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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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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조선 제10대 국왕 연산군 | 燕山君 | |||
연산군묘 전경 | |||
출생 | 1476년 12월 2일[1] (음력 성종 7년 11월 7일) | ||
한성부 경복궁 교태전[2]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 |||
즉위 | 1495년 2월 3일[A] (18세) (음력 1494년, 성종 25년 12월 29일) | ||
한성부 창덕궁 인정전 (現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 |||
사망 | 1506년 11월 30일[4] (향년 29세) (음력 중종 1년 11월 6일) | ||
경기도 강화군 교동현 화개산 인근 (現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 |||
능묘 | 연산군묘(燕山君墓)[5] | ||
재위기간 | 조선 왕세자 | ||
1483년 3월 23일[6] ~ 1495년 2월 3일[A] (음력 성종 14년 2월 6일 ~ 1494년, 성종 25년 12월 29일) | |||
조선 제10대 국왕 | |||
1495년 2월 3일[A] ~ 1506년 9월 28일[9] (음력 1494년, 연산군 즉위년 12월 29일 ~ 연산군 12년 9월 2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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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 | 융(㦕) | ||
부모 | 부왕 성종 생모 폐비 윤씨 양모 정현왕후 | ||
형제자매 | 16남 12녀 중 장남 | ||
배우자 | 거창군부인 신씨 (1488년 혼인) | ||
후궁 | |||
자녀 | 10남 9녀 (10남 10녀) | ||
종교 | 유교 (성리학) | ||
봉호 | 연산군(燕山君)[10] | ||
존호 | (憲天弘道經文緯武大王)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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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임금(上)이 두려워하는 것은 사서(史書)뿐이다.[11] 《춘추(春秋)》에 이르기를 "어버이를 위하는 자는 은휘(隱諱)한다." 하였으니, 사관(史官)은 시정(時政)만 기록해야지 임금의 일을 기록하는 것은 마땅치 못하다. 근래 사관(史官)들은 임금의 일이라면 남김없이 기록하려 하면서 아랫사람의 일은 은휘하여 쓰지 않으니 죄가 또한 크다. 이제 이미 사관에게 임금의 일을 쓰지 못하게 하였으나 아예 역사가 없는 것이 더욱 낫다. 임금의 행사는 역사에 구애될 수 없다.
연산군일기 63권, 연산 12년 8월 14일 辛酉 5번째 기사
조선 제10대 국왕.연산군일기 63권, 연산 12년 8월 14일 辛酉 5번째 기사
성종의 적장자이자 중종의 이복형으로, 5백 년 조선 왕조 역사에서 광해군과 함께 반정으로 폐위된 후 복위되지 못하여 '조(祖)'나 '종(宗)'으로 끝나는 묘호를 영영 끝까지 받지 못한 둘뿐이었던 임금 중 1명이다. 휘는 '융(㦕)'. 폐위되었기에 묘호와 시호가 없지만 생전에 받은 '헌천홍도경문위무대왕(憲天弘道經文緯武大王)'이라는 존호가 남아있다.[12] 조선왕조실록에서 '연산군'보다는 '폐주(廢主)', '폐왕(廢王)', '폐조(廢朝)'이라고 많이 불린다.[13]
2. 생애
자세한 내용은 연산군/생애 문서 참고하십시오.3. 가계
3.1. 조상
본인 | 부모 | 조부모 | 증조부모 |
연산군 (燕山君) | <colbgcolor=#fff3e4,#331c00> 성종 (成宗) | <colbgcolor=#ffffe4,#323300> 덕종 (德宗) | |
세조 (世祖) | |||
정희왕후 (貞熹王后) | |||
소혜왕후 (昭惠王后) | |||
서원부원군 한확 (西原府院君 韓確) | |||
남양부부인 남양 홍씨 (南陽府夫人 南陽 洪氏) | |||
폐비 윤씨 (廢妃 尹氏) | |||
( | |||
윤응 (尹應) | |||
안동 권씨 (安東 權氏) | |||
( | |||
신평 (申枰)[15] | |||
장흥 마씨 (長興 馬氏) |
3.2. 배우자/자녀
- 후궁: 폐숙용 장녹수(張綠水)[30]
- 후궁: 폐숙용 전전비(田田非)
- 후궁: 폐숙용 조씨
- 후궁: 폐숙원 최보비(崔寶非)
- 후궁: 폐숙원 김귀비(金貴非)
- 후궁: 폐숙원 장씨
- 후궁: 폐숙원 이씨
- 후궁: 폐숙원 정씨
- 후궁: 궁인 최전향(崔田香)
- 후궁: 궁인 수근비(水斤非)
- 후궁: 궁인 김숙화(金淑華)
- 후궁: 여완 월하매(月下梅)
- 후궁: 여원 안씨
- 후궁: 장씨
- 후궁: 의녀 강금(姜今)
- 생모미상의 왕자녀
연산군은 유일한 정실 부인이었던 거창군부인 신씨와의 사이에서 연년생으로 8명의 자식을 얻었다.[51] 반면 연산군이 후궁에게서 얻은 자식은 5남 7녀로 후궁들이 낳은 자식들을 모두 합친다 해도 연산군이 신씨 1명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보다 고작 3명 많았다. 연산군의 후궁 숫자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는 역사 책마다 다른 편이라 단언을 내릴 순 없지만 가장 많은 경우를 가정하면 약 20명인데 그 20명의 후궁들 중 정작 연산군의 아이를 가진 후궁은 별로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또한 자식들 중 거창군부인 신씨의 자식들을 가장 아꼈다고 한다. 후술하겠지만 특히 장녀 휘신공주를 워낙 아꼈고 혜택을 많이 주고 이것저것 챙겨줬고, 아들 중에서도 신씨의 자식인 창녕대군 이성을 가장 아꼈다고 한다.
연산군과 거창군부인 신씨 사이에서 두 번째로 태어난 아들이었으나 살아남은 아들 중 장남이었던 세자 이고의 성품은 아버지 연산군과 매우 정반대였다고 한다.[52] [53] 세자 이고는 만 4세에 왕세자로 책봉되었는데 실록에 연산군의 언급에 따르면 "자질이 온화하고 도량이 원대하며 어릴 때부터 높게 빼어나서 이미 성인의 도량이 있었고 장성하여서는 훌륭한 덕망으로써 진실로 구가의 돌아감에 응할만하고 하다" 라고 기록돼있다. 또한 왕의 기질이 있고 총명하고 학구열이 높았다고 한다. 연산군이 내관에게 세자가 얼마나 성취하였나고 묻자 내관은 "세자의 기상이 꼭 성종을 닮았다"고 말하였는데 말이 끝나자마자 무섭게 연산군은 내관을 향해 칼로 쳐서 내관은 거의 죽다 살아났다고 한다.[54] 반정이 일어나기 전 박원종 등이 중종을 임금으로 추대할 뜻을 품고 일찍이 거창군 신씨의 친오빠이자 연산군의 처남인 신수근에게 누이와 딸[55] 중 어느 편이 더 중하냐고 묻자 신수근은 "임금은 비록 포악하나 총명한 세자를 믿고 살겠다" 라고 말했는데 결국 중종반정 때 신수근은 역적에 몰려 제거당했다. 실록에 따르면 세자 이고가 만 7세 됐을 때에는 성품이 굳세며 침중하고 엄숙하였는데 어느 날 연산군이 경회루에서 잔치를 치르며 흥청들과 함께 음악을 연주하고 있는 도중 세자 이고를 불러 흥청들을 가리키며 내가 죽은 뒤에도 이들을 잘 돌보겠냐고 물었는데 뜻밖에도 이고는 연산군 물음에 대꾸하지 않고 묵묵히 있어[56] 연산군은 이 일을 계기로 세자를 꺼렸다고 한다.(은근히 아버지와 기싸움을 하는 듯한...)
연산군의 아들 중에서 연산군이 폐위된 이후 반정 공신들에 의해 사약을 받아 사사되었다고 이름이 기록된 것은 4인이며 이들 이외의 연산군의 아들들도 추가로 사사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사사받은 4인의 아들 이외에는 대체로 영아 시절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반정 공신들의 조치 역시 당시에는 엄연한 불법인데 조선의 법도는 설령 역적의 자손이라 해도 16세 미만의 경우는 사형을 금하고 노비로 만드는 것이 최고형이었다. 딸들은 여자라 왕위에 위협되지 않아 손대지 않았다. 서인으로 전락하긴 했지만 어차피 딸들은 출가외인인지라 신분에 큰 변화는 없었고, 게다가 삼불거(三不去) 중 하나로 부인을 내쫓아도 돌아갈 곳이 없는 경우 내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다.[57]
자식들을 아끼던 면모가 기록에 남아있다. 아들 중에선 정실 부인이었던 거창군부인 신씨 사이에서 태어난 3남인 창녕대군 이성을 가장 아꼈다고 한다. 승지 김감이 창녕대군의 보양을 맡고 있다는 이유로 김감에게 쌀 15섬을 주었고 이후에 임사홍이 왕의 총애를 굳히기 위해 김감의 집에서 자라고 있던 창녕대군을 자신의 집으로 옮기기를 청하기도 하였다. 그 이후에는 정미수가 창녕대군을 보양하고 있었는데 이에 연산군은 정미수의 집 값을 시가보다 더 주게 하였다고 한다. 또한 창녕대군과 휘신공주에게 각각 노비 2구를 내렸고 나중에는 창녕대군에게 노비 100구를 내렸을 뿐만 아니라 창녕대군의 논과 밭을 휘신공주 예에 따라 세금을 면제하고 창녕대군 노비들의 잡역을 면제해주었다.
특히 딸바보였는데 연산군은 장녹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영수[58]를 매우 사랑했다고 실록에 언급돼있으며, 영수와 후궁 정금 사이에서 태어난 딸 이함금에게 집 1좌와 노비 15구 밭 5결을 하사했다. 또한 영수를 아끼고 사랑하여 영수의 주변인들에게 상으로 물품을 내리는 일이 매우 융성했고 많은 은혜를 베풀었다고 한다. 영수가 염질이 걸려 의원 박계원이 치료하자 연산군은 그에게 1자급을 더하게 하고 은대를 내렸으며 영수가 천연두도 걸렸을 때 구수영의 집에 있으면서 천연두가 나아지자 구수영에게 쌀 50석과 안장을 갖춘 말 한필을 내렸다. 이 외에도 영수의 유모 아들인 종이를 동평관의 고직으로 영원히 정하라고 명하여 지평 권주가 부당함을 아뢴 적도 있었다.
연산군이 가장 각별히 아끼고 사랑했던 자식인 휘신공주는 당시 16살[59]이자 세자였던 연산군과 그와 동갑내기인 거창군부인 신씨 사이에서 태어난 첫 아이이자 장녀이며 성종이 생전에 본 첫 손주였다. 13세 때 구수영[60]의 아들이자 1살 연하인 구문경과 혼인하였다. 연산군은 휘신공주가 집을 떠날 날짜가 가까워지자 휘신공주에게 줄 논과 밭을 마련하라고 지시하고 시집간 휘신공주를 위해 벼 8천 섬을 호조에서 마련하도록 하며 콩100개, 수주 50필, 쌀100석을 하사하였고 혼인한 휘신공주가 나가 살 집을 지으라고 명하였다. 또한 혼인한 휘신공주가 나가 살 집을 지으라고 명하였는데 이에 한 신하가 근년에 들어 가뭄이 심해 잠깐 공사를 중단하라고 청하였으나 연산군은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래도 근년의 흉년이 맘에 걸렸던 것인지 이후에 한 신하가 한양에서는 한성부가, 지방에서는 관찰사가 호소할 데 없는 고독한 사람들을 방문하여 구제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자 전과 다르게 연산군은 "어려운 사람을 구제하는 방도는 마땅히 거행해야 한다"라며 곧 시행하도록 하였다. 휘신공주의 집이 완성되고 얼마 후 연산군은 휘신공주의 집을 넓히기 위해 몇몇 신하들을 보내어 휘신공주의 집 근방에 더 헐 곳을 살펴보게 하였고 이에 신하들이 집 수십채를 헐어야 된다고 하자 해당 관사에서 값을 주고 철거하도록 명하였다. 이때 한 신하가 휘신공주의 집 담장 밖 인가 철거의 부당함을 아뢰었는데 연산군은 일이 되어 가는 상황을 모르고 말하는 것이라며 단호하게 말하였다. 이후 휘신공주의 집을 지었던 장인들에게 상으로 베 358필을 주었으며 얼마 후에는 관평인 평시서의 위치가 휘신공주의 집을 압박한다는 이유로 그 터를 공주에게 주고 평시서는 다른 곳으로 옮기라고 하였다. 휘신공주에 대한 연산군의 특혜는 이뿐만이 아니었는데 죄인 임희재 집과 윤필상 첩의 집을 공주에게 주었고 휘신공주의 두 집이 금표 안에 들어간 고로 면포, 정포 5천 필을 내리기도 했으며 연산군이 무과를 시험 보인 후 환궁할 때 휘신공주의 집에 들러 휘신공주에게 쌀 150석, 면포 정포 각 750필, 말 1필을 내렸다.
연산군이 휘신공주를 엄청 아끼느라 공주로 인해 운좋게 위기에서 벗어난 사람도 있었는데, 가령 갑자사화 때 처형된 임희재의 부인이자 사위 구문경의 누이인 구순복은 남편의 죄로 인해 연좌되어 노비가 될 뻔하다가 연산군이 공주의 뜻을 고려해 연좌시키지 않고 놓아줬다. 반면 공주에 대한 각별한 총애로 폐단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성종 때 강학손이라는 자가 불법으로 직권을 남용하여 재물을 탐하는 죄로 벌을 받아 금고형에 수십 년 동안 처해있어 사람을 시켜 장안을 삭제하려고 했는데 이때 연산군이 본인이 어린 시절 강학손 아비인 강희맹 집에서 자랐으므로 그 공이 작지 않아 옛 허물을 씻으려 하고자 삼정승을 불러서 이 문제에 관해서 의논하여 자신에게 아뢰도록 하였는데 이에 사관은 임금이 이러한 명이 있었던 것은 강학손이 휘신공주에게 넉넉히 뇌물을 줬기 때문이라고 언급하였다. 이 외에도 휘신공주 유모의 남편 이팽동이 공주를 믿고 교만하고 거리낌 없이 멋대로 행동하여 문제되었으며 공주의 논밭에 세금이 면제되고 공주의 노비들은 잡역에서 면제되는 폐단까지 발생하였다.
4. 평가
현대 한국 대중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한국사의 대표적인 폭군이다. 그래도 즉위 초기에는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해 나갔다는 평가도 있었고, 무오사화의 피바람이 있기는 하였지만 이는 사화의 원인을 제공한 삼사의 행동에 더 큰 문제가 있었으며, 연산군은 그저 이 기회를 제대로 포착했을 뿐이다.[61] 설령 연산군이 아닌 다른 국왕의 치세에 그런 사건이 일어났더라도 큰 옥사가 터질 수 밖에 없는 사건이었기에 무오사화까지는 연산군을 폐위해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될 수 없었다.그러나 연산군이 재위 10년째의 갑자사화 기간에 보인 옥사의 잔혹성과 규모는 경악스러울 정도이다. 오죽하면 사관이 "성품이 포악하고 정치를 가혹하게 하였다. 예로부터 난폭한 임금이 많았으나 연산군만큼 심한 자는 아직 있지 않았다."라고 평했다. 갑자사화 이후로는 대중들의 인식에 부합하는 폭군 그 자체였다. 사실 후반의 이미지가 너무 강렬해서 그렇지, 전체 재위 기간 중에는 오히려 정상적으로 집무하였던 시기가 더 길었다. 반대로 말하자면 2년 남짓한 사이에 벌인 폭정만으로도 폐위되었을 만큼 너무나 심했다는 것.
교과서나 학습 만화에선 간단하고 외우기 쉽게 가르치기 위해서, 사극에선 극적 연출을 위해 갑자사화를 "연산군이 자기 어머니의 죽음을 알게 된 뒤 복수하기 위해서 갑자사화를 벌리고, 이후 타락해서 폭주하였다."라고 해석하지만 생애 문서를 보면 알듯이 연산군은 실제로는 어머니의 죽음을 자세히는 몰라도 대략적으로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현대에 와선 사학계에서 연산군의 갑자사화는 어머니의 죽음 뿐만 아니라 권력 강화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있다고 보고 있다. 연산군이 마냥 멍청하고 복수만 바란 폭군이 아니라 왕권 강화를 꿈꾸며 계획해왔다는 것이다. 물론 갑자사화부터의 연산군의 행적을 옹호하거나 변호를 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연산군은 폐위된 뒤 조선 군주 체제에 폭군의 절대적 기준을 세운 왕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연산군이 폭군으로 흑화한 뒤에 행한 패악질들은 '성군으로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위'로 간주되었다. 설령 그것이 해당 임금의 입장에서는 자잘하고 미미한 취미 생활의 하나였다고 해도 반드시 금해야 할 금기로 치부되어 막았으니[62] 후대의 왕들에게 반면교사가 된 셈이다. 그러나 후기로 갈수록 이는 왕권을 견제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기도 했다. 일단 왕으로서의 권한으로 일을 해보려고 하면 연산군을 사례로 들어 신하들이 공격했기 때문에, 왕으로서의 정당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당했고 그럴수록 신하들은 자신의 권한을 강화시켜 나갔기 때문이다. 왕이 신권을 어떻게든 견제하려고 하면 이건 연산군이나 했던 일이라고 반항하는데 뭐라 반박하기도 까다롭기 때문이다. 연산군으로 인해 신하들이 후대 왕에게 압력을 가하는 빌미가 되었다. 사실상 조선이 본격적으로 군약신강 체제의 국가로 전락하는 계기를 제공한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5. 기타
- 멀쩡하게 나라를 통치하던 시절, 일본에서 암컷 원숭이를 바치자 "선왕 때 앵무새를 보낸 적이 있는데, 비용만 많이 들고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 구리나 철과 같이 꼭 필요한 물건도 값을 대기 힘들어서 무역을 금지했는데, 하물며 이같은 무익한 짐승이겠는가? 도로 돌려보내고 받지 않겠다는 뜻으로 타이르라."라는 실속있는 발언을 남겼다. 그 이후에도 일본 스님이 말과 원숭이를 바쳤는데 연산군이 둘다 도로 돌려보내라고 했다. 이에 스님이 원망하는 투의 발언을 하자 말만 받고 원숭이는 돌려보냈다고 한다. 연산군은 개나 고양이는 좋아하였지만 원숭이를 매우 싫어하기도 하였고 아버지 성종이 워낙 동물을 좋아했던 터라 그에 대한 반발심이 있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이유가 연산군의 일반적인 이미지와 달리 꽤나 조리에 닿는 것이 의외인 부분. 참고로 아버지 성종도 일본에서 원숭이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동물들을 좋아한 성종은 원숭이가 추위에 떨까봐 사슴가죽으로 옷을 입히고 흙집을 지어 원숭이를 기르자고 할 정도였다.
- 음력 기준 1506년 11월 6일에 사망하여 11월 7일 생일인 하루 앞두고 사망하였다.[63] 그레고리력 기준으로는 생일 2일 전, 율리우스력 기준으로는 생일 3일 전이다.
- 어린 시절 연산군과 성종의 대화가 전해지는 일화가 있는데 어느 날 성종이 연산군과 함께 오랜만에 밖에 바람쐬러 나왔다고 한다. 성종이 "융[64]아, 너도 좋으냐?"라고 물었는데 이에 연산군은 소 떼를 보며 "저 송아지도 어미 소가 있는데 저는 왜 어마마마가 없습니까?"라고 말했다고 한다. 또한 연산군이 밖에서 놀고 싶어서 성종의 허락을 받고 놀다 저녁 때 쯤 대궐로 돌아왔는데 이에 성종은 연산군이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여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연산군은 "딱히 구경할 만한 것은 없었으나 다만 송아지 한 마리가 어미 소를 따라가는데 그 어미 소가 울면 송아지도 따라 울어 어미와 새끼가 함께 살아 있으니 이것이 가장 부러운 일이었습니다."라고 말하여 성종이 말을 듣고 슬피 여겼다고 한다.
- 세자 시절부터 연산군은 대간들에게 시달리는 성종을 답답하게 여기며 반감을 가졌고 즉위 이후 시간이 점점 흐르고 나서는 매우 성종을 혐오하였다고 한다. 왕에게 진계하는 한 신하가 항상 아버지 성종을 본받으라고 자주 말하였는데 매우 듣기 싫어했으며 성종을 매우 미워하고 원망하였다. 비록 겉으로는 성종의 덕을 칭찬하였지만 본래 속마음은 매우 싫어하여 여러 신하들이 성종의 덕을 칭찬할 때마다 전혀 기뻐하지 않았고 말년에 이르러서는 성종을 거의 원수처럼 보았다. 성종이 승하하였을 때는 연산군은 상중에 있으면서도 서러워하는 빛이 없었으며 기일에는 고기반찬을 먹는 것을 금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성종 기일 날 고기나 생선이 들어있지 않는 반찬을 올렸다 하여 사옹원의 관계 관원을 국문하였고 성종을 미워해 행상하던 사람까지 죄주었고 한다. 또한 성종의 옛법을 모두 폐지하였고 성종의 기일 날에는 사냥하러 나갔으며 성종의 반신 영정을 표적으로 삼아 활을 쏘거나 영정을 걷어 손으로 때리기도 하였고 혹 크게 술을 먹고 취하고는 미쳐서 부르짖으며 선릉을 파가지고 오라고 명하였다.
- 폐비 윤씨의 성격에서 유전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 폐비 윤씨가 연산군을 출산하기 전까지는 성종에게 많은 총애를 받은 와중에 세 명의 대비들에게도 예쁨 받았을 뿐더러 후궁들과도 잘 지냈고 어질고 온순한 사람이었으나 연산군을 출산하고 난 후 포악한 사람으로 뒤바뀌었다고 한다. 성종은 매일 폐비 윤씨에게 시달려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폐비 윤씨가 그 사이에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더욱 두렵다면서 인수대비에게 털어놓았다고 한다. 무릇 폐비 윤씨가 불의한 일을 행했을 때 인수대비와 성종이 물으면 "주상이 가르친 것입니다!"라고 말하고 성종이 이를 보고 꾸짖으면 "대비가 가르친 것입니다!"라고 말하며 거짓된 짓을 행하고 인수대비, 예종의 계비인 안순왕후, 세조의 계비이자 대왕대비인 정희왕후가 바른말로 폐비 윤씨의 잘못을 꾸짓거나 나무랐는데 폐비 윤씨는 턱을 괴고 성난 눈으로 이들을 노려보는 등 대비들에게 불손하였다.
참고로 인수대비는 상당히 고귀하고 기품 있는 여성이었다고 전해지며 학식도 뛰어나 당시에는 왕비나 세자빈들도 한자를 못 읽는 경우가 많았는데 당시 여성으로서는 무척 박식해 한학과 유학에 통달했을 뿐만 아니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산스크리트어에 능했고 불교를 신봉했던 인수대비는 산스크트리어로된 불경을 번역하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또한 효성으로 살림집에 봉양하는 부녀자의 무식함을 걱정하여 열녀전, 소학, 여교명감 등의 서책을 가져다가 절실하고 중요한 부분을 뽑아서 모두 일곱 장으로 나누어 이름을 내훈이라 짓고 국문으로 번역하였다.[65] 이 외에도 정희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는 기간 동안에도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정희왕후의 수렴청정엔 사실 인수대비의 영향이 컸다는 말이 있다. 성격은 불같았다고 전해지는데 인수대비의 성품은 범과 같아서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와 범절을 하늘처럼 소중히 여겼고 야사에서는 인수대비의 천품이 엄격하고 날카로워 왕손들을 기를 때 이들이 조금이라도 과실이 있으면 봐주지 않고 곧 얼굴빛을 바로 하고 경계하므로 시아버지인 세조는 농담으로 그녀를 폭빈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여하튼 성종에게는 집착하면서도 성종을 죽이려 했으며 항상 성종을 볼 때 낯빛을 온화하게 하지 않았고 흉악한 짓을 함부로 하고 성종을 경멸하여 노예 대하듯이 대했을 뿐만 아니라 성종에게 대놓고 용렬한 무리라고 하고 또 눈을 뽑고 팔을 끊어버리고 싶다고 하고 발자취까지 없애버리겠다며 극악무도한 말을 퍼부었다. 그뿐만 아니라 매 때마다 성종을 경멸하여 성종이 안심하고 음식을 먹을 수 없도록 방해하고 어선이 있는 곳도 아무 때나 출입하자 성종은 자신이 편치않을 때 혹시나 독을 어선에 넣을까 두려워하여 여러가지 방법으로 방비하면서 폐비 윤씨가 지나가는 곳에 어선을 두지 않도록 금했다고 한다. 그리고 항상 성종이 거처하는 곳의 장막을 가리키며 소장(죽은 사람을 땅에 묻거나 화장하기 전에 궤연 앞에 치는 하얀 포장.)이라 말하고 다녔다.
폐비 윤씨는 성종이 편치 못할 때마다 마음에 개의치 않고 오히려 더욱 기뻐하였고 혼자서 꽃 핀 뜰에서 놀며 새를 잡아 희롱하다가도 자신의 몸이 편치 않을 때면 기도하여 "내가 죽지 않기를 바라니 보여 주기를 원하는 일이 있다" 라고 말했는데 평소의 말이 늘 이와 같아서 모두 폐비 윤씨를 두려워하였다고 한다. 또한 스스로 상복을 입으며 여름철에도 표의를 벗고 항상 흰 옷을 입으면서 늘 "내가 오래 살게 되면 후일에 볼만한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고 "내가 오래 살면 장차 할 일이 있다."라고 항상 말하고 다니며 원자를 내세워 뜻을 이루어 권력을 맘대로 휘두르고자 기약하였다. 또 항상 비상 가루를 옷속에 차고 다니고 약물과 방양서(굿하는 책)를 가지고 다니며 사람을 해치고자 하여 몰래 독약을 품고 주머니에 건시와 비상을 같이 넣어 두며 자식을 낳지 못하게 하는 일, 반신불수가 되게 하는 법, 무릇 사람을 해하는 방법을 작은 책에 쓰기도 하였다.
이렇듯 감정 기복이 심하고 충동적인 면, 상대를 안 가리는 극단적 언행에 따른 인간관계 파탄 또 성격이 변하기 시작한 연령을 따지면 경계성 인격장애 또는 조현병일 가능성이 높다. 경계성 인격장애는 보통 청소년기나 성년기 초기에 나타나며 폐비 윤씨가 이러한 성향이 된 나이도 22살 때부터이다.[66] 이 외에도 연산군과 폐비 윤씨가 양극성 장애를 앓았을거라는 논문도 소개되었다. 참고로 흔히 손톱자국으로 성종의 용안을 할퀴는 것이 화근이 되어 폐위되었다고 널리 알려져있지만 실록이 아닌 야사에 나온 내용이다. 야사에 따르면 폐비 윤씨의 생일 날 성종은 하례를 정지하고 표리[67]만 올리자 이에 폐비 윤씨는 분노하여 성종을 찾아다녔으나 하필 성종은 첩의 방에 첩과 함께 있어 이를 발견한 폐비 윤씨는 다짜고짜 아무 연고도 없이 들어와 성종을 화나게 하였으며 야사에는 이날 폐비 윤씨가 성종과 싸우다가 손톱으로 성종의 용안에 상처를 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이 기록 외에도 성종이 껴안으려는 것을 뿌리치다 실수로 용안에 상처를 냈다는 설이 있다. 여담으로 성종이 대부분의 신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끝내 폐비 윤씨를 사사시킨 뒤로도 성종은 과거 폐비 윤씨 일을 생각하면 한밤중에까지 두려워하며 홀로 앉아 잠 못 이루는 일이 잦았다고 한다.
특진관 예조 판성 유지가 아뢰기를,
"성안에 요귀가 많습니다." 영의정 정창손의 집에는 귀신이 있어 능히 집안의 그릇을 옮기고", "호조 좌랑 이두의 집에도 여귀[68]가 있어 매우 요사스럽습니다. 대낮에 모양을 나타내고 말을 하며 음식까지 먹는다고 하니, 청컨대 복은 오고 재앙은 물러가라고 비소서."
하자, 임금이 좌우에 물었다. 홍응이 대답하기를,
"예전에 유문충의 집에 쥐가 나와 절을 하고 서서 있었는데, 집 사람이 괴이하게 여겨 유문충에게 고하니, 유문충이 말하기를 '이는 굶주려서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이다. 쌀을 퍼뜨려 주라' 라고 하였고, 부엉이가 집에 들어왔을 때도 역시 괴이하게 여기지 아니하였는데, 마침내 집에 재앙이 없었습니다. 귀신을 보아도 괴이하게 여기지 아니하면 저절로 재앙이 없을 것입니다. "정창손의 집에 괴이함이 있으므로 집 사람이 옮겨 피하기를 청하였으나, 정창손이 말하기를, '나는 늙었으니 비록 죽을지라도 어찌 요귀로 인하여 피하겠느냐?' 라고 하였는데, "집에 마침내 재앙이 없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유지가 아뢰기를,
"청컨대 화포를 쏘아서 이를 물리치소서"
하니, 임금이 응하지 아니하였다.
-성종실록, 성종 17년(1486) 11월 10일
"성안에 요귀가 많습니다." 영의정 정창손의 집에는 귀신이 있어 능히 집안의 그릇을 옮기고", "호조 좌랑 이두의 집에도 여귀[68]가 있어 매우 요사스럽습니다. 대낮에 모양을 나타내고 말을 하며 음식까지 먹는다고 하니, 청컨대 복은 오고 재앙은 물러가라고 비소서."
하자, 임금이 좌우에 물었다. 홍응이 대답하기를,
"예전에 유문충의 집에 쥐가 나와 절을 하고 서서 있었는데, 집 사람이 괴이하게 여겨 유문충에게 고하니, 유문충이 말하기를 '이는 굶주려서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이다. 쌀을 퍼뜨려 주라' 라고 하였고, 부엉이가 집에 들어왔을 때도 역시 괴이하게 여기지 아니하였는데, 마침내 집에 재앙이 없었습니다. 귀신을 보아도 괴이하게 여기지 아니하면 저절로 재앙이 없을 것입니다. "정창손의 집에 괴이함이 있으므로 집 사람이 옮겨 피하기를 청하였으나, 정창손이 말하기를, '나는 늙었으니 비록 죽을지라도 어찌 요귀로 인하여 피하겠느냐?' 라고 하였는데, "집에 마침내 재앙이 없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유지가 아뢰기를,
"청컨대 화포를 쏘아서 이를 물리치소서"
하니, 임금이 응하지 아니하였다.
-성종실록, 성종 17년(1486) 11월 10일
- 성종실록을 보면 연산군 즉위 전 성안에 요귀(妖鬼)들이 나타났고 호조 좌랑 이두(李杜)의 집에서 여귀(女鬼)가 나타나 말을 하며 음식을 먹었는데 상반신이 없어 음식이 허공에서 없어지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영의정 정창손[69]의 집에서는 귀신이 집안의 그릇을 옮겼다는 폴터가이스트기록이 있다.[70] 기록을 보면 예조판서 유지가 "화포로 귀신들을 퇴마하자" 라고 하였는데 방술(화약)을 이용해 나쁜 귀신을 쫓고 재앙을 막자고 의견을 내세운 것이다.[71] 즉 '양진' 을 하자는 것이었다. 양진은 "나쁜 귀신을 쫓아 재앙을 막는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귀신이 나온다니까 대포 한방 맞으면 귀신도 꼼짝 못할테니 퇴마하자" 라고 성종에게 건의하였는데 이에 성종은 아무런 대응을 안 하였다. 이는 음기가 강한 귀신을 양기인 불(=화포)로 물리칠 수 있다는 논리에서 나온 것이다. 이렇듯 귀신들을 퇴마하는데 있어 흐지부지하게 마무리되는 것 같았지만 훗날 성종의 아들인 연산군이 11년 6월 18일 종묘에서 화포를 쏘아 '양진'하라고 명하여 결국 연산군은 귀신들을 모두 물리치는데 성공하였다. 이 이야기는 일본의 만화가인 미즈키 시게루가 그려서 일본에도 소개되었다. 미즈키 시게루 본인이 만화가 겸 요괴 연구가로서 세계 각지의 민담과 신화를 찾아 직접 방문 취재를 했다고 한다.
- 재위 9년부터 무당굿을 좋아하고 즐겨했다. 총애하는 여인들 중에서도 사내 무당놀이를 잘하는 자가 있었으므로 모든 총애하는 여인들을 데리고 빈터에서 야제를 베풀었다. 스스로 무당이 되어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하고 춤추며 폐비 윤씨가 붙은 형상을 하였으며 백악사에 자주 올라가 굿을 했다. 이런 임금을 보고 궁중에서는 폐비가 빌미가 되었다고 여겼다. 실록 원문을 보면 빌미 수(祟)라는 한자를 그냥 '빌미'로 해석하였는데, 빌미 수(祟)의 본래 뜻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귀신' 또는 '귀신(鬼)이 나타나서 해를 끼치는 것'이라고 한다. 더 나아가 나쁜 일의 원인이나 음모를 꾸미거나 그런 의미로 퍼져나가는 것을 말한며 문맥상으로 보았을 때 귀신이 내린 재난으로 해석하는 쪽이 맞다. 일본에서는 귀신이나 신령이 인간에게 재앙을 내리는 것을 '타타리(祟り)' 라고 하는데 여기에서도 훈자로 '수(祟)'를 사용하였다. 즉 당시에는 연산군이 스스로 무당이 되어 무당굿을 하며 폐비 윤씨가 붙어 빙의된 모습을 보였고 궁중에서는 폐비 윤씨가 원귀되어 연산군에게 빙의되어 재앙을 일으키고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참고로 이 시기에 연산군은 정신질환인 광질[72]을 얻어 때때로 한밤 중에 혼자서 부르짖으며 일어나 후원을 막 달렸다고 한다.
- 나름 무예와 예술에도 재능이 있었다. 연기력도 뛰어났는지 총애하는 모든 여인들을 데리고 빈터에서 야제를 베풀며 연산군이 죽은 자의 말을 하며 그 형상을 취했는데 모든 여인들은 그런 연산군을 보며 두 손을 모으고 몰입해서 시청하였다. 또한 죽은 자의 우는 형상을 하자 모든 여인들은 슬피 울어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연산군은 노래와 춤,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즐겼으며 흥청들과 화합하면서 즐거움을 삼았다. 불시로 궁인들을 뒷뜰에 모아 미친듯이 노래를 부르고 난잡하게 춤추며 즐거움을 삼기도 했다.[73][74] 또한 신하들에게도 노래와 춤을 추라고 명하기도 했으며 간혹 파행적인 춤을 추는 면모를 보였다. 연산군은 대비나 세조의 후궁인 근빈 박씨 앞에서 수치심이나 두려움을 안겨 주는 춤을 추기도 했고 근빈박씨는 나이 80세로 춤을 추기에는 어려웠는데 연산군이 춤추면서 박씨에게도 춤추라고 명하였고 박씨는 연산군의 학대가 두려워 억지로 춤을 추었다고 한다. 또한 연산군이 매 때마다 술에 취하여 발광할 때마다 처용무 가면을 쓰고 경복궁으로 갔는데, 흥청 수백 명에게 풍악을 치게 하였고 인수대비 앞에서 희롱하고 춤을 추었다고 한다. 어느 날 인수대비 앞에서 처용 가면을 쓰고 희롱하고 춤을 추며 괜한 트집을 잡아 대비가 겁에 질려 두려워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며 처용의 옷차림으로 칼을 휘두르고 처용무를 추면서 인수대비 앞으로 나아갔는데 이에 인수대비는 이 일로 크게 놀라 병을 얻자 연산군은 미리 상기를 짧게 하는 제도를 마련했고 끝내 대비는 사망하였다.[75] 대비가 승하해도 슬퍼하는 빛도 없었으며 상례 장례 모든 일을 모두 강쇄해서 행하였다. 보다시피 춤 중에서도 처용무를 좋아하고 가장 즐겨췄다.
처용무는 신라 후기부터 현대까지 행사 때마다 이루어지는 궁중춤으로 기본적인 의미는 처용(병을 내쫓는 신)을 중심으로 만수무강을 기원하고 풍요가 가득하길 바라는 일종의 의식이었다. 악학궤범에 따르면 음력 섣달 그믐날 묵은해의 역신과 사귀를 쫓기 위해 궁중에서 열린 귀신 쫓기 행사인 구나의식에서 2차례에 걸쳐 추는 춤이었다고 전해진다. 춤사위를 가만히 보면 한삼 끝자락을 반대편 옆구리에 낀 채로 손을 앞으로 힘껏 내딛거나 휘젓는 동작이 있는데 이 동작은 귀신을 손으로 쓸어내는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다.[76]
연산군은 궁중에서 처용의 가면을 쓰고 희롱하고 춤추기도 했고 계집들 중 광희악 소속 여산이 가장 처용무를 잘 춰 잔치 때 여산을 불러 짝을 지어 같이 처용무를 췄을 뿐만 아니라 운평들에게 처용무를 가르치되 처용무를 출 때 허리가 가는 미인이 사뿐이 추는 듯한 형식으로 추라고 하는 등 디테일한 지시를 내리기도 했고 흥청에서 몸이 가늘고 키가 커서 맵시가 있는 자들을 뽑아 처용무를 가르치도록 명하였다. 또한 노래 부를 때 일일이 문제점을 집어내기도 하였으며 새 운평이 음악을 연주 할 때 수양수[77] 동작을 모르면 이에 한탄하며 이렇듯 춤의 동작을 모르거나 어설프게 추면 매우 한탄하여 익힐 때까지 훈련을 시키게 하였다. 연산군은 여기들에게 음률을 익히게 하였고 여러 악기를 다루는 것과 다양한 종류의 춤과 노래를 완벽히 익히도록 교육을 시키게 하였다. 그리고 의외로 몸이 날렵하였는데 말 위에서도 처용무와 검무를 추기도 했고 말을 달리다가 거꾸로 말을 타기도 했으며 말을 타고 달리며 활을 쏘기도 했다. 또한 나무도 잘 탔는데 사냥을 즐겨했던 연산군은 어느 날 사냥터에서 직접 나무 위에 시렁을 매고 스스로 나무에 올라가 나뭇잎으로 몸을 가리고서 짐승이 지나는 것을 엿보아 쏘기도 했다고 한다.
- 많은 시를 남겼으며 실록에 수록되어 있는 연산군의 시는 총 141편이다. 실록에 수록된 연산군의 시 141수 중 군주로서 신하에 대한 애정과 배려를 담은 시들이 대부분이며, 이러한 시를 쓰고서는 군주가 신하에게 하사하는 술인 선온(宣醞)과 각종 꽃을 함께 내리는 경우가 허다했었다. 그리고, 종종 신하의 역심을 경계하며 은근히, 혹은 노골적으로 협박을 내비치는 시를 쓰기도 했었다.
또, 말년에는 연회와 음주가무를 즐기는 폭군이었던 만큼, 향락에 대한 탐욕과 희구의 마음이 가득한 시들을 창작하기도 했었다. 그런 반면에 간혹 성종의 계비이자 중종의 어머니인 자순대비 정현왕후에 대한 장수를 기원하며 효심을 담은 시를 짓기도 했었으며, 매우 총애하던 흥청 소속 기생 출신 월하매가 병에 걸려 죽자 그날 슬픔이 깊어 잠 못 자고 너무 애달파 눈물 걷기 어려우며 맘이 애끓는다는 비통한 글이 담긴 월하매를 애도하는 시를 짓기도 하였다. 때로는 시적 감수성이 흘러넘쳐 인생의 덧없음을 한탄하는 자기연민에 빠진 시를 읊조리기도 했었다고 한다.
연산군이 지은 시는 당시에 격조와 운율이 청고하다는 평이 있었고 현대 문학가들로부터는 허무주의를 멋지게 살려 놓으며 풍류성이 뛰어나고 문장이 깔끔하다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또한 부왕 성종처럼 취미로 서예나 그림을 그렸다는데 아쉽게도 남겨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성종이 그린 그림도 남겨지지 않았으나 필체는 남겨져있다.
- 꽃과 나무를 사랑하였다. 특히 연산군의 꽃 사랑은 꽃을 사랑하는데 그치지 않고 꽃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조선의 왕들 중 꽃 가꾸는 취미와 관련해 가장 많은 기록이 남아 있는 국왕이었으며 각 꽃의 생태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을 정도로 꽃에 대한 조예가 깊었다. 시에도 꽃이 많이 등장하였고 고된 업무에 지친 신하들에게 제철 꽃과 술을 하사하기도 하였으며 이 외에도 팔도 관찰사에게 품종 좋은 모란을 봉진하게 했으며 치자 동백 유자 석류 장미 철쭉 들국화 등 각종 화초를 심은 넓은 화단을 조성했고 후원에 영산홍 1만 그루를 심었다고 한다. 참고로 꽃들 중 영산홍과 장미를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 연산군의 미의 의식은 항상 웅장 화려함을 추구하였다.[78] 조선에서 사치를 장려한 유일한 군주이기도 했으며 사관은 "사치와 화려함이 극치에 달하였다."라고 평하며 왕을 비판하였다. 자신의 처용 가면을 금 은 주옥으로 장식하였고 화초와 인물의 형상이 비를 맞아 더러워질 때면 곧 새것으로 바꾸었으며 새롭게 짓는 이궁의 정전을 청기와로 덮고 규모도 크게 지었다. 이 외에도 모든 크고 작은 배를 한강에 모아 배 위에 판자를 깔고 못질하여 누각 4칸을 지었는데 금벽(궁궐이나 사찰 등을 단청할 때 황금색과 푸른빛의 고운 색채로 칠한 것을 뜻함.)이 눈부셨다고 한다.
경회루가 가장 활성화됐던 시기는 연산군 때였다고 한다. 연산군은 경회루 주위를 화려하게 꾸몄는데 경회루 연못에 관사의 배 들을 가져다가 가로 연결하고 그 위에 판자를 깔아 평지처럼 만들고 채붕을 만들었으며 바다에 있는 삼신산을 상징하여 연못 가운데는 만세산, 왼쪽엔 영충산, 오른쪽엔 진사산을 만들어 세 산이 높직이 치솟았다. 그 위에는 전우(신령과 부처를 모셔놓은 집), 사관(절과 도교의 사원), 인물(사람)의 모양을 벌여 놓아 기교를 다하였으며 영충산에는 조정에 있는 신하들의 바라던 것이 뜻대로 이루어 조정에 드날리며 노래와 춤으로 즐거움 희락하는 모양을 상징하여 이렇듯 조정에 있는 선비들의 득의 양양한 모양을 만들고, 진사산에는 소인이 먼 지방에 쫓겨나 의복이 남루하고 용모가 초췌하여 초가집에서 궁하게 살며 굶주려 쓰러져 있고 처자가 매달려 울부짖는 모양을 상징하여 이렇듯 귀양간 사람들의 근심되고 괴로운 모양을 만들었다. 만세산 위에는 봉래궁 일궁 월궁 예주궁 벽운궁을 만들어 모두 금은 채단으로 꾸며 찬란한 금빛이 햇볕에 빛났다. 반면 만세산 밑에는 푸른 난새, 자주빛 봉황새, 연꽃, 모란, 고소대, 봉래산, 황금까마귀, 옥토끼, 은붕어, 황금용 등의 여러 종류 관등을 좌 우보로 나누어 달아 천태 만상으로 기교를 다하여 금은 주취로 꾸몄다. 또한 채색 비단 천을 오려 백화도 만들었는데 백화가 산중에 난만하여 그 사이가 기괴만상이었으며 연못 가운데에 채색 비단을 오려 연꽃도 만들고 산호수도 만들어 연못 가운데에 푹 솟게 심었다.
이 외에도 수백명이 탈 수 있는 황룡주를 만들어 채단으로 꾸미고 연못 위에 띄어 휘황하게 비춰 놓았으며 연산군은 미복으로 잠행하여 황룡주에 올라 타 만세산을 구경하였고 주위에 부용향[79] 수백 다발을 태우고 납거 1천 자루를 늘어 세워 밤이 낮처럼 밝았으며 흥청 수백명들을 시켜다 풍악을 연주하게 하였다. 경회루 누 아래에는 붉은 비단 장막을 치고서 흥청 운평 등 3000여명의 여인들을 모아놓으니 생황과 노랫소리가 비등하였다고 한다.
- 옷 입는 것을 중요시 여겼다고 한다. 기생들은 물론 궐 안의 노비들까지 깨끗한 옷을 입도록 하고 서민들에게는 넓은 소매를 입도록 장려하였으며 품계가 낮은 신하들에게는 흉배를 달게 하고 비단 옷을 장려하였다. 또한 갈포[80]와 마포[81]를 짜되 곱고 굵기를 3등급으로 구분하고 각도로 하여금 이 견본에 의하여 짜 올리도록 상의원에 명하는 등 각도에 갈포와 슬란[82] 등을 봉진하도록 상의원에 명하였다.
- 상당한 미식가였으며 귀하고 비싼 음식을 많이 먹었다. 특히 열대 과일을 엄청 좋아했으며 빈랑 등 희귀한 열대 과일도 많이 먹었다. 전국 팔도를 쥐어짜서 귀한 식재료를 공수하는 걸로 모자라 중국에서 수입해 먹기도 했다. 실록을 보면 중국에 가는 사신에게 중국의 귀한 과일인 여지와 용안을 구해오게 한 기록이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 수박을 먹고 싶다는 뜻을 내비쳤을 때 이를 반대한 신하 김천령을 능지처참하여 사형시키기도 했다. 또한 얼음을 깔아놓은 쟁반에 청포도를 올려 시원하게 먹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으며, 귤도 좋아해서 제주도에 가서 직접 귤나무를 베어오라고 명하였으며 키위랑 비슷한 품종인 다래도 좋아하여 넝쿨째 뽑아다 바치라고 명하였다. 연산군 때문에 후대 왕들은 비싸고 맛있는 것 좀 먹으려 하면 신하들에게 '연산군이 했던 짓입니다!' 하면서 제동이 걸렸다. 과일 외에 그가 즐겨먹은 음식 중에는 사슴의 꼬리와 혀가 있는데, 실록에서는 연산군이 이를 워낙 즐겨먹는 통에 전국팔도에서 달마다 사슴의 꼬리와 혀를 조달해야 했다고 전한다. 이때 그 수효를 맞추지 못했다 하여 함경도관찰사 박건이 국문을 당하기도 했다.
- 연산군의 악명이 워낙 높다 보니 그의 식도락에 대한 근거없는 낭설이 많은 편이다. 예컨데 세간에는 연산군이 스테미너를 위해 마늘을 넣은 장어 백숙을 즐겨 먹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으나 이는 아무런 문헌적 근거가 없다. 몇몇 사람들은 그 근거로 《식료찬요》를 들고 오는데, 이는 연산군 즉위로부터 한참 전인 세조 시절의 문헌인데다가 단순히 당시 조선에 장어 요리가 존재했다는 사실만 알 수 있을 뿐 연산군를 비롯한 어느 왕이 특별히 장어를 즐겨먹었다는 이야기는 전혀 없다. 또한 논산시 연산면에서는 연산군이 오계를 매우 즐겨 먹었기에 그 품종을 오늘날 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홍보하고 있으나 이 또한 역사적으로 근거가 전혀 없는 입소문에 불과하다.[83]
- 어린이용 위인전이나 역사 만화에서는 사치스러운 폭군이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간혹 비만인 모습으로 묘사하기도 하는데, 실제와 거리가 멀다. 연산군의 체형은 호리호리하였으며 한 군사에게 몸과 허리가 가늘어 그다지 웅장하지 못하고 위대하지 않다며 임금의 위엄이 없다는 뒷말을 들었다. 또한 폐비 윤씨가 야사에 의하면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주위 공기가 서늘해질 정도의 미인이었다고 하는데 연산군 외모는 모친 폐비 윤씨를 닮아 고운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어 여인네 같다는 뒷말도 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모습 때문에 연산군은 자신의 외모를 기피하고 컴플렉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대에는 수염이 길고, 육중하고 웅장한 떡대좋은 체형이 건강과 더불어 미의 상징으로 여겼다.[84] 이렇듯 연산군이 외모에 관해서 안 좋은 뒷말을 들었을 정도로 당시 기준으로 외모 평가가 좋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지만, 야사와 실록에선 여자들이 그에게 반했다는 말들이 있다. 미복을 입고 잠행을 자주 즐겨했던 연산군이 잠행을 나갈 때마다 여인들은 연산군 외모에 홀려 당시 연산군이 운영하던 음악예술 모집단인 흥청 운평에 자발적으로 지원하는 경우가 있었고, 또 다른 실록 기록에 따르면 제일 젊고 아름다운 미모의 어떤 양반가 여인을 자주 범하였는데 그 여인은 연산군과 관계를 갖은 뒤로 남편은 안중에도 없고 매일 곱게 꾸미고는 멍하니 궁궐을 바라보면서 상사병이 걸렸다고 한다. 또 연산군과 성추문 있었던 몇몇 사대부 부인들은 임금의 명도 없었는데 궁중 잔치에 있을 때마다 임금에게 잘 보일려고 점차 화려하게 치장하기 시작했고 연산군과 흥청들과 함께 밖에 어울려다니면서 놀러가기도 하여 사대부 여인의 품행을 잃었다며 많이 비판을 받았었다고 한다.
- 성격은 선조들을 닮아서 무인 기질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 전해내려온 기록에 따르면 연산군은 아버지 성종을 닮아 키가 컸다고 한다.[85]
연산군과 그의 아버지 성종의 키가 정확히 몇 척인지는 전해 내려오는 것이 없지만,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록이 전해져온다. 기록에 따르면 어느 날 성종이 내전에 있는 폐비 윤씨를 찾아갔는데 마침 명주를 짜고 있던 중전이 베틀에서 내려와 성종을 맞이하면서 어찌 그리 키가 크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성종은 자기보다 더 큰 사람도 있다며 당시 조정 대신 중 장신 축에 들었던 허종이라는 신하를 내전에 불러들였다고 한다. 실록을 포함한 기록에는 허종이 기골이 장대하다라는 표현만 있고 구체적인 키는 묘사되지 않았는데 조선 후기 인물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사고에 의하면 11척 2촌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당시 척으로 환산하면 키가 2미터가 족히 넘는다고 한다. 성종은 허종과 자기 키를 비교한 다음 조정에서 허종 다음으로 자신이 제일 컸다고 했는데 이를 볼 때 성종도 상당히 장신이었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고 연산군도 아버지를 닮아 키가 컸다고 하므로 장신이었을 것이다.
- 집안에 미남 미녀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인수대비는 그 당시 여성치고 키도 크고 상당한 미인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녀의 외모를 물려 받은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도 미남이었다고 한다. 연산군의 진외증조부이자 인수대비 아버지인 한확 또한 외모가 뛰어났는데 실록에 따르면 그의 외모를 가리키며 '미풍의(美風儀), 준정(峻整)'이라고 표현하였다. 또한 미남이라 황제 영락제가 그를 자신의 아들인 홍희제의 딸의 사위, 즉 자신의 손녀사위로 삼고자 했지만 한확은 조선에서 노모를 모셔야 한다는 이유로 사양하였다고 한다.
한확은 누이 덕과 영락제의 총애 덕분에 위세가 높고 많은 혜택을 누렸는데 실상은 능력도 없는데 세종은 한확이 기간(器幹)이 있다하여 판한성부사를 제수하고 이조, 병조판서를 역임하여 오래 전선을 맡게 했는데 이에 대해 조정에서는 감히 이간하는 자들이 없었다 한다. 또한 한확이 영락제로부터 관직 광록시소경을 받은 것을 세종이 비로소 알게 되자 감사와 병조를 고치고 이조 판서에 임명한 것에 대해 조정 신하들은 인사행정의 임무는 중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한확은 학문에 짧고 대체적으로 어두웠으므로 못마땅해 하였다고 전해진다. 영락제 사후에도 조정 안에서 굳건한 위치었으며 한확의 위세는 대단하였는데 영락제 사후로부터 1년 뒤 당시 장군절제사였던 한확이 김성정의 첩의 딸과 간통하여 신하들이 논핵하기를 청하자 세종은 장군 절제사를 체임하고 한확을 한양으로 돌아오게 하였고 헌사에서는 일의 실상을 조사해 죄과를 논의하여 형을 결정해 적용하기를 청하였는데 이에 세종은 "한확은 내가 죄줄 수 없는 사람이다" 라고 말하며 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참고로 한확의 둘째 딸은 세종과 신빈 김씨 아들인 계양군과 혼인을 하였다. 또한 그의 누이들도 상당한 미인이었다고 전해진다. 한확의 누나인 한씨는 영리하고 총명했을 뿐만 아니라 품위 있고 아름다운 미모라 미모가 곱고 아름다운 미모인 황씨와 더불어 공녀들 중에서도 유일하게 상등으로 삼았다. 경회루에서 명나라 사신들을 맞이하여 잔치를 베푼 어느 날 태종이 경복궁에 거둥하여 황씨 한씨를 포함한 공녀 10명을 근정전에 모으고 두 명나라 사신들에게 고르게 하니 사신들은 한씨를 제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보면 한씨의 미모가 황씨보다 미모가 더 출중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영락제에게 총애를 받아 후궁 '여비'로 봉작되었지만 안타깝게도 영락제 사후 순장당했다. 한확의 여동생인 한계란도 누이처럼 총명하고 아름다워 오빠 한확에 의해 강제로 공녀로 뽑혀들었고 이후 황제 선덕제의 후궁이 되었으며 훗날 선덕제가 죽어도 언니와 달리 다행히 순장되지 않으며 그후로 3명의 황제들을 섬겼고 젊을 때부터 늙을 때까지 수복을 누리며 황실의 녹을 누렸다고 한다. 그녀는 어린 시절 황제 성화제를 보호하고 양육한 공으로 황제 성화제에게도 총애를 받았으며 성화제는 한씨의 족친들에게도 후하게 대접했다고 한다.
한계란은 어릴 때부터 장성할 때까지 배우고 익힘이 많아 황궁에 들어오면서부터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이 밤낮으로 일을 받들며 정성을 다하여 부지런히 힘썼고 신중하고 세밀하고 빈틈이 없어 궁중에 일을 맡아 오랫동안 공로가 드러났다고 한다. 또한 궁인들과 황제의 첩들을 질서 있게 잘 다스리고 4명의 황제들을 공경하고 삼가기를 하루와 같이 하였을 뿐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게 조심하여 말을 망령되게 하지 않고 행동에 떳떳한 법이 있으며 궁안 법도에 하나하나 능히 알고 기억해 모든 집사가 스승으로 높이 받들었으며 빈첩 이하들이 한계란을 모두 여사라고 부르며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한계란의 성품은 유순하고 온화하며 아름답고 착함이 칭찬하기에 족하였고 여러 사람들과 화목하게 지내 빈첩들은 한계란을 신임하고 의심하지 않았다. 한계란은 향년 74세에 사망했는데 사후에도 성화제는 후한 장례를 치러줬고 살아서는 황실의 녹을 누리고 죽어서는 은혜의 내림을 입는 것이 마땅하다며 네 조정을 거쳐 섬기고 황궁에 거처하면서 명나라에서 보지 못한 바를 보았다며 일생이 영화롭고 귀하여 한계란 이름을 역사에 남겼다고 한다.
- 즉위 초에 치통을 앓았다고 한다. 근데 아버지 성종과 이복동생 중종도 치통을 앓았다는 기록이 있다. 일종의 가족력. 중종은 무려 재위 25년까지 치통으로 고생했다고 하며, 연산군은 즉위 초에 치통을 계기로 최초로 칫솔을 사용한 인물로 남아있다. 나무로 만든 양치목으로 양치를 했다는 내용. 그런데 이로 인해 연산군이 항상 치통으로 고생해 표정과 입매가 비틀어졌다 또는 돌아갔다는 떠도는 이상한 루머가 나돌고 있어 연산군 외모에 대해 잘못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실은 즉위 초에만 치통을 앓았었고 가볍게 앓았는지 극심하게 않았는지에 대한 언급은 나와있지 않고 실록에서는 그저 치통을 앓았다고만 표기되어 있다. 일생동안 앓지는 않았으며 치통으로 인해 표정과 입매가 비틀어졌다는 등 이에 대한 내용은 일절 실록이나 야사에 존재하지 않는 기록들이다. 연산군의 외모 묘사에도 이에 대한 내용은 찾아볼 수 없으며 이 외에도 온라인상에서 실록에 따르면 연산군이 손이나 빨고 있고 하도 화를 내 주름이 졌다고 주장한 적이 있으나 이에 관한 내용은 애초에 실록에 전혀 없는 기록이고 마찬가지로 야사에서도 일체 언급되지 않았다. 애초에 어디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기록들이며 연산군 외모 기록에도 이에 대한 내용은 존재하지 않는다. 연산군이 폭군이라 폭군의 이미지만 보고 날조된 내용이 많이 퍼진 것 같다.
- 연산군을 세자시절부터 재위 초기까지 정말 고생시켰던 질병은 종기이다. 그런데 연산군 말고도 많은 조선 임금들은 거의 고질병처럼 종기에 시달렸다. 세자 시절부터 연산군은 창진이라는 피부병을 앓았으며 치료의 기록이 자주 나온다. 치료의 효과를 봐 성종이 의원과 내관에게 말과 목면을 내려주었다. 또한 창병이 아닌 면창이라는 부스럼 질환을 앓았었다. 창병을 앓은 기록은 없다. 세자 시절부터 즉위하고 나서도 면창을 앓아 이때 신하들은 면창의 원인을 추위로 보고 연산군에게 추위를 피하라고 하였다. 이후 연산군의 얼굴이 붉어지고 고름이 나며 소변이 잦은 증상이 있자 어의들은 면창의 원인을 추위로 인한 양기[86] 부족과 스트레스로 보았다. 그 이후에도 임금의 얼굴에 진물과 종기[87]로 성할 날이 없어 면창을 치료하기 위해 의관들이 명나라에 가서 웅황해독산과 선응고라는 귀한 치료제들을 구해왔다. 우선 일단 함부로 임금의 용안에 먼저 사용할 수 없기에 연산군과 같은 피부병 증상이 있는 노비에게 시험했다. 이후에 치료제들을 사용한 노비의 얼굴에 있는 종기가 서서히 완화되는 효과를 보이자 의관들은 다시 명나라에 가 치료제들을 많이 구해오고 제조법을 물어온 다음 임금에게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또한 찬바람을 피해 몸을 최대한 따뜻하게 하였고 양기에 좋은 음식과 약재로 기력을 보충하여 원기와 양기를 회복하였으며 소변이 잦는 증상도 멈추었다고 한다.
그 이후에 면창 증상에 대한 언급이 딱 한번 있었는데 전과 다르게 심한 증상이 아니고 가벼운 증상이었으며 더군다나 그 전까지는 면창 증상에 대해 언급이 여러 나왔었다. 전에 비해 증상이 조금씩 완화되어가고 있으며[88] 그 이후의 다른 기록에서는 간접적으로 완치되가고 있다는 늬앙스의 서술이 있기 때문에 완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연산군의 얼굴에 종기(부스럼)가 떠나지 않았다는 내용은 세자 때의 기록이며 치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피부병으로 인한 흉터나 자국이 생겼을 거라는 추측이 있지만 이에 대한 얘기는 실록이나 야사에 일체 언급되지 않았다. 이덕형[89]이 기록한 수필집 죽창한화를 보면 연산군 피부병은 완전히 호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임진왜란이 터져 전라도에 머문 이덕형이 97세인 한 노인을 만나 그 노인한테서 연산군 외모 묘사를 듣고 자세하게 서술한 기록이다. 어린시절 노인은 당시 한양에서 재위 끝무렵 연산군의 얼굴을 직접 봤으며 그 해 가을에 반정이 일어났다고 하였다. 노인은 연산군이 키가 컸으며 빛은 희고 수염이 적으며 눈에는 붉은 기운이 있었다고만 묘사하였다. 이를 볼 때 연산군의 피부병 치료가 제대로 안됐다면 분명 노인은 빛은 희나 용안이 얽었다 또는 곰보 자국과 종기와 흉터(자국)이 있었다고 언급했을 것이다.[90] 그러나 이에 대한 얘기는 일체 언급되지 않았기에 연산군의 종기 질환은 제대로 치료되었으며 만성적인 피부질환도 아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보통 미디어에서 연산군의 피부가 안좋았다는 얘기가 나올 때 질환을 치료한 이에 대한 얘기는 언급이 없고 일생동안 피부병을 앓았다~ 여드름이 많았다 식으로만 알려져있다. 또한 연산군 뿐만 아니라 이복동생인 중종은 얼굴과 몸에 아토피 피부 질환이 있었으며 외모 묘사에도 얼굴이 약간 얽었다는 묘사가 언급되있고 세조 또한 극심한 피부병을 앓았었다. 이 외에도 태종, 세종, 문종, 성종, 광해군, 정조는 종기 질환을 숙종, 현종, 헌종은 천연두를 앓은 적이 있다. 이렇듯 수많은 조선 임금들은 유전처럼 종기질환이나 피부병을 앓았었다.
즉위 초 연산군은 잔병치레가 잦았다. 재위 중반~ 후반에 들어서는 눈병 외에는 다른 병상은 없었고 사소하고 가벼운 증상들만 있었는데 금방 호전되었으며 재위 후반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었다. 스트레스도 하나의 원인으로 보았다고 앞서 언급했었는데 그동안 연산군은 대간들로 인한 스트레스 영향으로 금방 완쾌되지 않았고 완쾌 됐어도 다시 또 재발하는 등 이러한 과정을 반복했다. 그러나 연산군이 신하들을 억누르고 나서부터는 신하들의 족쇄로부터 자유를 찾았는지 몰라도 확실히 초기 때와 달리 활기차고 연산군의 몸 상태는 많이 좋아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운평과 흥청들의 외모를 항상 중요시여겨 부스럼같은 피부질환이 있으면 곧 치료하게 하였다.
- 영화 간신에 나오는 연산군은 실제 외모 고증과 상관 없이[91] 관자놀이에 붉은 반점을 그려넣었는데 이에 대해 배우 김강우는 인터뷰에서 연민을 넣고 이해를 시키고 싶어 붉은 반점을 그려넣었다고 하였다. 어머니로 인해 미쳐가는게 아닌 태생적으로 결핍이 많은 사람으로 설정하였으며 결핍을 디테일하게 표현하기에는 시간이 없으니 외적으로 이해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산군 얼굴에 붉은 반점을 그려넣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 연산군의 어진은 실제로 전해내려 오는 것이 없다. 온라인상 연산군 상상화라고 알려져있는 그림은 화백이 그린 것이 아닌 한 네티즌이 그린 것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그 그림이 연산군의 실제 모습으로 오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 연산군 시기에 연은분리법이 개발되었다. 이는 훗날 동아시아 은생산량 발달에 큰 영향을 끼치며 훗날 세계사조차 바꾼다. 조선은 그 사실을 전혀 모르지 않았으나[92] 조선에 은이 별로 없어 잘 적용되지 않았다.
- 연산군은 재위 기간 동안에 기침을 한 신하를 처벌한 적이 있었다. 가령 연산군일기 12년(1506) 3월 27일에는 김새(金璽)가 왕 앞에서 기침을 했다며 이는 매우 거만한 행동이므로 국문(鞠問/鞫問)하라고 명령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다.
- 충무공 이순신과 약간의 인연이 있다. 세자 시절 연산군을 교육한 세자 시강원의 관리 중 이거(李琚)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순신의 증조부이다. 이거는 연산군이 즉위한 뒤엔 순천부사 등의 자리를 역임했으며 연산 8년 무렵에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 왕의 남자를 감상한 가수 안예은은 연산군과 공길의 감정변화를 공길의 시점에서 풀어나간 노래 '홍연'이라는 노래를 작사, 작곡했다. 이 노래로 K팝 스타 시즌5 예선에 참가한 안예은은 유희열에 의해 슈퍼패스로 합격한 것이 화제가 되었고, 후일 안예은이 데뷔한 이후, 이 노래는 연산군 시대의 이야기를 다룬 사극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에서 6화와 7화의 엔딩곡으로도 사용되었다.
6. 대중매체
잊을 만하면 그를 다루는 작품이 나와 재탕, 삼탕 이상을 자주 하는 사극의 주인공이다. 조선 왕조 최악의 폭군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다가 개인사 뿐만이 아니라 가족사를 비롯해 워낙 인생이 드라마틱해서 대중매체에서 유난히 많이 다뤄지는 것 같다. 비단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주연이든 조연이든 최종 보스 수준으로 비중이 높은 경우도 많다. 1980년대 이전에도 미디어 믹스가 자주 이루어진 인물이었다.이대근, 정진영 등을 빼고는 20~30대 배우가 대부분 담당하였으나[93] 이상하게 연산군은 40대 배우가 많이 담당한다는 편견이 있는데, 이는 한국 영화 역대 최고의 흥행작 중 하나인 <왕의 남자>의 정진영의 잔상인 듯 하다. 실제로 2010년대 이후로 주로 30대 중후반 배우들이 연산군을 많이 연기하게 된다. 그만큼 대사량이 많고 감정선도 오락가락하는 인물이라 연기력이 웬만큼 절륜하지 않는 이상 연기하기 굉장히 힘든 배역이기도 하다.[94] 드라마적으로 해석하면 출생의 비밀, 성격적 결함, 예술가적 기질,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과거사, 최후의 파멸 등을 겸비한 그리스 고전 비극의 주인공 같은 인물이다.
한국 사극에서 연산군을 많이 다룬 작가 하면 단연 드라마 작가 정하연을 빼놓을 수가 없다. 정하연 작가는 《장녹수》, 《왕과 비》, 《인수대비》 등의 집필을 맡아서 연산군 시대를 다룬 드라마만 3개를 집필하는 진기록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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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는 《왕과 나》의 정태우, 아랫줄 왼쪽은 《왕의 남자》의 정진영, 오른쪽은 《왕과 비》의 안재모
- 1962년 신정과 구정에 연달아 개봉한 신상옥 감독의 2부작 《연산군》과 《폭군 연산》에서는 배우 신영균이 연기했다. 이 2부작 영화는 당대에 보기 힘든 해석으로 유명하다. 포인트는 연산군이 모든 잘못을 깨닫고 정치를 원상태로 돌리려고 하는데 다음 날 중종반정이 일어난다. 한국 영화로서는 정말 이례적으로 상영 시간이 3시간을 넘긴다. 그러나 신상옥 본인은 《연산군》과 《폭군 연산》을 흑역사로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연산군》은 신정 프로에 맞춰서 서둘러 제작하느라 제작 기간이 불과 2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고 《폭군연산》 역시 흥행업자들의 독촉으로 서둘러 만드느라 작품의 완성도가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심지어 북한에 있을 때 신상옥 감독은 서울에 있던 조카에게 편지를 보내 《연산군》과 《폭군 연산》의 오리지널 네가를 소각하라고 지시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한국영상자료원에 보관되어 있는 오리지널 네가를 어떻게 할 수 없었는데 신상옥 감독은 귀국한 후에 한국영상자료원에 보관되어 있는 《연산군》과 《폭군 연산》의 오리지널 네가를 반출해 가서는 각각 14분, 54분씩 삭제 재편집을 해서 가져다 놓았다. 심지어 《폭군 연산》은 반출해 간 네가가 유일본이었던지라 《폭군 연산》의 사라진 54분은 이제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다.
- 1970년 개봉한 공포영화 《이조괴담》에서는 배우 이강조가 연기했다. 당시 신상옥 감독이 만든 공포 호러 영화로서 전형적인 우리가 알고 있는 전설의 고향을 모티브의 원조격으로 내용은 발정난 연산군이 선비의 아내를 취하려고 하자 속이려 몸종을 들여보냈는데 이를 뒤늦게 알아챈 연산군이 화내어 몸종을 죽인다. 연산군은 선비 가족을 붙잡아 죽이려 군졸을 보냈는데 선비는 도피 안하는 대신 아내만 도피를 시키는데 도와준 선비는 연산군에 의해 붙잡아 죽임을 당한다. 선비의 아내는 같이 키우고 있는 고양이와 도피했지만 같이 키우고 있는 고양이가 없어지자 아내는 고양이를 찾아 헤매지만 결국 고양이가 있는 자기가 살고있는 집으로 오게 된다. 이 때 남편이 죽었다는걸 알아채고 아내는 자결을 하게 되는데 고양이는 죽은 주인의 피를 먹고 자신의 부탁으로 다른 여인인 장녹수의 몸을 빌려 처절하게 복수한다는 내용. 유치하지만 당시 파격적인 고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EBS에서 방영하기도 했다.
- 1984년 MBC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 - 설중매》에서는 배우 임영규[95]가 연기했다. 《조선왕조 오백년》의 신봉승이 자주 다루는 시대가 세조 ~ 연산군까지이다. 인수대비의 일생의 마침표를 찍는 비극으로 그리고 있는데 실제로 최고의 인기작인 《설중매》의 후반부가 바로 이 사건을 다루고 있다. 임영규 – 연산군, 이미숙 – 장녹수, 고두심 – 인수대비인데 원작 소설은 대단히 잔인하고 검열삭제가 난무하는 작품이다. 이를테면 검열삭제 묘사가 제대로 나오고 귀인 엄씨와 귀인 정씨를 처단하고 시체를 훼손하는 이야기 역시 아들들에게 직접 때려 죽이게 하고 완전히 나체로 만들어 현장에서 찢어버리게 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에 비해 드라마판은 가급적 수위를 낮추었다.
- 1988년 개봉한 영화 《연산일기》, 연극 《문제적 인간 연산》에서는 배우 유인촌이 연기했다. 특히 유인촌은 연극인 《문제적 인간 연산》에서 햄릿 연기[96]와 칼리굴라의 연기를 그대로 보여준다.[97]
- 1994년 KBS 드라마 《한명회》에서는 배우 이민우[98]가 연기했다. 드라마 끝 부분에 잠깐 나와 비중은 적었지만 한명회가 죽은 후 갑자사화를 벌여 부관참시를 하는 장면이 아주 강렬했다. 특히 북을 두들기며 "닥치시오!"하고 외치는 장면은 인터넷이 발달한 현재라면 플짤감이다. 이 때가 이민우가 막 성년이 된 무렵인데 연산군 연기로 그는 아역 배우에서 성인 배우로 성공적으로 전환했다. 링크된 영상에서 노사신이 앉아 있는건 노사신이 이미 무오사화가 끝난 뒤 얼마 안되어 죽었기 때문에 이는 고증오류다. 극중에서 홍귀달이 폐비 윤씨의 신원에 반대하다 유배간 걸로 묘사되었지만 홍귀달은 갑자사화 당시 경기도 관찰사 자리에 있었으며 손녀를 입궐시키라는 명을 거역한 죄로 장형을 받고 유배되던 도중 교살되었기 때문에 이 역시 고증 오류다.
- 1995년 KBS 드라마 《장녹수》에서는 배우 유동근이 연기했다. 파천무의 세조 이후 유동근의 두번째 조선 국왕 배역이며, 유동근은 연산군 이후에 태종 이방원(용의 눈물), 흥선 대원군(명성황후), 태조 이성계(정도전)까지 맡게 된다. 재밌는 것은 유동근은 장녹수 종영 이후 이어서 방영된 KBS 사극 '조광조'에선 조광조역을 맡았다는 점.
- 1998년 KBS 드라마 《왕과 비》에서는 배우 안재모[99][100]가 연기했다. 특히 폐비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할머니 인수대비의 지독한 냉대로 인해 점차 사이코패스 반항아가 되어 항상 할머니한테 엿 날릴 궁리를 주로 하며[101], 나중에 갑자사화 이후로는 서로 '나 죽고 너 죽자' 식으로 달려들며 대립한다. 심지어 연산군이 그토록 총애하던 김자원을 인수대비로 잘못 보며 죽이는 실수까지 범했으며,[102] 마지막에 폐위되면서까지도 "할머니 소원대로 폐주가 되었습니다!"라고 미친듯이 웃어대면서 춤까지 추는 것은 덤. 극 중 인수대비와 연산군의 치열한 대립은 살벌했던지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등골을 서늘게 만들 정도다. 덕분에 중반까지 부진하던 《왕과 비》가 연산군의 등장으로 시청률이 크게 상승하는 뒷심을 발휘하여 유종의 미를 거뒀다.
- 2003년 레전드 사극 대장금 에서도 극 초반에 잠시 등장하며 배우는 정기성. 등장이 적은 만큼 다른 작품들에 비해 악행과 횡포들은 직접 나오지 않지만 후에 자신의 모친인 폐비를 모신 궁녀가 모친이 사약을 먹고 피를 토하며 묻혔던 손수건을 보여주자 극대노 하여 대대적인 숙청을 시행한다.
- 2005년 개봉한 영화 《왕의 남자》[103]에서는 배우 정진영이 연기했다. 현재까지 대중적인 연산군 연기의 최고봉으로 광기와 애정 갈구가 혼재된 연산군의 심리를 가장 잘 묘사해 냈다.
- 2007년 SBS 드라마 《왕과 나》에서는 배우 정태우[104]가 연기했다.[105] 정태우는《왕과 나》의 연산군 역에 도전하여 당시 막장가도를 달리던 이 드라마를 연기력으로 살려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왕과 나》 후반부는 '왕과 나'가 아니고 '연산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처선이 죽은 후 드디어 정신을 차리고 다음 날부터 바른 정치를 하겠다고 다짐[106]하는데 그날 밤 중종반정이 일어난다. 반정군이 들이닥치자 처음에는 어이없어하며 몇몇 중신에게 "네가 왕좌에 앉으려 하느냐?"고 패기 넘치게 따진다. 그러나 반정군이 진성대군을 옹립하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는 표정이 순식간에 누그러진다. 진성대군이라면 양위 받을 자격이 있다며 순순히 왕의 자리에서 물러난다.[107] 또한 정현왕후 및 인수대비와의 관계도 다른 사극에서의 평면적인 적대 관계가 아니라 상당히 입체적으로 나온다. 작중 연산군의 반발감도 단순한 증오가 아니라 왜 자신을 좀 더 아껴주지 않았냐는 애정 갈구에 가깝다. 친아들이 아닌데도 따뜻하게 대해주는 정현왕후에 대한 연산군의 심정은 복잡미묘하다. 연산군이 인수대왕대비전에 난입하여 패륜을 저질렀을 때만은 정현왕후가 참다 못해 "대왕대비에게 사죄하라"며 "이를 듣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회초리를 들겠다"고 단호히 충고했는데 이 때 연산군이 심경을 털어놓는다. 술을 퍼마시며 반항적이던 눈빛이 갑자기 울먹이는 눈빛으로 변하고 "대비마마, 어찌 진즉 소자에게 이리 말씀해주시지 않으셨사옵니까? 어찌 소자가 잘못하였을 때 질책하고 회초리를 쳐주지 않으셨사옵니까? 소자, 대비마마께오서 귀하게 키워주셨사오나 친자식이 아니어서 회초리 한 번 맞아보지 못한 것이 더 한스러웠다는 것을 어찌 모르셨사옵니까? 소자는 진성대군이 참으로 부럽사옵니다." 이에 정현왕후도 차마 더 뭐라 하지는 못하고 연산군을 안쓰럽게 본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과는 다르게 특이하게도 꼬꼬마 원자 시절부터 자신의 생모의 존재를 알고 있으며 자신의 생모가 사사되었다는 사실까지도 이미 인지하고 있다는 것.[108]
- 2011년 JTBC 드라마 《인수대비》에서는 배우 진태현이 연기했다. 정하연 작가는 1998년 KBS 드라마 <왕과 비> 대사를 그대로 복붙해버린다. 안타깝게도 극 중 진태현이 연기했던 연산군은 안재모가 연기했던 연산군의 어설픈 복제판으로밖에 보이지 않아 시청자들로부터 안재모의 연기와 비교당하면서 혹평을 얻기도 했다.
- 2015년 개봉한 영화 《간신》에서는 배우 김강우가 연기했다. 작정하고 19금 성인영화로 나온 만큼 연산군 영상물 중에서 가장 포악하고 광기어린 연산군을 구현해냈다. 잔혹한 살육 행각과 섹스 중독적 엽색 행각[109], 격한 감수성과 합쳐진 광기, 한편으로는 치세 초반에는 왕으로서 제법 제대로 통치했었다는 것이 납득될 통찰력도 보여준다. 덕분에 폭군으로서는 가장 실제 역사 기록에 가까운 연산군 묘사로 꼽힌다. 이런 모습을 열연했던 덕분인지 극장가에서는 잔혹성과 선정성에 호불호가 갈려서 큰 재미는 못봤지만 2차 판권에서 대박을 쳤으며 김강우의 연산군 연기 자체는 높은 평가를 받는다.
- 2017년 MBC 드라마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에서는 배우 김지석[110]이 연기했다. 김지석이 연산군 역을 맡아 "양반이든 천민이든 여자든 남자든 다 똑같은 인간이다. 유일하게 다른 이가 있다면 하늘님의 자식인 왕 하나 뿐이다. 왕 외의 모든 이들은 왕의 종일 뿐이다."라며 전제 왕권이라는 미망을 좆아 광기에 휩싸이는 연산군 역을 잘 연기했다. 해당 문서 참조.
- 2017년 KBS 드라마 《7일의 왕비》에서는 배우 이동건이 연기했다. 그런데 팬층 사이에서는 '이 드라마는 이역과 단경왕후 신씨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가 아니라 연산군을 미화하려고 만든 드라마다', '이 드라마의 진주인공은 연산군이다'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연산군의 비중이 크고 가장 서사가 탄탄한 캐릭터로 그려져 있다. 잘못된 성격을 타고난 건 아니었지만 모친 폐비 윤씨 때문에 연산군을 왕위에 올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부친 이혈이 죽기 직전 자신에게 "진성대군이 성인이 되거든 왕위를 양보하고 상왕으로 물러나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걸로도 모자라 자신의 유언을 적은 비밀 유언장까지 만들어 어딘가에 감춰뒀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어머니가 폐비라는 이유로 모든 걸 진성에게 빼앗기고 살았는데 원래부터 내 것이었던 왕위까지 진성에게 양보하라는 말이냐?"는 이유로 진성대군을 호시탐탐 의심하고 괴롭히다 끝내 진성대군과는 돌이킬 수 없는 관계가 되고 말았다는 설정이 붙었다. 연산군이 광기 어릴 정도로 권력을 추구했던 이유도 아버지의 비밀 유언장 때문에 왕위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인하여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절대적인 왕권을 갖고자 했기 때문으로 나온다. 나중에는 주인공인 신채경을 두고 진성대군과 연적 관계로까지 얽히게 되는데 드라마를 보면 신채경이 진성대군보다 연산군과 함께 있는 장면이 더 많이 나오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유배를 가던 도중 박원종 일파가 보낸 자객들의 습격을 받고 상처를 치료하지 못해 끝내 유배지에서 죽음을 맞게 되는데 임종 직전 자신을 보러 온 진성대군에게 사죄하면서 눈을 감으려던 찰나 자신을 향해 손을 내미는 아버지의 환상을 보며 "드디어 아바마마께서 내게 손을 내미셨다"는 유언을 남기고 절명한다.
- 《연산군을 위한 변명》(신동준 著, 지식산업사)에서 그에 대한 재조명을 추구했다지만 실은 극단적인 옹호로 일관하고 역사학계의 연구는 거의 무시했다.(그래서 불쏘시개 목록에도 올랐다.) 《연산군-그 인간과 시대의 내면》(김범 著, 글항아리)이 연산군의 면모를 아는 데에는 훨씬 낫다.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얼굴에 거의 항상 반창고를 붙이고 다닌다. 연산군은 세자 시절부터 재위 중반까지 피부병을 앓아 얼굴에 종기가 났었는데 이걸 표현한 것이다. 나중에 8권(중종), 15권(경종, 영조), 18권(헌종, 철종), 20권(망국)에서 엑스트라로 나왔을 때도 빼먹지 않고 붙이고 나왔다. 이 책에서는 즉위 4년까지 군주로서 건실하게 나라 일을 한 모습을 재조명했지만 후에 왕권을 강화한답시고 연이은 사화를 일으켜 엄청나게 비대해진 대간과 훈구 대신들을 찍어 누르고 강해진 왕권으로 국가 업무에 대한 비전없이 그저 자기 마음대로 흥청망청 놀고먹고 백성들까지 괴롭힌 것을 비판하면서 그저 폭군에 지나지 않았음을 피력하며 "그 후 조선에서 연산 같은 왕은 더이상 나오지도, 나올 수도 없었다."는 총평을 내리고 있다. 그야말로 반면교사가 어떤 것인지 몸소 보여준 인물로 조선 왕조에서 유일하게 중국 황제급의 권력을 휘둘렀던 국왕이었다고 언급되는데 선조, 인조, 고종 등과 함께 가장 통렬한 비판을 받은 군주들 중 1명이다. 그래도 연산군 편의 부제가 "절대왕권을 향한 위험한 질주"인 데서 보이듯이 '위험한 질주'와 더불어 '절대왕권'의 배경이 무엇인지 나름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대체역사물로는 <봉황의 비상>, <이순신의 나라>를 쓴 슈타인호프 작가가 주인공이 연산군에 빙의하여 조선을 발전시킨다는 <명군이 되어보세!>를 연재했다.[111]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에 독자가 올린 박시백 조선왕조실록 무종만화에 이 작품 세계선에서 후손들이 본 무종(연산군)의 모습이 요약되어 있다.
외전에서 연산군의 원래 영혼은 즉위하고 몇 달만에 재석에게 몸과 왕좌를 탈취당했기에 태조에게 잡귀에게 몸이나 뺏기는 놈이라며 구박받고 있다. 그나마 원 역사와 같은 폭군이 되기 전에 재석에게 몸을 빼앗기고 죽은 것으로 처리되어 영혼이 극락으로 보내졌고, 공식적으로 몇 달이라도 임금 노릇을 해보기는 해서 성친왕과 달리 임금 모임에는 낄 수는 있지만, 제대로 임금 노릇도 못 해봤기에 업적이 없는지라 없을 무 자를 써서 무종(無宗)이라는 별명으로 놀림받는다. 생전에 공식적으로 지은 죄만 없을 뿐이지 저승서도 성격은 그대로여서 그가 재석인 줄 알고 찾아온 왕비 신씨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어 쫓아내고, 후손들이 무종에게 올리는 제삿밥은 뻔뻔하게 받아먹고 있다.
- 대체역사물 <대군으로 살어리랏다>에서도 진성대군에 빙의한 주인공의 형으로 등장한다. 여기서는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치라 하면서 정작 선비의 길을 따르지 않는 대신들의 모순에 대해 고뇌하는 등 입체적인 모습이 두드러지며 흑화 직전의 시점에서 주인공의 개입으로 폭군의 길에서 벗어나 이 시대에 만연한 유교탈레반을 쓸어버리고 오키나와를 정복하며 요동을 명나라로부터 넘겨받아 선정을 베푸는 등의 업적을 세우며 후세에 희대의 명군으로 평가받기까지 하는 제왕이 된다. 묘호는 무종.
웹툰판에선 현대에 넘어와서 배우생활을 하기도 했다.
- 학습만화 why? 폐위된 임금에선 처음에는 명군의 모습을 드러내지만, 점차 엇나가기 시작하다가 갑자사화에서 강마루가 본인을 말리려고 하자 네놈도 죽고 싶냐고 험악하게 돌아본다. 이후 계속 역사대로 가다가[112] 주인공 일행들이 설거지와 빨래를 하며 본인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자 아무리 죽여도 끝이 없구나, 믿었던 너희들까지 날 비난하다니!라고 소리치며 칼을 휘두르려 하다가 미르에 의해 실패로 돌아간다. 마지막엔 반정군들이 들이닥치자 한 마디 남기는 것으로 등장 종료.지은 죄가 깊고 무거워 이리 될 줄 알았다.
- 대체역사물 <경제왕 연산군>에서는 현대의 경제학과 대학원생이 연산군에 빙의하여 화폐제도 등 경제적인 면에 대한 개혁을 해나가고 있다.
- 대체역사물 <연산군의 셰프로 살아남기>에서는 현대에서 과거로 온 여주와...
- 중종이 여성으로 치환되어 나오는 가상의 역사물 <조선공주실록>에서는 성종의 외사촌 형제인 한건과 폐비 윤씨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호적상 이복여동생인 진성공주를 여자로서 사랑하고 있다.
- 2023년 개봉된 한국 영화 익스트림 페스티벌은 정종 축제가 연산군 축제로 바뀌면서 문화 스타트업에 의해 벌어지는 막장 축제 상황을 담았는데, 축제 구성이 사약 빨리 먹기 대회, 연산군 정신 스피치 경연대회, 각종 전통 고문체험, 갑자사화 공연으로 그야말로 막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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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 | 이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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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율리우스력 11월 23일.[2] 조선 역사상 최초로 중궁인 교태전에서 태어난 왕이다. 연산군 이전에도 궁궐에서 태어난 왕이 둘(단종, 성종) 있으나 이들은 세자빈의 거처, 동궁인 자선당에서 태어났다.[A] 율리우스력 1월 25일.[4] 율리우스력 11월 20일.[5] 중종반정으로 신하들에 의해 왕위에서 폐위되었기 때문에 '능'이 아니라 '묘'로 불린다.[6] 율리우스력 3월 14일.[A] [A] [9] 율리우스력 9월 18일.[10] 실제로 연산군은 원자 - 왕세자였기 때문에 즉위 이전에 받은 봉호는 없으며, 중종반정으로 폐위 이후에 받았다. 봉호는 구 연기군(燕岐郡)(현 세종특별자치시)의 별호인 연산(燕山)에서 따왔다.[11] 연산군은 끝내 자신이 두려워하던 역사에 영원히 폭군으로 남게 되었다.[12] 물론 이마저도 중종반정으로 폐위되면서 삭탈되었다.[13] 즉 버려진 군주, 혹은 버려진 왕, 또는 버림받은 왕이란 의미이다. 조선 왕사에서 연산군이 지닌 위치를 보여주는 호칭이다.[14] 신숙주의 친사촌동생이다.[15] 신숙주의 아버지 신장의 남동생이다.[16] 신수근의 동생으로 성격이 후덕하고 엄정하기로 유명하였다. 실록을 보면 연산군이 신씨를 아낀 대목이 부분부분 등장하는데 "신씨가 왕대비와 선릉에 친히 제사를 하러 갔다고 연산군이 교외나 제천정에 나가 직접 맞이하였다"는 기록도 있고 신씨가 친잠례를 했다는 이유로 교서를 반포한 적도 있으며 그녀의 후덕함을 황금에 새겨 치하하기도 했다. 서슬퍼런 갑자사화 때 연산군을 거스르고도 뒤탈이 없었던 거의 유일무이한 인물인데 연산군이 손에 검을 들고 자순대비에게로 찾아가 얼른 밖으로 나오라며 협박을 하자 신씨가 막아 자순대비를 구원하였다. 중종반정 후 연산군과 신씨는 유배될 때 각각 다른 곳에서 보내졌는데 신씨는 "연산군과 함께 가게 해달라"고 울며 매달렸다고 한다. 실록에 따르면 연산군이 죽자 교동수직장 김양필, 군관 구세장은 이 사실을 중종에게 보고하면서 "죽을 때 다른 특별한 말은 없었고 그냥 중전이 보고 싶다는 말만 남겼습니다"라고 말했다. 연산군이 죽고 난 뒤 그의 신주는 신씨가 직접 모셨고 원래 연산군의 무덤은 처음에 강화도에 있었지만 신씨가 간청하여 몇 년 뒤 오늘의 위치로 이장했는데 신씨 역시 사망한 후 연산군의 옆에 묻히게 되었으니 결국 유언은 이루어진 셈.[태지] 명 홍치 4년(1491년) 9월 2일 해시에 태어난(皇明弘治肆年玖月貳日亥時生)/세자빈의 딸 수억아기씨의 태를(世子嬪女壽億阿只氏胎)/홍치 6년(1493년) 7월 5일 유시에 묻음(弘治陸年柒月伍日酉時藏)[18] 큰딸 휘신공주는 구문경에게 시집가서 아들 구엄을 낳았는데, 구엄이 연산군을 시봉(侍奉)했고, 지금도 구엄의 후손들이 연산군의 묘를 돌보고 있다. 구엄은 연산군의 외손 봉사를 하면서 왕실로부터 많은 특혜를 받았다. 오래도록 왕실의 외척으로 예우를 받았고, 범죄를 저질러도 연산군의 제사를 끊어지게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감형의 혜택을 받았다. 그러나 구엄에게도 아들이 없었고, 구엄이 사망한 후 외손인 이안눌이 연산군의 제사를 계승했다. 이안눌은 구엄의 친외손자는 아니었는데, 이동의 아들로 태어나 아저씨뻘 되는 이필의 양자로 입양되었고, 그 이필의 부인이 바로 구엄의 딸이었다. 연산군의 제사는 부인 신씨가 시작하여 외손자인 구엄에게 이어졌고, 다시 구엄의 외손자인 이안눌과 그의 후예들에게로 이어졌다.[19] (중력) 금상 전하(今上殿下)가 우의정(右議政) 신승선(愼承善)의 따님을 맞이하여 비(妃)로 삼아서 2녀를 탄생하였는데, 모두 어리다." - 《성종대왕 묘지문》[20] 왕세자빈(王世子嬪)이 원손(元孫)을 탄생(誕生)하였다. - 《성종실록, 성종 25년 2월 23일 임오 5번째기사》. 국기일(國忌日)이었는데, 원손(元孫)이 졸(卒)하였다. (후략) - 《성종실록, 성종 25년 3월 29일 무오 1번째기사》[21] 다만 중궁(中宮)의 산실(産室)이 동궁(東宮)에 있는데, 다음 달은 바로 중궁의 산월이라 <후략>-《연산 1년 2월 11일 을축 1번째기사》[태지2] 명 홍치 10년(1497년) 12월 19일 자시에 태어난(皇明弘治十年十二月十九日子時生)/원자 금돌이 아기씨의 태를(元子金石乙伊阿只氏胎)/홍치 14년(1501년) 7월 초2일 미시에 묻음(弘治十四年七月初二日未時藏)[23] 반정 당시 세자 이고는 8살이었는데, 학구열이 높아서 마치 할아버지 성종의 풍모를 가지고 있었다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 야사에 따르면 중전 신씨의 오빠인 신수근이 박원종으로부터 반정에 참여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는데, “임금은 포악하지만 세자가 총명하니까 기대를 걸어보자”며 참여하지 않아 결국 역적으로 몰려 제거되었다고 한다.[태지3] 명 홍치 13년(1500년) 5월 20일 미시에 태어난(皇明弘治十三年五月二十日未時生)/대군 인수아기씨의 태를(大君麟壽阿只氏胎)/홍치 17년(1504년) 정월 29일 인시에 묻음(弘治十七年正月二十九日寅時藏)[태지4] 명 홍치 14년(1501년) 5월 14일 오시에 태어난 대군 인수(仁壽) 아기씨의 태를 홍치 14년(1501년) 9월 12일 축시에 묻다. - 《대군인수(仁壽)아기씨태지》[26] 전교하기를, "둘째 대군(이인수)이 졸하였으니, 임사홍을 불러 지리관(地理官)들을 데리고 산소 자리를 가보게 하라. 또 이총수(李聰壽) 아기의 산소 자리 본 관원을 가두고 국문하라. 대저 산소 자리를 보는 것은 동생에게도 모두 길하게 하려는 것인데, 지금 이영수(李榮壽)·총수 두 아이가 잇따라 죽으니, 이는 지리 보는데 조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였다. - 《연산군일기, 연산 9년 10월 18일 신해 6번째기사》[27] 어서(御書)를 내리기를, (중략) 1. 왕비(王妃)의 해산(解産)이 임박했는데, 만약 해산한다면 상사(喪事)와 소선(素膳)에 관한 일을 예관(禮官)을 불러서 의논하도록 하라." 하였다. (후략) - 《연산군일기, 연산 8년 5월 29일 경자 3번째기사》. 《연산군부인 신씨의 묘지명》에 신씨가 아기 때 죽은 자식들도 포함하여 4남 3녀를 낳았다고 적혀있고 아버지 신승선이 사망할 당시, 신씨는 만삭이었는데 연산군이 이를 걱정하여 신씨에게 곡애를 못하게한 기록이 있다. 이것으로 보아 부친상의 충격으로 여덟번째 왕손은 유산 된 것으로 보인다.[태지5] 명 홍치11년(1498년) 11월 27일 진시에 태어난(皇明弘治十一年十一月二十七日辰時生)/왕자 강수아기씨의 태를(王子康壽阿只氏胎)/홍치 12년(1499년) 3월 17일 자시에 묻음(弘治十二年三月十七日子時藏)[29] 양평군 이인의 이름은 중종 8년에 다시 등장하는데 '만손'이라는 이름의 10대 소년이 스스로 양평군을 자처하는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은 남학동에서 성장하다가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자신의 종인 '보동'이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아이를 대신 내어 놓고 자신을 보자기로 덮어 다른 곳으로 빼돌린 후 여러 곳을 전전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양평군을 어릴 적부터 키웠던 '이손'이라는 인물이 증인으로 나타나면서 만손의 사건은 자작극으로 결론이 내려졌다. 이손은 자신이 알고 있는 양평군의 신체적인 특징과 만손의 특징이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에, 만손은 거짓을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한 것이다. 결국 만손은 처형되었다.[30] 장녹수는 성관계를 안 하기로 유명한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의 사노비 여종 출신으로서, 당시 30대였고 유부녀였으나 엄청난 동안과 애교로 연산군의 마음을 녹여서 가지고 놀았다고 전해진다. 연산군의 후궁 노릇을 하면서 권세를 누리다가 중종반정 이후 처형되었다. 그런데 총애를 받았다면서도 의외로 연산군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는 딸인 이영수 한 명뿐이었다.[태지6] 왕녀 영수의 태를(王女靈壽胎)/홍치 15년(1502년) 11월 12일 양주군 봉접면에 묻고(弘治十五年十一月十二日藏于楊州郡棒接面)/소화 4년에 옮겨 묻음(昭和四年月日移藏)[32] (전략) 왕이 녹수(綠水)를 총애해서 딸 하나를 낳았는데, 이름을 영수(靈壽)라고 했다. 왕이 이를 매우 사랑했는데, (후략) - 《연산군일기》, 연산 8년 12월 8일 병오 1번째 기사[33] (전략) "권한은 서자(庶子)로서 분수를 모르고 장 숙원(張淑媛)의 딸 【폐주(廢主)의 숙원 녹주(綠珠)가 폐주에게 굄을 받아 낳은 딸이다.】에게 은밀히 장가들었으니 지극히 놀라운 일로, 본사(本司)가 추문하다가 형장 추문하기를 청하였습니다. (후략)- 《중종 24년(1529년) 6월 1일 갑자 2번째 기사》[34] (전략) 이것은 전 숙원(田淑媛)의 딸이 몽선의 집에 피접해 있었는데 그 인연으로 대내에 아뢰게 되어 이런 명이 있었다. (후략) -《연산군일기, 연산 11년 10월 12일 계해 1번째기사》[B] 숙용 전씨의 딸 = 이정수(李貞壽)일 가능성이 높다. 이정수(李貞壽)가 연산 11년(1505년) 3월 11일에 태어나고 약 한달 뒤인 4월 18일에 숙원이었던 전씨가 이유없이 숙용으로 진급하였는데 딸을 낳고 품계가 올라간 것으로 추측된다.[36] "폐주(廢主) 가 괴던 장녹수(張綠水)에게서 태어난 이영수(李靈壽)와 정금(鄭今)에게서 태어난 이함금(李咸今)에게 가사(家舍) 1좌(坐)와 노비(奴婢) 각각 15구(口)와 전(田) 각각 5결(結)을 내리고, 모두 선원록(璿源錄)에 올리소서." -《중종실록, 중종 12년 9월 1일 갑술 2번째기사》[C] 이함금(李咸今) = 신거홍의 처일 가능성이 높다. 연산군의 왕녀들 중 중종시대에도 생존기록이 있는 사람은 휘신공주, 이영수, 이함금 뿐인데 휘신공주는 이미 중종반정 전에 혼인을 하였고 이영수(李靈壽)는 권한의 처가 되었기 때문이다.[태지7] 홍치 12년(1499년) 기미에 태어난(弘治十二年己未生)/옹주 복억의 태를(翁主福億胎)/홍치 12년 기미 5월 9일 삼천군 삼척면에 묻고(弘治十二年己未五月九日藏于三陟郡三陟面)/소화 4년에 옮겨 묻음(昭和四年月日移藏)[태지8] 명 홍치 14년(1501년) 2월 초 4일 미시에 태어난(皇明弘治十四年二月初四日未時生)/왕자 돈수아기씨의 태를(王子敦壽阿己氏)/홍치 19년(1506년)음력 9월 2일[113] 해시에 묻음(弘治十八年二月十九日亥時藏)[태지9] ‘홍치(弘治) 14년(1501, 신유) 출생. 왕녀 복합의 태를 홍치 14년(1501, 신유) 6월 17일에 황주군 인교면에 묻음. 소화 4년(1929)에 옮겨 묻음(弘治十四年辛酉生 王女福合胎 弘治十四年辛酉六月十七日 藏于黃州郡仁橋面 昭和四年 月 日移藏).’ - 《연산군의 딸 왕녀 복합(王女 福合, 1501~?)의 태지석》[41] 전교하기를, "둘째 대군이 졸하였으니, 임사홍을 불러 지리관(地理官)들을 데리고 산소 자리를 가보게 하라. 또 이총수(李聰壽) 아기의 산소 자리 본 관원을 가두고 국문하라. 대저 산소 자리를 보는 것은 동생에게도 모두 길하게 하려는 것인데, 지금 이영수(李榮壽)·총수 두 아이가 잇따라 죽으니, 이는 지리 보는데 조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하였다. - 《연산군일기, 연산 9년 10월 18일 신해 6번째기사》[D] 1. 대군 이인수가 죽었을 때, 산소 자리를 보는 것은 동생에게도 모두 길하게 하려는 것인데 이총수 아기의 산소 자리를 잘 알아보지 못해 두 아이가 연달아 죽었다는 점 2. 대군 이인수에게는 대군이라 칭하지만 이 둘에겐 그러지 않은 것으로 보아 후궁 소생으로 보인다.[D] [태지10] 명 홍치 18년(1505년) 3월 11일 유시에 태어난(皇明弘治十八年三月十一日酉時生)/왕녀 정수 아기씨의 태를(王女貞壽阿只氏胎)/홍치 18년 5월(弘治十八年五月十)/7일 묘시에 묻음(七日卯時藏)[B] [태지11] 명 정덕원년(1506년) 3월 17일 인시에 태어난(皇明正德元年三月十七日寅時生)/왕자 태수아기씨 태를(王子泰壽阿只氏胎)/정덕원년 6월 18일 자시에 묻음(正德元年六月十八日子時藏)[47] 1506년 연산군의 아들들이 모두 사사 당했을 당시, 이태수는 포함되어있지 않았는데 이를 보아 중종반정 전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48] 서녀는 신거홍(愼居弘)에게 시집갔다. 벼슬은 판관이다. 후취로 시집갔다.- 《연산조 고사본말(燕山朝故事本末)》[C] [50] 생모가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은 서녀는 신거홍에게 시집가서 4남 4녀를 낳았다.[51] 거창군부인 신씨가 친상을 입을 당시에 8번째 자식의 해산이 잘못된 것으로 추정되어 정상적인 통계는 7명이다.[52] 사실 연산군도 세자시절~즉위 초중반까지는 매우 정상적이였으며 재능이 뛰어나다고 언급돼있으며 영특하다고 기록돼있다. 다만 학문을 배우는 것을 몹시 싫어했으며 학문에는 재능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세자시절 연산군은 학문을 배우는 것을 몹시 싫어해 온갖 핑계를 대며 자주 빼먹기 일수여서 성종에게 잦은 꾸중을 들었으며 또한 문리를 통하지 못하여 학문의 진도를 한 단계씩 늦추면서 배워나갔다고 한다.[53] 그러나 의아하게도 즉위 이후에는 신하들과 논쟁할 때 또는 반박할 때 여러 경서와 경전을 적절히 잘 활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는 면모를 보여주는데 이를 볼 때 머리가 성인되어서 늦게 트이는 케이스였던 것으로 보인다.[54] 평소에 아버지 성종을 혐오했던 연산군은 내관의 발언에 잠시 화를 불러일으킨 것이었다.[55] 단경왕후[56] 이고는 아비의 물음에 대답할 가치가 없고 먹금한 것으로 보인다.[57] 사실 조선시대 아내가 실질적으로 쫓겨날 수 있는 사유는 직접적인 간통, 시부모에 대한 악질적인 불효, 치료 불가능한 전염병 등으로 극히 한정되어 있었다.[58] 1502년 출생.[59] 만으로 14세.[60] 세종의 아들 영응대군의 사위[61] 무오사화의 불씨가 되었던 조의제문이나 김일손의 사초 기록 시도는, 당시 국왕이었던 연산군의 증조부인 세조에 대해 허위사실까지 가미해가면서 정통성에 심각한 훼손을 시도한 행위이기 때문에 비단 연산군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다른 왕이라도 묵과하기가 힘들 정도의 내용이었다. 왕의 가까운 직계조상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은 현 국왕의 정통성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62] 왕들이 이런 것을 취미로 즐기려고 시도하면 신하들이 득달같이 "전하께서도 연산군이 되려 하시옵니까?"라는 식으로 반발하고 나서기 때문에 불가능했다.[63] 당시에는 음력을 사용하였는데 고종 때부터 김홍집의 의견을 받아들여 음력 1895년 11월 15일에 공식적으로 개력을 반포하며 이로써 음력 1895년 11월 17일을 양력 1896년 1월 1일로 정하여 양력을 사용하게 되었다.[64] 이융은 연산군의 본명이다.[65] 내훈은 부녀자의 덕목과 훈육에 대해 저술한 책.[66] 만 21세[67] 옷의 겉감과 안찝[68] 여자 귀신[69] 참고로 정창손은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되었다가 중종 때 신원되었으며 성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70] 그러나 정창손 본인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지 그냥 냅두라고 하였다.[71] 일각에서는 영의정 정창손과 사이가 안 좋아서 귀신도 내쫓을 겸 화포로 정창손도 같이 내쫓자는 본심이 있기에 제안을 했다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72] 광증[73] 연산군은 이런 자신의 모습을 혹시나 궁 밖 바깥 사람들이 알게 될까봐 걱정하였으며 자신의 사생활을 궁 밖 사람들이 보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고 한다.[74] 궁 밖 사람들이 몰래 엿보는 광경을 들켰을 때는 곤장을 때리고 그 일대의 집을 허물었다고 한다.[75] 흔히 대비에게 박치기해서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얘기는 야사이다.[76] 참고로 처용무는 2009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77] 포구악에 맞추어 격구하는 동작의 한가지[78] 연산군의 외모는 선대 왕들에 비해 유난히 곱상했기에, 이러한 자신의 외모를 정당화하기 위해서였다는 분석도 있다.[79] 목련으로 만든 향[80] 칡 섬유로 짠 베[81] 삼실로 짠 천[82] 생원·진사에 합격된 때에 입던 예복[83] 다만 연산면의 오계 품종이 천연기념물 제265호로 지정되어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84] 당시 기준으로는 못생겨서 연산군이 잘생겼다라고 기록에 쓰라는 명을 내렸다는 얘기가 있는데 이는 사실 무근이다.[85] 연산군과 더불어 중종이 키가 작았다거나 중키였다는 얘기도 있는데 실제로는 둘 다 키가 컸다는 기록이 있다. 둘의 키가 작거나 중키였다는 묘사는 야사나 실록에 전혀 언급이 없고 온라인상에서 잘못 알려진 정보이다.[86] 본문에서 뜻하는 양기는 심신의 기력을 뜻한다.[87] 부스럼[88] 재위 중반~후반에 넘어가면서부터는 면창의 관한 증상이 도졌다거나 악화되었다는 기록이 언급되지 않았다.[89] 한음 이덕형이 아닌 동명이인이다.[90] 다른 외모 기록에도 연산군 얼굴에 곰보나 종기 흉터자국이 있었다는 얘기는 언급되지 않았다.[91] 실제 연산군 얼굴에는 반점이 있었다는 기록이 일체 없다.[92] 이 시기의 세계관은 우리 예상보다 훨씬 넓었다. 순조 때 나폴레옹을 알 정도. 허나 겉으로만 알 뿐이고 그 이상은 알지 못했다. 아니, 관심 자체가 없었다.[93] 본래 연산군은 19살에 즉위해서 31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인물인 만큼 20대 배우가 연기하는 것이 연령 고증에 부합하는 편이다.[94] 무엇보다 외워야 하는 대사의 양이 장난 아니게 많은 배역으로 악명이 높다. 왕과 나에서 연산군을 연기했던 정태우는 예능 놀러와에서 보통 군주들은 근엄한 이미지 때문에 대사의 양이 많지 않아 연기하기가 그렇게 어렵지 않으나 연산군은 왕 치고는 말이 많은 인물이라 그만큼 대사가 많아 연기하기 힘들었다고 토로한 적이 있고, 왕과 비의 안재모는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 연산군이라는 배역 때문에 하루하루가 대사와의 전쟁이라고 그 고충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엄청난 양의 대사 때문에 타 출연진들보다 미리 대본을 먼저 받아 대본 외우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하는가 하면 심지어 SBS 시트콤 행진 촬영 현장에서도 왕과 비의 대본 외우기도 따로 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95] 임영규의 경우에는 현실에서도 약간 그런 성격이라는 말이 있다.[96] 연극에서 연산군이 폐비 윤씨의 비밀을 안 이후에 햄릿의 아버지 유령과 같은 폐비의 유령 때문에 고뇌한다. 완전히 햄릿 짝퉁 연산군.[97] 이 작품을 그대로 영화화한 것이 김진아와 공연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연산일기》로 유인촌 최고의 걸작이다.[98] 역대 최연소 성인 연산군이었지만 고증에 가장 부합하는 나이였으며 연기력도 손색없이 해냈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출연해 성인 역을 수행해 1994년 KBS 연기대상에서 아역상을 수상한다.[99] 당시 연산군에 캐스팅될 때만 하더라도 전작 《용의 눈물》의 반듯하고 어진 충녕대군 이미지가 남아있던터라 미스 캐스팅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폭군 역을 절륜하게 소화하여 큰 호평을 얻었다. 한국 역사상 최고의 성군과 최악의 폭군을 그것도 20대 초반의 나이에 모두 연기한 셈.[100] 안재모가 연기한 연산군의 경우 자기 복제가 심한 정하연 작가 특성상 전작이었던 <장녹수>의 배우 유동근이 연기했던 연산군과 겹치는 대사와 장면이 많았다. 자칫 어설프게 연기했다가는 '유동근 복제판'이 되었을 수도 있었지만 안재모의 절륜한 연기 덕분에 이 둘의 연산군은 스타일이 많이 달라졌고 덕분에 전혀 복제판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훗날 안재모는 정도전에서 선배 유동근의 뒤를 이어 태종 이방원(정도전)역을 맡아, 선배의 연기와 겹치지 않는 자신만의 재해석을 보여주며 호평을 받았다.[101] 오죽하면 최측근인 임사홍과 김자원마저도 인수대비는 오래 살지 못할테니 조금만 기다리자고 말릴 정도. 하지만 연산군 본인은 할머니가 죽기 전에 모든 복수를 하려고 했기 때문에 인수대비는 죽기 전에 정말 못볼 꼴을 다보면서 죽게 된다. 심지어 죽고 나서도 빈전에 올리는 술에다가 가래침까지 내뱉는 건 덤.[102] 이후 연산군은 연산군 자신이 김자원을 죽였다는 사실을 듣고 크게 자책한다.[103] 《왕의 남자》의 원작인 연극 《이》에서는 공길에 의해 남색과 사디즘에 눈을 뜨는 것으로 그려진다. 폭정보다는 장녹수와 공길 사이에서의 삼각관계가 부각되는게 특징.[104] 과거에 단종을 3번이나 맡았던 정태우는 MBC 예능 공감토크쇼 놀러와에 출연해서 "본래 사극 속 왕은 말 수가 없고 근엄해서 대사가 그렇게 많지 않은 편인데 연산군은 자신이 맡았던 배역 중 '가장 말 수가 많았던 왕'이라 그만큼 대사량이 많아 연기하기 많이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그래도 본인은 이 연산군 연기를 통해 그동안 남아있던 단종 이미지를 벗을 수 있게 되어 연산군 배역에 애착이 많이 가는 듯.[105] 참고로 정태우는 1995년 KBS 역사다큐 "역사의 라이벌"에서도 어린 시절의 연산군을 연기한 적이 있다. 그러나 역사의 라이벌은 일종의 역사 다큐 형식이고 대사도 없어서 실질적으로는《왕과 나》가 첫 연산군 연기 도전이다.[106] 장녹수는 그 결심이 오래 가지는 못할 거라고 봤다.[107] 작중에서 연산군의 폭정을 부추기는 간신배 김자원의 협잡으로 '폭군을 몰아내고 안양군을 옹립하자'는 벽보가 나돌자 "진성대군도 아니고 안양군 따위를 옹립한다고?"라며 연산군이 분노했던 장면이 있다. 이렇게 간접적으로 진성대군을 내심 인정하는 모습이 보이기는 했다. 사실 "아래가 위를 능멸하는 짓거리"를 누구보다 혐오했던 군주권 지상론자 연산군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엄연히 왕의 정실인 중전 소생의 '적자'인 진성대군과 후궁 소생의 '서출'인 안양군은 애초부터 신분상의 차이가 넘사벽일 수밖에 없다. "진성대군도 아니고 안양군 따위를"이라는 발언은 다르게 생각하면 "고작해야 천한 후궁 소생의 서자를 엄연한 정실 소생에 적통인 나와 비교해? 그것도 모자라서 그따위 천한 서출을 만인지상의 군주에 앉히겠다고? 이것들이 임금 알기를 뭘로 아는 거야?"라는 의미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한마디로 진성대군을 인정한 게 아니라 그냥 윗전은 윗전, 아랫것은 아랫것 이런 뿌리박힌 신분주의에서 기원한 오만.[108] 실제로 폐비 윤씨가 사사당하고 나서 성종은 폐비의 폐자도 꺼내지 말도록 함구령을 내리며 그 때문에 연산군은 한동안 계모인 정현왕후를 자신의 친모로 알고 있었다. 갓 태어났을 때도 오랫동안 피접을 나가 봉보부인에 의해 길러졌기 때문에 아예 생모의 얼굴조차 모르고 있었다.[109] 영화 결말부에서 중종반정 때 도망가던 중 임숭재의 함정으로 돼지 우리에 빠졌는데 임숭재마저 자신을 배신했다는 절망과 광기가 뒤섞인채로 기어코 암퇘지와 수간을 해버린다. 이 모습을 본 유자광은 "마지막 성은은 돼지가 입었구만?"하고 질색한다.[110] 김지석은 이 연기로 2017년 제10회 코리아 드라마 어워즈와 MBC 연기대상에서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받았다.[111] 연산군의 시대는 1부 한정, 2부는 선조의 재위기였던 16세기 후반, 3부는 17세기 후반의 시대를 다룬다.[112] 처용무를 추면서 즐겁다고 노래하지만, 속으로는 불안감을 달랠 수 없다고 독백하다 결국 눈물을 흘리며 이걸 본 신천지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악행을 저질렀으니 괴롭기도 하겠지하며 나름 안타깝다는 듯이 쳐다본다.
[113] 양력 9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