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03 15:38:28

왕과 나(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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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대하사극
왕과 나 (2007~2008)
The King and I
파일:king_and_I.jpg
[[영상물 등급 제도|{{{#FFFFFF 시청 등급 }}}]] 파일:tv15.png 15세 이상 시청가
방송 시간 월요일, 화요일 밤 9:55 ~ 11:05
방송 기간 2007년 8월 27일 ~ 2008년 4월 1일
방송 횟수 63부작[1]
채널 파일:SBS로고.png
제작사 올리브나인, SBS 프로덕션
연출 김재형·손재성 → 이종수·손재성[2]
극본 유동윤
출연 오만석, 구혜선, 고주원, 전광렬, 전인화
링크 공식 홈페이지

1. 개요2. 등장인물3. 기타

1. 개요

2007년 8월 27일부터 2008년 4월 1일까지 SBS에서 방영되었던 사극으로 용의 눈물로 유명했던 김재형이 연출한 마지막 드라마로 여인천하에서 김재형 PD와 호흡을 맞추었던 유동윤 작가가 각본을 맡았다. 일단 그나마 왕의 여자보다는 성공한 편.[3] 당초 내 남자의 여자 후속으로 기획되었으나 캐스팅 문제로 어려움을 겪어오자 SBS는 미니시리즈 강남엄마 따라잡기를 대체 편성했고 이 때문에 <왕과 나>는 <강남엄마 따라잡기> 후속으로 바뀌었다.

세종대왕부터 연산군까지 7명의 왕을 모신 환관 김처선의 일대기를 그렸지만, 이 드라마의 김처선성종 때부터 내시가 된 것으로 나오니 이미 고증은 날아간 셈.

방영 초기엔 내시를 소재로 한 사극 드라마라는 사실에 호기심을 갖고 보기 시작한 사람이 많았으나 이때부터 선정성 논란이 빚어지는 등의 구설수가 있었다. 초반에 내시 역을 맡은 어린애들을 모아서 하체를 지나치게 노출시켜 물의를 일으켰다. 아이들 엉덩이가 그대로 나왔고, 심지어 의녀 역을 맡은 성인 여성 배우가 거세가 제대로 되었나 검사한다고 바지를 벗은 남자 아이의 중요부위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장면까지 나왔다. 실제로는 종이로 가리고 촬영했다고는 하나, 이는 아역 배우나 시청자들에게 심히 불쾌감을 주는 심각한 장면임에도 노출씬을 강했했는데, 대상이 여자가 아닌 남자고 어른이 아닌 아이라는 이유로 별문제 없을거라고 제작진이 강행했으니 한국 방송계 병폐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이다.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방영된 이산에서도 이랬으니 방송사가 한꺼번에 삽질을 한 셈이다. 또 성교육을 시킨답시고 궁녀들에게 소녀경에 나오는 체위를 시키고 실제 왕에게 보여주게 하는 장면 등이 있었다(...).

아역들이 제 역할을 해주던 초기 시청률은 30%를 육박할 정도로 좋았으나, 성인 연기자들로 바뀌고 난 이후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결정적으로 중반의 어우동 에피소드는 뜬금없고 질질 끄는 데다 설득력이 없어서 시청률 하락의 주범이었다. 같은 시간대에 방영된 사극인 MBC의 이산과 비교하면 초반에는 <왕과 나>가 시청률이 더 높았지만 중반부터 역전당해 시청률이 10%대로 떨어졌으나 후반에 연산군 역의 정태우가 출연한뒤 16~18%대로 시청률이 조금이나마 올랐다. [4] 연산군이 간지폭풍의 강력한 왕권주의자로 묘사되는 건 나름 실록을 참조한 티는 보이지만 가면 갈수록 수습 안 되고 가해자가 된 피해자의 면모가 많이 부각되다 보니 연산군 미화 논란이 일어났다. 연산군이 폭정을 휘두르는 장면에선 확실히 잔인한 폭군으로 묘사했기 때문에 무작정 옹호한 것은 아니지만.

김재형 감독으로서는 분했을 것이다. 이병훈이 연출한 대장금에게 참패하던 왕의 여자 이후로 한동안 침체기에 있다가 마지막으로 연출한 이 드라마까지 이병훈이 연출한 이산에게 밀린 것이다. 결국 2008년 1월 췌장염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공식적으로 자리에서 물러났고, 2011년에 그는 사망하여 이 드라마가 유작이 되었다.

보통 악독하고 투기가 심한 여인으로 그려지던 폐비 윤씨를 여기서는 구혜선이 맡아서 청순하고 처연한 여인으로 그려내었다.[5] 또한 다른 사극에서 대립과 증오 일변도로 그렸던 연산군과 정현왕후/인수대비의 관계도 이 드라마에서는 상당히 입체적으로 그린다. 인수대비는 윤씨에게 강한 반감을 가지긴 해도 연산군에게는 기본적인 애정을 갖고, 죽기 직전에도 '어떤 일이 있어도 진성대군을 옹립하자는 말을 듣지 말고 주상을 지켜줘야 한다'라고 정현왕후에게 당부한다. 정현왕후 역시 친아들인 진성대군과 차별하지 않고 연산군을 따뜻하게 대한다. 연산군도 두 대비에게 무작정 반감을 가진다기보다는 조금만 더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달라는 애정 갈구 성향을 보인다.[6]

드라마 제작 당시, 수원시 장안문 동쪽에 부지를 마련하여 촬영하였다.#네이버 항공뷰 본래는 주택가가 있던 부지였지만, 드라마 세트장 마련 직전에 모두 밀어버렸다. 드라마 촬영이 끝난 이후인 2009년에 철거된 후 공터로 방치되어 오다가 주차장 부지로 활용하고 있는 상태.

해당 작품의 공동 외주제작사인 SBS 프로덕션은 <왕과 나>의 실패 이후 제작부분 쪽에서 극심한 적자를 겪어오다가 SBS Plus(당시 SBS 드라마 플러스)로 나중에 합병됐다. (유통 및 기타사업 부문은 SBSi와 합병하여 SBS콘텐츠허브가 되었다)

2. 등장인물

왕과 나의 동시간대에는 이병훈 감독의 이산이 방영되었고, 과거 이병훈 감독과 같이 작품했던 배우들이 왕과 나에 출연해 이병훈 감독과 대립하게 된다. 전광렬, 양미경, 조정은(어린 장금), 여운계 등이 있다. 그리고 이산에서는 과거 여인천하에서 어린 세자역으로 나온 권오민은 이산에 출연해 김재형 감독과 대립하게 된다.
  • 주민수 - 오만석 : 김처선
    주인공을 맡은 오만석은 그럭저럭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전반부에서는 내시부 수장 역을 맡은 전광렬의 카리스마 연기에, 후반부에서는 정태우의 후덜덜한 광기 연기에 묻힌 감이 있다. 사실 오만석 사극 연기는 신돈에서 빛을 더 발했다는 평.
  • 박보영 - 구혜선 : 폐비 윤씨
    본래 김처선과 사랑하던 사이었으나, 가세가 기울면서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성종의 간택후궁으로 입궁하게 된다. 아역 시절 김처선, 자을산군과 삼각관계를 형성하기도 했다. 나중에 원자를 생산하면서 공혜왕후 승하 이후 중전 자리에 오르게 되지만 끊임없이 정귀인과 엄귀인, 인수대비의 모함을 받아 폐위되어 사사당한다. 여담으로 박보영이 이 배역을 연기할 아역 시절에는 시청자들로부터 극찬을 받았으나, 구혜선이 연기하면서부터는 발연기 논란에 시달리게 되었는데, 성종 역의 고주원의 발연기가 워낙 심각했던 탓에 다소 묻힌 감이 있다. 그러나, 구혜선의 어떤 작품에서의 어떤 연기보다도 이 작품의 폐비 윤씨 연기가 가장 좋았다. 표정 연기는 나무랄 데가 한두군데가 아니라 뭐라 평가조차 어려울 지경이지만, 대사 전달이나 목소리로 표현하는 감정 연기는 적어도 구혜선 개인의 연기 내에서는 역대급 호연.
  • 유승호 - 고주원 : 성종
    당초 박상민이 이 배역에 낙점되었으나 개인사정으로 고사했다. 그리고 정한수 역으로 나온 안재모에게도 이 배역 제의가 갔었으나 안재모 본인이 악역에 더 매력을 느껴서 거절을 하고 정한수 역을 맡은 거라고 한다.[7] 이 드라마에 나온 배역들 중 가장 발연기가 심한 배역으로, 오죽하면 왕인 성종보다 내시인 조치겸의 카리스마가 더 강하다고 느낀 시청자가 많았을 정도. 조치겸이 버럭 하면 내시부 땅이라도 우르릉 울리는 느낌이나, 성종의 분노에는 도승지의 수염한올조차 까딱하지 않는 느낌. 역시 사극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 이진 : 정현왕후 윤씨 역
    또박또박 대사를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보이기는 하나, 워낙 착해보이는 외모라 그럭저럭 잘 어울렸다. 극 중에서 폐비 윤씨에게 가장 우호적이었던 후궁이며, 그 때문에 중전이 된 이후로도 폐비 윤씨 소생인 원자를 자신의 친아들처럼 키워줬다. 다만, 오히려 너무 오냐오냐하면서 귀하게 키워주다보니 연산군 본인은 정현왕후 더러 자신을 왜 친자식처럼 잘못하면 꾸짖거나 회초리를 때리지 않았냐면서 원망했다.
  • 백승도 - 안재모 : 정한수 역
    양반 집안 출신 내시로, 연산군이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주인공과 대립하는 라이벌이자 주요 악역. 김처선의 반대 포지션에 있다보니 사사건건 전생에서는 그렇게 증오를 했던 인수대비를 백으로 두고 설영과 함께 김처선과 폐비 윤씨를 모함해서 결국 폐비 윤씨는 사사까지 당한다. 출세욕으로 가득 찬 인물이다보니 여러모로 악행을 많이 저지르지만 그래도 나름은 내시부 안에서는 유능하다고 평가받았는지라 감찰부 수장까지 되기도 한다. 원래 조치겸의 양자로 낙점되었으나, 자기와 똑같이 싹수가 노란 인물이란 것을 간파한 조치겸이 정한수 대신 김처선을 자신의 양자로 맞아들인다. 그래서 극 중 내내 조치겸과 가장 대립을 많이 하기도 했다. 마지막까지 거의 악행을 일삼다 몰락까지 하게 되지만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김처선과 화해하기는 한다. 정작 안재모는 아이러니하게도 왕과 비에서는 자신의 생모를 그토록 그리워했던 연산군을 연기했었다.
  • 전인화 : 인수대비 한씨 역
    여인천하 이후 한동안 브라운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전인화가 오랜만에 컴백하여 맡은 배역. 워낙에 문정왕후 역할을 맡았을 때 카리스마가 대단하였고, 인수대비도 이에 못지 않게 카리스마가 대단했던 인물이었던지라 사극팬들은 전인화가 인수대비를 연기한다고 들었을 때 환호했었다.[8] 다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후궁들의 이러저러한 모함에 허구한 날 속아넘어가는 팔랑귀 그 이상 이하도 아니어서 극 중 전개를 꽤나 답답하게 만든 배역이었다. 여인천하의 문정왕후보다 훨씬 너프된 배역이었던 셈. 그래도 전인화 특유의 카리스마는 아직 살아있었던지라... 여러모로 사극팬들 입장에서는 전인화의 연기가 아까울 수 밖에 없었을 듯. 게다가 남편 유동근이 촬영장에서 쪽대본때문에 구타사건을 일으키기까지 하여 전인화 입장에선 여러모로 흑역사가 된 배역이기도 했다.
  • 양미경 : 정희왕후 윤씨 역
    원래는 인수대비의 시어머니이지만, 양미경전인화는 4살 차이밖에 안나기 때문에 극 중 보다보면 그닥 시어머니와 며느리로 보여지진 않는다(....).
  • 정윤석 - 정태우 : 연산군
    웬만한 연기 잘한다는 배우들도 빛을 못 본데다가[9] 몇몇 배우들의 발연기도 지적되었던[10] 이 사극에서 극 후반부를 그나마 살린 공신이라는 평을 듣는다. 사실상 왕과 나 후반부는 그냥 제목이 '연산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산군 역의 정태우와 인수대비 역의 전인화는 여인천하에서도 각각 세자(인종)와 문정왕후 역으로 함께 등장해서 대립 구도가 나온 적이 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기존 사극에서의 연산군과 다르게 정윤석 군이 연기했던 꼬꼬마 원자 시절부터 자신의 생모의 얼굴도 알고, 심지어 폐비되어 사사되었다는 사실까지 인지하고 있다는 것. 실제 연산군은 이와 다르게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서 병이 나 밖으로 피접을 나가 봉보부인에 의해 길러졌기 때문에 아예 자신의 생모의 얼굴조차 모르고 있었으며, 궁에 다시 돌아왔을 때도 계모인 정현왕후의 손에 의해 길러져 정현왕후를 자신의 친모로 여기고 있었다.
  • 박하선 : 폐비 신씨
  • 김희정 - 한다민 : 공혜왕후 한씨 역
  • 한소정 : 귀인 엄씨
  • 윤혜경 : 귀인 정씨
  • 김사랑 : 어우동
  • 전광렬 : 조치겸 역
    사실상 이 드라마의 진주인공이자 이 드라마를 가장 하드캐리한 배역. 그리고 선악이 모두 공존하는 가장 입체적인 배역이다. 원래 출세욕이 누구보다도 컸던 내시였던지라 예종 독살에 크게 관여하기도 하고, 심지어 김처선의 친부까지 살해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죄책감을 많이 느꼈는지 나중에 김처선을 자신의 양자로 받아들여 상선으로 출세하는 데 크게 도움을 주기도 하고, 처선의 친모인 오 상궁도 자주 챙겨준다. 다만 김처선과 우호적인 관계에 있던 폐비 윤씨가 사사될 때는 발을 빼기도 한다. 나중에 연산군의 폭정에 대해 항거하였다가 역적으로 몰리게 되고 관군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결국 자결로 생을 마감한다.
    비록 내시이긴 하였어도 왕 전문 배우 전광렬이 연기했다보니 카리스마가 정말 장난이 아니었다. 덕분에 전광렬은 그 해 S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까지 하였다.
  • 한정수 : 도금표 역
    조치겸의 충직한 부하. 조필연에게는 고재춘이 있고 조치겸에게는 도금표가 있다 한 가지 웃긴 사실은 원래 주상욱이 이 배역으로 낙점되었으나, 촬영 3일 전에 제작진 측에서 캐스팅을 엎어버리고 한정수를 대신 캐스팅 한 것.
  • 양정아 : 오 상궁 역
    처선의 생모
  • 윤유선 : 월화 역
    처선의 양모. 여담으로 윤유선은 왕과 비에서 귀인 엄씨를 연기한 적이 있었는데, 왕과 비에서는 연산군에 의해 골로 가버리는 역할이었지만, 여기서는 오히려 연산군의 마지막 유배 가는 길을 배웅해주기까지 한다.
  • 신구 : 노 내시 역
  • 김수미 : 쇠귀노파 역
    극중 초반에는 여운계가 맡았지만 건강이 좋지않아 김수미로 교체했다.
  • 전혜빈 : 설영 역
    이 드라마 안에서 정한수와 더불어 연산군 등장 이전까지 투탑 악역. 이 쪽은 엄귀인을 백으로 두고 정한수와 같이 온갖 악행을 저지르며 심지어는 어우동까지 데려와 여러 사단이 나게 만든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가장 든든한 우군이었던 정한수에 의해 독살당하면서 정말 어이없게 퇴갤. 그리고 투탑 악역이긴 했지만 사실 그렇게 극 중 전개 상 크게 필요했던 배역은 아니었던지라 시청자들로부터 왜 자꾸 나오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반응이 많았으며, 오죽하면 최후를 맞았을 때 엄청 기뻐했던 시청자들까지도 있었다. 워낙 어우동의 임팩트가 커서 그렇지, 이 쪽도 어우동 못지않게 왕과 나의 극본이 산으로 가게 만들게 한 배역 중 한명이다.
    훗날 전혜빈JTBC 사극 인수대비에서 폐비 윤씨를 연기하게 된다. 인수대비의 폐비 윤씨 역시 고증따위는 개나 줘버린 역할이라..[11] 배우는 동시대극을 두번 연기하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지...
  • 최종환 : 윤호 역
    정현왕후의 아버지. 배우 최종환은 여인천하에서 중종을 맡았는데 여기에선 중종의 외조부 윤호를 맡았다.
  • 김종결 : 한명회
    본래는 성종의 장인이었으나 공혜왕후 승하 이후 끊임없이 성종과 폐비 윤씨를 사사건건 모함한다. 배우 김종결은 왕과 비에서 같은 청주 한씨 집안의 인물이자 인수대비의 사촌오빠인 한치형을 연기한 적이 있었다.[12]
  • 임지현 : 송달래 역
  • 최하나 : 홍비 역
  • 최정원 : 폐비 윤씨의 어머니 신씨 역
  • 박지훈 : 어린내시 역

3. 기타

이 드라마가 드라마 매니아들에게 전설로 남은 이유는 작가와 배우들의 대립 때문이다. 인수대비 역의 전인화의 남편 유동근이 대본에 대해 항의하다 스텝을 폭행했다고 해서 구설수에 올랐는데 사과하고 마무리가 되었다고는 한다. 이 일의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점점 산으로 가는 대본 때문에 작가와 배우들간에 발생한 불화가 꼽힌다. 그런가 하면 주연인 오만석이 총대를 메고 작가에게 대본상의 문제점을 말하며 개선을 건의했는데, 작가는 개선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한겨울에 뜬금없는 물고문+곤장씬을 넣어서 제대로 보복했다는 이야기가 디시인사이드 드라마 갤러리(드갤)의 전설로 남았다.[13]

이 드라마는 뮤지컬 왕과 나와는 달리 태국에서 방영되었다. 단, 제목은 '김처선'으로 바뀌어서 상영.

2화에서 박지훈거세당하는 내시 역으로 나왔다. 링크

시대적 배경이 15세기 조선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의상들은 죄다 임진왜란 훨씬 이후에 나온 조선 후기형 의상들이다. 여자들이 입는 저고리 길이가 19세기 수준으로 짧거나[14], 궁중 여인들이 당의를 입는다거나...[15] 심지어는 왕비의 대례복마저 대한제국때나 되서야 나온 심청색 적의에 대수머리 형태로 나온다.[16] 감독의 전작이 무려 고증이 훌륭하기로 유명했던 용의 눈물인데

사극팬들 사이에서는 제목도 비슷하고 심지어 거의 똑같은 시기를 다루어 등장인물도 많이 겹쳤던 왕과 비와 자주 비교되었는데, 배우들 연기 면에서나 고증 면에서나 왕과 나보다는 왕과 비 쪽의 평가가 더 월등한 편. 다만 각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연산군은 둘 다 사극 만렙이라고 평가받는 안재모정태우가 연기하였는데, 둘 다 사극 만렙답게 연기가 후덜덜했고 극 후반부 시청률이 올라가는 데 큰 역할을 해 주기까지 했다! 만약의 사극팬이라면 이 두 연산군의 연기를 비교하면서 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17]

여담으로 이 드라마를 연출한 김재형 PD는 이전에 거의 똑같은 시기를 다룬 사극 한명회를 연출한 적이 있었다.


[1] 본래 50부작이었으나, 사전제작을 목표로 내정됐던 후속작 식객의 제작 일정이 계속 늘어지면서 이 기간을 채우기 위해 16회 연장까지 추진되었다. 하지만 제작 과정에 있었던 여러 잡음과 일련의 내부 사정으로 최종 63회로 마무리되었으며, 〈식객〉의 편성은 결국 연기되어 그 사이에 역시 사전제작 드라마였던 사랑해땜빵 편성되었다.[2] 이종수 PD는 드라마 촬영 초반 김재형 PD가 건강상 이유로 입원했을 때 이미 4주간 김재형 PD 대신 연출을 맡은 바 있었다. 하지만 김재형 PD가 췌장염 투병을 이유로 2008년 1월, 최종 하차를 선언했고 마지막회까지 메인 연출을 맡았다.[3] 작가 유동윤은 당초 <왕의 여자> 집필자였으나 KBS 1TV 무인시대와의 겹치기 집필 문제 때문에 고사했다.[4] 마지막회의 시청률은 19.7%로 경쟁작인 MBC '이산'은 26.3%, KBS 2TV '싱글파파는 열애중'은 4.3%의 시청률을 기록했다.[5] 폐비 윤씨를 정쟁에 희생된 가련한 여인으로 그리는 작품은 지경사에서 발간된 만화 한국사가 있다.[6] 연산군이 인수대왕대비전에 난입하여 패륜을 저질렀을 때만은 정현왕후가 참다 못해 대왕대비에게 사죄하라며 이를 듣지 않으면 지금이라도 회초리를 들겠다고 단호히 충고했는데 이때 연산군이 심경을 털어놓는다. 술을 퍼마시며 반항적이던 눈빛이 갑자기 울먹이는 눈빛으로 변하고 "대비마마, 어찌 진즉 소자에게 이리 말씀해주시지 않으셨사옵니까? 어찌 소자가 잘못하였을 때 질책하고 회초리를 쳐주지 않으셨사옵니까? 소자, 대비마마께오서 귀하게 키워주셨사오나, 친자식이 아니어서 회초리 한 번 맞아보지 못한 것이 더 한스러웠다는 것을 어찌 모르셨사옵니까? 소자는 진성대군이 참으로 부럽사옵니다." 이에 정현왕후도 차마 더 뭐라 하지는 못하고 연산군을 안쓰럽게 본다.[7] 덤으로 사극에서라면 필수요소인 수염분장을 하기가 너무 싫어서 일부러 수염이 없는 내시 역을 선택한 거라고 한다.[8] 게다가 이 드라마의 연출진과 작가 모두 여인천하 담당 연출진과 작가이다보니 사극팬들은 당연히 기대를 더 품을 수 밖에.[9] 이들 중 전광렬, 전인화, 안재모는 사극 및 시대극으로 공중파 연기대상까지 수상한 경력이 있을 정도로 사극에서만큼은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이었다.[18] 그런데도 그놈의 대본이 산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빛을 보지 못했었다. 안습[10] 특히 고주원의 발연기가 심각했었다.[11] 그래도 실록의 묘사대로 구혜선 폐비 윤씨보다는 훨씬 투기도 심하고 악독하게 묘사되는 편이다.[12] 여담으로 한치형도 나중에 한명회와 더불어 갑자사화연산군에 의해 부관참시를 당한다.[13] 곤장씬을 찍을 때 바지속에 충격을 완화해주는 보호대를 착용한다고 해도 만만치않은 고통을 느낀다. 중견배우 김진태가 90년대 드라마 '먼동'에서 곤장씬을 찍고 엉덩이에 피멍이 들어 한동안 고생했을 정도다. 그런데 한술 더 떠서 추운 겨울에 엉덩이 부분에 물을 뿌리고 찍는 물곤장이었으니 살이 얼어서 고통이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14] 저고리 길이가 짧아지기 시작한건 임진왜란 이후이며 그전까지는 주로 허리까지 다 감싸매는 장저고리를 많이 입었다. 게다가 17~18세기때만 하더라도 지금의 저고리보다는 꽤 긴 편이었다.[15] 조선시대 때 당의를 입기 시작한 시기는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 시기로 대략 추정되며 그 전까지는 장저고리를 입는 경우가 많았다.[16] 이 드라마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조선 전기때는 명나라에서 직접 하사했던 칠적관과 대삼(大衫)을 주로 대례복으로 입었다.[17] 배우개그가 있는데 안재모가 맡았던 이방원 역은 정태우가 맡았던 방번을 1차 왕자의 난에서 살해한바있다. 연산군이 연산군을 죽인셈.