP 30 september 2013년.(week 1)

해외시장 진출의 교두보로 유튜브와 같은 UCC의 발전도 한 몫하고 있다. 동방신기 시절 오로지 일본 활동 자체만으로 인지도를 쌓았던 것과 달리, 이러한 UCC의 발달을 기반으로 카라소녀시대일본에서 인지도를 얻고 오리콘 위클리 차트 1위를 달성한 것이 대표적인 성과라 할 수 있다. 국내 언론이 "점령했다"라는 식으로 자극적인 표현을 쓰며 과장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실제로 한국 아이돌들이 세계 시장에서 신선하게 다가오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편견에 휩쓸려 무조건 노래 못한다고 까지만(...) 그래도 (해외 아이돌들에 비하면) 한국 아이돌들의 실력은 상당히 인정받고 있다.

현지화가 대세였던 BoA동방신기 시절과 구분하여 최근 아이돌 그룹의 해외진출 열풍은 일본에서 "신한류"로 부르며 이전까지의 한류와 구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2011년 기준 성공적으로 일본에 입지를 쌓은 한국 아이돌은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카라, 빅뱅[124], 소녀시대, 샤이니 정도 뿐이며, 2012년 들어서는 2PM, 인피니트가 여기에 합세한 정도다.

여러 방송사에서 우후죽순으로 한류라는 미명하에 해외에서 K-POP 콘서트를 개최하고 있고[125] 실질적인 성과에는 거품이 끼어있다는 비판도 계속 제기되고 있지만, 2018년 기준으로, 현재 아이돌 판에서 해외진출을 못하고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아이돌 가수들은 이른바 1군 취급을 안 해주는 것도 현실이다.

앞으로도 아이돌 음악이 잠시 쇠퇴하는 시기가 있을 순 있으나, 아이돌의 인기는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MTV의 등장 이래로 어디든지 비주얼을 내세우는 가수들은 항상 존재했었다. 요태까지 그래와꼬, 아패로도 계속.

한국 한정으로 아이돌의 "아이"(I)를 "어린 아이들"할때 "아이"로 알아듣는 경우도 있는데 이 점을 이용해 '어른돌' 등의 농담이 나오기도 한다. 가끔 나이는 30대 이상인데 아이돌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는, 혹은 아이돌 포지션으로 활동하는 연예인을 농담삼아서 이렇게 부른다. 2011년부터는 △△돌 하는 식으로 특징에 접미사를 붙이는 식으로 쓰이고 있다. 드라마에 출연하면 연기돌, 예능활동이 활발하면 예능돌같은 수식어로 부른다.

2,5세대가 끝나 가는 시점에 데뷔하였지만 3세대와 함께 스타덤에 올라서 3세대 취급을 받는 아이돌들도 있다.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2010년대 후반 들어 대한민국 최고의 아이돌로 군림하고 있는 방탄소년단

2.5세대의 막바지에는 싸이강남스타일이 예상치 못한 흥행 잿팟을 터트렸는데, 그 원동력이 유튜브에 있었던 것으로 분석되자, 이후 아이돌 산업에서 유튜브를 이용한 홍보가 본격화되었다. 또한 국적을 초월하고 싸이의 음악에 열광하는 성공 사례가 나타나자, 후발 그룹들도 보다 더 넓게 K-PoP을 알리려는 시도를 하고, 그를 위해 외국인 멤버를 더 적극적으로 데뷔시키게 된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행한 연도가 2012~2013년이고, 3세대로 구분되는 시기가 대략 2013년을 기점으로 나뉘니 강남스타일의 메가 히트는 간접적으로나마 아이돌 세대의 분화에 영향을 미쳤다고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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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3세대 아이돌(2013년 ~ 2018년)

3세대 아이돌
구분 팀명 (데뷔년도)
보이그룹 GOT7, WINNER, JJCC, 전설, B.I.G, 빅플로, 매드타운, 핫샷, HIGH4 (2014)
iKON, 세븐틴, 몬스타엑스, 로미오, DAY6, 업텐션, N.Flying, 빅브레인, 멜로망스 (2015)
아스트로, 임팩트, 크나큰, NCT, SF9, 펜타곤, VICTON, 브로맨스 (2016)
바시티, 세븐어클락, 블랙식스, MVP, 골든차일드, 온앤오프, Wanna One, TRCNG, JBJ, RAINZ, IN2IT, 더보이즈 (2017)
타겟, Stray Kids, UNB, 느와르, 스펙트럼, ATEEZ, JBJ95 (2018)
걸그룹 마마무, 배드키즈, 포엘, 레드벨벳, 러블리즈, 소나무, 라붐, 멜로디데이, 베리굿 (2014)
CLC, 여자친구, 마이비, 플레이백, 오마이걸, DIA, APRIL, TWICE, 디아크 (2015)
우주소녀, 마틸다, 볼빨간사춘기, I.O.I, 믹스, 구구단, BLACKPINK, I.B.I, 리얼걸 프로젝트, 모모랜드 (2016)
보너스베이비, 드림캐쳐, 프리스틴, 립버블, ELRIS, 그레이시, 위키미키, 굿데이, 버스터즈 (2017)
fromis_9, UNI.T, (여자)아이들, 네이처, 이달의 소녀, 공원소녀, IZ*ONE, 드림노트 (2018)
혼성그룹 악동뮤지션, 신현희와 김루트 (2014)
KARD (2017)
남성 솔로 로이킴, 유승우, 정준영, 에릭남 (2013)
에디킴 (2014)
정승환, MC그리, 장문복 (2016)
사무엘, 정세운 (2017)
김동한 (2018)
여성 솔로 선미, CL, 효린 (2013)
샤넌, 박보람, 권진아, 헤이즈, 레이나 (2014)
박지민, 태연, 백예린 (2015)
정은지 (2016)
청하, 크리샤 츄, 전소연, 김소희 (2017)
유빈 (2018)

2012년 당시에는 나는 가수다, 불후의 명곡 2같은 가요 서바이벌이나 슈퍼스타K, 위대한 탄생, 케이팝스타같은 오디션 프로그램 열풍이 2011년까지 승승장구하다가 식어버리기 시작하면서 反아이돌 성향이 대두되었는데 안 그래도 레드오션으로 고착화한 아이돌 시장에 또다른 문제점이 나타났으니 소속 기획사들에게 있어서 새로운 경쟁력으로 수익 모델과 음악성을 비롯한 가창력이 요구될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 그랬기 때문에 해외에서 유행했던 음악적인 기법을 국내에서 너도나도 사용되었는데 이것이 그들이 가요 시장에서 생존하기 위한 새로운 대안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성향이 너무 빨리 퍼졌고 그건 그것대로 문제인 데다가, 세계구급 강적이 나타나서 대중가요계를 잠식해버렸으니...

세대의 구분이 의미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으로 흘러가던 도중 뜬금없는 EXO의 첫 정규 앨범을 기점으로 3세대의 막이 열리기 시작한다. EXO는 데뷔 처음부터 한국과 중국 시장을 동시에 공략하기 위해 기획된 만큼 이전까지의 아이돌과는 약간 다른 홍보 방식을 보이는데, 덕분에 정작 데뷔한 해인 2012년에는 그다지 주목 받지 못했다. 여태까지의 한국 아이돌들과 차별화된 기획을 선보였기 때문. 그러다가 EXO가 정식 데뷔 1년여만에 정규 1집 앨범 '늑대와 미녀'를 시작으로 갑자기 주목받게 되고, 급기야 히트곡 '으르렁'으로 전 세대의 팬을 쓸어 모으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3세대 남자아이돌의 전투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대응해서 샤이니2PM이 비슷한 시기에 데뷔했듯이 JYP 엔터테인먼트에서 GOT7을, YG엔터테인먼트에서 WINNER를 출격시키게 된다.

걸그룹의 경우, 2013년까지는 그 당시 신인 걸그룹이었던 레이디스 코드를 제외하면 대부분 기존 2세대 걸그룹 활동이 주류였다가 2014년 8월. SM엔터테인먼트에서 f(x)이후 5년만에 걸그룹 레드벨벳을 내놓았다. 얼마 뒤 JYP에서도 SIXTEEN 서바이벌 프로를 열어 트와이스 멤버를 선발했으며, YG엔터테인먼트 걸그룹도 4년째 데뷔준비를 하다가 2016년에야 블랙핑크를 데뷔시켰다. 큐브에서도 포미닛이후 다음 세대를 준비할 걸그룹 CLC가 2015년 초 데뷔했으며, 그외에도 2010~2011년경 2세대 아이돌로 흥한 소속사들이 2014년 후반 - 2015년을 기점으로 신인 걸그룹을 속속 데뷔시키면서 걸그룹들이 대거 등장했다.

한편 이처럼 걸그룹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게 되자 2010년대 중반부터는 걸그룹들이 음원차트에서 하락세를 보이게 되었다. 2015년 가온 연간 최종순위에선 10위 내에 걸그룹 노래가 안보였을 정도. 이는 ‘앞으로 나올 3세대 걸그룹들이 원더걸스 또는 소녀시대만큼의 커리어를 뽑아내지 못할 경우, 걸그룹 침체기가 다시 시작될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걸그룹이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오다보니 곡 제작자와 안무가의 풀이 거의 말라버린 상황이라는 모양.[126] 덕분에 걸그룹들은 데뷔를 앞두고 받는 노래와 안무만 보고서 성공과 실패를 판가름할 수 있는 지경이라고 한다. 다만 아직도 대다수의 기획사들이 걸그룹의 혁신과 방향성을 모색하는 만큼 마마무, 레드벨벳, 여자친구, TWICE 등등의 신세대 걸그룹도 롱런 노래들을 뽑아내는 등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앞으로 이루어질 걸그룹들의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레드벨벳이 14~15년 3세대 아이돌 기근현상 속에서도 음악방송 1위를 차지해내며 맥을 잇고 있던 상황에서 2016년 그야말로 걸그룹계의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면서 한동안 허덕였던 걸그룹계가 활기가 돋는 동시에 음원시장에서의 대중성도 다시금 찾아가고 있다. 먼저 여자친구가 '시간을 달려서'로 대박을 쳤으며, 이어서 7월에 나온 정규앨범 '너 그리고 나' 역시 큰 사랑을 받았다. 마마무도 '넌 is 뭔들' 로 데뷔 첫 1위를 차지했으며, 그 해 연말에 나온 '데칼코마니' 가 뒤늦게 역주행을 하면서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레드벨벳도 '7월 7일', '러시안 룰렛' 등을 통해 1위를 지속적으로 차지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며, YG에서 드디어 내보낸 새 걸그룹 BLACKPINK도 데뷔곡 '휘파람' 을 통해 데뷔 2주일 만에 지상파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해내기도 했다. 이후에 나온 '불장난' 도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특히 TWICE의 'CHEER UP' 은 연간 1위곡이 되었고, 이어서 발표된 'TT' 역시 'CHEER UP'을 넘어서는 기록을 보이고 있다. 음원뿐만 아니라 음반 판매량, 뮤직비디오 조회수까지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소녀시대의 뒤를 잇는 새로운 걸그룹 아이콘으로 등장한 상황. 또한 프로듀스 101을 통해 선발된 연습생들로 구성된 프로젝트 그룹 I.O.I도 막강한 팬덤을 자랑했다. 이와 같은 신진급 걸그룹들의 활약으로 인해 기존 걸그룹들은 상대적으로 하향세를 걷는 편이었다.

이처럼 3세대 아이돌의 경우 2016년에는 걸그룹이 보이그룹을 압도하는 한 해였다. 마마무, 레드벨벳, 여자친구, TWICE, I.O.I, BLACKPINK 등의 그룹들이 매섭게 달려나가고 있으며, 결국 2016년을 결산하는 시상식 및 각종 음원 차트는 3세대 걸그룹들이 휩쓸게 되었다.[127] 이에 비해 3세대 남자아이돌은 주춤하는 중이다. 그나마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에서 내보낸 세븐틴이 2016년에 20만장의 음반판매고를 올리며 EXO방탄소년단을 잇는 차세대 남자아이돌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방탄소년단의 경우 EXO와 맞먹는 음반판매량을 기록하면서 중소기획사 출신 가수로는 오랜만에 연말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다만 2016년 3세대 여자 아이돌의 대세행진은 특정 가수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측면이 있으며 과거 여자아이돌이 대거 활약했던 시절에 비하면 양극화의 경향이 있다.[128] 따라서 차후에 신진 걸그룹들과 기존의 걸그룹들이 어떤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따라서 보다 장기적인 걸그룹 경쟁구도의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2017년프로듀스 101 시즌2를 통해 데뷔한 Wanna One프듀2때만 해도 다들 망할 거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데뷔와 동시에 대박을 터뜨리며 단숨에 최정상 아이돌이 되었다. 또한 방탄소년단저스틴 비버, 아리아나 그란데 등의 쟁쟁한 후보를 꺾고 빌보드에서 탑 소셜 아티스트 상을 수상하고 미국에 데뷔를 함으로써 세계적인 인기를 보여주었다. 한편 걸그룹 쪽에서는 해체된 I.O.I 멤버의 일부가 DIA, 구구단, 우주소녀, 프리스틴, 위키미키로 데뷔했고 괜찮은 성적을 거두고 있지만 DIA는 성공했다고 하기에는 애매하다. 오히려 '망했다'고 봐야 할 수준.[129] 2017년에도 2016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TWICE, 레드벨벳, BLACKPINK, 여자친구, 마마무 등의 걸그룹이 인기를 끌었다. TWICE는 6월 30일에 일본에 데뷔하여 1년 간 일본 활동곡을 포함하여 무려 5곡[130]를 발표하며 높은 인기를 이어갔다.

2017년 말, MBC 가요대제전에 나온 빅스가 이목을 끌게 되면서 네이버TV 차트 100만뷰, 200만뷰를 달성, 네이버TV 역주행을 하며[131] 화제의 도원경 리믹스 버전 외에도 'love me do', 'The closer'가 차트 상위권에 올랐다. 결국 남자아이돌 최초 음악방송 강제소환을 이뤄내며 IOC 총회 개막식에도 오르는 이례적인 기록을 세웠다.

2018년에는 iKON이 1~2월 음원차트에서 장기집권하면서 순위를 이끌고 있다. 또한 논란이 있긴 하지만 모모랜드도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상황이다. 또, 5월에는 방탄소년단의 FAKE LOVEIDOL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몰았다. 모처럼 새로운 아이돌 그룹들이 활약을 하고 있는 상황.

2018년 말 프로듀스 48을 통해 IZ*ONE이 데뷔하면서 상당한 데뷔 성적을 기록했다.

3세대 아이돌에 들어서 가장 주목할만한 흐름은 유튜브를 통한 홍보의 완전한 정착, 교포 출신이 아닌 아예 국적이 한국이 아닌 멤버를 둔 다국적 그룹의 성공적 안착, 아시아권을 뛰어넘은 다른 대륙에까지 팬덤을 형성하는 사례의 증가, 프로듀스 101 기획의 연달은 성공에 따른 성장형 아이돌의 유행을 들 수 있다. 3세대 아이돌의 팬덤을 형성하는 주류 세대는 이제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생에까지 확장되고 있으며 사실상 2019년 현재 진행형인 아이돌 형태라고 봐도 무방하다.

3세대에 들어서 CJ E&M이 직접 아이돌을 제작&관리하려는 시도가 눈에 띄게 보이고 있다. 소년24를 통해 데뷔한 IN2IT은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지만 아이돌학교를 통해 데뷔한 fromis_9은 미세하지만 음원, 음반 양쪽에서 계속 성장 중이다. 그 외에도 기존의 아이오아이와 워너원은 YMC엔터테인먼트에 관리를 위탁했던 것과 달리[132] 아이즈원은 CJ E&M 산하 스톤뮤직의 자회사인 오프더레코드 엔터테인먼트가 관리하는데다 계약 기간도 1년 이상 늘어나는 등 CJ가 이제부턴 프듀 데뷔조마저도 직접 관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심지어 2019년 5월부터 방영될 프로듀스 X 101의 데뷔조는 계약 기간이 5년으로 결정되었다. 지난 세 시즌 데뷔조의 계약기간을 전부 합친 것보다도 긴 활동 기간.

8. 3.5세대 아이돌(2019년 ~ 현재)

3.5세대 아이돌
구분 팀명 (데뷔년도)
보이그룹 ONEUS, VERIVERY, 트레이, 투모로우바이투게더, 원더나인, 우석X관린, AB6IX, X1 (2019)
걸그룹 체리블렛, ITZY, 에버글로우, 밴디트, Ho1iday (2019)
혼성그룹
남성 솔로 윤지성, 하성운, 박지훈 (2019)
여성 솔로 로시, 전소미, LANA (2019)

2019년부터는 기존 3세대 아이돌을 히트시켰던 소속사에서 후속 그룹을 속속 데뷔시키고 있는데, TWICE를 히트시켰던 JYP의 ITZY, 방탄소년단을 히트시켰던 빅히트의 TXT가 대표적이다. 두 그룹 모두 데뷔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기대치였던 성적을 모두 만족시키며[133] 언론 및 대중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팬덤을 확보하는 계기를 얻는 등 성공적인 데뷔를 해냈다.
남자 솔로 부문에서는 거대 보이그룹이었던 Wanna One이 해체하고 그 멤버들 일부가 솔로로 혹은 유닛으로 데뷔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프로듀스 X 101이 시작되면서 방영 전부터 비드라마 부분 화제성 1위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동시에 데뷔조가 초대형 보이그룹이었던 선배 그룹 Wanna One을 이어서 다시금 성공 신화를 쓸 수 있을지 주목을 받고 있다.

9. 세대 구분의 모호성

  • 아이돌이란 태생부터 미디어환경(라디오, TV, 인터넷 등)에 따라 변화해왔으므로, 어떤 매체를 통해 비추어지고 인기를 얻었는가를 우선으로 해야한다. 특히 레드벨벳, 여자친구 등의 세대는 개인 인터넷방송이라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방식을 통해 팬들과 양방향으로 소통하고 홍보를 하면서 인기를 끌고있다. 또한 십여년전 일본 인기아이돌들이 '칸무리'라는 단독 예능방송을 했었듯이, 그룹이름을 걸고 단독출연하는 리얼리티예능을 거의 보편적으로 하고 있다는점 또한 이전과 크게 다른점이다. 예능쇼의 1회 게스트에 불과했던 시절에서, 이젠 아이돌에 의한 아이돌을 위한 방송이 만들어지게 된것이다. (이런 아이돌방송은 아이돌산업의 위상과 규모가 커지기전엔 불가능하다.)
  • 해외진출계획이 아닌 실제 해외활동과 실적을 기준으로 삼아야한다. 계획이야 누가 못세우겠느냐만은, 요즘 최정상 아이돌은 실제로 국내보다 해외에서의 수익이 클 정도로 아시아를 중심으로 큰 인기를 얻고있다. 여기서 중요한건 이러한 시장구조로 인해 아이돌의 음악과 퍼포먼스 등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는점이다. 앨범의 수록곡은 해외 지향을 넘어서 아예 외국인 작곡가와 협력하는경우가 많아졌고 퍼포먼스 또한 기존 국내 안무,연기,컨셉과 다르게 다소 이질적으로 바뀌어가고있다.
  • 사실 1세대와 2세대를 특별한 기준을 긋지않아도 명백히 구분할수 있는것은 1세대 아이돌의 시스템이 너무나도 후진적이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제대로된 계약서가 존재하질 않았고 수입분배도 불투명할뿐더러 육성 또한 비효율적이고 열악했다. (그냥 굶기고 굴렸다, 몇몇은 맞아가며 연습을 했다고 십여년후 밝히기도 했다.) 오랜 시간 연습생으로 지내며 보컬,춤,화술을 기본은 준비해 데뷔하는 2세대와는 크게 다른점이라고 할수있다. 역으로 이런 1세대가 있었기에 체계적인 육성 시스템이 만들어진것일까... 또한 사회전반의 분위기가 경직되어 있었기에 자유로운 행동, 발언, 치장(염색, 노출) 또한 불가능했던 시절이었다. 유닛활동 또한 불가능했고 예능이나 드라마에 단독으로 출연하는것 또한 불가능, 이성그룹과 버라이어티쇼에서 만나는것도 있을수 없었던 일.
  • 2세대와 3세대는 거의 구분도 안 될 뿐더러, 굳이 구분할 필요도 없지 않은가? 3세대 아이돌의 특징이 멤버별 확실한 캐릭터 설정, 애초부터 해외 진출기획, 멤버별 파트배분의 체계성. 일렉트로니카라고 서술되어있지만, 그 모든 특징을 2세대 아이돌이 갖추고 있다는게 문제다. 심지어 해외진출 기획은 1세대부터 이미 있어왔던 것이었다. 일렉트로니카 또한 트렌드 였을뿐이어서 2,3세대 아이돌 대부분이 거쳐갔던 장르 중 하나일뿐이다. 애초에 4~5년 주기로 세대를 구분하는 분야가 자동차를 제외하면 있긴 하는건가? 우리는 기획사와 언론에 의해 생각이 지배되어가고 있는건 아닌지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비판적이고 능동적인 사고를 할 필요가 있다. 기존그룹과 차별성을 두어 그룹의 존재감을 명확히 하려는 기획사와, 자극적이고 눈에띄는 단어를 사용하려는 언론사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서 이젠 5세대 아이돌이 탄생했다는 설레발스러운 기사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 세대(世代)의 사전적인 의미를 되새기자.

9.1. 의견을 반영한 세대구분

(추가 특징 서술바람.)
  • 1세대 (1990년대까지)
    • 특성 : 단방향 소통, 팬덤 문화탄생
    • 주 활동 플랫폼 : 텔레비전, 라디오, 전화
    • 주 수입원 : 음반
    • 해당 그룹 : H.O.T., 젝스키스, SES, 핑클 등
  • 2세대 (2000년대)
  • 3세대 (2010년대 이후)
    • 특성 : 단독 버라이어티 보편화, 연습생의 미디어출연, 데뷔 초부터 해외팬들의 주목(2세대 덕분), 직캠, 안무영상, MR제거의 활성화
    • 주 활동 플랫폼 : 스마트폰을 비롯한 모바일 플랫폼[141]
    • 주 수입원 : 음원,광고
    • 해당 그룹 : EXO, 방탄소년단, 세븐틴, 워너원, 트와이스, 레드벨벳, 블랙핑크, 여자친구, 마마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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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골든디스크, 서울가요대상, 엠넷아시안뮤직어워드, 멜론뮤직어워드[2] 골든디스크 본상, 서울가요대상 본상, 엠넷아시안뮤직어워드 남녀그룹상/가수상, 멜론뮤직어워드 TOP10[3] 골든디스크, 서울가요대상, 엠넷아시안뮤직어워드, 멜론뮤직어워드[4] 골든디스크 본상, 서울가요대상 본상, 엠넷아시안뮤직어워드 남녀그룹상/가수상, 멜론뮤직어워드 TOP10[5] ZAM의 조진수가 이 그룹으로 데뷔했었다.[] [7] 드렁큰타이거가 본격적으로 유명세를 탄 때는 1999년 1집 정규 앨범 이후부터다.[8] 1993년 처음으로 언론에 걸그룹으로 소개된 중앙대학교 연극영학과 4학년생들이 만든 칼라라는 걸그룹으로 1993년 강변가요제에서 "후회하고 있는거야" 라는 데뷔곡으로 대상을 받았다. 칼라는 당시 걸그룹이라 불렀지만 지금에 와서 보면 빅마마같은 보컬 그룹이라 할수있기때문에 춤추고 노래하는 아이돌형태의 최초 걸그룹은 애플(아이돌)이 시조새라 할수있다. 대중가요계 걸그룹 선풍여성그룹 가요계 새바람[9] 배우 이혜영이 '로미'라는 이름으로 데뷔했었다. 해체 이후로는 윤현숙과 같이 여성 듀오 '코코'에서도 활동했다.[10] 1994년에 데뷔를 했지만, 당시 음악적 스타일은 어설픈 힙합 스타일로 완전 딴판이었던데다 여자 멤버 또한 당시에는 유리가 아닌 유채영이었다. 그리고, 유채영이 쿨에서 탈퇴를 하고 1995년 그룹 US에서 활동했으며, 나중에 솔로로 다시 데뷔한다. 그리고, 영입된 유리가 활동하는 시점인 1996년부터 지금의 쿨의 음악적 이미지를 갖췄고, 1세대 아이돌 시대부터 큰 인기를 얻으면서 활동했다.[11] 유채영이 쿨을 탈퇴하고 혼성그룹으로 활동했던 그룹이다.[12] 김준희, 원투 오창훈이 당시 활동했던 혼성듀오.[13] 전 세대에 걸쳐서 사랑받는 국민가수였지만, 한편으로는 1980년대 시절에 최대 규모로 수많은 10대 팬들을 거느렸던 아이돌이었으며 팬클럽도 있었다[14] 물론, 음악활동은 미8군 무대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한게 시작이며, 이미 1979년 이전에 자신의 이름으로 몇개의 앨범을 내서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는 히트곡을 남겼지만, 공식적으로는 <창밖의 여자>가 나온 1979년을 데뷔년도로 친다.[15] 김승진과 박혜성은 1980년대 여학생들의 우상으로 군림했으며, 남성 솔로 "하이틴 스타"의 원조격으로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었다. (물론, 남진나훈아가 라이벌 구도이긴 했지만...) 영화 품행제로에서도 "이 둘 중에 누가 더 멋있냐?"라면서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16] 못 믿겠지만 무한궤도 때와 솔로활동을 할 때만 해도 아이돌 포지션에 가까웠다. 물론 신해철 본인은 이 시절을[17] 한창 절정의 인기를 자랑하던 시기에는 사실상 아이돌로 봐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10대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자랑했었고, 당시의 1990년대 대학생들 사이에서도 인기도 장난아니었던 시기였다.[18] 실질적인 음악활동은 1987~88년부터. 작곡가▶아이돌(...) 루트를 탄 거의 유일무이한 케이스다.[19] 김민종은 가수 데뷔 이전부터 탤런트로 유명했지만, 발라드 가수로도 같이 활동했으며 히트곡도 많이 남겼다. 발라드 장르로서는 신승훈이나 이승환 정도는 아니지만 가수로서도 존재감이 컸고 가요계에 큰 족적을 남겼던 케이스다.[20] 박진영은 데뷔 컨셉부터 현재까지 10대보다 노골적으로 20대 이상을 타겟으로 노렸다.[21] 1997년 가을, 김경호는 2집 후속곡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다만, 김경호는 아이돌적인 요소보다 아티스트적인 면이 강했다.[22] 1995년, 1집 앨범 "이미 나에게로" 타이틀곡으로 데뷔를 했지만, 실질적인 메가 히트곡의 시대는 스티브 유H.O.T, 그리고 발라드의 황태자 조성모가 활약했던 시기가 겹친다. 물론, 임창정은 아이돌 컨셉이 아니라 이미 영화배우로 유명했으며 만능 엔터테이너로 데뷔를 했지만 10대 소년들을 비롯한 소녀팬들도 정말 많았었다. 1세대 아이돌이 피터지게 경쟁하던 시절이었던 1997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3집 앨범의 '그때 또 다시'가 가요톱10에서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여 상반기 골든컵을 거머쥐게 되고, 하반기에 '결혼해줘'로 다시 한 번 골든컵을 타게 되면서 한 해에 단일 앨범의 수록곡들로 골든컵을 두 번씩이나 수상하는 진기록을 달성하게 된다. 그리고 1997년 KBS 가요대상을 거머쥔다. 실제로 1위곡을 두번 연속으로 차지한 골든컵의 기록을 보유한 가수들로는 임창정 이외에 조용필, 박남정, 김민우, 변진섭, 서태지와 아이들 등이 있다.[23] 벌써 이 밤이 다 지나고를 부른 여고생 가수였다.[24] 물론, 엄정화는 1993년에 이미 가수로 데뷔를 했었고, 이미 탤런트나 영화배우 활동으로 잘 알려져 있었지만 가수로 활약했던 리즈 시절 히트곡의 시대는 1990년대 중후반이었다. 그 유명한 1997년 3집의 배반의 장미, 4집의 포이즌부터 5집의 몰라, 페스티벌 등으로 연달아 히트곡을 냈다. 오히려 다나, 하늘같은 아이돌 가수보다 실질적인 여자 싱글 가수로서 톱을 차지했던 가수는 역시 엄정화, 김현정, 박지윤, 이정현, 백지영, 채정안이었다.[25] 1994년 1집 LEE YE RIN을 통해 가수로 데뷔했다. 당시는 아이돌적인 컨셉도 있었고 타겟을 10대보다는 20대 이상을 노렸다. 이 당시는 청순녀 컨셉으로 발랄한 미드 템포의 포크 곡 '포플러 나무 아래'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그냥 반응만 있었을 뿐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리고 1996년 2집 때 머리를 숏컷으로 자르고 컨셉을 섹시 노선으로 변경한 뒤 발표한 2집 Impression의 타이틀곡 '늘 지금처럼'이 대박이 터졌다. 노래 자체도 좋았지만 이예린의 골반 댄스가 제대로 먹혔었다. 대한민국 여가수의 섹시 컨셉 전환의 대표적 성공사례다. 3집 용서, 4집 변심등의 댄스곡으로 인기를 끌었고 2003년까지 활동하다가 소속사 문제 등으로 오랫동안 공백기를 가졌다. 2007년에 싱글을 발표했지만, 2008년에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 재즈를 공부했다. 2011년에 귀국한 후에는 트로트 가수로 전향한다.[26] 물론, 홍일점 윤현숙이 있었지만..[27] 1970년대 후반 디스코 열풍이 저물면서 이를 대체할 뉴에이지 등 다양한 장르가 등장했다. 특히 해당시기 MTV의 등장으로 영미권에서도 비주얼이 중심이 된 아이돌 음악이 융성하기 시작했다. video kills the radio star[28] touch by touch의 조이, atlantis is calling의 모던 토킹, bambina의 데이비드 라임. 영미권에서는 전혀 인지도가 없으며 유럽 일부지역에서만 인기였었다. 물론 유로댄스는 80년대 전반 국내에서 대유행했다. words의 F.R. 데이비드, I like chopin의 가제보 등.[29] 노래 가사 전체가 그렇지만, 특히 도입부와 후렴구인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그냥 나에게 맡겨 주세요 내 인생은 나의 것 내 인생은 나의 것 나는 모든 것 책임질 수 있어요"에 주제가 압축되어 있다. 이 노래는 원래 김현준과 같이 부른 듀엣곡이었으나 민해경이 스캔들 때문에 잠시 국내 활동을 중단했고 김현준이 가요계를 떠나면서 사실상 민해경의 솔로곡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30] 대표적으로,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와 친구들이 수학여행을 가는 길에 기차와 버스 안에서 영미권의 영향력이 컸던 시대에 맞는 팝송을 부르고 경쾌한 댄스 곡에 맞춰서 춤을 추는 장기자랑을 하는 것이 당시의 상황에 맞는 고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386세대 중에서 춤 좀 춘다는 사람들은 마이클 잭슨문워크 흉내내보지 않은 사람 거의 없었다.[31] 물론, 락의 역사는 1980년대 이전에도 있었지만 대대적으로 정부의 탄압을 당했던 암흑기였다.[32] 이게 코메디인게, 서정적인 샹송 정도나 어울린다고 생각한 프랑스어 노래도 국내에서 프랑스어로 된 랩 음악인 debut de soiree의 nuit de folie가 이미 80년대 후반 클럽에서 대 유행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일본어로 된 랩이 있는 쿠보다 토시노부의 TIMEシャワーに射たれて도 국내에서 암암리에 유행했었다. 당대 프로듀서들이 뭘 몰라도 너무 몰랐던가, 아니면 높은 사람들의 검열을 뚫을 수 없어 에둘러서 말했던 것이다.[33] 이 부분은 약간 후대에서 뭘 모르고 멋대로 얘기하는 경향이 있다. 80년대는 비교적 여러 장르의 음악이 유행했지만, 대부분의 가수들은 옛날 경향대로 아름다운 노랫말을 또렷하게 부르는 경향이 있었다. 시나위나 들국화 같은 80년대 중반의 일부 락스타들이 이상한 발음을 활용하긴 했지만 대중음악 전체로 볼 때 상당히 예외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79년에 데뷔한 송골매의 경우만 해도 구창모나 배철수 모두 상당히 또렷한 발음을 구사했고, 여타 대중가요나 변진섭이 날아다니던 발라드, 마지막 맹위를 떨치던 민중가요 등과 비교하면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인 것이다. 서태지가 랩을 하려고 괜히 몇 달간 골방에 처박혀 사식처럼 들여다주는 밥먹으며 연구했던 것이 아니다. 프랑스어는 당연히 영어랑 훨씬 비슷한 언어고, 일본어는 평탄어가 아니라 억양이 분명히 있다. 난 알아요의 랩은 잘 들어보면 한국말이면서도 약간 교포처럼 억양이 희한, 혹은 뚜렷한 것을 알 수 있다. 서태지에 뒤이어 나온 거목인 듀스만 해도 억양 자체는 대단히 평탄해서 마치 나레이션을 방불케 하지만, 초보적인 각운이 있고 평탄하나마 가사가 리듬에 딱딱 맞춰가거나 괜찮게 엇박을 타는 부분도 있어서 랩이 성립된다. H.O.T.나 젝스키스의 랩도 들어 보면 노래 못하는 70년대 출생자 멤버를 대강 랩으로 돌린 것이기 때문에 그나마 외국물 좀 먹어본 은지원 빼면 가관도 아니다. 무한도전에서 이재진이 랩을 바비 킴이 짜줬다고 고백해 주는 바람에 대강 바비 킴의 원형이 어떤 모습이었을까 상상할 수 있게 되긴 했지만, 어쨌든 한국어로 랩을 못한다고 하는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평론가들이 괜히 했던 얘기가 아니라는 것이다.[34] NKOB1990년대에 국내에서 대유행을 했으며 이 여파로 1992년 내한공연까지 했다. 참고로 국내 엔터사가 공연장 관리를 개판으로 해서 관객 중 사망자가 나왔다. 당연 당시 주류 언론에서는 공연장 관리 이야기 보다는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공연장에 드나드는 10대들이 이상하다같은 뉘앙스의 언론보도가 대부분이였다. 지금 와서 보면 대중문화의 발전이니 뭐니 하지만 사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얘기다. 도시에서 자란 친구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하는 것이 이 시대 청소년들이고, 부모 세대는 대부분 시골에서 자랐고 서울도 일부를 제외하면 뭐 대단히 번화하진 않았다. 당시의 부모 세대는 공동체 문화를 위주로 열심히 일해서 잘 살기 시작했고 더욱 나라를 잘 살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고 형누나 세대는 옳은 가치인 민주화와 독재 타도에 한 몸 바쳤으니, 대중가수 꽁무니나 쫓아다니는 이 세대 청소년들이 얼마나 한심하게 보일지도 이해할 만하다. 반면에 이 시대의 청소년들이야말로 본격적인 서구인, 도시인, 대한민국의 시민이다.[35] 여담으로, 서태지와 아이들은 드림콘서트에서 3층 센터석을 당대 최고 가수들의 팬클럽만 앉을 수 있는 자리로 만들어버린 가수이기도 했다. 사실은 3층 센터석이라고 해서 별로 특별한 것은 없었는데, 1995년 1회 드림콘서트의 참가 가수 중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의 리더 서태지"공식 팬클럽 같은거 인정하면, 공식 팬클럽이 아닌 사람은 팬도 아니란거냐?" 라는 말과 함께 공식 팬클럽을 해체한 상태라서 사실상 공식적인 규모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아서 그런 것이다. PC 통신상의 팬클럽 참가의사를 체크해서 3층의 하프 센터를 배정했다. 그런데 당일 동원된 인원수가 워낙 많아서 그냥 3층 센터 전체를 차지하게 되어버렸다는 것이 이유였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대한민국 대중가요계의 역사를 뒤져봐도 "가요계의 일대 혁명으로 불릴 정도로 끝판왕"이었고, 남성 그룹인데도 당대의 10~20대 소년들에게도 절대적인 충성도를 자랑했었다.# 이러니까 당연히 여성 팬덤들은 어땠을지....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즉, 이 시기에 "3층 센터는 다른 팬클럽에게 주려고 한 자리를 먹어치웠다"는 이미지가 조성되었고 2년 뒤인 1997년엔 당시 최고 주가를 자랑하던 H.O.T.가 차지하면서 당대 최고 가수들의 팬클럽을 위한 자리라는 이미지가 생겨난 것이다. 참고로, 3층 센터는 공연을 관람할 목적으론 가면 후회할 정도로 전망이 매우 나쁘다. 면봉드립이 괜히 나오는게 아니다[36] 김완선은 2011년 활동을 재개하면서 출연한 프로그램 등에서 혹독한 감금훈련, 13년동안의 노예같은 생활 등 많은 일화를 공개했다. 문나이트 출신들이었기 때문에 교류하기에도 수월했다.[37] 비록, 듀스는 동시대에 활약했던 서태지와 아이들이나 룰라, 김건모, 신승훈의 명성에 가려진 면이 있었지만, 트렌드를 앞서 간 김성재의 세련된 힙합 패션스타일과 이현도의 뛰어난 작곡능력은 후배 힙합 가수들에게 끼친 영향력이 매우 강하며, 1995년 7월 듀스의 해체 이후 김성재의 솔로 앨범과 이듬해 1996년 이현도의 솔로 앨범으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다가, 1997년 이후의 힙합계는 DJ DOC, 지누션, 1TYM, 드렁큰타이거, 가리온, 업타운 등으로 활발하게 이어진다.[38] 이전에는 컴백같은 휴식기의 개념이 없었다. 트로트 같은 경우에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한 번 신곡을 내면 몇 년 동안 쉬지 않고 활동한다. 이렇게 활동을 하다 보면 당연히 똑같은 타이틀 곡이 오랫동안 나오기 때문에 금방 식상해진다.[39] 특히 서태지와 아이들의 멤버였던 양현석YG 엔터테인먼트를 창립하고 아이돌 후배가수들을 키우면서 거대한 회사로 성장시키는 성공적인 음반기획자가 되었다. 여러모로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의 역사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셈이다.[40] 대중가요계 걸그룹 선풍 여성그룹 가요계 새바람[41] 당돌한 ses 걸그룹 핑클 2.5집 앨범 출반[42] 이 경우엔 가수와 배우를 모두 포함.[43] 1996년 상반기까지는 H.O.T. 이후의 90년대 후반 가요계보단 90년대 초중반 가요계의 연장선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1996년 하반기야말로 일종의 과도기였던 셈.[44] 보아가 데뷔한 2000년부터 음반 시장이 급격하게 축소될 2002년까지는 1세대 아이돌 이전의 선배 가수들과 1세대 아이돌 출신 그룹의 영향력이 황혼기로써 여전히 존속되었기 때문에 이들의 주역이었던 S.E.S.의 해체 시기와 핑클의 활동 중단 시기를 마지막 연도로 구분한다.[45] 대중적인 영향력은 1997년 초부터 시작되었다. 1996년엔 김건모, 클론, 솔리드 등의 선배 가수들이 H.O.T.와 비교도 안 될 만큼 훨씬 더 많은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H.O.T.의 등장으로 인해 다른 아이돌 그룹들도 가요계를 이끌게 되었다. 종종 서태지와 아이들과 비교되는데, 아이돌로서 팬덤파워나 청소년들 사이에서의 파급력은 서태지와 아이들보다 더 강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서태지와 아이들이 현대적인 한국 아이돌의 시초였고 영향력 부분에서 서태지와 아이들이 한국 대중가요계에 새로운 변화와 가요계 주류를 완전히 뒤바꾼 쿠데타를 일으켰다면, H.O.T.는 서태지 이후 댄스, 랩뮤직으로 재편된 가요계 주류 안에서도 본격적인 아이돌 전성시대의 왕조를 세웠다고 평가하기도 한다.[46] NRG의 전신으로 이성진, 천명훈이 속한 2인조 남성듀오였다. 당시에는 노유민, 문성훈이 백댄서로 활동했었다.[47] 송원근, 유건, 이창희가 속해 있었던 그룹으로 당시 8인조라는 최다 인원으로 활동했으며 한국 아이돌 최초로 유닛 활동을 시도했다.[48] 2001년에 론이 솔로로 재데뷔, 이글파이브의 막내 대니는 리치로 재데뷔 하였으며 심재원은 2002년 블랙비트로 재데뷔.[49] 노정현, 노현정 일란성 쌍둥이로 구성된 듀엣. '대리만족'이라는 노래가 조금 알려지기는 했지만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고 몇년 뒤 트로트로 전향했다.[50] 1집이 실패해서 그렇지, 데뷔는 S.E.S., 핑클, 디바보다 먼저 했다.[51] 대한민국 걸그룹 역사에서 거의 유일한 걸밴드 컨셉으로 데뷔했다.[52] 대한민국 사상 최초 다국적 걸그룹이다. 당시 이지현, 한보람이 소속되었던 팀이다.[53] 여기 작성된 1세대 걸그룹 목록에서 유일하게 해체나 긴 공백기 없이 18년동안 꾸준히 활동했다. 원하고 원망하죠는 거의 국민 노래방 애창곡 수준으로 꾸준한 사랑을 받고있다.[54] 이켠이 속해있던 혼성그룹으로 쿨과 비슷한 이유로 1997년부터 점점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55] 1996년에 모기야, 우울한 우연이라는 곡을 불렀다. 이 중 우울한 우연은 베이비복스가 나중에 리메이크해서 유명해졌다. 본래 3인조로 데뷔했었지만 후에 5인조로 활동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강원래의 배우자로 유명한 김송이 과거 소속되었던 혼성 그룹으로만 기억할 뿐.[56] 비록 아이돌적인 요소는 부족하지만, 10대~20대를 대상으로 강하게 어필하였고 아티스트적인 요소가 강했다. 1집 뿐이었지만 락밴드로서는 드물게 국민적인 히트곡으로 유명세를 타게 된다. 1990년대 후반 1세대 아이돌 전성시대였기 때문에 사실상 경쟁이 치열한 죽음의 조나 다름없었던 시대에도 데뷔곡 '16/20'과 '나는 나'가 가요차트에서 1위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 이후에도 모던 락의 붐을 지속적으로 일으킨 선구적인 공로가 인정된다. 실제로, 해외에서도 주주클럽의 곡을 리메이크한 사례가 많다.[57] 공전절후의 히트곡 기다려 늑대를 부른 가수다.[58] 룰라의 멤버 이상민이 기획한 프로젝트 그룹 브로스에 참여했던 에스더가 데뷔했던 혼성그룹이다. 동년배 나이대 가수들 사이에서는 가창력으로 호평받았던 것으로 유명했었다.[59] 김완선이 기획한 혼성그룹이다.[60] 발라드 가수지만 프로듀서가 아이돌 프로듀서였기 때문에 리즈시절에는 아이돌 가수와 유사한 방식의 활동을 했다.[61] 혼성그룹 출신이었다.[62] 백지영은 1999년 데뷔 1집보다, 2000년에 들어서 전성기를 맞는다. 2001년 이후 침체기를 겪다가 5년 후에 복귀했다.[63] 데뷔는 1999년이었지만, 이수영의 실질적인 전성기는 2003~04년이였다. 역시, 아이돌적인 컨셉보다 발라드 가수같은 면이 강했다.[64] 시기상으로 봤을 때 교실 이데아, 필승, 컴백홈 정도는 알고 있을 나이대며 3집과 4집으로 활동했을 때다.[65] 국민학교는 1995년 명칭이 폐지된다. 다만, 시기상으로 완전히 폐지가 된 것은 사실상 1996년 3월 1일 부터다. 1986년생은 초등 3학년까지는 국민학교였다가, 4학년이 되어서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보다 2살 어린 1988년생은 국민학교의 마지막 입학세대였다.[66] 참고로 중학교 의무교육시작, 중학교 7차교육과정은 2002년 1989년생부터 시작되었다. 2004년 1989년생들이 중3 무렵에 중학교 의무교육과정, 7차 교육과정이 완료되었다.[67] 당시의 초등학교 고학년~중고생들도 성인들 못지않게, 서태지와 아이들이 해체되었다는 사실에 전국적으로 충격을 받은 것은 똑같았다. 사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은퇴 이후 H.O.T.는 1996년, 젝스키스는 1997년에 데뷔했다. 비록 H.O.T.의 팬들과 젝스키스의 팬들이 서로 반목하는 관계로 유명했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이 은퇴하고 H.O.T.의 팬들과 젝스키스의 팬들로 서로 갈라졌기 때문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활약하던 시기에는 너 나 할것 없이 모두 다 서태지와 아이들을 좋아했기 때문이다.[68] 물론, 초등학생들도 서태지와 아이들은 다 알고 있었다.[69] 이 팀의 멤버인 장해영은 1997년 2인조 남성 그룹 키드에서 '오! 난리야'라는 곡으로 활동한 바 있다.[70] 원티드 김재석이 당시 활동했었다.[71] 인디 데뷔는 2001년이지만 서태지의 발굴로 메이저에 진출한건 2003년 Let it Rain앨범부터[72] 강성진의 아내인 이현영이 당시 활동했었다.[73] 립싱크로 인한 부작용이 해체로 이어진다는 것을 보여준 걸그룹으로 이후로 립싱크 무대는 전멸하게 된다,[74] 트로트 가수 연지후가 속해 있었던 걸그룹.[75] 결성 자체는 1997년에 이루어진 혼성밴드.[76] 배우 박하나가 당시 활동했었다.[77] 사실, 성시경이나 싸이는 아이돌로 생각하기에는 살짝 부족하고, 아티스트적인 면이 강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10~20대를 타겟으로 하는 음악들을 많이 냈고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78] 이글파이브 출신 론은 유승준을 닮아 당시 제 2의 유승준으로 불렸다.[79] 솔로 이전에 남성그룹 세븐데이즈의 멤버로 먼저 데뷔한 바 있다.[80] 듀스의 명곡으로 유명한 '여름안에서'를 리메이크하기도 했다.[81] 일본의 ZARD처럼 초기에는 혼성밴드였으나 나중에는 여성보컬 1인 체제이자 여성 솔로 가수로 변경되었다.[82] 인기댄스그룹 '젝스키스' 해체 발표[83] 사실, 1세대 아이돌 전성시대로 유명했던 1990년대에 나왔던 노래들이 1세대 아이돌 데뷔 이전 시대보다 상대적으로 가창력을 비롯해서 음악성이 저평가를 받는 감이 있지만, 그 시절에도 음악성이나 가창력이 뛰어났던 가수들은 많았다. , 야다, 플라워, 김상민, 이브, 김경호, 박완규, 더 크로스 등등... 이 때 당시 유명해졌던 명곡들은 현재에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다.[84] 미디엄템포 R&B는 아니지만 미디엄템포 자체는 혼성그룹 쿨의 정규 5집 수록곡이자 응답하라 1997의 메인 OST의 원곡이었던 All For You도 해당된다.[85] 댄스그룹 H.O.T 해체됐다... 장우혁등 3인 소속사 옮겨[86] 원래는 SM엔터테인먼트에서 아이돌로 데뷔했으나 독자노선을 걷게 되면서 스스로 R&B 보컬그룹으로 성격을 전환했다. 후일의 브라운 아이드 걸스와는 정반대의 케이스다.[87] 물론, 블랙비트 등 보이밴드도 실패한 것은 사실이긴 하다. 이 시기는 이수만이 경영에서 손을 떼던 시기였는데 자세한 것은 문서 참조.[88] DSP에서 동방신기의 대항마로 내놓은 보이밴드로 김현중이 이쪽 출신이다. 전성기 시절은 동방신기에 못지 않게 많은 인기를 누렸다.[89] 국내에서의 인기는 그저 그랬지만 아시아권에서는 꽤 인기가 있었다.[90] 사실, 버즈는 아이돌로 보는 시각과 아니라고 보는 시각이 갈린다. 하지만, 버즈는 스스로 아이돌을 자처하지 않았으며 보컬리스트 민경훈이 잘생긴 외모로 마치 조성모처럼 아이돌과 비슷한 방식의 인기를 얻긴 했지만 아이돌과 같은 팬덤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또한, 보컬을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별로 각광받지 못했으며 밴드의 구성을 취하고는 있지만 2집의 대히트 이후 사실상 SG워너비김종국 등의 당시 인기 발라드 가수들과 비슷한 테크를 타면서 활동을 했다. 그리고, 창법은 당시 유행했던 소몰이창법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스타일이었다. 게다가, 나중에 버즈가 잠정 해체된 이유도 본인들이 하고 싶은 형태의 활동보다 아이돌과 비슷한 방식의 활동들을 강요당했기 때문이라고 하기도 했다. 해당 문서 참조.[91] 엄밀히 따지자면, 소몰이창법으로 일원화할 수는 없다. SG워너비만 해도 소몰이창법만 한 것은 절대 아니며, 버즈의 보컬 민경훈의 당시 창법은 전형적 소몰이창법과는 넘사벽의 차이가 있었다. 음색이 차별화된 가수들도 많았기 때문이다.[92] 이 시기는 이효리가 가요대상을 탔을 때였다. 그런데, 앨범 판매가 다른 전성기를 차지했던 가수들보다 판매량이 낮았기 때문에 당연히 대중들의 반응은 "왜 이효리나 비가 대상을 받았지? 미쳤냐?"라는 반응도 많았다. 심지어 이효리가 없는 가수 시상식이 열린다고 말이 많았던 때였다.[93] 물론 현재는 장르의 다양한 변화가 이루어져 인디가수들도 큰 인기를 얻고 있고, 아이돌 그룹(대표적으로 f(x), 샤이니)들도 EDM 등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있는 상황. 후크송이 가요계를 완전히 지배하고 있다는 것도 이제는 옛말이다.[94] 대표적으로 버즈 역시 발라드 계열의 노래로 득세했기 때문에 이들과 같이 엮여서 취급받는 경우가 많으나 버즈는 어디까지나 군입대로 인해 해체한 것이지, 이들처럼 약빨이 다 되어 몰락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면 동시대 테이의 히트곡 '사랑은 향기를 남기고...'와 버즈의 '겁쟁이' 의 지금 위상을 잘 비교해보자.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실제로 테이가 버즈의 노래를 부를 때 그럭저럭 잘 커버한다는 것이다.[95] 동방신기가 데뷔와 동시에 큰 팬덤을 형성해 1세대 아이돌들을 대체하면서부터 이후의 아이돌들을 2세대로 분류한다. 제도권 언론에서도 동방신기를 2세대의 시작으로 분류한다. 뉴시스, 경향신문, 연합뉴스.[96] 음악방송 데뷔는 2003년 12월 26일, 정식 데뷔는 2004년 2월 7일.[97] 배슬기, 오승은, 추소영이 속한 걸그룹.[98] 혼성그룹으로 시작했으나, 2014년부터 걸그룹으로 전환되었다.[99] 투야 출신 안진경과 양미라 동생 양은지가 당시 활동했었다.[100] 국내 정식 데뷔는 이보다 2년 뒤인 2006년이다.[101] 어린이들의 장래희망 1위가 아이돌로 통일된 것도 이 시기다.[102] 데뷔 시기는 2003년 말~2004년 초부터였지만, 후배 아이돌 그룹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기 시작한 2008년에도 4집 활동을 통해 여전히 건재함을 보여줬다.[103] 싱글 2집 <스노우 프린스>가 대박을 쳤고, 2007년에는 정규1집 <4CHANCE>로 지상파 첫 1위를 달성했으며, <암욜맨>으로 아이돌 유닛 최초로 1위를 차지했다.[104] 2집으로 활동하면서 두각을 드러내고, 2009년 3집 활동에서 전성기를 맞이하는 등 2007년 이후에 데뷔한 후배 아이돌 못지 않는 영향력을 지녔다.[105] 2006년 싱글 <LaLaLa>로 데뷔한 후, 2007년에 낸 미니 1집 <거짓말>이 전국적인 대히트를 치고 연타로 연말에 <마지막 인사>, <하루하루> 등을 제대로 히트시키며 자리를 굳혔다.[106] 2007년 당시 데뷔한 남성 아이돌 그룹 중에 유일하게 성공적으로 데뷔한 그룹이었기 때문에 차세대 아이돌 시장의 자리를 어느 정도 선점할 수 있었다.[107] 데뷔곡 <다시 만난 세계> - <소녀시대> - <Kissing You>로 빅뱅원더걸스 사이에서 존재감을 알린 뒤, <Gee>가 신드롬을 일으키며 압도적인 입지를 굳혔다. 특히 <Gee>는 이후의 아이돌 시장 트렌드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108] 2007년 싱글로 데뷔 후, <Tell Me> - <So Hot> - <Nobody> 3연타로 2007~8년도 가요계를 휩쓸었다. 이 당시만으로는 소녀시대를 압도하고 빅뱅, 동방신기와도 음원 판매량만으로 압도할 정도.[109] 2007년 2집의 실패 이후 장르를 댄스로 변경해 2008년에 여러 곡들을 발표한다. <LOVE> - <어쩌다> - <My Style>이 삼연타 대박을 치면서 큰 인기를 얻게 된다. 이후 2009년 활동곡인 <Abracadabra> -<Sign>이 연달아 메가히트를 치며 가요계에 큰 획을 긋게 된다.[110] 김성희의 탈퇴 이후 낸 <Rock U>가 좋은 반응을 얻고, <Pretty Girl>에서 카밀리아의 고무장갑 응원을 비롯한 열정적인 서포트, 인지도 급상승으로 <Honey>를 통해 자리를 매김했다.[111] 사실상 2010년대를 대표하는 최정상급 아이돌이라고 평가받는다. 이는 세계 무대에서도 유의미한 성과를 냈기 때문이기도 하다.[112] 완전한 아이돌 컨셉이라기 보단 가창력으로 승부를 보는 발라드 가수로서의 성격이 더 강하다. 남성 듀엣으로 따지면 지금의 플라이투더스카이와 그나마 가장 가까운 격.[113] 황지현이해인이 속해있었던 7인조 걸그룹[114] JYJ 김재중의 고향 친구.[115] 이기광이 과거 예명으로 잠시 활동했었다.[116] 당시 제 2의 비로 불렸다.[117] 그 유명한 슈퍼스타 K힙통령이다.[118] 슈퍼주니어, 동방신기, 빅뱅, 지드래곤, 샤이니, 인피니트, 비스트가 10만장 이상의 앨범 판매량을 기록했으며, 버스커버스커가 비 아이돌 가수로는 유일하게 10만장을 넘겼다. 가온 차트 기준으로는 싸이도 10만장을 넘겼다.[119] 2012년 들어서 버스커 버스커 외에도 나얼 등이 비아이돌로서는 상당한 음반 판매고를 올렸다.[120] 참고로 여기서 음반형 아이돌과 음원형 아이돌의 구분은 그 아이돌의 음악성과는 전혀 무관하므로 오해하지 말길 바란다. 대중 공략에 유리한 음악과 음악성이 높은 음악과는 (오히려 반비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전혀 상관이 없기 때문. 특히 후크송이 범람하고 쉽고 짧고 강렬한 반복소절로 수초안에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걸 목표로 하는 노래들이 대부분인 요즈음의 가요시장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예를 들어 미국 빌보드에서 'K-pop이 지닌 혁신을 증명했다'며 '2012년 최고의 K-pop'으로 꼽은 곡은 인피니트의 "추격자"였다. 앨범형 아이돌의 경우 팬들의 고정 수요가 보장되기에 음악성에 대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으며, 특히 타이틀 곡보다 부담이 적은 앨범 수록곡에서 음악성에 집중한 곡 선정이 가능하기도 하다. 물론 이것도 항상 그런것은 당연히 아니다. 형편없는 곡으로 트랙 개수만 채워서 앨범이라고 내놓는 그룹도 있다. 물론 이런 그룹은 결국 오래가지 못하지만 말이다.[121] 소위 1군 보이 그룹으로 평가 받으려면 팬덤 뿐만 아니라 음원 성적도 받쳐 줘야 한다.[122] 이 쪽도 보이 그룹보단 덜 하지만 1군으로 평가 받으려면 어느 정도의 팬덤은 받쳐 줘야 한다.[123] 멜론 같은 음원 사이트 연간 차트에 들지 못했을 때이다.[124] 단 빅뱅은 2007년부터 일본진출을 했다. 싱글(How Gee, With U) 등을 내고 일본 언더에서부터 데뷔해 시장을 개척했고, 이때부터 팬이 된 일본 팬들도 상당수다.[125] 여기에 동참하지 않으면 방송사한테 밉보이기 때문에 많은 기획사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해외 공연에 참여하고 있다.[126] 하지만 그만큼 작곡가와 안무가, 뮤직비디오 감독 등 제작팀들의 역량이 쌓이면서 2세대보다 더욱 음악적 퀄리티가 높아지고, 질 좋은 K-POP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디지페디, 손성득, 이기용배, SM의 해외 작곡팀, 블랙아이드필승 등 과 같은 새로운 스타 제작진들도 탄생했다.[127] TWICE의 대상 수상 및 음원 연간차트 1위, 여자친구의 음원 연간차트 호성적 등.[128] 대표적으로 걸그룹 전성기라 불리던 2009년, 2011년의 경우 다양한 걸그룹들이 성적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다.[129] 구구단, 우주소녀, 프리스틴, 위키미키는 팬덤도 나쁘지 않고,(특히 프리스틴, 위키미키는 데뷔 앨범 초동 판매량이 1만 장을 넘었다) 거기다 우주소녀는 I.O.I 멤버 말고도 인지도가 괜찮거나 높은 멤버들이 있고 프리스틴은 I.O.I, 프듀 출신 멤버들이 7명이나 있어 인지도 면에서 괜찮은 데 비해 비해 DIA는...[130] 스페셜 앨범 KNOCK KNOCK, 미니 4집 SIGNAL, 일본 싱글 1집 One More Time, 정규 1집 LIKEY, 정규 1집 리패키지 Heart Shaker[131] 여러 음원 스트리밍 사이트의 실시간 급상승 1위를 하기도 했다.[132] 워너원도 2018년 6월부터 스톤뮤직의 자회사 스윙엔터테인먼트가 관리했다.[133] ITZY는 데뷔곡 달라달라가 모든 차트에서 최상위권을 기록하며 걸그룹 최초로 데뷔곡 지상파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고, TXT는 음반 판매량이 여자 아이돌에 비해 많은 남자 아이돌임을 감안해도 데뷔 앨범 초동 7만 7천장을 넘기는 성과를 얻었다.[134] 카페가 대중화되기 전에는 홈페이지 형태가 주류였다.[135] 2003년 네이버 카페 이후로 본격적으로 활성화.[136] 2004년 10월 이후 한정.[137] 2005년 4월 이후 한정.[138] 2006년 3월 이후 한정.[139] 인터넷에서 화제가되어 TV에 출연하게되는 사례가 나타났으나 지금처럼 많지 않았다.[140] 라디오의 영향력 쇠퇴, 초창기 UCC 문화.[141] 네이버TV, 카카오TV, V앱 등 인터넷방송이 더욱 활성화됨에 따라 인터넷에서 화제가 되어 TV에 출연하게 되는 사례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